몰락의 시대를 거쳐, 단편은 진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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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방식으로 장편이 되고 있는 단편영화들 몰락의 시대를 거쳐, 단편은 진화한다 정한석 영화평론가 2000년대 초반까지도 단편영화는 그 자체로 일가를 이루었다. 몇몇 단편영화제들은 높은 인기를 끌었고 단편영화만 찾아보는 관객까지 있었다. 디지털로 영화를 만드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 면서, 그러니까 창작의 환경이 바뀌면서 상황도 바뀌었다. 단편 몇 편을 만든 다음 장편영화로 데뷔 한다는 공식은 점차 깨지기 시작했다. 비용이 적게 드는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여 처음부터 장편 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단편영화 제작의 분위기는 실제로 위축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최근에 흥미로운 사례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단편으로 만든 영화를 장편으로 확장 하는 영화들이다. 단순히 단편영화를 늘려서 장편영화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단편의 스토리를 기초로 거기 살을 붙이거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태어나는 영화들이다. 여기 국내외의 몇 가지 사례가 있다. 단편, 장편으로 가는 길을 열다 2015년에 국내에서 개봉했고 전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위플래쉬>는 그 대표적 인 사례로 꼽힌다. <위플래쉬>는 재즈 드러머를 꿈꾸는 주인공이 지독하게 엄격하기로 소문난 음악선생을만나그에게배우는동시에서로가적이되어결국싸우게된다는내용이다. 이영화의 감독 데미언차젤은<위플래쉬>의장편 시나리오를 먼저썼다.하지만 투자자들 의 반응은 뜨겁지 않았다. 그러자 차젤은 다른 방식을 고안해냈다. 축약본의 단편영화를 한 편 먼저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18분짜리 단편을 만들어 2013년 선댄스영화제에 출품했고 큰 인 기를 끌었다. 그러자 그 단편을 보고 상업영화로서의 가능성을 알아본 투자자가 나섰고, 장편 영화로만들어졌으며,마침내흥행작이됐다. 몇 년 전에 혜성같이 등장하여 SF 관객을 매료했던 닐 블롬캠프의 <디스트릭트 9>도 같은 경우다. 감독은 외계 침공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얼라이브 인 요하네스버그>라는 단편영화를 만든 다음 투자자들을 찾아내 마침내 장편영화 제작에 성공했고, 최근 수년간 나온 SF 영화 중 최고라는평가를끌어내기도했다. 영화 <픽셀>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 2011년 안시국제애니매이션영화제에서 수상한 단 편 영상 하나가 이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기초였다. 고물 텔레비전 안에 갇혀 있던 구식 게임의 이미지들이 세상 밖으로 튀어나와 세상을 픽셀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을 할리우드는 새로 운지구침공의이야기중하나로적절히확장하고각색하여장편으로만든것이다. 물론 해외의 사례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영화 <뷰티 인사이드>가 그 예다. 원래 <뷰티 인사이드>는 도시바와 인텔이 광고성으로 제작한 짧은 영상이 원작이었다. 칸국제광고제에서 수상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얻었는데, 한 남자가 매일 아침 자고 일어나면 다른 사람이 되어 있 다는 내용이었다. 원래는 광고로 만들어졌지만, 남자가 매일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는 주 내용 에여러가지세부적인인물과사건을추가하면서장편멜로드라마한편이완성된것이다. 처음부터 장편이 되고 싶었던 영화들 특기할 만한 점은 이러한 방식을 영화의 연출자가 스스로 좀 더 적극적으로 응용하는 경우가 많 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각각 2016년과 2015년에 개봉한 두 편의 한국영화 <나를 잊지 말아 요>와<검은사제들>이대표적이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동명의 단편영화를 기초로 장편이 만들어졌다. 이윤정 감독은 학창 시절에 썼던 단편소설을 단편영화로 먼저 만들었지만, 처음부터 이 작품은 장편이 목적이었다. 단편을만든것은그것이일종의견본이되기를바랐기때문이다.그렇게하여기억을잃은남자 와그를사랑하게되는여자의이야기로영화는발전했다.감독은이단편을기본으로하여매우 적극적으로클라우드펀딩을시도했고,마침내단편을보고대형투자자가참여하게됐다. <검은 사제들>은 가장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역시나 장재현 감독 자신은 처음부터 장편을 염두에 두었지만, 제작비 등의 문제를 고려하여 일종의 견본으로 <12번째 보조사제>라 는 단편영화를 먼저 만들었다. 악령을 퇴치하는 신부들의 구마의식이 이 단편영화의 내용이다. 그 구마의식은 장편영화에 이르러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이 되었고, 이것을 전후로 하여 주인 공들의 삶과 성격에 관한 묘사들이 더해지게 되었다. 단편에서의 매력은 살리고 장편에서 필요 한이야기들은덧붙여지면서조화를이루게된셈이다. 어떤 영화들은 여전히 처음부터 장편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어떤 영화들의 경우는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예시와 견본으로서의 단편영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제는 그 역할을 다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단편영화라는 형식이, 다양한 방식을 통해 같지만 다른 장편영화로 승화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어떻게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을지 주목해보는 것도필요하겠다. 최근에 흥미로운 사례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단편으로 만든 영화를 장편으로 확장하는 영화들이다. 단순히 단편영화를 늘려서 장편영화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단편의 스토리를 기초로 거기 살을 붙이거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태어나는 영화들이다. 1 1 <나를 잊지 말아요> 2 <픽셀> 2 62 63 Trend Inside 2016 05 06 Storyt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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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몰락의 시대를 거쳐, 단편은 진화한다 - KOCCAsitehomebos.kocca.kr/k_content/vol19/vol19_14.pdf · 물론해외의사례들만 있는 것은아니다.한국영화

다양한 방식으로 장편이 되고 있는 단편영화들

몰락의 시대를 거쳐, 단편은 진화한다글정한석영화평론가

2000년대 초반까지도 단편영화는 그 자체로 일가를 이루었다. 몇몇 단편영화제들은 높은 인기를

끌었고 단편영화만 찾아보는 관객까지 있었다. 디지털로 영화를 만드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

면서, 그러니까 창작의 환경이 바뀌면서 상황도 바뀌었다. 단편 몇 편을 만든 다음 장편영화로 데뷔

한다는 공식은 점차 깨지기 시작했다. 비용이 적게 드는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여 처음부터 장편

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단편영화 제작의 분위기는 실제로 위축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최근에 흥미로운 사례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단편으로 만든 영화를 장편으로 확장

하는 영화들이다. 단순히 단편영화를 늘려서 장편영화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단편의 스토리를

기초로 거기 살을 붙이거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태어나는 영화들이다. 여기 국내외의

몇 가지 사례가 있다.

단편, 장편으로 가는 길을 열다

2015년에국내에서개봉했고전세계적으로도큰인기를끌었던영화<위플래쉬>는그대표적

인사례로꼽힌다.<위플래쉬>는재즈드러머를꿈꾸는주인공이지독하게엄격하기로소문난

음악선생을만나그에게배우는동시에서로가적이되어결국싸우게된다는내용이다.

이영화의감독데미언차젤은<위플래쉬>의장편시나리오를먼저썼다.하지만투자자들

의반응은뜨겁지않았다.그러자차젤은다른방식을고안해냈다.축약본의단편영화를한편

먼저만드는것이었다.그는18분짜리단편을만들어2013년선댄스영화제에출품했고큰인

기를끌었다.그러자그단편을보고상업영화로서의가능성을알아본투자자가나섰고,장편

영화로만들어졌으며,마침내흥행작이됐다.

몇년전에혜성같이등장하여SF관객을매료했던닐블롬캠프의<디스트릭트9>도같은

경우다.감독은외계침공의스토리를바탕으로<얼라이브인요하네스버그>라는단편영화를

만든다음투자자들을찾아내마침내장편영화제작에성공했고,최근수년간나온SF영화중

최고라는평가를끌어내기도했다.

영화<픽셀>의경우도이와유사하다.2011년안시국제애니매이션영화제에서수상한단

편영상하나가이할리우드상업영화의기초였다.고물텔레비전안에갇혀있던구식게임의

이미지들이세상밖으로튀어나와세상을픽셀화한다는내용이었다.이것을할리우드는새로

운지구침공의이야기중하나로적절히확장하고각색하여장편으로만든것이다.

물론해외의사례들만있는것은아니다.한국영화<뷰티인사이드>가그예다.원래<뷰티

인사이드>는도시바와인텔이광고성으로제작한짧은영상이원작이었다.칸국제광고제에서

수상할정도로높은평가를얻었는데,한남자가매일아침자고일어나면다른사람이되어있

다는내용이었다.원래는광고로만들어졌지만,남자가매일다른사람으로바뀐다는주내용

에여러가지세부적인인물과사건을추가하면서장편멜로드라마한편이완성된것이다.

처음부터 장편이 되고 싶었던 영화들

특기할만한점은이러한방식을영화의연출자가스스로좀더적극적으로응용하는경우가많

아지고있다는사실이다.각각2016년과2015년에개봉한두편의한국영화<나를잊지말아

요>와<검은사제들>이대표적이다.

<나를잊지말아요>는동명의단편영화를기초로장편이만들어졌다.이윤정감독은학창

시절에썼던단편소설을단편영화로먼저만들었지만,처음부터이작품은장편이목적이었다.

단편을만든것은그것이일종의견본이되기를바랐기때문이다.그렇게하여기억을잃은남자

와그를사랑하게되는여자의이야기로영화는발전했다.감독은이단편을기본으로하여매우

적극적으로클라우드펀딩을시도했고,마침내단편을보고대형투자자가참여하게됐다.

<검은사제들>은가장성공한사례라고할수있겠다.역시나장재현감독자신은처음부터

장편을염두에두었지만,제작비등의문제를고려하여일종의견본으로<12번째보조사제>라

는단편영화를먼저만들었다.악령을퇴치하는신부들의구마의식이이단편영화의내용이다.

그구마의식은장편영화에이르러영화의클라이맥스부분이되었고,이것을전후로하여주인

공들의삶과성격에관한묘사들이더해지게되었다.단편에서의매력은살리고장편에서필요

한이야기들은덧붙여지면서조화를이루게된셈이다.

어떤영화들은여전히처음부터장편으로만들어지고있다.하지만어떤영화들의경우는

다를것이다.누군가는예시와견본으로서의단편영화가필요하다고판단하고있다.이제는그

역할을다한것이아닐까하고생각했던단편영화라는형식이,다양한방식을통해같지만다른

장편영화로승화되고있다.이러한흐름이어떻게긍정적인효과를낳을수있을지주목해보는

것도필요하겠다.

최근에 흥미로운

사례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단편으로 만든 영화를

장편으로 확장하는

영화들이다.

단순히 단편영화를

늘려서 장편영화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단편의 스토리를

기초로 거기 살을

붙이거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태어나는

영화들이다.

11<나를잊지말아요>

2<픽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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