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doctor (in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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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닥터 닐 사이몬 작 박준용 역 출연진 [ 등장인물] (작가 ) ( 이반 ) ( 이반의 아내 ) ( 장관 ) ( 장관의 부인 ) ( 줄리아 가정교사) ( 주인 ) ( 사제 ) ( 조수 ) ( 남 ) ( 여 ) ( 피터 ) ( 남편 ) ( 부인 ) ( 건달 ) ( 소녀 ) ( 지배인 ) ( 직원 ) ( 아들 ) ( 아버지 ) 1막 프롤로그 재채기 가정교사 치과의사 늦은 행복 겁탈 2막 물에 빠진 사나이 오디션 의지할 곳 없는 신세 생일선물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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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Good Doctor (in Korean)

굿닥터닐 사이몬 작

박준용 역

출연진

[ 등장인물] (작가 ) ( 이반 ) ( 이반의 아내 ) ( 장관 ) ( 장관의 부인 ) ( 줄리아 가정교사) ( 주인

) ( 사제 ) ( 조수 ) ( 남 ) ( 여 ) ( 피터 ) ( 남편 ) ( 부인 ) ( 건달 ) ( 소녀 ) ( 지배인 ) ( 직원 ) (

아들 ) ( 아버지 )

1막

프롤로그

재채기

가정교사

치과의사

늦은 행복

겁탈

2막

물에 빠진 사나이

오디션

의지할 곳 없는 신세

생일선물

에필로그

Page 2: Good Doctor (in Korean)

1막 1장

" 작가 "

( 작가가 자기 서재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고개를 들고 뭔가 생각하다가 관객을 본다 )

[작가] 아, 벌써들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침 글을 쓰기가 좀 따분해서 차라리 누구랑

같이 앉아 얘기라도 했으면 하던 참입니다. 보시다시피 여기가 바로 제 서재입니다. 네, 저는 매일

같이 바로 이 책상에 앉아서, 한가지 생각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난 써야한다, 써야한다. 써야만 한

다 ! 이 서재는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널빤지 하나 하나를 갖다가 직접 끼어서 맞추었는데, .. 결

과는 이 꼴로 .. 엉망입니다. 제 책상을 이렇게 구석에 놨는데, 하필이면 바로 요 위의 천장이 새어

서 비만 오면 물이 떨어집니다. 네, 바로 저도 책상을 옮길라구 했지만, 책상 밑바닥에는 구멍이 있

거든요, 그뿐 아니죠, 지금 이 집이 서 있는 데가 약간 경사진 데거든요, 그래서 비가 심하게 올 때

마다 조금씩 조금씩 아래쪽으로 밀려가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러치 않고서야, 제가 창문 밖으로 본

사람들의 얼굴이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을 리 있습니까? 정말이지 수많은 얼굴들이 저 창문

에 잠깐 스쳐 보이다가는 사라지고, 그리고는 두번다시 나타나질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기가 아

주 맘에 들고, 아주 행복한 셈입니다. 물론 저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 건 아니죠. 사실이지 사람들

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랑 마주 대하길 싫어하는 거 같아요. 글쎄요, 아마 작가라는 것들

은 그저 항상 소재를 찾느라 눈이 뻘건 줄 아는가 보지만 사실 꼭 그렇진 않죠. 네 어머님 마저도

절 대하기가 싫은지 아니면 방해가 될까 그러시는지, 발끝으로 소리도 없이 다가와서는 문밖에다

음식을 두고 가십니다. ... 그 덕에 저는 벌써 더운 음식 구경한지 오래 됐고요. 저, 그 동안 여기서

저는 꽤나 많은 글을 썼습니다. 글쎄요, 너무 많이 쓴 거나 아닌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 창밖을 보

면 세상이란 건 정말이지 무지하게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는걸 느낍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저

는 어떤 회의랄까 하는 걸 갖게되는데.. 도대체 나란 사람을 이 방에나 앉혀놓고 매일매일 지칠 줄

모르게 글을 쓰게 해서 페이지를 메꾸고 여러 가지 얘기를 만들어 내게 하는 게, 도대체 무슨 힘일

까 하는 겁니다. 질문은 거창했지만 대답은 간단합니다. 별 수 없죠. 난 작가니까. 글을 쓰는 수 밖

에 ! 어쩌면 또 제가 아무래두 제정신이 아닌 거 같다 하고 느낄 때도 있답니다. 아, 뭐 미쳐서 발광

한다는 얘긴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무슨 얘긴가 하면, 가끔 저는 정신이 엉뚱한 데로 가 버릴 때가

있다는 겁니다. 누구랑 같이 앉아서 얘길 하다가도 갑자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질 않고, 움직이는

입만 보이는데, 나는 입으로 그저 ' 네, 그렇죠. 아!" 하는 식으로 건성대답만 하면서 머리 속에서는

" 아, 이 친구는 이런 얘기에 등장하는 요런 인물로 쓰면 딱 맞겠구나 "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거예

요. 그리고는 곧 신바람이 나서 얘기를 하나 씁니다. 다쓴 다음에 그걸 교정하기 위해 한번 더 읽을

때 까지도 아주 기분이 좋죠. 그런데, 막상 그 얘기가 인쇄되어서 책으로 나와버리면 전 그렇게 챙

피할 수가 없답니다. 보면 죄다 잘못 쓴거고, 완전한 실패작인 거에요. 그래서 아, 차라리 쓰지 말

걸 그랬다 후회하면서 아주 비참해 집니다. 그런데 그걸 사람들은 열심히 읽죠. 그리고는 평을 합

니다. " 아주 훌륭한 얘기로, 톨스토이의 정신을 훌륭히 계승하고 있는 작품 " 이라는 둥, " 뚜르게

네프의 ' 아버지와 아들들 ' 에 비교될 수 있을 만한 작품 " 이라는둥 가지가지죠. 보나마나 제가 죽

으면 친구들이 무덤가에 와서 그럴껍니다. " 여기 아무개가 잠들다. 아주 훌륭한 톨스토이의 정신

을 계승한 작가였지만 뚜르게네프 보다는 못했다! " 그래서 사실 오늘 여러분이 이곳에 오시기 전

에 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일진 모르지만 아무튼 작가라는 짓거리를 고만둬야 할 때가 올

꺼라 이거죠. 그럼 그대신 뭘 하냐구요? 사실 이런 얘긴 이제껏 해본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극장에 오신 여러분께, 뭐 제가 솔직히 말씀을 드리죠. 제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일이 뭔지 아십

니까? 사실 저는 아주 어릴때부터 언제나, 언제나... 아, 잠깐만요. 메모좀 해야겠습니다. 갑자기

얘기가 하나 떠오르네요. 이거 진짜 재미있는 단편이 되겠는데요. 극장 얘길 하다가 보니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네요. 가만있자, 우리가 조금전에 무슨 애길하고 있었죠?... 아, 뭐 상관없습니

다. 그깟건 중요한게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지금 저한테 떠오른 얘기가 아주 재미있을 껍니다. 장

소는 바로 극장입니다. 어떤 연극의 첫 공연이 시작되는 어떤 극장에, 수많은 예술 애호가들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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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서 서로 인사를 주고 받으며, 무슨 작품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작품에 대해 한마디씩 떠드는데,

그중에 한 사람 예외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이반 일리치 체르디아코브!

( 두 줄의 객석 의자가 진짜 객석을 향해 놓여있다 )

1막 2장

재채기

[작가] 국가 공원 관리부 소속의 관청에서 말단 공무원 노릇을 하고있는 이반 일리치 체르디아코프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단 한가지 정열을 바치고 있는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연극구경입니다.

( 이반과 아내가 등장. 이반은 30대 중반의 사람좋아보이는 남자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있으나, 물론

주위에 있는 귀족들에 비해서는 형편이 없다. 좌석을 찾아 앉아, 부인이 프로그램을 들척이는 동안

주위의 객석들을 둘러보며 흐뭇해 한다. 이 저녁이 그에게는 무척이나 행복하다 ) 이반도 물론 승

진과 출세에 대하여 희망과 야망을 갖고 있으며 많은 일을 아주 참을성있게 열심히 해나가고 있죠.

그리고 그런 생활에서 잠시 떠나 인생의 커다란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오늘도 이 로스토브의 작

품 " 수염난 백작부인 " 의 개막 첫날 저녁공연에 가장 좋은 좌석의 표를 두장 예약했던 것입니다.

( 그때 으리으리한 장군의 제복을 한 장관과 부인이 등장 자기들의 자리를 찾는다 ) 그리고 우연이

라고 하기엔 너무도 신나고 가슴뛰는 일이 벌어졌으니, 바로 이반이 일하고 있는 공원관리부의 최

고책임자인 미하일 브라셀로프 장관이 극장에 나타난 것입니다.

( 장관 부부는 앞줄에 앉는데, 장관은 이반의 바로 앞에 앉는다 )

[이반] ( 앞으로 장관에게 구부리며 ) 안녕하십니까, 각하!

[장관] ( 고개를 돌려 이반을 차갑게 바라본다 ) 음? 뭐라구? ...아, 수고하네! ( 다시 고개를 돌려 프로

그램을 본다 )

[이반] 각하, 전 이반 일리치 체르디아코프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정말이지 큰 영광입

니다.

[장관] 내가 자네를 알던가?

[이반] 아, 저는 바로 각하께서 담당하고 계신 공원관리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각하를 위

해 일하고 있는 셈이죠 수풀과의 계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장관] 아, 그래 계속 수고하게. 수풀을 잘 가꾸어 줘!

( 장관은 다시 앞을 보고, 이반은 뒤로 물러 앉는다. 기분이 좋아서 고양이 처럼 씩 웃는다. 장관부인이

남편에게 뭐라고 묻자, 장관은 어깨를 으쓱한다. 그때 안보이는 커튼이 열리고 모두 박수를 친다.

그때 이반이 다시 앞으로 기댄다. )

[ 이반] 각하, 제 아내가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데요. 네, 제 아냅니다. 체르디아코프부인이죠.

[ 아내] ( 웃으며 ) 안녕하세요?

[장관] 반갑습니다.

[아내] 이렇게 뵙게되어서 영광입니다, 각하.

[장관] 감사합니다.

( 다시 앞을 본다. 이반은 장관부인을 본다 )

[이반] ( 장관부인께) 사모님, 제 아내 체르디아코프부인입니다.

[아내] 안녕하세요, 사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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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 차갑게 ) 처음뵙겠어요!

[아내] 네, 장관님을 뵙게되어서 영광입니다.

[이반] ( 장관부인에게 ) 전, 제 아내의 남편입니다, 안녕하세요?

( 작가가 ' 쉿 ' 하는 체스쳐를 한다 )

[장관] ( 작가에게 ) 아, 미안합니다. ( 화를 누르고 연극을 보려한다 )

[이반] 구경 잘 하십쇼, 각하!

[장관] 그럴려구 하는 중일쎄!

( 약간 화가 치미는 걸 꾹 참고, 모두 공연을 본다 )

[작가] 이런 황금의 기회를 얻게된게 기뻐서 신바람이 난 이반 일리치 체르디아코프는 느긋하게 의자

에 기대어서 " 수염난 백작부인 " 을 감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는 장관과 아는 사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말하자면 친해졌다고도 할 수 있는 셈이죠. 그런데 -! 바로 그순간, 아무런 예

고도 경고도 없이, 맑은 하늘에서 내려치는 날벼락같이, 이반 일리치 체르디아 코프는 머리를 뒤로

제쳤다가는,

[이반] 에 에 에 ... 에취!( 굉장한 재채기를 하면서, 재채기의 내용물을 장관의 대머리에 명중시킨다.

장관은 즉시 반사적으로 자기손으로 축축해진 머리를 감싼다 ) 아이구, 각하! 이거 죄송합니다. 이

거 정말 죽을 죄를 졌습니다. 이거...( 장관은 손수건을 꺼내 머리를 닦는다 )

[장관] 음, ... 괜찮아 별거 아니니까, 걱정마!

[이반] 네? 별게 아니라니, 그럴리가 있습니까? 정말이지 죽을 죄를 졌습니다. 제가 흉칙한 실수를...

[장관] 아하! 왜 이리 호들갑인가! 괜찮으니까 걱정말란 말야!( 손수건을 집어 넣는다 )

[이반] ( 자기 손수건을 급히 꺼낸다 ) 아니, 제가 어떻게 걱정을 안할 수 있습니까? 이야말로 용서 받

지 못할 죄죠! 각하, 제가 목을 닦아드리겠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제가 좀...

( 장관의 머리를 닦기 시작하는데, 장관은 그의 손을 밀어 버린다 )

[장관] 괜찮다니까, 왜 이러나?

[이반] 하지만 제 침이 튀어서 각하 머리가 온통 침투성이인데요, 정말이지 아주 불행하고, 비극적인

실수였습니다..

[작가] 쉬잇!

[장관] 아, 죄송하오!

[이반] 정말이지, 그놈의 재채기가 갑자기 튀어나왔어요. 제가 참아보려구

했을땐 이미 코 밖으로 죄다 튀어나간걸 어떡합니까!

[부인] 쉬잇!

[이반] 아, 녜, 쉿. 죄송합니다. ( 근심스럽게 뒤로 기대앉아서 우선 코를 푼다음 다시 앞으로 기댄다 )

각하, 감기가 들어서 그런건 아니니까 옮을까봐 걱정하시진 않으셔도 됩니다. 아마 콧구멍에 무슨

먼지가 들어갔나봐요.

[장관] 쉬잇!

( 모두 조용히 연극을 본다. 물론 이반은 아주 불편한 상태다 )

[작가] 아무리 아무리 연극을 보려해도 이반의 머릿속엔 오직 한가지 생각만이 점점 커지고 있었습니

다. 바로 아무런동기없는 생리적 현상인 재채기 단 한번이, 그의 머릿속에서는 점점 커져서 마치

적군을 향해 발사하는 대포의 소리처럼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

Page 5: Good Doctor (in Korean)

의 그 악몽같은 순간이 아주 천천히 느린 동작으로, 한장면 한장면 다시 지나가면서 그 끔찍함이

확인되고 있었습니다.

( 이반은 아주 느린동작으로 재채기를 반목한다. 그래서 그 한 동작 한동작이 다시 세밀하게 나타난다,

소리역시 세배는 크게 들린다. 장관은 역시 느린동작이지만, 마치 50파운드짜기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사람처럼 반응을 한다. 이 느린동작이 완전히 끝났을때, 안뵈는 커튼이 내리고 모두 박수

를 친다. 모두 일어나서 서로 다니며 얘기를 나눈다 )

[장관] 아, 연극 재미있는데!

[부인] 네. 아주 재미있었어요!

[장관] 정말야, 아주 재미있어, 그렇지?

[부인] 네, 정말 재미있었어요.

( 이반이 장관의 뒤로 다가간다 )

[작가] 아주 좋았어요.

[이반] ( 장관의 어깨를 두드린다 ) 저, 실례합니다, 각하!

[장관] 누구지?

[이반] 접니다, 각하. 체르디아코프입니다.

[부인] ( 장관을 뒤로 잡아 끌며 ) 조심해요, 여보. 바로 재채기한 사람이에요! ( 웃는다 )

[이반] 아, 이젠 또 안할껍니다! 재체긴 다 했어요. 그나저나 밖의 날씨가 쌀쌀한데 혹시 감기라도 드

실까 걱정이 되서 그렇습니다.

[장관] 하, 아직두 그 걱정인가? 여보게 그건 다 우연히 생길 수 있는 사고니까, 어쩔 수 없는거 아냐?

자, 젊은이 그런 일은 얼른 잊어버리고... 아, 연극 어땠나? 아주 재미있지? 안그래?

[이반] 네? 재미있어요? .. 아, 녜, 그렇죠.. 사실입니다. 네, 아주 재미있어요. 하하하. 정말이지 몇년

만에 웃어봅니다.

[장관] 그래? 어느 부분이 제일 재미있던가?

[이반] 어느 부분이라뇨? 제가 재채기했던거 얘기 아닙니까?...정말 죽을 죄를 졌습니다

[장관] 허어! 좀 잊어버리라니까! 자, 여보 갑시다. 비라도 올꺼 같은데, 머리가 또 젖었단 큰일나겠어!

[부인] 좀 조심들 하라구 해요, 함부로 재채기를 하다니.. 더구나 당신 머리에 재채기를 하다니... ( 나

간다 )

[이반] 아, 드디어 난 망했구나, 망했어. 난 내일 아침이면 당장 모가지야, 아니 최소한 지금 일하고 있

는 수풀과에서 한심한 잡초과로 쫓겨날꺼야.

[아내] 이반,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이반] 뭐라구?

[아내] 너무 깊이 신경쓰지 말라구요, 그저 별 생각없이 한 대수롭지 않은 재채기쯤 장관님은 벌써 잊

고 있을꺼에요.

[이반] 그럴까? 당신 생각엔 정말 그럴꺼 같애?

[아내] 하긴 저도 약간은 걱정이에요

[작가] 그래서 둘이는 걱정스럽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반] 장관님께 뭐 선물이라도 하나 해야되지 않을까? 저, 터어키 타올이라두 하나 보낼까?

[작가] 결국, 한 순간 밝게 빛나던 장래의 밝은 꿈은 산산조각으로 부숴졌던 것입니다.

[이반] ( 집에 도착해서 ) 아, 이런일이 왜 나한테 생긴담? 에이 제길할 그놈의 연극구경을 뭐하러 갔

지? 아냐 괜시리 뻐기느라 특석에 앉지말고, 그저 낮은 계급 사람답게 일반석에 앉을껄, 그래 우린

그저 평범하게 서로 재채기하면서 사는 사람들아냐?

[아내] 자, 이젠 잘시간에요.

Page 6: Good Doctor (in Korean)

[이반] 가만있어봐, 내가 직접 장관을 찾아뵐까? 직접 찾아가서 아주 예의바르고 정직하고, 효과적이

면서도 매력적으로 설명을 하면, 장관님도 별 수 없이 용서하실꺼야.

[아내] 그랬다가 혹시 다 잊어버린 장관님한테 다시 생각나게 해주는거면 어쩔라구요?

[이반] 아냐, 난 신사야, 점잖은 신사라면 신사다운 행동을 해야지!

[작가] 그렇게 그날은 갔고,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그날은 장관께서 직접 탄원을 듣는 날

이었기 때문에, 이반은 자기보다 앞서온 5, 60명 탄원을 다 끝낼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침이

가고 오후가 거의 다 갈 무렵에야 이반의 차례가 되었죠.

[장관] 자, 다음 사람!

[이반] 각하, 전 마지막 사람입니다.

[장관] 좋아, 마지막 사람!

[이반] 각하, 바로 접니다.

[장관] 그래, 뭘 탄원하러 왔나?

[이반] 전 탄원할꺼 없습니다. 탄원하러온게 아니니까요.

[장관] 그럼 뭐야? 내 시간 낭비하러왔나?

[이반] 각하, 절 못알아보시겠습니까? 바로 엊저녁에. 그.. 폭발적인 상황을 만든 사람입니다. 제가 바

로 각하께 코와 침을 뱉은 사람이라구요.

[장관] 뭐라구? 무슨얘기야?

[이반] 어제 제가 재채기를 했잖습니까? 그래서 각하 머리에 제가 코와 침을 묻혔구요.

[장관] 아, 그래? 그런데 왜 여길왔지? 뭐 감기라두 들었는지 확인하러 온거야?

[이반] 아닙니다, 각하! 전 용서를 빌러왔습니다. 제가 한 재채기속에는 아무런 정치적, 사회적 동기도

없구요, 에 어떤 적의나 폭력도 없는 아주 순수한.. 신께서 시키신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코가 생겨난 날을 저주합니다. 정말이지 이건 제가 잘못한게 아니라 제 코가 잘못한거에요 ( 자기

코를 쥔다 ) 죄 많은 이 코를 벌하시되, 코뒤에 있는 죄없는 몸뚱이는 용서하십시오. 제코를 시베리

아로 유배보내시더라도 제 몸은 용서해 주십시오, 각하, 이렇게 빕니다

[장관] 이봐, 젊은이, 내말 잘듣게, 난 자네 코에 대해 조금도 유감이 없어! 자네 코 같은 한심한 일에

신경 쓸 새가 없이 바쁘단 말야. 자, 당장 집으로 가서 뜨끈한 물에 목욕이나 하게 찬물로 해두 상

관없으니까, 좌우간... 뭐든 하라구!그리구 제발 그따위 바보같은 일로 나를 못살게 굴지 말아. 자

네 아니라도, 오늘 탄원하러온 것들이 별의 별 소리를 다 떠들고 가서 난 지금 자네따위에 신경쓸

정신이 없다구... 에이구 골치야! ... ( 걸어 나간다 )

[이반] 오, 감사합니다. 신의 축복이 각하와 사모님과 온 가정에 넘치기를, 그래서 나날이 행복하시고,

밤에는 낮보다도 더 행복하시기를...

[작가] 이제 커다란 안도감이 이반 체르디야코프를 감쌌습니다

[이반] 아침마다 각하의 창문밖에 새들이 날아와 노래하고, 각하의 커피가 진하고 뜨겁기를 빕니다.

[작가] 그렇게 무겁던 짐이 일순에 벗겨진 것이죠.

[이반] 각하가 앉았던 의자에 숭배합니다. 그리고 그 숭배하는 의자에 앉았던 각하의 바지도 숭배합니

다.

[작가] 노래하고 휘파람을 신나게 불면서 이반은 집으로 향했습니다. 정말이지 인생은 멋지고, 기쁘

고, 행복한 것이었습니다.

[이반] 오, 하느님, 전 행복합니다

[작가] 그러나!

[이반] 그러나?

[작가] 이반은 집으로 돌아와서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반] 가만있자. 혹시 내가 아주 잔인하고 인정없는 농담의 대상이 되어서 놀림을 당한거 아닐까?

[작가] 장관이 자기를 무시한거 아닐까?

[이반] 나를 벌 줄 생각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날 무시하는 태도로 막 대했지?

[작가] 재채기쯤이 정말 별게 아니라면 왜 보기싫은 것처럼 빨리 집으로 가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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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그날 밤 당한 일에 화가 나서 빈정댄게 아닐까?

[작가] 이반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이반] 몹시 화가 나는데!

[작가] 이런 생각에 업치락 뒤치락 밤을 지낸 이반은 아침이 되자 아내인 쏘냐를 불렀습니다!

[이반] 쏘오냐! ( 아내가 달려들어온다 ) 난... 무시를 당했어, 모욕을 당했다구!

[아내] 네? 무시를 당해요? 누구한테요? 도대체 누가 당신같이 친절하고 점잖은 사람을 무시하고 모

욕한단 말예요?

[이반] 누구냐구? 바로 브라씰로프 장관이야! 그자가 그랬다구!

[아내] 어머나, 뭐라구 그랬기에요?

[이반] 악당 같으니라구, 날 그렇게 교묘한 수법으로 농락하다니... 하마터면 깜빡 속아넘어갈 뻔 했다

니까... 맞아 그런 교활한 수법으로 장관까지 됐을 꺼야, .. 모든게 다 계획적이야. 내가 자기한테

찾아와 빌도록 모든걸 꾸민거구. 난 거기에 속아넘어가서는 무시를 당한 바보꼴이고!

[ 아내] 당신을 무시했어요?

[이반] 좋아! 당장 가서 얘길하겠어! 하류계급의 의견을 얘기해주겠다 이거야! ( 문에 서서 ) 이세상은

모든사람을 위해 만들어진거구, 따라서 어떤 나라의 어떤 색갈, 어떤 종교의 사람이라도 다른사람

한테 재채기를 할 수가 있는거라구!... 그래, 무시를 당해야 할껀 바로 내가 아니라 장관이라구!

[작가] 그래서 이반은 다시 그자를 무시하러 갔습니다!

( 장관이 앉아있는 책상에 조명 켜진다 )

[장관] 마지막 사람! ( 이반은 장관의 책상으로 다가서서, 약한 미소를 띈채 버티고 서서 쳐다본다. 장

관, 고개를 들어쳐다본다 ) 자넨 뭐야?

[이반] 뭐라뇨? 접니다 각하!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제 얼굴을 보세요! 네 그렇습니다, 바로 저에요.

제가 다시 왔습니다!

[장관] ( 의아하게 ) 다시 왔다구? 누구지?

[이반] ( 자신만만하게 ) 이반 체르디아코프입니다, 각하말씀대로 집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더운물이

나 찬물이나 목욕은 안했습니다.

[장관] 이 지저분한 놈을 누가 들여보냈지? 도대체 자네 뭐야?

[이반] (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 뭐냐구요? 제가 누구냐 이건가요? 네, 각하께선 거기 그 큰 책상뒤에

앉아서 ' 자네 뭐야 ' 하고 잘문할 수 있으시겠죠! 멋진 책상에다, 장관이라는 높은 자리에 귀족의

일원이니까 저같은 밑바닥 공무원에게 뭐냐고 물을수 있겠죠. 그리고 그 말 속에는 ' 이 세상에 평

등이란 없다 ' 이런 뜻이 들어 있어서, 사람이란 봉사하는 쪽이랑 봉사 받는 쪽이 있기마련이고, 명

령하는 사람과 복종하는 사람이 있고, 절하는 쪽이랑 절받는 쪽이 있는게 당연하다. 그래서 누군가

는 무시를 할 수 있는거고 누군가는 모욕을 당하는게 하나도 이상할꺼 없다는 거죠. 그래서 저한테

쉽게 얘기 하시는 겁니다 " 자네 뭐야 " 하구 말이죠.

[장관] ( 화가 나서 ) 아니, 도대체 무슨 헛소리야? 거기서서 바보같은 소리 지껄이지 말고 용건이 뭔

지 빨리 얘기해!

[이반] 네, 용건을 말씀드리죠. 전.. 전.. 저.. 재채기한걸 사과드리러 왔습니다. 요건에 확실하게 용서

를 받은건지 몰라서,.. 각하, 그건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의도적으로 한게 아녜요. 그러니 제발 저

를 용서해...

[장관] ( 일어나서 소리친다 ) 나가! 당장꺼져, 이 바보 멍청이!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지란 말야! 난 네

놈 낯짝을 다시 보구 싶지도 않으니까. 만일 또 한번 네놈 상판때기가 내눈에 어른 거렸다 하면 그

땐 진짜로 영원히 유배를 보낼꺼야! 가만있어봐, 너 이름이 뭐라구 했지?

[이반] 이반.. 체르디아아 애취! ( 다시 요란한 재채기를 한다 물론 장관 얼굴에! )

[장관] ( 얼굴을 닦으며 ) 이... 세균 분무기 같은놈. 이 곤충 같은놈. 벌레 같은놈, 벌레만도 못한놈,

... 바퀴벌레 사촌에다, 벼룩의 사위 같은놈, 구데기 조카 같은놈... 넌, 먼지같은 놈이야. 아냐 넌

먼지도 못돼! 넌 아무것두 아냐. 알아? 넌 아무것도 아니라구!

Page 8: Good Doctor (in Korean)

( 이반은 뒤로 물러서 나와, 집으로 간다 )

[작가] 그 순간 이반의 몸 속에서는 무엇인가 무너져내리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아주 깊은곳에 있는

아주 중요한 어떤것, 그래서 한번 고장나면 고칠수도 없는 그런 무엇이.. 어쩌면 생명력 바로 그 자

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무너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 이반은 코트를 벗고 소파에 앉아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

이제는 모든일이 끝난것입니다. 모든일이 한꺼번에, 영원히 끝나고 그 다음에 일어난 얘기는 간단합

니다. 이반 일리치 체르디아코프는 집으로 돌아와서, 코트를 벗고는, 소파에 누워 죽었던 것입니

다.

( 조명꺼진다 )

1막 3장

가정교사

[작가] ( 스포트 라이트 속에서 관객에게 얘기한다 ) 네, 사실 인생이란 너무나도 가혹하고 잔인한가

봅니다. 그리고 또 어떤 분들은 그런 인생의 잔인함을 무대에서까지 보고 싶어하지 않죠. 그런분들

을 위해서 이 얘기의 끝을 다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이반 일리치 체르디아코프는 집으로 돌아

와, 코트를 벗고 소파에 누워서는, 에... 5백만루블을 상속받았다! " 뭐 의미야 별로 없겠지만, 아무

튼 아주 희망적인 해피엔딩이 되긴하죠. 사실 제가 작가라고 해서 인생을 사실보다도 더 과장해서

나쁘게 그린다고는 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잖습니까? 자, 뭐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집에 들어가서, 그집 아이들을 돌보

며 공부를 가르치는 젊은 가정교사의 안타까운 사정을 보기로 하죠!

( 조명 켜지며, 주인마님께서 책상에 장부를 펼쳐놓은채 앉아있다 )

[주인] 쥴리아!

[작가] 걸려도 아주 단단히 걸려든 모양인데요.

[주인] 쥴리아! ( 젊은 가정교사, 쥴리아가 뛰어들어와 책상앞에 멈처서서는 절한다 )

[쥴리아] ( 고개 숙인채 ) 부르셨나요, 마님?

[주인] 응, 나 좀 봐, 고개를 들란말야. 내가 얘길할때 눈좀 볼수없어?

[쥴리아] ( 고개를 든다 ) 네, 마님. ( 그러나 다시 버릇처럼 숙여진다 )

[주인] 그래, 애들이 불어는 잘 배우고 있겠지?

[쥴리아] 네, 애들이 아주 머리가 좋아요.

[주인] 고개 들라니까! 애들 머리가 좋다구? 그야 당연하지, 수학은 어때? 수학도 잘들하고 있겠지?

[쥴리아] 네 마님. 특히 와아냐는 아주 뛰어난거 같아요

[주인] 그렇겠지, 걔는 날 닮았으니까. 수학에는 뛰어날꺼야, 걔는 정말 날 닮은거 같지?

[쥴리아] 네, 마님!

[주인] 고개들어! ( 고개든다 ) 그래. 바로 그거야. 사람을 마주볼땐 눈을 똑바로 보란말야. 자기가 약

하게 보이면, 약하게 대접을 받는다는거 몰라? 정말이지, 말이 없는편이군. 좋아, 자 그럼 우리, 보

수에 관해 얘길 좀 해야겠어. 이제껏 날더러 돈 달라는 소리는 한번도 안했지만, 보나마나 돈이 필

요하겠지? 자, 우리가 처음 계약한게 한달에 30루블이었지?

[쥴리아] ( 놀래서 ) 네? 40루블인데요, 마님.

[주인] 무슨소리야? 30루블이라고 여기 장부에다 써놨는데 그래! ( 장부를 가리킨다 ) 난 이제껏 가정

교사에겐 30루블씩 줘왔단 말야, 그런데 누가 40이랬어?

Page 9: Good Doctor (in Korean)

[쥴리아] 마님께서요, 전 돈얘긴 마님하고만 하잖아요.

[주인] 그럴리 없어. 아마 내가 30이라고 할때 40이라고 생각한거겠지 맨날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

으니까, 말을 제대로 못듣는거 아냐? 자, 날 똑바로 봐! 내가 다시 똑똑히 얘기할테니까! 한달에 30

루블이야!

[쥴리아] 알겠습니다.

[주인] 그럼 됐군. 한달에 30루블, 그리고 .. 여기온게 오늘로 꼭 두달이로군.

[쥴리아] 두달하고 닷새째죠.

[주인] 무슨 소리냐? 오늘이 꼭 두달짼데. 내가 여기다 죄 써놨다니까! 네가 바로 나처럼 이렇게 전부

기록은 해놓지 않으니까 그렇게 착각을 하는게 틀림없어! 자, 그럼 한달에 30루블씩 두달이니까,

60루블이지?

[쥴리아] ( 인사한다 ) 네, 마님 감사합니다.

[주인] 하지만 거기서 9일은 빼야지, 일요일이 아홉번 있었거든. 우리 일요일은 안치기로 했잖아?

[쥴리아] 네? 그런적 없는데요.

[주인] 하, 고개들어, 고개! 그런적 이 없다니! 난 항상 일요일은 안쳐왔어. 그리구 그건 아주 당연한거

니까 장부에도 적지 않았어. 내가 일요일은 근무일에서 제외한다고 얘기한게 기억안난단 말야?

[쥴리아] 네!

[주인] 그럴리 없어. 잘 생각해봐!

[쥴리아] ( 생각한다 ) 그런건 없었는데요.

[주인] 그러니까 글쎄 생각을 잘 해보란 말야. 그렇게 눈을 돌리지 말구 자, 이젠 생각나지?

[쥴리아] 네, 마님. ( 아주 약한 소리다 )

[주인] 뭐라구? 안들려!

[쥴리아] ( 크게 ) 네, 마님.

[주인] 그거봐, 생각이 다 나잖아? 그리고 휴일이 사흘있었군!

[쥴리아] 이틀이죠. 크리스마스하고 정초뿐이었잖아요?

[주인] 쥴리아 생일이 있었잖아. 그러니까 사흘이지!

[쥴리아] 하지만 전 제 생일날에도 일했는데요.

[주인] 그랬어?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난 가정교사의 생일에도 일을 시키는 사람은 아니거든.

[쥴리아] 그래도 전, 일을 했어요.

[주인] 뭐, 그런 문제가 아니지. 지금 우리가 하는얘긴 금전에 관한 거니까. 좋아! 뭐 꼭 그렇다고 우긴

다면 까짓거 휴일이 이틀뿐이었던 거로 하지, 그래 아직도 우기겠어?

[쥴리아] 전, 일했어요.

[주인] 그래, 그래, 내 우길줄 알았어.

[쥴리아] 우기는건 아녜요.

[주인] 그래? 그럼 사흘이 휴일이었어! 그러니까 ... 전부 12루블을 빼고... 다음에는 ... 꼬마 콜리야

가 아파서 나흘간 공부를 못했어!

[쥴리아] 하지만 저는 그동안에도 와아냐를 가르쳤는데요.

[주인] 그래? 하지만 원래 계약할때는 한아이만 가르치는게 아니라 두아이 다 가르치는거 였잖아? 반

밖에 일안하고는 다 받겠다 이거야?

[쥴리아] 아뇨!

[주인] 그것두 빼야겠어. 그리구 쥴리아가 이가 아팠을때 주인양반이 사흘간 오후는 쉬라고 했지?

[쥴리아] 오후 네시 이후 쉬라고 하셨죠. 전 4시까지 일했는걸요

[주인] ( 장부를 보며 ) 여기 써있는걸. " 점심식사 이후에는 쉬라! " 우린 점심식사를 2시까지 끝내잖

아? 네시까지 먹지는 않는단 말야!

[쥴리아] 네. 하지만 저는...

[주인] 그러니까 빼면 41루블, 맞지?

[쥴리아] 네, 마님 감사합니다!

Page 10: Good Doctor (in Korean)

[주인] 그리고 참, 1월 4일날 찻잔이랑 받침을 깨뜨린 게 사실이야?

[쥴리아] 네, 저... 깨뜨린 건 받침 뿐이었어요.

[주인] 하지만 받침 없는 찻잔을 뭐에 쓰니? 2루블 제하겠어! 뭐 사실은 꽤 비싼 거지만 내가 손해봐야

지, 안 그래?

[쥴리아] 죄송합니다.

[주인] 그리고 1월 9일날 콜리야가 나무에 올라갔다가 옷이 찢어졌군.

[쥴리아] 제가 못하게 했는데요.

[주인] 그런데 걘 했단 말야, 옷값 10루블! 또 1월 14일 와아냐가 신발을 잃어버렸어!

[쥴리아] 하녀가 훔쳐갔기 때문에 마님께서 해고시켰잖아요?

[주인] 하지만 내가 쥴리아한테 월급을 주는 이유는 매사를 다 살피라고 주는 거란 얘기는 처음 만났

을때 한거 같은데, 그때 내말을 듣고 있던거야, 아니면 머리를 구름 속에 쳐박고 딴 생각하고 있던

거야?

[쥴리아] 네, 마님.

[주인] 뭐? 딴 생각했단 얘기야?

[쥴리아] 아뇨, 듣고 있었어요.

[주인] 좋아, 그럼 5루블 제하겠어. ( 장부보며 ) 아, 그렇지. 내가 1월 16일에 10루블 줬군!

[쥴리아] 네? 그런적 없는데요?

[주인] 여기 써있는데 무슨 소리야? 주지도 않은 돈을 내가 여기다 줬다고 써놨다 이거야?

[쥴리아] 글쎄요!

[주인] 무슨 대답이 그래? 내가 주지도 않은 10루블을 줬다고 여기다 써놨느냐 말야? .. 왜 대답을 못

하지? 틀림없이 내가 준거잖아 안그래?

[쥴리아] 네, 알았어요. 마님.

[주인] 바로 이렇게 틀림없는 걸 갖고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바로 이렇게

내가 하나하나 따지는거야. 알아? 자 41에서 27을 빼면, 14루블 맞지?

[쥴리아] 네... 마님 ( 고개 돌리고 눈물 짓는다 )

[주인] 아니, 너 지금 우는거냐? 왜그래? 뭐 기분나쁜 일이라도 있어? 그런건 나한테 얘길해야지. 난

누가 우는건 보질 못해! 무슨 일이야.

[쥴리아] 저, 제가 여기 온 뒤로 이 집에서 받은 돈이라고는 제 생일날 주인아저씨께서 주신돈 3루블

밖엔 없어요.

[주인] 뭐라구? 그건 내 장부에 없는데.., 적어놔야겠군. ( 적는다 ) 3루블! 알려줘서 고마워, 하여간

그래도 빠지는게 있다니까! 어째 뭐가 잘 안맞더라! 그럼 14루블에서 3루블 빼니까, 11루블이군..

자, 계산이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볼까?

[쥴리아] 아녜요, 그럴 필요없어요 마님.

[주인] 그래? 그럼 됐군. 자, 여기 두달치 월급 11루블이야! ( 테이블에 동전을 쌓아 놓는다 ) 세봐!

[쥴리아] 맞겠죠, 뭐.

[주인] 잔소리 말고 세봐! 매사는 확실히 해야하는거야!

[쥴리아] ( 우울하게 샌다 )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개 뿐인데요, 마

님.

[주인] 뭐야? 하나 떨어트렸나보지, 바닥에 찾아봐.

[쥴리아] 아녜요. 안 떨어트렸어요. 마님.

[주인] 하지만 내가 틀림없이 11루블 줬는데, 책상위에 없다니 무슨 소리야? 바닥에 찾아봤어?

[쥴리아] 아녜요, 마님, 괜찮아요. 10루블이면 됐어요.

[주인] 그래? 그럼 우선 그거 갖고, 내가 바닥에서 찾지 못하면 다음달에 다시 얘길해보도록 해!

[쥴리아] 네, 마님, 감사합니다 ( 절하고, 돌아서 나가기 시작한다 )

[주인] 쥴리아! ( 쥴리아, 멈춰서는 돌아선다 ) 이라와! ( 다시 책상 앞으로 가서 인사한다 ) 왜? 나한테

감사하다는 거지!

Page 11: Good Doctor (in Korean)

[쥴리아] ... 제 월급을 주셨으니까요.

[주인] 월급? 하지만 네가 뭘 받았니? 나한테 속아서 다 뺐겼는데 이 장부에는 그런 소리 하나도 안써

있었구. 난 그저 머리속에 생각나는 대로 떠든거야! 내가 너한테 줘야할껀 80루블인데 넌 겨우 10

루블 밖엔 못 받았잖아? 나한테 70루블을 뺏기고도 나한테 감사한다 이거야?

[쥴리아] 못 받은 적도 있는데요.

[주인] 그건 나보다도 더 지독한 도둑이구나! 자 아무튼 내가한건 모두 농담이었구, 좀 심하긴 했겠지

만, 그건 다 쥴리아를 가르치려구 한거야! 세상이란 그렇게 살기쉬운게 아니란 말야, 알았어? 자,

여기 80루블이야! ( 봉투를 준다 ) 그 동전까지 합치면, 꼭 80루블이니까, 자, 받아!

[쥴리아] 감사합니다. 마님! ( 받아, 인사하고 다시 나간다 )

[주인] 쥴리아! ( 쥴리아 멈춘다 ) 쥴리아는 뼈도 없어? 왜? 세상을 그렇게 약하게 살려는거지? 왜? 반

항을 못하고, 왜, 큰소리를 못해? 자기가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잔인한 짓을 당하고 있다는걸 알면

서도 왜 아무소리 없는거지? 사람이 그렇게 약하고, 착하고, 너무 심한 얘길지는 모르지만, 밟으면

밟히는대로, 바보같이... 그렇게 끝도 없이 착해질수가 있단말야?

[쥴리아] ( 약한 미소가 입가에 흐른다 ) 네, 그럼요 마님, 그럴수도 있어요! ( 다시 절하고 뛰어 나간

다. 주인 잠시 그쪽을 본다. 얼굴에는 완전한 포기의 표정. 조명 꺼진다 )

1막 4장

" 치과의사 "

[작가] ( 조명 밑에 나타난다 ) 아, 인생의 잔인함을 보기 싫어하시는 분들을 위해, 이얘기 역시 다르게

끝낼 수 있습니다. 쥴리아는 이러한 잔인하고도 부정한 처사에 몹시 화가 났다. 그래서 당장 일자

리를 때려 치우고, 가난한 부모가 있는 시골로 돌아갔다. 그리고 거기서 500만불의 유산을 상속 받

았다! 네, 사실 전 언젠가 책을 하나 쓰면서, 설흔일곱개의 얘기가 모두 똑같이 끝나게 쓸 계획입니

다. 재미있잖아요? 사실 인간은 옷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합니다. 인간을 하등동물로 부터

분리시키는 특징이 바로 웃음이라 이거죠. 하지만 우리가 웃는 대상이 어떤건지 살펴보고 나면, 이

런 이론은 좀 잔인한 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통을 당하거나, 아픔을 갖고있는 사람을 보고 웃

는다는것은 좀 비인간적인 것 같습니다. 그런대도 그런 아픔이나 고통을 당하는 것이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면, 나는 웃을 여유가 생기게 되거든요. 만일 내가 이가 아파서 턱이 퉁퉁 부어올랐

다면, 그건 우스운일이 아닙니다. 우습긴요, 절대로 우스운 일이 될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스테

므코같이 오락이라고는 별로 없는 작은 마을에서는, 이가 아픈 사람을 보게되면 몇인간이나 웃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물론 세르게이 본 미글라소프 같은 교회의 사제에게는 자기가 바로 이가

아픈 당사자 인 만큼 전혀 웃을 일이 못되었습니다!

( 조명 켜지며, 치과 치료실 밝아온다. 한쪽에 의자가 있고 또 한쪽에는 여러가지 의료기구가 있는 테

이블이 있다. 사제인 본 미글라소프 등장, 아주 크고 육중한 남자로, 넓은 벨트와 제복을 입고 있

다. 러시아 교회의 사제인 그는 얼굴에.. 그러니까 턱에서 머리끝으로 수건을 매고 있다. 턱이 부어

있고, 무대를 걸어가며 고통스럽게 신음한다 )

병원으로 가느라 길을 지나가며 고통스런 신음을 내는 모습이 벌써 가엾다는 것을 지나 불쌍해보이기

시작하죠? 하지만 아픈 이를 뽑 있는데, 조수인 쿠리야틴은 야심이 만만한 젊은 의학도인 만큼, 경

험은 아직 부족한 것까지 알고나면, 아. 정말이지, 누가 감히 우리 사제님을 보고 있을 수 있겠습니

까!

( 작가는 대사동안에 조수 쿠리야틴이 된다. 그는 별로 깨끗치 못한 의사의 옷을 입고, 씨가 토막에 불

을 붙인다. 사제가 들어올때, 쿠리야틴은 굉장히 큰 책을 꺼내 읽고있다. 그책 표지에는 단 한 단

어, " 이빨 " 이라고 써있다! )

Page 12: Good Doctor (in Korean)

[사제] 오호호, ..오.. 오호호..!

[조수] 아, 사제님,안녕하세요? 어쩐일로 여길 다 오셨습니까?

[사제] 도저히, 아파서 참을 수가 없네, .. 참을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견딜 수 없을 정도야.

[조수] 아, .. 저, 정확히 어디가 그렇게 편찮으신가요?

[사제] 어디라니? 죄다 쑤신다구, 이빨만 아픈게 아니라, 내 입전체가 다 멍멍해.

[조수] 아, 네, 그럼 언제부터 그렇게.. 아프기 시작했나요?

[사제] 한 10년은 된거 같아!

[조수] 네? 10년이요?

[사제] 어제 아침부터인데 10년은 된거 같단 말일쎄, 아, 내가 아마 무슨 큰 죄를 지었나봐, 그래서 하

느님이 날 벌하시느라고 온갖 아픔을 다 내리신 걸꺼야! 의사 선생님은 어디 계신가?

[조수] 아, 선생님께서는 마침 개인적인 일로 출타 중이신데요, 그동안에는 환자의 치료를 포함한 모

든 일을 이.. 젊고 유능한 조수인 제게 일임하셨습니다.

[사제] 하지만 자넨 의사가 아니잖아!

[조수] 아, 뭐 면허증만 없다뿐이지, 모든 면에서 완벽합니다. 내일의 의사인걸요!

[사제] 그렇담 나도 내일의 환자가 되야겠네, 수고하라구! ( 돌아선다, 그러나 신음한다 )

[조수] ( 못가게 하려고하며 ) 아니, 사제님, 절 못믿으신다 이겁니까? 전 의사시험이라는 형식만을 아

직 치르지 않았을뿐이지, 충분한 실력이 있다는건 자신있게 말씀드립니다. 명칭만 아직 따지를 않

은거지, 나도 웬만한 의사보다도 더 자신이 있습니다. 제발,제게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저 의자

에 앉아주세요! 네?

[사제] ( 의자로 간다 ) 오, 주여, 저를 보살펴주소서! ( 앉는다 ) , 오호호.. 앉는것까지도 온몸이 아프

구나!

[조수] 신경이 곪은게 틀림없습니다. 그거야 빼버리면 곧 안아프구요!

[사제] 뭐? 내 신경을 빼버린다구?

[조수] 아뇨, 신경이 아니라, 신경에 연결된 이빨 말입니다! 그거, 아주 간단한 거에요! ( 씨가 연기가

사제얼굴에 뿜어진다 )

[사제] 악, 씨가!

[조수] 네? 왜 그러세요?

[사제] 자네 씨가 연기 땜에 눈이 멀겠다구!

[조수] 죄송합니다, 담배를 끌까요? 하지만 전 씨가를 피우면 정신이 안정되고 집중력이 생기거든요!

[사제] 그렇담 피우게, 피워!

[조수] 감사합니다! ( 수건을 풀려하나, 잘 안되자! 주머니에서 큰 가위를 꺼내 수건을 재빨리 잘라버

린다. 사제를 비명을 지른다 )

[사제] 아하하...!

[조수] 자, 어디 한번 볼까요?

[사제] ( 손을 쳐들어 막는다 ) 제발, 자네한테 빌고,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빌테니, 제발.. 살살 좀 해

주게. 아프지 않게, 응?

[조수] 사제님, 우리는 지금 진보된 과학의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발달된 기술덕분에, 아픔이란건 생

각할 수도 없게 된거죠. 아무튼 살살 해 달라면야 뭐 살살하겠습니다. 자, 준비되셨죠? ( 사제 끄덕

인다 ) 네, 좋습니다. 자, 그럼 입을 벌리세요! ( 사제, 입을 꼭 다문다 ) 어서 입을 벌리시라니까요

( 사제는 의자를 끌어 안은채 입을 열지 않는다 ) 사제님, 제가 아무리 경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최

소한 입을 벌려야 한다는건 압니다. 이빨을 고치려면 우선 입을 벌려야한다는거 아실만 한데요?

설사 입을 다문채로 이빨을 뽑아라하시는건 아니겠죠? 자, 어서 아 - ! ( 사제 입을 벌린다. 그러나

입술만 벌리고 이빨은 닫혀있다 ) 입술을 벌리란게 아니라, 입을 벌리란 말예요. 닦아달라는 거에

요?

[사제] 살살 한다고 약속하겠나?

[조수] 그 약속은 벌써 했잖아요?

Page 13: Good Doctor (in Korean)

[사제] 난, 약속하고도 안 지키는 사람을 너무 많이 봤거든.

[조수] 자, 걱정마세요, 지금은 아무것도 안할껍니다. 그저 어디가 어떤지, 또 어디를 어떻게 해야할

껀지 보겠다 이거에요, 자, 어서 입을 벌리세요! 아 - ! ( 사제, 입벌린다 ) 좋습니다 자, 어디 봅시

다! ( 조수, 들여다 본다. 사제는 고통으로 신음한다 ) 아하. 바로 너구나! 요놈, 생긴것두 아주 흉칙

하군, 니가 바로 못된놈이구나, 그렇지?

[사제] 아니 왜 내이빨이랑 얘길 하나? 그놈하구 사귈새가 어디있어? 빨리 뽑아!

[조수] 서두르지 마시고 가만 계세요, 지금 조사를 하는 중이니까! 아... 이거 이빨 가운데에 큰 구멍이

뻥뚤린게, 마차라도 지나가겠는데요. ( 갑자기 놀래서 숨을 들이킨다 ) 으휴...!

[사제] 왜, 왜 그러나?

[조수] 아닙니다. 생긴게 하두 끔찍해서요! 하지만 뭐 직업인의 긍지를 갖고, 그런 개인적인 감정은 참

겠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사제] 살살!

[조수] 아, 걱정마시라니까요! 뭐... 사제님 어머님이 하시는것 처럼 살살 해 드리겠습니다!

[사제] 안돼! 우리 엄만, 날 미워했어, 훨씬 더 살살!

[조수] 자, 우선 신경이 나와 있는지를 좀 보겠는데요, 제가 지금부터 아주 살살 불어보겠습니다. 괜찮

겠죠? 자. ( 한쪽으로 비켜서 손바닥을 불어 테스트를 한다 ) 자, 붑니다! ( 입을 모아, 살짝 사제의

입속을 분다. 그 순간 피를 짜내는 것 같은 비명이 들린다 ) 네, 역시 신경이 나와 있군요!

[사제] ( 울며 ) 그게 진보된 과학인가? 엉? 겨우 이빨을 불어보는게 발달된 기술이야?

[조수] ( 기구가 있는 테이블로 간다 ) 네, 사실은 아직도 확실한 결론에 이르지를 못해서, 의사의 입김

온도와 부는 세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거든요, 가만있자... 아, 여기있군! ( 집게를 집어든다 )

[사제] 그걸로 어쩌려는거야?

[조수] 그 썩은 이빨을 빼야죠, 뭐 침 뱉는거 만큼 빨리 끝날테니, 걱정마세요.

[사제] ( 십자가를 긋는다 ) 오! 자비로우신 하느님!

[조수] 사실 치과의사란게 별 거 아닙니다. 튼튼한 팔목만 있으면 되는거니까요! 자, 입 벌리세요!

[사제] 그래. 내, 자네를 위해 기도하겠네. ( 노래하듯 ) 하느님, 이 젊은 의사의 정신을 밝혀주시고, 힘

과 민첩한동작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특히 팔목힘이 넘치게 해주십시오.

[조수] ( 곡조를 따라 ) 아아멘!

[사제] ( 역시 ) 아아멘!

[조수] ( 사제가 ' 아멘 ' 하기 위해 입을 벌린 순간, 벌린입을 단단히 쥐고 ) 이건 쉽게 빠질껍니다. 사

실 어떤건 아주, 애를 먹이는 수가 있거든요. 뿌리가 깊은건 진짜 힙드니까, 사제님, 제발 뿌리가

얕도록 기도하세요! 자, 그럼 시작합니다!( 집게를 막 입속에 넣으려는데, 사제가 그의 손목을 잡는

다 ) 아니, 왜 이러세요? 자 이거 놓으세요, 손을 잡으면 제가 어데게 이를 뺄수 있어요? 자, 놓으

세요, 놔요! ( 놓는다. 조수가 다시 넣으려는데, 다시 손을 잡는다 ) 하! 자꾸 이러시면 안된다니까,

그러시네. 정 이러면 이 집게로 손가락을 먼저 뽑겠어요! ( 그래도 안놓자, 집게로 손가락을 집어

잡아 다닌다. 사제는 아파서 손을 푼다 ) 자, 그저 가만 계세요! ( 사제가 벌린 입에, 조수는 집게를

넣는다 ) 가만히 움직이면 안됩니다. 아, 가만. 가만계시라니까... 이 집게로 이놈의 이빨 밑뿌리까

지 꽉 잡지 않았다가는 윗쪽이 부러지게 되고, 그러면 정말이지 골치 아프게 돼요!

[사제] 오오..아..윽! ( 입을 다문다 )

[조수] ( 강제로 다시 입을 벌리며 ) 자, 제발 제가 그 이빨 밑뿔리까지 잡을 수 있게 가만히 좀 계세요.

그리고 제발이지 사제님까지 이러시면 안돼요, 자, .. 움직이지 마시고, .. 제가 셋을 세면.. 하나,

둘.. 셋! ( 조수가 잡아다니자, 이는 빠지지 않고, 사제가 의자에서 딸려 일어난다. 조수는 계속 잡

아다니고, 사제는 딸려와 의자에서 바닥으로, 다시 바닥에서 일어나 방안을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그러다 결국은 이를 잡아빼고, 사제는 비명을 지르며 넘어진다 )

[사제] 으아 - !

[조수] ( 반대쪽으로 넘어지며, 신나서 ) 아! 뽑았다! 뽑았어! 드디어 내 생애 최초의 이빨을 뽑았구나!

만세!

Page 14: Good Doctor (in Korean)

[사제] 그래, 아주 잘 뽑았네, 자네가 죽거든 지옥으로 끌려가서 똑같은 꼴을 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꺼야!

[조수] ( 집게 끝을 보며 ), 아이구, 이런, .. 큰일났네, 내 이럴줄 알았지. 그러게 제가, 움직이지 말고

계시란 얘길 했잖아요. 이빨이 윗부분만 부러졌으니, .. 아직도 뿌리가 남아있다구요. 하, 이거 참

큰일났네!

[사제] 뭐라구? 이 백정같은놈, .. 목수같은놈! 하느님이 준 벌이 모자라서 온 악마같은 놈, .. 네놈한

테 당한거에 비하면 그래도 이 아픈거는 행복했었어!

[조수] 돌대가리 농사꾼 같은 소리 마세요! 사실이지, 사제님 이빨보다도 더 단단한건 사제님 머리라

구요! ( 일어나서, 사제쪽으로 다가간다 ) 자, 말로할때 다시 의자에 앉으시죠, 아직 안 끝난거니까

요.

[사제] ( 일어나며 뒤로 피한다 ) 가까이 오지말고 저리 가! 이 악마. 다시한번 네 손이 내입속에 들어

오면, 내가 이번주 들어 처음 씹어보는 음식이 될꺼야! ( 사제, 문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조수가

재빨리 문을 가로 막는다 )

[조수] 그 이 마져 다 뽑기 전에는 여기서 못나갈줄 아세요, 이건 직업적인 체면에 관계되는 일이니까!

( 사제는 조수를 피해 도망간다. 조수가 문에서 비켜서자 다시 문으로 가다가는 조수에게 가로막히면

피하곤 한다. 다시 도망가고 따라가고 하다가는 지쳐서, 결국 둘다 쓰러진다.

[사제] 졌네! 졌어! 내가 졌다구!

[조수] 이젠... 저도, 지쳐서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사제] 그럼되나, 힘을 내야지. 자, 우리 함께 기적이 내리도록 기도를 하세! ( 사제는 무릅으로 기어서

조수의 옆에까지 가 그를 일으킨다. 둘다 손을 모으고 하늘을 향해 기도한다. )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시여,

[조수] 오, 하느님.

[사제] 제발 이 훌륭한 의사에게,

[조수] 제발 이 불쌍한 환자에게,

[사제] 튼튼한 팔목힘을 주시고,

[조수] 입을 크게 벌리도록 해 주시고, ( 조명이 꺼지기 시작한다 )

[사제] 우물쭈물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조수] 저를 깨물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사제] 성모 마리아의 은총을 내려주소서.

[조수] 성모 마리아의 은총을 내려주소서.

[사제] 성모 마리아여.

[조수] 성모 마리아여!

[사제] 주여!

[조수] 주여!

( 조명 꺼진다 )

1막 5장

" 늦은 행복 "

( 60대의 여자가 공원벤치에 혼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곧 70대의 남자가

목에는 넓은 스카프를 한 채, 모자에 지팡이 차림으로 등장, 모자를 슬쩍

만지며 인사를 한다 )

[남자] 날씨가 아주 좋습니다, 부인.

[여자] 네, 안녕하세요. ( 여자, 다시 책을 보고, 남자는 가을공기를 들이킨다 )

[남자] 아, 날씨좋다... 정말 상쾌하지않습니까?

Page 15: Good Doctor (in Korean)

[여자] ( 하늘을 본다 ) 네, .. 정말 모르고 있었네요, 아주 상쾌하군요. ( 다시 책을 본다 )

[남자] 그래도 이젠 얼마남지 않았죠... 아마, 저기 있는 저 나무들 뒤에는 벌써 겨울이 와 있을꺼에요.

[여자] ( 책을 덮고 그쪽을 본다 ) 이제는 겨울이 자꾸 길어지나봐요, 그런 느낌 안드세요? 일찍 와서

는 늦게까지 버티죠?

[남자] 네, 부인, 그런거 같아요.. 특히 요즈음 몇년은 더 그러는거 같군요...

( 어디선가 음악이 들린다 )

[여자] ( 노래한다 )

" 마음 착하고 점잖은 노인네, 세상살이를 다 겪었겠지. 마음 착하고

점잖은 노인네, 아내마져도 떠나보냈나. 친절한 말로 점잖은 태도로, 내게

말을 걸어온다면 겁많고 수줍은 내 마음은 차라도 한잔 같이 할 수 있을까? "

[남자] ( 노래한다 )

" 얌전해 뵈고 아름다운 부인, 이젠 세상이 뭔지 알꺼야. 얌전해뵈고

아름다운 부인, 언제나 여기 혼자 앉았네. 신사다웁고 점잖은 내마음

바라보다 길다고 말하면 얌전해뵈고 아름다운 부인 차라도 한잔 같이 해줄까?"

저, 한가지 여쭤봐도 되겠죠?

[여자] 네, 무슨...

[남자] 아, 저 그러니까 낮에는 쭉 시간이 있으신가보죠?

[여자] 그야, 전 시간표 같은걸 갖고 다니진 않으니까요.

[남자] 아, 그러시군요. 하긴 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물어본건 아닙니다. 저 급한일 때문도 아니구

요.

( 노래한다 )

" 다시한번 인생을 노래하기에 나는 너무 늙었고 지친게, 아닐까, 생각난다

사랑스럽던 여인, 내가 아내라 불렀던 여인.. "

[여자] ( 노래한다 )

" 다시한번 수줍은 마음이 되기에, 이제는 너무 늦어버린 일이 아닐까, 그

모든 아픔과 기쁨, 그리고 슬픔을 다시 나눌수 있을까? "

[함께] ( 노래한다 )

" 다시한번 행복을 찾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나? 사랑을 구하기에는 너무도

지쳐버렸을까? 이제 봄은 몇개 남지 않았고, 밤을 지새며 날이 밝기를 기다려

즐거움을 나눌 사람을 기다리는 것도 이제는 지나버린 일인가? 행복하기엔

너무나도 늦은일. 가을은 빨리도 다가와 무엇을 하기에도 늦어버렸네. "

[남자] ( 하늘을 보며 ) 날이 좀 흐려지려나 보죠?

[여자] 네, 공기가 벌써 싸늘하죠?

[남자] 아, 네 마후라를 빌려드릴까요?

[여자] 아녜요. 감사하지만.. 이젠 집으로 가야죠. 벌써 시간이 꽤 됐죠?

[남자] 네, 저도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저..

[여자] 네?

[남자] 네, 저 부인이랑 같이 차나한잔 할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떻습니까, 뜨듯한 차 한잔.

[여자] 차 한잔.. 고마운 말씀이에요. 저두 그러고 싶어요.

[남자] 그러세요?

[여자] 네, 하지만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은 어떨까요?

[남자] 아, 네, 좋죠. 내일 마십시다. 뭐 언제나 내일이란게 있는거니까.

[여자] 네, 그럼 안녕히!

[남자] 네, 부인.. 그럼 안녕히

Page 16: Good Doctor (in Korean)

[함께]

( 노래 ) " 아직도 즐거운 시간을 약속할 수 있고, 내일의 행복과

사랑을 기다릴 수 있어.

( 사이 ) 하지만 물론 오늘은 아니고, 언제나 내일의 약속

(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가며, 음악 사라진다 )

( 조명 꺼진다 )

1막 6장

" 겁탈 "

( 작가가 조명을 받으며 나타난다. 양복과 모자에 코안경을 쓰고 지팽이를

한채, 공원의 벤치에 앉는다 )

[작가]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남의 아내를 건드리는데 피터 쎄미요니치 만큼 천재적인 소질을 가진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친구는 물론 어떤 여자라도 해치울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하고,

유능한데다 부자요, 사회적 지위까지 물려받은 남자랑 결혼해서 살고있는 젊은 부인이라면 특히

가만놔두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 물론 그 부인이 아름다울 경우에 한해서죠! 에, 아무튼 전

뭐 그친구에 대해 얘기해봤자, 좋은 얘길 할 수가 없으니까. 직접 그친구를 소개해드리기로 하겠습

니다!

(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넣고, 목청을 가다듬은뒤, 더욱 그럴싸한 자세로

피터 쎄미요니치가 된다 )

[피터] 소개를 들으셨겠지만, 사실 유부녀를 건드리는데 제 솜씨를 따를 자가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

다. 뭐 단순한 허풍을 떠는게 아니라 지난날의 기록들이 그야말로 실패없는 완전승부의 경력을 보

증하고 있거든요. 혹시 여러분 중에서 이 좀 위험하긴 하지만 그만큼 성취감이 큰 께임에 흥미가

있는 분이 계시면, 이제부터 종이와 펜을 꺼내 제가 알려드리는 방법을 적어두시기 바랍니다. 뭐,

결혼하신 여자분들도 적어두면 약간 도움이 될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저같은 전문가에 눈에

걸렸다 하면 아무 소용없을껍니다. 아무튼 제가 쓴 방법은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데, .. 우선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첫째는 참을성, 둘째는 역시 참을성, 그리고 세째도 참을성 입니다. 끈기

와 참을성이 없다고 느끼시는 분은 아예 일찌감치, 테니스나 자전거 같은데로 취미를 바꾸세요. 유

부녀 겁탈과는 맞지 않는 사람들이니까요! 자, 유부녀를 건드릴 생각이 있을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반복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여자로 부터 가능한한 멀리 떨어지는 것입니다! 일체의 관심을

그여자로 부터 없애버리고, 진짜 무관심하게, 또 가능한한 그 여자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여자 남편에게 접근하는 것이죠. ( 시계를 보고, 무대 한쪽으로 간다 ) 이제부터 숙달된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저기 제가 아는 친구와 부인이 오는데, 내가 저 여자를 대상으로 잡았다 가정합

시다. 그럼 우선 저여자를 미치게 사랑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 여자만 봐도 가슴이 두근

거릴 정도로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 이제.. 내몸의 모든 조직과 기관은 그저 저여자에게 달려들어

껴안고 내 몸의 정열을 불사르고 싶다고 아우성입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솜씨는 여기서 달라집니

다. 겉으로는 아주 싸늘하게 변할 수 있다는 거죠! 자, 저기 제가 꿈에도 잊지 못하는 천사중의 천

사가 다가옵니다!

( 남편과 젊은 부인이 등장, 부인은 양산을 든채, 산책중이다 )

[남편] 여, 피터, 자넬 이런데서 만나다니 뜻밖이군 그래!

[피터] ( 부인은 보지않는다 ) 아, 니콜라이치 자네 오랫만이군, ,, 얼굴이 아주 좋아진거 같군그래! (

관객에게 ) 자, 제가 일부러 부인을 쳐다보지 않는다는거에 유의하십시오!

[남편] 고맙네. 그나저나 자넨 조금도 변함이 없군. 아, 참 내 집사람 이레나일쎄. 처음이든가? 아니

Page 17: Good Doctor (in Korean)

지, 전에 만났군. 베시로브 식당에서 식사때 옆에 앉았지? 여보 이레나, 혹시 이 못된 친구가 당신

한테 무슨 얘기 한 거 없지? .. 당신은 모르겠지만, 이친구는 못된 독신주의자에, 바람둥이에 또 칼

솜씨 좋기로 유명하니까, 조심하는게 좋을꺼야. 피터, 안됐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자네를 좋게 얘기

한셈 아닌가, 하하하...

[피터] 자넨 너무하는군 ( 부인을 힐끗 보며 ) 안녕하십니까, 부인? ( 모자를 슬쩍 건드린다. 그러나 거

의 부인을 보지 않는다. 부인은 고개를 까딱 하고는 돌아서서 꽃을 본다 )

[남편] 우린 지금 산책중인데, 바쁘지 않으면 같이하지.

[피터] 아 고맙네 닉크, 하지만 난 지금 여길 떠날 수가 없네. 내 인생에 새로운 사랑이 시작됐거든. 내

두다리는 납덩이 같애.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그여자가 안보일때까지 난 움직일 수가 없어 ( 관객

에게 ) 너무 심하다구요? 참을성을 갖고 계세요!

[남편] 뭐야? 자넨 항상 웃기는 소릴 하는군. 어디있어? 누구야? .. 물론 예쁜여자겠지?

[피터] 예쁘다니, 그런 흔한 말은 쓰는게 아닐쎄. 감격적이랄까? 완벽한 모습이랄까? 아냐 그래도 부

족해!

[남편] 그런데 왜 여기서 구경만 하나? 뭔가 문제 있구만!

[피터] 그야 언제나 똑같은 문제지, 그여잔 남편이 있거든. 아, 아무래도 난 희망이 없나봐!

[남편] 허허허, 자네 이젠 별소릴 다하네. 이게 내기라면 난 자네편에 걸겠네. 내가 언제 자신 없는 쪽

에 거는 거 봤나? 자, 자신을 가지라고. 우린 가야겠네, 힘내라구! ( 나간다 )

[피터] 음. ( 모자를 건드리며 ) 반가웠습니다. 부인! ( 관객에게 ) 자, 아주 멋지게 됐죠? 정말이지 전

문가가 하는일이란 뭐든지 예술의 경지에 들어가는 법입니다..., 전 쳐다보지도 않았고, 서로 말 한

마디 제대로 주고 받지 않았지만, 그 여자는 이미 저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선 제가 독

신이라는 거, 두번째는 제가 사랑에 빠져있다는거, 로맨틱한 여자가 항상 관심을 가질수 있는 얘기

죠. 그리고 세번째는 제가 뛰어난 스포츠맨이라는거! 특히 둔하게 생긴 남편이랑은 아주 좋은 대조

가 되겠죠. 다음 네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여자들한테는 위험할 정도의 매력이 있을수 있다

는거! 물론 지금으로서는 그여자 보기에 내가 기분 나쁜 사람이겠죠. 첫째, 제가 바람둥이라는거,

둘째 제가 아무에게나 너무 솔직하게 속마음을 얘기해버린다는거, 그리고 셋째는 제가 관심을 쏟

고 있는 여자가 자기가 아니란 사실때문입니다. 자, 너무 자신만만해 보인다면 용서해주십시요. 하

지만 모두 사실아닙니까? 자, 여기까지 방법을 다 잘 적으셨겠죠? 그럼 이제 부터는 약간 어려워집

니다. 이번 단계는 최면을 거는 단계거든요. 하지만 눈으로 거는 최면이 아니라, 먹이를 노리는 독

사처럼, 혀로 하는 최면술입니다. 그리고 물론 상대는 아직도 그 남편입니다. 자 제가 몇일후 아주

우연인것 처럼 그 친구를 클럽에서 만나게 됩니다!

( 클럽으로 간다. 남편은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다. 피터가 들어와 신문을

집어들고는 옆에 앉는다. 남편이 먼저 알아본다 )

[남편] 여, 피터.. 아니, 자네 왜 그리 우울해뵈나? .. 아, 요전에 공원에서 보고있던 그여자 때문이로

군! ( 웃는다 )

[피터] 내 얼굴에 써있나보군! 아, 난 절망일쎄 닉키. 지난번 자네랑 부인을 만났던 그 뒤로는 한번도

그녀를 못 봤다네. 잠도 못자고, 밥도 안먹히고... 허리띠를 일인치나 줄였다네.아, 닉키, 난 왜 평

생 내 여자가 될 수 없는 여자를 쫓느라 내 귀중한 젊음을 낭비하는지 모르겠어. 정말이지 자네가

부럽네!

[남편] 내가? 아니, 자네가 날 부러워할께 뭐있나?

[피터] 자네의 멋진 결혼이지. 정말 자네 부인은 아주 매력적이더군 그래. 이건 진심일쎄!

[남편] 그래? 아니 우리집사람의 어디가 어떻다구?

[피터] 무슨소리야? 그만큼 우아하고, 은은한 매력에, 모든걸 다 갖춘 사람이 어디있나, 특히 자네를

쳐다보는 사랑스런 그 눈길은 정말 감탄이 절로 나드군. 세상에 나를 그런눈으로 봐줄 사람이 있다

면야.. 그런 사랑과 정열의 눈으로 나를 봐준다면 난..., 그런 눈길을 받을때는 물론 여자 가슴이 떨

Page 18: Good Doctor (in Korean)

리는거까지 느껴지겠지?

[남편] 가슴이 떨리는거? ... 아니, 뭐 별로.

[피터] 에이, 설마, .. 적어도 찡하는 느낌이야 있겠지. 자넨 부인이 쳐다볼때 찡하는 느낌도 없단말

야?

[남편] 아, 그, 그야 .. 물론 찌, 찡하지!

[피터] 정말이지 훌륭한 여잘쎄. 닉키. 외로운 독신주의자의 얘기니까 믿어주게. 자네가 그런 여자와

결혼한건 큰 행운이야!

[ 남편] 아,뭐, 그 정도 행운이야 자네한테도 있겠지 뭐.

[피터] 그럴까? 아... , 이런 병원 갈 시간인데 또 늦었군. ( 일어난다 )

[남편] 아니, 자네 어디 아픈가?

[피터] .. 우울증이래! 자 그럼 부인께 안부나 전해주게, 물론 내가 한 얘긴 하지말구말야. 괜시리 그런

얘기듣구 섬세한 성격에 기분 나뻐질지 모른다구! ( 한숨 쉬며 걸어간다 ) 아, 내여인은 어디 있단

말인가? ( 남편에게서 멀리 떨어지자, 멈춰서는 관객을 보며 음흉한 웃음 ) 어디있는지야 알고있

죠! 자, 이제는 언제 그녀가 내것이 되느냐 하는 시간 문제입니다. 물론 아직도 할 일은 있죠. 하지

만 제가 직접할일은 못되고, 제 조수이자 동조자인 사람이 할껍니다. 글쎄요, 보나마나 이렇게 시

작할 껍니다. " 아, 오늘 우연히 피테 쎄미요니치를 만났어! "

( 피터의 조명 꺼지고, 침실 밝아온다. 남편과 부인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다 )

[ 남편] 아, 오늘 우연히 피터 쎄미요니치를 만났어!

[부인] ( 머리를 매만지며 ) 누구요?

[남편] 피터 쎄미요니치라구 그 독신주의자 말야, 아 왜 지난주 공원에서 만난 멋진 친구, 기억안나?

[부인] 아, 그 한심한 사람 말예요?

[남편] 허, 오늘 그친구가 당신 얘기한 걸 들으면 그런소리 못할껄!

[부인] 그런 허풍선이 같은 사람 무슨 소릴했건 관심없어요!

[남편] 그래두 그친구는 당신을 아주 좋게 본 모양이든데, 당신의 우아하고 은은한 매력에 감탄했대.

그리구 당신이 나를 보는 시선이 뭔가 특별난게 있다고 느끼는지, 뭐 당신 눈이 사랑의 시선으로

나를 볼때 그렇게 부럽다는거야. 아무튼 당시에 대해 할얘기가 많았던지, 끝도 없이 계속 떠들었

어! 자, 잡시다!

( 여자, 침대로 들어간다 )

[ 부인] 네. ( 오랜 사이 ) 그리군 또 뭐랬어요?

[남편] 응?

[부인] 내얘길 또 뭐라고 했어요?

[남편] 피터가 말야?

[부인] 피턴지... 뭔지 그 한심한 사람이 내얘길 계속 했다며요?

[남편] 글쎄, 내가 얘기한 그정도야!

[부인] 끝도 없이 계속 떠들었다면서요?

[남편] ... 그랬지!

[부인] 하지만 당신은 하다 말았잖아요. ... 한얘길 다 해보시든가.... 피곤하시면 그만 자요!

[남편] 에, 글쎄, 그친구, 내가 부럽다는 거야, 당신이 날 보는 그런 눈길로 누군가 자기를 봐줬으면 좋

겠대.

[부인] 내가 당신을 어떻게 보는지 그사람이 어떻게 알아요?

[남편] 글쎄, 아마 공원에서 만났을때 당신이 날 쳐다보는 걸 본 모양이지, 당신이 쳐다봤을때 나도 가

슴이 찡했으니까!

[부인] 찡해요? 내가 쳐다 봐서요?

[남편] 그렇다니까, 여보! 내말 못 믿어?

Page 19: Good Doctor (in Korean)

[부인] 하지만 당신은 그사람을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내가 당신을 보고 있었는지 알았을리 없고, 또

사실 난.. 그때 그 사람이 날 의식적으로 피하는거 같아서.. 약간 신경이 쓰였기 때문에일부러 꽃을

보고 있었다구요. ... 당신이 찡했다면 그건 다른거 때문이었 을 꺼에요.

[남편] 이거 얘기가 좀 복잡해졌는데, 요점은 그 친구가 당신을 매력적인 여자로 봤다는 거고, 난 당신

이 들으면 기뻐할 줄 알았다 이거야.

[부인] 기쁘긴 커녕, 차라리 그런 소린 듣지 않은 것만도 못해요... 그.. 사람 곧 다시 만나게 되나요?

[남편] 응, 내일 점심 때!

[부인] 그렇담 제발 내 얘긴 안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한테도 그렇게 전하세요... 그리고 저녁때

어떻게 됐는지 결과나 알려주세요! 자, 굿나잇!

[남편] 그래, 굿나잇! ( 침실 조명 꺼지고, 피터 조명 밝아진다 )

[피터] 굿나잇, 내사랑! ( 관객에게 ) 자, 제힘이 어떻습니까? 이제 벌써 관심을 끄는 정도를 넘어, 그

녀는 내 이름을 말하는데도 가슴이 편치 않게 되었습니다. 2분전까지만 해도 전 한심한 허풍선이

였다는 거 잊지 마십쇼. 더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저는 제 집에서 편안한 기분으로 솔잎

냄새 향긋한 목욕탕에 있었으니.. 다음날 점심식사는 맛도 있었구, 또 아주 생산적이었습니다. ( 테

이블로 가서 이미 앉아있는 남편 앞에 앉는다 ) 아, 참 어제 말야, 네크라소프가 찾아왔었는데, 그

래. 그 미술가 말야! 그런데 그 친구 아마 어떤 황실 귀족의 후원을 받아서, 그러니까 러시아의 미

를 대표할 만한 여인의 초상화를 그릴 계획이래. 그래서 아마 내가 여자를 많이 알고 있으니까 그

런지, 날더러 모델이 될만한 사람 없겠냐고 묻더군. ... 하지만 어디 나야 아직 말도 못 붙이는 꼴인

데 틀렸으니까. 자네가 한번 부인이랑 상의를 해보지 그래?

[남편] 응? 뭘?

[피터] 뭐라니? 모델 말야! 그 러시아를 대표할만한 아름다운 얼굴이 이런 기회에 온 세상에 영원히 남

을 기회를 못 가진다면, 그건 아주 애석한 거 아닌가?

[남편] 온 세계에..? 응, 무슨 소린지는 알겠는데..

[피터] 그럼 부인이랑 한번 상의해보라구!

[남편] 그러지, 내 한번 상의해 볼께! ( 일어나서 침실로 간다. 거기엔 부인이 잘 준비를 하고 있다. 남

편도 잘 준비를 한다 ) 그래서 한번 상의해 보겠다고 했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

[부인] ( 머리를 빗으며 ) 정신나간 소리 같아요! 도대체 그 사람이 뭐라고 한거에요? 정말 러시아를

대표할만한 얼굴이란 소릴 했단 말예요?

[남편] 그렇다니까, 그리구 이렇게 온 세상에 영원히 남겨질 기회를 잃는다는건 아주 애석한 일이라더

군!

[부인] 그사람 원래 그렇게 멋대로 떠들어요? .. 자 그밖엔 또 뭐라고 했어요? 딴소린 없어요?

[남편] 아... 그래, ' 그 아름다운 얼굴 ' 이란 소릴 했지. 그 소릴 꽤 여러번 한거 같아!

[부인] 진짜 별소릴 다 했군요. 도대체 몇번이나 그랬어요? 한번, 두번?

[남편] 글쎄, 그거야 기억이 안나는데.

[부인] 괜찮아요. 그깟건 중요한게 아니니까. 아무튼 다음부터 또 그런 소리 하면 아예 적어오세요!

( 조명 꺼지고, 피터쪽 밝아온다 )

[피터] ( 관객에게 ) 자, 이제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보셨나요? 제가 그녀에게 얘기하는게 보이죠? 제자

여러분들이 보시듯, 이 스승님은 여기 이렇게 떨어져 있지만 그녀는 그녀 남편의 입을 통해 전해지

는 내말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자, 이정도면 으시시하죠? 이럴땐 또 다음 단계로 2, 3주일을

해치웁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저항은 약해져가는거죠!

( 침실 밝아온다 )

[남편] ( 잘 준비 한다 ) 내가 보기엔 그 친구, 정신이 딴대 팔려 있는거 같애. 어떤 여자한테 빠졌나봐!

[부인] 여자라구요? .. 어떤 여잔지는 말 안해요?

[남편] 물론이지. 그 친구는 그런 짓 못해. 괜이 죄없는 여자의 이름이 밝혀지면 곤란하니까. 그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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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입이 무겁거든.. 그대신 그저 계속 당신 얘기만 하더군. 바보같은 친구, 좀 안돼 보이드라구!

[부인] 그거야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죠. 그나저나 내일 저녁이나 같이 하잔 얘기 했어요?

[남편] 바쁘대!

[부인] 그럼 모레는요?

[남편] 바뻐.

[부인] 그럼, 다음주, 다음달... 아니 먹지두 않고 산대요?

[남편] 그 친구 무슨 중요한 일 시작한게 있어서, 아마 몇달은 지나야 우릴 볼 수 있을꺼래. 뭐.. 좋은

일에는 의례 참을성과 인내가 필요하다나.. 아무튼 그친구 말로 당신은 무대에 서야된대!

[부인] 무대에요? 내가. 무대에? 아니 왜요?

[남편] 그야.. 가만있어봐.. 그럴까봐 내가 적어왔다구! ( 벗어놓은 윗도리로 가서 작은 수첩 꺼낸다 )

[부인] 그래요? 어디 그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고대로 얘기해보세요.

[남편] 그래. 그대로 읽는거야 "그렇게 매력적인 용모와 지성과 감각을 가진 분이 그저 가정주부 노릇

만 한다는 건 죄악이다!"

[부인] ( 손을 가슴에 댄다 ) 맙소사. 정말 그랬어요?

[남편] 그럼. 또.. " 그런 뛰어난 분은 평범하게 살라고 태어난게 절대 아니다 !"

[부인] 닉크, 저.. 더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남편] " 그야말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존재다! "

[부인] 닉크 제발 부탁이에요, 그만하세요.

[남편] 그리구 또 " 내가 바쁘지만 않았다면, 자네한테서 그녀를 뺐겠다! "

[부인] 아니, 정말 그랬어요?

[남편] 글쎄, 그대로 읽었다니까! ( 수첩 뵈준다 )

[부인] 그래서 당신은 뭐랬어요. 닉크, 이건 아주 중요한거니까, 말해봐 당신은 뭐라고 대답했어요?

[남편] ( 웃으며 ) 뭐 자내같은 칼잡이랑 결투해 봤자 질께 뻔하니 그냥 내어주겠다고 했지! ( 다시 웃

는다 )

[부인] 닉크, 당신 그사람이랑 두번다시 내얘기 하면 안돼요! 제발 부탁이니까 절대로 내이름을 꺼내

지 마세요! 네?

[남편] 얘긴 내가 꺼내는게 아냐. 항상 그친구가 먼저 꺼낸다구. 사실.. 오늘 나한테 막 따지드라구. 내

가 당신을 이해못한다는거야" 큰 소리로 고래고래 떠들기를, 당신은 정말 가장 뛰어난 여자이고 자

립심 강한 여자이기 때문에 나갈 길을 찾고 있다는거야. 그리고... ( 수첩을 본다 ) " 내가 만일 뚜

르게네프라면 소설로 쓰겠다. 그리고 ' 정열의 천사 ' 라고 부르겠다" 는거야. 정말이지 이상한 소

릴하는 이상한 놈 아냐?

( 부인은 수심에 잠겨 고개를 떨군다. 조명 바뀐다)

[피터] ( 관객에게 ) 자, 제가 키스로 봉한 사랑의 편지가 드디어 전달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진짜 이상

한 사람이 된거죠.. 자 그럼 이제 어디까지 왔는지 알아볼까요? 이제 이 가련한 여인은 완전히 저

를 만나보고 싶은 생각에 온 정열이 끓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남자는 이세

상에 저 밖에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남편은 흥미없이 하품하며 전달한 내용이지만, 그녀에게 들리

는 것은 내 목소리이고, 제가 한 말은 이제 모두 그녀의 가슴속에서 노래가 되어 합창을 하고 있습

니다. 하하. 달콤한 독이 효력을 내는거죠. 이젠 사정볼거 없습니다. 하긴 뭐 이 겁탈이란 업종에

사정봐준다는 건 어울리지도 않죠! 그럼 이제부터 스승님의 마지막 처리 솜씨를 보시겠는데, 혹 마

음이 약하신 분은 고개를 돌리는게 좋을껍니다!

( 침실 밝아지며, 역시 잘 준비한다 )

[부인] 제발 닉크, 전 듣고 싶지 않아요. 이젠 그사람 얘긴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다구요.

[남편] ( 옷 벗으며 ) 허! 바로 그거야! 그친구가 바로 나한테 제발 당신한테 아무말도 말라고 했어! 그

친구, 당신이 너무 착하고 또 예민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고민한다는 얘길 들으면 못 참는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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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부인] 그 사람... 고민해요?

[남편] 고민 정도가 아냐! 아주 우울하고 맥빠져 있는게, 완전히 절망 상태드라구.

[부인] 맙소사, 아니 왜요? 왜 고민한대요?

[남편] 외로우니까 그렇대. 친척도 없고, 진실한 친구도 없고, 이세상 가득 자기를 이해하는 사람은 하

나도 없다는거야!

[부인] 아니, 그사람은 제가, 아니 우리가 완전히 이해한다는걸 모른단 말예요? 그래서, 제가, 아니 우

리가 매일 그사람생각을 하면서 지낸다는거 또 제가 아니 우리가 같이 있고 싶어한다는걸 모른단

말예요?

[남편] 나도 그렇게 얘길 했어. 그리구 사실 억지로 끌고와서 같이 식사라도 할려구 했는데, 그친구는

사람을 만나는게 싫대. 너무 마음이 무거워서 집에서도 편치가 않고, 그저 저녁때 우리랑 만났던

공원에 나가는게 고작이래!

[부인] 저녁에요? 몇시에?

[남편] 여덟시 쯤이라드군. ( 침대에 들어간다 ) 아, 그리구 참 내일 보스코베스 집에서 파티가 있는데

8시에 갈수있겠어?

[부인] 안되겠어요. 전 내일 소피아 아주머니 아픈데 가기로 했거든요. 아마 아홉시나, 아니면 더 늦게

올지도 몰라요!

( 침실 조명 꺼지고, 공원을 거니는 피터에게 조명 켜진다 )

[피터] ( 관객에게 ) 아, 박수는 사절하겠습니다! 뭐 저혼자 힘으로 한것도 아니니까요. 아무튼 이 기쁨

을 제 훌륭한 친구이자, 공범자인 그 남편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그친구가 그렇게 헌신적으로 제

감정을 전달하지 않았드라면 이렇게 빨리 이루어지지는 않았을껍니다... 그친구 덕분에 그녀는 제

품을 향해 달려온 것입니다. 보세요!

( 외투를 입은 부인이 들려들어와 우뚝서서 숨을 멈춘다 )

자, 이제 다 끝난거고, 이제 남은건 개인적인 문제니까, 이 신사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여러분께서는

뭐 프로그램이라도 들척거리면서 딴대 좀 봐주십시오! ( 부인을 향해 선다 ) 오, 내사랑! 나의 천사,

이제야 하고 싶은 말을 다 할수 있게 됐군요!

[부인] 아무 말씀 마세요. 제발!.. 전 못견딜꺼 같아요. 그러니 우선 제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먼저 들어

주세요! ( 잠시 자세를 가다듬어 ) 이 괴로움을 벌써 몇주일 동안이나 당했어요. 당신은 제 남편을

이용해서 아주 교묘하게 제 정열을 불러 일으켰고.. 사실 지난 7년간 제 마음속에 그런 정열이 감

춰져 있었던것도 인정해요. 당신이 진실이었건 아니었건, 당신때문에 저는 이제껏 가능하리라고

꿈도 꿔보지 못한만큼 큰 사랑과 욕망이 생겨난거에요, 숨겨진 제 정열에 호소하자 전 깨어났고,

말도 못할 기쁨과 사상으로 절 휘저어서 전 빨려들었어요. 그리구 제 모든 약점을 잡혔기에 전 이

제더이상 버틸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전 여기 왔어요 피터 쎄미요니치, .. 절 원하시나요?

( 피터, 그녀에게 한걸음 다가선다. 그러자, 그녀는 손을 들어 그를 멈추게 한다 )

저, 한마디만 더 하게 해 주세요... 전 제남편을 몹시 사랑해요. 그인 정열적이지도 않고 또 로맨틱한

거랑은 멀어요. 우리 생활은 행복의 절정도 아니지만 불행의 구렁텅이도 아니에요. 그저 평범한 결

혼생활이지만, 서로 타협하고, 평범하게 살면서 그이의 헌신적이 사랑이 더해져있기에 전 행복했

어요. 그리고 여기오면서 저는 제가 당신의 품에 단 한번이라도 안기는 그순간 그런 생활과 닉키를

완전히 잃는다는것도 알고 있었어요. .. 하지만 그런 어려운 문제를 결심하기에 저는 너무 약하고

또 너무 욕심이 많아서... 전 이제 모든 당신께 맡기겠어요.. 결국 모든건 당신께 달려있어요. 피

터, 어느쪽을 택해도 당신은 저를 비참하게 그리고 동시에 기쁘게 만드는거죠.. 하지만 제발 저를

단순한 놀이상대로 보진 마세요.. 물론 그렇게 본다고 해도 전 거절하지 못할꺼지만요.. 피터 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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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니치, 전 이제 당신꺼에요. 그러니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절 원하신다면 두팔을 벌리고 절 안아

주세요. 그리고 절 사랑하신다면 제발 돌아서 주세요. 그럼 전 여길 떠나서, 다신 당신을 만나지도

않고 얘기도 안하겠어요, .. 사랑해요 피터, 제가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당신께서 결정을 하세요.

( 피터, 그녀를 바라보다가는 관객을 본다. 어떤 충고를 기대하나 있을 리 없다. 다시 그녀를 향해서서

팔을 벌리려 하나, 마치 무거운 납덩이라도 달린듯 되지가 않는다. 몇번 시도해보다가는 포기한채,

결심을 하고는 돌아선다! )

고마워요 피터, 당신이 제게 주신것만큼 커다란 행복이 당신에게도 찾아오기를 빌겠어요!

( 부인, 돌아서서 달려나간다. 피터는 서서히 관객쪽으로 돌아서며, 주머니를 뒤져 안경을 꺼내 쓴다

음, 작가가 된다 약간 늙어뵈지만 역시, 옛날 피터의 매력을 갖고있는 셈이다 )

[작가] 이리하여 전직 유부녀 겁탈 제 1인자이던 피터 쎄미요니치는 그날부터 마음을 고쳐먹고, 미혼

여자만을 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아주 완벽한 여자를 만나게 되자, 독신주의를 팽개치

고 결혼했습니다. ( 걸어나가기 시작한다 ) 그래서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어쩌다 젊은

친구가 자기한테 부인이 아주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라고 얘기를 하면 몹씨 화를 낸답니다!

( 조명, 서서히 꺼진다 )

2막 1장

" 물에 빠진 사나이 "

( 조명 밝아지며, 부둣가 한쪽의 뚝이 나타난다. 저녁무렵이고 안개 속으로는 멀리 항구와 배의 불빛이

보이고, 가끔 안개경보가 울린다. 작가가 지팽이에, 싸늘한 바닷바람을 피하기위한 큰 코트를 입고

나타난다 )

[작가] ( 서서 바다를 바라보다가 객석을 향한다 ) 네, 머리좀 식힐겸, 바람 좀 쐬러 나왔습니다! ( 심호

흡한다 ) 아, - . 상쾌하군요. 정말 좋습니다. 이 시원한 바다바람에 정말 온몸이 다 되살아나는거

같습니다. ( 다시 심호흡 ) 자, 몸에는 힘이 나는데.. 머리 속은 꽉 막혀있으니 어쩌죠? 아무런 생각

도 아이디어도 나오질 않다니 정말 저답지 않은데요, 보통은 너무 생각이 많아서 흘러넘치는 우물

같은데... 오늘 밤엔 아무것도 없이 멍합니다.. 있다면 그저 뭔가 써야한다는 의무감만 있거든요,

.. 하지만 뭐 너무 걱정마세요. 뭔가 떠오르겠죠. 항상 그래왔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될껍니다. 사실

이런 일은 작가라는 직업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는 일이고 그래서 이걸 ' 작가의 벽 '

이라고 부르는데... 뭐, 대단한건 아닙니다. 곧 이겨낼 수 있는거니까요.. 그리구, .. 아! 잠깐, ..

네.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르는군요.. 네. 음.. 아하... 아, 이런 쯧쯧.. ! 죄송합니다. 엉터리에요. 엉

터리 정도가 아니라 아주 나쁜 아이디업니다. 아이디어 자체도 한심한 거지만, 벌써 한번 우려먹은

거니, 아, 큰일인데요.. 하지만 뭐 오래가진 않고 잠시뿐일껍니다. ... ..그나저나 잠시치고는 꽤 길

모양인데요.. 아무런 생각도 안난다.. 이거 신경이 곤두서는데요.. 오, 하느님 절 도와주십쇼! 아,

아닙니다. 취소, 취소! 참 한심하군요, 하느님한테 얘기를 쓰기 위한 아이디어를 달라다니, 욕심도

너무 심했죠?.. 주여, 용서하십시오, 당장 집으로 가서 잠이나 자겠습니다. 내일은 또 새로운 날이

니까요.. 하지만 저, 혹시 밤동안에 좋은 아이디어 하나 떠오르시면 좀 알려주십시오, 아이디어를

위한 아이디어라도 좋습니다 그리구 뭐 꼭 오리지날이 아니라도 좋아요, 전 원래, 얘기를 슬쩍 바

꾸는데 소질이 있으니까요... 아... 이거, 제가 지금 무슨소릴 했군? .. 급하다보니 하느님 한테 표

절까지 하자구... 아무래도 이거 증세가 더 심해지기 전에, 집에가서 잠이나 자야겠습니다 ( 돌아서

서 나가려는데, 어떤 물체가 어둠속에서 그를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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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 이보셔, 나으리, 시간있으면 잠깐 얘기좀 합시다!

[작가] ( 돌아서서 본다 ) 거기 누구요? .. 당신, 사람이요?

( 그림자가 불빛으로 나온다. 낡은 옷에 면도도 안했고, 장갑은 손가락이 죄다 나와있는데 꽁초를 피우

고 있다 )

[건달] 아, 날씨 좋습니다, 나으리... 에 혹시 재미보실 생각 없으슈?

[작가] ( 의아스레 ) 재밀보다니, 무슨소리하는거요? ( 돌아선다 )

[건달] 끝내줍니다. 아주 삼삼하고 짜릿하니까, 기분전환하는덴 최고죠. 어때요?

[작가] 뭔지 모르지만 난 관심없으니까, 저리 비켜요, 나같이 점잖은 사람한테 그런 소리 해봤자 아무

소용 없을꺼요.

[건달] 헤, 그래두 이렇게 진진한건 못보셨을텐데.. 내 구라치는게 아니라 진짜 평생 한번 볼까말까한

삼빡한거라구요, 에이 나으린 궁금증도 없으슈?

[작가] 아, 난 원래 직업상 궁금증이 필수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도덕적으로 타락할 만큼 바보는 아니

라오! 자, 실례합니다.

[건달] 아, 역시 겁이 많으시군! 하긴 심장약한 사람한테는 너무 자극적일꺼요!

[작가] ( 재빨리 돌아선다 ) 아, 잠깐!

[건달] 헤헤, 그 소릴 들으니 못 참겠죠?

[작가] 좋습니다. 사실 궁금해서 묻기만 하는건데.. 그.. 재미란게 도대체 뭐요?

[건달] ( 가까이 닥아와 은밀히 얘기한다 ) 저, .. 물에 빠져 죽은 사람 구경하는 거라오!

[작가] ( 그를 쳐다본다 ) 뭐라구요?

[건달] 물에 빠져죽은 사람요, 짠 바닷물이 폐에 가득차서, 온몸이 퉁퉁 부어 죽은거.. 싸게 해드릴께!

[작가] 아니 그러니까 돈내고 물에 빠진 사람을 본다는거요? .. 당신 미쳤군, 여보쇼, 돈을 받아도 그

런거 구경할 생각 없오. .. 아니 도대체 뭐하러 그런걸 보라는거구. 왜 내가 그걸 보겠오? 제정신

아닌가본데. 당장 꺼져요!

( 그를 지팡이로 밀어내고 걸어간다. 그러나 건달 다시 앞을 막는다

[건달] 나리, 3루블에 해드릴께, 네? 단돈 3루블만 내면 말에요, 쌩쌩한 놈이 하나 물에 뛰어들어서는,

아등바등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은 비참하게 빠져죽는걸 처음부터 볼 수 있다구요!

[작가] 아니, 그럼.. 그 사람이 벌써 빠져죽은게 아니라, 아직도 살아있다는거요?

[건달] 죽다뇨, 무슨소릴, 멀쩡히 살아서, 아주 팔팔한대다 아직은 물 한방울도 안묻은채로 이렇게 나

으리 앞에 서있지않습니까, 네, 바로 제가 빠져죽는 사람이라구요!

[작가] 당신이? 오, 그러니까 나한테 3루블 받고 물에 빠져 자살하겠단거군요, 헤, 자살하고 싶으면 하

지 뭐 돈을 받으려는거요?

[건달] 에유, 나으리, 건 오해요, 누가 진짜 빠져죽나요? 그저 빠져 죽는척 하는거지, 저 찬물속으로

뛰어들어가서, 잠시 물장구를 치면서 팔을 버둥대구, 살려달라고 소리치다가는, 부글부글부글 물

속에 잠겼다가는 머리를 밑으로 하고 둥둥 떠올라 흐늘흐늘 하는건데, 어때요 듣기만 해도 짜릿하

고 서늘하죠? 자, 개인관람은 3루블이고 단체관람은 요금이 다릅니다. 자 2분만 있으면 시작할껀

데, 안볼꺼요?

[작가] 가만 있자, 그러니까, 내가 지금 물에 빠져죽는 가격을 흥정하고 있는거요?

[건달] 하, 뭘 모르시는군. 이건 그냥 흔해빠진 싸구려 오락이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내면에 우리의 사

회상을 표현하는 뭔가가 있고, 비극이면서도, 보는이의 눈에 따라서는 아이러니가 들어있는 코메

디라 이거죠.

[작가] 당신 아주 유식하구만, 그나저나 이게 뭐가 코메디요? 난 하나도 안 우스운데!

[건달] 아, 입이 딱 벌어지고, 뺨이 불룩거리겠다, 눈알이 튀어나오는데 그게 안 우스워요? 게다가 찢

어지는 소리로 살려달라고 고래고래 악쓰는게 꼭 돼지 같다구요. 뭐.. 사실 이근처에서 그런 솜씨

를 가진건 나밖에 없수!

[작가] 당신보기엔 내가 물 속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 내는거에 돈을 낼 사람 같소?

[건달] 아니, 그럼 장사가 안되는데 내가 이짓하는거 같수? 올씨즌엔 그래두 꽤 벌이가 좋았죠. 8월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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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진이었구요. .. 어떻습니까, 아예 디너쑈로 예약을 하시겠우?

[작가] 디너 쑈요?

[건달] 뭐 내가 물에 들어가서 허부적거리다 생선을 한마리 던져주는거죠, 요샌 여기 넙치가 많아요.

[작가] 도대체 내가 여기서 지금 뭘 하는지 모르겠소!

[건달] 그러니 어서 결정을 하셔야지. 이제 5분만 있으면, 식당에서 쓰레기를 갖다버리는 시간이라,

물이 더러워져요. 저도 일을 깨끗한 분위기에서 하고자 하는 정도의 프라이드는 있으니까!

[작가] 프라이드! 프라이드 있는 사람이 이렇게 지저분한 수영선수 흉내내며 먹고 산다는 거요?

[건달] 아, 나리는 아주 잔인한 사람이구만요. .. 거 남의 직업에 대해 그렇게 약점을 잡는거, 그거 나

쁜짓이요, 진짜 잔인한거라구요.

[작가] 잔인하다니, 난 그런건 아니었는데.

[건달] 좋쉬다, 뭐 제 직업에 단점이 있다는거 인정하갔수! 하지만 말이요,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가 하

루일 끝내고 나오는거 보셨우? 온몸뗑이가 새카만거는 고사하고, 콧구멍 귓구멍까지도 석탄가루

가 꽉 끼었죠. 웃을때보면 이빨 사이에두 새까맣게 끼어 있쉬다. 진짜 구역질 난다 이거요. 또 이발

사는 어때요? 남의 머리카락 만지다 집에 돌아가서 저녁이라도 먹을라치면, 이건 빵에, 국속에, 접

시에 머리칼 투성이라, 메슥메슥하죠. 또 외과의사는 일할때 손을 어디다 쳐넣구 일하는지 아슈?

[작가] 아, 제발 좀...

[건달] 또 농부가 발을 디디고 일하는 땅에 뭐가 있는데요? .. 자. 보슈. 결국 사람이 일을 한다는건 뭔

가 더러운걸 건드린다 이건데, 나야 닿는게 물 밖에 더 있우? 뭐 몸을 적시긴 하지만, 물이란 깨끗

한 거에요. 순수하다 이말요. 일 끝내고 집에가서 목욕할 필요없는거구.. 어떻게 생각하쇼?

[작가] 난, 뭐 당신한테 내 용변습관에 대해 토론할 생각은 없어요. 아무튼 당신 때문에 지금 기분이

좋질 않아요. 여기 어디 마차가 있을텐데.. ( 소리친다 ) 마차! 마차!

[건달] 후회할꺼요, 나으리, 지금 이대로 가게돼도, 몇일 지나면 세상살이가 죽도록 지겨워서는, 비참

하게 물에 빠져죽는 꼴을 한번 보고싶다 하고 느껴서, 여기 다시 와 봤자, 난 없을테니까.. 여기서

의 공연은 오늘이 마지막이요. 내일은 일요일이고, 다음주는 얄타로 갈 예정이라우! ( 뒷쪽에 순경

이 나타난다 )

[작가] 이봐요, 저기 순경오는거 보이죠? 내 앞에서 당장 사라지지 않으면 공갈죄로 고발할꺼요!

[건달] 아니 누가 공갈쳤다구 그래요? 난 해양오락사업중인데!

[작가] 물에 빠져죽는게 해양오락이요? 당신이야말로 해양 정신병자야,

여보쇼, 순경! 순경!

[건달] ( 피하기 시작하며 ) 알았에요, 알았다니까, 젠장, 물에 빠져죽는 장사도 전 같지 않구만! ( 둑넘

어로 사라진다. 경관이 급히온다 )

[경관] 무슨 일입니까?

[작가] 네. 저 둑 넘어에 웬 남자가 있는데.. 자꾸 나한테 치근치근 따라붙으면서 수상한 소릴 합디다!

[경관] 아이구, 조심하셔야지, 이 근처는 원래 못된놈들이 우굴거리는데니까, 선생님 같이 점잖은분이

오실데가 못됩니다. 그래 무슨 소릴 했죠?

[작가] 글쎄, 기가 막혀 말이 안나와요, 내가 3루블만 내면 물에 빠져죽겠다는 거에요.

[경관] 뭐요? 아니... 3루블이라니, 60코펙이면 돼요! 지가 아무리 멋있게 빠져죽어도 60코펙이면 충

분한데.. 3루블이라니, 나쁜놈!

[작가] 아니, 저, 내말은 그게 아니고.

[경관] 저쪽 뚝에는 형제가 한꺼번에 같이 빠져 죽는대도 2루블이면 되는데.. 아무튼 이런 놈들이랑

흥정할땐 조심해야 함니다. 돈을 가치있게 쓰셔야죠!

[작가] 난 지금 가격얘길하는게 아니에요.

[경관] 3루블이라니, 요전에 열네명이 완전한 난파선의 침몰을 재현했을때 바로 3루블 냈다는데.. 그

리구 날씨 좋을때는 10루블만 내면 해군 군함이 침몰하기두 하죠. 아무튼 한사람 빠져죽는데는 60

코펙이면 뒤집어써요. 자, 뭐든 제값을 알아야 공정거래라는게 될텐데.. 그럼 수고하십쇼!

( 경관은 모자를 슬쩍 건드리고는, 반대쪽으로 나간다. 작가는 멍청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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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어쩔줄 모르고 있다

[작가] 아, 드디어 말세가 왔구나, 온세상이 완전히 돌아버렸어!

( 건달이 다시 기어나온다 )

[건달] 하하.. 순경이 갔죠? .. 그래 순경더러 뭐라고 했우?

[작가] 뭐라고 하긴, 사실대로 말했지. 당신 머리가 좀 돈거 같다구! 그랬더니 그 순경은 당신보다 더

돌은 모양입디다!

[건달] 아무튼 뭐, 제게는 귀찮은 일 없었으니 다행이에요. 뭐 손님께 감사하는 의미에서 내 가격을 대

폭 할인해드리지! 80코펙어때요?

[작가] 80코펙? ( 소리친다 ) 80코펙이 어디서 거저 생기는줄 알아? 이 날강도 같으니, 당신같은 사기

꾼한테는 60코펙이상 못내!

[건달] 60코펙이라니, 빠져죽는데 고거 밖에 못낸다면 난 손해에요, 수건한장에 40코펙이고, 날 건져

주는 친구한테 40코펙 주기로 했으니, 20코팩 손해보느니 차라리 물속 깊이 들어가서 안나오는게

편하겠수!

[작가] 날 속일 생각 말고, 60코펙에 빠질래면 빠지고 말래면 마쇼!

[건달] ( 투덜댄다 ) 거, 손님 너무 빡빡하기도 하시지... 에라, 좋쉬다! 까짓거 60코펙에 밑지는 장사

한번 해봅시다! ( 손바닥내민다 ) 내, 죽어도 아들한테는 이직업 안물리겠우!

[작가] ( 돈준다 ) .. 30, 40, 50, 60 맞죠? .. 자, 어디서 할꺼요?

[건달] ( 돈을 손수건으로 묶어 주머니에 넣는다 ) 아무대나 둑 가까이 서쇼! 가까이 서야 잘 뵈니까! (

둑 끝으로 걸어간다 )

[작가] 이거 좀 어두운거 같은데, 틀림없이 잘 뵈는거죠?

[건달] 염려마시라니까, 그리구 사실 좀 음침해야 더 무드가 있는거 아뇨? 아무튼 길어봤자 한 10초

정도니까 잘 보기나 하쇼. 자, 갑니다.. 아차, 깜빡 잊을뻔 했네, 제가 물속에 잠겼다 세번째로 떠오

르면 말에요. 포프니체프스키, 포프니체프스키, 하고 소리를 크게 지르세요!

[작가] 포프니체프스키라니, 그건 또 누구요?

[건달] 아, 날 구해줄 친구죠, 전 수영을 못하건든요.

[작가] 수영을 못한다니, 아니 수영도 못하면서 지금 물에 뛰어들겠다는 거요?

[건달] 그래야 실감나죠, 포프니체프스키란놈 지금 아마 저기 저 술집에서 한잔하면서 기다리고 있을

꺼에요, 그래서 부르는 소리 들리면 뛰어올꺼니까, 자, 포프니체프스키니까 이름 잊지 마시구, ..

그럼 구경 잘 하슈, 그리구 맘에 드시면 친구분들한테두 선전좀 해주시고.. 자, 그럼.. ( 뛰어들어

소리친다 ) 사람살려! 아악... 난 수영못해요! .. 사람살려 - !

[작가] 여보쇼, 잘 안보이니까 이쪽으로 좀 와요!

[건달] 아푸, 아푸, 사람, 사람살려 - ! 아악...

[작가] 아, 진짜 같구만 그래! 잘하는데, 자, 이제 허부적거리는건 됐으니까 빠져죽어봐요! 나, 시간없

으니까 빨리해요!

[건달] 아푸푸, 꼬로록

[작가] 여보쇼! 내말 안들려요? 이젠 빠져보라니까.. 아니 어디갔지? 아, 거기 떠올랐군.. 이제 세번째

요? ( 포프니체프스키를 부르려다가 ) 가만있자, 그 친구 이름이 뭐랬드라!

( 조명 꺼진다 )

2막 2장

" 오디션 "

[목소리 ( 작가의 )] 다음분! ... 다음 여배우 지원자 나오세요!

( 젊은여자 등장, 무대중앙까지 걸어나온다. 초조한듯 작은 손지갑을 꽉 쥐고 있으며, 어디를 봐야할

Page 26: Good Doctor (in Korean)

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면서도 이것이 첫 오디션인만큼 억지로 웃으려하며, 또 좋은 인상을 보이

려 한다. 하지만 손수건으로 계속 이마를 닦는다 )

[목소리] 이름!

[소녀] ( 질문을 이해 못하고 ) ... 네?

[목소리] 아가씨 이름 말야!

[소녀] 아, 니나요.

[목소리] 니나, 그거뿐야? .. 니나 뭐야?

[소녀] 네, 아. ... 저, 니나 미하일로브나 자레크나야에요.

[목소리] 나이!

[소녀] 제 나이요?

[목소리] 그래, 지금 나이가 몇살이냐구.

[소녀] ( 생각한다 ) 몇살된 사람을 찾으세요?

[목소리] 그냥 간단히 질문에 대답할수 없나?

[소녀] 네, 하지만 전 어떤 나이의 역할도 할 수 있거든요, 열여섯 살, 설흔 살... 그리구 전에 학교서

연극할 땐 류마치스에 걸린 일흔살 노파 역을 했는데, 모두 그럴듯하게 했다고 했구, ... 일흔 여덟

된 노파는 진짠 줄 알았대요.

[목소리] 아가씨, 난 지금 류마치스 걸린 일흔살짜리 노파를 찾는게 아니고 스물두살난 소녀를 찾는거

야, 자, 몇살이지?

[소녀] 스물... 두살요!

[목소리] 거짓말! 내가 보기엔 스물 일곱 여덟은 되보이는데.

[소녀] 아, 그건 아마 지금 감기때문에 머리가 아파서 좀 늙어 보일 꺼에요, 작년에 독감 걸렸을땐 의

사선생님이 전 설흔아홉살로 봤으니까요. 하지만 선생님이 원하신다면, 스물두살처럼 보이게 할

수 있어요! ( 이마를 닦는다 )

[목소리] 아가씨, 혹시 지금 열이 있는거 아냐?

[소녀] 네, 조금... 39도 5부에요!

[목소리] 뭐라구? 아니 열이 39도 5부나 되어 갖구두 이 겨울에 밖엘 다닌단 말야? ... 당장 집에가서

누워있구, 다음에 다시한번 오지!

[소녀] 아녜요, 제발.. 사실 전 이 오디션을 여섯달이나 기다렸어요. 그리구 여섯달 기다리기위한 명단

에 등록하느라 석달을 기다렸구요.. 그런데 또 다시 그 명단의 맨 끝에 다시 등록하게 되면 또 여섯

달을 기다려야 되고... 그땐 스물셋이니까 스물두살짜리 역에는 맞지가 않죠.. 그리구 좀 나은거 같

아요.

[목소리] 그러니까, 여배우가 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나?

[소녀] 네, 마음뿐만 아니라, 온 정신과, 숨결, 그리고 제 몸에 있는 뼈와 살과, 혈관을 흐르는 피까지

도...

[목소리] 자, 자, 자꾸 의학적인 얘긴 그만하고.. 실제 경험은?

[소녀] 무슨... 경험요?

[목소리] 뭐냐하면,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연기에 관한 경험이지. 연기경력이 있나?

[소녀] 무대에서 말인가요?

[목소리] 거기말고도 연기가 필요한가?

[소녀] 아, 전 조블렌스카 부인 밑에서 3년간 연기공부 했어요.

[목소리] 여기 모스코우에서 연기지도하고 계신 분인가?

[소녀] 아뇨, 오데싸에서 제가 다닌 고등학교 선생님인데, .. 그래도 전에는 아주 유명한 배우였대요!

[목소리] 여기 모스코우에서 말야?

[소녀] 아뇨, 오데싸에서요.

[목소리] 결국, 아가씬 솔직히 말해 아마튜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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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네, 모스코우에선 그렇지만, 오데싸에서는 프로에요!

[목소리] 물론이겠지. 하지만 우리가 찾는건 스물두살난 모스코우의 프로여배우거든. 자, 내가 충고를

할까? 좀더 경험을 쌓고, 또 아스피린도 좀 먹도록 하지!

[소녀] ( 가다가 멈춘다 ) 저.. 전 나흘이나 걸려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한번 읽기나 할 수 없을까요?

[목소리] 하지만 아가씨, 그래봤자 피차 서로 곤란하고...

[소녀] 아녜요. 절 배우로 써주지 않으셔도 괜찮으니까, 그저.. 선생님 앞에서 제가 대사를 해봤는 것

만해도 제게는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 될꺼에요.... 거짓말로 들리실지는 몰라도전 선생님이야 말로

현존하는 위대한 작가중 한분이라고 생각해요.

[목소리] 그래? 고맙군. .. 에 뭐 그게 소원이라면 한번 대사를 해봐!

[소녀] 전 선생님 작품은 거의 다 읽었어요. 단편이랑 신문기사까지두요. ( 웃는다 ) 특히 그 ... ( 더

크게 웃는다 ) 그 .. ( 이젠 신경질적으로 웃는다 ) .. 죄송해요, 그 작품 생각만하면 저도 모르게 웃

음이 나서..

[목소리] ( 역시 웃으며 ) 그래? .. 어떤 작품인데?

[소녀] ( 아직 웃으며 ) 그 말단 공무원의 죽음요, 그걸 읽고 전 몇일동안 웃었는걸요.

[목소리] 말단 공무원의 뭐...? 기억이 안나는데, 내용이 뭐지?

[소녀] 그 왜.. 체르디아코프의 얘기 있잖아요, 재채기 해갖구...

[목소리] 아, 그거! 그게 우스웠다구? 이상하군. 난 슬픈 의도로 쓴건데.

[소녀] 아, 물론 슬프기도 했어요. 몇일간 울었으니까요. ... 아무튼 비극적 희극인거 같애요.

[목소리] 정말? .. 그럼 아가씨가 읽은 작품중 제일 맘에 드는 작품이 뭐지?

[소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요?

[목소리] 응, 뭐야?

[소녀] ... " 전쟁과 평화 " 요.

[목소리] 그건 내가 쓴게 아니지!

[소녀] 네, 톨스토이죠.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뭐냐구 물으셨잖아요?

[목소리] 아, 그래.. 참 아가씬 솔직하군. 좋아 아주 재미있었어. 자, 그럼 대사를 해봐!

[소녀] 네, 세자매중의 대사를 할까 하는데요.

[목소리] 오, 세자매라구? 좋아, 그중 누구?

[소녀] 세명다요.. 시간이 있으시다면..

[목소리] 세명을 다? 맙소사 아예 작품을 죄 읽지 그래?

[소녀] 정말료? 감사합니다. 사실 전 다 외우고 있어요. 제 1막! ( 위를 본다 ) " 프로조로프 저택의 거

실, 한낮의 태양이 넓은 프랑스식 창문을 통해 비친다... "

[목소리] 아, 제발.. 시간이 없으니까, 대사만 조금해, 응?

[소녀] 네, 그럼 맨 끝부분을 하겠어요.

[목소리] 끝부분? 응, 그건 별로 길지 않겠군. 그것 준비되는대로 해봐!

[소녀] 전 벌써 여섯달 전부터 준비하고 있어요. 물론 그 여섯달 대기자 명단에 오르느라 기다린 석달

은 빼고...

[목소리] 알았으니까 빨리 시작해!

[소녀] 네, 죄송합니다 ( 목을 가다듬고, 막 시작하려다가 ) 저, ~ 선생님 죄송하지만 " 타라라 붐데이,

세상이란 다 그런거라오! " 하고 말씀해 주실래요?

[목소리] 뭐? 아니 왜 난대없이 그런 솔리 하라는거야? 난 그런 바보같은 소리 할 생각없어!

[소녀] 하지만 이건 선생님께서 쓰신건데요. 끝부분에 체부티킨이 하는 대사거든요. 그 대사를 읽어주

시면 고다음엔 마샤 대사가 시작되는데.. 사실 전 여섯달 기다렸고, 오데싸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느

라 나흘이 걸린 거에요.. 또..

[목소리] 아, 알았어, 알았다구. 자 준비됐나?

[소녀] 네.

[목소리] " 타라라 붐 데이, 세상이란 다 그런거라오!"

Page 28: Good Doctor (in Korean)

[소녀] 그러자 마샤가 얘기합니다." 저 음악소릴 들어봐, 모두들 떠나나봐.. 그리구 한사람은 아주 영

영 가버린 거지? ... 우리만 새 인생 다시 시작할려구 여기 남았어 그래, 우린 살아야 돼, 우린 살아

야 돼... "그리고 이리나가 얘기합니다" 앞으로 언젠가.. 이게 모두 무슨 일이었는지 알게되는 날이

오겠죠? ( 소녀의 감정이 예상보다 훨씬 풍부해진다 ) 그러면 우리가 왜 이런 괴로운 시련을 겪고

살아야 했는지도 알게될테고, 신비로운 것도 모두 사라질꺼에요. .. 하지만 우린 그때까지 그저 살

아가야만 하는거겠죠. 일이나 하면서.. , 네, 일을 해야죠. .. 전 내일 혼자 나가겠어요. 혼자 학교

에 나가 가르칠께요. 내 모든 인생을. 필요한 후세들에게 주어 버리겠어요. ... 지금은 가을이지만

곧, 겨울이 올테고, 모든게 흰눈으로 덮여버리겠죠.. 그래도 저는 계속 살꺼구. 계속 일을 해야 될

꺼얘요! " 마져 끝낼까요?

[목소리] ( 부드럽게 ) 아, 물론!

[소녀] 끝으로 올가가 얘기합니다.." 저 음악소리가 너무 감미롭고, 또 너무 힘차기 때문에 사람들은

살고싶어지는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린 모두 영원히 사라지고, 잊혀지는거 아니니? 우리

목소리, 우리의 얼굴.. 우리가 누구였는지도 모르게 되는거지, 그대신 우리가 겪은 고통은, 우리 다

음 세대에게 기쁨으로 변할꺼니까, 그때 이세상에 행복과 평화가 가득차면, 그때 사람들은 지금 우

리를 기억하면서.. 축복의 말을 할꺼야.., 마샤, 이리나, 사실 난 조금만 더 알고싶단다! 우리는 왜

사는거고, 왜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걸까! 난 .. 그걸 알고 싶어. .. 정말 알고싶어... " ( 조용하다 )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젠 더 바랄게 없어요. 덕분에 전 이제 아주 후련하고.. 행복해요.. 그럼 안

녕히 계세요.( 무대 밖으로 걸어나가고, 빈 무대만 남는다 )

[목소리] ( 부드럽게 ) 자, 저 아가씨가 오데싸로 걸어가기 전에 누가 빨리가서 좀 데려오게!

( 조명 꺼진다 )

2막 3장

의지할 곳 없는 신세

( 조명이 은행 지배인의 사무실을 밝힌다. 그리고 지배인인 키스투노프가

목발을 짚고 등장한다. 오른발에는 붕대를 감아서 세배 정도는 두껍고, 아주

아픈듯 신음하며 조심스레 움직이는데 약간 잘못되어도 심한 아픔에 비명을

내며 간신히 책상에 와서 앉는다. 곧 직원인 포챠킨이 약간 서둘러 등장한다 )

[직원] ( 큰 소리로 ) 아, 지배인님 이제 나오셨습니까?

[지배인] 아, 조용조용, .. 좀 살살 작은 소리로 얘기하게!

[직원] ( 속삭인다 ) 아, 죄송합니다!

[지배인] 다리에 풍이 재발해갖구, 왼 신경이 다 가물거리는 통에, 아주 조그만 소리에도 못견디겠다

구!

[직원] 아유, 거 굉장히 불편하시겠군요

[지배인] 아침에 머리 빗는데도 죽을꺼 같드군.

[직원] 그렇다면, 지배인님, 저 밖에서 지금..

[지배인] 무슨 일이 있나, 포챠킨?

[직원] 네, 밖에 웬 부인이 한분 오셔서 지배인을 만나겠다는데요. 도대체 알수 없는 엉뚱한 소리를 합

니다. 막무가내로 이은행의 지배인을 봐야겠다는데, 지금 그렇게 몸이 편치않으시니까..

[지배인] 아냐, 아냐! 내 한몸 아픈게 문젠가, 그보다야 은행일이 중요하지! 들여보내게, 하지만 가능

한한 조용하게 말야! ( 직원은 발 끝으로 걸어나가고, 곧 부인이 등장한다. 40대 후반의 남루한 옷

을 입은 서민계급이 뚜렷하다. 책상으로 와서 선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고, 신경질 적으로 핸드백

을 비튼다 ) 아, 어서 오십시오 부인, 제가 일어서지 못하는 점을 용서합십쇼. 마침 몸이 좀 불편해

Page 29: Good Doctor (in Korean)

서, 자, 앉으시죠!

[여자] 네, 고마와요! ( 앉는다 )

[지배인] 자, 무슨일로 오셨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여자] 선생님은 저를 도와주시겠죠? 제발 저를 도와 달라고 하느님께 빌겠어요. 세상사람이 모두 외

면 해도 선생님만은 ... ( 그러다가는 훌쩍이기 시작하더니 곧 통곡으로 변해서, 사람의 등골이 으

시시하게 소리를 내며 운다. 따라서 이를 갈며 이걸 참는 지배인은 의자를 꽉 쥔다 )

[지배인] 저, 제발 좀 진정하세요. 부탁입니다, 진정하세요.

[여자] 미안해요! ( 진정하기 시작한다 )

[지배인] 저,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울지 마시고, 우리 잘, 그리구 조용하게 그일에 대해 얘

기를 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아무튼 문제가 뭐죠?

[여자] 네, 바로 제 남편 때문이에요. 제 남편은 원래 대학에서 강사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만 몹쓸병

이 들어서, 벌써 다섯달째나 않고 있답니다. 다섯달이란 세월을 고통속에서 지내고 있는거에요.

[지배인] 아, 그러시군요. 사실 병에 시달리는게 어떻다는거 저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인

의 심정, 정말 이해할 수 있구요. 그런데 어디가 편찮으시죠?

[여자] 신경과민이에요. 온몸의 신경이 죄다 곤두서서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비명을 지르는데.. (

경고도 없이, 여자는 피를 짜내는 비명을 지른다, 그통에 지배인은 의자에서 거의 떨어질 뻔 한다 )

어쩌다 그렇게 몹쓸 병이 생겼는지 아무도 모르지 뭐에요!

[지배인] ( 정신을 가다듬고 ) 그래요? 전 왜 그런지 짐작이 가는데요!.... 아무튼 계속하시죠. 하지만

좀.. 너무 세밀하게 설명을 하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네.

[여자] 네, 다섯달 동안이나 그렇게 누워서 불쌍한 꼴로 있는 동안에

[지배인] ( 미리 준비를 하며 ) 또, 갑자기 소리 지르시진 않겠죠?

[여자] 전 아무 이유없이 소리지르진 않아요... 아무튼 그동안 요양을 하면서 몸은 좀 나았는데, 그만

직업을 잃었지 뭐에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쫓겨나고 말았답니다.

[지배인] 아 그거 정말 딱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게 저희은행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여자] 제가 그동안 어떤 고생을 했는지 아세요? 아침부터 밤까지 간호를 하고, 밤부터 아침까지 치료

를 했죠. 게다가 집안 청소를 하랴, 아이들을 돌보랴, 개도 먹여야 했죠. 또 고양이, 염소에 몸이 아

픈 우리 언니네 새까지 키워야했죠!

[지배인] 언니네 새가 아팠어요?

[여자] 아뇨, 언니가 아팠죠. 현기증이 생긴지가 벌써 한달이나 됐는데 점점 더 심해지지 뭐에요?

[지배인] 아, 정말 보통 불행이 아니시군요... 그렇지만 그게 모두...

[여자] 그래서 전 언니네 애들이랑, 언니네 집이랑, 언니네 고양이랑, 언니네 염소를 돌봐야했거든요.

그런데 그집 새가 우리 아이를 쪼아서, 우리 고양이가 그집 새를 물었죠. 그리고 한쪽 팔이 부러진

우리 딸애가 그집 고양이를 물에 빠트려 죽였거든요. 그랬더니 언니는 그대신 우리 염소를 내놓으

래요. 안그러면 우리 고양이를 물에 빠트리든가, 제딸애의 나머지 팔을 부러트리겠다나요

[지배인] 네, 정말이지 골치가 아프시겠습니다, 부인.. 한데 전 이런일이 도데체...

[여자] 그런판에 제가 남편 퇴직금을 받으러가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글쎄 24루블 36코펙이나 부족하

지 뭐에요? 왜 그러냐구 따졌더니, 뭐 제 남편이 그만큼을 직원기금에서 빌렸다는 거에요, 하지만

그럴리가 없거든요? 제 허락없이 그따위 짓 했다가는 당장에 목아질 꺾어놨을테니까, 더구나 아픈

동안에 그럴 수가 있나요? 그러지 않아두 요샌 저까지 몸이 좋지를 않아서, 자꾸 이상한 기침을 하

거든요! ( 아주 이상하고 듣기 싫은 기침을 해대서, 지배인은 한계점에서 아물거린다 )

[지배인] 아, 네, 네, 정말이지 주인께서 회복하는데 다섯달이나 걸릴 이유도 이젠 잘 알겠습니다. 그

렇지만, 저한테 찾아오신 용무는 도대체 뭐죠?

[여자] 그야, 당연하고도 합법적으로 제 남편의 돈인 24루블 36코펙 때문이죠. 사람들은 내가 여자이

구, 늙어서 힘없고 의지할데 없다구 깔보고 안주는거에요. 나를 비웃기까지 했다구요. 네, 비웃었

어요 ( 크고 고통스런 웃음을 웃는통에, 지배인은 뭔가 움켜쥔다 ) 도대체 뭐가 우습죠? 저같이 힘

없고 의지할데 없는 늙은이가 그렇게 우습단 말인가요? ( 훌쩍인다 )

Page 30: Good Doctor (in Korean)

[지배인] 아뇨, 아닙니다, 우습긴요. 절대로 안우습죠! 하지만 부인,제 말을 들으세요. 전 뭐 부인께 불

친절하게 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아무래도 부인께서는 잘못 찾아오신거 같아요. 그런 봉급에 관

한 문제는, 저희랑 전혀 상관이 없거든요. 남편께서 일하시던 학교의 담당자한테로 가보셔야죠!

[여자] 그런 소리 마세요. 전 벌써 다섯군데나 갔었지만, 제 얘긴 듣는척두 안했어요. 난 벌써 반은 내

정신이 아니구.. 머리칼이 다 빠지는거 같아요! ( 머리칼을 한줌 뜯어낸다 ) 이보세요, 내머리를.. ,

한줌이나 빠졌어요! ( 책상에 던진다 ) 그런데 당신마저 날더러 딴데로나 가봐라 이건가요?

[지배인] ( 놀라고, 기분이 나빠서, 머리칼을 집어 돌려준다 ) 저, 부인 제발 이 머리칼 도로 가져가세

요. ( 여자는 그걸 다시 머리에 붙인다 ) 그리구 제말을 잘 들어 보세요. 아시다시피 여긴 은행아닙

니까? 은행이요, 은행! 여기서 저희가 하고 있는건 은행업무입니다. 돈을 맡아두는 거에요, 돈을

이리 가져오면 그걸 보관해 준다 이말입니다. 아시겠어요?

[여자] 무슨 소리죠?

[지배인] 그러니까, 저희는 부인을 도와드릴수가 없다 이거에요.

[여자] 당신니 날 도울수 없다구요?

[지배인] ( 깊은 한숨 )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제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걸 어떡합니까?

[여자] 그러니까 당신은 내 남편이 아프다는걸 못 믿겠다는거에요? 자! 그렇담 여기 의사진단서를 갖

구 왔으니 보세요! ( 진단서를 테이블에 놓고는 쾅, 친다 ) 그게 증거에요! 그래도 제 남편이 고생하

는걸 못 믿겠어요?

[지배인] 못믿다뇨, 믿습니다. 남편께 아프다는거 맹세라도 하겠습니다.

[여자] 보기나 해요, 보지두 않구서 어떻게 알아요?

[지배인] 그럴 필요 없습니다. 주인께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잘 알겠단 말입니다.

[여자] 아니, 쳐다보지두 않을꺼면 의사진단서가 무슨 소용이있어요? 자, 보기나 해요!

[지배인] ( 놀래서, 급히 훑어본다 ) 아, 네, 주인이 편찮으시군요. 네, 의사가 그렇게 진단을 했어요.

정말 안됐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부인이 잘못 찾아왔다 이거에요. ( 당혹해서 ) 정말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여자] ( 그를 쳐다본다 ) 당신, 내게 거짓말을 했군그래. 그래두 난 당신이 성실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내게 거짓말을 해?

[지배인] 거짓말을? 내가? 언제말요?

[여자] ( 진단서를 잡아챈다 ) 이 진단서를 읽는체 하구선, 읽지를 않았죠? 읽었다면 내 남편이 억울하

게, 이유도 없이 해고됐다는걸 모를 리가 없어요! ( 진단서를 다시 책상에 놓는다 ) 내가 힘이 없구,

의지할데 없는 여자라고 얕보지 말구, 이 진단서를 읽어봐요, 그게 어려워요? 자, 읽어요, 그럼 난

갈테니까!

[지배인] 아니, 읽었다는데 왜 그러세요? 한번 읽은걸 두번씩 읽을 필요가 있나요?

[여자] 제대로 읽질 않았으니까, 다시 읽어야죠.

[지배인] 제대로 읽었단 말예요.

[여자] 너무 빨리 읽었으니까, 이번엔 천천히 읽어요.

[지배인] 천천히 읽을 필요가 없어요. 난 워낙 빨리 읽는 습관이니까!

[여자] 그러니까 뜻을 완전히 이해하도록 해보세요.

[지배인] 이봐요, 난 완전히 뜻을 알고, 완전히 이해했어요. 여기 쓴 내용을 갖고 시험을 봐도 자신있

다 이겁니다. 그래두 이 일이 우리 은행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데는 변함이 없어요!

[여자] ( 뒤에서 달려들듯 ) 남편이 신경과민이라는 부분 읽으셨어요?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거나

아닌지 다시한번 읽어주세요!

[지배인] 네, 좋습니다. 좋아요! 네! 당신 남편은 신경과민이에요. 제길할, 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니

까 어서 나가요! ( 지쳐서 의자에 쓰러지듯 앉는다 )

[여자] ( 그의 아픈다리 쪽으로 가서 ) 미안해요, 제가 너무 괴로움을 끼쳤나보죠?

[지배인] ( 제지하려고 ) 아, 제발 내 발을 건드리지 말아요! ( 그러나 이미 늦었다. 여자는 그의 발을

강렬하게 껴안는다. 그리고 그는 아픔으로 비명을 지른다 ) 으아 - ! 도대체 당신 제정신이요? ...

Page 31: Good Doctor (in Korean)

이런 일로 은행에 온다는 건 이발하러 고깃간에 가는거나 다름없단말예요!

[여자] 아니, 누가 이발하러 고깃간에 갔어요? 세상에 고깃간에 가서 이발을 하다니.. 오, 그러니까 저

를 비웃는거군요!

[지배인] 비웃다니, 난 지금 숨쉬기도 힘이 들어요! .. 포챠킨!

[여자] 제 사정을 모르시는군요. 전 벌써 사흘이나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먹고 싶어두 목구멍을 넘길

수가 있어야죠? 오늘 만 해도 물한컵을 세번에 나눠서 마셨단 말예요.

[지배인] ( 최후의 힘을 다해 소리친다 ) 포챠킨!

[여자] 이제 난 아무 힘도 없어요. 아마 작은 일에도 기절할꺼에요, 보세요! ( 바닥에 눕는다 ) 봤죠?

제가 기절하는걸 봤죠? 하루에도 여덟번씩이나 이꼴이에요. ( 드디어 직원이 달려들어온다 )

[직원] 무슨 일입니까, 지배인님?

[지배인] ( 소리친다 ) 당장, 이 여잘 끌어내! 도대체 어떤 바보가 이 여잘 들어오라고 했어?

[직원] 그야 지배인님이죠. 제가 여쭸을때 ' 들여보내 ' 그러셨잖아요?

[지배인] 그야 난 사람이 들어오는줄 알았지, 의사 진단서를 가진 미친게 들어오는줄 알았어?

[여자] ( 포챠킨에게 ) 저 사람은 진단서를 읽지도 않았어요. 내가 진단서를 뵈주니까, 내얼굴에 던져

버렸다구요. 나으리는 친절하신분 같은데, 제발 이 불쌍한 거한테 자비심을 베풀어서 이 진단서를

읽고 제 남편이 아픈지 안아픈지 봐주세요!

( 진단서를 포챠킨에게 내민다 )

[직원] 아니, 아까 두번이나 읽었잖아요!

[지배인] 나두! 나두 두번이나 읽었어!

[직원] 아까 밖에서 제게 뵈주셨구, 저뿐아니라 우리 은행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읽었잖아요, 수위까

지두요!

[여자] 하지만 당신은 힐끗 보기만했지, 읽지는 않았어요!

[지배인] 포챠킨! 제발 싸우지 말고, 제발 어서 한번더 읽어! 그래서 제발 저 여자를 여거서 내보내란

말야!

[직원] ( 급히 훑어보고 ) 아, 네, 여기 써있군요. 남편이 편찮으시다구 말입니다. ( 고개들고, 진단서

돌려준다 ) 자, 부인 그럼 이젠 나가시죠. 아니면 사람을 불러서 강제로 내 쫓을꺼에요.

[지배인] 그래, 바로 그거야. 내 쫓으라구! 수위랑 경비원 두명을 불러서 내쫓아! 하지만 조심하라구,

저여잔 황소보다도 기운이 세니까 말야!

[여자] ( 지배인에게 ) 흥, 어디 나한테 손만 대봐라! 그랬단 온 시내가 다 놀랄 정도로 비명을 지를테

니까, .. 그러면 당신 은행은 손님이 죄다 떨어질껄, 나처럼 힘없고 의지할데 없는 늙은이를 때리는

은행에 누가 올꺼 같아?.. 아, 난 기절할꺼 같애!

[지배인] ( 일어나며 ) 힘 없고, 의지할데가 없다구? 그래! 당신은 성난 코뿔소 만큼이나 의지할데가

없구 밀림의 왕자 만큼 약할꺼야...당신은 세균이야! 당신 가는 길목에 있는건 모조리 병들게 하는

페스트 같은 거구, 다리니 집이니 죄다 쓸어버리는 홍수난 강물이야! 바로 당신 같은 여자 때문에

나같은 사람이 당신 남편 같은 꼴이 된단 말야!

[여자] 결국 당신두 날 도와주지 않겠다 이거지?

[지배인] 포챠킨, 제발 저여잘 잡아! 주먹으로 한방 먹여! 자네한테 저여잘 두들겨 팰 권리를 주겠네!

정신이 번쩍들 만큼 세게 한대 먹이라구!

[여자] 자, 이제 당신두 봤지? ( 포챠킨에게 하는 소리다 ) 내가 이런 꼴로 거절당하는거 말야. 저런 놈

은 제 에미라두 팰꺼야. 나같이 힘없구 의지할데 없는데다 기침까지 하는사람을 때리겠다 이거지?

내 기침이 얼마나 심한지 알아? ( 지겨운 기침을 계속한다 )

[직원] 자, 부인 이러지 마시고 제 사무실로 가서 얘기를... ( 팔을 잡는다 )

[여자] 이거놔! 이 악당들! 사람살려요 -! 사람죽여요 -! 하느님, 이놈들이 날 때려요 -!

[직원] 아니 누가 때립니까? 전 그저 팔을 잡은거 뿐예요!

[지배인] 팔을 잡지말구 때려, 이 바보야, 기회있을때 발길로 차! 여기서 내쫓을려면 그 수 밖에 없으

니까, 어서 두들겨 패!

Page 32: Good Doctor (in Korean)

[여자] ( 악마 같은 손가락으로 지배인을 가리키며, 책상위로 뛰어 올라가더니, 말에 맞춰 벨을 발로

누른다 ) 저주를 받아라 - 네놈들 은행에 저주가 내릴꺼다 -! 네놈들이랑 여기오는 사람들까지도

저주를 받아라. 그래서 금고에든 돈은 모두 감자가 되고, 창고에 있는 금은 죄다 양파가 되어라 -!

지폐는 무우가 되고, 동전은 마늘이 되어라 -!

[지배인] 그만! 그만! 그만! 제발.., 포챠킨 돈을 주게, 돈을 줘! 원하는대로 다 주라구! 그리구 제발 빨

리 여기서 내쫓아!

[여자] ( 지배인에게 ) 24루블 36코펙에서 한푼도 더 필요없어! 내게

빚진건 그거뿐이구, 내가 바라는 것도 그거뿐이니까!

[직원] 자, 이리오세요, 돈을 드릴께요!

[여자] 그리구 집에가게 차비 1루블은 더 줘야겠어! 난 도저히 걸을 힘이 없으니까!

[지배인] 그래, 그래, 택시값을 두배로 주라구! 제발 빨리 내보내기나 해!

[여자] 고마와요. 선생한테 신의 은총이 내리기를.. 정말이지, 친절한 분이셔. ... 그럼 내, 저주를 취

소해드릴께. ( 제스쳐 쓴다 ) 저주야 물러가라! 양파는 돈이 되고, 감자는 금이 되고...

[지배인] ( 자기 머리를 뽑으며 ) 내쫓아 -! 아, 내머리가 빠지는구나! ( 머리를 한줌 뽑아낸다 )

[여자] 아참. 한가지 더 있어요. 제 남편이 새직장 얻는데 쓰게 추천장하나 써주셔야겠어요. 하지만 뭐

지금서두르실껀 없우. 내가 내일 아침에 다시올테니까, 그때 주면 되니까, 안녕히 계시우! ( 나간다

)

[지배인] 내일 또 온대! 내일 또 온대, 내일 또 온대... ( 같은 말을 헛소리 처럼 반복이며, 서서히 미쳐

서, 드디어 지팽이로 자기의 아픈 다리를 두들기기 시작한다 ) 내일 또 온대, .. 내일 또 온대...!

( 서서히, 조명 꺼진다 ! )

2막 4장

생일 선물

( 조명 켜지며 사창가 같은 거리가 밝아진다. 작가가 나와 관객에게

얘기한다 )

[작가] 이번 얘기는 제가 어렸을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 저는 정확히 열아홉살이었구, 사랑의 길목

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사랑에 대해 훈련이 되어있지 않았구. 사실 입문도 못한 상태

였습니다. 그때만해도 저는 너무나 순진하고 또 수줍어서.. 에, 그러니까 여자란 태어날때부터 옷

을 입고 나오는 것이지, 완전히 벌거벗을 수는 없는건줄 알았거든요. 결혼에 대하여두 감히 상상을

할 수도 없었구, 임신이라는 것은 저녁때 남편이 아내에게 아주 정열적으로 악수를 하기 때문에 그

렇게 되는거다라고 믿었죠. 그리구 뭐 그렇게 알고 있었어도 사는데는 전혀 불편이 없었거든요. 그

런데 제 아버님은 아주 훌륭하신 분인데다가 또 아주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그래

서 제가 열아홉번째의 생일을 맞던날, 아버지께서는 생일선물로 제게 사랑의 신비를 가르쳐 주실

생각을 하셨죠. 그렇지만 또 성격이 아주 검소하신만큼, 저를 데리고 직접 현장에 오셔서, 에, 혹시

제가 손해보는 거래를 하지 않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렇게 인자하신 제 아버님의 모습이 저를 통

해서 잘 보일지 모르겠군요. 아버님은 늘 저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 옆에대고 부른다 ) 안토샤! 안

토샤 어디있냐? 야, 거기서 왜 바보같은 강아지 처럼 떨고 있니? 이리와! 지금부터 우린 니 사춘기

를 끝내는거야! ( 열아홉의 안톤이, 겁먹은 강아지처럼 떨면서 등장한다. 손에든 모자를 만지작 거

린다 )

[아들] 그런데 참, 아버지, 나 아무래도 어디 아픈가봐요!

[아버지] 아프다구? 아니? 갑자기 어디가 아프냐?

[아들] 그건 아직 생각못했는데, 곧 생각날꺼에요.

Page 33: Good Doctor (in Korean)

[아버지] 아, 별거 아니다. 공포심이란거야! 사춘기의 공포심이라구. 뭐 나두 네 나이때는 그랬으니까!

[아들] 아버지두 나만했던 적이 있었어요! 난 아버진 원래부터 나이가 많으신줄 알았는데!

[아버지] 내가 여자랑 처음 지내본게 몇살때인줄 아냐?

[아들] 아버진 여자랑 지내본일이 있어요?

[아버지] 그야 당연하지. 아버지가 된사람은 누구나 어떤 여자랑 같이 지내본 일이 있는거야!

[아들] 어떤여자랑요?

[아버지] ( 소리친다 ) 그야 각각 다른 여자지! 아니 넌 친구들이랑 이런 주제로 토론해본적도 없냐?

[아들] 이, 있죠. 항상해요. 하지만... 듣기만해도 너무 떨려서.

[아버지] 사랑에 관한한 경험을 갖고 결혼에 임하는게 남자의 의무다! 안그랬단 귀중한 세월을 몇년동

안이나, 찾는데 낭비하거든.

[아들] 전 몇년쯤 낭비해도 상관없을꺼 같은데요.

[아버지] 안토샤, 이게 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야. 처음엔 걸음마를 배우고 다음엔 말을 배웠지? 이젠

이걸 배울 차례야.

[아들] 하지만 제가 아직 걷는거랑 말하는걸 다 배운거 같지 않은데요.

[아버지] ( 화난듯 ) 안토샤, 더 꾸물거릴꺼 없다! 어른되기 기다리다가 늙은이 되는 꼴 보구싶냐? 자,

네 발로 저기 걸어들어가서 에.. 여자 경험을 하고 나올테냐, 아니면 나한테 벌을 받을테냐?

[아들] 하지만 이동네 여자들은 도덕적으로 고상해뵈지가 않는걸요.

[아버지] 우리가 찾느건 도덕적으로 고상한 여자들이 아냐! 그리구 이 세상엔 도덕적으로 고상한 여자

들이 너무 많아요. 바로그렇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고상한 남자들이 할 수 없이 이런데오게 되는거

구! 자, 용건을 시작하자!

[아들] 저, 용건이 끝날때까지 아버지 손을 잡고있어두 돼요?

[아버지] 무슨 정신나간 소리냐? 남자가 되러 들어가는 놈이 아버지 손을 잡구 들어가? 자, 시간이 없

다. 안토샤, 네 엄마한테 아홉시까진 돌아온다고 했단말야. 그러니까 이제 니가 어른될 수 있는 여

유는 한시간하고 10분 밖엔 없어!

[아들] 엄마 한테도 이얘길 하신 거에요?

[아버지] 넌 내가 돌대가린줄 아나? 네 엄마한테는 바람쏘이러간다구 했으니까 걱정마!

[아들] 하지만 제가 갑자기 어른이 되어서 돌아오면 의심하지 않을까요?

[아버지] 안톤, 이건 겉으로 표가나는게 아냐! 얼굴에 무슨 반점이라도 생기는줄 알았냐? .. 글쎄 생긴

다면 아마 니 얼굴에 미소가 생길꺼다. 자, 가자!

[아들] 아버지, 어른되는데 꼭 이방법 밖엔 없어요? 콧수염을 기르는게 어떨까요?

[아버지] 안토샤, 나한테 솔직히 얘기해라! 니가 정 싫다면 그냥 집으로 가서...

[아들] 네, 집으로 가요!

[아버지] 내말을 끝까지 들어. 정 니가 싫다면 그냥 집으로 가서

[아들] 네, 집으로 가요!

[아버지] 그러냐? 좋다 그럼 집에 가자. 가서 때가 올때까지 목욕탕 속에 들어가서 장난감 배나 띄우고

놀으렴!

[아들] 그럼 아버진 저한테 화내실 꺼에요?

[아버지] 아니!

[아들] 실망하시겠죠?

[아버지] .. 아니!

[아들] 그럼 자랑스러울 꺼에요?

[아버지] 아니!

[아들] 그렇담.. 좋아요.. 하겠어요!

[아버지] 장하다, 안톤!

[아들] 만일 제가 이걸 좋아하면 또 데려올꺼에요?

[아버지] 뭐라구? 야, 난 너를 여기다 아주 재미들리게 하려는게 아냐! 원 제길, 이렇게 힘이 들어서야

Page 34: Good Doctor (in Korean)

어디 진보적인 애비노릇 해먹겠냐?

( 여자 등장, 붉은머리의 예쁜 아가씨가 담배를 물고 있다 )

[여자] 안녕, 아저씨!

[아들] 오, 하느님!

[아버지] 하 -! 정신차려라! 왜 이러니?

[아들] 그, 그러니까, 저 여자가.. 선생님이 되는건가요?

[아버지] 내가 보기엔 교장이 되고도 남겠다. 역시 우린 재수가 좋은거야. 아주 예쁘지! 자 그럼 내가

가서 네 교육 문제를 좀 상의해야겠다!

[아들] 저, 혹시 통신교육같은 방법이 없을까요?

[아버지] 너, 여기서서 꼼짝말고 있어, 내 금방 돌아올테니까! 그리구 그 모자 좀 가만둬라. 우린 모자

꾸기러 여기온게 아냐! ( 여자에게 간다 ) 아, 아가씨 안녕하십니까? 4월 저녁치고는 날씨가 아주

좋죠!

[여자] 어머나, 벌써 4월이에요? .. 전 별로 밖에 나오는 일이 없어서...

[아버지] 아, 물론 그러시겠군요... 아무튼 제가 아가씨한테 할 얘기가 있는데.. 그.. 할 얘기의 내용이

약간 거북한 거라..

[여자] 30루블요!

[아버지] 아, 역시 약간 거북한 문제가 있군요. .. 30루블이라고 하셨죠. 뭐 솔직히 말해서, 저라면야

30루블이 아주 당연한 가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아니라, 아직 경험이 없는 어린

제 아들 때문이거든요, 에, 바로 저기서 무릅을 떨고 있는 앱니다.

[여자] 그래도 30루블이에요. 여긴 연소자 할인 없으니까요!

[아버지] 아, 그야 당연하죠.. 하지만 말예요. 열아홉살짜리 아이한테 30루블은 약간 높은 가격인거

같은데.. 에, 15루블정도면 어때요.

[여자] 15루블이라면 뭐 얘기책 하나 읽어드릴순 있죠. 자, 오늘 저녁에 노르웨이 배가 들어오기 때문

에 전 들어가서 가발을 금발로 바꿔야겠어요!

[아버지] 아, 잠깐만... 사정을 이해해주시오. 사실 오늘이 저애의 생일이기 때문에 난 뭐 근사한 선물

하나 주려는건데, 어때요?

[여자] 우산이나 하나 사주지 그러세요?

[아버지] 이봐요. 사실 내가 저나이였을땐 말이오. 그러니까 30년 전 얘기지만, 난 여기서 가장 예쁜

아가씨랑 지내는 기쁨을 얻었거든. 그 여자 이름은 이르카라고 별명이 우유배달이었다구요. 그런

데도 겨우 10루블 밖엔 안했단 말이오.

[여자] 아, 그여잔 아직도 여기 있어요. 그리구 값도 이젠 3루블밖엔 안하니까, 그여자한테 가보시죠.

[아버지] 그 무슨 끔찍한 소릴!

[아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왜 그러냐?

[아들] 아직 멀었어요?

[아버지] 그래, 잠깐 기다려. 아직도 쇼핑 중이다! ( 여자에게 ) 자, 봐요, 얼마나 사랑스런 앤가, 섬세

하고 부드러운데다, 얘긴 또 얼마나 재미있게 한다구, 정말이지 아주 재미있을꺼요.

[여자] 아니 도대체 누가 영업하는 중이죠?

[아들] 아버지. 자꾸 추워져요!

[아버지] ( 아들에게 ) 그러냐? 그럼 제자리 뛰기라도 하고 있어. 뭐 그리 조급하냐? 이제까지 19년이

나 기다렸는데, 그깟 몇분을 못참니? ( 여자에게 ) 20루블 내겠오! 나도 다 교육적인 의미에서 생각

하는 바가 있어서 그러는거니까, 제발 쟤를 위해서 부탁하오!

[여자] ( 아버질 쳐다보다가, 웃으며 ) 좋아요. 정말 아저씬 아주 훌륭하고 사랑스런 아버지군요. 존경

할만해요. 한한테도 아저씨 같은 아버지가 있었더라면, 이런데까지 와서, 이렇게 아저씨 같은 아버

Page 35: Good Doctor (in Korean)

지랑 흥정하는 신세가 되진 않았을텐데!

[아버지] ( 헛갈려서 ) 아,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의미가 있는 얘기 같군요. 자, 그럼 계약된

거죠? 자, 20루블! ( 돈을 준다 ) 아, 그리구 참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오늘 저녁... 행사가 끝날

때에., " 생일을 축하하는 아버지로 부터 " 라구 얘기를 해주면 아주 고맙겠오.

[여자] ( 끄덕이며 ) " 생일을 축하하는 아버지로부터 " , 아예 초를 몇 개 켤까요?

[아버지] 아, 그런건 상관없오. 그리구 쟤를 부드럽고 다정하게 대해 주시오. 그거뿐이요. 부드럽게,

알았죠? ( 눈물을 닦는다 ) 이런 제길, 눈물이 다 나는군... 내가 왜이리 약해졌지?

[여자] 그럼 윗층에서 기다릴께요. 윗층 왼쪽 두번째 문예요! 부탁하신대로 아주 부드럽게 해드릴테니

아무 걱정 마세요!

[아버지] 고맙소. 정말이지 오새 여자들은 아주 이해심이 많구려!

[여자] 아녜요. 오히려 아저씨같은 분을 보게되니, 이 직업에 종사하는 긍지를 느끼게 되는걸요.

( 아버지 손에 키스하고는 나간다 )

[아버지] 아, 저런 여자를 보모로 쓰면 아주 최고일꺼야... ' 안토샤! 학교문 열렸다! ( 아들에게 간다 )

다 됐다 20루블로 해결됐으니까... 너두 이러데서 흥정하는걸 알아야 한다. 자, 출발, 2층으로 올

라가서 왼쪽으로 두번째 문이다. 난 여기서 기다릴께... 하지만 너무 조급할껀 없다.

[아들] ( 가다가 선다 ) 아버지, 그여자한테 얘길해야 되나요?

[아버지] 얘기라니?

[아들] 뭐.. 안녕하세요 같은거요.

[아버지] 아, 그야 안녕하세요 하면 좋겠지. 그리구는 아마 안녕히계세요

하면 될꺼야. 자, 빨리가라 기다리겠다!

[아들] 무슨 주의사항이나 지시사항 같은거 없어요?

[아버지] 바로 그걸 배우라구 내가 그여자에게 큰돈을 준거야. 네가 한 질문은 바로... 자, 빨리가라.

이러다 시간외 근무수당까지 주겠다.

[아들] 네, 가요, 아버지. 갈께요. ( 멈춘다 )

[아버지] 왜 또 그러냐?

[아들] 이상하잖아요? 제가 다시 저계단을 나와서 길거리로 나올때에는, 전 이미 아버지의 귀염둥이

안토샤가 아닐테니까요. 전 .. 안톤이라는 어른이 되는거겠죠? .. 고마웠어요 아버지, 안녕히 계세

요! ( 간다 )

[아버지] 야, 잠깐만! ( 아들 멈춘다 ) 안토샤. 잠깐만 기다려봐!

[아들] 왜요?

[아버지] 에, 금방 생각이 난건데 말이다. 너 차라리 선물로 우산을 하나 받는게 어떻겠니? 뭐, 어른이

될 시간은 내년에도 또 얼마든지 있잖니? .. 내년에 말야.

[아들] 네, 아버지 생각이 그러시다면 좋아요!

( 아버지는 아들의 어깨를 끌어안고 밤거리를 걸어나간다. 무대 어두워

지며 음악 들린다 )

2막 5장

작가

( 조명 켜지며, 작가가 원고뭉치를 들고 걸어나온다 )

[작가] 제 아버님의 얘기는 사실 깊은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전 아버질 아주 사랑했죠. 하지만 아버지

의 모습이나 오늘 저녁 여러분이 보신 여러 다른 인물들의 모습에서 전 뭔가 배신했다는 느낌이 듭

니다. 무엇을 썼건 펜을 놓고 난 다음엔 항상.. 제가 그 사람들의 주요한 인생의 알맹이를 도둑질한

거 같은 기분이 되는걸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를 못견디게 만드는 것은,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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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이 글을 쓰는 동안은 아주 신이 났었다는 겁니다...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가만있

자. 아까 처음에 제가 무슨 얘길 하다가 말았죠? 재채기 얘기하기전에 말입니다... 아! 네, 바로 그

얘길 하다 말았군요. 제가 진짜로 하고싶었던 일이 무엇인가! .. 네 전 어릴때부터.. ( 잠시 생각하

다가 ) 참, 이상하군요. 제가 살아온 인생은 도저히 기억을 할수가 없다니.. 하지만 제가 지금 이대

로 커다란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는한, 아마 전 바로 제가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는거겠죠.

아무튼 이렇게 와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혹 이근처에 오시는 일이 있으면 다시한번 들려주십

쇼. 아, 아닙니다. 이보다야 더 멋진 끝이있죠. 에, 혹시 이 근처에 오시는 일이 있으면 5백만루블

유산을 상속받게 되길 바랍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쇼. 감사합니다!

( 돌아서서 무대 뒷쪽으로 갈때, 조명 어두워진다 )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