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교학내지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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到處敎學 도서출판 서예문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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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ching and learning-themed 50 literary art works are contained in this book as well. They are Master Shon, In Shik's works, who produced and proceeded this project. Captions and artist's thoughts are arranged together so this book makes us watch, read, and feel. I want to thank Master Shon, In Shik and wish all the participants' and Korean society in Indonesia's tremendous success. May 2011 The Korean Ambassador to Indonesia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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到處敎學

도서출판서예문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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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이 책은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들이 배우고 가르치며 살아가는 가운데 생겨난 이야기 44

편과, 인도네시아 한인사회 문화 탐구 6편이 실려 있습니다.

- 이 책의 원고 편집은 공저자 이름의 가나다순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 원고 사이마다 실린 작품과 설명, 창작노트는 이 책을 기획, 진행한 인재 손인식의 작품이며,

이 작품들은 별도로 마련된 전시회에 출품됩니다. 따라서 이 책은 인재 손인식 개인전, 『겘겚

何獲, 찾지 않고 어찌 얻을 것인가』(2011. 5. 26∼6. 1 자카르타 한국문화원)의 도록을 겸합

니다.

- 이 책은 인재 손인식 운필집 제16집을 겸합니다.

- 이 책의 제작에는 LIG 인도네시아의 일부 지원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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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손인식 운필집제16집

到處敎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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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성장하게하는교학

배우고가르치기, 즉교학(敎學)은인간의삶과떼려야뗄수없는관계입니다.

인간이존재하는곳이면, 학교, 가정, 사회, 기업등어느곳에서나교학은끊임

이없습니다. 일상에서항상교학이활용되며, 인류의성과는모두교학을통해

서이루어집니다. 교학에관한한한국인들의열정과능력은이미세계에정평이

나있습니다. 한국의우수한인재들이각분야에서세계적으로큰성과를거두고

있거니와시간이지날수록새로운결과들을양산할것으로예상이됩니다.

한국과전략적동반자관계를발전시키고있는인도네시아에서는한인들의교

학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로 학부모와 선생

님은가르치고학생들은배우며, 기업은사원을가르치고사원은배우며일을하

겠지요. 서로가처한입장에서그본분을다하는것인데그것은서로를성장하게

하고, 그조화는항상나름의성과를만들어냅니다. 그래서옛선인들도“가르치

고배우는일은서로성장하는것(敎學相長)”이라고강조했던것입니다.

이책에는인도네시아에서공부하는중학교 1학년학생의이야기에서부터반

세기가깝게살아온원로의이야기까지, 50편의갖가지이야기들이실려있습니

다. 이런사례들을모아한권의책을엮어내는것은어느동포사회에서도흔치

않은일로, 타국에서가르치고배우며꿈을이루어가는우리한인동포사회에교

학에관한좋은자료가될것이라고믿습니다.

이책에는교학을주제로한서예문인화작품50여점도함께수록되어있습

니다. 이를기획하고진행한인재손인식작가의작품으로서작품설명과작가의

단상이함께정리되어있어, 보고읽으며느끼게하는책이되게하고있습니다.

손인식작가께감사의말을전하며, 참여하신모든분들과아울러인도네시아한

인동포사회의무한한발전을기원합니다.

2011년 5월

주 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김 선

│머 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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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ching and Learning, makes each other grow

Teaching and learning is inextricable with human life. Teaching and learning exists

wherever human exists such as schools, homes, societies, corporations and etc. It is

practiced every day and all of the human accomplishments are achieved through it.

Korean's enthusiasm and ability on teaching and learning are world-renowned.

Outstanding and talented Koreans are being crowned with great successes in various

fields worldwidely. Moreover, there will be new accomplishments as time goes by.

How is Koreans' teaching and learning carried out in Indonesia where the strategic

relationship is growing? It is in the same manner everywhere; parents and teachers

teach so that students can learn, companies teach employees and employees work

while they are learning. They do their duty in their positions. That makes everyone

grows and the harmony makes fruits always. That is why our ancestors emphasized

that “To learn and to teach is growing together.”

This book contains 50 various stories from a story of a 7th-grade student who is

studying in Indonesia to an elder who have lived almost half century. It is not common

in any overseas Korean societies to compile these kinds of stories into a book. I believe

it will be a good material on teaching and learning to overseas Korean societies.

Teaching and learning-themed 50 literary art works are contained in this book as

well. They are Master Shon, In Shik's works, who produced and proceeded this project.

Captions and artist's thoughts are arranged together so this book makes us watch, read,

and feel. I want to thank Master Shon, In Shik and wish all the participants' and Korean

society in Indonesia's tremendous success.

May 2011 Kim, Young Sun

The Korean Ambassador to Indon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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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처처에에서서가가르르치치고고배배우우며며

소화제 / 김선 ● 12

나의스승님 / 김시현 ● 17

아이들의그릇만들기 / 김 덕 ● 23

진짜족보와한국족보 / 김은숙 ● 29

타국에서의가정교육 / 김태현 ● 34

하숙집선생님들 / 김필수 ● 40

거울앞에서 / 김효경 ● 46

씨앗을품은흙의노래 / 김효정 ● 50

맹부모삼천지교 / 박광호·윤진희 부부 ● 54

아! 인도네시아 / 박상천 ● 60

또다른도전을기다리며 / 방치 ● 67

독서, 그무한의스승 / 복 빈 ● 73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JIKS의과거, 현재, 미래 / 선종복 ● 79

신호등에어떤불이들어오면건너야할까요? / 손희정 ● 85

청록빛청년 / 신돈철 ● 89

인도네시아생활의보람과즐거움 / 신 덕 ● 94

동아시아먼나라의이슬람평화 / 안선근 ● 99

한가정세가지언어 / 안창섭 ● 104

가르침속에배움이있다 / 양수려 ● 110

아들의손님 / 양승식 ● 116

어린이문화외교관들 / 유세라 ● 122

이질과동화의변주곡 / 이규백 ● 128

제1부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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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마주보며함께걷는길 / 이남숙 ● 134

건강하게만살아다오! / 이병수 ● 140

나의한국인, 뇨냐! /이선우 ● 146

인도네시아국립박물관공부 / 이수진 ● 151

멋쟁이김 희선생님께 / 이은경 ● 157

넌나의운명! / 임미진 ● 162

새로운도전에대한단상 / 임준섭 ● 167

이틀뒤면 / 장혜숙 ● 173

과거에서길을묻다 / 채인숙 ● 179

현지인에게서배운다 / 최정식 ● 183

큰딸의귀환 / 하연경 ● 188

나는행운아 / 한선아 ● 193

자립심과배려 / 허숙의 ● 199

사랑하는아들준기에게 / 홍성민 ● 204

존존경경하하는는이이웃웃들들을을찾찾아아서서

원칙과감성의삶● 210/ 김재유 장로에게서 배우다.

인도네시아한인들의토대와성장● 217/ 김종권 회장의 40년을 통해 느끼다.

근원을찾아서● 225/ 씨의 창조자 박병엽 사장에게 배우다.

제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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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인인도도네네시시아아한한인인사사회회문문화화탐탐구구

인도네시아 한인사회 문화 탐구 1 ● 274저서를통해살피다

인도네시아 한인사회 문화 탐구 2 ● 280한국어문화의실제

인도네시아 한인사회 문화 탐구 3 ● 286미디어문화

인도네시아 한인사회 문화 탐구 4 ● 292인도네시아한인들의자선문화

인도네시아 한인사회 문화 탐구 5 ● 298교육문화의실제

인도네시아 한인사회 문화 탐구 6 ● 304종교문화의실제

아름답고큰꿈● 232/ 리틀램 스쿨 박현순 원장의 배우고 가르치기

지금여기, 함께존재함으로행복한우리● 240/ HAPPY JAKARTA의 음악바이러스로 배우다.

순박, 과묵그리고조용한실천● 248/ 과묵, 실천형 이종후 사장에게서 배우다.

서두르지않고게으르지않고● 258/ 공인 한상재 회장에게서 배우다.

과묵, 초지일관의삶● 266/ 홍훈섭 사장에게서 배우다.

제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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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勝者强(자승자강) ● 16知궋一致(지행일치) ● 22生如遠궋(생여원행) ● 28진흙을 떨치고 피어나다 ● 33惠好(혜호) ● 39길재 시● 45너그러운 마음으로● 49늘 깨어 있으라! ● 53억겁의 인연을 매화로 피우다 ● 59道(도) ● 66돌처럼 침묵하라 난처럼 고요히 말하라 ● 72罔曰弗克 惟旣厥心(망왈불극유기궐심)● 78幾生修得到虛心(기생수득도허심) ● 84大象無形(대상무형) ● 88無未知(무미지) ● 93無涯(무애) ● 98忙裡偸閒(망리투한) ● 103겘겚何獲(불색하획) ● 109山氣水智(산기수지) ● 115山氣澄心(산기징심)● 121산 지고 물 안고 ● 127산처럼 높고 두텁게● 133相反相成(상반상성) ● 139서둘지도 게으르지도 말고 ● 145歲겘我延(세불아연) ● 150早傳松意(조전송의) ● 156겘欺自心(불기자심) ● 161守我(수아) ● 166水滴石穿(수적석천) ● 172隨處作主(수처작주) ● 178繩鋸木斷 水滴石穿(승거목단수적석천) ● 182視遠惟明(시원유명) ● 187

躍然生豊(약연생풍) ● 192如爲山(여위산) ● 198如鳥數飛(여조삭비) ● 203與天爲徒(여천위도) ● 208벍者겚 勤人搜道(유자색부근인수도) ● 216一걓永逸(일로 일) ● 224日常得韻(일상득운) ● 231有志竟成(유지경성) ● 239늘 푸른 기상으로 ● 247積ぅ成山(적궤성산) ● 256大者爲棟梁(대자위동량) ●257精神一到何事不成(정신일도하사불성) ● 265盡人事待天걤(진인사대천록) ● 272청산도 내 벗 ● 279큰 뜻 너른 맘 ● 285幸福(행복) ● 291惠而好我 킼手同궋(혜이호아휴수동행) ● 297繪事後素(회사후소) ● 303후회 없는 오늘로 내일을 가라● 309

작품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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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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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

소화불량에두통이끊이질않는다. 만성이다. 편하게말하면성질못된탓

이고, 쫌 고상틱하게 말하면 신경과민이니 누굴 탓할 것이 못 된다. 그러나

탓꺼리가없는것은아니다. 가톨릭기도문한구절이라는“내탓이요내탓

이요내탓이옵니다”를정면으로부정하고드는것이아니다. 내가성인군자

가아니니이풍진세상을살면서어찌탓꺼리가없겠는가하는것이다. 지

극히인간적인측면에서보더라도더러핑계좀대고살아야하는것아닌가

싶은생각도든다. 둘러보면별것이다탓꺼리가되는세상을내가지금살

아가고있다는의미도된다.

그렇다돌아보니지난십수년은세상이유난스레내신경을건드린것이

사실이다. 딱 꼬집기는 그렇지만 여기 인도네시아 입성 후의 세월이라고 할

수있다. 좋아한다는이유로, 아니매정하게외면하지못한이유로커피를많

이마신세월이었다. 애꿎은내위만혹사시킨세월이었다. 아직도미성년이

지만 내 사랑스런 아이들이 그 변화무쌍한 성장기를 거친 세월과 겹쳐있다.

거기엔 아이들의 성장속도를 못 따라간 내 갈등도 포개져있다. 그리고 자연

과학의 발달로 인한 대중매체, IT 산업의 변화, 정보의 홍수로 그냥 떠 려

흘러버린세월과덧붙여있다. 그러나궂은과거일랑모두일단내탓으로돌

리리라. 그때그때잘대비를하지못하는나, 도대체약삭빠름과는거리가먼

얼빵한사람이나이니말이다.

내 역할은 건강한 밥상을 책임지는 일이었다. 사랑과 행복이라는 울타리

둘러치고그안에서아이들을양육하는일이었다. 가장으로서비바람을맞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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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거친들판을짓쳐나가는남편을지지하고응원하는것이내가맡은역할

이었다. 앞으로도이역할은피할수없다. 중단없이계속해야한다.

초보엄마들이대체로그러하듯십여년전나는자식교육하나만은자신

이 있었다. 초보 엄마들에게 넘쳐나는 자녀교육 정보들 속에서 조금은 우왕

좌왕 하면서도 나름 자신감이 충만했다. 들끓는 내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쏟

아 부어댈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어엿한 아이, 그리고

세상이 보기에도 아름답도록 잘 빚어낼 자신이 있었다. 지나간 일로서 과장

이라면 과장이겠지만 집안에서는 효자효녀요, 학교에서는 모범생으로서 교

우관계가좋으며, 선생님들은이구동성으로칭찬을아끼지않는그런아이로

번듯하게키워내고싶었다.

표정이 항상 밝아야 하거니와 걸음걸이도 반듯해야 했다. 거짓말 따위가

아이 입에서 나와서는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큰아이가 내게

거짓말을했다. 결과적으로는엄마에게잘보이고싶어서한거짓말이었지만

나는묵과할수없었다. 나는내스스로무릎을치며탄복할묘안을짜냈다.

108배다. 부처님도엄청좋아하실것같았다. 나는지체없이아이에게 108

배를시켰다. 마치아이가108배를하고싶은것으로착각을한것처럼, 일주

일동안빠지지않고하루에한번씩 108배를시켰다. 지금생각해보면참으

로코미디인것은나도아이옆에서 108배를했다는것이다. 그가증함에부

처님도배꼽을쥐셨을것이다.

지금알고있는것들을그때도알고있었더라면얼마나좋았을까? 아무리

지나간일들이지만돌이켜보면내장깊숙이숨을들여마셔도가슴이빨개지

는과거다. 그러니자질구레한것들들춰서내건강해칠일은하지않겠다.

다만들추지않으면안될치부하나더들추고가겠다. 책읽히기오류다. 정

말책값깨나지불을했다. 물론지금와서책값아깝다는것은아니다. 책읽

히기가어찌오류란말인가하고반문할분들도있겠지만, 때를못맞추거나

흥미가없는상태에서책읽히기는명백한오류라고나는분명히말할수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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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금생각해보니순수하기만했던아이들탓도있다. 엄마가좋아하니깐

같이놀이삼아책들을끼고있었던것같다. 하여튼나와아이들은함께책

을많이도읽었다. 그중에는나도소화하기에부담스러운분야도있었다. 아

이들이그책들을읽고잘이해했을지는물어본적이없다. 암튼그즈음나와

아이들에게 지식이 흘러넘치는 시기 다. 나는 득의만면했다. 나는 지식을

눈으로읽고귀로흘려도아이들은어떤지식하나라도한방울도흘리지않

고올곧게지혜로연결시키리라믿었다.

과유불급, 아이들의머리는입력시킨다고무조건다받아들이는컴퓨터가

아니었다. 엄마가 기억하기를 바란다고 다 저장하는 기억장치가 아니었다.

창의적으로활용하기를바라는것은그야말로생각일뿐이었다. 나름대로활

용을해내는것은전혀다른차원으로인정해야했다. 소화불량이었다. 아무

리비싼거위간도소화를못시키면아무소용이없다질않는가. 넘치는것은

미련없이배설될것이었다. 어느순간부터먹기를적당히줄이는것도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를 하기 시작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 것만이 아이들를 움직이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차츰 지난 일이 되어갔다. 억지로

읽힐필요가없으니꼭사야할필요성을느끼는것만을구입했다.

새로운발견도있었다. 어느사이책을읽는것이습관이되었는지나나아

이들이강요없이도책을읽는다는것이었다. 즐겨보았던책, 재미있었던책

을짬짬이또읽는것이얼마나괜찮은일인지그때새삼느끼게된것은괜

찮은덤이었다.

좀다른방식으로아이들을살피게되었는데달라진점도많았다. 우선정

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며 지식을 취하는 방법이 나와 달랐다. 사회를 바라보

는방식도달랐다. 나름합리성이있었다. 그래서요즘은오히려내가그들에

게서배울것도많다는것을느낀다. 그래서그들의방법으로대화를하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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슷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세월은 분명 약

이다. 모르던것을알게해주는썩괜찮은약이다.

ㅣ기획자 주ㅣ김선 ! 인도네시아 16년째 살고 있는 주부다. 생활에서도 솔선수범이 특기이고, 솔직한 표현의 독특한 문체 또한 특기가 아닐 수 없다. 책읽기 모임 자카르타 반딧불 회원이며 자필묵연회원으로 붓 씨를 즐겨 정기전에 2회에 걸쳐 출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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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勝者强(자승자강. 老子 句), 자기 자신의 욕망을 이기는 자가 가장 강한 사람이다. / Thestrongest is the one who overcomes one′sdesire.

남을 이기는 자는 그 자보다 강하다는 정도에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에 원한 승리자는 없습니다. 한 순간의승리가있을뿐입니다. 순간의승리에도취해서는안되는이유입니다.남을 이기는 데만 골몰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잠시 다른 사람을 이긴 것으로 자신까지이긴 것으로 착각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비열한 방법으로 남을 절망에 빠뜨리고 우쭐해 해서는 더욱 안 되는 이유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바로 그 싸움에서 적당히 타협을해서는안되는이유입니다. 세상에 원한 패배자는 없습니다. 한 순간의패배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한 번의 패배에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나 승리자가될수있습니다. 자신의욕망을이기기위해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다른 사람과 싸우지않고도 이기는 진정한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원한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욕

망을이기는자가가장강한사람입니다. (인재 손인식의 필묵향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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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시 현

제게는생각만으로도가슴저리고옷깃을여미게하는스승님한분계십

니다. 저를한의사가되게하신분이며, 제 한의사의길에서절대사표가되

는분이기도합니다.

저는어려서부터한의사 던아버님에의해한의를배웠습니다. 호기심과

강요가반반쯤이라고할수있겠는데그공부는저의중학교 3학년까지 습

니다. 그 때 아버님이 돌아가심으로서 저의 한의 공부는 자연스럽게 접혔던

것입니다. 선친이 돌아가신 후 저는 다시는 한의를 배우지 않겠다고 생각하

고 전공도 경제학을 선택했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집안 경제 사정도

좋지않아서저는대학에다니면서이런저런아르바이트를했었는데, 3학년

1학기를마칠때 습니다. 스승님께서저를부르셨습니다. 이유는간단했습

니다. 선친으로부터이미많은것을배웠다는것을알고있으니한의원에나

와서 일을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방학동안 저는 주5일 하루 4시간정도를 한의원에 출근했습니다. 약도

싸고약창고관리도하고침도놓곤했습니다. 그렇게한달이되던날스승

님께서는제게 200만원을쥐어주셨습니다. 당시대학등록금이 60만원쯤

이었을때이니제게는정말큰돈이었습니다. 그돈은당시한의대를졸업한

한의사 초봉 정도 습니다. 저는 그것이 저를 한의의 길로 끌어들이기 위한

스승님의저의라는것을까맣게몰랐습니다.

그렇게한두달일을하는동안제게는많은것이새로워졌습니다. 어렸을

때부터선친을따라산에올라가약초를채취하면서놀던일이나, 약초에대

한상식, 침 자리배운다고몸의이곳저곳을찔러보던기억등이되살아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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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한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시작했습니다.

그때 스승님께서 운

하시던 한의원은 경

기도 성남시에 있는

‘감초한의원’이었습니

다. 면적이 그리 크지

않은 한의원이었는데,

하루환자가 200명 이상찾아오던곳이었습니다. 당시 성남시 택시 기사들

중에모르는사람이없을만큼유명한곳이었습니다. 스승님은당시가난하

여 생활이 어려운 환자나, 돌보는 가족이 없는 노인환자는 돈을 받지 않고

돌봐주었습니다. 그환자들이주머니에서꺼내놓던사과, 굽은손으로건네

주던 떡이 맛있게 느껴지면서 저의 꿈은 다시 한의사로 돌아서기 시작했습

니다.

저는 기회를 보다가 스승님께 한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 드렸습니다. 다

니던학교를그만두고한의대로다시입학준비를하겠다는생각을밝혔습

니다. 그런데의외로스승님은저를만류하셨습니다. 일단다니던학교를다

니면서 틈나는 대로 한의원에 나와서 일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매일

저녁마다2시간씩스승님자택에서한의술을사사받고, 졸업후에는군대를

다녀와서중국의한의대로유학하라고권유하셨습니다. 한국의한의학에중

국의한의학의장점을잘조화시켜보라는말 이었습니다. 그리고주말이면

내 선친이 그랬듯이 강원도 횡성의 농장에 데려가서 약초를 가르쳐 주시고,

매일저녁마다침, 약, 방제등임상위주의수업을해주셨습니다. 한편한의

원에서는 허드렛일에서부터 환자 보는 일까지 모두 경험하게 하시고, 항상

그결과를평가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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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스승님과 붙어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 알게 모르게 배운

것은 의사로서 스승님이 지니신 마음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가장 큰 가르침

이었습니다. “환자를 돈으로 보면 환자의 병이 안 보인다.”고 하셨고, “병은

마음에서 오고 마음에서 나간다.”는 것이 아버님 살아생전의 지론이었음을

전해주기도 하셨습니다. 제 평생 가슴 속에 생생히 남을 말 들이었습니다.

저를데리고한가난한집할머니를돌봐주고나서진료비라며건네주는봉

투를마다하시고는, 냉수한잔달라하여“시원하게마셨으니그걸로됐다.”

고하시던모습은말이나 로될수없는가르침이었습니다.

나의마음속에기둥으로항상존재하시던스승님은경기도광주의가난한

소작농으로 태어나 먹을 것이 없어서 방황하다가 밥만 먹여 달라고 들어간

곳이 한의원이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한의를 배운 스승님은 후에 그렇게

훌륭한 한의사가 되신 것이었습니다. 제 선친과는 같은 한의사로서 많은 것

을함께나눈돈독한사이 는데, 그인연이다시저에게이어졌고저를아들

이라고소개할만큼저를아껴주셨습니다.

대학을졸업하고늦은군생활할때에도, 또유학생활중에도한달에한

두번씩편지를보내주시며한의학정보를꼭꼭동봉하여주시던스승님은

제겐아버님못지않은존재셨습니다. 중국에서의유학생활은생각보다어렵

지않았습니다. 이미임상수업을어려서부터한덕택에시험에나올만한내

용을미리집어낼수있었고, 다른중국학생이이해를못할정도로좋은성

적을 얻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것은 한국의 스승님이 요구하시는 숙

제 습니다. 중국에서유학생활을마치고한국으로돌아왔을때도스승님은

여전히제길잡이셨습니다. 다시‘감초한의원’에서근무하게해주시는것은

물론의문이더욱많아진제가귀찮을정도로질문을해도싫은내색을하지

않으시고세심하게가르쳐주셨습니다. 인도네시아와의인연도스승님이맺

어주셨습니다. “내가갈사정이아니구나. 네가가면좋은일이있을것이다.”

하며새로운길을열어주셨습니다. 한동안자카르타에서감초한의원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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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하던저는5년여정도를뉴질랜드에서살다가다시연전에자카르타로돌아

왔습니다. 그과정에서잠깐동안연락이닿지않았을때스승님은돌아가셨

습니다. 갑자기쓰러지셨는데임종의순간까지도저를찾으셨다는말을전해

들었습니다. 참으로가슴이저리는일이아닐수없습니다.

당뇨를오래앓으셨던스승님은결국제선친처럼당신병을고치지못해

서세상을떠나셨습니다. 제선친도당뇨로돌아가셨는데, 한때는자신의병

도못고치는의사는안할것이라고한의를거부했던적도있었습니다. 유전

인것인지저또한당뇨병이있었습니다. 그래서한의를공부하면서항상마

음속에 당뇨병 정복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아버님을 잃게 한 병, 또한 저를

괴롭힌당뇨병만큼은반드시이겨내고싶었습니다. 그리고저는당뇨병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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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해천착한결과제병과다른환자들의당뇨병을치료를해냄으로써환자를

환호하게한것은물론저또한큰성취감을맛보았습니다. 그런데그병으로

스승님을잃은것입니다. 제가후회되는것은제가고집을피워서라도제방

식대로스승님을치료했어야한다는것이었습니다. 스승님께서당신의방법

을고집하실때그냥두고볼수밖에없었던제가참으로원망스러웠습니다.

저는한참동안을허탈감에시달려야했습니다. 다행히도제게는저의애

제자인아들이있습니다. 7살 때부터침을놓게하여이미수기법이뛰어난

제아들을보며, 선친과스승님의가르침을헤아립니다. 그분들의심정을느

끼기도합니다. 이제저는제선친이그조부님으로부터배우신가르침을조

금이라도더제게가르쳐주려하셨듯이저또한제아들에게한의를알려주

고있습니다. 또내스승님이그랬듯이이론이아닌진정한의사의모습을보

여주어 스스로 깨닫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진 빚이 조금

이나마감해지기를바라면서앞으로나아갑니다.

l기획자 주l김시현! 1967년 서울 출생이다. 8대를 이은 한의사 집안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한의를 공부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중국에 유학하여 산동중의약대학교(한의대)를 졸업했다. 경기도 성남 소재 감초한의원에 근무했으며, 2000년 자카르타에 감초한의원을 개원했다.2004년 12월에는 저서로 <재미있는 한방 칼럼>을 출간했으며, 현재는 자카르타 남부에서관준한의원의 원장으로 있다. 그의 의술이 사회를 밝게 하는 큰 도구로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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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궋一致(지

행일치), 非

知之難

궋之惟艱(비

지지란

행지유간, 書

經句) 아

는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알

고있는

것을

실행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 Kno

wing is not difficult bu

t pu

tting in to practice wha

t you kn

ow is difficult.

“알고

있는

것을

실행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라는

말, 우

리일상에서

늘기억하고

되새겨야

할말일

것입니다.

“실천이란

유용하고

좋은

일을

성취하기

위해

힘과

행동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능력을

의미한다.”(존

로크).

“실천이란

이념을

실현하는

데없어서는

안되는

것으로

여겨진다.”(헤

겔).

“실천이란

인간의

생존을

보장해줄

뿐만

아니라

인간이

동물의

세계에서

벗어나

역사의

발달을

추진하게

해준다. 실

천은

인간

인식

의참·거짓을

검증하는

기준이다.”(마

르크스)

Page 23: 도처교학내지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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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덕

우리집큰아이나둘째처럼유년시절을보낸아이도드물것이다. 특히큰

아이는유치원도못다니고학습지하나해보지못한채초등학교에입학했

다. 요즘 세상에 비추면 무슨 대단한 교육법이 있지 않았나 생각할 것이다.

이유는단순하다. 우선그때살던곳이이리안자야 림속마을로서환경이

참열악한곳이었다. 우리부부나름의어떤대책을세우기쉽지않은곳이었

고, 한편으론한시적이니만큼자연과바람, 즉상황에맡긴다는생각도없지

않았다. 그러므로 다시 그 상황에서 다시 아이들을 키운다고 해도 똑같을지

도모른다.

당시 두 아이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가까운 곳에 학교도 없는 곳이었으니

어울릴만한이웃이있을리없었다. 다행스러웠던것은사내녀석들이라둘

이 형제이기도 했고 친구이기도 했다. 사방을 삥 둘러봐도 나무밖에 보이지

않던 곳에서 두 녀석들은 맘껏 자유를 누리며 지냈다. 인위적으로 주입되는

교육은찾아볼수없는그곳, 아이들은둘이집안에서놀다지치면밖으로나

가서주변을한바퀴돌았다. 그것이또다른놀이 다. 그러다가길거리에서

세차를하고있는운전기사를만나면신이나서같이세차를했다. 세차가끝

나면그차로주변을한바퀴돌기라도하면바로그것이일상중에일어나

는신나는이벤트 다. 아이들교육을할수있는자료라고는한국에서가져

온명작만화비디오나몇가지아동도서, 기초한 과숫자벽보판등이전

부 다.

큰 아이는 스스로 일찍 한 에 관심을 보 다. 궁금증을 드러내고 이것저

것묻기도했는데, 그때마다한 의자모를알려주면쉽게익혔다. 7살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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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수셈에도관심을가져종이에더하기빼기를가르쳐주고, 문제를내주

면곧잘풀이를하기도했었다. 그게전부여서일까초등학교에입학한큰아

이는학교생활모두를재미있어했다. 학교생활을아주적극적으로잘해주었

다. 반면에둘째는형이공부하는것을보면서는‘나도나도’하고관심을드러

내다가도막상설명을해주면곧흥미를감추곤했다. 자연내버려두는편이

되었다. 6살이되도록한 은물론숫자도가르치지않고내버려두었다.

작은아이가 7살이되던해 다. 우리가족은자카르타로이주를했다. 남

편의근무지가바뀐것이다. 그때부터내게는본의아닌안달이시작되었다.

작은아이를한국유치원에넣으면서부터다. 당장다른아이들과비교가되

었다. 엄마인내가가만히있을수없는상황이었다. 엄마인내가더급했다.

아이를몰아세우며한 과셈을가르쳤다. 그래서그럴까초등에입학하고서

도둘째가하는공부는도대체미덥지가못했다. 아이를닦달하는횟수가잦

아졌다.

틀만잡아주면스스로모든것을해나가는큰아이와달리, 둘째는붙들고

늘어져야했다. 스스로즐거워하지않으니그결과가내욕심에차지않을것

은당연했다. 속상했다. 지치기도했다. ‘둘째에게쓴시간큰아이에게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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썼으면 천재 만들었

겠다.’는혼잣말이절

로 새어나왔다. 엄마

의 말을 일단 경청하

고잘따라와주는첫

째와 청개구리 식으

로답을하곤하는둘

째는 스트레스의 원

인이 되었다. 첫째처

럼둘째도그래야한다는생각에나는둘째랑신경전을벌 다. 학교를가도

모든선생님들에게칭찬받는큰아이와달리둘째는아무런문제는없지만

뜨겁지도차지도않은탓에반응또한늘그저그런정도 다.

내가둘째를지도하는방식에‘이건아닌데’하고회의를느끼기시작한것

은둘째초등6학년때 다. 지칠대로지치기도했지만, 타의적으로공부하

는아이에게엄마가평생옆에붙어서함께해줄수없다는답을얻어낸것이

그때 다. ‘잘하든못하든본인스스로의책임이고몫’이라고아이에게말하

고손을떼기시작했다. 지금은절대내방식대로이끌려고무리를하지않겠

다는다짐을했다. 학교도작은국제학교로옮겨주었다. 그런데어느순간부

터 아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욕심을 버리고 인도자가 아닌 조력자

가 되고나니 아이도 스스로 자기 방식대로 학업을 따라가며 자신감도 얻어

갔다. 그렇다고 둘째가 공부를 잘 하는 모범생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나름

해야 할 것을 스스로 이끌어 나갔다. 내 욕심이 다 사그라진 것은 아니어서

가끔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지만, 둘째의 다름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자각

이 일면서 둘째 스타일을 수용하게 되자 부딪히는 부분들이 적어졌다. 내가

좀더일찍첫째와다른둘째의특성을받아들 더라면, 둘째가훨씬더일찍

스스로잘했을것이라는생각을하며나는반성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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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울이 많이 지는 셋째, 셋째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주변에 많은 또래

아이들과함께자랐고유치원도다녔다. 그런막내를향해큰아이는‘행운아’

라고표현한다. 전혀다른성격의두아이를키워서그런지막내는편하게키

우고자하는것이내생각이다. 그것이느껴지는지첫째와둘째는그것이불

만이다. 막내에게만관용을베푼다는것이다. 그러면서한편으로나를또깨

우치게한다. 막내의공부를도와주다가어쩌다큰소리라도나면큰아이왈

“엄마그렇게화내면서가르치면더모르거든요.”하는것이다. 그렇다. 나의

목소리가커지면커질수록아이들은귀를막아버리고더멍해진다는사실을

알면서도순간망각을한다. 둘째로그렇게경험을했음에도때로잘못을되

풀이한다. 내자신을통제할수없을만큼화가날때는그자리를박차고일

어나야한다는사실을알면서도순간망각을한다. 그래서막내의공부를도

태호, 태성, 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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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주다가 화가 나면 나는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가 심호흡을 한다. 그러면

막내가 다가온다. “엄마 이제 잘 할게요.”하면서 말이다. 아이도 나도 다시

깨닫는순간이다.

공부, 마라톤 게임이라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인생인들 어찌 다르랴. 처

음부터끝까지잘달려완승을하면얼마나좋으랴만, 넘어지면일어서고뒤

떨어져도꾸준히달려목적을이룬다면그또한큰나름의의미가있으리라.

자유롭게탐색할시간이야말로반드시필요할것이다. 자유롭게탐색을하면

서좋아하는것을찾게되고그렇게되면더잘할것이다. 아이들이스스로

빚어가는각기다른모양의그릇, 부모의도움이있어좀더완성도높은그

릇이이루어진다면더할나위없으리라.

나는아직자녀교육에관해진행중인엄마다. 무엇이실패와후회가없을

바른길인지잘알지못한다. 다만첫째와둘째, 그리고셋째를기르고교육

을해오면서몇가지느낌이있을뿐이다. 그러므로아이들의자기그릇만들

기를조용히돕고자하는마음이다. 세상모든그릇의적절한쓰임을인정하

면서…

l기획자 주l김 덕! 그에게서는 늘 온유함과 성실의 향이 짙게 풍긴다. 주부로서의 일상, 신앙생활, 취미생활 모두가 조용한 가운데 할 바에 충실히 해내는 실천형이다. 월화차문화원 자필묵연회원으로자필묵연전 5회 참가. 서울서예대전, 대한민국서예대전 등 입, 특선 다수의 경력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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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如遠궋(생여원행), 삶은먼길을가는것과같다. / Life is going a long way.

삶은 먼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반나절을 지체하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가 그만큼짧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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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은 숙

“엄마전화왔어!”셋째가외친다. 넷째가내게쪼르르달려오며“엄마전

화왔어!”하고반복을한다. 엄마나아빠와대화를할때아니고는학교에서

나유치원, 그리고친구들을만날때도대부분인도네시아말이나 어를쓰

는아이들인지라모처럼전화기속에서들려오는한국말에신났을것이다.

“누군데?”“이모야.”“어떤이모?”나는그때마다습관적으로묻고는또아

차한다. 아이의대답을듣지않아도뻔할것이기때문이다. “아이이모라니

깐!”역시아이의대답엔또그런다는식의짜증이묻어난다.

따르릉! 전화가걸려오면아이들은앞다투어전화를받는다. 서로받으려

고한바탕다툼이벌어지기도한다. 집으로걸려오는전화대부분은나를찾

는 것이고“누구세요?”라는 아이들의 질문에 상대방의 대답은 늘“응 이모

야.”일것이기에아이들과나와의신경전은더러일어나는일이다.

더러아이아빠를찾는전화가오기도하는데이때는대부분‘큰아빠’라는

말 때문에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가족이 없는 해외에 살다보니 한국인들

끼리는대부분모두형제요자매처럼사는탓이다. 특히젊은측에속하는우

리 부부는 이웃

을 만나거나 집

을 방문하는 경

우가 생기면 아

이를 향해“이

모 인사드려

라.”하고“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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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 인사드려라.”한 것이 원

인이다. 한국말이 다소 서툰

아이들이기에 만나는 어른들

이 친근감을 주기 위해 던지

는 농담, 즉 너도 나도 이모

요 큰아빠라는 말을 농담으

로 소화하지 못하는 것도 한

몫을한다. 그러니한국에다

녀온 뒤로“엄마 왜 우리는

인도네시아큰아빠가있고한국의큰아빠가있어?”하고묻는것은당연할

것이었다.

내사랑스런아이들넷! 이네아이들은모두인도네시아고도족자카르타

의햇빛과비와바람으로태어난아이들이다. 한국에본사를둔현지자회사

의직장인으로근무하던남편을만나인도네시아에서결혼을하고아이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인도네시아가 아이들의 고향인 셈인데, 아무

리 그래도 아이들은 진하디 진한 한국인의 피를 지닌 한국인이다. 그러므로

늘고민스러운것은교육이다. 아이들이반드시배우고알아야할것이한국

말이요한국문화인때문이다.

한국엘다니러갔을때다. 놀란것은시어른이었다. 모처럼안아보는귀여

운 손자 손녀와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낙망을 하셨다. 아이들은

그나마할줄알던한국말도시어른앞에서더듬거렸다. 어리기도했지만한

국의낯선환경과느닷없이많아진친척들도아이들이수용하기에는한계가

있었는가보았다. 주눅이들었는지생리현상마저실수를했다. 시어른께서는

“괜찮다 아직 어린 아이들 아니냐. 차츰 낳아 질 것이다. 열심히 가르쳐라.”

하셨지만혀를끌끌차는소리가내등어리로우박처럼쏟아져내리는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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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었다.

인도네시아로돌아오자마자나는아이들을무릎앞에나란히앉혔다. 한국

말을가르치기시작한것이다. 그러던중마치우리아이들을위한것처럼족

자카르에도 토요한 학교가 생겼다. 거기에 모인 아이들은 그곳에서만큼은

자연스럽게한 전용이되었다. 토요한 학교는그때도지금도여전히정말

열심히다닌다. 그리고어느정도한국말에진전이보일때쯤아이들의입에

서현지족보의문제성(?)을따지고드는질문들이생겨났다.

작고 사소한이런일들이어찌아이키우며살아가는재미가아니랴만참

으로어이없고재밌는일도있었다. 늘그렇듯교회를다녀온어느일요일오

후 다. 큰아이가제법심각한표정으로묻는것이었다. “엄마! 엄마는주기

도문알아?”“너도알잖니?”내반문에도아이는정색을하며“엄마가한번

외워봐.”하는것이다. 나는아들이시키는대로했다. “하늘에계신우리아

버지……”아들이끼어들었다. “거봐엄마에게는 하나님이아버지니까 나는

하나님을하나님할아버지로부르는것이맞지?”한다. 어이가없었다. 어디

서한번쯤읽은우스게소리지싶은데, 아이는천연덕스럽게묻는것이었다.

실소를하지않을수없었다. 한국의진짜가족관계호칭과인도네시아가짜

족보로아이기혼돈을겪더니이젠별별곳에촌수를대입하는가싶어가상

하다는생각이들기도했지만, 결국아이또한그유머를알고엄마를놀렸다

는사실을곧실토를해또한바탕웃음을토했다.

족자카르타, 이젠 내게도 남편에게도 고향 같은 곳이다. 더러 열대기후에

싫증이 나고 고국과 고향이 그립기도 하지만 고향처럼 정붙여 산다. 한국엘

갔다가돌아오면서공항에내리면내집에왔다는안도감이들기도하고, 훈

기에 훅 실려 오는 인도네시아의 특유의 냄새를 맡으며‘그래 바로 이거야’

하기도 한다. 고국이 있기에 고국처럼 살고 우리말을 알기에 인도네시아 말

을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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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고향을 묻지도 않고 진짜 족보를 들추지도 않으며, 건강하게 잘

자란다. 한국엘 가자고 조르지도 않고 모자란 한국말에 아쉬워하지도 않고,

누리지 못하는 한국문화를 크게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 애타는 것

은우리부부다. 더자라기전에한국식예절이라도좀가르쳐야겠다싶어붙

잡아앉히면그저천방지축이다. 매를울려야할지내가울어야할지암담할

때도없지않다. 그래서느는이기도인데, 기도를하려면가끔떠오른말이

아들이주장한‘하나님의손자’란말이다. 그래, 할아버지하나님빽믿고건

강하게만 자라다오. 너희들은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한국말이 좀 부족해도,

상식이모자라도, 예절을잘몰라도 분명한것은한국인이란사실이다. 사랑

스런아이들아!

l기획자 주l김은숙! 인도네시아 거주 16년, 족자 거주 13년의 주부다. 네 아이의 엄마로 틈틈이 쓰기를 즐기는 그는 제4회 한나프레스 신춘문예 소설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때묻지 않은 심성은 그를 아는 모두에게 하나의 정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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곝, 진흙을떨치고피어나다. / Blooms free from dust.

곝(연)은 장수, 건강, 명예, 생, 행운, 그리고 군자를 상징하는 꽃입니다. 번뇌의 구덩이같은진흙속에서깨끗하게피어나는특성으로인해불가의꽃으로불리기도합니다. 군락을 이루어 꽃이 필 때면 그 향기가 가히 넋을 잃게 합니다. 솟아오른 대공, 크고넓은잎의정취, 꽃의아름다움이예로부터시인묵객의애완대상이었습니다.

(인재 손인식의 필묵향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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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태 현

이번에 둘째까지 한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마침 자녀교육에 대한 을

쓰라는이제의를접하게되어나를돌아볼수있는좋은시간이었다. 엄마로

써잘한일과부족했던일이무엇인가곰곰이생각해보게된것이다. 결론은

모두가 부족하고 후회되는 일만 생각이 났다. 그러기에 잘 자라준 아이들에

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고, 가정교육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함께 노력을 해준

남편에게도감사한마음이들었다.

한국을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던 딸 예지, 일찍부터 스스로 한국대학을 진

학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고2때 JIS에서 JIKS로 전학하여 한국대학입시

를 준비하 다. 반면 아들 범근이는 인도네시아를 너무 사랑(?)했었나보다.

떠나기를아쉬워하면서“I Love Indonesia”를외쳤다. 딸아들모두이곳이

고향이다. 한국으로의대학진학은유학이고타지생활이다. 그러므로대학생

활과군대생활을마치는동안조국한국을좀더깊이배우고느낄것을굳게

믿는다. 멋지게변화되어돌아올아들과딸을상상하는것은요즈음나의일

상으로설렘이자행복이다.

이 세상에서아이들을제대로키우는일보다더중요하고어려운일이있

을까? 모든부모들의한결같은마음은자식들이모든면에서반듯한사람으

로성장하기를바라는것이다. 더군다나이곳은한국인에게는문화적충돌이

생겨날수있는타국이아닌가. 그런의미에서가정교육이매우중요시되는

곳이다.

우리부부는아이들이어렸을때부터아이들과잦은스킨십으로애정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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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많이한편이다. 처음부터가정

교육은 이래야 하는 것이다 하고

작정을하고한것이아니라, 그저

사랑스러운마음에서그렇게한것

인데언젠가부터는아이들이먼저

스킨십을 시도했다. 어디를 가기

전이나갔다와서엄마, 아빠 얼굴

에 볼을 부비며 사랑을 확인했다.

아이들을키우는데있어잦은스킨

십은 그 어느 것보다 아이들과 부

모의관계를원활하게하는것임을

체험하게된셈이다. 부모에게사랑받고인정받으면서자란아이는자신감을

잃지않고꿈을크게가지며, 자신은물론다른사람을사랑할줄알게된다

지않는가. 그럼에도한국인들에게스킨십은늘어색하다. 그런의미에서우

리가족이틈만나면함께즐긴수 장에서물놀이는참좋은방법이었다고

생각을 한다. 아이들은 떠나면서 나에게 골프를 권하기도 했는데, 저희들로

인해 골프를 멀리했다는 것을 아는 것 같고, 어차피 수 장에서 함께 놀 수

없으니탁트인공간에서마음을풀어내라는것같아참고마운마음으로요

즘은골프를즐기고있다.

존경! 교직에계시다가지금은퇴직하시어충북청주에서서예가로활동하

신친정아버지가, 내가 결혼할때친히써주신남편에게해야할도리 10개

항목중하나다. 아이들키우는것처럼그또한잘지켰는지돌아보면부끄러

운것이사실이다. 그런데의외의재밌는사건이있었다. 범근이대학입학면

접때인데“이세상에서가장존경하는사람이누구냐?”라는질문에주저없

이“부모님”이라고답했다는것이다. 물론평소에예지와범근이는자랑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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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지금까지살면서엄마, 아빠가싸우는것을한번도본일이없다.”고

말한다는것을안다. 부부가살다보면다투는일이왜없겠는가? 다만그아

이들이 다투는 모습을 못 보았기 때문이다. 아이들 앞에서는 부부의 불편한

모습을보여주지않으려했던노력이부모을존경하는마음으로발전한것이

니이또한어지간히목적을달성한셈이다.

아이들은키우다보니사람은각각다른소질과재능을가지고태어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 자신만의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도 깨달았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언어에소질을드러내두아이가다언어관련학과를지망하여공부하고있

예지, 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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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쉬운것은음악부분이다. 부모마음으로는다양한악기를다룰수있었

으면 해서 기회부여를 했었는데, 별 성과가 없었다. 딸 예지는 지금에 와서

“엄마왜나를피아노나바이올린을최고의수준이되도록심하게가르치지

않았어요?”라고푸념을하는데, 아이들이싫어하면억지로시키지않는것이

우리부부의교육방법이기도했다.

대개의자녀들이대학생활을하게되면서부터부모를떠난다. 홀로서기를

시작하게되는데이때에지혜롭고현명한판단을하기를바라는것은누구나

같을것이다. 이때종교는참으로좋은도구가아닐까한다. 사춘기의어려운

시기를보낼때도부모의기도하는모습을보고자란아이는자신의생각과

판단이 잘못됐다고 느꼈을 때 바로잡는 시간이 빠르다고 알고 있다. 그러므

로어렸을때부터신앙생활을하는것은더없이좋은교육중하나이리라.

딸이대학생, 아들이한창사춘기에접어들었을때, 한국에서오신이민정

선생님의워크숍에두아이들과함께참석하여교육을받았었다. 스티븐코비

박사의저서인“성공하는부모들의 7가지습관”이주제 다. 지금까지의삶

과앞으로의삶에대해다시한번숙지하고계획할수있었던참좋은기회

다. 배운내용을토대로토론하며아이나름대로자신의생각을갖게되는

것을느낄수있었다. 그워크숍은정말나나아이들에게도큰행운이었고생

각을한다. 특별히기억남는것은모든일을“네탓이아니라내탓이오”로

바꾸라는것이었는데, 살아가는데변함없이큰지침이되고있다.

단순한것같지만인간관계의시작이인사가아닌가싶다. 우리부부는평

소에 이웃사람들과 인사를 잘 나눈다. 특히 우리 아파트는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편인데, 평소엘리베이터안이건, 공공장소이건가리지않고인사를나

눈다. 그러다보니 인사가 인간관계도 좋게 하지만 스스로의 기분을 좋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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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다는 것을 항상 느낀다. 거기에서도 큰 소득이 있었는데, 주위로부터“그

집아이들인사성밝다.”는소리를듣는다는점이다. 작으나마부모가아이들

의거울이되었다는점에서뿌듯한마음이다.

자녀를기름에있어부족하고후회되는일만많은내가 을쓰다보니은

근히자랑을늘어놓고말았다. 요즘엔자랑을하려면값을치르고해야된다

는데, 읽어주신분들께감사의마음으로대신하겠다. 언제나내게힘이되어

주는가족들, 늘감사하고사랑한다.

l기획자 주l 김태현! 결혼 후로부터 살게 된 인도네시아에 23년차 주부다. 월화차문화원 회원이며 한국부인회 운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늘 수줍고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는 그녀가 타국생활에서의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한껏 강조한 것이 당연하고도 새삼스럽게 느껴지는데, 인도네시아에 한국인 젊은 주부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볼 때 좋은 조언이 아닌가 싶다.

가족이 정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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惠好(혜호), 사랑받고사랑하는 / Be loved and love.

“二人同心其利斷金 同心之言其臭如갿(이인동심기리단금 동심지언기취여란)”, 두 사람이 마음을 합치면 그 조화로움이 쇠라도 자르고, 마음을 함께하는 말은 그 향취가난향과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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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필 수

나는이원고요청을받고많이망설 다. 한편으론스스로에대해많은생

각을하는계기도되었는데, 인도네시아에서의공부와생활에대한반추이기

도했고, 사회인으로서또비즈니스맨으로서스스로에대한관찰이기도했으

며, 한편으로는새로운것에대한다짐이기도했다. 결과적으로특별한이야

기는없지만관찰에따른다짐을현실로옮기는작은실천중하나로이 을

쓰기로결정을했다.

내가인도네시아에첫발을내디딘것은한국에서대학을졸업하고군대를

제대한이후다. 그배경에는이십수년전에이곳에사업을일구신아버지가

계시다. 나의인도네시아생활은인도네시아국립대학UI의 BIFA과정의언

어공부로부터시작이되었다. BIFA 과정을마친뒤내처대학에입학을함

으로서어려움과즐거움, 새로운경험이함께했던시기이기도하다.

“모르는것은부딪쳐가면서배우는것”이란아버님의강조로시작하게된

BIFA과정은내게는그야말로새로운도전이었다. 미리공부를많이한학생

들도더러눈에띄었는데, 내가준비한것이라곤간단한회화책한권과사전

이전부 기때문이다. 따라서학교앞하숙집은내게종합적인배움터 다.

어학에특별한소질이없어두려움을가지고있던내게그곳의친구들, 그리

고거기에서의경험은언어와함께인도네시아를배우기에아주중요한곳이

었다. 그하숙집에는외국인들과현지대학생들이많았는데, 그중몇몇현지

인 친구들은 나의 선생님이자 친구로서 문화적 충격과 함께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없던 그들은 언제라도 나와 대화하는

것을즐겼는데, 한국에서대학생활과는또다른면들이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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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

장 먼저 접하게 된 것이 식생

활이었다. 그때 한국 학생들

중에는 인도네시아 음식에 적

응을 잘 못한 이들도 있었는

데, 나는 다행히 처음부터 잘

적응을했고그로인해인도네

시아 친구들과 어울려 인도네

시아 음식을 두루 순례하기도

했다. 언어습득이 급선무 고

학교생활이 전부 던 나로서

는 그 시절 그들과 어울리는

시간이참많았다. 특히현지인친구가생일을맞이한날에는현지인식당에

서 어울리는 것이 다반사 는데, 그들과 함께 노천 포장마차에서 손으로 음

식을먹기시작한것이나현지의많은향신료를접했던경험들은지금도생

생하게남아있다. 또한한국인학생생일에는한국식당이나한국인하숙집에

서 식사가 있기도 했는데, 인도네시아 친구들 또한 한국인 유학생들로 인해

한국음식을접하게되는기회 다.

하숙집의 한국학생 생일잔치는 정체가 변한 한국음식을 맛보는 계기이기

도 했다. 언젠가 한 친구가 미역을 구해와 생일의 의미를 높이고자 했는데,

그만양조간장으로간을맞추는바람에먹물을풀어놓은것같이검은미역

국을먹은적도있었던것이다. 어쨌든미역과생일날미역국을먹는이유를

설명하느라무진애를쓴기억과, 맛있다고잘먹던현지인친구들의기억도

생생하다. 그들또한미역을먹는것은우리와같았는데다만미역줄기만을

먹는다고함으로써서로멋쩍게웃은적도있다. 언제라도음식은문화는이

처럼다른사람들사이에서상호간교류에큰역할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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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처음으로지진을경험한것도그때

다. 지진을 겪은 경험이 없던 나는 잠을

자는중에어지러움을느껴깨어났는데, 다

른사람들이뛰어나가는것을보고도또전

등이흔들리는것을보면서도그냥잠결에

어지럼증인가 의심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숙생모두가모인밖에서내가보이지않자현지인친구들은위험을무릅

쓰고급히나를구하러왔다. 그런데도나갈생각은않고왜어지러운지모르

겠다고 지껄이기만 하는 나를 그들은 서둘러 밖으로 이끌었다. 겨우 밖으로

나와 황당한 얼굴을 하며 그들이 나를 향해 누차 강조하던 단어 Dempa

bumi는나중에사전을찾아보고야지진을의미한다는것을알았다.

내가학생으로서가장아쉬웠던것은친구들과같이몸을부대끼며운동을

해보지못한것이었다. 그들과같이춤도춰보고이야기도많이했었지만운

동을같이해보지는못했다. 인도네시아친구들은축구와배드민턴에매우열

광적이다. 하지만정작그들은그것을보는것으로즐기고만다. 그들이좋아

하는 운동을 직접 즐기지 못하는 것은 운동할 장소가 없어서 다. 한국에는

모든 학교에 마땅히 크고 넓게 자리한 운동장이 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

는그것을찾아보기어렵다. 거대한캠퍼스가있는국립대학UI마저운동장

다운운동장이없다.

나는 그 이유가 인도네시아 정부의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라는 것을 학교

어학당을졸업할때쯤에야알게되었다. 법적으로학교시설에운동장이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한 우민화 정책의 시작은 식민지 시절 지배자들로

부터 다고한다. 많은인구의인도네시아인들이체력마저강하면폭동을일

으켰을때대비하기어렵다는것이나, 한곳에많은사람이모이는것은결코

바람직하지않다는지배야욕의발로 는데, 문제는독립을한뒤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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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마저 그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자국정부

가식민지잔재를지우는것이아니라더욱강화하여시행했다고하는점이

다. 그역시비슷한연유인데인도네시아가다민족국가이기때문으로서지배

자만다를뿐지배욕은같았던것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친구들은 그런 사항을 모르거나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심지어는운동은운동하는시설에서돈을주고이용하는것이일반화됨으로

써 학교에 운동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는 투 다. 하물며 운동시설을 돈을

주고이용하는친구들중에는자신들처럼엘리트만이같이할수있는공간

에서운동을하는것을자랑스럽게생각하기도했다. 하여튼이런모든이질

적인문화는내게많은것을배우고느끼게했다.

지금인도네시아의한인사회에는어느사이나와같은동년배또는선후배

들이 제법 많아졌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인도네시아 학교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으며, 현지 또는 재외국인과의 교류의 폭도 매우 넓은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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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옥타의차세대교육프로그램을통해서서로간교류의폭도넓혀져가

고있으며, 생산과교역현장에서나름의역할과주체로서활동또한활발함

을알고있다. 한편한인도네시아간교역량도많아지고, 그에따라인도네

시아 한인사회 규모 또한 더욱 확대일로에 있음으로서, 문화를 알고 현지인

과교류의폭이넓은젊은이들의역할또한매우중요하고커진다는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에 능력을 갖춘 동료 선후배들이 많음을 감사하게 생각하

며함께이루어나갈수있기를바라는마음간절하다.

l기획자 주l김필수! 그는 한국에서 대학 졸업, 군필을 하고 인도네시아에 왔다. 다시 인도네시아 따르마느가라 대학(universitas tarmanegara)에 입학하여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 젊은이들 다수가 그렇듯, 선친께서 일구신 사업에 투신해 성장을 향해 매진하고 있다. 최근 주변의 진심어린 축하 속에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의 단꿈을 꾸고 있다. 그의 장도에행운이 가득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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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재 시 (吉再詩)

A poem by Gil-jae

굢溪芽屋獨閒居 月白風淸興有餘 外客不걐山鳥語 移床竹塢臥看書(임계아옥독한거 월백풍청흥유여 외객부래산조어이상죽오와간서) 시냇가 초가에서 홀로 한가로우매, 달밝고 바람 맑아 흥취가 이네. 손님은오지않고산새들만지저귀는데대숲에평상을놓고누워서 을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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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효 경

키가훌쩍커진딸아이가자기방에거울을하나걸어달라고한다. 기왕장

만하는김에전신을볼수있는것으로준비해주었다. 그랬더니가장소중한

시간절반이상을거기에소비하는거다. 하루중목숨을연명하기위한 (먹

고, 자고, 배설하고, 씻는) 12시간을빼고, 학교생활 8시간과길거리에서보

내는이동시간2시간을빼고나면딸아이가가질수있는자유시간이라곤2

시간밖에없는데, 이가운데절반넘는시간을거울앞에앉아있는것이다.

내딸은소중한시간에거울앞에앉아서무엇을할까? 살짝들여다보았다.

도저히말릴수없는딸만의또다른공부시간이다. 거울앞에앉아눈을깜

빡거려보기도하고, 거울을코앞까지들이대고얼굴의모공까지들여다보면

서있지도않을것같은뭔가를뜯어내기도한다. 미소를지어보다가는얼굴

을 찡그려보기도 한다. 외출할 것도 아니면서 이 옷 저 옷을 입어보고 앞태

뒤태를살피며단장을한다. 가끔은손바닥으로볼을두드리는소리가, 노크

를해야만들어갈수있는방문을넘어오기도한다.

그래거울을많이보거라. 표정도가꾸고매무새도다지렴. 마침내거울너

머의보이지않는자신도찾으렴. 보이는너와보이지않는네가웃으며하나

되게하렴.

나도거울앞에앉는다. 나도공부를좀해보겠다는심산도있다. 아름다운

답이나오질않는다. 과거도미래도흐릿한데나이들어가는것은또렷하다.

잔주름도보이고피부도부쩍처지는느낌이다. 가까이들여다보니주근깨도

더욱짙어져있다. 좀더젊었을때를생각한다. ‘그래도그땐지금보다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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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좀더나았겠지.’라고위안을삼는다. 나도벌서추억으로사는나이가되

었나싶다. 실망스럽지만, 먹은나이가겉에드러나는순리를거부하지않기

로 마음먹는다. 포기를 쉽게 하는 것도 나이 먹는 증거라는데…. 내가 거울

앞에앉는것은바른공부를위한것이아니라는것을깨닫는다.

외출준비를끝낸남편이나를찾는다. 시계를보니약속시간은아직충분

히남아있다. 나는5분만기다려달라고한다. 내가변신을하기위한시간은

고작5분에도충분하다.

“누구에게잘보이려고그리꾸미시나?”

거울 앞에 앉은 나면 보면 습관적으로 던지는 남편의 농담이다. 누구에게

보이기위해? 몇번이고되뇌어보는데선뜻답이안나온다.

“잘보이려는것이아니라, 화장을안하면사람들이나를몰라볼거아니

야.”

내 대답에 남편이 웃는다. 남편은 정말로 사람들이 몰라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것같다. 섭섭한마음이고개를든다. 젊어서의화장은그야말로화

장이다. 아름다움과조화이고어느만큼은실현되기도한다. 단장역시젊어

서하는것은균형잡힌몸매와의조화다. 그러나나이먹어하는화장과단

장은아무래도변신을위한투쟁에가깝다. 그리고그결과에는늘무리 음

이드러난다.

“엄마는화장안해도예쁜데.”

변신에열중인내게아들이농담을한다. 말에담겼을아들의의도와는상

관없이기분나쁘지않다. 그러나내변신이라고해봐야그게그거라는의미

는아들로인해확실해진다. 아들에게까지들킨내속내의온도가상승한다.

“나이들어단정하지않으면그것도실례인게야.”젊잖게타이른말에대

답이없다.

나이들어간다는것이내사고밖이었던때가언제 을까. 그땐나이가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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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진다는것을두려워하지도싫어하지도않았다. 언젠가푸념삼아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 왈“그땐 아마도 삶의 애착이 지금보다 덜했나보

지.”라고얼버무렸다.

나이들어가는것은단풍드는일과같다는생각이든적이있다. 때가왔음

을거부하면보기흉하게말라비틀어지는나뭇잎이될지도모르지만, 인정하

고받아들인다면곱게단풍이든것과같을것이라는생각이비교적오래머

물 었다. 그뒤로낙엽의시기를준비하는삶은단풍이들더라도싱싱할거

라는믿음도생겼다. 당나라시인두목은가을단풍이2월의꽃보다더아름

답다(霜곸紅於二月花)고했다. 신록보다더아름다울수있다는의미도찾을

수있다. 어떤이는단풍이드는이유를“사랑하는무엇이생겼기때문”이라

했다. 낙엽으로져서도할일이있다고했다. “누군가에게밟히는일”이라했

다. “잘썩는일”일뿐이라고덧붙 다. 하여간난때로나이든지혜가청춘의

정렬보다더아름다울수있음을스스로에게세뇌시키곤한다.

거울을보는것이공부임에는틀림이없다. 나이들어가는삶, 노년을대비

해야 할 때가 지금인 것을 거울을 통해 느끼고, 때를 거부하지 않고 순명할

것을 다짐하기도 하니 말이다. 각각의 공부에 때가 있다는 말과, 지금 나의

공부는‘이것이다’라는생각이겹친다. 거울을자주봐야겠다. 그리고이제부

턴거울앞에서가급적지그시눈을감아야겠다. 참 나를찾을수있지도않

겠는가.

l기획자 주l 김효경! 그는 주부다. 그리고 비즈니스 우먼으로 동분서주다. 한국을 떠나올 때 친정아버지께서 이삿짐에 넣어주신 지필묵으로 서울서예대전, 대한민국현대서예문인화대전,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상의 성과를 기록하기도 했다. 같은 쓰기로서 산문쓰기도 함께 즐긴다. 그의 거울보기의 깊이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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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 너그러운마음으로 / With generous mind.

너그러운 마음,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늘 너그러운 마음입니다.그래서우리는힘들때나외로울때나어머니를생각합니다. “지난 2000년 6월의「옛빛찾기」전을계기로출연하게된모라디오방송, 앞으로의계획을 묻는 사회자의 말에 나는 서슴없이 다음 전시 주제를‘어머니’로 세웠다고밝혔다. 그 뒤 2년여를 나는 어머니라는 화두로 인해 옴짝달싹하질 못했다. 아니 그넓고 깊은 공간을 놓아두고 어디 다른 데 가서 기고 뛸 필요가 없었다. 틈만 나면 시와산문, 소설속에서어머니들을만났다. 하룻밤에수십분의어머니를만나웃었는가 하면 한숨을 쉬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서럽도록 투박한, 그러나 구수한 어머니,화들짝한 감탄사를 감추는, 빙그레 웃음이 나오는 어머니, 생각만 하면 쌓이고 쌓인한이 범벅으로 묻어나는 어머니, 여자의 어머니, 남자의 어머니, 그리고 또 어머니,어머니를만났다. 그러나 어머니는 언제나 그냥 어머니 다. 한계가 없는 자애, 끝없는 헌신. 자식을위해서라면 하나뿐인 목숨 버리기를 마다하지 않는, 가장 비싼 정을 가장 헐값으로주시는어머니! 어머니! 이세상어떤존재와어머니를비교할수있을까?”

(2002년의 저서 어머니의 빛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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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효 정

보들한솜털이

사랑스러워

가만히어루어

보듬으면

숨겨진놀라운

향기와빛깔

서서히뻗어가는

내일의가지

때로는제멋대로

뻗어도좋아

그도그런대로

멋스러워서

너무나가지런히

크진말아라

너만의뿌리로

하늘을열길.

햇살과빗줄기

노래로삼고

폭풍과번개도

옹이로새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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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은총의

열매가열길.

제가슴다독여

서성이면서

썽여배웅하는

간절한축원.

큰딸을 멀리 인도네시아로 배웅하시며, 공항 출국 유리벽에 이마를 대고,

딸이작아져작아져보이지않을때까지돌아서지못하시던너희외할머니가

떠오른다.

어릴 적 아장거리던 딸의 걸음걸이로 보이셨을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비행기뜨는시간생각에핸드폰시간만계속만지작이시던너희외할머니가

떠오른다.

겨우 며칠을 허겁지겁 묵고 대전으로 내려가던 둘째 딸, 나를 배웅하시던

너희외할머니가떠오른다.

괜찮다고무겁다고투정을해도차안에서먹을김밥이며귤에, 곱게다져

얼린마늘, 김치를정신없이담으시고는낑낑거리고따라오셔서, 고속버스가

출발할때에야비로소한숨돌리며손흔들어주시던너희외할머니, 나의어

머니……

부디자식들이가서행복하기만을바라셨던것같다.

기른다는것.

어쩌면미안하고고마운마음뿐인지도모르겠다.

너희가 어렸을 적엔 너희가 어떻게 클지 상상해 보는 것이 막막하면서도

설레기도했다. 너희삶은이미너희안에예정돼있어, 나는그것이잘싹이

트도록살피고돕는역할만할수있을뿐이라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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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너희는통통물이오르더니싹이트기시작하는구나. 역시나너무예

뻐감사하고감사할뿐이다.

더러는힘든굽이가있겠지만그또한성장의기회가되고아름다운무늬

로삼길.

세상의틀에너무길들여지지않고너희만의새로운세상을열어나가길.

유머를잃지말고자유롭고즐겁게살길.

엄마는곁에서계속도울게. 잘해주기만빌뿐, 막상해줄것이많지않은

손이허전하구나.

이제는 어느새 커버린 너희가 너희 스스로의 길을 가도록 내가 배웅해야

할때가다가온다.

훨훨날아오르거라. 나의아이들아.

2011년 3월 20일 인도네시아에서 엄마가

l기획자 주l김효정! 한국에서 오랫동안 국어선생님이던 그녀는 일 년이라는 한정된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로 여행을 왔다. 한동안 일상을 벗겨 내보는 일,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희망하는 일일 것이나, 용기가 있고, 삶을 크게 그리고 멀리 보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이겠다. 그의 일 년이 돌아갈 비행기에 다 실리지 못할 크고 아름다운 것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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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깨어

있으라!/ Be aw

ake always!

작품을

보는

심리에

대해

옮겨온

이야기입니다.

먼저

작품을

재산

가치로

보는

사람이다. “저게

얼마짜린데, 돈

을걸어놓은

것이다.”다음은

장식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보기는

좋은데

무엇이

어째서

좋은지

생각이

없다.”그

다음은

아끼는

사람이다. “붓의

터치, 종

이의

질, 표

구모양, 구

도등

주로

겉껍데

기만

본다.”마지막으로

안목이

있는

사람이다. “작품에서

정신을

본다. 작

품이

건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작

품과

하나가

된다.”

높은

안목과

좋은

작품과의

만남, 이

것은

시간이

갈수록

서로의

가치를

높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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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호·윤진희 부부

‘학문에왕도가없다’는말은불변의진리다. 그럼자녀교육에는왕도가있

을까? 아무래도자녀교육또한왕도는없는것같다. 왕도가있었다면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씩이나 이사를 했을 리가 없다. 우리 부부 또한 세 번씩이나

이사를할이유도, 해외에서살면서주말부부로까지살아야할일도없었을

것이다. 왕도가 없기에 학부모는 자녀교육 문제로 인해 이러면 좋을까 저러

면좋을까로흔들리게되고, 자녀가이것을잘하면저것이아쉽고저것을잘

하면이것마저잘하게되기를바랄것이다.

지금은고2에재학중인딸이자카르타소재한국국제학교초등2년과정

을마친때 다. 지금중2인아들은겨우교회유치원 1년과정을마친때

는데, 사업상족자카르타로이주를할수밖에없는상황이었다. 당시족자카

르타에는아이들을보낼만한학교로초, 중과정을포함해서전교생이50여

명 정도인 국제학교가 유일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마저 우여곡절 끝

에입학을했는데, 걱정은그때부터 다. 딸아이의 어수준이제또래외국

계아이들은물론이고몇안되는한국계아이들에비해서도많이뒤지는것

이었다. 그로 인해 생기는 딸아이의 스트레스를 보면서 부모로서 우리 부부

는참안타까웠다. 그러나도와줄방도는방과후개인레슨을시켜주는방법

밖에없었다.

그러던어느날이었다. 국립가자마다대학의한국어과와KOIKA에서연합

하여 한국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한국 화를 상 해준다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도다른가족들과어울려 화를보러가게되었다. <집으로>라는제목

의 화 다. 최루성 화 던지라 종 이 되자 다들 눈시울이 벌게져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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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서로들겸연쩍은미소를지으며복도로나와이런저런애기들을나누는

데, 어떤 아주머니가 우리 집 딸에게 관심을 보 다. “어머 너도 울었구나!

다른애들은말을다알아듣지못해장난만치던데…”그순간내머리를스

쳐지나가는생각, ‘그래, 어가전부는아니야’ 다. 그렇지만그생각이바

뀌는것도순간이었다. 다른한국인남매가 어로대화하는것을보게된순

간‘우리애들은언제쯤저렇게될까’하는부러운마음으로바뀌고말았던

것이다.

생각이바뀌듯시간도바뀐다. 그리고시간이흐르면달라지는것도많다.

자라나는아이들은더욱바뀌는것이많다. 한학기를마치면서교사와면담

을한결과딸아이가 3학년과정을수업하는데큰무리는없을것이라는말

을들을수있었다. 안도의한숨이나왔다. 안도의한숨뒤에다시또다른걱

정이 려들었다. 학교에서 온통 어만 사용할 아이가 한국어를 멀리 하기

쉽겠다는걱정이었다.

아내와나는상의를했고, 그때부터아내는아이들에게한국공부, 즉초등

학교교과과정을방과후에집에서학습시키기시작했다. 그런데웬걸“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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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공부는 못 시킨다”는 옛말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 집안 분위기가 밝지

않았다. 아내가 애들 공부시키면서 아이들을 윽박지른 탓에 애들은 울고 아

내는아내대로지쳐있는모습을퇴근후에보는일이잦았다. 부부싸움도생

겨났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 한국공부를 중단할 수 없었다. 한국인으로서

의정체성을잃게해서도, 모국어의소중함을놓치게할수도없었던것이다.

그땐정말참힘든상황이었는데지금은편하게이야기할수있고, 공부하느

라힘들었던아이들도지금은한국공부를포기하지않은것이잘한일임을

알게되었으니, 시간이흐르면바뀐다는진리를여기에서또발견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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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우연찮게바뀌게되는일도많다. 딸이초등학교5학년을마치면

서중부자바Salatiga에소재한Mountain View 국제학교로다시전학을하

게된것이다. 딸이초등학교를졸업하면옮기려던계획이었는데, 우연한기

회에아내가이웃을따라학교구경을가게된것이원인이었다. 첫눈에학교

가마음에들었던아내는언젠가는보내려던학교이니경험삼아입학시험이

나한번치르게해보자고했다. 그야말로경험삼아시험과인터뷰과정을마

쳤다. 그리곤방학을맞은아이들과한국으로휴가를떠났다. 당장이아니라

그냥 앞으로 보내야 할 학교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휴가

를보내고있는우리에게이멜이왔다. 합격소식이었다. 우리부부가인도네

시아에서세번째이사를해야하고, 주말부부로지내야할이유가생기고말

았다. 우리는개학을 3일밖에남지않은상황에서부랴부랴살림을나눠학

교가있는Salatiga로이사를했다. 족자카르타에서 2시간여거리에위치한

학교는기숙사가있었지만기숙사사용가능학생은중1 과정부터 다. 어차

피 아이들도 한창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 다. 타국에서 부모형제와 멀

리살면서부부마저주말에만함께지내야하는신세를피할수없었다. 자식

교육의왕도가없으니상황대로따라야했던것이다.

주말을이용해아내와아이들이오가고, 내가오가는사이어언 6년, 시간

은흐르고아이들은건강하게학교생활도잘하며많은성장을했다. 언젠가

어로대화하던아이들을부러워했던것처럼이젠우리아이들이거침없이

어로대화를한다. 교회에가서기도도 어로한다고해서한바탕웃은적

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운 점은 있다. 특히 한국초등학교 과정 공부를

마친딸에비해 5학년과정을마치고흐지부지해버린아들녀석때문이다.

예전처럼 집에서 한국학교 과정을 공부하지는 않지만 한인단체에서 운 하

는토요한 학교도보내고, 기타여러방면으로한 공부및한국문화에대

해가르치는데도불구하고, 중학교 2학년인아들이쓰는한 일기를볼때

마다한숨이저절로나오기때문이다. 만약한국의대학으로진학을할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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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을당할것이뻔한상황이다. 한국인이니제모국에가서그깐어려움

쯤 헤쳐 나가지 못하겠는가 생각을 해보지만, 미리미리 준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떨칠수가없다.

요즈음중국인극성엄마에이미추아(Amy Chua)의 양육법을다룬『호랑

이엄마의승전가(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란책이많은사람들

에게 관심을 받는다고 한다. 스파르타식으로 애들을 독려하고 강제로 교육

시키는중국식, 아니에이미추아식교육법이기술된책인데, 전적으로아이

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미국식 교육법과 비교하여 논란도 많은가 보다. 에이

미추아가딸둘을잘키워놓은입장에서쓴책이지만, 자녀교육중인부모

입장에선한편으로는공감하면서도, 또한편으로는갈등하게되는것이다.

이세상에자녀사랑하지않는부모가어디있겠는가. 자녀들이좋은학교

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 좋은 직업을 갖기를 원하지 않은 부모 어디 있겠는

가. 그러나 왕도가 없으니 늘 갈등하게 되는 것인데, 왕도가 없는 것에서의

왕도란그저아이각각의성격과개성에맞춰채찍과당근을적절히사용할

줄아는교육만이가장현명한것이리라.

맹자의어머니처럼변화를거듭하면서열과정성을다하시는세상의학부

모들이시여! 부디맹모처럼좋은결실얻으시기를기도합니다.

l기획자 주l박광호, 윤진희부부는 인도네시아 살이 16년차다. 박광호 사장은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으며,족자카르타 한인회 총무직으로 6년여를 봉사했다. 최근에는 다시 자카르타에 회사를 설립하고 비즈니스의 폭을 더욱 넓히고 있다. 정성으로 키우는 자녀들의 장래가 반드시 밝을 것이라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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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억겁의

인연을

매화로

피우다. / Destiny

of eternity bloom

s in M

aehw

a.

억겁의

생을

갈고

닦아

매화

한송이로

피었답니다. 송

나라

사방득(謝

枋得)의

시구입니다. 검

은고목, 검

은가지, 몇

송이

붉은

꽃피

워올려놓고

뒤적뒤적

시구를

읽어나가다가, “幾生修得到梅花(기

생수득도매화)”이

한구절

발견하고

꺼이꺼이

한참을

울었습니다.

모든

인연이

너무

깊고

깊다는

생각에

그냥

한없이

슬펐습니다. 너

무깊고

넓은

인연에

감사한

눈물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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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상 천

<첫번째 인연>

1990년대중반한국의경제성장이절정에달하고급기야제조업에 3D직

종이 생기면서 외국인 근로자의 유입이 시작되었다. 그 중에 인도네시아의

근로자들이우리회사에약50명정도들어와1년또는2년간근무하게되었

다. 웬지그들에대한나의시선은따뜻했고그들의마음을얻고싶었고가까

워지고싶었다. 그래서그들이노동하는현장을더철저하게보고열악한환

경에대한개선을추진해주었다. 그리고진솔하게대화를했고그들의고민

을 들어주었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인도네시아가 다가올 미래에 내가 거기

에서있을수도있다는필링을가지게되었다.

<두번째 인연>

1998년친구중한명이공직생활을청산하고인도네시아의한국대기업으

로이직을한다는소식을접하게되었다. 아, 인도네시아로! 순간 뇌리를통

과하는 그 필링의 섬짓함은 무엇일까. 나에게 다가온 두 번째 인도네시아에

대한그무언의메시지는점점더가까이다가오는것같은느낌을받지않을

수없었다. “친구야, 인도네시아에서자리를잘잡고있어라, 그리고우리다

음에거기서만나자.”이무심코던진말이결코헛된말이아니었고잠재적

인바탕하에서나왔다는것이나의두번째인연으로생각된다.

<세번째 인연>

2005년 1월 인도뉴델리통신박람회전시에참가하 다. 내 제품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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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A그룹으로부터호평을받아뭄바이본사로초대를받았고급기야구체

적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본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팀장은 아주 적극적으

로한국 IT중소기업의제품을선호했다. 그러나갑자기팀장이인도에서인

도네시아의 바클리그룹 바클리텔레콤으로 스카우트가 되어버렸다. 순간 공

들인 인도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까움에 처해 있었으나

2006년 3월 인도네시아에서 걸려온 한통의 전화!!! “Mr, Park, I am in

Indonesia, Please come to Jakarta immediately, then bring your

products together”.

현재 살고 있는 집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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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이것은희열도아니고운명으로받아들여졌다. 앞선세번의추상

적인연의고리가구체적인느낌아닌현실로다가오고있었다. 아!!! 인도네

시아. Satyadev는거침없이 2천만불의계약서와동시에 1백만불의첫신용

장을불과두달만에나에게주었다.

이네번째인연은다시다섯번째의인연을만들어내고말았다.

<네번째 인연>

바클리텔레콤에서많은인도네시아인을만나게되었다. 내가한국에서인

도네시아근로자들에게대해주었던것처럼.

너무나 많은 도움과 지원을 받았고 인간적으로 친해졌다. 그들은 나에게

PT. MMS라는회사를소개시켜주었고, PT. MMS는바로PT. MMS는바

로현재의나를인도네시아자카르타에있게만든회사이다. PT. MMS와한

국기업이만든합작법인의대표이사로나는현재인도네시아에있는것이다.

그리고네번째인연에서지금은거미줄같은네트워크를만들고있다는것

이더중요하고아직도인도네시아인들과의인연은계속되고있다.

이렇게인도네시아는어느덧나에게너무나큰인연으로다가와버렸습니

다. 나는현재인도네시아의자카르타에있습니다. 십수년전에감성적으로와

닿았던인도네시아가지금은구체적인현상으로서그것도인도네시아의땅위

에내가서있다는것은너무나깊은인연의고리가아닐수없습니다. 나는지

금인도네시아에있습니다. 그리고앞으로도인도네시아에있어야합니다.

2010년 5월 5일에인도네시아주재를위해들어왔습니다. 지난 5년간비

즈니스출장을올때하고는사뭇다른느낌이아닐수없습니다. 모든것이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집과 사무실을 계약하고 직원을 채용하고 PMA 등록

을하고모든일들을진행하면서나는드디어한국사람들이아닌인도네시아

사람들과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인도네시아 기준으로 해야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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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나는 인도네시아에 가르치려 들어온 것이 아니고 배우려 들어왔다는

사실을깨닫게되었습니다. 나는매일매일인도네시아에대한새로운사실과

상황들을모든것으로부터모두로부터배우고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10년 이상 살아온 많은 한국교민들이 자랑스럽습니다.

Indonesia Standard에서받아야하는엄청난고통을그들을어떻게극복했

을까? 현재는그러한상황에서어떻게잘살아가고있을까? 궁금합니다. 그

러나무엇보다도그속에서많은비즈니스를일구고창조하고있는선배한

국교민들이부럽기만합니다. 1년차교민으로서는도저히이해가 안되는많

은상황속에서도그들의모습은늠름하게보입니다.

그러나 나는 Indonesia Standard를 거부합니다. 좋은 것이 좋다라는 것

은기회주의자들이만들어낸허울입니다.

나는 International Standard를 고집합니다. 나와 인도네시아의 인연은

깊지만나는인도네시아와투쟁을하기로작정합니다.

그투쟁의처음은공합입국에서시작됩니다. 많은한국인들이역시“봉”입

니다. 그러나한국인들은그냥귀찮아서적당히돈을주고나옵니다. 충분히

통관이 가능한 음식물들, 때때로 인삼제품에 그들은 습관처럼 돈을 원합니

다. 나는몇번검사대에서체크를당했지만결코물러서지않습니다. 정당하

게 설명하고 오히려 그들의 이해를 구하며 통과를 합니다. 한국인들이 이렇

게해야그들은한국인을“봉”으로생각지않습니다.

AS용으로많은부분품을가지고들어오는데많은돈을요구합니다. 미리

준비한 인보이스, 수출증명서, 수입자정보, 수입신용장 등을 보여주며 구체

적으로설명을합니다. 처음에그들은“봉”으로생각했다가결국수출품목의

AS용도부품으로확인한후보내줍니다. 딱두시간이걸린투쟁이었지요.

전 시간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이 척박한 인도네시아에서 International

Standard를지켜냈다는것이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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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시내로택시를타고가는데갑자기경찰이잡습니다. 외국인, 특

히한국인으로보고경찰이검문을합니다.

여권, 입국비자등등을검사합니다. 여권은호텔이놓아두었고입국비자를

보여주었는데도 여권이 없으므로 경찰서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 20만

루피를달라고합니다. 순간돈이문제가아니라이것은싸워야한다고본능

적으로거부를합니다.

그리고는호텔로전화해서여권을가져오게하겠다고말합니다. 같이여기

서 기다려서 확인하자고 합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경찰의 단순하고도 말도

안되는검문에쉽게돈을주고마는그런습성때문에언제나우리한국인은

인도네시아Mafia Polisi의주대상이아닐수없습니다.

외국인임을알고택시기사는짧은거리를돌아갑니다. 요금이거의 1.5배

정도나옵니다. 바보가아닌이상돌아간다는느낌을받습니다. 대부분의한

국인들은그냥속으로삭이고돈지불하고내립니다. 그러나나는따집니다.

그리고주변의또다른인도네시아사람을불러서택시가돌아왔다는사실을

알립니다. 대부분 이 사실을 압니다. 그렇게 10분 정도 싸우면 택시 기사는

정상요금만받고갑니다. 두어번이런경험이있는데이것도우리는반드시

따져주어야합니다.

입국 전 한국에서 호텔예약을 마치고 체크인을 하는데 방이 없다고 합니

다. 그래서이틀은고급방에서자야한다고합니다. 이것도역시한국인이주

대상입니다. 따집니다. 비록방이없다고하나, ‘나는정식예약을했으므로

호텔의잘못이다.’‘이것에대해호텔은책임을져야한다.’책임자를부릅니

다. International Standard에서 따지면 반드시 이기게 됩니다. 그들은 고

급방을예약된가격으로제공합니다. 그리고는사죄의마음으로음식서비스

까지합니다.

위에서언급한것말고도더많은실제경험적사례가있으나대표적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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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들을선별해서언급했습니다.

Indonesia Standard에 우리는 녹아들었습니다. 이제는 그 늪 속에서 헤

어나오지 못합니다. 새로 오는 많은 교민들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는 오기

전부터Indonesia Standard에항복합니다.

나는앞에서언급한나와인도네시아의인연에서처럼, 나는인도네시아를

사랑해야합니다. 그러나내사랑하는인도네시아가불합리하고썩고있는데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본다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내가 인도네시

아를바꿀수있다고생각지않습니다. 작은한사람의한가지한가지도쌓

이면큰산이되듯이우리는우리스스로가 Indonesia Standard에녹아들지

말고불합리한것에저항해야한다고봅니다.

아! 인도네시아.

나에게너무나많은것을가져다준인도네시아. 그깊은인연의뿌리내음

을맡을수있었고이제는열기가뿜어져나오는땅의지열을맡으며살아야

하는 인도네시아. 나는 인도네시아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고 있

습니다. 그러나불합리한 Indonesia Standard에대해서는과감히거부합니

다. 왜? 내가사랑하고살아야하는인도네시아이니까.

l기획자 주l박상천! 쓴이 박상천은 1964년 경남 김해출생이다. 2010년 5월 인도네시아와 인연을 맺어 현재 PT.Rajawali LBS 대표이사로 재임 중이며 다각적인 부분에서 컨설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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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도), 모든것과통하는것 / Thing which gets to everything.

도란 길이요 이치요 방법입니다. 근원이요 사상이며 인의이고 덕행입니다. 道란 곧 모든 것과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들은 도를 일러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따르는것이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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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치

9̀9년인도네시아에주재원으로부임한지도벌써12년이라는세월이흘

다. 그때당시를생각하면 30대초반이라는젊은나이에직원이4천명이상

이나되는큰조직의관리(인사/노무)를담당한다는것이정말큰중압감처럼

내게다가왔었다. 인도네시아에서대학원을졸업하고한국에귀국하여군복

무를마쳤다. 그리고 LG전자에입사하여약 4년간인사업무를담당하고있

었으나노무관련경험은전혀없었으므로주재발령을받고내심걱정반또

한새로운경험에대한기대반으로인도네시아에부임하게되었다.

부임당시의인도네시아상황은 IMF를겪으며수하르토정권이무너지고

민주화바람이불면서그동안막혀있었던국민들의민주화에대한열기가

정치는 물론이고 노동분야에도 거센 바람을 몰고 오고 있었다. 노동조합 가

입의자유및활동을보장하도록노동법이개정되었고이런변화를시작으로

하여다수의근로자들이급여, 처우, 복지의개선을요구하며새로이노동조

합을설립하거나데모를시행하는경우가비일비재하게발생하 다. 필자가

부임하게된것도사실은그당시회사에노동조합을요구하는사원들의데

모가발생하여공장가동을중단하는사고가있었고이런문제의근본적해

결을위해회사에서는노사관계의구조적개선을희망하고있었기때문이다.

사실필자는인도네시아에서공부를마치고한국에귀국할당시별로다시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며 장남으로서 결혼해서 한국

에정착하고부모님과가깝게지내고싶은평범한생각을가지고있었다. 적

어도 이런 나의 생각들은 주재발령을 받기 전까지는 생각했던 대로 진행이

되었다. 그래서주재명령을받고어떻게해야하나잠시고민을하기도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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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새로운경험에대

한기대또한그간의

인도네시아경험, 한

국의 선진 노사문화

를 전파하여야 하겠

다는사명감등을마

음에 새기며 인도네

시아 생활을 결심하

게되었다.

부임초기회사노

사관계 안정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생각들이 떠오른다. 단체협상, 임금협

상, 문제인원 정리, 관리감독자 Loyalty제고, 긍정적이며 건전한 사고를 갖

은사원들의Mind Setting 등크고작은많은일들을수행하 다. 출퇴근버

스 안에서 항상“어떻게 하면 강성 노조를 설득하여 회사에 협조하게 만들

까? 어떻게하면간부급사원들이회사편에서서일하게할수있을까? 또한

어떻게 하면 사원들이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게 할

수있을까?”등의생각들이항상머리에자리하고있었다. 물론여러가지어

려움들이정말많았고때론마음고생도심했지만나의생각과아이디어들이

현실로구체화되고이로인해주변에긍정적변화가생기고궁극적으로회사

가안정되는것을보면서고생의보람을느꼈고있었다. 지나간일이지만주

변의다른분들은부임하자마자골프를시작했지만나는 1년이지나도록골

프를시작하지못했다. 한편은스스로운동신경이별로라고생각했기때문이

기도하지만일단업무부터잘정리하여야한다는책임감이더크게자리하

고있었다. 지금돌이켜보면그때좀더여유를가질수도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이들기도한다.

주재생활 6년쯤지난 2005년의일이다. 새로운무언가에도전해보고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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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생각이간절하 다. 주말에운동하는것도건강을위해의미있는일이긴

했지만스스로에게보다의미있고보람된무언가에도전해보고싶었다. 아

니꼭그래야한다고생각을하 다. 그렇게해서회계공부를다시시작하

다. 3년 만에빤짜실라대학회계학과를졸업하 고다시 UI대학회계사과

정(PPAK)에 입학하여 1년후우등상(Cum laude)을 받고졸업하 다. 그리

고 약 6개월 정도를 준비하여 인도네시아 공인회계사(Id CPA) 시험에 외국

인최초로합격하 다.

나는지금인도네시아최남동단파푸아므라우케비안강하구어귀에서바

다를바라보며이 을쓰고있다. 그사이 2010년 9월 LG상사인도네시아

법인으로직장을옮겼다. 그동안제조업에서많은경험을했고지금은자원

사업분야에서LG상사산하여러법인들의HR, 법무등을지원하는또다른

좋은경험을하고있다. 정말소중한시간들이다. 앞으로내가도전해야할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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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들은아직많

다. 법학박사,

회계학 박사,

공인세무사, 변

호사등기회가

되는대로다도

전해 보고 싶

다. 누구는 나

보고 미쳤다고

하기도하고내

가욕심이너무

많다고도한다. 난 둘다맞다고스스로생각한다. 다만내가미치고욕심이

많은대상이긍정적이고의미있는것이어서정말다행이며그로인해내삶

이즐거울수있어서정말행복하다. ‘내가받은자격증으로나중에뭘할수

있을까? 돈은 되나?’등의 생각은 지금 내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무언가에

도전하고성취하는그자체가내게큰의미가있기때문이다. 나는무언가에

도전하고 노력하는 데서 내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그래서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은 내 인생의 한 과정일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만 내가 희망하는 게

있다면내가배우고알고있는것들을통해가능하다면다른많은분들이필

요로하는소중한가치를제공할수있었으면좋겠다라는것이다.

얼마전“시크릿”그리고“에너지버스”라는책을읽었다. 그 두책에는공

통적으로“끌어당김의 법칙(Law of attraction)”이라는 말이 나온다. 무언

가자기가원하는것에주파수를맞추고노력하게되면그건언젠가는자기

것이될것이라는것이주요내용이다. 그간내가생각하고경험했던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부분이어서 마음에 들고 또한 스스로 조금 놀랍기도 했

학위 수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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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제 을 읽고 계시는 독자들께서도 한번 느끼고 실천해 보시면 좋을 것

같다는생각을한다.

이번달부터대학교에서강의를하게되었다. 내가가르치게될수업은“회

계감사”라는 과목이다. 물론 공인회계사 최종 자격증 발급의 자격요건이긴

하지만누군가를가르치는것은그간내가마음속으로항상소망하고꿈꾸고

있던사항이다. 인생의또다른소중한기회를얻게되었다. 그간내가공부

할때아쉬움을느꼈던부분이있기에좀더알기쉽고편안하게후배들을지

도하고싶다. 아울러후배들이좀더큰그림을그리고원대한목표를세우고

무언가에도전할수있는용기를주고싶다. 작지만소중한나의경험담을들

려주고싶기도하다. 새로운길에는또다른어려움이있겠지만항상그래왔

듯이그어려움이또다른보람으로보답할거라는확신이있기에나의또다

른발걸음은가볍고즐겁다.

l기획자 주l방치 ! 한 사람의 치열한 삶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향을 미침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는 인도네시아 한인 동포들의 귀감이요 자랑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큰 그림을 보고,듣고 읽노라면 마음이 5월의 신록처럼 또렷해진다. 자신과 이웃을 향한 참 적선의 한 모습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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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처럼 침묵하라 난처럼 고요히 말하라. / Besilent as a rock and speak quietly as anorchid.

돌처럼침묵하라난처럼고요히말하라침묵은쓸데없는말을삼가는것, 참으로진실한말은돌처럼존재그자체로도넉넉하고, 난의작은흔들림과향의은은함처럼작은것으로도모자람이없는것돌처럼침묵하라난처럼고요히말하라<자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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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빈

14년이지난지금도나는그때일을선명하게기억한다. 자카르타의 국

계국제학교<BIS>의입학시험을치르는과정에서생긴사건(?)이다. 시험에

출제된 질문은‘동물원에 갔을 때 거기에서의 느낌에 대해 쓰라’ 다. 물론

지문은 문이었다. 갓ABC를배운여덟살의한국인인나로서는실로감당

하기어려운시험이었다. 나는스스로의무력감에분했는지, 아니면그저창

피했는지울며시험장을뛰쳐나왔었다. 그후 14년, 나는자카르타의미국계

국제학교 <JIS>를졸업하고카이스트에서한학기를수학한후다시서울대

학교에입학을했고, 이제대한민국남자의의무를이수하기위해군입대를

앞두고 있다. 시험장에서 울며 뛰어 나온 나의 눈물을 닦아주시던 부모님과

그부끄러웠던기억을웃으며이야기하고있다. 향후내가나아갈길에서생

길수있는많은사건을항상웃으며이야기할수있는사람이될수있도록

스스로를다짐하는마음으로이 을쓰고있는것이다.

bilingual, 돌아보면2개국어를모국어처럼편하게활용하는사람이적지

않다. 그렇게되기를바라는사람도참많을것임을짐작한다. 참으로감사한

것은내가부족하나마그대열에낄수있다는사실이다. 물론그것이가능하

도록 환경을 조성해주신 부모님이 계시고, 그간 나를 지도해주신 많은 선생

님들이계셨음이다. 고개숙여깊이감사한다. 또한사람에게스펀지처럼부

드럽고흡입력있는어린시절이있다는것도감사하고, 하나를통해다른몇

가지를 습득하고 표출할 수 있는 창의력을 인간에게 부여한 신의 은총에도

나는무한감사를한다. 바로그모든감사의대상들은초등학교입학시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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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수밖에없었던내게웃을수있는알찬과정들을부여했다.

시험장을뛰쳐나온후다른국제학교에입학을했던나는거기에서다국적

아이들과공부하고어울리기를불과 2년여만에또래외국인친구들과 어

능력을비교할수있을만큼향상이되었다. 그리고언젠가부터는2개국어

를 모국어처럼 편하게 사용하는 학생이 되었다. 대게 한국인 학생들의 경우

어를 잘하면 한국어 구사가 뒤떨어지거나 그 반대인 경우가 많은데 비해,

나는나름큰성장을했던것이다.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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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어떻게해서그것이가능했는지분명하게말할수있는한가지가있

다. 바로독서다. 나는자라면서책을많이읽는편에속했다. 밤을지새우며

책을 읽는 버릇으로 인해 어머니로부터 자주 꾸중을 들을 정도 다. 어로

된책이건한국어로된책이건닥치는대로읽었다. 그때는정말공부도뒷전

이었다. 책을 읽는 것이 무조건 재미있었다. 물론 그것이 훗날 내게 엄청난

자산이되어돌아올줄알고책을많이읽은것은아니었다.

SAT, ACT, TOEFL 그리고수많은모든 어시험은독해실력을꼭필

요로한다고나는생각한다. 무작정외우면어지간히해결이되는문법과달

리독해는하루아침에고득점을얻을수있는부분이절대아니라고생각한

다. 그래서나는내독해점수가월등히높았던원인이독서에있었다고확

신한다.

예를들자면SAT는독해시간을촉박하게주는편이다. 그런데나는독해

속도가뚜렷하게빠른편이었다. 친구들이독해부분에서문제를다못푸는

경우가 생길 때도 나는 항상 검토까지 하고도 시간이 남을 정도 다. 비록

SAT는 만점을 받지 못했지만 TOEFL과 TEPS에서 독해는 항상 만점이었

다. 그로인해내가공부를거들어주거나조언을필요로하는후배에게나는

무엇보다중요한것이독서라는것을자신있게말한다.

독서의중요성에대한강조는어디에서나누구에게나진리임을안다. 그럼

에도불구하고나는또하나의체험을말하고싶다. 나는유치원을제외하고

는 초·중·고 12년 내내 국제학교만 다녔다. 모국어를 구체적으로 학습할

여건을갖지못했던것이다. 그래서모국의대학에입학을했을때선배들은

물론동기들까지도나를향해우려의심정을드러냈다. 나의국어실력, 한국

에대한상식, 그리고한국인으로서의정체성이모두부족할것이어서대학

생활에 향을미칠것이라는염려 다.

그러나그염려를기우로돌릴수있었던것역시나는독서의힘이라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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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한다. 여전히 자신이 없는 것은 쓰기이지만, 대화에 있어서 어휘력이나

역사와사회상식등에서 13년이나외국에서살고온것이맞는가하는질문

을받기도했던것은분명독서에기인한것이라생각을한다.

물론이모든공은부모님께돌려야한다. 특히나와함께있는시간이많

았던 어머니의 노력이 크시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외국계 국제학교 교육만

받다가한국인으로서의정체성을잃지않을까항상걱정을하셨다. 초등학교

시절동생과내가집에서 어로대화하는모습을보시고기겁을하신뒤로

바로대책을강구하셨다. 바로그다음날부터나는동생과함께국어자습서

를 푸는 형벌을 받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하이스쿨에 입학할 때까지 초등학

교1학년부터중학교3학년과정의국어와사회자습서를매주20쪽씩풀었

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가 푼 문제들을 복습시키셨

다. 아직까지도 그때 내가 풀었던 OO국어자습서가 눈에 생생한 것은 대강

넘어가지않도록심혈을기울이신어머니때문이라고할수있다.

농구부원들과 함께 (아랫 줄 왼쪽에서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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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에왕도가없다”는말을나도많이들었다. 외국에서공부하는한국학

생들이 어나 한국어에서 능숙해지는 것 또한 무슨 비법이 따로 있겠는가.

단기적으로 몇 달 내에 점수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닌, 몇 년 후 시험을 칠

초·중학교 학생들이라면 습관적으로 책을 읽으라고 꼭 당부를 하고 싶다.

책이비단점수를향상시키는도구가아니라인생가치관설정에절대적도

움을준다는진리를모르는사람은없을것이다. 특히한국의대학으로진학

을고려한다면반드시한국어공부와한국역사, 문화를알기위해어느정도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물론 공부 이전에 한국인으로서 가

져야할기본소양이니….

l기획자 주l복 빈! 자카르타의 미국계 국제학교 JIS에서 12년을 수학한 후 한국의 KAIST에 입학을 했었다. 한 학기를 수학한 후 진로를 바꿔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에 입학을 했다. 일학년을 마치고 군 입대를 앞두고 몸과 마음을 편히 하는 기간 중 이 원고의 청에 응했다. 이 책이 발간될즈음 그는 대한민국 어느 병 에서 국방의무를 다하고 있을 것이다. 무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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罔曰弗克 惟旣厥心(망왈불극 유기궐심. 書經 句), 할 수없다고 말하지 말고 오로지 그 마음을 다하라. / Donot say you cannot do it, but go with all yourheart.

이 세상 부모가 자녀에게 듣기 바라는 말은 단연“열심히해보겠습니다.”“최선을다하겠습니다.”일것입니다.어찌 부모뿐이겠습니까. 선생이라면 학생에게, 윗사람이라면 아랫사람에게, 사장이라면 사원에게 듣기를 바라는 가장 바람직한 말일 것입니다. 그 마음을 다하는행동, 이는누구에게나다감동이아닐수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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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종 복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JIKS의나이35세다. 재외국민학교(14개국 30개

교)에서가장오랜전통과역사를지니고있어많은재외초등학교의롤모델

이다. JIKS의 발전은 교민사회의 발전과 그 궤를 함께 해왔다. 교민사회가

더욱발전할것이자명한만큼JIKS 또한그러할것이라믿는다. JIKS의발

자취를돌아볼적절한시기로서, 과거를올바르게파악하고거기에서드러난

장단점을교훈삼아더욱나은현재와미래를준비하고자함이다.

첫째 마당 - JIKS의 강점

그간JIKS는강했다. 그이유를두가지들겠다.

첫째, 뛰어난상황적응력과융통성이다. 인도네시아는대표적인다문화권

국가이다. 인도네시아를한마디로표현한다면Fusion의나라라고할수있

다. 이슬람·기독교·불교·힌두교가서로혼합되어있고, 동양과서양이만

나는지점이기도하며과거와현재, 그리고미래가공존하는나라이다. 우리

JIKS 학생들은 이러한 인도네시아에서 성장을 해왔다. 동질성을 고집하는

백의민족대한민국이아닌이질성속에서다름의차이를인정하는국제인이

요 세계 속의 한국인으로 성장해왔다. JIKS 원어민교사 중 1/3이 미국·

국·호주·뉴질랜드등에서온원어민들이다. 우리학생들은자연스럽게한

국의문화를습득하면서도세계의문화를습득하고있는것이다.

둘째, 학생들간의강한유대감이다.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는 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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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유일한한국학교이다. 이학생들이 12년간같은학교에서서로어울린다.

유치원까지합한다면15년의학창생활을같이보내는학생들도있다. 서로의

장점과단점을너무나잘안다. 최근들어성공하는사람들이반드시갖추어

야할스펙중하나가인맥이라고한다. 마크주커버그가창시한소셜네트워

크수준은아니더라도 JIKS 네트워크는이미만들어진것이다. 그것도온라

인상의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것이 아닌 견고하고 확실한 네트워크는 우리

JIKS인이앞으로더욱성장할수있는원동력이되리라확신한다.

둘째 마당 - JIKS가 극복해야 할 점

학교에서 졸업한 학생들의 소식을 듣다보면 좋은 소식과 더불어 안 좋은

시험 시간의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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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도들린다. 아무래도안좋은소식들이더많이기억에남고아쉬움이남

는다. 이러한학생들의내용을종합적으로분석해보고자한다.

첫째, 진학의 폭이 좁다. 졸업생의 95%가 한국으로 진학을 한다. 나머지

5% 중에인도네시아현지나말레이시아, 싱가포르·호주·미국등지로진학

을하고있다. 퍼져나가는범위가너무좁은셈이다. IMF 이후한국의경제

성장이 조금씩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지만 취업의 문은 여전히 좁기만 하다.

소위말하는SKY 대학을나와도취업이보장되지않는다. 다른말로표현하

면Red Ocean이다. 이제우리는‘Blue Ocean’으로나아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교육의다양성이이루어져야하고, 우리의시야를넓혀가야한다.

둘째, 다양한활동과사회참여도가부족하다는것이다. 교육은바른인성

을 갖춘 예비 사회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소질과 적

성을계발해주어야하고, 학생들이사회에봉사할수있는다양한기회를제

공해야한다. 사실우리의교육이대학에너무초점이맞춰져있는것은사실

이다. 그것도진정한학력(學力)이아닌다른학력(學歷)을위해서우리학생

들과학부모님들, 그리고학교는전력의지를불사르고있다. 남들이가기싫

어하는길을가고, 하기싫어하는것을자발적으로하며, 몸소희생하며실천

하는 일에 앞장서게 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 진정한 인재를 키워냈다고

말할수있을것이다. 학생들이자신이좋아하는것을공부하며, 자신이좋아

하는활동을하며, 인도네시아에서열악한환경의사람들을도와주고교민사

회에일조하는헌신과희생을배웠으면한다.

셋째, 기초학력 부족으로 인한 대학에서 전공 적합도가 부족한 경우가 많

이 발생하 다. 주위로부터 듣는 많은 부적응 학생들의 내용 대부분이 이와

관련된 것들이다. ‘아무개 학생이 대학을 그만 두었다.’, ‘학사경고를 또 받

았다.’, ‘다른 대학으로 편입했다.’등등이다. 자기주도적 학습이 완성이 되

지 않은 학생들은 대학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 최근 특례입학이 상당히

어려워졌다고는하지만아직까지는비교적한국학생들에비해쉽게대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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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대학에 발

을 디딘 후에는 모두 동일한 선상

에서게된다. 준비되지않고쉽게

이 자리에 선 학생들은 도태되고

만다. 학생 모두를 당당한‘실력

인’으로 키워야 된다는 숙제가

JIKS에남겨져있다.

셋째 마당 - JIKS의 미래

현재 JIKS에는 많은 변화가 있

다. 외적으로는 좀 더 쾌적한 환경을 위하여 고등학교 건물을 신축 중이고,

내적으로는‘UP! UP! JIKS!’라는모토를내걸고교직원과학생모두가전

력질주하고있다. JIKS인모두가 로벌소양을갖춘창의적인재가되기까

지 다양한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적용하고자 한다. 기초

학력 증진을 위하여 수학· 어과목의 수준별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과

학·사회의 어몰입교육을초등학교와중학교9학년까지확대하고자한다.

또한학생‘1인 2악기’, ‘1종목스포츠’라는목표로Activity를좀더활성화

하여진행하고있다. 인도네시아와의문화및교육분야의교류를위하여인

도네시아국립대학(Universitas Indonesia)과 MOU를 체결하 고, 앞으로

ITB(반둥공대)와 가자마다대학(Universitas Gajah Mada)으로까지 확대하

고자 한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현지 고아원과 양로원 등지와도 연계하여 학

생들이더불어사는공동체의식을키우고자한다.

현재초등학교에서는‘학년별캠프’, 중학교는‘명예의전당’, 고등학교는

‘ 로벌리더십인증제’를실시하여바른인성과실력을갖춘학생들을육성

하고자 한다. 우리 학생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학부모들의 가치관과 교육 마

인드가변화해야한다는취지하에체험중심의‘학부모아카데미’를준비중

초등학교 운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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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있으며, 학부모

가 중심이 된‘샤

프론봉사단’을조

직하여 운 하고

있다. 교육 만족도

를 높이기 위해서

‘교원능력 개발평

가’를실시하 고,

교원들이 자발적

으로연찬할수있는기회를모색하고있다. 학생은교사의수준을뛰어넘을

수없다는말과같이우리JIKS의교사가변하지않고서는학생의변화는바

랄수없기때문이다.

지금까지의 JIKS를 바라보았을 때 JIKS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교육철학

적 관점에서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재외초등학교는

두가지점에서정체성이있다고생각한다. 첫째는해외에위치해있기때문

에 민족적 자긍심과 뿌리 가치관을 심어주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유태

인의쉐마교육과같이우리의핏줄속에깊숙이흐르고있는한민족사상을

가르쳐야한다. 둘째는현지에서잠재적지역전문가로양성될수있는교육

기반이갖추어져야한다는점이다. 그것이장기적으로는국익에도움을주며

세계속의대한민국을드높일수있는가능성이기때문이다. JIKS의과거현

재미래는유기적으로살아있기에무한한발전가능성을확신하는바이다.

l기획자 주l선종복!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교육철학 및 교육사전공)졸업했다. 그는 초등교사, 중·고등교감, 서울특별시교육청 장학사, 서울북부교육청 장학관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하며, 직스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학생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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幾生修得到虛心(기생수득도허심), 몇 겁을 갈고 닦아빈 마음에 다다랐는가. / Reach the empty mindafter kaplas of polishing and sharpening.

희노애락을 표현하기로 치면 그림 중에는 사군자만한 것도 드물 것입니다. 화제로 쓴‘幾生修得到虛心’은 본래‘幾生修得到梅花’로서 매화용 화제입니다. 제가 슬쩍 끝의 두 자를 虛心으로 고쳐서 이 작품을 하던 때의 제 심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여간대나무처럼 속을 비우고 사시에 청청할 수 있음이행복인 줄 알기에 한없이 부러운 마음으로, 외경의심정으로이그림을그렸던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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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희 정

첫아이를 인도네시아 초등학교(SD)에 입학시킬 때의 기억을 더듬자니 피

식웃음부터새어나온다. 그아이가지금고등학교2학년이되었으니참으로

오래된 기억이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인도네시아에 오자마자 우리 부부가

내린첫결정은인도네시아학교에아이를입학시키자는것이었다. 한국국제

학교에아이를보내는것이당연시되던시절, 형님내외분을비롯한주위이

웃들은우리부부의결정에다소의아한, 그래서여러모양의충고를아끼지

않으셨다. 초등교육은한국학교에서받게하고중·고등학교때 어교육을

위해다른학교를생각해보라는의견들이었다. 안타까운마음으로해주신말

들임을알기에지금까지도참감사하게생각한다.

사실우리나름대로는몇가지계산이있었다. 첫째, 아이가여섯살이전

에한 을익혔고어느정도의책읽기수준에있다는판단때문이었다. 한국

어가이쯤되고보니인니어와 어를받아들일준비가되었다는생각이앞

섰다. 둘째는 우리가 정착한 리뽀까라와찌 지역 안에 디안 하라빤이라는 역

사가 오래된 인도네시아 사립초등학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차로 5분이면

통학이 가능한 학교가 있는데 40분 이상 소요되는 한국국제학교는 재고의

여지가 없어 보 다. 그리고 또 이유를 찾자면, 인도네시아의 생활에 좀 더

빨리적응하고배워보려고했던나의욕심을들수있겠다.

이른등교시간에맞추어짜증스럽지않게아이를깨울요량으로아이가좋

아하는 음악테이프를 아침마다 틀었던 기억이다. 아이는 학교에서, 나는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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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어 강좌와 책을 통해서 인니어를

공부했다. 방과 후에는 학교 알림장

에 해당하는 아겐다를 보며,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해석해내는 것이 일

과 다. ‘열정’이라고표현하면적당

할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든 인도네시아에서든 모든 것이 상

식 안에서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것이리라.

BBSJ(학교 시간표대로 가지고 오

라는약자)? Sampul plastic(교과서와공책을위한책표지)? 이런정도는곧

해결이되었다. 하지만어느날, 학교에서돌아온아이의시험지를보는순간

우리가가야할길이참으로멀다는것을느끼게되었다. 분명올바른대답을

한것같은데틀렸다고하는두문제가있었다. ‘신호등에어떤불이들어오

면건너야할까요?’라는문제와‘잠자기전에꼭씻고자야하는것은?’이라

는문제 다. ‘초록불’이라고답했고, ‘온몸’이라고답했는데틀렸다는것이

다. 내상식으로는전혀이해가되지않는문제 다. 한국인이라면과연누가

이두문제에인도네시아식의올바른답을할수있겠는가.

이일은나에게한국과인도네시아문화의차이를확인시켜주는계기가되

었다. 그때까지만해도한국과이곳이별차이가없다는느낌으로살았던것

이 사실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한국인으로서의 내 상식으로 이해하려고 했

던것이다. 그러다조금씩‘인도네시아사람들은왜이런거야?’라는짜증이

나올즈음에귀중한사실을깨닫게된것이다. 얼마나다행한일인지모른다.

‘여기는한국과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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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후에나에게는조

금의 변화가 생겼다. 내

기준이 아닌 인도네시아

식기준을배우려고노력

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

능한주변을관찰하려고하는습관이생긴것도그즈음이다. 아이의공부를

돕기위해인니어과외선생님도찾았다. 매일오후집으로오는인도네시아

선생님을통해아이와나는이곳문화를배우기시작한것같다. 가만히살펴

보니 인도네시아에는 사람을 위한 신호등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자연

빨간불일때차들이멈추면건너야한다는것을곧알수있었다. 그리고잠

자기전에는발을씻고자야한다는상식도배우게되었다. 목욕은아침에일

어나자마자하는것이니말이다.

인도네시아에서살고있지만, 한국인들과어울려살아가고있는것이우리

교민들의삶인것같다. 그렇기에우리가노력하지않는다면이곳문화를접

할기회가드물어보인다. 가끔한국에서이곳으로온지얼마되지않는분

들을 만날 때가 있다. 도무지 여기를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리는 그

분들을보며, 슬쩍미소를머금게된다. 한국과는달리여러갈래의교육에의

길이있는인도네시아에서자신만의길을잘찾기를바라는마음을담은미

소다.

l기획자 주l손희정! 1998년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다. 남편과 남자 아이 셋, 네 명의 남자와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하는 푸념 중에는 보람과 뿌듯함도 엿들어 있다. 해피자카르타의 작가로서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의 가정의 청안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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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象無形(대상무형), 진정한 진리는 형체로 드러낼 수 없다. / The real truthcannot be proven by a shape.

로는 말이 나타내고자 하는 내용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말로는 뜻을 다 표현할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성인은 상징체를 만들어서 뜻을 완전하게 표현하고자 시도를 하 습니다.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언어와 문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지극히 불완전한 매개체인 언어로 표현된 것을 진리 자체로 알면 도리어 진리를 왜곡할위험이있음을경고한것입니다. 진정한진리는형체로드러낼수없습니다. 다만느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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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돈 철

풍경 하나

유난히 긴 속눈썹을 가진 꼬마 녀석이 토요일 점심시간의 미술교실 안을

문틈으로 빠꼼히 쳐다보고 있다. 내가 조용히 웃어주자 그 녀석은 조심스럽

게문을열고들어와그녀의품에수줍은듯안긴다. 간단히모자간에나누는

내가알아들을수없는몇마디의인도네시아지방언어…아마도방해가되

니조용히밖에서기다리라는뜻인듯하다. 이모든모습을교실창문너머로

흐뭇한표정으로보고있는또한사람, 그녀의남편이다. 마치이자체로아

름답고사랑스러운가족화가되는양싶다.

매주 토요일이면 그녀를 포함한 2명의 자녀들이 나에게 미술레슨을 받는

다. 입시를 위해서도 취직을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그 엄마는 그리고 싶은

그림을그리는것인데, 아빠는아내의서툰그림을격려하며기다리고, 그림

을배우는아이들은아이들대로호기심많은얼굴로내말에귀기울이며그

림을 그린다. 참으로 보기 좋은 풍경이다. 토요일 오전을 그렇게 온 가족이

감성교육을받는것이다. 아빠는한없이행복해보이고엄마는작은성취감에

생의희열을느낀다.

과연 이가족은무엇때문에소중한주말이시간을미술학원에서보내고

있을까?

풍경 둘

수까부미의어느가난한학교의교실. 국적이다른이방인인내가우리학

생아이들과함께서툰인니어로가르치는‘미술교육봉사활동’은한시골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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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커다란 이벤트가

되었다.

자카르타에서부터

준비해간 교부재로 시

연한여러가지미술관

련스킬들로시골의순

진한어린학생들은감

탄의 신음소리를 내고, 창문 너머로 동네 어르신들의 호기심어린 시선들이

모아진다. 제대로된미술재료들을갖추고처음배워본‘미술’이라는마술로

교실은곧가르치는사람과배우는사람구분없이모두한마음이된다. 오후

가되어헤어질무렵, 헤어지기싫다며지도하던학생의손을놓지않던어린

한녀석이시작한흐느낌에나를포함한학생들모두결국에는눈시울을붉

히고야만다. 울다가웃는역설! 그렇게소통한마음들은서로의언어에대한

미숙함은아무런문제가되지않는다. 그리고그것은소중한체험이되어다

음을기약하며동네사람들모두의설렘을한장의사진에담는다.

이아이들과같이흘린우리학생들의눈물의의미는무엇이었을까?

풍경 셋

토요일이면 방문하는 인도네시아 가족이 보여준 행복의 비결은 온 가족

이 한곳을 바라보며 공통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 매개체 역할을 미

술교육이 훌륭히 해내고 있는데, 그것은 부모의 젊은 시절의 꿈일 수도 있

고, 단순히집안꾸미기의수단일수도있다. 그것이무엇이든지간에미술

을배우는그순간은그가족에겐무엇과도바꿀수없는가장소중한시간

이되었다.

어느시골의어린학생이처음경험한마술같았던‘미술공부’의경험은이

아이에게훗날어떤미래를펼쳐보여줄까? 우리학생들과함께하는이작은

그림 그려주기 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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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들로어려운환경의많은아이들이좋은감성표현을할수있는방법을

찾아 나갈 수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미술을 교육하는 선생으로서의 최고의

보람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척박한 미술교육 환경에

놓여있다. 수많은외국인들과섞여살면서제법양질의미술교육시장이개척

될법한데도그것이그렇게쉬워보이지는않는것이현실이다.

그리하여몇년전부터내맘속에자리잡기시작한소망이하나생겼다.

내가뿌리내리고살고있는이인도네시아에선진국수준의‘예술교육센터’

를내손으로정착시키는것이다. 입시를준비하는인도네시아학생들은물론

이고, 행복을가꾸려는현지의일반시민들도그리고경제적여유가없는어

려운처지의아이들까지도최상의미술교육을통하여그들의감성을개발시

키려한다. 이것은또한지금의내가있도록도와준인도네시아사회에대한

보답으로더깊이그들과호흡하려는의도이기도하다.

현지인 성인반

현지인 학생 학부모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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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인도네시아에서의 한인 미술교육은 매우 성공적이라고 자타가 평

가하고 있다. 우리 학원 출신 학생들의 대학에서의 활동상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고, 이제는 종종 미대 졸업생들의 성공적인 사회 진출담이 들려

오기도한다. 현재미술을배우고자하는교민자녀들에게충분한역할모델이

되고있는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15여년간의한국학생을위한미술교육이

성과를이루어내고있다는사실은해마다개최하는미술전시회에보여주는

교민여러분들의지대한관심에서알수있기도하다.

지금까지 한국학생을 위한 미술교육으로써 인도네시아 정착기의 큰 기쁨

을맛보아왔다면, 나는이제인도네시아성숙기의두번째소망의실현을위

해새로운도전을해보고자한다. 인생은짧고예술은길다고하지만나의인

생은짧지않고나의미술교육에대한열정은더없이크다.

처음인도네시아를도전적으로찾았던조금더젊었던시절과변함없이지

금의나는여전히청록빛청년이다.

l기획자 주l신돈철! 그는 1989년 서울미대 산미과를 졸업했다. 제일기획, Cheil Bozell 아트디렉터, 웅진출판 근무를 거쳐 1998년부터 자카르타에서 토마토미술학원을 운 하고 있다. 매년 정기전을 펼치고 있으며, 미술을 통한 자선활동 또한 꾸준히 펼치고 있다. 국제학교(BIS) 미술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미술 교육을 통한 한류에도 공헌하고 있다.

현지 유치원 봉사활동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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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未知(무미지), 아직 알지 못할 뿐 / It is justunknown yet.

세상에 낯선 것은 없습니다. 아직 알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낯설다고, 아직 모른다고 두려워할것은아닌것입니다. 따라서 <無未知>에서는‘바로 알지 못할까 두려워하라’는 메시지를찾아내는것이더좋겠다는생각을합니다. “남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아름답다”와, “낯선사람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점 때문”이라는 말, 아울러“자신에 대해서는많이알수록좋다”는말도더깊이새기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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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덕

내가인도네시아에온것은2009년2월 19일이다. 만2년이조금지난셈

이다. 처음에는 매우 낯설게 여겨졌던 인도네시아. 이제는 고향처럼 친근하

고푸근하게느껴진다. 외국이기에여전히불편한점이없지는않지만, 나는

인도네시아가좋다. 낯선곳에와서도아내와둘이서잘살고있으니까많은

사람들이우리부부에게적응을잘하는편이라고격려를해준다. 그러나우

리는알고있다. 우리가적응을잘하게된것은많은분들의도움이있었기

때문이라는사실을. 이 을통해그동안도와주신모든분께감사를표하고

싶다.

내가인도네시아에온것은인도네시아국립대학교(UI)에서한국어와한국

문학을가르치기위해서이다. 나는공군사관학교교수로서24년간사관생도

들을가르치다가2008년에공군대령으로전역을하 다. 전역후외국대학

에서한국학을가르치는일을하고싶다는소망을가지고있었는데, 마침한

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에서 인도네시

아 국립대학교에서 한국어, 한

국문학을 가르칠 사람을 뽑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지원

하 는데, 감사하게도 선발이

되어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더

욱더감사한것은본래 2년계

약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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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더연장이되었다는사실이다. 역시도와주신모든분께감사를드린다.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많은 보람을 느낀

다. 인도네시아최고명문대학에서한국어와한국문학에대해강의를한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스럽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언어와 문학에 대해 배우고자

애쓰는 학생들의 열정어린 모습을 보면 더욱 감동하게 된다. 인도네시아 국

립대학교학생들은내수업이가장어렵다고한다. 내가생각해도어려울것

같다. 한국대학생도어려워하는한국문학을인도네시아학생들이어려워하

는것은당연한일일것이다. 그래서내강의는2학년부터수강할수있게되

어있다. 하지만그래도어렵다고한다. 1년간한국어를배우고나서한국문

학사 같은 과목을 배우게 되는데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도어떻게하면쉽고재미있게가르칠수있을까고심하고있다. 그러나학생

들에게는산을이해하려면산에올라가보아야한다고강조한다. 산을오르는

어려움은있지만산정상에서느끼는쾌감은정말느껴본사람만이알수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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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하면서, 공부하는어려움을이겨내야한다고학생들을설득하고있다.

한국문학사수업과관련된재미있는일화는적지않다. 나는보통새학기

첫수업시간에는학생들에게자신의생각을발표하게한다. 지난학기수업

에서느낀점과이번학기수업에서바라는내용에대해이야기하라고한다.

그러면대부분의학생들은매우수줍어하면서떠듬떠듬자신의의견을이야

기하고, 나는그들의의견을메모한다. 그때한여학생이한국문학사수업이

너무어려워서시험때에는울면서공부하 다고하 다. 순간코 끝이찡함

을느꼈다. 힘들지만열심히따라와준학생들이정말고마웠다. 울면서공부

했다는그학생은이번학기에코린도에서주는장학금을받아연세대학교에

서1년간공부할수있는특혜를누리게되었다. 이모든것이열심히공부한

결과이리라.

또하나감동을받은일이있다. 나는한국문학사수업을어려워하는학생

한국어과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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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위해 교재를 미리

나누어 주고 방학 동안

에읽어오게한다. 그러

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100페이지가량되는

을열심히읽어온다. 그

들은 모르는 단어에 형

광펜으로 줄을 그어 표

시하는데, 모르는단어가많아교재는온통형광펜으로칠해져있다. 노란색

혹은 붉은 색 등으로 물든 그들의 교재는 가끔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리고이들에게서‘어렵지만열심히공부했더니한국문학사에대해많은것

을알게되었고, 흥미를느끼게되었다’는식의이야기를들으면은근히자부

심을느끼게된다. 가르치는보람이란이런것이아닐까?

작년8월한국학과에서는첫졸업생을배출하 다. 두명의학생은서울대

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하 고, 나머지 졸업생들은

대부분 취업을 하 다. 덕분에 나는 첫 졸업생을 인도네시아 사회에 배출하

는 광을맛보게되었다. 참으로감사한일이다. 가끔졸업생들에게서안부

전화를받으면기분이좋다. 아마나의스승님께서도내가전화를드리면이

러한기분을느끼셨으리라. 나는오늘도학생들을가르치며감사한마음으로

기도한다. 나에게서배운학생들이이나라의훌륭한일꾼이되기를바라며.

l기획자 주l신 덕! 그는 1956년 서울 생으로 공군사관학교와 서울대 국문과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고려대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4년간 공군사관학교 한국어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9년 2월부터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 객원교수,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수의 논문 외에 저서로는 한국전쟁과 종군작가(국학자료원, 2002), 전쟁과 소설(역락, 2007)등이 있다.

한국어과 학생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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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涯(무애), 한정된 것으로무한함을 따르다. /Follow infinity with limitation. (有涯隨無涯. 莊子句)

끝이 없습니다. 무엇에도 끝이 없습니다. 세상도 무한하고 사람의 마음도 무한합니다. 학문도 마찬가지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자는“한정된 것으로 무한함을 따르라”했습니다. 무한을 한정에 가둘 수 없음이 아니겠습니까? ‘有涯’가아니라‘無涯’를휘호한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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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선 근

<이슬람문화>, 이에대한한국인들의반응은아직까지도좀어정쩡함그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서 드러난 이슬람 강경파들의 테러와 같은 사건을 통

해가지게된이미지가많이지배하기때문일것이다. 그러나한국의고대신

라시대부터이슬람문화가존재했다는사실을알면어떤반응을보일까? 그

때부터인도네시아에도한국에도맥락이같은동질의이슬람문화가존재했

음을 안다면 어떤 표정일까? 아마 대부분 매우 놀랄 것이다. 어쨌든 이것은

역사적사실임에틀림이없다.

책제목이“동아시아먼나라의이슬람평화”다. 최근출간한내저서다. 한

국과인도네시아의“양국교류문화의장르”라는머리 처럼한·인니의다

양한교류를위해나름대로풀어낸책이다. 최근몇년인도네시아에서붐을

이루고있는한류(Korean Wave)와양국정치와외교관계, 경제교류와관계,

그리고사회, 교육, 문화의전반적인분야에걸쳐서매우빠른성장세를보이

고있는데, 이에관련과거와현재를살피며미래를향해쓴책이다.

내게이책은오래전부터반드시치러야할것같은과제 다. 이과제는늘

내 뇌리 속에 자리 잡고 떠나지 않았던 것인데, 아마 그것은 다양한 분야의

중요한 통역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내게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이 과제의무게는통역의횟수가늘어날때마다더쌓인셈이다. 그것

은곧주인의식의커짐이기도했다. 통역을맡아상상하기어려운규모의큰

프로젝트에 대한 양측의 의견을 전달할 때도 나는 알게 모르게 주인의식이

싹텄고, 개인적인작은교류에도나의주인의식은발동을했다. 언제든지내

역할이 있다는 깨달음이었고,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자각이었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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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에서이책은내공부의중심이자과정의결산이라하겠다. 가깝게는부

모님과, 아내에대한보답이고내아이들에대한사랑의표현이다. 좀 더크

게는양국의모든교류를위한내임무이다. 내고국한국을위한것이고, 오

늘날까지내성인시절을다받아주며나를나로살수있도록바탕이되어준

인도네시아에대한보답이기도하다.

적도선상에위치한인구 2억 4천만여명을보유한인도네시아, 인구순

위세계4위다. 그중에약87%가이슬람교도들이니인도네시아를일컬어이

슬람의나라라하는것은매우당연한말이다. 곧인도네시아문화의중심이

이슬람임을의미하며, 이슬람을말하지않고는인도네시아를거론할수없음

을의미하기도한다.

나는필자로서이슬람문화를강변할생각은없다. 다만세계의추이가그

렇듯한국에서조차이슬람은성장추세에있음을환기하고자하는마음은있

다. 한국 국내의 한국인 이슬람은 이미 3, 4만 명을 넘기고 있으며, 다문화

가정이많아지고또외국인근로자들중에이슬람교도들이많아지면서이제

한국내의이슬람전체숫자가 10만을헤아리고있다. 그러므로이젠한국내

에서도이슬람문화는간과할수없다는점을환기하고자하는측면도없지

않다.

그래서책의소제목으로활용한 <한국이슬람의형태와발전현황>에 대

해서도절대비중으로다루었다. 이는양국의쌍방가교가되기위함이고양

국이좀더분명한자료와정보로서서로를대하기를바라는마음이작용한

것이다.

인도네시아가 각종 자원 부국임을 모르는 한국인을 없을 것이다. 동시에

이슬람문화로인해생성된인도네시아인들의특성을모르는한국인은드물

것이다. 물론 인도네시아인들도 한국과 한국인의 특성을 비교적 잘 알고 있

다. 한류열풍이증명을하듯드라마, 전자제품, 스포츠등많은분야에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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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한국인은이미많이알려져있다. 최근에는G -20 정상회와같은일련

의동향이그렇듯이양국은전략적동반자관계는더욱돈독해져가고있으며,

민간의교류또한더욱빈번해져가고있다. 한국에는약 3만여명의인도네

시아근로자가있고, 유학생과비즈니스맨, 그리고한류로인해관광객또한

늘어나고 있다. 특히 겨울이면 눈이 없는 나라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겨울철

체험과아우른스키관광을위해한국방문을즐긴다.

인도네시아에는우리한국교민4만여명이상주하고있고, 최근들어서는

굴지의한국기업들이인도네시아각분야에활발한투자를하고있다. 목재

산업과 노동집약적 산업인 신발, 봉제에서 전자가 이미 확고한 뿌리를 내린

가운데, 이제는 IT, 자동차, 철강신재생에너지의저탄소녹색성장사업, 언

어문화와 음식문화에 이르기까지 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투자

업체로인한고용창출은현재60만명을넘어서고있는상황이다.

이런 시대상황은 내 마음속에 쌓인 과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하 다.

대부분느끼고있을것이지만, 양국이서로가서로에게아주필요한교역대

상으로서서로를적극수용하지않으면안되게하고있다는것을더역설하

고싶었다. 양국에공존했던이슬람문화를통해서서로를좀더이해하고신

뢰할수있는계기가되기를바라는마음도크게작용을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문화와관련한비즈니스들이적지아니존재한다. “이슬람금융수쿠

크”, “이슬람할랄푸드”등캐내면진주가될만한것들이아직도많이숨겨

져있다. 현지문화로컬화에관심있는업체라면, 현지인들에게그들문화의

뿌리요중심이되는이슬람문화가우리한국에도이미오래전부터전해내

려오고 있다는 사실에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어쩌면 새로운 해법

이그안에있을수있기때문이다.

이 책은 UIN 대학의박사학위논문을일부수정한것으로서기회가되면

또 보완할 것이다. 아울러 또 다른 좋은 내용의 책들이 다양한 시각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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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되기를 바란다. 특히 한국을 바로 알리는 책들도 많이 출간되었으면 한

다. 한국과한국인은곧한류의실체로서그진수를책으로읽히게한다면한

류는더욱탄탄해질것이기때문이다.

끝으로이책이나오기까지많은지도를해주신UIN 대학의지도교수님들

과, 늘 격려해주신주위의많은분들께삼가감사의말 을올린다. 이에내

공부도그침이없을것임을다짐한다.

l기획자 주l 안선근! 그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말레이시아를 거쳐 인도네시아에 유학을 했다.인니어 교육 및 비즈니스 컨설터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국립이스람대학(UIN)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위 동아시아 먼 나라의 이슬람 평화 는 인니어와 문화 관련 책 5권출간에 이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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忙裡偸閒(망리투한), 바쁜가운데훔친한가함. / Stolenleisure while living in busyness.

忙裏要偸閒 須先向閒時討個쫸柄(망리요투한 수선향한시토개파병. 菜根譚 前篇 句) 바쁜 가운데 한가함을 즐기려면 마음의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시끄러운 중에도 고요함을 누리고자 한다면 마음의 주인을 세워야한다. 경우에 따라 변하고 일에 따라 흔들리기 쉬운 것이마음이기때문이다. - 그렇습니다, 시간 도둑이 되어야 합니다. 한가함을즐기려면 시간 도둑이 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없을 것입니다. 채근담 가운데 버젓한 이 구절이 새삼존재감을드러낸순간저는고개를갸웃거렸습니다. 한가함을 강조하면서 왜 하필 의미가 썩 좋지 않은‘훔치다’는 의미의‘투(偸)자’를 써서 성어했을까 하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음미할수록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일이 없어 흔히 백수라 불리는 사람의 한가함에서가 아니라 바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꼭필요한 여유, 즉 진정한 한가함이란 절대 그냥 얻어지는것이아닐것이기때문입니다.

(손인식. 제6회 자필묵연전 찬조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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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창 섭

우리집은세가지언어로대화를하는가정이다. 한국어, 어, 인도네시

아어다. 가족들이 언어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고 다문화 가정인 때문이다.

우리 식구를 소개하자면, 아내 HANNY LIM, 첫째 형빈(JIS 11학년), 둘째

윤지(JIS 9학년), 셋째윤선(JIKS 5학년)이다.

가장인나는한국어를사용하려애쓰고, 큰아이와둘째는한국말을이해하

면서도 한사코 어로 묻고 어로 대답을 한다. 한국국제학교를 다니는 윤

선이만 한국어와 어, 인도네시아어를 필요에 따라 구사한다. 그러므로 중

국계인도네시아인인아내의한국어선생은막내다. 교민방송K-TV에서방

하는연속극을시청할때면막내가제엄마에게통역을해준다.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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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모치고 자식 교육에 열

과 성을 바치지 않는 사람 없고,

다문화 가정이 자랑할 일도 아니

어서이 쓰기에참여할것을권

유 받고도 나는 내내 침묵을 했

다. 그러나다문화가정의사례를

반드시 책에 수록해야겠다고 성

화와 압력, 회유를 그치지 않은

손인식 선생에게 이끌려 하는 수

없이내가경험한몇가지를밝히

고자한다.

예전에많은한국어머니들께서애들의외국어교육에있어서조기교육을

강조한 적이 있었다. 한때의 유행으로 그쳤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어느 한

쪽에선아직도여전할지도모른다. 나또한위두아이들초등학교때까지는

외국어 교육을 더 중시하는 과오를 범했다. 셋째를 성모유치원에 입학 시키

고 나서야 언어교육에 있어서는, 반드시 모국어를 깨우치게 하는 것이 제일

먼저이고가장중요하다는것을실감했다.

그뒤부터나는한국인으로서유치원, 초등학교를외국계국제학교에보내

려는부모님을만나면이를적극적으로말리는사람이되었다. 나와같은다

문화 가정 아버지와 술자리라도 가질 때면 이 순서의 중요성을 설명하느라

평소2배이상의소주를마신다.

한국계 유치원을 다닌 막내는 그때의 습관으로 김치를 잘 먹는다. 그러나

첫째, 둘째는아직도김치를먹지않는다. 한국인의필수반찬인김치도아무

리 늦더라도 유치원 시절쯤에는 맛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가정환경과 학교

분위기때문이기도하지만, 첫째와둘째를향해계속노력중인것에비해우

리말습득성과가만족스럽지못한것은전적으로순서탓이라할수있는것

막내딸 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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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큰애 5학년, 둘째 3학년

여름 방학 때다. 나는 내켜

하지 않은 아이들로 하여금

한국내학교에대한체험을

가지게 했다. 여름 방학이

긴 국제학교 JIS의 특성을

이용하여 아이들과 귀국을

한 나는 외국에서 생활하는

교포 자녀 특별반을 운 하

는일산소재금계초등학교에약 1개월간아이들을편입시켰다. 물론등록시

키는 것부터가 쉽지는 않았다. 그 프로그램에 참여코자 외국에서 귀국하는

학생들이많았거니와, 문교정책으로인해실시하는특별반운 에일선선생

님들은적극적이지않다는것을느낄수있었다.

그프로그램을마치고는곧바로 1주일간기숙을하며학습체험을하는지

리산자락의한서당에입소를시켰다. 나도경험이없던터라아이들이견뎌

내기에는 참으로 어려울 것임을 다 짐작하지 못한 패착이라면 패착이었다.

특히화장실사용의어려움과원만하지못한샤워장시설은아이들을뜨악하

게만들었고, 무릎꿇고받아야하는훈장님수업은매우견디기에어려웠던

모양이다. 그 다음 여름 방학에 다시 보내고자 할 때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한 것으로 짐작은 충분히 하지만, 먼 훗날에는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거리가

될것으로확신한다.

어쨌든두아이들에게기회만되면실시해온한국체험은 2010년 여름방

학때서울체류를계기로놀라운변화가있었다. 그 이전항상내가동행한

것에서변화를주어2개월간거의둘이서자취생활을하며학원에다니는경

험을하더니이제는저희들끼리만한국에가서생활을하고싶어할정도가

첫째 형빈이와 친구들

Page 107: 도처교학내지2011

된것이다. 그 방학이끝날무렵아이들엄마가서울에갔는데, 둘째가코엑

스, 명동등여러곳을직접안내까지하는놀라운일이생겨났다. 물론둘째

가쇼핑을좋아하여여기저기지리를스스로빨리터득한덕이긴했다.

감사한일은나와아내의애들교육방법에있어서의견이거의일치한다

는점이다. 한국인으로서자질을갖추게하려는것은물론이고, 체험을많이

하는 것에도 동감이다. 물론 성적이야 우수하면 좋겠지만 중간 정도라도 만

족을하며더이상욕심내지않는다.

첫째는 사내아이라서 그런지 운동을 좋아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

도아주좋아한다. JIS 축구부, 럭비부에서인기짱임은내게까지감지가될

정도다. 5개국국제학교대회가 JIS에서열릴때면 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국제학교등에서각 2명씩의선수가우리집에서기숙을하기도한다.

물론 그때는 항상 그들을 VIP 대접해줄 수 있도록 큰 애가 계획과 진행을

맡는다.

학교행사나 학부모 면담도 우리부부는 철저히 담당제다. 첫째, 둘째는 아

내가하고, 막내는내담당이다. 그러다보니나는막내유치원에서부터지금

까지줄곧뒷바라지를하게되는데, 이번JIKS 5학년학부모총회때도나는

청일점으로어머니들가운데있었다. 내사정을아는몇몇어머니들께서“윤

선이 아버지 참 대단

하다”고 격려의 말

을하시는데, 내진정

한바람은위의두아

이가 한국어로 묻고

대답할 때이며, 김치

를먹고싶어할때가

빨리오는것이다. 가

둘째 윤지, 한국의 고궁에서

Page 108: 도처교학내지2011

108

족끼리의한국어소통이문제가아니라한국어가진정자유로울때한국인으

로서참답게자부심을가질것이기때문이다.

끝으로낮에는사업장에서많은일을처리하느라고생하면서세아이들을

모두 건강히 키워오고 있는 아내에게 감사를 전한다. 아내는 다문화 가정에

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많은 부분 양보를 하며, 아이들을 다스리고

내가신경쓰지않도록서둘러배려를하곤한다. 그에힘입어위의두아이

는더욱당당하게, 자랄것이며막내는변함없이밝고건강하게집안의웃음

지기역할을할것이다.

l기획자 주l안창섭! 20여 년 전 봉제관련회사 주재원으로 인도네시아에 왔으며, 현재 봉제관련 회사를운 중이다. 보고르 한인회와 봉제협회의 임원으로서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이며, 자필묵연 회원으로 서예를 즐기고 있다. 특히 그의 가족애와 자녀 사랑은 주위에 정평이 나있을 정도인데, 그의 특별한 교육관과 실천을 하나의 사례로 기록하고자 하는 뜻을 끝내 사양하지 않은것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그의 가정에 웃음꽃이 항상 만발하기를 빈다.

Page 109: 도처교학내지2011

겘겚何獲(불

색하획. 春

秋左傳

句), 찾지

않고

무엇을

얻겠는가. / W

hat can something

be foun

d when it is not lo

oked for.

사람의

생, 뭔

가를

찾는

것아닐까요? 그

뭔가는

과연

무엇일까요. 선

문답

같은

답, 누

구나

다아는

답, 바

로‘자신을

찾는

일’이

겠지요. 자

신이란

자신

안에

있는

자신의

것이니

찾고

자시고

할것이

없을

성싶습니다. 그

런데

그것이

찾아도

쉽게

찾아지지

않거니와

찾았다

싶으면

어느새

잊거나

잃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루어진다.”가

불변의

진리라는

것입니다. 찾

고자

하고

얻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뜻을

세우고

실천에

돌입할

일입니다.

Page 110: 도처교학내지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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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수 려

설레고두려운마음으로인도네시아에발을내딛던그날밤, 내겐모든것

이 새로웠었다. 국제공항답지 않게 그다지 밝지 않았던 청사, 이미그레이션

안쪽까지날마중나와있는남편, 서로짐을실어주겠다는포터들, 맘 착하

게생긴인도네시아기사아저씨까지.

자카르타의공기를처음느끼던그늦은저녁의풍경은 12년이지난지금

에도하나하나생생히그려진다. 싱그러웠던이십대그날을시작으로나는

이곳에서한가정을이루어아들셋을낳고기르며, 어느덧나이사십을맞

았다.

어느날내게 쓰기의주제로주어진교학(敎學)! 나도또다른사람도다

겪는가르침과배움을놓고나는참많은생각을했다. 이곳인도네시아에서

십이년을보내고이제불혹의나이에접어든나는어떤교학을쌓았을까. 내

배움의 시기와는 다르게 이젠 내가 아이들의 배움에 적극적이어야 하는 상

황, 그러므로나도끊임없이배워야하는상황으로서의교학, 그런데정말한

것이없는것같기도하고특별히쓴다는것도썩내키지않아나는쓰지않

겠다고 결론을 내렸었다. 하지만 한 번 주어진 주제는 내 뇌리를 맴돌며 내

마음을무겁게하기도했는데, 어느순간머리를비우고차근차근생각을하

면서그간생활속에존재했던배우고가르치는일들이하나씩다가왔다. 주

부로서, 부모로서, 봉사자로서, 상사로서배움과가르침은끊이지않고있어

왔구나. 또한 거의 모든 교민들도 주부 혹은 부모, 봉사자, 상사의 자격

(status) 가운데하나는속해있으니, 결국내가느끼고행해왔던인도네시아

에서의교학은교민들이야기일수있겠구나하는생각으로미치자내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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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내가벼워진것이다.

뜨리마까시 혹은 슬라맛 빠기로 첫 걸음을 떼는 인니어 배우기, 정규코스

를 밟든, 어깨너머로 배우든, 인니어는 인도네시아에 사는 모든 교민들에게

던져진배움의첫번째과제이다. 경음이많고간단해보이는인니어의문법

때문인지, 나는생활에불편함을느끼지못할정도의인니어구사정도로이

제껏 어느 정도 타협하며 만족해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인니어는 항상 배움

의 과제로 남아있다. 인니어 뉴스방송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이 많

이후회스럽다며유년시절을자카르타에서보낸아이들고모가몇번이고하

신말 이기억난다. 또 일주일에두번, 인니어강좌를들으며열공하는친

구도떠오른다. 십여년전멈춘나의인니어배우기는지금다시경종을울

리며생활에안주해있는나를깨닫게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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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살면서적지않은가사도우미들과맺게되는인연속에도가

르침과 배움이 있다. 주부로서 한국 음식을 가르치면서 또 청소하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그들에게 인도네시아의 말과 문화를 배운다. 때로는 속상한 마

음, 하지만여전히고마운마음의상반된감정이공존하듯, 나를비롯한주부

들은 오늘도 그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그들에게 무언가를 배운다. 그런

의미에서이곳의주부들은하루하루생활속에서배움과가르침의나눔을하

고있다는생각이든다.

삼형제를낳아키우면서도역시끊임없는교학(敎學)은이어지고있다. 아

마삶에있어서 가장길게, 그리고가장크게이루어지는교학이아닐까싶

다. 시간활용이중요해진 12살큰아이, 납득할수없다는표정의9살둘째아

이, 울며어리광피우는5살막내에게오늘도난엄마로서, 인생선배로서무

언가를 가르치고, 우리 아이들은 불완전한 어른인 엄마를 일깨워준다. 아이

들을 키우면서 엄마의 그릇된 과욕이 얼마나 위험한지 배웠다. 또한 엄마의

한마디가얼마나중요한지도배웠다. 머리보다는가슴으로아이들을키워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렇게 소중한 세 아이들은 돈 내고도 배울 수 없는

값진것들을, 내가그들에게가르쳐주는것과는비교가안되는진리를, 나

에게무료로그것도매일가르쳐준다.

미력한나의도움이귀중히쓰일수있으리란믿음으로시작한약3년간의

성요셉성당성가대지휘봉사시간은정말보람있고귀중한시간이었으며은

혜로운시간이었다. 연습시간, 얼핏보기에는내가단원들을가르치는것같

이보인다. “둘째단셋째마디, 반음아닌데요.”, “박자왜이러죠?”, “호흡만

잘조절하셔도훨씬좋아질텐데요.”, “베이스다시가보겠습니다.”, “가사의

뜻을 생각하면서 하셔야죠.”음악 비전공자인 내가, 그것도 단원들 중 가장

어린사람이볼펜으로탁자를탁탁두드려가며수없는지적들을쏟아내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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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밤열한시가되도록연습을끝내지않아도, “담배피지마세요.”라며사

생활을간섭해도그들은기분상해하는법이없었다. 오히려허허허하하하

웃으시며열심히신앙적소명을다하는성요셉성당의앗숨단원들, 누가하

라시키지도않았는데조용히많은식구들의간식을챙기는아름다운모습에

서나는순명을배웠다. 열정을배웠다. 갈망하는마음도배웠다. 지금은잠

시 떠나있지만 앗숨 단원들의 뜨거운 마음을 오늘 교학이라는 주제를 통해

진하게느낀다.

지난해여름부터준비하기시작한‘COFFEE in J’와‘Snack Culture’가

지난 달 오픈했다. 직원들을 채용하고 교육하면서‘교학(敎學), 배움과 가르

침’의공존을새삼느낀다. 나는업무매뉴얼을가르치지만, 나는그들에게서

인도네시아인이가진저력을배운다. 핸드폰으로소셜네트워크에접속하는

직원들, 한국어읽기쓰기가수준급인직원들, 경직된나보다웃음이몸에배

어있는직원들을보며나는, 이제는나를비롯한한국교민들이이들을바라

보는 시각을 재정비할 때임을 실감한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성장할 동반자

이자 조력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꾸준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

이지만, 모호텔의모토가‘신사숙녀에게봉사하는신사숙녀’인것처럼, 수준

있는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COFFEE in J 와 Snack Culture 의 수준 있는

종업원의모습을기대하며상상한다.

열거해보니 짧은 하루 일과 속에서도 항상 존재했던 교학(敎學)을 무심하

게지나쳤다는생각이든다. 그리고제대로된‘가르침’에는반드시‘배움’이

동행된다는것도 을쓰며깨달았다. 진정한교학은 Teaching(가르치기)가

Coaching(끌어내기)으로바뀔때이루어진다고확신한다. 다시말해서일방

적인 가르치기가 아닌 스스로 깨닫게 이끌어내는 가르침일 때, 제대로 이루

어진교학(敎學)이라고할수있을것이다. 몇개월전방 됐던남자의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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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의박칼린지휘자는오합지졸의합창단을티칭이아닌코칭으로이

끌어그들의가슴을뛰게하며뜨거운눈물을쏟게만들었다. 깨닫게만드는

가르침. 그것이진정한교학(敎學)이리라.

l기획자 주l양수려! 세 아들을 기르면서도 역 넓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주부다. EBS방송국 아나운서경력을 지닌 그녀의 능력은 교민행사, 기관의 문화행사 등을 한껏 격을 높인다. 성요셉성당앗숨 성가대를 지휘할 때는 출중한 지휘능력으로 단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얼마 전‘COFFEE in J’와‘Snack Culture’를 창업하고 운 일선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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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氣水智(산

기수지), 산의

기세와

물의

지혜로

/ With spirit of mou

ntain an

d wisdom of water.

아들아! 산의

기세를

얻어라. 딸아! 물의

지혜로

살아라. 큰

산은

깊은

물을

거느리고, 깊은

물은

큰산을

품어

더욱

깊어지느니

라. 산

의기세는

물을

따라

지혜롭고

맑아지며, 물

의지혜는

산의

기세를

기억하여

넓고

깊어지느니라. 아

들아! 산

과가르침을

기억해라. 딸

아! 물

의가르침을

잊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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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승 식

“아빠, 남자는여자를알아야인생을알수있대요.”지금은대학생인아들

녀석이초등학교 6학년때불쑥던진말이다. 저녁식사후네식구가후식을

먹는 자리에서 나온 아들의 말에 우리 부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서로의얼굴만바라보았다. 그즈음유난히질문이많고이상한행동을보여

지켜보던참이었다. 연이어쏟아내는아들의말투에서사춘기가왔다는것을

직감할수있었다.

그날밤나는오랫동안거실에머물면서생각에잠겼다. “아들에게찾아온

이 불청객을 어떻게 잘 달래서 보낼 것인가?.”또“아들이 정신적으로 성장

할수있도록반전의계기로승화시킬수는없을까?”에대해고심을거듭했

다. 한국이라면방과후친구들과어울리거나또다른방법으로풀수있겠지

만인도네시아는그런상황이아니었다.

며칠 동안의 고민 끝에 결국 운동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이웃집에서아동용골프채를빌려연습장으로데리고갔다. 스윙을하는모

습을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언제쯤 볼을 맞출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즈음아들은 국축구의열렬한팬이었다. 선수의등번호만보아도연

봉, 포지션등모든것을꿸정도로좋아했다. 그런축구를멀리하기에어려

움이있었지만, 아들과의대화는자연스럽게 국축구에서GOLF로바뀌기

시작했다. 레슨 프로를 선정하는 데에도 신중을 기했다. 레슨 시 절대로 야

단치지 않도록 특별히 부탁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주니어 대회를

빠짐없이 참석하도록 했다. 인도네시아의 주니어대회 진행방식이 참석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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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이상수상을하도

록하여어린학생들에

게성취감을주는장점

을활용하기위한것이

었다.

대회에 나가 트로피

를 받아 오면 칭찬을

많이 해주었고 작지만

선물도 주었다. 함께

필드에나갔을때그른행동에는충고를하 으나, 나쁜스코어나실수에대

해서는일체거론하지않았다. 좋은샷이나오면칭찬을아끼지않았고, 실수

샷에는 좋은 샷이 나올 수 있다고 격려를 해줬다. 아들은 시작한 지 11개월

만에싱 스코어를기록하는놀라움을보여주더니, 그이후로는80대를유

지하 고지금은핸디캡6을안정적으로유지한다.

그보다 더 좋은 성과는 집중력이었다. 공부하다가 졸리면 거실로 나와 퍼

팅연습으로잠을쫓고다시밤샘공부에돌입하는지구력은골프에서얻어진

산물이라고생각한다. 골프의핸디캡이낮아질수록공부에대한집중력은더

강해져갔다. 10학년때 JIS(Jakarta International school)로 전학을하고

곧바로학교대표골프선수로활동하면서대인관계폭이넓어졌고, 주장을맡

아 6개국국제학생대회를직접주관하는등뛰어난리더십을발휘하기도했

으니골프의덕이크다고아니할수없다.

한달에두번은반드시아들과함께라운딩을하기로정했다. 물론아내도

함께 다. 라운딩이거듭될수록아들과의대화는점점페어웨이처럼확트

고, 푸른잔디위에세례를베푸는햇살처럼점점밝아져갔다. 5시간여동안

나누는대화속에는아들의학교생활, 선생님에관한얘기, 친구얘기가주류

를이루었다. 무엇보다도아들의꿈을공유할수있어서좋았다. 아들이궁금

말레이시아 우승사진 (우측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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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하는 내용은 메모해

두었다가 인터넷으로

조사하여 얘기해 주기

도했다.

나는 그때 아들의 성

품과 생각, 꿈을 부모가

소상히 알고 있다는 것

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

을 깨달았다. 그것은 서

로에 대한 신뢰와 연결

되기 때문이다. 아들이

목표로 하는 대학,

VISION을 향해 아빠,

엄마, 아들이 한 곳을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

는한방향정렬이골프로인해자연스럽게이루어진셈이다.

내가아들을통해배운점도적지않다. 아들은어린나이에체득하기쉽지

않은 매니지먼트로 나를 놀라게 했다. 탁 트인 페어웨이를 보면 드라이버를

힘차게날려보고싶었을것인데, 그유혹을뿌리치고아이언을빼드는아들

의모습에서나는몇번이고내자신을돌아보았다. 아들은골프의기술을비

교적단시간에터득하면서도내염려와는달리좋은습관을몸에익히는것

도놓치지않았다. 상대방을배려하는필드에서의행동, 골프룰을철저하게

지키려는자세등사회규범을지키는데기반이될수있는것들을순조롭게

익혀나에게기쁨을안겨주었다. 아들은올바른사회인이되기위한룰을골

프장에서먼저배운셈이다.

아들은 작년에 대학생이 되었다.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들을 향한

上. 방콩대회 JIS 대표선수(왼쪽에서 세번째)下. 방콕대회 우승기념 사진(가운데 검은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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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지도가기대했던것보다훨씬많은소득을내게안겨주었다는것을실감

했다. 물론그것은골프를쉽게접할수있는인도네시아환경이가능하게한

점도 없지 않다. 그래서 일까 나는 언젠가부터 지인들에게 아이들의 사춘기

극복기로서 골프지도를 추천하기도 한다. 물론 그때는 다음의 당부 몇 가지

를빠뜨리지않는다.

아이들에게골프를가르치면서실패를줄이는방법이다.

첫째, 절대로 야단을 쳐서는 안 된다. 대부분 여기서 실패를 하기 때문

이다.

둘째, 아빠 친구들과 함께 라운딩을 삼가야 한다. 자칫 나쁜 행동을 보게

되고라운딩이아들중심이아닌어른들중심이되기때문이다. 반드시아들

중심의라운딩이되어야한다.

셋째, 아들에게결정권을줘야한다. 라운딩후식사메뉴, 골프용품구매

시선택권등. 그리고아들이자랑하기전에는스코어를거론하지않는다. 물

론자랑할경우는칭찬을아끼지않는다.

누구에게나 사춘기는 온다. 그 사춘기는 부모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지

나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사춘기로 인해

아이들의미래가바뀌는경우또한어찌없겠는가? 그예민한시기를정신적

으로성장할수있도록부모가도와준다면사춘기는더나은인생설계를할

수있는기회가될것이라는것이내생각이다.

어느기업인은그의어록에“모든것이마음먹은대로이루어졌는데, 자식

과골프만큼은마음대로되지않았다.”라고했다. 자식교육과골프잘치기

가참어렵다는의미일것이다. 그런데나는두가지를다얻은셈이니아들

에게도고맙고, 골프도감사하다.

현재미국버클리대학교(U C BERKELEY) 경제학과에재학중인아들은

아직나의충고를필요로한다. 그러나이제곧나의충고를필요로하지않

을 것이며, 나를 추월해 앞으로 나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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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때는한쪽편에비켜서서추월해가는아들을향해감격의힘찬박수

를보낼것이다. 그날이빨리오기를기대한다.

l기획자 주l우빈 양승식! 그는 1998년 초 상사주재원으로 자카르타에 진출하여 현재는 PT. PPFINDONESIA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일상과 비즈니스 모든 면에서 그의 명료함은 주위의아낌없는 찬사를 얻는다. USGTF 티칭프로 정회원이며 자필묵연 정회원으로 시간이 흐른 뒤부부 필묵전 개최를 목표로 열심히 수련하고 있다.

아들 졸업기념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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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氣澄心(산기징심), 마음을 맑게 하는 산 기운 / A mountain spirit that clearsthe mind.

어느 시인의 질문입니다. “어디 없을까요? 먹지 않아도 배부를 것 같은 말. 치료하지않아도아픈게다나을것같은말. 답답하고꽉막힌마음이확뚫려시원해지고편안해질 것 같은 말. 이런 말들로 사람을 만나고, 시를 쓰고, 노래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좋을까요?”아쉽게도사람의말중에는그런 험한말이없는것같습니다. 그런데산에는많습니다. 물에도많습니다. 말을 줄이고산의정기를보고, 조용히앉아물의맑음을들여다봐야할이유가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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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세 라

“우리애들의상준비다됐어요?”

“분장다시한번확인하고소품도확인해주세요.”

“다음팀준비!”

자카르타한인어린이합창단(JKCC)의 공연이있는날엔무대에서는아이

들보다언제나무대뒤에있는엄마들이더분주하다. 의상챙겨입히랴, 분

장하랴, 우리 엄마들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되었다가 코디도 되었다가 말

그대로종합스타일리스트가되어야한다. 내 딸네아들구별할여유도, 그

럴필요도없이모두가스태프의마음으로최선을다해서우리아이들의공

연을돕고있는것이다.

어린이 합창단 공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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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조유리가합창단원생활을한지가 3년이다. 이기간은곧내가합창단

스타일리스트 생활을 한 기간이기도 하다. 처음 유리가 합창단에 입단할 때

의내기대는별로큰것이아니었다. 외국에살면서여가활용으로서합창단

을 통해 우리 노래, 우리 춤, 우리 문화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했다. 그러나연습이더해지고, 공연이이어지면서내생각이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공연의 대부분이 국가적인 행사나 범 교민차원, 인도네시

아와의문화교류행사의일환으로이루어짐으로써, 때로는국가를대표하여

한국문화를알리고, 때로는교민사회에감성을가꾸는역할이었기때문이다.

그러는가운데딸유리도부쩍자라는것이느껴졌다. 내가처음에기대했던

것보다훨씬많은것들이얻어지고있었다. 이런느낌은다른엄마들도마찬

가지 던가 보다. 이구동성으로 서로 합창단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어주길

정말잘했다는말들을했다.

유리가합창단원이된후가장기억에남는활동은뭐니뭐니해도2011년

에 한국방문 공연일 것이다. 그 공연은 한국 어린이들이 인도네시아 문화를

한국에 선보이는 것이었다. 산업인력으로 한국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인들

을 위한 것이었으며, 여력으로 한국에 인도네시아 문화를 알리는 것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문화를 널리 펼치던 합창단이 한국에 가서는 인도네

시아를대표하게된것이었다. 합창단의한국공연은그야말로고정관념을깨

는획기적인발상이었다. 처음에그계획을들었을때기대도컸지만우려도

있었다. 특히합창단원들이인도네시아발리춤을익히고, 샤먼춤에인니전

통 악기 Angklung까지 배우면서 힘든 시간을 보낼 때는 안쓰러운 마음이

컸다. 과연끝까지잘해낼수있을지걱정도많이되었다. 그런데딸유리는

오히려그것을즐겼다. 합창단의모든아이들도퍽즐거워하는모습이었다.

준비를 마친 다음 한국에서의 공연은 모두에게 놀라움이었다. ‘국경 없는

마을’로지정된안산시원곡동에서인도네시아노동자들에게인도네시아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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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여주고 음악을 들려준 것은 큰 선물이었다. 그들에게 타국에서의 고된

노동을잠시라도잊게하고그들의고국과그리운고향, 가족을떠올리게하

는위안의시간이었다. 여의도에소재한주한국인도네시아대사의관저에서

있었던공연은인도네시아외교관들에게멋진선물이되었다. 특히대사님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는데,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 어린이들이

바틱옷을 입고 인도네시아 전통 동요와 악기를 선보이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거듭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공연 당사자인 합창단원들은 물론 지

도하시는 김 희 선생님을 비롯해 엄마들 또한 뿌듯한 마음이 넘쳤다. 부산

의한초등학교에서의공연은또래의한국학생들에게인도네시아문화를알

리는 일이었는데, 서로에게 좋은 경험이었고 나눔이었다. 방송 출연의 특별

함도 있었다. 단순한 견학이 아닌 방송의 직접 출연은 합창단으로서 자부심

을가지는참좋은기회 다. TV로만볼수있었던스타들과직접만남이기

사랑하는 세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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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했는데, 아이들과 엄마들에게도 두고두고 기억될 좋은 추억거리가 아닐

수없다.

한국에서의 그 모든 공연은 인내심과의 싸움이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같이 일어나 다음 공연장소로 이동을 해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비교적편하게살던합창단원들은우려했던것과는달리모

두가잘견뎌주었다. 틈틈이연습을게을리하지않았고, 같은춤을몇번이

나추고같은음악을몇번이나연주하면서도싫은기색하나보이지않았다.

참으로대견하기그지없었다.

한편으로는아쉬움도없지않았다. 인도네시아를알리느라정작고국인한

국에서한국을좀더많이느끼고배우지못한것이었다. 그부분에서는엄마

들도 마찬가지 다. 오랜만에 간 고국에서 아이들 공연만 뒷바라지 하다가

돌아온 것 같아 본인들도 아이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러나 합창단

아이들은얻은것이많았다. 양국의문화외교역할을나름충분히소화한보

람된 시간이었다. 특히 이런 형식의 문화교류 형태는 처음이니만큼 그 처음

이지니는의미는매우컸다. 앞으로는좀더좋은장소에서, 좀더많은사람

들을대상으로좋은공연이이루어질것으로믿는다.

요즘은 첫째를 보

며 합창단원의 꿈을

키운 둘째 딸이 오

디션에 합격한 후

흥분을 감추지 못하

고 있다. 올해는 또

어떤 행사에서 한국

과 인도네시아의 문야구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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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알리게될까? 나도같이큰기대로합창단의공연을기다린다.

인도네시아에살고있는한인어린이들이꼭들어가고싶어하는자카르타

한인 어린이 합창단. 오늘도 한국을 알리기 위해 이곳저곳을 누비는 자카르

타 한인 어린이 합창단. 한국에 가서는 인도네시아를 알리기에 바빴던 자카

르타한인어린이합창단. 이아이들의활동에큰박수를보내며성장하여어

른이된후에도변함없이문화를사랑하는사람이되기를바라는마음이다.

l기획자 주l유세라! 부산대 인문대학을 졸업했다. 3년간의 독일유학 후 한국의 무역회사에 입사한 것이인도네시아와 인연이며, 남편과의 인연으로도 이어져 슬하에 세 아이를 두었다. 한인 밴드 <소리와 장단>에서 보컬로서 활동하기도 했고, 한인 야구단 <코리아나 야구단> 원년멤버로 참가하여 지금도 매주 일요일이면 스나얀 운동장에서 구슬땀을 흘린다. 야구단 유일의 홍일점선수이며, 기록원,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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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지고 물 안고 / A mountain and hug water.

감수성이 예민하기로는 만물의 장 사람이 제일입니다. 느낌이 오면 말을 하고 간절해지면 을 니다. 저는 책을 읽다가 어느 구절을 만나 간절해지면 그것을 서예작품으로또는문인화작품으로빚어냅니다. 예전에는아무렇지도않게스쳤던구절이 오늘 간절해질 수 있듯이, 어떤 것이 내일 내게 간절해질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산지고물안고>, 내게참간절했던구절입니다. 산지고물안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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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규 백

난이제갓사회에나온초년병이다. 군대전역과결혼, 일의시작이모두6

개월이내에일어난일이다. 이풋내기가새로운출발점에서서그간을돌아

볼수있는기회를얻게되었다. 참다운인생경험이나사회생활은이제시작

인 내가 이질과 동화는 꽤 여러 번 겪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본의와는 달리

앞으로도어쩔수없이또겪게될갈등과타협또는조화에대비하는시간을

갖게된것이다.

내첫갈등의기억은여섯살, 인도네시아에서살게된때부터다. 1년만에

만난아버지와집안에수 장이있어좋다는느낌도잠시나는갈등의세계

로 돌입했다. 아버지의 결정으로 인도네시아 유치원에 입학을 했던 것이다.

현지 아이들 사이에서 백(白)일점이었던 나는 그들에게는 또래이면서 말이

안통하는이상한아이 다. 혼자서가만히있는시간이대부분이었고, 화장

실가겠다는말을못해바지에대소변을보고는울기도했다. 다기억나지않

지만그외에도어린나이에혼자감당해내기엔어려운일들이한두가지가

아니었을것이다. 그러나이질감은곧동화를수반했다. 그런중에도난몇몇

친구들을사귀었던것이다. 집으로데려와장난감을가지고놀거나피아노를

함께두드리는동안나는그들과점점언어가통하면서동화가되어갔다. 인

도네시아국기인Merah Putih를 그려서는집에돌아와유치원에서태극기

(?)를 그렸다고자랑을하곤했고, 현수막에적혀있는‘Coming Here’를보

고는인도네시아식발음으로‘쪼밍헤레’라고읽곤했었다.

유치원을마친나는자카르타의한국국제학교 JIKS에 입학을했다. 한국

선생님, 한국교과서, 한국교육이있었고, 한국인친구들과한국음악을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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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국만화이야기, 한국드라마나 화에대한이야기를맘껏할수있었

다. 다만TV 프로그램을한국보다2-3주늦게녹화비디오를통해서봐야만

했고, 가끔 한국에 다녀오는 친구 편에 새로운 만화책이라도 들어오면 마르

고닳도록돌려가면서봐야만하는외국이라는현실만받아들이면되었다.

내가이질감에의한갈등과다시조우한것은중학교 2학년에접어들면서

다. 한국어와한 , 그리고중학교 1학년까지한국식을경험했으면됐다는

부모님의 판단으로 나는 호주계 국제학교로 전학을 했다. 다수의 한국 학생

들이있는미국계국제학교를피해한국학생이한명밖에없던호주계학교

를 선택한 데에는, 집과 가깝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한국어를 최소한으로 사

용하고 어만 쓰겠다는 부모님과 내 의지가 첫째 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성적과연결이되었고, 유치원다닐때와는달리갈등의정도가심했다. 아침

마다 친구들끼리 같은 버스를 타고 한국학교로 가는 모습은 정말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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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너무나행복해보 다.

그러나거기에서도시간이문제 을뿐동화는찾아왔다. 1년정도의적응

기를거치자불만도사라지고아침에한국학교로향하는친구들에대한부러

운시선도걷혔다. 한국학교에서는보지못했던것들도보이기시작했다. 우

선개성주의 다. 한국학생사이에서대유행이던눈밑까지내려오는가르마

앞머리와통큰힙합바지, 무릎까지내려오는벨트등을앞다투어따라했었

는데새로다니는학교에서는그렇지가않았다. 스타일이가지각색이었으며

다른 사람의 차림새에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단지 특이한 헤어스타일이나

옷이면한두번봐주는정도뿐이었다. 전학을하고 4, 5개월 정도한국학생

스타일을 고집하던 나는 이내 유행에 무관심한 학생이 되어갔다. 스타일의

차이가아니라문화의차이를이해하고, 다국적학생들과어울리면서그들의

문화와동화된결과 다.

호주계학교와의동화, 이것은곧한국학교나한국친구들과의멀어짐을의

미했다. 한국학교친구들과당구장과 PC방을다니는것보다새로운학교의

친구들과하루종일농구하고축구하고수 을하는것에더재미가붙었다.

그것은고등학교를졸업할때까지이어졌다.

그러나 나는 진학의 기로에서 미국이나 호주가 아닌 한국을 선택했다. 부

모님의 권유도 있었지만, 한국대학으로의 진학이 내 장점들을 잘 살려낼 수

있는가장좋은방법이라결론을내렸다. 물론 대학 4년과군대 2년 4개월

동안내장점이활발히발휘될기회가많지는않았다. 하지만모든대학생들

이고민하는 어나제2외국어를걱정할필요가없었고, 그시간에난다른

일이나공부를할수가있었다.

그러나거기에도이질감은존재했다. 대학입학초기 다. 중, 고의동문이

없는나는외톨이 다. 한국국제학교출신들과도차이가났다. 그뿐만이아

니었다. 사회를바라보고받아들이는자세에서도틈이컸다. 그동안나는아

주 자연스럽게 한국이라는 내 나라를 멀리하고 있었다. 입시문제, 취업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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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납치, 살인사건까지 한국에 관한 뉴스들은 외국계 친구들 사이에서의

내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일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한국으로 대학생으로

한국 사람들 속에 던져지고 나니 모든 사회현상이 무관심의 대상이 아니었

다. 스무살이되어서야애국심이라는것이생겼다. 내가한국인이라는현실

이내면으로부터다시새겨졌다. 그것은곧나로하여금군대를장교로복무

하게했다.

대학교 4학년, 이때는주변의갈등이내관심을끌었다. 친구들과의대화

가 1, 2학년때의그것과는확연히달라진것이다. 온통취업과장래가관심

사 다. 난졸업과동시에임관을하여군대를가니취업이란당면과제가다

른친구들보다 2년정도유예가되었지만, 군대를다녀온복학생들이나군

복무를 대학원 공부(학위)로 대체하려는 학생들은 달랐다. 마음가짐이나 행

동에서 사뭇 진지하게 갈등을 노출했다. 당장은 필요하지도 않는 자격증을

획득하려학원을다녔고같은내용의이력서를수십개준비했다. 나에게또

다른충격을안겨준것은이미직장을가진선배들이었다. 그들이가진다양

한능력을마음껏펼치기보다는그저주어진범위에서점점굳어져간다는

것이었다.

그것은전역시까지도나를갈등하게했다. 그러나나는전역과동시에일

단의갈등을갈무리했다. 결국한국을다시떠나기로결정을내렸다. 한국에

서의 경험도 심각하게 고려를 했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아버지의 일 중에 한

가지를맡기로하고, 사랑하는대상이있는상태인지라결혼도서둘 다. 나

의 반려자도 내 결정에 기꺼이 동의했다. 그 후 나는 그동안 희망했던 미국

동부와 서부 그리고 유럽 전역을 두 달여에 걸쳐 여행을 했다. 그 여행에서

나는참많은것을정리하고계획했다. 내결정에대해장점만생각하기로했

다. 언젠가는다시한국으로돌아가고싶은마음도버리지않기로했다.

나는 요즘 나의 비즈니스 터전 중부자와의 즈빠라에서 다가올 모든 것에

대한 워밍업에 바쁘다. 함께 하는 아내에게 얘기해주었다. 내가 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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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생활하면서갈등이생길때면늘‘한국이아니라서…’라고생각했고, 똑

같은경우에한국에서는‘인도네시아가아니라서…’라고생각했었다는것을.

모든갈등과동화의키는마음안에있다는것에아내도동의했다. 나는지금

이키를아내와함께단단히움켜쥐고있다. 이제부터찾아올수많은갈등들

과의연히맞서나가기위해.

l기획자 주l이규백! 여섯 살 때 인도네시아에 와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연세대에 진학을 했다. 졸업과 동시 ROTC장교로 입대하여 백골부대에서 중위로 전역했다. 27살의 그는 타국에서의 신혼생활을 당당히 받아들인 예쁜 아내와 함께 중부자와 Jepara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완전무장을 하고 사회를 향해 나선 그에게 갈등 따위는 감히 맞서지 못할 것 같다. 전진과 아름다움이그의 것이 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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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산처럼높고두텁게 / High and bulky like a mountain.

필묵예술! 찰나를 지향하는 예술입니다. 덧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일점일획들이찰나에 이루어집니다. 예컨대 단 2분여에 한 폭의 묵화가 완성되기도 하고, 단 5분여에 한 점의 작품이 일필휘지로 생산되기도 합니다. 바로 이 찰나의 결정체는 수없이되풀이하는연습시간이쌓여서드러납니다. 수많은퇴필과파지를남기고서야한점이얻어지는것입니다. 긴 구상단계는찰나를위한준비인데그것은곧내 한마음 다스리기이기도 합니다. 이 긴 시간과의 싸움은 바로 그것이 예술로서 마침내 진솔한감상의대상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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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 숙

어느날이른아침, 여느때와마찬가지로남편과아침식사를할때 습니

다. “여보, 당신에게부탁이있는데…”남편이말끝을흐렸습니다. “뭐예요?”

주춤거리던남편은“어∼당신이아이들교육에관한 을한편써봤으면해

서. 콩트도좋고, 에피소드도좋고…”저는남편의말이끝나기도전에“아유,

전못써요. 해도해도부족한게아이들교육이고, 또얼마나훌륭한부모님

들이많은데…”

단숨에 거절하고 말았지만 하루 종일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아이들에

대해서다시생각하게된하루, 저자신을다시돌아보는하루 던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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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따지고보면자식을교육하는데있어자신만의노하우없는엄마들이

어디 있을까요. 자식을 사랑하는 크기 이상으로 나름대로 주관과 방식이 있

고욕심도있을것이니그에관해말하라면어찌할말이없겠어요. 다만밖

으로늘어놓기부끄러울따름이겠지요. 하여튼저는저를반성하는의미에서

라도 을 쓰기로 작정했습니다. 각자의 이야기를 모아 하나의 사례집을 만

든다는것도좋은의미로생각이되어부족함이많지만동참하겠다는결정을

한것입니다.

제가남편과함께자카르타에서생활한지도벌써 19년차입니다. 언제그

많은시간들을뒤로했는지돌아보면빠르기만합니다. 그러나그사이큰아

이인딸박민지는대학3학년으로서미국조지워싱턴대학에유학중이고, 작

은아이인아들박현규는자카르타인터내셔날스쿨인 JIS 11학년에재학중

입니다. 떨려보낸그세월동안아이들은훌쩍성장을했습니다. 그러나아

직아이들이재학중이니교육에대한아무런결실이없고특별히할말도없

습니다. 그러므로그렇게즐겁다는자식자랑을할계제가아닌것입니다. 하

지만자랑할수있는날을바라고또그날이반드시올것을믿으면서이기

회에몇가지반성하고또다지려고합니다.

그첫째가꾸준히성실하게임하는자셉니다. 저는‘꾸준함을이길그어떤

재주도 없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 자신 늘 정성된 마음과 자세로

살고자하고아이들도그렇게해주기를바라고있습니다.

두번째는부모로서의역할입니다. 즉아이들의충고자가아니라도우미가

되어야한다는사실을잊지않으려합니다. 따라서아이들이어떤선택을할

때도부모에의해서가아니라자신이충분히생각해서선택하기를바랍니다.

그에대해서저는기꺼이엄마로서최대한할수있는만큼의조력자가되려

고합니다.

세 번째는 믿고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려고 노력을 합니다. 언젠가부터 이

노력을하게되었는데, 그래서큰딸의경우보다는이제곧12학년이되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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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에게기다림을더많이적용하고있습니다. 문득하나밖에없는아들인데

다른엄마들에비해방치하는것은아닌가하는생각이들기도하지만, 그때

마다‘기다려야한다’를속으로되새기며욕심을삭히곤합니다. 참으로고맙

고다행스러운것은아이가자기일을스스로묵묵히잘해낸다는것입니다.

아빠와 엄마가 늘 저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아 저의 기다림을 한결

즐겁게해주고있습니다.

네번째는‘칭찬’을아끼지않는엄마가되려고합니다. ‘칭찬은고래도춤

추게한다’는진리를알면서부끄럽게도늘인색한것이칭찬인것같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사랑하는 제 자녀에게도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큰딸에

게는 참 미안한 마음입니다. 제 사전에‘칭찬’이라는 단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큰딸에게 칭찬이 적었던 것입니다. 나름대로 잘 자라준 딸이

아들의 독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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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면너무나당연시하고부족하다싶으면독려를멈추지않았습니다. 거기

에욕심을더해다가올것들까지나열을하면서모든것을스스로감당해야

한다고 강하게 지적하고 요구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어느 날 딸아이는 제게

“엄마! 엄만절한번도칭찬한적이없어요.”라고불만을터트렸습니다. 그때

저는깜짝놀랐습니다. 제자신을돌아보니틀린말이아니었던것입니다. 딸

아이에게 얼마나 미안했던지요. 그리고 제 자신에 대한 상실감이 얼마나 컸

던지요. 그래서저는큰딸을제선생이라고생각하기도합니다. 저를내적으

로 성장시킨 것이 사실이거든요. 이 자리를 빌려 딸아이에게 고맙다는 말도

전하고싶습니다.

그 후로 저는 아주 어렵고 조심스럽게 칭찬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들

은딸보다칭찬을많이받았습니다. 아들이딸의혜택을입은셈입니다. 그러

나아직도저는칭찬이많이서툽니다. 다만시간이갈수록더익숙해질것을

믿으며노력할것입니다.

다섯번째로제가바라는것을덧붙일까합니다. 바로‘꿈’입니다. 꿈은세

상을 긍정하게 하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하며, 마침내 행복으로 이어준다

고 알고 있습니다. 딸아이는 지금 프리덴탈과 심리학을 더블메이저로 하면

서, 치과의사와

연구원을 꿈꾸고

있습니다. 딸이

그 꿈을 이루기

위해충분히노력

하기를바라고마

침내아름답게우

뚝서기를바랍니

다. 아들의 희망

은유능한비즈니 딸의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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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맨입니다. 아들또한그꿈을이루기위해최선을다하기를바랍니다. 자신

에게 충실하면서도 동시대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물

론저도나름꿈을지니고취미생활도하고제자신을가꾸어나가면서아이

들의조력자로서제위치를지킬것입니다. 아울러우리가족이함께공동으

로꾸는꿈도있기를바랍니다. 그래서이기회에우리가족의꿈을위해진

지한토론이라도벌여야하겠습니다. 공동의꿈이야말로서로에게힘이되어

주면서행복을잘가꾸어나가는조건이될것임을믿기때문입니다.

끝으로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평소 아이가 대학을 갈 때까지 만이라고 못

을 박으며 아이에게 전력을 기울이는 저를 지지해주고 불평 없이 너그럽게

감싸주는남편, 감사합니다.

그리고사랑합니다.

l기획자 주l이남숙! 그는 인도네시아 19년차 주부로서, 월화차문화원 회원, 루시플라워 회원이다. 조용히내면을 가꾸어가는 현모양처라는 것이 주위의 평이다. 두 아이의 교육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모습은 남편의 자랑거리이기도 하거니와 학부모들 사이에 정평이 난 바다.

Page 139: 도처교학내지2011

相反相成(상

반상성), 서로가

반대됨으로써

서로가

이루어진다

./ Accom

plished by their opp

osition to each other.

강하고

부드러운

것, 차고

따뜻한

것, 삶과

죽음

등. 이

모두는

서로가

반대지만

마침내

그관계는

해소가

되어

태허(太

虛)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송

대철학자

장횡거(張

橫渠)는“형상이

있으면

이에

대립이

있고

대립은

반드시

상반적인

관계를

낳고

상반적

인관계가

있으면

이에

적대적인

모순

갈등의

관계가

있게

되지만, 원수는

반드시

화해하여

그갈등이

해소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싫은

것도

좋아질

수있음은

시간문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고통이

있다면

그것은

환희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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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이 병 수

“그냥건강하게만살아다오!”이말은아이들을지금까지키워오면서아내

와내가셀수없이되뇐무언의기도이다. 건강한아이를둔부모에게도물

론이거니와 약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둔 부모들이라면 가장 절박한

기도문일것이다.

십수년전어느날새벽, 숨이넘어갈듯거친숨소리와함께오들오들떨

고있는첫아이딸을들춰업고아내와함께가파른동네길을뛰어내려갔

다. 큰길가에나섰으나그흔한택시한대보이지않는다. 일각이여삼추같

은시간이얼마나지났을까. 멀리서오고있는차한대의불빛이비쳤다. 나

는딸을들춰업은채로찻길한가운데로뛰어들어한팔을열심히흔들어댔

다. 놀란듯급브레이크를밟고선그차의아저씨는다급한상황임을판단하

고우리를태워텅빈새벽길을질주하여서대문근처병원응급실앞에서우

리를내려주었다. OO 나이트클럽소속봉고차기사로일을마치고퇴근중이

던 친절한 아저씨의 도움으로 빨리 병원으로 후송할 수 있어서 위기상황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아이를 진단한 당직 의사는 우

리부부에게막야단을쳤다. 아이를옷으로이불로두텁게둘러싼것때문이

었다. 바이러스로 인해 열이 높아진 것이니 오히려 옷을 벗기고 얼음찜질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순간대처를 못한 부모의 무지가 아

이를잃게만들수도있었던사건, 아직도생생한기억의단편이다.

첫 아이 다솔은 알레르기성 천식을 안고 태어났다. 찬바람을 쐬거나 감기

기운이조금만있으면쉽게천식으로발전하여늘여간조심스러운것이아

니었다. 그 날도 낮부터 천식이 발병하여 아내가 동네병원에 데리고 갔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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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밤이깊어질수록심해지자날이밝는대로병원에가리라작정하고지켜

보기만하다가새벽녘에그만일이벌어지고만것이다.

97년자카르타로발령을받았을때회사동료들은대체로부러워했고가족

친지들은염려를하는분위기 는데, 천식과같은호흡기질환은열대지방에

서사는것이치료에많은도움이된다는임상소견(?)들이그중위로요기쁨

이었다. 그러나거의하루종일집과학교에서에어컨의찬바람을벗어날수

없는환경탓에늘콧물과재채기에시달려야했던딸은천식이전혀호전되

지않고오히려한국에서보다더악화되는듯했다. 아내와함께안가본종합

병원이없었던듯하다. 초등학교에입학해서는항상기관지확장흡입기를지

녀야했고선생님에게도특별히관찰의대상으로부탁을해두었고체육시간

에는힘든운동을못하고한쪽에서쉬고있어야했던딸은평소보다천식이

심해질라치면병원신세를지곤하다가초등학교2학년때또한번위급한

상황을 맞았다. 아침이 되면 곧바로 병원으로 직행할 심산으로 밤새 숨소리

어머니를 모시고 가족이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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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친아이의상태를지켜보기만했는데새벽에갑자기발작에가까운호

흡곤란상태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잠결에 차를 몰고 가까운 병원에 후

송하여 신속하게 산소호흡기의 도움을 받지 않았던들 생명이 어찌되었을지

모를위급의순간이었다. 응급처치를하여큰위기를넘긴다음아침이밝자

마자큰병원에입원을시키고나서야안도의한숨을쉴수있었고거의열흘

간이나아이는입원실신세를져야만했다.

이렇게태어나면서부터앓아온천식으로인해어린시절에여러번위험한

고비를넘기고지금은한국에서2년째대학생활을하고있는아이가딸다솔

이다. 이 을쓰기위해옛기억을좀더정확하게더듬기위해아내에게전

화를했는데역시엄마로서의기억은아빠에비해훨씬정확하고생생하 음

은물론, “그냥건강하게만살아다오!”라는소박한염원이어릴적다솔에게

기대한모든것이었노라고나에게털어놓는것이었다. 내가이 을쓰기위

해전화로물어보는상황인지까맣게모르고!

주재원생활만 4년을넘기면서아이들의교육문제는나의거취문제의핵

심이 되어 있었고, 나는 아내와 상의도 없이 복귀발령을 받는 날이 곧 내가

독립(?)하는날이라고스스로마음을다잡기에이르 다. 한국으로복귀하면

안정적인자리와어김없이통장에입금되는보수가보장되어있었지만아이

들이, 특히다솔이가한국의입시지옥에서정신적·체력적으로시달릴생각

을하면저절로고개가가로저어졌다. 인도네시아에계속남아 12년특례혜

택을만들어주는것이최선이라는확신에서헤어날수없었고, 결국그확신

은 15년간근속한첫직장과의이별이자자립의시작으로이어졌다. 건강에

관한 한 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첫째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살

수있기를바라는마음에서택한결정과딸의노력이어우러져, 한국에있는

수험생들에게는선망의대상중하나인지금의대학에당당히합격하게되지

않았을까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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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돌아보면 거기까지가 바로 참 지난한 과정들이었다. ‘건강하게만

살아다오’는늘구호에그치고부모의욕심은늘고개를들어갈등에갈등을

더해야하는시간들이었다. 10학년말까지만하더라도가급적본인의자율에

맡기고부모의간섭에의한스트레스를주지않으려고애썼다. 그런데 11학

년에들어서면서부터는그런마음이슬그머니사라져버리고부모의체면문

제가고개를들기시작했다. 12년특례혜택을받고도변변한대학에합격하

지못하면부모체면이무엇이되나하는걱정이앞서게된때문이다. 그로부

터대학에합격하기까지의 2년여동안딸과엄마, 나와딸그리고아내와나

사이에는미묘한신경전과갈등이떠나질않았다. 스스로다알아서할수있

다며부모의간섭을거부하려했던딸이아내와내게는늘미덥지않았다. 때

로우리부부가반성을하기는했다. “이제조금만지나면우리품의자식이

아닌데 품에 있을 동안만이라도 더 사랑을 해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반성은늘오래가질못했다. 언제나반성과자식에대한사랑보다는부모로

서의 욕심이 한 발 앞서 있어서일까, 결국은 딸아이가 우리 품을 떠나게 될

때까지도부모로서의주장은딸의생각과행동을지배하려고만했다. 부모의

욕심탓에자신에게지워진무거운짐을깊이의식한탓인지귀국길에오를

때까지도딸은줄곧냉랭한표정이었다. 그나마동행한아내가입시기간동

안만이라도딸곁을지켜준다는사실이나에게는위로 다.

이제딸의대학생활이 2년차에접어들었다. 돌아보면지난일년또한때

마다 순간마다 고개를 쳐드는 욕심을 느긋하게 다스리지 못했다. 딸로서는

원치않았을시간에전화해서는늦잠자지말라고잔소리하고아침꼭챙겨먹

으라고 닦달했다. 학교생활과 공부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며 훈계를 잊지 않

았다. 그일년, 딸은스스로많은성장을했다. 딸에게한국의학창생활이란

대학이 처음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수학능력도 한국에서 공부를 한 학생들

에비해나을부분이없었을것이다. 부모도떨어져있고가사도우미도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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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비슷한기온이던인도네시아와는달리조석으로도변하는날씨와도싸움

이었을것이다. 친구들도새롭게사귀어야하고그맘때쯤이면찾아오는인

생에대한고뇌도있었을것이다. 첫겨울은엄마의도움을받았지만사상유

례없는혹독한추위 다는바로지난겨울도잘견뎌냈다. 깨우침은바로딸

의 건강회복과 성장의 시간에 있었다. 역시 적당한 거리는 상대를 객관적이

고여유롭게바라보게하는것같다. 몸이약하다는이유로항상보호대상으

로만여겼던딸이보호밖의일년동안시간과함께건강하게성장하는모습

에 대견하고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오전에 전화했을 때 늦잠 자느라고 전화

를받지않아도더이상채근하거나잔소리를늘어놓지않으려하게된다. 차

라리‘미인은잠꾸러기’라는말이딸에게도어울리길바라는마음이다. 건강

하게살아주는것만으로도내게는더이상감사할것이없음을늘기억속에

간직하고 싶다. 딸은 부모의 생각과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갈 것이

고스스로최선의선택을하게될것이다. 둘째인아들교육에서도딸은반면

교사가되었다. 아직둘째가일년반후의대학입시를준비하는과정이지만,

부모의욕심에만가두는그런우에서벗어나게하는가르침을딸로부터받고

있다. 그래서아들도제나름대로잘성장해갈것을믿는다.

이제한달여후면딸을만나러한국나들이를할일정이잡혀있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새 학년으로 올라선 딸에게 행동과 표정으로만

아빠의자랑스러운마음을전하고싶다. 오직사랑하는딸을감사하는마음

으로 바라보며 딸의 즐거운 대학생활에 대해서 그저 편안히 들어주기만 하

리라.

l기획자 주l이병수! 15년 전 보험사 사무소장으로 자카르타에 와서 6년간 근무하다 자립을 했다. 현재는손해보험 대리점과 소규모 카톤 박스 공장을 운 하고 있다. 재인니 한국봉제협의회 사무총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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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지도 게으르지도 말고 / Do not hasten, do not be idle.

<서둘지도 게으르지도 말고>, 발효가 생각나는 말입니다. 장도 김치도 잘 발효되어야제맛이납니다. 붓 씨도서둘지않고게으르지않아야깨우침을얻습니다. 사는일이 다 서둘지도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을 수는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인데,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서두르거나 게을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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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 우

내이름은야니다. 인도네시아인으로다음달이면 21살이되고, 그 다음

달이면 그간 사귀어온 동네오빠 워또와 결혼을 한다. 곧 시작할 새 생활에

대한이런저런상상을하며지내고있는난우리나라에온지꽤되는한국

사람집의가정부이다. 정색을한얼굴로시집은좀더있다가면안되냐고

물어 날 어리둥절하게 하는, 이 엉뚱한 아줌마와 인연을 맺은 지도 어언 6

년이된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꾸에를 이고 나가 팔아가며 내 학비를 벌어 겨우겨우

늦깎이로초등학교를마쳤을때더이상의진학을바랄수없다는건누가말

하지않아도알수있었다. 그렇게그날그날벌어가며부모님돕기를몇년,

어느날난더큰돈벌이를각오하며경험많은동네언니의손을잡고상경

을했다. 그언니가일하는집에서소개를해처음으로온곳이이곳, 마늘냄

새풀풀풍기며걸핏하면거꾸로말해사람얼떨떨하게만드는그녀의집이

었다. 난그렇게말도잘안통하는집에서내새생활을시작했었다.

처음부터모든게엉망이었다. 대충말해도믿을거라던그언니의예상은

완전히빗나갔다. 19살이라속인내나이를믿지않은것은시작이었다. 부모

허락 없이는 고용 못하겠다고 멀리 시골서 엄마까지 불러들인 그녀는 아직

채 16살이되지않았던내기록이적힌가족증명서와함께엄마의동의까지

받아가며 난리를 피우고 나서야 나를 받아들 다. 그렇게 며칠 법석을 치른

뒤, 잘 부탁하노라 당부하고 내려간 엄마를 뒤로한 다음날부터 그녀와 나의

전쟁은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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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내머릿속모든걸지우고자기방식을집어넣으려고작정한것이었

을까. “오랑꼬레아는……”을계속읊으며뭐가뭔지모를희한한방식으로집

안일들을가르치기시작했다. 그녀의말에의하면오랑꼬레아는사는방식이

달랐다. 걸레질도그들만의방식이있고설거지도그랬고빨래도그랬다. 내

가해왔던방식은모두다잊어버리라말하는그녀가어쩌면알라께서날시

험하시느라보낸악마일지도모른단생각이들어사이사이더열심히기도도

드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방으로 숨어들어 눈물을 감춰야했던 날들을 보

내고나서야난겨우밥이란걸넘길수있었으니까. 도대체이커다란한국

여자는빨아온걸레를왜다시들고가빠는건지, 다닦은바닥을왜다시닦

아내는지, 물은왜저리펑펑틀어놓고설거지를하라는거며다헹궈진접시

를왜그리오래문지르라는건지……. 그것뿐이던가. 잘빨아놓은빨래를다

시비눗물푼냄비에담고끓여대질않나, 설사를하는지화장실을몇번들

락날락 거리더니, 잘 닦아 행주질까지 끝내놓은 접시며 수저를 큰솥에 넣고

푹푹삶아대질않는가. 나 이거야원, 아무리생각해도그상황에선어떤누

구라도정신을차릴수가없을것같았다.

그녀의 남편이나 그녀를 찾는 다른 사람들까지, 그들 한국인은 마치 전쟁

터에나온전사처럼살아가고있는듯보 다. 뭐든빨리빨리그리고더정확

히를요구하며우리랑은완전다른세계를살아가고있었다. 사람이살아나

간다는 것. 그건 그냥 알라께서 주시는 것들을 감사히 받아 있는 대로 먹고

마음편하게지내면되는거 다, 적어도내가살던시골에선.

하지만, 그이후로도한참힘겨운우여곡절의나날을보내던난조금씩나

도 모르게 능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저녁 시간이면 누

려지는 낯선 행복에 조금씩 치유되어지고 있었던 걸까. 타일이 깔린 반듯한

내방이란공간안에가벼우면서도폭신한이불, 카세트와TV가있고나만이

쓰는부엌과화장실이있는이곳에서난조금씩맛난음식도만들어먹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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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했고그녀가버리는물건들을깨끗이단장시켜이리저리늘어놓으며나만

의공간을즐기기시작했다. 그렇게더이상피곤하지도힘들지도않은나만

의생활이시작되었던것이다.

그러던중, 가족들을다시보게될첫번러바란휴가때다. 그녀는내속옷

에헝겊을대고그간모은돈을비닐에넣어아예직접꿰매주며집에도착해

서 뜯으라고 말했다. 안 그래도 그간 들어오던 온갖 소문에 -일 년 간 벌어

모은돈들고무딕(귀향)하다홀랑털리고몸다친위인들이어디한둘이랴-

겁이나던난눈물이날것만같았다. 그 이후로도나는가끔동생들의학비

를부쳐주고도매년러바란이면꽤모인돈을들고기다리는가족에게돌아

가집수리를하고가구를새로사들여놓아드리며큰딸노릇을확실하게할

수있었다. 어느해부터인가, 내 눈에더럽고좁아보이기시작한시골집구

석구석을뒤져청소를하고수건과행주를삶아대는날보고놀라던식구들의

모습. 난 나도모르게우쭐해서는뭔가대단한감투라도쓴양더열심히집

안을이리고치고저리고쳐가며정돈해놓고오곤했었다. 그나마살기가훨

씬좋아진식구들은아마도내가꽤나큰성공을한줄아는모양이었다. 고

모가시골집근처의가발공장에작업반장으로가게돼내가이곳을그만두

고잠시그공장에서일할때도부모님은차라리그한국인집에돌아가는게

어떻겠느냐 자주 물었고 난 결국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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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키크고목소리도큰한국여자가아니라날진정생각해주는한사람

으로 내게 존재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머리를 짚어보고 약을

챙겨주며누워있으라말하고는덜그럭거리며설거지를하는사람, 라면이나

튀김요리많이먹지마라, 와룽에가면낯선남자들과너무길게얘기하지마

라, 뭐든읽어라하며어디서구했는지낡은우리나라잡지들을내 던사람

이었다. 매달 월급날이면 쌓여가는 적립금을 보여주며 싸인 받아 놨다 가끔

은 이자라며 보너스까지 챙겨 러바란 때 싸 보내던 사람, 한때 내게 눈물을

주었고 미소를 주었으며 많은 걸 배우게 했던, 아쿠아 갤런 병은 번쩍 들어

쏟아부으면서도작은병뚜껑하나열때면콧구멍까지벌 대며낑낑매다

결국은늘내게내 던사람, 내게그녀의이름은‘뇨냐’다.

언젠가어떤이가내게물었었다. 이 한국가족과몇년있으면서가장크

게배웠다고생각하는게뭐냐고. 난그때그에게청결이란단어가무언지알

게됐다고답했었다. 그런데이제누군가가또묻는다면난한가지를더추

가할생각이다. 자존심이무언지도잘알게되었노라고…….

난이제얼마뒤면, 어느때부터인가내집인양생활하게되었던정든이

곳을떠나또다른삶을시작한다. 그리고또얼마후면내게도아이들이생

기고엄마가되겠지. 그러면난그아이들을위해튀기기보다는찌거나삶은

음식을만들고빡빡빨아잘헹궈내뽀얗게된옷을입히고는윤기나게닦은

바닥위에앉혀놓고얼굴가득미소지으며해줄말들이많이있다는걸안다.

“얘들아, 오랑꼬레아는말이야... ”

l기획자 주l 이선우! 그는 인도네시아 22년차 거주 주부다. 월화차문화원 회원이며, 자필묵연회원으로2009년 대한민국서예문인화대전 특선, 2010년 제22회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선, 2010년 서울서예대전 입선을 했다. 작은 것도 소중하게 여기는 그는 찌와이의 맑은 풍광과 그녀의 정성스런 손길로 기른 신선한 채소를 그의 지인들 식탁에 풍성히 올려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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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겘我延(세불아연), 세월은 나로 하여 늦추지않는다. / Time does not slow down forme.

주자(朱子)는 그의 권학문에서“오늘 배우지않고 내일이 있다 하지 말라. 올해 배우지 않고내년이있다하지말라. 날과 달은간다. 세월은 나로 하여 늦추지 않나니… (勿謂今日겘學而有來日 勿謂今年겘學而有來年 日月逝矣歲겘我延).”하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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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 진

인도네시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

이 지난 다음에야 인도네시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어를

배우고역사와문화, 종교적특성, 사람들의생활을이해하게되면서부터인

도네시아는배울것이참많은나라로내게크게다가오기시작했다.

인도네시아헤리티지소사이어티(이하헤리티지)! 이 단체가바로나로하

여금인도네시아를사랑하게한단체다. 인도네시아의역사와전통, 유물, 그

리고사람들을사랑하게한단체다. 이단체에는다국적인들이참많다. 이들

이 헤리티지를 주도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들의 특징은 인도네시

아의 역사와 문화를 열심히 배우고 익힌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구석구석 다

니면서 다양한 사람과 만나고 그들의 문화를 체험하기를 즐긴다. 특히 프랑

스인들과네덜란드인들은오지탐험까지도겁내지않고자처한다. 마치그들

의선조들이세계를누비며외딴곳까지탐색했던것처럼그들도탐험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헤리티지의여행그룹은대부분그들이이끌고주도한다.

헤리티지는 문화와 유물의 집결처요 역사가 서린 국립박물관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 외에도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단체를 적극 지원하

여 유물을 보전하고 전통문화를 발전시키고 증진하는 곳은 두루 도움을 준

다. 본래의목적을충실이이행하는것이다. 헤리티지는설립초기부터국립

박물관을 지원했다. 박물관 가이드를 양성하고 파견했다. 지금도 여전히 헤

리티지에서 양성해낸 투어가이드들이 정기 어 투어를 한 달에 12번 정도

시행하고있다.

나는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한 기회에 박물관 공부를 접하게 되었다.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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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공부는<국립박물관투어가이드 어트레이닝워크삽3개월과정>

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헤리티지에서 1년에 한번 9월에 어 트레이닝 코스

를 마련해 놓고 박물관 자원봉사자를 양성하는데, 그 프로그램에 내가 참가

하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박물관 공부를 시작했던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대략 12~13명의 트레이닝 참가자를 미리 신청 받아 교육에 임하는데, 워크

숍이진행되는 3개월동안두번이상빠지게되면자동탈락된다. 교육과정

중에는한눈을팔시간이없을정도 다. 교육자료가워낙방대했다. 워크숍

자료는 헤리티지의 시각에서 경험과 정성을 들여 거듭 수정 보완된 자료

다. 사진과설명등그내용이매우훌륭했다.

배우고 가르치는 데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헤리티지의 그것은 매우

특별했다. 국제적이고헌신적이며전문적이었다. 국제적일수밖에없는것은

당연했다. 우선회원들의국적이다양했다. 유럽, 중남미, 미국, 아시아등세

계각지에서온사람들이두루모여있었다. 헌신적이라함은강사로나서는

발표중인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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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또는트레이닝을이끄는리더등모두가자원봉사자들이기때문이

다. 워크숍에임하는사람들모두매우진지하고희생적이다. 훈련생들이소

홀해질 수가 없다. 전문적이라 함은 매주 전시관을 소개하는 강의를 하시는

분들을 의미한다. 강사는 스터디 그룹이나 투어 파트에서 오랫동안 문화와

역사를익히고공부해온베테랑들이맡는다. 물론엄선된분들이기때문이겠

지만모두들수준이높고멋을지닌분들이었다. 1회에 2시간동안한전시

관을돌면서유물을중심으로그에얽힌역사와문화를설명하는데, 그충실

한준비는매번놀라울정도 다. 그열렬하고흥미진진한강의를겨우 13명

의 훈련생만 듣는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고 송구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들 덕

분에나는위대한인류와문명의소중함을다시금깨닫게되었다. 그리고역

사앞에서진정한겸손이무엇인지를배웠다.

내가국립박물관에서 어로자원봉사활동을해온지 6년여가되었다. 헤

리티지가국립박물관을지원하고매월자원봉사자를파견해온지 40여년

이지났으니, 나의경력은그야말로일천한것이다. 헤리티지와함께한세월

동안인도네시아국립박물관은환골탈퇴를해왔다고한다. 2007년에신관

을증축하여 4층건물에보물관과도자기관, 선사시대관등추가로보완되

었는데, 현재는구관신관을포함해전시관17개를보유하고있다. 어디에내

놔도부끄럽지않을정도로훌륭해졌다는것이오래된선배들이공통된시각

이다. 현재한국어투어는한달에두번씩정기적으로행해진다.

현재인도네시아국립박물관에는약 15만여개의유물이있다. 이많은유

물을대상으로지역과시대별연구를하려면그방대함으로인해참많은공

부를해야한다. 나는투어경력 2년만에헤리티지의스터디그룹‘역사팀’

에들어가서석달동안인도네시아역사를공부할기회를가졌다. <History

of Indonesia> 는데, 스터디그룹은대략 10명으로구성되었었다. 물론거

기에도국적이다양한남녀노소가모 는데, 시대별로인도네시아역사를10

부분으로나누어정한다음, 각자준비를하여매주수요일마다발표회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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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가졌다.

그때내가맡아서공부하고발표한시대는<스리위자야> 다. 스리위자야

는 6세기에서 10세기까지수마트라남부의빨렘방을중심으로서부자바와

칼리만탄 등 인도네시아뿐 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반도의 해안 지역까지를

토로삼았고베트남과캄보디아까지기지국을세워동남아해상무역을장

악했던대제국이다. ‘ 광스러운승리’라는뜻의스리위자야는동남아시아를

통틀어 당대에 가장 거대한 제국이었던 것이다. 스리위자야의 그 거대한 위

용은 나로 하여금 오늘날의 인도네시아를 돌아다보게도 하 다. 인구, 자원

등좋은배경에비해상대적으로내세울것이없는인도네시아의현재를안

타깝게바라보게한것이다. 광스러운승리, 즉스리위자야를배경에둔국

가와민족답게창의적이고도전적이며찬란한문화를꽃피우는인도네시아

가되기를바라는마음이다.

헤리티지 회원들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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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헤리티지에서배운것은비단인도네시아유물을통한역사와문화뿐

만이아니다. 국가와민족을초월해서많은다국적사람들과우정을나눴다.

특히동일관심사로인한교류로인해서로의마음을열고교유함으로써일

정부분 민간외교의 역할도 되었다는 것을 자부한다. 특히 많은 나이에도 불

구하고자신을낮추며공부하려는다국적회원들과교유를하면서그들에게

서참많은것을배웠다. 바로그들의문화에대해서도더알고싶다는꿈을

갖게된것이다. 나의공부는앞으로도계속될것이다.

l기획자 주l이수진! 한국외대신문방송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 1992년 가족과 함께 인도네시아에 정착했다.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한국어 섹션회장을 역임했고, 2007<인도네시아 박물관 가이드 북> 한국어판을 공동 번역 출간했다. 헤리티지의 경험을 살려 그만의 시각으로 바라본 발리의 역사와 문화, 특성에 대해 나름의 정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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早傳松意(조전송의), 이른 아침소나무의기상이전하는의미/ The meaning told by pine tree′s rise in the earlymorning.

보이는소나무, 보이지않는솔향! 눈을감으면솔향은느낄수있는데소나무는볼수가없습니다. 보이지않는것을찾는것, 만질수없는것을마음으로깊이느끼는것, 보이는것의사라짐을인정해야하는것, 보이지않지만존재하는것에대한믿음을가지는것, 모두우리의삶을위한것입니다. 삶의풍요로움을위한것입니다. 솔향을그리고싶은이유입니다. (인재 손인식의 필묵향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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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은 경

김 희 선생님! 선생님과 언니 오빠들의 박수를 받으며 자카르타 한인 어

린이합창단에들어온것이엊그제같은데, 벌써 5년이흘 습니다. 원치않

지만 7학년 미들스쿨 학생이 됨에 따라 이제 그만 합창단 졸업을 맞이해야

합니다.

선생님, 합창단생활을하는동안정말시간이놀이공원의롤러코스터처럼

너무빨리지나간것같습니다. 그동안많은것을배우고쌓은저희졸업생들

의마음속에는합창단을떠나야한다는생각에아쉬움이가득합니다. 그러나

합창단에들어오기를바라는또다른후배들을위하여저희는이제물러나야

한다는것을압니다.

선생님, 저는 자카르타 한인어린이합창단 첫 공연을 잘 기억합니다. 초등

학교1학년때 어요. 엄마의손을잡고가서관람을했었는데아름다운합창

이얼마나듣기에좋았던지지금도생생히기억이납니다. 그후저도자카르

타 한인어린이합창단원이 되었지요. 그때 함께 오디션을 보았던 잘 모르던

또래 아이들은 지금은 아주 친한 친구들이 되었습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함

께만나서연습을하고, 공연무대에오르기전에는손을잡으며잘할수있

을것이라고서로격려를해주던참좋은친구들, 앞으로도변함이없을소중

한친구들이지만이젠함께연습하고공연하던그런시간을가질수없다는

것이너무아쉽습니다.

김 희 선생님, 저희들은 선생님의 열정적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을 것입

니다. 선생님은말썽꾸러기 던저희들을합창으로하나가되게하셨습니다.

열심히노력하면반드시잘하게된다는믿음을저희들에게심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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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쉬어서

작은 목소리로

겨우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이 안 좋

으실 때도, 선

생님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으

시고 피아노

반주로 음을 잡아주시고 마이크를 잡으셨지요. 저희들이 게을리 할 수 없도

록언제라도모범을보여주셨어요.

솔직히맨처음에들어갔을때는가기싫었던적도많았어요. 연습을많이

하다보면 목도 많이 아프고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래를 부를 때면

늘즐거웠습니다. 목이아프고힘이들때도노래를부르는시간은언제아팠

냐는 듯 힘이 솟았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을 닮아가는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시작한노래연습과많은공연들을저는 원히잊지못할것입니다.

제가관람을한첫공연을기억하듯이저는제가처음참가한 2학년때의

첫공연때의뿌듯함도잊지않고있습니다. 그 후 2010년마지막공연까지

매년있었던모든공연이소중하고즐거웠던시간들이었습니다. 선생님도기

억하시지요? 솔로에서 인도네시아 노래인 Bengawan solo를 부른 다음 받

았던우레와같은큰박수말입니다. 선생님과참석하신부모님들이모두기

뻐하셨지만 저희들은 얼마나 자부심이 컸던 지요. 한소리 선생님들과 같이

했었던무대도잊지못할것입니다. 한국에서있었던놀라운대회스타킹출

연은또어땠어요. 정말저희들모두가스타가된기분이었어요. 그리고새로

만난대교어린이TV합창단친구들, 남성초등학교공연등그많은공연하나

하나가다잊지못할추억들입니다.

스타킹 출연 후 개그맨 조혜련 언니와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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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그 모든 것은 추억으로만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 많은 연습과

공연들로인해우리는한층더성숙할수있었고, 앞으로공부과정에서도큰

에너지가될소중한체험으로남아있습니다. 선생님, 합창단에들어가기전

무척소극적이던제성격은합창단생활을하면서무척활발한성격으로바

뀌었습니다. 자신감도많이생겼습니다. 예전에는떨려서사람들앞에잘나

서지도못하던제가무대위에서즐겁게노래를부르는모습을보고는친구

들은“떨리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제 자신에게도 감사합니

다. 엄마도무대위의제모습이자연스럽고자신감있어보인다고하십니다.

이모두가다김 희선생님과합창단친구들의덕분이라생각을합니다. 그

래서저는소심한친구들에게는합창단에들어올것을권하기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엄마께서는 자카르타에 김 희 선생님이 계서서 참 감사하다

는말 을몇번이고하셨어요. 선생님이합창단을잘이끌어주셔서문화체

험이적을수밖에없는타국에서자라는저희들이, 여러가지체험을하면서

성격도밝아지고적극적으로변했다고말 을하시는것입니다. 이런마음은

합창단친구들부모님들도다같을것입니다.

청와대 방문중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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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제 언제 그

렇게맛있는간식을먹어

볼수있을까요? 매주저

희들을 위해 어머니들이

준비해주시는간식은정

말 너무 맛있었습니다.

앞으로도 토요일이 되면

무의식중에그시간을기

다릴것같습니다.

공연무대에오르기전에는협박아닌협박까지하시던선생님, 최대한좋

은공연을이끌어내기위해항상최선을다하셨던선생님, 선생님은저희들을

늘친구처럼대해주셨지요. 공연이끝나면그누구보다도칭찬과격려를아끼

지않으셨습니다. 저희들이합창단을최고의합창단으로생각하는것처럼선

생님도저희에게최고의선생님이십니다. 저희모두선생님을사랑합니다.

선생님, 이제저희는떠납니다. 아름답고행복했던많은추억들을많이가

지고 졸업합니다. 선생님께서 저희를 한껏 사랑해 주셨던 것처럼 저희들도

멋진모습으로성장하여선생님의사랑에보답하겠습니다. 남아있는후배들

이우리합창단을더빛내줄것을믿습니다. 저희졸업생들은이제관객으로

서 많은 응원을 하겠습니다. 김 희 선생님,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꼭 만나

뵙고싶습니다. 항상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l기획자 주l이은경!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 JIKS의 7학년 학생이다. 이 은 얼마 전 자카르타 한인어린이합창단을 졸업하면서 쓴 이다. 학생의 합창단 사랑과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에서 합창단의 존재가치와 한인사회의 희망적인 한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합창단과 학생의 무한성장을 빈다.

한국내의 인도네시아 근로자를 위한 어린이 합창단 무용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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겘欺自心(불기자심, 성철스님 법어), 자신을 속이지 마라. / Do not deceiveyourself.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므로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까지도 취해다가 후학에게알려주는 것이 사명이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은 그 뒤로도 계속해서 내 자신을 스스로 속이고, 세상을 향해 가식으로 섰습니다. 언감생심 하늘은 덮어두고라도 세상을, 아니 내 자신을 속이지 않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긴 올 것으로 믿습니다. 내 감정을 곧잘 속이는 오른 손을 쉬게 하고 왼손으로 이 작품을 쓴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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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미 진

너무너무싫었다. 난 정말인도네시아가싫었다. 입국심사때내짐을죄

다 뜯고는 돈을 요구하는 공항검색원들도 미웠고, 1년 내내 더운 것도 싫었

고, 미친듯이퍼붓는비도적응안됐고, 뻠반뚜라는인도네시아인이나랑한

집에 산다는 것도 이상했고, 양치할 때 생수로 입을 헹구는 것도 귀찮았고,

내가 너무 좋아하는 한국음식들을 구하기 힘들다는 것도 가끔은 참기 힘들

만큼짜증이났고, 뿌연회색하늘도정이안갔고, 움직 다하면차안에서

몇 시간씩 갇혀서 화장실 가고 싶은 거 참아내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고, 온

집안벽을헤집고다니는살색빛의징그러운도마뱀도싫었고, 가끔너무너

무뚱뚱한바퀴벌레에기겁을했고, 차랑기사가없으면자유롭게나다닐수

가없다는것도정말답답해서짜증이났다.

질렸다. 왕복5시간이걸렸다. 찌까랑집에서UI 대학의BIPA과정을공부

하러가는거리는처음부터나를질리게하기에충분했다. 두번다시하라면

고개를가로젓고말것이다. 그러나그땐그냥살아야했고, 열심히공부해

야했다.

시간이흐르면서내의식도조금바뀌었다. 인도네시아이니까 1년내내더

운것은당연한것이고, 우기라는것이있으니까비가미친듯이퍼붓는것도

당연한것이고, 뻠반뚜가있으니까여러가지로편해지는거같고, 양치할때

입 헹구는 건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고, 맛난 한국식당들도 하나둘씩 알아가

고, 차안에서화장실가고싶은것도어느정도조절이되어갔고, 살색빛의

징그럽던 도마뱀도 이젠 가끔 귀여워 보이고, 바퀴벌레는 이사를 한 뒤로는

사라지고없고, 차랑기사가있으니까편하다는쪽으로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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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지나면서학교에서는외국인친구들도많이생기고또행사나모임

에 적극 참가하면서 모든 것이 조금 재미있어지기도 했는데, 그렇게 비파과

정3까지무사히또괜찮은성적으로공부를마쳤다. 공항을오갈때마다시

비거는공항검색원들의횡포는끝내사라지지않았지만….

언어의 장벽이 해결된 내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괜찮은 급여를 주는

회사에 취직을 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적응을 했고, 또 하루하루 그러려니

하는시간들을보냈다. 너무너무힘들다고, 또싫다고, 벗어나고싶다는생각

은 차츰 무뎌갔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한국에 있었다. 회사에서 일 년에 한

번휴가를주면난한달전부터한국갈계획을세웠다. 만나야될사람, 먹

어야될음식, 가봐야할곳등목록을만들곤했다. 그때난그만큼한국이란

곳이 간절했다. 엄마 눈엔 그때 내가 그렇게 애처로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고 인도네시아로 돌아갈 때면, 부산의 우리 집 방문마

다열어작별인사를하고, 창밖풍경을마음에담으며작별인사를하는등온

갖청승을다떨었던것이다.

내나이20대중반과후반을고스란히담긴4년여, 좋았던나날이왜없었

을까만 그땐 내게 주어진 고마움도, 주어진 기회들도 크게 귀한 줄 몰랐다.

BIPA 졸업때 BIPA 친구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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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취직을하면그냥쉽게그정도의대우는받을줄알았고, 현장에서

익히는 언어가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도 몰랐다. 잦은 여행을 하면서도 누구

나마음만먹으면다가는것으로만생각했고, 사람들과의소중한인연도깊

게헤아리지못했다. 그래서난늘힘들다고투정하고또하루라도빨리인도

네시아와의인연을끊고싶은마음으로시간을보냈다.

난결국인도네시아를떠났다. 무진장섭섭해하는아빠를뒤로하고, 한국

에서떠나갈때처럼거한송별회도몇차례하고, 짐을꾸려그리던나의고

국, 한국으로돌아왔다. 그때그것이내운명의일부 다는것을조금도모른

채로….

내가인도네시아를떠나온지3년, 난지금그때를그리워하고있다. 시원

한빈땅맥주도, 이쁜문양의바틱들도, 맛있는사떼도, 우리집뻠반뚜가해

주던미고렝도, 이른아침집앞을지나다니는빵자전거의음악소리도다그

립다. 곳곳에 있었던 인니음식이 제법 맛있었다는 생각에 침을 삼키기도 하

고, 한국에선큰맘먹고사먹어야되는열대과일도실컷먹을수있었음은행

복이었다고느낀다. 남들은일년에허니문으로한번갈까말까하는발리를

발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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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번다녀온것은참으로호사 다. 한국에서같으면상상도못할사서하

는고생이었던배낭여행, 그래서내머릿속에더뚜렷이남은그배낭여행은

평생절대로잊지못할것이다. 오만루피숙소에자면서이만루피식사를현

지인과 둘러앉아 함께 그들의 전통방식대로 손으로 먹었었다. 그래서 그때

같이 고생한 외국인 친구들과는 더욱 돈독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직까지 서

로를 그리워하며 연락하고 지낼 뿐만 아니라, 초대를 받아 그들의 나라에도

다녀오고, 그들 언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드디어는 인니어라는 조금

은특이한특기가지금은참으로소중하게느껴진다. 어쩌면내가무척운이

좋았던사람이라는생각도한다. 그때야말로흔히인생에서3번쯤찾아온다

는기회중첫번째가아니었을까하는생각도한다.

그땐 왜 몰랐을까. 뭐든, 지나고 나야 소중한 걸. 고마운 걸 알게 되는 걸

까? 아! 돈으로도살수없는소중한내경험들! 내가보고, 듣고, 느낀인도네

시아4년여의경험들, 그것은분명인도네시아라서가능한것들이기도했다.

바로나를더욱성장시킨시간이었던것이다.

내가 한국으로돌아온뒤또어쩌다보니오빠가인도네시아에취직이되

었다. 이모저모로참고마운인도네시아, 이것은곧아빠에대한큰감사이기

도하다. 아빠가인도네시아에사업처를정하지않으셨더라면내인도네시아

생활 4년여도없었을것이기때문이다. 그리고지금내인생에서중요한어

떤이가인도네시아에있지도않을것이기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넌나의운명이지않니? 더이상어찌할수없는운명!

l기획자 주l임미진!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다.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뉴질랜드에서 어학연수를 했다.4년여의 인도네시아 생활로 스스로가 더욱 성숙했다고 자평하는 그녀는 의 내용에서처럼인도네시아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 한편으론 운명으로 여기고 있으니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것만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한다. 그녀의 앞날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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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我(수아), 나를지키다. / Protect myself.

옛 선인은“천하에가장잃기쉬운것중에는자신만한 것이 없다(天下之굂失者 莫如吾也)”고 했습니다. 스스로를 잃으면 가진 모든 것을 잃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을 지킨다는 것은 곧 자신을 깊이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자신을 깊이 이해할수록 편하고 자유로워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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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준 섭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갈채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이것이 자의든

타의든최종적으로는본인의결심이필요하고그것이무엇이든대단한노력

이뒤따라야하기때문이다. 사람이평생을살면서도전할일이어디한두번

이랴. 누구나과거에도많은도전을했을것이고지금도도전할것이며미래

도그자체가도전임을부정하는사람은없을것이다. 물론거기에는좌절도

있었을것이고성취도많을것이다.

나또한많은일에도전을거듭했다. 이제 2년차직장인으로서얼마전결

혼을하고새생활을시작하는지금성취한것을드러내라면참으로빈약하

기그지없지만, 나름그간도전을통해배우고얻은결과들로인해현재의내

가있음을떳떳하게여기며, 지금다시미래를꿈꾸고있다.

인도네시아의 주재와 결혼, 이 두 가지는 현재의 나에게 매우 큰 의미다.

처음 인도네시아에 거주를 하게 된 것부터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배움은

시작이되었고, 이제막시작한결혼생활로인해내게는새로운세계가열림

과동시에또다른배움도시작이되었다고생각을한다.

나의인도네시아첫방문은내자의가아니었다. 중국에유학을하고있던

나는군복무기간중에생긴뜻하지않은일로인해대학복학시기를맞추지

못하게되었다. 그즈음나는군필자로서, 학생이기도했지만본격적인성인

의대열에들어선시기 다. 내내면에는매우미묘한감정들이복잡하게얽

히던 시절이었다는 의미다. 의욕이 넘치는가 하면 한편으론 막막하기도 했

다. 그러나그것은인도네시아첫방문의원인이기도했다. 만약그즈음인도

네시아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나는 거의 일 년이란 세월을 한국에서 복잡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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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채 허송으로 보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뜻하지 않은

방문, 복잡미묘한심정으로방문한인도네시아에서의내초기생활또한그

야말로그저그런것이었다. 한마디로무위도식이었다. 낯선환경낯선사람

들틈에서내가고작할수있었던일이란그저가사도우미가챙겨주는밥을

먹으면서“Terima kasih”라는 말과 함께 웃어주는 일 말곤 없었다고 해도

과장이아니다.

그러는 나를 옆에서 지켜보시는 분이 있었다. 나를 인도네시아로 부르신

분이다. 어쩌면그때그분은나보다도더답답한마음이셨을것이다. 하지만

절대 무엇을 강요하거나 조급해 하시지 않으셨다. 그러나 의도하시는 바를

아주드러내지않으시는것은아니었다. 은근히나를채근하신셈인데, 우선

의사소통이되지않는나를밖으로내모셨다. 더욱갑갑해지라는의도 는지

세상을넓게보라는것인지여행을권유하시기도했다.

결혼식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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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결국탈출구를찾았는데그것은인도네시아어개인과외시작한것이

다. 사실그것말고는달리할일도없었다. 그렇게시작한인도네시아어공

부, 지금생각해보면그렇게자발적으로열심히열과성을다하여공부를한

적도그이전에는많지않았던것같다. 우선현지인들이다니는교회에매주

수요일성경공부를하러다녔다. 그때인니어를가르쳐주시던선생님은나를

참좋게보셨을것이다. 참 많이웃었기때문이다. 무슨말인지이해가되지

않을때마다나는웃었다. 웃기라도해야할것같은것이그때내심정이었

다. 물론일요일에는예배도꼬박꼬박참석을했다. 일요일에는찬송가부르

는것에재미를붙 다. 그렇다고해서그기간동안에내언어실력이부쩍

향상된것은아니었다. 그러나소득도있었다. 낯선환경에확실히적응하는

방법을터득한것을넘어서서인도네시아생활에재미를느끼기시작했던시

기 기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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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해서이건 어쩔 수

없어서건 도전한 일은 고

생스럽고 힘들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얻을 것들이

참 많다는 것도 진리가

아닌가. 인니어 실력이

늘고 그래서 인도네시아

인들과 소통하면서 웃고

떠들고교감하면서다방면에많은흥미가일었다. 인도네시아문화, 음식 ,역

사, 정치에까지관심을가지게되었고, 이모두는내가다시중국으로돌아가

는데아주좋은에너지로작용을했다.

뱅아완 솔로,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심을 흐르는 강이다. 인도네시아 사람

들사이에는이강물을한번마신사람들은언젠가다시인도네시아를방문

하게된다는설이있다. 나또한그런셈일까? 나는중국에서공부를마치고

다시금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그때 역시 타의도 있었지만 처음 방문 때와는

달리많은부분자의가작용했다. 나는다시인니어향상을위해인도네시아

국립대학UI의BIPA 과정을거쳤고, 인연인듯LG맨이되었다.

인연은인연을낳는것일까. 나는LG 한국본사에장기출장근무중에평생

을동반할인연을만났다. 또 다른도전이요, 공부가시작된것이다. 인생의

큰도전결혼, 이것은분명친구나이웃, 직장동료를사귀는것과는스케일

이다른거대한도전이라는생각을한다. 서로다른공간에서서로다른가정

환경의 교육 방식으로 자랐고, 그래서 추구하는 스타일, 관점, 이상, 가족관

등어느것도닮은구석이라고는찾기가힘든두사람이함께살아야하는것

이어찌거대한도전이아닐까생각이드는것이다. 더군다나아내는이제곧

그동안 살아왔던 한국을 떠나 모든 것이 낯설 인도네시아에서 살아야 한다.

그에게도참큰도전이아닐수없을것이다.

신행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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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믿는다. 내 부모님의 사랑의 결실이 곧 우리 가족이듯, 나의

큰도전결혼또한사랑이있어분명한하나가될것이며, 또 다른아름다운

가족을 구성하게 될 것임을 믿는다. 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초단위라고 하는

가정, 어찌사람의일중에가장중요한일이아니랴. 이것은부모님에대한

존경의실천과, 일에대해충실해야함을내포하고있다는것도잘안다. 그

래서나와아내의큰도전은더욱의미있는일이라생각한다. 이제나는또

새로운도전앞에서하나의결심을한다. 천천히모두와함께나아가는것이

다. 마음의여유를잃지않으며, 나와내가족, 그리고세상을향한사랑을잃

지않으며천천히나아갈것임을다짐한다. 오늘, 한국의봄하늘이참맑다.

모든것에감사한다.

l기획자 주l임준섭! 그는 이제 30대 초반의 LG에 근무하는 직장인이다. 중국에 유학하 으며, 인연이있어 인도네시아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의 본사에 장기 출장 근무 중에 반려자를 만나 2011년 1월 결혼에 골인 하 으며, 이 또한 한국 근무 중에 쓴 것이다. 그의 새로운도전에 늘 튼실한 결실이 맺어질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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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滴石穿(수적석천),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 / A dropof water penetrates the stone.

물방울이 돌을 뚫습니다. 미미한 힘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희망은희망을가질때희망입니다.

희망은희망을잃지않을때만아름답습니다.

절망의시간에도희망은언제나내안에있는것.

어디선가 내게로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공짜로주는것이아니라

간절하고치열하게찾아서희망으로삼는것입니다.

세상모든이의건강한희망을소망합니다.”

(인재 손인식의 필묵향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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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혜 숙

이틀뒤면우리부부의결혼 30주년을맞는날입니다. 며칠전에이제막

둘째를임신하여홀몸이아닌며느리안젤라가큰손자호진이를데리고우

리를방문하 습니다. 얼마전막내가대학을가자우리둘만남은텅빈집

안에봄비와도같은귀한손님입니다. 이제제법자기주장을내세우는세살

박이호진이의또랑또랑한목소리와자지러지는웃음소리는마치쉴새없이

쏟아지는알록달록한구슬같아서아이와함께하는우리부부는감탄과환희

의연속입니다. 무엇으로이렇게집안을가득채울수있을까요. 실로아이의

존재는신비롭습니다. 우리가적적할것을생각하고위문방문(?)한며느리의

마음 이가예쁘고고맙기그지없습니다.

천성이 활발하고 활동적인 호진이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함께 놀아주어야

합니다. 집안에서도걷는법없이뛰어다니며손을잡고걸어갈적에도양

손에매달려그네를타며다니길좋아합니다. 아침에산책을하고들어왔는

데 바지랑대에 널어놓은 수 복을 보곤 수 하자고 조르며, 수 하고 들어

와서우유한컵벌컥벌컥단숨에마시고는이방저방뛰어다니며숨기놀이

를하며까르르까르르웃어댑니다. 얼마나열심히노는지방금갈아입힌옷

이땀에축축합니다. 또 아이의호기심은끝이없어서무엇이든만지려하고

가지려고해서잠시도눈을뗄틈이없습니다. 그러나힘들어하지않고차분

히아이를보살피는며느리를보며30년전우리부부의모습을돌아보게됩

니다.

돌이켜보면우리부부는아이들을낳고기르면서철이들기시작했습니다.

아이들로 인하여 아낌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픔을 참는 법도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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웠고, 기꺼이기다릴줄아는능력

도생겼습니다. 아이들이다자라

서품을떠나니비로소우리의부

모님마음을헤아릴줄알게되었

습니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라는격언이참으로마음에와닿

습니다.

젊은 우리 부부에게 첫아이는

시행착오의연속이었습니다. 큰아

이가유치원을다니던어느날, 버

스를타고집으로오는데, 옆자리

에앉아있던아이는멀리붉게물든저녁노을을바라보며시무룩해지더니자

기는죽으면지옥에갈거라며흐느껴울었습니다. 이제겨우 6살짜리가어

떻게 죽음과 지옥이란 걸 떠올리는지 너무 놀랍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엄마

말도잘안듣고동생하고싸워서지옥에갈것”이라는겁니다. 며칠전모임

에서어른들이한말이아이의마음속에새겨져서두려움으로자리잡고있

었습니다. 하느님은벌주시는분이아니라고아이를설득하는데한참걸렸습

니다.

또 한번은늦게까지밖에서놀려는아이의버릇을고칠요량으로큰아이

에게집에서나가라고소리를질 습니다. 이제막7살로초등 1학년때 습

니다. 화가난제가재차다그치자아이는동생손을잡고대문을나서는것

이었습니다. 두살터울의작은애는 문도모르고형손을잡고따라나서서

갑니다. 저의각본은이게아닌데말입니다. 아차싶어서얼른쫓아나가보니

긴골목길을형제가손을잡고터덜터덜걸어가는겁니다. 한번내뱉은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교훈을 또 한 번 배우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뒤에서

아이들이름을부르며가긴어딜가느냐고, 집으로돌아오라고소리쳐야했

막내 보나의 어릴 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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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참으로 위신이 서지 않는 사건이었지요. 그 뒤로 저는 말을 조심하

게되었습니다. 꼭지킬말을하려고했고소위겁주는말은하지않게되었

습니다.

세 살이되어서야말문이트인둘째가네살이되면서감정표현까지하는

언어의 급성장을 보 습니다. 퇴근한 아빠가 씻는 모습을 화장실 문지방에

서서지켜보던아이가“아빠저는배추(야채)를안먹을거예요.”“왜? 야채를

많이먹어야키가쑥쑥크지.”“내가키가커지면아빠가할아버지가되잖아

요!”라고말한아이는잠시머뭇거리더니울먹이는소리로“음- 그리고아빠

가할아버지가되면죽잖아요, 으∼앙”그뒤로고기반찬을좋아하는둘째에

게야채를많이먹어야키가빨리큰다는말대신튼튼해진다는말로바꾼건

당연한일이었습니다.

며느리, 손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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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와는 10

년, 둘째와는8년

터울인 막내. 집

안에손자들만일

곱인 터에 여덟

번째로딸이태어

나 온 집안의 환

호성을받고태어

난 아이입니다.

우리부부의육아

법도첫째나둘째

때보다는너그러워지고느긋해졌습니다. 두 오빠들사이에서웬만한것들은

저절로깨우치게되니특별히붙들어가르칠것도또특별히혼낼일도없었

습니다. 또 어려서부터과자를사더라도 3봉지를사고간식을먹어도꼭오

빠들것을챙기며비록나이차이가많아도착한누이동생노릇을톡톡히하

는것이었습니다.

셋째부터는저절로큰다는어른들의말 이실감이났습니다. 막내의초등

학교 2학년때입니다. 여행중에동그랗고납작한하얀돌멩이하나를주웠

는데, 막내는그돌을자기의첫번째보물이라고이름붙이고는애지중지했

습니다. 그런데어느날막내가없는사이둘째가부주의로그돌멩이를바닥

에 떨어뜨려서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당시 10학년이던 둘째는 걱정을 하며

도움을청해왔습니다. 궁리끝에솔직히말하고용서를청하자고했습니다.

아무것도모른채집에돌아온막내에게둘째는둘로쪼개진돌멩이를양손

에감춘채말했습니다.

“보나야, 내가너한테잘못한거있는데화내지마.”“뭔데?”“화안낸다고

약속하면얘기할게.”“뭔지알아야지!”“약속부터해. 제발~”“아이참~, 알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의 어릴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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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어. 말해봐.”둘째는쪼개진돌을보이며막내의눈치를살피며말했습니

다. “미안해~ 오빠가잘못해서떨어뜨렸어.”막내의얼굴은순간놀라움과

절망감으로일그러지는듯하더니이내안정을되찾으며이렇게말했습니다.

“괜찮아.”“정말괜찮아?”“응, 내보물이두개가됐으니깐.”

둘째의 얼굴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한 가득 피어났습니다. 모르는 척 지켜

보던 저도 감동이었습니다. 이미 저질러진 일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와 주

변을위로할줄아는낙천적인성격의막내에게큰가르침을받는사건이었

습니다. 바로엊그제의일같습니다. 그런데아이들을생각하면참으로미안

한마음이많이듭니다. 지혜롭지못했고, 최선을다하지않았고, 너그럽게

기다릴줄도몰랐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별탈없이잘자라준아이들을

볼때면오로지하느님의은총임을고백하지않을수없습니다.

지금 둘째를가진며느리가입덧으로제몸가누기도힘들터인데도아이

의끊임없는요구를지혜롭게풀어나가는모습이새삼감동으로다가옵니다.

우리보다더현명하고더풍부한사랑으로제자녀들을기르는아들부부에

게하느님의축복을빌며아이들을통하여온갖즐거움과기쁨을맛보게하

시고 부모 노릇을 통하여 갖가지 깨달음과 교훈을 주시며 사랑을 풍부하게

하시는창조주하느님께감사드립니다.

l기획자 주l장혜숙! 세 자녀가 장성하여 떠난 슬하에 찾아든 손자가 귀여워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은 락없는 할머니인데, 그는 오늘도 여전히 할머니로 살지 않는다. 폭 넓은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며 희망의 에너지 전파자로서 늘 동분서주다. 그가 있어 그의 이웃들은 늘 활력을 얻으며행복을 가꾼다. 그와 그의 가족에게 항상 신의 가호가 있을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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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處作主(수처작주), 어느 곳에 처하든지 자신의 주인이 되라. / Be the master to your ownwherever you are.

“공부하는 방법이야 책에 이미 다 씌어 있다. 방법을몰라 공부를 못하는 경우란 없다. 다만 마음가짐이올바르지 못해 공부가 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올바르게 배우는 데 특별한 요령은 없다. 부지런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바른 마음가짐이 없이는 안 된다. 훌륭한 스승이 필요하지만 바른 마음가짐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좋은 환경도 좋지만 바른 마음가짐이 없으면큰성취를이룰수없다. 모든것은바른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 내 마음의 주인이 되지 않고는 아무것도이룰수가없다.”(정민 선생의 죽비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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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인 숙

2010년은 제게 조금 특별한 한 해 습니다. 인도네시아 교민 방송사에서

기획한 4부작다큐멘터리제작에참여하면서, 많이배우는한해 고또접

어 두었던 방송 일을 다시 시작한 해 습니다. 한국에서는 방송작가라는 이

름으로밥벌이를했었지만, 이곳에와서다시방송원고를쓰는일이생길거

라곤예상치도못했었지요. 일을놓은지이미세월이 10여년도더흐른뒤

라, 소위 말하는 방송 감각이라는 것이 많이 무디어진 것도 걱정스러웠습니

다. 하지만이다큐멘터리가인도네시아교민사회의역사와경제, 그리고인

도네시아를강타한한류, 교민사회의미래를짚는의미있는작업이될거라

는생각때문에선뜻일을시작할수있었습니다.

아무튼일년간의긴제작기간을거친다큐멘터리는‘오랑꼬레아의아리

랑’이라는타이틀을달고세상에나왔습니다. 그리고감사하게도 KBS 세계

한국어방송대회에서심사위원만장일치로대상을수상했지요. ‘4부-남겨진

가족들’이 한국에서 방송되었고, 자카르타의 한 극장에서 흐뭇한 시사회도

치 습니다.

그런데저는사실 12년동안이나자카르타에살면서도, 이땅에그토록치

열하게살다간한국인들이있다는것을까마득히모르는무지한교민이었습

니다. 아마 다큐멘터리 촬 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일이었겠지요. 그래

서촬 내내늘놀랍고새로운충격을받았습니다.

1920년대초독립운동가들의활동자금을대준사실이발각되어중국으로

도피했던장윤원씨가지인의도움으로인도네시아로망명하면서, 인도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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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한인사회의 또 다른 역사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자바와 칼리만탄에 이르

기까지, 포로수용소의감시원이거나혹은비행장을만드는강제노역을하는

징용자등으로수많은조선인들이인도네시아로들어왔습니다. 모두가낯선

이 남방의 섬나라에서 그저 역사의 소용돌이에 자신들의 운명을 내맡긴 채

떠돌아야했던것이지요.

그들은 조국이 독립된 이후에도 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또다시 전

쟁범죄자로 내몰려 재판정에 서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인

도네시아정 속으로들어가네덜란드군에대항하는무장게릴라가되기도

했고, 또어떤이는인도네시아 화와연극계를이끄는수장이되기도합니

다. 이미 한국에서도 연극과 화로 만들어져 이름이 알려진 양칠성과 허

감독이바로그들입니다.

인도네시아 화계의거목으로칭송받는1세대감독들대부분은허 이세

운 학교와 무대에서 공부를 했던 그의 제자들이었지요. 자카르타 시내에 있

는한 화센터의지하필름보관소에서60 년도더지난그분의필름을발견

했을때의감동은지금도잊히지않습니다. 화센터지하필름보관소의편

집기앞에앉아인도네시아최초의키스신으로 화계에파란을몰고왔었던

그분의 화를재생시켜보던때야말로, 이다큐멘터리가제게준가장짜릿

한보람의순간이기도했습니다.

역시 화감독이기도했던 화센터장은저희에게한가지새로운사실을

알려주기도했었지요. 허 이만든 화의첫장면은늘논과밭을보여주면

서시작한다고요. 그것은한국의많은 화와드라마에서흔히볼수있는기

법인데, 그가 한국의 평화로운 고향을 인도네시아 화 속에서 재현시키고

싶어했다는것입니다. 우리는모두무릎을치며그말에공감했습니다.

일제의 강제 징용으로 이 땅을 밟았던 그 분들에게 인도네시아는 형언할

수없는고통과인내속에운명을감내해야하는유배지 을겁니다.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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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과는 아무 상관없이 극한 속으로 내쳐진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들은 한결

같이질긴희망의뿌리를놓지않으려했습니다. 그것이비록내일아침이면

사라질 서 픈 운명을 지녔다 해도, 그들은 마치 밟히고 밟히면서 되살아나

는 고향의 보리밭처럼 그 희망을 되살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인도

네시아 독립의 한 길목을 죽음으로 밝혔고, 또 인도네시아 화계의 위대한

서장을열었지요. 그뿌리가바로지금의인도네시아한인사회로이어져온

것입니다.

그들이 밤마다 고향과 가족을 그리며 바라보았을 남방의 하늘을, 오늘 제

가 바라보며 섰습니다. 그토록 처절했던 당신들의 삶을 이리 함부로 들여다

보아도되는것인지, 어쩐지용서를빌고싶어졌습니다. 그리고우리들의삶

이자꾸이리가벼워져도되는것인지묻고싶었습니다.

역사는미래를사는이들을위한거울입니다. 그거울속에서그들의삶이

쩌 쩌 한 목소리로 살아있습니다. 단 한 순간도 허투루 사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것을그들의절박했던하루하루가우리에게이야기합니다. 어쩌면그

저조각난거울한쪽을꿰맞춘데불과할지모를다큐멘터리속에서그들의

삶은 그대로 저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남방의 뜨거운 햇살을

견디며그들이불 을아리랑을저도함께부를수있을것만같습니다. 배움

은언제어디서나이렇게그침이없나봅니다. 내일이기대되는이유입니다.

l기획자 주l채인숙! 그녀는 1971년생으로 한국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하 으며, 지금 인도네시아에서도 여전히 방송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 방송의 리포터 역할에도 일가견을 지녔다. 인도네시아 한인문인협회 회원 외에도 다양한 봉사활동을 적극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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繩鋸木斷

水滴石穿(승

거목단

수적석천. 菜

根譚

後篇

句), 새끼줄도

톱삼아

쓰면

나무를

끊을

수있고

물방울도

오래도록

떨어지면

돌을

뚫을

수있다. / A straw

rope can cut a tree if it is used as a saw

and

a drop of water can

penetrate a stone if it

drops for a long

tim

e.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고

강변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러나

신의

역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면

뜻을

정하고

노력을

하다보면

반드시

무엇인가를

이루게

됩니다. 새

끼줄로

톱질을

하여

나무를

자르고, 물

방울을

떨어뜨려

돌에

구멍을

내고자

하는

신념이라면, 설

사목표한

것을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무엇인가를

반드시

얻게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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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정 식

공자는“세사람이함께있으면, 그중에는적어도한사람의스승이있다.”

는말을했다고한다. 젊은나이에이역만리남의나라에와서연륜을거듭하

면서초로에다다라깨달은것은, 인생살이는죽는그날까지끝없이어디에

서든배워야한다는너무나평범한진실이다.

그런저런이유로인도네시아에정착한지어언 19년을헤아리게되었다.

이세월의무게가얼마나무서운지, 이제는한국에가면편안하지가않고남

의나라에온듯다니러온나그네란느낌을떨쳐버릴수가없고왠지어색

한사회상을보는듯하고, 인도네시아로돌아와공항에내려야내삶의터전

으로돌아왔다는편안한마음이들기시작한것이다. 하지만지난세월을되

짚어보면인도네시아에정착해야하는목적의식없이, 더부살이하는조심성

도없이너무건성으로외국인으로서현지생활을해온것이아닌가하는후

회와불안감이엄습할때가많아졌다.

몇 년전에자카르타공항에손님마중을나갔다가참으로걱정스런장면

을 목도했다. 막 도착한 한국인이 어설픈 인도네시아어로 자기에게 짐을 맡

기도록성가시게하는현지인에게경멸조로마구고함을쳐대는장면이었다.

늘있는일이니화내지말고조용히거절하라고했지만, 속으로‘인도네시아

인들을얼마나안다고겁없이공공장소에서허세를부리나?’불안하기그지

없었다. 비단그사람만의선입견이아니라나부터출발이그러했으니남나

무랄처지가아니었다.

인도네시아에대한비하감은, 현지인들을만나면서현지사회환경을둘러

보면서사회구조적비리와모순과허구와부패상을접하면서얼마든지생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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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있고누적되는선입견이다. 하지만, 우리한국인들이놓치지말아야할것

은 한국에서 접하지 못했던 현지인들의 훌륭한, 인간적인 모습들이다. 이러

한점들이눈에들어오고뇌리에남으면서서히이곳이살아볼만한타향, 편

안한곳이되지않을까한다.

내가 인도네시아인들에게서 인간미를 느낀 첫 경험은 19년 전 이 나라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이민국 사무실에 취업 허가증을 발급하러‘손도장’을

찍으러가서일어났다. 더운공기에담배연기, 냄새와사람으로북적대는북

새통에혼이빠졌던가보다. 현지인직원이시키는대로손도장을찍고돌아

오는차안에서그제야손가방을이민국대기실의자에놓고나온것이생각

났다. 그가방에는수첩은물론얼마안되는달러까지들어있었으니얼마나

당황했던지. 짧은시간동안이지만자책감과더불어이곳현지인들에대해서

듣고가졌던부정적인생각으로가방을찾을것을거의포기한채차를돌려

가 보니, 자주색 내 손가방이 대기실 이민국 직원에게 맡겨져 있었다. 현지

여자분이분실물이라며맡겼다는것이었다. 지옥에서천국으로온안도감은

물론이요, 내가 상상했던 현지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에 대해서 마음

속으로속죄에속죄를거듭했다. ‘하느님감사합니다. 이곳도틀림없이좋은

사람들이많이사는좋은곳이군요. 제가멋모르고부질없는생각을많이했

습니다.’

그이후, 19년이란긴세월동안현지인들에게속은경험도많고배신당한

경험도많고손해본경험도많지만, 그래도이곳을살아갈만한편안한곳

으로여기는데는그많은부정적인경험보다더욱많은긍정적인경험, 감동

적인경험을하며좋은인도네시아친구들을마음에담았기때문이다.

나는한국인이투자한제조업체에근무한다. 그중에서도많은한국인들이

종사하는노동집약적인사업체인신발업이다. 모기업에현지인 18,000여명,

내가 몸 담은 회사는 7,000여명을 비롯해서 신발 관련 자회사를 다 합치면

무려 3만여명을헤아리니, 그냥사람들이떼거지로모여더불어먹고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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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하고있는

것이다. 흔히 딸

린가족까지포함

하고, 자재 협력

업체까지 망라하

면 웬만한 도시

인구가 벌어먹고

사는터전인셈이

다. 흔히들 기업

은사람이한다고

하지만, 내 직장처럼사람, 특히현지인손끝에서벌어먹고살게되다니참

으로대단한인연이아닐수없다.

어딜가나사람사는곳이라면, 나쁜사람은당연히있음을알게된것은

어려서부터이다. 그러나그나쁜사람들보다더많은, 엄청나게많은사람들

이 있기에 하나의 사회가 존속된다는 것은 살아갈수록 체득하는 진리이다.

이곳인도네시아도좋은사람이너무나많고, 아름다운풍습이있고, 인간미

넘치는 가족애가 진하다는 것은, 비단 그런 면을 발견한 나의 행운이라기보

다함께살아본우리모든외국인들의체험일거라본다.

16년전처음부임한공장을관두게되었을때의일이다. 없던부서를새롭

게 만드느라 직장경력이라곤 없는 올망졸망한 신입사원들을 받아 어설프게

업무체계를꾸며놓고떠나게된것이다. 내가마지막근무를하던날, 부서

아침조회에서사직사실을공표하고매번하듯이조회말미에이나라국가

를합창하는데, 엄숙해야할국가제창이그렇게구슬픈이별곡이되었을까.

10명 남짓한 부서원들이 울기 시작하니 나 또한 울먹이며 끝내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우리 직원들이 그렇게 나에게 정이 들었나 싶을 정도로 정이

많은 현지인의 순수한 마음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걔들과의 인연이 아직도

회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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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고, 그때의정감은아직도훈훈한추억이다.

그 이후에도서로돕고사는현지인들의모습을보는것은흔한인지상정

이 되었다. 우리 공장에는 많은‘또순이’들이 있다. 자기가 번 돈을 대부분,

시골에사시는부모님께보내동생학비며부모님생활비에보탠다. 이갸륵

한‘또순이’들이사는자취방을가보면, 타일바닥이면그나마나은편이고,

대게시멘트바닥에간이용이불, 조리기구라곤찾아보기힘들고, 전등하나

달랑 매달려 있곤 한다. 직원들이, 지붕에서 비가 샌다고, 자식들 상급학교

진학한다고, 아내가애낳는다고돈빌리러오면무계획한살림을산다고야

단을치지만, 동생학교에보내야된다며, 부모님수술비, 약값이라며돈빌

리러오는직원들에겐차마나무랄마음이생기지않는다. 얼마나갸륵한가?

자기가진것부족하니꿔서라도친지를도와주겠다니.

처음현지에왔을때, 어릴때봐온한국의 70년대모습을발견하고, 현지

인들의 느리고 순박하고 가난한 생활의 외견만 바라보며, 내 나름대로 그들

이 불행하리라,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잘못된 착각인가를 해를

거듭할수록 인정하는 시기에 이르 다. 오히려, 오늘날 한국의 경제 지상주

의내지물질만능주의가예전에우리가느꼈던행복을아련한추억으로돌

려놓은현실을목도하게되니현지인들의아직도순수한형제애와이웃사

랑을부러워하게되었다. 예전에나는얼마나우물안개구리같은생각에사

로잡혀있었던가?

四海兄弟. 어디를 가든 모두 형제라는 마음으로 남은 타향살이를 해 보

련다.

l기획자 주l최정식! 인도네시아 살이 19년, 신발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의 따뜻하고 겸손한 마음과자기 충실은 주위에 정평이 나있다. 특히 독실한 신앙생활은 그가 속한 공동체 일원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이 되고 있다. 그가 맺어내는 선한 결실들이 이웃과 이웃에게 빛이 될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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視遠惟明(시

원유명. 書

經句), 멀리

보고

밝게

도모하다. / See farther and

aim

brigh

tly.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때로는

이십의

청년보다

육십이

된사람에게

청춘이

있다. 세

월은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사무엘

울만

>

멀리

보고

밝게

도모한다면

물리적인

나이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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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연 경

딸이 돌아온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사회생활을 하던 성

장한딸이부모의슬하로돌아오겠단다. 딸의결정을들은남편은연일함박

웃음이다. 남편이경 하는회사에서함께일할것을몇차례나권했던남편

으로서는그때마다사양하던딸이돌아온다고하니, 유비가삼고초려로마침

내제갈공명을얻은느낌인가보다. 언니가돌아온다는것을알게된두동생

도환호다. 언니라지만열살, 열세살이나나이차이가있으니때로아빠엄

마보다더어려워하기도하는언니다. 하지만함께살게된다니퍽이나좋은

모양이다. 나또한딸들이함께어울리는모습을생각만하는것으로도뿌듯

하고 즐겁다.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만 가면 큰언니를 향해‘마미 마미’하고

불러제언니를곤란에빠트릴막내를생각하면웃음이터지기도하고, 서로

다투기라도할때면나이와상관없이누가질세라서로에게생떼를부릴것

을생각하면‘이일을우짤꼬’싶기도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다. 내게는 큰딸이 슬하로 돌아오는 것이 너무도 좋은

두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선 9학년인 둘째나 6학년인 막내가 대학을

진학하기전까지충분한시간동안을언니와함께생활을할수있다는것이

무엇보다좋은일같다. 타국에서나고자란아이들의대다수가그럴것이듯

채우기 어려운 부분이 동족의 문화요 친척관계다. 그래서 대개의 부모들은

설이나추석등명절이면이웃끼리음식을한두가지씩만들어서함께모인

다. 음식을나누어먹고합동으로세배도하고명절이야기도하면서아이들

에게 북적거리는 명절을 경험하게 한다. 이웃사촌이 친척의 역할을 대신하

는것이다. 어찌본국에서의경험과비교가될까마는부모로서는늘작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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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이라도 기울이게 되

는데, 이런 점에서 큰

딸의 역할이 어디 한

두 가지겠는가 싶은

것이다.

다음은 인도네시아

사립학교에 다니는 어

린 두 딸의 학부모(?)

로서큰딸의역할이다.

이는잠시다니러와서

만날때에도스스로잘

해낸 부분으로서 엄마로서 내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다. 엄마의 모

자란언어능력으로인해어찌할수없는부분을메워줄수있을것으로믿

는다.

우리가족이해외근무를하게된가장을좇아인도네시아에온것은큰딸

이초등학교 5학년때다. 당시별다른정보가없었던우리로서는앞선다른

주재원들의 향을받아큰딸을한국국제학교에보냈었다. 1년쯤지난뒤에

는들은정보도있고해서 어로수업을하는타국적국제학교로전학을시

킬까고심하 지만, 주위의눈도있었고차편도문제가되어이리저리알아

보다그냥포기를하고말았다. 그런데큰딸을대학에보낼즈음알게된사

실은 딸이 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로 당연히 어가 뛰어날 것으로

여긴다는점이었다. 그리고국내의제또래에비해언어와행동등한국적정

서가많이뒤떨어진다는사실이었다.

그러므로둘째와셋째를 어로수업을하는학교에보내게된것은 어

라도 잘해보게 하겠다는 작심을 한 시도 다. 그런데 거기에도 어느 만큼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아이들과 어울려 인니어도 구사하면서 어도 능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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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로벌한아이들로잘키워보자는부푼꿈을안고변화를시도했

는데, 이 변화 앞에서 바로 엄마인 내가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곤란을 겪은

것이다. 참으로가슴아팠던것은이제갓초등학교에입학한막내에게조차

모든것을너스스로가할수밖에없다고못을박았던점이다. 아이가얼마

나 불안했을까를 생각하면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다. 다행히 두 딸이 친구들

과 잘 어울리고 좋은 성적표를 받은 적도 많아 뿌듯한 때도 없지 않았는데,

그러나시간이흘러학년이올라가도허점은헛점이었다.

국내제또래들의치열한경쟁분위기를모르는아이들은근본적으로긴장

감이없었다. 조바심을치는엄마를오히려이상하게취급을했다. 물론모국

어에도약해일반생활과민족문화전반에서이해력이뒤떨어졌다. 단지 어

를제언니보다더잘한다뿐이지학습전반을자신있게이끌고나가지못

하는것같았다. 이것이어찌비단내딸들만의문제일까만누가뭐래도그들

은한국인으로살아야할것이기에, 이또한큰딸의도움을필요로하는부분

인것이다.

슬하로돌아오는큰딸! 그 딸에게향하는내진정한마음은사실위몇가

지바람보다는미안함이더많다. 외국계국제학교를다니지못한큰딸은외

국에서 공부했으면서 어도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참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 음을 알기 때문이다. 국내와는 달리 느슨한 경쟁구도 속에서

중·고등시기를보냈고, 대학마저어느부분특례의혜택을받아입학을한

딸이 대학에서도 이런 저런 상황에서 매우 당황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딸이대학졸업후이어진사회생활의어려움도혼자서해결하며곤란을

겪었을것을생각하면미안한일이한두가지가아닌것이다. 그러기에모든

과정을잘견디고이겨낸큰딸에게자랑스러움도크다. 더욱감사한것은딸

의마음이다. 틀속에가두거나심한압박감없이순수하고건강한정신을가

질수있도록키워준것에대해부모에게감사하고있다는사실이다.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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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서가져야할주체성을상실하지않도록강조한것을기억하는대목에서

는정말장성한딸이지만엉덩이를토닥거리지않을수없이고맙다.

세딸을키우며교육을하다보니절실하게깨우친것이있다. 자식교육에

는그때그때상황이있을뿐어떤정답도없다는것이다. 그러므로처음부터

다시시작한다해도굴곡을겪을수밖에없음은자명하다. 하여나는거창한

교육관같은것을자격이없다. 나름있다한들내세울바가아니다. 이책의

목적에 부합하는 기록할 만한 교육적 경험마저도 빈약할 뿐이다. 다만 경험

임을내세워강조하고싶은말이있다. 한국인은 원히한국인일수밖에없

다는점이다. 그러므로모국어나우리의전통관습, 그리고우리정서에따른

사람과의관계등참다운우리의것이야말로더없이소중하다는의미다. 타

국에서자라나는아이들교육에서우선되어야할것이아닌가싶은것이다.

l기획자 주l하연경! 그녀는 인니 거주 15년차 주부다. 세 딸의 어머니로 정성을 아이들 교육에 아끼지 않는다. 월화차문화원, 루시플라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필묵연 회원으로 두 번의 전시에 참여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이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으로 주위의 칭송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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躍然生豊(약연생풍), 약동과풍성 / A throb and abundance.

2011 신묘년 토끼해를 맞으며 사자성어하여 연하장에 활용했었던 단어가‘躍然生豊’입니다. 도약의 토끼 이미지를 표현한‘躍然’과 풍성한 한 해를 기원하는 의미로‘生豊’을조화했던것입니다. 남을 위한 기도란 번식력이 강합니다. 하면 할수록 하고 또 하게 됩니다. 잡생각도 생각은생각이어서다스리지않으면끊임없이꼬리를잇습니다. 아무렇게나덜 생각을따라 갔다간 낭패를 볼 수도, 무력감에 빠져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기왕 생각을하려면 자그대로살아있는깨달음(生覺), “좋은생각”이어야하고다른사람을위한기원이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한 해의 첫 들머리에서 길상어를 주고받는이유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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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 아

아직 잠이 덜 깬 내 귓속을 엄마의 다감한 목소리가 간질인다. 아침 식사

준비에즐거우신어머니의목소리에나는내가집에와있다는사실이실감이

된다. 마음이참편안하다. 집을떠나있었던것이이제고작 1년반이고, 그

간두번이나집을오갔는데자카르타의집내방에누워있다는것이새삼스

럽다. 사실내게 1년반은시간적인부담보다는심적부담이더컸던기간이

었다.

미국존스홉킨스대학에서의한학기공부는내가부모님곁을떠나있었던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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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장기간이었

다. 더군다나 모든

것이낯설었던미국

생활은몇가지에서

적잖은 부담이었는

데, 특히 막 대학생

활을시작한새내기

의 기숙사 생활과

공부는결코만만찮

은 것이었다. 그러

나경제적부담백배인부모님을기왕합격을한학교이니꼭공부를해보고

싶다고 설득하여 등록을 했던 학교 던 만큼, 오기와 호기심으로 버텨냈던

기간이었다. 반년 후 다시 서울의대에 합격을 하고 입학을 하여 치러낸 1년

과정또한결코만만했던것은아니어서, 부모님품안인자카르타집에서맞

는아침이내겐정말특별한느낌이아닐수없다.

이자리를빌려고백한다. 난행운아다. 내가원하던존스홉킨스대학의합

격과 수학의 경험, 부모님과 내가 함께 원하던 서울의대로의 진학, 그리고

잠시지만방학을맞아자카르타의내집에서편히쉴수있는것도다행운이

다. 더 멀리 돌아보자면 아버지가 인도네시아에 근무를 하시게 된 것도, 그

로인해내가미국계국제학교JIS에서수학을한것도모두행운이아닐수

없다.

해외에살아특례로대학에입학을했지만, 인도네시아에살지않았더라면

미국의 대학으로나 서울의대에 진학하겠다는 목표의식을 선뜻 갖지도 못했

을 것이다. 내게 행운을 내리게 하고 받아들이게 한 것은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과교육이었다.

난어렸을때매우소극적인아이 다. 거리낌없이낯선사람에게도말을

2005년 여행 중 동생 건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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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걸곤했던내남동생건우와는정반대의성격이었다. 막 JIS에입학해

어로간단한의사소통을할수있게되었을즈음우리가족은싱가포르로여

행을 가게 되었다. 동생 건우는 우리가족과 함께 케이블카에 동승한 외국인

과되는 어안되는 어를써가며이야기를나누었다. 그렇지만나는입을

떼지못했다. 말을걸어보라고나를부추기는엄마가제발그만했으면좋겠

다는생각뿐이었다. 지금이라고해서특별히적극적이라할수는없지만, 이

을쓰며돌아보니예전보다는훨씬더적극적으로변한나를느낄수있다.

어머니말 처럼그또한JIS를다니면서부터변한성격인지도모르겠다.

내가처음JIS에전학을했을때는한국국제학교JIKS에서초등학교3학

년 과정을 마치고 나서다. 그러므로 외국인 선생님과 의사소통을 하고 외국

인친구들과어울리기에내 어실력은턱없이부족했었다. 그안되는 어

갖고라도 무조건 들이댔어야 하는데 내 성격은 그렇질 못했다. 다행히 한국

인친구 2명이그반에있어서위안처가되어처음몇주나는늘그친구들

과만놀았었다. 나는일명나의‘comfort zone’을설정해놓고있었다. 그러

던내게어쩔수없이선생님과의사소통을시도하지않으면안될일이생겼

다. 친구가체해화장실에서구토를하는바람에내가그것을선생님께알려

야했던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어로 표현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지만 아

픈친구를그대로두고안절부절만하고있을수는없었다. 나는담임선생님

이시던 Mrs. Ishino께로 달려갔다. 나는 달려가면서도‘토하는 것’을 어떻

게표현해야하나떠올려봤지만그 어단어를알지못한때이니떠오를턱

이없었다. 나의최선은“Mrs. Ishino, Christine(친구이름) 우웩!”이었다.

그런식으로시작된나의JIS에서의생활은쉽지만은않았다. 외국인친구

들과친해지기위해잘되지도않는 어로무엇이든말하려노력했고이친

구들에게과자와같은일종의‘뇌물’을바쳤었던사실도지금고백한다. 무대

에 서는 것도 싫어하는 내가 Choir수업 때문에 노래 공연을, UN day에서

태권도시범이나난타를, string수업을들어현악오케스트라공연을해야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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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하지만신기하게도나는이런것을갈수록즐기게됐다. 처음에나는내

자신을 그렇게 노출시키는 것을 두려워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뭐라

고생각할까하는생각이늘들었다. 하지만내가무대에올라열심히한만

큼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것도 느꼈다.

또한내가실수를저지르게되더라도그것으로관객에게웃음을줄수있다

면내자신에게만족할수있게도되었다. 어느때부터자신감을갖고무대에

서게되었고, 오히려다른사람들의시선을즐기게되었다. 이것은수업이라

는무대에서도마찬가지 다. 내가발표할때쓰일포스터를잘만들거나,

을 잘쓸때, 과학수업에서실험을잘했을때, 선생님과동기들이라는관객

으로부터 갈채를 받고 인정을 받았다. 잘한 예를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보여

주면동기들은경쟁의식으로시기하기보다는인정하고격려해주었다.

국제학교에다녔으면당연히 어를잘할것이라는편견을갖지만 어는

10학년이전까지나의블랙홀이었다. 10학년이면이미JIS를무려7년다닌

후 는데, 나의발음이나기본적의사소통은어땠을지몰라도 어로제대로

된 한편을쓰는것은당시나에게가장힘든일이었다. 9학년때 어선

생님께서 을한번쓸때마다수없이고치게하신것이실력증진의주요인

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보다는 좋은 을 쓸 수 있다는 격려가 무엇보

다나를자극하고더나은 을쓰기위해발버둥치게했다. 이렇게JIS 교육

곳곳에서나에게내자신에대한믿음을주었다. 나를끝까지이끌어지금의

성과를이루어낼수있게한것이다.

학교에서뿐만아니라인도네시아의가르침도있었다. 한국인으로서가져

야하는태도인데, 첫째가한국인인것에대한자부심이다. 둘째는나의행동

이한국인의이미지에어떤 항을미칠수있는지생각하는것이다. 내가무

심코 하는 행동으로 자칫‘한국인들은 원래 저런가 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인도네시아인들은 한류 덕분인지 한국인에

대한견해가대체적으로좋았다. 한국인을무시하기보다는인도네시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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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더선진국인나라의사람들로오히려우상의대상으로바라본듯하다.

이제대학생이되어이 을쓰다보니새삼나의청년기를돌아보게된다.

난아직큰목적을이루기까지먼길을가야한다. 인도네시아에서의 13년생

활은이큰목표를이루는데까지좋은시작을만들어주었다. 내고향이라고

생각하는인도네시아생활에서얻은배움은돈으로주고살수없는것이고,

나를끝까지이끌어줄큰요소다. 그러므로이러한가르침들을명심하려한

다. 인도네시아에서의시간과특히부모님의희생을무용지물로만들지않도

록난나의큰목적을이룰것이다. 참감사한오늘이다.

l기획자 주l한선아! 6살의 어린 나이에 주재원으로 파견된 아버지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살게 되었다.미국계 국제학교 JIS에서 초, 중고 과정을 마친 뒤, 미국의 존스홉킨스대학에서 한 학기를 수학하 다. 그 후 서울의과대학에 합격을 하여 현재 2학년 재학 중이다. 그의 장도에 신의 축복이 항상 함께 하기를 빈다.

백악관을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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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爲山(여

위산), 마치

산을

만드는

것같이

/ As

mak

ing a mou

ntain.

譬如爲山

未成一ぅ

止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ぅ

進吾往也.(論

語子罕篇

句). 학문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산을

쌓는

것과

같다.

마지막

한삼태기를

이루지

못하고

그만

두는

것도

내가

그만

두는

것이다. 비

유하자면

땅을

고르는

것과

같다. 비

록한

삼태기를

부어서

나아감도

내가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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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숙 의

저도대다수의여느친구들과마찬가지로이십대후반의나이에결혼을했

습니다. 이제어언 30여년이지났습니다. 그 사이삼남매를낳고길 습니

다. 그런데 이번 이 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는 무자격 엄마라는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쳤습니다. 특별히‘엄마의 교육’을 따로 받아본 적이

없었던것입니다. 혹여‘엄마의자격’을논하는기관이라도있다면제게옐로

우카드가제시될지도모르겠습니다.

자격증이없었어도결혼후제삶의주된관심사요주제는‘자식교육’이었

습니다. 남들처럼 조바심을 내기도 했고 열정을 발산하기도 했습니다. 각각

의사람들이저마다의생각과가치관을갖고있기에부모의교육관또한하

나로통일되어있지않다는것에저또한예외가아니었습니다. 자식을어떻

게교육시켜야하는가에대한문제가해법이하나일수가없기에, 모든학부

모의화두가교육이면서도결국은각자의소신대로갈수밖에없다는것과도

다르지않았습니다.

그래서감사하고놀랍습니다. 엄마교육과정을거치지않았어도, 자격증이

없었어도감사하고놀랄일이많이생겼습니다. 큰아이둘은이미기대에부

응한성장을했고, 아직9학년인늦둥이막내도믿음직스럽게성장하고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나름의 아이들 가정교육 방식을 간단히 정리하면서 자

만에빠져보렵니다. 모든엄마가그렇듯제게도나름의철학, 나름의방식은

있었다는의미입니다. 혹여이 로인해내아이들이넉넉히유자격부모가

될지, 아이들의아이들을기르는데작은지침이될지도모르잖습니까? 한마디

로이기회에작정하고아이들자랑좀, 아니제자랑좀하고싶은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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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심과 배려’, 이는 제가 아이들을 기르면서 항상 강조했던 말입니다.

자립심은인생을스스로개척해나갈수있는독립심을기르게하려는방편이

었고, 배려를 통한 양보는 타인과의 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덕목으로서 스

스로를행복하게하는것이라생각을했기때문입니다. 자립심은자신으로부

터비롯되는것이면서자신에게귀착되는것이고, 배려는타인에게귀착시키

는것으로서이두가지만조화가잘된다면다른진리들은저절로해결될것

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교육에 관한 좋은 말들을 찾으려면 얼마나 많은

지요. 그런데저는현실적이고간단명료해야한다고생각을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아이들의 학습활동 준비나 방학 과제물은 모두 스스로 해야

할임무임을아이들에게인지시킨것은자립심기르기의일환이었습니다. 자

신이 잃어버린 물건 또한 스스로 찾아오게 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갑작스럽

게비가오는날에도학교로찾아가는일이없이기다렸었는데, 다스스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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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해결해냈습니다.

배려와양보에대해서는늘점검하고타이르고했는데, “엄마는항상우리

만참고양보하라고하느냐?”고볼멘소리를하기도했지만, 결과적으로는생

활에서배려와양보를실천하는아이들로자라주었습니다. 물론아이들각자

가지닌선천적‘성향’을무시할수없는것인지라조금씩개성이다릅니다.

그러나기본적으로부모의교육철학과맞닿아성장해나가는모습은한편으

로뿌듯한마음을갖게합니다. 내아이들이라그렇게보일까요?

첫째에게는첫째다운좋은강점이있습니다. 이미대학을졸업하고사회에

진출한큰아이는사람들이모인자리에가면항상웃음을선사하여분위기를

밝게 합니다. 어르신이나 선후배에 관계에서도 예의 친화력을 잘 발휘합니

다. 학창시절학교급식당번을자원해서솔선수범한다든가, ‘수화’동아리에

참여하여어려운이를돕는등단체활동에도적극적이던것이사회적으로도

그대로이어지고있습니다. 저는감히주변에서가까이두고싶어하는사람

으로성장했다고판단을합니다.

둘째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었습니다. 더욱 대견스러운 것은 스스로

계획하며실천하는학습태도를보인다는것이지요. 자기주도적학습을통해

점진적으로 변화를 하고 있으므로 요즘의 교육 트렌드를 아주 잘 소화하고

있다고볼수있습니다. 교육과정입안자들에게도칭찬받을일이아닐까생

각을 합니다. 둘째는 현재 대학생으로서 교육의 성과를 말하기에 아직 이르

지만지금처럼아름다운모습을결실로이어내리라믿습니다.

셋째는 어릴 때부터 목표를 잘 세우고 목적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적절히

해냅니다. 이제 9학년으로서아주예민한시기에인도네시아에전학을와서

적응에어려움이있었을것인데, 나름의목표를세우고인내하고실천하면서

서서히잘적응을해주었습니다. 어느정도적응기를거치면서또다른목표

를세우고도전해나가는모습이성공적인미래를믿어의심치않게합니다.

이 삼남매가 각기 자라던 모습, 학습과정 그 모든 것이 세월이 더 지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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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생생히남을것입니다. 저는그아이들이지닌각각의특성을인정

합니다. 소위 학생 평가 기준인 학업 성적에 연연하지 않았던 것도, 각각의

특성을인정하자는원칙이흔들리지않았기때문입니다. 어찌인내를필요로

할때가없었을까요. 그때마다대화를시도한것은정말잘한일이었다고생

각합니다. 대화를하다보면자잘한실수라도아이들이스스로인정하곤했는

데, 그것은바로제게격려와칭찬을할수있는기회를준것이었습니다. 아

이들의 공로가 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엄마의

교육에감사하다는말을듣게될때면정말기뻤습니다.

사실여기에는든든한울타리가있었습니다. 말하지않아도힘을발휘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말로는 다하지 못할 가장인 남편의 향력입니다. 남편은

늘바쁜중에도참으로자상하게가장의역할을잘해주었습니다. 저와아이

들사이에팽팽한줄다리기를할때도남편이기꺼이소통의통로가됨으로

써가족간의부드러움이유지되었습니다. 소양을갖춘개인으로성장시켜야

한다는것은남편의절대적인주장이기도했는데, 요즈음아이들을바라보는

모습이늘자애로운것을보면남편의바람이아이들에게서잘발휘되고있

다는 것을 느낍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입니다. 기다릴 줄 알게

해준아이들, 기다림의결과를하나둘씩보여주는아이들, 앞으로도감사할

일이연이어질것을굳게믿습니다.

l기획자 주l 허숙의! 법인장인 가장을 따라 인도네시아에 3년차 거주하고 있는 주부다. 인도네시아 한인들 다수가 그렇듯 이산의 상태에서 양쪽의 자녀교육에 열과 성을 다해야 하는 상황에 있지만,선 굵은 원칙과 방식으로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얻어내고 있다. 그의 소신이 아름답게 빛이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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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鳥數飛(여조삭비), 하늘을날기위해자주날갯짓을하는 새와 같이 / Like a bird which flaps the wingsoften to fly to the sky.

새가 목적지를 향해 끊임없는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사람도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히는것은목적하는바를이루고자함입니다. 長途(장도), 머언길에오르는젊은이들을보게됩니다.부모의슬하를떠나고국의대학교에진학을하거나또다른 나라로 유학을 떠나는 젊은이, 군 입대를 앞두거나취업이란장도에들어선젊은이들입니다. 많은날갯짓을 해야 하는 그들의 장도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돌아보면 모든 이의 인생이 장도입니다. 이제 그 길에들어선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그 여정 중에 있는 장년,회고할 장도가 긴 노인과 같이 현재 처한 위치가 다를뿐각자의장도를가고있습니다. 장도에는희노애락이많습니다. 모든 이의 장도가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부디長途에康健如意하소서! (인재 손인식의 필묵향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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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성 민

홍준기! 네가근무하는곳은아직춥지? 날씨, 규칙적인생활, 명령에따라

야하는신분등모든여건에도주어진상황을긍정적으로수용하며꿋꿋하

게잘해내리라믿는다. 아빠와엄마, 그리고누나까지도너를향한안쓰러운

마음이어찌없겠냐만, 몸이건강해지고당당해지며내적으로는더욱깊어질

너를상상하면뿌듯한마음도없지않단다.

편지와전화, 또면회를통해서네가다소힘겨워한다는것도느꼈고, 그러

는순간에도미래에대한생각이많다는것도느꼈다. 그런의미에서무엇이

고하고싶은것대부분다하면서생활할수있었던고등학교까지의인도네

시아생활이더욱그리울것으로짐작도한다. 혹 그시절에네게모든것이

쉽게만느껴졌다면지금은세상을성찰해볼수있는아주좋은기회라는생

각을한다. 인도네시아에서의네친구들중에는부잣집자제들이많았던것

으로안다. 그들중일부는실로엄청난부자의자제들이었지. 그들과어울리

면서혹돈이절대적이라는생각을가졌던것은아니지? 사실그즈음아빠는

늘그런것이걱정이었다. 돈만을우선시하는그런사고가네안에어느한구

석조금이라도자리하면어쩌나하고몹시걱정을했었다.

그래서때로는너와마음을터놓고진지하게인생과너의앞날에대해얘

기해보려고했지만너는그런시간을별로좋아하지않았지. 그저네가생각

하는것에만치중하려고하는느낌을지울수없었다. 깊은대화를못나누는

것이안타까웠지만그시기, 그나이쯤에는흔히그럴수있음도이해를했기

에 아빠는 좀 기다리자고 결론을 내렸었다. 아빠로서 책임감을 안 가지거나

포기한것이아니라, 아빠또한정도야다르지만그런시절이있었다는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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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하면서너를지켜보며기다렸던것이지. 만물의 장이라는사람도왜스

스로시행착오를겪어보아야만깨닫게되는지안타까워하면서말이야.

참으로다행스러웠던것은너의미국에서의 1년대학생활이었다. 아빠엄

마의슬하를떠난네가타국에서외롭게공부하면서생활의어려움, 세상에

대한두려움, 미래에대한희망등을복합적으로느껴간다는것이확연히드

러났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시기는 세상살이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것을너와내가함께느끼고있을때 다. 동질감때문일까? 아빤네

게사랑의마음이더많이쏠릴때 다. 이말은아빠는너를항상지켜보면

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네가 스스로 해결하기 아주 어려운 고난을 만난다면

수호천사처럼 짠하고 나타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결과적으로

는그런일도없고, 그런날도절대오지않도록네가잘해낼것으로믿지만

말이다.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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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사실은 너의 국방의 의무 실행에 대한 것이다. 대한민국 남자로서

당연히거쳐야할책임이바로군입대이지만시기적으로다소는외로운대

학생활에대한현실도피성도있지않았었니? 어쨌든아빠로선여러가지면

에서 아주 적기에 네가 입대를 했다는 생각이고, 제대를 하고 나면 너 또한

아빠의이말에동의를할것이다.

준기야! 네가입대를한지도벌써8개월이지났구나. 너의군기잡힌행동

과말투가상상이되고, 상관에게붙이는우 찬경례소리가들리는듯하다.

너를떠올리면아빠의마음은다소느긋해지고흐뭇한미소가이는반면엄

마는아직도네얘기만나오면눈시울적시곤한단다. 네가전화를할수있

는 시간이다 싶으면 일손을 놓고 전화기 앞에 앉아있기가 일쑤다. 심지어는

골프를치고동반자들과저녁을함께해야하는시간에도혹여네게서전화

가올까봐다른일을핑계대고서둘러집으로향하곤한단다.

준기야! 이모두는네가지금네게닥친현실을슬기롭게이겨내야하는이

유다. 부디상관의명령과지켜야할준칙에충실하고, 병 의동료들과깊은

우정을 쌓기를 바란다. 준기야! 아무리 말려도 붙들어도 시간은 간다. 제대

후에 복학문제, 여자 친구와의 문제 등 이런 저런 걱정이 많은 것을 느끼게

되는데, 너무앞서가는것아니니?

준기야! 넌아직앞으로많은인생을살아가야한단다. 성경말 에도오늘

염려는 오늘 족하고, 내일은 내일 그때 가서 걱정해도 충분하다고 했다. 너

무앞서서미래에대한고민을하지말거라. 걱정도습관이거니와, 닥치지도

않은일에대해걱정부터하는것은어리석은사람의전유물이란사실명심

해라.

준기야! 아빠와 엄마는 너의 성장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부모

다. 성장과정, 특히패기만만했던너를잘기억한다. 공부는다소소홀했지만

폭넓은대인관계는주위에도정평이나있었지. 아빠가놀란것은어느순

간알게된것으로서상대방을설득하는네말솜씨 다. 논리와호소력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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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빠가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다. 그때부터 아빠는 네가 언젠가는 공부를

잘한누나보다더성공할거라는은근한기대를갖게되었지. 사실누나가공

부도잘했거니와좋은대학좋은전공, 우수한졸업, 그리고졸업후에는많

은사람들이부러워할만한직장생활을하고있어서, 자카르타학부형들에게

두루알려졌잖니. 네게는그것이늘부담으로작용했을수있다. 그러나너는

담담하게네방식을고수했었지. 그런면에선참으로고맙다.

힘내라아들아! 항상뒤에서널위해기도하는아빠와엄마, 그리고누나가

있다는걸기억해라. “하늘은스스로돕는자를돕는다.”고했다. 너무당연한

말 아니니? 스스로를 돕지 않는 사람을 누군들 도울 마음이 생기겠니. 우리

서로스스로를돕는, 스스로의오늘에충실한사람이되자. “오늘은행복했던

날들이모두모여이루어지는것”이란다. 그오늘을건너내일건강하고행복

한모습으로만나자. 아들홍~준~기파이팅!

l기획자 주l홍성민! 중견 건설회사 CEO다. 인하대학 동문회장과 건설협의회, 백두회 등 사회활동에도매우 적극적이다. 그의 긍정적인 성격과 친화력, 넘치는 인정은 어디에서나 그를 필요한 사람으로 여기게 하고 있다. 자필묵연 회원으로 붓 씨를 즐기며 정기전에도 출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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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天爲徒(여천위도. 莊子 句), 하늘과 한 무리가되다. / Become a group with heaven.

內直者 與天爲徒 與天爲徒者 知天子之與己 皆天之所子 而獨以己言ペ乎而人善之 ペ乎而人겘善之邪 겭然者 人謂之童子 是之謂與天爲徒.(마음을곧게함은하늘과한무리가되는일이다. 하늘과이웃이된다는것은결국천자도나도 다 같이 하늘의 아들임을 자각하는 입장이므로 자기 말이 남에게 칭찬을 받든가 비난을듣든가 그런 것은 일체 도외시하는 것이다. 이같이 곧은 사람을 세상에서는 어린이 같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이것이 하늘과 한 무리가 되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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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역사는진리의창고이고, 바로지금여기가느낌의보물창고라는것은

이책을완성하는과정에서다시한번진하게느낀바다. 작품을제작하면서역사를뒤졌고,

원고를모으고쓰면서현실을찾아나섰었다. 역사에서나지금여기에서나늘사람의세상에선

사람이중심이고희망이며, 꽃보다아름답다. 이전의모든역사가그렇듯이나와내이웃이함께살아가는오늘도

흐르고흘러역사가될것이다. 옛사람들의이야기를즐겨읽고,

오늘내이웃들의이야기를 로남기고싶은이유다. 여기, 몇편이웃의이야기가있다.

스스로아름답게살아가며이웃을기쁘게하는이웃들의이야기가넘치는세상이되기를빈다.

- 인재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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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유 장로에게서 배우다 -

프롤로그

한사회가성숙하기위해서는반드시두루존경을받는원로가있어야한

다는것에공감하지않을사람은없을것이다. 또한그런분이있다면서슴없

이드러내야한다는것에도적극찬성하지않을사람은없을것이다. 그러나

이사회에진정한원로한분을 로드러내달라는작가손인식씨의부탁은

내게있어서매우부담스러운것이사실이었다.

다행이내게는떠올리는것만으로도존경하는마음이일어나를정화시키

는분이있고, 우리가사는사회를우리가서로아름답게꾸며나가자는취지

에도공감을해결과적으로이 을쓰게되었다.

여전히이 의당사자이신김재유장로님께서는당신을들추는것에대해

별로탐탁지않게생각하시지만, 나의이 은김재유장로님을비롯한이사

회의많은선배님들께진정한원로가되어주십사하는마음을진심으로바

치는 이기도 하다. 이젠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에도 40여년을 살아오신 분

들이 여러분 계시다. 어려운 타국의 환경들을 해쳐오셨고, 어려운 환경에서

훌륭히 자녀들을 길러내셨으며, 대부분 경제적 성과까지 이루신 분들이다.

개인의삶의여정이어느사회보다선명하게드러나는해외동포사회라는구

조적특성중에도귀감을삼을만한족적으로인해후배들의존경을받아마

땅한분들이다. 결과적으로는인도네시아한인사회의기반이되시는분들인

것이다. 혹여공감하지않는분이있을수도있지만, 바로그점때문이라도

기록은꼭필요한것이라는생각을한다.

원칙에 충실한 삶과 감성적인 교분

나와 김 장로님의 인연은 무려 33년여다. 나는 그 분을 가까이에서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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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직장 상사로 모셨었고, 사회활동 중에도 많은 시간을 지근거리에

있었으며함께일을하기도했다.

‘원칙에충실한분’, 그분에대한나의인상이다. 내가그분을향해표현

할수있는가장명확하고간단한말이다. 그분은어떤상황에닥쳐도좀처럼

흥분하거나 허둥대는 일이 없다. 언제나 침착하게 일을 분석하고 신속 정확

하게가능한한원칙적인방법으로처리하셨다.

70년대초기인도네시아원목개발사업에뛰어든업체들이칼리만탄 림

속이라는오지의특성상비정상적인애정행각이많을수밖에없는상황이었

다. 그러나 김 장로님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어느 모로 보나 원칙에

어긋난다는것이었다. 수십년이지금돌아볼때그분의뜻이선견지명이었

던것은너무도잘드러난다. 그 분의뜻을수용한많은사람들의노년이그

렇지못한사람들에비해너무떳떳하고당당하기때문이다.

원칙에 충실한 삶은 대인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벌써 오랜 세월이

지나고 있지만 그 분을 존경하고 따르는 옛 직원들이 많은 것이 그 실례다.

자신의옛직원들을친형제처럼잘보살펴주시고그들의어려움을함께나

누고있음이다. 사실김장로님을일각에서보면폭넓게대인관계를가지는

분이아니라고판단할수있다. 속된말로아무자리나참석하고아무나와대

충말을섞는등의시간은철저히아끼시기때문이다. 그러므로한번관계를

가졌던사람은나이가많고적음을떠나모두아우르는큰품성임은더잘드

러난다. 특히 그 교분에는 항상 촉촉하게 감성이 유지됨으로서 매우 특징을

지니기도한다.

이웃사랑과 뚜렷한 인생관

연합교회를섬기시는김장로님은신도들과의나눔도많으시지만, 특히어

려운 처지의 오지 선교사들을 돌보시는 데 많은 정성을 쏟으신다. 땅그랑에

위치한현지고아원에대한사랑도돈독하셔서혼자서도그곳에가시는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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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다. 언젠가함께동행하셨던, 고서만수목사께서도깜짝놀란사실이기도

하다. 인재손인식서예가를통해 <빛과소금>이란작품을제작해서걸어놓

고늘음미하시는이유가잘드러나는부분이다.

이미 오래전 이야기다. 사주인 사장의 유고시 다. 당시 직책이 전무이셨

던김장로님께서는회사의전반을아우르셔야할때 다. 그는매일아침출

근하면그날일정이나지난일에대하여물으시고는자리에앉아기도삼매

에 빠지셨다. 그 결과는 모든 일에서 기도처럼 신중함과 간절함으로 드러났

다. 기도의내용에대해물을때마다그냥빙긋이웃는것으로답을대신하지

만, 젊다면젊은40대후반의나이에도정확한판단과단호한결심을내리는

연유도기도에서비롯되지않았을까하는것이내추측이다.

참 가정적인 김 장로님은 참 인생관이 뚜렷한 분이다. 들여다보면 나라를

위한자세로부터시작이된다. 한인회수석부회장시절광복절행사때면만

세 삼창을 담당하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 만세 소리가 유난히 참석자들의

마음에파고들었던것은그분의나라를위한기본마음에서비롯된것이리

라. 늘그렇게대의를가지셨기에무슨일을만나든지올바른지혜를구하고

판단을 하신다. 올곧음과 군더더기 없는 일 처리는 인도네시아 교민회 수석

부회장을 역임하실 때도 잘 드러났던 사실들이다. 그래서일까 김 장로님은

나이가들수록말이많아지고설명이어려워진다는일반의상식을뒤집는다.

아주 간단명료하게 일을 대하고 처리하신다. 일에 대한 확신도 있고 지혜롭

기때문일것이다.

김장로님의특성은골프라운딩에서도잘드러난다. 침착함그자체다. 과

다한욕심을부리지않은다는증거가여기저기서드러나는데, 동반플레이어

들이감탄할정도의흐트러짐없는스윙과정확한퍼팅을구사하신다.

김장로님께서는삼남매를두셨다. 현재미국에사는큰아들내외를빼곤

둘째아들과딸가족이자카르타에산다. 둘째아들과딸가족이매주김장

로님 내외와 함께 예배에 참례하곤 하는데, 가족들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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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손자손녀가할아버지할머니에게재롱을떠는모습을보는것은정말보

기좋은풍경이아닐수없다. 장로님께서도행복해하시지만주위를향해서

도참좋은행복바이러스유포가아닐수없다.

출신지 이북에서 인도네시아까지

김장로님의고향은북한황해도다. 그래서인지지난연평도포격사건때

특별한관심을표하시고마음아파하셨다. 북한공산당이싫어남하를하셨

지만 모두가 그렇듯 고향에 대한 향수는 남다르다. 지난 2010년 문학행사

‘음악을통해본고향’에참석하셨을때마지막순서에서‘고향의봄’합창

이울려퍼지는순간가슴이미어지는듯하더라고고향그리움을숨기지않

으셨다.

김장로님의남다른삶은많은학업성취와이른해외진출을간과할수없

다. 그 분은 태평양 전쟁과 무관하게 순수한 노력으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산림개발에진출하셨다. 한국인이비즈니스차동남아로진출하는개척자

던것이다.

필리핀에서원목개발경험을축적한김장로님께서말레이시아를거쳐인

도네시아에 정착한 것이 벌써 43년여다. 인도네시아 동화에 몸을 담으시어

동부칼리만탄의발릭빠판에서원목개발을시작하셨는데, 그 후코린도그룹

이 중부 칼리만탄에서 원목개발 사업을 시작할 때 코린도의 기반을 놓으셨

다. 이후 신문용지 및 신발사업 등으로 사세를 확장하는 데 그 역량 발휘는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뜻하지 않은 변고로 인한 코린도와의 이별의 섭섭

함도잠시자신의기업을일구시기시작했는데, 현재의그것은성공그자체

라해도조금도넘치지않을것이다.

김장로님의외모적특징은당당함과온화함이라할수있다. 건장한체구

에서는다이내믹함이허물어지지않을원칙이느껴지기도하지만정작다감

한 미소와 언어구사에서는 온화함 그 자체일 뿐이다. 어쩌면 민족의 선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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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역사속교육자상이떠오르기도한다. 사실그분에게는그런꿈이숨어

있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에서 후진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하시려는 뜻이 있

는 것이다.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전문교육 또는 재교육이라고 할

수있는부분이다. 즉 학교의규모는작을지라도인도네시아엘리트를선발

하여무료로합숙을시키는, 마치한국강원도의민족학교형태를꿈꾸고계

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곧 장차 인도네시아 국민들을 이끌어 갈

지도자를육성하는일일것이다. 또한 한국인 2세들이참가한다면한국을

빛낼동량들도나올수있을것이다. 어찌뜻있는분들의바랄바가아니겠

는가.

에필로그

사실내가이렇게주저리주저리기록하는내용들은이미자카르타의많은

교민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다수의 인도네시아인들도 알고 있는

바다. 김 장로님께서는 인도네시아인들과도 폭넓은 교제를 하고 계시다. 흔

히 말하는 인맥이 튼튼하시다. 그 분의 현지인과의 교제를 옆에서 지켜보노

라면언제나품격있는교제를통해사람을관리해오신진면목이잘드러난

다. 스스로버림이없이최선을다하시는교제에서참으로느낄바가많은것

이다.

세월은 간다. 김 장로님에게서도 그것은 느껴진다. 아직도 젊은이 못지않

은 신앙열정을 드러내시고 지금도 그 분의 골프 실력을 따라가기가 어려울

정도지만, 안타깝게도 김 장로님의 어깨에 내려앉은 세월의 무게도 만만치

않게느껴진다. 한번은팔순잔치, 구순잔치를자카르타에사는옛후배와직

원들이모여해드리겠다고했더니크게웃으셨다. 그것은허언이아니다. 이

미 일부에서지만 뜻이 모아지기도 했다. 존경하는 분을 위해서라면 무슨 이

벤트인들 망설일 것인가. 더불어 자카르타에서도 Senior에 대한 배려와 잔

치가더많아지기를바라는마음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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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한인동포사회의 모든 원로분들의 평강을 기원하며 졸고를 마

친다.

한 상 재 (인니한인문화단체연합회장, 칼럼리스트)

l기획자 주l김재유! 자카르타에서 한인 원로로서 존경받는 김재유 장로의 이야기를 이 책에 싣게 된 것을기쁘게 생각한다. 김재유 장로께서는 1939년 황해도에서 출생하시어 1968년에 인도네시아에 정착을 하셨다. 인도네시아 동화와 코린도그룹 임직원을 거쳐 한인회 부회장을 오랫동안역임하며 사회활동을 전개하 으며, 1994년부터 연합교회의 장로(지금은 은퇴)로 교회에 봉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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벍벍者겚 勤人搜道(유자색부 근인수도), 나약하고 게으른 자(벍者)는 핑계( )를 찾고(겚),근면한 사람(勤人)은 길(道)을 모색한다(搜). /The weak and lazy looks for excuses;The diligent seeks for ways.

모 회사의 모토입니다. 한 로 된 것을 한문으로 성어한 것입니다. 모름지기 작은 핑계를 버리고 근면해질 일입니다. 자연스럽게 道가 모색될 것입니다. 道는 큰 길을 의미합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이치요방법이며.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사상이며 인의이고 덕행이기 때문입니다. 곧 모든 것과 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인들은도를 일러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따르는 것이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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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권 회장의 40년을 통해 느끼다 -

상징과 상징

지난 2월중순자카르타중심가의한호텔에서는한국인의결혼식이성대

하게열렸다. 겉으로는그냥늘있는결혼식, 어디에나있을법한그런결혼

식이었지만 들여다보면 매우 특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결혼식이었다. 우

선신랑김민수변호사를주목할수있겠다. 김민수변호사는서울출생이라

고는하지만첫돌이지나고부모님을따라인도네시아에온후지금까지줄

곧인도네시아에서공부를하고변호사가된한국인젊은이다. 그가 2004년

<PAK Law Firm>을설립하고변호사업무를시작할때부터이미인니의한

인교민사회에서는큰이슈가되기도했는데, 이는한인 2세들이인도네시아

사회에뿌리를내리는기점으로서의또다른의의를찾을수있기때문이기

도하다.

여담이지만그기점은해석하기에따라많은가능성을내포하고있다하겠

다. 예컨대인도네시아한인사회가날로커지고있는데대한대비가그한가

지다. 그래서 국가와 한인사회적으로 대변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모 인사의

의견은그냥흘려버릴말이아님이분명하다. 미국이나캐나다등다수국가

에형성된한인사회의경우를볼때어쩌면그제언은지금이적기라고볼수

도있다. 마치이를뒷받침이라도하듯이실력과인맥등저변을갖춘출중한

2세들이속속등장하고있기때문이다.

김민수 변호사가 그런 상징성을 지닌 젊은 동량이라면, 그의 부친 김종권

회장(CBMC 자카르타지회장)은인도네시아한인 1세대로서여러가지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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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징성을지니고있다. 그는인도네시아40여년의경력자로서, 출발은미

원의 업사원이었지만원목회사, 한국토산품코너운 , 가와사끼오도바이

판매업, 요식업, 무역업, 활성 탄소 제조업을 거쳐 현재는 환전업과 부동산

소개업(블록엠, 찔레곤)을하고있는다양한경험을축적한산증인이다. 특

히 그는 한인회 활동, 한 교육자로서 지닌 역량을 발휘했으며, 현재도

CBMC(기독실업인회) 자카르타지회장으로서활발한사회활동을하고있다.

그러므로그가현재하고있는부동산소개업또한그가오랫동안쌓아온인

도네시아경험이나지식과맞물려, 인도네시아에새롭게진출하는한국의기

업이나한인들에게많은도움이되고있는것이다.

“저와인도네시아와의인연의시작은65년한국외국어대학마인어과에입

학으로부터라고생각합니다. 물론 실질적인것은 72년 (주)미원의주재원으

로파견된때부터입니다. 인니진출의꿈은68년과69년도의파월장병으로

근무당시부터 어요. 막연하게나마인니에서생산공장을운 해보고싶은

마음이 강했지요. 그래서 그런지 직장생활을 하다 틈만 생기면 자 업에 투

신하곤했는데, 몇번이나어려움에봉착했었어요. 그때마다다시직장생활,

또자 업도전등이반복되었었지요. 최근 10여년환전소와부동산소개업

으로안정을찾고있는편입니다. 인니생활40년간을돌아볼때크게자랑할

左. 1977년 첫째, 둘째의 인니 첫 나들이 (TARAKAN, KALIMANTAN TIMUR)右. 1970년대 말 자 하던 KOREAN SOUVENIR에서 민수, 남수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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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없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반듯하게 성장을 하여 사회로 진출을 함으로

써위로를삼습니다.”

신념과 실천

김회장께서는참솔직하고당당했다. 어느것하나숨김이없이편안하고

시원하게 스스로 풀어내주었다. 그에게서 풀려나오는 모든 것은 다 필자가

참고할만한자료 다. 더 묻고싶은흥미로운부분도참많았다. 그러나어

차피이지면에서는김회장의풍부한이야기를다수용할수없을것이었다.

따라서이책의주제에충실하기로했다. 소신을펼쳐특별한결과를얻었다

고주위로부터부러움을사는자녀교육으로질문을돌렸다.

“슬하에 형제를 두었어요. 연년생입니다. 원목회사 근무시절 각각 백일과

돌이조금지났을즈음인니의동부깔리만딴따라깐지역으로데리고왔어

요. 그 후자카르타에서살면서초등학교는 JIKS, 중·고교는간디스쿨을 1

년차로나란히다녔어요. 그러다가10, 11학년이되어대학진학이임박해오

자코앞에닥친현실로인해많은생각을했어요. 대학을어디로진학하게할

것이냐를두고고민하던중두아이로하여금대학진학후보지국가를장기

여행하도록했어요. 한국, 미국, 동남아국가등이었는데돌아보고직접선택

을하라고한것이지요. 결과는인니국립대학에도전이었어요. 그간생활을

해왔던국가에서전문가가되어일을하는것도보람될것으로의견이모아

졌던것이지요. 인도네시아대학을다니려면인니어가어느정도수준급이어

야하는데, 당면한문제 어요. 이 때문에두아이는고교재학중에인도네

시아검정고시(UMPTN) 학원을다니기도했는데, 노력한보람이있어큰아

이는 인도네시아 국립대학(UI)에, 다음 해에는 작은아이가 국립반둥공대에

(I.T.B) 무사히합격을했습니다.”

인도네시아 국립대학 UI, 그리고 반둥의 국립반둥공대 ITB 이 두 대학이

인도네시아뿐만아니라세계의명문임은주지하는사실이다. 그러므로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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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당당히 합격을 한 그들의 노력이 어떠했을지 낱낱이 들추지 않아도

짐작이가는바이다.

“그 당시 한국학생들은 주로 한국이나 미국으로 대학진학을 했어요. 그러

므로당시로서우리집두아이의선택은좀색다른길이었지요. 당연히주위

에서염려를하거나충고를하는분들도있었어요. 그런말을들을때마다저

또한 아버지로서 갈등이 없지 않았어요. 그러나 여러 가지를 감안하고 심사

숙고하여 함께 내린 결론이니 믿고 고가자고 했지요. 다행히 아이들이 아

주잘해주었어요. 본인들이선택한길이었으니까요. 그길은부모에게는효

도를하는길이기도했어요. 당시한학기등록금이백만루피아 으니, 현지

대학으로의진학은부모의입장에서도아무런부담이없는금액이었지요. 그

나마도 아이들은 학교 재학 시 어, 컴퓨터, 한국어 등의 교습활동을 했어

요. 용돈도벌고학비도보태자는것이었는데, 얼마나열심히들뛰었는지상

84년도 UNAS 대학 한국어과 초창기 강사들(좌로부터 고 훈, 임 호, 김종권, 제대식, 안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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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금액의돈을모아조그마한아파트를살정도 어요.”

오직질문에대한답이요, 과거에대한가벼운회고 지만오늘날두아들

이이루어낸성과가결코만만찮은역경을거쳐이겨낸것임을짐작케했다.

더군다나 여기는 타국이 아닌가. 따라서 그의 갖가지 이야기 속에서 끊임없

이드러나는그가지닌실험정신과도전의식은참으로존경스러운것이었다.

또한 그러한 기질을 물려받은 두 아들의 지극히 한국인다운 기질과 도전정

신, 그리고성취는참아름다웠다.

역량의 공유

“아이들중고등학교재학시절에부모로서가장교육에신경을쓴것은한

국어 어요. 마침그즈음나는2~3개월이멀다하고한국출장을자주간관

계로한국에서교양과문화, 역사, 또는전문서적등을계속공급할수있었

지요. 현재큰아이는변호사로서8년차이며, 둘째는한국의국민은행에근무

하다가 지금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어요. 한국인의 후예로서 한국어로

살아가는데도아무런문제가없습니다.̂ *̂ ~~~”

한편그는현지인들을향한한 교육의공로자이기도했다.

“1984년입니다. 요즘한식세계화가활발한데저는그때저나름의의지로

둘째 남수군의 반둥공대 졸업식 2000년, 현재까지 유일한 한국인 졸업생임

김민수 변호사 U.I 법대 졸업식(부모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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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한식당을 운 했었어요. 한국 냄새가 풀풀 나도록 인테리어도 꾸몄고, 종업

원들에게한복도입히고간단한한국말과한국식예절도가르쳤지요. 그즈음

뉴기니아대사를하셨던여한종선배의제안이있었어요. 자카르타국립대학

중한곳인 UNAS에한국어학당을개설하는것이었습니다. 인니어과동문

선후배들이한국어강의를맡았지요. 강사료는전액장학금으로되돌려주는

순수 봉사 어요. 그렇게 시작한 것이 기반이 되어 한때는 한국에서 교수를

파견하더니, 지금은정식학과로출범을했다고알고있습니다. 보람을느낍

니다. 그 뒤에도 저는 주님의 교회에서 약 3년여를 YAYASAN을 개설하고

인도네시아인들에게한국어를지도했었습니다.”

그의 솔직 당당한 성품은 그대로 나눔과 연결되어 있다. 자신의 이익만을

논하지않는실천자입장에서늘이끄는역할을담당하고있음이여기저기서

드러난다. 현재그가맡고있는기독실업인회(CBMC) 자카르타지회장도그

런맥락에서이해할수있다. 특히얼마전 CBMC는 20여한국인교회연합

행사로서의탁구대회를개최하여참으로신선한충격을던져주었다. 교파를

초월하여 범 교회가 화합할 수 있도록 주도함으로써, 나아가서 교민사회에

전체에긍정적인 향을미쳤다고볼수있는데, 이또한인도네시아한인사

회의 한 전환점을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함께 노력함으로 꼭 그렇게 될

것을믿는다. 또한그안에서김회장의역할도변함이없기를바란다.

그런의미에서그가현재하는주업인부동산소개업도나름의의미를부

여할수있다. 일에따르는개인적인이윤추구를떠나서한인기업이나개인

의인도네시아진출에있어반드시필요한길잡이가되고있고, 거기에는그

가지닌능력과기질이아주잘발휘되고있기때문이다.

“제가하고있는부동산업은특별히나이와큰 향이있는직업은아니라

생각되나, 물론진퇴의시기는있어야겠지요. 인니생활이40년이된시점에

서제가경험하고알고있는부분들이후배들을위해서, 새로오신교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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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 하나의 역할이 되었으면 더 바랄 바 없겠습니다. 제가 현재 하고 있는

사회활동들은가능한한계속할것이며, 현재섬기는교회나, 기독실업인회,

해피자카르타를위해서도작은힘이라도보탤수있기를바랍니다.”

개인이지닌역량을한사회가공유할수있다면참으로바람직한일일것

이다. 그러기에 잘 갖추어진 개인의 가치는 곧 사회 공동의 가치일 수 있으

며, 우리모두는이를간과하지말아야할것이다.

다양하고다변한것이사람사는사회인지라개인에따라포폄(褒貶)의감

정이없을수없다. 그러나거시적으로보면우리모두는다시우리모두에게

특별한 의미가 될 수 있다. 하여 김종권 회장과 그의 아들 김민수 변호사의

역량이더욱넓게공유될수있음을믿으며 을마친다. 바쁜시간에도협조

해주신김종권회장께감사드린다.

인재 손 인 식

l 쓴이 주l김종권 회장! 인도네시아 생활 40년을 쌓은 베테랑이다. 신념으로 실행한 두 아들의 교육이지금에 와서는 교민사회 안에서 현지교육의 한 전형이 되고 있다. ‘무엇을 하는가 보다 어떻게 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새기게 한다. 김종권 회장과 김민수변호사의 실천과 성취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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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걓永逸(일

로일), 한때

고생하고

오랫동안

안락을

누림

/ Go throug

h ha

rdships for a short time an

d lead an easy life

for a long

tim

e.

한때

노고의

보람으로

오랜

이익을

보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공부일

것입니다. 한

때열심히

한공부는

평생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

상을

먼저

산사람들이

후학에게

반드시

남기고

싶은

말로서“때를

놓치지

않는

공부”를

강조한

이유

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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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의창조자박병엽사장에게배우다-

씨앗, 씨앗은근원이다. 모든근원이작은것임을, ‘처음은작으나미래는

창대할수있다’는진리를극명하게증명하는근원이다. 그래서일까씨앗이

란단어를곱씹어보면참많은의미를생산해낸다. 우선씨앗에는거대한미

래가있다. 광대한확산이있다. 드높은하늘과햇빛과만나고, 새소리바람

소리 비와 천둥과의 만남이 있다. 어둠과 이슬의 만남과 헤어짐, 즉 자연의

순환이예정되어있다.

“인도네시아는저와같이채소육종사업을하고있는사람에게최적의환경

요건을갖추고있어요. 실험과배양을시시때때로할수있어서원예에는최

적지라고생각합니다.”

첫마디말부터범사에감사하는마음을드러낸박병엽사장, 그는인도네

시아의고도족자카르타의위성지역에서대단위채소원예농장을일구고있

다. 고추, 토마토, 가지, 오이, 수박, 멜론 등 80여 품종의 씨앗을 생산하고

판매한다. 주소비지역은인도네시아로서약 80% 정도이고, 그나머지 20%

는한국과동남아지역으로공급하고있다.

“저의 인도네시아 진출은 1993년 농우종묘를 통해섭니다. 농우종묘 지사

가날갯짓을활발하게펼시기이던1997년 IMF의위기를겪게되었는데, 그

때부터차츰회사에변화가일기시작하더니결과적으로는혼자의힘으로포

부를 펼쳐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어요. PT. ORIENTAL SEED

INDONESIA를 설립한 것이 2000년 9월입니다. 낮선 땅에서 사업을 시작

하기란많은용기와결단력을필요로한것이어서망설임끝에시작한것인

데, 지금생각해보면위기가기회 다고볼수있겠지요. 제가어렸을적부터

항상 자신감을 심어 주셨던 부모님이나, 남편을 믿고 따라주며 옆에서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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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한일이었지요.”

나는 그를‘씨앗예

술가’라 칭한다. 사실

인데 농담으로 들렸던

말“저는못만드는고

추가 없습니다. 큰 것,

작은 것, 굵은 것, 길

쭉한 것 원하는 대로

다 만들지요.”로부터

비롯된별칭이다. 그의고추창작론은사실이었다. 그러나말을듣는순간나

뿐만이아니라그자리에있던사람들모두한바탕폭소를터트렸다. 하여튼

그는유전자실험을통한결과를빗대우스갯소리를씨앗처럼상시로생산해

낸다. 하여내가이 을쓰면서떠오는것이긴하지만이제부턴그를‘박씨

씨앗예술가’라는말을줄여서‘박씨가’로호칭해야겠다는생각을한다.

나는박병엽사장을처음만날때부터그의이야기에이끌렸다. 내가추구

하는창작의세계와는같고도다른그의창작의세계를들으면서그의이야

기가 어느 소설보다도 더 재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배우고

느낀것이참많았다. 내가원예에대해서이것저것에흥미를보이자그는소

년이 웅담을설명하듯내게아주친절하고흥겹게말을이었다. 구릿빛피

부의농부의모습에서아주해맑은소년과같은심성과미소가감춰지질않

았다.

그후로도 7년여가흘 다. 나는필요에의해족자를자주방문했는데, 세

월은 가도 그는 늘 변함이 없이 거기에서 그렇게 씨앗을 생산하고, 또 사람

간의정을생산하고있다. 그래서일까, 나는언젠가부터그에게서고향을느

낀다. 소박하고 정이 넘치는 고향을 느낀다. 함께 골프 라운딩과 식사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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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한 잔술을주거니받거니하며밤늦은줄모르며나눴던이야기들을여

기에옮기는이유다.

박병엽 사장이 인도네시아를 최적의 환경을 갖춘 적지라 하는 것은 비단

그의 원예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의 삶의 모습이 그것을 증명하듯 그는

들여다보기참좋은모습즐거운모습으로산다. 아름답고후덕한부인과외

아들건하와단란한가족을꾸리고, 농장을운 을위한30여명의고정보조

자, 300여명의일용보조자들과가족처럼더불어산다.

“저는여기에서즐겁게사는데한편으로죄송한마음도있어요. 제가저희

집안의장남이면서종손이거든요. 조부모님을비롯하여부모님의과분한사

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떠나 있다는 것이 더욱 죄송한 생각이 들어

요.”

그는 땀흘린만큼정직한대가를가져다주는농사를천직으로생각하며

즐긴다. 그러나노력에관계없이뜻대로안되는것이있었다고했다. 자식농

사라고했다. 그는결혼 14년(2000년 3월)이 지난때에서야너무도힘겹게

아들하나를얻었다. 무녀독남을그것도늦은나이에낳았으니얼마나소중

하랴. 그러나그의소망은지극히소박하다.

“소중한 만큼 많은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야죠. 똑똑한 사람보다는 따뜻한

사랑을베풀수있는정직한사람으로자라길바랍니다.”

나는그때이말을들으면서조금은심각한얼굴로머리를주억거리며그

의말에동조를표했었다. 그런데그는곧그럴듯한이유를덧붙 다. “저의

직업이 식물 육종입니다. 특히 고추의 웅성불임성 작업에 몰두하는 일이지

요. 씨를가지고주물럭거리다보니정작아들건하를낳는일에는소홀할수

밖에없었지요.”또한바탕폭소가일었다.

“양질의씨앗과새로운품종을개발하고그개발품을생산하는일은예술

가의 그것과 다름이 없어요. 예술가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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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힘을 다하듯 농작물의 신

품종 개발 또한 끊임없는 노

력과 실험을 거듭하고 충분

한 경험이 있어야 가능한 일

입니다. 내가만든채소의씨

앗이 농민들의 소득증대에

보탬이 되고 세계인의 식탁

을 즐겁게 해준다는 생각을

하면 무한한 자부심이 느껴

집니다. 하나의 신품종이 만들어지고 상품화 될 때마다 자식을 만들어내는

마음이기에기쁨과보람도배가됩니다.”

어느 날이었다. 내게 그가 사는 족자카르타로부터 농산물이 배달되어 왔

다. 한국에서 같으면 있을 수 있는 보통의 일이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더러

고향으로부터농산물이배달되어오기도하기때문이다. 그러나타국인도네

시아에서야 얼마나 뜬금없는 일인가. 깜짝 놀라 열어보니 이런 저런 농산물

이봉지봉지박스가득들어있었다. 가끔다녀오는길에싸주는보따리보따

리로쌓인정도갚을길이막막한데, 우편물로부쳐오기까지한것이다. 물론

평소그의나눔은넓다. 시험재배된각종생산품이나, 양질의씨앗을거두기

위해속아내는것들을절대판매하지않고이웃과나누는것이다.

“이땅을활용하고이땅의사람들의도움을받아생산품을얻고있으니당

연히이땅에사는사람들과나누어야지요.”

그의나눔은정작거기에서그치지않는다. 외부에서손님이오면개인또

는족자카르타한인회일원차원에서할수있는한정성을다한다. 지난머

라삐화산폭발과같은자연재해때는그자신도참많은피해를입었으면서

도 이재민들의 합숙소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불우한 이웃이나 사회를 향

부부가 새로 지은 저택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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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금모금에는선뜻동참을한다.

“제경우도화산폭발의피해가매우컸어요. 한순간에이십만평방미터에

설치한비닐하우스와기타구조물이화산재에의하여폭삭주저앉았어요. 물

론그내부에서잘자라던채소들은화산재에타서시들고말았지요. 한동안

씨앗생산을할수가없었어요. 회사의존망에대해서고려할정도 어요. 시

설물복구를위한자금과노동력은무한히필요한데모든것이일시에중단

되다보니, 냉정한현실에내몰리게되었던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를 진정으로 위로하는

이웃이 있었고, 그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해버린 이웃도 있음을 보았다고

했다. 그는 처음 시작하는 기분으로 난관을 극복해나갔고, 전화위복의 기회

로삼겠다는그의각오는사건후3개월여가지나면서부터다시결실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그의인도네시아사랑도더욱단단해졌다.

“인도네시아요? 물론 우리 조국 대한민국보다는 후진국이라는 평가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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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있지요. 하지만풍부한자원과노동력,

그리고좋은기후는저와같이종묘사업을

하는 사람에게 기회의 땅이에요. 특히 내

일처럼최선을다해주는성실한현지인직

원들에게서 느끼는 때 묻지 않은 순박한

인정은늘감사하며살게합니다.”

그래서 그의 삶에 대한 관조도 평범함

속에진리를발견할수있다.

“인생은 장거리 달리기인 마라톤이라 생각합니다. 앞만 보고 전력을 다해

달려야 하는 단거리와는 다르지요. 그래서 열심히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정을즐겨야한다고생각해요. 자신도체크하고주위도돌아보면서현재의

생활에더욱충실하게사는것이의미있는삶이아닐까생각합니다. 먼훗날

인생을돌아보며그동안열심히살았고즐거운인생이었다라고말할수있는

떳떳한노후를만들기위해열심히살아야겠다는마음입니다. 사랑하는가족

그리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이 있어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최고의행복아니겠어요?”

인재 손 인 식

l 쓴이 주l박병엽! 그는 현재 54세로 인도네시아 살이 20년을 목전에 두고 있다. 덕이 넘치는 부인과착하디 착한 어린 아들과 멋진 별저를 짓고 단란하게 살고 있다. 원예업 중 체소원예가 전문이며, 그의 자평과 같이 고추 웅성불임성의 전문가다. 생산품을 이웃과 나누는 즐거움을 한껏누리는 그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빈다. 아울러 이 을 쓰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신 족자카르타 한인회 조현보회장께 감사를 드린다.

묘상에서 자라는 고추 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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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得韻(일

상득운), 일상에서

운치를

얻다. / Find gracefulness in

ordinary day.

다음은

다산

정약용(茶

山鄭겭鏞)이

강진

유배

시절

자녀에게

보낸

편지

한구절입니다.

“집

뒤빈

땅에는

진기한

과일

나무를

많이

심어, 먹

고남는

것을

저자에

내다팔며, 기

른과일

중에

특별히

탐스러운

것은

벗이나

이웃

어른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

함께

나누라.”

다산은

이것이

바로“세상의

일중에

운치를

얻는

일(俗

中得韻)”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삶의

운치를

찾아

누리는

일(日

常得趣)”

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일

상에서

운치를

얻는

일,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운치는

특별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

별한

사람들의

소유물만도

아닙니다. 커

피한

잔분위기

있게

마시는

것도, 한

마디

말아름답게

하려는

노력도, 곱씹어보면

운치를

찾는

일에

다름이

아닙니다. 갖가지

취미

생활이야

운치를

찾는

정수이겠지요.

의미를

부여하고

보면

우리의

주변에는

운치가

깃들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

리는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운치를

누리고

있고,

또발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Page 232: 도처교학내지2011

232

- 리틀램스쿨박현순원장의배우고가르치기-

꿈 키우기 전문가

꿈은이루어진다! 2002년월드컵응원단붉은악마들로인해만천하에새

롭게각인된말이다. 과연꿈은이루어질까? 그렇다이루어진다. 다만전제가

있다. 꿈을가져야한다. 그리고그꿈을이루기위해노력해야한다.

인도네시아! 다수 한국인들의 꿈이 존재하는 나라다. 갖가지 꿈을 펼치는

한국인들이제법많이사는나라다. 그중에눈길을끄는이가있다. <리틀램

스쿨>의박현순원장이다. 그가꾸는꿈은어린이와더불어사는꿈, 즉어린

이를향한꿈이다. 곱씹어보면참크고아름다운꿈이아닐수없다. 그크고

아름다운 꿈에는 동참자도 많다. 자카르타는 물론 끌라빠가딩, 땅그랑 지역

의 유아들과 그들을 낳고 기르는 학부모들이다. 여럿이 함께 꾸는 꿈, 장차

이루어질결과는어떤형태이고어떤색채일까? 박현순리틀램스쿨원장을

만나보기로했다. 그꿈안에서그꿈을어떻게주도하는지알아보기로했다.

한국과 한국교육에

유난히 관심을 표하

는 미국의 오바마 대

통령이 한 말, “부모

다음으로 아이들의

성공에 가장 향을

미치는 존재가 교사

다. 한국에서는 교사

가 국가 건설자

(nation builder)로본원에서 유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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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린다.”를 떠올리면서 그가 자카르타나 끌라빠가딩, 땅그랑에 건설해낼 미

래를 엿보기로 했다. 有志竟成(유지경성), 꿈을 가지면, 이루기 위해 노력하

면꿈은반드시이루어지는것을확신하기에.

그는전문가 다. 지금까지가아니라앞으로도그침이없이유아교육을공

부하고연구할전문가, 이야기할수록자기일을즐기고있음이역력하게드

러나는 전문가 다. 공부와 연구, 체험과 사명감, 그리고 신념이 선 운 과

나눔이두툼하게쌓이는것은부지불식간이었다. 필자역시서예가로서나름

한길을걷는다. 서예속에서역사속의전문가요주인공, 즉 시대의문학인

이요사상가들과시대를뛰어넘어교유하기를즐긴다. 따라서박원장의깊고

단단한 전문성, 뚜렷한 궤적을 공감하는 일 또한 즐거움이었다. 필자에게는

또하나의신선한경험이었다. 그러므로아쉬운것은그의꿈과철학, 그리고

실천을독자들에게다전달하기에는허용된지면이너무부족하다는것이다.

그러나그의많은부분이이미몇미디어인터뷰를통해서교민들에게소

상이 알려졌고, 또한 학부모들을 통한 입소문이 자자하므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지금 인도네시아 한인교포들의 가까운 이웃이라는

점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지켜볼 수 있는 곳에서 진행형으로 존재하고

있다. 유치원리틀램스쿨과그의이야기를한정된지면을핑계로필자나름

우이대학교 한국의 날 공연 운동회를 마치고 교직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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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무질러도조금은용서를받을수있을것이란의미다.

신념과 실천은 새로운 인연을 낳고

“인도네시아, 인연이지요. 언니부부가살고있었던것도, 여행중에자카

르타를경유하게된것도, 기계공학자의꿈을가진하나뿐인소중한내아들

이 JIS의 존재를알고입학을희망한것도모두가인연이라생각을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진행하던 방송, 산학협력 프로젝트, 대학 강의, 유치원 운

등모든일을과감히중단할만큼아들에대한교육열이강했다고말할수도

있겠네요(웃음~~~). 거기엔아들의학교입학을위해선부모의비자가필요

했던 것도, 또 자카르타의 유아교육 실태를 파악한 것도 한 몫을 했습니다.

저는제가가지고있는자격, 전공에서쌓은지식및다양한경험과노하우를

이곳에서펼쳐보고자하는도전의식이생겼고자신감도있었습니다.”

박원장께서리틀램스쿨을자카르타에개설한이유는명쾌했다. 그리고말

처럼수월하고간단하지않았을과정이었기에그의신념은더욱도드라졌다.

“한국의‘유아교육’과정은매우우수합니다. 물론인도네시아에서다펼치

땅그랑 유치원에서 한국교사들과 연수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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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는넘어야할산이많지요. 유능한한국교사확보, 인터내셔널프로그램

을위한외국인 어교사채용등이요. , 유아기는두뇌발달과언어의기

초가형성되는중요한시기잖아요? 능력있는교사의전문성이필요합니다.”

그는유아들로하여금“한국의문화를모르고정체성이없는한국인이되지

않게하기위해노력”한다고했다. “유아에게가장 향을많이미치는사람

은 누가 뭐라고 해도 부모”이기에“학부모 교육도 지속적으로 실시”한다고

했다. 교육자로서신념과철학을설파함에거침이없었다. 그의내공의근원

이궁금해졌다. 인간박현순원장에관한질문을던지지않을수없었다.

인간 박현순 원장

“만약 교육자가 되지 않았다면 디자이너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어려서부

터미술에소질이있었고전공을하고자지도도받았었어요. 그런데그길을

언니가먼저택했어요. 제꿈을접을수밖에없었지요. 하지만활용은잘하고

있어요. 결혼후이사할때마다집도제가직접예쁘게디자인해서인테리어

를 했었어요. 가구들도 스스로 디자인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치원

운 은 제가 지닌 소질을 많이 필요로 해요. 유치원 인테리어, 각 특활실의

디자인, 교구장, 책장, 놀이집, 놀이기구등큰부분부터유아들유니폼, 헤

드레터, 명함까지 손수 디자인하기를 좋아합니다. 유치원을 건축할 때도 새

롭게인테리어를할때도벽색깔, 타일하나까지도직접선택을합니다.”

낭중지침(囊中之針), 주머니속의송곳은삐져나올수밖에없다. 삐져나온

그의재능은그의실천력과조화되어일상속에서, 또일속에서빛을발하고

있었다. 삶을아름답게, 기쁘게가꾸고있었다.

“링컨대통령을존경해요. ‘희망’이라는빛이있음을알게해주었지요. 현

존하는인물로는 칙센트미하이 교수를좋아합니다. 그의‘긍정의심리학’을

많이활용하고있어요. 그의 30년연구의성과인저서‘몰입의즐거움’은정

말감동적이었어요. 교사연수, 유치원교육과정운 , 프로그램개발, 부모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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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시늘참고하는기본적인이론적배경중의하나입니다.”

그가웃었다. 미소를잃지않고말을잇던그가취미를묻자“말하면사람

들이다웃는다”면서소리내어웃었다.

“취미가정리정돈입니다. 정말이에요. 심지어다른사람들의집이나책상

서랍, 옷장안등도정리해주는정도지요. 오죽하면언니가청소대행업체를

운 하면성공할거라고했겠어요.”정리정돈, 그야말로당연한이야기같은

데그것이취미라니얼핏들으면웃음이나올만도하다. 그러나그가펼치

는교육과연결된정리정돈의철학을다듣고나서필자는진심으로웃었다.

감탄의웃음이었다. 그의웃음이그친뒤까지도필자는웃음을떨쳐내지못

했다.

“무엇이든만들기도좋아하고, 인도네시아에와서는책을사랑하는친구를

만난덕에책을많이읽고있다.”는, “어느나라를가건그나라음식을즐기

며, 인도네시아에와서는삼블을좋아하게되었다.”는박원장, 고교시절부터

프로스트의‘가지않은길’을좋아했다는박원장, “아침에잠에서깨어만나

게되는강아지의맑은눈을보는것”도“일을위해출근준비를하는것”도,

“유치원에서유아들이천진한낯빛과초롱초롱한눈망울을대하는것”도모

두가행복이라는박현순원장. 셋째딸이라는소개에는‘과연셋째딸답다’는

생각을했다. “결혼전에는가족들에게그리고결혼후에는남편의보호아래

서살아왔다.”는그가, “자카르타에리틀램스쿨을오픈하면서부터다소어려

움도겪었다.”고했다. 그러나그는그런말을할때도심각한표정을짓지않

았다.

“친정에서는결혼을심하게반대했었어요. 남편을맘에들어하지않았지

요. 그런데지금의남편은친정어머니에게친아들과같은존재가되어있습

니다. 고마운것은바쁜일정중에도내일과학업을위해지속적으로외조

를해주었어요. 정말남편에게내조를잘해야겠다는생각을합니다.”필자

는그의말을듣는동안계속미소를지우지못했다. 그가간간히유머를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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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내서가아니다. 그가발산하는열정의에너지로인해미소를내려놓을수

가없었다.

자녀교육, 본을 보여야

자녀교육이야기가나오자그는자세를고쳐앉았다.

“가장중요한것은본을보이는것”이라했다. “긍정과자신감을중요시하

고, 칭찬과격려는필수”임을내비쳤다. “책을많이읽을수있는환경조성

과, 성장한후로는실천하게해야함을강조했다.”고했다. “아들은태어나면

서부터 지금까지 저희들에게 늘 기쁨을 주고 있어요. 바라보기만 해도 기특

하고대견하죠. 작년8월, 아들의대학입학오리엔테이션을겸해미국여행을

하고돌아오던날, ‘그동안엄마아빠를보며정말많이배웠습니다. 감사합

니다.’하는거예요. 가슴뭉클한감동이었어요. 그런데지금은너무안타까

워요. 부족했던게많았다는생각이드는데, 너무멀리떨어져있잖아요.”

어쩌다부모님이야기가나오자그는서슴없이친정어머니를닮고싶다고

했다. 박원장의미래를짐작할수있는대목이었다.

가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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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75세의 연세에도 세련미를 간직한 분이세요. 신앙생활도 열심이셔

서매일성경을읽고자식들을위해밤마다 1~2시간씩기도를하십니다. 재

소자들을위해전도와봉사도많이하십니다. 제아들에게외할머니는늘그

리움의 대상입니다. 좋은 추억이 너무 많기 때문이지요. 지금도 사회활동을

하시면서역사, 문화, 상식, 음악등을공부도하십니다.”

인도네시아한인사회, 교육환경이나름풍요롭다고할수있다. 한국계국

제학교 JIKS를비롯하여명문국제학교들이선택의폭을넓혀주고있고, 각

과목의 사설 교육원들도 선택의 폭이 좁지 않다. 최근에는 장년들의 취미생

활도다양하게, 그리고활발하게전개되고있다. 이에어린이들과함께‘아름

답고큰꿈’을일궈나가는리틀램스쿨의존재가치를가늠해보게되고, 박현

순원장의역할을더욱기대하게된다.

인재 손 인 식

l 쓴이 주l박현순! 이화여대 교육학 석사, 고려대학교 아동학 박사과정 중으로 교사와 유치원 운 , 유아 교육관련 연구 등으로 일관한 전문가다. 대학 강의와 방송출연 경력, 논고도 풍부한 그는아들의 교육을 위해 자카르타에 둥지를 틀면서 리틀램스쿨을 설립했다. 지금은 끌라빠가딩,땅그랑에 리틀램스쿨 분원을 열어 함께 운 하면서 해외의 한국어린이들과 함께 아름답고 큰꿈을 일궈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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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志竟成(유지경성), 뜻이 있으면 마침내이루어진다. / With aim, it will beachieved.

성인들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말, 그러기에어린나이에이해하게하면더욱좋을말입니다. 더러중학생이되어도, 고등학생이 되어도 꿈, 즉 뜻을 품지 못한 학생들이 있습니다. 옛말에“定以後安”이라했습니다. 결정을하고난이후에야평안을 얻는다는 것이지요. 뜻을 품는 것은빠를수록 좋다는 의미입니다. 목표가 설정되면오늘무엇을해야할지깨달을것이기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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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PPY JAKARTA의음악바이러스로배우다-

들어가며

@ 7 % k ? V g Y & I J p W Q & * * ) * ^ & % $ }

“?CS&^%)Q@K2T(*_M+K?>& _̂L?G+(*&P*∼∼∼

위의기호나열은어떤뜻이없다. 물론오타도아니다. 그냥어떤접점을

생각하면서무심코컴퓨터자판을두드려본결과다. 의미를부여하자면상상

의 결과이고 상상의 대상들이다. 찾고자 했던 접점이란 것이 해피 자카르타

의 <합창단>과 <청소년오케스트라>의존재와이사회를향한가치 으니,

이기호들은바로그구성원들을상징한것일수도있고, 그들이펼쳐내는화

음일수도있다. 그리고인도네시아한인사회와교포개인들일수있다. 마침

내인도네시아일수도있다.

따라서위해석불가의기호들을빌미하여필자는해피자카르타의<합창단>

과 <청소년오케스트라>와한인사회와교포들이찍어내야하는하나의접점

을찾아보고자한다. 살피기에따라위기호들이우리주변의무엇과도연결

이 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어떤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우리가우리의존재를서로인정하는정도에따라그가치는무한증

식을하기때문이다. 작정하고HAPPY JAKARTA를느껴보려는이유다.

해피 자카르타의 합창단과 청소년 오케스트라

필자는극동방송해피자카르타를맡아동분서주하는신정일목사께도움

을 청했다. 우선 합창단과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운 하게 된 이유와 목적을

물었다.

“주지하시다시피극동방송은기독교방송입니다. 2007년 3월 5일자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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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에서 한국어로 첫 전파를 내보냈습니다. 그때부터 해피 자카르타의 문화

펼치기는 시작되었고, 보다 더 적극적이고 폭넓은 활동을 위해 합창단과 청

소년오케스트라를창단하게되었습니다. 합창단은 2008년 9월, 청소년오

케스트라는2009년 9월창단했습니다. 창단연주회를시작으로각기특성과

시기에알맞은활동을해나가고있습니다.”

합창단과오케스트라! 이두단어가상징하는것은‘운집과화음’이아닐까

하는생각을한다. 운집해있되하나인듯하고, 각각이되또다른하나. 보지

않아도 일사분란한 움직임이 느껴지고, 듣지 않아도 조화를 이룬 음이 들리

는듯하는. 화음이되살펴들으면각기의음을들을수있고, 각기의음은마

침내하나로들리는. 한 사람은모두를아울러야하고, 그 모두는한사람에

게 순명하며 집중해야 하는. 사람 사는 사회의 각종 집단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 가장아름답게하나되는모습, 각자의존재성이명료하면서도그냥하

나인하나. 바로이런진리가그안에있기에어떤절대를향한집단안에는

모두의 이상을 묶어내는 결정체 하나로 합창단이 있고, 또 오케스트라가 있

을것이란생각을한다.

“해피자카르타합창단원들은기독교인을원칙으로합니다. 지금은소프라

노 11명, 앨토 10명, 테너 7명, 베이스 5명으로구성되어있습니다. 단장은

자카르타동부교회정종순장로가맡고있으며, 부단장으로박병열집사, 총

해피 자카르타 합창단해피 자카르타 합창단(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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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는박정욱집사가수고하고있으며, 지휘는신정일목사, 부지휘는박어

진선생, 반주는우경희, 박효진집사가담당하고있습니다. 단원들중성악

을 전공한 전공자가 다수 포함되어 있지만, 단원 대부분은 성악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단원으로 들어오기 위해선 오디션을 거쳐야 하며, 매주 월요일

오후7시부터9시까지한마음교회에서연습을합니다.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피아노, 타악기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38명의 청소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원의 자격

은 6학년에서 12학년까지이며, 이 역시 오디션에 통과해야 합니다.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특별히 악기별로 지도교사를 두고 있습니다. 지도교사(첼로 :

박혜진, 클라리넷 : 김태수, 심상준, 플루트 : 임정선)들은 무보수로 최선을

다해지도하고있으며, 이역시지휘는제가담당하고있습니다. 특별히청소

년오케스트라는이활동을통하여건전한문화체험과아울러협동심을경

험하게하는데중점을두고있습니다.”

해피자카르타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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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차게열거되는이상황에서그리고내용에서필자의가슴은쿵쾅쿵쾅뛰

기 시작했다. 이 보이지 않은 힘이 얼마나 많은 보이는 것들의 자양분이 될

것인지상상해내기가쉽지않다.

“합창단은 2008년 창단연주를시작으로다양한연주를해왔습니다. 말랑

에위치한기독종합대학UKCW를돕기위한콘서트, 성탄과송년의의미를

전달하는 매해 12월의 화이트 콘서트, 현지 빈민 아이들로 구성된 TANAH

MERAH CHILDREN‘S CHOIR와함께했던감동의콘서트등입니다.

청소년오케스트라는 2010년 5월, 창단연주를함으로인도네시아한인청

소년으로 구성된 최초 오케스트라가 되었어요. 지금까지 이런 저런 많은 행

사를 해왔는데 찾아가는 연주회가 참으로 좋았어요. 앞으로도 적극 기획할

예정입니다.”

신목사의설명은아주친절했다. 그간합창단과청소년오케스트라가연주

한곡명과그음악이전하는느낌, 청중들의반응까지잘설명해주었다. 그

러나필자는그에대해서는불친절할수밖에없다. 어설프게하는것도그렇

거니와한정된지면으로좀더많은것을전달하고싶은욕심을버릴수없기

때문이다.

운 의 실제와 많은 계획들

“합창단과오케스트라의운 비는단원들의회비와극동방송해피자카르

타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합창단의 경우 남자 파트의 인원이 부

족합니다. 현실적으로 보강하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다만 기도하고 있습니

다. 오케스트라의경우또한금관악기, 즉트럼펫, 트럼본, 호른같은연주자

들이한인청소년사이에많이없어요. 지금은현지인프로연주자들의도움

을받고있는데, 앞으로이런문제를적극적으로대처하고자합니다. 한인청

소년중음악성이있는학생들을선발하여부족한악기들에대한악기교육

을시킬계획이며, 한인청소년뿐아니라오케스트라활동에관심있어하는

현지청소년에게도단원이될수있는문을열어놓을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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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목사께서는합창단과청소년오케스트라의크고작은공연과교육에대

한계획또한치 하게밝혔다. 신년을맞이하고정리하는무대들, 한인교회

및현지교회방문연주와더불어힘든삶을사는인도네시아사람들을찾아가

그들에게평안과위로를나눌행사계획을철저히준비하고있었다. 곡을설

명하는 대목에서는 음악이 절로 흘 고, 공연으로 인해 뜨거워질 객석보다

그가더뜨겁게달아올랐다.

“2011년올해는또다른큰계획도있습니다. 그간WHITE CONCERT때

한시적으로결성되고운 되었던어린이합창단이성인합창단, 청소년오케

스트라의뒤를이어세번째문화단체로독립을합니다. 지난 3월 6일오디

션을가졌고, 상반기에는단원보충과제반업무의기초를다지는데힘을쏟을

것이며, 내년독립된창단연주를가질예정입니다.

또끌라빠가딩의빈민지역아이들에게악기를가르치는일을다니엘스쿨

과함께진행하고있습니다. 빈민아이들에게꿈과소망을심어주는귀한활

동이될것을확신합니다. 이를위해악기를기증받고있으며지금까지많은

악기들이 모여졌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그동안 악기를 지원해주신 모든 분

들에게감사드립니다.”

사랑 나눔의 꿈을 키우며

극동방송해피자카르타는이제 5년째를맞았다. 매일저녁 6-7시, 한시

간동안FM 100.6 MHz를통해방송이된다는사실은여러경로를통해한

인교민들에게알려져있다.

“이곳에서의 라디오 방송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고가의 전파사용료, 방송

시간확보의어려움, 전파수신율의저하등문제점이많습니다. 그래서인터

넷홈페이지 활동과 IP 방송을지향하고있습니다. 해피 자카르타의 홈페이

지를인도네시아한인들을위한기독교문화포털사이트로발전시킬예정이

며, IP 방송을개설하고스마트폰용어플리케이션을제작하여 24시간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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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진행할예정입니다.”

봄이다. 고국의 산천에서는 봄의 전령들이 사뿐한 걸음으로 봄을 열고 있

을것이다. 비발디의사계중바로그대목이들리는듯하다. 자카르타에서는

해피자카르타가 합창단으로 청소년오케스트라로 봄꿈을 펼치고 있다. 봄의

선율이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합창으로 악기들의 화음으로 사람이

지닌사랑의꿈을펼치고있다.

음악은오래고오랜원시부터사람의몸과마음에새겨진말이라했다. 꿰

맨자국없이사람의몸과붙어있는분리될수없는말이라했다. 사람이항

상즐겨할말이라했다. 음악의진수를아주수월하고명료하게이해시키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깊이를 느끼지 못하면 단조롭게 들리고, 의미

없이들으면아무리좋은음악도소음일것이다. 그러나 애정을가지면가벼

운마음으로들어도흥이나고, 깊이들으면한곡의음악을통해서도깨달음

에도달할것이다.

<해피자카르타합창단>이나 <해피자카르타청소년오케스트라>, 이를그

냥노래를부르는그룹, 음악을연주하기위한단체라고정의하는것은, 그들

에게도 다른 모두에게도 어울리지 않는 정의임에 분명하다. 다만 해피 자카

르타의가치를이짧은지면으로다설명할수없기에, 그 가치는찾아서얻

고소유한사람의것이기에, 그저감사한마음으로기회를빌려이짧은소개

해피자카르타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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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드릴뿐이다.

일인다역을맡아해피자카르타를아름답게드러나게하고, 사랑을전파하

시는신정일목사께감사드리며, 해피자카르타의무궁한발전을빈다. 마무

리를그의인사로대신한다.

“지난4년간해피자카르타를위해기도와참여, 후원으로함께해주신모

든분들에게감사드리며앞으로도한인들에게즐거움과평안을선물하는행

사, 현지인들과는 사랑을 나누는 행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해피 자카르타

가되도록열심을다할것입니다.”

인재 손 인 식

l 쓴이 주l신정일! 부산대학교 음악과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이어 부산장신대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에서 지휘를 전공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와음악연구부 연구원, 서울오라토리오페스티발 총괄총무, 바하오라토리오 오케스트라 악장,산본교회 음악전도사, 희성교회 전도사, 한마음교회 부목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부산대지교회파송 선교목사로 극동방송 해피 자카르타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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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푸른

기상으로

/ With an

evergreen spirit.

예부터

소나무를

일러“나무

중의

나무(百

木之長)”라

했습니다.

씩씩함, 굳

은절개, 장

수를

상징하는

특징이

인간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잎

이시들어

떨어질

때까지

두잎이

하나인

모습

은완전무결한

부부애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큰

건축물의

대들보에는

당연히

소나무를

사용하

고, 우

리역사에서

임금이

앉은

자리

뒷배경을

소나무

그림으로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기

개와

절개, 장

엄의

상징

소나무는

사람에게

정신적

육체적

행동

규범

에까지

매우

큰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인재

손인식의

필묵향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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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묵, 실천형이종후사장에게서배우다-

순박, 과묵의 인형처럼

인형(人形), “사람의모습이나동물, 또는가공의생물을흉내내어만들어

진 물건”이라는 것이 사전적 해석이다. 인형은 선사시대로부터 이미 있었다

고 하며, 어느 시대라도 인간 활동의 한 표현으로서 만들어져 왔다고 한다.

제례나종교행사, 전통행사, 장난감, 예술작품, 인형극등그쓰임도참으

로다양함을모를사람은없을것이다.

“로마의프라티(Prati)에서발견된한인형은상아로만들어졌는데그인형

은손가락에반지를끼고있었고, 그 인형옆상자를여는작은열쇠도쥐고

있었다.”고한다. “로마시대의아이들도오늘날의아이들처럼인형에게옷을

입히고, 유행에맞게머리와손가락을꾸미곤했다.”는것이다. 특히그리스

로마시대에는“그들의예술적감각과조화하면서우아하고아름다운인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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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 으며 인형 제작자들이 성황을 이루었다.”고 하니

인형을통해서도인간삶의한단면을성찰해볼수있다하겠다.

65세의나이에도인형과함께생활하는사람이있다. 봉제완구업에 40여

년을 종사하면서 그 세월을 인형과 함께 살아온 이종후 사장이시다. 그래서

일까인형처럼순박하고과묵한그의성품에서인형의이미지가선뜻풍겨난

다. 그의지인들도서슴없이그에게서인형의이미지를들춰낸다. 심지어국

내 메거진의 한 기자는 그를 취재한 에서“60대 중반의 그에게 인형처럼

귀여운 이미지가 내재되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바로 그 이미지는 그가

지닌창의력, 겸손, 사람에대한사랑, 그리고지금까지올곧게살아온그의

삶으로인해사람들에게깊은인상을남기기때문일것이다.

배려와 성찰

봉제완구업계의 대부로 불리는 이종후 사장께서 인도네시아로 진출하게

된것은 1995년이라한다. 한국에서노동집약적산업이구조적문제를해소

하기 위해 동남아의 적지를 찾아 나설 때 이사장께서도 중국, 베트남, 필리

핀, 태국등몇개국을대상으로진출을모색하던중인도네시아에정착을하

게되었다고한다.

“초기에어려움이없을수없지요. 환경이다르고문화가달라마침내사람

들의속성이다르니기술전수를통한생산이마음먹은바와같이되지않았

어요. 인도네시아문화에대한공부가부족한탓이었지요. 나중에알고보니

현지인들은요구에참서툴더라고요. 불만이있어도잘드러내지않아요. 꼭

물어야대답을하는경우가많았어요. 그래서나중에깨우치게됐지요. 그들

이원하는것을먼저알아서해주면더좋다는것을말입니다. 최근에는회사

내에기독교인들의숫자가제법된다는것을알게되었어요. 그들을위해회

사 내에서 예배도 보게 했지요. 그들이 매우 좋아했는데 이는 무슬림들에게

기도실이준비되어있는것이나다를바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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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서두부터상대방을배려하는마음과, 자기성찰로부터시작을했다.

“가르침은항상받아들이는쪽의능력에맞게해야한다고생각해요. 특히

여기는한국과는문화가많이다른타국이잖아요? 저는결과만을강조해서는

안된다고생각했어요. 분명히알아야할것은현장의현지인들도한국인간

부나 사장의 모자란 점을 너무도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내

가먼저실천하고솔선수범하지않으면안되는것이지요.”

조용한 실천

누군가이종후사장의특기를“부지런과성실, 그리고조용한실천”이라고

말해주었다. 그가일상에서나생산현장에서나말을앞세우는것보다는늘부

지런과 성실을 바탕으로 한 조용한 실천으로 선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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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그가거느리는현지인직원의숫자는 2,500여명이다. 물론이숫자가중

요한것은그자체가많고적음을떠나서, 그숫자가창출해내는경제적효과

를 입는 가족들까지도 헤아리게 된다는 점이다. 그로써 그 숫자의 파급력이

더욱커지는데거기에바로이종후사장의특질은그파급력의중심에서절

대성을갖는다.

그특질은젊어서사장이될때도작용을했을것이지만, 또한일찍부터경

일선에섬으로서더욱다져졌을것이다. 특히그가역임한인도네시아한

인봉제완구협의회회장직을통해그의특질은공동의이익을창출했다. 인도

네시아한인봉제완구인들을화합으로이끌었고다시생산성확대로이어냈

던것이다.

“제가회장이되면서느낀것은연합해야한다는것이었어요. 연합하는것

만이초기의취약한힘을극복할수있다는판단이섰어요. 우리끼리과다경

쟁을하면결과적으로제살깎아먹기가되요. 어떻게하든소모적인과다경

쟁을막아야한다는것이제소신이었어요. 결과적으로연합을하니좋은일

도많았어요. 우선원가절감과운송비절감이많이되었어요. 현지직원들과

국가와의사이에서생겨날수있는문제점들을해결하는것도서로연합함으

로써해결의실마리를찾기가쉬웠습니다.”

그의특질은신앙생활과사회생활에서도꽃을피웠다. 5년여동안한마음

교회남선교회회장을역임할때도, 백두회회장을역임하던때도, 모임을이

끄는 절대 무기 다. 그리고 그것은 자카르타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어온 순

수친목모임 <백두회>의 일원들이서슴없이이 의주인공으로이종후사

장을추천한이유가되기도했다.

가족은 오직 사랑의 대상

가족이야기로질문이돌아가자그의얼굴에는행복한미소부터떠올랐다.

“가족에대해뭐얘기할것이있겠어요?”하는겸사의말중에도이미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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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가족사랑이그득묻어났다.

“저는경기도화성출신이에요. 평범한농가의아들이지요. 그러니부모로

부터물려받은유전자와자라난환경이사람을만든다고평소에강조를하면

서도, 정작저에대해서는특별히할얘기가없어요. 제가부모님으로부터받

은유전자가어떤특성을지녔다거나, 제 어릴적환경에서제삶의어떤점

에크게 향을미쳤다는것을마땅히집어낼수없다는것이지요. 다만우

리시대의상황이대체적으로그러했듯이어려움을잘이겨내는힘들은타고

난것같아요. 어지간히어려운상황에서는크게일희일비하지않지요. 따지

고보면그게바로물려받은것아니겠어요? 부모님을존중하고따른다는것

이나, 형제들과우애가있는것도무관하지는않을것입니다.”

식사를하며자연스럽게이야기를하는중에도그는술잔을멀리했다.

“저는기독교인이라술을안먹는다기보다는술이체질에맞지를않아요.

유전적이라생각을하는데이건참괜찮은유전이라생각을합니다.̂ &^”

소탈하게웃는그에게서정말인형의이미지를느끼면서필자는질문의내

용을부인에대한이야기로바꿨다.

“아내요? 이게 자랑이라면 부끄러운 일인데요 제 집사람은 선이 매우 커

요. 함께살면서늘느끼는것입니다. 물론매우활동적이고요. 교회에서권

사직분을가지고신앙생활도열심입니다.”

그의부인사랑은조용한가운데크게느껴졌다.

“부부사이라는것이뭐특별할것이있나요? 서로신뢰하고그저거기있

거니하고살아가는것이지요. 제가내세울것하나가있다면부부싸움에대

한기억이없다는것이에요. 물론이제껏살면서작은다툼이야왜없었겠어

요. 그러나마음에크게상처를주는심한부부싸움은없었어요. 폭력이라는

것은제사전에는없어요.”

대게그나이쯤의한국남성에게서는그것이장점이건단점이건간에가부

장적인 권위가 물씬 드러나기 마련이 아니던가. 그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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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않을수없었다. 그에게서는오직사랑이야말로가장의권위를참답게빛

나게한다는진리가엄연하게드러났다.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두었습니다. 딸 둘은 이미 출가해서 가정을 이뤘어

요. 셋이호주와미국, 국 주로 어권에서공부를했습니다. 물론그럴만

한특별한이유가있는것은아니고요자연스럽게그들이원해서그렇게되

었어요. 나 또한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공부를 하

는것도좋지만, 외국에서공부를하는것도나쁘지않겠다는생각에서격려

하고뒤를받쳐주었을뿐이지요.”

이미지났기때문일까? 그는자녀교육에관한것도느긋한기다림과관조

다. 자녀들의 입장에서 맡겨두고 추이를 본다는 것이었는데, 현재 공부를

마치고 뭔가 구상 중의 아들에 대해서도 서두름을 드러내지 않았다. 인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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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한인들사이에서이미자연스러운일이되고있는승계에대해서물어

보지않을수없었다.

“ 쎄요, 때가되면이루어질수있겠지요. 사실그부분은받으려는사람

이자세를갖추고결심을해야할일이지요. 다른경험을충분히해보고나서

해도늦지않을것입니다. 따라서결심을한때는나름대로준비를마친상태

라는의미이니승계를한다면그때이루어지는것이좋을것이란생각을합

니다.”

받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아야

누구의 삶을 막론하고 배움과 나눔, 실천 속에서 고난과 성장, 성공이 있

다. 물론이사장의경우도예외가아니다. 그런때문일까그에게서는자기만

의명료함과여유로움이묻어났다.

“생활철학이요? 철학일 것까지는 없고 저 나름의 경 방침이 있지요. 모

든것을자기탓으로돌리라는거예요. 남의탓을해서는안되지요. 예를들

자면완성품은여러사람의손이거칩니다. 모두가자기가맡은단계에서최

선을 다하면 완성품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거기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이 다음 사람이 불편 없게 해야 해요. 받는 입장에서 불편함이 보이면 안

되지요.”

그의주변에서는그를향해“돈을잘쓴다. 잘쓸줄안다.”고했다. 그이유

는참많았다. 다만그런말을다른사람들에게서들을수있는그의삶에대

해조용히가늠해보는것도좋을것같아일일이기록하지않기로했다. 라이

프베스트 스코어로서 파 72에서 70타를 기록한적이 있고, 평소 핸디캡은

10이라는 이종후 사장, 그의 인도네시아에 대한 견해 한마디는“참 고마운

곳”이었다.

선한인물탐구, 세상에이처럼즐거운일도많지않을것이다. 인물탐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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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자 하면 누구나 한사코 손사래로 겸손을 표하기 때문에 내면의 세계를

로밝혀내기란여간쉽지않다. 그러므로더욱흥미로운일이기도하다. 끝

으로내게이런일을즐길수있도록허락해주신이종후사장께감사를드리

며그의평안을빈다.

인재 손 인 식

l 쓴이 주l이종후! 인도네시아에서의 기업 창립 17년 차인 그는 봉제완구계의 대부로 불린다. 물리적 나이 65세와는 상관없이 항상 긍정적이고 젊게 사는 그는 봉제완구계에서만 40여년 경력을 지닌 베테랑으로 봉제완구계는 물론 그가 함께하는 모든 곳에서 아주 은근한 언행으로 정을 나누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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積ぅぅ成山(적궤성산. 高僧傳 句), 한 삼태기의 흙이라도 자꾸 쌓아올리면 산도 이룰 수있다. / Many a basket of dirt makes a mountain.

20여년을기억해온말입니다. 꼭 기억하려는것도아닌데어느순간제의식에각인된 뒤, 늘 되살아나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작품으로 옮긴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간절하지는않았다는의미가되는데, 교학이란이책, 이 전시의주제에잘어울린다는생각에서작품을하게되었습니다. 역시간절함에는때가있는가봅니다. 어떤산을이루어가고있는지되돌아보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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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者爲棟梁(대자위동량), 큰 재목(材木)은 기둥과들보로 쓰인다. / Big lumbers are used forcolumns and girders.

큰 것은 크게 쓰입니다. 크게 쓰이고 싶으면 커야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말입니다. 꿈은 크게 가져야 합니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꿈을 가졌으면 그에 합당한 노력을 해야합니다. 아직 꿈꾸고 있다면 오늘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을 시작해야 합니다. 반드시 크게 쓰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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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인한상재회장에게서배우다-

인도네시아와의 첫 인연, 이것이 한상재회장(한인문예총)을 향한 첫 질문

이었다. 그는단번에시간을33년전으로되돌렸다.

“학부를 마칠 즈음 학구열에 불타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시험을 쳤습니다.

그과정에서대학졸업과동시에충청남도교육청으로배정이되었다는것을

알게되었어요. 공부한학과가국립대학사범대학에준하는교육과정이었기

때문이지요. 곡절끝에입학금을지불해놓고ROTC 즉보병학교로입교했어

요. 그런데군대생활을마친다음뜻하지않게인도네시아와인연을맺게되

었어요. 학과장이자 지도교수 던 은사의 추천으로 코린도(주)에 취직을 하

게되었기때문이지요.”

그는 1978년의 기억을 얼마 전의 일처럼 떠올리며 차분하고 간결하게 더

듬어나갔다.

“한2년만인도네시아에가서대학원학비를벌라는말 이셨어요. 망설이

다가그때의형편상돈을좀번다음에대학원공부를해도될것같아서면

접을보게되었지요. 유난히검게탄얼굴의고승창호코린도(주) 사장님을

서울사무소에서 만났어요. ‘인도네시아에 가서나좀도와주시오’하시더군

요. 너무진지하게말 하셨어요. 저는그때너무황송하기도하고한편으론

이런분과함께라면한번일해볼만하겠다는생각을했지요.”

흐르는강물처럼이어지는이야기를들으면서필자는청년한상재씨의모

습을유추해보았다. 그모습이쉽게그려지지는않았다. 하지만동시에필자

의뇌리를빠르게스치는단어들이있었다. ‘인연’, ‘운명’, ‘도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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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재회장! 필명 린두알람, 사실 그를향한호칭은한두가지가아니다.

컨설턴트, 칼럼리스트, 교민방송뉴스해설인, 사회단체관련호칭등참으로

다양하다. 그가자신의장점을살려칼럼이나방송, 또는봉사직으로사회에

나름의 공헌을 함으로써 붙여진 호칭들이다. 필자는 그런 그에게 참 흥미가

많다. 그간교유에서느꼈던것이타고난공인기질이요지적예능기질이기에

그와의대담이흥미롭기그지없다. 그의삶정중앙에단단히자리잡은더불

어 나누겠다는 정신과 함께, 대학시절 체험했던 연극에의 꿈을 아직도 버리

지못하는것처럼, 내면에깊게흐르는예능성향도엿보고싶은부분이다.

“중부칼리만탄에서처음일을시작했어요. 당시제가속한곳의매니저가

지동주사장이셨는데, 그는제게바하사인도네시아를잘배워두라고당부를

하시더군요. 아주요긴하게활용할때마다감사하고있습니다.”

언어구사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그는 그의 수준 높은 인도

네시아어실력을개인만을위해서사용하지않았다. 그대표적인예가 2009

년 4월하순부터교민방송인K-TV를통해인도네시아뉴스한국어해설을

맡아동포들의궁금증을해소시켜준것이다.

“뉴스해설은정말부족한점이많았습니다. 경험이없던일이었거니와시

간이갈수록방법은좋아지는데뉴스의해석이나흐름의파악에는어려움이

느껴지더군요. 인도네시아어로된신문을짧은시간에파악하고전달을위해

내용과흐름을연결하고요약해야하는데무엇보다시간에쫓겼어요. 신문이

나 방송에는 기자가 있고 그것을 정리해주는 방송작가가 있지만 저는 모든

것을혼자해결해야했습니다. 서너사람이해야할작업을매일같이혼자서

한셈입니다. 또한일주에한두번은서울KBS나MBC, 혹은 EBS, CBS 라

디오방송등과연결하여생방송을해야했기때문에더욱바쁘게시간을쪼

개야했습니다. 그러다보니 2년여를어디한번마음놓고가지못하고매일

매일 가능한 일찍 자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신문읽기를 반복했습니다. 많은

부분개인적인삶을포기하기도했는데무엇보다건강유지에각별히신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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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야 했습니다. 그래도

건강유지가 완벽하지

못해 좋지 않은 모습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다만 외부에서 만나는

분들의 격려에 힘을 얻

어 자료를 준비하고 방

송을 했었습니다. 특히

어려운점은저는전문방송인이아니고회사를운 하는경 자라는점입니

다. 한계가 있었어요. 애청해주셨던 교민들께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비즈니스를 은퇴한 다음 다시 기회가 주어지면 봉사할 수 있겠지요. 누군가

능력이있는분이나서주었으면하는바람이간절합니다.”

질문이 이어지자, 사회를 향한 그의 공인 기질이 현지인을 향해서도 끊임

이없이발휘가되었음이차츰드러났다.

“코린도(주) 사원으로서칼리만탄에서농촌지도를해본적이있습니다. 특

별히 성과를 거둔 것은 토마토 재배 어요. 제가 가르쳐준 토마토 재배법에

따라수확한토마토가일반농민들의그것보다월등하자농민들이저를아주

잘따랐어요. 칼리만탄에서하우스보이를하던어린이를초등학교, 중고등학

교를졸업시키고족자카르타로대학을보냈는데, 제가더돌봐줄수없어멈

췄지요. 그런데그또한학업을멈춘것을나중에알고다시자카르타대학을

졸업시켜, 결혼과집사는것을돕고, 일자리도주었지요. 지금그는인도네시

아국회의원이되었습니다.”

그의도움으로간호대학교수를꿈꾸고있는재원이있는가하면, 중부칼

리만탄의뿔랑삐서우한초등학교학생들은한회장으로인해희망을깃대를

높이올렸다고전한다. 최근에도서부자와수방군찌참베란면에수수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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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해소득증대사업을돕고있으니그의능력을이웃과나누는것은한계가

없는진행형이라하겠다.

그의타고난공인기질은또다른예능기질과조화하여각종방법으로표출

이된다. 과연그의힘은어디에기인할까? 필자는그것을그가항상호탕하

게웃으며긍정하고연구하기때문이라고여긴다. 서두르지않고게으르지도

않으며이론과실제를조화해내는실천력에서발휘되는힘으로확신한다. 지

난 90년대초중반 5년에걸쳐싱가포르에거주시카메룬하이랜드고산지

대에 가서 열대 곤충채집에 몰입한 것이나, 인도네시아 열대식물 채집과 연

구, 특히열대약용식물채집과연구, 생활주변의나무나꽃에도많은관심을

기울이고있는현재또한그의기질과무관하지않다고판단하는것이다.

두아들을두었다는그의교육관, 이책주제이기도한그점이궁금했다.

“분명한기술을하나가져야한다는의미로이과대학을다니라고강조했었

어요. 직업은복잡한것말고아주간단할수록좋다고유도했어요. 결과적으

로큰아들이비행사를선택하여열심히계기비행실습을하던시기에괌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건이 났습니다. 그때 너무 놀라서 그만 큰아들의 전공

이항공경 으로바뀌었어요. 지금생각하면항공조정면장(파이럿라이센스)

이아깝다는생각이들때가있습니다. 큰아들은다시 ITC 사업을해보려는

야심을갖고있습니다. 둘째는컴퓨터디자인을하고싶어했지만결국엔컴

퓨터엔지니어링을전공하게되어지금은싱가포르 국텔콤에서아시아지

역매니저를담당하면서전세계통신망구성프로그램을돕고있습니다.

둘다일선업무경력자로서MBA 과정을마치도록하고있는데, 큰아들은

자카르타인도네시아대학에서MBA를준비하고있고, 작은아들은이미싱

가포르에서MBA 2년차에들어가있습니다. 두아들이일찍장가를들어예

쁘고착한두며느리까지보게되었는데, 큰며느리는지난 1월예쁜손녀를

낳았고, 작은며느리는오는4월아들을출산할예정으로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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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소개하는동안그의만면에가득드러난행복감을부러워하며필자

는그의좌우명과가훈을물었다.

“제부친께서물려주신서훈이있어요. 한 학자이셨던한갑수씨가써주

신 것인데‘실천하는 부모 공양’입니다. ‘養敬食安(양경식안)으로 부모님을

공경하고언제나입맛에맞는맛있는음식을드리며편안하게모시기를힘쓰

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이들에게도 알게 모르

게전달될것으로압니다.”

앞에서언급을했듯그의공인기질은이미공인된바다. 필자의이강조에

‘공인 운운’까지야 할 분이 계시겠지만 진짜 공인들이 공인 역할을 소홀히

한것에비하면그의역할들은정말공인으로존중받아야마땅하다하겠다.

그러므로 참 공인에게 인도네시아와 교민사회에 대한 견해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느사회나마찬가지만인구가일정수를넘으면소외계층이생기기쉬

우므로 시스템이 움직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성급하게 성과를 내려하기

보다는좀더분석적이고과학적인접근을해야한다고봐요. 현재인도네시

아에한국교민의숫자가5만에가까워지고있어요. 읍단위인구에해당합니

다. 그러므로이에걸맞는경찰이나행정조직이지원되어야한다고봅니다.

특히인도네시아는시민권을가진교민보다는임시 주권을가진사람이많

습니다. 미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형태의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임시 주권자는한국의행정지원을필요로하기때문입니다.

한국학교의역할도매우중요하다고여깁니다. 학교는문화의중심도되고

언론이나지역사회를연결하는연계점도될수있어요. 인도네시아사회로의

진입로역할도가능합니다. 단지진학을위한학교수준에머물고만다면국

가의교육보조비를받을자격이좀부족하다고볼수있습니다. 학교는교민

들의 사회 평생교육에도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움직임을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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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있기를기대합니다.

한편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의 조직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것은 한국 교

민들의권익을대변하기위한초기단계도되겠지만앞으로미국이나중남미

처럼 우리의 시민권자 2세 3세들이 인도네시아 정치권이나 제도권 진입을

도와야할책임이있기때문입니다. 그러니까교민회는2종류의회원을갖게

되는것입니다. 즉시민권자교민과 주권자교민이있을수있다는것입니

다.”

현실과미래를직시한혜안을지닌제언이아닐수없다. 그러므로그의노

후에대한설계에서도묻지않을수없었다. 그리고역시한회장다운답을들

을수있었다.

“저는노후설계에는 두가지가있다고봅니다. 보통노후설계를노후보

험에들었는가? 연금이있는가? 등 금전적인경우가일반적인데요, 저는 무

엇을하며살지모르는노후설계는반쪽이라고봅니다. 작금한국의현실처

럼노인들이매일1만원정도의돈을가지고도봉산이나춘천, 혹은천안등

지를다니는데최선인가생각을해봐야합니다.

저는대략물적인것과일두가지를준비해나가고있습니다. 물적인것이

야 각자의 기준이 다를 것이니 준비하는 일을 밝히지요. 저는 현재

www.rindualam.com이라는웹을개설하고운 하고있습니다. 장차 IPTV

시스템으로 한국 및 국제 주요 방송을 볼 수 있게 만들고, 인도네시아 문화

및자연& 환경보호에관해전문적지식을VOD 상물제작과 로봉사할

예정입니다. 좀더시간이지나면린두알람이란농장& 카페를Off Line 상

에서열고인도네시아관련세미나도개최하고축제도한

두번씩가지며노후를개척해갈것입니다.”

이미그와의대담에할애된지면이넘쳤다. 그러나한가지질문을더하지

않을수없다. “인도네시아에서살면서무엇을얻으셨는지요?”

“저는사회적으로는남의작은일을칭찬하고돕는일들이많아야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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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생각을 합니다. 그런 사회는 잘 연동되고 아름답겠지요. 개인적으로는 깊은

우정을나눌수있는대상과존경할수있는대상을만나는것은참중요하다

고 생각을 합니다. 인도네시아 한인사회는 학연관계도 그렇지만, 회사나 종

교 공동체에서도 관계형성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좋은 이웃과 존

경하는분을만나교우하기에좋은환경이라고볼수있어요. 그가운데저는

참다운우정을나누는벗과이웃이있습니다. 그들과함께하는것이늘행복

합니다. 거기에 더해 우러러 존경하는 분이 이 사회에 함께 계십니다. 정말

원칙이 살아 움직이시는 분입니다. 그 분이라고 해서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

을것입니다. 그러나항상자신의위치를지키시지요. 많은사람이그의휘하

를거쳐갔지만아직도그들의면면을다기억하면서그리워하고계시는분

이지요. 그들의안부를묻는그에게노년의모습이깃드는것같아매우안타

깝습니다. 언젠가그를위해큰잔치를한번마련해드릴예정입니다.

한상재회장, 필자는 그와의 대담을 마치며 이제부터 참답게 그를 살펴볼

필요를 강하게 느낀다. 공인적 기질이 무엇이며 어떻게 준비하고 실천해야

하는가를잘보여주는그와이웃하고있다는사실이참고맙다. 이 짧은지

면이아니라좀더천천히길게그의삶의여정에은 하게다가가봐야겠다

는생각을하는것이다. 아무리과학의힘이넘쳐도아무리물질이만능이어

도사람에게는사람만이가장강력한힘이요희망이기때문이다.

인재 손 인 식

l 쓴이 주l한상재! 서울대를 졸업하고 1978년 코린도(주)에 입사함으로 인도네시아에 진출. 필명 린두알람의 칼럼리스트. 2009년 4월부터 교민방송 K-TV에서 2년여에 걸쳐 인도네시아 뉴스 한국어 해설. 현 인도네시아 한인문협 회장 등 다수의 사회단체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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精神一到何事不成(정

신일도하사불성),

정신을

한곳으로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 Nothing

can

not be don

e if you

concentrate your attention

.

아들! 딸! 너는

이미

안다. 정신을

집중하여

노력하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성취할

수있다는

것을. 뜻이

마침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석은

반짝여야

참다운

보석이라는

것을. 헤매는

자가

다길을

잃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빠는

믿는다. 사랑하는

딸을! 엄

마는

믿는다. 사

랑하는

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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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훈섭사장에게서배우다-

호감과 존경의 조건

사람들에게물었다. 살면서선뜻호감을느끼는사람은누구입니까? 대부

분 대답을 망설 다. 세상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는

기색이다. 그러다간잘생긴연예인, 어떤분야의독보적인전문가, 부자, 유

명인등비교적부담이없는대상을나열한다. 상식선에서벗어난엉뚱한대

상이들먹여지기도했는데, 그때마다의부연설명이길어졌다. 어쨌든개인의

취향은다양했다.

다시물었다. 진심으로존경을하는사람은누구입니까? 호감형보다대답

의폭이퍽넓다. 역사적인인물들이툭툭튀어나왔다. 구체성이결여됐다는

지적과함께현실에서찾아보자고방향을제시했다. 사회적으로명성이자자

한여려계통의사람들이거론되었다. 결론은‘자기만의분야에서성공한사

람’이었다. ‘자기삶에충실한사람’의결과가존경이었다. 그러나아무리선

한일을많이한사람이라해도그것을사사롭게이용하려는사람은오히려

혐오의대상이었다. 그러므로모두에게존경의대상이란이상적인데도있었

고 현실적인 데도 있었

다. 이상적인 대상으로

서는 단연 역사적인 인

물이 많았고, 현실적인

대상에서는 속속들이

알기보다는 적당한 원

거리의 대상에서 나왔

다. 물론 극소수이지만교회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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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나친구와같은아주가까운대상을꼽는경우가없지도않았다. 하여튼

누구에겐가존경을받고자한다면‘자기삶에충실해야한다’는것만은확실

해졌다.

평범함을 사랑하는 세상의 인심

몇 몇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홍훈섭 사장을 들먹 다. 홍훈섭 사장에 대한

주위의 평가는 비교적 간단간단하다. “진솔하다.”다. “일관되다.”와“과묵하

다.”다. 어떤이는“그의평화로운분위기가상대방을편안하게한다고도했

다.”고했다. 농담을전제로하고“그는다른사람을드러나게한다. 다른사

람을똑똑하게보이게하고잘난사람이되게한다.”고도했다. 어쨌든그는

그나름의무위(無爲)로유위(有爲)를구축하고있었다.

“저는직업군인의세아들중둘째로태어났어요. 가정이특별히부자 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별 부족할 것도 없는 환경에서 자라났지요. 서울

의중동고등학교, 외국어대학을졸업했습니다. 이곳 자카르타에도동문들이

많지요. 대학재학중입대한군대생활또한평범하게마쳤고, 76년대학졸

업과 동시에 대한한공에 입사함으로써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지요. 아내 김

순희위비나와는캠퍼스커플입니다. 동시대를살아온비슷한연령층이지닌

추억을저또한그대로지니고있다고하겠습니다. 대한항공에서만 17년을

근무하고퇴직을하여1994년자카르타에서포워딩회사를설립하고오늘에

이르 습니다. 슬하에는 아들 셋을 두었는데, 미국에 사는 친척들의 도움이

있어어느시기부터세아이가다대부분미국에서공부를했어요. 학업을마

친지금도역시셋다미국에서살고있습니다.”

그의자기소개는군더더기가없었다. 처음이 의대상임을전할때도그

랬듯이자신은그저평범한사람으로서나서고드러낼것이없다는말과손

사래로 일관했다. 이 의 주제가 교육이니만큼 자녀교육에 대한 노하우를

들려달라고해도, 그냥여느부모처럼조금정성을기울 을뿐특별한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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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

없다고사양을거듭했다.

하여튼 이런 저런 정황

으로나 그의 자기소개를

중심으로 살피거나, 그를

선뜻 호감형이라고 판단

하기쉽지않다. 조심스럽

긴 하지만 존경의 대상이

라고 내세울 부분도 충분

조건이아니라고할수있다. 잘생긴연예인도아니고어떤분야의독보적인

전문가도아니며, 부자나유명인, 뛰어난학식을드러내는사람이아니기때

문이다. 그러나 자기 삶에 충실한 것이 존경에 필요한 조건이라는 것에서는

필자또한충분히긍정할수있다. 그래서어떤방법으로든필자는그를미화

할 마음이 없다. 그것은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기도 하지만 실례이기도 할

것이라는생각을한다.

그런데 그로 인해 드러난 것이 흥미로운 세상인심이다. 주변 사람들 다수

는그에게서좋은 향을받고있었다. 모두가비범함을향해뛰고있는것처

럼 느껴지는 세상의 겉모습과는 다소 다른 것이었다. 평범함 속에 숨어있는

소중한진리가그냥진리로서책속에나묻혀있는것이아니고바로그평범

함속에엄연히살아있었다. 그사실의일면이홍훈섭사장을통해드러났다.

진정한세상의인심은비범함처럼소란스럽게드러나지않고아주조용하게

그중심을지키고, 또쓰이고있다는증거다. 그렇지않고서야그야말로평범

함의진수일뿐인그가이구동성의찬사를얻겠는가.

과묵과 초지일관

홍훈섭사장의특징이라면뭐니뭐니해도과묵과초지일관이다. 그가얼마

나과묵한가하는일화를한가지들겠다. 언젠가모회사사무실에서홍훈섭

미국에서 막내아들의 졸업식때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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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사장께서 방문을

해도 괜찮다면 잠

시 들르겠다는 요

청이왔던가보다.

포워딩 업체를 운

하는 그이니만

큼아마도운송물량을수주받기위한방문이라는것은삼척동자도알일이

다. 그런데사무실에도착하여담당자와마주앉은그는내어준차를마실뿐

아무런말이없었다. 오히려이쪽에서근황을물으면그에대해대답을하고,

사업상황을 물으면 그에 대해서 답을 하는데 그것도 모두 단답형이었다 한

다. 도대체방문한목적이무엇인지를드러내지않았던것이다. 시간이얼마

나흘 을까그가돌아가겠다고일어섰고, 그는끝내아무런요청없이돌아

갔다고한다. 그러기를몇차례 을까. 그회사는운송물량의일부를홍사장

께맡아줄것을요청하고나섰다는것이다.

이한예가아니더라도그와마주앉아본사람이면그의과묵이천근만근

이라는것은금방알수있는부분이다. 마주앉아도그렇거니와하물며좌중

일때그의음성을듣기란참으로어렵다. 세상돌아가는이야기도그럴지니

남의험담같은것은그의사전에그림자도없다는것이옳을것이다.

초지일관의예도몇가지드러난다. 우선신앙생활이다. 그는일상이그렇

듯교회에서도주도자가아니다. 늘참가자일뿐이다. 그러므로특별히눈에

띄지도않는다. 그러나늘그자리에있다. 그래서그가활동하는작은모임

체의 일원들은 그의 성실한 태도와 초지일관에 대해 상징성이 매우 크다고

강조한다.

일상대부분이참가자역할인그가빛을발할때가있다. 일순위로주도를

할때가있다. 노래를부를기회가있을때다. 그는초지일관이노래부르기

이기도한데, 집안에방음시설을갖춘노래방을설비해놓았을정도다. 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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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나면언제라도노래부르기를즐기는그, 그래서그의내면의색이얼마나맑

을지짐작할수있다.

골프를 즐기는 것에서도 그의 초지일관은 잘 드러난다. 새벽잠이 없는 그

는 아침운동을 겸한 골프를 즐긴다. 대부분이 사위가 밝아지지도 않을 시각

의 티업인지라 동반 플레이어를 섭외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그는 언젠가

부터그냥혼자서새벽라운딩을즐긴다. 주중한두번씩은혼자서라운딩을

한다. 아무도가지않은이슬맺힌초원을혼자걸으며즐기는골프, 나는그

것이그의기도일것으로추측을한다. 어둠에서깨어나는산천과그만의언

어로 갖는 은 한 대화일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기에 수년간 초지일관

이 오히려 즐거울 것이다. 스코어를 기록하는 것도 초지일관이었다. 재밌는

사실은 혼자의 라운딩이니 어지간하면 낮은 스코어를 밝힐 범도 한데, 물으

면항상높은스코어 음을밝히며희게미소짓는다.

필자가가장가까이서느끼는그의초지일관은서예공부다. 공부를시작한

지 이미 5년여를 헤아리는 동안 그는 초지일관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국외

출장외에는수업을건너뛴예가없다. 혹시라도늦거나빠른날에는반드시

미리전화를한다. 소위숙제도거스를때가없다.

그는 사람을 대함도 사람에 대한 호칭도 항상 겸손으로 일관한다. 심지어

고교, 대학후배를만나도겸손으로일관함을목도한것이우연의몇번이아

니다. 필자를부르는호칭에서도그는초지일관이다. 필자는평소그를홍요

셉형님이라호칭한다. ‘형님’이라는호칭은가톨릭교우들끼리의 일반화된

호칭이기도 하지만, 연령의 차이를 비롯한 몇 가지를 감안하더라도 가장 따

뜻한호칭이라생각이들기때문에그렇게부른다. 그러나그는손프란치스

코(필자의 가톨릭 세례명) 아우라고 호칭하지 않는다. 손선생님, 또는 인재

선생님이라칭한다. 그것도아주깍듯하다. 그깍듯함은서예를공부하게된

이후로초지일관이다.

한마디로 그의 삶 전체를 일컬어 성실내지는 초지일관이라 할 수 있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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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이는 아무래도 그의 타고난 성정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천성이란바로이를두고이르는말이겠다는생각이다.

자기 충실, 그 지난한 화두

필자는 홍훈섭 사장, 그 평범함의 대명사를 통해 세상인심의 일면을 보았

다. 은 한 가운데서 드러난 끈적끈적한 인정을 느꼈다. “난득호도(難得糊

塗), 어리석기가어렵다.”고하듯바른평범함이야말로어떤비범함보다더

비범함일것이다. 중용에이런구절이있다. “숨는것보다더잘보이는것이

없으며, 미세한것보다더드러나는것이없다(莫見乎隱, 莫見乎微)”다. 은

한것은더욱자세히알려하고, 미세한것은현미경으로그현상을드러내고

마니‘은 한것과미세한것보다더드러나는것이없다’는이말은홍훈섭

사장을통해서다시확인할수있었다.

아이러니는세상사람중에자기삶에충실하지않고자하는사람없을것

인데, 바로이당연함이존경의대상이된다는점이다. 자기삶에충실하기가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가 어떤 가르침으로 이보다 더 극명해지겠는가. 객관

운운하며밖으로향하는시선과마음을평소얼마나내적으로가다듬어경계

해야하는가또한선명해진다.

끝으로끝내드러내기를사양하시면서도필자의고집을끝내꺾지않으시

고수용해주신부분에대해서송구한마음을표한다. 평범해서더욱좋은이

웃홍훈섭사장께감사를드린다.

인재 손 인 식

l 쓴이 주l홍훈섭 사장! 그는 군자다. 선한 면만을 따져 군자를 규정했다던 공자에 따르면 그는 상급의군자임에 틀림이 없다. 무위(無爲)로 유위(有爲)를 구축하는 그야말로 이 시대의 군자인 것이다. 조주선사가 크게 깨우친 말 중에는“일상적인 마음이 곧 도(平常心 是道)”가 있다. 또한장자는“평탄한 것이 복(平爲福)”이라 했다. 홍훈섭 사장에게서 크게 배우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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盡人事待天걤(진

인사대천록), 사람이

할수

있는

노력을

다한

후에

하늘의

복록(天

걤)을

기다림

/ Man

waits for fortune from

the God after he ha

s done wha

t to do.

기다림(待

)!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기다림이

있습니다. 사

람, 때

, 결과

등갖가지

기다림이

있습니다. 기

다림은

믿음을

전제합니

다. 믿

음이

없으면

기다림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기다림은

조장(助

長)하

지않는

것입니다. 억지로

결과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즐거운

설렘입니다. 기다림을

참답게

즐기기

위해서는

오직

사람이

할바(盡

人事)를

충실히

행해야

합니다.

진인사(盡

人事)는

자기의

가치를

높이는

일입니다. 기다릴

수있는

참다운

자격을

얻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가치가

정해진

세상

만물은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

누구도

처음부터

가치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고정된

가치로

살아가는

사람

또한

없습니다. 가

치는

창조할

수있습니다. 가

치를

창조할

수있는

힘은

긍정에

있습니다. 세

상과

나를

긍정하면

마침내

세상과

나의

가치를

찾게

될것입니다.

오늘‘盡人事待天걤’을

다시

새기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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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문화(文化)란 갈고 닦여서 모아지고 간추려진 역사적인 것을 말한다. 인도네시아 한인동포사회 반세기, 이미 역사가 서고 있다. 작금에는 한류와 더불어 더욱 다양한 문화가 펼쳐지고 다듬어지고 있다. 다양해지고 분명한 것은기록된 것만이 올곧은 역사가 되고 문화의 바탕이 된다는 사실이다. 여기 그기초로서몇가지탐구한결과를싣는다. 참다운문화생산자들의노력으로이시대인도네시아한인사회가아름답게남겨지기를바라는마음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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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한인사회문화탐구1

『아빠까바르인도네시아』와『인도네시아들여다보기』, 이두권의책은주

인도네시아한국대사관에근무했던전임홍보관들인김상술, 윤문한의저술

이다. 책의내용은인도네시아알기지침서내지는교양을위한것으로서, 인

도네시아에주재하면서느낀점과배우고얻은지식을두저자가나름의개

성으로풀어낸것들이다

서두에두권의책을소개하는진의는바로두권의책이창출하는문화적

가치를함께생각해보고자함이다. 문화부처의공무원으로서, 또외교관으로

서전임지의이야기를책으로발간한두저자가얻을가치에대해서는여기

서 논할 바가 아닐 것이다. 두 권의 책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하고자 하거나,

인도네시아를알고자하는한국국내의독자들에게미칠 향이나그성과에

대해서도여기서언급할필요는없을것이다. 다만두권의책이우리가사는

이사회에부여한은근한메시지는한번쯤음미해볼필요가있다는생각이

다. 즉, 자기가속한사회에대한기여, 자기가위치한자리에서의창의력발

휘, 성실한실천등이두권의책이드러내는교훈에대해차분히곱씹어볼

필요가있다는의미이다. 더군다나한때나마그들은우리의이웃이었지않은

가? 그들의연구와노력, 나름의시각으로쓰인책을, 그들이추억하는인도

네시아에서독자로서읽는느낌, 참쏠쏠한덤이아닐수없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한 사회가 지닌 문화적 역량이나, 드러난

문화실재가그사회의품격을판단하는척도라는사실을모르는사람은없

을것이다. 그런의미에서볼때인도네시아한인사회는높은점수를받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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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가많다. 그것은바로문화가살아있는곳으로만들기위한노력들이있기

때문이다. 문화를즐기며심고가꾸는사람들이많기때문이다. 이칼럼의목

적은우리가알게모르게보유하고있는문화, 바로우리주변에존재하는문

화의실제들을차근차근밝히고자하는것이다.

우리가참많이듣고사는말중에하나가 <책속에길이있다>는말이다.

길을찾는것도, 길을내는것도그리고길을다듬는것도, 책속에있다는의

미가 담긴 말, 이 말은 너무 흔한 말이기에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음미해야

할 말인지도 모른다. 바로 이 말의 실제는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에도 올곧게

살아있다. 그간인도네시아한인사회가만들어낸서른네권의책과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쓰인 길고 짧은 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

사회가낳은책과그저자들을찾아보면서인도네시아한인사회에실재하는

소중한문화한가지를새겨보도록하겠다.

재인니한인사회를통해발간된책의서막은코데코에너지최계월회장의

자서전이 장식하고 있다. 한인기업 해외진출의 개척자로 알려진 최 회장의

이야기는『그들은나를깔리만탄의왕이라부른다』라는제목의상, 하권으로

1993년권태하씨에의해쓰 다.

다음은해외선교의표상고서만수목사께서출간한책이다. 서목사께서

는 1994년 수필집『남방에심는노래』를출간하 다. 그 후로도시집『둥개

야』, 『남방에피는꽃』, 『가르치며증거하며섬기며』등을연이어탄생시켰는

데, 이모두는그의40여년선교역사의증거이기도하다.

한인니수교초기한국총 사관의참사관이었던고김 호님은 1995년

『천년의 미소』를 발간했고, 대사관 무관으로 재임을 했던 서세호 장군은

1997년 책 제목『인도네시아』를 출간했다. 한국국제학교 이상기 선생은

2000년에시집『그리운말들이길을메운채』와, 『그리움은벗을수없는옷

이다』를 필두로, 풍자에세이『거꾸로 매달린 원숭이의 세상 훔쳐보기』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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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2008년에는『복수, 링컨처럼하라』를우리앞에드러냈다. 문학도손은

희씨는2001년산문집『말 의샘에서퍼올린행복』을길어냈고, 자카르타

에서20여년간이나월화차문화원을이끌면서한국정신을심었던김명지선

생은시집『찻물, 그젖은마음』을 2002년에탄생시켰다. 2003년에는연합

통신황대일기자에의해『특파원의눈에비친인도네시아만년설』이베일을

벗었고, 2004년에는김시현한의사에의해『재미있는한방칼럼』이한권의

책으로공개되었다.

사람이나사물을겉만가지고비교하는것은사람의정서에악 향을미친

다고한다. 반면개인이나사회가보유하고있는가치를들춰긍정하는것은

그야말로사람만이지닐수있는매우특별한지혜다. 사회적으로도꼭필요

한순기능이라하겠다. 사람은문화향수자인동시에문화창조자다. 어떤문

화에는 고객이지만 어떤 문화에는 창조의 주인공이다. 우리는 누구나 책의

저자가될수있고독자로서또다른주인공이기도하다. 한줄 을쓰는일

이 향기를 생산하는 일이라면, 한 줄 을 읽는 것은 향기를 소유하는 일에

다름이아닌것이다. 우리사회가낳은책과저자를좀더찾아보자.

한마음교회장 수목사께서는 2005년그의설교집을한권책으로묶어

『아침마다새로우니』로 롱하게드러내더니연이어, 『마음을시원하게』, 『너

는행복자로다』, 『하늘이여노래하라』, 『 혼의보금자리』, 『얼굴과얼굴로』,

『사랑은여기있으니』등7권을펴냈다. 사공경선생또한2005년『자카르타

박물관노트』, 2008년에는『서부자바의오래된정원』을책으로엮어냈고, 성

요셉성당에서는 2006년사진집『은총의 10년』을역사로세웠으며, 2007년

에는고신교환님의『젊은이여세계로웅비하라』가자카르타하늘에웅비했

다. 2008년에는대사관경찰 사 던박화진총경에의해『자카르타파출소

박순경에서 대한민국 경찰청장까지』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가 했더니,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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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에는무궁화유통김우재회장의회고록『인도네시아에핀무궁화』가꽃을

피웠다.

2010년 김은미 씨는『대한민국이 답하지 않으면, 세상이 답하게 하라』를

내놓아세상을놀라게했고, 수학선생손홍익씨는한국으로돌아가기전책

제목『병아리눈물』로그의이야기를남겼다. 2011년빛을본안선근교수의

『동아시아 먼 나라의 이슬람 평화』는 1994년『요지경 인도네시아』, 인니어

교본세권에이은것이며, 인도네시아헤리티지소사이어티의한인회원들은

2007년박물관안내책『인도네시아국립박물관』을꾸며내기도했다. 서예

가인필자도출간의대열에끼었다. 2004년『사랑의훈민정음』을시작으로,

『아름다운축제』, 『아름다운한국인』, 『지금여기』, 『정상에오르는길을찾아

서』, 그리고자카르타교민 52인과공저한『도처고향』등여섯권에이어이

책『도처교학』을기획하고진행했다.

책으로꾸며지지만않았을뿐문학과전문 역의 들또한참으로많다.

여러분야의전문가또는정보를나누려고노력하는이들의 이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크고작은매체또는인터넷의여러창구를통해한껏역량들을

드러냈다. 거명만해도많은독자들께서고개를끄덕일김문환, 한상재, 유춘

강, 김성월님등을비롯해서일일이다열거하기조차어려우리만치많은필

자들이아름다운이야기와유익한정보들을풍성하게풀어냈다.

한줄 을쓰는일, 지식과경험, 느낌을마음안에묻어두지만않고창조

적으로풀어내는노력이다. 스스로를우주의일원이며사회의공인으로선포

하는 일이며 책임지는 일이기도 하다. 스스로와 타인, 역사와 현재, 미래를

사랑하는지극한실천이다.

우리의 이웃들 중에는 지금 출간을 준비하고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2010년들어재발족을한문인협회회원들의활동에따라서도더욱많은저

술들이 이 사회에 드러날 것이다. 누구라서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문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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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과이에대한노력을부정하겠는가.

오늘우리는우리사회이웃들이쓴책을통해바로우리가사는이사회에

묵묵히 존재하는 우리의 문화실제를 확인했다. 이 문화의 실제는 바로 긍정

의 메시지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자기 역할에 충실하라는 가르침이다.

다른 이의 공로를 인정하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라는 교훈이며 아름다운

삶을위한우리의자산이다. 자랑스럽게여기고빛낼수있기를바란다.

이 내용은 2010년 4월 10일 인도네시아 한인교민방송 K-TV에 <손인식의 상문화칼럼>으로 방송되었으며, 한인뉴스 2010년 5월호에 실렸던 것을 일부분 추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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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내 벗/ The green mountain is myfriend as well

화살같이 빠른 시간, 흘러가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시간입니다. 누군들 자기 삶을 되돌아보면 인생무상의 느낌이 없을까요. 그러기에 사미(四美), 즉 청산과 맑은 물, 바람과달 이 네 가지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삶이기를 바라는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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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한인사회문화탐구2

얼마전한국의모신문에오스트리아빈에사는탈북망명자이야기가실

렸다. 전북한군대좌 던김정률씨가 <독재자에게봉사하며>란책을오스

트리아에서 독일어판으로 발간한 데 따른 이야기 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

가신분을감추기위해무려16년간이나모국어를사용하지못하고살았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인이 사는 곳에 당연히 한국어가 존재할 것으로 믿었던 필

자로서는놀라운일이아닐수없었다. 물론대화를나눌상대자가없는곳에

서사는연유로모국어를사용하지못하는한국인도없지않다고알고있다.

한국인이살고있는곳이라해도반드시한국어가살아있는것만은아니라

는사실이이렇게엄연하다. 사람이이미익히알고있는모국어를사용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일까. 그래서 우리는 탈북 망명자가 한국기자

를 만나 그간 숨겨두었던 비 들을 훌훌 털어버린 사실보다는, 우리말로 대

화를나눈것을더감격해한그사실에주목하게된다. 인도네시아오지의현

지 시골학교에서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로 전학을 한 어느 학생이, 동족의

친구들과우리말로어울리고난다음가슴이탁트 다고한말에, 절로공감

을하게되는것이다.

역사를돌아보면한때우리민족전체가언어사용에아픔을겪은적이있

다. 우리의언어가창제되고발전을한우리땅을무력으로지배한세력에의

해 우리말 말살기도에 시달렸던 것이다. 이곳 인도네시아도 외세의 지배를

받을때마다자국어는늘무시당하고핍박을받아야했을것이다. 또한이땅

에사는중국인들은한때정치적인이유로중국말을내놓고사용할수없었

고, 동족끼리도그들의문화를드러낼수없었다. 중국문자인한자가인쇄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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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조차내부에서는폐기또는감춰야했고외부에서는반입이금지되었었다.

언어는 이처럼 매우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다. 때로 냉엄한 현실에 의해 소중

한가치를잃게되기도하는것이다.

한국인과함께이곳에서타국살이를하는한국어, 과연어떤모습일까? 어

떤모습으로그가치를이타국사회에드러내고있을까? 살펴보면인도네시

아에서한국어는현재세계어느곳보다융숭한대접을받으며, 심어지고가

꾸어지고있을알수있다. 그사례들을살피려들면숨가쁘게떠오르는뉴스

가하나있다. 바로인도네시아술라웨시부톤섬에자리한바우바우시가, 지

역토착어인찌아찌아어를표기하기위한문자로한 을선택한일대사건이

다. 물론찌아찌아족이공용어를한국어로바꾼것은아니다. 다만고어표기

에필요한문자로서한 을선택한것일뿐이다. 말은있었지만문자가없어

찌아찌아족고유의문화를점점잃어가는상황에서, 유수한세계언어중표

기방법이 단연 뛰어나며, 과학적인 문자로서 현대문명이 낳은 컴퓨터, 핸드

폰등과최고의조화를이루는한 을택했던것뿐이다. 어쨌든분명한것은

한 의우수성이또한번세계만방에알려진사실이다.

이보다더현실적인것들도바로우리주변가까이에있다. 먼저인도네시아

제일의국립대학UI의한국어과목학사과정공식개설, 족자의명문국립가자

마다대학(UGM)과 자타르타의 명문나시오날(UNAS)대학의 한국어학과 개설

로인한, 인도네시아사학명문들의활발한한국어교육이그것이다. 아울러살

펴보자면자카르타의기독교대학 UKI, 국립수라바야대학, 칼리만탄의반자

르마신대학, 반둥의반둥대학, 국립중부자바대학, 대표적인 이슬람대학인 아

사시피아, 가톨릭계 아트마자야대학, 족자의 UII, 람뿡의 망쿠랏대학, 중부자

바의디포네고로대학, 마카사르의하사누딘대학등에서, 한국어과개설의전초

전으로서 한국학연구소 개설을 하고, 대학생과 일반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고있는것이다. 그런가하면자카르타소재국립제27고등학교처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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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외국어선택과목으로한국어시범교육을실시하고있는곳도있다.

매우 흥미로운 사례들도 더 있다. 우선 인도네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

어 웅변대회에서 드러난 현상을 들 수 있다. 한국어 웅변대회는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배우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또 그들의 능력이 어

느 정도에 도달했는지 잘 드러나는 현장이다. 웅변 원고의 소재 선택과,

구성을비롯하여표현력, 발음등여러부분에서놀라울정도의수준을발휘

하는것에심사위원으로참관했던필자는감동을받았었다.

다음은반둥지역과족자지역, 또 자카르타에서인도네시아젊은이들이주

축이되어결성된한국을사랑하는모임인 <한사모>를들수있다. 그들또

한몇몇행사를통해우리들을놀라게한것이한두번이아니다. 그들은한

사모라는이름으로회원서로가활발하게교류하며한국에대한정보를나누

고또한국어를배운다. 한복을맵시있게차려입고부채춤실력을뽐내는가

하면, 자체적으로대규모한국문화행사를열기도한다.

또 있다. 유명 관광지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현지인 여행 가이

드들이다. 유적지 유물을 전문용어까지 구사해가며 설명을 하는가 하면, 심

지어는김해김씨족자파를자칭하며김OO라이름을밝히는인도네시아인도

있다. 한국말로인사말을건네는것은물론메뉴를한국말로주문받는음식

점종업원은이젠놀랄일도아니다.

거리에서눈에들어오는늘어나는한국어간판들도한국어문화의현실을생생

하게 대변한다. 자카르타는 물론 인근 위성도시들에도 한국어 간판들이 즐비해

한국인들에게는 정감으로 다가오고, 이국인들에게는 호기심과 새로움으로 다가

간다.

이땅에서한국어가이처럼활기찬생명력으로존재하는이유야독자들께

서도주지하실것이다. 그렇다. 한류가가장큰배경이다. 종합대중예술로평

가되는연속극과 화, 가요등한류의진원지가된대중문화와그스타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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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하여, 스포츠의질적향상이그중심에있다. 그러나이곳인도네시아에는

그에못지않은힘도있다. 바로이나라곳곳에산재한한인기업들이일군힘

이다. 이힘은세계의어느곳보다역동적인것으로서인니한인사회의자부

심이기도하다. 또한자카르타에는우리의2세들이마음놓고모국어로공부

하고뛰어놀수있는한국국제학교가있다. 한국국제학교 JIKS는 존재만으

로도한인사회위상을크게재고하게하는바로우리의한징표가아닐수없

다. 아울러 한국어문화를 넓히고자 하는 기관과 단체들의 갖은 노력들이 있

다. 이 모두는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숫자에 비해 다이나믹 한국

과능력있는한국인을드러내는절대바탕이되고있다하겠다.

로벌 시대다. 그런데 한편에서 모국어의 중요성이 더욱 증대되고 있다.

몇개국어구사능력이필요한시대라면모국어는너무도당연한생존의기

본인 시대가 되고 있다. 타국에 살면서 외국인들과 비즈니스를 한다고 하더

라도, 모국어에능숙해야더욱인정을받는다. 하물며일상의정겹고편안함

이야어디에비기겠는가. 추억을이야기할때도, 희망을논할때도모국어를

통한 문화와 정서여야 만이 더욱 생명력이 커진다. 타국에서 태어나거나 혹

은국적이바뀌었다고해도물려받은한국인의피와정서는바뀌는것이아

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곳 인터네셔날 스쿨 학생들 또한 대부분

진로를한국의대학으로택한다. 다문화가정에서도할수만있다면초, 중,

고, 대학과정 중에서 어느 한 과정쯤이라도 한국내의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기를꿈꾼다. 선진국이나타국은이제막연한선망의대상이아니다. 우리

의정체성을내실있게구축하고난다음이라면타국은다만꿈을펼칠수있

는무대가될뿐이다. 모든동질문화의창출과형성의기반에는언어가자리

잡고있다. 특히우리의모국어처럼넓은표기의폭, 표현의다양성, 과학적

인언어는그에걸맞은문화를형성하는것이어서이국인에게사랑받는한류

의 생성도 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인이 살고 있어서 사용되는 한국어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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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한국문화의가치가존중되는나라인도네시아, 한국어가활기찬땅인

도네시아에서한국인이어찌활력넘치지않을수있겠는가.

이 내용은 2010년 4월 24일 인도네시아 한인교민방송 K-TV에 <손인식의 상문화칼럼>으로 방송되었으며, 한인뉴스 2010년 6월호에 실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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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뜻 너른 맘 / Big ambition, generous mind

서예가서예일수있는첫째특징은선이드러내는느낌입니다. 하얀화선지바탕위에 毛筆로 인해 드러나는 검은 선의 갖가지 느낌은 알면 알수록 사람의 마음을 이끕니다. 강력함, 온유함, 촉촉함, 건조함, 단아함, 세련미, 예스러움, 투박함, 미려함등, 선의느낌이다가온다면서예를안다고할수있습니다. 어떤 사물에서 그만의 느낌이 다가온다면 그것을 안다고 자부할 수 있겠지요. 누구나 심미안은 지니고 있습니다. 심미안은 길러 깨닫는 것입니다. 세상이 심미안으로가득하기를빕니다.

(인재 손인식의 필묵향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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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한인사회문화탐구3

미디어시대, 이 말은이시대를평가하는가장적절한표현일것이다. 전

자공학기술의눈부신발달로인한미디어가인간의삶에지대한 향을미치

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특징과 사용 범위가 넓어지고 또 세분화되면서 웬만

해서는 속속 등장하는 신조어들 따라잡기도 쉽지 않다. 그야말로 퍼스널 미

디어시대가도래했다고해도틀린말이아닐것이다. 시대의조류때문일까

인도네시아한인사회에도알게모르게존재하는미디어가무려열여덟개에

달한다. 따라서이칼럼에서는인도네시아한인사회에현존하는방송이나정

기부정기간행물, 인터넷웹진모두를미디어의범주로설정하고, 이미디어

들이인도네시아교민사회에서어떤형태로미디어문화를형성하고있는지

그실제를정리해보고자한다.

비록이시도가학술적차원의전문적인것은아니더라도서두에이런의

문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에 미디어다운 미디어가 존

재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이 의문은 비판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비평이어야하는조건을전제한다면반드시필요한의문이라는생각이든다.

생산자와소비자피차서로가상대에대해긍정하면서이런의문을가질때

이사회의미디어가반듯한제역할을할것이기때문이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우선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에 실재하는 미디어들

의 종류와 그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인터넷을 활용한 웹메거진으

로서KOTRA에서발행하는<인도네시아투자뉴스>다. <인도네시아투자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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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는 KOTRA가한국정부의산하기관답게개별교민기업들이일일이챙

기지못하는경제, 무역, 투자관련주요이슈들을정리하여, 기업이나비즈니

스맨들에게제공하는비즈니스전문인터넷웹진이다. 기업들의입장에서는

정보수집에시간과비용을절감할수있거니와, 인도네시아에굳건하게뿌리

를내리는데매우유용하다하겠다.

한편유사한웹진으로<시미뉴스>와<스피드뉴스>가있다. 이들은인도

네시아일간지를토대로경제, 사회, 문화적이슈들을, 선별하여번역한다음

이를필요로하는기관과단체또교민과교민지등에제공하고있다. 이 역

시투자관련과기업운 , 정보습득의차원에서선용되고있다.

다음은 광고 정보지로서 <교민세계>, <벼룩시장>, <여명>, <한울> 등이

있다. 이는 상업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매체들이지만, 광고가 생산

자와소비자, 판매자와구입자의양쪽을충족시키는정보로서현대사회에없

어서는 안 될 것이니만큼, 광고 정보지들의 기능성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또한광고외에읽을거리대부분이재활용을한것들이지만교민사회에필요

한교양과정보부분을중심으로, 편집자가선별게재함으로그효용성을잃

지않고있다. 다만과다한경쟁보다는사안에따라서로가공생을모색하는

것이중요하다하겠다.

이어 <한마음은혜>, <해인과붓다>, <그레이스저널>을살펴보겠다. 이

들은모두한마음교회, 해인사인도네시아포교원, 주님의교회등종교공동

체를 중심으로 하여 발행되는 메거진이다. 그 규모도 작고 화려하지도 않지

만발휘하는힘은결코작다고볼수가없는것들이다. 특히타종교에대해

교양과 이해의 폭을 넓혀줌으로써, 교민사회 안에서 종교간 배타적 벽을 허

무는데한역할을하고있다. 아울러타종교성직자들의세상을보는시각과

적세계도들여다볼수있다는점에서작은것의큰역할을보게되는사례

이다.

다음은<한인뉴스>, <일요신문>, <한나프레스>, <동부자바한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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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한인뉴스는한인회가월간으로발행하는매거진이다. 직접취재및상대

적으로폭이넓은교민필자, 그리고폭넓은배포를자랑하며, 체류국의경제,

사회, 문화, 법률등다양한정보를주콘텐츠로삼고있다. 한인뉴스는몇가

지이유로대표성이부여되는데자타가인정하는역할의정론지이기를바라

는교민들의뜻이그중심에있기를기대한다.

한편 <일요신문>은주간지로서국내일요신문과콘텐츠를공유하면서교

민사회에 필요한 공지사항과, 교민사회 이모저모, 광고 등을 전달하며 나름

의역할을하고있다. 동남아에진출한동포들의교류지를자처하는<한나프

레스>에서는소외된한인계층을위한사랑의전화운동본부운 을하고있는

데주목할일이아닐수없다. 수라바야지역 2천여한인들의대변지 <동부

자바 사람들>은 지방 유일의 한인신문으로서 어려운 환경에서 한인회 간부

들의힘으로발행되고있다.

어떤 형태의 미디어이든 사명감이 없이는 출발조차 할 수 없고, 한다한들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 미디어의 속성이다. 미디어 본연의 사명감을 망각한

체 오직 상업적 수단으로만 치닫거나 또 그렇게 비쳐진다고 하더라도, 설립

인이나 편집자의 사회 기여의지를 온통 부정할 수만은 없다는 의미이다. 그

러므로모든환경이쉽지않은교민사회미디어에서한국국내, 메이저미디

어의모습을기대할수는없을것이다. 또한그마저없었으면타국생활이얼

마나삭막했겠는가라는시각도적절치않을것이다. 아직도자카르타와위성

도시를제외하면광고정보지도귀한것이현실이며, 직접정보망인인터넷이

나YTN 방송도원활하게접할수없는곳에거주하는교민도없지않다. 그

러므로오직교민미디어의사명감발휘와교민들의격려와참여는절대필

요한것이되고있다.

이어서 극동방송의 <해피 자카르타>를 살펴보겠다. <해피 자카르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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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저녁6시~7시에전달되는FM 100.6 체널의라디오방송이다. 한국극

동방송의 자료와 현지의 전문가나 선교사들의 주도 아래 방송되고 있는데,

특별이 해피 자카르타 합창단, 해피 자카르타 청소년 오케스트라 등을 창단

함으로써미디어를기반으로한문화활동을기대하게된다.

이어미디어의총아로인정되는 상미디어부분을살펴보겠다. 주지하시

다시피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에는 KBS월드와 K-TV 두 방송사가 있다. 두

상미디어는설립동기에서밝히고있듯이“건전한동포사회구축에1차목

표”를 두거나“한인2세들의 정체성 확립과 언어능력에 도움은 물론 타국에

사는교포들의향수를달래줄수있는절대적인것이문화라는인식을기반”

으로 하고 있다. 국내 메이저 방송사 프로그램을 재편성하여 보여줌으로써

교민들이 타국에 살면서도 국내의 뉴스와 연속극, 교양, 스포츠 게임, 오락

프로그램을향수할수있게하는것도크게다르지않다. 특히뉴스제공등

은실시간또는두시간시차의국내와같은시간대에방송을함으로써운

의묘를기하고있다. 아울러교민사회를위한공지사항이나문화행사알림,

각종광고등을제공하는것도유사한점이라하겠다.

두방송사는각기다른점도있다. KBS 월드가 어와인니어자막을통한

언어간접교육기능과인도네시아의모든케이블및위성업체에기본채널로

KBS World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면, K-TV는 인도네시아 뉴스는 물론

교민사회뉴스를자체제작하여“교민에의한교민을위한방송”을실현하는

데적극노력하고있다. 결코간과하지말아야할교민들의바람도있다. 현지

사정에의한것이라고는하지만시청을할수없는지역해소, 잦은재방송,

시간대별편성의묘등이그것이다. 세심한배려와노력이필요하다하겠다.

필자는이번칼럼을위해각미디어편집인을대상으로대화와몇가지설

문조사를했었다. 세세히다밝힐수는없지만, 그들은꿈을지니고있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또 다양한 교민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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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을 하고 있었다. 또한 교민들께 바람도 있었는데 그것은 오직 교민들의

건전한참여 다. 따라서서두에가졌던의문, 즉인도네시아한인사회에미

디어다운 미디어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바로 미디어 문화 창출자와

소비자인교민들이의문의답을지니고있다는결론이나온다. 그렇다. 인도

네시아 한인사회 미디어들의 사명감 발휘와 높은 가치의 문화 창출, 교민들

의건전한참여를통한조화, 이것은곧이사회가보유한우리문화의실제

를시간이갈수록빛나게할것이다.

이 내용은 2010년 5월 8일 인도네시아 한인교민방송 K-TV에 <손인식의 상문화칼럼>으로 방송되었으며, 한인뉴스 2010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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幸福(행복), 나로인해창조되는나의행복 / My happiness created by me.

행복한 사람은 세상 모든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고 합니다. 사물이 지니는 외면이 아니라 내면을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하게 되면서 그 모든 것이 그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와 그 자체로 삶의 일부가 된다고 합니다. <나로인해창조되는나의행복>을휘호하면서거듭화선지를소모했던이유가, 행복한사람의삶을닮고싶기때문이었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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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한인사회문화탐구4

인도네시아한국인들의자선은찾을수록산처럼높고들판처럼넓었다. 하

지만그사실들을밖으로들추어내는데있어다소염려도없지않다. 자선의

고귀한뜻을훼손하는일일수도있고, 또오른손이하는일을왼손이모르게

하라는 자선의 진리와 배치되는 일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되짚어보

면자선또한세상사다. 많고적음을떠나사람이행할수있는기쁘고고귀

한일중의하나로서, 편하게접하고편하게행할수있다면더욱좋을것이

란 생각을 한다. 하여 이쯤해서 인도네시아에서 베풀어지는 한국인의 자선

상황을 중간 정리하면서 그 의미를 새롭게 새겨보고자 한다. 아울러 그동안

마음은있으나함께하지못했던이웃들도자선에동참할수있는기회가되

었으면하는바람도있다.

자선 현장에서 가장 도드라진 것은 종교 공동체들이었다. 몇몇 사례들을

짚어보면다음과같다. 현지인이웃을위한유치원과다문화가정을위한

알학교운 을하고, 한센병환자마을돕기에적극적인교민교회, 변함없이

전개하는 늘푸른교회의 언청이 수술을 비롯한 몇 몇 자선활동, 연합교회의

현지 어려운 이웃 눈 수술 해주기, 천사의 집 도시락 나눠주기, 장애인에게

제빵기술과 악세사리 제조 기술 전수, 주님의 교회에서 펼치는 밥퍼 사역과

침술을통한의료사역, 그리고미용부분의자선, 열린교회의성도한가정

당현지인한가정돕기와미용봉사, 무료직업훈련학교운 , 조계종해인사

인도네시아의 나환자촌 돕기와 가깝고 먼 지역을 망라한 장학금 지급, 그리

고어려운불자돕기, 성요셉성당의일선자선단체정기지원과폭넓은장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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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지급, 정기 기금모금을 위한 작은 꽃송이회, 겨자씨회 등 교우모임체 활

동, 한마음교회의노인대학섬기기, 동부교회의이웃사랑등을들수있겠다.

지면의 특성상 모두 나열할 수 없지만, 거의 모든 종교공동체들이 공통적

으로하는일들도있었다. 현지의어려운이웃들을대상으로정기, 또는부정

기로의복이나일용품을나누고크고작은장학금을지급하며사랑과희망을

심는것이그것이다. 정신적인안정과구도자적삶을가꾸고, 혼을구원코

자하는종교공동체들답게앞장서서자선상황을이끌고있는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생활처럼 펼쳐지는 특별한 자선들도 있었다. 바로 한국인

수도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자선들이다. 몸과 마음을 다하여 땀 흘리며 자선

을실천하는선교사, 수녀, 스님등수도자들께서는밥퍼봉사, 고아원운 ,

노인을위한시설운 , 저소득층아이들과거리의부랑아교육, 다문화가정,

미혼모, 미망인돌보기등매우다양한자선을실천하고있었다. 이들은재정

자립을 위해 노력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예기치 못할 자연재해 현장이 생기면 먼저 달려가

고 또 연결 통로가 되기도 하는 이들이야말로 자선현장의 특별한 존재들이

아닐수없다. 대표적으로밥퍼해피센터의최원금선교사, 메단에서고아원,

공부방등을운 하는박수산나수녀를비롯한세분의수녀, 땅그랑외곽에

서무지개공부방운 을주도하는고재천선교사, 또한인도네시아각지방

에서어려움을무릅쓰고사랑을심고가꾸는최달수, 이항용, 정 명선교사

들을 비롯한 인도네시아의 400여 한국인 수도자들이 있다. 성직자, 수도자

들의숭고한뜻과실천에, 교민들의진심어린격려와동참이더해져, 서로를

행복의세계로이끌고있는것이다.

이어 사회단체들의 자선 실제다. 자카르타 한인회를 주축으로, 업종별 기

업협의회, 한국부인회, 코윈, 국제부인회, 재인니평통, 동부자바 한인회, 반

둥한인회, 족자한인회등은지역과민족을초월하여재해가발생하면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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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성금과물품을거두어아픔을나누며, 또한나름대로상황에따른최선

의자선을펼쳐가고있다. 독자적이고지속적인기구로는우리은행이주축이

된우리장학회, 불우한처지에이른한국인을돕는사랑의전화운동본부, 무

지게공부방을집중지원하는신발협의회, 수디르만로타리클럽의정기적으

로실행하는몇몇정기자선이있다.

또다른자선의형태도있다. 자선공연과전시로서<내맘에한노래있어>

의언청이수술을위한정기자선음악회, 김은미씨가주관했던성악가초청

자선음악회, 한인예총에서주관한판소리자선순회공연, 최근에열렸던김세

자선사진전등이그것이다. 문화를가꾸고향수하며, 펼치는자선, 어찌

특별함이아니겠는가.

자선이란 경제적 여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주지하는

바다. 사랑의마음과지극한실천을필요로하는것이자선이다. 또한마음이

있다고해도당장의현실적인일들에 리기도하는것이기에사회단체나문

화행사를통한자선기회제공은반드시필요하다는점에동의하지않을수

없다.

개인들의아름다운자선사례또한헤아릴수없이많았다. 다만공동체와

함께하는다양한자선안에포함되는경우가대부분이어서여기서는그사

례들을생략하겠다. 꼭기억해야할분들은기업의주체들이었다. 이들은생

산과비즈니스현장의주인공들이자, 가장이며또사회공동체, 종교공동체의

일원들이며, 경제적결실을창출하는원천이다. 곧사실상모든자선의출발

점이기업인들인것이다. 기업 자체로 펼치는 자선 사례도 없지 않는데, 자

선재단을설립하여심장병어린이치료, 한국과인도네시아한센촌지원, 국

내외를 막론한 장학금 지원 등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자선을 펼치는 무궁화

유통과, 배움의농장, 빈민가정우수학생에게장학금지원, 학대받는여성돕

기, 기아구제 식량 지원을 꾸준히 펼치는 CEO 스위트는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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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많은 사람을 무조건 존경하지 않고, 권력을 향해 무조건 굽실거리지

않는것이한국인의기질이다. 인정이많다는것역시자타가공인하는한국

인의기질이다. 인도네시아자선현장에서여실히증명이되고있는마음부자

한국인, 실천의한국인을돌아보면참으로감사와경이로움이아닐수없다.

바로우리모두에게부여된축복이라는생각이든다.

세상사호사다마여서좋은일에도더러비판이끼어들기도한다. 사람마다

느낌과판단이다달라서고귀한뜻의자선활동을놓고도긍정의시각만있

지않는것이다. 다만더러있을수있는부정적시각이나, 자선을앞세워개

종을 강요하는 일부의 처사, 자선기금을 착취하고자하는 몰지각한 일부 이

나라인사들을대함에있어서는지혜가필요하다는생각을하게된다.

한편자선과는다른정다운나눔들도많았다. 예컨대인도네시아한인사회

초기부터유학생들을위한식사초대, 고추장, 된장, 김치나누어주기와, 사정

상 독거를 하는 이웃에 대한 다정한 나눔들 또한 여전하다. 듣고 보는 이의

마음이흐뭇하지않을수없다. 문화행사들에대한크고작은도움들또한아

름다운나눔으로서문화를가꾸는큰힘이기도한다.

우리는 지금 매우 풍요한 자원과 여유로운 품성을 지닌 나라에서 더불어

살고있다. 와룽에앉아식사를하고오잭을이끄는어려운환경의사람이거

리에서손을내미는걸인에게나눔을실천하는모습을흔히볼수있는나라

에살고있다. 자선(慈善), ‘사랑이지극’하다는뜻이다. 그러나사랑할자(慈)

를 스스로 자(自)로 바꾸면 자선에서‘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뜻을찾을수도있다. 곧진정한자선, ‘세상최고의자선이란오늘자기에게

주어진생명을소중히여기고오늘자기의삶을잘살아주는것’이란의미도

생기는것이다. ‘스스로에게최선을다하는것’이야말로가족이나 이웃에게

베푸는세상최고의자선이아닐까싶다.

“자선에지나침이란없다.”와“자선은무엇보다지속적인것이중요하다.”

는정의가있다. 그런가하면자선에솔선수범하는사람들은한결같이“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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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감사와 기쁨”이라고 밝힌다. 자선과

나눔은분명사람사는사회의꽃인것이다.

이상으로인도네시아의아름다운한국인, 사랑의한국인을자선이란창구

를통해살펴보았다. 자선이필요없는세상이라면얼마나좋을까하는생뚱

맞은생각이든다. 작은자선마저필요로하지않는평화롭고풍요한세상을

희망해보는것이다.

이 내용은 2010년 5월 22일 인도네시아 한인교민방송 K-TV에 <손인식의 상문화칼럼>으로 방송되었으며, 한인뉴스 2010년 7월호에 실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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惠而好我

킼킼手同궋(혜

이호아

휴수동행. 詩

經句), 나를

사랑하고

내가

좋아하는

이여

손잡고

함께

가자. / Tho

u who

love m

e an

dwho

m I love, let us go together ha

nd in

han

d.

나를

사랑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랑, 그

무엇과

바꿀

수있을까요? B.C. 1100년

무렵부터

춘추중엽인

B.C. 600

년무렵에

이르는

약500년

사이에

노래

불리어지던

민간

가요와

사대부들의

노래

및왕실의

연회, 의

식이나

종묘에서

제사지낼

때부르던

노래의

가사들을

후세

사람이

정리하여

편찬한

것이

시경(詩

經)입

니다. 그

시경의

한구절이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간절한

이유는

그무

엇과도

바꿀

수없는

지극한

진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

를사랑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랑이

세상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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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한인사회문화탐구5

교육과관련하여한국인들에게참익숙한고사가있다. 바로맹모삼천지교

(孟母三遷之敎)다. 이고사에서우리는크게두가지의미를추출할수있다.

그 하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인의 교육열이고, 또 하나는 교육에 있어서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것이다. 한국인의 교육열이야 이젠 세계에

드러난바인데, 양질의교육환경에대한욕구는그야말로진리여서한국인뿐

만아니라세계인모두에게교육환경좋은곳이곧주거의첫째의목표가되

고 있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는 특별할 정도의 교육열을 지닌 한국인들이

그것을해소할만한환경을지닌곳일까? 즉한국인들이 2세를교육하는데

있어선택할만한곳일까? 이물음에대한답은처한상황에따라다다를것

이다. 다만 이 칼럼을 준비하면서 내린 결론은‘선택할 만한 곳이다.’이다.

특히이결론은이미2세교육을마친부모나, 이미대학을진학했거나사회

로진출한당사자들에게서얻은것이어서매우흥미롭다. 그렇다면인도네시

아의어떤교육환경이관련자들에게는행복하고듣는이들에게도기분이좋

은이런결론을얻게할까.

살펴볼 때 넓은 선택의 폭을 들 수 있겠는데, 우선 한국국제학교 JIKS를

들지않을수없다. 타국에살지만한국식교육을원하는한국인들에게반드

시필요한JIKS, JIKS는한국식교육에국제감각까지덤처럼익히고경험할

수있어참으로보배로운존재라하다. 아울러나름의교육시스템을갖춘인

터내셔널 스쿨들, 그리고 내셔널 플러스로 분류되는 인도네시아 학교 등이

있다. 비싼 교육비 부담이 있지만 존재감이 큰 미국계 JIS와 NJIS, 국계

BIS와RIKS, 인도계GMIS, 호주계AIS, 싱가폴계SIS 등인터내셔널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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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선진국형교육형태를도입하여인터내셔널을지향하는내셔널플러스로

서SPH, STB, SCB 외다수의학교가넓은선택의폭을제공하고있는것이

다. 이들학교는다국적학생들과폭넓게교류하며, 한국인들이간절히소원

하는 어습득을우선케할수있는학교들이다. 곧한국인들이원하는교육

환경이자 삶의 환경이 되는 것이고, 강력한 주거 이유가 되고 있다. 이러한

학교들의존재는인도네시아의큰도시나작은도시를막론하고한국학생을

어렵지않게볼수있게하며, “기러기아빠”라는은어까지생겨나게한조기

유학대상지가되게하고있다. 한편저렴한교육비의일반인도네시아학교

도선택권에있는데, 경제적여건을감안할수도있지만현지전문가, 즉 특

화된재원을기른다는측면에서이들학교들또한분명한선택의한축이되

고있다.

한국인들이 인도네시아를 교육환경이 좋은 곳으로 여기는 데는 그야말로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대학진학의 결과이다. 그간 인도네

시아에서공부한학생들의국내명문대학진학은국내의유수한고등학교와

비교해볼때그야말로놀라울정도의결과가아닐수없다. 물론특례입학이

란제도의혜택도없지않지만, 이는 로벌시대에발맞춰우수한인재를선

발하려는국내대학의취지와잘조화된결과이기도한다. 아울러세계의명

문대학진학또한이미흔한일이되고있는일인데, 미국을비롯한세계유수

의대학에합격이야말로가능성있는인재라는증명이니한국인들에게인도

네시아는교육의적소가아닐수없다.

다음으로는한국인이있는곳에는어디에나존재하는사설교육의공로를

들지않을수없다. 한국인의사설교육, 과열현상때문에여론의뭇매를맞

기도하고심지어는퇴출의대상으로치부되기도하는데, 변함없이성행하는

것이또한사설교육이고보면, 이는바로자본주의사회, 경쟁사회에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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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교육의본질이요무시할수없는필요성이아닌가생각을하게된다. 자

카르타를중심으로활발히운 되고있는한국적사설교육은다국적인터내

셔널학교에서채워주지못한일부중요과목들을자국의학습방식으로충당

할수있게함으로써, 그존재가치를분명히하고있는데, 이때문에커뮤니

티의규모로인해자국의사설교육시설이생겨날수없는다른나라학부모

들에게부러움의대상이되기도한다.

한편 사설교육은 많은 시간 집중을 필요로 하거나, 각별한 지도를 필요로

하는주요과목이나예능계과목에서그장점을잘드러내고있는데, 특히일

부미술과입시학원들은국내외명문대진학성과를속속드러내고있기도하

다. 미술음악등예능계사설교육은꼭진학을목적으로한것이아니더라도

모국과타국의문화충돌을완화하면서, 모국과현저히다른일상의문화, 모

국의아름다운산천이나특징이드러나는사계절을경험하지못하는학생들

에게감성을일깨우는절대적요소가될것이다.

현재인도네시아에는우리한국인초·중·고생이대략2000여명정도재

학하고 있는것으로파악되고 있다. 한국계 국제학교 JIKS의 경우 2009년

고등학교졸업생 132명 중약 98%가한국의대학으로진학을했으며, 외국

계인터내셔널스쿨중가장많은한국학생이재학중인JIS의경우2009년

하이스쿨을졸업한한국인학생 37명중약 55%가한국의대학으로진학을

했고, 약 45%정도가미국을비롯한제3국의대학으로진학을한것으로드

러났다. 자카르타의여타외국계학교들또한이와비슷한양상인데, 수라바

야, 반둥, 족자카르타등지방도시에산재한인터네셔날스쿨졸업생들의경

우는선진국대학지향보다는한국의대학과현지대학을선택하는비율이점

점더높아지고있다고도한다. 안타까운점은약 600여명에달하는지방도

시의한인학생들은, 한인회에서봉사활동으로운 하는주말한 학교를통

해서만한국적교육을접할수있다는것인데, 정부와민간모두가다각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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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가져야할부분이아닌가한다.

한편 인도네시아 정부초청장학생, 언어연수를 비롯한 장단기 유학생들도

상당수에이르는데, 인도네시아대학에진학한학생들을포함하여이들에게

서나름의희망을보게되는것은, 이미인도네시아대학에서언어, 경제, 의

학, 법률을전공한몇몇한국인들의, 활발하고도성공적인활동이새로운패

러다임으로드러나고있기때문이기도한다.

하여학부모들의소견중“자녀의모국어어휘력부족”에대한걱정은시

간이해결할것으로여기며, “ 악스럽지못한것에대한염려”는그냥미소

로만 답하게 된다. 오히려 타국의 환경과 현지 문화 경험, 그리고 타국인의

부와가난에대한간접경험, 갖가지봉사체험등으로아쉬움을대체하고도

남을 것이라여기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국내보다현저히적은 청소년 위

해환경”, “경쟁의 소용돌이를 비켜가는 여유로운 시간 운용”, “상대적인 순

수함”등의평가와“인도네시아생활중가장큰소득이있다면자녀교육”이

라는결론등에서는함께기꺼워하며감사할뿐이다. 특히진학한대학에서

적응기를거쳤거나, 사회에서연륜을쌓아가는시기의당사자들이인도네시

아에서의수학을마음깊이감사하며생활한다고하니이어찌기쁜일이아

니겠는가?

앞에서살핀바와같이인도네시아가한국인들에게선호하는교육환경이

되기까지는매우실질적인배경이있다. 2000여 한국학생들이 로벌인재

로성장하고있는그이면의절대적인축은가정교육, 즉학부모들의열정과

노력이다. 초, 중, 고의교육비로는국내와비길바없이높은수업료를기꺼

이지출하면서자식을훌륭히키우겠다는부모들의일념하나로자녀들에게

여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했던 것이다. 하여 인도네시아 한인사

회교육문화를살펴보면서다시한번확인하게된것은“한국인의우수성”이

다. 어떤 악조건이라도 거뜬히 이겨내고 아름다운 성공을 일구는 한국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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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노력, 그리고능력을확인하게된것이다.

우리가잊지않고함께나누어야할부분도있다. 피치못할사정으로최소

한의 교육비 지출조차 어려운 환경에 처한 우리의 이웃들에 대한 배려이다.

한 때의어려운처지가배움의시기에있는학생들에게오랜아픔으로남지

않도록모두가관심을가져야할것이다.

교육을말할때흔히쓰는단어가“교육지백년대계(敎育之百年大計)”이다.

교육이란 백년을 내다보는 큰 계획, 또는 백년을 한결같아야 비로소 성과를

올곧게 드러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어제가 한결같고 오늘과 내일이 한결같

아야한다는것은곧창의적이고능동적으로자기삶을주도해야한다는말

과도다르지않다. 사람은평생교육에서벗어날수없다고한다. 우리는타

국에살면서가르쳐야하고배워야하며, 또조화해야한다. 한결같은노력으

로한결같은행복을누릴수있기를간절히바라며, 설문에응해주신많은분

들께감사드린다.

이 내용은 2010년 6월 5일 인도네시아 한인교민방송 K-TV에 <손인식의 상문화칼럼>으로 방송되었으며, 한인뉴스 2010년 8월호에 실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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繪事後素(회사후소), 그림은 바탕을 갖추고 난 후의 일이다./ Drawing comes after the background is prepared.

그림은바탕을갖추고난후의일입니다. 바탕부터조성해야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사람 삶의 본질은 어느 사이 생겨난 욕심을 지우는 데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태어날때하얗던그바탕이배우고, 보고듣고, 냄새맡으며맛보는사이 욕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학문도쌓기위한것이기보다는지우기위한것이어야합니다. 서예에개칠(蓋쥻)하지 말라는말이있습니다. 그러나보서(輔書)하라는말이있습니다. 흠을감추기보다는드러내서보완을하라는의미입니다. 사람의생은항상보완이필요하다는것을 저는 서예를 하면서 깨닫습니다. 바탕이 하얗게 유지될수만 없는 세상에서 지우고 다듬으면서 완성해 나가는 것,얼마나신나는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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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한인사회문화탐구6

문헌에 의하면“종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되었으며, 종교는 현

대에이르기까지모든문화와모든민족에게서보이는문화현상”이라고밝히

고있다. 사람이존재하는곳에문화가생겨나고, 사람이생을 위하는곳에

반드시종교가함께하는것이니, 종교로서문화를탐색할수있고문화로종

교를 가늠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특히 한국의 종교사를 들여다보

면 문화가 보이고, 문화사를 들여다보면 거기엔 온통 종교의 역사가 생생하

게살아있다. 따라서본고는종교와문화, 문화와종교, 즉서로뗄수없는

그불가분의관계에대한담론도될것이다. 곧문화의의미도환기해보면서,

매우일상적이면서도특수한 역인종교문화에좀더쉽게접근할수있을

것이다. 살펴볼때문화에대한가장오래되고포괄적인정의는“문화는인간

에의하여이룩된모든것을포함한다.”이다. 즉문화는“지식, 신앙, 법률, 도

덕, 관습, 그리고사회구성원으로서의인간에의해얻어진다른모든능력이

나습성의복합적총체”이므로문화의중심에반드시종교가자리하고있음

을확인할수있다.

이땅인도네시아에언제부터한국인의종교가하나의문화로서드러나기

시작을했을까? 우선선명한기록은 1970년 한국의한기독교단체총회로

부터 인도네시아선교를명받고 이듬해인 1971년 선교사로부임한 고 서만

수연합교회목사를들수있겠다. 그로부터어언 40여년의역사를인도네

시아에 쌓은 한국기독교 개신교계는 한편으로는 동포들을 안위하고, 또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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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으로는현지인기독교도들을이끌면서그사명을실현하기위해많은노력

을기울여왔다고하겠다. 오늘날에는자카르타를비롯한수라바야, 반둥, 족

자카르타등지방도시를아울러그숫자가약30여개의교회로확대되었으

며, 총 3천 500여신도들이교회와더불어타국의삶을지혜롭게꾸며나가

고있다.

이들교회는다시현지인들의정신적안식처나삶을개선하는중심체로서

현지교회를개척하거나지원한다. 종족별종교지도자를배출하고그들로하

여금그종족안에서교회를세우고이끌어나갈수있도록하는데, 그 숫자

가수백곳을헤아리니한국적종교문화의혜택을입는현지인성도들의숫

자는헤아리기도쉽지않은상황이다. 나아가일인교회역할을하는 400여

선교사들의 활동까지 감안해볼 때 이 땅의 한국인들에 의한 기독교 개신교

문화는 매우 적극적이고 실천적으로 그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고

하겠다.

학자들은역사와현상의어느면으로보아도“한국의문화는조화의문화

다.”라고역설한다. 이는한민족의역사가“하늘과땅사람이모두하늘의이

치를법으로하여거기에서벗어남이없이모두, 고루어우러지고그렇게되

도록노력한다.”는점에근거를두고있다. 물론다른나라문화에조화가없

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문화에는 조화의 강도가 훨씬 높고 그것이 보다

보편적으로나타난다.”고한다. 한국문화의어느것을보아도조화의면이역

력하거니와 역사에서 보면 한때 그것이 깨어졌던 때라 하더라도 곧 회복을

위한노력이도처에서터져나와조화를이어오곤했던것이다.

조화가강점인한국문화는근대에들어물 듯이 려드는서양문화에얼

핏당황한듯했지만, 이내문제를풀어나가며고도성장을이루는가하면많

은 분야에서 세계적 리더들을 속속 배출하고 있다. 세계 어디에나 한국인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며, 나름대로 어렵고 이질적인 환경과 토속문화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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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내고성공을일구어내고있는것이다. 인도네시아의한국인종교문화도우

리문화의특징인조화를바탕삼아매우성공적인정착과변천, 그리고발전

을하고있다는사실은이미우리교민들께서도다아시는바다.

이어 전 세계의 소속 교회가 일체감을 드러내는 것이 특징인 천주교로서

자카르타성요셉성당을통해발생되는종교문화를살펴보겠다. 자카르타한

인성당은 1978년재인니한인가톨릭교우회가모임을가진것이그시작이

다. 조선중엽성리학또는토속신앙과도잘조화한학문으로서한국에전래

된, 한국천주교의시작이그렇듯외부의선교활동이없이공동체를타국땅

에서세우는일을재현해낸것이다. 신부도수녀도존재하지않은곳에서평

신도들이 주일이면 가정집에 모여 공소예절을 시작한 것이, 오늘날 한국인

603 세대, 등록교우천오백사십여명이공동체를이루어가톨릭나름의문

화를 펼치고 있는 토대인 것이다. 천주교는 최근에는 수라바야, 반둥, 찌까

랑, 땅그랑 등 4곳에 소속 공동체로서 공소를 설립하고 내외적으로 평화와

희망을함께가꾸어나가고있다.

문헌에 드러나는 종교의 의미는“근본이 되는 가르침”이다. 또는“초자연

적인존재에대한외경의감정과그것을표현하는의례등의행위”라고기록

되어있다. 그러므로정치·경제·사회·예술등전반이종교로부터크게

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종교는 모든 사람에게 인생관과 세계관에 향을

미치며, 특히혼란한시대에는궁극적관심이자신념체계로서통합적가치기

준을제시하며사회를리드한다. 한국인과한국문화의생리요특성으로서한

국인과한국문화의장점을세계에드러나게한원동력으로서의깨달음도, 한

국종교가깨달음의방법을두고그경지에이르도록꾸준히노력을해온덕

임을부정할수없다.

깨달음을 특징으로 하는 종교, 불교를 살펴보자. 인도네시아 한국인 불교

공동체들또한 1991년 1월 불자들이모여자카르타에서 가정법회를 개최한

Page 307: 도처교학내지2011

307

것이그시작이었다. 불자들의그작은모임은오늘날조계종해인사인도네

시아의전신이자조계종능인정사, 조계종고려정사, 법연종법연원등네곳

의불교공동체700여신도의모체이다.

인도네시아불교는 7세기경부터약 300여년을융성했다고한다. 그러던

것이 힌두교나 이슬람의 유입에 따라 150여 년 전부터는 그 명맥마저 끊긴

것인데, 40여 년 전 대만으로부터 유입된 대승불교가 승맥을 이은 데 이어

한국계 불교가 나름의 힘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해인사 인도네시아는

소속불교공동체로서이미수라바야에해인사포교원을열었고, 또다시반

둥에도포교원설립을추진하고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최대의 이슬람 국가이면서 또한 다

종교국가이다. 다만타국적종교공동체를국가법적으로양성화하는것이

아니어서안타까운점도없지는않지만, 한국적종교즉, 기독교로서천주교

의 성당과 개신교의 교회들, 그리고 불교공동체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현지

의동일종교공동체들과연합하면서매우실천적으로종교문화를키워가고

있다. 인간의 불완전성으로 인한 두려움이나, 타국의 생활현장에서 생겨날

수있는고난을이기고힘을얻으며, 현지사회를향하여는끊임없는자선과

다양한사회개선사업을펼치는모체로서그역할을다하고있는것이다.

우리는 지금 내적 깊이보다는 외적 넓이를 선호하는 화려한 칼라 시대를

살고있다. 어느때보다전자공학의의존도가높은시대이기도하다. 이는곧

순일한 종교의 진리와 가르침이 절대 필요한 시대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종

교학자뮐러는종교에있어“하나만아는것은아무것도모르는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타종교에대한이해의폭을넓혀야한다는말이기도하지만,

종교는 반드시 넓이와 깊이가 함께 추구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다.

우리는 앞에서 한국인과 한국문화가 얼마나 종교적인가와 한국인들이 얼마

나조화를추구하는민족인가를살펴보았다. 곧인도네시아한인사회의종교

Page 308: 도처교학내지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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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통해서실천과조화, 희망을배울수있었다. 부디각자가믿는종교

의무한한힘을입어이땅의한국인모두가꿈을이룰수있기를바라고또

빈다.

끝으로그동안6회에걸쳐인도네시아한인사회문화의실제(저서문화, 언

어문화, 미디어문화, 자선문화, 교육문화, 자선문화)를탐구해왔던본문화칼

럼을 개인 사정으로 인해 마감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이제는 인도네시아 한

인사회의문화가한권의책으로묶일때도되었다는생각에서시작했던것

인데그만중도에서그치게되어아쉬움이크다. 다행이쌓인것이많고다시

기억해야할것도많은것이인니한인사회에역사요, 기록되어야올곧게역

사가 된다는 뜻을 지닌 분들이 많으므로 언젠가 <인니 한인사회문화사> 한

권이 탄생될 것으로 믿는다. 그동안 자료를 제공해주시고, 격려해주셨던 분

들께진심으로감사드린다.

이 내용은 2010년 6월 19일 인도네시아 한인교민방송 K-TV에 <손인식의 상문화칼럼>으로 방송되었으며, 한인뉴스 2010년 9월호에 실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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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오늘로

내일을

가라

/ Go to tom

orrow with today witho

ut regret.

유구한

전통을

지닌

필묵예술이

오늘

생명력을

빛내는

것은

단지

오래되어서가

아닙니다. 흐르는

시간을

지배하며

그것을

즐기

는사람들에

의해

그때마다

다시

그가치를

다시

얻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해야

할49

가지>라

는제목의

책의

서문에서

간추립니다.

“우리는

매일

경쟁과

승리를

좇아

질주합니다. 지

나간

길에는

수많은

분실물이

떨어져

있습니다. 매

일무엇을

떨어뜨리고

다니는

것일까요? 이게

아닌데, 이

게아닌데……

하면서도

질주를

멈출

수없습니다. (중략) 이

책을

쓴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가

장소중한

사람들에게

제진심을

말하지

못할까봐

무섭습니다. 저

를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눈

을감을지도

모릅니다. 제

가꿈꿔왔던

일들을

다하지

못할

것같은

두려움에

몸서리를

칩니다. 정

말이지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Page 310: 도처교학내지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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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도처교학』은사람이사는도처에반드시존재하는배움과가르침, 그리

고거기에얽힌삶의이야기를모아보자는취지로기획되었다. 특히인도네시아

의 한국인들이 학교나 사회, 기업에서 일궈낸 교학 성과가 만만치 않다는 데에

근거한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노력은 국내와 현지, 세계의 유수한 대학에

당당히진학결과와성공적인사회진출사례를많이남겼다. 또한기업들의활동

은 고용에서부터 경제적 성과에 이르기까지 인도네시아에 대한 공헌도가 매우

높다. 한마디로 한국인의 기질과 교학의 우수성이 인도네시아에서도 유감없이

빛을발하고있는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런 많은 사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대부분원고를써내는것이나사실들을드러내는것자체를꺼려했기

때문이다. 좋은 사례집을 엮어내겠다는 기획의도와 드러내놓고 자랑을 하는 것

은 삼가겠다는 그 틈을 지워버리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많은 겸양의

미덕을만나는중에도귀하고아름다운결실을이만큼이나마이룬것은참으로

기쁜일이아닐수없다. 특히현대한국과한국인들의위력큰무기인한류의바

탕, 한국인의 기질과 독특한 문화의 바탕으로서 진심을 다하는 교학을, 타국의

교학현장에서확인할수있었음은내게는큰소득이었다.

문화의결실을이웃과함께만들어내는일, 나는이런일이매우즐겁다. 서예

가로서서예가지닌인문학적가치를드러내는일이기도하지만, 동시대, 한사

회를살아가는일원으로서내가선택할수있는범주이고, 스스로해낼수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감해주시고 함께 동참해주신 이웃들이 아니었으면 쉽

게이룰수없는일이다. 난감한일을거절하지못하시고잠시나마고민을떠안

고 을 쓰신 1부의 공저자분들과,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2

부의주인공들에게이지면을빌어진심으로감사를드린다.

이책이빛을보는데는LIG 인도네시아와관계자들의큰후원이있었다. 기업

의문화심고가꾸기의한전형이라할수있겠는데, 특별히해외동포사회에서

일어난미덕인지라고맙고자랑스러운마음이크다. 감사하다.

2011년 5월서생 인재 손 인 식

│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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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heogyohak was planned with intent to collect stories of learning and teaching,

and life which always exist wherever humans live. Especially, it is based on the

teaching and learning achievements that Koreans in Indonesia has accomplished in

schools, societies, companies are hard-bitten. Student and parent's efforts has made

many results of entering leading universities in the world and examples of successful

getting into societies. Moreover, companies' activities, from employment to

economic outcomes, has contributed to Indonesia so much. In short, Korean's spirit

and superiority of teaching and learning are fully shining in Indonesia.

Yet, it was very difficult task to compile so many stories into a single volume. Most

of the contributors avoided writing or revealing the stories. It left wanting of

uncovered gap between compiling a good casebook, which was the intent of the plan,

and being cautious of bragging. Nevertheless, it is truly pleasant to bear the precious

and beautiful fruits in meeting the virtue of modesty. Above all, it is a big result for

me to see the earnest teaching and learning in a foreign country as a background of

Korean wave, which is modern Korea and Koreans' power and big weapon, and of

Koreans' spirit and unique culture.

Therefore, it is very pleasant for me to make cultural fruits with neighbors because

as a calligrapher, it is not only revealing humane value which calligraphy has but

also as a member of same age and same society, it is a matter of choice and can be

carried out on my own. Of course were it not for neighbors who sympathized with

and participated in, it would be difficult to attain. I really appreciate the collaborators

of the first part of the book, who could not decline this labored work, and write the

story with concerns, and also the interviewee of the second part of the book, who

could not turn down, and responded to the interview.

LIG Indonesia and the parties concerned supported a lot for this book. Though it is

a kind of cultivating the corporate culture, I am thankful and proud of it specially

since it happened in Korean society abroad.

May 2011. Injae, Inshik Shon

│Post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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