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184
28 2010 12 한국조직신학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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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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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제2 8집 2 0 1 0년 1 2월 한국조직신학회편

Page 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제2 8집 2 0 1 0년 1 2월 한국조직신학회편

Page 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차 례

임형모 폴 틸리히의존재론적 상징주의에나타난 삼위일체론

가능성 7

이오갑 칼뱅의 여성이해 39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67

최태관 변선환의 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07

윤원준 신의음성과 책임: 레비나스와데리다의생각속의

키에르케고르적윤리 149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 이해를 향한프롤레고메나 177

박일준 사이의 열림: 하이데거의『존재와 시간』을 중심으로 221

김재진 인간학적 종교(기독교) 비판에 대한칼 바르트의

계시론적‘종교비판’ 245

최종호 악의문제와 그 극복을 위한신학적 고찰 281황덕형 포스트모던시대의 신학의 가능성: 밀뱅크의급진적

정통주의를중심으로 311

차례 5

Page 4: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상징주의에나타난

삼위일체론가능성

임형모

(침례신학대학교강사)

I. 서론

본 논문의 목적은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존재론적 상징주의에

나타난 삼위일체론의 가능성을 재고하는 데 있다.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에서 삼위일체론은 그다지 환영받은 교리는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반응에 나타난 형식은 전통적으로 삼위일체의

범주내에서 이해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에서 신학적으로 끊임없는

논쟁을 유발하였고 결국 해명되고 치유되어야 할 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코페르니쿠스적인전환처럼 삼위일체론에 대한 접근 또한새

로운관점과 인식을 필요로 한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틸리히의 존재론

적인 상징주의는 그동안 논쟁의 중점이 되었던 삼과 일의 문제를 극복

할 수 있는하나의 가능성을제시해 줄 것이다.

그리스도는누구신가에대한아리우스(Arius)의 논쟁이후로봇물처

럼 터져 나왔던 삼위일체 논쟁이 어거스틴(Augustine)에 이르러 어느

정도 정돈되었기 때문에 그 뒤로는 거의 심각하게 논의되지 않았던 것

Korean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Vol. 28

Yim, Hyung-mo A Possibility of the Trinity in a Ontological

Symbolism of Paul Tillich

Lee, O-kab Calvin’s Understanding of Woman

Hwang, Don-Hyung The problem of the understanding of the

person in the modern science and the trini-

tarian understanding of the person

Choi, Tae-Kwan Die theozentrische und “nichtnormative”

Christologie bei Sun-Hwan Pyun

Won-Jun, Yun God’s Voice and Responsibility: The

Kierkegaardian Ethic in Levinas’s and

Derrida’s Thoughts

Kim, Sung-won A Prolegomena to the Postmodern under-

standings of Anthropology

Park, Il-joon The Opening of the Betweenness in Heideg-

ger’s Sein und Zeit

Kim, Jae-jin K. Barth’s revalational Critic on the Anthro-

pological Critic of the Chrisitanity

Choi, Jong-ho Problem of Evil and Theological Study for Its

Overcome

Hwang, Duk-hyung A Possibility of Theology in the Postmodern

Eras: A study on the Redical Theology of J.

Milbank

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7-38

Page 5: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삼위일체론의 문제는 삼과 일의 숫자적

인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 삼위일체론의 한계

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현대신학의 흐름속에서 종교다원주

의는 현대인들의 의식 속에 그리스도 중심주의에서신중심주의로 패러

다임을 바꾸어 놓고 있다.5) 그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생각하는

그리스도교적방식으로서 그리스도론을 떠나는 그 어떤 움직임도 자동

적으로 하나님 이야기의 삼위일체론적인 틀을 벗어난 다른 어떤 것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의미한다.

이러한 현대 삼위일체 신학의 문제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하여 본

논문에서는먼저, 존재론적 상징주의의배경과 존재론적 상징주의 삼위

일체에 대한 예비적 분석으로 삼위일체 원리들을 고찰할 것이다. 다음

으로, 전통적 삼위일체론의 문제점을 바르트의삼위일체론을 통해서 짚

어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삼위일체 상징들의 동기들을 통해서 삼위일

체에대한의미를 재고해 보고자 한다.

I I. 존재론적상징주의와삼위일체원리

1. 존재론적상징주의배경

틸리히의 신학에서는 존재( b e i n g )와 비존재( n o n-b e i n g )의 긴장과

같다. 게다가 개신교 신학의 교의학 서론에서도 삼위일체의 교리는 하

나님에 관한 중요한 논의로부터 참담하게 고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

러 곳에서 완전히 외면당하였다. 이러한 풍조는 근대 이성주의 사고에

서 비롯되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1) 칸트(I. Kant)가 이성의 한계 내에서

신과 종교를 인간성의 투사로 생각하고 관념과 경험을 종합한 이래 근

대 신학의 아버지 슐라이어마허(F. Schleiermacher)에 와서는 삼위일

체 교리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삼위일체 교리를“그리스도교인

의 자기의식에 대한 직접적인 선언으로 보지않고 단지 그러한 선언들

의 조합”2)으로 생각했다. 그는삼위일체 교리를 단지그의 교의학의 결

론 부분에서 다루고 있다. 이것은 그의추종자들로 하여금 삼위일체 교

리를 매우문제성 있는 신학진술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어쩌면 이것이

삼위일체 교리가 복음의 토양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하르낙( v o n

Harnack)이 말한 바“그리스도교의헬레니즘화”의 불필요한 산물로 여

겨지게 된 것이다.

그러한 삼위일체론이 금세기에 들어 올슨(R. Olson)이 현대신학을

가리켜“삼위일체론의 르네상스”3)라고 할 만큼 재평가되고 있다. 현대

의 삼위일체 신학의 부흥은20세기의 위대한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

(K. Barth)와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K. Rahner)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융엘(E. Jüngel), 판넨베르그(W. Pannenberg), 몰트만(J. Molt-

mann), 보프(L. Boff) 등의신학자들에 의해서더욱 확장되었고 심화되

었다.4)

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임형모,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상징주의에나타난 삼위일체론가능성 9

1 ) George F. Thomas, Religious Philosophies of the West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65), 275.

2) Friedrich Schleiermacher, The Christian Faith (Edinburgh: T. & T. Clark, 1928),

738, Carl E. Braaten, 『다른 복음은 없다?』, 김명용 역(서울: 성지출판사, 1999), 167

에서재인용.

3) Roger Olson, 『삼위일체』, 이세형역(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131.

4 ) Karl Rahner, The Trinity, trans. Joseph Donceel (New York: The Crossroad

Publishing Company, 1997); Jürgen Moltmann, History and the Triune God: Con-

tributions to Trinitarian Theology (New York: The Crossroad Publishing Com-

pany, 1992); Leonardo Boff, Trinity and Society, trans. Paul Burns (New York:

Maryknoll, 1988); Eberhard Jüngel, God as the Mystery of the World: On the

Foundation of the theology of the Crucified One in the Dispute between Theism and

Atheism, trans. Darrell L. Guder (Grand Rapids, Michigan: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83).

5) Paul Knitter, No Other Name?: A Critical Survey of Christian Attitudes toward the

World Religions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85), 166.

Page 6: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한 대답이다. 인간의 유한성은 하나님에게 궁극적인 관심을 갖게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으로 표현된다. 틸

리히는“궁극적인관심”이 마가복음12장 29절에나타난 대명령에대한

추상적인 형상화라고 설명하고 있다.8) 틸리히는“궁극적 관심”으로서의

신앙에는 보편성과 구체성이라는 양극이 긴장을 이루고 있고 이것이

균형을 이룸으로써삼위일체적인구조가 창조된다고 보았다.9)

하나님은 주관성과 객관성의 분열을 초월해 있는 궁극적인 관심의

표현일지라도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관계의 터전 위에서만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10) 틸리히가 생각하는 상징주의 삼위일체는 인간

의 곤경이 지니고 있는 실존적인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서 이해되어야

만 한다. 그러한 점은 역사적으로 삼위일체론이 역사적 예수의 체험과

의미에서 기인된 것과 무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틸리히가 그의

『조직신학』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간의 곤경에 관한 세 가지 개념들은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와 관련한 유한성, 시간과 공간 속

에 있는 인간의 실존적인 존재와 관련한 소외, 그리고 생명 일반에 대

한 인간의 참여와 관련한 애매성이다. 즉 삼위일체 상징들은각각의 실

존적인 문제들에 대한 계시적 답변이 된다. 인간의 유한성에서 제기된

물음들은 그의『조직신학』I권, 신론과 여기에서 사용된 상징들에 의해

서 대답되고 인간의 소외에서 제기된 물음들은 그의『조직신학』I I권,

그리스도론과그것에 적용된 상징들에의해서 대답된다. 그리고 생명의

애매성들에 의해제기된 물음들은 그의『조직신학』I I I권, 성령론과 여기

대립이 큰 신학적 물음으로 나타난다. 틸리히는여러 가지문화의 형식

은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의 한 측면을 실현하는‘힘’의 관점에서만 신

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궁극적인 관심의 내

용은 우리의 존재와 비존재를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우리의 존재를

위협하거나 구원하는‘힘’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어떤 것도 궁극적

인 관심이 될 수 없다.”6) 뿐만 아니라 틸리히는 우리의 존재와 비존재

를 결정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힘’을 지니고 있지 않는 내용들은

신학의 영역에서 제외시키고자하였다. 틸리히의하나님은 비존재를 초

월하면서 자신 안에서 비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구체적이고 보편적 실재로 이해될 수 있다. 존재와 비존재의

문제는 철학자와 신학자들의 사고에서 늘 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예컨

대 신플라톤주의에서 일자(the One)는 전적 타자이면서 모든 사태의

원인으로 간주된다. 그 일자는 모든곳에 편재하지만 일자는 자체로 충

분하며, 모든 선 위에최고선(the Good)이다. 우주안에는 일자(to hen),

정신(nous), 영혼(psyche), 물질(hyle) 사이의 끊임없는 유출( p r e c e s-

sion)과 회귀(prohodos)의 운동이 일어난다. 유출은 존재에서 비존재로

의 나아감이며 따라서 비존재는 존재를 상기하며 존재로의 회귀를 추

구하게 된다.7) 이러한 사유는 틸리히의 신론에서 존재자와존재의 이성

적 구조를 강하게 어필할 때 묻어난다.

틸리히의 신학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유한성이 안고 있는 물음에 대

1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임형모,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상징주의에나타난 삼위일체론가능성 11

6)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vol. I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1), 14. 이후부터는틸리히의『조직신학』I, I I, I I I권을 ST I , I I, I I I 등으로 표기한다.

7 ) Diogenes Allen, Philosophy for Understanding Theology (Atlanta: John Knox

Press, 1985), 73-82.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는 초월자인 신과 내재적인 신 혹

은 숨겨진 신과 계시된 신을 구분하였다. 그는 전자를“존재 자체”로서 궁극적 존재

로 파악하고 이를 신성(Godhead)으로 규정하였고 후자의 창조와 역사 안에서 자신

을 계시하는 그리스도교유신론의 인격적인삼위일체 하나님과 구별하였다. 에크하르

트의 신은 플로티누스(Plotinus)의 정신(Mind)에 해당하고 신성(Godhead)은 일자

(the One)와 대비해볼 수 있다. Thomas, Religious Philosophies of the West, 152-3.

8)“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

일한 주시니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막 12:29-30). 여기서 틸리히는 종교 언어에서의

절대성을 보았으며 종교를“궁극적 관심에 사로잡힌 상태”로 정의하는 근거가 되었

다. Paul Tillich, 『절대를찾아서?』, 이찬수, 장성현역(서울: 전망사, 1993), 119.

9) ST I, 211.

1 0 ) Lewis S. Ford, The Lure of God: A Biblical Background for Progress Theism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8), 214.

Page 7: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구원 역사의 종속을 하나님과 그

리스도의 본성(ousia)의 차이에 기초한 것이라고 봄으로써 존재론에

기초한 신학적 사색의 형식을 가진다.12)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신화적이고 상징적

인 요소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하나의 종교적 표현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무

엇을상징하는가이다.

2. 종교적상징

틸리히는 존재자와 존재의 매개적 기능으로 상징에 주의하였다. 존

재에 대한 신학적 답변으로서 존재의 궁극성을 담지한 것이“존재 자

체”(Being itself)로서의 하나님이다. 틸리히가 인간 존재의 유한성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하여 개발한종교언어인“존재 자체”를 어떻게 상징

의 요소 없이 문자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틸리히의 주된 신학적 작

업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적인 진리들이 상징 언어 속에 은폐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상징과 실재의 관계를 해명하는 데 있었다. 이러

한 상징들은 그 자체를 넘어서서 상징하고자 하는 어떤 실재를 가리킨

다는 점에서“문자적 의미에서는 자신을 부정하지만 상징의 자기 초월

적 의미에서는 자신을 긍정한다.”13) 여기에는 상징의 자기 부정성과 자

기 긍정성의 변증법적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삼위일체 교리 역시

비합리적이거나 역설적이 아니고 변증법적이다. 틸리히가 명료하게 말

하고 있듯이,“삼위일체 상징들은 변증법적이다. 삼위일체 상징들은 분

에 사용된 성령의 상징들에 의해서 응답된다. 이러한 대답들은 각각특

별한 계시적 경험들에서 유추해온 상징들 속에서 궁극적인 관심사를

나타내 준다. 이러한 상징들의 진리성은 모든 방면에서 궁극적인 것의

궁극성을 표현해 주는 그것들의 힘에 놓여 있다. 틸리히는 삼위일체론

의 역사란 이러한 상징들의 힘을 위협하는신조들에 대한 끊임없는 싸

움의역사였다고말한다.

삼위일체론은 역사적으로 볼 때 로고스 그리스도론(the Logos

christology)에 대한 반동으로부터 시작된다. 초대교회는 로고스가 육

체가 되었다고 하는 우주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육체를 입고 우리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에게 관심이 있었다. 이들은

로고스 그리스도론이 주장하는 두 번째 하나님으로서의 로고스( t h e

Logos)가 세 분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일으켰기 때문에 한 분 지배

자로서 한 분 하나님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로고스 교리의 삼신

론적인 위험에 대한 유일신론적 반동이었다. 왜냐하면 로고스 교리는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을실체화했기때문이다.11)

삼위일체론의 논쟁과 그리스도론의 요지는 구원론의 문제였다. 오리

겐(Origen)의 우파는 고등 그리스도론(high christology)의 입장이다.

대표적인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피조물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

다고주장한다. 한편, 좌파아리우스는 로고스 곧 선재한 아들은 하나님

에 의해서 무로부터 창조된 피조물로 간주한다. 곧 로고스가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구원사의 삼중적인 유형과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의

일치 사이에는 본질적인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전까지 삼위일체론은

구원의 신비 안에 계시된 종속론적 그리스도론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

었다. 전통 종속론은 존재론적인 종속론이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께 종

속되었다고보는 점진적 혹은경륜적 종속론이다. 반면 아리우스주의는

1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임형모,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상징주의에나타난 삼위일체론가능성 13

11) Paul Tillich,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From Judaic and Hellenistic Origins

to Existentialism, ed. Carl E. Braaten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67,

1968), 65.

12) Catherine Mowry LaCugna, 『우리를 위한 하나님: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인의 삶』, 이

세형역(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8), 50. 삼위일체론의논쟁에 관하여는W. Rusch,

ed., The Trinitarian Controversy (Philadelphia: Fortress, 1980); E. J. Fortman, The

Triune God (philadelphia: Westminster, 1972)를 참조하라.

13) ST I I, 9.

Page 8: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하나님의 현현을 말한다. 이것은 거룩한 것들과 대상들 속에 하나님의

육화들, 궁극적인 실재 속에 하나님의 현현들의 영역이다. 대표적인 것

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성육신에서 볼 수 있다.18) 여기서

는 초월적인 차원에 나타난 종교적 상징의 세 가지 의미를 살펴볼 것

이다.

초월적인 차원의 첫 번째 상징은 직접적으로 지시대상을 가리킨다.

초월적인 차원에 대한 기본적인 상징은 하나님 자신을 말한다. 그러나

틸리히는“하나님이 하나의 상징이다”라고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다. 하

나님은 궁극적인 실재, 존재 자체, 존재의 기반, 존재의 힘 등으로 표현

되는 비-상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가장 완전한 방식으로 존재

하는 지고의 존재이기 때문이다.19) 그런데 이러한 궁극적인 것과의 관

계에서 상징화하고 상징화시켜야 하는이유는 하나님과의 소통을 위함

이다.20) 그는 영원한 당신으로서 우리와 같은 인격을 지닌 최고의 존재

가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최고의 존재의 하나님은 너와 나의 관계

의 요소뿐만아니라무조건적인요소가 동일하게보존된다.

초월적인 차원의 두 번째 상징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틸리히는 하나

님의 속성들은 인간들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특성들을 경험한 것에서

빌려 온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문자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에게 적용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속성들에 대한 문자적 이해는

리와 재결합의 운동을 반영하고 있다.”14)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일이

삼이 되고 삼이 일이 된다는 전통적 삼위일체의 주장은 삼위일체 신비

에 대한최고의 왜곡이라고할 수 있다.

존재론적 입장에서 신앙언어는 결코“단지 상징”(only a symbol)으

로 말해서는 안 되고“적어도 상징”(not less than a symbol)으로 말해

야 한다.15)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의 근본적인 상징은 하나님이다. 궁극

적인 관심은 궁극성으로서 그것자신의 특성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무신론은 단지 어떤 궁극적 관심을 제거하려는 시도를 의미하는 것이

다.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차이는 단지 무신론의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는 형태이다. 틸리히의 생각 속에서 궁극적 관심의 문제는 그리스도

교의 하나님을 부정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긍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을 부정하는 그의관심 안에궁극성을 단

언한다면말이다.

종교적 상징은 실재 자체의 심층 차원으로서 다른 방식으로는 전혀

개방되지 않고 감추어져 있는 실재의 차원을 개방한다. 틸리히가 명료

히 지적하듯이,“종교적 상징은 모든 다른 차원과 모든다른 심층의 기

반이되는차원이며따라서 다른단계들(levels) 곁에있는하나의 차원

이 아니라 근본적인 차원이며 모든 다른 차원보다 깊이에 있는 차원이

며 그것은 존재자체차원이며또는존재의 궁극적인힘이다.”16)

틸리히의 신학구조에서 종교적 상징은 두 가지 근본적인 단계들로

설명된다. 하나는 우리가 만나는 경험적인 실재를 넘어서는“초월적인

차원”과 다른하나는 우리가 실재와의만남안에서 발견하는“내재적인

차원”이다.17) 내재적인 차원은 종교적 상징에서 시간과 공간에 나타난

1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임형모,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상징주의에나타난 삼위일체론가능성 15

14) ST I I I, 284.

15) Paul Tillich, Dynamics of Faith (New York: Harper & Row, 1957), 45.

16) Paul Tillich, Theology of Cultur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59), 59.

17) Paul Tillich, “Religious Symbols and Our Knowledge of God (1955),” Main Works/

Hauptwerke, 4 vols. ed. John Clayton (Berlin, New York: Walter de Gruyter, 1987),

3 9 9-401; “The Meaning and Justification of Religious Symbols (1961),” M a i n

Works/ Hauptwerke, 4 vols. ed. John Clayton (Berlin, New York: Walter de

Gruyter, 1987), 418-419.

18) Tillich, Theology of Culture, 63.

19) 앞의책, 61.

20) Paul Tillich, Biblical Religion and the Search for Ultimate Reality ( C h i c a g o :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5), 83-84. 종교적으로 인격이신 하나님과의 만남

은 모든 인격적인 것의 근거이면서도 그 자체는 인격이 아닌 하나님과의 만남을 의

미한다. 곧 종교적 경험은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의 인격적 요소와 비인격적 요소 사

이의긴장을 나타내고있다.

Page 9: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삼위일체 교리를 헬라화 된 결과로 보았다. 하르낙과 같은 신학자들의

해석의 한계는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고대 그리스와 심지어 헬레니즘

사상을‘주지주의’라고 잘못 해석한 데에 놓여 있다.22) 틸리히는 하나

님이 성령이시기 때문에 삼위일체 원리를 이야기할 때 로고스보다는

성령에서 시작한다.“하나님의 생명은 영으로서의 생명이고 삼위일체

원리들은 신적인 생명의 과정 내에서의 운동들이다.”23) 살아 계신 하나

님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나타나는 삼위일체 원리들은 상징적 삼위일

체에대한예비적 고찰이다.

첫 번째 원리는 신성(Godhead)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것이다. 틸리히는삼위일체원리를 존재의 힘으로 설명한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직관은 항상 하나님의 심연(힘의 요소)과 그 내

용의 완전성(의미의 요소), 즉 신적인 깊이와 신적인 로고스 사이를 구

분해왔다. 그 첫 번째 원리는 신성의 존재 양식의 기초로서 하나님을

하나님이 되게 한다. 이 원리는 하나님의 존엄성의 뿌리이며 하나님의

존재의 접근 불가능한 강렬성이며 모든 것의 근원인 하나님의 존재의

다함이 없는 근거이다. 그것은 비존재가 되기를 영원히 거부하는 힘으

로서 존재하는모든것에 존재의힘을제공한다.24)

이 원리는 신적인 깊이로써 하나님의 위엄의 뿌리이며 존재의 근거

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존재의 힘을 부여하고 비존재에 무한

종교를 파괴하는 행위일뿐더러 무한한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모든 표현은 불합리한 것으로 판명된다. 이러한 차원의

상징들은아래로부터의삼위일체론을 구성하게한다.

초월적인 차원의 세 번째 상징은 하나님의 행동이다. 하나님의 행동

이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상징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예를들어“하나님이그의아들을 보내셨다”는 표현은 하나님이무엇인

가를 일으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방식으로 우연성의

범주에 속한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두 가지다른 실체(sub-

stance)를 갖는 것이며 나아가서 하나님에게 하나의 본체의 범주를 적

용하게 되는 셈이 된다. 그러나 그것을 상징적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은

그리스도교적 경험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그리스도

교의궁극적인표현이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종교적 상징은 실재 자체의 심층 차원으로

서 다른방식으로는 전혀 개방되지 않고 감추어져 있는 실재의 차원을

개방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계시언어라고 말할수 있다. 삼위일체의 종

교적 상징은 하나님에 관한 객관적인 정보 제공에 있지 않고 인간의

곤경과 관련하여 계시에 대한 경험의 세계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따

라서 삼위일체 역사는 인간이 계시의 상징에 참여한 하나님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상징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삼위일체론

은 해석의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삼위일체론은 종교언

어의상징성을바탕으로탄생하였고 전개해 나가고 있다.

3. 상징주의삼위일체원리들

초대 교회 헬라신학은 삼위일체적인 상징주의에 나타난 신적 표상

들의 설명을 위하여 로고스의 교리를 도입하였다.21) 그러나 하르낙은

1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임형모,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상징주의에나타난삼위일체론가능성 17

21) 틸리히는그리스도론의문제는 새로운존재의 탐구와함께시작되었다고주장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실존의 곤경을 의식하고 이 곤경이 현실의 새로운 상태를 통해서

극복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탐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조직화된 그리스도론의토대들은

신약성서의 기자들이“그리스도”라고 불렀던 예수에게 그리스도론의 상징들(인자, 그

리스도, 신의아들, 로고스)을 적용하는 방식들에 따라서 제공되었다. 특별히로고스의

상징은 그 본성상 종교적인 근원과 철학적인 근원 모두를 가지고 있는 개념적인 상

징이었기때문에초대교회의그리스도론은 로고스 그리스도론이되었다. ST I I, 139.

22) Adolf von Harnack, 『기독교의 본질』, 오흥명 역 (서울: 한들출판사, 2007), 181-

189.

23) ST I, 250.

24) 앞의책, 250-251.

Page 10: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이 되고절대적인격리로 특징되어질 것이다.27)

세 번째 원리는 두 원리의 현실화인 성령(the Spirit)이다. 힘과 의미

는 그 안에포함되며 그 안에서 결합된다. 성령은 무엇보다도 창조적인

힘이다. 그것은 인간의 영이 그 자체를 넘어 사랑과 진리와 거룩함을

향하여 올라가도록 하는 힘이다.28) 이 원리는 하나님이 성령이라는 의

미에서 전체적인 원리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로고스를 가지고 있는 것

처럼 성령을 가진다는 의미에서는 특수한 원리이다. 하나님은 성령 안

에서자신으로부터밖으로 나가고 성령은 신적인 근거로부터발출한다.

성령은 신적인 근거 속에서 잠재적인 것에 현실성을 부여하고 신적인

로고스 안에서 말하여진 것에 현실성을 부여한다.29) 신적인 충만은 성

령을 통해서 신적인 생명속에서 한정된 어떤 것으로 나타나고 동시에

그것은 신적인 근거속에서 재결합되어있다.

틸리히는 삼위일체 원리들에 대한 이러한 고찰이 그리스도교의 삼

위일체 교리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러한 고찰은 교리를 위한 준비이며

그 이상은 아니다. 그는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론의 교리가 완성된

이후에만비로소 논의될수 있다고 보았다.

I I I. 상징주의삼위일체론의가능성

1. 전통적삼위일체론의문제

바르트(K. Barth)가 삼위일체론을 자신의 신학의 서론 부분에 밝힌

히 저항하는존재의 힘이다. 그러나 틸리히는 근대이후 합리주의에 의

해서이러한 신성의 힘이 상실되었다고보았다.

두 번째 원리는 의미로서의 로고스(logos)이다. 하르낙은 로고스가

사도 요한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술어에 불과하던 것이2세기 초 그리

스도교 변증가들에 의해서“로고스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정식이 이루

어졌고 로고스에 대한 그리스도의 동일시는 역사적 사실에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했으며 시간과 공간 속에 나타난 사람을 우주론과 종교철

학 속으로 끌어들였다고 보았다.25) 하지만 틸리히는 로고스가 의미와

구조의 원리에 가장 적당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구조를 창조

성과결합하고있다고 이해한다.

로고스라는 술어를 그리스도에 적용시키지 않고 그리스도론을 발전

시키는 것은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틸리히의 생각 속에서는 하나

님 안에 있는 근거와 형식, 즉 하나님의 심연의 원리와 하나님의 자기

현현의 원리를 구별하는것 없이“살아 계신하나님”에 대한관념과 창

조론을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로고스는 신적인 깊이의 거

울이며 하나님의 자기 객관화의 원리이다. 그러므로“로고스의 원리를

희생시키는사람은 살아계신하나님이라는관념을 희생시키는것이며,

이 원리를 그리스도이신 예수에 적용시키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예수의

그리스도로서의성격을 거부하는것이다.”26)

만일 궁극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곧 창조성이고 존재 자체라면 그

런 하나님은 철저하게 불확실하며 상징적인 기대에 관한 어떤 이론도

그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없다. 틸리히도 인식하듯이 로고스는 하나님

의 자기객관화의 원리이다. 따라서 그의삼위일체의 두 번째 원리인 로

고스가 없다면 그 첫 번째 원리인 신성의 기초는 혼돈이고 공허할 뿐

창조적인 근거는 될 수 없다. 두 번째 원리가 없다면 하나님은 악마적

1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임형모,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상징주의에나타난 삼위일체론가능성 19

25) Harnack, 『기독교의 본질』, 184-185. I I

26) ST I I I, 288.

27) S T I, 251; Alfred N.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An Essay in Cosmology

(New York: The Free Press, 1969), 406-407.

28) Tillich, “Spiritual Presence,” The Eternal Now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63), 84.

29) ST I, 251.

Page 11: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번 전혀 다르게’반복되고 계신 것이다. 우리는 계시를 넘어서 숨어 계

시는 하나님으로 도약할 수 없으며 다만 우리는 우리 앞에 드러나신

하나님을 참 하나님으로 만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실로 자기

자신을 현시”하시기 때문이다.32)

계시가 하나님의 통일성의 구조로서 보여 주는것은‘영원성 안에서

의 영원성의 삼중적 반복’이다.33) 곧 계시에서 나타냄(예수), 가리움(아

버지), 전달(영) 혹은 형태(예수), 자유(아버지), 역사성(영), 또 부활(예

수), 수난일(아버지), 오순절(영) 등으로 삼위일체론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열린다.34)

바르트의 삼위성 안에 있는 통일성과 통일성 안에 있는 삼위성은

‘삼위일체’(triunity)로 모아진다. 바르트는 이 용어를 좀 더 일반적인

삼위일체(trinity) 혹은 삼중성(triplicity)과 같은 다른 가능성들보다 선

호한다.35) 그는 삼신론(tritheism)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나칠 정도로 삼위 간의통일성에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앞서

바르트는 계시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기 반복을 통해 삼위일체의 이해

를 위한 단초를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삼위 간의 관계는 어떠한가? 혹

시 삼위가 서로 떨어져 있지는 않는가. 바르트는 삼위 간의 통일성을

하나님의 주권으로 해결한다.36) 숨어 계시는 하나님은 완전한 자유자로

계시기 때문에 그는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 그런숨어 계시는 하나님이

자신을 어떤 형태 속에 계시하신다는 것은 자신의 자유에 대해서마저

자유하다는 의미로 역시 주권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인

간 앞에 나타는 하나님의 계시도‘계시되어 있음’을 통해 인간의 눈을

열어 끝내 계시 사건을 성립시키시는 세 번째 하나님의 주권을 보게

것은 대단히 놀라운 시도였다. 왜냐하면 몰트만(J. Moltmann)이 지적

한 것처럼 현대인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삼위일체론을 경홀히 취급하

고 있는데 하나는 경험적으로 삼위일체론이 별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실천적 측면에서 삼위일체론이지나치게 사변적으로

여겨진다는 것 때문이다.30)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추상적이라고 반대하

고 또 어떤 이들은 성경에 분명히 계시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삼위

일체론을 무시했다. 따라서 삼위일체론은 믿을수 없는최소한 믿기어

려운 교리의 대표로 여겨졌다. 그러나 바르트는 이러한 세태를 거스르

고 삼위일체론을 그의 신학의 기초로 내세운 것이다. 바르트가 삼위일

체를 중요시하는 것은 성서의 계시가 삼위일체적이라는 명확한 이유

때문이다.

바르트가 삼위일체론을 계시론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기존의 다른

삼위일체론과 다소간의차이가 있다. 인간은 하나님을알 수 없다. 하나

님은 영원히 이해 불가능하다. 그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셨다. 하나

님이 자신을 계시하실 때 주님으로 계시하신다. 계시는 바르트의 삼위

일체론의 전개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데 이 때문에 그는

계시를 삼위일체론의 뿌리라고 말한다.3 1 )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은‘선

함,’‘신실함,’‘주권,’‘오른손’등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으며 또한 여러

가지 이름으로도 자신을 드러내셨다. 신약성서에서 하나님은예수를 통

해 드러내셨다. 이때우리는 숨어 계시는 하나님과 드러나신 하나님 사

이의 반복을 보게된다. 바르트는 숨어계시는 하나님이 계시된 하나님

보다더 고차원에속한 분이아니라고 했으며, 반대로 계시된 하나님이

계시하신 하나님보다 더 열등하거나 다른 것으로 변경 가능한 것이 아

니라고 했다. 여기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은 계시된 하나님으로‘또 한

2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임형모,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상징주의에나타난 삼위일체론가능성 21

30) Jürgen Moltmann, The Trinity and the Kingdom: The Doctrine of God (London:

SCM Press, 1981), 1-10.

31) Geoffrey W. Bromiley, Introduction to the Theology of Karl Barth ( M i c h i g a n :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9), 14.

32) Karl Barth, 『교회교의학』I/1, 박순경역(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420.

33) S. W. Sykes 편, 『칼 바르트의신학방법론』, 이형기역(서울: 목양사, 1986), 240.

34) Barth, 『교회교의학』I/1, 431.

35) Bromiley, Introduction to the Theology of Karl Barth, 16.

36) Barth, 『교회교의학』I/1, 452.

Page 1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바르트는 삼위의 구분을 위해‘존재 양식’(Seinsveise)이라는 용어

를 쓰자고 제안한다.41) 그는이 용어가 히브리서1장 3절,“이는 하나님

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에 나오는 표현에 근접하다

고 보았다. 그는 또 존재 양식이 ‘subsistentia’(실재성), ‘modus entis’

(존재의 양식), ‘소유의 형식’혹은‘소유 양식’이라는 용어의 의미와도

통한다고 설명한다. 삼위로서의 하나님은 특수하고, 상이하며, 전적으로

고유한 존재양식들로서 삼위로 존재한다. 한 분 하나님이 아버지의 양

식으로, 아들의 양식으로, 그리고 성령의 양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삼

위는 서로 교체되거나 혼합되지 않는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한 분 하

나님이 세 번 다르게 나타나시는하나님이삼위하나님이시다.

삼위성에 대한 표현으로는 계시, 계시자, 계시되어 있음; 거룩성, 자

비, 사랑; 수난일, 부활절, 오순절; 창조자, 화해자, 구원자 등이 있다.42)

된다. 결국 삼위는 모두 주권이라는 공통성을 가지며, 이 공통성은‘야

훼’와‘주’라는이름으로 돌아간다.

주님이신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통일성이며, 계시 사건에서 우리와

‘나와 너’의 관계로 만나시는 분이시다. 결국 우리는 계시사건 속에서

하나님(단수)을 당신(Du)으로 만난다.37) 곧 삼위가 하나님의 통일성을

파괴하지 않는다. 바르트의 통일성에 대한 추구는 결국 그를 아타나시

우스의 동일본질론(homoousios)으로 귀결되기에 이른다. 여기서 그는

단순히 계시론의 차원을 넘어서 존재론적 차원의 내재적 삼위일체론에

대한관심을 확고하게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38)

바르트가 상대적으로 통일성보다 다소 약하게 강조하는 것처럼 보

이는 것이 삼위성이기는 하나그는 역시삼위성의 구별에 무척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다.39) 그는 하나님의 삼위의 구별을 논하면서persona라

는 용어사용의 역사적 선례들을 논구한다. 원래persona는 사벨리우스

(Sabellius)의 양태론에 대해반대할 목적으로 고안된 용어였으나 그것

이 의미하는 바가‘가면’이기에 도리어 양태론의어감을 내포하고말았

다. 이 때문에 동방교회에서는hypostasis라는 용어를 썼지만 이번에는

그 의미가 지나치게 본질, 실체에 가까운 바람에 본질의 분리, 곧 삼신

론을초래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40)

2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임형모,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상징주의에나타난삼위일체론가능성 23

37) 앞의책, 450.

38) 앞의 책, 457. 바르트가 삼위의 통일성을 위해 차용하는 용어는 상당히 오래된 페리

코레시스라는 개념이다. 그는 삼위의 분여불가능하고 혼합 불가능한 구별이 삼신론

으로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안으로 각 위격이 서로 다른 위격 속에 내재하고,

제약하고, 교유하고, 순환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페리코레시스의 통일 과정에서 세

위격들은 상호 선후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병존하고 상호 내재하며 상호 침투하는 관

계이다. Barth, 『교회교의학』I/1, 478; 임홍빈,『현대의 삼위일체론』(서울: 생명의 씨

앗, 2006), 135.

39) 앞의책, 459.

40) 삼위일체의 논쟁에서 나타난 한 본질과 세 위격에 대한 용어들과 형식들을 정리해

보자면, 첫째, 하나님 안에 차이들을 무엇이라 부르나? 하나님 안에 셋이 있다는 것

을 그리스인들은“특별한개별적 실재”를 지시하는위격(prosopon)을 사용했다. 이

것을 터툴리안이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다. 하나님 안에 세 위격들(prosopa 또는

personae)이 있다. 즉 신약성서에서말하는아버지, 아들, 성령으로서 세 특별한개별

성들이다. 둘째, 하나님 안에서 일치한 것을 무엇이라부르나? 하나님의일체를 표현

하기 위하여 세 위격이 일치하는 것을 그리스인들은 본질(ousia, essence)이라는 용

어를 사용했다. 본질은 존재의 내적인 근거를 밝히려는 것으로 다른 존재와 차별되

는 신성을 말하려는 의도이다. 그리스인들이동의어로 사용한 실체(hypostasis)를 라

틴에서는 실체(substantia)로 번역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는 한 실체, 한 본질그리

고 세 인격이 있다고 말할수 있었다. 셋째, 용어들에 대한 혼란과 명료화 작업이 있

었다. 위격(prosopon)은 양태론자들이 사용했으므로 실체(hypostasis)로 대신했다.

실체를 세 위격에 적용할 때 문자적으로 실체(substantia)로 번역되었기 때문에“세

실체들”(three hypostases)을 세 갑바도키아 교부들(Cappadocians)이 지지했다. 이

것은 종속설(Arianism)이나 삼신론으로 나갈 위험이 있다. 이에 반하여 아타나시우

스는“세 위격들”(three prosopa)을 지지했는데 이는 양태론으로 이해되는 위험이

있다. 넷째, 실체(hypostasis)와 인격(person)이 정말동등한가? 그리스인들은실체를

하나님 안에 차이 난 것을 표현할 때 사용했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각

자로부터 구별된 함께 존재한 세 객관적인 실재들이다. 실체와 일치하여 사용된 인

격(persona)은 주관성의 차원을 가진다. 인격(persona)은 동일한 척도에 있어서 신

의 속성들을 나르는 세 운반자의 생각을 내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차이점에도 불구

하고이들은 상호보완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말할 때 객관적인 것이하나

님의본성이며, 주관적인것이 하나님의세 위격이라고이해할수 있기때문이다. 우

Page 1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트만의 생각 속에서“세 인격(three Persons)을 동일한 한 하나님의 세

번 반복으로보는것은다소공허하고불필요한일이다.”45)

확실히 바르트는 이 점에 있어서 명확히 설명을 할 필요가 있을 것

이다. 그가 말하는 계시 사건에서 인간앞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성

자)와 그 계시를 보내신 주체(성부) 그리고 그 계시를 하나님의 계시로

알아보게 한 분의 역사하심(성령), 계시의 이 세 측면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몰트만의 말대로 혹시 불필요한 반복은 아닌

가? 바르트가 스스로 인정하듯이 삼신론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양태론

도 거부하는 매끄러운 설명이 가능한지 알 수가 없다.46) 이러한 점이

전통삼위일체론의한계일 것이다.

2. 신적생명과삼위성의재해석

틸리히가 그의 신론에서“살아 계신 하나님”(God as Living)을 기술

할 때의 하나님 이해는 아버지 하나님에만 국한하지 않고 삼위일체적

인 의미를 요청한다. 뿐만아니라 그의 삼위일체론은그의전 신학체계

를 구성하는 코너스톤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살아계신 하나님에 관한

개념에 나타난 삼위일체적인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틸리히는 진

정한 삼위일체적인 사고를 위한 보다 심오한 준비는 하나님이 행사하

면서 죽음과 죄책을 극복하는 힘의 궁극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운명

과 고난과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참여에 있다고 말한다.47) 따라서“살아

계시 사건 안에서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만나지만 그러나 우리는 실

제적으로 삼위로 구분되는 하나님과 만난다. 예를 들어 예수의 침례현

장에서삼위는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다. 곧 침례받으시는 아들, 하늘에

서 음성을 발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비둘기로 내려오시는 성령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바르트는 서로 다르신 삼위를 alius-alius-alius(인격

적으로 다른분-또 다른분-또 다른분)로 표현한다. 나아가 그는교

부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삼위를 설명한다. 그것은 발생적 관계로 삼위

를 설명하는 방식인데 아버지는 출산하시는 분, 아들은 출생되시는 분

그리고 성령은 발출되시는 분이시다. 여기서 우리는 바르트도교부들을

따라 삼위를 관계로 설명하는 전통을 보게 된다.43) 그러나 바르트의 삼

위일체론의 큰 의의 중 하나는 그가 삼위일체론을 부활시켰다는 점일

것이고 또 하나는 그가 부활시킨 삼위일체론 논의를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삼위일체론을 계시론의 관점에서

풀었기에 그는 전통적인 삼위일체론보다 훨씬 덜 추상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낼 수 있었다.

몰트만은 그의『삼위일체와 하나님의 나라』(The Trinity and the

kingdom of God)에서 바르트의“하나님은 주로서 그 자신을 계시하신

다”라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진술과 관련하여 그를 군주신론자

로 비난한다. 또한 바르트의“하나님은 존재의 세 방식 안에서 한 분”

이라는 뜻이“세 신적 방식은 오로지 세 번 일어나는‘하나님 안의 반

복’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44)는 의미에서 그를 양태론자로 보았다. 몰

2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임형모,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상징주의에나타난 삼위일체론가능성 25

리는 이러한 간략한 삼위일체 용어들에서 세 실제적 구별로서 위격과 실체와 인격

을 다소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등한 관계로 입장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Leonardo Boff, Trinity and Society, trans. Paul Burns (New York: Maryknoll,

1988), 86-90.

41) 앞의책, 465-466.

42) 앞의책, 468.

43) 앞의책, 472.

44) Jürgen Moltmann, History and the Triune God: Contributions to Trinitarian Theo-

logy(New York: The Crossroad Publishing Company, 1992), 131.

45) Moltmann, The Trinity and the Kingdom: The Doctrine of God, 141-142.

46) Bromiley, Introduction to the Theology of Karl Barth, 16-17.

47) ST I, 228. 참고로, 틸리히의 양성의 교리는 그리스도이신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사

람의영원한 일체성이 역사적 실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하면 그리

스도이신 예수의 존재에 있어서 새로운 존재(New Being)는 실재적이며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다시 회복된 통일성이다. 틸리히는 양성개념을 역동적 관계적 개념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그는신성의 개념을“영원한신-인 통일성”또는“영원한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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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는 삼위일체적인원리들에대해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리고 우리는로고스보다는오히려 성령으로 시작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모든 삼위일체적 진술은 이와 같은 기본적인 주장에

서 유추되지않으면안 된다.50)

삼위일체 상징주의는 모든 신학적 상징들처럼 인간의 곤경이 지니

고 있는 물음에 대한 대답의 차원으로 이해한다. 역사적으로 삼위일체

논쟁의 최후의 진술은,“경세적 삼위일체는 내재적 삼위일체요또한내

재적 삼위일체는 경세적 삼위일체이다.”51) 이러한 정식은 구원의 역사

적 경륜을 기초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이해하기 위한 건설적 제안

이다. 내재적 삼위일체가 자기 자신에 있어서의 하나님이라면 경세적

하나님은인간의 곤경을 위한하나님이다. 경세적이란 예수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자기소통을 의미하고 구원의 역사 안

에 나타난 성령의 활동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것

은 하나님의경세적인활동때문이다.

삼위일체는 추상적인 문제라기보다는역사적인 것이다. 역사를 구원

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economy)의 전개과정이라고 이야기해 볼 수

있다면 삼위일체의 문제는 경륜적이라고 간주된다. 이것은 하나님의계

시 속에 나타난 계획, 역사의 각 시대에서 단계적으로 또 살아있는방

식으로 삼위일체가 전개된다는 것을의미한다. 틸리히에 의하면 이러한

삼위일체는 오직 하나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이 본질을

“존재의 힘”으로 이해한다. 틸리히가 적절히 지적하듯이,“존재한 것은

오직 하나의 신적인 존재의 힘이며, 이 힘의 경륜적인 갖가지 계시는

일일이 이 존재의 힘에참여하고있다.”52)

계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관념에서 궁극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이 결합

되어있는하나님을의미한다.

삼위일체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모든 생명의 과정 속에 주어져 있

다. 삼위일체의 문제는“살아 계신 하나님”에 있어서의 궁극성과 구체

성 사이의 일치에 관한 문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의 삼위일체론은

구체적인 단일신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일 뿐이다.48)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틸리히의 삼위

일체의 문제는 전통적인삼위일체의 논의와는아무런 상관이 없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은“하나님이 영이다”라는 의미에서 더

욱 분명해진다. 하나님이 영이라는 명제는 영으로서의 생명이 신적인

생명을 위한 포괄적인 상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영은 의미를 살아있

게 해주는 힘이며 힘에 방향을 부여하고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영으로서 하나님은 힘과 의미의 궁극적인 통일성이다.49) 그리하여 하나

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불릴 수 있다.

틸리히는 그의 삼위일체론을 진술함에 있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생

명 가운데 활동하시는 성령에 의존한다. 삼위일체론의 전개는 그리스도

론과 무관하지 않을뿐만아니라 또한성령의 역사이다. 틸리히는다음

과 같이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모든 논의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그리스도론적인주장에서 시작하지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교의삼위

일체 교리는 그리스도론적인 교리의 확증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

황은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교의 교리들에 대해서 묻지 않고 하나님의

관념에 있는 이러한 교리들의‘전제들’에 대해서 묻는다면 달라진다.

2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임형모,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상징주의에나타난 삼위일체론가능성 27

성”으로 대체하기를 선호한다.“영원한”이란 말은 그리스도이신 예수가 유일한 사건

의 일반적 전제임을 가리킨다. 틸리히는 이 사건이 신적인 생명안에서 하나님과 인

간 사이의 영원한통일성이없었다면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하였다. ST I I, 148.

48) 앞의책, 228.

49) 앞의책, 250.

50) 앞의 책.

51) Karl Rahner, The Trinity, trans. Joseph Donceel (New York: The Crossroad

Publishing Company, 1997), 22.

52) Tillich,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46.

Page 15: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나타난 것이다. 죽은 동일성으로서가 아니라“살아 계신 하나님”(God

as living)으로서 하나님 경험은 모든 존재 안에 있는 창조적인 존재

근거의 경험과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경험과 모호하지 않는 생명의 일

치를 향한 인간 정신의 황홀한 고양의 경험으로서 영적 현존의 역사이

다.55) 따라서 모든 삼위일체적 사고의 내용은 계시적 경험들 속에 주어

져 있는 것이며, 그리고 삼위일체론적 형식은 로고스의 행위로서 모든

신학이 가져야만하는동일한 합리성을가지고있다.56)

틸리히의 삼위일체 상징은 신적인 실재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배

경을설명하는“영적 현존”은 모호함이 없는국면아래에서의 하나님의

현존이다. 영적현존은 창조의 상징 속에표현된 측면도 아니고 구원의

상징 속에서 표현된 측면도 아니다. 물론 영적 현존은 두 측면을 전제

로 하고 있고 또한 성취하고 있는 하나님의 측면이다. 영적 현존은 인

간의 영 안에 황홀하게 현존하는 그리고 영적 차원을 구성하는 모든

것에 암암리에 현존하는 하나님의 측면이다. 이런 측면들은 신적인 것

의 본성 안에 있는실제적인 어떤 것들의 종교적인 경험이나 신학적인

전통 속에 반영되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 측면들은 인간 경험의

주관적인 형성에 많이 기여하고 있을지라도 실재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틸리히는 삼위일체 상징들이란 만들어지고 정식

화되고 변호되어야만했던종교적인발견물이라고주장하였다.57)

그렇다면 무엇이 삼위일체 상징들을 발견하도록 만들었는가. 틸리히

는 종교적 경험의 역사를 뒤돌아 볼 때 적어도 세 가지 동기들이 삼위

일체적 사고로 이끌었다고 말한다.58) 첫 번째 요인은 우리의 궁극적인

틸리히는 신적인 삼위의 다른 위격들을 신적인 생명의 다른 성격들

로 해석한다. 모든생명이 삼위일체적인것은 역동적인힘과 유한한 형

태와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살아계신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용

어로 사유될 수 있는 것이다. 틸리히의 조직신학에서 성부, 성자, 성령

은 하나님 안에 있는 존재, 실존, 생명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계시론에서도 성부는 신적인 생명의 심연의 성격으로, 성

자는 신적인 생명의 논리적인 성격으로, 그리고 성령은 신적인 생명의

영적인 성격으로 해석된다.53)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다고 할 때, 이것은

생명의 출처인 근원과 생명을 표현하는 형식과 근원과 형식을 결합하

는 생명으로 간주되었다. 여기서 근원은 성부, 형식은 로고스인 성자,

생명의 결합은 성령으로대응된다고 말할수 있다.

3. 삼위일체상징의동기들과가능성

틸리히의 삼위일체적인 사고는 바르트의 그것처럼 계시적 상황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계시사건에 대한 이해는 그의신학방법론인상

관관계방법에 의존한다.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삼위일체 상징주의는

인간의 실존적 소외에 응답하는 가장 포괄적인 답변이다. 따라서 단일

신론에 이르는 길과 그에 상응한 중재적 표상들은 틸리히의 신학용어

로서 성령과 같은“영적 현존”(Spiritual Presence)54)의 영향 아래에서

2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임형모,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상징주의에나타난 삼위일체론가능성 29

53) ST I, 256.

54)“영적 현존”은 틸리히가“하나님의 영”이라는 상징의 완전한 의미이다. 즉 피조물의

생명 속에 나타난 신적인 생명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한 용어이다. 틸리히에 의하

면 종교적 상징주의는 모호하지 않는 생명의 현존을 위해 주된 상징인 하나님의 영

(Spirit of God),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 영원한 생명(Eternal Life) 등을

만들었다. 틸리히는 세 가지 상징의 내적인 관계는 표현하는 바는 다르지만 서로는

상호 내재적이라고 보았다. 이 세 가지 상징은 하나의 실재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

실재가 바로 하나님의 현존이며 전통적인 용어를 사용하자면“성령”인 셈이다. 이

세 가지상징의 의미에대해서는ST I I I, 108-9를 참조하라.

55) ST I I I, 284. 한편으로 틸리히는 한 사람 안에서 영적 현존의 역사는 그것이 그를 율

법의 멍에로부터 성령의 자유에로 해방시킬 때 최고점에 도달한다고 주장한다.

Tillich, “Spiritual Presence,” The Eternal Now, 89.

56) ST I I I, 286.

57) ST I I I, 283.

58) ST I I I, 283-285.

Page 16: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의 과정”(a process of reality)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으로부터

나와서 자기 변화를 거쳐다시 자신으로 돌아가는 삶의 과정을 표현하

는 것이다. 따라서 틸리히의 삼위일체론이란 모든 삶의 과정에서 사용

되는 삶의 변증법적인 운동을 상징적으로 또는 유비적으로 신적인 생

명에적용한 것이라고볼 수 있다.

세 번째 요인은 창조적인 힘으로서, 구원하는 사랑으로서, 그리고 황

홀한 변형으로서 나타난 하나님의 삼중적인 현현이다. 이것이 성부, 성

자, 성령이라는 상징적인 명칭들을 지시한다. 하지만 틸리히는 위의 두

동기가 없었더라면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위의 상징적인 명칭들은

단지조잡한 신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삼위일체적세 번

째 근본적 동기는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출현 속에 나타난 신적인 존재

의 현현에 있다. 그리하여 세 번째동기에서 역사적 예수가 그리스도라

는 진술로 말미암아 삼위일체 문제가 그리스도론의 한 부분이 된다. 이

것은 니케아 회의에서의 삼위일체론적인 결정이 칼케돈의 그리스도론

적 결정에 우선한다는 사실에 의하여 지지되고 있다. 그러나 동기유발

의 견지에서 보면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그리스도

론적인 주장이 삼위일체론적인 문제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틸리히는 삼위일체론에 대한 논의가 그리스도론을 논의한 다음에 다루

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또한 그리스도론은 성령론적인

논의가 없이는 불완전한 것이다. 틸리히가 옳게 지적하듯이,“그리스도

론은성령론 없이완성될 수 없다. 왜냐하면‘그리스도는영’(the Christ

is the Spirit)이시고 역사 속에서의 새로운 존재의 실현은 성령의 역사

이기때문이다.”59)

전통적 삼위일체론은‘삼’과‘일’의 문제로 삼신론과 종속론의 갈등

관심 속에있는 절대적인 요소와 구체적인 요소사이의 긴장이다. 이것

은 궁극적인 관심의 궁극성이 강조될수록 신적인 것의 구체적인 현현

에 대한 종교적인 필요성이 더욱 발달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관념의 절

대적인 요소와 구체적인 요소사이의 긴장이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신

적표상(the divine figure)의 확립을 초래했다는 것을의미한다. 바로이

같은 신적 표상들과 궁극적인 것의 궁극성 사이의 갈등이 많은종교들

에 있어서 삼위일체적인 상징주의로몰아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러한갈등은 초대교회의삼위일체논쟁에도많은영향을 주었다.

삼위일체 상징을 위한 두 번째 요인은 존재의 신적 근거에 대한 생

명의 개념의 상징적 적용이다. 그것은“생명으로서의 하나님,”즉“살아

계신 하나님”과 관련되어 논의될 수 있다. 만일 하나님이 살아 계신 하

나님으로경험되고죽은동일성으로경험되지않는다면비존재의요소,

즉 타자성이 그의 존재 속에서 인식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신적인 생명은 동일성과타자성의 영원한 재결합의 과정이다. 여기에서

근거(ground)로서의 하나님과 형식(form)으로서의 하나님과 행위(act)

로서의 하나님이 구별된다. 이러한 것은 삼위일체적인 사고를 의미 있

게 만들기 이전의 삼위일체적인 정식이다. 따라서 틸리히의 생각 속에

서 이러한 주장이 수적인 동일성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이

주장은 실제적인생명의 과정에 대한기술을 의미한다고보아야 한다.

삼위일체적인 상징은 틸리히의 계시론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신비를 표현하고 있다. 이 신비는 존재의 신비로서 우리가 접

근할 수 없는 영원한 신비이다. 틸리히가 말하는“신적인 것의 신성”

(the divinity of the divine)과 같다. 그러나 삼위일체적인 상징은 단순

히 역설적인 것이나 불합리한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신적인 근원의 영

원한 과정을 지시하는 생명의 분리와 재결합을 나타내는 변증법적인

상징의 의미이다. 여기서 사용하는‘변증법’이라는 용어는 역설적인 것

도 아니고 테제와 반테제 간의고양의 과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

틸리히가 말하는 변증법적이라는 의미는 생철학에서 이야기하는“실재

3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임형모,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상징주의에나타난 삼위일체론가능성 31

59) ST I I I, 285. 그리스도가 영이라고 한 부분은 Paul Tillich, “The Paradox of Prayer,”

The New Being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55), 137; 롬 8:26-7을 참

조하라. 참고로,“하나님의 영”을 성령으로 말해 볼 수 있다면“성령은우리 영에 임

재하시는하나님을의미한다.”Tillich, “Spiritual Presence,” The Eternal Now, 84.

Page 17: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때 그리스도론의 아류로서 원래 삼위일체 교리의 기능이 세 가지 중심

적 상징들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자기현현을 표현해주고, 신

적인심연의 깊이를 열어주며, 실존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대답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은 이후불가해적인 신비가 되었고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의 큰 의의 중 하나는 그가 삼위일체론을 부활

시켰다는 점일것이고, 또 하나는 그가 부활시킨 삼위일체론논의를 새

로운 각도에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삼위일체론을 신론

에서 다루지 않았다. 계시론에서 삼위일체론이 등장한다. 즉 삼위일체

의 문제는 신론의 문제라기보다는 앞서 계시론의 문제라는 것이다. 우

리는신을 오직계시로만 만날수 있는데, 이 계시가 삼위일체적이라는

것이다. 삼위일체론을계시론의 관점에서 풀었기에그는 전통적인 삼위

일체론보다 훨씬 덜 추상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 낼 수 있었다.

또한 그가 삼위일체론과 같이 이성주의자들의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

는 신학 내용을 자신의 교의학 첫 머리에 올려놓은 것은 신학자로서의

그의위대한 신앙고백이라는생각이 든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적인물음

인‘삼’이라는 숫자에 대한해명은 극복하지못한것 같다.

반면에 틸리히는 존재론적인 삼위일체론을 전개한다. 그는 슐라이어

마허가 삼위일체론을 그의 신학 체계의 마지막에 위치시킨 것과 관련

하여 그것은 신학적인 교리들을 실존론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

요한 진전이었다고 평가하고 그의 신학방법론을 취하였다. 슐라이어마

허는 삼위일체 상징들을 그의 신적 원인과 관계되는 신앙의 다양한 방

법들로부터 유추했기때문이다. 그러나 삼위일체 상징들을포함해서종

교적인 지식과 신학적인 반성의 원천은 그리스도인의 의식이 아니라

계시적인 상황이라는 점에서 그와 다르다. 존재론적으로 볼 때 삼위일

체론은 단순히 신학적 개념들의 총합이나 신학적인 결론들의 논리적인

결과가 아니라 도리어 신학적인 출발점이 된다. 그것은 삼위일체론의

가장 근본적인 내용이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교리적인 설명인 까닭

내지는 위협에 대한논쟁이었다. 그러나 틸리히의삼위일체론에서는전

통적인 논쟁의 문제들을뛰어넘는다. 틸리히의 삼위일체론에서삼이라

는 숫자는 하나님의 양적인 특성이 아니라 질적인 특성의 문제였다. 상

징주의 삼위일체는 영과 생명으로서의 하나님이신“살아 계신 하나님”

에 대해서 말하려는 시도였다. 그것은 그리스도론의 현실화로서“영적

현존”의 생명에 대한 다양성을 해석하고 애매함을 극복하는 하나의 시

도로간주된다.60)

결론적으로 삼위일체 교리의 관점에서 상징들에 대한 비-상징적인

해석들은 유한성의 범주들에 의해 조건지워져 있으며 한 특별한 생명

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한한 개인을 로고스에 도입하게 된다. 확실히

신적인 자기 현현으로서의 로고스는 존재의 모든 잠재성들과 영원한

관계를 가지고 있듯이 인간의 역사적 실존의 중심인 그리스도 안에 나

타난 그의 자기 현현과 영원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신적인 근거의 삼

위일체적인현현은 인간에게있어서는 그리스도중심적이다. 그러나 이

것은 그 자체가 예수 중심적이지 않다. 삼위일체 상징주의에서 이해되

고 경배되는 하나님은 다른 세계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현현할 자유

를 상실하지 않는다.61)

I V. 결론

삼위일체 교리는 종교적인 실존의 핵심적인 문제가 되었다. 그리스

도교의 삼위일체론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인 메시아를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로고스가 나사렛 예수로서 한 인격적 인간의 삶과 동일

하다는 역설에 기초하여 발전하여 왔다. 삼위일체론은 역사적으로 볼

3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임형모,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상징주의에나타난 삼위일체론가능성 33

60) Pan-Chiu Lai, Towards a Trinitarian Theology of Religions: A Study of Paul

Tillich’s Thought (Kampen: Kok Pharos Publishing House, 1994), 166.

61) ST I I I, 290.

Page 18: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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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신학의 출발점이라고말할수 있다.

틸리히는 삼위를 숫자로 파악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신적

인 현현의 다양성에주목하였다. 틸리히에게있어서 삼위는 나타나지만

그의 상징주의 삼위일체론에서는전통 삼위일체와는달리 예수의 위치

를 그리스도가 대신한다. 틸리히에게 삼위는 무한으로서의 하나님, 유

한으로서의 하나님, 자신 안에서 무한과 유한을 결합시키는 하나님이

다. 틸리히에게 성부, 성자, 성령은 인간의 곤경에 대한 답변으로서의

상징적인 종교 언어이다. 이러한 상징들은 존재론적으로 심연, 의미, 결

합을 지시하며, 또한 성부, 성자, 성령은 존재, 실존, 생명으로 나타내지

만 이들은 존재를 생명으로 인식할 때 나타나는 존재의 모습들이다. 생

명이란 자신으로부터 나가서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과정으로 기술

되었다. 이 과정을 변증법적으로 묘사된 것이 삼위일체 상징들이었다.

삼위일체 상징들은 생명의 변증법, 즉 분리와 재결합의 운동을 반영한

다. 틸리히의 삼위일체적 사고에서 결정적인 것은숫자삼이 아니라 신

적인 자기 현현의 다양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틸리히는 삼

위일체의 교리를 삶의 과정으로 재해석함으로서 전통적 삼위일체론이

가지고 있는문제들을해결하고자하였다.

주제어

폴 틸리히, 삼위일체, 상징주의, 구체성과 절대성, 살아계신 하나님, 다양성과

통일성

Paul Tillich, Trinity, symbolism, concreteness and absoluteness, God as

living(a living God), diversity and unity

접 수 일 2010년 6월 30일

심사(수정일) 2010년 10월 29일

게재 확정일 2010년 12월 10일

3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임형모,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상징주의에나타난 삼위일체론가능성 35

Page 19: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A Possibility of the Trinity in a OntologicalSymbolism of Paul Tillich

Hyung-mo, Yim

Lecturer

Korea Baptist Theological University

Daejeon, Korea

The purpose of this treatise is to develop a possibility of the

Trinity in a ontological symbolism of Paul Tillich. In developing this

study, the inescapable inner tension between concreteness and

ultimacy of the religious concern is a central issue in the idea of God.

Tillich insists that this tension is the key to understanding the

dynamics of the history religion, and it is also the basic problem the

most refined discussions of the trinitarian dogma.

In the view of this basic point, the theory of symbol and the

ontology are correlated to each other. Tillich looks at the notion of a

symbolism as an interpretation of the religious language. As Tillich

says, religious symbols should be also used between concreteness and

absoluteness in the idea of his ‘Ultimate Concern’ or ‘Being-Itself’

which indicates God. Therefore, though in a living and dynamic way

the trinity is built up in historical manifestations, in this trinity there

is but one divine essence. If we can translate essence by power of

being, we know that there is one divine power of being, and each of

the three economic manifestations of the power of being participates

in the full power of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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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임형모,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상징주의에나타난 삼위일체론가능성 37

Page 20: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칼뱅의여성이해

이오갑

(그리스도대학교부교수)

I. 서론

칼뱅이 여성을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평가가

너무엇갈려서혼란스러울정도이다. 비전문적인 분야에서칼뱅을 피상

적으로 보고일방적으로평가했던사람들을예외로 해도그렇다.

그중 대표적인평가들을 보면, 먼저 앙드레 비엘레를 들 수 있다. 그

는 L’Homme et la Femme dans la morale calviniste(『칼뱅주의 도덕

안에서의 남자와 여자』)를 썼다. 이 책은16세기 종교개혁 이전의 풍속

을 배경으로한 칼뱅의남자와 여자에 관한 교리들을 보여주는데, 주로

구속사적 틀 안에서 창조시의 남녀 관계, 타락 이후의 관계, 회복된 관

계라는 관점으로 파악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칼뱅이 남성이나 여성이

영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철저하게 평등하다고 보았으며, 시대적

이고 현실적인 이유에서 여성의 지위를 실제로 바꾸지는 못했지만 남

여의 사회적 불평등을 정치적인 상황이나 역사 발전에 따라 바꿀 수

있다고했던“현대사상의선구자”로 평가했다.1)

In reality, the trinitarian problem has nothing to do with the trick

question how one can be three and three be one. The answer to this

question is given in every life process. Tillich’s trinity is near to

trinitarian monotheism. It is not a matter of the number three but it is

a qualitative matter. It is an attempt to speak of the living God, the

God in whom the ultimate and the concrete are united. So, the trini-

tarian problem is the problem of the unity between ultimacy and con-

creteness in the living God.

In Tillich’s theology the trinitarian problem is derived from the

statement that God is Spirit means that life as spirit is the inclusive

symbol for the divine life. And the moments within the process of the

divine life are the trinitarian principles such as Godhead that means

power which makes God God, logos that means meaning and

structure, and the Spirit that means the actualization of both power

and meaning. Then, it is the Spirit who works such as the experience

of the creative ground of being in every being, the experience of

Jesus as the Christ, and the ecstatic elevation of the human spirit

toward the union of unambiguous life. All these cases could be said

to the experience of God as a living God.

As a result, we can distinguish at least three factors which have led

to trinitarian thinking in the history of religious experience, that is,

first, the tension between the absolute and the concrete element in our

concern, second, the symbolic application of the concept of life to the

ground of being, third, the threefold manifestation of God as creative

power, as saving love, and as ecstatic transformation.

3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39-65

Page 21: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에서 여성의 위치나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그의 하나님의 형상 이해

특히“여성이비록두 번째순서이긴해도하나님의형상으로 창조되었

다”는 말을 매개로 살펴보았다. 칼뱅은 하나님의 형상을 두 가지로 구

분해서 정리하는데, 하나는 남녀가 모두 소유하고 있는 불가시적인“영

혼의 내적인 선”으로서 인간의 구원이나 성화같은 영적인 문제에 관계

된다. 또 하나는 남성만 배타적으로 보유하는, 가정이나 국가의 머리인

남성의 수장권에 관계되는 외면적이고 가시적인 형상으로서 권위의 소

유와 행사로써 이뤄지지만 역시 하나님을 영광을 비추어준다. 칼뱅이

여성은 하나님의 형상의 두 번째순서(secundo gradu)로 창조되었다고

말한 것은 바로 그런 차이 때문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칼뱅에게

두 가지가 동시적으로 나타나지만 남성이나 여성 모두의 영적 소유로

서의 내적 형상이 수장권에 관계된 남자만의 외적 형상의 배타성에 어

떤 변화나 조정을 가져오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칼뱅은 남성의 배

타적 특권이 지나가버릴 이 세상의 질서나 예법에 속한다고 해도 그것

을 수호했다는 것이다.4)

반대로 로날드 월레스는 칼뱅이 여성을 매우 보수적으로 이해했다

고 평가했다. 칼뱅에게서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 백성과 통치자 같

은 관계에서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제

정된불가침의 질서의 한 요소이다. 특히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는종

속이창조의 질서에 근거하고 있다. 인간의 죄로말미암아결과된 상태

들과는 별도로 자연의 참 질서에 의하면 남자는 여자의 머리로 창조되

고 여자는 남자의 일부, 즉 부속품이다. 우리의 타락한 상태에서도 비록

혼인한 여자가 그 타락 때문에 형벌로 더 많은 고통을 당하고 본래의

남녀 관계가 뒤틀려 있으며 얼마간의 하나님의 축복이 부스러기로 남

아있지만남자는 그 본래의 권세를상실하지않았다.5)

제인 더글라스는 칼뱅의 여성관을 기독교인의 자유의 틀 안에서 살

펴보면서, 중세와 르네상스및 종교개혁의 역사적인 맥락들과연관시키

면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칼뱅은 역사적으로 누적된 여성 경시사상

을 새롭게 전환시켜준 종교개혁자들 중에서도 더욱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칼뱅은 당시의 사회적 통념을 깨고 남녀가 부모 동의 없이 결혼

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교회는 처벌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여성의

침묵 같은 교회 안에서의 문제들을 다룰 때도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

게 수정될 수 있는 질서와 예법의 문제라고했다. 더군다나 더글라스는

칼뱅의 견해를 여성의 성직 임명을 반대하는 것으로 보았던 과거 전통

에 반하여 정당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석했다. 물론 이 경우도 지나

친 가부장적 입장 때문에 실제로는 현실화시키지 못했다는 전제를 두

었다. 그러나 어쨌든 칼뱅은 여성이해라는 관점에서 미래의 변화에 대

해 개방적인 사상을 가진사람이었다.2)

윌리엄 부스마 역시 칼뱅이 남녀의 평등을 기반으로 한 긍정적인

여성관을 가진다고 했다. 그는 칼뱅이 남성의 권위를 주장하고 그의설

교들 속에서 드러나는 반여성적인 불평에도 불구하고 남성과 여성이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고 보았으며, 남자들이 자신들의 우월성을자랑

하지 못하도록 경고했다. 남성의 우월성은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실제

적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자의적인 뜻이었다. 결혼에서도 칼뱅은 하

나님이 여성을 남성의 열등한 조력자가 아니라 반려가 되도록 의도한

다고보았다.3)

한편 존 톰슨은 칼뱅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남녀의 평등을 지지했던

사상가라는 데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톰슨은 칼뱅의 사상

4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이오갑, 칼뱅의여성이해 41

1) A. Biéler, L’Homme et la Femme dans la morale calviniste, La doctrine réformée

sur l’amour, le mariage, le célibat, la divorce, l’adultère et la prostitution

considrée dans son cadre historique (Genéve: Labor et Fides), 1963. 특히148-149.

2) J. D. 더글라스, 『칼빈의여성관』, 심창섭 역(서울: 무림출판사, 1990), 4-8.

3) W. J. 부스마, 『칼빈』, 이양호, 박종숙 역(서울: 나단, 1991), 316-317.

4) J. L. Thompson, “Creata Imaginem Dei, Licet Secundo Gradu: Woman as the Image

of God according th John Calvin,” Harvard Theological Review , 81:2(1988), 125-

143.

Page 2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서 다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남녀관계속에서의여성이고, 둘째

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여성의 문제, 셋째는 교회 내에서의 여성의

성직의 문제이다. 칼뱅은『기독교강요』나 주석서들, 설교들 속에서 그의

여성 이해를 다양하게 보여주지만 결국 이 세 가지가 중요하고, 또 대

체로그 안에모두포함된다고할 수 있다.

I I. 남녀관계속에서의여성

칼뱅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과 함께 인류 사회를 이뤄나가기 위해서

창조되었다. 그는하와의 창조를 설명하며말한다.

이제 모세는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한 의도를 밝힌다. 그것은 사람들이

지상에서 상호적 사회를 유지해나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런

뜻이 그의 후손에게까지 이어지는지에 대해서 의심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단지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그에게 도

움이 되기 위해서 여자를 창조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이 인간 사회의 최초의 수준을 시작하셨으며

그가 각각 다른 곳의 사회들도 포함시키기를 원하셨다고 이해한다. 그

러므로 원칙은 보편적인데, 즉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의 사회적

동물(créature de compagnie)로 창조되었다는것이다. 그런데 인류는 여

자 없이 존속할 수 없다. 남자와 여자가 한 몸과 한 마음으로 묶여지는

이 거룩한유대는인간생활에서 다른모든것들의 상위에 나타난다.7)

여기서 여성은 인간의 사회, 더 넓게 인류 전체 사회를 이루는데 없

어서는 안되는 존재로 이해된다. 여성은 바로 그런 목적에서 창조되었

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남성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동반자로서

베르나르 꼬트레 역시 칼뱅의 여성이해가 보수적이고 전통적이라고

보았다. 그에따르면 칼뱅이 가장 보수적으로 나타나는곳은 바로여성

이해에서이다. 칼뱅이 인간들 사이의 어떤 평등사상을 논박한 것은 그

가 여성들이 그녀들의 배우자들과 같은 지위에 올라가겠다는 주장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자기들의 상황에 만족하는 법을 배

워야한다. 여성의 평등은 모든질서와통치를 파괴한다. 하와의 딸들은

그녀들의 어머니가아담을 넘어뜨렸다는것을알아야 한다. 여성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정당하게자신들을 낮추는 일뿐이고, 하나님이그녀들에

게 맡긴 예속을 참을성 있게 감당해야 한다. 꼬트레는 이런 여성의 경

시가 아마도 칼뱅이 일상사의 여러 가지 것들 앞에서 겪었던 불편함으

로부터 온다고 했다. 성이나 생식 같은것이 칼뱅에게 혐오와 찬탄이라

는 복합적이고모순적인반응을 불러일으켰다는것이다.6)

그처럼 상반된 평가를 가져온 칼뱅의 여성이해는 정말 어떤 것인지

의문이 증폭된다. 그는중세적이고 보수적인남성위주의 사고방식을 가

졌는가? 아니면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친여성적이고 현대적인 의식을

가졌는가? 그의 여성이해는 과연 어떤 것이었는가? 이 연구는 그런 의

문들에 대해서 가급적 가장가까운 답안을 찾아보려는목적을 갖는다.

칼뱅의 사상 속에서 여성에 관한 견해들은 크게 세 개의 범주 속에

4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이오갑, 칼뱅의여성이해 43

5) 로날드 월레스,『칼빈의 사회개혁 사상』, 나용화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8),

202, 204.

6) B. Cottret, Calvin(Paris: Payot, 1998), 310. 그 외에도 칼뱅의 여성관을 보수적으로

파악하는학자들은많다. 가령 W. De Boer, “여성에관한칼빈의 견해는대단히전통

적이다. 이 세상에서 창조된 위치로 말미암아, 또한 그들에게 내려진 죄의 저주로 인

하여여성들은 남성들에게복종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을 지배할 수도 없고 가르칠 수

도 없다. 칼빈은 집사직을 포함하여 여자들이 교회 안에서 어떠한 공적인 직분도 취

하는 것을 금하였다.”“Calvin on the Role of Woman,” Exploring the Heritage of

John Calvin, ed. David E. Holuerda, 또한 R. Mancha, “칼빈은 여성의 복종을 시종

일관 가르쳤다. 이 견해는 정당하며 문제를 제기할 소지는 거의 없다.”“T h e

Woman’s Authority: Calvin to Edwards,” The Journal of Christian Reconstruction,

6 (1979/80), 86-98. 이 두 학자는 더글라스, 심창섭 역, 77-79 재인용.

7) Commentaires bibliques, Le livre de la Genèse, 2;18 (Genéve: Labor et Fides,

1961), 55. 이하쪽 수 없이 Commentaire, Genèse.

Page 2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를 주석하며말한다.

인류의 결속이 더욱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남자들과 마찬가

지로 여자들도 동일한 기원으로부터 나오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본성을 아담의 본성으로 창조하셨고, 이 본성으로부터 하와를

만드셨으므로, 여자는 단지 전 인류의 한 부분일 뿐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1장에서보았던‘하나님이사람을 그의형상으로 창조하셨고남

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는 모세의 말이 의미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아담은 마치 거울에서 자기를 보는 것처럼 자기 부인에게서 자기를 알

아봐야 했다. 하와도 또한 남편으로부터 취해진 존재로서 그에게 기꺼

이 예속되어야 했다. 만일 이 두 성이 다른 기원들로부터 나왔다면 서

로 멸시하고욕심내고분란이 일어났을것이다.10)

그처럼 칼뱅은 여자를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었다는 것을 남녀의 동

질성으로 이해했다. 더 나가서 그는 갈비뼈 얘기를 하면서 남자들에게

여성의 창조로 인해 어떤손상이나 상실, 고통을 입지 않았다고 안심시

킨다. 오히려“도움”을 얻고“동반자”를 얻었으며 그 덕에 아담도 완전

해지고, 더 나가서 인류까지도 완성되었다는점을강조한다.

그는 갈비뼈를 잃었지만그것은 그에게 훨씬 큰 대가로 돌아왔다. 그는

자기 인생의신실한 동반자를얻었던 것이다. 아니오히려, 전에는그가

반쪽에 불과했지만 그는 자기 부인 안에서 완전해진 자신을 발견했

다.…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아담이 깊은 잠에 빠졌기 때문에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았고, 거치른 수술도 없었고, 자기에게서 떨어져나간

갈비뼈로 인해 어떤 상실이나 손상도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나님

께서는 떨어져 나간 부분을 살로써 채워 넣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는제거된 뼈의 견고함만이 있었

다. 그런데 모세는 여기서‘세우다’(édifier)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시

작된 건물과 같았던 인류가 여자의 인격 안에서 완성되고 성취되었다

창조되었다고한다. 칼뱅은 말한다.

흔한 속담에 (여자는) 필요악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오히려, 여자는

남자가 더 안락하게 살도록 그를 돕기 위한 동반자(compagnie)로서

남자에게 결합되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나는 여기에 기

록된 하나님의 축복이…오늘날에 그렇듯이 이 타락한 세상의 상태 속

에서는보이지도않고기운을잃었다고고백한다.8)

여자는 필요악이라는 속담이 있지만, 남자가 행복하게 살도록 돕기

위해“동반자”로 주어진“하나님의 축복”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칼뱅에게서그“동반자”는 단지인류를 퍼뜨리기위한생식의 동반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격적인 것이었고, 삶의 모든 부분에 걸쳐 있는 폭

넓고깊이있는유대를 의미했다. 그는말한다.

히브리어는‘그의 앞에’라고 말한다.…나는 그것을 여자가 어떤 교류

와 일치를 함께 가지기 위해서 남자의 현전에 있는 것으로 이해한

다.…거기에서 여자가 단지 인류를 번식시키기 위해서 창조되었다

고…생각하는 사람들의 오류는 반박된다.…아담은 아직 육체의 욕구

들에 예속되어 있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여자가 아담의 인격에 대해서

필요했다고 평가하지 않으며, 마치 그녀가 그의 인생에서 불가분리의

동반자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와 함께 동침하기 위해서만 그에

게 주어진 것처럼 평가한다. 그래서‘그의 앞에’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데 이는 우리로 하여금 결혼이 인생의 모든 부분들과 모든 삶(usage)

에까지미친다는것을알게하기 때문이다.9)

남녀가 그렇게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의 가정과 사회를 이룬다

고 했던 칼뱅이 그 두 존재 사이의 동질성과 호혜를 강조했던 것은당

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여자를 남자의 갈비뼈로 만든 기사

4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이오갑, 칼뱅의여성이해 45

8) 앞의책.

9) 앞의책. 10) 앞의책, 2;21.

Page 24: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그를 돕기 위해서 몸의 직무를 담당해야 한다. 이것은 결혼에서 뿐만

아니라 또한결혼바깥에서도그렇다.13)

그러나 여기서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칼뱅이

남성과 여성이 본성적으로 동일한 기원을 가지고 서로 보완적이고 호

혜적인 관계 속에서 사회를 이룸과 동시에 인류를 번성시켜나가는 존

재로 보았다고 할지라도, 그 두 성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즉 여자는 남자의“도움”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든지,“남편으로

부터 취해진 존재로서 그에게 기꺼이 예속되어야 했다”든지,“남자의

장식품”이라든지. 남자를“머리”에 여자를“몸”에 비유했다든지 하는것

들은 모두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적이고 부수적인 지위를 드러낸다.

그래서 칼뱅이 아무리 남녀 사이의 평등이나 상호 우애와 의존을 말했

다고 할지라도 그 바탕에는 여전히 두 성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근원적

차이가 있었다.

물론 성서 자체가 여성을 그렇게 종속적으로 묘사했던 것은 사실이

다. 창세기2장의 여성의 창조이야기도그렇고, 사도바울등 성서 기자

들이여성에게 열등한 지위를 부여했던 것도그렇다. 칼뱅은 성서의 설

교자이고 주석가로서 성서의 진술 자체를 무시하거나 뒤집는 것은 불

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칼뱅은 성서 기자들의 그런 인식을 받

아들였고 그 위에서 자신의 해석을 가미했다. 그리고 그런 전제가 그의

여성 이해를 더 복잡하게 때로는 더 보수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칼뱅은 남녀의 관계를 전체적으로는 동등하게 보려고 했지

만, 가부장적 성격을 가진 성서의 진술을 떠나서 멀리 가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칼뱅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하면서도 여자는 이차적이라고 했던 것도 마찬가지이다.“확실히 사

람들은 여자 역시 두 번째 순서이기는 해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

는 것을보여주었다.”11)

이처럼 칼뱅에게서 여성은 남성을 도와서 완성시키는 존재이다. 그

래서 여성이 어떤 지에 따라서 남자가 자랑스럽게도 되고 부끄럽게도

된다. 칼뱅은 여성을 남성의 면류관이거나 장식품으로 인식했다. 그는

고린도전서11장 7절의“여자는남자의 영광이다”를 주석하며말했다.

여자는 남자의 뛰어난 장식품이라는 것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

면 하나님이 그녀를 남자의 동반자로 정해서 그와 함께 살게 하고, 그

를 돕게 하고, 또한 마치 몸이 머리에게처럼 예속되게 하신 것은 하나

의 커다란 명예이기 때문이다. 솔로몬이 잠언에서 현명한 여인에 대해

서 그녀의남편의 면류관이라고말한것이바로그것이다.12)

그러므로 칼뱅은 남성과 여성이 항상 잘 결합해서 서로 돕는 관계

여야한다는 점을강조했다.

그(바울)는 말하기를 남자의 성은 여자의 성에 비해 우월성을 가지며,

그 조건에서 그들은 둘 다 함께 서로 호의를 가지고 연결되어야 한다

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는다른 하나가 없이지낼 수 없고, 그들이 분리

된다면 그들은 갈라진 몸으로 불완전한 지체와 같을 것이다.…신자들

은 남자의 성은인류의 절반일뿐이라는것을 인정해야한다.…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자신들이 이 불완전한 성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마찬가지로 여성 신자들은 자신들의 의무를 생각하고, 그녀

들 편에서도 남자들에게 묶여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 없이

이뤄지지 않는데, 이는 몸이 없는 머리이기 때문이다. 여자 역시 남자

없이 이뤄지지 않는데 그것은 머리없는 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

는 여자를다스리기위해서 여자의 머리의 직을 감당해야 하고, 여자는

4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이오갑, 칼뱅의여성이해 47

11) 앞의책.

12) Commentaires de Nouveau Testament (Toulouse: Société des Livres Religieux,

1894), t. I I I, I Corinthiens, 11;7. 13) Commentaire, I Corinthiens, 11;11.

Page 25: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머리에 쓰지 않고 거리에 나서는 것이 큰 범죄일 정도로 여인의 머리

가운데 그렇게 큰 어떤 신비가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인가? 여인이 말하

는 것이 큰 잘못일 정도로 그렇게 침묵이 명령되었다는 말인가? 그대

로 놓아두면 범죄가 될 정도로 무릎을 꿇는 일이라든지 시체를 매장하

는 일에 종교가 들어있다는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머리를 가릴 여

유가 없을 정도로 급하게 자기 이웃을 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를

구하기 위해 벗은 머리로 달려 나갔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조금도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여인이 침묵하는 것보다는 말하는 것이 더

좋을 때도있다.15)

여기서 칼뱅은 사도 바울이 가르쳤고 사람들에 의해 반복되던 그

가르침을 강경한 어조로 반박했다. 여자가 머리에 쓰는 것이라든지, 침

묵하는 것이라든지 도대체 무슨 문제란 말인가? 그런 걸 지키지 않았

다고 해서 죄를 지었다고 비난할 수 없고, 오히려 더 정당하고 칭찬받

을 만한 것일 수도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런 문제가 그가 주장했

던 그리스도인의 자유 중에서 세 번째 문제, 이른바“아디아포라”에 속

하기때문이다.

칼뱅에 따르면“아디아포라”란“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외적인

것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구애받지 않으며, 때로는 그것들을 할 수도있

고, 때로는 무관심하게 안 해도 그만”인 것들이다. 가령, 고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문제, 옷이나 장신구를 착용하는 일, 식탁에서의 예법, 포

도주를 마시는 문제 같은 것들이다.16) 그런 것들은 모두“하나님의 선

물”로서“우리의 자유에 속한 것들”이다. 그래서“우리는 양심의 가책

이나 마음의 갈등 없이 하나님의 선물들을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용도대로 쓸 수 있으며, 그런 확신으로써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과 함께

안식과평안을 얻으며 우리를 향한그의풍성함을 인식할 수 있다.”17)

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데, 거기로부터 남자의 창조에서 말해지는

것은 또한여자의 성에도 속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나님이 여자를 남

자의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 그에게 주었을 때 그는 여자들에게 그녀

들의 소명의 규칙을 명해서 그녀들의 임무를 가르치실 뿐 아니라 또한

결혼은 남자들에게 아주 효과적으로 그들의 인생에 아주 좋은 지원이

된다는 것을알려주신다.”14)

여성은 두 번째 순서로 된 하나님의 형상이다. 남성과 같기는 해도

남성을 돕기 위해 태어났다. 하나님은 여성에게 그녀의 임무를 가르쳤

다. 그래서 결혼은, 즉 그런 여성을 맞아들이는 남성은 얻는 게 많다는

인식이다. 그런 식으로 칼뱅의 의식바탕에 새겨져 있는 기본적인남성

중심주의는 그의 여성에 관계된 모든 논의나 진술들 속에 마치 후렴구

와 같이지속적으로반복될 것이다.

I I I. 그리스도인의자유에서본 여성의문제

칼뱅은 여성의 문제를 교의학적 관점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틀에서 접근했다. 그는그것을 최초로는그가27세 때 발간한1536년의

『기독교강요』초판에서다루었고, 그것은 약간의 증보가 이뤄지지만 기

본적인 시각의 변동 없이1559년 최종판에 이르기까지 이어진다. 또한

칼뱅은 이 문제를 여성이 예배에서 너울을 쓰는 것이나 교회에서의 침

묵 요청같은것을담은고린도전서의주석과 설교등에서도 다루었다.

이에 관해 먼저『기독교강요』에서 여성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만을

인용한다.

4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이오갑, 칼뱅의여성이해 49

14) Commentaire, Genèse, 2;18.

15) Institution de la religion Chrétienne (Genève: Labor et Fides, 1955-1958), I V,

10/31. 이하 Institution.

16) Institution, I I I, 19/7.

17) 앞의책, 19/8.

Page 26: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게 해야 하고, 또 그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무엇이 적절한 지를 늘

생각해야하는것이사실입니다.19)

여기에서 보듯이, 교회에는 인간의 구원에 관계된 본질적이고 변할

수 없는“교리”가 있는 반면에, 시대나 상황이나 사정에 따라서 변경

가능한“질서”나“정치”가 존재한다. 이 질서나 정치는 그리스도인의자

유에 맡겨진 문제로서 적절한 판단에 의해서 변경될 수 있고 선택될

수 있다.

그런 얘기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보면, 칼뱅은 여성이 머리에 쓰는

문제를 제기하며, 이는 질서나 정치의 문제로서 항구불변의 법칙이 아

니라 교회의 상황이나 사정에 따라 변경되고 수정될 수 있다는 내용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칼뱅은 예상 외로, 여성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질서나 정치는 그 교회의 필요에 따라 세워지는 것으로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평화와 일치를 위해 질서를 잘 세웠고, 따라서 이를 잘

지켜야 한다는 논조를 전개했다.

그(바울)는 그들 사이에 완전한 예의와 평화와 일치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던 어떤 질서를 세워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요청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어떤 정치가 없다면, 각자가 갈

채를 받기 원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렇게 되는 일은 결코 없기 때문

에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되고, 거기에는 많은 내분과 갈등이 있게 될

것입니다.…그러므로 복음이 어떤 장소에서 선포되고 하나의 교회가

세워질 때는, 사람들이 적절하다고 인정하는, 그리고 각각이 자신의 자

유로써 이용하게 될 어떤 법령들이 세워져야 합니다.…우리가 만일 어

떤 좋은질서를 가지고있을 때, 그것을바꾸지 않고잘 지켜야하는데,

이는 우리가 사람들이 천성적으로 너무 가볍기 때문이고, 그리고 우리

가 억제되지 않으면 그 경박함이 우리들 각자를 지배하게 되기 때문입

칼뱅은 여성의 침묵이나 너울을 쓰는 문제들도 모두 이 아디아포라

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므로 거기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판

단하고 지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주어진 양심의 자유를 속박하

는 것과다름없다. 그래서 그는말한다.

사람들이 그런 걸 지켜야 한다면 가질 수 있는 양심의 자유가 어디 있

겠느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묶여 있는 것이 영원한 법령

들이 아니라 인간의 약함에 대한 외부적 도움이기 때문에 나는 그래도

양심은자유롭고속박이없다고 말한다.18)

특별히 이 주제의 발단이 된 바울을 주석하면서 칼뱅은 교리

(doctrine)와 대립되는 질서(ordre)와 정치(police)의 문제로 풀어나갔

다. 그의고린도전서설교를 보자.

하나님의 교회에는 첫째로 교리(doctrine)가 있고, 그 다음에는 질서

(ordre)와 정치(police)가 있다는 것을 주목합시다. 교리에 관해서 그것

은 두 가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믿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 모두가 그를 향

해 나아가는 일에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는 첫째로 우리에게 우리

의 구원의확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

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으면서 어떤 수단으로써 하나님께 기원해야

하는지를 제시합니다. 우리의 신앙에 관계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교리 외에 그 다음으로 정치가 있는데, 이 정치는 우리에게 자유롭게

맡겨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우리는 8시에 모입니다. 이것을 일곱

시로옮긴다든지, 형식을다르게 바꿀수도있을 것입니다. 그 사실에서

우리는 종종 어떤 교회가 다른 교회와 완전히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

지 않다는 것을 봅니다.…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기독교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왜냐하면외부적인질서나 정치에 대한 것은 사람

들의 자유에 맡겨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바르고 겸손하

5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이오갑, 칼뱅의 여성이해 51

18) Institution, IV, 10/31.

19) 11e sermon sur l’Epitre aux Corinthiens 11 et 12, Opera Calvini, XLIX, 710-711.

20) 앞의책, 71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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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같다는 걸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한 형제애를 가지고 살

아가고, 하나님이 우리로부터 영광받는 일이 방해되지 않도록 우리 가

운데 확고한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간단히 말해서 사람들이 정도를

넘어서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억제하고 올바르고 적절

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어떤 단정함도 남아

있지 않을것입니다.…이런 것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면사람들의모든

삶은 혼란스럽게될 것입니다.22)

같은 본문의 주석서에서 칼뱅은 교회의 교리에 질서와 정치를 대립

시키는 했지만, 이를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아니라 영적인 나라와 세상

의 나라의 문제로 이끌어갔다. 즉 남녀의 관계는 갈라디아서3장 28절

에서 보듯이 그리스도의 영적인 나라에서는 어떤 차별도 없지만, 현실

적인 나라, 교회의 정치의 영역에서는 차이가 있고 불평등하다는 요지

이다.

그(바울)가 그리스도의 영적인 왕국을 다룰 때 아내를 남편으로부터

조금도 구별하지 않는데, 거기서는 외적인 특징들(qualités)는 평가되지

않으며 고려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몸에는 관계가 없고 사람들

의 외적인 사회와도 관련 없으며 오직 영적인 데만 관계되기 때문이

다.…그래서 하나님 앞에서의 영적인 결합과 내적인 양심에 관한 한

그리스도는남자와 또한어떤 차별없이 여자의머리이다.…그러나외

부적 질서와 사회적 교양에 관한 한 남자는 그리스도를, 여자는 남자를

따르는데, 그것은 동일하게 평등이 아니라 오히려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23)

이어서 칼뱅은 남성의 우월성이나 통치권을 설명하지만 이에 관해

서는 다음에 다룰 여성의 성직 문제에서 보기로 하고, 단지 여성이 예

배 시에 머리에 너울을 쓰는 것에 관해서만 보면, 그는 여기서도 여성

니다. 우리의 입맛은 너무나 변덕스러워서 우리는 날마다 어떤 새로운

것을가지려고합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우리가운데 잘 세워진 질서

를 바꾸고 관행을 뒤집는 우리의 미친 입맛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여기서성 바울이 말한것을지킵시다.20)

그렇게 설명한 후에야 칼뱅은 여성의 문제에 들어갔다. 그래서 여성

의 문제가 질서나 정치의 문제이긴 해도, 바울이 세워놓은 질서를 잘

지켜야 한다는 쪽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

는 머리를 가리는문제에 관해이렇게 말했다.

“성 바울은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며

여자의 머리는 남자니라고 덧붙였습니다.…그래서 여자들에게 그렇게

머리를드러내고머리카락을보여주는 것이허용된다면, 결국에 가서는

그녀들의 젖가슴 모두를 드러내는 것도 허용될것이고, 술집 간판에 있

었던 것처럼 괴상한짓을 하러 갈 것입니다. 그녀들은 뻔뻔스럽게 되어

서 어떤 겸손함이나 수치심도남아있지않게 될 것입니다.…그리고우

리는 이 세상이 모든 걸 자기 유익대로 취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런데 만일 중립적인 일들에서 자유를 가진다면, 그들은 말할 것입니다.

어째서이런 것이나저런건 할 수 없느냐고말입니다.21)

이 설교는 칼뱅이 여성에 대해『기독교강요』나『창세기 주석』에서

보여주었던태도보다도 훨씬더 뒤떨어지고보수적인모습을 보여준다.

칼뱅은 여기서 만일 바울이 세워놓은 질서를 자신이 상대화시켜서 변

화 가능한 것이라고 하면 교인들의 죄된 욕망이 발동해서 교회를 무질

서와 혼란으로 가져갈까 불안해진 것은 아닐까? 설교에는 그런 면이

아주강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인간의 정신이 계속해서 어떤 새로운 환상을 만들어내는 가게

5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이오갑, 칼뱅의여성이해 53

21) 앞의책, 713-714.

22) 앞의책.

23) Commentaire, I Corinthiens, 11;3.

Page 28: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차이와 같다. 여성을 제약하거나 차별하는문제는 모두 교리가 아닌질

서나정치의 문제로서가변적인 것이다. 마찬가지로영적인 나라에서는

남녀의 차이가 없으나 오직 외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만 남녀가 구

별되고 차이가 발생한다는것이칼뱅의 시각이었다.27)

즉, 칼뱅에게서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은 현실 사회에서 존재하는 것

으로서, 그것역시질서나 정치의 문제이다. 물론이것이 그것을 가볍게

여기거나 쉽사리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앞의 항에서도 보았듯이 결론은 질서를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는 쪽으

로 흘러갔다.

어쨌든 칼뱅에게서 현실적으로 남성은 여성의“머리”이며“지배권”

을 가진다는 것은 양보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그(남자)는 그리스도에

게 예속되는만큼 집안의 통치에서 첫째가 되어야 하기때문이다. 가정

의 아버지는 그의 집에서 왕과 같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그에게

주어진 지배권의이유로써그에게서빛나고 있다.”28)

그런데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여성의 성직문제와 관련해서 문제는,

이런남녀 관계가 가정내로만 국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결혼을

했건 아니건 사람들은 남성의 우월권과 여성의 순종의 덕을 받아들여

야 한다는 점이다.“사람들은 그(바울)가 단지 결혼한 여자들에 대해서

만 말하는 것이 아닌지 물을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성 바울

이 여기서 말한모든 것을결혼한 여자들에게만한정시키고 있고, 남편

의 권능아래두는것은처녀들에게는 해당되지않기때문이라고한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성 바울은 더 높은 곳을, 즉 여자의

성을 남자들의 권능 아래 둔 하나님의 영원한 법을 바라보고 있기 때

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여인들은 남자의 성의 탁월함에 비해 열등하다

고 인정해야한다는조건에서태어났다.”29)

이 질서를 지켜서 바울의 가르침을 준수해야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즉 여자들은 기도할 때나 예언을 할 때 머리를 가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녀들은 자기들의 머리(chef, 우두머리)를 불명예스럽게 합니

다. 이는 남자가 자신의 자유를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머리를 명예롭게

하는 것처럼, 또한 여자가 자신이 예속되었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자

기의 머리를 명예롭게 하는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와 반대로 만일 여

자가 자기 머리를 드러내면 그녀는 예속을 거절하는 것이며 이는 그녀

가 자기남편에 대한만족이없이만 할 수 있는일이다.24)

I V. 교회에서의여성의성직문제

칼뱅에게서 남녀는 근원적이거나 혹은 영적인 차원에서만 평등하다.

즉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하나님의형상으로창조되었다는점에서-

물론두 번째순서라는 단서가 있기는 하다-“남자의 창조에서 말해지

는 것은 또한 여자의 성에도 속한다는 결론을”25) 내릴 수 있으며, 남자

의 갈비뼈로부터 여자가 나왔다는 점은 남녀의 동질성과 일치를 말해

준다. 또한 칼뱅은 고린도전서 11장 주석에서도“그(바울)가 그리스도

의 영적인 왕국을 다룰때 아내를 남편으로부터 조금도 구별하지 않으

며…하나님 앞에서의 영적인 결합과 내적인 양심에 관한 한 그리스도

는 남자와 또한 어떤 차별 없이 여자의 머리이다”라고 했듯이,26) 그리

스도를 공통으로 머리로 하는 남성과 여성은 영적으로는 아무런 구별

도, 차이도, 불평등도 없다. 그것은 앞에서 보았던 구원과 신앙, 영적인

문제에 관계된“교리”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질서”나“정치”사이의

5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이오갑, 칼뱅의여성이해 55

24) 앞의책, 11;5.

25) Commentaire, Genèse, 2;18.

26) Commentaire, I Corinthiens, 11:3. 또한11e sermon sur l’Epitre aux Corinthiens 11

et 12, Opera Calvini, X L I X, 718-719. Cf. 주 23.

27) Commentaire, I Corinthiens, 11;3. Cf. 주 23.

28) 앞의책, 11;4.

29) 앞의책, 11;10.

Page 29: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되어야 한다.31)

물론 칼뱅은 성서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등이

예수 부활의 최초의 증인으로서 큰 사명을 감당했다는것을 알고 있었

다.

그가 여인들로부터 시작하신 일에 관해서, 그는 그녀들 앞에 나타나신

것 뿐만 아니라, 또한 그녀들에게 사도들에게 알리도록 맡기셔서 사도

들의 교사와 같이 되게 하신 것은 우선, 여인들이 무덤으로 부지런히

달려감으로써 특별한 보상을받는 동안, 겁에 질려서거의 반쯤은 죽은

사람처럼 되어 있었던 사도들의 무기력을 꾸짖고 벌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가 마치 아직도 죽어있는 것처럼 여겨서 그에게 향유를 바르

려던 시도에 어떤 오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그녀들의 그런

잘못을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도의 직무를 남자들에게서 빼앗아서

그것을 얼마동안그녀들에게위임하는영예를 갖게하셨다.32)

그러나 칼뱅의 이 말을 여성의 성직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는없다. 그 여인들에게 맡겨진 사명은 일시적인 것으로서여성 성직

의 본이될 수 없다는 것이칼뱅의 분명한 입장이었기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부활을 사도들에게증언하도록 여인들을 세우신 데

서 우리는 그의 헤아릴 수 없는 선함이 나타나는 것을 본다. 왜냐하면

그녀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우리들의 구원의 유일한 근거이고, 하늘의

지혜의 주요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특별

한, 마치 우발적인 일이었다고 봐야 한다. 그는 여인들에게, 사도들이

맡겨진 직무에 따라 나중에 전 세계에 선포하게 될 것을 그들에게 알

리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 일을사도의 직책으로세워진 것

처럼 수행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이 명령으로부터여성들에

게 세례의 직무를 허용하는 법을 이끌어내는 사람들은 잘못하는 것이

칼뱅은 그런 관계를 고린도전서 설교에서는 나무의 줄기와 가지의

은유로써설명했다.

만일 여성들이 여기서 자신들의 처지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그리고 그

녀들이 마치 하나님이 그녀들을 이유 없이 낮추셨다고 불평한다면, 그

녀들은 성서 안에서 우리들에게 제시된 것을 보아야 합니다.‘누가 처

음 사람이냐, 아담이냐, 하와냐?’남자가 먼저 나왔고, 여자는 그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하와는 일부분이거나 부속물 같아야 하는 것이, 그리고

그녀가 첫 사람의 명예를 찬탈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나무 가지가 뿌리나 줄기보다 더 큰 명성을 얻습니까? 보십시오, 여기

에 나무줄기로부터 나온 가지가 있는데, 거꾸로 가지가 영광을 받습니

까? 그러면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여자는남자로부터나온 가지와

같습니다. 왜냐하면여자는자기의 본체로부터나왔기 때문입니다.30)

남성이 여성의 머리로서 우월성과 통치권을 가정 내에서뿐만 아니

라 밖에서도 가진다는 칼뱅의 관점은 교회 내의 여성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칼뱅은 교회 내에서 여성은 남들을 가르칠 수 없다는 점

을 분명히 했다.

회원 중의 한 사람에게 예속되는 여인이 전체에 대한 지배와 권위를

가지는 것이얼마나 부당한가?…만일 여자가 예속된다면 그녀는 설교

하거나 가르치는 공적인 권위를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사실상, 자연적

예절이 존재하는 모든 나라, 민족들에게서는 여자들은 언제나 모든 통

치권으로부터배제된다. 그래서 그런 공통적인상식조차우리에게 여자

들이 지배하는 것은 악하고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다.…그러니 바울의 추론은 분명하다. 즉 설교하거나 가르치는 권능은

여자에게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일을 하면 그녀가 거기서 듣는 모

든 남자들을 지배하는 것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오히려 예속

5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이오갑, 칼뱅의여성이해 57

30) 12e sermon sur I Corinthiens 10 et 11, Opera Calvini, X L I X, 728-729. Cf. B.

Cottret, 310.

31) Commentaire, I Corinthiens, 14;34.

32) Commentaire, Matth, 28;1.

Page 30: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바울)는 그녀들이 공중에서 예언을 하거나

가르치기 위해서 말하는 것을 금했다.”35) 칼뱅의 그런 기조는 역시 여

성의침묵을 요구하는『디모데전서주석』에서도 반복된다.

그(바울)는 그녀들에게 그녀들의 가정에서 가르치는 직무를 빼앗으려

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께서 오직 남자들에게만맡기신 가르

치는 직책으로부터 제외시키려는 것이다.…바로 그 이유에서 여자들

은 가르치는 것이 금지되는데, 곧 그녀들의조건이 그것을 허용하지않

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종속된다. 그리고 가르치는일은더 상위의능력

이나 수준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 이유는 예언자들이나 박사

들조차도 왕이나 제후들 그리고 다른 통치자들에 예속되기 때문에 그

렇게 확고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누군가가 통치하면서 때로 다른 측

면에서는 복종하고 예속된다고 말하는 것이 별 문제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적으로 예속되고 복종하기 위해서 태어난 여자에게

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모든 지혜자들은언제나 여자들의통

치를 괴물같은 것으로 여겨서 거부했던 것이다. 그래서 만일 여자들이

가르치는 권리를 빼앗는다면 말하자면 그것은 하늘과 땅을 뒤섞는 일

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들은 침묵을 지킬 것을, 다시 말해서 자신

들의 한계와성의조건 안에서처신할것을 명한다.36)

따라서 교회 내에서 여성이 성직을 갖는다는 것은 칼뱅에게 있어서

는 일시적으로나 상황에 따라서 일부 허용될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는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제인 더글라스는 칼뱅에게서“여성의

침묵”이 상황에 따라 바꿀 수 있는“질서와 예법”으로서“아무래도 좋

은”문제로 전제된다는 점에서 여성의 성직 임명을 지지하는 쪽으로 적

극적으로 해석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칼뱅의 입장은 오히려 바울과

또 교회가 일반적으로세워놓은질서를존중해야한다는 쪽에있었다.

다. 주 예수가 그녀들을 한 번 사도들의 교사가 되게 하셨을 때, 그의

은혜의무한한 보화를 그녀들에게 펼쳐주셨다는정도로 충분하다. 그렇

기는 해도 그런 특별한 특권으로써 본이 되게 하는 것은 원치 않으셨

다.33)

또한 칼뱅은 역사적으로도 그는 제네바 종교개혁 초기에 마리 당티

에르 같은 여성 설교자들도 복음을 설교하고 개혁운동에 적극 참여해

서 역할을 담당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 칼뱅은 거기에 대해서도『디모

데전서 주석』을 통해서 적절하게대답했다.

만일 사람들이 드보라나우리가 하나님께서 옛날에 백성들을다스리게

하기 위해서 명령으로써 세우셨다고 읽은 그와 비슷한 예를 제시한다

면, 대답은 쉽다. 비상시의 하나님의 사건들은 그분이 우리들을 거기에

예속시키기를원하신일반적 정치를 철폐하지않는다는것이다. 그래서

만일 여자들이 때로 예언자나 박사의 직무를 감당했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어도, 모든 법을 넘어서는 분이 또

한 그 일을 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하고 예외적인 것이므로

지속적이고흔히 통용되는정치에 반하는것은아니다.34)

즉, 여성이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 필요한 때가있고, 또 그것

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만, 그런 특별한 경우가 지속적이고 일반적

인 원칙이 될 수는 없고, 교회가 잘 정비되고 질서가 잡히면 여성들은

다시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서 듣고 순종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는 뜻이

다.

칼뱅은 고린도 교회에서 여인들이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악(vice)’

이라고 까지 혹평했다.“고린도교회 역시 이 악으로 쌓여 있었다는 것

이 드러난다. 즉 거룩한 공회에서 여인들의 수다나 혹은 과분한 자유가

5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이오갑, 칼뱅의여성이해 59

33) Commentaire, Jean, 20;17.

34) Commentaire, I Timothée, 2;12.

35) Commentaire, I Corinthiens, 14;34.

36) Commentaire, I Timothée, 2;12.

Page 31: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나“정치”는 상황의 변화에 따라바꿀수 있다.

그렇게 전개되는 칼뱅의 여성에 대한 시각과 견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에밀 두메르그의 표현을 빌리면“이율배반”과“상반대

립”이다.37) 그런 역설적인 성격, 대립되는 것의 공존이란 의미의“변증

법”은 칼뱅사상의 주요한 특징으로서신론이나 기독론, 인간론, 종말론

등 그의 사상 전반에 걸쳐 있다.38)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펴본 그의 여

성 이해에서도 잘, 그리고 반복적으로나타났다.

그 이유때문에 그의 여성관에 대한 평가는 어렵고 조심스러워진다.

과연칼뱅은 남녀의 평등을 말했는가, 차별을 말했는가? 그의 남녀관은

근대적인가, 중세적인가? 진보적인가, 보수적인가? 평등주의적인가, 가

부장적인가? 페미니스트인가, 안티페미니스트인가? 그런의문들에대해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칼뱅

의 언설들 전체를 균형 있게 보면서, 그가 어느 쪽에 좀 더 가까운지,

어느쪽을좀 더 많이, 세게 말했는지, 그의결론이 어느쪽으로 향하고

있는지 등을봐야 하고, 덧붙여서 그가 살았던 시대상황이나 한계까지

를 고려해서판단해야할 것이다.

서두에서 보았듯이, 비엘레나 더글라스 같이 학자들은 칼뱅의 여성

관을 개방적이고 진보적으로 평가했다. 그들은 그 이유로서 칼뱅이 동

시대 종교개혁자들이나 종교가들 중에는 유일하게 여성문제를 고정된

것이아니라 상황과 시대에 따라 바꿔나갈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이나,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여성의 중요성과 참여를 긍정적

으로 여겼고 무엇보다 남녀를 동일한 근원을 가진 동등한 존재로 보았

다는점을제시했다.

그렇기는 해도 칼뱅에게는 그런 적극적인 면 못지않게, 그 이상으로

여성에 대해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시각이 뚜렷했다. 그는 교회 내에서

V.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칼뱅의 여성 이해는 다음과 같이 정리되고 평가될

수 있다.

칼뱅은 남성과 여성이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났고 공통의 기

원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영적인 차원에서나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

에서는 모두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동등한 지체라는 점에서 남녀의

평등을 주장했다. 그런 측면에서 남녀는 모두 상호 인격적이고 우애적

인 관계를 가지게되며어떤차별이나불평등이 없다.

그러나 그는 외적인 차원에서, 즉 가정이나 사회적인 관계에서는, 그

리고 현실 세계에서는 남녀 간에 차이가 있고 차별이 있다고 보았다.

남녀가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해도 여자는 두 번째 순

서의 형상이므로, 혹은 여자가 남자를 돕기위해 그의갈비뼈에서태어

났으므로, 여자는 남자를 도움으로써 협력해야 하는 존재이다. 즉 남자

는 그 기원에서부터우월성과 또한 지배권을 가지고 태어난 까닭에 남

자는다스리고여자는 순종하고따르는 위치가 정해졌다.

교회 내에서의 여성의 문제에 대해서도 그런 전제가 깔려 있다. 즉

칼뱅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예속되고 순종해야 하는존재이므로 설교하

거나 가르치는 것은 금지되었다. 여성은 침묵을 지키며 자신들의 한계

와 조건안에서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칼뱅은 또 다른 전제를 두었다. 즉 교회 내에서의 여성 침묵이나 머

리를가리는 문제등은모두그리스도인의자유에 속한것으로서“이래

도 되고 저래도 되는”문제라는 것이다. 그것은 원칙적으로 개인의 양

심에 따라 선택할 수 있고, 또 교회가 상황이나 시대에 따라서 적절하

게 수정하고 변화를 줄 수도있다. 그 문제에 차이가 있거나 서로배치

된다고 해서 그리스도교가 아닌 것이 아니고, 교회의 일치가 깨어지는

것도 아니다. 교회는 구원이나 기본적인 신앙에 관계된“교리”는 변치

않는 것으로서 언제나 준수해야 하지만, 외적인 문제에 관계된“질서”

6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이오갑, 칼뱅의여성 이해 61

37) E. 두메르그,『칼빈 사상의 성격과 구조』, 이오갑 역(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5),

71-74.

38) 이오갑, 『칼뱅의 신과세계』(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45-49.

Page 3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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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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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갑. 『칼뱅의신과세계』.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월레스 로날드.『칼빈의 사회개혁 사상』. 나용화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8.

톰슨 존.“칼빈의 성격해석: 초기 개혁주의 고린도전서 주석에 있어서 전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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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tt J. “The Role and Status of Woman in the Writings of John Calvin. ”

Renaissance, Reformation, Resurgence. ed. by P. De Klerk. Grand

Rapids: Calvin Theological Seminary, 1976.

Calvin, J. Institution de la religion chrétienne. 1559/1560, 4 vols. ed. par J.

Cadier, Genève: Labor et Fides, 1955-1958.

. Iohannis Calvini Opera quae supersunt omnia 59 vols, ed. par G.

Baum, E Cunitz, E. Reuss etc. Brunschwig: Schwetschke et Filium,

1863-1900.

. Commentaires sur le Nouveau Testament, 4 volumes, Toulouse:

Société des Livres Religieux, 1892-1894.

. Commentaires bibliques, Le livre de la Genèse. Genève: Labor et

Fides, 1961. Cottret B. Calvin. Paris: Payot, 1998.

Thompson J. L. “Creata Imaginem Dei, Licet Secundo Gradu: Woman as the

Image of God according th John Calvin.” Harvard Theological

Review. 81:2, 1988.

의 성차별이나 여성에 대한 억압적인 요소에 대해서 별다른 감정이나

불만을 표명하고 있지 않았고 오히려“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즉 그는교회에서여성문제, 여성에 대한차별을 바꾸거나개

선하려기보다는 사도 바울이 잘 세워놓은 질서이므로 따르고 지켜야

한다는 데 초점을 두고 가르쳤다. 실제로 그가 이 문제에 대해서 교회

안에 가져온 변화도 별로 없었다. 가령 교회 찬송에서의 여성의 참여

같은 것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여성의 성직에 관해서는 어떤변화도 가

져오지 않았다.39)

그런 점들을 고려할 때 칼뱅은 당시 근대세계를 향한 개방적 여성

의식 보다는 중세적이거나 전근대적인 대중들의 가부장적 의식에 가까

웠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교회 내에서의 그런 전통적이고 가

부정적 남성중심주의의 극복은 결국 후세에 맡겨진 몫이고, 오늘 우리

의 교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를위해 오늘의 교회가 칼뱅에게서

얻을 것이 있다면 주로 그의 근대적인 면모, 즉 영적으로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남녀가 평등하며 어떤 차별도 없다는 인식, 그리고 사회적

이고외적인 관계에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은 사회와 인식의 변화에 따

라 개선해나갈수 있다는 유연성 혹은개방성이라고하겠다.

주제어

칼뱅, 여성, 여성의 성직, 여성주의

Calvin, Woman, Woman’s Ministry, Feminism

접 수 일 2010년 9월 13일

심사(수정일) 2010년 11월 6일

게재 확정일 2010년 12월10일

6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이오갑, 칼뱅의여성이해 63

39) Cf. J. D. 더글라스, 심창섭역, 1990.

Page 3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his point of view on the condition that we read and interpret the all of

his writings keeping in proportion as well as possible. To which posi-

tion is he more near? Which opinion express he more strongly and

much more? What is the conclusion of his discourses after all that?

After due consideration, I am obliged to estimate that Calvin in his

understanding of woman is close to the paternalistic mass of pre-

modern era rather than he has open mind to the equality between man

and woman or to the liberation of woman in the modern era.

Calvin’s Understanding of Woman

O-kab, Lee

Associate Professor

Korea Christian University

Seoul, Korea

It is very difficult to know Calvin’s idea or perspective of Woman.

Because he has always two opposed positions in his writings, for

example in Institute, Sermons and Commentaries. Is he conservative

or progressive, medieval or modern, unfriendly or friendly to

woman?

Calvin regards the silence of the women and their head cover in

assembly or public place as the view point of the christian freedom.

That is, the problem of women’s silence or head cover belongs to the

freedom. Therefore it can be changed in accordance with the

situation or the age. In this point Calvin’s view is progressive.

But according to Calvin, woman is created in second grade

(secundo gradu) even though in the same image of God with man, so

that she has to aide the man and to be obedient to him. As a result, he

prohibited, like Paul, the women’s preaching or teaching in the

church. In a word, women must keep silent and behave properly in

their limits. At this point Calvin’s view is conservative and even

medieval.

Even if he speaks two opposed opinions, we can finally discern

6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이오갑, 칼뱅의 여성이해 65

Page 34: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현대뇌 과학을중심으로

황돈형

(서울중앙신학교부교수)

I. 서론

세계와 인간의 기원은 무엇인가? 이 세계는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세계는 끝이 있는가? 현

대에 익숙하게 등장하는 이러한 질문들은 우주적 사건으로서 인간 존

재 현상에 대한 질문으로서 세상과 하나의 과정으로 드러난 인간의 책

임과운명에대하여 묻고있다.

오늘날 인간은 세상과 분리된 방식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은 자

명한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세계자체가 인간의 존재를 구성하는 근본

적인요소임이 확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방식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확인되고 있다. 첫째, 인간의 고유성은 자연과 상관없이 분리

된 것에서 발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몸을 가진 존재로서 구체

적으로 자신이 처한 환경과의 연관을 통해 자신의 의미를 추구하는 존

재임이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M. Scheler에게서부터 주장된 것이며 현

재에는A. Gehlen이나H. Plessner 등에의해서 강조되는것이다.1) 이들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67-105

Page 35: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게 적용되고 있으며 인간이해에 획기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다.6)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된 상황에서 영과 육의 이분법적 인간이해를

극복하며 자연과 세상의 연관성을통해서 드러나는 통전적 인간상은 어

떤 것인가? 오늘날 인간의 자아동일성과 주체성은 어떤 형태로서 이해

될 수 있는가? 이제까지 자아의 근본으로서파악된 인간의 영혼은 무엇

이라고 말 되어질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에서

파악되는 모습으로서 기독교인의 자아 이해는 어떤 특징을 가질 수 있

는가? 이제 본 논문에서는 특히 새롭게 요구되는 통전적 인간상에 대하

여 삼위일체적 존재 이해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현 시대의 과학적

인간상을 포괄하고이에 기독교적인간이해를통해서 보다분명한 자아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제

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창조와 진화에 대한논쟁을 통해드러난

과학적인 인간 이해의 주장을 뇌 과학에 따라서 살펴봄으로써 인간의

자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서술하고 둘째로 과학적으로설명된 자

아이해를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존재의 이해를 통해서 기독교적으로 새

롭게형상화시킬수 있는가능성에대하여밝히고자 한다.

I I. 과학적인간이해 - 뇌 과학을중심으로

1. 인간이해에있어서기독교와과학사이의갈등과연관성

진리를 추구하는 방식에 있어서 과학과 종교는 서로에 대하여 어떻

은 인간의 고유성을 자연에 대한 총체적인 시각과 연관하여 환경적 조

건을 넘어서는 개방적인 존재라는 것에서 발견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

은 인간과 자연의 통합성을 통해 인간의 특성을 이해하는 생태학적2)

인간이해를 통해서도 밝혀지고 있다. 인간의 존재는 더 이상 자연으로

부터 분리된 존재로서 이해될 수 없으며 인간의 정체성은 자연과의 순

환적이고 유기적 관계를 통해서 파악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3) 둘째, 인

간의 의미전달이 이루어지는 문화적 차원에서 볼 때 인간은 단지 몸과

분리된 이분법적인 방식으로 이해된 영혼을 통해서 규정될 수 있는 존

재가 아니라 性적인 특징을 지닌 몸을 가진 문화적 존재로서 이해되어

지고 있다.4) 그리하여 오늘날 인간은 근본적으로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

적 차이에서 이해되어야 하며그런한도에서 인간은 서로의 차이 가운

데 서로를 배워야 할 문화적 존재임을 알려주고 있다.5) 그리고 셋째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재가 이미 완성되어진 형태로서 고착되어진 존

재가 아니라는 이해가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부터 드러나는 새로운 인간존재의 가능성에 대한 이해들이다. 즉 분자

생물학의 등장과 함께 모든 자연과학과 기술의 잠재력은 인간 자신에

6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69

1) 이에 대한 간략하고 상세한 설명은 W. Pannenberg, 『신학과 철학』, 정용섭 역(서울:

한들출판사, 2001), 400-410.

2) 생태학이란 낱말은 1866년 독일 생물학자 Ernst Haeckel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Ernst Haeckel, Generelle Morphologie der Organismus, 1866 Berlin 그리고 생태학

은 생물계와 그 외의 모든 것에 대한 일반적 관계를 밝히는 것으로 설명했다. Ernst

Haeckel, “Über die Entwicklungsgang und Aufgabe der Zoologie,” J e n a i s c h e

Zeitung 5, 1869, 353-370.

3) Arne Næss, “The Shallow and the Deep, Long-Range Ecology Movement,” Inquiry

16 (1973): 95-100.

4) Yves Michaud., 『문화란무엇인가 2』, 강주헌역(서울: 시공사, 2003), 123ff.

5) Ted Peters, 『하나님-세계의 미래』, 이세형 역(서울: 컨콜디아사, 2006), 15. 이와함께

성(性)을 단순히 생물학적구분이 아닌인간의문화적이고사회적인총체적인차원에

서 이해하고신학적으로다루고 있는것으로 Eugene F. Rogers, Jr, Sexuality and the

Christian Body. Their Way into the Triune God (Oxford: Blackwell Publishing,

2005)참조.

6) Hans Jonas, 『기술의학 윤리』, 이유택 역(서울: 솔 출판사, 2005), 157ff. 178. 특히 유

전자 기술의 적용은 요나스에 따르면 인간의 보존, 개선 그리고 창조를 위한 것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데 그 가운데 점차로 인간의 변형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미래에 있을 수도 있는 잘못된 예이지만 인간과 동물의 잡종을 암시

하기도 한다(194).

Page 36: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극복하고자 한다. 이 가운데Paul Lipton에 의해서 주장된‘최상의 설명

을 위한 추론’(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은 종교와 과학 사이

를 종합적인이해를 밝혀주며새로운 가능성을제시하고있다.11)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신학과 과학 사이의 인간이해에 대하여 갈

등은 폴킹혼에 의하면 Charles Darwin의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1859)으로부터 근본적 요인이 발견된다.12)

다윈은 자신이 비글호를 통해서 얻었던 오랜 탐험의 자료를 해석함에

있어 생명의 형태가 결코 고정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Lamarck의 사상과 현재적 지각 형태가 오랜기간을 거친 변화를 통해

서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Richard Owen의 지질학적 연구의 결과를 연

관시켜서 변종의 과정(진화)을 주장하였다.13) 이 가운데 그는 생명체의

기원과 현상을 하나님의 행위와 상관없는 자연선택으로 진행되는 점진

적 변종의 원리로서 설명하게 된 것이다.14) 비록 그가 생명현상을 무신

론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관찰한 자연현

상은 단순하게 하나님의 창조적 행위자체로서 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

는 것은 아니었다.15) 이러한 그의 생명의 현상에 대한 해석은 다윈과

게 생각하고 있는가? 이성과 신앙은 서로를 인정하고 긍정할 수 있는

종합적인 진리로서 이해될 수 있는가?7) 최근에 등장하는 다양한 영역

을 통섭하는 과학적 진리에 대한 관심은8) 이제까지 있어왔던 과학과

종교 사이의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제일 원리로서의 지나간 갈등을

반영하고 있다. 이제까지 과학적 입장에서 종교적 진리의 필요성에 말

할 때 긍정과 부정적으로 파악하는 쪽이 거의 양분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9) 현재도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특정하게전제하고 과학적 행

위를 수행하는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다.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새로운 과학이론은 실증주의적 사고를 중심으로 하는 방식의 한계를

7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71

7) Ian Barbour, Nature, Human Nature and God (Minneapolis: Fortress, 2002) 참조.

여기서 기술과 과학 종교 사이의 통합적인 진리의 형태를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것으로 서술하고있다.

8) 에드워드윌슨, 『통섭』, 최재천, 장대익역(서울: 사이언스북스, 2005) 참조.

9) 존 L. 캐스티,『현대과학의6가지 쟁점』, 김희봉, 권기호 역(서울: 지식의 풍경, 2005),

10. 이러한 사실은일찍이 1916년과 그리고 최근 1996년에 임의로 선정된 1,000명

의 과학자들을 상대로 종교와 과학 사이의 상보적 관계의 가능성에 대하여 묻는 질

문에 대하여 응답한 결과에서드러난다. 위의 질문에 대하여 1,000명의과학자들 중

유신론적 입장에 있는 과학자들이1916년에는41.8%가 긍정적이었다면1996년에

는 39.3%가 긍정적이었다. 이에비하여 무신론적 과학자들은 동일한 질문에1916년

에는41.5%가 1996년에는 45.3%가 긍정적이었다.

10) 앞의글, 11ff. 이에 대한 대표적보기는 Richard Dawkins, 『만들어진 신』, 이한음 역

(서울: 김영사, 2009 41판)과 Francis S. Collins, 『신의 언어』, 이창신 역(서울: 김영

사, 2009)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유전자 형성 현상을 Dawkins는 무신론적으로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만들었던 Collins는 유신론적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과학적

이며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연구방법자체와 연구 결과에 대한 세계관적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서로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

한 방법론적 복합성에 대하여 John Polkinghorne, “Christianity and Science,”

Religion and Science, ed. by Philip Clayt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57. 종교와 과학이 동일한 대상을 다룰지라도 서로 다른 차원에서 해석의 과

제를 수행하고 있다. 과학과 종교가 공통된 대상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일지라도 이

것은 각자의 특정하게 제한된 방식에 따라서 이해되어져야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과학자체도연구대상에따른제한적인연구방식으로과제를수행한다.

1 1 ) Alister E, McGrath, Science and Religion (Oxford: Blackwell Publishers Ltd,

2010), 52. Peter Lipton, 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 (London: Routledge,

2004) 참조 본 논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의 뇌 현상을 이해함에 있어서 단순한

물질적상호작용의인과율적해석이상의포괄적 해석의가능성을추구하고자한다.

12) John Polkinghorne, “Christianity and Science,” Religion and Science, ed. by Philip

Clayt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59.

1 3 ) Ted Peters and Martines Hewlett, Evolutiton from Creation to New Creation,

conflict, conversation, and Convergence (Nashwille: Abingdon Press, 2003), 41.

14) J. Haught, 『신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 신재식 역(서울: 지성사, 2004), 24. 다

윈이 자신의 연구를이론적으로 체계화할 때 1838년 발표된 Thomas Malthus의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진화라는 말

은『종의 기원』이 출판된 후 6판이 지난 뒤에 사용하였다. 그리고 적자생존이란 단

어는좋아하였지만이 단어는쓰지않았다.

15) Charles Darwin, The Life and Letters of Charles Darwin, Including an Autobio-

Page 37: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들을 총괄적으로 해석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통해 모든 종교적 입장을

배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19) 그리고 최근에 사회생물학이란 새로운

학문을 통해통섭적 지식을 강조한Edward Wilson이나문화적 행위가

유전자의 구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환원적 해석을 강조한 Richard

Dawkins는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현상 자체가 진화적 산물인 인간에

의하여 만들어진허구적인것이라 강조하였다.20)

그러나 유물론적 차원에서 생물학적 진화로서 인간을 설명하는 것

과 달리 경험 대상에 대한 인식작용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자아’라는

정신적인 경험은 새로운 설명이 요구됨을 알 수 있다.21) 이에 대하여

Philip Clayton은 emergence 개념을 통해서 복합성의 증가에 따른 새

로운 인과율의 발생을 주장하고 있다.22) 정신적으로 파악되는‘자아’가

발생될 수 있는 물질적 구조는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자아’라는 자

각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구조를 넘어서는 새로운

인과율적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23) 다시 말해서 인과적 차원

동시대에 속했던Thomas Huxley에 의하여 분명하게 무신론적이고 유

물론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져 해석되어지기 시작했다.16) 그리고 토마스

헉슬리의 의도는 당시Oxford의 주교였던Samuel Wilberforce에 의하

여 헉슬리 조상의 기원을 원숭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비유적으로 설

명되어지고 이에 대한 헉슬리의 반발로 과학과 종교의 갈등이 표현되

기 시작되었다.17) 이러한 가운데Herbert Spencer는 전통적 기독교 세

계상을 벗어나 경쟁과 쟁취를 중시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적 사회 형태

에 알맞은 세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를 세계의

과정을 설명하는 진화적 형이상학과 사회 윤리에로 전환시켰다. 그는

Principles of Biology(1864)에서 적자생존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다윈

의 변종 현상에 대한 설명의 개념으로서 사회적 현상을 해석하는 방식

으로 적용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진화론적 사고를 단지 생물학

적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근본적 원리로서 받

아들였다. 그 후Thomas Huxley의 손자인Julian Huxley는 Evolution:

The Modern Synthesis(1942)18)에서 진화론을 통해서 현실의 모든 것

7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73

graphical Character , ed. Francis Darwin, 2 vols. (New York: Basic books, 1959),

Vol 2, 311. 다윈은 자연현상 가운데 발견되는 약육강식의 문제를 쉽게 하나님의 윤

리적이고 선한 질서로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종의 기원’

마지막 부분에는 생명력의 위대함을 말하면서 하나의 생명의 근원에 대한 경탄을

느끼고 있었고 이것은 그가 태어나기 전 쓰여진William Paly의 Natural Theology:

Or Evidences of the Existence and Attributes of the Deity, Collected from

Appearances of Nature(1802)과 같은의견이었다.

16) Ted Peters and Martines Hewlett, Evolutiton from Creation to New Creation, 20.

17) J. Polkinghorne, Science and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8), 6.

Samuel Wilberforce (1805 ? 1873)는 Huxley와 R. Owen 사이의 인간의 기원에 대

한 논쟁에 참여하면서1 8 6 0년 6월 3 0일 영국 Oxford 대학의 자연사 박물관에서

Huxley의 조상을 원숭이와 연관시켜 물음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종교와 과학 사이

의 연관성을 강조하면서 진화를 세계의 역사적 현실로서 받아들이며 이를 통해서

다시금 하나님의 창조의 의미를 새롭게 묻고 답하고자 시도하였던 흐름도 파악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W. Pannenberg, 『자연신학』, 박일준 역(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0), 98-102 참조.

18) Julian Huxley, Evolution: The Modern Synthesis (London: Allen & Unwin, 1942).

19) Julian Huxley, “The Evolutionary Vision,” Issues in Evolution, vol. 3, Evolution

after Darwin, ed. Sol Tax and Charles Callender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0), 260. “진화론적 상상력은 우리로 하여금 비록 불완전하다고 할지라도

새로운 종교의 윤곽을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Evolutiton from Creation to New

Creation, 20에서재인용.

20) Edward O. Wilson, Sociobiology: The New Synthesi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동 저자,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Vintage;

paperback, 1999) 그리고 Richard Dawkins, The Selfish Gen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76) 참조.

21) 존 폴킹혼,『퀴크, 카오스 그리고 기독교』, 우종학 역(서울: SFC, 2009). 85-86. 그리

고 P. Clayton, “Neuroscience, the Person and God. An Emergentist Account,”

Neuroscience and the Person, ed. Robert John Russell and others (Nortre Dame:

The University of Norte Dame Press, 2002), 197ff.

22) Alister E, McGrath, Science and Religion, 231.

2 3 ) P. Clayton, Mind and Emergence From Quantum to Consciousness ( O x f o r d :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3-6.

Page 38: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러나는 포괄적인 현상29)으로서 자아를 무조건 물질적 구조로서 뉴런의

작용과 유전자의 배열에 따른 결과로서 환원시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다. 이제까지 논의를 잠정적으로 정리할 때 자아의 물질적 차원과 실재

적 차원 그리고 또한 포괄적으로 이러한 현상을 근거짓는 초월적 차원

에 대해 동시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전통적으로 영혼이라고 불려온

자아의 특징적 모습에 대한 설명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30) 이러한 관점

에서 먼저 현대 뇌 과학을 통해서 의식의 현상과 그 중에 자아의식에

대하여 설명되어지는 것들을 정리함으로써 인간의 자아가 신학적으로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점들을 살펴보고자한다.

2. 현대뇌 과학에서본 인간이해의핵심-자유로운의지를

나타내는 자아

현대과학에서 인간의 통전성을 보장하는 정신적 실재, 즉 이제까지

영혼이라고 알려진 것은 무엇이라고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 영혼을

인간에게 인정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다양한 행위의 지향

적인묶음으로서뉴런에서발생하는허구적인것인가?

이제까지의 전통적 인간상의 특징은 인간의 정신과 그리고 물질적

인 본성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정신적

차원은 인간 자신의 물질적 조건들을 반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고 해석

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반면 물질적인 것은 수동적으로 작용할 수 있

을 뿐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인간의 고유성은 정신적인 차원에서 발

에서‘자아’가 성립되는 물질적 구조를 설명하는 것과 역사적 삶의 현

실에서‘자아’라고하는분명한 주체성을 통해서 경험하는실존적경험

은 물질적으로 환원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24)

이렇게 설명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을 지을수 있다면 인간을 물질적

으로 환원하며 설명하는 것에는 그 한계가 있는 것이다.25) 인간이 지니

는 정신적 자아의 경험은 물질적 차원과 별도로 행위자의 포괄적 삶의

연관성에 기인한 고유한 인과법칙이 등장하고 이를통해서 이해되어지

는 것이다.26) 물론 이것은 물질적 차원을 배척하거나 물질적 차원 자체

에 대한 간섭으로서가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자신의 자아를 발

생시키는 물질적 차원의 연관성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는 것일 뿐 아니

라 동시에‘자아’를 통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포괄하는 복합적 차원이

라고 볼 수 있다.27) 이러한 복합적인 질문들을 통해서 볼 때 인간은 물

질적인 것 이상의 실재적 차원을 다룰 수 있는 존재임이 파악되어져야

하는것이다. 특히, 자아의 경험에 있어서 현실의 한계를 드러내며타자

적으로 실재를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자아’를 경험하는 것

은 그 자신의 고유성을 통해서 이제까지 전적으로 말할 수 없는 신비

에 대하여 맞닿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28) 한 인간의 인격적 실재가 드

7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75

2 4 ) J. Haught, 앞의 글, 54-57. 이러한 관점은 철학적으로 David Chalmers, “The

puzzel of conscious experience,” scientific American, 273; 80-86 (December

1995)에서 Frank Jackson의 논의를통해서 파악된다.

25) P. Clayton, Mind and Emergence From Quantum to Consciousness, 128ff. 이와 달

리 Theo C. Meyering, “Mind Matters: Physicalism and the Autonomy of the

Person,” Neuroscience and the Person, ed. Robert John Russell and others (Nortre

Dame: The University of Norte Dame Press, 2002), 166-167. 여기는 물리적 법칙

을 존재론적으로근거지우는 방식과의상호작용의 입장을강조하고있다.

26) 앞의글, 139ff.

27) 정신분석학적 차원에서의 경험으로서는 참조 Catherine Belsey, 『문화와 실재: 라캉

으로문화읽기』, 김전유경역(부산: 경성대학교출판부, 2008), 58.

28) Fraser Watts, “Cognitive Neuroscience and Religious Consciousness,” N e u r o-

science and the Person, ed. Robert John Russell and others (Nortre Dame: The

University of Norte Dame Press, 2002), 339.

29) Ted Peters, 『하나님-세계의 미래』, 이세형 역(서울: 컨콜디아사, 2006), 265-169. 여

기서인간의 영혼이지니는 물질과 세계사이의 통전적성격과 영 자체가 지니는신

적인의미에 대하여파악할 수 있다.

30) 비교. J. Haught, 앞의 글, 62-67. P. Clayton, Mind and Emergence From Quantum

to Consciousness, 143ff. 193-199.

Page 39: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심적 현상을 파악하여 보면 인간의 정신은 인간 자신의 뇌에서 작용하

는 뉴런이 인간 자신의 환경과의 상호연관을 통해서 작용하는 것으로

파악된다.34) 이렇게 본다면 인간의 마음은 근본적으로 정신-물질적 환

경의 상호 순환적인관계 가운데 존재하며 그 안에서만 자유롭고 자율

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즉 인간의 정신적 현상은 우선 뉴런을 통하여

발화하지만 뉴런은 기계와 같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처한환

경과의 상호 연관 속에서 자발적인 방식으로 선택적인 행위를 수행하

게 된다는 것이다.35) 이것은 마음이 물질적이라는 것인 동시에 물질적

인 모든 것은 환원될 수 없는 주관적 의미로서만 알려지는 인간의 일

인칭적인 자아라는 방식에 의하여 선택되어진 의미를 통해서 자신의

행위 가능성을 구성하고 선택적으로 행위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36)

즉, 인간의 정신 현상은 분명하게 뇌의 뉴런의 작용과 구성적 활동에

기인한 것이지만 뉴런의 작용하는 방식 자체가 기계의 자동화된 방식

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아라고 하는 일인칭

의 독특한 존재의 구성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뇌가 이루

는 정신활동 자체는 공통적인 뉴런의 활동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 의미의 고유한 개별성은 결코 뇌의 활동 방식에 의해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37) 그렇다면 이러한 자아는 어떤 의미에서 실재

견된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을 스스로‘자아’라고 느끼고 이성

과 합리성을 가지고 감정과 기분을 통제하며 사회적으로 책임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을 당연시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존재의 동일

성을 추구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자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영혼을 소

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 것이다.31) 그러나 최근의 뇌 연구가 보

여주는 바는 인간의 정신현상을 이루는 뉴런은 네트워크 식으로 작용

하며 인간의 자아를 구성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즉‘자아’라는 주체성

이나‘의식의 합리성’혹은‘자유’등과 같은 심적인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인간이 자아로서 경험하는모든 것은뇌에 의해서

구성된 것으로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Paul Churchland에 의

하면 인간의 모든 생각은 뉴런a와 b, 혹은c, d, 등이 발화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32) 이것은 인간이란 단지 뇌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조직하는 기계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르면 더 이상

인간의 동일성이나 자유로운 인격을 책임지는 주체성으로서 물질과 구

별되어진 영혼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33)

오히려 인간의 마음은 물질과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더욱 일반적

인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Karl Pribram이 그의 holo-

nomic brain theory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좀 더 자세하게 인간의

7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77

31) Martin Hubert, 『의식의재발견』, 원석영역(서울: 프로네시스, 2007), 19-21.

32) Paul Churchland, Matter and Consciousness (Massachusetts, M. I. T. Press, 1999,

9th ), 85ff.

33) Martin Hubert, 『의식의 재발견』, 22-27.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뉴런 이미지화

기술이 발전함으로서뇌의 활동을 파악할 수 있게 되자 인간의 정신적 활동이 뇌의

특정 영역의 뉴런의 활동으로서 환원적으로 설명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른

결과로서 등장한 신경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심적 상태를 신경과학적으로조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신경프로테제’작업은 생각을 통해서 장애인들이 의족이나 의

수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으로서 신경세포와 실리콘 칩을 연결하여 서로 다

른 물질들이‘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작업을 하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미 쥐의

뇌를컴퓨터로 구현하고자하고있으며미래에는인간의 뇌도구현하고자한다.

34) 앞의책, 28.

3 5 ) Michael Arbib, The Metaphorical Brain 2: Neural Networks and Beyond ( N e w

York: John Wily, 1989), chap. 2.

36) Martin Hubert, 『의식의재발견』, 30-31. 그리고 또한 33-38. 뇌의작용이 특정영역

에 구분된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복합적으로 서로 연관을 주고받고 있으며뉴

런의 작용을 통해서 드러난 경험의 방식도 결코 주관적인 정신없이 설명될 수 없다

고 강조한다. 또한뇌가 자기 자신을 조직한다는 것이 뇌 과학의 출발점이지만 사실

상 뇌에서 관찰가능한 동기화 작용에서 신경세포들의 망이 너무 복잡해서 어떤 수

학적 방식으로도 이를 파악할 수 없다고 본다. 그리고 뇌의 신경 시스템 자체가 고

정된것도 아니고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뇌는 자기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형성

하고있는 닫힌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뇌의 시스템은 그 자체로 개방적으로 경

험에열려있는것이다.

Page 40: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따르면 대뇌피질의 합리적 생각을 책임지는 부분들은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대하여 감각적 반응을 통제하는 변연계에서 시상을 거쳐 다시

금 대뇌피질에 영향을 미치는 신경연결을 통해서 감정적인 영향을 받

게 된다고 한다.40) 그리하여 인간의 정신 활동에 있어서 우선 이성보다

감정이 더욱 근원적이고 마음의 토대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후에 합리적인 이성의 작용이 감정적인활동과 함께정신 현상의 축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현상적으로 뇌의 작용과정을 파악해 보면 외부

적으로 주어진 자극에 대하여 먼저 뇌의 감정적 영역이 반응하지만 그

외에 뇌의 인지 영역에서도 활동이 발생하며 외부로부터 주어진 자극

을 감정적인 부분의 반응적 작용보다 더욱 오랫동안 해석하는 것이

다.41)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감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방식

이 이미 문화적 환경을 통해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외적인 것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 자체가 이미 문화의 특성에 따라서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인지적인 작용이 감정적인 것을 표준화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

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뇌는 우선 감성적인 방식이 인간의 정신

활동에 우선하는 것으로서 등장하지만 이 감정적인 것은 이미 그 자체

로 자신의 문화적 환경에 대한인지적 작용을 통해서 표준화된 형식으

로 이루어지는 것이다.42) 그리고 이 가운데 지속적으로 이성적 차원의

해석 작용을 통해서 감정과 함께 상호작용을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보

여지는 것이다.43) 그럼으로 뇌의 정신 활동에 있어서 무의식적이든 의

식적이든 감정적인 반응에 기반한 이성의 합리적 방식이 병행되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뇌의 기본적 활동방식은 감성과 이성이 달리 분리되

어서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이성의 동시적 작용을 통해서 이루

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인간의 자아의 개별성을 나타내는 가

장 중요한 것은 이성적인 차원에서의 의지적 요소일 것이다. 만일이성

적으로 자유로운 의지적 행위로서 판단될 수 있는 개별적 요소가 인간

의 행위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참다운 자신만의 존재를

지닌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뇌가 자유로운 의

지적 행위를 수행하는 인간의 자아를 구성하고 개별적 자아의 실재성

을 이루고 있는지를파악하고자한다.

1) 뇌 활동의 합리성

인간의 뇌는 과연 개별적 행위에 대한 자유와 책임을 보장할 수 있

는 합리성을 이룰수 있는가? 다시 말해서 인간의 행위가 단지 수동적

반응에 그치는 기계적인 행동만이 아니고 그 자신의 고유한 의미를 지

닐 수 있는 행위를 할 수 있는가? 먼저 간략하게 말한다면 인간의 뇌

는 크게 말해서 감성적인 것과 이성적인 작용이 동시적으로 발생되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인간의 정신적 작용에 있어서 감성적인 영역이 이

루어지는 부분들과 이성적 판단이 이루어지는 영역이 차이가38)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의 정신적 작용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사고-감정-행위

의 동시적 프로그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39) Gerhard Roth에

7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79

37) 에드워드 윌슨,『통섭』, 최재천, 장대익 역 (서울: 사이언스북스, 2005), 220-222. 윌슨

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무수한 새로운 가능성들이 수시로 열려 있기에 인간이 선택

해야 할 다양성이 존재하며 이것이 결국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자유의지를

말할수 있는이유로설명한다.

38) Martin Hubert, 『의식의 재발견』, 64-66, 68-69. 감정을 다루는 뇌의 영역들은 편도

체, 기저전뇌, 띠이랑(대상회), 해마, 시상하부, 섬엽, 돌기체 등이 있고 합리적 이성을

다루는 부분은대뇌피질이다. 이에 비하여 합리적 인지작업과 관련된 부분들은 전전

두피질에서발생한다.

3 9 ) 앞의 책, 49. 감정과 인지영역이 함께 작용하는 것을 연구한 것으로 A n t o n i o

Damasio, Descartes’ Error: Emotion, Reason and the Human Brain (New York:

G. P. Putnam, 1994), 252.

40) 앞의책, 67.

41) 앞의책, 77.

42) Rom Harré, ed., The Social Construction of Emotions (Oxford: Basil Blackwell,

1986) 참조.

43) Martin Hubert, 『의식의재발견』, 84-85.

Page 41: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계를 본다면 뇌의 무의식적 과정을 통해서 경험의 우선적이고 상당한

부분이 처리되어지지만 의식은 신경세포의 처리과정을 통일적으로 공

동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47)

그리하여 의식과 무의식은 서로 특별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의지하

고 있다. 즉 의식은 무의식적인 과정을 가능케 하는전제이고무의식은

의식의 사실적인 전제가 되는경험들을 만들어 내는것이다. 이러한 의

식과 무의식의 관계성을 전제로 어떻게 경험되어지는 사실들이 의식적

인 것으로 설명되는가를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은 세 겹의 포괄적인 원

형무대의 예가적용된다. 의식을 나타내는것으로서 첫 번째가장 안쪽

의 원형의 무대는 특정한 내용을 다루는 특정한 신경세포가 작용하고

이 둘레에 두 번째 원형무대가 존재하는데 이곳은 의식과정을 전담하

는 피질신경들의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의식되어진 것과상관된

주변적인내용이 다루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원형무대에서는 의식화될 수도 있는 무

의식적인 자극들이 다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예어서 보이듯이 외

적으로 주어진 감각적인 것들은 먼저 무의식적으로 다루어지고 이를

통해서 일정한 방향성을 통해서 경험되게 하면서도 동시에 다시금 의

식은 무의식적인 감각들을 비로소 하나의 공동적 시나리오 속에서 이

루어가는 활동이 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의식과

의식은 서로가 서로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상관되어져 있고 경쟁하

는 시스템처럼 활동하고있다는 것이다.48)

그렇다면 어떻게 의식이 무의식적으로 처리되고 있는 수많은 신경

세포의 사건들을 통일적으로 만들고 해석의 방향을 제공할 수 있는것

일까? 이것은 직접적으로 주어진 경험들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

양한 경험을 의식하며 해석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일적으로

어지는 것이라고볼 수 있다.

2) 무의식과의식의연관성

위와 같이 뇌가 활동하는 방식에 있어서 이성적인 합리성이 감정적

인 것과 함께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이성적 판단의 가능성이 나타

날 수 있다면 뇌의 의식적 행위와 무의식적인 행위 사이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일단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감각적 자극은

4000분의 1초에서 2000분의 1초 동안 무의적으로 처리되고 그 후에

의식에 도달하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무의식적으로 처리되기도 한다.44)

Christof Koch에 따르면 인간의 뇌에서 발생하는 신경 사건들의95%

는 무의식적인 것에 관여하고 있고 나머지5%만이 의식과 상관된 것

이라고 한다.45)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인간의 뇌에 있어서 무의식적으

로 진행되는 것을관장하는것이뇌의본래적인 기능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5%의 의식적 요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왜

냐하면 무의식이 일상적인 자연스러운 행위와 사고방식을 저장할 뿐

아니라 환경의 변화를 스스로 파악해 나가는 능동적이고 감각적인 뇌

의 작용이라면46) 의식적인 요소는 이제까지와는 전혀다른새로운 상황

과 환경에서 자신을 적응시키는 과정에서 필요한 뇌의 특별한 작용이

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의 모습은 계속되는 상황의 변화에 능동적으

로 새로운 적응을 나타내면서 자연스런 행위와 사고방식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즉 나의 모습은 의식적으로 인식된 것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식과 함께 무의식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

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상관관

8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81

44) 앞의책, 97.

45) Christof Koch, The Quest for Consciousness (Engelwood: Roberts &Company and

Publishers, 2004), 207ff.

46) Martin Hubert, 『의식의재발견』, 226ff.

4 7 ) Bernard Baars, In the Theather of Consciousness: The Workspace of Mind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77), 157ff.

48) Martin Hubert, 『의식의재발견』, 103-110.

Page 4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경쟁하면서 이 가운데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 의식화된다는 것이다. 이

로써 자아-관점의 자아는 어떤 전제되어 있는 방식이라기보다 단지 뇌

의 외적 자극에 대한 다양한 해석적 작용들 가운데 우월한 것의 우연

한 선택적 파악에 기인한 것으로서만 설명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52) 이

러한 관점에서 자아는 뇌의 활동 결과로서 단지 다양한 해석 가운데

드러난 선택을 지속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생기는 허구적 존재라는 것이

다. 그리고 이런차원에서“나는연결되어 있기에 존재한다”는 말이가

능해지는 것이다.53) 그러나 이와 달리Michael Gazzaniga는 뇌의 작용

은 단순히 분화된 여러 가지의 과정 처리방식의 집합이 아니며 강력하

고도 확실한 통합 존재를 추구하고 있다고 본다.54) 좌뇌의 작용 중에

해석자는 다양하게 주어지는 정보들을 하나로 묶어서 혼돈 속에서 자

아를 창조해내며 이러한 좌뇌 해석적 기능은 사람에게만 분명하게 발

견되어진다는 것이다.55) 그리고 이러한 사실의 분명한 예는 뇌의 장애

를 겪고 있는 사람일지라도좌뇌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가 환경과 맺는

방식을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방식으로 적절한 해석을 수행하는 것에서

알려진다.56)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인간의 자아의식이 자신과 환경과의

이해될 수 있는 상호조화를 이루어가는 시스템이라고 말한다.57) 그리고

Owen Flanagan 역시 다양한 행위를 통일적으로 의미지향을 가능케 하

는 자아에 대한 개념들은 단지 뉴런에 관련된 용어로 표현할 수 없다

고 한다. 왜냐하면 자아는 구축되는 것으로서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통

해서서술적 자아 구조가운데 각인된다는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자아

해석하는 자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49) 그리고 또한 신체적으로 주어지

는 다양한 외적인 자극을 처리하여 자신에게 적절한 반응과 해석들을

이루어가도록 자아의식이 다양한 시나리오로 구축된 가상적 실재를 통

해서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을 통일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50) 이렇게 본다면 인간의 뇌의 활동은 언제나 무의식과 의식의 동시

적인 해석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이 가운데 특히 이 무의식적인

것으로부터 의식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핵심에는 자아의식이 중요

한 요건이 됨을확인할수 있게된다.

3) 인간의 자아의식

인간의 뇌의 의식화 작용에서 중요한 자아는 뇌의 인지 작용의 부

산물로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뇌의 인지 작용의 부산물 이

상의 실재적인 것인가? 이러한 자아의식에 대한 논의는 이루 말할 수

없는어려움과함께분명한 연구결과는없다. 그럼에도불구하고자아-

관점을 이루는 의식적 현상을 뇌의 작용과 관련시켜 살펴보면 좌뇌와

우뇌의 해석은 뇌랑을 통해서 통일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우뇌는 주

어진 사실인식과 명상에 관여하고 좌뇌는 모든 사실을 총체적으로 해

석하며 언어 분석적인 작용과 관련된다. 특히 좌뇌에는 사실관계에 상

관없이 감각에 대한 추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51) 그리고 이

들이 어떻게 통일적으로 하나의 자아라는 개념을 만드는가에 대한 논

의는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지고 있다. 우선 Daniel Denett은 다양한 자

극을 통일적으로 만드는 해석자를 자아-관점의 해석적 중추로서 파악

한다. 이것은 외적 자극에 대한 잠재적 파악의 다양한 흐름들이 서로

8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83

49) Michael Gazzaniga, Human. The Science behind what makes your brain unique

(New York: Harper Collings Publisher, 2008), 300.

50) 앞의글, 114-115, 148-152.

51) 앞의글, 155-156.

52) 앞의 글, 157. 그리고 Daniel C. Denett, Consciousness Explained (New York: A

Back bay book, 1991), 66ff. 참조.

53) 에드워드윌슨, 『통섭』, 최재천, 장대익역, 206.

54) Michael Gazzaniga, 『왜인간인가?』, 박인균 역(서울: 추수밭, 2009), 383.

55) 앞의 글, 392. 400-415. 동물들에게 자아의식을 발견할 수 없다는 다양한 연구들의

결과를보여준다.

56) 앞의글, 383-390.

57) 앞의글, 300-308.

Page 4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한 경우는 거의 무의식적이거나 혹은 신경세포(뉴런)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62) 그리하여 자율성은 뇌가 만든 환상으로서

여겨지게도 된다.63) 그러나 결정하는 사안이 단순한 상황에 대한 반응

이 아니라 사회적 관점에서 자신과 연관되어 이루어지는 의도와 목적

이 있는 경우 뇌는 복합적인 과정을 통해서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

러한 과정은 인간의 의식적 작용이 사회적 관점과 관련되어서 형성된

특정한 자아상이 도덕적인 문제로 결정을 이루고자 할 때 나타난다. 도

덕적인 판단은 감성적인 성향과 합리적인 구성들의 복잡한 종합으로

이루어진다. 이제까지뇌의 신경회로 움직임에따라이미고정화되어졌

던 감정적이고 무의식적인 선택의 모든 신경세포의 움직임 자체를 대

상적으로 반성하면서 새로운 상황에 따른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형태의

결정을 이루는 복합적인 현상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64)

여기서 우선 주목해야 하는 것은 뇌 안에양심적이고 도덕적인 결정들

이 신적인 명령이나 객관적 이성의 소리라고 말 되어질 수 있는 특정

한 실체나 영역이 따로 발견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도덕적 행위는

사람이 자신이 처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행동 방식에 대하여 사회적

방식을 통해서 반성하여 자신의 감정에 친숙해졌던 이제까지의 뇌의

신경회로에 나타난 고정적인 움직임을 변경시킴으로써 사회적 행위의

변화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뇌의 자기자신에 대한 지속적인반성이 이

전까지의 뇌의 움직임 방식들을 사회적으로 적합한 방식으로 개방화

는 실체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적인 자아는 있다고 강조한다.58) 이 가운데 중요한 사실은 자아-관점을

가진 뇌의 영역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조사하는 과정에 있어서 밝혀진

것으로서 자아-관점은 인간이 신체적인 감각적 작용과 분리된다고 할

지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59) 이와 연관되어 인간 자아의식이

단지 선택적인 의식화의 부산물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질 수 있는 것이

있다. 즉 인간의 자아가 분열적 증세를 보이는 심리적인 병을 앓는 경

우에 이것은 자아의 동일성이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의식과 무의식의

모든 과정을 통일적으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60)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자아-관점이 단지 뇌의 선택적 인지 작용의 부산물서

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인간 속에는 근본적인 자아-관

점이존재하고 있는것이다.61) 물론이 자아-관점은 불변적으로 고정적

인 것은 아니지만 계속적인 진행과정 가운데 자기 동일성의 긴장과 모

순들, 변화를 통합하는것을통해서 알려지는것이다.

4) 자아의식의 자유-영혼에 대한새로운 이해

그렇다면 의식적으로 수행하는 자아의 결정은 다른 것에 원인이 있

지 않고 자신에게만 발견될 수 있는 자유로운 행위인 것인가? 여러 가

지 실험적 결과에 따르면 나의 이해관계와 특별히 상관없는 일들에 대

8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85

58) Owen Flanagan, The really hard problem: meaning in a material world

(Massachusetts: A Bradford books, 2009), ix-i i x, 36f. 그리고또한 Owen Flanagan,

Consciousness Reconsidered (Cambridge, MA: MIT Press, 1992) 참조.

59) Martin Hubert, 『의식의 재발견』, 172-180. 또한 Ian G. Barbour, “Neuroscience,

artificial intelligence, and Human nature: Theological and Philosophical Reflec-

tions,” Neuroscience and the Person, ed. Robert John Russell and others (Nortre

Dame: The University of Norte Dame Press, 2002), 261.

60) 앞의글, 138-140, 183.

61) 앞의글, 182, 194-199. ‘자아-관점’에 이르는 단계들에있어서 특히 195-197참조.

62) 앞의 글, 240-245. 그리고 이와 연관하여W. Singer, “Auf dem Weg nach innen. 50

Jahre Hinforschung in der Max-Planck-gesellschaft,” Der Beobachter im Gehirn.

Essays zur Hinforschung, ed. W. Singer (Frankfurt/Main, 2002), 9ff.

63) Wolfgang Prinz, Freiheit oder Wissenschaft? Zum Problem der Willensfreiheit,”

Der entthronte Mensch? Anfragen der Neurowissenschaften an das Menschenbild,

ed. J. C. Schmidt, L. Schuster (Paderborn: 2003), 261ff.

64) Martin Hubert, 『의식의 재발견』, 260-262. Joshua Greene의 실험에 따르면 도덕적

판단을 수행하는 동안 합리적이고 인지적인 과제를 관장하는 뇌 영역, 배외측 전전

두피질에서활발한 활동이파악되었다고한다.

Page 44: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경과 상황 속에 드러난 실재의 궁극성을 추구하였던 모든 시도들과 함

께 관련되어자아의 정체성을이루는 지평인 것이다.

이제까지 뇌 과학을 통해서 인간의 특징적 존재 현상으로서 자아를

이해함에 있어서 우리는 인간의 자아가 뇌의 인지적 작용으로서 드러

난 특징들과 함께 단지뇌의 구성물로서 설명되는 것 이상을 요구함을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 인간이 자신의 자아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넘어역사와 자연 전체를 통해 인격을 형상화하는 궁

극적인 자유의 지평으로등장하게되는것이영혼이라고볼 수 있다.68)

3. 인간의영혼에대한신학적이해

인간의 자아를 다양한 차원의 통합을 이루고 있는 생물학적인 유기

체로서 책임적 자아로 이해하는 것이최근 많은 신학자들의 공통된 관

점이다.69) 그리하여 이들은 인간을 단지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하는 유

물론적 해석에 대해 반대한다. 또한 인간의 본질을 단지물질적인 것을

초월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영혼에서 찾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참다

시키며 새로운 결정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65) 이러한 결정에 따른 행위

는 이전까지의 방식으로부터 자유롭게 이루어지며 개인이 신체적으로

자신의 사회적 상황 가운데 자신을 발견하며 이를 개별적으로 형상화

하는 인격적 작업을 통해서 구체화 된다. 이러한 새로운 반성이 이루는

결정들은 실체적인 것이 아니지만 허구적인 것도 아니다. 이러한 판단

의 자유로운 행위는 뇌에서 발생하는 고유한 자아가 알려지는 현상이

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자아의 발생은 뇌에서 신경세포들의연속적

과정으로 나타나지만 단지 뇌 안에 구성된 물질로서만 설명될 수 없는

신체적이고 사회적이며 역사적 과정에서 드러나는 포괄적인 현실과 관

련되어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인간의 자아는 사회적 존재로서 뇌의

인지작용과 의지작용에 있어서 자유로운 선택의 고유성을 형성해가며

자신의 행위를 이루는 것이다.66)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자아 동일성 가

운데 자신의 개별성을 형성하며 이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

를 이루어가는 것이 바로 개인의 인격적 삶 가운데 드러난 자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67)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의 자아현상은 인간이 자

신의 사회적 환경 가운데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을 이루어가는 의식작

용이고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넘어 세상과 관련되어진 인간의 모습이

기도 하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아가 사회적 삶의 과정에서 드러난지평

으로서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과 관계하여 전통적으로 말 되어진 영

혼에대하여 새로운 이해를 이룰수 있다. 즉 이제까지 뇌의 작용과 함

께 파악된 인간의 자아를 기반으로 볼 때 인간의 본질이라고 여겨졌던

영혼은 다름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파악함에 있어서 자신의 환

8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87

65) 앞의글, 268-270.

66) Leslie A. Brothers, “A Neuroscientific Perspective on Humans Sociality,”

Neuroscience and the Person, ed. Robert John Russell and others (Nortre Dame:

The University of Norte Dame Press, 2002), 63-65.

6 7 ) Martin Hubert, 『의식의 재발견』, 290-291. 그리고 J. Polkinghorne, Science and

Theology, 60-63.

68) Paul MacLean, The Triune Brain in Evolution (New York: Plenum, 1990) 참조. 여

기서 MacLean은 인간의 뇌의 구조를 삼분적으로 이해한다. 먼저 upper brain stem

이 있다. 이것은 인간의 뇌가 진화의 파충류시대까지 연관된 것으로서 창조와 유지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부분이고 Limbic System으로 나누어지는 곳은 감성

과 사회적 관계를 다루는 부분으로서 양육하고 관계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고 본

다. 마지막으로 neocortex는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부분으로서 해석과 조직, 상징적

표현 그리고 이성적 합리성을 나타내는 것이 목적으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낸

다고 한다. 그리고 James Ashbrook and Carol Rausch Albright, The Humanizing

Brain: Where Religion and Neuroscience Meet (Cleveland: Pilgrim Press, 1997)

참조. 이들은 인간의 뇌 자체가 우주의 역사적 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보고 있

다.

69) Nancy Murphy, “Supervenience and the Downward Efficacy of the Mental A

Nonreductive Physicalist Account of Human Action,” Neuroscience and the

Person,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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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에서 특징적으로 하나님에 대한인간의 관계성을 표현하고 있

다.70) 몰트만의 주장에 따르면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는 인간이 소유한

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계속되는 관계성을 표현하

는 것으로서 민주적인 사회의 관계를 이루는 근거가 된다고 보며 하나

님을 대신할 수 있도록 지음 받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

시함으로써 자신을 하나님 대신 신적인 존재로서 우상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모양과 동의

어로 사용될 수 있음으로서 이 세상과의 관계에서 나타나야할 하나님

의 왕권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제시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71) 이제 이러한 사고는 신약에서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

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그리스도와 근원적으로 동일시하

는 것이다.72) 그리하여 이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

상으로서 올바로 드러나는 됨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하나님

의 형상이라는 것은 인간의 존재를 근원적으로 규정하는 것이지만 그

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되어진 것

으로서 밝혀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근원적 의미로서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이루신 예수그리스도의 종말론적 구원으로

밝혀지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을 규정하는 것으로 이

해될 때 인간은 그 자신 안에서 인간 자체가 지니는 어떤 존재론적가

능성을 추론하는 것도 아니고 변하지 않는 실체적인 근거를 발견하는

운 모습을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육과 영의 피조적 실재로서 밝히고자

한다. 즉 인간의 실재를 육체적 실존을 통해서 현실적으로 경험되어지

는 면과 함께 이 동일한 현실에서 타자적 존재인 신적 현실로부터 드

러나는 새로운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종말론적 경험을 포함하여 인간

의 특성을 설명하고자 하는것이다. 그리하여 성서적 인간이해의 과제

는 우선 인간의 본질로서 알려진 영혼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파악하는

것이다. 영혼으로서 알려진 인간의 본질적 표현을 하나님과 인간, 자연

과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인간의 자아의 지평으로서 다루는 것이

다. 이는 물질적 사실들을 기반으로 모든 것을파악하고자 하는 과학적

환원주의를 넘어서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에 의해서 주어진 현실 안에

서 자아를 이루는 영혼의 실재를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다. 이를 위해서 먼저 성서적 관점을 통해 드러난 인간 이해의 특성화

와 함께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른인간 이해의 지평을 파악

하고 이를 앞서 논의된 뇌 과학의 진술들과 연관시켜서 현대적인 인간

이해가능성으로제시하고자 한다.

1) 영혼의 의미로서하나님 형상

전통적으로 영혼과 육체로 그려진 인간의 존재는 그리스 철학이 말

하는 것처럼 영혼과 육체라는 기원이 다른 두 가지 구성물이 모인 존

재가 아니다. 성서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적 행위를 통해서 살아있는 영

적인 실재로서의통합적 인간이해를나타내고 있었다. 하나님께서세상

과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묘사하고 있는 창세기1:26-2:35을 살펴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µlxb µyhla) 그의 모양을(twmd) 따라서 지

어졌다. 그리하여 성서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하나님의

호흡으로서의 영과 땅으로부터 취해진 흙과 함께 창조되어진 살아 있

는 영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근원적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되었다. 이렇

게 인간 이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으로 창조되었다는 의미는

8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89

70) Anthony C. Thiselton, The Hermeneutics of Doctrine (Grand Rapid: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2007), 224.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동의로서 해석될 수 있

음을제시하고 있다.

71) J. Moltmann, Man: Christian Anthropology in the Conflicts of the Present, trans.

John Sturdy (London: S.P.C.K., 1974), 109.

72) Karl Barth, Kirchliche Dogmatik, I I I/2 (Zürich: Theologischer Verlag, 1993), 261.

참조. 이러한 사고는 바르트가 주장한 것이 아니라 신약에서 바울의 서신에 발견된

다. 이에 대하여 스탠리 그랜츠,『조직신학』, 신옥수 역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3), 270f.

Page 46: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2) 인간의 영혼과하나님의삼위일체적 존재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창조와 구원 안에서 실재하는

것이기에 각 사람의 영혼은 시간적으로 인간의 육적실존과 함께가능

하지만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의 행위와 존재 가운데 있게 된다.75) 이것

은 인간의 존재의 의미가 다른 피조물과 다른 근본적 차이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창조의 완성을 이루어가는 존

재로서 위임받은 존재로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인간의 영혼은 계약의

대상으로서 창조된 육적인 실재로부터 분리되지 않으며 동시에 육체적

차원을 넘어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생명의 역

사 가운데 진정한 표상을 발견되는것이다.

여기서 강조할 수 있는 것은 인간 영혼이 세상의 존재와 관여되어

있을 뿐 아니라 더욱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관련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에 계약을 이루실 때 드러나는 계약의 의

미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계시 가운데 완성되고 이루어질 때 하나

님의존재는 인간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용납하며 하나님 자신의 삶으

로서인간의 새로운 삶을이루신다. 그리하여 인간의 영혼은 육신적 실

존의 한계 밖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통해 하나님 자신의 실존으

로부터 주어진 관계성 가운데 새롭게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성 가

운데 자신을 파악하는 것이 영혼이 새롭게 된 자신의 실재를 경험하는

것이고 궁극적 미래를 발견한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의

영혼이 존재하는 참다운 근거가 된다. 즉 시간 안에서 태어나고 창조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철저하게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창

조주이시며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으로서 아버지되신 하나님과의 관계

를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을 약속 가운데 파악하는 것이다. 하나

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 이래로 이제까지 우리에게 지속적

으로 경험되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안에서 밝혀진 인간 존재의

의미인 것이다.73)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하나님의 형상은 자연의 역

사를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로 보며 세상 자체가 구원

이 실현되는 구체적인 자리로서 파악함으로써 세상의 과정 안에 실존

하는 인간의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

의 자아의 진리를 표현하는 영혼의 본래적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렇게 볼 때 인간의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영혼은 오늘날 인간의

존재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존재로서 인간 자체에 대한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차원에서 포괄적인 이해를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영혼은 이 세상을 벗어난 어떤 특정한 영역을 지시하

는 것이 아니라 창조와 구원의 종말론적인 미래로부터 이 세상의 전

역사적 과정을 담지하는 삶의 포괄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

을 위한 삶이란 자신의 육적 실존을 그리스도의 구원의 미래를 향해서

구체화하고 동일화하는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에게 약속된 진실

된 모습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영혼의 진실은 하나님께서 그

리스도 안에서 드러내는 새로운 구원의 실재를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

는 이성적 지혜로 구체적인 삶의 과정을 통해서 형상화함으로써 밝혀

지고드러나게되는것이다.74)

9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91

73) 이것은 선천적으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이해와

달리 그 말이 의미하고자 하는 본래적 차원에서 아타나시우시가 주장하는‘형상 안

에서의 존재의 은총’이라는 하나님의 능동적 행위의강조와 더불어Barth가 강조하

였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T. F. Torrance, 『칼 바르트』, 최영 역(서울: 한들출판사,

1997), 226-227.

74) Anthony C. Thiselton, The Hermeneutics of Doctrine, 226-231. 그리고 영혼과 육

체적실존의일치가운데 드러나는부활의 생명가운데있는삶에대한성서적 사고

의 특성에 대하여 Ted Peters, “Resurrection of the very embodied Soul?,” Neuro-

science and the Person, 315-317.

75)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존재의 형상으로서 인간의 마음을 나타낸 것으로 대표적인 것

으로 어거스틴이 있다. 이에 대하여Augustinus, 『삼위일체론』, 김종흡 역(서울: 크리

스챤 다이제스트, 1994), 9권, 10권 참조. 최근에는J. Polkinghorn도 삼위일체적 자

아이해를 과학과 신학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에 대하여 J.

Polkinghorn, Science and Theology, 81ff, 11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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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리고 왜곡되고 분리된 것을 심판하심으로써 새롭게 하시는 성령

의 사랑의 신비가운데 동참하는 것이다. 이것은 삼위일체적역사 가운

데 계시되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79) 삼위일체적 사랑을

자신의 형상으로서 이루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참된 의미는 자신

안에서 폐쇄적인 것이아니고 전적으로 모든 세상과 함께 하는 공동체

적 삶을이루어가는것이다.

3)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영혼과 뇌의현상으로서의영혼의 상관성

현대의 뇌 과학을 통해서 볼 때 인간의 영혼은 뇌의 감각적 현상에

대한 무의식적 반응으로부터 합리적 구조를 내포하는 행위의 가능성을

통해 자기 정체성의 자유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아의 고유

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유성은 이제까지 문화를 통해서 전승

되어온 역사적 삶의구체적 배경에서부터이루어지는 개별적인 상상력

의 자아성취를 의미한다. 여기서 인간의 영혼의 의미는 인간의 역사적

삶의 산물처럼 여겨지기도 하며 혹은 정신적 활동의 총체적 묶음으로

서의 추상적 자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실재는 현실적으로 한 개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가능케 하는 인간 자아

의 지평이며 자유의 보장된 영역이다. 그럼으로 영혼의 실재를 통해서

인간의 진정한 자아가 총체적으로 이해되고 파악될 수 있는것이다. 이

와 같은 영혼의 실재를 더욱 근본적인 차원에서 밝히는 것이 신학적인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이해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영혼이 무엇

인가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의미를 제공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자아를 실현하는 지평에 대하여 초월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

하여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자아를 이루는 과정에서 세상과 맺는미

는 영혼은 하나님의 약속의 계시 안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더불어 부활

의 생명 가운데 실존하게 된 것이다.76) 인간 영혼의 육체적 한계를 넘

어 드러나는 포괄적이고 새로운 실재는 인간의 영혼 자체로부터 가능

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존재와의 관계에서 가능해진 것이

다.77)

이제 하나님의 존재 안에 발견되는 영혼은 하나님의 존재의 역동성

으로부터 그 형상이 파악된다. 하나님의 존재의 역동성은 하나님 자체

안에서 드러나는 내재적 관계성을 통해서 설명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 하나님의 존재는 아버지와 아들 성령의 영원하신 구분 가운데 한

분이신 삼위일체로서 그 스스로 영원하신 사랑이신 하나님이시고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삶을 통해서 계시된다.78)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삶 안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세상의 구원을 이루시는 행위적 사

랑으로서 계시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위해 파송

되어진 아버지의 아들로서 그리고 아들을 보내시며 세상을 위한 계약

을 이루시는 아버지로서 그리고 온 세상에 이 계약의 성취를 이루시고

분여하시는성령으로서한 분이신 사랑의 하나님으로나타나신다. 이제

인간의 영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삶에 참여하고 그 가운

데 자신의 참다운 형상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과 다른피조물을

창조하고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전능하고 격정적인 사랑의 신비와 동시

에 하나님과 세상 그리고 이웃과 자신으로부터 분리되고 소외된 인간

의 가장 깊은 죄와 저주 가운데 인간과 함께 하시는 아들의 사랑의 신

9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93

76) Ted Peters, “Resurrection of the very embodied Soul?,” Neuroscience and the

Person, 313-315.

77) 인간의 영혼에 대한 선재설이나 유전설이 아니라 전적으로 창조설에 따라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영혼의 불멸이라는 헬라사상의 틀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서적 관점

에 따라서 등장하는 것으로 육신과 영혼의 연관성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의 실재성

을 말할수 있게되는것이다.

78) Collin E. Gunton, The Promise of Trinitarian Theology (Edinburgh: T & T Clark,

1997), 110.

79) Ted Peters, “Resurrection of the very embodied Soul?,” Neuroscience and the

Person, 322-326. 바르트의 시간을 가능케 하는영원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그리스

도의부활의 시간이우리에게미래적으로이루어지는것이가능해짐을강조한다.

Page 48: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며 육체의 새로운 존재 가능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가운데 열어

놓게되는것이다.

그렇다면 영혼이 나타내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현실적인 삶의 문

제 가운데 어떻게 나타낼 수 있는가? 무엇보다도 인간의 삶의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밝힘으로써 역동적이고 미래적인 인간성을 분명

하게 제시할 수 있다. 근자에 있어서 인간은 그 자신의 역사적 삶의한

계와 모호성, 사회적 관계의 복잡성과 임의성으로부터 그 삶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고 자아의 진정한 가치를 주장할 수 없는 문제

를 지니고 있다.80) 또한 과학적 발전과 더불어 드러나는 새로운 문제들

로서 인간 유전자 조작, 배아 세포 연구의 윤리성 그리고 인공지능과

연관되어 사이보그와 인간의 컴퓨터화에 대한 정체성 등에 대한 논의

가 있다. 이렇게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새로운 발전과 더불어 증가되어

지는 애매한 문제들에 대하여 인간의 영혼에 대한 긍정으로서 하나님

의 형상을 주장할 때 인간을 위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대안이 제시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위에서 언급되는 모든 논의가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사회의 이데올로기화한 제도적이고

과학적 성취의 가능성으로서만 논의되는 것인지를 비판적으로 관찰하

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어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파악할 때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단지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폐쇄적으로 만들지 않고하

나님의 사랑 안에서 세상과 이웃을 위한 존재로서 자신의 행위와 목적

에 한계를 발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사회와 과학의 발전적 전망

가운데 그 한계를 명확하게 파악하며 동시적으로 이 세상 그 무엇으로

도 절대 포기될 수 없고 양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의 대상으로서

래적인 개방성을 나타내고 있는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이정

리되어 설명될 수 있다.

① 인간의 영혼은 역사적 상황 가운데 있는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

는 자유의 영역이다. 즉 영혼은 본래적으로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진 인간의 숨겨진 실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사고는 성서가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것으로 제시

하는 것에서 분명하게 밝혀진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면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 안에 약

속되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현실이 인간 영혼의 근원적 내용임을 뜻하

는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의 영혼은 창조로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적 과정

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진 구원의 실현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

아의의미를 밝히는 것이 되는것이다.

② 인간의 영혼은 자아의 성취를 이루기 위한 모든 행위와 연관되

어져 있다. 그런데 인간을 단지 자신의 육적인 실재로서만 이해한다면

그에게 있어서 육적실존의 죽음은 영혼의 폐지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

가 이루어 놓은 일들은 역사적 진행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추구하

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성서적으로

볼 때 인간의 육신과 분리되어진 영혼을 따로 말하는 경우가 없는 것

을 볼 때 중요한 것이다. 즉 성서는 육신과 분리되어진 영혼의 실재를

따로 강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과 하나 된 육신의 삶

가운데 육신은 이제 영혼의 실재로 채워진다. 즉 육신은 단지 영혼의

대립되는 자리가 아니라 영혼의 삶을 구체화하는 곳으로서 파악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육신의 행위는 단지 육체의 물질적 한계에 국한되어

지지 않고 그것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창조의 삶 가운데 영혼의

미래적 지평과 관련되어진다. 이것은 육체가 영혼의 미래적 실존의 가

능성을 성서의 약속 가운데서 파악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인간의

영혼의 실재성은 이제 성서적 약속의 지평에서부터 미래적으로 확장되

9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95

80) 이것은 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자아이해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문화적

으로도 대중문화를 규정하는 특징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Janet Martin

Soskice, “The Ends of Man and the Future of God,” The Blackwell Companion to

Postmodern Theology, ed. G. Ward(Oxford: Blackwell Publishers Ltd, 2001), 74ff.

Page 49: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과 더불어서 인간의 참다운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전통

적 표현으로서 인간 자아의 근거였던 영혼은 육체적 실존과의 근원적

통일성 가운데 자신의 분명한 활동의 영역과 가능성을 얻는 것으로 새

롭게 해석되어지고 육체는 영혼을 통해서 자유와 새로운 삶의 가능성

을 획득하게된다. 육적실존과 하나인 영혼은 인간에게 약속되어진하

나님의 새로운 구원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 자신과 근본적인 연관성을

얻게 되고 그 가운데 새로운 삶의 의미와 가능성을 육체적 삶 가운데

이루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긴밀한 상호 연관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

상에서 구체화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형상에서 약속되고드러난

구원은 인간과 하나님의 존재와의 연관성을 새롭게 밝히고 인간을 하

나님과 함께하는 임마누엘의 새로운 지평 가운데 세우는 것이다. 그리

하여 인간의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미래를 향한존

재로서 세워지며 자신의 진정한 자아의 정체성을 역사적 현실 가운데

추구하여가는 것이다.

피조물의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인간의 궁극적 가치를 표현하고 보장하

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의 영혼을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이

해하고자 하는 기독교적 인간이해는 모든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미래

를 밝히는 공동의 새로운 행위와 전망과 믿음을 가능하도록 하며 모든

것이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고 진실하게 드러날 약속의 미래를 보다 분

명하게 이성적으로 제시하도록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

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인간 영혼은 인간의 삶을 이루어가

는 진정한 자아의 정체성이될 수 있다.

I I I. 결론

우리는 이제까지 현대의 뇌 과학에서 언급하였던 인간 자아의 이해

가능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 가운데 분명하게 떠 오른사실은 인간

의 자아에 대한 뇌 과학적 이해가 신앙적 인간이해와 서로 긍정적으로

관계를 맺을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가매 번 자신의 행위를 결정

하고 수행함에 있어서 드러나는 자아가 문화적 차원이 설명되어질 때

인간의 자아는 자신을 넘어 인간이 이제껏 겪어온 근원적 역사와 더불

어 우주적 표상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현실이해를 전제로 개별화된

존재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자아가 이해됨에 있

어서 물질적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복잡성의 증가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인과율의 형성과 함께 인간의 자아가 드러난다는 것

이다. 이러한 면은 성서가 인간을 육과 영의 통일체로서 하나님의형상

으로서 보며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종말에 이르는 연관성을 이루는 것

을 통해서 참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게 됨을 말하려는것과 상응되게

설명되고있는것이다.81)

이러한 관계적 특성 가운데 뇌 과학을 통해서 살펴 본 인간 자아의

의미는 성서가 약속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구원의 지평

9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97

81) 자연의 변화를 숙고하는 과학과 신학 사이의 연관성은 결코 임의적인 것은 아니다.

과학적 이해와 신학적 이해는 종말론적 새로움이 등장하는 변화의 사건 자체를 묘

사하는 것으로서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각자의 연구들이 서로에게 호응될 수

있으며 양자의 해석은 종말론적 전망가운데지지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신학의

과제는종말론적전망가운데 과학의 설명을 통해서좀 더 분명한신앙의 내용을서

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즉 과학적 사고는 성서적 약속의 대상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것으로 보여지고 성서적 사고는 과학적 연구가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자연

을 약속가운데 초월적인 차원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자연을 연구하고

밝히는과학적 사고의논리적 가능성에 창조성을주게되는것이다.

Page 50: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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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

자아, 뉴런, 영혼, 하나님의형상, 삼위일체적존재

person, neuron, soul, the image of God, trinitarian understanding of

the person

접 수 일 2010년 9월 25일

심사(수정일) 2010년 10월 27일

게재 확정일 2010년 12월 10일

9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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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101

Page 5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The problem of the understanding of theperson in the modern science and thetrinitarian understanding of the person

with the neuroscientific perspective on human being

Don-Hyung, Hwang

Professor

Seoul Central Theological Seminary

Seoul, Korea

It is a task of this thesis to show the importance of the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human being as a multilevel psychosomatic

unity in connection with the neuroscience. Especially, it’s purpose

indicates a possibility that the biblical understanding of image of God

supports the holistic understanding of human as a “I” centered

responsible historical person from the eschatological point of view.

First of all, it is not easy to find a appropriate relationship between

theology and science in recent times. It is due to the theory of evolu-

tion of Charles Darwin. After his theory, science and theology are

conflicting with each other for the explanation of origin of human

being. In these conflicts, It must be also noticed that Thomas Huxley

and Herbert Spencer intensified and modified evolution theory as a

world viewpoint that insists the godless-process of life of the world.

In the present situation, as we know, it is popular to accept evolution

as the starting point for account of human nature. As a consequ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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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son, Edward O.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Vintage: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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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103

Page 5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the God’s being, but also the personal identity in the historical life in

correspondence with the eschatological salvation. Jesus Christ as the

image of God is the promise for human personal identity. Every

human being is regarded as the image of God in Jesus Christ and is

opened toward the God’s eschatological salvation.

In a word, the image of God as the reality of soul discloses the

human life in the trinitarian God’s love that creates the world and

saves the world and redeems the world. And it makes possible that

every human being takes the trinitarian God’s personal identity in this

world with the eschatological hope. In this viewpoint, it is a very

important to see that the personal identity which is based on the

image of God can achieve one’s own life according to the eschato-

logical reality.

it becomes very difficult to justify the personal “I” as the psychic

reality of human being. Scientific reductionism replaces the personal

identity with the genetic causes or socio-political matters. It brings

the problem of human identity against traditional understanding of

human being.

But it can be asserted that results of neuroscience studies suggest

that the personal “I” simply can not be reduced to the physical causes.

Each human being, as a psychosomatic reality, is a “I” centered

subject that can achieve what is regard as the responsible act for

social life and then it is not to be governed by the neurobiological law

only. On the contrary, the “I” centered subject as a psychosomatic

reality is emergent from the cognitive and active response of brain to

the circumstance. In brain, the personal identity is produced in every

moment from the recognition of responsible act in according to the

social cultural system. But, in this recognition of responsibility, the

personal identity chooses a appropriate action in a certain situation

according to the various personal viewpoints. In this way it is cer-

tainly true that the personal identity can be actualized as a phenome-

non of mind, and the personal identity is not be explained only within

the physical laws. On the contrary, the psychic reality of mind play a

very important role to construct the personal identity.

At this point, theologically speaking, the base of personal identity

can be called as soul. The meaning of soul is characterized as image

of God. And the meaning of image of God in the bible is not

described as the separated certain part of human being. It is connected

with the God’s will for the completion of the world. According to the

New Testament, the image of God is decisively identified with Jesus

Christ. The image of God that is appeared in the person of Jesus

Christ represent not only the personal being in correspondence with

10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황돈형, 현대과학에서의자아문제와삼위일체적자아이해 105

Page 54: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최태관

(감리교신학대학교강사)

I. 서론

오늘날 변선환의 종교 해방신학은 대중적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

나 추모15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종교 해방신학의 근간이었던 신중심

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분명한 의미가 있

다. 왜냐하면 변선환의그리스도론은종교다원주의시대에 기독교와타

종교간의 실천적 연대를 위한 분명한 토대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제를 위해 기독교 복음이 여전히 의미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변선환은‘종교간의 대화’와‘종교 해방신학’이라는 두 가지

주제하에자신의 신중심적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을전개했다.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은 서구 문화 속에 나타난 신중심적 그리스도론

(Paul Knitter)과 실존기독론(Rudolf Bultmann and Fritz Buri)의 영향

을 받았다

먼저 변선환은 서구신학에 대해“동양종교에 대한 서구적 편견”,1)

“교회 중심주의”,2)“그리스도교의 배타적 절대성”3)의 문제를 비판했다.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107-148

Page 55: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그리스도론에대한평가와 전망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I I.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에대한니터의

영향

변선환은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을 통해서 한국 토착 종교

에 대한 서구적 편견으로부터의 벗어나고자 했다. 첫째, 기독교 진리의

비규범적 입장에서 볼 때 토착 종교에 대한 서구적 편견이란 바로 동

양 종교를 불신앙으로 이해하면서 기독교 진리를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변선환은 서구적 편견으로부터 교회의 해방에 대한 입장에서

트뢸취의 논제와 만난다. 트뢸취에 따르면 유럽 종교사 속에서 특히진

화론적인 변증의 입장에서 기독교의 절대성의 의미는 인간의 의식 속

에 나타난“신의 완전한 자기 현실화”5)로 이해되었다. 이 표현은 교회

적이면서 교의학적이고, 초자연주의적면서 사변적인 표현인데, 여기에

서 기독교는 종교의 보편 개념을 의미하거나 궁극적이면서 완성된 종

교를 의미하는 반면에, 타종교는 역사 속에 나타난 상대적 종교로 본

다. 결국 절대 종교로서 기독교는 상대적인 종교들에 직면해서 규범성

으로서 절대적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트뢸취는“규범성의 가치를 배타

적이면서 초자연적인 그리고 계시되어진 특성이나 종교의 개념의 절대

적인완성”6)으로서 이해하지않는다. 오히려 트뢸취는 기독교를 역사화

하면서 상대화하고, 다른 종교와 같은 역사 종교로서 이해한다. 그러므

로 트뢸취의 논제에 따르면“절대적종교로서기독교를 구성하는 일은

역사적 사유 방식으로부터 혹은 역사적 방법들을 통해서는 불가능하

다.”7)

무엇보다 그는“한국교회가 서구 신학의 최후의 난점인 그리스도론의

배타적 절대성에서 탈출시키는 지혜를 타종교 신학에서 배워 나가야

할 것이다”4)라고 주장했다. 변선환이 주장하는 그리스도교의 배타적

절대성으로부터 해방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그리스도를 더 이상 서구

적인 신인 양성론의 틀에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아시아의 종교다원주

의적인 상황 속에서 이해해야 하는 아시아 신학의 과제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교의학적인 틀에서 끊임없이 해석하는 한, 기독

교와 타종교와의 대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변선환은 신중심

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을 아시아 신학자들의 연대에서 나타난 실천

적인 결과로 본다. 그에 따르면, 종교 해방신학의 실천적인 과제와 관

련해서 아시아 신학자들이 철저하게 힌두교, 불교, 유교에나타난 그리

스도의 상징에 주목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른 해석학적인 과제를 수행

하면서 신중심적이며 관계적 기독론을 형성해왔다. 그러므로 변선환은

기독교의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상징을 그리스도의 규범적 상징으로 이

해할수 없다고본다.

본 논문은 변선환의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의그리스도론이 여전히 한국적 신학의 형성 과제에 의미가 있

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첫째, 변선환의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

에 기반이 되었던 트뢸취에게 시작된 니터의 근본 논제에 대해 서술하

려 한다. 둘째,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에서 드러난 변선환의 신

학적 실천과제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다룬다. 셋째, 아시아 신학자들과

의 구체적인 연대 속에서 드러난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의 구

체화 과정을 서술한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변선환의 신중심적비규범적

10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09

1) 변선환,“타종교와 신학,”『종교간 대화와 아시아 신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6),

185.

2) 앞의책, 188.

3) 앞의책, 193.

4) 앞의책, 193.

5) Ernst Troeltsch, Die Absolutheit des Christentums und die Religionsgeschichte

(1902/1912), KGA. Bd. 5(Walter Gruyter: Berlin 1998), 128.

6) 앞의책, 130.

Page 56: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프리오리의 경험을“보편적 계시의 구체적인, 다양한, 독립적인 현현”12)

으로 인식하며, 트뢸취의 종교적 아프리오리의 근본 인식을 토대로 기

독교의 진리의 배타성을 거부했다. 그러므로 트뢸취에게 있어서 역사적

예수의 진리는타종교에 대해서 역시비규범적이다.

변선환 역시 그리스도선교가“프로파간다형에서 벗어나기 위해가

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그리스도론의배타적 절대성 주장을 어

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신학적 과제”13)에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트뢸취는 자신에게서 시작된, 니터의 종교 다양성에 대한 태도로부터

타종교에 대한 개방적 입장을 받아들였다. 변선환에 따르면“밝아오는

대화의 시대에서 진리는 더 이상절대적이거나 독백적이거나 배타적일

수 없다. 진리는 비절대적(상대적)이며 역동적이고 대화적이며 관계적

이다. 경험된 진리, 개념으로 명제화된 진리(교리)는 역사성과 언어의

한계성, 사회문화의 하부구조에 의하여 제약되고 있기 때문이다.”14) 여

기서 변선환은 트뢸취와 니터와 같이 타종교에 대한 규범종교로서의

기독교 이해를 거부하면서, 타종교의 진리를 기독교의 진리와 같이 동

일한가치가 있다고 주장했고, 종교적 진리의 관계성을 강조했다. 그 논

제를 중심으로 유불선과 동학을“그리스도교의 가장 좋은 길벗”15)으로

여겼으며, 보다 구체적으로 변선환은 한국 사회 속에서 인간화를 추구

하는 사회적 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한국교회는 백 년 동

안 몸에 밴 낡은 배타적 전도 방식에 안주하려는 감미로운 유혹에서

벗어 나와서 아시아의 전위신학을 향하여 창을 열어놓고, 인간성 회복

을 위한 선한 싸움에 나선타종교인과 세속 휴머니스트들의 거센 물결

과 합류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16) 이 타종교와의 협력 과정 속에서

종교신학자 니터는 트뢸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인 동시에 철저한 비판적 사상가였던 트뢸취는 종교적, 역

사적 다원주의의 실체를 인식하고, 그러한 다원주의의 실재가 자신이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관해 배운 바와 어떻게 충돌하는가를 최초로 실

감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그는 그의 생애 대부분을 이 문제와 씨

름했다.”8) 그 결과트뢸취는 기독교를 철저하게 역사화하면서 상대화했

다. 이와 관련해 트뢸취는 더 이상 기독교는 타종교에 대해 자신의 진

리를 배타적으로 주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니터에 따르면 트뢸취의

역사적 상대주의에 대한 인식의 근거는“역사적 의식”9)에 있었다. 트뢸

취의 역사의식에서 볼 때 역사 속에서 모든 것은 제한적이며 변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것으로 규정될 수 없다. 여기에서 니터는‘모든 종교

들은 상대적이다’라는 종교적 다양성에 대한 대중적 태도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뢸취는 역사적인 것과 규범적인 것의 대립 문제

를“내재적 초월의 형이상학”문제로 인식하면서, 신과 인간 사이의“참

여, 연속성, 공유”10)의 방법으로 극복하려 했다. 그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서 트뢸취는 유럽 종교사에서 연속적으로 드러난 공동정신의 규범성이

라는 확실성을 그 대안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그 경험적 확실성을 토대

로 트뢸취는 유럽문화속에서종교의 본질을 규정하려고했다. 그 결과

다양한 종교적 경험들은 종교적 아프리오리를토대로 유럽 종교로서구

체화된다. 그 유럽 종교가 바로 기독교다. 트뢸취의 종교적 아프리오리

는 종교적 삶에 대한 인간의“실천적 정위 또는 신성의 경험을”11) 의미

하며 동시에 역사 안에서 종교적 아프리오리의 경험은 역사의 다양성,

변화의 가능성을 전제한다. 니터는 세계 종교들 속에 나타난 종교적 아

11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11

7) 앞의책, 137.

8) 폴 F. 니터, 『오직예수이름으로만?』, 변선환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7), 49.

9) 앞의책, 49.

10) 앞의책, 52.

11) 앞의책, 52.

12) 앞의책, 53.

13) 변선환, 『타종교와신학, 195.

14) 변선환,“종교간의 대화 백년과 전망,”『종교간 대화와 아시아 신학』(서울: 한국신학

연구소, 1996), 23.

15) 변선환, 『타종교와신학』, 187.

Page 57: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의 구원에 대한 징조”23)로 보았다. 변선환에 따르면, 트뢸취와 니터와

유비적으로“신의 구원의 역사는 결코 교회의 벽 속에 제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24) 그러므로 한국교회는“조직과 제도로서의 교회 형태를

절대화하는 교회론적 형태 근본주의나 교리주의적 교회중심주의의 오

류에도 벗어나야할 것이다.”25) 그러나 트뢸취와 니터와는 구별되게 변

선환은 역사적 예수를 더 이상유일한 구원자로 이해하지 않는다. 먼저

트뢸취는 역사적 예수의 성육신의 문제를 전통적인 교의학적 측면과

같이양성 기독론의 입장에서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신에 대한인간의

실존 관계에 대한 상징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 공동체 형성의 근본

원칙으로 이해한다. 먼저 신에대한 인간실존적 관계의 측면에서 트뢸

취는 신과 역사적 예수 사이에 나타난 인간의 구원을 신과 인간 사이

에 나타난 의지의 통일성으로 이해한다. 여기에서 역사적 예수가 수행

한 신적 행위에 대한 결단은 인간의 신적 행위에 대한 상징을 의미한

다. 그러므로 성육신에 대한 교의학적 진리는 더 이상 기독교의 절대적

진리일 수 없으며, 유럽 문화속에나타난 신과인간 사이 의지의 통일

성에 대한 상대적 진리를 말한다. 또한 역사적 예수가 수행한 십자가

사건의 의미는 신적 삶에 대한 인간 참여이다. 트뢸취는 이 역사적 예

수에 대한 비교의학적 이해와 관련해 신적 삶에 대한 인간 참여에 대

한 다양한 상징이해를가능하게했다.

트뢸취와 니터와는 대조적으로 변선환의 신학적 초점은 바로 역사

적 예수에게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넘어간다. 신중심적 입장에서,

변선환은그들과 다르게‘성육신’을 기독교에한정되는사건으로더 이

상 이해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그는 간디의 주장에 따른다. 간디는 그

리스도를 하나님의“성육신(avatara)”26)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는 역

그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이내재하게되었다.

둘째, 변선환의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은 트뢸취의 교회 중

심적 배타주의에 대한 비판과 만난다. 교회중심적 배타주의란 교회자

체를 신의 절대적 공동체로 우상화하는 것이다. 교회 중심적 배타주의

에는“성서와 교리의 문자속에신을폐쇄시키고우상화하는 낡은근본

주의”에 대한 문제가 있다.17) 변선환에 앞서 트뢸취는 교회와 관련된

기독교의 우월성에 대한 자신의 모든 경험적 주장을 포기했다. 왜냐하

면“경험들이 제한적인 상황과 문화에 의해 영향받아서 결정되었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18) 특별히 트뢸취의 신앙론은“교회를 통한 권위적

인 가르침의 확립과 신앙의 산물들 속에 존재하는 보편적이면서 규범

적인 가치성의 인정에 대한 사유에 직면한 개신교적 비판에서 비롯되

었다. 현대 개신교는 초자연적인 사유의 파괴를 통해서 그리고 기독교

의 전체에 스스로를 확장시키는 계시 이해를 통해서 교의와 교의학의

지배를 궁극적으로 극복했다.”19) 그 결과 교회는 절대적이며 배타적인

구원 공동체가 아니라“신의 나라의 공동체”20)이며그의 확장을 목적으

로 한다. 트뢸취의 영향을 받았던 니터 역시“교리나 법규 의식과 같은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형식은 어느 하나도 진리에 대한 유일의 불변한

진술로 절대화 될 수 없다”21)고 주장하면서, 교회의 역할도‘구원사업’

이 아니라 신의나라를 섬기고 증진시키는‘교제’로 이해하고 있다.

변선환 역시 먼저 뵐만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교회를 더 이상“구원

을 기다리는 배타적 공동체”22)가 아니라“휴머니티의 봉사자와 온 인류

11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13

16) 앞의책, 187.

17) 앞의책, 188.

18) 니터, 『오직 예수이름으로만?』, 58.

19) Hans Georg, Drescher, Ernst Troeltsch (Göttingen: Vandenhoeck Ruprecht 1991),

336.

20) Troeltsch, “Glaubenslehre”(Aalen: Scientia Verlag 1981), 368.

21) 변선환, 『타종교와신학』, 189.

22) 앞의책, 191.

23) 앞의책, 191.

24) 앞의책, 191.

25) 앞의책, 188.

26) 앞의책, 195.

Page 58: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목적으로 종교간 대화의 문제를 다룬다. 이제기독교의 진리는 더 이상

기독교만의 진리가 아니라 타종교인들에게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니

터와 같이 변선환은 그리스도의 궁극성 문제를 삶의 실천적 입장에서

구체화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케리그마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에서

구체화하며, 예수의 고백을 적극적인 삶의해방적 실천에 대한근본동

기로받아들일 때 예수의 해방사건은 구체적인 것이되기 때문이다. 그

리스도의 궁극성 문제는 니터나 변선환에게 있어 기독교의 배타적 진

리 주장의 문제가 아니라, 타종교와의 관계 속에서 케리그마의 유의미

성 재현문제이다. 이제변선환은 니터와 같이 교회중심적 배타주의에

대한 비판을 지지하면서 비그리스도교 세계에 대한 구원의 문제를 배

제하지 않는다. 변선환의 주장은 니터가 트뢸취에 대해 비판하는 문화

적 고립 문제에 대한 종교신학적인 해결점으로 볼 수 있다. 그는 타종

교를 더 이상 기독교에 의해 저주받고, 정복되며 흡수(용해) 통합되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화를 추구해가는 과정에서 만나며 대화해야

할 종교간 대화의 상대자로 보다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종교간 대화에 앞선 상호간의 인정과 수용이라는 측면

에서 트뢸취의 교회 중심적 배타주의에 대한 비판은 변선환의 신중심

적 비규범적그리스도론형성에 있어긍정적인영향을 미쳤다.

I I I.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에대한근본

전제들

변선환은 한국적인 종교 다원주의적 상황 속에서 종교 해방신학을

그의신학적 주제로 삼았다. 그의종교 해방신학의 근저에는루돌프 불

트만, 프릿츠 부리와의신학적인만남이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변선환

은 기독교적 자기 이해와 종교 해방신학을 위한 종교적 실존과의 만남

과 그에따른실천적인과제인식을구체화했다.

사적 예수 안에서 유일한 성육으로 본다면 그리스도인의 실수라고 비

판한다. 왜냐하면 신은 불교와 크리슈나, 라마에게도 역시 현세의 모습

을 취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본성과 요청이 다르기 때문에

신에 도달하는 길이 다른데 있다.”27) 이와 같은 사상적 기반을 토대로

변선환은 더 이상 서구 신학자들과 같이 그리스도 중심의 포괄주의적

입장(칼 라너혹은한스큉)에 머무르지않고, 아시아에서 내재된‘아시

아 신학’에 주목하게 된다.“타종교와의 대화에서 새로운 신학을 형성

하려는 급진 신학자들은 서로 관점을 달리하고 있기는 하여도 어떻게

서구 신학자들이 전통적으로 그리스도를 거짓되게 절대화 시켰는지를

밝히며,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성·특이성·절대성을과감하게상대화하

려고 한다.”28) 변선환은 아시아 신학과의 관련 속에서 그의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을주장하게 된다. 변선환은그와는 구별되게그리

스도의 상징을 신중심적종교공동체의중심으로 보았다.

셋째, 변선환의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의 궁극성

에 대한입장을 포기하지않았다. 이는철저하게니터의 영향이다. 니터

는 트뢸취에게서 나타난 나사렛 예수의 문제와 성육신 사상에 대한 상

충의 문제를 지적했다.“성육신은 역사적 상대성이라는 트뢸취의 엄격

한 법칙에서 벗어나는 단 하나의 유일한 예외다. 이러한 일이 왜 그리

고 어떻게 발생하였는가 하는 것은 성육신, 즉 신성과 인성의 본질의

연합의 신비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면 수용하기 곤란하지 않을까? 사실상 곤란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

스도교의 걸림돌이요 신의 뜻과 의지의 걸림돌이기 때문이다.”29) 그럼

에도 불구하고 니터는 트뢸취와 다르게 여전히 타종교에 대해 규범적

일 수 있는 예수의 계시를 말하고자 한다. 그는 성육신의 의미와 모든

종교가 한 종교로 수렴하기 위한 종교적 인물과 상징을 찾고자 하는

11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15

27) 앞의책, 195.

28) 앞의책, 201.

29) 니터, “오직 예수이름으로만?”, 67.

Page 59: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스도의 십자가 사건 속에 드러난 인간 해방에 대한 복음의 소식을 분

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불트만에 따르면“그리스도의십자가 사건은[...]

그 실존사적 유의의성에서 세계에 대한 심판이며 인간에 대한 해방적

심판이다. 그리스도는 만족설이나 희생설과는 다른 의미에서〈우리를

위하여〉(pro nobis)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33) 변선환은 불트만이 신

에 대한 복종으로서 자기 포기의 신앙을 인식했다고 보는데, 불트만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연 현상이 아니라, 죽음을 무력화하는 세상에 대

한 신의 해방적인 심판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불트만의 영향 아래에

서 변선환은 종교의 해방적 과제를 인식하게 되었으며, 구체적으로 한

국 토착화 신학의 형성을 위한불트만의비신화화의 과제의미를‘그리

스도의 십자가 이해’에 두었다. 변선환에 따르면“서구에서는 마술적인

제사종교에 직면하여, 이스라엘의 예언자 운동, 또는원시기독교의사

도들의 종말론적 신앙이 나타났다. 근대에 와서 인간화의 과제는 금욕

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양심의 자각에 따른 의식의 심화에 의하여서 성

찬 중심의 중세기 마술 종교의 붕괴라는 것으로 나타났다.”34) 결국 불

트만은“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신화적인 동양의 마술동산을 깨치고 신

의 베일에 가려져 있는 세계와 대립하고 대결하며 거기에서 해방되고

자유하게 하는 신의 심판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는 데 있다고 본다.”35)

이제 한국적인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실존적 의미는 범신론적이며 일원

론적인 풍토로부터의 실존적 해방에 있다. 실존적 해방은 동양적 마술

동산으로부터의 해방과 역사의식을 수반한 구원을 향한 결단을 가리킨

다. 왜냐하면 변선환은 한국의 근대화를 저지하고있는 근본원인을 토

착종교 속에 나타난“역사의식의 상실과 자유의식의 상실”36)에서 찾았

기 때문이다. 변선환에 따르면 한국 근대화를 저지하고 있는 결정적인

첫째, 불트만의 비신화화의 영향 아래에서 변선환은‘비서구화’30)의

가능성을 보고 있다. 변선환은 불트만의 비신화화가 역사적인 제약을

받고 있는 복음을 서구적 기독교에서 해방시키고 한국적인 상황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불트만과의 연속성에서

변선환은 실존적 해석의 대상으로서‘십자가’와‘부활’을 토착화 신학

의 근본 개념으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책임적 실

존의 상징’이며, 부활은 불트만이 이해한 바와 같이‘십자가의 유의의

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변선환에 의하면 불트만에게 예수의 십자가

와 부활은 그리스도인에게 실존적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이다. 그러나

불트만은 신앙과 예배의 대상으로서 그리스도의 이해를 포기할 수 없

는 기독교의 절대성에 대한근거로서 이해하고 있기때문에,“선교되는

그리스도는‘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신앙과 예배의 그리스도”라고 이

해했다.31) 변선환은 불트만이 주장한 기독교 절대성의 근거를 그리스도

의 십자가 사건에서 보았다. 필자에 따르면 불트만의 역사적 예수에 대

한 인식의 불가능성과 이에 따른‘그리스도’의 분화적 이해는 변선환

의 신중심적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의출발점이다. 변선환은 기독교신앙

의 중심점을더 이상은‘역사적예수’가 아니라, 불트만과같이‘신앙의

그리스도’로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트만같이그리스도의상징

을 역사적 예수에 고정시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변선환은 이를 토대로

역사적 예수에게 나타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기독교의

배타적 진리주장의근거로서이해하지않았다.

불트만의 비신화화의 과제와 관련하여 변선환은‘해방’32)에 대한 신

학적 과제를 인식했다. 해방에 대한 신학적 과제는 종교가 한 문화 속

에서 추구해야 할 본질적인 역할이다. 변선환에 의하면 불트만은 그리

11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17

30) 변선환,“불트만의 비신화화와 토착화의 과제,”『한국적 신학의 모색』(서울: 한국신학

연구소, 1997), 242.

31) 앞의책, 243.

32) 앞의책, 253.

33) Rudolf Bultmann, Kerygma und Mythode, Bd. 1, 43.

34) 변선환, “불트만의비신화화와토착화의과제,”253.

35) 앞의책, 249.

36) 앞의책, 253.

Page 60: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터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신의 구속행위에 따른 신화론적인

은혜에 도달해야 했다.39) 그러므로 불트만은 인간 존재를 예수 그리스

도와 같이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죄인으로서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속에 승리를 경험하는 실존으로서 이해해야 했다. 그러나 부리는

인간 실존을 신의 은총에 따른 선물로서 이해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구원의 현실성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구원신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부

리에 따르면 구원의 현실성은 그리스도의 신화 속에구원의 사건이 표

현된 것과 같이 인간이 스스로를 그의 본래성에서 이해할 수 있을 때

일어난다.40) 이제 부리는 더 이상 불트만과 같이 유일회적인 구원 신화

를 필요로 하지않고, 역사적 예수를 책임적 존재의 상징으로서 이해한

다. 부리의 비케리그마 과제는 서구 문화속에나타난 그리스도를 책임

적 존재의 상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무제약적책임적 존

재로서 실존기독론의이해가 있다.

변선환에 따르면“부리의 비케리그마화가 은총을 인간 실존의 가능

성이라고 할 때, 그것은 흔히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 이성과 감정

에 내재하고 있는 절대정신이나 종교적 감정의 진리, 무시간적인 보편

적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초월과 관계하는 책임적

인간의 구체적 진리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은총은 인간 실존의 영원

한 질이나 소유물이 아니라 그 가능성일 뿐이다.”41) 그러므로 부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더 이상 신화적 진술로 보지 않고,

인간 실존의 가능성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이해했다. 즉 인간은

먼저 십자가에 달린 자 혹은 부활한 자로서 역사적 예수와 만나는 것

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신으로부터 주어진 선물로서 이해한다. 앞서

언급한 부리의 자기 이해는 자신에게 오는 것(“aus meinem Zu-mir-

암초들은”선량한 민중들에 대한 샤머니즘의 마술적인 초자연적 구속,

피와 땅과 결부된 혈연적 지연적인자연 공동체와 관계시키고 있는 사

회적 관계, 유교 윤리에 의하여 운명처럼 절대화되고 신화화된 삼강윤

리의 존재론적인 영원한 질서, 선악의 피안에서 역사의식을 포기시키

고, 물 위를날고 있으나 물에 젖지않고 날아가는 갈매기처럼 살게하

려는 불교적인 자연 신비주의 등에 의하여서 빚어지는 개체인격의 자

유의 상실, 곧 주객도식속에서, 역사 속에서 자연 세계와 심각하게 대

결하면서 사는 역사의식의 상실이다.”37) 여기에서 변선환은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의 출발점으로서 신학적인 해방의 과제를 분명하

게 인식하고 있다. 그 신학적인 해방의 과제는“인간화”(Humaniza-

tion)38)이다. 이제 한국 토착화 신학은 인간화의 과제를 위해서 기독교

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징을 해석해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 즉 다

양한 종교적 경험 속에 나타난 실존적 의미의 근거로서 그리스도의 십

자가 상징에 대한해명이다. 이제 한국토착화 신학은 인간화의 과제를

위해기독교의 그리스도 십자가 상징을 해석해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

다. 즉 다양한 종교적 경험 속에 나타난 실존적 의미의 근거로서 그리

스도의 십자가 상징에 대한 해명이다. 그러므로 변선환에게 있어 그리

스도의 표상은 철저하게다원적이다.

둘째, 변선환은 프릿츠 부리의 상징적 기독론을 수용하면서, 실존적

자기 이해의 과제를 구체화 한다. 변선환은 부리와 같이 그 해석 안에

내재되어 있는 서구적 기독교의 산물인‘그리스도의 신화’까지도 비케

리그마화 해야 한다고 본다. 부리의 비케리그마의 과제는 서구 문화속

에서 나타난 그리스도를 책임적 존재의 상징으로서 이해하는 것이다.

부리에 따르면“불트만은 신의 선물로서 나타난‘책임적 존재’인 실존

일반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은혜를 상실해버린 인간 실존으로부

11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19

37) 앞의책, 253.

38) 앞의책, 253.

39) Fritz Buri, “Entmythologisierung oder Entkerygmatisierung,” Zur Theologie der

Verantwortung, Bern 1971, 49.

40) 앞의책, 52.

41) 변선환, “불트만의비신화화와 토착화의과제”, 252.

Page 61: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서 시작된 교의학적 진리일 뿐이다. 그러나 드레셔에 따르면“여기에는

다음과 같은질문이 남겨진다: 어떻게 신앙에 따라실존적 절대성의범

주에서 생각하는 경건한 사람이 역사적 인식을 통해서 상대화의 과정

과 관계할 수 있는가?”46) 역사적 예수의 상대화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

해서 트뢸취는 신에 대한 인간의 실존관계가 그 본질적인 내용에 따라

인간의 직접적인 신앙의 체험으로서 해명된다고 보았다.47) 그러므로 경

건한사람의 사고는 신 자체와의 만남을 지향하며, 그리고 신과의 만남

은 필연적으로 중재자로서 계시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경건한 사람

은 역사 속에 나타난 계시의 절대적 가치를 학문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가치란 역사학적인 방식으로는 증명될 수 없

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시에 대한 인간의 절대적 확실성은

유일한 절대자와의 실존 관계 속에 반드시 존재한다.48) 여기에 변선환

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의 근거와 기독론의 비규범성에 대한 유비적

관계에 대한근거가 있다. 그리고 그 변선환의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

스도론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동양적 해석의 과제를 전제

한다. 그 결과 트뢸취의역사적 예수에 대한상대적인 인식은 변선환의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에 있어서 비규범적 특성과의 유비적 관

계 속에서 한국 토착화 신학과 만남의 전제로 이해될 수 있다. 왜냐하

면 트뢸취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해를 교의학적인 양성 기독론으로

부터해방시키면서, 유럽신학의 근본토대를 세웠던 것과같이, 변선환

은 그리스도로서 역사적 예수의 비규범적 특성을 토대로 종교 해방신

학의근간을 세웠기 때문이다.

변선환의 한국문화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상징 해석에 대한 다원

적 입장은 트뢸취의 입장과 만난다. 트뢸취는“형태와 깊이에 따라 역

selber Kommen”42))에서부터 시작된다.“무엇이 역사로부터 나의 이해

의 영역으로 출현하고 있는지, 무엇이 자기 이해의 가능성들을 위해서

여기에 있는나에게 해명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통해서 나의운

명에 대한 나의 입장이 변하는지 그것은 나에게 속한다.”43) 구원의 가

능성은 내가 나의 가능성을 상실하든지 혹은나 자신의 자기이해에 도

달하는지에 달려있다. 부리의 영향속에서 변선환은 더 이상기독교의

전통에 머물지 않고, 동양에 존재하는 타종교, 특별히 불교와 힌두교와

의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대화의 목적은 책임적 존재로서 그리스

도의 상징에 기반을 둔 책임적 실존으로서의 인간 이해이다. 이정배에

따르면“불트만 학파에 속한 신학자로서 그의 비신화화의 프로그램을

비판하고비케리그마화까지 몰고간 부리의 실존신학은 그리스도의 종

국성에 대한 서구적 편견으로 동양에 대해 배우기를 거절했던 마이켈

슨과는 달리 동양과 적극적인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기”44) 때문에

변선환은 보다 적극적으로 아시아 종교들과 만남의 길을 열수 있었다.

왜냐하면 변선환은“아시아적 풍토 속에서 성장한 한국 불교가 이 땅

위에서 자신의 역할과 생명을 좀 더 책임 있게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

는 무제약적인 책임적 존재로서 실존적 기독론”을45) 말해야 한다고 주

장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불트만과 부리와의 신학적인만남 속에서 형성된 변선환의

신중심적 비규범적 기독론적인 입장은 트뢸취의 역사적 예수의‘비교

의학적’이해 문제와 결부해 볼 때는 유비적이다. 트뢸취 역시 역사적

예수의 문제를 기독교의 절대성의 문제와 관련해서 규범적 가치로 인

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뢸취의 역사적 예수는 단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중심점일 뿐이며, 그리스도로서예수의 인식은 기독교의 실존에

12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21

42) Fritz Buri, “Entmythologisierung oder Entkerygmatisierung,” 52.

43) 앞의책, 54.

44) 이정배, “변선환박사의신학적 실존,”18.

45) 앞의책, 25.

46) Hans-G e o r g-Drescher, “Ernst Troeltsch, Leben und Werk”(Göttingen: Vanden-

hoeck und Ruprecht Verlag 1991), 274.

47) 앞의책, 274.

48) 앞의책, 274.

Page 6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정리해보면 변선환의 신중심적 비규범적 기독론이 불트만과 프릿츠

부리의 전통과의 만남 속에서 한국 토착화 신학의 비서구화의 과제와

특별히 비서구화의 과정 속에서 드러난 종교적 해방과 사회정치적 해

방의 과제를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은 트뢸취와 니터와

의 유비적 관계에서 볼 때는 서구 신학과 종속적 관계로부터 해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적 신학은 철저하게 서구 신학과는

구별되는 독립성의 구조를 가지고, 한국 종교문화 속에 드러난 그리스

도의 상징을 해석을 통해서 한국고유의 종교적 해방과 사회정치적 해

방의 종교성을 드러내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의

신중심적 비규범적 기독론의 핵심적 논제에 대한 전제가 있음을 분명

히 알 수 있다.

IV. 아시아신학과의연대속에나타난변선환의신중심적

비규범적그리스도론의이해

불트만의 비신화화에서 프릿츠 부리로 이어지는 비신화화와 비케리

그마화의 신학적 과제와의 관계 속에서 변선환은 동양적인 그리스도론

개척에 힘을쏟았다. 그는아시아 신학이 다양한 문화의 특수성에 따른

그리스도 상징의 이해 과제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아시아 그리스도론이 결코 전통적 신앙고백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또 하나의 다른 신앙 고백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

려 신앙 고백의 보편성을 아시아의 고난과 종교성이라는 특수성과 관

련시킴으로써 의미 있고 생명력이 있는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

다”라고 주장한다.51) 이정배가 말하는 변선환은“이 시기에 비케리그마

화의 신학에 기초한 초기 실존론적 해석학을 넘어서서 아시아적 종교

사 속에 스스로를 계시하는 신에 대한 출구를 구분한다. 그러나 이 신

은 유일회적이면서 궁극적인 하나의 구원 사건에 스스로를 묶지 않는

다.”49) 이와같은입장에서 볼 때“역사적 예수의 사건이란 철저하게 유

럽 문화 속에서 나타난 하나의 구원사건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이제

전통적인 입장에서 분명해진 것은 트뢸취가 신과 역사의 개념을 관계

시키면서, 더 이상 기독론적으로 중재된 계시의 사유가 규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50) 트뢸취의 입장은 유럽 문화뿐만 아니라 타문화 속

에서 더 이상 역사적 예수의 계시 사건이 유일한 계시의 종교적 의미

를 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와유사하게 변선환은 종교해방의 과제를

위해서 타종교에 나타나고 있는 그리스도의 상징 해석과 적극적으로

만나고자한다. 그 만남을위해서 변선환은종교간 대화를 수행한다.

그 종교간 대화는 서구 신학으로부터 한국 신학의 독립성을 추구하

는 한국 토착화 신학의 과제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한다. 트뢸취에 따

르면 신학적 독립성이란 신학적 사유의 규범성에 대한 구조가 종교사

적 인식의 틀에 따라달라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 신학적 독립성의

사유에 따라 트뢸취는 기독교 절대성에 대한구조 역시 유럽 종교사에

서 자라난 역사적 가치 인식의 결과로서 이해했다. 유럽적인 종교다원

주의적 상황 속에서 트뢸취는 역사적 예수의 해석학적 과제를 유럽 신

학의 중심과제로 이해했다. 이와 유비적으로 변선환은 한국 토착화 신

학의 과제를 한국 역사 속에 나타난 종교 문화적 구조 속에 책임적 존

재로서 상징인 그리스도의 해석학적과제로 보았다. 더 나아가 이 과제

를 기독교 신학의 과제만이 아니라 타종교와의 대화 속에서 풀어나가

야 하는 종교적 책임 공동체의 공동과제로 이해했다. 그러므로 부리의

무제약적인 책임적 존재로서 실존적 기독론은 책임공동체를 지향하는

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의근간이 되었다.

12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23

49) 앞의책, 275.

50) 앞의책, 274.

51) 변선환,“아시아그리스도론의 여명,”『종교간에대화와 아시아 신학』(서울: 한국신학

연구소, 1996), 131.

Page 6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론적 이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나타난 공통적인 사실은 종교적 다

양성과 이질성을 포용하면서, 아시아적인 보편 그리스도론을 추구했다

는 사실이다. 변선환에 따르면 파니카의“포괄적 종합을 지향하는 과정

은 추상적인 혼합주의나 무비판적 절충주의에 의한 여러 종교와의 평

화 공존을 목적하지 않고다원성을 긍정하면서, 타종교 안에숨어 있는

통일을 지향하려는 역동적 수렴에로의길을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성종교에서 도피해서도 안 되고 참된 종교를 찾아내기 위해서 기성

종교를 파괴해서도 안된다.”56) 이와 관련하여 변선환은 파니카가 힌두

교를 신의 보편적인 구원의 경륜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과 그 속에

서 잠재적 기독교를 인식한다는 점이 그의 독특성으로 이해한다. 왜냐

하면파니카는 그리스도를 기독교와 힌두교가 만나는 양자의 결합점으

로 받아들이면서 교회의 선교 과제를 힌두교 속에 있는 숨어 계신 그

리스도의 베일을 벗기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예수와

기독교의 절대성을 나타내는 베드로의 설교(사도 4:12)나“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는 교리사의 명제는 결코 배타적 절대성의 요청으로서 해

석되어서는 안 된다.”57) 파니카는 그리스도를 기독교와 힌두교가 만나

는 양자의 결합점으로 받아들이면서 교회의 선교 과제를 힌두교 속에

있는 숨어계신 그리스도의 베일을 벗기는 것으로 이해한다. 변선환에

따르면 파니카에게“그리스도는 일자와 다자, 절대자와 상대자, 브라만

과 세계 사이의 중보자이신 주재신 이슈바라이다.”58) 변선환은 파니카

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을통해서 기독교의삼위일체를 새롭게 해석했고,

그 해석을 토대로 기독교와 힌두교 사이의 대화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

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성에 바탕을 둔 […] 종교 해방신학에로 […] 진일보 시키고자 했다.”52)

아시아 신학자들의 다양한 그리스도론을 소개하면서, 변선환은 타종교

의 전통 안에존재하는 그리스도에대한 상징이해와 만났다. 그리고 그

는 그 만남 속에서 신중심적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의개방적, 관계적 특

성에 대한 분명한 근거를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아시아적 상황에서

나타난 다양한 그리스도의 상징은 고난 속에 살아가는 민중들을 사회

정치적인 억압으로부터, 그리고 미신과 마술적인 세계로부터 해방시키

는 책임적 존재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책임적 존재의 상징이해와 관련

해 변선환은 아시아에서 종교적 보편주의를 지향하는 아시아 신학의

다원적인 그리스도론의독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변선환이 아시아

신학들과의 관계를 고찰하면서 그의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을

소개하고자한다.

첫째, 변선환은구체적으로 힌두교 전통에 서 있는파니카의‘우주적

그리스도론’과, 불교의‘절대무’사상을 기독론의 궁극성 문제로 이해하

는 야기세이찌의 토착화적 그리스도론의 시도를 동양적 그리스도론의

독특성으로 보았다. 그 독특성은 바로 종교간 대화의 공동지반에 대한

발견이다. 공동지반은 각 종교 속에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파

니카가 힌두교를 잠재적 기독교로 보면서“이슈바라”에게서53) 숨어 계

신 그리스도를 발견했다면, 야기세이찌는 불교 속에 존재하는 신성과

인상의 통합체로서“장소”를54)“그리스도”로서 이해했다.55) 상이한 기독

12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25

52) 이정배, “변선환 박사의신학적실존,”29.

53) 변선환,“동양종교의부흥과 토착화신학,”『종교간의대화와 아시아 신학』(서울: 한국

신학연구소, 1996), 77.

54) 변선환,“야기세이찌의 장소적 기독론,”『그리스도론과 신론』(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8), 152.

55) 앞의책, 152. 장소는역사적 예수안에유일회적으로 나타난것이아니라 인간일반

에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정배에 의하면“그리스도의 궁극성을 선불교의“절대무”의

개념에서 찾으려고 했던 야기세이찌는 예수의 성육신론, 십자가 부활 사건을 다음처

럼 해석해 낸다. 야기는 나사렛예수란신적근저또는절대무와더불어상호내재

의 관계 속에 있는 인간이란 명제를 선포하고 있다.”여기에서 자아란“역설적으로

동일성으로언표된절대타자”이다. 이정배, “변선환박사의신학적 실존,”23.

56) 변선환, “아시아그리스도론의여명,”67.

57) 앞의 책, 68.

58) 앞의책, 77.

Page 64: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는 예수의 십자가를 인간 실존을 본래적 실존으로 이끄는 매개로서 이

해하면서 인간 신화의 가능성을 무너뜨렸다.63)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에 나타난 신의 지배에 대한 복종이 인간 실존에 대한 유일한 의미

이다. 왜냐하면“십자가는 그 속죄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 매몰될 수 없

는 단독자, 공동체의 통일원리였던 율법에서 자유한 실존의 자유와 그

근거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64) 이제 야기세이찌는 인간 구원의

현실성이 더 이상은 배타적으로 역사적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

건에 매일 수 없음을 인식 되었고, 오히려 종교적 실존의 근거인 영원

한 로고스, 곧 절대무의 장소만이 그리스도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여기

에서 변선환은 기독교와 불교 사이의 공동지반으로서 장소의 이해는

아시아 신학의 형성에 분명한 의미가 있음을 믿고 있다. 그러나 변선

환은야기세이찌의 주장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 서게되었다. 그 이유

는 야기세이찌가 신에대한 역사적 예수의 실존 관계에서 드러난 신의

은총에 따른 선물로서 인간 실존에 대한 자기 이해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실존적보편 구조인‘통합에의 규정,’곧‘절대무’의 장소를 그

리스도라고 하면서 기독교 신앙의 배타적인 절대성을 주장하는 폐쇄주

의적 특수주의에 빠진다”는 점 때문이다.65) 무엇보다 야기세이찌는 인

간의 구원의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이 아니라 절대무에 있

다고 보기 때문이다. 야기세이찌에 따르면“예수의 존재, 죽음, 부활은

무의장소를 나타내는징조이고장에의 복종이며장의계시일 뿐이다.”66) 이에대해 변선환은야기세이찌가그리스도의 구체성 인식을 잃어버

렸을 뿐 아니라, 인간실존의“자기이해”와“자기실현”을 간과하는 오류

를 범하게 되었다고 비판한다.67)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선환은“기독교

불교적인 토착화 신학의 입장에서 나타난 야기세이찌의“절대무”59)

의 기독론적 해석은 철저하게 기독교와 불교가 만날 수 있는 하나의

공동지반이다. 이는야기세이찌의 성서해석에서나타난 그리스도의 궁

극성에 대한 이해이다. 이정배에 따르면“그리스도의 궁극성을 선불교

의“절대무”의 개념에서 찾으려고 했던 야기세이찌는 예수의 성육신론

과 십자가 부활 사건을 다음처럼 해석해 낸다. 야기는 나사렛 예수란

신적 근저 또는 절대무와 더불어 상호 내재의 관계 속에 있는 인간이

란 명제를 선포하고 있다.”60) 여기에서 자아란“역설적으로 동일성으로

언표된 절대 타자”61)이다. 따라서“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인격화, 즉 참

자아의 깊이 속에서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하나가 된 이런 실재

를 야기는 성육화된 로고스로 본 것이다.”62) 이와 같은 절대무에 대한

사유를 토대로 야기세이찌는 인간의 구원의 현실성이 더 이상은 배타

적으로 역사적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에 매일 수 없음을 확

신하게 되었고, 이를 토대로 그는 기독교 신학의 비서구화의 과제로서

토착화신학의 과제를 구체화 했다. 변선환에따르면 야기세이찌에게서

토착화 신학은 불교와의 만남을 통한 동양적인 기독론으로서 구체화되

었다. 그 과제를 위해서 야기세이찌는 먼저서구적 양성 기독론에기독

교의 배타적 진리 주장이 있었음을 고발하면서, 그리스도의 수육, 십자

가와 부활을 장소의 빛에서 해석한다. 여기서 장소란 신성과 인성의 통

합체로서 역사적 예수 안에 유일회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인간 일

반에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오직 그의 삶 속에 나타난 신의 지배

혹은 부활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현실성으로서 진리로 나타난

다. 그러므로 여기서 역사적 예수의 수육의 사건은 종교적 실존의 인식

의 출발점으로서 상대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그 결과 야기세이찌

12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27

59) 변선환, “야기세이찌의장소적기독론,”174.

60) 이정배, “변선환 박사의신학적실존,”18.

61) 앞의책, 23.

62) 앞의책, 23.

63) 변선환, “야기세이찌의장소적기독론,”157.

64) 앞의 책, 164.

65) 앞의책, 176.

66) 앞의책, 177.

67) 앞의책, 179.

Page 65: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도교 세계의 출현이다.…이 비그리스도교의 민중성을 통하여 말하지

않는신학은 그리스도교마이노리티의 신의적 사치이다.”71)

피어리스의 비판과 관련하여, 변선환은 제 3세계의 신학이 토착종교

와 토착문화의 구원론에서 출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 논제를 가지

고, 변선환은 민중 해방에 무관심했던1세계의 전통 신학에 대한 비판

과, 해방신학이 추구했던 종교와 대결적 입장에 대해서 비판한 피에리

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 결과 변선환은 여전히 전통적인

신학의 관계 속에서 종교와 계시를 분리하면서 반종교적 그리스도의

신학과 종교적 그리스도의 신학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에 대

해서 적극적으로 비판했다. 변선환의 비판적인 입장에 따르면“그 같은

신학적 시도는 아시아 사람의 종교적 심성과 전혀 관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극히이방적이며 비아시아적인것뿐이다. 아시아 신학은 아시아

사람이라는 동일성을 의식하지 못하고 제1세계의 서구신학이나 제3

세계의 해방신학에만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주로 두

가지그리스도론이 서로 대결하는 양극성을 낳게되었다. 이 대립을 극

복하기 위해서 변선환은 철저하게 서구 우상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72) 이에 대해서 변선환은 급변하는 사회의 시대적 요청에 성

실하게 응답하려고 할 때 종교는 결코 민중의 아편일 수 없고 민중 해

방의 누룩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게 된다”73)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시대

에 따라서 끊임없이 민중들은 서구 종교들의 정복의 논리에 의해서 자

신에게 속한 토착종교의 신앙을 무차별하게 빼앗기고, 더 나아가서 정

치적인 경제적인 수탈과정에서 비롯된 빈곤의 현실속에 가난에 직면

해있기 때문이다. 그 현실 앞에서 피어리스는 아시아에서 예수 그리스

도의 구속 사건을 아시아의 종교적 현실과 가난의 현실에서 민중을 해

방하는 것으로서 해석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제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신앙의 성립에 대한 근거를 묻는 야기가 예수의 가시관과 십자가라는

구제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오인하고, 본래적 실존의 필수조건이나 구

속의실재로 맹신하며 우상 숭배하고 있는 정통주의 신학자들 보다 훨

씬 진리에 가깝다”고 본다.68) 이 파니카와 야기세이찌가 시도했던 동양

적 기독론 이해는 책임적 실존을 추구하는 변선환의 신중심적 비규범

적 기독론과는 분명 다르지만, 서구적 기독교와 구분되는 아시아 신학

의 독립성의 과제를 동반자적 입장에서 철저하게 수행했다고 볼 수 있

다. 이와 같은 근본 전제를 가지고 변선환은 타종교와의 관계 속에서

그의 신중심적 비규범적그리스도론을 형성했다. 이제 변선환의 그리스

도론은 민중 신학과의 만남과 아시아 신학과의 연대를 통해서 민중해

방의실천적인의미를 담게된다.

둘째, 변선환은 우주적 그리스도론과 역사적이면서 정치적인 예수론

과의 만남을“아시아적 종교성”과“빈곤”이라는 두 주제 속에서 씨름했

던 피어리스의 제3세계의 종교신학 혹은 아시아 해방신학에서 찾고자

한다.69) 변선환에 따르면 피어리스의 아시아 해방신학의 특징은 종교와

정치(해방), 지혜와 테크놀로지는서로 분리할 수 없다는데에기초한다.

피어리스에 따르면“그리스도교 선교와 동양 종교와의 대화를 위한 신

학적 근거는‘종교와 대결하는 그리스도’냐‘종교의 그리스도’냐는 이

자 택일의 문제로 보는 그리스도론도 아니고, 타종교가신을 어떻게 이

해하고 있는가를 물어보는 데에서 신학하려는‘신론’의 신학도 아니고

‘언표 불가능한 구원의 신비”로서의 구원론이라고 한다.70) 결국 피어리

스에게 있어서 절대 종교의 기준은 종교가 해방의 신비와 구원의 신비

를 잘 드러내는가에 달려 있다. 왜냐하면 피어리스는 해방과 구원이 신

학의 근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제3세계의 출현은 바로 비그리스

12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29

68) 앞의책, 179.

69) 변선환,“비서구화와 제3세계의신학,”『종교간의 대화와 아시아 신학』(서울: 한국신

학연구소, 1996), 217.

70) 앞의책, 217.

71) 앞의책, 219.

72) 앞의책, 231.

73) 앞의책, 228.

Page 66: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셋째 변선환의 종교 해방신학은 민중의 해방을 추구하면서 아시아

신학과의 연대 속에서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을 신중심적인 입장으로 발

전시킨다. 신중심적 비규범적그리스도론의 입장에서 종교해방신학은

타종교가 기독교와 같이 하나의 궁극적 실재를 지향하고 있음을 강조

하고 있으며, 타종교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

님 나라의 실현을 추구하며 나가는 도상적 존재이며 길벗임을 인식하

게 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변선환은.“인도의 우주적 그리스도론

[이] 한국 민중 신학자들의 민중 해방자 예수를 둘러싼 반종교적인 오

클로스 기독론의 한계를 밝혀주고 있다고 본다.”78) 그러나 역으로 말한

다면 변선환은 종교 해방신학이 추구해야할 민중 해방에 대한 민중신

학의실천적 가치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것이다. 이는 근동신학자

들이 간과했던 민중의 해방자 그리스도에 대한이해의 결핍에 대한비

판이기도하다. 이제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의 입장에서변선환

은 양자의 입장이 만나 대화하면서 아시아 신학의 성숙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과제에 대해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이제 변선환의 종교해

방신학은 근동과 극동 신학자들이 만나서 함께 이뤄가야 하는 아시아

신학의 지향점이된다.

변선환의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은 민중신학과 민중불교와

의 구체적인 만남에서 구체화된다.“불교와 기독교가 교리와 제도의 차

이를 넘어서 한국의 민주화라는 인권의 축으로 하는공동 과제를 위하

여 열린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의 광장을 열어나가게 되었던 것은 박정

희 정권의 유신 체제에 반대하여 항거하기 위하여 민중신학과 민중불

교가 제창되었던70년대부터였다.”79) 먼저, 민중신학과 민중불교는‘민

참여하는 구체적인 실천은 단순히 가난한 이들과의 수동적 연대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아시아 전체적 휴머니티를 위한 싸움에 동적

참여 곧 동적인 imitatio Christ (그리스도 본받기를)”74)를 의미한다. 이

점은변선환이그의종교해방신학에서적극적으로 인정하는점이다.

그러나 변선환은피에리스의 포괄적 신학에 있어서“우주 종교와 메

타 우주 종교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시아 종교의 구원론의 체계 속

에서 너무 쉽게 종교와 정치와 기술을 함께 포괄하는 보자기 신학을

전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75)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그의 신학이 종교

적 현상자체를 성실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

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종교 속의 묵시문학적 경향을 민중의 해방의

누룩으로 중요시하는 그의 대화이론이 비셈족 문화권까지 보편성을 가

질 수 있는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76) 마지막으로 그의소승 불교적

사상이 얼마나 아시아 해방신학의 형성의 입장에서 예언자적 휴머니즘

을 살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이와같은 비판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변선환은피에리스가 주장한 아시아에서 종교와 혁명, 토착화

와 해방 사이의 이원론적 양극성에 대한 부정은 변선환의 신중심적 비

규범적 기독론에 주는 의미가 분명히 있다. 변선환에 따르면“토착화

신학자들이 아시아의 고난의 현실을 간과하고 해방신학자들이 아시아

에서 우리들의 자유스러운 종교적 전통을 무시하고 저주하기 일쑤였던

것은 우리들 속에 알지 못하게 숨어 들어와 있던1세계의 서구신학이

나 너무 서구화한 제3세계의 신학 특히 남미 신학의 장난이었을지 모

른다. 스리랑카의 불교의 지혜를 가지고 형성하려는 피에리스의 아시아

종교 신학의 시도는 대승불교 문화권에서 아시아 신학의 형성이라는

과제를 맡고 있는 우리에게 신학적 정열을 자극하고 남음이 있다고 긍

정적으로평가한다.”77)

13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31

74) 앞의책, 241.

75) 앞의책, 248.

76) 앞의책, 249.

77) 앞의책, 244.

78) 변선환, “타종교와 신학,”『종교간의 대화와 아시아 신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6), 206.

79) 변선환,“민중해방을 지향하는 민중불교와 민중신학,”『종교간의 대화와 아시아 신

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6), 334.

Page 67: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방과 구원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기독교나 불교 속에 존재하는 그리스

도의 상징은 배타적으로 규범적일 수 없고 오직 아시아의 폭넓은 해방

의 영성을 통해서 체험하게 되는 신체험의 중심이 된다. 여기에 아시아

신학의 극단적인 양극성-정치, 경제, 사회적 해방과 종교적 해방의 추

구-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 이정배에 따르면 변선환의

신중심적 입장은 신학이 더 이상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으로 머무를 수

없고 신중심적 태도를 지향해서 발전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변선환은

힉과의 만남을 통해“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하나님은 그리스도교 안에

서 뿐만 아니라 그 밖에서도 구원의 현재적 역사를 이루고 계시기에 모

든 종교의 중심은 기독교가 아니라 신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

이다.”83) 그의 종교해방신학은 더 이상 타종교에 대한 기독론의 유무나

타종교 속에 나타난 신에 대해 해명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

니라, 새로운 휴머니즘의 회복을 위해서 아시아인의 민중 해방운동을

출발시키고 구원과 해방의 신비를 밝히는 구원론의 과제를 가지고 있

다. 이와 관련하여“민중 예수론은 신학의 보편성의 문제를 재고하며

저항적 예수(정치적 예수)와 함께 엔도 슈사꾸의 소설『침묵』이 그려주

고 있는 것처럼 사랑의 동반자 예수(종교적 예수론)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동북 아세아의 역사적이고 또 역사적인 정치적 예수론은 인도의

형이상학적인우주적 그리스도론과열린대화를필요가 있다.”84)

V.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의초점으로서

그리스도의궁극성의문제

변선환의 그리스도론의 초점은‘그리스도의 궁극성’에 대한 문제에

모아진다. 먼저 변선환은“어떻게 비기독교 세계에서도 그리스도에게

중 해방’이라는 공통 목표 하에 자신들의 실천적 과제를 수행했다. 민

중 불교는“억압 구조속에서 고통 받고있는민중속에서 뿌리를내리

고 궁극적으로 고(苦)로부터의 민중해방을 이룩하기 위하여 기층 민중

자신이 민중불교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민중운동에 대한 지원 체

제를 확립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80) 민중신학의 입장에서 서남동은

한국사에 나타난 민중해방의 전거를 미륵불교에 나타난 천년왕국적인

불교 메시아니즘에서 찾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용(미륵)에 대한

토착신앙과 합류하여 정치변혁, 사회변혁의 누룩으로 작용했던 미륵하

생 신앙을 바탕으로 기독교의 민중 전통과 한국의 민중전통이 현재 한

국교회의 신의 선교 활동에서 합류되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자 했

다. 변선환은 서남동에 있어“한국교회의 과제는 두 가지 유형의 메시

아니즘 전통과 민중운동을 선교의 현장에서 합류시키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의 천년왕국적 민중 전통을 한국의 민중 전통과 민중해방 이야

기 속에 나타난 메시아니즘의흐름에 편입되고(송천성), 합류되는 것을

(서남동) 민중 신학의 끌로다듬는 작업을 신의 선교의 구체적인 현장

에서 수행하려고 했다.”81) 이 두 가지 흐름과 관련하여 변선환은“민중

신학은 민중 불교와 함께 미래의 메시아인 예수와 미륵의 임박한 도래

를 기다리며 세계 변혁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향하여 나가는 여로 위에

서 만난 동반자요 길벗이라는 끈끈한 연대의식을 가져야 한다고”주장

한다.82)

변선환의 주장 속에는 한국적 상황 속에서 보편 그리스도론의 상징

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간의 연대와 대화가 담겨있다. 이제 역사적·차

안적·집단적 인간(민중)의 구원을 호소하고 있는 천년 왕국 상징이나

용화세계의 상징을 통해보편적 그리스도론에 근거한 민중해방의 상징

일 뿐만 아니라 민중의 종교적이며 영적인 문제를 수반한 총체적인 해

13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33

80) 민불연, 『민중법당』, 85년 창간호, 53.

81) 변선환, “민중해방을지향하는민중불교와민중신학,”376.

82) 앞의책, 383.

83) 이정배, “변선환박사의신학적 실존,”31.

84) 변선환, “민중해방을지향하는민중불교와민중신학,”384.

Page 68: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끼고알고 행동하게 한다. 신앙의 경험은 반드시 예수는 하나님의 계시

요 은혜의 확신을 내포시킨다. 그러므로 […] 인간은 전적으로 예수에게

위임하면서 동시에 다른 계시자 혹은 구세주의 가능성에 참으로 개방

시킬 수 있다. 혹은 […] 인간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실천에 그의

온 마음을 기울이면서 동시에 이런 실천은 다른 방식을 통해서도 실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88)

니터는 역사적 예수의 궁극성을 트뢸취와 유비적으로 이해했다. 트

뢸취에게 역사적 예수는 인간의 신앙에 대한 중심점으로서, 신적 공동

체의근거이다. 무엇보다 신에대한 역사적 예수의 절대적 확실성의관

계는 신의 계시로서 경험된다. 트뢸취에 의하면 기독교 신앙은“그리스

도 안에 나타난 신의 인식을 통해 세계 속에 존재하는 신의 창조물의

재탄생이나 보다 높은 탄생에 대한 신앙과 하나님 나라를 향한 신과

그들의 합일을 의미한다.”89) 그 기독교 신앙은 역사와 현재 속에 나타

난 기독교적인 공동 정신의 통일성을 지향한다. 이 과정을 통해기독교

의 보편적 규범성은 유럽적인 문화 속에서 구체화된다. 유럽문화 속에

서 신학의 과제는 더 이상 형이상학적이며 통일적인 그리스도론을 구

성하는 것이아니라, 개별적인 예수의 인간상을 다른가능한 예수의 인

간상과 비교하고 비판하면서 또한 구성적인 인식을 통해 규범성의 순

간을인식하려는 곳에있다. 규범성에 대한 인식의 순간은 바로경건성

과 이에 따른 기독교인의 순수한 절대성에 대한 경험의 순간이다.90) 예

를 들면 예수의 제자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은 역사적 예수의 인격적인

삶과 그의 하나님 나라의 선포, 혹은 그에게 나타난 역사적 사건들을

보면서, 자신들의 신앙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변화

나타난 계시와 동등한 계시가 있음을 보여주고자 할 뿐만 아니라 그들

과 대화하고 협력하여 서구적 기독교를 토착화하고 완전한 인간성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할 수 있는가”85)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심광섭에 따

르면변선환의당면과제는“아시아의완전한 인간성 회복을 위한아시

아 종교의 투쟁 속에서‘그리스도의 궁극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변선

환 박사는70년대 이후 한국의 민중해방과 민주화 투쟁 과정 그리고

산업화의 노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복음에 책임적으로 응답하려

는 한국적 해방신학인 민중 신학의 도전을 부정하지 않고 문화적 토착

화 신학과 더불어 새로운 차원으로 전진시킨다.”86) 여기에는 기독론의

문제를 구원론적으로 개진하려고 하는 변선환의 신학적인 과제가 놓여

있다. 필자에 따르면, 니터의 실천적 그리스도론과의 관계 속에서 변선

환의신학적 과제는 한국사회내에‘인간화’를 추구하려는종교공동체

의 형성으로구체화된다. 이와관련하여 변선환은그리스도의궁극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기독교와 타종교가 그리스도의 궁극성에 대

한 공통적 경험의 근거를 세울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을 제기한다. 왜

냐하면 서구신학이 저지른 오류 중의 하나가 그리스도의 궁극성을 역

사적예수에 대한교의학적진술에서찾았기때문이다.

이제 서구 신학과는 다르게 변선환은 그리스도의 궁극성의 근거를

니터와 같이 신중심적 비규범적 해석에 기초한다. 니터에 따르면“그리

스도인들은실로 예수그리스도의 유일회성에 대한신중심적, 비규범적

재해석에 기초하여 신중심적 종교신학을 기초한다.”87) 무엇보다도 종교

다원주의에 나타난 역사적 예수의 비규범성으로 인한 신앙적 위기 앞

에서 그리스도인은 역사적 예수로부터 변혁의 경험을 하게 된다.“예수

는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그 마음을 조명하여, 이전과는 달리 느

13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35

85) 심광섭,“변선환 박사의 그리스도론 연구,”『변선환 종교신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7), 195.

86) 앞의책, 222.

87) 니터, 『오직 예수이름으로만?』, 318.

88) 앞의책, 319.

89) Ernst Troeltsch, “Die Dogmatik der religionsgeschichtlichen Schule,” Zur reli-

giösen Lage, Religionsphilosophie und Ethik(Tübingen: J.C.B. Mohr Verlag

1922), 512.

90) Troeltsch, Glaubenslehre (1981), 110.

Page 69: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실해가고 있다.”93)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선환은 니터와 같이 예수의 케

리그마의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그리스도인들이케

리그마를받아들이고, 그 자신의 삶 속에서 구체화하며, 신에대한예수

의 고백을 해방적 실천에 대한 근본 동기로 받아들일 때 예수의 해방

사건은 구체적인 것이되기때문이다. 결국 변선환은 역사적 예수의 사

건 자체를 궁극적이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배타적 진리 주장을 위해 예수의 사건을 절대적 혹은

유일한 규범으로 보려는데반대하는 것이다. 변선환은 기독교인들이역

사적 예수의 계시를 보편적인 진리로 이해하는 것과같이 타종교가자

신들의 진리를 보편적인 것으로 믿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점은 트뢸취에서부터 시작되어 니터를 거쳐 변선환에 이어지는

하나의 종교신학적흐름으로제시될 수 있다.

V I.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기독론에평가와전망

지금까지 변선환의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에 대해서 살펴보

았다. 이제 변선환의 신중심적 비규범적 기독론에 대해 평가를 하고자

한다. 첫째, 변선환의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은 루돌프 불트만

과 프릿츠 부리와의 만남 속에 형성된 책임적 실존을 추구하는 상징

기독론과 니터의 트뢸취의 분석에서 드러난 역사적 예수의 비규범성에

대한 이해관계 속에서 구체화했다. 한편으로 실존 기독론과 관련하여

변선환은역사적 예수를 그리스도이긴 하지만 유일한 그리스도로 이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역사적 예수는 책임적 실존의 상징으로서 하나

의 그리스도이기때문이다. 다른한편으로 트뢸취와니터에게서나타난

역사적 예수의 비규범성의 의미는 역사적 예수가 그를 그리스도로 여

의 경험들이 기독교적이며 종교적 경건성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특히

예수와 신 사이의 관계는 자신들과 신 사이의 관계 규정의 기초가 되

었다는 점이다.

니터는 이 경험과 관련하여트뢸취와 같이“다른 종교들과의 만남에

있어 그리스도인은 그들이 그리스도안에서 경험하여 알게 된 것과, 그

들이 믿는 바로 이 진리가, 이 계시가 다른 종교들을 능가한다든지 완

성한다든지에관한 어떠한 판단도 없이, 모든 사람들의삶 속에서 영향

을 미칠수 있는방식에 대하여 고백하고증거할 수 있다.”91) 필자는 이

에 대해 니터가 종교 다원주의 속에서 역사적 예수의 궁극성이나 규범

성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채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역사적 예수의 궁극성과 규범성의 문제는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

조하는 것이다. 단지 그리스도의 궁극성의 문제는 실천적 과제를 통해

서 입증될 뿐이다. 그러므로 니터는 트뢸취가 실천적 과제로 타자에 대

한 인정을 주장하는 것과 다르게 구원을 향한 실천적 해석학으로서

‘대화’를 그의 신중심적 신학의 근본적인 방법으로 삼았다. 그는 대화

의 방법을 바탕으로 해방의 사회-정치적 실천뿐만 아니라 타신앙인과

대화의 실천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려고 했다. 이를 통해 그는 그리스도

교의계시로서그리스도의 궁극성을 표현하고자했다.

변선환은 이러한 니터의 입장에 대해“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성과

구원체험에대한신약성서의 배타적, 규범적, 절대적 주장은 그 같은열

정적 신앙고백의 언어를 낳은 특수한 삶의 자리와 관련해서 해석학적

으로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92)“예수의 사건은 삶의 자리가 급격

하게 변한 오늘의 다원주의 사회에서 배타적으로 유일한 구원의 절대

규범이 될 수 없다. 배타적이었던 제1세계 신학의 패러다임은, 데카르

트-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이 낡은 패러다임이 된 것처럼, 타당성을 상

13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37

91) 니터, “오직예수이름으로만?,”324.

92) 변선환,“한국 개신교의 토착화: 과거, 현재, 미래,”『한국적 신학의 모색』(서울: 한국

신학연구소, 1997), 99. 93) 앞의책, 99.

Page 70: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이는 변선환의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이 단순한 이론신학이 아

니라철저한 실천적인의미의 기독론이었음이분명해진다. 여기에 변선

환의그리스도론의긍정적이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변선환이 보여준 다양한 그리스도의 상징 해석의 열거에

대해서 비판적인 평가가 존재한다. 이정배에 따르면“그가지나치리 만

큼 외국신학자, 철학자들의 견해를 나열하는 식으로 글을 쓴다고 말하

는 사람이 있다. 실제로 그의 글을 읽어보면 어느 것이 당신의 주장인

지 분별되지 않을 만큼 각양각색의 주장들을 열거하고 있다.”96) 이에

대해서 이정배는 그 비판이 철저하게 대화에 근거한 관계론적 신학을

시도했던 변선환의 시도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

고 있다. 왜냐하면 이는 변선환이 토착화 신학의 문제를 더 이상 한국

신학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세계 신학과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어야 하

는 문제임을 분명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변선환의 신

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은 철저하게 세계의 다양한 그리스도론의

상징 해석과 만남에서 이루어진 결실임에 분명하다. 먼저 변선환의 학

문적 생애에서 특별히 비신화화의 문제에 대한 동기부여를 했던 불트

만은그리스도의 상징해석의 과제를 비신화화의 방법을 통해서 철저하

게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신앙의 그리스도’의 현실성으로서 인식

하게되었으며, 그 의미를 부활에서찾게되었다. 부리역시비케리그마

화를 통해 역사적 예수를“가능적 본래적 실존을 위한 은총의 성격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97) 이해하게 되었다. 이 두 서구학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변선환은 한국적 기독교 신앙의 형성을 위한 한국적 상황에서

기독론해석의 과제에 대한기초를 발견하게되었다.

또한 니터와 트뢸취에게서 나타난 역사적 예수의 비교의학적 해석

과의 연속성에서 변선환은 민중 해방과 종교 해방을 위한 그리스도의

기는 그리스도인에게 규범적일 뿐 모든 종교인들에게 규범적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트뢸취와니터가 강조하는역사적 예수의 비규범성은

변선환이 말하고자하는역사적 예수의 비규범성과 유비적이다. 왜냐하

면 변선환은 그의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에 있어서,‘민중의 종

교적 해방과 정치적 해방을’지향하는 해방의 실천적 의미에서 볼 때

역사적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상징은 그리스도인에게여전히 규범적

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동양의 그리스도론의 개척을 시도한 아시아 신

학자들과의 연대 속에서 그는 이 두 가지 특징적인 점을 그의 신중심

적 비규범적 기독론의 이론적인 근거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이론적

전제를 근거로 변선환은 그리스도를 더 이상역사에 나타난 역사적 예

수의 한 점에 제한시키는 것을 거부하게 할 수 있었다. 심광섭은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기독교가 동양에서 만나는 장은 구원론,

즉 아시아의가난의 극복과 완전한 인간성 회복을 위한 투쟁에서 만난

다. 완전한 인간성의 성취를 위하여 이들은 대화할 뿐만 아니라 서로

협력한다. 다종교 상황에서 구원을 가늠하는 것은 궁극적 규범은 기독

교 역사가 말하는 예수그리스도만이 아니다.”94) 그러므로“기독교신앙

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

하는 특정한 방식이 아니며, 따라서 고백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

름과 추후적으로 결부될 수 없다는 이의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예

컨대 그리스도론의 주체인 존칭은 교리적이고 철학적 언어가 아니라

‘행위의 언어’,‘수행의 언어’였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고백의 주체

와 고백의 내용은 고백의 목표를 따라방향이 설정되어야 한다. 고백의

목표는 예수를 따름이다.”95) 결국 그리스도인이 가난의 아시아의 가난

의 극복과 완전한 인간성을 회복을 위한 투쟁에 참여하게 될 때 인간

실존에 대한예수그리스도의규범성이분명하게드러난다는 사실이다.

13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39

94) 심광섭, “변선환 박사의그리스도론연구,”226.

95) 앞의책, 229.

96) 이정배, “변선환박사의신학적 실존,”40.

97) 심광섭, “변선환박사의그리스도론연구,”209.

Page 71: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반대하는 것이다.”99) 이에 대해서 장왕식은 이 종교적 본질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불교든 유교든 기독교든 하나의 종교가

참 종교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각 종교는 타 종교들과

공유하고 있는어떤공통적인 특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한 공통적 성질

이 종교인들이 신앙하는 신앙대상으로서의 궁극적 실재로서 볼 수 있

다면우리는 다음과 같이선언해야 한다. 즉 하나의 종교는 외면적으로

는 타종교와 비록 다르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종교와 동일한 궁극적

실재를 반영하고있는 것이다.”100) 여기에서장왕식이 주장하고 있는사

실은 과정신학의 입장에서 본질주의적 사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

이다. 무엇보다도 그가지적하는 사실은 캅이모든 종교가 유신론적종

교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왕식에 따르면

유교나 불교는 기독교와 다르게 그들 나름대로의 종교적 고유성을 가

지고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 본질에 따라종교를 규정하

려한다면 자칫 실재론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는 점이

비판의 핵심이다. 그러므로“실재로서 종교는 존재하지않고, 단지전통,

운동, 혹은공동체와신앙인들, 그리고 신앙체계와 그것을 위한실천만

이 존재한다.”101) 결국캅은 종교가 나름의 가치를 구현하는 한 참 종교

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종교간의 대화의 출발점을 캅은더 이상대

화의 목적을 궁극적 실재에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위치하고

있는독특성으로부터대화를 시작해야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장왕식

은 배타주의를 극복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토대

로 그리스도의 독특성과 유일성에 관심을 갖는다. 장왕식에 따르면“한

국의 기독교가 신중심적 기독론의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은 불교

나 기독교가 각각 예수나 석가와 같은 각기 다른 구세주를 신봉하고

있을지라도 그러한 구세주가 현현하고자 하는 절대자, 혹은 궁극적 실

궁극성을 밝히고자 했다. 특별히 니터와의 관계속에서인식하게 된 신

중심적이며 해방적 그리스도론을 통해서 역사적 예수의 복음 실천적

의미를 적극적으로이해하며, 그리스도 궁극성의근거로서 인식하게 되

었다. 이는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 변혁주의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

리고 변선환은 아시아 신학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아시아 신학이라는

공동과제를 아시아적 그리스도의 상징과의 만남이라는 구체적 과제로

서 제시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 과제를 단지 만남에서 끝낸 것

이 아니라, 종교 해방과 민중해방이라는 구체적인 실천과제를 위한상

호 변혁과 협력을 위한 과제로 발전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신중심

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은 관계론적 신학으로서 긍정적인 의미를 남겨

주었다. 이는 니터의 긍정적인 영향의 결과이다. 니터에 따르면“인간성

자체를 위협하는 세계 내의 모든 것들에 대한 투쟁의 실천 속에서만

보편적 진리가 명료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봄으로써 타종교들의 해방

적 실천에 연대하는 기독교적인 삶이 바로 관계적 유일회성으로서의

예수를 현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로부터선생님은 한국적 종교신학

의 과제를 의미거역적인 모든 현실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노력하는 비

기독교 종교인들의 영성을 구원론적으로 이해하는데 있다고 역설할 수

있었다.”98)

세 번째, 그리스도 중심적 다원주의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변선환의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은 신중심적 다원주의적 입장에 가깝다.

신중심적 다원주의에 대한 그리스도 중심적 다원주의적 입장에 대한

비판은 다음과 같다. 장왕식에 따르면“신중심적 다원주의자들은 세계

의 모든 종교가 화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 모든 종교

는 하나의 궁극적 실재를 공통기반으로 한다는 가설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니 이러한 가설은 일종의‘본질적 종교론’을 낳게 되

었다는 것이다. 캅은 그런 본질적 종교론 때문에 신중심적 다원주의에

14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41

98) 이정배, “변선환 박사의신학적실존,”34.

99) 장왕식, “종교적상대주의를넘어서”(서울: 대한기독교서회2009), 112.

100) 앞의책, 112.

101) 앞의책, 114.

Page 7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마지막으로 변선환의 종교해방신학은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

론을 민중 해방과 타종교와의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기반으로 삼

았다. 더 이상 교회는 종교신학의 중심점으로서 타종교를 구원하는 절

대적 신의 공동체가 아니라 종교 해방과 민중 해방을 위해 타종교와

협력하는 역사적 공동체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공동체 인식은 타종교

를 역사적이며 상대적 종교로서 인정하고자 했던 트뢸취의 문화적 고

립을 넘어서는 보다 포괄적인 인식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여전히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입장에 서 있는 교회에 대한 변선환

의 비판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변선환은 끊임없이교회 공동

체의존립을 위태롭게 하기 위해서 비판한 것이아니라, 철저하게 타종

교와의 관계 속에서 상호변혁과 협력의 과제를 인식하게 함이 그의비

판의목적이었다. 이제그 과제는 여전히 한국 신학적 논의에서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겨져있다. 그러므로 변선환의종교해방신학은우리가

지속해야할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주제어

토착화 신학,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 변선환, 종교 다원주의, 종

교간 대화

Indigenisation, Christologie, Der interreligiöse Dialog, Pyun Sun-

Hwan, Die Absolutheit des Christentums

접 수 일 2010년 9월 27일

심사(수정일) 2010년 10월 31일

게재 확정일 2010년 12월 10일

재는 동일한 공동기반에 있다는 말이고 이러한 공동 기반을 기독교식

으로명하고 있는것이다.”102)

변선환에 대해서 장왕식은 캅의 비판을 적용하고 있다. 변선환에 대

한 비판에서 그는 두 가지 점을 지적한다. 첫 번째 변선환의 기독교와

신중심적 다원주의는 사실 종교철학적인 각도에서 볼 때 매우 문제가

많은이론이라고한다.“왜냐하면, 신중심적의모델을 통해불교적 기독

론을 세우려 한다는 점은 철학적으로 아주 치명적인 난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존 캅과존 힉의논쟁속에서 잘 나타나 있다시피, 공통

기반 이론이 의지하고 있는 칸트의 물자체론은 매우 낡고 화석화된 이

론이다.”103) 두 번째 변선환의 주장은 한국기독교와 토착화된교회라는

이념의 보존을 위해서 형성된 논의이기 때문에, 신중심적 차원의 주장

을 하게되었다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변선환은종교다원주의적인가

설을 너무이념적으로 설명하려는 데 문제가 있다고 한다. 필자의 입장

에서 볼 때 그의 배타주의 극복과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과 유일성을

지켜려는 관점에서 볼 때 그의 비판이 분명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물

론 이찬수는 변선환의 사상적 흐름 속에 종교간 차별성의 문제에도 역

시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찬수에 따르면“진리는

인간의 역사성과, 종교간의 차별성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진

정한다원주의는종교간의차별성은물론신학간의 차별성도 요청한다.

변선환은 그동안의 토착화 신학에서는 그리스도교와 타종교 간에공동

본질이나 공동 근거를 전제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실상은 종교들 간의

차별성을 읽어낼 때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진정한 상호 변혁이 이루어

진다는 점을 표명한다.”104) 그러나 이점은 여전히 신중심적 다원주의를

전제한 차별성의이해임에 틀림없다.

14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43

102) 장왕식,“변선환의불교적 기독교와그 신학적 평가,”『변선환종교신학』(서울: 한국

신학연구소, 1997), 353.

103) 앞의책, 360.

104) 이찬수, “타종교의신학,”『변선환종교신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7), 165.

Page 7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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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45

Page 74: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meinen. Unter dem Einfluss der Entkerygmatisieung bei Fritz Buri

bezeichnet Pyun das Bild des historischen Jesus als ein Symbol der

möglichen Existenz des Menschen, der sich als die von Gott

geschenkte Existenz versteht und sich für die Existenz der Verant-

wortung entscheidet. Dabei versteht Pyun den historischen Jesus

nicht mehr als den alleinigen Christus in der Geschichte, sondern

stellt die mannigfältigen Bilder Christi vor, die die asiatischen

Theologen im Hinduismus, im Buddhismus und im Konfuzianismus

gefunden und interpretiert haben. In der Begegnung mit den asiatis-

chen Theologen erkennt Pyun sowohl die Aufgabe der Befreiung der

“Minjung” von der Situation der politischen Unterdrückung und der

Artmut, als auch die Aufgabe der Befreiung der Religion vom

Aberglauben in den asiatischen Ländern. Indem er den gemeinsamen

Boden der Praxis für die Befreiung des Minjung und der Religion im

Dialog mit den asiatischen Theologen bildet, will er wie Knitter die

Offenbaung Christi als die Endg?ltigkeit Christi herausarbeiten. Das

ist das Ergebnis der undogmatischen Hermeneutik des historischen

Jesus bei Troeltsch und das Ergebnis der Praxis der Befreiung bei

Knitter. Nach Pyun vollendet sich die Endgültigkeit Christi im Chris-

tentum in der Praxis der Befreiung. Hier erweist sich seine theozen-

trische und nichtnormative Christologie als einen Ausgangspunkt

zum religiösen Dialog für die Befreiung des “Minjung” und der

Religion und als ein Ziel der Kooperation der Religionen im Pluralis-

mus. Die so fomulierte These soll die Behauptung stützen, dass Pyuns

theozentrische und nichtnormative Christologie sowohl zur Bildung

der Gemeinschaft der Verantwortung zum Humanismus, als auch zur

koreanischen selbständigen Theologie einen wichtigen Beitrag leisten

kann. Aber Pyuns theozentrische und unnormative Christologie lösst

sich auch kritisieren. Denn Pyun beansprucht noch die Endgültigkeit

Christi gegen die asiatischen Religionen. Dabei ist Troeltschs Posi-

tion ein Vorbild für die theozentrische Position der Christologie, da

Die theozentrische und “nichtnormative”Christologie bei Sun-Hwan Pyun

Tae-Kwan, Choi

Lecturer

Methodist Theological University

Seoul, Korea

Dieser Aufsatz beschreibt die theozentrische und “nichtnormative”

Christologie bei Sun-Hwan Pyun ist und und legt deren Bedeutung

im religiösen Pluralismus dar. Die Grundthese besteht darin, dass

Pyuns Christologie sowohl von der undogmatischen Hermeneutik des

historischen Jesus bei Ernst Troeltsch, als auch von der theozen-

tischen Christologie bei Paul Knitter beeinflusst ist. Ausgehend von

dieser Grundthese stellt der Autor dar, wie Pyun auf den absoluten

dogmatischen Wahrheitsanspruch der traditionellen Christologie

verzichtet und in Bezug auf die asiatischen Christologien aufs Neue

seine Christologie herausgebildet hat. Zu diesem Zweck-s o l l e n

Entsprechung zu Troeltschs historischer Methode der Analogie, der

Kritik und der Korrelation-die Methoden des Vergleiches, der

Darstellung des Bildungsprozesses und der Kritik und der Kritik auf

diesen Aufsatz angewendet werden. Der Darstellung des Bildungs-

prozesses der Christologie Pyuns wird dabei besonderes Gewicht

beigemessen. Im Blick auf die undogmatische Hermeneutik des

historischen Jesus versteht Pyun nicht mehr als den alleinigen

Christus in der Geschichte, sondern stellt die mannigfältigen Bilder

Christi vor, die die asiatischen Theologen im Hinduismus, im Bud-

dhismus und im Konfuzianismus gefunden und interpretiert zu haben

14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최태관, 변선환의신중심적비규범적그리스도론연구 147

Page 75: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신의음성과책임: 레비나스와데리다의 생각속의키에르케고르적윤리

윤원준

(침례신학대학교조교수)

I. 들어가는말

헤겔의 전체주의와 이성주의적 경향에 비판을 시도했던 죄렌 키에

르케고르(Søren A. Kierkegaard)의 실존주의적 생각들은 현재의 포스

트모던적 상황에서 몇몇의 사상가들에 의해 재조명받고 있다. 그의 생

각은한편으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비

판 대상이 되기도 한다. 키에르케고르의주된관심은 헤겔적 모습의 기

독교에 대한 비판이었기 때문에, 그의 글들의 내용은 종교적인 주제들

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사실 종교성을 떠난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

의를생각한다는 것은불가능할 것이다. 현재의 포스트모던적 사상가들

이 주의를 기울이는 것들 중에 하나가 모던적인 이성에 기반을 둔 기

초주의(foundationalism)와 인간 이성의 능력으로 통일된 전체성을 파

악하고 구조화시킬 수 있다는 전체주의적 시도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이러한 포스트모던 사상가들 중에서도 특별히 종교성에 관심을 가진

두 명의 유대인 사상가는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와

Troeltsch Jesus Christus nicht mehr als ein absolutes, normatives Bild

der Offenbarung Über die anderen Weltreligionen, sondern als den

Gegenstand des christlichen Glaubens im Christentum versteht.

Deshalb ist das Bild Jesu Christi nicht in den andern anderen Welt-

religionen göltig, sondern nur im christlichen Glauben. Dabei ist es

zu vermuten, dass Pyun einen Dialog mit den Kirchengemeinden zu

führen versuchte, um auf diese Weise die Bedeutung der Theologie

der Religion und der Befreiung in der koreanischen Situation des

religiösen Pluralismus bekannt zu machen.

14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149-176

Page 76: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I I. 레비나스생각속의키에르케고르

레비나스의 생각 속의 키에르케고르는 하나의 조직된 형태의 모습

으로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레비나스의 여러저서와 논문 속에

드물게 단편적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레비나스의 키에르케고르에 대

한 반응은 신학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결코 가볍지 않은 중요한 의

미를내포하고있다. 한편으로레비나스는 키에르케고르의생각들을긍

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면에 있어서 레비나스는 키에르

케고르의 주장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레비나스의 반응 중에먼저 살펴볼 부분은 성경의 아케다 사건에 대한

해석과 관련된 것이다. 이 사건을 둘러싼 해석의 차이점들과비슷한 점

들은 레비나스와 키에르케고르의 신, 윤리, 신앙, 그리고 계시에 대한

그들의 이해들을 아주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해석의

차이들은 본 논문의 후반부에서 다루게 될 데리다의 키에르케고르에

대한이해와도연관된다.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글 Fear and Trembling에서 실렌티오

(Silentio)라는 가명을 사용하면서 아케다 사건을 언급한다. 키에르케고

르는 이삭을 묶어서 제물로 바치라는 신의 명령을 신으로부터의 계시

와 같이 이해한다. 그리고 이삭을 바치려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브라

함 자신을 인간의 지평들 너머에 위치시키는 도약을 포함한 믿음이라

는 것이다. 만일인간의 지평속에머문다면, 아브라함은 인간들의 규범

속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화를 시도해야만할 것이다. 이삭을 바

치는이 사건에서, 아브라함은신 앞에서의절대적 의무, 인간의 규범으

로서의 윤리에 대한목적론적중지(teleological suspension), 그리고 가

족 앞에서 지켜야 하는 비밀의 문제들이 있음을 키에르케고르는 지적

한다.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목적론적으로 중지한 윤리는,

즉 아들 죽임을 비도덕적이라고 규정할 윤리는, 플라톤이나 칸트에 의

해서도 이성의 영원한 진리의 영역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나, 헤겔이 인

쟈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생각들이 이전의

키에르케고르가 가졌던 관심들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은 당연해 보이

기까지 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몸 담았던 사회, 문화, 정치, 종교적 구조

를 지탱하는 이성이라는 거대한 힘과 시스템에 도전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키에르케고르와 비슷하게 이들은 또한 신,

초월, 무한, 절대적 타자라는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인간이 만드는 이성

적 구조와 대조되는 초월적 침입과 교란을 생각한다. 이런점에서 이들

의 포스트모던적 생각들이 키에르케고르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도입하

고 평가하는지살펴보는것은흥미로운일이다.

본 논문의 첫 번째 부분은 레비나스의 글 속에 나타나는 키에르케

고르를 다루고 있다. 특히 키에르케고르와레비나스의생각들을 파악하

기 위해서, 그들의 글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좋은 예들 중에하나

가 성경에서 나타나는 아케다(Akedah,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묶음) 사건에 대한 그들의 해석과 가능한 해석이다. 이 사건에 대한 그

들의 해석의 차이를 통해서 레비나스가 이해하는 키에르케고르를파악

할 수 있을것이다. 논문의 두 번째부분은 데리다의 생각속의 키에르

케고르이다. 많은 부분 데리다는 키에르케고르의 생각들을 받아들이지

만, 또한 일정 부분 첨가와 수정을 가하려는 시도를 통해서 그의 해체

적 관심을 보여준다. 데리다의 키에르케고르 분석 속에서도 아케다 사

건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데리다의 아케다 사건에 대한 이해는 키

에르케고르의 분석에 멈추지 않고, 레비나스에 대한비판으로까지나아

간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두 부분(레비나스의 키에르케고르와 데리다

의 키에르케고르)으로단절되는 것이 아니고, 아케다 사건을 둘러싼 세

사람(키에르케고르, 레비나스, 데리다)의 논의가 중첩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15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윤원준, 신의음성과책임: 레비나스와데리다의생각속의키에르케고르적윤리 151

Page 77: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중재되지 않는다. 국가, 사회, 교회, 그리고 소종파(sect) 같은 보편 역시

개인보다높은위치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으로부터의목소리

는 궁극적이며 즉시성(immediacy)을 가지며, 이러한 목소리를 들은개

인은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환경과 윤리적 규범에 침범과 상처가 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즉시성은 두 가

지의 다른 상태에서 경험이 가능하다. 첫 번째 즉시성은 신이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의무나 책임을 전혀 가지지 않는 자신만을 위한 미적

단계의 즉시성이다. 그러므로이러한 즉시성은자신만의 감각적이며육

체적인 욕구충족에 몰입하는 단계의 즉시성이다.5) 이때에 개인은 자신

의 감정과 무드에 의존하며 윤리와 도덕 이전의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는 것이다. 이러한 즉시성을 가진 사람은 그러므로 윤리의 밖에 서 있

다. 또 하나의 즉시성은 아브라함이 보여준 것과 같은 즉시성이다. 이

두 번째 즉시성 역시 윤리와 도덕밖에 있으나, 이 즉시성은 미적 즉시

성이 아니고 종교적 즉시성이다. 미적 즉시성과는 다르게, 종교적 즉시

성은사회적 규범이라는 보편의 적실성을 알고 경험한 후에, 그 보편의

밖에서 있다. 즉 신으로부터의절대적 의무와 사회로부터의상대적 의

무들로부터 도출된 본질적으로 관계적인 개인성을 종교적 즉시성이 제

공한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가 보기에 헤겔의 문제는 신과 사회 사

이의 차이를 붕괴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헤겔의 철학은 성서적인 믿음

과 조화되기 힘들다는것이키에르케고르의판단이다. 아브라함의 행위

에서 키에르케고르가 발견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정당화를 위한 설명은 아

브라함에게 닥친 윤리의 유혹(temptation)이었다. 그러나 설명을 위한

이러한 언어적 유혹에 포함된 보편을 아브라함은 계시의 즉시성으로

넘어섰다는 것이 키에르케고르의 생각이다.6) 신의 명령으로 아들을 죽

간들의 규범들과관습들을 일컫는 단어로 Sittlichkeit로 불렀고, 니체가

관습들로서의 도덕(the morality of mores)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1) 키

에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죽임으로 어기게 될 윤리는 보편(the

universal)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윤리는 한 명의 개인이 자신이 한 부

분으로 속해 있고 그의 정체성을 가져올 사회라는 전체 구조망의 규범

이기 때문이다. 만일 사회라는 보편 속에서 중재가 가능하다면, 윤리의

어김도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비록 자신들의 자식들을 죽여야 했지만,

국가, 사회라는 보편 속의 중재에 의해서 위로를 가질 수 있었던“비극

의 영웅들”로서 아가멤논(Agamemnon), 제프타(Jephthah), 그리고 브

루투스(Brutus)를 키에르케고르는 언급한다.2) 이러한 보편의 중재는 위

로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동에 대한 정당화도 제공한다. 그러므로 가족

들과 사회 구성원들은 비록 윤리의 어김(자식을 죽임)을 통해서 고통

을 경험하지만, 그러한 윤리 어김 행위를 이해할 뿐 아니라 정당한 행

위였다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아브라함

의 행위는 보편, 즉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어떠한 정당성도 인정받지 못

하는 비이성적이고 말도 되지않는완전한 광기로 세상에 비칠 수밖에

없는 행위이다.3) 아브라함이 윤리를 지키기를 중지하는 행위를 통해서

나타나는 두 가지 의미를 키에르케고르는 언급한다. 첫 번째는 믿음에

는 신을 향한 절대적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간의 관습과

규범으로서의 윤리는 무효화되거나 거절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인

것으로 포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4) 이러한 키에르케고르의생각은 개인

을 보편보다 더 높은 위치에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은 보편으로

15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윤원준, 신의음성과 책임: 레비나스와데리다의생각속의 키에르케고르적윤리 153

1 ) Kierkegaard, Søren, Fear and Trembling, and Repetition, vol 6, Kierkegaard’s

Writings, ed. and trans. Howard V. Hong and Edna H Hong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3), 54-55. Merold Westphal, Levinas and Kierkegaard in

Dialogue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08), 23에서재인용.

2) Kierkegaard, 58-59, 62. Westphal 23에서재인용.

3) Kierkegaard, 17, 35-36, 46.

4) 앞의책, 70-71. Westphal 23에서재인용.

5) Kierkegaard., 82.

6) 앞의책, 115. Westphal, 24에서재인용.

Page 78: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라는 유혹을 넘어서서, 끈기 있게 신의 두 번째 음성인 윤리의 규범으

로 돌아옴이 아케다의 주제라고 레비나스는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레

비나스의주장은 얼굴에 대한그의이해에서비롯된다.

레비나스의 윤리철학에서 인간의 얼굴은 무한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얼굴은 침범할 수 없는그 무엇이라고레비나스는 선언한다. 사실 인간

의 얼굴 중에서 눈과 같은 부분은 전혀 보호받지 못하며 인간의 신체

에서 가장 많이 노출된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에서의 눈은

소유하고자 하는 폭력에 절대적 저항을 나타낸다고 한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이러한 절대적 저항은 그 속에 살인을 원하는 상대의 유혹을

드러내 보인다. 타자는 누군가 죽이고자 시도할 유혹을 가지게 되는유

일한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죽이고자 하는 유혹과 살인의 불가능함이

얼굴의 모습을구성한다고레비나스는생각한다. 그러므로얼굴을 보는

것은“살인치 말라”는 음성을 이미 들은 것이 된다는 것이다.9) 레비나

스에 의하면, 인간의 얼굴은 말한다.10) 그러므로 특히 살인자는 상대의

얼굴을 보는순간이미“살인치말라”는 명령을 들어버렸다는것이다.11)

인간의 얼굴이 살인의 유혹과 살인해서는 안된다는 명령을 동시에 보

여주는 것이라면, 아케다 사건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지 않고 윤

리로 되돌아 온 것이라는 레비나스의 해석 속에서 이삭의 얼굴이 중요

한 구실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비록

레비나스가 아케다 사건과 연관해서 이삭의 얼굴 속에서의 절대적 타

자가 신의메신저였다는주장을 명시적으로 하지는 않지만,“신은 자신

을 그의 흔적에 의해서 드러낸다”12)는 주장과 또한“흔적은 타자의 얼

일 수 있는가? 키에르케고르의대답은“그렇다”일 것이다.

아케다 사건에 대한 레비나스의 해석은 몇 가지 부분에서 키에르케

고르의 해석과 날카로운 대조를 이룬다. 키에르케고르가 보편으로서의

윤리에 앞서는 종교적 의무를 강조한다면, 레비나스는 타자 속에 드러

나는 윤리적 의무를 강조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기 위해서 들었

던 칼을 신의 제지에 의해서 멈추는 순간이 이 이야기의 절정의 순간

이라면, 키에르케고르에게이 순간은 신에 의해서 아브라함의순종하는

믿음이 인정받는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레비나스에게 그 순간은 살인

치 말라는 신의 명령으로서의 진정한 윤리적 규범으로 돌아간 순간이

라는것이다. 윤리는 보편이며, 그러한 보편속에서 개인의 단독성은사

라진다는 키에르케고르의주장에 대해서레비나스는의문을 표한다. 레

비나스에 의하면, 윤리는 타자들을 향한 책임 의식이며, 이러한 윤리는

‘나’와 마찬가지로‘너’를 보편 속에 사라지게 하지 않으며,‘너’를 단

독화하며,‘너’를 유일하고 독특한 한 개인으로 여기며 유지한다는 것

이다.7) 아마도 키에르케고르는 보편으로서의 윤리의 단계를 넘어가기

원하기 때문에, 타자들을향한책임으로서의윤리의 단계를 키에르케고

르가 경험해보지 못한것 같다고 레비나스는 지적한다.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신과 대면함으로써, 윤리를 넘어서 종교적 단계로

들어갔다고 하지만, 레비나스는 그 반대로 해석하기를 원한다. 레비나

스에 의하면, 아브라함이(이삭을 바치라는) 첫 번째의 신의 음성에 복

종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살인치 말라는) 두 번째 신의음성

을 듣기 위해서 첫 번째 음성에 복종해야 하는 유혹으로부터 충분한

거리를 두었다는 것이 이 아케다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레비나스는 주

장한다.8) 즉 아브라함이 신의 명령에 따라서 윤리를 넘어서는 믿음의

행위를 보인것이이야기의 주제가 아니고, 윤리를 어기고 아들을 죽이

15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윤원준, 신의 음성과 책임: 레비나스와데리다의생각속의키에르케고르적윤리 155

7) Emmanuel Levinas, Proper Names, trans. Michael B. Smith (Stanford, Calif: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4), 76-77.

8) 앞의책, 77.

9 ) Emmanuel Levinas, Difficult Freedom: Essays on Judaism, trans. Sean Hand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0), 8.

10) Emmanuel Levinas, Totality and Infinity, trans. Alphonso Lingis ( P i t t s b u r g h :

Duquesne University Press, 1969), 66.

11) 앞의책, 303.

1 2 ) Emmanuel Levinas, “The Trace of the Other,” Deconstruction in Context, e d ,

Mark C. Taylor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6), 359.

Page 79: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스는 이러한 모습으로 드러남을 k a q a u v t o v라고 표현한다. 그의 k a q

auvtov적인 드러남 혹은 계시는 이전의 플라톤, 칸트, 헤겔, 혹은 후설적

인 인식론이나 현상학을 거부한다. 레비나스는 객체를 재현(represent)

하는주체를 탐구하는 현상학 대신에, 다른 주체앞에 대면한 주체로서

의 현상학을 시도하기를 원한다. 타자의 얼굴은 타자의 절대적 타자성

을 무한성으로서 표현하는데, 이러한 표현은 재현(representation)을 통

한 어떠한 상대화도 능가한다고 한다. 주체가 타자를 객체의 하나로서

개념화시켜서소유하고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게, 오히려 타자의 얼굴로

부터의 표현혹은 계시는 이 모든개념화를 능가한다는 것이다. 레비나

스가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의 주체가 타자를 관찰하

고 바라보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폭력을 행하려는 주체가 상대

를 본다면, 그것은 사실은 상대의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고, 상대의 자

유를 자신의 힘과 야만성을 가지고 보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상

대의 진실한 얼굴을 자신이 추구하는 힘과 동일화시키고 말았다는 것

이다. 그러므로 내가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상대의 얼굴이

주체를 향해서 저항하고 있다고 한다. 상대의 얼굴이 주체를 향해 보

며, 말을걸고 있다는 의미이다.17) 또한 레비나스에 의하면, 타자의 얼굴

은 매개적이거나 중재적인(mediated) 과정 없이 즉시적으로( i m m e-

diate) 드러낸다(혹은 계시한다). 이러한 레비나스가 말하는 얼굴의 계

시적 드러냄은 그러므로 플라톤이나 칸트의 회상에 의한 지식 같은인

식론적 방법론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18) 키에르케고

르의신은 인격적으로 직접 말을걸어오는 신인반면에, 레비나스의신

은 인간의 얼굴을 통해즉시적으로드러내는신이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의 신 이해 속에서 레비나스가 긍정적으로 평

가하는 부분도 있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키에르케고르의 신은 오직 핍

굴 속에 있는 신의 근접성이다”13)는 레비나스의 언급은“신은 타자의

얼굴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는 주장을 가능케 한다.14) 신이 이삭의

얼굴 속에서 자신을 아브라함에게 드러내었다는 것이 레비나스의 해석

이라고 가정해 본다면, 신은 이삭의 얼굴 속에서“살인치 말라”는 윤리

적 명령을 한 것이 된다. 이러한 가정은 레비나스의 다른 저서들 속의

주장들과 일관성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가정에 근거한 레비나

스의 아케다 해석은 키에르케고르의 주장과 전혀 다른 방향을 취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아브라함이 경험하고 뿌리친 유혹이 아들을 죽이

라는 신의 명령을 거부하고 윤리의 보편으로 돌아가는 것이 키에르케

고르의 해석이었다면, 아브라함이 경험한 유혹은 아들을 죽이는 살인

자체였다는 것이 레비나스의 해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삭의 얼굴은

신의 계시의 모습이 될 것이다. 이러한 레비나스적인 해석은 계시와 믿

음에대한이해역시키에르케고르적인이해와 다름을 요구한다.

키에르케고르에게 계시란 인격적인 신으로부터의 음성이다. 그러나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의 얼굴로부터의 계시는 신학적인 의미가 아니

고 현상학적인 의미이다.15) 레비나스에 의하면, 얼굴로부터의계시는 절

대적 경험인데, 이것은 하이데거가 말하는 탈은폐(disclosure)가 아니

다. 이 계시의 순간에는 그것을 표현하는 자와 표현 그 자체의 일치가

일어나는데, 그 때에타자의 드러남이일어난다는것이다. 즉 타자의 얼

굴이 그 형태를 넘어서 드러내는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이다.16) 레비나

15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윤원준, 신의음성과 책임: 레비나스와데리다의생각 속의키에르케고르적윤리 157

13) Jill Robbins, Altered Reading: Levinas and Literature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9), 31. Jeffrey Stolle, “Levinas and the Akedah: An Alternative

to Kierkegaard,” Philosophy Today (Summer, 2001), 139에서재인용.

14) Stolle, 139.

15) Richard A. Cohen ed. “Dialogue with Emmanuel Levinas, ”in Face to Face with

Levinas (Albany: SUNY Press, 1986), 14-15. 레비나스는 여기서 자신의 시도를 현

상학적이라고 말하지만, 후설의 현상학의 주장들은 특히 초월적 ego 받아들이지 않

고 비판한다.

16) Levinas, Totality and Infinity, 65-66.

17) Emmanuel Levinas, Collected Philosophical Papers, trans. Alphonso Lingis

(Dordrecht: Nijhoff, 1987), 19.

18) Levinas, Totality and Infinity, 64-65.

Page 80: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만 퇴각함으로써 드러나는 신이다. 아브라함에게 직접 나타나는 신 보

다, 이삭의 얼굴속에서 퇴각함으로써드러나는신이다. 신의무한을 직

접적으로 알아차리기에 앞서서, 인간의 얼굴 속의 무한이 선행 조건이

되어야 된다고 레비나스는생각한다. 아브라함에게직접 말을걸어오는

신이 아니고 이삭의 얼굴을 통해서 드러나는 신이 레비나스가 말하는

신이다. 키에르케고르의 신은 나와 타자(이웃) 사이에 있어서, 신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레비나스의 생각 속에서는 나와 이웃과의 올바른 그리고 정의

로운 관계를 통해서 신의 초월성과 무한성을, 다른 말로 한다면 신의

흔적을, 감지할 수 있다. 둘 사이의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둘 사

이에는 공통점도 발견된다. 두 사람에게 신이라는존재는 이 세상의 구

조와는 대칭적 영역에 위치한다. 키에르케고르의신은세상의 보편적이

고 이성적인 윤리구조를 뛰어넘는 모순적 명령을 하는 분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을 향한 인간의 반응에는 믿음의 도약이라는 불가능해 보이

는 반응이 요구된다. 세상의 요구와 세상의 이성적 이해와는같이 하기

힘든모습이다. 레비나스의신은절대적 타자일 뿐 아니라, 절대적 교란

자(absolute disturbance)23)이기도 하다. 이러한 절대적 교란은 물론 인

간 세상의 구조를 지탱하는 이성적 구조에 대한교란을 의미한다. 인간

의 얼굴을 통해서 드러나는 절대적 교란자의 음성은“살인치 말라”는

명령이 될 것이다. 이 세상에 반대되는 신적이고 절대적 타자의 움직임

은, 세상에서 보기에는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모순(paradox)일 것이

고, 레비나스가 말하는 수수께끼(enigma)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키에르케고르와 레비나스의 생각들은 서구의 이성중심주의적 구조에

대한 정당한 반발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신의 명령으로 아들을 죽일

수 있는가? 레비나스의 대답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그럴 리 없다. 신

은 인간의 얼굴을 통해서‘살인치말라’고 명하신다.”

박받고 알려지지않기위해서 드러나는(계시하는) 신이다. 오직사냥당

함으로써 자신을 계시하며, 그러한 고독 속에서 절망하며 절대적 겸손

을 보이는 주체가 진리의 장이라는 것이다.19) 그러므로 키에르케고르의

신은 겸손이라는 특정한 속성을 가진 신일뿐만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

나 현재성에 의해서도 결정될 수 없는 진리의 길이라고 레비나스는생

각한다. 이러한 신은확실성에의해서도가늠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

므로 이러한 진리로서의 신은 현상으로 환원될 수도 없고, 유령처럼 출

현하는 모습도 아니다. 키에르케고르가 그의 생각 속에서 서술하는 예

수를 통한구원드라마만제외한다면, 레비나스가보기에는 키에르케고

르는 보편적으로 분명한 진리의 이름으로 핍박받는 모습의 진리에 관

한 생각을 제공하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으면서드러나는 것과 같은수

수께끼(enigma)의 형태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20) 이러한 점은키에르

케고르의 생각중에서 레비나스가 호의적으로 평가한 부분이다. 레비나

스가 생각하는 무한은 마치 작별인사 하듯이 퇴각하면서 드러나는데,

마치 암행속에서 불이 꺼지듯이 대면한 인간의 얼굴 속에서 퇴각한다

는 것이다. 그런데 키에르케고르가 이러한 무한이 드러나는 방식의 수

수께끼적 움직임을 감지했다고 레비나스는 평가한다.21) 그래서 레비나

스에 의하면, 키에르케고르적인 진리에 대한 이해(핍박받는 진리에 관

한 내용)는 이사야서57장 15절(신은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

께 거한다)에서 언급된 것처럼, 단지 종교적 내용의 위안일 뿐 아니라

초월성에 대한 근원적 형태라고 한다.22) 이러한 부분은 레비나스가 키

에르케고르와 동의하는부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비나스의 신은 키에르케고르의 신과는 일치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커 보인다. 레비나스의 신은 인간의 얼굴 속에서

15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윤원준, 신의음성과 책임: 레비나스와데리다의생각속의키에르케고르적윤리 159

19) Levinas, Collected Philosophical Papers, 66

20) 앞의책, 67.

21) 앞의책, 72.

22) 앞의책, 67. 23) 앞의책, 64.

Page 81: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뜻대로 행동할 때에, 신은 부재하며, 숨겨져 있으며, 침묵 속에 있으며,

자신의 이유와 설명을 인간에게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과 떨림

이 발생한다는 것이다.26) 만일 신이 현존하며, 모든 이유를 제공하는 신

이라면, 그러한 신은신이아닐것이며, 신을절대적 타자(wholly other,

tout autre)로서 여기지도 못할것이라고 데리다는 주장한다. 비록 존재

신론적인 신의 초월성은 아니지만, 신의 초월성은 데리다의 생각 속에

서 강하게 유지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전적 타자로서의 신은비

밀이 전부 공개되는 것이 아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바울의 기록을 인용

하며 말하는 두려움과 떨림은 신의 부재와 비밀 앞에서 인간의 믿음의

행위의 모습이라는 것이 데리다의 생각이다. 자신의 이유와 비밀을 인

간에게 제공하지 않는 신에 대한 바울의 기록 내용 속에서 그의 에세

이 주제(“두려움과 떨림”)를 뽑아낸 키에르케고르의 선택은 데리다가

보기에는적당한 선택이다.

키에르케고르가 믿음 행위의 대표적인 예로 언급하는 것이 아브라

함과이삭사이에 일어난 사건이다. 데리다에 의하면, 이삭을묶는사건

은 이해할 수 없고, 감추어져 있으며, 부재하며, 비밀스런 신의 신비한

유대적인 경험이다. 이 사건 속에는 모든 것이 비밀 속에 감추어져 있

다. 신은 이삭을 죽여서 바쳐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아브라함도 이유를 묻지 않고 침묵한다. 그리고 이 사건을 언급하는키

에르케고르 역시 그의책에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요하네스데

실렌티오(Johannes de Silentio)라는 필명 속에 자신을 감춘다고 데리

다는 지적한다. 가명과 필명은 자신을 숨기며, 침묵을 지킨다. 여기서

데리다는 자신을 감추는 가명과 필명이 책임과 어떠한 연관을 가지게

되는지를 살피기 원한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실명으로 기록하고 사

인하는 것이 책임과 연관될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데리다에 의하

면, 가끔은 필명과 가명을 통해서 진정으로 자신이 말하고 원하는 것을

I I I. 데리다생각속의키에르케고르

데리다가 그의『죽음의 선물』(The Gift of Death)에서 키에르케고르

에 대해서 언급할 때에 주목하는 부분은 믿음의 행위에 관한 것이다.

데리다에 의하면, 믿음은 이유와 설명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

한다. 이러한 데리다의 이해는 키에르케고르의 믿음에 대한 이해와 다

르지 않다.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에세이『두려움과 떨림』(Fear and

Trembling)에서 사도 바울이 그의 빌립보서2장 12절에서 말하는“두

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구절의 내용을 암시적으로 포

함시켰다고 데리다는 생각한다.24) 데리다에 의하면, 빌립보서의 이 내용

은 구원에 관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신을 알고서 자신의 구원을 위해

서 행동하라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신은, 자신의 이유들과

계획들을 인간에게 알리지도 않거니와 알릴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그

러므로 신의손 안에 있으며 신의 시야에 노출된 인간은 삶과죽음, 구

원과 유기에 대한 이유와 결정들을 알지 못한 상태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다. 신의 이유와 결정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두려움과 떨림을경험한다. 인간이 접근할 수 없

는 신의 비밀 때문에, 인간은 신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을 경험한다고

데리다는 주장한다.25)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그의 제자들에게 구원을 이

루기 위해서 행동할 때에, 그들이 선생의 현존앞에서가 아니라 선생의

부재 속에서 행동하라고권면한다고데리다는 지적한다. 보거나 알거나

이유를 가져서가 아니라,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그리고 부재 가운데서

행동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즉 철저한 고독 가운데서, 그리고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마치 하이데거가 말하는“나만의 죽음 경험”과 같

은, 행동을 바울은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신에게 복종하고신의

16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윤원준, 신의음성과 책임: 레비나스와데리다의생각속의키에르케고르적윤리 161

24) Jacques Derrida, The Gift of Death, trans. David Wills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5). 56,

25) 앞의책. 26) 앞의책, 57.

Page 8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이다. 신과 자신사이의 비밀 때문에 가족을 배신하는 아브라함의 결정

은 책임(responsibility)과 결정 순간의 자신만의 단독성(singularity)으

로 들어가게 된다고 데리다는 생각한다. 결정 순간의 단독성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언어로 자신의 비밀을 전달하

는 순간, 그 사람은 단독성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비밀의 발설은 그러

므로자신만의 결정의 가능성과 결정의 권리를 잃게한다는 것이다. 키

에르케고르의 주장처럼, 모든 결정은 자신만의 단독성과 비밀과 침묵

속에서 가능하며, 말로서 옮겨지는순간단독성은사라지고보편성으로

변환되어 버린다고 데리다는 생각한다.29) 데리다에 의하면, 단독성의 잃

어버림은 자신만의 자유와 책임을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

러므로 무한한 책임은 침묵과 비밀에 묶인다는 이러한 논리는 일반적

인 이해와는 상반되는 것이다. 즉 이러한 모습은 스캔들이며 모순

(paradox)이다.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윤리적 요구는 보편성(gener-

ality)에 의해서 규정되며, 그러한 보편성은 말함(speaking)을 포함하는

책임성을 형성한다.30) 아브라함의 비밀유지는 키에르케고르가 언급한

보편적 윤리성에 해당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무책임과 비윤리적

범주에 해당될 것이라는 것이데리다의 생각이다. 신을 향한책임은 보

편적 무책임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모습을 책임의 아포리아(the aporia

of responsibility)이라고 데리다는 부른다.3 1 ) 왜 이것이 아포리아

(aporia)인가? 데리다가 이러한 모습을 아포리아라고 부르는 이유는,

책임을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 규정된 책임의 개념에 동의하지

못하는 위험을 항상 수반하기 때문이다. 일반적 의미의 책임을 말하는

순간신 앞에서의책임은 말하지 못하는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모

더 진정으로 그리고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27) 침묵과

숨김 그리고 비밀속에 책임이 가능함을 데리다는 말하고자 한다. 키에

르케고르의 필명 속의 숨김과 비밀이 어떻게 데리다가 말하고자 하는

책임 그리고 믿음과 연결되는지는 이삭을 묶는 사건에 대한 데리다의

논의를 좀 더 살펴보아야 한다. 데리다에 의하면,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글에서 이삭의 질문에 대한 아브라함의 이상한 대답에 주목하고 있다

는 것이다. 희생 제물로 쓸 양이 어디에 있느냐고 이삭이 질문할 때에,

아브라함은신이 주실것이라고 대답한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대답은

하지만 동시에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대답을 회피하며 침묵하지는 않

지만, 동시에 거짓을 말하지도 않는다. 또한 아브라함은 비밀에 관계하

고 있지만, 이 비밀은 이중적 비밀임을 키에르케고르는그의 글에서 지

적한다. 그 비밀은 신과아브라함사이에 있는비밀임과동시에, 아브라

함과 그의가족 사이에 존재하는 비밀이다. 이삭을 바쳐야 하는 이유는

신과 아브라함 사이에 있는 비밀이고, 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의 행위

는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 사이의 비밀이다. 아브라함은 가족으로부터

비밀을 지켜야 하고, 그 비밀의 이유는 또한 신으로부터 듣지 못한 비

밀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대답하지만, 비밀을 그리고 비

밀에 관해서는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행위는 데리

다가 보기에는 윤리적 기준을 거스르는 행동이다. 데리다는 여기서 키

에르케고르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따라간다.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윤

리적 지고한 모습은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그리고 공

동체에게 묶이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행동은 가족과 공동체를

배신하는 모습이 된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와 마찬가지로 데리다는

생각하기를, 아브라함은 비밀을 지킴으로써윤리를 어긴것이다.28) 데리

다의이러한 주장은 레비나스의 윤리에 대한이해와는 전혀다른 모습

16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윤원준, 신의음성과 책임: 레비나스와데리다의 생각속의키에르케고르적윤리 163

27) 앞의책, 58.

28) 앞의책, 59.

29) 앞의책, 60.

30) 앞의책.

31) 앞의책, 61. 어떠한 구조를 만드는 순간어긋남이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을 데리다는

아포리아라고 부른다. 이것을 적당한 말로 번역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포리아라는

단어는어긋남, 난점, 난맥, 모순등 여러의미를 포함할수 있을것처럼 보인다.

Page 8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의 영역을 제공한다고 데리다는 생각한다.34) 누가복음14장 26절에 대

한 키에르케고르의 해석 역시 데리다는 받아들인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고자 하면서, 부모와 가족과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을 키에르케고르는신 앞에서의 책임

과 의무를 설명하기 위해서 인용한다. 데리다 역시 가장사랑하는 것을

미워해야만 하는상황을“죽음의선물”을 바쳐야만하는모습으로이해

한다.35) 데리다에 의하면, 키에르케고르는사랑과 미움사이의 일반적인

구분을 거부한다. 죽음의 선물의 경험은 순간의 결정이지 시간을 두고

숙고함으로써 잡을 수 있는 것이아니라는 것이다. 순간에 대한데리다

의 강조 역시 키에르테고르의 실존주의적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키에

르케고르에 의하면, 결정의 순간은 광기(madness)이다. 이러한 키에르

케고르의 생각처럼, 순간은 현존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데리다 역시주

장한다.36) 이러한 데리다의 이해들은 키에르케고르를 온전히 따라가고

있는모습이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종교적 믿음 때문에 보편적 윤리를

완전히 희생시켜야만 한다고 데리다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즉 윤리

나 법이 사라진 무법 세상을 데리다가 지지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키

에르케고르가 신 앞에서의 책임과 가족 앞에서의 책임의 사이의 갈등

과 모순성을 지적하는 것이 일차적인 관심이었다면, 데리다는 이러한

책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좀 더 일반화시키기를 시도한다. 아

브라함이 겪은 것과 같은 책임들 사이의 갈등과 모순성은 다른 모든

종류의 타자들과의 관계속에서도동일하게일어난다는것이다. 책임과

의무는 나 자신을 나와는 다른 타자에게 묶는데, 절대적 독자성 속의

나를 타자로서의 타자(the other as other)에게 묶는다고 한다. 신을 타

자들 중에서 절대적이고 유일한 타자의 이름으로 볼 수 있다면, 그 외

든 조직과 모든 구조 속에 어긋남과 아포리아가 내재되어 있음을 드러

내고 말하는 것이 해체의 목적이라면, 데리다는 이삭을 바치는 사건을

통해서 책임을 규정하는 구조혹은 윤리 속에 어긋남이 있음을 말하고

자 시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의 명령(신을 향한 책임)과 가족

을 향한 책임이 서로 충돌하는 모습으로 이해하는 키에르케고르의 해

석이데리다의해체적 시각과 잘 어울리는것처럼 보인다.

데리다는 두 가지 다른 모습의 책임을 두 부류의 서로 다른 개념들

과 연결시킨다. 가족을 향한 일반적 책임은 회계(accounting), 일반성,

그리고 대체(substitution) 등을요구하는책임의 모습이고, 신 앞에서의

책임은 유일성, 절대적 단독성, 대체불가능(nonsubstitution), 침묵, 그리

고 비밀 등을 요구한다. 두 번째의 절대적 책임은 일반적 의미의 책임

에 포함될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책임이라고 불리기가 힘들다고데리

다는 생각한다. 키에르케고르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는 첫 번째 책임으

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며, 생각될 수 없고, 이해될 수도 없는 것이

기 때문에 비책임 혹은 무책임(irresponsibility)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32) 이러한 무책임의 윤리는 인간과 사회를 향해서 셈(account)을 하

지 않고 침묵과 비밀을 유지한 채, 자신을 드러내지도 드러낼 수도 없

다고 데리다는 주장한다. 아브라함은신 앞에서는 자신이 신 앞에있음

을 드러내지만, 사람들과 가족들 앞에서는 자신을 드러내기를거부했다

는 것이다.33) 일반적 의미의 책임과 의무의 법을 행하는 것은 절대적

의무를 유기하는 것이라는 키에르케고르의 주장에 데리다는 동의한다.

신을 향한 절대적 의무는 빚을 갚는 형태로서의 의무를 넘어서는 선물

과 희생과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데리다는 이러한 절대적 의무를 믿

음의 단독성(the singularity of faith)과 연결시킨다. 또한 셈과 빚이 관

계하지 못하는 신 앞에서의 절대적 의무는“죽음의선물”(gift of death)

16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윤원준, 신의음성과 책임: 레비나스와데리다의생각속의 키에르케고르적윤리 165

32) 앞의책, 61.

33) 앞의책, 62.

34) 앞의책, 63.

35) 앞의 책, 64.

36) 앞의책, 65.

Page 84: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이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모든 타자는 모든 타자이다”라는 문장은, 전

적인 타자(the wholly other)로서의 어떠한 것이 있는 어떠한 곳에서든

지 전적인 타자로서의 신이 발견될 수 있으므로, 어떠한 다른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는 신적인 타자성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내 주위의 사람들의 관계에서 그들의 타자성과 초월성과 비밀스러움은

마치 신과의 관계에서 내가 경험하는 타자성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데

리다의 이러한 주장은 범신론적이거나 일원론적인 주장과는 거리가 멀

어 보인다. 오히려 키에르케고르가주장하는 신의초월성을유지하면서

동시에 레비나스적인 윤리의 보편성을 어느 정도 도입하려는 시도인

것처럼 보인다. 즉 아브라함이경험했던 신 앞에서의 책임과 가족을 향

한 책임사이의 이러한 갈등과 모순적인경험은, 신과 인간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다른 타자로서의 인간들과의 관

계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겪는 모순에 빠지고야 만다는 것이다.40) 키

에르케고르가 신적 명령보다 다른 인간을 향한 보편적 윤리를 경시하

였다는 지적은 레비나스에게서이미시작되었다. 데리다 역시레비나스

의 이러한 지적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41) 초월적인

신으로부터의 직접적인 명령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레비나스의 생

각과 데리다가 같이 가기는 힘들지만, 단지 신 앞에서 뿐만 아니라 모

든 다른 타자와의 관계에서 윤리적 모순과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어느정도레비나스의생각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결정의 순간마다 실존적 인간의 단독성을 말하는 키에르

케고르의 주장은 데리다의 이러한 생각을 통해서 강화될 수 있어 보인

다. 모든 타자와의 관계에서 개인이 취해야 할 결정의 순간은(아브라

함이경험한 것과같은) 쉽지않은모순적 결정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데리다에 의하면, 믿음이라는 것은 앎과 확실함으로부터

에 여러 타자들과의 관계 역시 고려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절대

적 타자로서의 신에게 책임이 있다면, 나는 다른 수많은 타자들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데리다는 생각해보고자 시도한다. 나의 절대적 단독성

(absolute singularity)은 다른 타자의 절대적 단독성에게 묶이는 책임

이 있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자신의 이러한 생각을 다소 해독하기어려

워 보이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한다:“모든 타자는 모든 타자이

다”(every other (one) is every (bit) other, tout autre est tout autre) .

“모든 다른 존재들은 완전히 혹은 전적으로 타자이다”라고 해석될 수

도 있을 것이다.37) 모든 존재 속의 타자성을 인정할 때에, 하나의 타자

를 향한 책임은 또 다른 타자를 향한 책임과 모순과 갈등에 빠질 수밖

에 없음을 데리다는 말하고자 한다. 그래서 하나의 타자를 향한 책임을

행할 때에, 오직 일반적으로 말하는 윤리를 희생시킴으로써만, 즉 다른

모든 타자들을 향한 책임들을 희생시킴으로써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타자들을 다른모든 타자들을 위해서 희생제물

로 바치는 일을매일매 순간하고있다고 말할수 있는것이다.38) 여기

서 데리다는 키에르케고르의 윤리와 책임에 대한 주장들을 넘어서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윤리를 뛰어넘는 종교성과 신 앞의 책임이 키에르

케고르가 다루기를원했던 중요한 점이었다면, 데리다에게는모든인간

행동과 결단의 순간에 나타나는 책임의 불가능성을 통해서 윤리라는

구조 자체의 모순과 어긋남을 보여주고자 한다. 모든 존재들 속의타자

성을 말하면서 데리다는 키에르케고르적인책임과 의무를 뒤흔들어 놓

을 수 있는 것 뿐 아니라 동시에 키에르케고르의 생각들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39) 데리다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나에게 타자인 모

든 사람 각각은 그 자신의 절대적 독자성과 불가침성과 초월성(나의

ego 속으로 현존하지 않음)으로인해서 무한하게 타자(infinitely other)

16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윤원준, 신의음성과 책임: 레비나스와데리다의생각속의키에르케고르적윤리 167

37) 앞의책, 68.

38) 앞의책, 69.

39) 앞의책, 78.

40) 앞의책, 78.

41) Emmnuel Levinas, Nom propres (Montpellier: Fata Morgana, 1976). Derrida, The

Gift of Death, 78에서재인용.

Page 85: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와 설명을 제공하는 전달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런 것들은 믿음과 상

관이 없는 것이다. 데리다와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우리는 믿음의 비

밀을비밀로서반복할 수 있을뿐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여기서 말하는

반복이란 재현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은 쉽지않은것

이 확실하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반복으로서의 믿음이 아닌다

른 어떤 모습의 믿음이 가능할 수 있을까? 만일 이들이 말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라면, 교조주의적이고 이성적인 구조로서의 신학이라는

기초에 의해서 지탱되는 기독교는 흔들려야만 되고 해체되어야 할 것

처럼보인다.

데리다의 판단에 의하면, 레비나스 역시 신의 무한한 타자성과 모든

인간속의 무한한 타자성의 구별을 원하고 있다. 이러한 레비나스의구

별은 레비나스의 생각과 키에르케고르의생각과의 차이를 좁혔다는 것

이 데리다의 지적이다. 데리다에 의하면, 그 결과로 키에르케고르가 말

하는 종교적인 것과 레비나스가 주장하는 윤리적인 것 사이의 차이역

시 줄어든 것이라는 것이다. 둘 사이의 차이가 줄어든다면, 키에르케고

르는 레비나스가 말하는 윤리가 절대적 단독성의 영역뿐만 아니라 보

편성의 영역에도 해당된다는 것을받아들일 수 있을것이고, 반면에 레

비나스는 신의 무한한 타자성과 인간의 무한한 타자성을 분리시켜야만

할 이유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이 데리다의 생각이다. 레비나스의 윤리

는 이미 종교적이라는 것이다.44) 이렇게 둘 사이의 간격을 좁히기를 원

하는 데리다는 그러므로 레비나스가 말하는 윤리적 규범의 효력을 인

정해야만한다고 생각한다. 이삭을 죽이려는 아브라함은 살인자로 지목

되고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데리다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

은 이 주장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브라함을 살인자로 판단하는 윤리적

체계는 그 자체가 무효하다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불완전하다는것

을 데리다는지적하고자 한다. 하나의 윤리적 체계에 의해서 구성된 사

오는 것이아니다. 아브라함이 신으로부터 이유를 알지못하고 비밀속

에서 이삭을 묶어야 했던 것처럼, 그리고 비밀속에서 가족으로부터 단

절된 것처럼, 절대적 두려움과 비밀속에서의 행동은 다른사람들과 나

눌 수 있는 것이아니라고 데리다는주장한다. 키에르케고르 역시믿음

의 결단은 절대적 단독성 속에서만 행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

므로 아브라함의 예를 볼 때에 믿음은 그 자체가 무엇인지 확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을 이해하

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은 아브라함처럼 행동하는 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고 데리다는 지적한다.42) 데리다는 키에르케고르의 반응과 같

은 태도밖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믿음은 그러

므로 확실성이 결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비밀 속에

서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비밀은 나누거나 전달될 수 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믿음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 데리다는 말한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듯이 믿음은 그 세대마다 처

음부터 다시그 순간시작하고 반복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만일 믿음이

역사 속에서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전달된다면, 그것은 비밀로서 남아

있는 비밀로서의 비밀(a secret as a secret that remains secret)로서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데리다는 주장한다.43) 데리다의 이러한 주장

은 신앙생활에서믿음이라는 것을 다시생각하게 만들수 있다. 아브라

함의믿음의 행위는무엇을(어떠한 내용을) 믿는것이아니었다. 그리고

그럴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비밀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무

엇을 믿으라고 전달받아서 되는것이 아니었다. 믿음의 결단은 각 개인

이 자신만의결정을 해야되는데, 누가대신해 줄 수 있는것이아니며,

모든 이유와 설명을 가지고서 하는것도 아니다. 이유와 설명을 가졌다

면 믿음이라는 것은 더 이상 필요 없을지 모른다. 교리와 신학이 이해

16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윤원준, 신의음성과 책임: 레비나스와데리다의생각속의키에르케고르적윤리 169

42) Derrida, The Gift of Death, 79-80.

43) 앞의책, 80. 44) Ibid., 84.

Page 86: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하고자 효과적으로 그리고 올바르게 시도한다. 신학적 표현을 빌린다

면, 우상화는 안된다는것이다. 이러한 해체적 시도는“불가능성을향한

끝없는 열정”이라고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신의 명령으로 아들을 죽

일 수 있는가? 데리다의 대답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확정적 생각 구조에 기초한 결정도 완전치 않고

모순(aporia)속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tout autre est tout

autre이기때문이다.”

I V. 나가는말

키에르케고르, 레비나스, 그리고 데리다는 그들이 속한 구조들 중에

서 특히이성적 구조에 대한 비판적인입장을 공유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성적 구조를 뒤흔들고 침입하는 것을 초월적인 영역으로 상정한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초월적 영역을 종교적이고 존재론적인 신과 동일

시하고, 어떤사람은 절대적 타자혹은무한으로표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존재론 혹은 존재신론과는 상관없는 차연과 같은 단어들을 쓰

기도한다. 그러나 세 사람은 동일하게 인간이성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힘과 시스템에 반발하는 모습을 정당하게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초월적 영역이 인간의 윤리구조와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가에 대한 깊

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초월의 영역이 인간의 윤리적 규범과

어떠한 관계를 구체적으로 가지는가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는 세 사람

이 나누어진다. 키에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의 예를 들면서, 신을 향한 절

대적의무는 인간의 관습과 윤리 규범을 중지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이러한 신 앞에서의 절대적 의무는 인

간의 관습과 윤리규범의 적실성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적실

성을 인정하고 경험한 후에 일어나는 절대적 의무이다. 레비나스의 윤

리철학은 인간의 일반적 윤리적 규범들이 타자에 대한 관심을 상실하

회나 국가는 그 구조 자체를 기계적으로 유지시키고 지탱하기 위해서

움직여갈 때에는, 그 윤리적 구조가 미처 담지 못하고 다루지 못하는

여백의 영역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의 윤리적 구조는 그

구조 밖에있는조그만 차이의 다른 의견들을 죽일 수도 있고, 혹은 굶

주림과 질병에 죽어가는 다른 타자들을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구조속의존재들의 희생을 회피하기 위해서 타자들

의 희생을 용납하는 것이 구조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데리다가 문제시

하는 구조는 물론윤리적 구조만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구조는 법률적

구조, 경제구조, 도덕구조, 사회구조, 정치구조 등 인간이 만드는 어떠한

구조라도 다 포함할 수 있을것이다. 하나의 구조를 정당화하고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서는 항상 타자들의 희생이 있다는 것을 데리다는

강조한다.45)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데리다의 해체가 말하고 시도하고자

하는 핵심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해체는 결코 염세적이거나, 상대주

의적이거나, 허무주의적이거나, 반윤리적일 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레비나스가 보편을 강조하는 하나의 윤리적 기준을 세우려고 시

도한다면, 이 또한해체의 대상에서제외되기힘들어 보인다. 타자의 얼

굴을통해서 드러나는“살인치말라”는 보편적 규범으로서의 윤리가 순

수한 비폭력을 향한 꿈이라면, 이러한 순수한 비폭력의꿈은 너무폭력

적이라는 것이 데리다의 생각이다.46) 왜냐하면 하나의 순수함을 향한

꿈은 구조화되며, 구조 밖의영역의 희생을 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

다. 데리다는 키에르케고르의 종교성이나 레비나스의 윤리성을 배척하

고자 시도하지 않는다. 많은 부분 키에르케고르적인 믿음과 종교성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의 종교성에 대한

강조도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기에, 레비나스적인 윤리성 역시

필요함을 인정한다. 다만한 곳에 절대성을 부여하고 안주하는 것은피

17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윤원준, 신의음성과 책임: 레비나스와데리다의생각속의키에르케고르적윤리 171

45) Ibid., 85-86.

46) Jacques Derrida, Writing and Difference, trans. Alan Bas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8), 146-47.

Page 87: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주제어

죄렌 키에르케고르, 엠마누엘 레비나스, 자크 데리다, 아케다, 해체, 계시,

윤리,

Søren Kierkegaard, Emmanuel Levinas, Jacques Derrida, Akedah,

deconstruction, revelation, ethics.

접 수 일 2010년 9월 29일

심사(수정일) 2010년 11월 5일

게재 확정일 2010년 12월 10일

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초월적 영역으로서의절대적 타자의 흔적이

인간의 얼굴을 통해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신적 흔적(계시)은 인간이 형성하는 이성적 세상에 교란자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이러한 신적 계시의 궁극적 주

제는“살인치 말라”이며, 이러한 타자를 위한 윤리적 기준에 합당하지

않는 행위는 정당화되기힘들다는 것이다. 신의명령에 의한 살인을 정

당화하는 키에르케고르의생각과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데리다가지적

하듯이, 순수한 비폭력을 향한 꿈은 폭력적일 수 있음을 생각해 볼 필

요가 있다. 레비나스를 향한 이러한 지적은 키에르케고르에게도 어느

정도는 적용되어야만할 것처럼 보인다. 신 앞에서의 절대적 의무가 폭

력적이 될 가능성이 있기때문이다. 사실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신 앞에

서의 절대적 의무가 폭력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고, 신 앞에

서의 절대적 의무라고 생각하는 그 해석이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아브라함처럼신 앞에직접적인 음성을 듣는 것이아니고, 그것

이 신의 음성이라고 해석하는 간접적 경험을 하기때문이다. 다른말로

한다면, 우리는 대부분 우리의 행동을 신의 명령이라고 정당화시킬 뿐

이라는 것이다. 그럴경우에는, 신이명한절대적 의무라고 십자군전쟁

을 일으키고, 비행기를충돌시켜 빌딩을 무너뜨릴수도있을것이다. 절

대성과 완전한 순수성에 대한 꿈이 구조화될 때에는, 데리다가 지적하

듯이, 구조 밖 영역의 희생을 요구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한편으로 우

리는 인간 영역을 뛰어넘는 초월적 영역이 인간 구조를 흔들고 교란시

켜야만 됨을 환영하고 받아들여야만‘우상화’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어떠한 태도를 우리가 택하고 유지하든지, 항상 우리가

택한 범위 밖의 타자들이 우리의 태도 때문에 희생되고 고통 받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기독교 교회와 신학

역사에도동일하게적용될 수밖에 없을것이다.

17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윤원준, 신의음성과 책임: 레비나스와데리다의생각속의키에르케고르적윤리 173

Page 88: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God’s Voice and Responsibility: The Kierkegaardian Ethic in Levinas’s and Derrida’s Thoughts

Won-Jun, Yun

Assistant Professor

Korea Baptist Theological University & Seminary

Taejon, Korea

Since Kierkegaard’s existential philosophy’s main target was

Hegelian rationalism and the Hegelian Christianity, most of Kierke-

gaard’s writings were colored with religious concerns and anti-

rational thought. Like Kierkegaard, some postmodern thinkers, such

as Emmanuel Levinas and Jacques Derrida, show their interests in

religious issues and challenge the modern foundationalism based on

human reason. Also like Kierkegaard, Levinas and Derrida want to

shake the human rational systems using the words God,

transcendence, infinity, or the absolute Other, which interrupt and

disturb this world. Despite those similarities, the differences among

Kierkegaard, Levinas, and Derrida should not be ignored. For

understanding the differences concerning religious issues among

them, one should examine their interpretations and the possible

interpretation about the Akedah.

For Kierkegaard, Abraham showed two things in his action of

binding his son Isaac: First, his duty toward God was absolute;

second, his ethical responsibility toward the family and the society

was relative and secondary when compared to the God’s command.

Kierkegaard interprets that through the obedience of trying to kill his

참고문헌

Cohen, Richard A ed. Face to Face with Levinas. Albany: SUNY Press,

1986.

Derrida, Jacques. The Gift of Death. Trans. David Wills. Chicago: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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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ing and Difference. Trans. Alan Bas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8.

Kierkegaard, Søren. Fear and Trembling, and Repetition. vol. 6, Kierlega-

ard’s Writings, Ed. and Trans. Howard V. Hong and Edna H. Hong.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3.

Levinas, Emmanuel. Collected Philosophical Papers. Trans. Alphonso

Lingis. Dordrecht: Nijhoff, 1987.

. Difficult Freedom: Essays on Judaism, Trans. Sean Hand.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0,

. Proper Names. Trans. Michael B. Smith. Stanford, Calif: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4.

. Totality and Infinity. Trans. Alphonso Lingis. Pittsburgh: Duquesne

University Press, 1969.

. “The Trace of the Other.” in Deconstruction in Context. Ed. Mark C.

Taylor.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6.

Robbins, Jill. Altered Reading: Levinas and Literature.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9.

Stolle, Jeffrey. “Levinas and the Akedah: An Alternative to Kierkegaard.” in

Philosophy Today (Summer 2001): 132-143.

Westphal, Merold. Levinas and Kierkegaard in Dialogue. B l o o m i n g t o n :

Indiana University Press, 2008.

17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윤원준, 신의음성과 책임: 레비나스와데리다의생각속의키에르케고르적윤리 175

Page 89: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포스트모던인간론이해를향한프롤레고메나1)

김성원

(나사렛대학교교수)

I. 서론

인간론은 호모 사피언스(homo sapiens)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일

반적으로네 분야에서 다루고 있다. 즉 사회문화적인간론, 고고학적인

간론, 언어학적 인간론, 생물학적 인간론이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에 대

한 이해에 관한학문은 다양하고 복잡한 차원에서 시도되고 있다. 철학

적 인간이해, 종교적 인간이해, 경제적 인간이해, 심리학적 인간이해, 과

학적 인간이해 등 인간의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인간이해의 지평이 넓어

져 있다.

본 연구에서는 다양한 이론들 가운데에 종교철학적 차원에서 인간

론에접근하고자 한다. 특히형이상학, 사유철학, 생물철학, 해석학, 철학

과 종교 등에서 종교철학과 가까운 것들을 자료로 해서 포스트모던 인

간론이해를 향한 서론적 화두를 논하고자 한다. 포스트모던시대가 요

구하는 간학문적 연구를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서종교철학과 관

son, Abraham showed his faith. Levinas’s understanding of the

A k e d a h is radically different from the Kierkegaard’s. For Levinas,

Abraham was tempted to kill his son by the first God’s voice.

However, Abraham could overcome that temptation through waiting

patiently for the second God’s voice, and successfully came back to

the real God’s ethic. Although Levinas does not say explicitly that

Abraham saw or heard God’s voice “you are not to kill” on Isaac’s

face, Levinas’s thought concerning human face can strongly support

the interpretation that Abraham saw or heard God’s ethical command

“you are not to kill” on his son’s face. Therefore, the ethics revealed

through human face is prior to God’s direct command to sacrifice

one’s own son. In contrast to Levinas’s interpretation, Derrida agrees

Kierkegaard’s understanding that the absolute duty toward God

conflicts with the responsibilities for family and society. Also like

Kierkegaard, Derrida says that for the duty toward God, one should

be ready for “the gift of death” that looks like a madness. However,

Derrida does not want to abandon the universal ethical norms because

of the religious faith. He wants to state that a responsibility for one

other is always in conflict and in aporia with another responsibility

for another(or other) other, using the expression “every other (one) is

every (bit) other, tout autre est tout autre .” It is obvious that although

Derrida does not want to ignore or to destroy any ethical system, his

deconstruction does not try to construct an ethical system. Derrida

correctly insists that every system seeking “the pure” or “the

absolute”, including Levinas’s ethical system, has the possibility of

violence to the other.

17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177-220

1) 본 연구는 2010년도나사렛대학교학술연구지원비로이루어진것임.

Page 90: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가지고 있는인간론의기본흐름을 살피는작업이다.3)

포스트모던 인간론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일차적으로 정리하면서, 본

연구가 종교철학적 차원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포스트모던 맥락에서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의 존속 가능성과 위협성에 관한 것이다. 히브리-

유대적 인간론이포스트모던인간론과어떤차원에서 연속성이 있으며,

어떤면에서 비연속적인지 다루고자 한다. 궁극적으로는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이 포스트모던 인간론의 흐름 속에서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지

탐구하는 것이연구의 작은목적이다.4) 연구방법은 화이트헤드가 사용

했던사유철학적방법을 적용해서시도하고자한다.5)

련된 유기체론, 사회생물학, 해체주의, 창발주의의 이론들을 중심으로

인문학적 인간론을서론적 차원에서다루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인간이

해에 관한 다양한 내용들을 분석하고 비평하며 정리해서 포스트모던

시대에 보편적인 적용이 가능한 기반 이론으로서 인간론의 새로운 지

평의초석을 세우기 위한서론적인 기반연구이다.

연구 주제의 문제 제기는 모더니티의 인간론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론적 타당성이 쇠잔하고 있으며, 경험적 적용성에서도

약세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대응이론으로서 포스트모던 사상들이 나

타났지만, 다양하고 복잡한 이론들로 되어있기 때문에, 학문적 이해와

활용에 있어서 어려운 점을 가지고 있다. 본 연구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들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기반이론으로서 일차적으로 정리하

고 분석하면서,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공유적 기반의 실마리를 모색하는

작업이다.

모더니티의 인간론의 대표적인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서는

핵심적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의 몸과 마음

의 이원론적 인간론과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실존적인간론을

다룰 것이다. 이들은 포스트모던 인간론의 등장의 배경이 되고 있지만,

포스트모던 사상, 즉 유기체론, 해체주의, 사회생물학, 창발주의 등과 연

속성이 약해지고 있다.2) 모더니티의 인간론과 포스트모던 인간이해의

다양성 속에서 연속성과 비연속성을 모색하고, 지속적 존속 가능성을

17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이해를 향한프롤레고메나 179

2) 여기서 사회생물학은 과학적 환원주의로서 모더니티의 분석적이고 환원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서 모더니티의 특성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에드워드 윌슨

(Edward Wilson)과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사회생물학은 생물철학에

가까운 것으로 보며, 이들이 사용한 접근방법도 진화생물학에서 진전된 형이상학적

접근이 있다. 윌슨의 후생적규칙론은 유기체적인 특성을함유하고 있다. 도킨스가 사

용한 밈(meme)개념도 환원적 성향보다는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 특성이 강한 것으

로 볼 수 있다. 이들의 이론은 모더니티의방법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의 논쟁은 유기

체적인 포스트모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던의

경계선에있는것으로보면서다루고자한다.

3) 본 연구 주제에 관한 선행연구의 대표적인 것은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의

유기체적 인간론에서부터 찰스 핫숀(Charles Hartshorne)의 상대적 인간론, 그리고

로버트 네빌(Robert C. Neville)의 인간조건 이해가 최근에 거론된 포스트모던 유기

체적 인간론의대표적인 선행연구들이라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이론은 인간의

본성과 정체성 혹은인간의 존재양식을분명히 이해하는 데에제한성을보이고 있다.

사회생물학에서는 에드워드 윌슨과 리차드 도킨스가 대표적인 목소리로 생물철학적

인간론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인간의 본성을 주장하는 데에는 부분

적으로 기여를 하고 있지만, 구체적 존재양식 혹은 정체성을 묘사하는 데에는 역시

한계성을 드러내고 있다. 해체주의에서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해체주의적 인간

론과 미셀 푸코(Michael Foucault)의 탈 인간적 인간론에서 모더니티의 인간론을 해

체하였지만, 새로운구조적 인간론을제시하는데에는모호성을드러내고있다.

4) 논문의 학문적 적용성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데, 포스트모던 인간론과

히브리-유대 인간론 이해를 통해서 유기체적인 맥락에서의 자연친화적인 인간 존재

양식의 타당성에 관한일보진전된 기반이론을제공할수 있는면도있다.

5) 포스트모던 인간론에 관한 연구는 인문학적 기반이론을 다루는 연구로서 사유철학의

기본적인 네 가지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타당성 있는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네 가지 사유철학의 방법은 화이트헤드가제시한 것으로서 본 연구에

실제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이다. 첫째는 논리적 연속성(logical consistency)이

다. 사유적인 내용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의사소통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유지하기 위

해서 논리적 연속성의원리를 따르는 것이중요하다. 그러나 사유철학은단순히 논리

적 서술로 모든 문제의 제기에 대한 논지를 설득력 있게 기술하기에는 한계성이 있

을 수 있다. 둘째로 논리적 부합성(logical coherence)이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서 도입될 것이다. 논리적부합성은논리적 연속성으로서술의한계가 있을경우에

Page 91: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적으로 현대 인간론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 것은 데카르트의 이원론

적 인간론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주체(res cogitans)와 몸(res extensa)

의 두 가지요소가 인간의 존재양식의기본적인실재로이해하였다.

데카르트는 비질료적 실체로서 마음은 의식 혹은 자의식과 같은 것

으로 보았으며, 이것은 지성이 자리 잡고 있는 뇌 자체와는 분리된 존

재로이해하였다. 비질료적 실체로서의마음은 질료에서 독립된 것으로

생각하면서 몸과 마음의 이원론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이원론은 질료

론이나 현상론 혹은 일원론과 구별된 것이며,6) 두 가지 근본적인 요소

인 몸과 마음의 기원은 신에 의해서 주어진 것으로 데카르트는 이해하

였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의 문제점은 두 개의실재가 합해져서 한 인격

적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후기 현대의 시각에서

보면이원론적 몸과마음은 구별될 수 없는 것이며, 마음의 존재양식이

비질료적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논증되지 못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7)

후기 현대 혹은 포스트모던 사상에서는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사실

상 존재론적 실체로 보지 않으려고 하는 면이 있다. 화이트헤드는『과

정과 실재』에서 질료는 실체(substance)가 존속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되어가는 과정의 가능성(potentiality)이며,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궁극적 실재는 과정뿐이라고 하였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질

내용의 구성은 먼저 포스트모던 인간론의 전초가 되는 모더니티의

인간론에서는 대표적인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인간론과 하이데거의 실

존적 인간론을 살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더니티 인간론의 쇠잔과 포

스트모던 맥락에서 모더니티 인간론의 지속적 잔류성에 대해서 언급할

것이다. 포스트모던 인간론에서는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적 인간론, 사회

생물학적 인간론, 해체주의적 인간론, 창발주의적 인간론을 다룰 것이

다. 포스트모던 인간론의 실효성과 제한성도 부분적으로 논할 것이며,

이들의 공유적 기반에 대해서 다룰 것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에도 여전

히 영향을 주고 있는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에 대해서 살피면서, 모더

니티의 인간론과 포스트모던 인간론의 연속성과 비연속성을 검토하고,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의 포스트모던 존속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I I. 모더니티의인간론과제한성

모더니티의 대표적인 인간론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인간론과 하이

데거의 실존적 인간론이라고 할 수 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인간론

은 지난 수백년간서양정신문화를지배하였다. 인간이 몸과마음으로

구성된 것으로 본 것은 고대 희랍철학에서부터 논의된 것이지만, 구체

18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이해를향한프롤레고메나 181

논리적 부합성의 원리를 따르게 될 것이다. 논리적 연속성은부족하더라도 내용의 부

합성이 있으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고, 설득력을 더해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셋째로 경험적 적용성(empirical applicability)의 원리가 활용될 것이다. 논

리적으로 정연하게 서술이 되었다 하더라도, 실제의 경험에 적용이 어려우면 이론의

가치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넷째로 경험적 타당성(empirical adequacy)의 원리가 적

용될 것이다. 논리적이고 실제에 적용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론의 타당성이 결핍되

면 장애를 가진 이론이 될 수밖에 없다. 포스트모던 인간론은 유기체 형이상학과 사

회생물학 그리고 해체주의와 창발주의의 이론들을 논리적이고 서로 부합성 있게 서

술하였다 하더라도, 실제의 상황에 적용되어서 타당한 이론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상기의네 가지기본적인사유철학방법이필요하다고본다.

6) 그러나 질료의 세계에서 독립된 실체로서의 마음은 비창발적 질료론(non-emergent

materialism)과 상충되는 것이며, 창발주의에서 주장하는 창발적 질료론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창발주의가 포스트모던특성을 가진다는차원에서 데카르트의이원론과

창발적 질료론은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던 사이에서 비연속적면서도연속성을기질 수

있는면으로 논의될 수 있는것이기도 하다.

7) 대륙의 합리주의사상에서스피노자는몸과마음의 이원론을부정하고일원론을주장

하였다. 라이프니츠는 이원론도 부정하고 일원론도 부정하면서, 극단자론(monado-

logy)을 주장하였다. 세상을 구성하고있는궁극적 실재는 극단자로도이해한것이다.

이미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그 당시에도 적지 않은 도전을 받은 이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지난 400여 년간서양정신문화를지배한 것은아이러니한면이다.

Page 9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향해서 가고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이 비존재는 인간의 삶에 위협적인

것이며, 인간실존의걱정을 일으킨다.10)

하이데거의 인간론은 신적 존재(Being)와 관계성 안에서 언급되고

있다. 하이데거의 지속적인 학문적 관심은 인간실존이라기보다는 절대

정신 혹은 신적 존재에 대한 탐구이었다. 인간론을 다루게 된 것은 신

적존재가 인간과 관계성 속에서 언급될 수 있는것이기 때문에, 인간론

을 다룬 것이다.『존재와 시간』출간 전에 쓴 “Letter to Humansim”에

서 신적존재에 대해서먼저언급하고있다.

신적인 존재(Being)는 일시성을 넘어서“원초적이고 무한적인 일시

성의 존재”이다.11) 신적 존재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실재적 존재이

며,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인간이 인식(grasp)하고 이해할

수 있는존재는 아니다. 하이데거는 신적존재가 전통적인 기독교 신의

개념과는 다른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신적 존재는 우주의 기반적 존재

도 아니라고 보고 있다.12) 신적 존재는 인간과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성스러움(numinous) 혹은 거룩의 신적 존재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하였

다.13) 신적 존재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면서도 인간과 가장

가까이 존재한다는 맥락에서 하이데거의 신론은 범재신론(panenthe-

ism)으로해석되고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인간은 신적 존재로부터 비뚤어진 존재이다. 인

간은 신적 존재의 진리를 섭렵하기 위해서 진리를 향해 존재하면(ek-

sisting), 신적 존재의 진리를 따르고 보호하고 지키는 역할을 하게 된

다.14) 하이데거의 이러한 해석은 우주의 근본적 원리와 진리를 신적 존

료를 에너지로 해석한 것은 화이트헤드가 질료를 가능성으로 해석한

것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포스트모던 맥락에서 인간을 몸과 마음의

이원론적실체로 믿는사람은 찾아보기어려워지고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함께 현대인간의 이해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

여지고 있는것은 하이데거의실존적 인간론이다. 왜냐하면 하이데거의

사상적 배경은 모더니티의 특성을 결정지은 계몽주의 산물들로 구성되

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모더니티가 끝나지 않았으며, 개인과 자아

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맥락에서 하이데거의 실존적

인간론이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때문이다.

하이데거는『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실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

하고 있다. 하이데거의 인간론의 핵심적인 개념은Dasein이며, Dasein

이란 문자적으로“거기에 있다”(being there) 혹은“세상 안에 존재한

다”(being-in-the-world)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간이란 주어진 세

상의 역사 안에서 그 시대의 세계관을 갖고 사회문화 속에서 형성된

인격성을 갖고 사는 존재이다. 주어진 세상의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존

재하는 것이 인간이다. 하이데거에 있어서『존재와 시간』의 결론은 일

시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Dasein을 의미하며, Dasein은 인간의 기본적

인 존재론적구조가 된다는 것이다.8)

일시적 실존은 과거에 의해서 형성된 현재의 자아가 미래를 향해서

불가피하게 살아가는 것이다.9) 일시적인 인간의 삶은 현재의 상황에서

미래를 향해서 서 있다(“ek-sistence,” “standing out”). 일시적인 존재

로서 인간은 결국 인간실존의 정점인 비존재(nonexistence), 즉 죽음을

18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이해를 향한프롤레고메나 183

8 ) Martin Heidegger, Being and Time, trans. Joan Stambaugh (Albany, NY: State

University Press of New York, 1962).

9) 화이트헤드는 과거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과거를 결정한다고 하였

다. 양자역학에서 지연된 선택론(delayed choice)에서도 과거는 현재에 의해서 마무

리된다고 믿고있다. 이러한 것은하이데거의과거에 의한 현재의 결정론에 대치되는

이론들이다.

10) 걱정하고있는인간실존은키에르케고르의인간실존론을반영하고있다.

11) Heidegger, Being and Time, 437.

12) 폴 틸리히가신은존재자체의 기반(ground of being itself)이라고 생각한것과대치

되는것이기도 하다.

13) Martin Heidegger, “Letter to Humanism” in Basic Writings, ed. David Krell (New

York: Harper and Row, 1977), 210.

14) Heidegger, “Letter to Humanism,” 210.

Page 9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I I I. 포스트모던인간론의이해

1. 화이트헤드의유기체적인간론

모더니티의 이원론적 인간론과 실존적 인간론의 대안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은 유기체적

인간론, 생물철학적 인간론, 해체주의적 인간론, 창발주의적 인간론을

들 수 있다. 유기체적 철학의 대표자인 화이트헤드는 데카르트의 몸과

마음의 이원론을 부정하고 유기체적 우주론을 주장하면서 인간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

은 사실적 실재(actual entity)이지만, 사실적 실재는 실체적 존재(sub-

stance)가 아니라, 불교 용어의 찰나(刹那 ksana)와 유사한 순간적 시

간 속에 존재하는 과정의 사건이다.18) 이 사실적 실재는 개체로 존재하

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실적 실재들과 관계 속에서 순간적인 사건 속

에 존재하고소멸되는과정적 존재이다.

화이트헤드는 세상은 이원론적으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몸이 하나로 움직이며, 다른 개체들과 관계 속에서 유기체적 흐름에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유기체적 흐름이 궁극적 실재이며, 화이트헤드

는 이것을 과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세상에는궁극적 실체(the ultimate

substance)라는 것은존재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만 실제

로 존재하는것이다.

과정 속에서 순간적으로 생성되고 소멸되는 찰나의 사건 자체로서

재와 함께전제한 것이고, 인간의 존재양식은 우주의 근본적 원리인 진

리와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15) 인간 실존은 인간존재 양식의 기

본이지만, 신적 존재와 연계된 존재이다. 이러한 실존적 인간론은20세

기에철학사상과인간문화에서적지않은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모더니티의 이원론적인 인간론과 실존적 인간론은 포스트모

던 유기체적 이해 혹은 인간우주론적(anthropocosmic) 접근이 이루어

지면서, 그 타당성이 쇠잔하고 있다.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

는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세상과 유기체적으로존재한다고보는

것이다. 인간의 현존은 실존이지만, 그 실존을 궁극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석하고 있다. 궁극적 실존은 세상의 유기체의 한 부분이며, 세

상의 흐름 속에서 일시적 실재로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

다.16) 이원론적 인간론과 실존적 인간론의 쇠잔과 함께 등장하는 유기체

적이고 관계적인포스트모던인간론이다양하게나타나고 있다.17)

18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 이해를 향한프롤레고메나 185

15) 하이데거의 인간론은 종교철학에서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발전하는데, 하나는 폴 틸

리히(Paul Tillich)의 철학신학적 인간론이며, 다른 하나는 슈버트 옥덴( S c h u b e r t

Ogden)의 과정신학적 인간론이다. 폴 틸리히의 조직신학은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틸리히의 인간론은 본질적 자아가 타락하면서 실존적 자아로

변질되었는데, 이 실존적 자아는 비존재의 위협 속에서 걱정과 불안을 경험한다. 걱

정과 불안의 실존적 자아는 비존재의 위협에서 탈피하기 위해서 종교적“존재의 용

기”를 가지고“새로운 존재”로 변화되면 본질적 자아를 회복하게 된다. 철학신학적

인간론으로 제시된 것이다. 사실 불안과 걱정의 실존은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신학적

인간론에서 논의된 것이 하이데거와 틸리히에서 이론적으로 구체화되어 언급된 것

이다. 옥덴의 인간론은 과정신학적 차원에서 하이데거의 실존적 인간론을 융합한 것

이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적 인간론은 유기체적 인간론이며, 여기에 실존적 인간

론을접목시킨것은옥덴의독특한 진전된 인간론이라고할 수 있다.

16)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에 의하면, 인간은 순간적으로 생성되고 소멸되는

사실적 실재(actual entity)들이조화융합(nexus)되어있는것에지나지않는다.

17) 포스트모던시대에다양한 인간론은 부분적으로인간의 정체성, 인간의 본성, 인간의

특성에 대해서부분적으로 언급된 이론들은여러 가지가 있지만, 구체적으로 정리되

어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직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

유는아직 포스트모던 인간론이정리되지않았거나, 이론이 너무다양해서정리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의 시점에서 일단은 포스트모던 인

간론에 대한 이론적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고, 이들에 대한 분석비평을 통해서 일보

진전된기반연구를담은연구들이진행되어야하는상황이다.

18) 화이트헤드의유기체 철학에서 시간은 근본적인 것이다. 여기서는 사실적실재가 생

성되고 소멸되는 순간을 불교 용어의 찰나라고 표현하였다. 시간은 사실적 실재가

생성되고 소멸되는 순간의 두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의 불교 용어인 찰나

와 유사한것으로 표현하였다.

Page 94: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모던인간론과 완전히 단절된 이론은 아니라는의미이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은 축적된 경험의 흐름

속에존재한다. 자아에 대한 인식은 경험의 흐름속에서 지속되는 연속

성으로 인해서 가능한 것이다. 과거에서 자아가 나타나서, 모든 세상과

연관되어존재하며, 미래의 경험을 예측하면서순간적인 현재를 즐기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믿고 있다.21) 현재의 순간들은 과정의 흐름 속

에서이루어져가는 것이고, 찰나의 존속을 마무리하고 소멸되면서 새로

운 찰나의 사건을 탄생시킨다. 이 과정에서 새로움(novelty)이 일어나

면서 패턴 속에서 연속성이 유지되는데, 이때에 자아는 유지되는 패턴

과 함께 과거의 자아에서 현재의 새로운 자아로 변하게 된다.22) 이러한

과정이 가능하게 하는원초적인 것이있는데, 그것이 바로 원초적 본성

을 갖고있는신이라고이해하였다.23)

새로움은 생존을 위해서 본질적인 것이다. 변하지 않고 새로움이 없

다면결국 죽은존재가 될 것이다. 새로움은 화이트헤드에게있어서 생

명의 뿌리와도 같은 것이다. 이것은 모더니티의 실체론적 인간론에서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자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 것을 뒤집은

것이다.24) 변하는 자아의 유기체적 이해는 주체의 완전한 부정으로 볼

수 없다. 모더니티의 실존적 요소는 약해진 것일 수는 있지만, 주체가

소멸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사실적 실재는 두 가지 인지

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질료주와 개념주이다. 질료주에서는 질료적

사실적 실재는 화학물질도 아니고 정신현상도 아니다.19) 이것은 과정

속의 궁극적 실재로서의 찰나의 사건들의 유기체적 시리즈 속에 한 사

건일 뿐이다. 이러한 유기체론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구분이 특별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인간 우주론적 이해의 포스트모던 인간론은 사실상

자연과 인간이 서로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인간의 특별한 정체성을

논할수 있는기반이 약하다.

하지만 화이트헤드가 인간에 대해서 언급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구체적인 정체성이나 본성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만 인간이란

사실적 실재의 조화-융합적(nexus) 존재로 보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존재론적 원리에서인간론을부분적으로다루었지만, 넥서스 이상의 독

특한 인간정체성 혹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언급한 것들을 찾아보기

는 사실상 어렵다.

하지만, 사실적 실재의 작용에 대한 해석을 유비적으로 접근하면, 유

기체적 인간이해를 할 수 있는 면이 있다. 데카르트는 몸과 마음을 구

성된 자아는 경험들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생각

은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적 인간론에서 사실적 실재의 질료주(physical

pole)와 개념주(conceptual pole)의 작용과 유비적 해석이 가능한 부분

이다. 데카르트가 언급한 자아는 경험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한

것은 화이트헤드의 유기체론에서 사실적 실재가 생성되고 소멸되는 과

정에서 지속되는 주체와 연계성을 가지고 있다.20) 모더니티의 인간론이

포스트모던인간이해에서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연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모더니티의 인간론이 포스트

18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이해를 향한프롤레고메나 187

1 9 ) 윌슨은 유전자의 궁극적인 움직임을 물리화학적 작용이라고 하였다. Edward

Wilson,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New York: Vintage Books, 1998),

179. 마음의 존재에 대해서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지만, 그의 사회생물학

시스템은몸과마음을 전제한 것으로나타나고 있다. Wilson, Consilience, 123.

20) C. Robert Mesle, Process-Relational Philosophy: An Introduction to Alfred North

Whitehead (Wes Conshohoscken, PA: Templeton Foundation Press, 2008), 49.

21) Mesle, Process-Relational Philosophy, 49.

22) Mesle, Process-Relational Philosophy, 49.

23)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신의 속성은 원초적 본성과 결과적 본성이 있는데, 원초적

본성은 모든 과정의 원초적 전제를 가능하게 하는 신의본성이며, 결과적 본성은 각

사실적 실재들이 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초시간적으로 사실적 실재들이 우선적 목적

으로 가지고 새로움을 향해 가도록 유도하는(luring) 본성이다. 이것은 신의 설득적

기능으로서신의결정론적인 속성에대치되는 이론이다.

24) Mesle, Process-Relational Philosophy, 49.

Page 95: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누는 것이다. 물리학에서는 에너지의 작용, 화학에서는 화학적 작용, 생

물학에서는 유기체적 행위와 같은 것에서, 전자가 다른 사건들 속에서

원인적 힘을경험하거나감지하는것과유사한 것이다.25)

사실적 실재는 외적인 요소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

니라, 자발적으로 사실화( s e l f-actualization) 작업을 한다. 직전과거가

현재에 의해서 감지되는 것이지, 직전과거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아

니라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사실적 실재는 무계획적으로 움직

이는것이아니라, 안정된 패턴을 따라서 움직이는특성을 갖고있다.

이 패턴은 화이트헤드가 언급하고 있는 신에 해당되는 합생원리

(principle of concretion)와는 다른 것이다.26) 합생원리는 안정된 패턴이

아니다. 합생원리는 유기체적 세상의 흐름의 원리이다. 패턴은 사실적

실재가 스스로 사실화하는 과정에서 무작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향해 사실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패턴이다. 이 패턴은 고정

된 것이 아니라 변화와 새로움의 과정에서 안정화된 패턴이다. 이 패턴

안에서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이다.27) 사실적 실재의 존재양식과 세상의

감지(physical prehension)가 일어나고, 개념주에서는 개념적 감지

(conceptual prehension)가 일어난다. 사실적 실재가 주변과 관계된 다

른 사실적 실재들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먼저 이루어지는 것은 질료주

에서 감각적인 경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경험은 질료적 감지이다.

여기서 경험이란 감지(prehend)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질료적

감지는 개념주에서 개념적 감지로 해석이 이루어진다. 개념적 감지의

경험이 일어나는 순간 사실적 실재의 우선적 목적(initial aim)을 갖게

된다. 사실적 실재의 우선적목적은 다양한 관계성 속에서 새로움(nov-

elty)을 향해서 사실적 실재의 주관적 목적(subjective aim)으로발전하

게 된다. 주관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 현재의 사실적 실재는 차기에 계

승되는 사실적 실재에 감지되면서 소멸되고, 새로운 사실적 실재가 승

계되는 시리즈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감지의 주체가 전제되

어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사실적 실제가 주체적 성향을 갖는다고 볼

수도 있고, 그 무엇인가가 감지하고 목적으로 향하는 주체가 된다는 것

을 전제한 것이다.

사실적 실재는 직전 과거의 사실적 실재의 영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실적 실재에 의해서 과거의 사실적 실재가 감지

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과거는 사실적 실재의 소멸과 함께 영구적

으로 소멸되는것이지만, 현재의 사실적 실재의 직전 과거는 실제로 존

재하면서 현재의 사실적 실재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직전

과거의 사실적 실재는 화이트헤드가 언급한 것처럼 객관적으로 불멸

(objectively immortal)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사실적 실재의

집합체가 한 존재를 이루고 있는 동안에는 과거는 불멸로 있다는 의미

이다. 사실적 실재의 집합체가 과정속에서 지속하는 동안시리즈로 존

재하는 직전과거들은불멸의 특성을 가진다는것이다.

사실적 실재의 질료적 감지에는 원인적 유효성(causal efficacy)과

현연적 즉각성(presentational immediacy)이 작용하고 있다. 원인적 유

효성이란 매 순간에 일어나는 개개의 경험현상들이 서로 유효성을 나

18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이해를향한프롤레고메나 189

25) Mesle, Process-Relational Philosophy, 59.

26) Alfred N. Whitehead, Science and the Modern World: The Lowell Lectures, 1925

(New York: Macmillan, 1950), 11장.

27) 형이상학적 신론은 화이트헤드의 유기체론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이다. 화이

트헤드의 신론은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차원과도 연계되어 있다. 화이트헤드는 현대

과학은 중세신학의열매라고 하였다. 인격적이고 합리적인 신은 지성적인 자연질서

로 된 세상을 창조하였고, 인간이 세상을 정복하도록 되어 있다는 신학적 이론에서

현대과학이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Whitehead, Science and the Modern World, xi.

특히 과정신학의 범재신론은 쿠퍼(John W. Cooper)에 따르면 포스트-다아윈 과학

과 포스트-쉘링신학이 결혼에서 탄생하여 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찰스 퍼스, 윌

리암제임스, 베르그송, 샤르뎅과같은 사람들도과정신학 혹은과정철학과형제이론

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David Griffin et al., Founders of

Constructive Postmodern Philosophy: Peirce, James, Bergson, Whitehead and

Hartshorne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3); John W. Cooper,

Panenthe-ism: The Other God of the Philosophers: From Plato to Present (Grand

Rapids, Michigan: Bakers Books, 2006), 165. 그러나 여기에서는 형이상학적신론

Page 96: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결정되는것이다. 네빌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객체는 유사한 사건들의

시리즈로 존재하는 것이다.32) 정체성은 지속성은 유사한 사건들의 시리

즈에근거를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화이트헤드가 인간

의 몸은 살아있는 사실적 실재들의 역사적 길에서 시리즈로 존재한다

고 한 것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33)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양식은 시간

속에서 사건들이 패턴으로 형성된 시리즈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패턴 속에서 사건들의 시리즈로서 인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만드

는 사건들의성품이 그 정체성이라고 네빌은 언급하였다.34)

화이트헤드는 마음과 몸이 구별된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라고 생각

한 것은복잡한 인간론을 야기시켰다. 인간이란 몸과 마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사실적 실재들이 모여서 구성된 복합적 존재로 해석하였

다.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인간의 영혼과 돌은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차이가 없다.35) 인간은 다른 생명과 마찬가지로 질서와 새로움 사이의

균형에서 존재한다. 지속성을 가지고 있는 인격성은 경험과 결단의 흐

름의 패턴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지속성이 없이는 근원성의 깊이도

없어지는 것이며, 동물의 몸과같은 것으로 해석하게 되는 어려움을맞

게 될 것이다.36) 이러한 맥락에서 화이트헤드의 사상과 같은 유기체적

인간론에서는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적으로 언급하는 데에 제한성이 있

는 아쉬움이있다.

2. 포스트모던창발주의의인간론

포스트모던 인간론의 새로운 지평에서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이

과정의 패턴은 인간을 이해하는데에상대적으로도움을 주고있다.

인간은 사실적 실재의 집합체로서마음과 몸의작용을 하는 요소를

담고 있다. 질료주와 개념주 작용이 몸과 마음의 작용과 유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면을 담고 있다. 화이트헤드가 사유한 모델을 유비적

으로 보면 인간의 몸과 두뇌작용의 관계를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인간의 존재양식은 사실적 실재의 집합체인 마음과 몸의 작용으

로 보아도 될 것이다. 왜냐하면, 화이헤드 자신이 우주를 해석하는 일

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몸과 관련해서 해석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28)

일정기간 동안 지속성을 갖고 있는 인격성(personality)은 사실적

실재들의 역사적 길을 가는 상태이다. 계승되는 사건들 속에서 지배적

으로 살아있는 사실적 실재들의 시리즈가 지속적 인격성이 되는 것이

다.29) 인간의 몸은 계층 구조에서 효율적인 계승적 사건들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 계승적 사건들은 우주에서 존재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곳

에서 효율성과 질서가 유지된다. 인간의 몸은 지배적 사건들의 시리즈

가 효율성과 질서를 이루는 만족의 의지를 중심으로 존재하는 것이라

고 화이트헤드는 이해하였다.30) 모더니티의 실존적 인격성과는 차이가

있지만, 인격적 주체로서 감지하고 목적을 갖고새로움을 향해 가는주

체가있는것이다.

신화이트헤디안 로버트 네빌(Robert C. Neville)은 사물의 정체성은

조건적 요소와 본질적 요소의 사실적 조화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하

였다.31) 인간의 정체성도 조건적 요소와 본질적 요소의 조화에 의해서

19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이해를 향한프롤레고메나 191

과 종교적차원의인간론은차후의 연구대상으로생각하고언급하지않았다.

28) Alfred N.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Corrected edition by David Ray Griffin

and Donald W. Sherburne (New York: Macmillan Company, 1978), 119.

29)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119.

30)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119.

31) Robert C. Neville, The Tao and the Daimon: Segments of a Religious Inquir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82), 52-53.

32) Neville, The Tao and the Daimon, 45.

33)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119.

34) Neville, The Tao and the Daimon, 49.

35)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104.

36)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107.

Page 97: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혀 다른속성 현상이 나타난다. 상황에 따라서 무생물에서 생물이 나타

나고, 생물에서 의식이 생성된다. 창발주의는 바로 이러한 물리화학적

현상을 근거로 해서 마음은 개체와 개체 사이에서 창발되는(emergent)

것으로 주장한 것이다.38) 마음은 질료의 자산이 아니라 속성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마음이 질료혹은 개체와 별개의 비질료적 실재로

이해하는경우도있다.

인간의 생명과 의식은 질료의 세계에서 다양한 복잡성과 변이에서

마음과 생기가 창발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창발주의의 인간론이라고

할 수 있다. 창발주의의 인간론과 유사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마음

과 생명은 주어진 것으로 이해하는 생기주의가 있다. 그러나 생기주의

는 생명을 전제하는 것이지, 물리적 현상에서 생성되는 것으로 보지않

고 있다.

창발주의란 질료 자체의 원자나 전자가 의식과 생명이 없음에도 불

구하고, 원자나 전자가 다양한 복합적 작용을 하면서 의식과 생명의 현

상이생성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원자가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혹

은 전자가 의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원자와 전자들

이 서로 얽혀서 복잡성을 더해 가면서 마음이 나타난 것으로 보는 것

이다.

물리주의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물리적 실체들이라고 믿

는 것이다. 물리주의의 문제는 마음 혹은 의식에 대한 해석에 있다. 마

음은물리적 요소들과 다른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 환원주의(reductionism)와 창발주의(emer-

g e n t i s m )이다. 환원주의는 마음은 자연의 입자(particles of nature)에

속한것으로서 비전형적(atypical)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창발주의적(emergent theory) 인간이해이다. 모더니티의 인간론을 이해

하는 방법은 분석적이고 환원적(reductionism)으로 방법으로 인간을

이해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모더니티의 분석적인 방법과 환원적인

방법으로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들어났다. 사물에 대한 분석

을 통해서 마음을 찾는 것은불가능하며, 존재의 환원을 통해서 인간의

정체성을 찾는것은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창발주의에서마음은 객체의

소유나 기능이 아니라, 객체와 객체사이에 마음이 존재하는 것으로 주

장하고 있다. 데카르트는 마음과 몸이 인간의 구성요소로 생각하면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한 것과연속성이 있으면서도, 모더니티의

분석적이고환원적인 방법의 실패를 지적하고, 창발주의적 접근을 시도

한 것은포스트모던특성을 갖고있다.37)

창발주의(emergentism)가 포스트모던 인간론을 구체적으로 대표하

는 이론으로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포스트모던 사상적 논의와 밀접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는 과학철학으로서포스트모던 인간론 이해를 위해

서 들여온 것이다. 창발주의는 세상에 생명과 문화그리고 의식과 종교

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위해서 나타난 과학철학이다. 특히 마음의 근

원을 이해하는 데에 한계성을 가지고 있는 물리주의(physicalism)에

대안으로출현한 과학철학 사상이다.

물리주의는 분석적이고 환원적인 모더니티의 접근방법으로 마음의

출처를 밝히려고 하였지만, 마음의 근원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물리적

분석방법은생물과 무생물, 존재와 비존재의경계선에서도 여전히마음

을 찾는 도구가 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물리에서 주어진 조건에서

극도의 변화가 주어졌을 때에 새로운 것이나타난다. 즉 물이극단적인

고온 혹은저온조건에서 혹은복잡성의 농도가 높아지는 조건에서, 전

19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이해를 향한프롤레고메나 193

37) 포스트모던 인간론은 다양한 차원에서 접근이 이루어질 수 있지만, 유기체론, 사회생

물학, 해체주의, 창발주의가 대표적인 것들이며, 이들을 다루는 것이 학문적 기반연구

로서 타당성을 갖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이론을 정리하고 분석비평하고, 이

들의공유기반을모색하면서, 포스트모던인간론의 새로운지평을제시하고자한다.

38) 창발주의는 물리주의를 전제하고 있다. 마음은 물리의 현상에서 새로운 차원의 속성

이 창발되는것을 믿기 때문이다. 창발주의의 마음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에서 언급되

고 있는 비질료적 실재로서의 조건이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마음의 존재양식과 다

른 것이다.

Page 98: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지 않는다. 마음은 각 객체가 가지고 있는독특한 것으로 보고있다. 그

리고 마음은 계층구조적 물리세계에서 하향적 인과관계로 작용한다고

보았다.39)

과학철학에서 창발주의가 구체적으로 인간론을 언급하였다고 보기

는 어렵지만, 인간의 마음과 몸을 이해할 수 있는 첨단 과학탐구에 의

한 기반 연구를 하였다. 마음은 물리작용에서 창발하고 존속하면서 인

과작용을 하거나 혹은마음이 몸 혹은 다른 질료와 상호작용의 가능성

을 볼 수 있다. 모더니티의 몸과 마음의 이원론적 특성이 소멸되지 않

고, 오히려 타당성의 기반이론을 작용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

다. 모더니티의 실존성을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몸과 마음의 조화적 존

재로서 주체적 성향을 가진 것을없어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창발주

의에서 객체의 주체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몸과 마음의

이원적 성향은 모더니티의이원론과유비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3. 포스트모던사회생물학적인간론

유기체적 인간론과 유사한 것은 학문분야는 다르지만 사회생물학적

인간론의 새로운 지평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과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사회생물학 사상에 잘

나타나 있으며, 날이갈수록 이들의 영향력을 더해가고 있다. 윌슨은 인

간의본성은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난제라고 전제하고있다. 다만인

간의 본성에 대해서 사회생물학적 차원에서 최소한 가능한 해석을 모

색하고 있다. 인간이란 인간을 규명한다고 생각하는 유전자도 아니고,

유전자의 궁극적 산물인 문화적 존재도 아니라고 하였다. 인간은 후생

창발주의에서 물리적 실체들은 나타난 현상을 넘어서 매우 복잡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근본적인 물리의 입자들은 조건에 따라

그 입자의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것을 생성한다고 이해하였다. 자연의

입자들이 하나의 층으로 되어 있는것이아니라 여러겹으로 되었으며,

복잡한 정도에 따라 각 겹의 기능과 성향이 다른 과학적 현상으로 일

어난다고보았다.

물을구성하고 있는 것은 수소와 산소이다. 수소 두 개와 산소 하나

가 결합하여 물(H2O)을 만들어 낸다. 극단적 고온이나 특수한 복잡성

의 조건이 주어지면 수소와 산소의 원자가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성

분이 창발된다는 것이다. 창발론에서 엘빈 스크류딩겔(Erwin Schrö-

dinger)은 분자를 연구하면서 동질의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아이소

머(isomers)라는 분자가 다르게 배열되면 다른 물리적인 것을 갖게 된

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또한 에넨시오머(enantiomers)라는분자는 같

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양쪽평형배열로 형성되어있는데, 이들이

다른 분자들과 상호작용을 할 때에 다른 것을 생성하여 갖게 된다는

것도발견하였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마음과 몸의 존재양식과 상호작용이다. 창발

주의에서 마음은 개체사이에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데카르트

가 언급한 것처럼 비질료적 실체로는 존재한다고 결정적으로 주장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인 물리적 실체와 질이다른 것이생성되고 존속한

다고 보고 있다. 물론 마음 혹은의식이 학습과 사유 작용을 기초단계

적 차원의 마음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마음과 몸은 서로 상호작용과

인과작용(casual activity)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환원주의적 물리

주의에서는마음의 존재를 부정하고있지만, 창발주의에서는마음의 존

재를부정하지않고오히려 객체사이에 실재하는것으로 보았다.

마음과 몸의 상호작용에서 김재권(Jaegwon Kim)은 창발주의의 문

제점은 마음과 몸의 인과관계가 닫혀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일

반적으로 창발주의자들은 마음이 몸과 결별된 다른 어떤 것이라고 보

19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이해를 향한프롤레고메나 195

39) 이러한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성리학(性理學)에서 이와 기의 상호작용을 논한

이퇴계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였다. 물론 형이상학적 주장이지만, 마음

과 몸의 상호작용에서 현대 과학철학에서 발견하지 못한 것을 한국의 근대 성리학

에서발견할 수 있는여지가있어보인다.

Page 99: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고 하였다. 그 마음의 뿌리는 감각적 인상들의 코드 연출(coded repre-

sentation) 작용이며, 감각적 인상의 기억과 사유작용이 마음이라고 하

였다.46) 의식은 수많은 코드 네트워크가 정렬되어 있는 것이다. 코드네

트워크는 감각적 인상들을 지도화(mapping)해서 기억은행에 저장하고

있는 것이며, 저장된 코드 내용들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서 인상코드들

이 회생되기도 하고, 자극이 없을경우에는 그대로 있거나 쇠잔하는작

용을 하는 것이 의식이다.47) 감정은 정신작용에 초점을 두고 정신이 활

동하게 하는 신경 작용의 변화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48) 감정은 물리

적 작용에서오는 것이며, 몸과 마음을 오가며 정보를 선택하는 작용을

하는 물리작용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감정은 물리작용에서 기인하는 것

임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사유작용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49)

화이트헤드가 과정철학에서 감정은 이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 내

용과연속성을 갖는 주장이다. 윌슨이 생각한 마음과 의식과 감성은 물

리작용과 정신작용의 이원론적 시스템을 바닥에 두고 있는 인상을 주

고 있다. 윌슨의 이론적 바탕은 물리화학적 작용에서 사회생물학을 주

장한 것이지만, 결국에는 윌슨의 전반적인 사회생물학 시스템은, 모더

니티의 이원론과는 차이가 있지만, 물리화학적 작용의 몸과 코드-정신

작용의 마음이 그의인간론에전제된 것으로 보인다.

사회생물학에서 인간의 종교문화와 정신에 대한 해석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은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이다. 도킨스는 유

전자는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며, 이기적 유전자의목적은 유전자 자신의

보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은 유전자 자신의 보호를 위해서 수단

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움직이는 프로그램화된 기계와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도킨스는 밈(meme)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사용하면서 인간의

적 규칙(epigenetic rules)에 의거해서 선택작용을 하는 존재로 보았다.

후생적 규칙이란 정신의 발달과정에 생성되는 유전적 규칙성을 의미한

다.40)

후생적 규칙은 문화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방향 중에서 한 가

지를 선택해서 그 방향을 향해서 가도록 하는 성향을 제공한다.41) 이

후생적 규칙은 유전자를문화와 연결하는 작용을 하는것이며, 유전자-

문화의 협동진화(gene-culture coevolution)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42)

후생적 규칙에 의한 유전자-문화의 협동진화론은 윌슨의 사회생물학

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다. 윌슨이 주장하고 있는 통섭(consilience),

즉 지식의 통합은 이 사회생물학의 후생적 규칙론에의존하고 있다.

윌슨은 인간본성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은 후생적 규칙의 줄기를 찾

아가는 것(archeology of epigenetic rules)이라고 하였다.43) 그러나 후

생적 규칙의 근본적인특성은 사실상 없는것이고, 다만 연쇄적인물리

화학적(physiochemical) 작용의 현상일 뿐이라고 하였다.4 4 ) 거기에는

느낌이나 돌봄이나어떤것을 의도하는 것이 속성적 작용은 없다. 다만

후생적 흐름을 탐지하고, 탐지된 정보들이 모여서 두뇌의 정신작용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뿐이다.45)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에 새로운 차

원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더니티의 이원론적이거나 실존적인

면을 부정하고, 후생적 규칙론에의거한 새로운 인간이해를 제시한다는

차원에서포스트모던인간론에해당되는이론이라고할 수 있다.

사회생물학에서 마음이란 의식적 경험과 잠재의식 경험의 흐름이라

19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 이해를 향한프롤레고메나 197

40) Wilson, Consilience, 176.

41) Wilson, Consilience, 176.

42) Wilson, Consilience, 176.

43) Wilson, Consilience, 177. 이 탐구는차세대에 간학문적연구의 중요한 주제라고 윌

슨은 언급하였다. 본 연구는 윌슨의 관심과 연계되어 탐구하는 것으로서 과정철학과

실존철학그리고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에서부분적인 실마리를모색하고자 한다.

44) Wilson, Consilience, 179.

45) Wilson, Consilience, 177.

46) Wilson, Consilience, 119.

47) Wilson, Consilience, 119.

48) Wilson, Consilience, 123.

49) Wilson, Consilience, 123.

Page 100: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4. 포스트모던해체주의적인간론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포스트모더니

즘은 객관적 진리를 거부하고 획일화된 가치관과 시스템을 거부하며,

입체적이고, 다원적이며, 복합적인 차원의 해석을 도모하는 사상적 조

류이다.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나 인종간의 구분을 거부하고 총체적인

인간이해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언어의 역할과 권력의 관계성 그리고

존재의 동기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포스트모

던 사상은 포스트모던인간이해에새로운 차원을 제시하고있다.53)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이론은 해체주의로서 인간이해의 새로운 지

평을열고 있다. 인간의 자아정체성은 객체의 독립적 존재의 의미에서

정체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관계에서 차연성(differ-

ance)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보고 있다. 데리다(J. Derrida)가 언급하는

인간이해를 위한차연성은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사이

에서시간과 공간의 변화속에서 차이가 나타나는데, 그 차이에 의해서

인간의 정체성이결정되는것으로 보았다. 모더니티의 비질료적실체로

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마음이 정체성을 결정하거나, 존재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현존의 정체성과는 다른 새로운 인간이해의 지평이다. 다

양한 정보의 이해와 해석들 사이에서 다원적인 관계성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정체성과 존재의 흐름의 흔적을 형성하는 맥락에서 인간이해를

마음 위에 종교와 문화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주장하

였다.50) 유전자는 복제작용(cloning)과 유사하게, 문화 예술 종교와 같

은 것도 밈의 복제작용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51) 도

킨스의 인간이해는 윌슨과 같은환원적 접근이라기보다는유비적 사유

작용을 통한인간이해를모색한 생물철학적 인간론으로 보인다. 도킨스

의 생물철학적 인간론에는 유전자의물리화학적질료부분이 있고, 유전

자의 자기보존과 복제의 이기적 작용을 하는 마음과 밈의 정신작용을

하는 이원론적 성향이 흐르고 있다. 모더니티의 이원론과 같은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면서도, 이원론적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후생규

칙에 의한 물리화학적 작용에는 실존적인 것은 없다 하더라도, 유전자

를 이루는 정신작용이 있으며, 물리화학적 질료의 정신작용의 주체를

유비적으로전제한 것을 부정할수는없다고 본다.

사회생물학적 인간론이 포스트모던 인간이해에 중요한 위치에 와있

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후생규칙론에 입각한 물리화학적 작용의

유전자적 인간 이해는 지나친 환원적인 접근이며, 일상적 인간이해와

가치관해석에 적용되기에는쉽지 않아보인다. 사회생물학적인간론은

일상적 인간이해에 근간을 흔드는 이론으로 자리매김하기에는적지 않

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것은 윌슨과

도킨스의 사회생물학은 몸과 마음의 이원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

실이며, 물리화학적 질료의 정신작용에 대한 주체의 유비적 전제의 사

실이다.52)

19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이해를 향한프롤레고메나 199

50) 도킨스가사용한meme이라는 단어는희랍어 mimeme에서온 것으로서문화전달개

체 혹은 문화복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Richard Dawkins, Selfish Gene ( O x f o r d

University Press, 1989), 192.

51) Dawkins, Selfish Gene, 192.

52) Wilson, Consilience, 123.

53)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티의 문학, 드라마, 건축, 시네마, 디자인, 등에 대해서 비평

적인 입장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모더니즘의 인문학(humanities)에 대한 비평이 핵

심적인 기반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모더니즘은 정체성, 객관성, 일체성, 권위, 확실

성과 같은 것들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차연성, 복합성, 다원

성과같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인문학의 근본적인 전제가 되는 인간론의 이

해에 대해서는 인간의 정체성과 객관성, 권위와 확실성에 관련된 것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앞에서 언급한 모더니티의 인간론의 대표적인 이론인 데카르트의 이원

론에서 몸과 마음에 대한 이해를 정체성과 객관성을 중심으로 논의한 것이다. 하이

데거의실존적 인간론도인간의정체성과객관성을고려한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Page 101: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의 의식에 존재할 뿐이다.

해체주의에서 자아에 대한 논의는 몸과 마음 혹은 주관과 객관이

하나의 일체적인 것으로 보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주관과 객관

이 하나의 일체된 것이라고 결정적으로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자아는

주관과 객관 사이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는 작용을 지속해야 하기 때문

이다. 데리다는 자아의 지움 이론(erasure of selfhood)을 주장하였다.

자아는 부르고 불려지는 명명 작용(naming)에 의해서 정체성을 가지

게 되는 것인데, 사실 명명작용 자체안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는 것이다.55) 명명작용의 실재가 부재한 것이기 때문에 자아의 현존은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흔적은 자아의 지움의 과정이며, 자아

의 현존의 없어짐이라고본 것이다.56)

이러한 인간론은 불교에서 언급하고 있는 부정된 자아를 진정한 자

아로 보는 것과 유비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이해이라고 볼 수 있

다. 자아의 정체성이 없는 궁극적인 공(空)의 차원으로서 무아 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언급한 것이 불교의 궁극적 인간론이다. 데리다가 불교

의 인간론처럼 궁극적인 공의 인간론을 주장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

다. 하지만 비어 있는 이름에 의해서 자아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은

흔적으로만 남고, 결국에서는 자아가 사라지는 것을 언급한 데리다의

자아론은 허무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57) 자아의 사라짐이라는 차원에서

불교의 인간론과공감할 수 있는여지가 있어보인다는의미이다.

테일러(Mark C. Taylor)는 데리다의 자아의 지움 이론을 바탕으로

자아의 사라짐(disappearance of the self)을 주장하고 있다. 자아란 이

름에 의해서 명명되어 가지게 되는 것이다.58) 자아는 부르고 불려지고

모색하는것이다.

포스트모니즘은 인간의 단면적인 정체성보다는 입체적인 복합성과

다른 존재와의 다원적 관계성을 탐구하고해석하는 것이다. 해체주의가

문학적 텍스트를 다루면서 고정된 문학적 틀과 시스템을 거부하고, 다

양한 차원을 탐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고정된 이해의 시스템을 해체하

고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다양하게 이해하는 복합성과 다원성을 이해

하고해석이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이다.54)

해체주의의 관심은 몸과 마음보다는 주체와 객체 혹은 주관과 객관

의 관계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객관이란 것은 구체적으로 들

여다보면 실제로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며, 객관적인 것은 결국

주관 속에서 내재되어 있는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객관적 진리라는 것

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되었지만, 실제로 객관적 진리

를 각자에게 적용하면, 객관적 진리로 맞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

다. 객관이란 것은 각자의 주관 속에서 표현된 패턴에 불과한 것이지,

진정한 객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있다. 객관은 주관속에서 자아

20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이해를 향한프롤레고메나 201

54) 해체주의의 인간론에서 인간의 정체성은 없어 보인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해의 틀이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체주의가 인간의 존재양식을 부

정하고, 인간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흔들었다고보기는 어렵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 획일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 해체주의가 주장하는 것의 중심이지,

각자의 정체성을 무시하거나 틀린 것으로 단정한 것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인간론의 시스템이 없는 것이지, 인간의 정체성과 의미는 복합적이고 다원

적인 차원에서 중요하게 존재한다. 해체주의가 몸과 마음의 이원론적인 모더니티의

인간론을 한 번에 해체하려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인간이 처해있는 상황과 맥

락에 따라서 인간 자신의 이해와 해석이 다르게 된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해체

주의에서 몸과 마음의 문제는 간단한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이 복합적인 맥락에서

해석되어 다원적인 이해가 일어난다면, 몸과 마음의 이원론적인 시스템으로 복합적

이고 다원적인 것을 해석하기 어려울 것이다. 해체주의는 몸과 마음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처해있는 상황의 복합적 맥락에서 다양한 관계성과 현상들을 포함한 존재양

식을 언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해체주의의 인간론은 몸과 마음의 모더니티 성

향을 넘어서복합적이고다원적인인간론으로향하고 있는것이다.

55) Jacques Derrida, Writing and Difference, trans. with an introduction and additional

notes, Alan Bass (New York: Routledge Classics, 2001), 130.

56) Jacques Derrida, Of Grammatology , trans. Gayatri Chakravorty Spivak.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76), 70.

57) Derrida, Of Grammatology, 70.

Page 10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으로 남게 된다. 몸과 마음의 이원적 성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해석 작

용은해석의 대상과 해석의 주체를 전제한 것이기 때문에, 해체적 주체

가 전제된 것을부정하기어렵다.

데리다와 테일러의 해체주의적 인간론이 일상적인 경험적 적용성에

서 타당성을 결정적으로 수용하기에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자아는 지

금 내가 살고 갖고 있는 현존의 정체성은 실재이기 때문이다. 자아의

삶이자고 나서흔적으로 남았다가 사라진다고 해서, 오늘의 자아를 부

재 혹은 사라짐의 대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궁극적인 차원에서는 해체

주의인간론이 설득력을 가질수는 있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현존자

체가 현재의 시간과 함께 하는 한 오늘의 자아는 지움과 사라짐의 해

체라고 보기 어렵다. 오늘 현존의 자아 정체성은 내일에 과거가 될 것

이고, 계승되는 자아의 정체성에 조건적 요소로 남아있게 된다. 사실화

된 과거에 있는정체성은 사라짐이라기보다는, 계승되는 정체성에 조건

적 요소로 남아있는 것이며, 지워지는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

다. 모더니티의실존적 자아의 완전한 해체로 보기어렵다.

I V. 히브리-유대적인간론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이 지금까지 언급한 포스트모던 인간론과 직

접적 관계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은 고대 인간

론에 해당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은 오

랜 기독교 역사 속에서 다양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은 포스트모던 시대에도 종교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종교주

변 문화에까지 여전히 적지 않게 영향을 주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서

포스트모던 인간론과 연계해서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있기때문에 여기

서 다루게 된 것이다.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인간론과 함께 모던

이름에 의해서 정체성이 형성되며, 존재론적 특성을 지니게 된다. 이름

에 의해서 형성된 자아는 일생동안 해야 할 일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삶

의 임무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59) 그러한 면에서 자아는 명목

적 차원에서 정체성이정해진다고볼 수 있다.

그런데 자아의 정체성 안에서 자의식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자

신의 부재를 발견하게 되며, 자아를 갖는 다는 것(selving)은 실제로는

무자아를갖는것(unselving)이라고 테일러는보았다.60) 자아를 찾아여

행을 하는 것은 위험한 항해이며, 자아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실

패할 것이라고 하였다. 세상의 흔적의 공간에서자아와 관련된 것을발

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의 사라짐 현상뿐이라고 하였다.61) 데리다의

자아의 지움과 테일러의 자아의 사라짐은 포스트모던 해체주의의 인간

론이허무적 특성을 안고있는것을나타내고있다.

테일러는 몸을 기괴한(grotesque) 존재로 보았다. 몸은 먹고 배설하

는 존재로서, 몸의내부와 외부의 상호작용을하는것이다. 몸의내외는

실제로 구분되기 어려운 것이며, 몸의 작용에서 내적인 작용도 외적인

작용으로 구분이 어렵다고 보았다.62) 질료의 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기능과 작용은 그저기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마음은 몸과

함께 사유작용을 하는것으로서, 비질료적 실체로서 특별한 존재양식이

나 기능을 갖는 것이 아니다. 기괴한 몸의 다양한 생동적 작용들이 멈

추면, 그것이바로죽음이며 몸의해체가 되는것이다.

해체주의에서 기괴한 몸과 해석작용을 하는 마음이 전제되고 있다.

몸의 생동적 움직임과 해석작용이 멈추면, 자아의 사라짐이 되어 흔적

20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이해를 향한프롤레고메나 203

58) Mark Taylor, Erring: A Postmodern A/theology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4), 34.

59) Taylor, Erring, 34-35.

60) Taylor, Erring, 50-51.

61) Taylor, Erring, 51.

62) Taylor, Erring, 162.

Page 10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전통에서 사용하던nepes의 의미를 유지한 것이다. 후대신학자들이신

약성서에 사용된 yuchv를 희랍철학에서 사용한 의미가 부분적으로 되

살아나면서 영어로 soul의 의미로 발전하였으며, 한국어로는 혼 혹은

영혼으로 번역한 것이다. yuchv가 신학적으로 발전하고 진화하여 신학

과 교리에 적용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nepes의 의미를 생기와 혼을

함께 의미하는 영혼으로 해석한 것이다. 사실 구약성서의 n e p e s가

yuchv와 soul의 의미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면을 찾기어렵기 때문에 생기와 혼의 의미의 복합성을 언급하는 것이

기도하다.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은 소마(sw'ma)를 인간실존과 불

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주장하였다. 인간은 몸을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몸이라고 하였다. 물론 불트만이 몸의 질료적인 것만을

인간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몸과 생기 혹은 혼을 포함한 존재로서 실

존적인 것으로 해석하였다. 불트만이 해석한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은

생기를 가지고 있는 몸이 실존적 인간이다. 인간은 일시적으로 존재하

며, 제한성 안에서 비존재가 될 현재의 실존은 불안과 위기를 경험하는

존재이다.64) 앞에서 언급한 모더니티의 하이데거의 실존적 인간론과 유

사성을 함축하고 있다.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의 실존적 이해는 불트만

이 종교적 경험의 불가피성을 언급하기 위한 차원에서 생겨난 것이기

도 하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종교적 인간론보다는 포스트모던 시대

의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의 지속성을 점검하고자 하는 것이다. 몸과혼

의 이원론적 특성은 nepes가 특별하게 설정된 질료적 실체에 영합되어

서 한 존재가 된 것이다.65) 포스트모던 과학철학의 창발주의에서 언급

시대의 정신적 기반 역할을 하였다. 모더니티의 이원론적 인간론은 포

스트모던 시대에 접어들면서 탈이원론적(postdualistic) 사상에 밀려서

쇠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더니티의 이원론이완전히 소멸되어흔적

을 찾아보기어려울 정도로 쇠잔한 것은 아니다. 포스트모던 사상은 모

더니티의 연속성 속에서이루어지고있으며, 이원론이 입체적이고복합

적인 해석에서 뒤로밀린 것이지, 이것이 완연하게 소멸된 것으로 보기

는 어렵다.

모더니티의 이원론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대표적인 포스트모던 사상

은 앞에서 언급한 과학철학의 창발주의라고할 수 있다. 창발주의란 마

음이 질료와 질료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것은 모더

니티의 이원론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며,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에서

몸과 영혼의 이원론적 특성과 연계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히브리-유

대적 인간론에 내재되어 있는 종교적 측면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모더

니티의 이원론과 마음에 대한 포스트모던 창발론과 차이가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핵심은 히브리-유

대적 인간론이 포스트모던 사상과 완전힌 결별해야 되는 이론은 아니

며, 오히려 창발주의의 마음의 창발론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

하는것이다.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에서 몸(sw'ma)은 질료적인 것을 의미한다.

인간 존재의 육체적인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생기(nepes) 혹은 혼을

담는것으로 묘사되고있다. 몸의본질은 질료적인것이며, 몸의기원은

흙에서 생성된 것이다.63) 신약성서에서 사용한yuchv의 의미는 히브리

20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이해를 향한프롤레고메나 205

63) 여기서 생기와 혼을 동격으로 보는것은 nepes에 대한 해석에서 개역성서는 생기로

번역하지만, 성서에 대한 해석학자들은 혼으로 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70인 역에

서 n e p e s가 y u c h v( p s y c h e )로 번역되었으며, 여호수아서에 있는 n e p e s는 e [ n m p e o n

“breathing being”으로번역되었다. 신약성서에서는주로yuchv로 사용하고 있다. 희

랍어yuchv는 희랍철학에서 불가시적 힘 혹은 비질료적인 영혼불멸적 존재를 지칭

하는 개념이었다. 희랍 사상에서 사용한 불가시적 힘은 몸을 지배하고 유도하며, 문

제가발생하면책임을 지는실제적인정신적 존재를의미하였다.

64) 이러한 불트만의 해석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실존적 인간론과 유사성을

가지고있다. 하이데거의실존철학과해석학적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서하이

데거의 모더니티의인간론을 재론하는 것이 아니라, 포스트모던 인간의 가능성을 보

고자하는 것이다.

Page 104: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사용되었는데, 이 경우에savrx는 sw'ma와 동의

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사용한savrx는 탐욕과 이기

적인 욕망을 일으키는 육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sw'ma는 인간의 보편

적인 몸으로서 중립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은

몸과혼의유기적 융합의 인격적 존재를 의미한다.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이 모더니티의 이원론적 인간론과 창발주의의

이원론과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은

몸과 혼이 유기체적으로 융합되었다고 하더라도, 포스트모던 유기체적

인간론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던 유기체적 인간론은

유기체의 특성이 인간의 존재양식 자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우

주적(anthropocosmic)인 차원에서유기체적이기때문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은 모더니티의 이원론과 창발주의의

마음과 질료의 이원적 성향과 유비적으로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 면이

있다. 유기체 인간론에서 물리주와 개념주의 작용은 몸과 마음의 이원

적 성향을 유비적으로 상기시키고 있다. 이들의 공유 기반은 이원적 성

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해체주의에서 주관 속에 있는 객관은 몸과 마음

은 아니지만, 여전히 주관과 객관의 둘이 하나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이

원적“성향”을 담고 있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해체주의에서 몸은 기

괴한 존재이면서 해석과 의미를 찾아가면서 흔적을 남기는 사유작용이

있다. 마음과 몸의 관계를 설명한 사회생물학에서도 이원성을 근본적으

로 흔드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들의 공유기반은 이원적 성향이며,

이것은 포스트모던인간론에서공유기반으로작용할 수 있는것으로 볼

수 있다.

V. 결론

포스트모던 인간론 프롤레고메나는 최근의 인간론에 관한 서론적

하고 있는 마음이 개체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과 유비적으로 대화의 가

능성을 갖고있는부분이다.

모더니티 인간론의 대표적 특성을 갖고 있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인간론에서 마음은 비질료적인 것이면서 존재론적인 것이다. 비질료적

인 존재가 질료적 존재와 공존하는 것이다.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에서

yuchv와 sw'ma가 유기체적으로 융합된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죽을 때에 질료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sw'ma는 흙으로 돌아가고, yuchv는 죽지 않고 잠자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몸과 혼이융합적 존재로서 일시적

으로 세상에 있다가, 비존재의 상태가 될 때에는 몸은흙으로 돌아가서

소멸되지만, 혼은항존한다는 의미를 갖는것이다.

구약성서에서영에해당되는개념은 생기로서ruach(breath)이며, 희

랍어로는pneu'ma로 번역되었고, 영어로는spirit가 되었다. 신약성서에

서 영pneu'ma는 혼 yuchv와 동의어로 사용된 경우가 적지않다. 물론

삼분설을 믿는 사람들은pneu'ma와 yuchv가 서로 다른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인간이 몸과영과혼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고있다. 신약성서에

서 사용된 몸과 영과 혼은 한 인격적 존재의 구성 요소들을 언급한 것

이다. 신약성서의 몸과 혼과 영이 삼분설에 입각해서 언급된 것이라고

해석하는것은쉬운일이아니다.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에서 몸에 해당되는 개념으로savrx(flesh)도

있다. 신약성서에서savrx는 sw'ma와 동의어로 적지 않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로마서7장과 8장에서 사도 바울은savrx와 pneu'ma를 상대적

인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종교적인 차원에서savrx와 pneu'ma는 서로

20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이해를 향한프롤레고메나 207

65) 물론히브리-유대적인간론을삼분설, 즉 몸과혼과영으로 나누어서해석하는사람

들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이해는 몸과 혼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혼

은 정신적인 차원과 영적인 차원의 융합적 상태로 해석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이

분설과 삼분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몸과 혼이 합해져서 하나

의 인격적 존재가되었다는사실이다.

Page 105: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이 모더니티의 인간론, 포스트모던 창발주의

인간론, 포스트모던 유기체적 인간론과 차이가 있으면서도, 부분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갖고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의 공유기반

은 인간의 존재양식에 있는 사유적 요소와 물리적 요소의 이원적 성향

이다. 모더니티의 몸과 마음의 인간실존은 창발주의의 마음과 개체의

이원적 이해 패턴과 공유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적 인간론에서 개념주와 질료주의 이원적 성향도 인간의 이해에 유비

적으로 이원론을 생각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해체주의적 인간론에서

자아의 사라짐과 사회생물학에서 후생규칙의 유전자적 인간론은 지나

치게 환원적 해석이 이루어지면서 일상적 적용성과 타당성에서 벗어난

느낌을 주고 있다. 기괴한 몸과 해석작용의 이원적 성향도 남아 있다.

그러나 윌슨과 도킨스의 사회생물학은 몸과 마음의 이원론적(bifurca-

tion) 성향을 완전히 벗어난 시스템으로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67) 해

체주의의 몸의 흔적과 해석의 마음작용의 관계는 이원적 성향을 탈출

한 것으로 보기어렵다. 사회생물학의 물리화학적 작용에서코드작용과

질료의 관계는 몸과 마음의 이원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밈과 몸의

관계를 설명한 것도 여전히 이원적 형식의 여운을 담고있다. 포스트모

고찰이다. 앞으로 더욱 정리되고 심화되고 발전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

이다. 여기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포스트모던인간론에 대한 정리작

업을 위한 서론적 고찰로서, 포스트모던 인간론 즉, 유기체적 인간론,

사회생물학적 인간이해, 해체주의적 인간론, 창발주의적 인간론에서 연

속성과 비연속성을논의하면서 공유적 기반을 모색하였다. 이들의 공유

적 기반에서 인간이해에 관한진전된 아이디어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

이다.

서두에서는 모더니티의 인간론의 문제점과 새로 도래하는 포스트모

던의 인간이해 사이에서발생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모더니티의인간

론에서는 이원론적 인간론과 실존적 인간론을 상세하게 분석비평하면

서 이들의 한계성을 언급하였다. 모더니티의 인간론이 쇠잔의 일로를

걷게 되는 이유와 문제점들을 기술하면서 포스트모던 인간론들의 등장

배경을 서술하였다. 모더니티의 인간론이 전적으로 막을 내리는 것인

지, 아니면 새로운 시대에서 어느 정도 이론적 잔류가 가능할 수 있는

지에 관한것을 다루었다. 이들의 이론에서 공통적으로가지고 있는이

론적 공유기반을 바탕으로 포스트모던 인간론의 새로운 지평의 필요성

을 언급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포스트모던 맥락에서 히브리-유대적 인

간론의 존속성에대해서 다루었다.66)

20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이해를 향한프롤레고메나 209

66) 포스트모던 인간론의 새로운 지평으로서 프롤레고메나 차원에서 논의된 내용들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다원차원에서적용되어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진전

작업이 일어나야 한다. 자연과학에서 제기되었던 생태계의 중요성이 인문학적 기반

으로 지지될 수 있는 근간으로 활용될 수 있다. 유기체적 인간론은 인간이 개인적으

로 독립된 존재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자연 환경과 사물 그리고 다른 사

람과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간우주적인 차원에서 생태환경 문

제를 정언명령적 차원에서 시행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이 있다. 포스트모던 인간론

의 새로운 지평은 간학문적 접근이 가능하며, 인간우주론적 인간이해의 생태학적 적

용이 가능하다. 사회계약적 법과 윤리적 관계에서 강조된 개인의 인권의 강조를 넘

어서유기체적인간관계성은공공의 안녕을 위한필연적 현상을이해할 수 있는실

제적 인간 관계개선의 기반이론으로 활용될 수 있다. 개인의 정체성은 개인이 가지

고 있는개성에 의해서결정되는것이아니라, 주어진환경과 인간관계에서자아의

차연성을 경험하면서 지속적 변화의 과정에서 패턴으로 존속하는 것이다. 유기체적

이고관계적인 인간론의이해는 심리치료에도부분적으로 적용되어활용될 수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보와 기억작용은 경험한 데이터가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이

해하였지만, 관계적 인간론은 인간의 기억과 정보처리 작용은 내재되어 있는 데이터

의 정보처리 작용이 아니라 외적 환경과 상호작용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마음

이 객체와 객체의 사이에 존재한다는 창발주의 이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에서물리-화학적 작용도 내재된 데이터의 정보처리 작

용이아니라 상호관계 작용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심리치료는 상호작

용의 마음 현상을 이해하고 환경과 관계의 상호작용을 활용하면 진전된 단계의 치

료의 가능성을 인문학적 기반에서 지지 받을 수 있다. 포스트모던 인간론의 새로운

지평은 프롤레고메나 차원을 넘어서 지속적으로 인문학적 기반이론으로서 진전된

연구가요구되는주제이다.

67) Wilson, Consilience, 123.

Page 106: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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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인간론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사상들 가운데 이원적 성향이

있다. 그리고 모더니티의 실존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몸과 마음의

유기적 일체로서의 주체가 있다. 이 주체는 모더니티의 실존적 주체라

기보다는 복합적 관계성 속에서의 상대적 주체성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의 이원성과 인격적 주체는 모더니티의 이원

론적 인간이해와 실존적 인간론과 함께 포스트모던 시대에 완전히 소

멸될 수 있는 인간론이라고단정하기는 어려운 점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히브리-유대적 인간론은종교적 특성이 아니라 하더라도,

인간론 자체만으로도 완전하게 쇠잔할 이론으로 보기는 어렵다. 히브

리-유대적 인간론은 몸과 마음의 이원적 성향의 패턴을 갖고 있는 포

스트모던 시대에도존속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포스트모던 인간론

에 대한 서론적 화두를 제시하였다. 각장에서 언급된 인간론이 심도있

게 탐구되어서 포스트모던 인간이해에 보다 진전된 기반이론이 정립이

필요하다고본다.

주제어

포스트모던 인간론, 모더니티의 인간론, 유기체적 인간론, 사회생물학적

인간론, 창발주의적인간론, 해체주의적인간론.

Postmodern Anthropology, Anthropology of Modernity, Socio-b i o-

logical Anthropology, Anthropology in Emergent Theory, Decon-

structive Anthropology.

접 수 일 2010년 10월 8일

심사(수정일) 2010년 11월 8일

게재 확정일 2010년 12월 10일

21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이해를 향한프롤레고메나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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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rolegomena to the Postmodern understandings of Anthropology

Sung-won, Kim

Professor

Korea Nazarene University

Cheonan, Korea

A Prolegomena to the Postmodern understandings of Anthropo-

logy is an introductory survey on the various postmodern inter-

pretations on human being. The aim of this essay is to find out a

common ground of the interpretations for a possibility of continual

existence of Hebrew-Judaic anthropology in postmodern epoch.

First, this essay deals with the anthropologies of modernity:

Descartes’ mind-body dualistic anthropology and Heidegger’s

existential anthropology as a prelude to the postmodern interpreta-

tions of human being. Some types of critique on anthropologies of

modernity are attempted, that have affinities with what postmodern

thinkers did.

For the postmodern understandings of anthropology, it deals with

the organic reflections on anthropocosmic theory in Whitehead’s

metaphysics, socio-biological interpretation of human being,

deconsturctive anthropology, and anthropology in the emergent

theory within philosophy of science. Then, this essay deals with

Hebrew-Judaic anthropology to search for the continuity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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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21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김성원, 포스트모던인간론이해를 향한프롤레고메나 219

Page 111: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사이(the betweenness)의 열림:

하이데거의『존재와시간』을 중심으로

박일준(감리교신학대학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강사)

I. 서론

동양적 사고는 동양이라는 지리적 공간에만 국한되어 존재한 것이

아니라, 번역된 텍스트들을 통해 서구에도“이미”존재하고 있었다. 그

러나 그 서구 사유 속에 존재하는 동양적 사고는 특정의 대상으로 존

재하기 보다는(특정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동양은 이미 제국주의적 시

선에 의해 왜곡된 것들 뿐), 사유의 개념적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을 것

이다. 본고는 서구사상속에서 동양적 사고의 흔적을 찾아내려는 노력

의 일환이며, 방법론적으로 동아시아적 사고의 근간을 이루는‘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개념이 아닌 개념을 서구 사상가, 특

별히 본고에서는 하이데거 속에서 찾아보고자 한다.1) 이는 오리엔탈리

What this essay finds is that the common ground of these inter-

pretations is to have a mode of bifurcation or binary feature; such as

mental and physical prehensions in Whitehead’s metaphysics,

understanding of mind which is different from physical body in

emergent theory, meme and body in socio-biology, and interpretive

mental activity within the grotesque body in deconstructionism.

These have some types of affinity with modern mode of dualistic

system, which reflects that podtmodernism has not completely

escaped from the dualistic or bifurcation mode. This provides a

relatively reliable clue for a continual existence of Hebrew-J u d a i c

anthropology, which has a binary mode of soul and body in

postmodern epoch.

22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221-244

1) 아마도 하이데거와 동아시아적 사고의 친밀감을 탐색하기 가장 좋은 자리는 파키스

(Graham Parkes)가 편집한 Heidegger and Asian Thought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87)의 텍스트일 것이다. 특별히 하이데거는2차대전 종전후 중국인

학생과 노자번역에착수하기도하였다.

Page 11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를 전개해 나아갔지만, 본고에서는 전기 하이데거, 특별히『존재와 시

간』안에서 전개되고 있는‘부르심’의 계기를 살펴보고, 이 존재가 존재

자들을 부르는 소리를 통해‘사이’(betweenness)가 현시하는 모습을

주목할 것이다.3)

I I. 하이데거의텍스트다시읽기

하이데거는존재는‘존재자’로 간주되어서는안 되지만, 그렇다고존

재가 존재하는 것들의 세계와 동떨어진 초월적 영역속에 스스로의 독

자성을 보존하고 있다고 보지도 않았다. 존재는 언제나 세계- 내-존재

로서현존재의형식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이제‘존재’는 현존재의관점

에서다루어지고 기술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서구의 전통적

인 존재사유를 그 기반으로부터뒤흔드는 선언이었다. 초월적 존재, 즉

하나님이 일상의 존재들의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유를 거절하고,

일상의 존재들의살아가는모습속에‘존재’의 진리가 담겨있다고선포

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를 통해기존 체제의 사유로부터 저항과 탈주

를 시도하는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하이데거의 시도를 다른 각도에서 기술하는 것도 가

능하다. 즉 하이데거는 존재가 존재자들을 거절하는 사건, 그래서 존재

가 또 다른존재자들을향해나아가는 사건이 존재의 진리라고 보았다.

저기(Da, 즉 t/here)4)로 스스로를 기투하지만, 기투된 현존재를 거절하

즘(Orientalism)에 대항키 위해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을 단순

히 주창하려는 것이전혀 아니다. 인간이라는 보편조건은 그 주체들에

게 근원적 보편성을 제공하고, 지면 여건상 여기서 상술할 수는 없지

만, 그 보편성은 인간의 사유에 흔적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것이 본고의

작업가설이다.

이는 다름 아니라 하이데거를 동아시아적‘사이’의 관점으로‘다시-

읽는’(re-reading) 것을 의미한다. 그의사유전개속에서‘사이의흔적

들’을‘다시-읽기’를 통해 더듬어 찾아가는 것 말이다. ‘사이’

(betweenness)란 존재하지않지만, 어떤것의존재를 말하기 위하여 요

구되어지는 공간 혹은 시공간 혹은‘터’(locus)를 가리킨다.2)‘사이’란

그 자체로는 존재하는 것이아니어서, 사이를 형성하는최소한 두 상대

가 마주하지 않는 한 발생하지 않는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철학 속에

이‘사이’(betweenness)의 계기를 담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현존

재(Dasein)가 존재의 음성을 들을 때이다. 이 존재의 음성은 세계-내-

존재로서 현존재가‘저들’(das Man) 속에서 일상적으로 그리고 평균적

으로 살아갈 때, 그를 불러 일깨우는 양심의 소리 혹은 부름의 형식으

로 도래한다. 바로 이 부름 혹은 부르심(calling)이‘사이’가 모습을 드

러내는 계기이다. 만일 이‘부르심’이 없다면, 사이는 전혀 인식 혹은

인지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존재가 현존재 가운데서 일깨워지는 계

기이다. 하지만 존재가 현존재와독립적으로혹은초월적으로존재한다

는 의미가 결코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현존재가‘존재자’의 형식으로

살아갈 때, 그를“자신의 고유한 자기에게로”부르는 음성이 있고(하이

데거 1998, 364), 이 음성은 곧 현존재 자신을‘부르는 자신’과‘부름을

듣는 자신’으로 분화 혹은 분기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

이 초기하이데거 안에담지된‘사이’(the betweenness)의 계기이다. 후

기 하이데거는 이‘사이’(das Zwischen)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인 사고

22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박일준, 사이(the betweenness)의 열림: 하이데거의『존재와시간』을 중심으로 223

2)‘사이‘(betweenness)에 대한 개념이해를위해서는박일준 2008, 135-164 참조.

3) 후기가아닌 전기의 하이데거를 주목하는이유는, 파키스(G. Parkes)의 책(1987) 저자

들이 증언해 주듯이, 후기하이데거는 이미동아시아적 사고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후

여서, 그 이후의 사유 속에서 동아시아적 영향력을 상대적으로 손쉽게 관찰할 수 있

다. 하지만 본고에서탐색하는사유적 동조는 인위적이거나의식적인것이아니라, 자

연적(coincident) 동조이다. 이런목적을 위해서는동아시아적 사유를 직접 접한경험

이 없다고 여겨지는전기하이데거가 더 적합했다.

Page 11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das Zwischen) 개념을 적극적으로전개하지 않는다. 적어도 초기의 하

이데거에게‘사이’라는 용어는 두 개의 객관적으로 현존하는 물들

(things) 간의 분리와 나눔 혹은 주체와 객체의 분리와 나눔을 소묘하

는 듯한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Heidegger 1996, 124). 하지만 그럼에

도 불구하고『존재와시간』은‘사이’(betweenness)의 계기들을 담지하

고 있다. 예를 들면 존재(Sein)가 현존재(Dasein)에게 시간성을 통해

스스로를 열어 보일 때 그 사이 계기를 엿볼 수 있는데,‘이미’와‘아

직’사이를 살아가는 시간적 존재로서 현존재가‘출생과 죽음’의 형식

을 통해시간성을 경험하고, 그렇게 경험된 시간성을 통해 존재를 알게

될 때,‘이미’와‘아직’의 시간적‘사이’(betweenness) 개념이 충실히

배어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 현존재들은 존재 자체와 저기(Da) 사

이(between)에 자리 매김되어 있어서, 그 사이(das Zwischen)를 살아

가는 존재로 소묘될 때, 현존재(Dasein, 즉 being-t/here)는 존재(Sein)

와 저기(Da) 사이를 가리키며, 바로 그 애매한‘사이’의 자리가 인간의

자리인 셈이다. 이때 Da는 어떤 특정의 시공간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

라, 그 자체로 여기와 저기(t/here)을 동시에 불특정적으로 가리키고 있

다는 점에서 그 자체 안에 애매성을 담지하고 있고, 이는 곧 현존재

(Da/sein)들의 다중다수성(multiplicity)과 복잡성(complexity)의 물적

근원이 된다. 그 저기로 기투된 현존재는 (존재와 매듭지어진)‘사이’로

부터 버림받은 자녀들(foundling)로서 저기에서 존재 자체도 아닌 그

러면서 저기와 완전히 일치되는 것도아닌애매한 상태, 즉 일(一 Sein)

과 다(多 Da)의 애매모호한‘사이’에 위치한다(코링턴 2007, 243). 왜

냐하면 존재는 자기화(Er/eignis)를 통해저기(t/here)로 나아가지만, 저

기에기투된 자신, 즉 자신의 자식들인‘존재들’(beings)을 거절하기때

문이다. 이는 존재자신이 저기에서 구현한 자기자신의 모습으로서존

재자들을스스로 부인함을의미하는 것이다. 존재는저기에서 존재자들

로 구현된 자신의 형상들을 혹은 자신의 자녀들을 자신 자체로 인정할

수 없었다. 존재(Being)로부터 존재들(beings)이 버림받은 사건, 바로

는 것, 그래서 또 다른자기화 사건(Er/eignis, 즉 en-own-ment)5)이 계

속적으로 이루어져 가는 것을 역사로 간주하였고, 이 역사는 반복된다

고 보았다. 그리고 이 반복은 끝없는 차이의 기입을 전제로 한다고 보

았다. 존재(Sein)는 저기(t/here)에 스스로를 기투하여 자기를 실현코자

하지만(Er/eignis), 실현된 자기는 이미 자기가 아니다-존재의 끊임없

는 자기 찾기. 그래서 부르심은 우리를 부르면서 동시에 신을 부른다.

하이데거에 대한 이러한 다시 읽기 방식은 하이데거의 본래 의도, 즉

존재를 초월적 영역에서 사유하지 않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생활 세계 속에서 조망하고자 했던 현존재의 사유를 위반하는 듯이 보

인다. 존재를 다시금 현존재와는 구별된 다른 존재로 묘사하는듯한 인

상을 풍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존재와 현존재‘사이’에서 일어나는

반복과 차이의 기입을 본고는‘사이’(betweenness), 보다 정확히‘서구

적 의미에서 사이’로 보고자 한다. 그것은 존재와 현존재를 두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존재가‘사이화’(between-izing)되는 계기, 즉 존

재의“자기-갈라짐”혹은 자기-분화(“self-fissuring”)으로 보고자 하

는 것이다(코링턴 2007, 34).

1. 현존재-저들의자아와존재의자아‘사이’

사실 하이데거는『존재와 시간』에서, 그의 후기 작품인『철학에 대한

기여들』(Beiträge zur Philosophie)가 보여주는 전개와 달리, ‘사이’

22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박일준, 사이(the betweenness)의 열림: 하이데거의『존재와시간』을 중심으로 225

4) 독일어의Da는‘저기’만을 의미하기보다는문맥에 따라‘여기’와‘저기’를 산발적으

로 의미한다. 그래서 Da를 영어로번역하면서 t/here로 번역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한국어로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어 근사한 의미로‘저기’로 번역한다. 참고. Martin

Heidegger, 1999 & 1989.

5) Ereignis는‘존재 사건’으로 번역되어 왔지만,『철학에의 기여』가 영역되면서 번역자

들은 하이데거가Er-eignis로 쓰던 표기를 살려 이를 en-own-ment(진정한 자기화)

번역하였다. 본고는 번역자들의 의도에 공감하며, 내내‘존재사건’보다는‘자기화’로

번역한다; 참고. Martin Heidegger, 1999 & 1989.

Page 114: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전체’란 세계 내 사물들의 객관적이고 외적인 총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현존재의자기경계를 의미할 따름이다. 세계는 결코객관

적으로 현시되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는‘나’의 경계와‘우리’의 경계가

서로 엮어지며 이루어가는 무늬를 따라 팽창하고 수축한다( W i t-

tgenstein 1981, P.5.6.3.).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세계 내에 존재

한다는 것은 세계를 아는 하나의 형태라 할 수 있다.‘나’혹은‘우리’

의 관심과 염려의 범위가 세계의 범위이고, 그래서‘염려’의 양태란

“세계 내 존재의 일상성에 귀속”되어 있기 때문이다(Heidegger 1996,

68). 관심과 염려가 현존재의 일상 세계를 설정한다. 이 현존재의 실존

적 구조는 언제나 오해(의 가능성)를 동반한다.‘우리’의 구조가 현존

재 자체를 구성하고 있는 이 세계 내 존재 위로 끊임없이“주체-객체

관계”를 투사하고 있고, 그렇게 하여 얻어지는 세계에 대한 지식은 투

사된 것에 대한 반응 이외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Heidegger 1996,

55). 다른 말로, 타자란 언제나‘나’의 투사를 통해 이해되어지기 때문

에, 진정한 타자와의 만남이란 지연될(defer) 수밖에 없고, 이러한 지연

이 타자에 대한오해를 배태하기때문이다.

세계 내 존재의 존재 양식인 염려를 통해 사물들은 실존적으로 익

숙하고 편안한 모습으로”(handiness) 다가온다(Heidegger 1996, 67).

‘나의 실존적’세계 안에서 사물은 바로 가깝고 편리한 곳에 자리하고

있고, 그래서 모든 사물은‘내’가 바라보는 관점과 관련하여 존재하고

있어서, 익숙하고 편안하다는 말이다. 당장의 친숙한 사물들과 함께 세

계 내에 존재하는 현존재를“함께 존재하는 존재”( b e i n g-with, M i t-

dasein)라 한다(Heidegger 1996, 107). 현존재의 (타자와 더불어)‘함께

존재함’이란, 적어도 하이데거에게는, 타자를 전적으로 그 본연의 모습

으로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기 보다는, 오히려“만면하는 타자성 속에서

언제나 동일한 어떤 것”(something self-same in mainfold other-ness)

만을 드러낸다(Heidegger 1996, 108). 현존재는 언제나 타자들과 함께

있음으로 존재하지만, 이때 하이데거의 현존재가 말하는‘타자’( t h e

이것이 사태의 진상이다(Heidegger 1991B, vol. 3., 181). 이 거절은 존

재가 존재자들에게 자행하는 폭력이자 동시에 존재들을 그들 스스로의

존재들로 풀어주는 사건이다. 오로지 이 거절과 포기 속에서만 존재는

그의 은폐된 형식을 통하여 존재의 시원적 시작을 지시하고 드러내면

서, 또 다른시작을유혹한다. 이때존재가 스스로를기투하여존재들로

펼쳐내는 사건은 존재가 저기(Da)를 전용(appropriation)하는데 그치

지 않고, 그 익숙치않은 이방인같은 현존재의 모습들로 스스로를 양보

하는사건이다. 이 낯섬은 현존재에대한존재의 부인과 거절이지만, 현

존재를 하나의 존재로 용인해준다는 점에서 존재의 사건(Er-eignis =

en-own-ment)을 그대로 반복한다. 그러나 그 반복 속에서 주체는 이

제‘존재의자아’가 아니라‘현존재의자아’이다.

현존재(Dasein)란 다름아닌“바로이 존재[this being]에 대한존재

의 관계”를 가리키며(Heidegger 1996, 49), 이를 하이데거는 실존이라

불렀다.6) 다시말해, 현존재는객관적으로 현재하는 하나의 존재가 아니

라, 바로 이 존재의 존재됨으로서언제나‘내존재’를 가리키며. 그래서

다른 모든 존재들을“나의 것”(mineness)이 되는 지평 안에서 조망함

을 가리킨다(Heidegger 1996, 49). 스스로의독자적 지평으로서 현존재

의 역설은 여기에 놓여있다. 현존재의 실존적 구조가 홀로독립된 원자

적 존재 구조가 아니라‘우리’라는 존재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

다. 세계 안에서‘나’라는현존재는‘우리’라는 이름의 경계로 연장되어

존재한다(Heidegger 1996, 11). 즉‘우리’란‘내 세계’에 귀속된 저들

(the they, das Man)과 더불어 구성하는 세계의 경계를 의미한다. 이 경

계를 통해 현존재의‘나’는 자신의 세계를‘전체’적으로 굽어본다. 이때

22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박일준, 사이(the betweenness)의 열림: 하이데거의『존재와시간』을 중심으로 227

6) 현존재의 일반적 실존이 아니라,“나의 것됨”(mineness)의 실존이 곧 현존재에게 진

정한실존이고, 이 진정한실존을 객관적인‘일반적혹은보편적실존’과 구별하기 위

하여, 하이데거는‘existential’이라는 용어 대신 ‘existenziell’이라는 단어를 도입하여

표현한다. 이때existenziell은 존재론적(ontological) 실존이 아닌 존재적(ontic) 실존

을 가리킨다(Heidegger 1996, 11).

Page 115: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바로 저들이 창조해내는“평균성”( a v e r a g e n e s s )이다(Heidegger 1996,

119). 이 평균성은각 현존재들의모든차이들을저들의 익명의 타자성

으로 해소하고, 그래서 현존재는 저들에 속하여 저들의 일부로서 살아

가게 된다. 저들의 일상성 속에서 자아는“대체로 현존재의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이 아니라 바로 저들의 자아”외에 다름 아니다

(Heidegger 1996, 247). 현존재가그 평균성으로녹아들어가는 것은사

실 현존재의‘함께-존재하는-존재’로서의 특성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다. 현존재, 즉 Dasein이란 결국 저기 있는 존재(being-t/here)이고, 저

기란어느특정의 곳을지칭하는 것이아닌불특정의 저기(t/here) 이므

로 애초부터 현존재의 주체성이란 저들의 공공성으로 내던져진 존재로

서의 정체성이며, 그렇게 주어진 정체성을 결코 탈출하지 못한다. 따라

서 현존재는 주체성으로서의‘나’(the I)와 저들이‘나’로 표상하는

‘나’(the me) 사이에서 모호하게 저기에(t/here) 존재한다( H e i d e g g e r

1996, 163). 이 모호성이 서로-함께-존재함(being-with-one-another)

의 상태를“서로를 위한다”(the for-one-another)는 명목으로“서로를

대적하는”(the against -o n e-another) 게임으로 변질시켜 간다

(Heidegger 1996, 163). 니체의 말처럼, 힘을 향한 의지들의 투쟁 아니

던가! 현존재는 저들의 세계 속으로 엮어 들어가면서, 세계의 먹이가

된다. 그러면서, 현존재의 진정성(authenticity)8)은 덮여지고(은폐되고),

그리고 그의 비진정성이(발생)출현한다. 그 비진정성은 비존재를 의미

하는 것이아니다. 오히려 그것은“세계와그리고 저들속에 담긴 타자

들의‘함께-존재함’에 완전히 잠식되어 세계-내-존재로 살아가는 고

유한삶의 방식”을 가리키는 것이다 (Heidegger 1996, 164). 저들의 세

계와이렇게 뒤얽히면서, 현존재는“스스로를진정한 자아(the authentic

other)란“내 자신과 구별되는”타자가 아니라,“내 자신과 거의 구별되

지 않는”저들(the they)을 말하기 때문이다(Heidegger 1996, 111). 타

자의 존재를 통해‘내 존재’의 지평이 상대적으로 규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이데거에게 타자란 내가‘우리라는 범위’안에 포함시킬 수

있는 타자로서 결국 나의 확장 이외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타자란“자

아의 판박이”(a double of the self)일 수밖에 없다(Heidegger 1996,

117). 이런맥락에서 보면타자란 목적격으로서 나(me)에 다름아니다.

즉 내가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싶은‘나’의 모습을 투사한 결과( t h e

O t h e r )이거나,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을 비하적으로 외면한

(abjecting) 결과로 타자가‘내’앞에 도래한다는 말이다. 하이데거에게

현존재가 언제나 이미‘함께 존재하는 존재’(Mitdasein)란 말은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 따라서 이 함께-존재하는-존재는 결코‘여러 주체들

이 물리적으로 거기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저 우

리’가 함께하는 타자들은 전적인 타자(the totally other)가 아니라, 이

미‘저 우리’(the we)에 속한 타자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함께-존재하

는-존재의 경계는 일종의 확장된 독아주의(獨我主義, extended

solipsism)에 더 가깝다.

확장된 독아주의 속에서 현존재는 비진정한 것이 되고, 저들( t h e

they)7)의 힘 아래서 그의 참된 자아성을 상실하며, 저들이 현존재에게

그 자신이라고부여하는‘나’의 정체성 속에서 자신의 진정성을찾고자

헛되이 노력하게 된다. 이때 자아와 타자는 모두 이‘저들’에 속하게

되고, 그 저들 안에서 타자들은 소멸한다. 저들이 모든 류의 차이와 고

유성을 불투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Heidegger 1996, 119). 저들로 뭉

뚱그려지는 무리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엇비슷하게 존재하고, 이것이

22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박일준, 사이(the betweenness)의 열림: 하이데거의『존재와시간』을 중심으로 229

7)‘저들’(the they)로 번역 인용된 독일어 원어는 der Man이다. 본고에서 인용하는Sein

und Zeit의 영역본을 번역한Joan Stambaugh는 내내der Man을 the they로 번역한

다. 문맥상 그녀의 번역이 하이데거가 말하고자 하는 본래의 의도를 잘 담지하고 있

다고보아, 그녀의번역을따랐다.

8) Heidegger가 본래 사용한 용어eigentlichkeit를 진정성(authenticity)로 번역한 것은

본고가 인용하는 영역본의 번역의도를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다. 본래적 고유성은

originality나 uniqueness로 번역할 경우, 하이데거의 본래 의도가 심히 손상되기 때

문이다.

Page 116: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자아에로나아가는 길을발견한다. 현존재의 진정성은 일상을 초월하거

나 혹은 그 위에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일상성을 개량적으로

파악”함으로부터 가능한 것이다(Heidegger 1996, 167). 심지어 현존재

가‘저들’안에서 스스로를 비진정한 것으로 이해함으로써‘저들’로부

터 스스로에게 되돌아올 때조차, 현존재는 저들과 분리되어지지 않는

다. 그 대신, 저들은 실존적으로 개량수정되고, 저들에 대한 이 실존적

개량 수정이“진정한 자신의 자아됨”(authentic being-one’s-self)이

된다(Heidegger 1996, 248). 그 진정한 자아는 여전히‘나’의 형식으로

표현되긴 하지만,‘저들-자아’(the they-self)로부터 부여된 나(the me)

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실존적 불안(Angst)으로부터 그리고 절대적 무-

그리고 죽음-의 가능성을 맞이함으로써 개별화된 그래서 침묵으로 말

하여지는 나로서 스스로를 표현한다. 그 침묵 속에서‘나’는 말하여지

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서 존재한다. 진정한 자아는 바로 이 침묵

으로부터 발생한다. 이 진정한 자아의 발생은 현존재로 하여금‘사이’

공간을 일견케 한다. 즉 저들이 부여해준 자아와 존재의 무게를 묵묵히

감당하는 또 다른 (진정한) 자아‘사이’에 자신이 섭동하고 있음을 느

낀다. 따라서 현존재는‘이미’와 아직‘사이’를 살아가는 시간적 존재로

서, 존재 자체와 저기‘사이’에서 저들의 자아와 존재의 자아‘사이’에

서 진동하는철저한‘사이 존재’이다.

2. ‘사이’의 음성-양심의소리, 그 부르심

현존재는‘저기-있음’( b e i n g-t / h e r e )으로서 세계로 던져진 존재로

동조되지만, 동시에, 현존재는 이 던져짐(thrownness)으로부터 스스로

거리를 두고 외면하고자 노력한다. 그“동조”(attunement)는 현존재를

self)로부터 소외시킨다”(Heidegger 1996, 166). 이 뒤얽혀있음(entan-

glement)은 현존재의 진정한 모습을 은폐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현존

재의 진정성(authenticity)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그 뒤얽힘

은“존재 자체를 희구하는 진정한 잠재성인 자신으로부터 현존재의 도

주”이다(Heidegger 1996, 172). 하지만, 자신의 진정성을 은폐하기 위

한 현존재의 도주는 바로 그 도주의 방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스스로로부터 멀어져갈 때, 그 현존재로

하여금 자신이 어디로부터 멀어지고 있는가를 알게 함으로써 그 자신

에게로 되돌아오도록하기때문이다(Heidegger 1996, 173).

자아의 참된의미, 즉 진정한 자아는 그“자신-됨”(own-hood)에 대

한 실존적 자각에 다름 아닌데, 이때 자신됨(own-hood)이란 왕의 통

치관할 범위(king-dom)로서 왕국을 나타낼 때와 같은 의미 맥락에서

자신이 스스로 다스리는 범위로서 자신-됨을 말한다(Heidegger 1999,

224). 즉 자신이 자신을 다스리는범위가 자아이다.‘저들’의 기만적은

폐 속에왜곡된‘나’의 자아는 바로그 왜곡의 뒤얽힘을 알게되면서부

터 진정한 의미의‘자신’(ownhood)을 실존적으로 발견하여, 그로부터

진정한 자아와 저들이 부여하는 자아가‘사이’의 형식으로모습을 드러

낸다. 바로이것을 하이데거는참“자기화”(Er-eignis, enownment 혹은

enowning)라 불렀다. 이‘참 자기화는“지금까지 받아들여졌던‘나’를

지향하는 자의식으로부터”자아의 진정한 자기화로의“건넘”(crossing)

으로부터 유래한다 (Heidegger 1999, 47). 이때 참으로 진정한 자아란

“주체의 예외적인 상태, 즉 저들로부터 구별되어 떨어진 상태가 아니

라, 본질적 실존으로서 저들의 실존적 개량”(an exisentiell modifi-

cation of the they as an essential existential)을 말한다( H e i d e g g e r

1996, 122). 저들의 실존적 개량은 현존재 자체가“깨어짐”(clearing)이

라는 사실에 기인한다.9) 그‘깨어짐’과 더불어, 현존재는 그의 진정한

23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박일준, 사이(the betweenness)의 열림: 하이데거의『존재와시간』을 중심으로 231

9) Lichtung을 영어 번역본에서는‘clearing’으로 번역하였고, 이를 한국어로 옮기면서,

‘깨어짐’이라고 번역하였는데, “깨어남”(awakening)과“깨짐”(the broken-down of

the outer shell of the self)을 동시에 가리키면서, 또한 생각이 깨어졌기 때문에‘맑아

진다’는 의미도 함축한다고 보여지고, 바로이러한 함의 때문에‘깨어짐’으로 번역해

보았다.

Page 117: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앞으로 밀어붙인다. 왜냐하면 결단이 갖는미래에 대한 예기적 힘이현

존재에게“아직 지나가지 않는허무의 가능성”을 주지시켜주고 있기때

문이다(Heidegger 1996, 303). 그것은 바로 허무, 즉 죽음에 대한 외로

운 자각이다. 이 허무의 가능성은 현재의 현존재에게 절대적 타자로서

계속되돌아온다.

이제 불안과 죽음의 가능성에 대한 동조 속에서 현존재는 한 음성,

즉 양심의 음성을 듣는다(Heidegger 1996, 248). 이 음성은 현존재의

‘저기’를‘사이의 공간’으로 전환시킨다. 근원적 존재와‘저기’에 부유

하는 존재‘사이’의 공간으로 말이다. 이때 양심의 소리는 그 자신의

실존으로 현존재를 다시 부르기 위해, 즉 허무한 근거위에 내던져진자

신의 존재에로 다시 부르기 위해, 현존재를 주지시킨다( H e i d e g g e r

1996, 264). 이 부르심(call), 이 호출은 저들속에있는존재안에서, 즉

저들 안에서 상실된 자신 안에서 현존재의 텅빈 근거없는 근거를 드러

낸다. 왜냐하면 죽음의 가능성, 즉 그“절대적 무화”의 가능성이 현존재

는“허무의 허무한 근거라는 사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H e i d e g g e r

1996, 283). 불안은 현존재 앞에서 이 사실을 덥고있는모든 가식들을

깨끗이 청소하여, 절대적 무가그 어느 때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한다. 이 무(nothingness)의 느낌은 현존재를 홀로있게 만들고, 그리고

저들 안에 상실된 그 자신의 존재로부터 다시금 끄집어 내준다. 저들

안에서 상실된 자신에 대한 느낌은 현존재를 이제 죄책감으로 이끌고

가는데, 양심의소리는 배려를 요청하는 소리, 즉 타자를 위하고 배려하

라는 부르심이기 때문이다. 저들에 묻혀 지내며, 자신뿐만 아니라 타자

까지도 우리들의 일부로 전용(appropriation)하며 살아왔고, 그래서 진

정한 타자를 억압해 왔던 과거를 일깨우는 부르심이다. 그때 현존재는

텅 비어 있는자신의 근거를 보기시작하고 동시에, 그 텅 빔을그대로

진정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양심의 소리는 실제로는 말하지 않지

만,“침묵적으로, 불분명하지 않게”들리는 것이어서, 저들 속에 깊숙이

빠져있는 현존재를 그‘저기’로부터 떼어낸다(Heidegger 1996, 251).

‘저기’로 데려온다(Heidegger 1996, 128). ‘저기’서 현존재는“친숙하

고 편리한 어떤것 혹은 객관적으로현존하는 어떤것 혹은‘함께 존재

하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의 정조와 더불어 열려진다( H e i d e g g e r

1996, 132). 그것은 바로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다. 세계-내-저기에-

있는 현존재는항상“두렵고”, 그리고 이 두려움은“현존재일반의 본질

적 흐름이 담지한 실존적 가능성”이다(Heidegger 1996, 133; 134). 이

두려움은“불안”(Angst)으로부터 유래하는데, 이 불안은 그 불안의 대

상을 보여주지 않는다(Heidegger 1996, 174). 불안은 이것이나 저것으

로부터 유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불안은“주변 사물들 일반의 가능

성, 즉 세계 그 자체의 가능성”으로부터 온다(Heidegger 1996, 175).

즉 불안은 세계 속에 객관적으로 현존하는 사물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존재가 세계 내에 존재함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보이지 않는 타자, 즉 현존재를 내버린 타자에 대한 불안이다. 버림

받은 존재로서, 현존재는 존재적으로 기아(棄兒 an ontological foundl-

ing)인데, 존재적 기아로서 현존재는 자신의 세계-내-있음을 두려워

하지 않을수 없다. 그때불안은 현존재를 그의개별화(indi-vidualiza-

tion)로 추동해 가는데, “solus ipse,” 즉 독아상태(solipsism)로 몰아간

다(Heidegger 1996, 176). 이때, 불안은 현존재를“아무것도 아님( t h e

nothing)과 아무데도 거할곳이 없음(nowhere)”의 섬뜩한 느낌으로 데

려간다(Heidegger 1996, 176). 이 섬뜩함이현존재로하여금 일상의 친

숙한 세계 한 가운데서, 즉 저들(the they)의 일상적 공공세계 속에서,

“불편함”( n o t-b e i n g-a t-h o m e )을 느끼게 만든다(Heidegger 1996,

176). 세계 내에서 불편하다는 느낌은 저들의 공공성을 지향해 나가는

스스로의 모습으로부터 현존재가 돌아설(turning) 수 있도록 해주면서,

저들의 세계가 현존재에게 편안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이제

현존재는, 그 세계-내-존재로 여전히 살아가고 있음에도, 홀로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럼으로써, 불안은 그 세계와 뒤얽혀 있음의 상태로부터

현존재를다시끄집어낸다. 현존재의내던져짐과불안은 현존재를이제

23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박일준, 사이(the betweenness)의 열림: 하이데거의『존재와시간』을 중심으로 233

Page 118: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현존재의 존재적 무근거성을 끊임없이 되뇌여 준다. 사실‘현’존재를

매순간‘더 이상 아님’의 차원으로 이끌고 가는 시간이나,‘현’존재됨

의 궁극적 종말인‘죽음’이나 모두‘침묵을 통해’현존재에게 저들과

더불어 파묻혀 살아가는 삶의 허무(nihil)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현존

재에 대한 거절을 나타내는 존재의 소리가 침묵을 통해 들려진다는 것

은 어찌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현존재됨에 마주한 상대로서 존재는

사이하고(between-izing), 현존재는 자신의 자신됨(owning)을 언제나

저들이 부여해주는 나(the me)로서 인식하고 있어서, 존재가 부르는 소

리, 즉 양심의 소리는 들릴수 없다. 저들안에귀속된 현존재의허무성

(nihil)이 모든 존재자들의 공통 특성임을 알게 되면서, 그 저들 안에서

모든 현존재는 각각 홀로 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

면서, 즉 자기 자신의 무(nothingness)를 자각하게 되면서, 그 무를 통

해 현존재는‘현존재 됨을 존재 자체의 자신으로 삼기를 부정하는’존

재의 소리를 듣게 된다. 존재와 존재자들, 존재 자체와 현존재는 그‘없

음’을 통해 서로 사이하고(between-izing), 그 사이의 침묵의 소리를

통해서로를 마주보게된다. 그 사이로부터 들려오는 침묵의 소리는 현

존재를 저들 안에 터한 익숙함으로부터 내몰아가는‘침노하는’(irrup-

tive) 소리이다.

I I I. 부르심-근원적동일자의소리

저들에 파묻혀 살아가는 현존재에게 기존의 파묻혀 살아 가는 삶의

기반을 부정하는 소리는 이미 시간을 통해 현현하는 현존재의 이중구

조, 즉 being-t/here과 being-away의 구조를 통해, 그리고 친숙한 이들

의 죽음을 통해 미리 내다본 자신의 미래적 무화(becoming-nothing)

를 통해 들려온다(Heidegger 1999, 212-213). 저들에 파묻혀 살아가는

삶의 실존적 구조 속에서‘자아’는 자신과는 다른 근원적 존재자체가

양심의 묵묵한 소리는 그 어떤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현존재를 그

침묵(silence)으로,“그 스스로에 대한 과묵함으로”부르면서, 타자들에

대한 부적절한 돌봄과“저들과함께-있음”안에내재하는 죄책들로 부

른다(Heidegger 1996, 253; 265). 그 음성은 단호하다. 그 단호함은 현

존재로 하여금 양심의 소리에 반응하도록 만들고, 그 자신의 자아가

“타자들과 더불어 함께-있고 배려하는 존재”가 되도록 한다(Heideg-

ger 1996, 274). 따라서, 단호함(resoluteness)은 현존재를“그의 상황의

실존”으로-즉 저기 저들과 함께 있음이 갖는 허무한 근거로-데려다

놓음으로써“저들 속에 상실된 자신으로부터 소환되어질 수 있도록 한

다”(Heidegger 1996, 276). 양심의 소리는 현존재로 하여금 저들과 구

분 없이 묻혀 살아가던 자신의 세계 속에 타자의 존재를 일깨우고, 이

타자(들)의 존재는 이제자신이 내적으로‘사이’를 구성하고 있음을 알

려준다.

3. 하이데거의부르심: 양심의소리-사이의침노

하이데거에게 현존재의 양심의 소리, 현존재를 향한 존재의 부르심

은 현존재가 저들 안에 파묻혀 저들에 근거하여 살아감에 대한‘부정’

(negation)을 말한다. 그것은 무언가를 말함으로써 현존재를 부르는 것

이 아니라, 현존재의 실존의 무근거성을 존재의 시간적 양식들을 통해,

그리고 죽음이라는 종말의 사건을 일깨움을 통해, 침묵으로 말한다. 이

침묵의 부르심을 통해, 현존재는 언표될 수 없는 근원(the unspeak-

able)을 만나게 되고, 그 만남을 통해 자신 존재의‘사이됨’(between-

ness, 즉 das Zwischen)을 깨닫게 된다. 존재는 자기화를위하여 스스로

를 저기로 기투하고, 그렇게 기투된 현존재를 자신으로 인정하기를 거

절한다. 이 존재의 존재자(들)에 대한 거절을 통하여 현존재는 거기서

존재적 기아로서 살아가게 되는데, 현존재는 그 자신 안에자신의 존재

됨을 무화하는 힘으로서 존재의 거절을 담지하고 있고, 이 거절은 결국

23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박일준, 사이(the betweenness)의 열림: 하이데거의『존재와시간』을 중심으로 235

Page 119: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일상성은, 영적싸움을강조하는바울적 전통을 따라, 끊임없는내적투

쟁을 이겨나가는 과정이었는데, 일상성에 대한 이러한 전투적 이해의

뒷면에는“군사주의”가 도사리고 있고, 그러한 군사주의란 결국‘힘’을

향한 추구에 기반해 있다는 것이다(Caputo 2006, 161). 반면 카푸토의

일상은 하느님이 허락해 주신 매순간, 즉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을

“하느님의 시간적 리듬에 맞추어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C a p u t o

2006, 161). 카푸토의 관점에서하이데거의 동일자를향한희구는 존재

의 힘을 향한 희구와 맞닿아 있어서, 양심의 소리는 언제든지 힘을 추

구하는 악마의 소리로 변질될 가능성이 하이데거의 침묵 속에 도사리

고 있다는 말이다.‘나’의 실존적 정황이 담지한‘저들’의 평균성-그것

을 깨치고 나가진정한‘나’를 거대한 존재 안에서 찾도록 양심의 소리

는 부르지만, 그 거대한 존재를 향한 희구가 남아있는 한, 침묵의 소리

는 권력의 소리가 되기 십상이다. 양심이 사회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사회문화적인 체계 속에서 양심으로 코드화되지

조차 못하는 것들은 완전한 무(nihil)로서 간주될 수 있어서, 그 체계

속에서 없는 듯이 살아가는 존재들의 소리는 처음부터 근원적으로 차

단되어 있다. 카푸토가 하이데거의Ereignis를 후기 하이데거처럼Er-

eignis(en-own-ment 진정한 자기화)로 번역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

로 event(사건)으로 번역하는 까닭이다. 즉 카푸토의 번역은 곧 하이데

거에대한비판이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Er-eignis 속에서 근원적 주체의 동일성을 보았

다. 그에따르면, 역사는 존재가 저기(t/here)로 들어가고다시 저기로부

터 멀어지는그의 놀이이다. 따라서 역사는 현존재의 진정한 자아를 감

추고, 또한동시에 드러낸다. 스스로를역사에 대한특정한 이상들로전

통화하고 박제하면서, 역사는 존-재(be-ing)의 진리와 자아의 진정성

의 참된 근원을 감추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시간의 전개를 통하여, 역

사는“추구 그 자체, 즉 존재의 추구”라는 놀이를 반복하는데, 바로 이

것이 역사의 목적이다(Heidegger 1996, 13). 그것은 곧 역사가“존재

박일준, 사이(the betweenness)의 열림: 하이데거의『존재와시간』을 중심으로 237

스스로를 저기(t/here)에 끊임없이 기투하여 오고 있음을 그리고 끊임

없이 기투된 존재를 부인하고 있음을 보지만, 이렇게 존재로부터 버림

받은 자신이 오히려 존재의 영원한 복귀 혹은 동일자의 영원한 희귀

(the eternal recurrence of the same)임을사유케 되면서 존재와의 신비

적 합일을 경험하게 된다(Heidegger 1991A, vol.1, 18-19; vol. 2,

200). 순간의 덧없음, 역설적으로 그 덧없음이 존재의 끊임없는 자기화

반복의 진실인 것이다. 존재는 끊임없이 자기의 타자로서 현존재를 낳

고, 외면하고, 다시 기투하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덧없음을‘허무’로 받

아들이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근원적 힘으로 보고 그

흘러가는 덧없음에 스스로를 내어 맡기는 것, 그것은 존재와 존재자들

그리고 세계와 땅‘사이’(das Zwischen 혹은 betweenness)의 흐름에

더불어 같이 흘러가는 것을 말한다.『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에게

양심의 소리, 즉 부르심(calling)은 침묵으로부터결단을 요구하는 소리

이다. 즉‘나’의 실존적 이해를 구성하는‘저들의 이해구조’를 넘어,

‘나’를 버리고 존재의 소리를 따라살아가게하는결단-이것이 하이데

거가그려주는삶의일상이 담지한 모습이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물음을 묻지않을수 없다: 하이데거의‘사이’는

동아시아적 사이 개념의 흔적을 열어 주기보다는 서구 사상의 특징인

초월과 일상의 위계적 이질성을 존재 개념을 통해 단지 반복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즉 하이데거의‘사이’는 서구 사상의 반복이지

결코 동아시아적 사유의 흔적이 아니지 않은가? 카푸토(J. D. Caputo)

는 하이데거의 자기화를 사건( e v e n t )으로 번역한다(참조. Caputo

2006). 그에게 존재 사건은 존재가 자신의 존재됨을 실현해 나가는 일

(en-owning)로서가 아니라, 기존의 질서, 즉 저들의 질서에 전적인 타

자성을 선포하는사건, 즉 하나님 나라의 선포사건이다. 처음부터하느

님과 인간사이에는 낯섬이 존재하고, 그 낯섬을 대면하는 사건을 통해

하느님은 우리의 일상으로 진입해 들어온다. 카푸토가 낯섬을 강조하면

서 하이데거를 문제삼는 이유는 곧 하이데거가 바라 본 기독교적 삶의

23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20: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못한 것을 가리키려는 노력이어서, 철학은 혹은 신학은 처음부터‘이름

들의 위반’을 감내하지 않을수 없다. 그것은 곧 우리의 근원자가 스스

로를 저기로 기투할 때 혹은 천지를 창조할 때 가졌던 모습이다. 플라

톤이 암시하듯,‘사이’가 없다면 창조도 없다. 사이가 있다면, 계속적인

창조만이있을뿐이다. 그 끊임없는창조속에서, 우리는 존재의 근원적

경험을 언어적으로 끝없이 대치해 나갈뿐이다. 그 대치의 역사를 하이

데거는‘영원히 회귀하는동일자,’즉존재의소리로 보았다.

하이데거에게 영원히 회귀하는동일자는존재였고, 그 존재가‘저기’

서 존재들을 낳고 유기할 때, 그 존재 사건을 자기화(Er-eignis)라 하

였다.‘자기’란 누구를 의미하는가?‘존재’아니면‘현존재’? 여기서 동

아시아적 사유속에서 존재에 비견될만한것을 생각해 보자. 필자가 보

기에‘자연’(自然)이 그에 가장가까운 개념이 아닐까 싶다. 자연-이를

그대로 풀어 써 보자면, nature라는 단어보다는“ s e l f -s o-i n g ”이라는

번역이 문자의 뜻을 보다 더 담지하고 있지 않은가?(Hall and Ames

1998, 52). 동아시아적 사유 속에서 우리의 근원적 자아는 우리의 본질

지성(本質之性)을 부여하는 하늘이기도 하겠지만, 그 보다 포괄적인 용

어로우리는 자연을 말한다. 노자는 이를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 자연은‘자신을 그렇게 풀어감’(self-so-ing)을 의미한다.

근원적 존재를‘자기’(self)로 보는측면에서하이데거와동아시아적사

고는일정한 동조성을유지한다.

하이데거를해석하는여러학자들이 하이데거의Er-eignis를 자기화

(enownment 혹은 s e l f-s o-i n g )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사건( e v e n t ,

Ereignis)로 보려는 경향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카푸토가 그것을 전적

으로“사건”으로 해석하면서Er-eignis에 담긴 자기화의 흔적을 지양

하고 있음을 이미 보아왔다. 같은 맥락에서 마리옹(Jean-Luc Marion)

도 Er-eignis를 인간 삶의 일상 속에 담지되지 않은 전적으로 새로운

어떤 것의진입, 즉 선물(gift)로 보았고, 이 사건을 통해 주어지는 선물

의 경험은 곧 하나님의 계시 경험이라고 보았다(Marion 1995, 52). 즉

박일준, 사이(the betweenness)의 열림: 하이데거의『존재와시간』을 중심으로 239

자체의 본질적 통치에 대한 한 관점”임을 지시한다(Heidegger 1996,

23). 이 추구(seeking)는 역사적 인간에게“저기에 있음, 즉 염려함”을

의미한다(Heidegger 1996, 12). 따라서 자아화(Ereignis, en-owning)는

“본래적 역사 자체”이다(Heidegger 1996, 23). 왜냐하면 존재의 본질적

통치란 결국“역사적으로”파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H e i d e g g e r

1996, 23).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란“깊은 고요에 은거한 역사”( t h e

sheltered history of deep stillness)로서“현존재의 스타일”이며, 그 안

에서“마지막 신의 지배가 열리고 존재들이 형성”되는 자리이다

(Heidegger 1999, 25). 그 자기화( e n o w n m e n t )를 통하여 인간-존재

(being-human)는“역사적으로 발생한다”(Heidegger 1999, 167). 그러

면, 진정한 자아는 시간과 역사의 신비합일적 초월로부터 출현한다. 하

이데거에겐 이 근원적 주체의 동일성이 사건이 도래하는 타자성보다

더 중요했다. 동일성의 이데올로기가 갖는 근원적 폭력성이 회자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눈으로 보자면, 하이데거의 해석은 위험하다. 그러나

서구 사상 속에 흔적으로 남아 있는‘사이의 계기’를 찾으려는 눈으로

읽어보자면, 주체의 근원적 동일성을 고집하는 하이데거의 말 속에 하

늘과 땅과 사람 삶의 주체를 근원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보았던 우리의

사이이해의 단편을 볼 수 있다.

I V. 하이데거안에담지된사이의흔적

하이데거에게 존재와 존재자들 간의‘사이’는 양심의 소리를 통해

매개되어지고, 카푸토에게 사건과 이름‘사이’는 하느님 나라의‘부르

심’을 통해 매개되어진다. 필자에게 이 차이는 하이데거의 사유 속에

동아시아적‘사이’(betweenness) 이해가 깊숙이 간직되어 있음을 드러

낸다. 모든 철학언어는 그 자체로 담아낼 수 없는 것을 담지하려는 우

리의 노력이고, 또한우리의 철학적 언어 안에담지된 것보다 담지되지

23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21: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접 수 일 2010년 10월 14일

심사(수정일) 2010년 11월 3일

게재 확정일 2010년 12월 10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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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준, 사이(the betweenness)의 열림: 하이데거의『존재와시간』을 중심으로 241

절대타자가 땅을살아가는 존재들에게스스로를선물로 던져주는사건

말이다. 이러한 해석들은 하이데거의Er-eignis를 서구철학적으로만이

끌어 가는 경향을 드러낸다. 타자와 차이에 대한 인식이 하이데거의 사

유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하이데거의 사유

속에는 서구사상속에서 이질적으로느껴질만한 요인들이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Er-eignis를 통한‘사이’(between)의 인식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정녕 하이데거는‘동일자’를 서구적 신의 개념으로 사유하지

않았고, 그것을‘자기화’(Er-eignis)의 관점으로 보고 있었다. 하이데거

의 이 이질성을 간과할 경우, 하이데거가말하는 동일자는서구적 신 개

념을 존재라는 어휘로 반복하고 있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자연

을‘자신을 그렇게 풀어감’(self-so-ing)으로조망하는 이들에게는단순

한 반복이 아니라, 하이데거와 동아시아적 사유 사이의 지구지역적 동

조(glocal attunement)를 가져다줄 수 있을것으로 생각한다.

‘나’와 세계(Da) 사이,‘저들이부여한 나’와‘존재가기투하고버린

나’사이, 존재와 현존재 사이, 침묵 속에 부르는 나와 그 소리없는 음

성에 부름받는 나 사이, 들려지는 나(Sein)와 저기서 듣고 있는 나 사

이-이 모든사이의 형식들은 곧 인생을 가리킨다. 하늘과땅 사이에서

하늘을 우러르며, 땅을 다스리는, 그래서 사람을 섬기며 살아가는 인간

(人間), 그것은 처음부터‘사이’( b e t w e e n n e s s )였다(human between-

ness). 인간은 존재(human being)가 아니라 사이(human betweenness)

이다. 왜 존재가 삶을 주관하지 않고, 현존재를 사이에 유기하는가? 처

음부터 사람(human betwenness)이 삶의 주체적 형식이기때문이다.

주제어

사이, 존재, 현존재, 존재사건혹은자기화, 양심의 소리, 부르심

the Betweenness, Being(Sein), Dasein, Er-e i g n i s ( e n-o w n-ment), the

voice of conscience, calling

24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2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The Opening of the Betweenness in Heidegger’sSein und Zeit

il-joon, Park

Lecturer

Methodist Theological University

Seoul, Korea

The aim of this paper is to seek for one of the traces of East Asian

thought in Western way of thinking. For that purpose, it attempts to

find in Western thinkers, especially in Heidegger, the non-n o t i o n a l

concept of human being between heaven and earth, which has been

one of the roots of East Asian thoughts. It requires our re-reading of

Heidegger by the East Asian perspective of betweenness. By reread-

ing his text, it seeks to grope for the traces of betweenness in the

unfolding of his thought.

Heidegger’s text in Being and Time surely contains the motive of

betweenness which appears as the voice of conscience, as calling, as

a calling from Being. For Heidegger, truth lies in an event in which

Being refuses beings. Being projects itself onto t/here(D a), yet it

refuses Dasein. By doing so, it gives birth to another. This is history,

which is the en-owm-ment(Er-eignis) of Being. It surely is repeti-

tion, but it never is without difference each time. In order to actualize

itself, Being projects itself onto t/here, and the actualized t/here is not

the same as it-self any more. So, it refuses to accept it. Its seeking for

itself starts it over by calling us in the voice of conscience within us.

This sense of betweenness is the trace of betweenness which East

박일준, 사이(the betweenness)의 열림: 하이데거의『존재와시간』을 중심으로 243

Emad and Kenneth Maly, Studies in Continental Thought,

Bloomington & Indianapolis: Indiana University Press, 1990.

. Beiträge zur Philosophie (Vom Ereignis). Gesamtausgabe Band 65.

Frankfurt am Main: Vittorio Klostermann, 1989.

Marion, Jean-Luc. God Without Being: Hors-T e x t e . trans. by Thomas A.

Carlso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5.

Parkes, Graham, ed. Heidegger and Asian Thought.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87.

Robert S. Corrington. 『신학과 기호학』(A Semiotic Theory of Theology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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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tgenstein, Ludwig.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With an introduction

by Bertrand Russell, F.R.S. London, Boston and Henley: Routledge

& Kegan Paul LTD, 1981.

24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2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에대한칼 바르트의

계시론적‘종교비판’*1)

김재진

(숭실대기독교학대학원겸임교수)

I. ‘종교개념’에 대한엇갈린논쟁

레씽(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은 그가 쓴 희곡에서

종교의 多元性과 相對性을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유대

교, 이슬람교 및 기독교의 주장을3형제의 반지 이야기로 비유하고 있

다. 3형제는 각각 임종하시는 아버지에게서 금반지를 받았다. 그 중에

진짜금반지는 하나 밖에없는데, 모두가 자기의 것이 진짜라고주장한

다. 그러나 아마도 진짜 금반지는 하나도 없고 다만 가짜 금반지들만

저희들3형제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1) 이러한 레씽의 비유는 루디

비히 포이에르바하의‘종교비판’에만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포이에르바허는“종교는 인간의 바라는 바( W u n s c h w e s e n )를 투사한

것”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2) 그러나 기독교, 더 자세히 말하면, 개신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245-279

1) Karl Barth, Einf?hrung in die Evangelischen Theologie, 이형기 역,『복음주의 신학

입문』(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2) 26.

2) L. Feuerbach, Vorlesungen über das Wesen der Religion: GW V I, 262.

Asian thought has regarded as human being (between). This is the

point the paper wants to make. Not being, but between. Western

philosophy has addicted to the one and self-same, having victimized

the sense of between. On the contrary, East Asian thought always

contains the sense that human being lives between heaven and earth,

reminding us that we are children of heaven and earth. The between

of heaven and earth gives birth to human being.

24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24: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1976), 칼 바르트(K. Barth, 1886-1968) 그리고 디트리히 본회퍼( D .

Bonhoeffer, 1906-1945)에 의해서 이루어진‘유신론적(有神論的) 종교

비판’이다.6 ) 불트만의‘종교비판’은‘기독교 복음’, 곧‘케리그마

(Kerygma)의 비신화화(Entmythologisierung)’로 바르트의‘종교비판’

은 인본주의적 혹은 윤리적 기독교에 대한‘계시론적 더 자세히 말하

면, 기독론적 비판’으로 그리고 본회퍼의‘종교비판’은‘기독교의 비종

교 해석’으로각각특징지어말할수 있다.

그런데 이상의 두 가지 서로 다른 방향의‘종교비판’이 함께만나는

접촉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종교 개념’이다. 즉‘종교에 대한 이해’다.

바꾸어 말하면,‘종교’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에서‘종교비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비기독교적 입장에서 기독교를 비판하는‘철학적혹

은 심리학적 종교비판’과 기독교적 입장에서‘기독교의비신화화와 비

종교화’를 주장하는‘종교비판’이라는 것이다. 마치 소경이 코끼리의

서로 다른 부위를 만지고서 자기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는 장님들처

럼, 서로 다른‘종교개념’을 가지고-바꾸어 말하면 서로다른 잣대를

가지고-상대방의‘종교이해’에 문제를 제기해 왔다. 즉 전자는 기독교

를 인간의 절대자 곧 神에 대한 인간의 표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후

자는 기독교를 단순히‘종교적 이념’이 아니라, 현실적 삶 속에서 반드

시 실현되어야 할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으로이해하고있다.

이상의 서로 다른‘종교개념’으로인하여, 결과적으로 현재‘하나님

의 주도권’에 기초한 기독교의 복음은 상실되고‘인간학이 된 기독교’

와‘종교화 혹은 윤리화된 기독교’만 남게 되었다. 서로 다른‘종교 개

념’에서 출발한‘종교비판’은 결과적으로 오늘날‘종교다원주의’에 직

면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현재 회자하는‘종교다원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거나 반대로‘종교다원주의’를 정당화 하려면, 우선먼

김재진,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에대한칼 바르트의계시론적‘종교비판’ 247

6) D. Bonhoeffer, Akt und Sein. Transzendentalphilosophie und Ontologie in der

systematischen Theologie (München: Chr. Kaiser Verlag, 1988)(= Hrsg. von Hans-

Richard Reuter), 53ff.: “2. Der ontologische Versuch.”

교(Evangelische Kirche)와 타종교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레씽

의 비유는 착각에 불과한 것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근대

신학사(神學史) 혹은철학사를통하여 볼 때, 종교에 대한 비판은 두 가

지 서로다른방향으로부터진행되었기때문이다.

‘종교비판’의 하나의 방향은, 19세기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 L .

Feuerbach, 1804-1872)와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 그리고 지

그문트 프로이드(S. Freud, 1856-1939)에 의해서 시도된‘종교비판’,

곧‘무신론적 기독교 비판’이다. 왜냐하면 포이에르바하는 헤겔( F r .

Hegel)을 비판하여 말하기를“신의 자의식은 인간의 자의식이며, 신에

관한 인식은 인간의 자기인식”3)이라고 단호하게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

리고 칼 막스는 종교에 대한 자기의 이해를 기술한 적은 없지만, 포이

에르바하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그는,“비종교적 비판의 근거는 종교가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종교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종

교라는 것은…인간의 자기의식이자 자기 존중”이라고 규정하였다.4) 뿐

만 아니라, 프로이드는 심리학적 종교의 기원에 입각하여 기독교란 종

교는“보편적인강박노이로제”라고정의하였다.5)

‘종교비판’의 또 다른 방향은 루돌프 불트만(R. Bultmann, 1884-

24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3) L. Feuerbach, Das Wesen des Christentum, 51(이하 DWC로 약칭함).

4) K. Marx,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Werke I[CW], 488 (H. Küng,

Exisiert Gott? , 성염 역,『신은 존재하는가』(왜관: 분도출판사, 1998), 321에서 재인

용)

5) S. Freud, Die Traumdeutung: Studienausgabe I I, 208(『신은 존재하는가?』, 372에서

재인용) 또한 그는 이르기를“토템 동물이 부친 … 을 대체하는 역할이 끝나자 최초

의 부친은 신의 원형이 되었다. 아들의 반역과 부친에 대한 당사자의 애정이 계속해

서 갈등을 일으켜서 연속적인 타협을 찾았다. … 일면으로는 부친 살해의 행위를 속

죄하는 방법을 찾았고, 다른면으로는 거기서초래된 기득권을강화시켜 나갔다. 이런

종교관이 특히잘 밝혀주는것은 그리스도교의심리적 태도이다. 우리가 알기로 그리

스도교에서는 토템 식사가 영성체라는 약간 왜곡된 형태로 잔존하고 있다”(S. Freud,

Der Mann Moses und die monotheistische Religion: Studienausgabe I X, 580(『신은

존재하는가?』, 390에서재인용).

Page 125: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것이 아니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8) 이 말은 그가 자신의 철학을

어디서부터 출발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암시해 준다. 즉 그는 앞으로

철저히 이성적(理性的)으로 사고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겠다는 뜻이다.

인간의 이성뿐만 아니라 인간적 이성을 초월하는 보편이성에 대하여

숙고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후에“이성의 무한성과 통일성과 공

통성에 관하여: De infinitate, unitate atque communitate rationis.

Disputation inauguralis”라는 철학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였다. 이

박사학위 논문에 의하면, 인간은 헤겔에서처럼, 유한성과 종속성을 떨

치고 승화되어 정신적으로 불멸하는 존재가 아니라 몸(육)이라는 유한

한 것 안에 갇혀 있는 실존적 존재이며 먹어야 사는 유물론적(唯物論

的) 존재이다. 그래서 그는 실체화된 이념에서 출발하지 않고 구체적이

고 감각적인 실재 곧‘정신’이 아닌 감각적인‘물질’에서 자신의 철학

적 사유를 출발한다.9) 따라서 그는 헤겔방식의 신앙과 이성, 신학과 철

학, 그리고 기독교와 계몽주의 종합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신(神)’이라는 이념은‘인류(인간)’라는 이념으로 대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포이에르바하가 헤겔의 형이상학적 관념론을

거부하게 된 것이 결과적으로‘종교(기독교) 비판’을 전개하게 된 동기

가 되었다.

우선 포이에르바하는‘대립의 일치 원리’(coincidentia opposito-

rum)에 따라 하나님과 인간을 아무런 전제 없이 직접 결합結合 내지

일치一致시킨다. 그는 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의 자의식

(Selbstbewußtsein)은 곧 인간의 자의식이며, 신에 관한 인식(Erken-

ntnis)은 곧 인간의 자기인식”10)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종교 적어

도 그리스도교는 인간이 자기와 갖는 관계 더 자세히 말하면 자기 본

성과 갖는 관계”라고 규정한다.11) 이 말에 의하면, 신(하나님)은 인간이

김재진,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에대한칼 바르트의계시론적‘종교비판’ 249

8) K. Grün, Ludwig Feuerbach, I, 16 (Feuerbach의 미간행물에서)

9) L. Feuerbach, Das Wesen des Christentums, Köln 1967, 15(이하 DWC로 약칭함).

10) DWC, 51.

저 지금까지 많은사람들에 의해서 논의되어온‘종교비판’에 대한바른

이해와 해석이 요청되고 있다.7) 그러므로 아래에서는 기존의‘종교비

판’들이-비기독교적 종교비판이건, 기독교적 종교비판이건-어떠한

것이며, 그러한‘종교비판’들이 귀결될 수밖에 없는 신학적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제I I장에서 비-기독

교적혹은무신론적 종교비판, 곧 루드비히포이에르바하, 칼 막스그리

고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종교비판에 대하여 제I I I장에서는 불트만의

‘케리그마의비신화화’곧 신학을 오히려 종교화시킨윤리학적내지철

학적 신학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제IV장에서는 이러한 신

학들에 대항하여 기독교 복음을 재정립하고자 하였던 바르트의‘계시

론적종교비판’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이 연구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계

시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기독교와 인간의 사유에서 출발한 종교나 종

교철학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선이 무엇인지를 명백히 인식하게 될 것

이다. 즉 아무리 기독교를‘종교화’하더라도 역으로 아무리 기독교를

‘인간학’으로 전락시키더라도, 영원히 남아 있는기독교의 핵심이 무엇

인지를 간접적으로이해하게될 것이다.

I I. 무신론적‘종교(기독교) 비판’: L. Feuerbach;

K. Marx; S. Freud

그륀(K. Grün)에 의하면, 포이에르바하(L. Feuerbach, 1804-7 2 )는

1824년 헤겔의 강좌를 듣고 난 후 다음과 같이 적었다:“나는 내가 무

엇을 해야하며, 무엇을 바라고 있었던가? 이제알았다. 입 속으로 중얼

거리거나 헛소리를 하고다닐것이아니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믿을

24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7) 그리고 본 논문은‘종교다원주의’에 관한 연구는 미루고,‘종교다원주의’를 탄생시킨

‘종교비판’에 대한비판적 연구에집중하고자한다.

Page 126: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신 개념이 형성된 것이다. 결국 포이에르바하에 있어서 신(神)에 대한

일체의 모든 개념들은 인간의 의식을 외부로 투영하여 생성된 신神개

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포이에르바하가 이해한 기독

교(종교)는 인간의 의식 속에서 형성된 종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기

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에서 말

하는 인격적 하나님, 곧 유신론적 하나님 개념은, 사실은 인간에 관한

특정한 개념, 즉 인간의 독립된 실존, 인간의 인격화된 본성을 말하는

개념이외에다른것이아닌것이다.

칼 마르크스(K. Marx, 1818-1883)는 포이에르바하Feuerbach가 헤

겔의 관념론을 유물론으로 전환하려던 것을 구체화시킨다. 그래서 그는

저 유명한‘불의 강’(Feuerbach)을 건너라고 말하였다.15) 이 말은 포이

에르바하의 주장을 보다 구체화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어

느 날 포이에르바하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기 때문이

다.“당신은 사회주의의 철학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것이 의도적이

었는지 나는 모르겠습니다만, 공산주의자들은 이 글들을 즉각 그런 식

으로 이해했습니다. … 추상적 천국으로부터 실재하는 지상으로 끌어내

린 인류라는 개념. 이것이야말로사회개념이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16)

그래서 한스 큉(Hans Küng)은“포이에르바하는 마르크스의 길을 마련

하는 선구자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경우 그 길을 함께 가는 마르크스

의 동지이기도 했다. 특히 그의『미래 철학의 근본 원칙』에서는 인간의

역사성, 사회성 그리고 실천에 관한 새로운 이해의 출발이 보인다”고

기술하고 있다.17) 결국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여섯째 명제에

서“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 본질을 인간적 본질로 해소시킨다. 그러나

인간적 본질은 각 개인에게 내재하는 추상이 아니다. 그 실재를 보자면

김재진,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에대한칼 바르트의계시론적‘종교비판’ 251

15) 여기서‘불의강’은 곧 ‘Feuerbach’를 의미한다.

16) K. Marx, “Betrachtung eines Jünglings bei der Wahl eines Berufes”: Werke I, 1-

6[CW I, 3-9](『신은존재하는가?』, 309에서재인용).

17)『신은존재하는가?』, 321.

자기 본성을 관상(觀想)하는 가운데서 발견한 것을 마치 외부에 무엇

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여 밖으로 투사한 것 곧“투사된 자아”

(entäußertes Selbst)12)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절대적본

질, 곧 인간의 하나님은 인간 자신의 본질이다. 따라서 인간 위에 있는

대상의 힘은 인간 자신의 본질이 가지고 있는 힘”13)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즉 신(神)이 가지고 있는 속성들은 인간의 속성을 대상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예컨대 신이 영적(靈的) 존재라는 것은 인간의 이해 및

지성의 투사이며, 신이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도, 인간의 윤리를 인격화한것이며, 인간의 윤리적 본성을 절대화한것

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도덕적인 신 개념은 인간자신이 가지고 있는

양심의 투사요, 신(神)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도, 인간의 측은지심(惻隱

之心)의 투사로서, 인간사랑의 보편적 본성을 객체화한 것이라고 본다.

한 마디로 말해서 포이에르바하의 신(하나님) 개념 내지 종교(기독교)

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본래의 의식을 최고 혹은절대이념으로 투사한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신에 대한 일체의

모든 개념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식을 밖으로 투사하여 절대화 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인간의 최고이념이 신(神)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이 제기된다. 어떻게 인간의 최고 이념의 투사

가 곧바로 신 개념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포이에르바하에 의하면,

“무한자(Unbedingte)에 대한 의식에서 의식의 주체인 인간이 자기 본

성에 이미 무한성(無限性)을 대상으로 가지고 있기”14)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본성에 이미 무한에 대한 인식이 내재(內在)해 있

기 때문에, 신 개념은 그 인식을 외부로 투영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무한에 대한 인식을 투영하는 과정을 통하여

25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11) DWC, 53.

12) DWC, 76f.

13) DWC, 41.

14) DWC, 17f.

Page 127: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적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종교(기독교)를 다

음과 같이 설명하기 때문이다.“종교는 그 세계의 일반적인 이론이며,

그 세계의 도덕, 그 세계의 엄숙한 보완수단이다. 그 세계가 주는 위안

과 정당화의 보편적 원천이다. 종교는 인간본질이 참다운 실제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 본질이(역설적으로 실현코자 하는, 필자 주)

환상적인 실현이다. (따라서, 필자 주) 종교에 대항하는 투쟁은…간접

적으로는 종교가 영적 후광(後光)이 되어주는 그 세계에 대항하는 싸

움이기도 하다.”20)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종교는 비-인간적 사회 조

건의 결과이며, 동시에 비-인간적 사회 조건에 대한 항거라는 것이다.

따라서“종교적 비탄은 동시에 현실적 비탄의 발로(發露)이며, 현실적

비탄에 대한 항거”라는 것이다.21) 그러므로 이 세상의 비-인간적 사회

구조로 인하여 생기는 문제를 종교로 환원시키고, 다시 그곳으로부터

불합리한 비-인간적 사회의 문제 해결 내지 위로를 받으려는 종교는

영원히 헤어 나올수 없는, 아니 오히려 점점 더 깊은심연으로 빠져드

는“민중의아편”이라고 마르크스는 지적한다.22)

그런데 마르크스가‘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규정한 것 배후에는

“억압받는 피조물들의 끊임없는 신음”이 있다. 즉 비-인간적인 사회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벗어나고자 갈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 세상에서위안을 받고자 하는마음에서 종교적 절대자, 바람직한이

념, 정의로운 사회를 형상화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종교(기독교)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이러한 소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종교는, 영원

히 해결될 수 없는인간의 소망처럼, 영원히 인간을 허상으로 인도하는

아편과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러한 사고는 이미 포이에르바하

에게서 나타난 것이다. 왜냐하면 포이에르바하는‘기도에 관하여 논하

김재진,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에 대한칼 바르트의계시론적‘종교비판’ 253

20) 앞의책.

21) 앞의책.

22) 앞의책.

(인간적 본질은, 필자 주) 사회관계들의 총화이다.”18) 이렇게 포이에르바

하의 종교개념-곧 인간정신의 투사-을 받아들인 마르크스는 보다 구

체적으로종교(기독교)를 비판한다.

마르크스가 제기한 결정적인 질문은,‘어떻게 인간의 종교적 자기

소외(투사)가 발생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그 소외(투사)를 극

복하느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포이에바하의‘투사이론’을 전

도되고 비-인간화된 인간사회에 비추어 설명한다. 즉 마르크스에 의하

면,“인간이란, 세계 밖에서 야영(野營)하고 있는추상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곧 인간의 세계요, 국가요, 사회이다. 이 사회가 종교를 생산해

낸다. 곧 이 사회가 전도된 사회-의식을 만들어 낸다. 왜냐하면 이 국가,

이 사회 자체가 전도되어 있기 때문”19)이다. 결국 마르크스는-포이에

르바하가, 불의(不義)한 인간들이 이성의 최고 이념을 투사하여 만든

것이 종교(기독교)라고 정의한 것처럼-전도되고, 불의하고 비인간적인

사회가, 곧 인간의 전도된 의식이, 종교(기독교)를 생산해 낸 것이라고

말한다. 더 자세히 말하면, 종교(기독교)는 불의하고 비-인간적인 사회

조건들이 희망하는 최고의 이념적 사회(=하나님의 나라)를 희구하는

마음에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불의하고 전도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이 가장 고상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형상화 한

것이, 바로종교, 곧‘기독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형상화한 사회

는 단지 추상화일뿐 실재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으로

실제로 그러한 사회를 이 땅에건설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상 마르크스의 종교 개념은 사실은, 포이에르바하가 인간의 이성

이 최고 이념으로 투사한 것이 종교(기독교)라고 규정한 것을 사회학

25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18) Thesen Über Feuerbach: Werke I I, 2-3 = Theses on Feuerbach: Karl Marx and

Frederik Engels, Selected Works(Moscow-New York-Londen 1968[이하 S W]

29(『신은존재하는가?』, 322에서재인용).

19) K. Marx,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Werke I , 488[CW I I I, 175]

(『신은존재하는가?』, 325에서재인용).

Page 128: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심리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는 임상경험에 기초하여 정신 분석학적 시

각에서‘종교의 심리학적 발생’(psychogenesis)을 주장한다.26) 한 마디

로 말하면, 그에게 있어서 종교(기독교)는 한 개인의‘외디푸스 콤플렉

스’가 사회적 혹은 인류학적으로 전이(轉移)되어 진화(進化)되는 과정

에서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것이다. 이를뒷받침하기 위하여, 그는동

물 토테미즘(Totemism)에 관한 연구를 정신분석학적으로모형 변경한

다.27) 그는 토템 집단의 구성원들이 토템 동물에 대한 행동이, 어린이들

이나 정신질환자들이 동물을 대할 때 취하는 행동과 동일함을 보고서,

종교가 모친(母親)에 대한 애착과-사랑의 경쟁심에서-부친(父親)을

죽이고 싶은 원의(怨意)에서 생긴 것으로 본다. 예컨대 부친에 대한 원

의는, 해마다 토템을 도살하여 그 고기를 먹는 식사를 한 후에 축제를

지내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프로이드는본다. 그래서 그는 부족(部

族)의 최고 조상을 상징하는 토템을 죽이는 것이 토템의 출발점이었던

것처럼 부친에대한 원의가 종교(기독교)의 원천이라는것이다.28) 그 자

신의말을빌리면,“토템 동물이 부친…을 대체하는 역할이 끝나자, 최

초의부친은신의 원형이 되었다. 아들의 반역과 부친에 대한 당사자의

애정이 계속해서 갈등을 일으켜서연속적인타협을 찾았다. 일면으로는

부친살해의 행위를 속죄하는방도를 찾았고, 다른 면으로는거기서 초

김재진,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에대한칼 바르트의계시론적‘종교비판’ 255

26) 프로이드는 1907년 4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후대에4편의 논문은『토템과 터부』

(1912)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첫 번째 논문에서는‘근친상간에대한 혐오’에 대

하여, 둘째 논문에서는‘금기들’에 대하여, 셋째 논문에서는‘애니미즘과 마술’에 대

하여그리고 마지막 넷째논문에서는‘토테미즘’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4

편 논문의 방법은 하나 같이 한편으로는‘원시인들의 관습과 그들의 종교적 태도를

다루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경증에 걸린 자기 환자들의 강박관념에서 나온 행위들

사이의유사성을다루고 있다. 이점에관하여: 『신은 존재하는가?』, 388을 참조.

27) 이점을 그는자신의『토템과터부』(1912)의 네 번째논문“어린시절의 토테미즘”에

서 발전시키고 있다.

28) 참조. S. Freud, Selbstdarstellung: Gesammelte Werke X I V, 93-4.(『신은 존재하는

가?』, 390 에서재인용).

는 장’에서 신(神)을 가리켜“우리 고난의 외침”이요,“영혼의 비탄”이

며,“인간 비참을 두고 저 깊숙이 숨어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고 이

해하였기 때문이다.23) 이와 상응하게 마르크스도‘민중의 아편’에서 벗

어나려면, 그 아편, 곧 종교를 만들어낸 비-인간적 사회를 변혁하는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 혁명을 담당할 사람들은 다름 아닌 바로

‘프로레타리아 계급’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공산당 혁명 사상의

종교-사회학적 근거가 되었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민중

의 환각적 행복인 종교를 말살시키려면, 진짜 행복이 필요하다. 사물의

기존 상태에 관한 착각을 청산하도록 요구한다는 것은 결국착각을 필

요로 하는 그 상태를 청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24)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종교(기독교) 비판은 곧 이 세상의 비-인간적 사회에 대한 비

판으로 환원되고, 이 사회에 대한 비판은 곧 정치비판으로 연결되었다.

즉 종교비판에는 정치 비판이 뒤따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실천적

혁명’이 뒤따라야 한다고 그는 강하게 주장한다. 그래서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종교(기독교)비판은 결국‘공산당 선언과 혁명’으로 귀결된다.

그 자신의 말에 의하면,“천상(天上)에 대한 비판은 지상(地上)에 대한

비판으로 전환되고, 종교비판은 법률 비판으로, 신학비판은 정치비판으

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25) 이러한 주장은 포이에르바하가‘신

학은 인간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일치한다. 이러한 마르크스

의 사회학적‘종교비판’은 그 다음 지그문트 프로이드의‘심리학적 종

교비판’으로전이(轉移)된다.

지그문트프로이드(S. Freud, 1856-1939)는‘종교의 기원’을 인간의

25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23) DWC, 200f. 그런데 한스 큉은 포이에르바허가 이러한 표현을 Sebastian Frank의

“신은 소리 내지 못하는 신음, 마음 저 밑바닥에 고인 신음”이라고 말한 것에서 착

안한것이라고분석한다(Cf. 『신은 존재하는가?』, 326).

24) K. Marx,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Werke I, 489[ CW I I I, 175]

(『신은존재하는가?』, 326에서 재인용).

25) 앞의책.

Page 129: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즉‘종교’란 인류의 가장 오해되고 가장 강렬하고 가장 절박한 원의에

서 발생하였다. 따라서 종교(기독교)란 희구하는 사유 혹은 환상적 이

념이다. 그리고 그 환상이란, 다름 아닌 욕구 충족의 필요에서 유발한

관능적, 본능적 산물이다. 그러므로‘종교는 착각’이다.

이상 우리는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 칼 마르크스,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을 알아 보았다. 그 결과 이들

의 방법은 하나 같이 이 지상적, 세상적, 인간적인 것의‘투사(Projec-

tion) 이론’에 기초해 있다. 다만 그 원천 혹은 기원이 포이에르바하에

서는‘불완전한 인간 이념’으로, 마르크스에게서는‘비-인간적 사회 현

실’로, 그리고 프로이드에게서는‘외디푸스 콤플렉스적 원의(怨意) 곧

억압된 심리’가 서로 다를 뿐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의 주장은 보이지

않은 영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적 착상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서 종교(기독교)는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환

상’,‘착각’,‘이념’에 불과하다. 그러한 종교를 만들어내게 된 근본적인

동기는 바로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이고 억압된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

는 인간의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 혹은 소망이

다. 이러한 주장은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 칼 마르크스, 그리고 지그문

트 프로이드의 말 그대로‘착각’이며‘환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들을 역설적으로 이해하면 모든 인간은 여러 가지 삶의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싶은 욕구가 누구에게든지 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아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이 죽음의 몸에서 나

를 건져주겠습니까?”(롬 7:24)라고 탄식하고 있는 존재이다. 결국 인간

김재진,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에대한칼 바르트의계시론적‘종교비판’ 257

33) 프로이드는1897년 12월 12일Wilhelm Fliess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자신의 심령적 장치에 관해서 불명료하고 내향적인 지각을 갖게 되면 환상적

인 사유를촉발하고 그것은자연히 외부로, 그 성격상미래로, 후세로 투사되게된다.

불사불멸, 사후의 상벌, 후세 등은 말하자면 우리의 심령적이고 내면적인 정신신화

P s y c h o m y t h o l o g y의 표상이라고 하겠다”(S. Freud, Aus den Anfängen der

Psychoanlyse, 252 = 『신은존재하는가?』, 394에서재인용).

래된 기득권을 강화시켜 나갔다. 이런 종교관이특히 잘 밝혀주는것은

그리스도교의 심리적 토대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그리스도교에서는 토

템 식사가 영성체(靈聖體)라는 약간 왜곡된 형태로 잔존하고 있다.”29)

그래서 그는“그리스도교는 아버지-종교로서 일어났던 것이 아들-종

교가 되었다. 아버지를 타고 누르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을 이 종교(기

독교)는 피할 길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그는 기독교를 어린아

이 혹은 정신질환자들의 심리적 토템 종교로 해석하고 있다.30) 그래서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관한 기사(1902)에서, 기독교의“인격적 하

나님이라는 존재는 심리적으로 고양된 부친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 따라서 우리는 종교에 대한 필요의 뿌리는 부친 콤플

렉스임을인식하게된다”고 종교의 기원을 확정하고있다.31)

그러므로 프로이드에게 있어서, 종교(기독교)란 일종의‘종교이념’

곧‘심리적 욕구충족의 모형’이다. 즉 그에게 있어서 종교란,“우리 경

험의침전물이나우리사유의 최종결실이 아니라 …인류의 지극히오

래되고, 강력하고 가장 시급한 원의(怨意)들의 환상이요 충족”으로 정

의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원의’란, 큉에 의하면,“생명의 상실로부

터 보호받고자 하는 인간의 유아적(幼兒的)이고도 가망 없는 욕망, 이

불의한 사회에서 정의의 실현을 바라는 소망, 지상의 존재를 사후까지

연장하고자하는욕구, 세계의 시원을 알고싶고, 육체적인 것과정신적

인 것의 관계를 알고 싶은 희망이다.”32) 이러한 점에서 프로이드에게서

도 여전히 포이에르바하의‘투사이론’이 잔존해 있음을 알 수 있다.33)

그러므로 프로이드의 종교관은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25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29) 앞의책, 94 (『신은 존재하는가?』, 390 에서재인용)

30) S. Freud, Der Mann Moses und die monotheistische Religion: Studienausgabe IX,

580(『신은존재하는가?』, 391에서재인용)

31) S. Freud, Eine Kindheitserinnergungen des Leonardo da Vinci: Studienausgabe X,

146. Cf. Totem und Tabu: Studienausgabe IX, 430-31 (『신은 존재하는가?』, 391에

서 재인용)(필자가진하게).

32)『신은 존재하는가?』, 393.

Page 130: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기독교 공동체의 그리스도-예배(Christi-cult)이다. 그에 의하면 복음

서는 예수라는 한 인간의 전기(傳記)가 아니라 교회의 중심 주제인‘로

고스화육’(Logos-Inkarnation)이 각양각색으로반영된 단편들의 수집

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디벨리우스Dibelius의 조그마한 책자,『예수』

Jesus(1939)도 이러한 방법을 배경으로 저술되었다. 이들의 영향을 받

아 불트만도1921년에 이미Die Geschichte der synoptischen Fragen

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1 9 4 1년 그는 이 방법을 A Fresh

Approach to the New Testament and Early Christian Literature에 적

용한 광범위한 연구를 내어 놓았다. 따라서 그의‘非神話化’는 불트만

의 전 생애의 신학해석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36) 이런 점에서 우리는

그의 신학을‘非神話化하는 신학’(entmythologisierende Theologie)이

라고 특징지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非神話化하는 신

학’, 혹은‘비신화적 성서해석 방법’은 도대체 어떠한 것인가? 이를 이

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그가 말하는‘신화’(Mythos)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할 것이다.

불트만은“나는 신화 개념을 보통 역사학 및 종교학에서 사용하는

의미로 사용한다.”37) 그리고 그는“神話란 저 세상적인 것을 이 세상적

인 것으로, 신적인 것을인간적인 것으로, 피안적인 것을차안적인 것으

로 나타내는 표현양식”이라고 규정한다.38) 그런데 이러한‘신화에 대한

개념 규정’속에는 저 세상에 속한 신적 사건과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역사적 사건 사이에는 서로‘신적 내지는 초월적 연관성’이 있다는 것

을 전제한다고 슈미탈스(W. Schmithals)는 이해한다.39) 즉 예수그리스

김재진,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에대한칼 바르트의계시론적‘종교비판’ 259

36) 사실 불트만 자신도‘비신화화Entmythologisierung’라는 단어에 대하여 그렇게 썩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이 개념을‘분명 불만족한 단어 e i n

sicherlich unbefriedigendes Wort’라고유보하고있다.

37) R. Bultmann, Kerygma und Mythos I I, 180(이하 KM으로약칭함).

38) KM I, 22.

39) Walter Schmithals, Die Theologie Rudolf Bultmanns, 변선환 역,『불트만의 實存論

的 神學』(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3), 256.

학적‘종교(기독교) 비판’들은 인간의 비참함을 깊이 인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스스로 그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야 말로 스스로

‘착각’에 빠지는 오류에 빠지고 말았다. 왜냐하면‘종교(기독교) 비판

가’들이 이미 스스로 증언하였듯이 이 인간 세상은 불의와 비참과 억

압으로 가득한 세상이기때문이다.

I I I. ‘비신화화’로서의‘종교(기독교) 비판’: R. Bultmann의

Entmythologisierung

1941년 4월 21일 루돌프 불트만(R. Bultmann, 1884-1976)은 프랑

크푸르트Frankfurt에 있는 고백교회의 목사들 앞에서‘신약성서와 신

화’(Neues Testament und Mythologie. Das Problem der Entmy-

thologierung der neutestamentlichen Verkündigung)라는 논문을 발표

하였다. 이 논문에서 그는‘신약성서 선포의 비신화화(非神話化)’를 다

루고 있었다.34) 그러나 사실 불트만의‘非神話化’, 더 자세히 말하면‘케

리그마(Kerygma)의 비신화적 해석’은 1941년에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니라 20여 년 동안 대학에서 성서 해석학을 가르쳐 오면서 축척된

그 자신 만의‘성서해석학’이다. 사실20년여 전에 마르틴 디벨리우스

(Martin Dibelius)와 칼 루드비히 쉬미트(Karl Rudwig Schmidt)도 신

약성서 연구에서‘양식비평’(formcriticism)의 방법을 채택하기 시작하

였다.35) 쉬미트에 의하면, 복음서의‘삶의 정황’(Sitz im Leben)은 원시

25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34) R. Bultmann은 1941년 Offenbarung und Heilsgeschehen을 출판하였는데, 이 속에

는 “Die Frage der natürlichen Offenbarung”과 “Neues Testament und Mythologie”

란 논문이 포함되어있다.

35) Martin Dibelius, Die Formgeschichte der Evangelium (From Tradition to Gospel

로 1933년에 번역) - Karl Rudwig, Der Rahmen der Geschichte der synoptischen

Frage.

Page 131: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는 바는 단순히 지나간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소개하는 정보문서가 아

니라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고 살아야 할 규범이

기 때문에, 현대인들이 충분히 납득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우리의 실존

속에서‘재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성경에서 선

포된 것은‘인간 실존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bestimmtes Verständnis

der menschlichen Existenz)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3가지 해석

학적 전제 속에서 불트만은‘성경 말씀의 비신화화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이러한 해석학적 전제를 내세우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선 첫째,‘신화적 사유’는 현대 과학적 사유체계와 서로 대립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현대 과학적 사유체계는‘인과율(因果律)’

에 제한을 받지만, 신화적 사유체계는 자연과학적 인과율에 제한을 받

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메시지가 신화적 표현들로

이 세상에서선포될 때, 현대인은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선포들이

모순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42) 불트만 자신의 말을 빌리

면,“우리는 세상안에모든사건이 규칙과 질서를 따라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불변의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확

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의 실제적인 삶, 활동, 그리고 소

통 속에서 이를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발생하는 일체

의 것들은 자연적인 원인과 결과를 갖고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있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인과관계가 갑작스럽게 기이한(초월적) 방법으로

깨어질 수 있다는 것을예상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활동을 계속수행할

수 없고, 우리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질 수도 없을 것이다.”43) 따라서 불

트만은“우리의모든 사유가 과학에 의해 불가항력적으로 형성되어 있

기 때문에, 지금 다시신화적 세계상으로 재현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김재진,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에대한칼 바르트의계시론적‘종교비판’ 261

42) Cf. KM I I, 181.

43) R. Bultmann, Marburger Predigten, 138(『불트만의 實存論的 神學』, 259에서 재인

용).

도의 십자가의 사건은 저 세상에 속한 신적인 것, 곧 초자연적인 사건

이면서 동시에 이 세상의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적활

동과 인간적 활동 사이에는 서로‘유비’(Analogia)가 있다고 불트만은

말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는“만약 누구든지 나의 신화 개념에 의

문을 품고 신화라는 개념을 달리 이해해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임의대로해도무방하다”고‘신화 개념’에 대한 확고불변한

개념정의를 유보한다.40) 이 말은 그의‘비신화적 성서해석’속에는‘신

화’라는‘개념’에 제한되지 않고 오히려 처음부터 신적 초월적 사건을

역사 속에서‘실존적으로 해석하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음을 암시해

준다. 즉 신적 초월적 사건에 대한 증언인 성경의 선포를‘역사적실존

적 상황’에서 해석하겠다는 것이다.41) 이 점을 우리는 아래에서 보다

자세히 인식하게될 것이다.

불트만은‘비신화화 작업’을-즉‘성서의 선포를 비신화적으로 해석

하는 것’을-‘기적’(Wunder)에 대한 해석으로부터 시작하여 성경의

모든 증언에까지 확장하여 적용한다. 그런데 이러한‘비신화화 작업’에

는 우선 몇 가지 전제가 있다. 그 첫째 전제는, 성경은 그 시대의 사유

체계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대 신화적 표현양식으로 표현된

성서의 증언을 현대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성경의 증언은 현대인의 사유구조로 새롭게‘해석’( I n t e r p r e-

tieren)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선포와 증언은‘해석학적

필요성’을 전제한다는것이다. 둘째로, 성경이 증언하는바는이 세상의

일들에 대한 증언이 아니라, 저 피안의 세계에서 일어난 신(하나님)의

이야기, 즉 신의 의지와 뜻을 증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현대인이 알아들을 수 있도

록‘주해’(Auslegen)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성경이 증언하

26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40) KD I I, 180.

41) 이 점에있어서그는 Heidegger의‘실존철학’의 영향을 받고있다.

Page 13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즉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에

게‘케리그마’를 통하여 주어진다고강조하였다.46)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종말론적예수 사건의 현재화 곧 실존화’이

다. 불트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단지 지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47) 만약 그 사건이 지난한 순간의 사건이라면, 오늘 우

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 사건이 오늘우리를 위한사건

이 되려면 그 사건을 현재화해야한다고그는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그

의 복음의 실존적 해석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증언하는 메시지(케리그

마)는 처음 주어졌던 당시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 시대를 넘어서서 어느

때, 어느 순간에든지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불트만은 사

도 바울과 요한도 그러한 의미로 말씀을선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48)

그러나 이상 살펴본 불트만의‘비신화적 해석’은 루드비히 포이에르

바하를 비롯하여, 칼 마르크스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행한‘투사

이론’을 역으로 전환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신론적‘종교비판’가

들이 기독교를 죄악된 인간과 사회가 희구하는 최고의 사유와 사회와

인격을 역설적으로 고양시켜‘종교’를 만든 것이라고 비판하였다면, 불

트만 초월적인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오히려 이 세상 안으로 세속화시

켜 시-공간을 초월하는‘하나님의 초월성을 제거하는’작업을 하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49) 그 결과 피안의 영적세계에서 초월적으로 활동하는

김재진,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에대한칼 바르트의계시론적‘종교비판’ 263

46) 이 점에서 불트만은,‘말씀을 은혜의 방편’으로 주장하는 루터 신학에 철저히 머물

러 있다.

47) 이 점에 관하여: Norman J. Young, History and Existential Theology(Philadelphia:

Westminster, 1969), 119-120.

48) R. Bultmann, Christ and Mythology, 32-34.

49) 틸리히는 불트만의‘비신화화’를 비평하기를,“그는 탈신화화(비신화화)에 대해서 말

하는것이아니라‘비문자화(탈문자화: deliteralization)’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고 한

다(P. Tillich,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Form Its Judaic and Hellenistic

Origins to Existentialism. ed. by Carl E. Braaten(New York: A Touchstone Book,

1967), 524.

고 생각한다.44) 이러한 신화적 사유체계와 자연과학적 인과율적 사유

체계의 불일치 때문에 필연적으로 성경이 선포하는 증언들은 인간의

사유체계로해석되고재해석 되어야 한다고, 불트만은강조한다.

둘째로, 불트만이 성경 해석에 있어서‘비신화적 해석’을 취하는 이

유는‘하나님의 초월적 역사(사역)를 거부하고 케리그마’를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19세기‘역사적 예수 연구’는 예수의 생애를 재건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소위‘역사적 예수 연구’는 알버트 슈바이쳐의『역

사적 예수 연구』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1906)로 일단락되

었다. 즉 복음서의 증언에 따른‘역사적 예수’는 재구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후-역사적 예수 연구를 반대하고 성경의 증언을 변증하

는 차원에서-마틴켈러(Martin Kähler)의『소위역사적 예수와 성경적

그리스도』The So-called Historical Jesus and the Historic, Biblical

C h r i s t ?( 1 8 9 6 )가 출판되었다. 켈러에 의하면, ‘성경이 증언하는 것은

역사적 예수를 증언하려고 하였던 것이 아니라 그의 케리그마

(Kerygma)였다’는 것을 강조하게 되었다.45) 이와 상응하게 신약신학자

불트만도‘역사’보다는‘신앙’곧‘케리그마’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성

경의 증언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그가선

포한‘메시지’, 곧‘케리그마’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신앙의 그리

스도’(Christ of faith)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는 강조하기를‘역사적 예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예수의 메시지,

곧 그의 케리그마’가 본래 성경을 기술한 사람들이 의도했던 바라고

한다. 즉 신앙은 역사의 탐구를 통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메

시지를 듣는데서 생긴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따라서 신앙은 역사에 대

한 지식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가선포한‘케리그마’를 믿고받아들이

는데서 생기며, 그 메시지에 우리들이 실존적 삶 속에서 인격적으로 반

26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44) KM, I, 17.

45) Martin K?hler, The So-called Historical Jesus and the Historic, Biblical Christ,

trans, ans ed. Carl E. Braaten (Philadeophia: Fortress, 1964), 66.

Page 13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IV. ‘인간학적종교’에 대한바르트K. Barth의 계시론적

비판

칼 바르트의 신학 여정 중, 초기 단계를 사람들은‘위기의 신학’

(Theologie der Krisis)이라고 이해하고 있다.51) 왜냐하면 그는 당대의

‘종교(기독교)’에 대하여 아주 심각하게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러나 바르트의‘종교(기독교) 비판’은 그의 신학사의 초기에만 나타나

는 것이 아니라 신학 전반에 걸쳐서 끊임없이 나타난다. 예컨대 그의

『교회교의학』Kirchliche Dogmatik §17의 제목을“종교의 폐기로서의

하나님의 계시”(Gottes Offenbarung als Aufhebung der Religion)로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52) 이것은 바르트가 그의 신학 초기부터 마지막

에 이르기까지계시론적 입장에서‘인간적종교’를 거부하고있다는 것

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17의 명제를 다음과 같

이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성령의 부어주심 속에 계신 하나님의 계

시는 인간적 종교의 세계 안에 계신 심판하시는 그러나 또한 화해하시

는 하나님의 현존(Gegenwart)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인간적, 필

자 주) 종교란 완악하고 독단적으로 제시된 하나님의 상(Bild) 앞에서

자신을 합법화하고 거룩하게 하는 인간의 시도 영역안에 있다는 것이

다. 그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은혜로부터 그리고 은혜로 말미암아 산다

는 점에서 참된 종교(기독교, 필자 주)의 장소이다.”53) 이러한 명제는

‘인간적 종교’와‘기독교적 계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뜻한

다. 즉‘인간적 종교’는 처음부터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하고자 하는하

나의 시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반면에 기독교는‘하나님의 계

시에 기초한 종교’라는 것이다.54) 바르트에 의하면, 인간적“종교는 불

김재진,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에대한칼 바르트의계시론적‘종교비판’ 265

51) Vgl. K. Barth, Kirchliche Dogmatik I I,1, 717(이하 KD로 약칭함).

52) KD I,2, 304ff.

53) KD I,2, 304.

54) 지금까지 논의해 온‘종교개념’에 의하면, 바르트가 이해한기독교는‘종교’가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윤리교사의 수준으로 그 위격이 세속화되고 말았다.

즉 예수는 오늘의‘몽학선생’(schoolmaster)이 된 것이다. 결국 불트만

의‘복음의 비신화적 해석’은 복음의 세속화 혹은 윤리화라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의‘케리그마의 실존적 해석 내지는 성경 증

언의 비신화적 해석’은 피안을 차안으로, 초월을 역사로, 신(神)을 인간

으로, 복음을 윤리로, 영원을 실존으로 전이(轉移)시키고 말았다.50) 따라

서 그에게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며 예

수는 더 이상‘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

한 아들에 불과하다. 설사 불트만이 슈미탈스가 이해한 것처럼, 하나님

과 케리그마를 초월적으로 일치시키고 있다하더라도, 그의케리그마의

비-신화적 해석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은

인간의‘인과법칙’이나‘현대적 사유’에 제한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만

은 분명하다. 이러한 점에서 불트만의‘케리그마의 비신화적 해석’은

‘인간학적 종교(기독교) 비판’과는 정 반대방향으로 시-공간을 초월하

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인간의 이성과 역사 속으로 제한시

킨-‘인간의 언어’로 즉 초월적인 하나님을 피조물의 법칙에 따른 역

사의하나님으로전이시킨 것 이외에 다른것이아니다.

26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50) 본 논문의 논평자는“불트만도 복음의 초월성을 보존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신

학자로 기억되기를 원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그렇다. 불트만은‘하나님의 초월성’

을 이야기하지 않고,‘복음의 초월성’, 더 자세히 말하면,‘케리그마의 초월성’을 이

야기하고자 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구원의 복음을 믿는 사람을‘하나님’이 해방시키

는 것이 아니라,‘구원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실존적 결단을 함으로써 인간이

해방되는 것’이다. 불트만 자신의 말을 빌리면,“그 때 그 때 너와 나에게 지금 神의

은혜가 약속하는 신의 말이 그를 해방시키기 때문이다”(R. Bultmann “Humanism

and Christianity”, Glauben und Verstehn I I I, 61, [허역 역,『학문과 실존』, 200]) 따

라서 그에게 있어서는‘인본주의와 그리스도교’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는“인본주의가 인식하고 승인하는 정신의 권위는 그리스도교를 신의 율법으로 이

해한다”고 말하면서,‘인본주의와 그리스도교의 양자 택일’을 거부하면서 말하기를

“이 양자택일은 인본주의가 인간의 오만으로서 그리스도교에 의해 저주되어야 한다

는 것을의미하는것은물론아니다”라고강조한다(같은책, 201).

Page 134: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에 계신 하나님은-곧 예수 안에 계신 하나님은-바로이 세상의 죄를

짊어지시고, 즉 우리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당신의 어깨에 내어맡기기

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59)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바르트는구약과 신약의 증언에서찾고있다.

우선 칼 바르트는 루터(M. Luther)의‘성령의 사역’(요 16:5-15)에

관한 설교에서 인간학적 종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점의 근거를

찾는다. 왜냐하면 루터에 의하면,‘율법과 십계명에 의한 의(義)’가 가

능하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의(Gerechtigkeit)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義로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조. 요 16:10). 따라서 루터의 주석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義

라는 것이다.60) 뿐만 아니라 바르트는 여기서 참된 이스라엘과 거짓된

이스라엘을 구분한다. 참된 이스라엘은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다

인정받은이스라엘이고, 거짓된 이스라엘은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는이

스라엘이라고 규정한다. 즉 그들은 율법의 행위를 강조함으로써, 율법

을 준수한 자기 義를 내세우는 것이며, 따라서 그렇게 가리키는 것은

‘행위의 종교’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구약의 종교뿐만 아니라, 모든

기타종교를“행위의 종교”(Werkreligion)로 규정한다.61) 이를 정당화하

기 위해서, 그는 우선 예수님과 어떤 율법사와의 대화(눅 10:25-37)에

대하여 주석한다. 이 말씀에서 바르트는 예수님께서 율법사에게 하신

말씀 곧“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살리라”(Tue das, so wirst du

leben)(눅 10:28)에 대한바른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우선“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살리라”(눅 10:

28)는 말씀은,‘율법은 듣지(= 이해하지) 않고, 율법 아래만 있으려고(=

김재진,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에대한칼 바르트의계시론적‘종교비판’ 267

59) KD I,2. 338.

60) KD I,2, 339: “Aber dieses Heubtstück und Gerechtigkeit noch lange nicht erreicht,

davon Christus alhie sagt, und Gerechtigkeit heisset”(Luther, Pred, über Joh. 16,5-

15, Cruc. Somm. Post., 1545, W.A. 21, 365,12).

61) 앞의책.

신앙(Unglaube)이고, 종교는 인간이 이야기해야 하는 단지 그 어떤 관

심, 더 자세히 말하면, 하나님 없는인간의 관심이다.”55) 종교에 대한 바

르트의 이러한 개념 규정은‘인간적 종교’는 어떤 방법으로든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바르트의‘인간적

종교 비판’, 특히‘종교의 개념’은 무신론적인‘인간 이념의 투사(投射)

종교’에 접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의 인간학적

‘종교비판’은 기독교가‘인간 이념의 투사’라는 것이다. 반면에 바르트

는 기독교는‘인간이념의 투사’가 아니라,‘계시의 종교’라는 것을 강

조한 것이다.56) 즉 인간학적 종교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기독교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있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증언이

라는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불트만을 포함하여 종교(기독교)를 비판하는 무신론

자들의‘인간학적 종교’와 바르트가 생각하고 있는‘기독교’는 서로 정

반대 방향에서 출발하고 있다. 즉 전자는 하나님 없는인간의 이념으로

부터 시작하고, 후자 곧 바르트는‘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출발한다. 전

자가 인간세상으로부터의시작하는것이라면, 바르트가 이해한 기독교

는‘하나님 자신의 계시’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바르트에 의하면,“종

교는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을 이해하고 파악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종

교와 계시는 서로 어긋난 모순”될 수밖에 없다.57) 이런 점에서 종교적

인간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제어하고, 스스로 자신을 의롭다고 인정하

고 성화하려고 노력한다.58) 그러나 기독교가 증언하는“자신의 계시 속

26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55) KD I,2, 327.

56) 앞장“I I. 무신론적‘종교(기독교) 비판’: L. Feuerbach; K. Marx; S. Freud” 참조.

57) KD I,2, 330.

58) Vgl. KD I,2, 338: “Wo der Mensch das will, was er in der Religion will: Recht-

fertigung und Heiligung als sein eigenes Werk, da befindet er sich - gleichviel ob

der Gottesgedanke und das Gottesbild dabei pirmär oder nur sekundär wichtig sind

- nicht etwas auf dem Wege zu Gott hin, der ihn dann auf irgendeiner höreren

Stufe desselben Weges doch noch zum Ziels bringen könnte.”

Page 135: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탐스럽게”(창 3:6) 보였다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그렇게

보이게 된 것은 여자의 마음에‘영적 탐심’이 그득했기 때문이라고 한

다. 그래서 그는‘율법은 인간이 범법함으로 더하여 진 것’(갈 3:19; 롬

5:20; 고전15:56)이라고 성경 말씀을 인용한다. 그래서 바르트는 로마

서 10:2-4절로 인간학적 율법 종교를 비판한다.“그들(= 유대인)이 하

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것이아니니라. 하나님의의

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

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

이 되시느니라.”왜냐하면서기관도 사실은 자기의‘의’를 내세우기위

하여, 즉“자기를 옳게 보이려고”(눅 10:29) ‘율법’을 강조하였다는 것

이다(눅 10:25-29; 참조. 16:15). 이런 의미에서 바르트는,“행위의 의”

(Werkgerechtigkeit)를 강조하는 것은 구약시대의“우상숭배”(Götzen-

diest)나 다름없다고말한다.66)

그러나 참된 이스라엘은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는‘남은 자’(롬 9:

29)로서 그리고‘바알에 무릎을 꿇지 아니한 칠천 명’(롬 11:4)과 같은

사람들로서 제1계명 아래서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 곧“여호와 하나님

의 은혜만을 사모하는 자”(시 123:2)라고 말한다.67) 이러한 사람들은 로

마서 8장 2절의 말씀처럼 우리 마음에 주어진‘생명의 성령의 법’

(Gesetz des Geistes des Lebens)에 따라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그는말

한다. 예레미야31장 33절과 로마 2장 28절 이하를 근거로 이‘생명의

성령의 법’은 우리의 마음에 기록되었다고 그는 이해한다.68) 그러므로

더 이상은 인간의 범죄와 죄는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렘 31:34; 롬

김재진,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에대한칼 바르트의계시론적‘종교비판’ 269

66) KD I,2, 340.

67) 앞의책.

68) 렘 31:33 “그 날 후에내가이스라엘집과맺을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나의법을

그들의속에두며 그들의마음에 기록하여나는그들의하나님이 되고그들은 내 백

성이 될 것이라”; 롬 2:28-29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

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

니 영에있고율법조문에 있지아니한 것이라.”

지키려만) 한다’(갈 4:21)는 말씀을 먼저깊이 이해해야만 바로 이해될

수 있다.62) 왜냐하면 율법주의자는 로마서7장 21절을 근거로, 율법으로

죄가 더욱커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바울은 주장하기 때문이다. 즉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

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롬 7:8);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롬 7:

11)를 알아야 한다고 바울은 주장한다. 이렇게 바르트는 로마서7장 7

절을 근거로1차적으로‘율법은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하는역할’을 한다

고 해석한다.63) 그래서 바르트는“율법으로 말미암아죄로심히 죄 되게

하려함”(kaq j uJperbolh;n aJmartolov")(롬 7:13)이라는 말에 주목한다.64)

더 자세히 말하면, 율법이‘탐하지 말라’하지않았다면,‘인간은 탐하지

(epiqumiva) 않았다’는 것이다(롬 7:7).65) 그리고 그는 이‘탐심’은 바로

우리마음속에있는죄罪라고이해한다(롬 7:17).

이제 바르트는 창세기3장 1절 이하를 근거로 인간 안에 있는‘탐

심’은 최초 인간아담의 죄였다고 말한다. 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여자에게는“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26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62) 괄호 속 첨부는 필자의 주석임. 즉‘율법은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듣고 믿어야

하는것’이라고 이해할수있다.(참조갈 3:2)

63) 이 점에 있어서 바르트는 루터의‘율법의 제1용법’을 수용하고 있다. 참조 WA 39,

I I, 365, 25 “Homo sua natura non solum nescit, unde peccatum sit, sed ipsum

peccatum nescit. Manet autem cognitio peccati in homine per verbum Dei: 사람은

자기 본성만으로는 죄가 어디서 오며, 죄 그 자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죄 인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인간 안에 머물러 있다”(P. Althaus, Die Theologie Martin

Luther, 구영철 역,『마르틴 루터의 신학』(서울: 성광문화사, 1994), 204, 각주4에서

재인용)

64) 앞의책.

65) 여기서‘탐하다(epiqumiva)’라는 말은‘ejpiv’와‘qumov"’의 복합어로서‘보이는 외

적 대상에 대한 마음의 지나친 바램’을 의미한다. 이점에 관하여: F. Godet, Kom-

mentar zu dem Brief an die Römer, deutsch von E. R. und K. Wunderlich, 2.Aufl,

Hannover 1892, 50.

Page 136: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V. 결론: 인간적인것은신적인것에의해서폐기된다

19세기 포이에르바하와 칼 마르크스 그리고 프로이드에 의해서 시

도된 인간학적‘종교(기독교)비판’은 기독교를 인간 이성의 산물로 보

는 견해에서출발하였다. 이러한‘종교(기독교) 비판’의 출발점은 두 말

할 것도 없이‘무신론’이다. 따라서 포이에르바하에 있어서는“신의자

의식은 인간의 자의식이며, 신에 관한 인식은 인간의 자기인식”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72) 그래서 포이에르바하에 있어서,“신은 생리적이거

나 우주적인 존재가 아니라, 심리학적 존재”라고 규정되고 있다.73) 이와

상응하게 칼 마르크스에게 있어서도,“종교가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

라, 인간이 종교를 만들어낸 것이며, 따라서 종교라는 것은 … 인간의

자기의식이자 자기존중”이외에 다른것이아니다.74) 이러한 맥락속에

서 프로이드에의해서 주장된 기독교는 단지“보편적인강박노이로제”

로 전락되고 말았다.75) 따라서 이상 세 사람의‘무신론자들’에 의해서

제기된‘종교(기독교) 비판’은, 한 마디로 말해서,‘기독교는 인간 이념

의 산물’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결국 이들은 기독교를 우상으로 만

들었다.76)

김재진,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에대한칼 바르트의계시론적‘종교비판’ 271

72) L. Feuerbach, Das Wesen des Christentum, 51.

73) 앞의책, 427.

74) K. Marx,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Werke I[CW], 488 (H. Küng,

Exisiert Gott?, 성염 역,『신은 존재하는가』(왜관: 분도출판사, 1998), 321에서 재인

용).

75) S. Freud, Die Traumdeutung: Studienausgabe II, 208(『신은 존재하는가』, 372에서

재인용) 또한그는이르기를“토템 동물이 부친… 을 대체하는 역할이 끝나자, 최초

의 부친은 신의 원형이 되었다. 아들의 반역과 부친에 대한당사자의 애정이 계속해

서 갈등을 일으켜서 연속적인 타협을 찾았다. … 일면으로는 부친살해의 행위를 속

죄하는 방법을 찾았고, 다른 면으로는 거기서 초래된 기득권을 강화시켜 나갔다. 이

런 종교관이 특히 잘 밝혀주는 것을 그리스도교의 심리적 태도이다. 우리가 알기로

그리스도교에서는토템 식사가 영성체라는약간왜곡된 형태로잔존하고있다.”

76) 칼뱅J. Calvin은“인간의 본성은항구적인 우상제조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

4:6). 이렇게 의롭다 인정받게되고, 구원받은 이스라엘에 관한증언, 곧

“오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Das Zeugnis von dem

kommenden Jesus Christus)이 구약성경의 본래의 의미라고 바르트는

강조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기독교는‘행위의 종교’가 아니라,‘계시

의 종교’이고, ‘행위의종교’는‘계시에상충(相衝)된다’고 역설한다.69)

이상 바르트의 참된 이스라엘과 거짓 이스라엘에 대한 설명을 통하

여 분명히 드러난 것은불트만의‘기독교의비신화화’를 포함하여무신

론자들의 인간적‘종교’는 철저히‘율법적’이고‘세상적’이며‘인간의

행위를 우상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가 말하는 기독교는 철저히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 밖으로부터 성령에 의해서 주어지는‘하나

님의 초월적 은혜’에 관한 것이기에, 그 어떠한 인간의 노력과 행위를

전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을 거부하는‘불신앙’은

인간학적‘종교의 단초’가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그는“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주체에 붙어 있는 술어”라고 말한다.70)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예수그리스도라는 이름과 기독교적 종교 사이의 관계

속”에서①“신적 창조의 행위,”②“신적 선택의 행위,”③“신적칭의

와 죄 용서의 행위,”그리고 ④“신적 성화의 행위”가 다루어진다.71) 한

마디로 말해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계시사건을현재화하는성령의 사역에 기초해 있기때문에, 무신론자들

의 그 어떠한 인간적 기독교 비판도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27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69) KD I,2, 340.

70) KD I,2, 381.

71) KD I,2, 379, 382, 387, 393.

Page 137: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의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하나님의초월적 역

사를 강조하는‘계시론’으로 인간학적 종교’를 비판하고, 기독교의 복

음을회복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

나님의 자기계시를 성경뿐만 아니라 모든 교리적 해석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는‘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위에 정립된 기독교는“신적 창

조의 행위, 신적 선택의 행위, 신적 칭의와 죄용서의 행위, 그리고 신적

성화의 행위”가 있다고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있는 하나님의 계시 사건을 현재화하는 성령의 사

역에의해서‘교회’로 현존해있다.

그러나 불트만의‘비신화화’를 반대하는 바르트의-하나님초월성을

강조하는-‘윤리적종교에 대한비판’은 다시본회퍼의‘기독교의비종

교화’라는‘종교 비판’으로 재비판된다. 즉 본회퍼는 바르트의‘계시종

교’를‘계시 실증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또 다시 기독교를‘비종교화’해

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그는기독교를, 예수그리스도의 삶으로 계시된

‘그리스도인의삶’을 역사속에서 실현해야 하는‘십자가의 종교’로 재

정립한다. 즉 기독교의 전통적인‘계시신학’-더 자세히 말하면, ‘deus

ex machina’로 전락될 수 있는 초월적 계시종교를-‘비종교화’함으로

써, 기독교가 교리화’되는 것을 비판한다.78) 그래서 그는‘하나님의 계

시’를‘교회로 현존하는 그리스도’로 바꾸어-예수의‘화육’(Inkarna-

tion)처럼-‘세상 속에 있는 교회 공동체’를 강조함으로써 계시종교와

율법종교를‘기독론적 교회론’혹은‘교회론적 기독론으로’‘계시종교’

를 재정립하고자한다.79)

이제 결론적으로 말해서, 무신론자들의 인간학적‘종교비판’이 기독

김재진,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에대한칼 바르트의계시론적‘종교비판’ 273

78) 판넨베르그W. Pannenberg는“종교들이란, 철저히 안전에 대한 추구이며, 신성과 인

성의 구원 능력을 소유하려는 노력이다”라고 정의하였다(W. Pannenberg, Was ist

der Mensch?, 1962, 27).

79) 이 점에 관하여: 김재진, 정지련 역,『행위와 존재』(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123

이하: “계시를존재개념으로해석함.”

그러나 여기서 질문이 제기된다.‘종교와 종교적 이데올로기’의 차

이점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주장한‘공산주의’는‘종교적

이데올로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왜냐하면‘공산주의’야 말로 지상낙

원을 희망하는 인간의 이념을 절대적 통치이념으로 고양시키지 않았는

가? 결국무신론적 종교(기독교) 비판가들은 자신들의 머리에서 잉태된

‘종교 개념’에서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동시에‘종교적 이데올로기’를

만든장본인들이라고볼 수 있다.77)

반면에 불트만의‘종교비판’은‘신약성경의 케리그마를 비신화적으

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케리그마의 비종교

화’작업은 기독교를‘윤리종교’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즉 그는 역사속

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초월적 사건을 역사화 함으로써, 하나님의 역사

초월성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계시를-‘하나님의

인간됨’(Gottes Menschwerdung)(요 1:14)을-거부하는 결과에 이르고

말았다. 따라서 불트만에게 있어서 기독교는,‘하나님은없고인간적윤

리’곧‘율법종교’로 전이되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는,‘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아니라,‘케리그마를 듣는 인간들의 삶’이 중요하였기 때

문이다. 이렇게‘윤리화된 종교, 곧 율법종교가 되어버린 기독교’는 바

르트에 의해서‘율법종교’라는 이름으로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왜냐

하면 바르트는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계시를 기독교 이해

27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하였다.(J. Calvin, Inst., I,11,8).

77) 논평자가 오늘날의 기독교가 계시의 현실성을 상실하였다는 점에서 볼 때,“오히려

무신론자들의 종교비판이 정당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고 논평자의 생각(S. Freud,

Der Mann Moses und die monotheistische Religion: Studienausgabe IX, 580(『신은

존재하는가』, 390에서 재인용) 을 피력하였다. 그렇다 이 점에 대하여 필자도 동의한

다. 즉 기독교가‘종교적 이데올로기’로 되었기 때문이다.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도

그 당시 기독교가 마치‘이 세상의 모든 고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처럼 Ideo-

logisierung’ 된 것을비판하였듯이, 오늘날 특히한국기독교도‘고난이없는번영의

신학’으로 변질되었다. 결국 인간이 신, 곧 절대자에 대하여 표상한 종교가 이제는

역으로 인간을이끌어가는‘이데올로기’가 된 것이다.

Page 138: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가-곧 인간이‘신에 관하여 이야기 하는 것’(von Gott zu leden)이-

살아계신하나님을종교의 신으로 만드는 결과가 되었다.

주제어

종교비판, 기독교의 비신화화, 기독교의 비종교적 해석, 하나님의 자기

계시, 무신론적 기독교 비판, 유신론적기독교비판

religious criticism, Entmythologisierung of Christianity, Non-

religious interpretation of Christianity, God’s self Revelation, atheistic

criticism of the Christianity, theistic criticism of the Christianity

접 수 일 2010년 10월 14일

심사(수정일) 2010년 10월 30일

게재 확정일 2010년 12월 10일

김재진,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에대한칼 바르트의계시론적‘종교비판’ 275

교를‘인간이념의신격화’로 비판한 것이라면, 바르트의‘유신론적종교

비판’은 기독교를 인간화 내지 윤리화하려는것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기독교를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기 때문에

‘신학의 인간학으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이와 유사하게 불트만의‘케

리그마의 비신화화’도‘초월적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를‘세상의 윤리

적 종교’로 전이시키고 말았다. 즉 인간의 하나님 체험 혹은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역사 속으로 전이시킴으로써 기독교를‘윤리의 종교’로 만

들었다. 그리고 본회퍼는 하나님의 초월성 혹은‘하나님의 초월적 계

시’를‘교회로 현존하는 그리스도’로 해석함으로써, 차안과 피안을 융

합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렇지만 그는성령의 능력안에있는 역동적 기

독교를‘성례전적 혹은 교회론적으로 제도화’(Institutionalisierung) 함

으로써, 가톨릭 교회의‘성례전적 교회’를 재-복원시키는 오류를 범하

고 말았다.

그러나 바르트는‘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종교의 위기이며, 동시에 그

종말’이라고 말함으로써, 인간학적 종교는 계시 종교에 의해서 극복될

것임을 시사(示唆) 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때 구약성서

와 신약성서는 종교제도의 위기와 종말을 보여주는 원형이 되기 때문

이다. 그러나 혹자는 바르트를 비판하기를, 그리스도교가 종교의 개념

을 전적으로파괴함으로써, 기독교가교묘하게 자신을 절대화하고모든

종교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하나님

의 계시로부터-신의존재를 논하는 것이아니라 인간의 이성으로부터

신의 존재를 논하는 것은, 그것이야 말로,‘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종

교’이기 때문에 역으로‘종교비판’을 받아야 마땅한 것이아닌가? 결국

무신론적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은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었는데,

인간 이성에서 신의 존재를 이해함으로써, 스스로 신의 존재를 만들어

내는‘종교’를 만든 것이 되고 말았다. 인간이 신에 관하여 생각하고,

자기만의 고유한 신의 이념들과 영상과 개념을 만들어 내었다면, 그것

은 이미 신이 아니라 인간의 이념이다. 오히려 신에 대한 인간의 이해

27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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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ähler, M., The So-called Historical Jesus and the Historic, Biblical Christ.

27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40: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criticism by atheists, the Christianity is considered as the production

of human ideals. So atheists have understood the Christianity under

the ‘ideological Idol’ of the human being. Bultmann as a theistic

critic of religion insists on the non-mystical interpretation of the

holistic ‘massage (kerygma)’ of the Testament. According to him,

because the Christian Gospel is written mythically in the semantic.

‘Entmythologisierung of the Christian Gospel’, namely of

‘Kerygma’, for him, however, made the Christianity corrupted into

the religious ethics. In other words, Making a history of the God’s

transcendental work, Bultmann has identified the self revelation of

God revealed in the history and in Jesus Christ within lessons for

human life. As a result, his ‘Entmythologisierung’ of the Christianity

made it a religion as human ethics without God.

Against to Bultmann’s ‘Entmythologisierung’, however, K. Barth

has taken God’s self revelation taken place in Christ to starting point

of the Christian understanding. Emphasizing the transcendental work

of God in the history, Barth has criticized ‘religious criticism’ which

is worked to that time antithetically and restored the theology of

revelation. So he took God’s self revelation in Jesus Christ, the

starting point of interpretation of the Bible as well as all the doctrine.

He confirmed that the Christianity is not the projects of human about

God, the absolute, but the testimony for God’s self revelation in Jesus

Christi. In the discussion with Karl Barth, Bonhoeffer criticizes him

as the idealistic positivist of the revelation of God and has refreshed

the Martin Luther’s theology of the cross in the prospect eccle-

siology. He claims, transcendental revealed theology always stays in

the theological tendency that God is called as only the ‘mechanical

Deus ex machina’. Therefore he interpreted ‘self revelation of God’

as Jesus Christ existing as the Church on the ground. In other words,

the church on the ground for Bonhoeffer is the existential form of

Jesus Christ.

김재진, 인간학적종교(기독교) 비판에대한칼 바르트의계시론적‘종교비판’ 279

K. Barth’s revalational Critic on theAnthropological Critic of the Chrisitanity

Jae-Jin, Kim

Part Time Professor

Soongsil Graduate School of Chrisitan Studies

Seoul, Korea

1 9-20th century ‘religious criticism’, there are two directions or

two starting points. One of them was the ‘religious criticism’, or

‘atheistic Christian criticism’ attempted by L. Feuerbach (1804-

1872), Karl Marx (1818-?) and Sigmund Freud (1856-1 9 3 9 ) .

Another direction of ‘Religious criticism’ is ‘theistic Christian

criticism’ attempted by Rudolf Bultmann (1850-1976), Karl Barth

(1886-1968) and Dietrich Bonhoeffer (1906-1945). The attributes of

this presentation is to understand two directions of ‘religious critic-

ism’ mentioned above. Saying profoundly, in the following research,

characteristics of ‘religious criticism’ criticizing the Christian Gospel

on the ‘philosophical or psychological’ perspective and of the claim-

ing of the ‘Entmythologisierung’ and ‘Non-Religionisierung’ of the

Christianity on the theistic perspective are to be interpreted analysti-

cally.

According to the research results, the ‘religious criticism’

attempted by Feuerbach, and Karl Marx and Freud Freud in the 19th

century is ‘the critic of Christianity’ as the products by the human

mind. The starting point of these ‘religious criticism’, needless to

say, is just ‘atheistic’. According to the anthropological religious

27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41: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악의문제와그 극복을위한신학적고찰

최종호

(경성대학교교수)

I. 서론

왜 인간에게 고난이 오는가? 왜 선한 사람에게도 고통이 오는가?

사람들 대부분은 선하고 착한 사람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이 닥

칠 때 당황해 한다. 하느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선한 사람에게 고통을

허용하시는가? 덴마크의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류의 역사가

고난으로점철되어있는것을보고자신의 위치를 데카르트의“나는생

각한다. 고로 내가 존재한다”를“나는 싸운다. 고로 내가 존재한다”(I

struggle, therefore I am)고 했다. 세상을 괴롭히는 악과 싸우는 것은

실존적 결단이라고보인다.

악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에서 악은 회피할 수 없는 단어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악의 현실 앞에서 우리는 곧장 체념하여 불운의 운명으

로 받아드리거나 아니면 종교적 이유로 내세로 도피하여 실존의 문제

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 같다. 또 하나의 그룹은 특히 종교인이나 지식

인의 그룹이 그런 경향이 많은데“고난의 의미”를 찾아 스스로 마음을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281-309

Page 14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그러나 하느님을 믿는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이러한 고통과 고난의

경험은 진지한 시련이 된다. 이러한 상황은 숨겨진“신에 대한 정의”로

신을 묻는 신학적 질문을 제기하게 한다. 인간의 불운은 하느님으로부

터 오는가? 아니면 악마로부터 오는가? 아니면 이 둘 다인가? 하느님

이 선하시다면 악은 왜 오는가? 죄의 결과가 악인가? 그리고 하느님은

악을 멸할 수 없는가? 우리가 만나는 실존적 고난 속에서 하느님은 지

금 어디 계시는가? 이 세계의 악과 선하신 하느님은 어떤 관계를 가지

는가? 도대체 하느님은 왜 악과 고난을 허용하시는가? 신은 존재하는

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주는가? 역으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를 주지 못하는가? 오늘의 현대인은 무

신론의 상황이든 혹은신을 전제하는 유신론의 상황이든 그렇게 큰 영

향을받지않는것 같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없다면 이러한 질문을 제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드릴 수밖에 없다고 취

급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악의 사건을 이 세계의 현실을

떠난추상적 사변에서“하느님의섭리”라고쉽게취급해 버리는 것과는

달리 구체적인 악의 현실 속에서 신학적인 답변을 요구한다. 이 악의

문제는 전통적 유신론도 해결하지 못했으며, 무신론도 해결할 수 없었

다. 기독교의 전통적 신관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고난을 단지“피

상적”으로만 설명해왔을 뿐이다. 이러한 정황에서 악에 대한“신정의“

문제, 즉 신정론(theodicy)2)은 기독교 신학의 한 중심 주제가 될 수 있

다.“만일하느님이 의로우신 분이라면악은어디서부터오는것인가?”

최종호, 악의문제와그 극복을 위한신학적고찰 283

1) 토톨러지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외형의A와 진짜A의 구별을 가져오

는 사상이다. 예를 들면“인간은인간이다”를 반복하면 의미가 없지만,“그 인간은 인

간답다”고 할 때, 그 사람이 인간이다 아니다가 문제가 아니라, 진짜 인간이 어떤 것

이냐를 포함하고있는것이다.

2) 신정론(神正論)은 하느님의 변명을 뜻한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변명이 필요하신 것이

아니라“하느님”이라는 개념이 변명을필요로 한다는것이다.

달래고 있다. 여기서 인류역사에게임해온고난, 각 개인에게찾아오는

고통에 대하여 신학적 진술이 요구된다.

여기에 대해 많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악이란 무엇인가? 악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존재와 비존재의 개념 속에서 형이상학적으로 다루어 악의

정의와 출처를 밝히는 정도였다. 그들이 밝힌 결과는 인간성 자체에 대

한 문제나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생각하여 적용 문제는

언제나 다시 그 한계를 드러냈다. 다시 말하면 악의 극복 문제를 소홀

히 한 것이다. 여기에 반해20세기 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칼 바르

트(Karl Barth)의 악에 대한 통찰은 악의 기원, 악의 정의와 더불어 악

의 극복문제를 신학적으로다루고 있다는점이돋보인다.

필자의 관심은 이 악의 극복에 관심을 집중하고자 한다. 그것은 신

학적 고찰이 될 것이다. 악이란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항상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그 무엇이라고 한다면 삶 속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악한 것들

을 우리는 경험한다. 악은 인간 밖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서도 일어난다. 홍수, 지진, 가뭄, 쓰나미[tsunami) 등이 인간 밖에서 일

어나는 악이라면 폭력, 탐욕, 미움, 시기, 질투 등으로 인한 공격성은 인

간 안에서 일어나는 악이다. 악이 밖에서 오든 안에서 오든 악은 인간

의 삶을고통과 고난의시련으로뿌리채 흔들어 놓는다.

악은 어디서부터 나왔는가? 창조주가 악을 세상과 함께 만들었는

가? 선하신 하느님이 악을 만들수 없다고 한다면, 그러면 악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악은 존재하지 않은 것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악은

실존적으로 우리의 삶의 한 복판에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악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

가? 적어도 존재론적으로 말이다.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악에 대하여

논한다는 것이 존재론의 관점에서 보면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은“있는 것”은 있다.“없는 것”은 없다는 일종의‘토톨러’

지(tautology)1)이었다.

28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4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능으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데, 죄 때문에 은혜의 도움을 받을 때는

선을 택하고, 은혜가 없을 때는 악을 선택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은 모두 선한데, 악하게 보이는 것은 온전한 선이 나타나지 못할

때라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악은존재하지않은비존재라는 것이다. 이

러한 입장에 더욱 가세한 철학자는 라이프니츠(Leibniz)다.5) 그는 아우

구스티누스보다 더 극단적으로 악의 존재를 거부한다. 이 세계는 완벽

하게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악이란 존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악이존재한다면, 그것은 인간환상에불과한 것이라고한다.

칸트(Kant)는 악은 인간의 본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

는 악의, 혹은악을 향한의지에서온다고 하였다. 그는인간 이성을 인

간 사고의 원리와 척도로 삼은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인간 의지와 마

음의 악의에 의하여 나타나 이성이 모든 권위 위에 군림하여 나타난

것으로 보아 결국 소피스트로 알려진 프로타고라스(Protagoras)가 말

한“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옛 격언이 재발견되고 재확인된 셈이

다. 이제이성을 소유한 인간은 만물의 심판자와척도가되었다. 따라서

악의출처는 바로인간자신이라고본 것이다.

헤겔(Hegel)은 세계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자기 활동으로 본다. 그

에게 있어서 존재와 무 사이의 갈등은 변화(becoming)에 의해 해결된

다.6) 그는변화 과정을 통해 하나의 연합된 실체가 된다고 주장하기 때

문에존재와 무의 이원론적 구조를 넘어선다. 그러나 그는 세계의 모든

것이 하느님 자신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모든 유한한 것은그

속의부정적인 것 즉, 악한 것, 불안정한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은 정신의 변증법적 자기활동에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요소이며 정

최종호, 악의문제와그 극복을 위한신학적고찰 285

5) G.W.라이프니츠는 신이 올바르고 의롭다는 신정론을 최초로 사용한 학자로서 신의

본성과 신의 세계에 대한 관계를 문제로 삼았다. 여기에서의 신은 권위의 존재이며,

현명하고선(善)한 존재이다.

6) Hegel, Phenomenology of Spirit, tran. by A.V. Miller with analysis of the text and

foreword by J. N. Findlay, N.Y., : Oxford University Press, 1977, 2.

(si deus justus, unde malum?).

I I. 악은어디서오는가?

철학사에서 악은‘무’(nothingness) 또는‘비존재‘(non-being)의 개

념 속에서 논의 되었다.3) 문자적인 의미로 보면‘무’란 존재의 부재와

부정, 즉 비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나 초기 희랍 철학에서 비존재(non-

being)는 그것의 존재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을 했다. 이제만물을 변화

하는 관점에서 보는 헤라클레이토스와는달리 만물은 변화하지 않는다

고 하는 사상이 탄생했다. 그래서 변화하는 것은 진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사상의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470 BC)는 비존재의 실제를 부

인하는 반면에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460 BC)는 만물의 근원을

숙고하면서 보이지 않는 원자가 실재하는 것처럼 비존재가 실재한다고

주장했다. 플라톤(Platon, 428BC)은 그의 이데아에 반대되는 비존재의

상대적 세계를 가정하고 그 비존재를 세계가 창조되어진 모태라고 강

조하였다. 여기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BC)는 비존재

는 운동할때, 존재하기도하고존재하지않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신

플라톤주의에서는비존재는 물질적 세계와 악을 발전시키는 요소로 보

았다.4)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이 세상에 악이 따로 독립적으로 존

재하는 것이아니라 선의 결핍으로 생각한다. 인간은 이성과 의지의 기

28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3) 특히 철학적 신학자 P. Tillich를 들 수 있다. Paul Tillich, The Courage to Be (New

Heaven : Yale University Press, 1952).

4 ) 고대 철학자들은 현대 철학자들보다 더욱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Søren

Kierkegaard, The Consecept of Anxiet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0), 82.

Page 144: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신은‘완벽한 선’(perfect good)과‘불변하는 의지’(unchangeable will)

와 무한한 힘을 가지고있고그리고 그것으로 세상을 다스린다고한다.

그리고 그는 신은 자신의 본성 안에‘모든 지식’(omniscient)이 모든

만물의 원인이 된다고 했다. 따라서 신은세계와 관계에 있어서 우연이

란 있을 수 없다. 세계의 악은 완벽한 하느님의 잘못이 아니라 불완전

한 인간에게 돌려진다. 아퀴너스는“신의 단순성”(divine simplicity)을

내세워 신을변호했다. 그러나 여기서 선하고 완전한 신의 존재와 신이

존재하는 만물의 불완전성과의 관계가 모호해진다. 왜냐하면 우주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 특히 설명할 수 없는 악이 선한 신으로부터 나왔

다고하는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자 칼뱅은“하느님의 예정“(predestination of God)의 사상

에서 하느님의 주권을 내세워 이중 예정의 교리”(gemina praedesti-

natio)를 전개시켰다. 칼뱅은 성서의 말씀을 들어 어떤 사람은 구원으

로 또 어떤사람은멸망으로정해져 있음을 논리적으로전개해 나갔다.

우리는 예정을 하느님의 영원한 결정이라고 믿는다. 하느님은 그러한

결정에 의해 모든 개개인의 장래를 정해 놓으셨다. 왜냐하면인간은 모

두 같은 운명으로 창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은 영원한 생

명에 또 어떤 사람은 영원한멸망에 이르도록 창조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두 가지 운명 가운데 창조된 각 인간은 생명에 이르

도록 예정되어 있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도록 되어 있든지 하

는 어느 하나로예정되어 있는것이다.8)

이러한 창세 이전에 이미 어떤 사람들은 멸망과 죽음으로 예정되었

최종호, 악의문제와그 극복을 위한신학적 고찰 287

World, vol.19 and 20, trans. by Fathers of the English Dominican Province

(Chicago: Encyclopedia Britannica, INC,. 1952), I/1. 4, 9 그리고 I/1.7,10.

8 ) Johannes Calvin, Institutio Christiane Religionis, 1955, trans. by Otto Weber,

Unterricht in der Christlichen Religion, Neukirchen-Vluyn, 1984 (이하 Inst.로 표

기함), I I I, 23, 27.

신에 의하여 부정되고 고양되어야할 실제이다. 그에게 있어서 악과 선

은 이원론적 구별로 나누어서 설명될 수 없고, 악은 선으로 넘어가는

변증법적 과정에 있다. 따라서 악의 요소가 전혀 없는 완전한 선은 유

한한 세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완전한 선이 있다면 그것은 절

대 정신 속에만 있다고 한다. 세계사는 이 발전 과정이요, 정신의 현실

적인형성이다.

위에서 살펴 본 바대로 철학에서 악이란 무이며 비존재이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와 물질과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

진다. 이러한 입장을 대변해주는대표적 인물이 라이프니츠다. 그에의

하면 악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형이상학적으로 악이다. 악은 하느님

의 완전성을 제거하는 것이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논증하고자한다. 따

라서 악은 선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선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확장하게 하는 필수적 공사자로 보고 있다. 악이란 빛이

비쳐야할어두움이라고본 것이다.

I I I. 신과악의관계

기독교 신학은 왜 선하신 하느님이 주재하는 이 세계에 악이 존재

하는가? 그리고 왜 전능하신하느님 그 악을 그대로 방치하는가?와 같

은 물음 앞에서 신학적 사유의 내적 딜레마에 있다. 왜냐하면 악이 실

재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하느님이막을 힘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

고 그것을 허용했다면, 신의‘선하심’을 부정해야할 것이고, 그것을 막

고자 하였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면, 하느님의‘전능하심’을 부정해

야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기때문이다. 중세의 스콜라 신학자 토마스 아

퀴너스는『신학대전』에서 신은 완벽하고(perfect), 불변하며( i m-

mutable), 영원하고(eternal), 그리고 무한하다( i n f i n i t e )고 했다.7 ) 또한

28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7) Thomas Aquinas, The Summa Theologica, 2 vols. of Great Books of the Western

Page 145: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서 죄는 신 인식에 의해서만 인식되고 신 인식은 죄 의식과 함께 할

때만인식된다는점이다.

쉴라이에르마허의 잘못은 인간 의식을 절대적으로 설정해 놓고 그

한계 안에서 죄의 이해를 보려고 한 점이다. 그의 기독교 의식

(Christian consciousness)의 영역에는 진정한 죄와 진정한 은총이 있

을 공간이 없어진 것이다.12)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 말씀에 대하여 닫혀

있는 인간의 종교적 의식 속에서는 죄의 위협이나 또는 은총의 능력이

실제적 모습으로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통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신학이 아니라 인간 중심적 사고가 빚어낸 오류였다.13) 결국 이러한 인

간 중심적 사고의 규범을 통해서는 죄가 근원적이며 근본적 의미로 고

찰될수 없었다. 이렇게 되면 하느님과인간사이에 궁극적 대립으로서

죄의근원적 성격과 본성은 무해할 만큼약화되기 때문이다. 결국 죄의

실존성의문제를 직시하지못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실존 문제를 취급한 실존철학자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무’와 실존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이데거는 과학과

구별되는 형이상학의 탐구영역을 확장하여 무를 취급하였다. 형이상학

이란, 도대체 왜 존재는 거기에 있고, 무 즉 악은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가를 묻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무의 본질은 인간 얼굴을 존재 자체

와 직면하게하고 인간을 존재하는 것에대면시키는 것이다. 그래서이

실존은 무속에 투사된 존재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무는 존재하는 것의

현현이 인간실존에 가능하도록 하는필수적인 요소다. 즉 무에계시를

기초로 하여 실존 자체는 존재하는 것에 개입은 물론 존재 자체를 넘

어가서 그것을 초월 극복한다. 그러므로 무는우리 자신의 부정에 기인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무에 무화작용에서 부정이 도출된다.“결국

최종호, 악의문제와그 극복을 위한 신학적고찰 289

12) K. Barth, Church Dogmatics, I V/1, 377.

13) 19세기 신학적 추세는 인간 중심적이었다. 쉴라이에르마허는 인간의 감정을, 헤겔은

이성을, 리츨은 도덕적 가치를, 하르낙은 역사를, 헤르만은 현실성을, 각각 하나의

‘규범’으로삼았던것이문제였다.

다는 결정론적 예정의 교리는 칼뱅 자신도 언급한 그대로“무서운 결

정”(decretum horrible)이었다.9) 악에 대한 이해는 죄로 인해 초자연적

능력이 제거당한 것으로 본 것이다. 이들의 이른바 신정론은 예정의 신

과 선의 신을 동시에 지지하였지만‘예정’(predestination)이라는 신의

절대적 힘, 즉 신의 힘이 우주의 운행을 결정(determination)할 수 있

을 만큼 절대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되어, 결국 우주 속의 악이란 신의

본성과 일치하는‘불의 한 신’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게 된다.10)

이러한 이해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까지 신의 계획 속에 있다는

것으로 비약한 나머지, 악에 대한 항거가 곧 신의 뜻을 거역하는 것으

로 흐를수 있는위험이 따르게 된 것이다.

여기에 반해 1 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인 쉴라이에르마허

(Schleiermacher)는 악의 문제를 인간의 죄와 결부시켜 다룬다.11) 그는

죄를 인간의 인식에 의해서 결정되는 인간의 자기의식으로써 상대적

무능, 결핍, 혐오등으로 보았다. 그에 의해면 신 의식없이는 죄 의식도

없고, 그리고 죄 의식 없이는 구속의 능력에 대한 의식도 없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죄 의식은 두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고 그리고 한계가 있

다. 첫째, 신은인간을 구속하기위하여 그리고 계속해서인간의 구속의

필요성을 깨우치기 위해서 인간의 존재와 행동을 죄로 만든다. 그러므

로 죄가그 실제를 갖는것은 신적부정의 덕택이 된다. 둘째는 인간이

죄의식을 갖는 것은 구속의 의식을 갖기 때문이다. 죄는 그 한계를 인

식할 때만 실제적이 되는데 그 한계란 신 인식 또는 선이다. 다시말해

28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9) Insti., I I I, 23, 7.

10) Whitehead, 『형성과정에있는종교』, 95/101.

11) 죄를“미완성”으로본 낙관주의적 확신이나신뢰는20세기에 와서뒤틀리고 파괴 되

었다. 전쟁으로 야기된 세기적 대변동은 인간성 자체 문제를 흔들어 놓았다. 그것은

인간성에 대한 통찰, 즉 인간의 교만과 인간이 가진 죄성의 특성을 무시한 것에 대

한 경고였다. 인간 중심의 사고는 위기를 말하는 위기신학을 출현시켰던 것이다. 위

기는인간의교만과 인간중심적인자기확신을심판하는하나의 선언이었다.

Page 146: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I V. 악의극복을위한신학적접근

철학사에서‘악’은‘무’( N i c h t s )라는 말로 사용되었다. 문자적으로

이 말이의미하는 것은존재의 부재(不在)나 부정(否定)을 뜻한다. 그러

나 바르트는 세계 속에 악의 세력이 존재하는데 이 세력을 무( d a s

Nichtige)라고 칭하면서 하느님의 주권 안에서 무의 세력이 어떻게 취

급되고 극복되는가를 신학적으로 해명하고 있다.1 4 ) 그것은“하느님의

의”(Rechtfertigung Gottes)를 바로 세우는 일, 즉 그의 독특한 신정론

을 의미한다.15)

1. 바르트에게서창조와‘무’

바르트는 그의『교회 교의학』제I II권 창조론 중제 3부 섭리론에서

악과무(das Nichtige)의 실재성과하느님의 적대자들을 집중적으로다

룬다. 그는‘악의 세력’으로서‘무’(das Nichtige /nothingness)16)를 바르

게 규명함으로써악의실체를 신학적으로규명하고자한다.

바르트는 바로19세기 문화 개신교에서 낙관주의적 인간 이해에 회

의를가진다. 그는이러한 악에 대한이해속에는 어떤것의부재, 신적

인 완전성의 결핍, 죽음의 형식 속에 있는 피조적, 실존의 파괴를 의미

최종호, 악의문제와그 극복을 위한신학적고찰 291

14) K. Barth, Church Dogmatics I I I/3, 291.

15) 기독교신학은 문명의 큰 변화 속에서 변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과제를 안고 있

다. 18세기 계몽주의 아래서 이신론(deism)이 그랬고, 19세기 자유주의 물결에서

“문화개신교 신학”이 그랬다. 기독교 신학의 여러 변증들 가운데 악의 문제를 다루

는“신의 정의”(justice of God), 즉 신정론(theodicy)은 신의 존재를 실존적으로 무

엇보다도신학적으로 다루는 교의학(dogmatics)의 중요한 각론이다. 여기에 대한칼

바르트(Karl Barth)의 신학적통찰은독특하다.

16) 무(das Nichtige)라는용어는 바르트가처음사용한것으로 무를적극적인 힘으로보

아 그 본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특히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무(Nichts)

와 구별된다. 영어로 표현하면 전자가 무성(nothingness)이라면 후자가 무(nothing)

에 해당한다.

무에서 모든존재가 유로된다”는 새로운명제가 도출되게된 것이다.

이제 사르트르를 보자. 하이데거가 목적이 실존에 마주선 무의 잠재

력을 논증하는 것이 있다면 사르트르는 그 무에 의하여 제약되는 인간

실존을 논증하려 하였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무에서 나오는 그 부정으

로부터 인간실존에 대한 신기한 긍정이 솟아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가 본 인간은 어떤 한계상황에서 불안하게 존재하거나 머뭇거리는 것

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서 있고 전진해야 하는 존재다. 그의

주저『실존주의도휴머니즘이다』에서그는인간의 실존모습을 잘 그려

주고 있다. 인간이 의지할 것이란 아무것도 없으며 인간의 이면에 있는

것은 항상무다. 오직 하나의 전망과 미래는 실존그 자체다. 그래서 그

는“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했다. 이 명제에서 그는 인간을 자신의

실존을 위해피투된 존재, 나아가 자기앞에 있는본질까지도 선택하고

창조할 수 있는존재로 파악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두 철학자들을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라고 칭하는데 사

실상 무신론이 아니라 그릇된 신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

다. 사르트르가 하느님의 자리를 인간에 의하여 대치했다면, 하이데거

는 하느님의 자리를 모든 것을 지배하고 역동적인 무의 깊이에 의하여

대치시켰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사상과 표현으로부터 라이프니

츠나 쉴라이에르마허에게서끌어낼 수 없는하나의 추론, 즉 무는실제

적으로 현재하고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끌어낼 수 있었지만 그들의

주장은 무가 단지 가공적이거나 우리의 부정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대면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

는 점을 실감케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실존철학자들만큼무의주제

를 그렇게 진지하게 다룬 자들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무의 개념을 신학적으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진

정한 무의 현실과 무의 세력을 보지 못했으며, 결국 무의 극복에 접근

하지못한것이다.

29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47: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없는죄의실질적인특성을 보여주려는것이었다. 창세기 3장의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고통과 죽음이 온 것은 바로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죽음은 생명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

의 심판이다. 죄로 인해 죽음이 온 것이다.18) 죽음은 하느님과 피조물

사이의 큰 간격으로서그것은“무”로서힘을발휘하고있는것이다.

이렇게 바르트는 무의 힘, 즉 악(vice)이 인간에게 들어와서 죄(sin)

를 짓게되고, 그리고 결국은 죽음(death)이라는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성서적 진술의 근거에 서 있는 것이다. 하느님과 관계를 단절한 인간

은 은총을 떠나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므로 죄를지었고 그 자신의

힘으로 무를 만나고 싸우려고 하므로 이미 그것에 굴복되었던 것이

다.19) 다시 말해서 인간의 타락은 하느님과 같이 되려고 원했다는데있

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서만 행해질 수 있고 그 분과의 계약에

서만 피조물에 의하여 행해질 수 있는 선을 그 자신의 힘으로 행하려

는데있다.

바르트는 악을 독립해서 다루지 않고 하느님의 주권과 통치와 관련

을 지어다루어진다.

첫째, 악은하느님과 피조물에게존재하지 않는다. 악은비존재(non-

being)나 비 실존(nonexistence)이 아니라 하느님과 관계의 빛에서 제

3의 방식으로, 즉“현실적으로”존재한다.20)

둘째, 악은하느님도 아니고, 피조물도아닌어떤것, 즉 단순히 아닌

것(what is not)과 동일시 될 수 없다. 만약 악이 피조물의 불완전성

(non-divinity)에서 추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피조물을 지

으신하느님에 대한모독이다.21)

최종호, 악의문제와그 극복을 위한신학적고찰 293

18) K. Barth, Church Dogmatics III/3, ed. G. E. Bromiley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56), 310.

19) K. Barth, Church Dogmatics I I I/3, 355.

20) K. Barth, Church Dogmatics I I I/3, 349.

21) K. Barth, Church Dogmatics I I I/3, 296ff.

하지 않는다는 그의안이한 낙관주의가숨어 있다는 것을지적한다. 더

욱이 바르트는 무에 대한 낙관론적 입장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적 구

속이나 세상을 하느님과 화해한다는 사상의 여지도 없다고 비판한다.

바르트는 악과 죄가 함께 작용하여 하나의 온전한 조직이 되고 이 조

직 안에서 두 실체가 필연적이고 심지어는 선한 것으로 간주되는 신정

론을비판한다.17)

바르트는 재래의 신정론에서 무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과오는 예

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나타난 하느님의 주권을 보지 못한데 있다고 지

적한다. 이런 생각은 한편으로는 하느님에 대하여 무의 세력을 불안스

럽고 회의적으로 과대평가하여 용이한 비관주의에 빠지게 되고, 다른

한 편으로는 피조물에 대하여 그 세력을 과소평가하여 안이한 낙관주

의에 빠지게 된다. 결국 무의 문제에서 초점은 어떻게 이런 과오들을

피하면서 하느님의 주권을 무의 영역에서도 정당하게 적용시킬 수 있

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재래의 신정론과는 다른 그의 특수한

신정론의형성을 의미한다.

무란적극적인 힘으로서 그 본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바르

트의 무의 개념은 앞에서 다룬 철학적 혹은 인간학적 죄 인식의 개념

과는 다르다. 그에게서 무는 하느님과 피조물 모두에게 원수(enemy)가

된다. 그러나 그는무를허용한다. 그러나 그 무의 혀용은 무 자체에 대

한 독립성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교만과 인간이 가진 죄

성의 특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표현이었다. 그것은 인간 중

심의 사고에 위기를 말하는 위기 신학으로 명명할 수 있다. 위기는 인

간의교만과 인간중심적인자기확신을 심판하는하나의 선언이다.

바르트가 무라는 특수한 낱말을 가지고 신정론을 시도한 것도 우선

재래의 신정론에서 보여준 인간 중심적인 모든 근거를 제거하는 것이

고, 그 다음으로 전 피조물을 위협하는 세력으로서 인간이 어찌할 수

29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17) John C. McDowell, Hope in Barth’s Eschatology (Aldershot: Ashgate, 2000), 141.

Page 148: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여기서 바르트는 하느님이 창조 때 포기해 버린“혼돈”(chaos)을 일

단 악과 같은 것으로 규정한다. 혼돈은 창조의 부정적인 면이 아니고

창조에서 제외된 것이며 그러나 하느님과 피조물의 관계의 역사 속에

포함되어 하느님의 주권에 종속된 것으로 현재한다. 인간은 이 혼돈에

희생된 죄인이며, 거기에 반해 하느님은 피조물과 관계의 역사 속에서

이 현실적인위협인 혼돈을 제거하는 것을 중심 문제로 삼으셨다. 그래

서 하느님은 그의 특별활동(opus proprium)을 확정하시는 것과 같이

동시에 이에 종속되는 그의 이질적 활동(opus alienum)을 수행하신

다.25)

그러나 악의 현실은 하느님의 주권과 맞설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께 종속되어 있는 불가능한 가능성이다.26) 하느님은 그의 창조적

활동에서 악을선하게 만들지 않았고, 그리고 악을 자신의 소유로도하

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은 악에 대한 책임이 없다.27) 단지 하느님은

하느님의 의를반대하는 힘으로 악을허락했기 때문에, 그 때의의지를

하느님의 허용의 의지(God’s permission’s will)고 할 수 있다.28) 물론

이러한 그의 입장은 하느님 밖의 악의 독립적인 기원을 시인함으로 악

의 독특한 자율성을인정하고자하는것이아니다.29)

그러나 혼돈, 즉 악이 독립된 실체도, 하느님이 창조한 것도 아니라

면 그것은 무엇인가? 왜 하느님은 하나를 선택하시면서 또 하나를 포

기하는가? 그것은 건축가가 하나를 선택하고 또 하나를 무시하듯이 그

의 창조과정을 수행하기 위해 결단하는 가능성이다. 거부된 혼돈은 창

조의본질에도 속하지 않고 피조물 자체도 아니다. 혼돈이 창조된 세계

최종호, 악의문제와그 극복을 위한신학적고찰 295

25) K. Barth, Church Dogmatics I I I/1, 101f.

26) K. Barth, Church Dogmatics I I I/3, 351.

27) K. Barth, Church Dogmatics I I/1, 597.

28) K. Barth, Church Dogmatics I I/1, 597.

29) 류터는 바르트가 하느님 밖의 악의 독립적인 기원을 시인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Rosemary Ruether, “The left Hand of God in the Theology of Karl Barth,” T h e

Journal of Religious Thought 25 (1968), 7.

셋째. 악은 피조물의 자연적인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관심

과 행위의 대상이다. 악은 그것에 대립해 있는하느님이 존재와 태도가

피조물에게 계시되므로써만 인식할 수 있다.22) 인간은 항상 악을 오해

하여 한편으로는 하느님과 그의 활동을 비방하는 필연성으로 보거나,

다른 한 편으로는 하느님과 관계에서 적극적인 어떤 결정으로 표현하

여 오류를 범한다.

바르트는 악의 문제에서 하느님과 피조물에게 본질적으로 대적해

있다는 사실에서 세력으로서악을 본다. 그는창세기1:1-6을 주석하면

서 악의 기원을 밝힌다.23) 창세기1장 1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업

(work)과 시간의 시작을 알게 된다. 하느님께서 세계를 형성하자 하느

님의 목적에 반대되는 일체의 것은사라졌다. 하느님이창조한 이 세계

는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았다(창 1:3, 10, 13, 18, 25, 31). 바르트

는 하느님이 창조한 모든 것은 선하고 완벽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창

조와 더불어 선택과 포기가 동시에 발생한 것이다. 창조된 것이 있는

것과 같이 거부 된 무엇이 있다는 이 평행은 창조의 과정에 줄곧 뻗어

있다. 하느님이 빛이있어라 명하셨을 때 흑암은 거부되었다.24)

창세기1:2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

는데, 어둠이 깊은 물위에 뒤덮어 있었고…”에서 우리는 혼돈(chaos),

흑암, 심판, 무의 정황으로서 땅을 말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이원론적

발생론을 암시하지 않고 분명히 하느님의 부정을 지시한다. 악은 하느

님이 창조하시지 안 했지만 창조의 변두리에 존재하고 또 거기에 오래

전부터 위치해 온 혼돈에 속한다. 피조물은 본질상 혼돈과 비존재에 대

하여 베푸신 하느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지켜지고 보호된다. 즉 긍정과

부정의 이중성이 은혜로 말미암아 지켜지고 보호된다. 즉 긍정과 부정

의 이중성이 은혜의 빛에서 승리로 이끌어 진다.

29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22) K. Barth, Church Dogmatics I I I/3, 350.

23) K. Barth, Church Dogmatics I I I/3, 122 f.

24) K. Barth, Church Dogmatics I I I/3, 296f.

Page 149: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으로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무의 문제가 처리된 것이다. 그러나 이전

의 신정론이 죄의실재, 즉 죄의 혐오와 사악한 죄의본성을 제대로 관

찰하지 못했다는 것을그는 지적한다. 이 점에서 바르트는 재래의 신정

론에대하여 새로운 빛을던졌다.

2. 악으로서‘무’의 힘

바르트는 이 세계에는 악의 세력이 존재하는데 이 세력을 무라고

칭하고, 무의문제를 하느님의주권에 대한새로운 규정으로 다룬다. 하

느님의 주권이 무의 사실에 직면해서는 어떻게 주장될 것인가? 그의

무의 개념은 실존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무는 피조물의 어떤 본질적

결정이나 하느님 자신의 본질적인 의지의 결정과 무관하다. 무를 결코

단순히 어두운 면과 동일시해서는안 된다. 왜냐하면 무와 어두운 면을

혼동할 때 창조자와 피조물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무의위협을 경시하는과오를 범 할 수 있기때문이다.

피조물의 부정적인 어두운 면은 무에 인접해 있다. 그러나 이 어두

운 면 자체가 무는 아니며, 무와 관련을 갖는 것도 아니다. 또한 무란

존재의 논리적 반대 개념도 존재하는 것과의 상호 관계도 아니다. 무

란 사고나 존재가 변증법적인 행동에서 그 자체를 고차적인 수준에로

고양시키는 필연적 무대도 아니다. 무란 세계를 창조하는 모태 역시

아니다.

무는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위협이나 반역을 일으키는 모태이며 존

재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부패시키는 것이다. 무의 근원적 특성은 사

고될 수 없고 비논리적인 것으로 어떤 유의 논리에서도 용납될 수 없

다. 그것은‘불가능한 가능성’이어서 부조리하다는 사실에 있다. 바르트

에 의하면 악의 현실인 무는 피조물 내에 포함되는 한 요소가 아니라,

그것은 피조물에 대하여 전적으로 우월하게 대적해 있고 이질적인 것

으로창조 세계에 현재하고 활동하는 것으로 본다. 무와피조물의 관계

최종호, 악의문제와그 극복을 위한신학적고찰 297

밖에 있다면 창조된 세계안에 있는것은무엇이나하느님의 과업이요,

사실자체(ipso facto)로 선하다.

바르트는 혼돈과 창조를 다스리는 통치 사이의 관계를 하느님의 섭

리로서의 보존이 단순히 실존을 유지시키는 이상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느님의 창조는 피조물들에게 선했고 그리고 또한 그의 선하심은 무

로부터 보존(conservativ)하고자 행동하신다. 하느님의 보존은 강력한

힘으로 하느님의 창조를 섬멸하는 악의 세력에 대항한다. 피조물인 인

간은 매 순간마다 이 위험의 위협을 받고있다. 악은 존재할 뿐만아니

라, 매우동력적으로 강력히 행동한다. 악은하느님의전 피조물에게원

수인것 같이하느님께대한원수로서행동한다.

악의 최후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복되어야 하고 정복될 수 있다. 그

래야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

다. 그러나 악은 여전히 집요하게 역사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으면서

계속적으로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가 악의문제를 다룰 때 과소평

가하지 않는것이중요하다. 악이란 역동적인것으로서역사를 방향지

우고 우리의 삶에 대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사탄의 존재다. 악은

이런의미에서구조적 특질을 가지고 있다.

바르트는 악의 세력이 단지 하느님의 섭리를 인식하고 설명하는데

혼란을 가져오는 요소라는 그런 정도에서 머물 수 없고, 그 세력은 하

느님과 피조물에게 본질적으로 대적해 있다는 사실에서 다루어져야 한

다고 한다. 이 점에서 하느님의 세계 지배에 항거하고 있는세력으로서

의 악이 문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악의 현실로서 무는 하느님으로

부터도 피조물 자체에게서도 기인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대적하여

하느님을 모욕하고 인간을 위협한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견디기

어려운 것이며, 완전히 비정상적인 것이고 한계를 설정할 수 없는것이

었다. 더욱이 무는 피조물에 대해서는 항상 우월한 세력으로 현재하며

피조물 자체로서는파악하고통제할 수 없는것이다.

그러나 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정복되므로 단지 형식적

29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50: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종의 연대성이라는것이 있어서 전체역사를 통하여 인류를 괴롭혀 오

고 있다. 시인은 고난을이렇게 토로한다.

야훼여, 어찌하여 멀리 계십니까? 이토록 곤경에 빠졌는데 모르는 체

하십니까? 악한 자들이 으스대며 미약한 자를 박해합니다…악한 욕망

품고도 자랑스레 뽐내고 탐욕으로 악담하며 야훼께조차 코웃음 칩니

다. 악한 자 우쭐대며하는 말, ”벌은 무슨벌이냐? 하느님이어디 있느

냐?”(시 10:1-4)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사옵니까? 이 몸이 원수에게

짓눌려 슬픈 나날을 보내니, 이것은 어찌 된 일이옵니까? 네 하느님이

어찌 되었느냐고 날마다 원수들이 빈정대는 소리가 뼛속을 저며 들어

옵니다(시 42:9-10).

3. ‘악’의 극복과그리스도의승리

어떻게 악으로 나타나는 무를 정복하고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을까?

인간의 도덕적 수양이나 교육, 아니면 훌륭한 제도적 장치로 악을 극복

할 수 있을까? 물론 이 모든 것이 어떤 면에서는 어느 정도의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대책의 주체가 되는 인간 자신이

이미 악의 노예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제도에는 여전히 악

이 도사리고있다. 이것은 인간성 자체로서는 악에 대한해결책이 없다

는 말이다.

하느님은 악의 운명을 결정한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피

조물이 되시고 피조물의 죄와 벌과 고난과 심판을 스스로 짊어지시고

당하신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악의 세력이 절정에 달하

도록하신다. 하느님은 그의 아들예수 그리스도와 함께십자가에 달리

신다. 이제까지악이모든인간에 대하여 승리하였으나, 그러나 이제여

기 골고다의십자가에서그 세력을 상실하고만다.30)

최종호, 악의 문제와그 극복을 위한신학적고찰 299

30) K. Barth, Church Dogmatics I I I/3, 311f.

에서는 어떤 종합도 화해도 있을 수 없다. 타협이 있다면 그것은 항상

피조물의굴복으로만가능하다.

무는 하느님이 창조한 피조물이 아니다. 따라서 무는 피조물이 존재

하는 것처럼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제3의 방식으로 다시 말하여 무

로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서 존재한다. 실로 세상에는 그것이 설자리

가 없다. 무는하느님과피조물처럼그의한계를 가지지도못한다. 우리

가 하느님은 피조물이 아니며, 피조물은 하느님이“아니다”고 말할 때,

여기서“아니다”(nicht)는 하느님의 긍정적인 의욕과 선택과 활동의 표

현으로서 한계를 설정해 준다. 그러나 무에게는 그러한 긍정적인 의욕

과 활동도 표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계도 설정되지 않는다. 무가

한계를 거부함으로써 피조물의 세계 속에 파괴적인 것으로 현실화 될

뿐이다.

무는피조물과 아무런 적극적인 관계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인식

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무는 존재론적 가능성을 소유하지 못하기 때

문에 비합리적이다. 따라서 무는 우리의 모든 이해 능력을 헛되게 한

다. 무는 적극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하느님이 지으신 피조물을 대

적하고 도전한다. 무는 하느님의 존재에 저항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

은 하느님의 지배와 섭리 아래 있는 것으로 독립된 존재 범주적인 근

거를 갖지 않는다. 무란 하느님의 세계 지배에 대한 절대 반항에 위치

해 있다.

다시말해서 무로서 악은 제도, 편견, 도덕적 법적기준, 그리고 사회

적 관습의 형태로 영구화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피부색이 검다거나

가난하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낙인이 찍힌다. 상황은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만들어졌지만 그 속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운명이 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너무나도 악행과 죄의 담지자의역할

을 해왔던 전통적 규범을 사회화시키고 내면화시킨 역사적 과정의 희

생자들이 된다. 이렇게 인간은 어떤사태 속에서 자신의 의지나 결정과

는 전혀 무관하게 이미 범주화되어 버리고 있다. 더 나아가 악에는 일

29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51: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의미다. 그것은 인간 편에서 볼 때는 하느님의 패배로 보이나 하느님

편에서 볼 때는인간을 향한은총의 승리를 말한다.33)

이와 같이 바르트의 신정론은 그리스도 중심적 접근에서 더욱 철저

화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에 대한 정복과 승리가 나타날 때,

무에 대한 거짓 평화와 혼돈의 세력은 무력해져서 악의 세계, 즉 무의

나라는 파괴 된 것이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세계에서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악은 하느님에 의하여 극복된 악이다. 그것은 하느님 앞에서는아

무 힘도 없다. 악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믿는 새로운 피조물

에게는 그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무(nothingness)일 뿐이다. 이

점에있어서 무의극복은 하느님의특별한 은총의 신비가 된다.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승리에서 보는 무의 운명을 그리며 무의 문제

에 있어서 신앙적인 자세를 역설한다.3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무는

지나간 것이요 하느님의 적극적인 의지의 완성으로 파멸되는 옛 허무

로 간주된다.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는 그리스도 안에서 무의 영향으

로부터 자유하였고 무는 더 이상 하느님과 피조물에 대하여 제3의 요

소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무화의 작용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두려워할 것이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내세울

명제는 하느님의 간섭으로 무가 그 영속성을 상실했다는 것을 확언하

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회고하고 영광 중 오실 그의 재림

을 바라보는것이다. 예수그리스도 사건에 대한신앙의 복종에서 무의

문제로부터자유함을받는다.

최종호, 악의문제와그 극복을 위한신학적고찰 301

33) 버르카우어는 바르트 신학의 요약을“은총의승리”로 보고『칼 바르트 신학에서 은

총의 승리』를 낸 바 있다. Gerrit C. Berkouwer, The Triumph of Grace in the

Theology of Karl Barth,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Co., 1956.

3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악이 전멸되었다면왜 인간사에 악이 존재하는가? 승리의 징

표(signs)는 그리스도 안에서이루어진 것이다(골 2:15; 요일3:8; 마 12:29). 악의 권

세를 꺾는다는 것이 아직 투쟁의 분명한 종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약성서는 투쟁

이 종결된때를미래로 말한다. 악마의 함정(딤전3:7; 딤후2:26), 유혹의제 형태, 절

제와경계의 필요성(벧전5:8; 약4:9; 엡 6:16; 행13:10), 마귀의위험을 말하고있다.

하느님에게 있어서 악은 어찌할 수 없는 무가 아니라, 하느님 자신

의 십자가의 죽음속에서 결판난 운명의 무다. 하느님은피조물을보호

하시기 위에사랑의 결단을 하신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무의 주관자

요 극복자다. 시편에서 한 시인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일들로부터 인간

의 생명선을절단하는 죄책감, 질병, 곤궁, 의심, 절망, 허무, 죽음의 한계

상황에서 분명한 대답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제“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울부짖는 하느님의

아픔은 버림받고, 상실되고, 포기하는 피조물에게 새로운 통찰을 제공

해 준다.

하느님은 이러한 그의 은총과 계약의 사업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으로수행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현실적으로하나의 피

조물이 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에서 하느님의 무에 대한 결정적인 투

쟁이 일어났고 무는 정복되었다. 이제 하느님의 이질적 활동( o p u s

a l i e n u m )은 그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단 한번에(ein für

allemal) 성취되었다. 무를제압한 하느님의승리는 예수그리스도의부

활을 통해 확증되었다.“내가 세상을 이겼다”는 부활한 예수의 선언은

죄(sin), 악(vice)과 죽음(death)이 정복된 것이다. 그는 온 피조물의 구

주가된 것이다.31)

악에 대한 궁극적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적 사실로 나

타나고 성공적으로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킨 그리스도 역사 안에서

성취되고 확증된다. 이와같이 십자가는 악에 대한궁극적 승리를 말하

며 부활은 십자가에서 일어난 이 승리를 증명해주는 예표다.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무의 세력에 대해 심판(Nein!)을 발하시는

그 순간 위협하는악의 제거가 성취되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십자

가 사건에서 단번에 극복된 것이다.32) 그 심판(Nein!)이 저 골고다의

30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31) K. Barth, Church Dogmatics I I I/3, 311.

32) K. Barth, Church Dogmatics I I I/3, 311f.

Page 15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조물과 함께신음하고탄식하며임마누엘로임하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이니라(롬 8:26).

이제 우리는 이미 해방자로서 세상에 와서 행동하신 예수 그리스도

의 무의 극복을 통해 세계에 만연되어 있는 불안, 공포, 패배의식, 절망,

죽음을 넘어서는 자유의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다. 무는 실체도 없고,

또한 영원하지도않으며, 단지 무상한 그림자(a fleeting shadow)35)에 불

과하다. 무는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36) 그러므로 무에 대한

그리스도 중심적 인식은 비관적인 사고와 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낙관적인 사고와 말에근거한다. 이제진지하게되는 것은단지예수그

리스도가승리자라는사실을 진지하게받아들이는것을의미한다.

V. 나오면서

악이 어디서 오는가? 인간의 도덕적-윤리적 잘못에서 악이 오는

가?그렇지 않다. 욥기를 보라. 욥은“온전하고 진실하며 하느님을 두려

워하고 악한일은 거들떠보지도않는사람”(욥 1:1, 8)으로하느님이인

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고난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극에달했다. 욥은하느님이 인정한 그대로 의인이었는데악이그를괴

롭힌 것이다. 인내의 사람 욥이 자기의 고통을 부르짖을 때, 그는 분명

히 인간적으로 말해서 끝이없는슬픔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종호, 악의문제와그 극복을 위한신학적고찰 303

35) 분석 심리학자 C. G. 융은 인간의 내면에는 의식에서 쫓겨난 부정적 요소들이 존재

하는데 그것을“그림자”라고 하였다. C. G. Jung, The Archetypes and the Collective

Unconsciousness (Princeton: Prineton University Press, 1980), CW. 9-1, 284f.

36) K. Barth, Church Dogmatics I I I/3, 360f. 366.

단지 아직도 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란 패배 당한 원수로서 역할을

할 따름이다.“무”는 과거지사요. 낡은위협과 위험과파괴다. 무는하느

님의 신성한 창조를 흐리게 하고 더럽혔지만 이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서 과거로 치부된 낡은비존재다. 무는퇴거되고근절되었다. 그런데 우

리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인간은 악의 노예 상태에

있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 악을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악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에 하느님을 알면서도 하느님으로 받들어 섬기거

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황해져서 그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차게되기때문이다(롬 1:21). 결국인간은 선한것이무

엇인지를 알지만 그것을 행할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바울

은 자신이악에사로잡혀 있다는 것을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내가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되겠

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여기서 나는 한 법칙을 발견했

습니다. 곧 내가 선을 행하려고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

리고 있다는 것입니다…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나를 구해줄 것입니까?(롬 7:19-24).

우리는 바울의 탄식 속에서 인간의 한계성을 만난다. 인간은 악의

현실 앞에서 무력하다. 무는 현실적인 힘으로 존재하고 하느님과 피조

물을 공격하는 원수라고 할 때 더욱이 피조물에 대하여는 우월하게 피

조물 스스로는 희생될 수밖에 없는 세력으로 나타난다고 할 때 무의

문제는 사변적 추론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투쟁과 정복의 문제다.

그러나 문제는 악이 이미 창조의 선택에 그리고 결정적으로 십자가 사

건과 부활 사건에서 극복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피조물이 세계 변

두리에 존재하여 피조물을 위협하는세력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두려워할 악이 아니라 다만 위험하게 보이는 권세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제 하느님은 피조물 대신 무의 공격을 받고 낮아질 준비가 되어 있

으며 저주받은 피조물의 축복된 하느님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피

30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5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왜 우리의 삶 속에서 악이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대답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대답이

상을 듣게 되었다.“내가 세상을 이겼도다.”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한

예수그리스도의 소리다. 인간은 여전히 악의한 복판에서 고난에 직면

한다. 골고다에서 악의 세력이 온통 패배된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에

게 악의 세력에 대하여 우리가 행할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골고다 십자가에서 이미 이긴 싸움을 매순간 싸워 나아가면서

그리스도의승리를 함께맛보는 일만남아있다.

주제어

악, 신정론, 무, 실존, 섭리, 칼 바르트

Vice, Theodicy, Nothingness, Existence, Providence, Karl Barth

접 수 일 2010년 10월 14일

심사(수정일) 2010년 11월 12일

게재 확정일 2010년 12월 30일

최종호, 악의문제와그 극복을 위한신학적고찰 305

바르트에게서 무에 대한 인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은총의

빛에서만 가능하다. 실존적 경험에 직면하여“하느님”이라는 개념의 변

명이 요구된 것이다. 그러나 그 요구는 하느님께서 변명이 필요하신 것

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는“개념”이 변명을 필요하게 된 것이었다.37) 그

것이 신정론에 대한 교의학의 또 하나의 각론이 된 것이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칼 바르트의 신정론을 언급했다. 우리는 바르트가 그의 신정

론을 그리스도론적으로 취급했을 때 명백한 것은 인간이 악에 관계하

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하느님이결판을 낸 일이었다.

바르트는 무의 현실을 특수한 존재의 맥락에서 밝히므로 하느님의

주권 아래서 무의 자리를 통일시킬 수 있었고 이것은 재래의 신정론에

대하여 전적으로새로운 빛을 던진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

총의 승리에서 무의 문제를 생각한다면 글자 그대로 무(das Nichtige)

는 아무 것도 아닌 것(das Nichtige)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긴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신학의 사유가 끝(Ende)이라는 빛 아래서

생각해야한다는 것을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악의 패배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했다. 이것은 악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뜻하지 않는다. 악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 도처에서

죄와 파괴를 일으키고 있다. 무는 하느님으로부터 그의 영광과 존귀를

빼앗고 피조물로부터 하느님이 부여하시는 구속과 권리를 빼앗으려는

세력이기 때문에 무와의 투쟁은 불가피하다. 이제 부활을 체험한 그리

스도인은 무와 관계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관계해야 한다. 피조물 자체

는 무를 겨를 수 없으며 그것을 극복할 수 없다. 스스로 정복할 수 있

다고 결단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거슬리는 것이기 때문에 곧

악의 선택이요 재앙일 뿐이다. 그것은 악은극복될 수밖에 없다는 복음

으로우리의 신앙에서다시삶으로 이어가고있다.

30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37) G. Bornkamm: Die Fragen nach Gottes Gerechtigkeit. Rechtfertigung und

Theodizee, in: Das Ende des Gesetzens, 1961, 196-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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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호, 악의문제와그 극복을 위한신학적고찰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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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55: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crucifixion and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Nothingness is overcome

and removed by Jesus Christ. That means sin, vice and death are

overcome by Jesus. In dealing with the problem of nothingness, Barth

put Christology in the center of his theology. This theological aspect

leads the christians to positive thinking, because we are fighting a

victorious fight in the vice structure.

최종호, 악의문제와 그 극복을 위한신학적고찰 309

Problem of Evil and Theological Study for ItsOvercome

Jong-ho, Choi

Professor

Kyungsung University

Busan, Korea

This study shows us how the evil has been overcome. First of all

let’s begin with the story of creation to know what the evil is. God

created the world and everything in it as good. What does evil come

from, then? According to C. G. Jung, evil is rooted in the dark side of

personality, which he called “shadow”. The shadow is unknown side

of the personality, and it normally encounters the ego which is the

center and representative of the light side and of consciousness. Evil

is explained as “shadow”. In Genesis God created the world from

“nothingness” such as darkness and chaos. God is Creator and is

omni-benevolent, omnipotent, and omniscient.

If so, why does evil still exist in our life and why do people suffer

from it? Some philosophers have claimed that the existence of such a

God and of evil are logically incompatible or unlikely. Attempts to

resolve the question under these contexts have historically been one

of the prime concerns of theodicy. But as usually understood, the

“problem of evil” is posed in a theological aspect.

A theologian of God’s word Karl Barth explains the overcoming

of evil with concept “das Nichtige” which means “nothingness” in the

30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56: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포스트모던시대의신학의가능성:

밀뱅크의 급진적정통주의를중심으로

황덕형

(서울신학대학교)

I. 포스트모던의영향과밀뱅크신학의의의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현대신학은 이 세대에 어떤 의미가 있

는가? 포스트모던은 무엇이며 그것이 얼마나 우리를 결정하고 있는가?

바르트의 말씀의 신학 이후에 세계의 신학계는 세속화라는 사회 저변

의 새로운 흐름속에서 다양한 전선을 구축하고있다: 자연과학의비약

적 발전으로인한생태학과 창조론의 새로운 대화의 시작, 의식철학의

한계에서 주어지는 다양한 해석학적 과제들, 윤리학적 통찰들, 더 나아

가 언어적 현실에 대한 변화에서 비롯된 포스트모던적 다양성의 이해,

이러한 다양한 측면들은 다양한 질문을 제시하고 그만큼 다양한 지역

존재론의 문제에 신학이 매달리게 만들었다. 복음 전반에 대한 통찰은

거의 지리멸렬한 상태였으며 이러한 빈곤을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시

도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시도의 여망과는 달리정작 오늘

날, 우리의 이 세계는 포스트모던이라는 강력한 반종교적 경향을 가진

사상의 거대한 쓰나미를 경험하고 있다.1) 이제그 포스트모던적흐름은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311-342310

Page 157: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복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탈서구를 요구하는

이 포스트모던의 사상 구조가 하나의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는 시대사

적 준비과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이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갖는 의심과 고통에 보다더 민감하

게 행동하는 데에서 그들의 존재의미를 찾을 수 있었고 그런 한에서

포스트모던의정신을 어느정도수긍하리라는것을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복음주의자들도 포스트모던에 대한 반응만큼은 다양한 방식

으로 주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누구도 포스트모던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스트모던에서부터 새로운 환경

이 처할 조건을 읽어내고 그것에 자기 나름대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

였다는 점에서도 포스트모던의 위력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4) 아마

어쩌면 이런수용 자체가 이미 포스트모던적이라고 생각될 수 있을지

도 모른다. 비록 간간히 포스트모던의 권리를 완전하게 부정하는 비판

적 목소리5)가 있었지만 그것들은 언제나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경

향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포스트모던적 사고의 근본적인 철학을 철저

하게 비판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런 저런 이유에서 포스트모던적 사상을 당연시 하

는 것이논의의 주된흐름이 아니었나싶다. 그만큼 한국에서 포스트모

황덕형, 포스트모던시대의 신학의 가능성: 밀뱅크의급진적 정통주의를 중심으로 313

광범위하고 모든 영역 구석구석까지 아주세심하고 철저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2) 좋던 싫던 간에 이 세속화의 흐름은 우

리의 세상을 바꾸고 있으며 그 흐름을 되돌려 놓으려는 시도는 거의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많은 기독교 신학자들은 포스트모던의 흐

름에서 강화되고 있던 세속화의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라고해도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 한국의 신학적 풍토에서는 나름대로 신학의 새로운 가

능성을 찾아나서는 시도들이 있었다. 신학이 공적지평에 보다 더 많은

책임을 느꼈던 소위 자유주의적 신학자들이 이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

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신학들은 대개 포스트모던의사상적 기조

에 동조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그 대책을 찾아보려는 흐름으로 나타났

었다.3) 토착화라든지아니면 세계화의 담론을 따라가려는 시도에서 포

스트모던적 기조는 어느 정도현실적인 것으로 인정받고 있던 것이 사

실이었는데이는 역설적으로포스트모던적사상체계가 탈유럽, 탈서구

의 신학적 운동을 촉진했다는 점에서 수긍할 만한 일이다. 아시아인이

31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1) 이를테면 포스트모던의대표적 사상가였던 데리다는 포스트모던 사고의 가장 대표적

인 현상인 해체라는 작업은 모든 사유에서 신학적 사유 연관성을 배제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J. Derrida, P o s i t i o n s , A. Bass 역(Chicago: Chicago University Press,

1981), 40; L. Cahoone 편, From Modernisim to Postmodernism An Anthology

(Oxford: Blackwell Publishing, 2003), 435-447.

2) Wolfgang Welsch, 『우리의포스트모던적모던 I』, 박민수 역 (서울: 책세상 2001), 43

이하.

3) 이를테면김덕기, 후기 구조주의의지적도전과21세기의신학을 위한성서해석,‘상징

적 질서의 생성과정과 기원을 중심으로’,『신학논총』제3집, 연세대학교 신학대학, 한

국기독교문화연구소, 1997, 183 이하; 허호익,“포스트모더니즘의정신사적 특성에 대

한 신학적 이해”,『한국기독교신학논총』53, 한국 기독교학회, 2007, 83 이하; 배국원,

“포스트모더니즘의신학적 반성”,『현대와 신학』, 18집, 1994, 173-204; 이은선,『포스

트모던 시대의 한국의 여성신학』(칠곡군: 분도출판사), 1997, 이외에도 최근의 논문으

로서, 김수연,“탈근대-여성신학 담론에서의 하나님 이해”,『한국조직신학논총』20집

(서울: 한들출판사), 191-220.

4) 예를 들어서 Graham Ward, Barth, Derrida and The Language of Theolog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1995);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다음을 참

고. 황돈형,『바르트와 포스트모던』(서울: 한들출판사), 2004. 황 박사의 글은 포스트

모던의 부정적인 측면을 이해하면서 그 현실 속에서 다시 책임적으로 말하기 위해서

신학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황 박사는 그 대안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명백한 자연

계시로 이해할 수도 있음을 구하고 있다. 이는 급진적 정통주의가 교회를 계시의 실

제적 원천으로서 이해한 것과 비교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이문균,『포스트모더니즘

과 기독교 신학』(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0

5) 김영한,“포스트모더니즘신학과 종교다원주의”,『철학과 신학』1집, 숭실대학교, 1997,

191-214; 정상운,“한국교회와postmodern 신학”,『복음과 신학』2집, 1999; 목창균,

“포스트모더니즘과포스트모던신학”, 『교수논집』9권, 1998.

Page 158: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점유하게 될 것처럼 보이는 이 미래의 신학의 방법론적 관점을 연구함

으로써 우리들이 보다더 철저하고 근본적인 새로운 신학을 시작할 수

있는기초를 형성하고자한다.

I I. 밀뱅크의급진적정통주의가본 포스트모던의사상적

근원: 허무주의와이중적폭력의철학적이해

급진적 정통주의 신학은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포스트모던의 상황

을 유럽의 전 역사의 지평에서 정리하고 거기에 대한종합적인 대책을

내놓고자한다. 그렇다면 급진적 정통주의 신학의 주창자들은포스트모

던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밀뱅크의 급진

적 정통주의는 무엇보다도 먼저 포스트모던을 허무주의와 연관시킨

다.8) 포스트모던의사유가 허무주의적결론을 갖고 있다는 것은그것이

종교와 세계를 허무한 것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밀뱅크에 의

하면인간의 역사를 허무주의로 채색하게 만드는 배후에는 비, 혹은반

신학적동기가 숨어있다. 물론밀뱅크에의하면, 이러한 부정적인 결과

는 사실포스트모던에서만처음 생겨난 것이아니다. 오히려 모던의 시

대, 이성의 시대에도 허무주의로 향하는 부정적인 발전의 경향이 이미

거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포스트모던의 시대에는 이 파괴적인 경

향이 보다 더 철저화된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모던은 상당히 심각한 폐해를 가져왔음에도오히려 일

황덕형, 포스트모던시대의 신학의 가능성: 밀뱅크의급진적 정통주의를 중심으로 315

던의 사상의 의미와 그 현대사적 위치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움직임

은 드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포스트모던을 야기시킨 바로 그 서구에서 복음주의적 전통

을 지키려는 관점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시대를 규정하는 세속화의

포스트모던적 사상의 의미를 총괄적이며 전체적으로 부정하면서 오히

려 그 포스트모던의 기류를 떠나서야 신학적 시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새로운 관점이 존재한다면 이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이 비판이 철학적 반성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면 보수적

정통주의자든, 아니면 성서의 재해석을 추구하는자유주의자든 이 비판

에 모두 힘을 보태야 할 형편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밀뱅크로 대표되

는 급진적정통주의 신학은 각별히 주목할 만한 것이다. 급진적 정통주

의에서 시도되는 것은 포스트모던의 어떤 한 부분을 비판적으로 검토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사상을 서구의 전체 역사

발전의 정점으로 보려고 하는 기존의 해석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면서

그 사상의 의미 자체를 의문에 붙이고 있다. 물론 서구에서는 이러한

급진적 정통주의의 입장과는 다른 관점에서 신학의 포스트모던적특성

을 설명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6) 그리고 이와

연관된 한국의 연구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미 앞에서 밝힌 바 있다. 하

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포스트모던의저격수 역할을 자임한 급진적

정통주의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것 역시 사실이다.7) 따라서 본 논문은

포스트모던의 시류를 비판하면서 신학의 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본다

는 의미에서 그리고 지금까지 개신교 신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31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8)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278 이하; 한

편, 인간이 가질수 있는존재의 모습이 우연과 차이에 근거한 것이라면, 즉 기독교적

창조신앙에서부터벗어나 있는 조건에서 우연을 생각한다면 이는허무주의로 귀결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세속적 철학은 말한다. 참고: O. Marquard, Apologie des

Zufälligen Philosophische Überlegungen zum Menschen, 우연성의 변론, 이진우 역,

『포스트모더니즘의철학적이해』(서울: 서광사, 1993), 293 이하.

6) 급진적 정통주의와 달리 포스트모던에 대한 다양한 서구의 입장에 대하여; M. C.

Taylor, Deconstructing Theology (New York: The Crossroad Publishing Com-

pany), 1982; M. C. Taylor Erring, A Postmodern A/Theology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198.

7 )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 O x f o r d :

Blackwell, 1990); “한국에서이 급진적 정통주의신학에 대한연구로서”, 김성원,『급

진적정통주의신학방법론』(서울: 한들출판사, 2008).

Page 159: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에 불과하지 않는가?”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즉 폭력 현상을 노출하

지만 동시에 그 폭력적인 현상 자체가 모든 가치평가의 기준으로 작

용한다고 소개함으로써 가치 사이의 갈등에 덧붙혀 실제로는 이중적

폭력을 가하는 셈이다. 이러한 포스트모던의 허무주의 이해는 포스트

모던 철학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허무주의로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존재에 대한 허무주의적 해석을 강요함으로써 종

국에는 종교와 신학에 대하여 가장 강력한 적이 되어 버렸음을 인식

하는것이다.

이러한 포스트모던의 이중적 폭력 현상은 그들의 철학적 기초에 의

거한 것이다. 밀뱅크에 따르면, 이전의 시대, 소위 현대주의에서도 사회

과학이 신학을 비판하였는데 이때 전략은 환원주의였다. 즉 종교의 본

질이란 어떤 초월적인 영역이나 가치에서 찾을 수 없고 오히려 반대로

그 종교공동체가 처했던 사회적 연관관계에서 사회적 의미나 혹은인

간의무의식에서찾을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를통해 현대주의

는 종교가 가진 초월적 가치를 세속화시키려고 하였던 것이다.13) 그런

데 이 환원주의가 무너진 이유는 이 사회학적 인식은 종교 비판자들이

암암리에 가지고 있던 어떤 특정한 형이상학과 신화적 세계상에 기인

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고 결국 근본적 회의에 부딪치게 되

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포스트모던은환원주의적전술을 버리고 대신

종교나 시대의 선도적 사상이 갖고 있던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확대하는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이들은 종교가 가리고 있던, 혹은억압

하고 있던 다른 진리들을 기술함으로써 기존의 종교적 진리주장은 다

른 진리주장을 억압하면서 진행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14) 본인

들은 마치 이 억압구조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제법 그럴싸하게

논의를 진행하면서 결국 해체해 버리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이

황덕형, 포스트모던시대의 신학의 가능성: 밀뱅크의급진적 정통주의를 중심으로 317

종의 기회로 평가된다.9) 포스트모던의 구체적인 결과에서 세속적 이성

의 정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의사고는 허무주

의 망령 속에서 인간을 파괴하고 있으며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한계

를 이교적 신화의 지평 속으로 제한함으로써자신이 매우 파괴적 경향

을 가진 사상이라는 결론을 명백하게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소위 세속

적 이성이라는 것, 르네상스 이후 서구사회를 지탱해 온 자유의 이념이

나 인본주의적 사상의 근간 역시도 거짓된 근거 위에 서 있다는 사실

을 밝힐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혀 밀뱅크가 보기에, 포스트모던의사상가들이 밝히려는

진실의 성격은 허무주의 그 이상의 잔혹함을 갖고 있다. 포스트모던주

의자들은 기성의 모든 종교나 사상들, 인간의 존엄성이나 사회의 지도

적 이념들이 실상은 타인에 대한 폭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10) 그리고 바로 지금까지의 철학이 이런 억압적 행태를 묵인해

왔다면 포스트모던자신들의철학은 그 폭력으로부터, 하나의 이데올로

기를 강조하는 억압적 관점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해방의 전령

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는가를 은근히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11) 물론 그

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철학적 작업은 이런 해방의 외침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고발”에 그치는 것12)임을 자각하고 있다고 밀뱅크도 지적한다.

하지만 밀뱅크는 그들의 이러한 자기이해, 즉“자신들의작업은철저하

게 상황에 대한 비판적 고찰일 뿐, 그 어떤 해방신학적 모티브도 갖지

않는다는 자의식은 사실은 또 다른 폭력의 존재론, 이데올로기적 기만

31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9) John Milbank 외 2인 편저, Radical Orthodoxy: A new theology (London: Rout-

ledge, 1999). 1.

10) 강영안,“라캉의 욕망과 주체”,『포스트모더니즘과 철학』, 김혜숙 편 (서울: 이화여자

대학교 출판부, 1997), 47 이하.

11)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260.

12) 김혜숙,“사상운동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과 철학』, 8; 포스트모

던의해체적방법론은 그들의철학이목적하는 바를보여주고있다.

13)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특히101 이하.

14)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261.

Page 160: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I I I. 차이의존재론과절대적역사주의의의미: 존재개념의

일의성적이해의허무주의적해석과극복의과제

밀뱅크가 자신의 포스트모던 이해와 비판의 첫 단추로서 차이의 존

재론에 집중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차이의 존재론이 포스트모던의 기원

으로 보이는 니체의 계보학17)적 사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밀뱅크에

의하면, 이 계보학의 시작은 니체에서 찾을 수 있지만 그것의 맹아는

사실칸트의 비판철학의 이념으로부터주어진 것이다. 칸트의 비판철학

이전형이상학의 시대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무엇을 사유한다는 것

은 사유의 대상이 갖는 초월적인 의미나 기원이 사유하는 나의 의식이

나 내재 속에서 작용해 옴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그 둘 사이의 긴밀

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식이 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것

이다. 소위 범주론은 존재론적 가치로 객관적으로 존재하였던 것이며

이 범주는 우리들에게 이성 안에서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리

고 그 둘 사이에는 변증법적 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된 것이었다.18) 그

런데 밀뱅크의 판단에 따르면 칸트의 비판철학 이후에는 인식이 가능

해진 그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서 사유의 대상이 갖는 초월과의 연관관

계는 끊어지고 거꾸로 사유하는 주체 안에서 사유 활동 속에서만 그

인식의 내용과 의미가 밝혀져야 하는 것으로 축소된 것이다.19) 밀뱅크

황덕형, 포스트모던시대의 신학의 가능성: 밀뱅크의급진적 정통주의를 중심으로 319

이러한 해체의 논리를 갖게 된 배경에는 차이의 존재론(ontology of

difference)이 전제되어 있다. 즉, 형이상학적 존재로서 변하지 않는 그

어떤 실체도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유의 근거란 끊임없는

상호간의 차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라는이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

은 다시 근본적으로 존재자체를 역사적인 과정으로만, 아니면 역사적

연속성으로만 생각하게 만들었던 절대적 역사주의(absolute historic-

ism)의 주장과 맞물려 있다고 밀뱅크는 고발한다. 이 두 이론적 태도에

의거한 포스트모던적 사고는, 밀뱅크에 의하면, 결국 허무주의적인 색

채를 갖게 되고 종국에는 차이를 차이로서만 사유하는 공허함과 그것

을 지탱할 수 있는 신화적 사유에 의하여 연장될 수 있을 뿐이다.15) 그

리고 이 차이를 차이로서만 사유하는 이러한 공허함은 결국모든 진리

를 임의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또한 마지막에는 그것을 권력에의

의지에, 즉 이데올로기적 기만성에, 야만적 생존본능으로 환원시켜 버

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16)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윤리적 허

무주의를갖게된다는 것이다.

31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15)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261.

16)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261, 281 이

하. 또한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밀뱅크는 특정한 전통, 즉 기독교의

전통에서 사유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인간이 니체의perspek-

tivismus를 넘어서는보편적기획을 수행할수 있기위해서 메킨타이어가제시한 방

법, 즉 공동체의 일반적인 덕을 추구하는 길이란 밀뱅크에 의하면 상대주의적 관점

을 벗어날 수 없다. 밀뱅크에 의하면 니체에 대항하는 보편적 방법의 발견은 어떤

특수한 전통에 의존하는 길이며 이 길은 다름 아니라 기독교의 전통에 의존하는 것

이라고 말한다(262). 이는 후에 살피게 되겠지만 기독교만이 평화의 존재론을 말하

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 평화의 존재론은 창조와 하나님의 구속이라는

성서적 내러티브 속에 보존되어 있다고 밀뱅크는 말한다. 참고: A. Macintyre, After

Virtue, A Study in Moral Theory (Nortre Dame: Univ. of Norte Dame Press), 1984.

17) 질 들뢰즈,『니체와 철학』, 이경신 역 (서울: 민음사, 2001), 15 이하.“계보학은 기원

의 가치임과동시에 가치들의 기원을 의미한다. 계보학은 가치의 상대적이고 공리적

인 성격에 대립하듯이 그것의 절대적인 성격에도 대립한다. 계보학이란 가치 그 자

체가파생되는 가치들의 미분적 요소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계보학은 기원이나 탄생

을 의미할뿐 아니라 기원속의차이나 거리를의미하는것이다.”

18) 참고: Aristoteles, Metaphysica, W. D. Ross 역 (New York: RAndom House), V, 7.

(2) 특히Kategory에 대한 설명; 이와 연관해서, 장영란,『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

(서울: 서광사, 2000); 또한, 프리도 릭켄,『고대 그리스 철학』, 김성진 역 (서울: 서광

사, 2000) 208 이하.

19) John Milbank, Knowledge. “The theological critique of philosophy in Hammna

Page 161: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다. 전승 과정에는 차이가 발생하고 또 그 차이는 이전의 것에 덧 붙혀

진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것이다. 그런데 이를계보학적으로이

해하려고 할 때 한꺼번에 역사의 모든 것을 하나의 계보 안으로 연관

시켜 묶을수 없다는 것이너무 당연해진다. 그리고 이때 그 역사의 존

재 의미를 파악하려는 시도로서 주어지는 계보학의 한계는 해석자의

관심에 의하여 제한되고 한정된 것 안에서 주어진다는 것은 당연한 것

이다.21) 모든 계보학적 평가는 언제나 객관적으로 확인될 수 있지만 동

시에 항상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과 관계되어 있는 만큼 수많은 사람들

사이의 옳고 그름의 문제, 어떤 사람이 자신의 관심사를 왜 어떻게 관

철시킬 수 있는가 묻는 사회 정의의 문제로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22)

유감스럽게도 계보학은 고대사회가 가지고 있던 의미와 가치가 언제나

폭력과 깊히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23) 니체가 그리고 있

는 고대사회는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않는 대신 그 사회 속에서 작동

하는차이의 원리에 주목한다. 차이는 결국 권력에의 의지를 낳게 되며

유감스럽게도 그 결과 차이는 더 근원적인 악의 현실로서 비치게 된

것이다.24) 따라서 밀뱅크가 보기에, 포스트모던의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황덕형, 포스트모던시대의 신학의 가능성: 밀뱅크의급진적 정통주의를 중심으로 321

에 의하면,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내적 관계로의퇴행이 그 이후의 모든

철학적 사고의 원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 때 부터 역사주의의 원래

적 가능성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20) 그런 가운데 니체의 계보학은

칸트적 변화의 의미를 완전히 수용하여 철저하게 만든 역사주의적 사

유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밀뱅크에의하면, 니체는 칸트철학에서해

명해야 할 핵심 과제로 등장하는 비역사적인 주체성에 대한모든 미련

을 버리고 있으며, 또한 칸트가 비판철학에서 제시하지 못했지만 실제

로 인식의 역사적 기원을 다루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생각해야 할 가

치의 문제를 비로소 제시하고 있기때문이다. 무슨사건에 대하여 어떤

근거를 제공해야 하는 초월론적이며 근거주의적인 토대주의를 벗어나

그 가치를 있는 그대로 비판할 수 있기 때문에 니체의 계보학은 차이

의 존재론이 등장할 수 있는여건을 형성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이 개별적 차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발생하게 될 폭력적

상황 자체가 인간의 철학적 사유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의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던의 계보학적 인식론이 차이의 존재론과 연관되

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밀뱅크에 의하면, 니체의“사실이 없고 해

석만이 존재한다”는 명제는 계보학적 작용, 즉 무엇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다는 그 작용의 원리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는 객관적

으로 인간의 문화와 그것의 상호간에 계승 속에서 발생하게 되는가능

성의 여건에 대하여도 말하는 것이다. 문화는 해석이며그 문화의 전승

과정에서 한 해석을 다른 해석으로 대치하는 인위적인 과정이 일어난

32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and Jaccobi”, John Milbank ed, Radical Orthodoxy A new theology, 21-37.

20)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280 이하. 칸

트에서 이 변화의요소가 담지되는기능을 찾을수 있는까닭은 칸트가인간을 무엇

보다도 먼저 자유인으로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제이념으로만 파악

가능한 인간의 자유는 실제적으로는시간성, 제한된 공간성, 그리고 기계적 인과율의

한계개념들과더불어파악될 수밖에없었다.

21)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281.

22)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281-282. 그

런데 후기 니체는 이 각각의 해석의 관점이 부정의 할 수 있지만 역사의 진보와지

속이라는 관점에서 역사의 역할이 다시 살아나 앞에서 행해진 부정의를 드러냄으로

써 역사가 해방적 의미와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281). 그러므로 니이체

에게 있어서 계보학은 단순히 해석이 아니라 모든 문화의의미 구조를 힘의 정복을

위한 실천적 정치로 이해하도록 하는 실증적 역사의 매우 밝은 허무주의적 형태라

고 볼 수 있는것이다(282).

23)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284 특히 같

은 책, 154 이하. 밀뱅크가 보기에 헤겔이 하나님의 죽음을 강조할 때 세 가지 잘못

을 하고 있는데, 첫째는 데카르트적 자아를 유지하고 있으며 둘째 부정의 부정이라

는 범주를 긍정을 위한 역동적 변증법으로 받아들이는 것, 마지막으로 헤겔의 무한

성 개념은사실은 유한과무한사이의 변증법을 허락한이교적인것이었다.

24)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285.

Page 16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확고한 실체를 가진 것, 혹은 존재의 기초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이해되

었던 존재그 자체가 거품처럼 사라지게 된다. 그 대신 이 세계의 존재

를 이해하기 위해서 사유해야 할 근본 사태가“초월론적 차이”(trans-

cendental difference)27)임을 여실하게 증명해 준 것이다. 매번 다르게

등장하는 존재의 우연성과 비-결정성 그리고 역사성을 중심으로 새롭

게 존재를 이해해야 하는것이다. 밀뱅크에 의하면 이 변화가 허무주의

를 낳은사유의 방식이다.

그런데 밀뱅크는 이 하이데거의 존재이해가 보다 더 깊은 연원에서

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주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한다. 즉 하이데거의

존재철학이 가져온 역사주의는 사실 존재 개념을 일의적으로 이해하려

고 하였던 둔스 스코투스의 일의적 존재 개념 때문에 가능해졌다는 지

적이다. 밀뱅크에 의하면, 토마스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는 각기 다

른 존재에 대한 견해를 갖는다.28) 토마스에 의하면 존재 개념이 각기

다른 사물들에게 각기다른 의미로 쓰일 수 있다는 유비적 존재이해를

하고 있는 반면 둔스 스코투스는 존재를 일의적인 의미로만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토마스는 존재 개념이 류-종-개체의 단계에서 다

르게 사용될 수 있다는 방식을 주장한다.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다음의 세 문장에서 존재는 각기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고 본다는 것이

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프다; 소크라테스는 크산티

페의 남편이다라는 명제들에서 존재 개념이 각각 다르게 사용되고 있

다고 말한다. 한편, 둔스 스코투스는 류-종-개체의 차이에서도 존재라

는 것은 동일하게 사용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는 결국“하나님이

실재한다”(exists)는 문장에서의 존재의미와“인간이 실재한다”(exists)

는 문장에서의 존재 개념이 하나의 동일하고 온전하게 같은 뜻이라고

말하는 것이다.29) 스코투스가 일의적 존재 개념을 유지할 경우, 비록그

황덕형, 포스트모던시대의 신학의 가능성: 밀뱅크의급진적 정통주의를 중심으로 323

위해서는 반드시 니체의 계보학적 사고 안에교묘하게 숨어있는후기

구조주의적 배경, 그리고 그것을 형성하고 있는이교성을 밝혀야 할 필

요가있다.

포스트모던의 차이의 존재론이 계보학적 사유와 연관이 있다는 것

이 밝혀짐으로써 우리는 폭력의 주제를 더 선명하게 다룰 수 있게 되

었다. 그리고 역사주의의 절대성을 이해하는 것 역시 밀뱅크의 포스트

모던 비판을 이해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역사주의는사실상대주의적역사관에 의거해서만주어

지는 대표적 사유방식이다. 밀뱅크에의하면 역사주의는 하이데거의 초

기 현존재 철학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지만 사실은 그 연원이 매우 깊

다. 존재이해의 획기적인 새로운 장을 연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이

전의 존재 형이상학의 특징을 단번에 해석학적 관점으로 바꾸어 놓았

다. 특히그의근본존재론에서는존재 개념이 인간의 역사적 실존지평

에서 드러나야 할 사건적 개념으로 해명되기 시작한다. 그러던 것이후

기에들어서는 존재개념 자체가보다더 철저화된다. 즉, 존재망각이란

사태를 극복하고 존재자와 존재사이의 차이가 드러나도록 하는 역동적

인 존재 사유는 보다 더 철저하게 해석학적이 된다. 존재는 사건화 됨

으로서 이제해명되어야 할, 그리고 인식되어야할 그 무엇으로 사유의

과제로 등장하는 것이다. 밀뱅크는 이 과정에서 칸트가 제공한 사유의

범주들이 더 극단적으로 사유되어서 철저한 역사주의적 관점에서 이해

되고 있는 것을 지적한다.25)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살펴보자면 그 유한

성의 사고범주들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처럼 지식과 존재에 대한

적극적인 형성 원인으로 작용을 하지 않고 단지 역사적으로 발생하는

존재 사건의 우연적인 측면으로서 해석되면서 그 존재 사건의 흔적으

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26) 그리고 여기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지금까지

32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25)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296 이하.

26)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298.

27)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302.

28)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303.

29)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303. 스코투

Page 16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배격하면서부터문제가 심각해졌다고밀뱅크는 판단한다. 즉 일의적 존

재 개념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개체의 차이를 인식하는 활동은 이제각

개체를 통합시킬 그 어떤 종의 개념도 존재하지 않은채 단순히 각 개

체의 다름을 인식하는 것만 남아 있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무엇을

인식하거나 존재의 의미를 파악한다는 것은 사유해야 할 대상이“차이

로서의 차이”로 나타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31) 이러한 발전은 하이데

거의존재철학에 의하여 시작되고 데리다의 차연 개념32) 속에서 완성되

어 나타났으며 포스트모던의사유의 원형처럼인식되고있는것이다.

그러므로 차이의 존재론이나 역사주의와 연관해서 그 비판적 대안

을 내놓기 위해서 밀뱅크는“포스트모던이 선택한 철학적 전통들이 카

톨릭에서 사용되고 있는존재 개념보다 더 근원적인가?”“그 포스트모

던적 존재 개념의 사유가 가톨릭 교회보다 더 원천적이며 현실적인

가?”를 반성한다.33) 즉 그는 여기에서 일의적 존재개념 이해가 오히려

사물의 구조를 더 내실 있게 보지 못하게 한 하나의 편엽한 전통이라

고 생각하고 토마스로부터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존

재 개념의 일의성만을 추구하는 일의성 중심의 연쇄 과정(허무주의의

특징으로서의 초월주의, 비판을 위한 비판)은 결국 실제적 존재자들의

다양성과 차이에 대하여 완전하게 무관심인 채로 남게 되지만 존재란

개념을 류-종-개체의 계급구조(신에서부터 시작하여 다른 사물들의

존재형태를 찾는 것)에서 유비 형성의 관점에서 본다면(즉 존재의 유

비화의 과정: analogizing process) 이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새로운

전통을 찾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34) 그래서 밀뱅크는 이 analo-

황덕형, 포스트모던시대의 신학의 가능성: 밀뱅크의급진적 정통주의를 중심으로 325

가 아리스토텔레스나 아퀴나스와 같이 존재 개념이 가장 포괄적인 류

개념이라고말하지는않지만, 모든개체와 모든종, 류에게 하나의 동일

한 존재 개념만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과 동일한 일을 하는 것이다.

즉 류 개념으로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본다는 뜻이다.

그렇게 된다면 생물의 다양성을 말해주는 종의 차이를 말하기 위해서

는 이제 종 상호간의 차이, 즉 종의 다양성에서만이 중요하게 된다. 결

국 존재의 일의적 의미를 보존하자 실제로는 종들 사이의 차이가 강조

된 것이다. 즉, 종 상호간의 차이가(강아지와 사람이 같은 것이 될 수

없다는 그 차이) 모든 진술의 기준이 될 것이다. 결국 그것들을 통합적

으로 사유할 수 있는 여유가 사라지고 그 결과 절대적 차이의 다양성

으로 초월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30) 다만 둔스 스코투스나 토

마스에게는 존재 형이상학에서 존재 개념이 일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아니면 유비적으로 수용이 되든지 간에 인간의 인식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류-종-개체로 표현되는 존재의 질서가 전제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데리다와 뒬리즈가,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아,

존재 형이상학적 체계에서 류-종-개체의 형이상학적 체계의 특성을

32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스는 존재 개념을 일의적으로 보았기에 신학과 철학이라는 상이한 두 가지 다른 학

문이 있다고 말하고 이질적인 두 학문의 입장을 취한다. 신학의 개념은 그래서 이

존재 개념의 일의성 때문에 가능해진다. 그래서 그는 신학에서는 피조물의 선과 다

르게 창조주의 선을 극존칭의 관점으로 말하고자 하지만 그의 형이상학에서는선을

이 세상의 서술어로서 인간들이 이해할 만한 것으로 한정해서 이해하고 있다/ 피조

물과 창조주의 유비는 유한자와 무한자사이의 존재 개념이 유비적으로 이해됨으로

말해지는 것이다(하나님이 선하다/ 인간이 선하다// 하나님이 존재한다/인간이 존재

한다) 참고: 둔스 스코투스에 대한 연구로서, Stephen D. Dumont, John Duns

Scotus, J. J. E. Gracia 외 1편저, A Companion to Philosophy in the middle Ages,

Oxford: Blackwell, 2003, 353 이하, 유비개념의 신학적사용에 대한일반적이며 포

괄적인 연구로서, B. Mondin, The Principle of Analogy in Protestant and Catholic

Theology (The Hague: Martinus Nijhoff), 1963.

30) 밀뱅크는 이런 차이의 효과는 결국 존재 개념의 일의성에 기초한 존재론과 신학 사

이의구분을가능하게 하였다고말한다.

31)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303.

32) J. Derrida, “차연”,『해체』, 김보현 편역 (서울: 문예출판사, 1996); 결국 이러한 방식

의 사고 구조는 니체가“영겁회귀”나“동일한 것의 반복”으로서의 존재 경험을 강조

한 것과그 궤를같이하는 것이다.

33)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304.

34)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305.

Page 164: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신을급진적 정통주의라고표방한다. 그리고 포스트모던이주장하는급

진적 궁극성 때문에 그것을 비판하고 거기에 대응하는 답변을 제시해

야 할 급진적 정통주의도 역시 같은 정도의 급진성과 궁극성을 주장해

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급진적 정통주의가 포스트모던의 사유의

치명적 약점들을 치료하려고 할 때 이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급진적

정통주의자들은 자신의 과제를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가? 급진적 정통

주의 신학은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이들은 먼저 정통적이라

는 자신들의 모토는 고대 기독교의 신조와 그 신조의 시대를 이끌었던

교부들의 가치관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있음을 지적한다고 설

명한다.36) 급진적 정통주의가 추구하는 기독교는 고대와 중세사회를 지

도했던 기독교이다. 인간의 자율적 이성을 추구하였던 고대 그리스나

포스트모던적 윤리적 허무주의로 다가온 현대 유럽의 가치들을 비판적

으로 검토하면서 일상적인 삶에서 만나는 윤리적 가치를 하나님의 계

시적 자기 전개에서 찾으려고 했던 고대교회와 중세교회의 전통에서

그 모범을 찾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이 급진적 정통

주의는 철저하게메타-이론의 차원에서자신의 근거를 추구한다.37) 그

렇다면21세기 한복판에 놓여 있는 우리는 어떻게 위에서 말한 고대교

회적믿음을 뒷받침할 수 있을것인가? 여기에 새로운 길이 놓여있다.

현대의 상황에서 고대교회가 가졌던 올바른 모범을 다시 되찾는 길은

교회를 사회학적 실체로 인식하는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교회가 세속적

사회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면서 전혀 독립적인 실체임을 인식하는 것

은 교회가 근본적으로 세속사회와는 어울리지 못하는 낯선 대상일 뿐

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의 기독교가 성서와 신앙이라는

황덕형, 포스트모던시대의 신학의 가능성: 밀뱅크의급진적 정통주의를 중심으로 327

gizing Process를 하이데거의 초기 철학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존

재의 시간화(temporalität)의 역할과 동일하게 보고자 한다. 존재를 시

간의 지평에서 순수한 동일한 사건의 발생으로 이해함으로써존재이해

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했던하이데거-뒬리즈-데리다 등의존재이

해를 넘어서 다양한 존재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유비적 존재이해가 더

풍성한 결과를 형성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그에의하면, 이 유

비화의 과정은 하이데거의 초기 존재론에서의 시간의 역할을 넘어서

우리 자신의 존재 그 자체가 이 세계에서 우리 자신의 형성에 충실하

면서도 동시에 신의 존재에 참여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도록 만든다

는 것이다. 이는 역사의 흐름이 새로움의 과정으로서 자신을 계시하는

신적 창조성에 참여하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35)

이러한 결론은 절대적 역사주의, 차이에 의존하는 존재론, 그리고 윤리

적 허무주의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포스트모던의 사고구조를 극복하는

내용이 될 수 있는것이다.

I V. 밀뱅크의급진적유비적존재이해: 교회를기초로한

사회학적존재론과메타내러티브로서의복음이해

그렇다면 이 새로운 유비적 존재론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제시

되고 있는가? 허무주의를 극복할 유비적 존재론은 어디에서 새롭게 사

유의 단초를 찾아야 하는가? 이 새로운 단초를 주장하는 밀뱅크는 자

32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35)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305, 306. 이

유비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혁명적인 길을 가는 다른 사상가들도 밀뱅크는 소개

한다. 레비나스에서 찾을 수 있는 방법으로서 타자를 요청하는 존재의 결단은 이 세

계를또 다시유사한 것 가운데진보의 프로세스를 추구하지않고혁명적의지의 결

단을요청하게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또 다시비이성적결과를 가져올 수 도 있는것

이다. 그래서 자신은 이 세계의 존재 이해, 그것도 폭력적이지 않을 수 있는 존재이

해를교회적 존재이해에서찾고자 하는것이라고말한다.

36) John Milbank 외 2인 편저, Radical Orthodoxy: A new theology, 2.

3 7 ) John Milbank, The Word Made Strange, Theology, Language, Culture ( O x f o r d :

Blackwell, 1997). 밀뱅크는 신학적인존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토마스의

유비이론을 기점으로 해서 언어적 상황 그 자체가 바로 실체라고 주장한다. 실체에

대한진술가운데 그 실체가등장하는것이다.

Page 165: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한 윤리적 실천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counter-ethics의 과제를 해명

해야 한다. 3) 앞에서 제시한 역사와 윤리적 지평이 근거를 얻을 수 있

었던 평화와 용서의 존재론으로서의counter-ontology의 길을 사회적

이론으로서교회론과의연속성속에서완수해야하는것이다.

밀뱅크는 교회를 기독교적 존재론의 근거로 삼고자 하며 이 구상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는 내러티브의 방법을 사용하고자 한다.42) 리쾨르와

의 비판적인 대화를 통하여 밀뱅크는 내러티브가 이해와 설명으로 양

분된 해석 방법보다 더 현실에 근원적인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다.43) 내러티브의 방식을 통해서 우리들은 의미의 선험적 가능성의 조

건을 묻는 비판적이며 초월론적 질문을 포기하게 되며 어디에 있지도

모를 의미라는 것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44) 그 대신 그 내러티브 안

에서 진술되는 것의 의미와 존재를 자족적인 방식으로 그 이야기 안에

서 이해하게된다. 살아있는 현장을 직접적인 방식으로 연결시키는내

러티브는 사회적 지식의 참된 형태로 인정되며, 더욱이 신학이 절대자

를 자신의 사유의 대상으로 삼고자 할 때 이 규칙의 준수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신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러티브속에서 하나님을

그대로 이야기로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45) 또한 이 방법론을 적용함으

황덕형, 포스트모던시대의 신학의 가능성: 밀뱅크의급진적 정통주의를 중심으로 329

신화적(?)지평에서만 자신들의 신앙을 변증해왔다고 한다면 이제 이

급진적 정통주의는 교회라는 사회적 실체의 지평에서, 그렇기에 그 사

회적 실체가 가진 실제적 현실로서의 기독교성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는 것이다.38)

밀뱅크에 의하면 기독교 신학은 기독교 실천에 의거한 학문이어야

한다.39) 이론은 실천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작업이며 따라서 기독교 신

학이란 기독교의 실천을 설명하는 작업인 것이다.40) 더 자세히 말하자

면 기독교 실천으로서의 기독교 신학이란 먼저 교회론을 의미하는데

이는 교회가 다른 사회적 실체와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속에서 자기를

이해하고 자신을 규정하는 그런 사회적 실천이론인 것이다.41) 교회론은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사회학이다. 이러한 관점은 다음의 세가지 구체

적인 과제를 가지고 있다. 즉 1) 기독교의 원 초기 상태의 탄생 과정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통하여 다시 교회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counter-history의 과제를 완수해야한다. 2) 기독교의공동체로서특별

32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38) 바로 이점에서 밀뱅크는 훗설의 현상학적 전통을 가지고 신학의 새로운 근거를 탐

구하는 J. L. Marion을 비판한다. 참고: John Milbank, The Word made Strange,

Theology, Language, Culture, 특히36 이하; 이와 더불어 Marion의 신학적 이해를

위해서, 이은주,“계시현상과 지평: 마리온의 탈 존재론적 계시 이해에 대한 고찰”,

『한국조직신학논총』, 제25집, 2009, 12, 한국조직신학회편, 73-101.

39)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381. 기독교

신학은 사회적-언어적 실천의 명료화로서 교회가 역사적으로 발전해갔던 그 실천

의 지속적인재-내러티브화(Re-narration)인 것이다. 참고: D. L. Okholm 편, The

Nature of Confession (Illinois: InterVarsity Press, 1996). 특히 Gabriel Fackre,

“Narrative: Evangelical, Postliberal, Ecumenical,” 123 이하. 해석학과 연관해서,

Hans W. Frei, The Eclipse of Biblical Narrative (London: Yale University), 1974.

40)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380 참고: 이

러한 설명은 사실 기독교의 교리를 기독교의 예배의식에서 그 뿌리를 찾으려고 하

는 라쿠냐의 관점과 유사한 것이다. 특히 삼위일체론과 같은 교리조차도 사실은 예

배라는 기독교 실천과 깊은 연관이 있다. C. M. Lacugna, 『우리를 위한 하나님』, 이

세형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8).

41)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380.

42) John Milbank, The Word Made Strange, Theology, Language, Culture, 84 이하; 또

한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382. 이 방

법이 철저하게 적용된 것을 밀뱅크는Georgy Lindbeck의 metanarrative Realism과

비교하면서 더 세밀하게 논의하고 있다; 특히386 이하. 밀뱅크 자신이 보기에는 린

트백은 기독교의 원초적 이야기가 역사 안에서 생성된 것으로서 지금도 생성중일

수 있다는 중요한 현실을 잊고 있다. 그래서 그 스스로m e t a n a r r a t i v e적 요소는

narratological foundationalism으로변모되었다고지적한다.

43)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263 참고: P.

Ricoeur, Hermeneutics & the Human Sciences, ed. tr by J. B. Thompson (Cam-

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1) 특히Metapher and the central Problem

of hermeneutics, 165 이하; 또한 The Narrartive function, 274 이하.

44)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267 이하.

45)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268.

Page 166: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음이다른모든 이야기들과구분되는metanarrative가 될 수 있는이유

는 복음이 다른 이야기에 대하여 어떤 특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고

모든 인류의 보편적 이야기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49) 그럼으로써

이제 복음은 모든 인류의 이야기로 역사와 만나고 그러한 존재론적 의

미를 갖게 된 것이다. 세속사회에 대한 기독교의 대항의 역사는 바로

기독교 사회학의 탄생을 의미하며 기독교 사회학의 탄생은 또 다시이

제 기독교의고유한 존재론을형성하는과정을 보여주는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급진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들은

단호하게 몇 단어로 이를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이 새로운 신학의 급

진성은 교부와 중세시대의 신학적 모티브로 돌아가기 원한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대 어거스틴의 신학적 판단

으로되돌아가는 것이다.50) 둘째, 이렇게 다시 획득된 고대와 중세의 자

산을 현대의 모든 영역에 지금까지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정도로 철저

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이렇게 현대의 정신에 참여함으로써

변혁을 가져오고 그것을 통하여 이제 다시 그 전통자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려 하는 것이다.51) 하지만 밀뱅크가 요청하고 실제로 도달하려는

급진성은 실제로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그들은 지금까지의 과거의

훌륭한 전통들이 세속사회의 비판과 공격으로 침몰한 적이 있다는 역

사적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이는 밀뱅크와더불어 시작된 이 급

진적 정통주의 신학이 과거의 어떤 신앙의 세대가 갖고 있던 특징을

적당한 선에서 다시되살리려는 것으로만 그들의 목적을 달성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모든 신앙적 세계관을 무너뜨리

면서 등장했다고 말할수 있는세속화에 대하여 그것의 권리와 그것에

게 당연시되었던 그 존재의 의미를 부인하면서 그 세속주의가 자신들

의 유한성의영역으로 선포했던 영역들, 다양한 삶의 지평을 거꾸로 다

황덕형, 포스트모던시대의 신학의 가능성: 밀뱅크의급진적 정통주의를 중심으로 331

로써 밀뱅크는 기독교적 계시의 의미를 확정하게 된다. 즉 기독교적 계

시의 이해란 이미 주어져 있는 기독교적 실천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의 교리적 진술은 그 최초의 단계에서

부터, 단순한 지성적 과정이 아니라 창조적 상상력에 의하여 인도되고

있다. 창조적 상상력을 통하여 가능해진 정통적 실천과 원초적 이야기

의 re-narrartive의 과정에서 교리는 나타나고 이해되는 것이다.46) 또한

기독교 공동체 언어의 근거인 계시는 교회 공동체의 내러티브적 반성

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기독론과의 연관성47)을 가질 뿐만 아니라 또한

지속적으로 실효성을 갖게 된다.48) 그런가 하면 밀뱅크가 보기에 이 복

33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49)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389.

50)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380 이하.

46)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 Beyond Secular Reason, 383. 사실 이

후에 주어진 밀뱅크의 계시이해는 실제로는 칼 바르트의 계시개념에서 획득되는 실

용주의적이해와 비교될수 있다.

47) John Milbank, The Word Made Strange, Theology, Language, Culture, 123 이하;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384, 385. 린트

백과 한스 프라이는 예수의 삶의 이야기만이 하나님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줄 수 있다

고 확인하고 있으며 거기에 밀뱅크는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의 차

이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 내러티브가 단순하게 내러티브로 그쳐서

는 안 되고 그 내러티브의 구조적 복잡성이 함께 들어가 있는 바 그 길은 우리의 현

재를 함께 그 원 텍스트의 상황과 동일화시키면서 한 공간화시키는 동시화의 작업

안에 들어있고 그 작업은 다 표현되지 못하지만 또한 신학과 존재론 안에서 발생하

게 될 추상적 과제를예기하고 있다는 것을잊어서는안 된다고그 신학적과정을 설

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뱅크가 융엘과 같이 보다 더 선명한 태도에서 기

독론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다소 난해한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참고: E.

Jüngel, “The Dogmatic Significance of the Question of the Historical Jesus”,

Theological Essays I I, ed. by J. B. Webster (Edinburgh: T&T Clark, 1995). 82-120.

48)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387 이점에서

밀뱅크가 성령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

로 개신교회의 모든 신학적 과제는 이 성령론과의 연결에 따라 성공의 여부가 달려

있는것이다. 성령은사실 신학의가능성이시기때문이다. 최근 바르트의 성령이해가

어떻게 신학 전반의 가능성과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글로서: Karl Barth,

“Nachwort”, S c h l e i e r m a c h e r-Auswahl, Mit einem Nachwort von Karl Barth,

(München: Siebenstern Taschenbuch Verlag, 1968).

Page 167: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V. 급진적정통주의에대한평가와비판: 더 철저한하나

님의현실의급진성의요청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신학화의 작업,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세

계를하나님의 존재, 혹은하나님의 섭리속에서 이해하려는작업은 거

의 모든 신학적 사유들이 그들 자신의 고유한 과제로 이미 삼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신학도-만일 그 신학이 하나님의 복음에 의하여 유발

되는 신학이라면-이러한 과제로부터 자신을 도외시하도록 한 적이없

다. 따라서 급진적 정통주의 신학이 주장하는 그들의 급진성, 곧 우리의

현실을 신학적 존재론을 통하여 이해하고 그렇게 신학적으로 채색된

우리의 현실로부터, 그 자체가 이미하나님과 이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

체로 전환된 현실 속에서 실천적인 윤리적 요구로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기획은 사실 이미 많이 시도되어 왔던 것이다. 밀

뱅크의 말대로 그는 다시 새로운 음조에서 새롭게 이전의 소리를 다시

하고 있는 것이다.55) 실제로 신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이러한 과제

를 보여주지 않는가? 그럼으로 우리가 실제로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신학의 과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매개와 중보의 목표가 오히려 성

서적인 급진성의 요구를 잘 반영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일이고 이와

더불어서 이 매개 자체가 어떻게 가능해지는가를 보여주는 일이다. 성

서는이 과제를 위하여 종말론 신앙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

게도 밀뱅크는 이 종말론 대신에 전통적인 유비이론을 교회 공동체의

내러티브적 해석을 가미한 방식으로 긴장을 늦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

게 한다. 하지만 성서가 지적한 종말론이 빠져있는 역사에 대한 모든

설명이 어떻게 계시의 틀이 될 수 있는지 그 본래적 급진성이 사라져

있는것이아닌가 의심스럽다.

급진적 정통주의는 이 세계 안에서 하나님이 유한한 세계 존재를

황덕형, 포스트모던시대의 신학의 가능성: 밀뱅크의급진적 정통주의를 중심으로 333

시 하나님과 연결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는 이 세계가 근본적으로 세속적인 관점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새로운

존재론적 기초에 놓여 있다는 것을주장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이 작업

은 두 가지 면에서 진행된다. 먼저 우리가 인정하고 있는 세속적 세계

의 기초가 폭력에 의한 것이라고 자포자기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

든 관점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 폭력성은 사실 역사에서 유일한 과정

이 아니라는 것을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폭력성에 대한비판

적 고찰에서부터 이제 사람들은 폭력성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게 된다. 두 번째로 긍정적인측면에서 이 급

진적 신학은 교회의 존재가 평화와 용서의 존재론적 기초를 가지고 있

음을 밝히는 것이다.52) 이렇게 세계가 사실은 평화와 용서속에서 존재

한다는 관점이 알려지는 것은개인과 가정 그리고 교회와 세상이 근본

적으로 하나의 원리로서 상호침투되어 있는신적 사랑의 결과라는 것

을 밝히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존재가 담보가 된다고 밀뱅크는말한

다. 거기에 덧붙혀서 이제신학은 세상의 여러가지 영역들에서 하나님

과 이 세상의 중간적 매개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구

조 안에서 접목시키려고 한다.53) 이렇게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이 세

계를 다시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철저한 참여의 신학을 시도한다는 점

에서 이들은 급진적이며 복음주의적 신학이라고 자평하고 있는 것이

다.54)

33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51) John Milbank 외 2인 편저, Radical Orthodoxy: A new theology, 2.

52) John Milbank, Being Reconciled, Ontology and Pardon (New York: Routledge),

2003.

53) John Milbank외 2인 편저, Radical Orthodoxy: A new theology, 3. 밀뱅크와 킥스토

크, 그래함 워드가 함께 편집한 목차를 보더라도 그들이 요구하는 중간적 매개의 영

역은 거의 인간의 모든 부분들을 담고있음을 알게한다. 언어, 허무주의, 친교, 욕망,

에로스, 몸, 정치의 영역에서 사회, 미학적 영역, 지각 그리고 음악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적이다.

54) John Milbank 외 2인 편저, Radical Orthodoxy: A new theology, 3. 55) John Milbank, The Word Made Strange, Theology, Language, Culture, 2.

Page 168: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신학으로 끝날 숙명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58) 그러므로 이 급진적

정통주의는 자신들이 근거로 삼고 있는 유비적 현실의 새로운 내러티

브적 해석은 다음과 같은 새로움도 있지만 동시에 거기에서 파생되는

질문들을대답해야할 것이다.

밀뱅크의 신학의 가장 새로운 측면은 시회적 실제로서의 교회를 신

학의 근간으로 삼고자 하는 부분에서 볼 수 있었다. 밀뱅크에 따르면,

급진적 정통주의 신학에서는 사회적 존재로서 교회가 가지는 의미는

황덕형, 포스트모던시대의 신학의 가능성: 밀뱅크의급진적 정통주의를 중심으로 335

자신에게 이르는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유

비적 현실의 구체적인 성격은 무엇인가? 이렇게 유비적 인식을 전제로

할 때, 하나님의 존재는 이 세계 안에서 우리의 존재를 변화시키는 존

재론적 원인이라고 말하게 된다. 이는 우리와 다른 절대자가 우리들이

발견할 수 있는 형상들 속에 그 형상 가운데 하나가 되어 우리와 같은

-그러나 다른 기원을 가지고 침투하고 있다는-모습으로나타나고 있

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구조는 밀뱅크가 지적했듯이 인간이

초월을 생각하기에 유일한 방식도 아니며 또한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

아리스토텔레스를 닮고 있다.56) 그럼으로 이 신학은 이제까지 행했던

것처럼, 그 안에서 자신의 언어를 찾으려고 노력한 만큼, 이제 이 거대

한 존재유비의 신학적 전통과 철저하게 자신을 구분해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만이 그들이 주장하는 급진성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급진적 정통주의의 한계가 놓여 있다. 밀뱅크

가 분명하게 밝히듯이 유비의 사상은 과거로부터 이미 익숙한 것이며

급진적 정통주의의 핵심이 그것을 새롭게 꾸미는 작업57)이기에 이 시

도는 지난할 수밖에 없고 정통주의의 본 의도와는 달리 결국에는 조정

56) Erich Przywara, Analogia Entis Metaphysik Ur-struktur und All Rhythmus,

(Einsiedeln: Johannes Verlag), 1962. 프리츠바라는이 저서에서 형이상학의 지평에

서 하나님이 모든것의 종국적 목표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면서“은총(신앙)은 자

연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자연을 보충하여 완성시킨다”는 명제를 제출하지만

존재유비의 관점에서는 이 형이상학의 신학적 근원이 설명되는 데 여기에서 이 존

재유비는 우리의 피조물의 영역에 참여하면서 이미 우리들을 그 이상의 존재와 연

관되어 있음을 밝히는 원리로서 이해하게 한다. 즉 유비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운동이며 동시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동시적 운동으로서 내재적 하나님의 내부

에서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일어나는 존재론적 관계성으로 파악하

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책에서 제시되는 어거스틴과 아퀴나스의 존재 유비이해

는 (각각, 163-171, 172-202) 좋은대화거리이다.

57) 대표적으로 J. Milbank & Catherine Pickstock, Truth in Aquinas ( L o n d o n :

Routledge Press), 2001. 이 책에서는 토마스의 진리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서 토마

스의(Thomas Aquinas, On Being and Essence, tr by Armand Maurer, toronto: The

Pontifical Institute of Mediaeval Studies, 1968)를 기점으로 한 유비 이론이 존재론

적 구조 하에서 인식론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이 진리이론이 칸트 이후

의 철학과는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밀뱅크는 The Suspended Middle, Cambridge: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5에서는 앙리 루박과 더불어서 토마스의 유비이론이 분명하게 표현

하기 원하는 바 현실과 초월을 모두 포함한 그 유비적 현실을 초자연주의의 관점과

비교하면서 검토하고 있다.

58) 즉 충분히 급진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신학이 급진적이 되려면 사실은 교회 존

재를 이해하는 메타이론적 지평에서 출발하지 않고 그 계시의 사태로부터, 이 메타

이론적 지평을 자신안에 포함하는 그런급진적 계시 이해를 통해서 시작해야 했다.

급진적 가능성을 추구하겠다는 그의 공언은 단지 교회의 메타 내러티브적 존재론에

근거한 조정 신학적 과제를 가지고 있을뿐이다. 즉 복음의 의미가 생산적으로 우리

를 변화시키는 그 변화의과정보다는 복음 안에 들어 있는 의미를 사회적 지평에서

다시 획득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전형적으로 조정신학의 과제이었다. 참고: Lang-

dom Gilkey, Naming the Whirlwind, The Renewal of God-Language (New York:

The Bobbs-Merrill ComPany), 1969. 그래서 비록 그가 신정통주의의 바르트를 비

판하면서 공적 신학으로서의 공적 담론의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하지만 이는 바르트의 계시 이해가 실은 메타이론적 지평을 이미 내포하고 있

는 것임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즉 그의 계시는 단지 인식론적 문제가 아니라 존

재론적 지평의 문제를, 밀뱅크처럼 교회나 사회적 여건이 아닌, 이미 신화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공적 지평으로서 계시 안의 피조물들로 그 의미를 변환시킨다. 바르

트에게 있어 계시는 이렇게 새로운 창조로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자신의 유비처

를 생산하는 공적 담론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여타 다른 존재론을 비판하는 비판이

론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참고: Christofer Frey, Die Theologie Karl Barths,

Eine Einfuehrung (Waltrop: Hartmut Spenner), 1994, 148 이하; 또한 E. Jüngel,

Barth-Studien (Gerd Mohn: Guenterlloher Verlaghaus), 1982, 특히 83 이하.

Page 169: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유한한 경험 속에서, 성서적으로 볼 때 우리

와 전적으로 다르신 분 하나님이 우리와의 유비적 상황에서 우리가 경

험할 수 있는 다른 것(인간)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신학의 첫 번째 과제이며 교회가 찾아야 할 신학적 언어의 과제라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더욱 급진적이다! 말해질 수 없는 그 무엇

이 말해짐의과정에서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는, 소위신학적 계시의 사

태를saying과 said 사이의 해석학적 변증법으로 변모시켜 이 해석학적

과제가 신학의 과제인 것 여기게 해서는 안 된다. 과정을 지칭하고 거

기에서 신학의 기초를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더불어서 비교될

수 없는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의 속에서 자신을 성육신시킴으로 자신

이 바로 그 상징임을 나타내지만 그 상징은 동시에 우리의 가능성 밖

의 불가능한 가능성으로서 등장하게 된다는 전적 타자의 어법이 존재

하고 있는 것이다. 밀뱅크는 그래서 현상학적 방법을 근거주의나 토대

주의의 한 형태로 보고 비판하고 있지만 성서의 현실은 이 현상학적

사태를 통해 더 우리에게 가까이 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여기에서

밀뱅크가 찾고자 하는 신학의 과제가 신학의 본 주제에 적합하면서도

보다 더 개방적이며 근본적으로 해석학적이기에그 일을 먼저 해야한

다는그 어떤당위성도, 이유도 찾을수 없다. 이 급진적 정통주의 신학

이 추구하는 급진성은 여전히 일반적 해석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게

되는해석학적 특성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들스스로가 자신

을 급진적이라고 하는 것에 불 충분성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는 사실 예수의 모습을 우리의 삶과 세계에서 찾아야 할 것이기 때문

이다.

황덕형, 포스트모던시대의 신학의 가능성: 밀뱅크의급진적 정통주의를 중심으로 337

지대하다.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비롯된 존재론적 고찰과, 평화의 해석

학이 바로 이 세계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말할 수 있는 기초를 형성한

다는 것이다. 성도들의 공동체, 하지만 종국에는 종말론적 메시야 공동

체인 교회가 어떻게 스스로 신학의 근간이 될 수 있는가? 교회 그 자

체를 종말론적 은사로 이해할 수 있을 때 그 교회내의 모든 언사들, 행

위들이 내러티브적 현실을 형성한다고말해야 하지 않을까? 역사적 실

체로서의 교회는 사실 역사적 실체로서의 예수, 그리고 역사적 실체로

서의성령의 역사에 의존한 것이아닌가? 그렇다면성령의 능력59)이 우

리에게 다가오는 그 계시의 사유 가능성 밖에서 어떻게 우리가 예수와

성령의 역사를 말할 수 있으며, 그 계시적 실체 없이 어떻게 다시우리

의 존재의 개방성을통하여 하나님을자신있게말할수 있단말인가?

물론 여기 밀뱅크는 내러티브 이론을 제시한다. 내러티브 안에서 작

동하는 존재론은 해석학의 오랜 숙원, 이해와 설명의 이원론적 분리를

넘어서면서 그 양자의 영역 전부를 하나의 전체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전체적(wholistic)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

고 이를 방법론적으로 교회의 이야기에 적용할 때, 교회의 내러티브가

바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존재, 마지막으로 성령의 능력을 받은 우리

의 존재를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밀뱅크가 자신의 내러티브에서 그리스도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진술하는 것과 또한 그 내러티브의 수행을 통하여 기대하고 있는 것

사이에는 일종의 간격이 존재한다. 하나의 내러티브적 현실을 받아들인

다는 것은 생산적인 활동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그 내러티브 자체가

스스로 그 생산적 활동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다시 되짚어야 할 해

석학적 난제를 품고 있다.60) 실제로 그의 내러티브의 이론은 그리스도

의 의미를 담기에는부족한 면이있는것이사실이다.

59) John Milbank, The Word Made Strange, Theology, Language, Culture, 171 이하.

밀뱅크가 성령에대하여 매우 희미한 철학적 진술로 대신하려는 것이 바로 이 종말

론적은총의 현실에 대한이견때문일 것이다.

60) 이와 유사한 문제로서; 케빈 벤 후저,『이 텍스트에 의미가 있는가?』, 김재영 역. 서

울: IVF, 2003. 텍스트나 저자 그리고 독자를 되살리는 모든 작업은 결국은 성령론

적 현실로서이해되어야한다는 것을보여준다.

Page 170: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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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

차이의 존재론(Ontology of the difference), 계보학(Geneology), 존재의

유비화 과정, 초월론적차이, 사회학적실체

접 수 일 2010년 10월 14일

심사(수정일) 2010년 11월 12일

게재 확정일 2010년 12월 30일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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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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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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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A Possibility of Theology in the PostmodernEras: A study on the Redical Theology of

J. Milbank

Duk-hyung, Hwang

Professor

Seoul Theological University

Puchon, Korea

It is regrettable that it is seemed as truth that we, theologians, has

no other ways except to accept this trend of secularisation which can

be found in the near of our daily life under the name of “postmodern-

ism.” Infact, many theologians east and west tries to accommodate

themselves to this mega trend of our days out of various reasons;

while some east theologians finds a liberation motif from the west

centered world views, which dominated whole world last centuries, in

this so called postmodernism, other west theologians believes to

detect a ground of rehabilitation of religion against the reason cen-

tered secular culture. Therefore it is meaningful to reflect on this new

theology which is called as “radical orthodoxy”. This Theology tries

to refute the uncritically consumed presupposition that postmod-

ernism is a pivotal result of development of history of west philo-

sophy. This theology would like to deprive the postmodernism of any

ground of legitimation.

John Milbank, as a leading theologian of this newly formed theo-

logical thought, connects fundamental elements of postmodernism

with nihilistic principles of social construction, in which a poor and

Page 17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한국조직신학회회칙

제1조 명칭

본 회는“한국조직신학회(Korean Society of Systematic Theology)”라 칭한

다.

제2조 목적

본 회는 회원 상호간의 학문적 교류와 공동연구를 통하여 우리의 조직신학

을 정립 발전시킴으로써 한국과 세계의 교회와 신학계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3조 사무실

본 회의 사무실은회장이 임직하고있는학교나 근무지에두는 것을원칙으

로 한다.

제4조 사업

본 회의 목적 수행을 위하여 연구발표 및 학술대회, 학회지 출판 및 기타

사업을한다.

제5조 회원의 자격

본 회의 회원은다음과같다.

1. 정회원: 본 회의 정회원은 조직신학 및 인접 학문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거나 또는 대학이나 이에 준하는 기관에서 조직신학을 교수하

고 있는자로한다.

2. 준회원: 준회원은조직신학및 인접학문분야에서 박사학위취득 과정에

있는자로한다.

3. 특별회원: 특별회원은 임원회의제청에 의해서 총회에서 허락을 받은자

한국조직신학회회칙 34334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week could be legitimately regarded as a prey for social stability:

civilization stands on the blood of other poor people. It consists of

fundamental factor of John Milbank’s critcis of modern humanism

that such a submissive attitude in regard to social violence is permit-

ted because of the paganism. And this same attitude prolongs in the

slight transformed postmodernic understanding of the being. Deeply

seen, it is one of the same tradition to which a insight of the ontologi-

cal difference ,which has an important role in the philosophy of M.

Heidegger(and other postmodernic philosophers), leads our view of

virtues. So he concludes that these two movements are, in some

sense, identical with each other and these two can be seen as homo-

geneous.

In contrast to this movement of postmodernism, John Milbank

would like to indicate there is an another tradition of the understand-

ing of the being, which has its root in the theological philosophy of

Thomas Aqiun. His analogical thinking of the being could be under-

stood as the new corner stone for the newly emerging theology. This

analogical understanding of Being makes it possible, that church,

which is ruled by the presence of the spirit, namely by the love of

God, represent itself as the analogical reality of God’s narrartive

story. Concretely he undertakes to compromise some important ele-

ments of theology, which comes from social scinece. to make this

church as a starting point of theology itslelf. According to John Mil-

bank christianity should takes this social factor seriously.

In spite of this great contribution of the radical orthodoxy, it must

also answer some fundamental, even radical problems. Is this ana-

logical understanding of the Being enough to meet the eschatological

imperative of God’s narratives? What makes the church as the escha-

tological community, in which the secularity of our ordinary life can

be overcomed? Can be the theory of Narrarive Understanding a good

tool for the reality of the Word of God?

Page 17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제12조 임원회

임원회는 회장이 필요시 수시로 소집하고, 총회에서 위임된 업무를 처리한

다.

제13조 편집위원회

편집 위원회는 본 회의 학술지 간행 및 출판사업을 주관하며 편집위원회에

관한규정은 따로둔다.

제14조 재정

본 회의 재정은 회원의 입회비와 연회비, 찬조금 그리고 기타 수익금으로

한다.

제15조 부칙

1. 본회의회칙은통과일로부터시행된다.

2. 회칙은 정기 총회에서 출석회원 2/3 이상의 찬성에 의해서 수정할 수 있

다.

3. 본 회칙에명시되지않은사항은 정기총회 및 임원회의의결과 통상관

례에따른다.

한국조직신학회회칙 345

로 한다.

제6조 회원의 가입

제5조의자격을 갖춘 자로서 본 회에 가입하고자 하는 자는 소정의 입회원

서를 제출하여총회의 허입을받아야한다.

제7조 회원의권리

본 회의 정회원은 의결권, 선거권 및 피선거권을 가지며 본 회의 각종 학술

활동에 참여할수 있다.

제8조 회원의의무

본 회의 회원은 회칙을 준수하고 소정의 회비를 납부해야 하며 본 회가 주

최하는 학술대회에 참석하고학회지에 기고해야한다.

제9조 임원

본 회는 학회운영을 위하여 회장, 부회장, 총무, 서기, 회계, 대외협력부장, 편

집부장, 감사 각 1인의임원을 둔다. 필요시 학문적 교류를 위하여 지회와 지회

임원을 둘 수 있다.

제10조 선거와임기

본 회의 임원은 총회에서 2인 이상의 추천과 최다수 득표로 선출하고 임원

의 임기는 2년으로하되, 회장과부회장임기는 각각 1년으로한다.

제11조 총회

본 회의 정기총회는 매 년마다 회장이‘한국기독교공동학회’기간 중 소집

하고 회칙 수정, 임원 선거, 사업 및 예, 결산 승인, 회비 결정, 회원 허입, 특별

회원 추대 등의 회무를 처리한다. 임시 총회는 회장이 학회 운영을 위하여 불

가피하다고판단되었을때에임원회의 결의에따라소집한다.

34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74: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제5조 업무

편집위원회에서는 한국조직신학회 정기학술대회 주제에 대한 논문 기고자

를 위촉하고, 논문 심사위원 선정 및 우수논문을 심사하며, 한국조직신학회의

모든출판업무를 주관한다.

제6조 학술지 명칭

본회가 편집 출판하는 학술지는「한국조직신학논총」(Korean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이라칭한다.

제7조 학술지 발간

「한국조직신학논총」은 매년 3회( 6월 3 0일, 9월 3 0일, 12월 3 0일) 발간함을

원칙으로한다.

제8조 학술지편집

논문은 투고순서에 따라 심사에 회부하며, 책의 구성 및 편집에 관한 모든

사항은편집위원회에서결정한다.

제9조 통보

편집위원회는 투고논문의 접수, 심사 및 게재 여부에 관련된 사항을 투고자

에게통보한다.

제10조 원고료및 게재료

편집위원회는 학술대회를 위하여 채택한 특별한 주제에 관해 연구 위촉한

논문에 대하여는 소정의 원고료를 지불하고, 외부 연구비 지원에 따른 연구 결

과물게재시 편집위원회에서정하는 소정의게재료를납부해야한다.

제11조 학술지 배포

본회 학술지는 연회비를 납부한 한국조직신학회회원에게 무료로 배부하며,

한국조직신학회편집규정 347

한국조직신학회편집규정

제1조 명칭과사무실

본회는 한국조직신학회 회칙 제13조에 따라 한국조직신학회 편집위원회라

칭하며, 사무실은 편집위원장이 소속된 학교나 근무지에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2조 목적

본회의 목적은 한국조직신학회에 소속된 회원들의 학문적 교류를 원활히

하고자 회원들의 연구결과를 수록한 조직신학 전공 학술지를출판하는데 있다.

또한 이러한출판 사업을통해회원들의연구업적이 소속기관및 학계에서공

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받도록협조하는데있다.

제3조 위원구성임기

본회의 위원은 한국조직신학회 임원회에서 추천한 약간 명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은 본 학회 편집부장이 담당하며, 편집위원은 국내외 대학에서 조직신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동일 전공분야에서5년 이상 연구활동을 계속한

자로 연구 및 학술 실적이 우수한 자여야 한다. 편집위원의 임기는2년으로 한

다.

제4조 회의소집

편집위원회는 편집위원장이 소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시 인터넷

상에서 회의할 수 있다. 또한 편집위원 과반 수 이상의 요청으로 회의를 소집

할 수 있다.

34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75: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한국조직신학회투고규정

제1조 목적

본 규정의 목적은 한국조직신학회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고자 하는 자가

준수해야할 사항을정하는데있다.

제2조 투고 자격

본회 회원으로서 정기적으로 본회 소정의 연회비를 납부하는 자는 누구든

지 투고할 수 있다. 본회 회원이 아니라도 편집위원회의 허락을 받아 투고할

수 있다.

제3조 투고 신청서양식

투고자는 본회‘논문투고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한다. 투고신청서 양식

(양식1)은 조직신학회홈페이지에서다운받아사용할 수 있다.

제4조 구성 요소

투고논문은 다음의 5가지 구성요소를 갖춰야 한다. 1. 논문 2. 각주 및 참고

문헌목록 3. 외국어 초록(abstract) 4. 한국어 주제어 5. 외국어 주제어( k e y

word)

제5조 논문

1. 모든 논문은 한글 혹은 외국어로 된 다른 학술지에 발표되지 않은 것이

어야한다.

2. 본회학술대회발표 원고도규정에따라 투고해야한다.

3. 「한국조직신학논총」과「한국기독교신학논총」등 학술지에 관련된 선행

논문들이 있을 경우, 이를 참고하여 인용하고, 각주, 참고문헌에 그 사실

을 표기한다.

한국조직신학회투고규정 349

도서관 및 학문 연구를 위하여 구입을 희망하는 자에게는 회비에 상당하는 후

원금을 받고배부한다.

제12조 발행및 인쇄

본회 학술지의 발행인은 한국조직신학회 회장으로 하고, 인쇄 출판 및 배부

에 관한세부사항은 편집위원회에서결정한다.

제13조 판권

본회에서 출판된 모든 글의 판권은 저자가 소유한다. 단, 인터넷 출판의 경

우 학회가그 판권을 소유한다.

▣부 칙

1. 본 규정은 한국조직신학회 임원회에서 승인 즉시 발효하며, 이 규정에

명시되지아니한기타자세한 사항은관례에 따른다.

2. 본 규정은 편집위원2/3 이상의 찬성으로개정할 수 있다.

34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76: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제9조 원고 분량

투고 논문(본문 10p, 각주 9p, 바탕체, 줄 간격 160)은 A4용지15매 이내로

작성한다.

제10조 제출 방법

투고자는‘논문투고 신청서’(양식1)와 함께 논문을 E-mail로 제출함을 원

칙으로한다.

제11조 제출 기한

원고 마감은출판 3개월전으로 하고, 제출된 원고는반송하지않는다.

제12조 게재 논문제한

논문은 연속으로게재되지않는것을원칙으로한다.

▣부 칙

1. 본 규정은 한국조직신학회 임원회에서 승인 즉시 발효하며, 이 규정에

명시되지아니한 기타자세한사항은 관례에따른다.

2. 본 규정은편집위원2/3 이상의찬성으로 개정할수 있다.

한국조직신학회투고규정 351

4. 고전어(히브리어, 헬라어)는 원어 사용을 원칙으로 하되, 음역할 수도 있

다.

5. 내용 구분은I, I I → 1, 2 → 1), 2) → (1), (2) → a), b) → (a), (b)의 순으로

한다.

제6조 각주와참고문헌

1. 논문은 각주를 사용해야 한다. 각주 및 참고문헌의 양식은 표 1을 참조

한다.

2. 논문에서언급된것만을참고문헌목록에포함한다.

제7조 외국어초록

1. 내용

논문의 목적, 연구방법론, 연구내용및 연구성과 등 제시

2. 분량

A4 1매 이내 혹은외국어 300단어내외

3. 제목및 인적사항

논문제목, 성명, 학위, 직위, 소속, 소재지를기재

예) Kyun-Jin Kim, Dr. Theol.

Professor, College of Theology

Yonsei University

Seoul, Korea

비전임의경우직위를Lecturer로 표기함

제8조 주제어

한국어와외국어 주제어를각각 5개 이내로작성한다.

35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77: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pretation 49 (January 1995): 229-280.

2) 저서 인용의경우

김균진, 『기독교조직신학I』(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1985), 135.

Peter C. Hodgson, Winds of the Spirit: A Constructive Christian Theology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4), 67.

3) 편·역서 인용의경우

위르겐몰트만/이신건옮김, 『희망의신학』(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56.

Dietrich Bonhoeffer, The Way to Freedom, trans. Edwin H. Robertson (New

York: Harper and Brothers, 1966), 32.

Helmut Thielicke, Man in God’s World, trans. and ed. John W. Doberstein

(New York: Harper & Row, 1963), 43.

Donald K. McKim,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Martin Luther (Cam-

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51.

Peter C. Hodgson and Robert H. King, eds., Christian Theology, 2nd ed.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5), 56.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vol. 2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7), 4.

4) 학위논문인용의경우

김철수,“우리말 사도신경에 삭제된‘음부에 내려 가사’에 대한 연구,”(계명대

학교 박사학위논문, 2004), 12-23.

H y u n-Shik Jun, “Tonghak Ecofeminist Reinterpretation of Sin, Evil and

Spirituality in Relation to the Ecological Crisis,” (Ph. D. diss. North-

western University, 2001), 68.

2. 참고문헌 작성법

1) 전체 구조는 한국어 자료를 앞 쪽에 배치하고, 그 뒤에 외국어 자료를

한국조직신학회투고규정 353

「한국조직신학논총」각주및 참고문헌작성법 (투고규정표 1)

*각주 및 참고문헌에서의 영문 표기는“시카고 스타일”을 따른다.

The Chicago Manual of Style, 15th e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3). 각주 및 참고문헌 작성에 있어서의“시카고 스

타일”의 대한 간단한 용례(Chicago-Style Citation Quick Guide)는

다음을 참고할 것: http://www. chicagomanualofstyle.org/tools_

citationguide. html

I. 한국어 학술지

1. 각주표기원칙

·논문의 제목은 쌍 따옴표(“ ”)로, 학술지나 정기간행물 이름은 외 꺽쇠

괄호(「 」)로, 한국어 도서의 경우는 쌍 꺽쇠괄호(『 』)로 표기한다. 단,

외국어 책 제목과학술지 제목은모두이탤릭체로표기한다.

·동일한 논문이나 책을 바로 다음에 다시 인용할 경우: 앞의 논문(또는

앞의책), 30.

·동일 저자의 논문이나 저서를 각주 한 개 이상 건너 뛰어 다시 인용할

경우: Tillich, Systematic Theology (1957), 34.

1) 논문인용의경우

황승룡, “폴 틸리히의 신학에서의 그리스도론의 위치,”「조직신학논총」6

(2001), 101-119.

김균진,“인간복제, 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인가?”「기독교사상」506(2001, 02):

96-115.

Jack Dean Kingsbury, “The Resurgence of Systematic Theology,” I n t e r-

35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78: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McKim, Donald K.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Martin Luther.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Thielicke, Helmut. Man in God’s World. Trans. and ed. by John W. Dober-

stein. New York: Harper & Row, 1963.

Tillich, Paul. Systematic Theology, vol. 2.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7.

I I. 외국어 학술지

1. 각주

·동일한 논문이나 책의 동일한 페이지에 있는 글을 연속적으로 인용할

경우: Ibid.

·동일한 논문이나 책의 다른 페이지에 글을 연속적으로 인용할 경우:

Ibid., 34.

·동일한 논문이나 책의 글을 각주 1개 이상 지나서 다시 인용할 경우:

Tillich, Systematic Theology (1957), 34.

1) 논문/학위논문의경우:

Jack Dean Kingsbury, “The Resurgence of Systematic Theology,”

Interpretation 49 (January 1995): 229-280.

H y u n-Shik Jun, “Tonghak Ecofeminist Reinterpretation of Sin, Evil and

Spirituality in Relation to the Ecological Crisis,” (Ph. D. diss.

Northwestern University, 2001), 68.

2) 저서/편 역서의경우:

Dietrich Bonhoeffer, The Way to Freedom, trans. Edwin H. Robertson (New

York: Harper and Brothers, 1966), 32.

Helmut Thielicke, Man in God’s World, trans. and ed. John W. Doberstein

(New York: Harper & Row, 1963), 43.

Donald K. McKim,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Martin Luther

한국조직신학회투고규정 355

배치하는것으로하되, 반드시 각주에서사용된 자료만을제시한다.

2) 국문 자료의 경우 저자의 성명에 따라 가, 나, 다 순으로, 영문 및 외국

자료의 경우는알파벳순으로제시한다.

3) 저자 및 책명에는 마침표를 붙이고, 출판지, 출판사, 출판 연도를 표기함

에 있어서는괄호를삭제한다.

4) 외국인 이름 혹은 한국인의 영어명은 성, 즉 가족명(family name)을 앞

에 쓰고 이름을뒤에쓰며 그 사이를콤마로구분한다.

5) 동일한 필자에 의해 쓰인 논문/저서는 아래 하이픈( 하이픈을 6

번 누름)을 써서 동일 필자에 의한 논문/저서임을 밝히되, 최근에 출판된

것부터 먼저제시한다.

6) 논문명 혹은 책명이 길어서 둘째 줄까지 사용하게 될 때는 저자명이 잘

드러나게9칸 들여서글을 쓴다.

김균진.“인간복제, 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인가?”「기독교사상」506(2001, 02):

96-115.

. 『기독교조직신학I』. 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1985.

김철수.“우리말사도신경에삭제된‘음부에내려가사’에 대한연구.”계명대학

교 박사학위 논문, 2004.

몰트만, 위르겐/이신건 옮김. 『희망의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56.

황승룡.“폴틸리히의신학에서의 그리스도론의위치.”「조직신학논총」6(2001):

101-119.

Bonhoeffer, Dietrich. The Way to Freedom. Trans. by Edwin H. Robertson.

New York: Harper and Brothers, 1966.

Hodgson, Peter C. Winds of the Spirit: A Constructive Christian Theology.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4.

. and Robert H. King, eds. Christian Theology. 2nd ed.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5.

Jun, Hyun-Shik. “Tonghak Ecofeminist Reinterpretation of Sin, Evil and

Spirituality in Relation to the Ecological Crisis.” Ph. D. diss. North-

western University, 2001.

35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79: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한국조직신학회심사규정

제1조 목적

본 규정의 목적은 한국조직신학회학술지에 투고된 논문의 심사에 관한 제

반 사항을정하는데있다.

제2조 투고에서발송의과정

편집위원회는아래와같은 일을수행한다.

1. 논문투고안내를 학회홈페이지및 회원들에게E-mail로 공지한다.

2. 투고된 논문의 구성요소(투고 규정4조 참조)들이 미비할 경우 투고자의

수정을거친후, 논문접수를통보한다.

3. 편집위원회의에서 익명으로 처리된 각 논문에3인의 심사위원을 배정한

다.

4. 심사결과를 종합하여 편집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게재여부를 결정하며, 1

주일이내에심사결과를투고자에게 통보한다.

5. 게재 논문은1, 2차 교정을 거쳐 인쇄하며, 인쇄된 학술지는 모든 회원에

게 발송한다.

제3조 심사위원자격

본회는 논문심사를 위해 국내외 대학에서 해당 전공분야의 박사학위를 취

득한 후 5년 이상 전공 관련 주제에 관한 강의 또는 연구 활동을 계속하여 온

자 가운데 편집위원회에서 의뢰한다(양식2 논문심사 의뢰서). 심사의뢰 시 소

정의심사료를지불한다.

제4조 심사기준

심사위원은 아래의 심사기준에 따라서 기일 내에‘논문 심사결과서’(양식

3)를 제출하여야한다.

한국조직신학회심사규정 357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51.

Peter C. Hodgson and Robert H. King, eds., Christian Theology, 2nd ed.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5), 56.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vol. 2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7), 4.

2. 참고문헌작성법

*위에서 제시한한국어 논문작성법용례의 경우와동일하다.

Bonhoeffer, Dietrich. The Way to Freedom. Trans. by Edwin H. Robertson.

New York: Harper and Brothers, 1966.

Hodgson, Peter C. Winds of the Spirit: A Constructive Christian Theology.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4.

. and Robert H. King, eds. Christian Theology. 2nd ed.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5.

Jun, Hyun-Shik. “Tonghak Ecofeminist Reinterpretation of Sin, Evil and

Spirituality in Relation to the Ecological Crisis.” Ph. D. diss.

Northwestern University, 2001.

McKim, Donald K.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Martin Luther.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Thielicke, Helmut. Man in God’s World. Trans. and ed. by John W.

Doberstein. New York: Harper & Row, 1963.

Tillich, Paul. Systematic Theology, vol. 2.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7.

356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80: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사 결과는 필자 이외에 타인에게 공개하지않는다. 심사위원은 심사 대상, 내용

및 결과와관련된 모든정보를 타인에게누설하지 않는다.

제7조 심사결과통보

투고자에게심사결과를 즉시통보한다.

제8조 재심 신청

심사위원3분의2 이상으로부터‘수정 후 재심’판정을 받은 논문 제출자는

지적 사항을 수정한 후 재심을 신청할 수 있으며, 재심을 포기할 경우는 게재

불가로 판정한다. 재심을 청구할 경우 동일 심사위원의 재심을 통과해야 차호

에 게재할수 있으며논문재심 신청은1회에한 한다.

▣ 부 칙

1. 본 규정은 한국조직신학회 임원회에서 승인 즉시 발효하며, 이 규정에

명시되지아니한 기타자세한사항은 관례에따른다.

2. 본 규정은편집위원2/3 이상의찬성으로 개정할수 있다.

한국조직신학회심사규정 359

1. 논문형식심사

투고된논문의 구성요소들이미비되었을경우수정을 요청한다.

2. 논문내용심사

1) 논문구성의완성도(20점)

논문의 구성상 목차와 내용 전개가 논리적이며 참고문헌 및 문장은 적

절한가?

2) 연구주제의 타당성및 심도(20점)

주제에 관한연구가타당하며, 충실하고심도 있게이루어졌는가?

3) 학문적 독창성(20점)

주제의 선정과내용전개 및 결론제시가독창적인가?

4) 학문적 공헌도및 적용성(20점)

주제에 관한 연구가 국내외적으로 학문적 공헌도가 있으며, 교회와 사회

에 적용성이있는가?

5) 연구방법, 선행연구및 통합학문적지향(20점)

연구방법은 타당하며, 선행연구의 검토와 통합학문적 연구가 이루어졌는

가?

제5조 심사판정

1. 제출 논문은 관련 전공자인3인의 심사위원에게심사를 위촉한다. 심사점

수가 90점 이상‘게재가,’89-80점‘수정 후 게재,’79-70점‘수정 후 재심,’

69점 이하‘게재불가’로 판정한다.

2. 심사위원2/3 이상이‘게재 가’또는‘수정 후 게재’(즉 80점 이상)이면

‘게재가’로 판정하고 투고자에게 수정 부분을 고치게 한 후 게재한다. 심사위

원 2/3 이상이‘수정 후 재심’또는‘개재 불가’(즉 79점 이하)이면‘게재 불가’

로 판정한다.

제6조 비밀유지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이나 논문 제출자는 모두 익명으로 하여야 하며, 심

358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81: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①연구윤리확립에 관한사항

②연구부정행위의 예방, 조사에관한사항

③제보자 보호와비밀유지에관한사항

④연구윤리위반검증, 검증결과처리와후속조치에관한사항

⑤피조사자명예회복 조치에관한사항

⑥기타 위원회위원장이부의하는사항

제5조(구성)

위원회의 구성은 위원장을 포함하여 총 5명으로 한다. 회장이 위원장 및

위원을임명하고, 이 중 1명을택하여 필요한행정업무를 관장하게한다.

제6조(임기)

위원의임기는 해당사건의종결 시까지이다.

제7조(회의)

①위원장은위원회의 회의를소집하고 그 의장이되며, 회의를 주재한다.

②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이상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이상의 찬성으

로 의결한다. 단, 징계 판정에서 제17조의 ④- ⑥에 해당하는 의결은

재적위원 3분의 2이상의 출석과 출석위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으로 의

결한다.

③위원회의 회의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며, 필요에 따라 관계자의 출석

을 요구하여의견을청취할 수 있다.

제8조(권한과 책무)

① 위원회는 조사과정에서 제보자, 피조사자, 증인, 참고인에 대하여 출석

과 자료 제출을요구할 수 있다.

②피조사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 또는 자료 제출을 거부할 경우에는

혐의 사실을인정한것으로 추정할수 있다.

③위원회는 연구기록이나증거의 멸실, 파손, 은닉또는 변조 등을 방지하

기 위하여 그에상당한 조치를취할수 있다.

④위원회 위원은 심의와 관련된 제반 사항에 대하여 비밀을 준수하여야

한국조직신학회연구윤리규정 361

한국조직신학회연구윤리규정

제1조(목적)

본 규정의 목적은 연구자의 연구윤리와 부정행위의 규제에 관한 제반 사

항을 정하는데 있다.

제2조(적용대상)

본 규정은 본 학회에 소속되어 있는 회원으로서 한국조직신학회가간행하

는 학술지나저서에 기고하는자에한하여 적용한다.

제3조(연구부정행위의 범위)

연구에서의 부정 행위는 연구의 제안과 수행, 연구 결과의 보고 및 발표

등에서 행해진다음 각 호의행위에해당한다.

① 존재하지않는데이터 또는연구결과 등을허위로만들어 내는행위

② 다른 사람의 독창적인 연구내용과 결과를 정당한 승인 또는 인용에 대

한 정확한정보의 기재없이표절하는행위

③연구 내용 및 연구 결과에 공헌 한 사람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논문저

자/역자의 자격을 표시하지 않는 경우, 반대로 아무런 공헌이 없는 자

에게 감사 또는 예우를 목적으로 부당하게 논문저자/역자를 표시하는

행위

④ 동일 논문을 반복하여 게재하거나 이미 발표된 자신의 논문과 현저하

게 유사한논문을 이중으로발표하는자기표절행위

⑤ 학계에서 통상적으로 허용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난 부정행위로 위

원회의자체적인조사가필요하다고판단되는부정 행위

제4조(연구윤리위원회의설치와운영)

제3조의 부정행위를규제 및 조치하기 위한 연구윤리위원회(이하 위원회)

를 두며, 이 위원회는 연구윤리와관련된 다음각 호의사항을 심의, 의결한다.

360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82: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제14조(기피, 제척, 회피)

①위원에게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경우에 제보자 또는

피조사자는그 이유를 밝혀 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 기피신청이 인정된

경우에 기피신청된위원은 당해조사와관련하여배제된다.

②당해 조사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자는 안건의 심의, 의결, 조사에

관여할 수 없다.

제15조(이의제기및 소명기회의 보장)

위원회는 제보자와 피조사자에게 의견 진술, 이의 제기 및 변론의 권리와

소명의기회를 충분히보장해야할의무를갖는다.

제16조(조사, 심의 및 판정기간)

①위원회는 부정행위에 관한제보가 접수된 날로부터 6개월이내에 조사,

심의 및 판정을내려야 한다.

②제보의 접수일로부터 역산하여 만 5년이 경과된 부정행위는 원칙적으

로 처리하지않는다.

제17조(징계판정)

심의결과 부정행위로판정될 경우아래의징계들을판정할수 있다.

①경고

②논문 불인정

③일정기간논문투고금지

④제명

⑤일정 기간재가입 불허

⑥해당 기관장에게 통보

제18조(결과의 통지)

위원장은 조사결과에 대한위원회의 결정을 서면으로 작성하여 지체 없이

제보자및 피조사자등 관련자에게이를통지해야 한다.

한국조직신학회연구윤리규정 363

한다.

제9조(부정행위제보 및 접수)

제보자는한국조직신학회임원회 및 편집위원회에직접 또는서면, 전자우

편 등으로 제보하되 논문 명(또는 연구 과제명)과 구체적인 부정 행위의 내용

과 증거를제시하여야한다.

제10조(부정행위의조사)

위원회는 구체적인 제보가 있거나 상당한 의혹이 있을 경우에는부정행위

의 존재여부를조사하여야한다.

제11조(출석및 자료제출 요구)

①위원회는 제보자, 피조사자, 증인, 참고인에 대하여 진술을 위한 출석을

요구할수 있으며, 이 경우피조사자는이에반드시응해야 한다.

② 위원회는 피조사자에게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증거자료의

보전을 위하여 해당 연구기관장의 승인을 얻어 부정행위 관련자에 대

한 해당연구자료의압수, 보관등을 할 수 있다.

제12조(제보자의권리 보호)

①위원회는 제보자의 신원을 보호해야할 의무를 지니며, 제보자의 실명은

공개되지않도록 해야한다.

②제보 내용이 허위임을 알고도 이를 신고한 제보자에 대해서는 신원보

호의 의무가 요구되지 않으며, 사안에 따라 관련사실을 해당 소속기관

에 통보할수 있다.

제13조(피조사자의권리 보호)

위원회는 부정행위에 대한 사실규명의 조사가 종료될 때까지 피조사자의

명예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무혐의로 판명될 경우 피조사자의

명예회복을위해노력하여야한다.

362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83: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임원명단

회장 서창원 (감리교신학대학교)

부회장 윤철호 (장로회신학대학교)

총무 정홍열 (아시아연합신학대학교)

서기 이승갑 (장로회신학대학교)

회계 황돈형 (중앙신학교)

편집부장 이세형 (협성대학교)

대외협력부장 김성원 (나사렛대학교)

미디어부장 최광진 (호서대학교)

감 사 구춘서 (한일장신대학교)

편집위원

편집위원장 이세형 (협성대학교)

편집위원

신옥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장윤재 (이화여자대학교)

신재식 (호남신학대학교) 전현식 (연세대학교)

심광섭 (감리교신학대학교) 최인식 (서울신학대학교)

이상직 (호서대학교) 허호익 (대전신학대학교)

이오갑 (그리스도대학교) 황재범 (계명대학교)

365

제19조(재심의)

판정에 대한 재심의 요청의 경우, 판정 이후 3개월 이내에 해야 하며, 재

심의 요청이있을경우 위원회는6개월이내 재심의하여결정을 내려야한다.

제20조(비밀엄수

위원회는 제보, 조사, 심의, 판정, 재심의 및 건의조치와 관련된 일체의 사

항에 대해 비밀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갖으며, 여기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한 자

역시도 모든정보에 대하여비밀을지켜야 한다.

제21조(기록의 보관및 공개)

① 조사와 관련된 기록은 조사 종료 시점을 기준으로 5년간 보관하여야

한다.

②판정이 끝난 이후의결과는 학회 상임이사회에보고 해야하며, 제보자,

조사위원, 증인, 참고인, 자문에 참여한 자의 명단 등 신원과 관련된 정

보에 대해서는 당사자에게 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 위원회

의 결의로공개대상에서제외할 수 있다.

제22조(운영예산)

위원회 운영 및 조사와 관련하여 필요한 예산은 별도로 책정하여 지급할

수 있다.

▣ 부 칙

1. 이 규정은 2008 년 12월 19일부터 시행한다.

2. 이 규정은윤리위원회의결의로개정할 수 있다.

3. 이 규정은학회임원회의승인하에효력을 갖는다.

364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Page 184: korea systematic theological journal

한국조직신학논총제28집

Korean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2010년 12월 23일 인쇄

2010년 12월 30일 발행

편집 한국조직신학회편집위원회

발행 한국조직신학회

주소 경기도화성시 봉담읍상리 14-1

전화 (031) 299-0814

E-mail: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