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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향과 전망 | 동숭동에서 모이다 2007여름 문화예술 3 리 뷰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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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향과 전망 | 동숭동에서 모이다 2007여름 문화예술 �3

리 뷰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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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미술

2007여름 문화예술 �5

어느‘부자’그림쟁이의삶

아버지가 아들을 따라 화가가 되었다. 아버지 류해윤은 세탁소

를 운영하다가 일흔의 나이에 그림을 시작하여 2006년 첫 개

인전을 연 ‘신인작가’인 반면, 아들 류장복은 미술 정규코스를

밟고 이미 열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던 중견화가다. 하지만 이

흥미로운 부자(父子)는 묘하게 닮아 있다. 삶을 진솔하고 소박

하게 담아낸다는 점, 원근법과 비례 같은 기교 없이 본인의 관

점에 따라 자유롭게 그린다는 점이 그러하다. 미술평론가 박영

택이 직접 류해윤의 세탁소 겸 작업공간을 찾아가 두 화가를

만났다.

박영택미술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류해윤과

류장복의

작품세계

탁소와위층의집과‘그림방’사이를오르락내리락하는것이거의전부다.그에게그

림그리기와삶은분리되지않았다.이자발적인그리기,재미와위안,향수를주는작업

에몰두한지도어언10여년이돼간다.그림을그리면잡념과고민이없어지고만사형

통이라정신건강에더없이좋다는류해윤.그에게‘그린다’는것은늙어서건강에도움

이되고심신이더없이편안해지는방편인셈이다.건강한노후를그림속에서찾고있

으니행복해보였다.

상당수작가들에게작업이란너무어렵고힘든일에속한다.더러재미와유희를

추구하기도하지만대부분은무엇을그릴지,어떻게그려야할지,어떤그림이좋은그

림인지에대해늘조급해하는가하면동시대미술의흐름과경향에초조해하기도하고

작품판매와화단에서인정받고자하는욕망사이에서가쁜저울질로부산한이들이다.

그러니그림그리는일이고역이고힘겨운일일것이다.작업도먹고살자는일이자인정

받고자하는일이며,욕망과권력의시스템에서떨어져나가지않으려는안간힘에다름

아니다.그런제도와틀로부터완전히자유로운상태에서오로지재미와즐거움,자기

치유와건강을위해그림을그릴수만있다면그것은황홀한일일것이다.류해윤은전

문화가도아니다.그림으로먹고살아야하거나화단에서인정받고자할하등의이유

세탁소 한켠의 작업실

류해윤은화가류장복의아버지다.그는미아리길

음동에서세탁소와복덕방을동시에운영하면서

틈틈이그림을그렸다.가게한귀퉁이에놓인책

상위에작은화판을세워두고그려나갔다고한다.

다림질을하다가잠시쉬는시간에,혹은월세나전

세를찾는이들과함께집을둘러보고온후에,그

자리에앉아서이런저런그림들을그렸다.미아초

등학교근처의그세탁소를찾아가작업하는장소

를봤다.다소감격적이었다.

작고허름하나이세상의어느곳보다안락한

오랜집이자직장인이곳에서그는일과그림그리

기를아무렇지않게끌어안으며살고있다.그러다

가3층으로올라가옥탑에마련된작은방에서그

림을그리기도한다.그의하루행동반경은1층세

현재 자신의 몸과 대상의 만남 속에서만 그림을 그리는 류장복(왼쪽)과, 자신이 본 이미지 위에 기억과 소망을 겹쳐 올리며 그리

는 류해윤. 이들 부자는 ‘그린다’는 것의 덕목과 가치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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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없는이다.그렇게되면좋기도하겠지만,그렇지않다고해서그의인생에큰문제가

발생하느냐하면절대그렇지않을것이다.그래서일까,그의그림이주는감동의근원

은바로그지점에있다.외부의요청에의해서가아닌오로지자신의내부에서원하는

대로그림을그리는한편,자신의추억,소망,건강과유희를위한작업말이다.

아버지의 이야기: 기억 속 이미지들의 조합, 그리고 합성

그는지금도일주일에최소한두점씩그려낸다.대단한작업량이아닐수없다.작년에

는그렇게해서모은그림들을가지고인사동쌈지갤러리에서전시를열었다.생애첫

개인전이었다.그것은지난한해내가보았던전시중가장흥미로운전시였다.그래서

틈나는대로수업과방송,글쓰기를통해그의작업을즐거이소개하기도했다.전시가

끝나고서야그가류장복의아버지임을알았다.내기억에류장복은드로잉이뛰어난

작가였는데,특히그가철저히보고느끼고그려낸인물과철암풍경은매우강렬하게

각인되어있었다.

그러다가이번기회에류해윤의세탁소도찾고작업공간도둘러보고그림들을찬

찬히살펴볼기회가생겼다.이날류해윤의집이자작업실방문은류장복과함께하게

되어그와도많은얘기를나눴다.그는청력이좋지않아대화하기가약간불편한아버

지를대신해서여태까지의작업에대해소상히말해주었다.보는일이직업이라수많은

전시를보고다녔고,웬만한작업앞에서감동을맛보기쉽지않을정도로내성이생긴

나에게류해윤의그림들은놀라움이었다.추측컨대류장복의미술에대한재능은상

당부분아버지의영향이컸을것이다.그러나정작류장복은자라오면서단한번도그

림그리는아버지를본적은없었다고한다.정규미술교육을한번도받아본적이없는

아버지는상경해서어렵게살아온실향민이자서울의변두리미아리에서세탁소를운

영하며40여년을살아왔을따름이었다.

류해윤의그리기는9년전인1999년노부의죽음에서우연히시작됐다.제사상에

올려놓기위해고인의작은사진을그려달라고화가아들인류장복에게부탁했는데,

그것이그닥마음에들지않아스스로그려본것이시작이었다.일흔이다되도록그림

이라고는제대로그려본적이없던그는,영정사진을놓고돌아가신아버지얼굴과비

슷한모습이나올때까지열번도넘게그림으로옮겼다고한다.죽은아버지의얼굴사

진을안쓰럽게모방하고,닮게그리려무던히애를쓰다가숨겨진재능이발아한것이다.

그때부터여러그림을그리기시작했는데,류해윤의기억속에들어와있던여러이미지

들을다룬것이특징이다.더정확히말하자면그이미지들의조합과합성이다.

사실류해윤은어린시절부터그림을그리고싶었다고한다.소학생시절에는군

교육청에서미술상을받기도했단다.그러다가서울로가서그림공부를하려고가출시

도까지했다니나름대로화가가되려는열정이꽤나컸음을짐작할수있다.그러나그

꿈은이내좌절되었고,한국현대사의격동속에온전히내맡겨진상태에서살아남은

것이기적인그런시대를관통해왔다.고향땅을떠나낯선서울의변두리에서세탁소

와복덕방으로먹고사는문제를해결했고,그렇게아들삼형제를낳고길렀다.생활에

쫓기다보니그림에대한열정이나꿈도다스러졌는데,문득부친의영정사진을그리다

가오랜세월잊고지내던재능과열정을되찾은것이다.어떻게그럴수있을까?

어쨌든그는자신에게주어진상황과조건아래서열심히그렸다.세탁소와복덕

방한구석에그림도구를갖다놓고그리기시작했고그것이어느덧10여년을헤아린다.

그동안500여점이상의그림을그렸다.그림은모두아들류장복이사진으로찍고자

신의블로그에올려인터넷전시를하는등관리해준다.그리고가끔씩들러재료를갖

다주기도하고그림에관한얘기도나눈다.이블로그에올라온그림을보고매료된

화가이진경의주선덕분에류해윤은생애첫전시를열게된것이다.나는잠시이진경

의포천작업실과홍천작업실에갔던기억과그녀의여러그림들을떠올렸다.그녀의

그림역시소박하고아마추어적인내음을짙게풍기는키치풍의그림이었다.

생의 경험과 상실을 담아내는 ‘위무’

류해윤은독학의작가,아니정규적인미술교육을받지못한이다.그러나그림에관한

지식이학교라는제도에서만가능한것은결코아니다.자신의삶에서만나고체득한

모든이미지들을참고삼아그린그에게세상의이미지가모두학교이자미술관이고책

이자스승인셈이다.이제까지의그림을보면한국의전통회화,그러니까산수화와민

화풍의소재와기법들이자의적으로해석되고변형되어등장하는가하면,흔히‘이발소

그림’이라일컫는그림들의소재또한빈번하게차용되고있다.그런가하면텔레비전이

나신문과잡지에등장하는사진을참조로,이를모방해그리거나기억해두었다가그

려낸다.이처럼류해윤은그모든것을모방해가면서자신이본이미지위에자신의기

억과소망을겹쳐올려놓는다.다시말해자신이본것들과이른바‘미술’이라고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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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그래서아름답고멋있는장면,미술의주된소재라고인식하고있는것들을따르

거나재구성해서그리고있는것이다.이렇게그리는그림안에는한국근현대미술의역

사와흐름,전통미술과서구근현대미술,생활속에광범위하게유포되고있는미술에

대한일반인들의상식이자리하고있다.어쩌면그안에한국대중이간직하고이해하

고있는미술의정체랄까,그모든것들이온전히보존되고있다고생각한다.아울러이

런그림들이야말로가장대중적인미술이자지난시간동안한국인에게진정한향수와

위안을주었던미술일것이다.

류해윤의그림은전통산수와민화,이발소그림과성화,상업미술과대중적인장

식미술,그모두의모방과합성을추구한다.여기에는아카데믹한교육을받지않은(못

한)것에서기인하는부득이한변형과왜곡이수반된다.이처럼자신의뜻대로그려지

지않는다소어색한표현들이상당히흥미로운표현력으로가시화하면서그만의독특

한조형적언어로표출되는편이다.그가가장많이그리는것은이른바산수화와풍경

화(이발소그림)가접목된경우다.서구풍경화가한국에토착화하면서불가피하게변

질된경우가이발소그림이고,이는우리가알고있는풍경의전형이되었다.예를들어

그림안쪽에는알프스처럼만년설이쌓인뾰족한산이그려져있고,그아래에는침엽

수림지대와단풍이우거진숲이자리하며,그아래쪽에는계곡과다리,초가집과물레

방아,고추를널어말리는마당,지게를진농부와아기를업은아낙네와강아지가있

는풍경처럼말이다.서로다른시간과공간이뒤섞인정신분열증적풍경이라고나할까?

네덜란드로부터연유한그풍경화가일본을거쳐이땅에들어오면서전통적인산수화

와만나고,다시근대화의급격한파고속에서상실해가던농촌풍경과고향의추억이

다시그안으로투사되면서형성된한국적풍경화가바로그것이다.그리고이같은그

림은결국류해윤세대가지닌생의경험과상실을정확히반영하는동시에그들을위

무해준다.이렇게대중성을띠면서삶속으로들어온이발소그림들이류해윤의미술

관(觀)에강력한영향을끼치게된것이라여겨진다.

유토피아, 시간의 보상과 소망의 호명

류해윤의산수풍경화,풍속풍경화는실제풍경을보고그리는것이아니라,어린시절

의기억과추억을기초로하거나경험과개념으로아는사실에기초해서만들어낸풍경

이다.그에게고향은유토피아이자파라다이스다.그래서동네사람들이모여서잔치를

류해윤, 〈2006 이산가족 남매가 20년만에 상봉하는 체육선수 국가대표〉, 종이에 혼합채색, 4절,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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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리뷰 | 미술

벌이고노는장면이다수다.어부들과농민들이어울려서야외에나와음식을끓이는

장면이나상투를튼어민들과머리에띠를두른농민들이야외에서잔치를벌이는<조

선시대어민과농민이함깨모여5월단오절을마자흥겨운노리잔치>(2005)등이대표

적인그림이다.

그는그림을그리면서잃어버린고향에대한추억을환기하고,상실한농촌공동

체삶의건강하고낙천적인측면을환생시키고자한다.이는도화경이고그의소망이자

옛기억의호출이며잃어버린시간의보상이며,위안이다.이렇듯정신건강을돕고추억

과향수를자아내기도하며즐거움을주는그림그리기이지만,그에게불만이하나있

다면바로실제와닮지않게그려진다는것이다.그래서그리기전에몸의동작표현이나

다양한상황을여러번그려보면서연습을한다.원근법이나명암법과같은기초적모

방기술을배우지못한입장에서는당연한불만이다.그러나그는대부분의독학화가

가갖고있는개성적인표현력과순진무구한감수성을갖고있다.모방의기술을터득

하지않았기때문에얻어지는변형과왜곡,그만의고유한조형적특성에도불구하고,

아니그러한사실을모른채,그는모방을추구한다.그의최대목표는모방적재현이기

에그렇다.

인물이나풍경등실제대상을놓고그리기에는기술이부족하다고느끼는탓인

지그는대부분이미재현된이미지를모방하는것으로부터시작한다.주로참조하는

이미지원천은매일같이접하는신문사진이나텔레비전영상이다.모든기성이미지,이

른바레디메이드이미지를다시그리고있는것이다.그렇게본것들을모방하거나잘

기억하고있다가자신의기억,환상,상상력을동원해만들어낸다.특유의상상력이낳

은소산으로,기억에의존하고상상력과환상을첨가해서그린그림이다.여기서상상력

이란예술적영감같은것이아니라기억과추억에기반한개인적정서의소산이다.이렇

듯류해윤은그림그리기를통해꿈을꾸고이상향을떠올리고어린시절의추억을환

생시키면서그만의독특한내러티브를만들고있다.그것은일종의환상화며신(新)몽

유도원도이고,낙원화요,무릉도원화다.주목할점은이런그림속에어렵게살았던서

울생활의편린은존재하지않는다는사실이다.오로지고향땅과관련한추억만있으

니그것도이상한일이다.과거에어렵고힘들었던장면들은하나도없고가보고싶은

곳,가장아름답다고여기는곳,특히금강산이지속해서등장하고그다음으로는고향

과관련한기억들이그려진다.그리고또하나.그림마다비교적긴제목이붙어있다.아

류해윤, <조선시대 어민과 농민이 함깨 모여 5월 단오절을 마자 흥겨운 노리잔치>, 종이에 채색, 56×76, 2005.

<6.25 이후 1·4의 비극>, 류해윤, 종이에 채색,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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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상상,환상에입각해그리는아버지와는정반대인셈이다.그는기억이란것이

다분히조작적일수있다고생각하기때문에,이에대한거부감을갖고있다.

그가그토록철암을그리는데몰두하는이유가궁금했다.강원도의탄광지대가

있는장소를그린작품은예전의황재형과오치균의회화에서접한기억이난다.그러

나특정장소를집요하게반복해서탐사하듯그리고있는경우는처음이다.류장복의

설명에의하면철암에왔을때자신의어린시절동네풍경이자연스레떠올랐다고한다.

50년대후반에서60년대초,서울변두리풍경이란거의한결같은모습이었을것이다.

황량하고스산한가난이곳곳에가득배어있는장소,개천이흐르고산비탈을낀판잣

집들과공동묘지가있던미아리풍경처럼.류장복은철암에서어린시절자신이살았던

그풍경을다시만났다.서울의근대화초기풍경의느낌을고스란히전해받은것이다.

철암은흑백사진에들어와박힌유년의풍경이마치세트장처럼눈앞에자리한듯한

모습이었다.이제는모두들떠나버린이곳이주는기묘한부재와황량함,광부들의어

려운삶이곳곳에녹아있는그풍광을문득그리고싶었던것이다.류장복은왜철암

에서사생을하냐는질문이그다지달갑지않다고한다.왜냐고물으니,‘철암에서’라는

질문자체에이미가치와판단이개입되어있다고보기때문이란다.

철암에서자기앞의풍경을사생하다보면,대상을보고있었는데자기도모르게

어느덧그리고있고,그리고있었는데어느새보고있는,그런자신을바라보게된다고

말한다.

“눈앞의대상이나를본다.나는그를마중하려하지만목탄을긋는순간그는손

가락사이로빠져나간다.나와대상과의거리가사라진다.목탄이짓이겨져부서진다.목

탄의알갱이만이감각할수있는실제로매순간다가온다.(…)최초의자유가거기있다.

자유로운선택의자유가아니라시작의자유다.”

처음에는철암의풍경만을그렸는데,이제는그곳에사는사람들의모습이조금

씩눈에들어오기시작했단다.대부분뜨내기들인철암사람들은석탄경기가좋았던

시절구름처럼몰려왔다가88년서울올림픽이후경기가쇠락하면서떠나가기시작했

다.석유에너지로대체되는과정을따라하나둘씩떠나지금은이미탄광도시로서의의

미가사라진이곳에여전히,어쩔수없이살고있는그들의삶,그느낌을그리고자한

다.풍경이나인물이나그는철저한사생을중시한다.풍경이나인체모두동일한생물

체로접근하고그린다.비나눈이올때도,춥거나더워도항상밖에서그림을그린다.

들인류장복은그림의제목에그린날짜와시간을기록한다면,아버지는나름의사연,

이야기를제목으로붙인다.

아들의 이야기: 신체적 반응만 허용하는 대상과의 만남

아버지가고향땅과기억속의추억을그리고금강산을꿈꾼다면,아들은철암이란강

원도의탄광도시를찾아거닐고이를그린다.류장복이철암에가기시작한것은2001

년부터다.그때부터매월셋째주말이면어김없이멀고먼철암으로달려가그곳풍경

과사람들의모습을사생한다.그는자신이보고접한것을그자리에서그리며,자기

몸의반응에우선한다.오로지현재자신의몸과대상의만남속에서만그림을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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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우면추운대로,더우면더운대로대상앞에실제로,그리고신체적으로선다.극심한

신체적고통속에서이른바이성의개입은줄어들고대신신체의감응,감각에더욱충

실해진다는것이다.“류장복은자신의화판뿐만아니라자신의몸마저철암의대기에

내어던진다.(…)미술가는사유나기억과같은삶의영역들을등뒤에잠시내버려둔

다”는이희영의평처럼,그는대상앞에서떨어지지않으려고한다.그래야다른생각을

못한다고여긴다.아니다른생각,잡념이끼어들수없는상황을만들어가면서그림을

그린다.그러니까무언가를본대로의신체적반응만허용하고나머지에는자신이끼어

들틈도허용하지않는것이다.

생물적 사생, 시각을 넘어선 통감각적 드로잉

관습적시각에기대어본다면,미술적소재라고할만한것이없는철암을사시사철그

리는것는기존의회화적행위와는거리가있다.상투적인풍경에대한시각과접근을

가로질러가는동시에,대상에대한인상이나이미지를파악하는것에서그치지않고이

를좀더밀고들어가려는시도,일종의실천적지식과행동,주어진대상을정확히알고

그림을이해하려는노력에해당한다.

류장복은철암이란장소를이해하고속성을파악하고그분위기와체취,시간과

세월의흔적,나아가그대상으로인해파생되는자신의신체와감각의변화및인식과

호흡까지그리려고한다.그러한제작행위,그림그리는태도를그는‘생물’적이라고말

한다.여기서생물적이란말은“대상에대한그리는사람의주관과작위적인개입을최

대한배제하는것이며,이는주체가객체를인식하고해석하는식의그리기가아니라

대상속에서본질적인것들을일구어내는것을의미”한다는것이다.그러니까그가그

린철암풍경은자신의신체적인체험에의해만들어진것이다.‘풍경이지시하는장소

의특수성과작가의신체가결합’되어야비로소작품이된다.그런면에서그의그림은

시각에의해서만이루어지지않고통감각적으로구성된신체적회화이며생물적그림이

라고말할수있다.

그의드로잉은바깥에서,현장에서이뤄지는사생의조건상작품의크기역시제

한을받는다.대략56×76센티미터정도의크기,자신이지니고다닐수있는화면의크

기안에서그려진다.이넓이가자신의신체와세상과의만남이가능한공간인셈이다.

그위에가장전통적인소묘재료인목탄을주로사용하고더러먹과붓등으로그린

류장복, <2003.1.14 남동교>, 종이에 목탄, 56×76cm, 2003.

류장복, <2003.2.21 똥골언덕에서>, 종이에 목탄, 56×76cm,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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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복, 〈2006.5.1 철암역 앞 역전슈 - 아저씨를 위한 기념비적 초상〉, 종이에 목탄, 78.5×109cm, 2006.

글쓴이 박영택 성균관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금호미술관에서 10여 년 동안 큐레

이터로 일했고, 현재 경기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 〈식물성의 사유〉, 〈나는 붓을 던져도 그

림이 된다〉, 〈민병현〉, 〈미술전시장 가는 날〉 등의 저서가 있다.

다.사실풍경이나인물이나그의관심은동일하다.현장의살아있는느낌,대상의생명

력과기운을어떻게작업실,작업으로끌고올것인가에있기때문이다.자신의내부를

거쳐서뱉어낼수있어야하므로어떤식으로든내부에서이른바삭힘의과정이있어야

하고,이과정은앞서언급한‘생물성’에해당할것이다.

매우 멀어 보이면서도 지극히 가까운

류해윤과류장복의그림은모두잘그려진그림이다.세련되고현학적인현대미술과는

동떨어져보이지만그림의진정한힘과매력을지니고있다.공통점이있다면모두소

박하고꾸밈이없다.과도한장식이나인위성이나의도적인멋을부리는것도없다.이

들은모두자신들의삶에서가장의미있는대상을사랑하면서그린다.추억과기억을

그리는한편이상적인세계상을희구하는그리기와,자기가속한세계의모든것을이

해하고진정하고보듬고알기위해그리는것이이들부자의그림이다.그림을통해상

실과회한을극복하고위안받고자하는가하면,단순한재현이나관습적인그리기에

서벗어나고자하는그림에의열망은매우멀어보이면서도지극히가까운거리에있다.

이들이그림에서보이는덕목은사실기존의미술교육을통해습득하긴어려운가치들

이다.그것은선천적으로타고난인성에서연유한다.아울러세계와삶에대한이해와

애정에서기인하기도한다.오늘날미술계에서찾아보기어려운,희박하고망실된이같

은가치와덕목이이그림쟁이부자에게온전히깃들어있다는사실이마냥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