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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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2015 10 . 11 . 통권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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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전 통 문 화 와 아 름 다 운 만 남

2 0 1 5 10 11

20

15

10 1

1

통권 372

통권

372

월간

문화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발행일 2015년 10월 1일(통권 제372호) 발행처 한국문화재재단 발행인 서도식 외부 편집위원 김기덕 박인석 장경희 전경욱 전은경 발행부수 7500부

인쇄등록 강남 라-00003(1984년 6월 11일)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406 (삼성동 112-2번지) 전화 02-3011-2603 팩스 02-566-6314 홈페이지 wwwchforkr

디자인ㆍ제작 (주)디자인소호 02-514-5164

본지에 실린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한국문화재재단에서 발행한 lt월간 문화재gt 이번 호 저작물은 lsquo공공누리rsquo 출처표시 상업적 이용금지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사진 일러스트는 이용할 수 없습니다 공공누리는 공공기관의 저작물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한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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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oglorkr

b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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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36민속의 어제와 오늘

추석의 어제와 오늘

40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44

알림마당

문화유산 소식+재단행사 알림

전통문화달력

K-HERITAGE 문화상품

48

한국문화재재단 소식

조선 어보의 보록에 잠기다

세계유산 따라 떠나는 여행

한국의집 가을을 맛보다

기획특집

춤 한자락에 담긴 삶

우봉 이매방 선생의 춤 일생

하늘이 내린 춤꾼 우봉 이매방 선생님을

추석하며

무형문화재 삼국지ㆍ예능ㆍ기능

동아시아의 가면극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04 16 28

소식(蘇軾)과 함께 북송을 대표하는 시인 황정견(黃庭堅)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ldquo시의 뜻이 끝이 없지만 사람의 재주는 한계가 있다 한계가 있는 재주

로 무궁한 뜻을 추구하려 한다면 도연명이나 두보라 해도 그 교묘함에 잘 이르지 못할 것이다 뜻을 바꾸지 않고 자기 말로 바꾸는 것을 lsquo환골rsquo이라 하고

그 뜻을 가지고 형용하는 것을 lsquo탈태법rsquo이라고 한다rdquo

월간문화재가 문화유산 콘텐츠 전문가와 디자인 전문가를 편집위원으로 모시고 환골탈태 하려고 합니다 발간 주기를 월간에서 격월간으로 지면을 36

면에서 56면으로 대폭 확대해 lsquo담기는 내용rsquo과 lsquo담는 그릇rsquo 일체를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31년간 조금씩 변화하면서 오늘까지 보여주신 관심과 애정을 자

양분으로 결실을 맺기 시작하는 월간문화재에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換骨奪胎

환 골

지난 9월 4일 저녁 6시 30분 성북동에 위치한 한국가구박물관에서는

작지만 의미 있는 전시가 시작되고 있었다 전시가 열리는 한국가구박물

관은 전통 목가구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특수전문박물관이다 박물관이

기는 하지만 이곳은 가장 한국적인 정취를 담고 있는 공간이기도 해서

국가적인 행사나 참가자를 제한하는 행사에 종종 활용되고 있다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와 2015년 중국 시진핑 주석 방문 시에 오

찬 장소로 사용되었고 GUCCI와 같은 세계적인 명품사가 자사의 특별

전시를 개최하는 장소로 사용했으며 CNN은 이 박물관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렇듯 한국가구박물관은

웬만해서는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도도한 장소다

그 비밀스러운 정원에서 시작되려는 전시는 260년 역사의 시계 제조사

가 새로운 라인업을 국내에 소개하는 자리였다

세계 최고의 명품 시계 제조사답게 백화점이 아닌 가구박물관을 전시

장소로 선택한 문화적 안목은 탁월했지만 그날 밤 설렘과 낯선 입자들

이 밤공기에 녹아 장소가 주는 특별함을 능가하는 묘한 긴장감을 주고

있었다

그 어색함을 만들어 내는 곳은 행사장에 자리한 VIP석이었다 한 명의

서양 남성과 세 명의 동양 남성 그들의 수수한 옷차림으로 미루어 고가

의 시계를 구입할 주요 고객으로 보이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전시를 취

260년 스위스 시계의 전설

조선 어보御寶의 보록寶盝에 잠기다글

한국문화재재단 기획조정실

재하기 위해 초청된 기자로 보기에는 연령대가 높아 보였다

VIP석에 자리한 서양 남성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건너온 세계 최고의 명

품 시계 제조사 바쉐론 콘스탄틴의 아티스틱 디렉터 크리스찬 셀모니였

고 세 명의 동양 남성은 속칭 인간문화재라 부르는 공예분야의 기능보

유자로 소목장 박명배 두석장 박문열 옻칠장 손대현 명인이었다 그리

고 그들 옆에는 조선시대 보록(寶錄)하나가 단아하면서도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날 전시의 가장 중요한 작품은 바쉐론 콘스탄틴이 국내에 최초로 들

여오는 2015년 유럽공예대전(JEMA) 발표작 메티에 다르 사부아 일루

미네 컬렉션(Meacutetiers dArt Savoirs Enlumineacutes)도 260주년을 기념

하여 클래식한 수공예로 2개의 무브먼트를 장착한 메티에 다르 메카니

크 그라베 컬렉션(Meacutetiers dArt Meacutecaniques graveacutees)도 이국적인

플라워 모티브를 에나멜링 공예로 장식한 메티에 다르 플로리레쥬Ⅱ 컬

렉션(Meacutetiers dArt Florilegravege II)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박물관 내 10

채의 한옥을 가득 채우고 있는 2000여 점의 문화재급 가구도 아니었

다 바로 한국문화재재단이 디자인과 설계를 담당하고 세 명의 기능보

유자가 제작한 조선시대 어보(御寶)를 보관하던 어보함인 보록(寶錄)이

었다

보록(寶錄)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존호(尊號)를 새긴 금보나 옥보를 보

두석장 박문열 칠장 손대현 소목장 박명배

관하는 궤를 말한다 어보(御寶)는 조선시대에 국왕이나 왕실을 상징하

는 도장으로 좁은 의미로는 외교문서나 행정실무에 쓰였던 국새(國璽)

와 의례용으로 쓰였던 어보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 사용

할 경우 국왕이나 왕비 또는 세자나 세자빈 등 국왕과 관련된 이들의 의

례에 쓰인 도장을 말한다 그러니까 보록은 왕실 의례인 가례(嘉禮) 책

봉(冊封) 국장(國葬) 시에 존호(尊號) 휘호(徽號) 시호(諡號) 등을 새

긴 어보를 만들고 이 어보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보관함을 의미한다 그

러니까 그 자리는 175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나 260년의 세월을

견디며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바쉐론 콘스탄틴

의 새로운 작품들과 조선왕조 500년 왕실문화의 정수이자 왕실 자체를

상징하는 어보(御寶)를 보관하는 보록(寶錄)이 동서양의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만나는 문화적 충돌의 무대인 것이다

지난해 5월 바쉐론 콘스탄틴 한국 지사인 바쉐론 콘스탄틴 코리아에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에서 모든 일은 시작되었다 26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에 무언가 특별한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추진하고 싶어

했으며 그동안 각국의 전통공예와 협업 경험이 풍부한 바쉐론 콘스탄틴

으로서는 한국문화재재단을 최상의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었다

바쉐론 콘스탄틴이 원하는 작품은 일회성 이벤트의 결과물이나 단순

한 시계 케이스가 아니었다 바쉐론 콘스탄틴 브랜드 역사에 영원히 남

4 5한국문화재재단 소식 1

을 작품을 원했고 그 작품을 한국의 전통공예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

정된 기능보유자와의 협업을 통해서 완성하고 싶어 했다

문제는 전 과정을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최고의 명품 시계를 담을 함의 철

학적 개념을 정하는 일이었다 재론의 여지 없이 전통적 사유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공간을 담을 수 있어야 하고 문화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사

회middot정치적으로나 비교가 불가능한 상징을 내포한 무엇이어야만 했다 또

한 시각적으로 부드러우면서도 도도한 질감과 한 시대의 문화를 대표하

는 배색 조화 그리고 완벽한 입체감과 비율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도저한 토론과 고민 끝에 조선시대 어보(御寶)를 보관하는 보록

(寶錄)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보록은 유일성 권위 자부

심 충성심 고결함 강인함 등의 형체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그 정도

라면 어디에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을 한 시대 정신문화의 총체적 결정체

로서 자랑할 만한 작품이 나올 것 같았다

이후의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의 보록(寶錄)을 조사하고 기본 디자인과 설계를 진행하였으며 백골 제

작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기능보유자 박명배 명인이 장석

제작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 기능보유자 박문열 명인이 그

리고 옻칠에는 서울시무형문화재 제1호 칠장 기능보유자 손대현 명인이

동참을 결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목가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좋은 목재가 있어야 한다 최소한 300

년에서 500년은 족히 지나야 목재로서 가치가 있으며 수령이 적합한 목

재를 찾았다고 해도 나무를 켜보지 않으면 장담할 수 없다 아름다운 목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 본연의 아름다운 무늬가 살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나무를 구했다고 해도 원목 상태로 2년 나무껍질을 켜서 실외에서

3년 다시 실내에서 2년을 숙성시켜야 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 이완과 수축

을 반복하며 숙성시켜야만 가구로 제작했을 때 뒤틀림이나 갈라지는 현상

을 방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7년의 숙성은 고사하고 자재로 사용할 나무

도 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프로젝트의 기간은 1년 남짓에 불과했다

좋은 목수는 좋은 자재를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로 결정되곤 한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나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런 의미에서 박명배 명인은 최고의 목수였다

본인이 힘겹게 수집해 놓은 자재 중에서 애지중지하는 최고의 자재를 내

놓았다 바로 500년된 고사목을 7년 이상 숙성시킨 느티나무였다 흔히

시골에 가면 마을 어귀에 장승처럼 서서 수호목 구실을 하는 당산나무를

볼 수 있는데 이 당산나무의 대부분이 느티나무이다

느티나무는 무늬가 아름답기로 이름이 높은데 황갈색 목재 위에 물결처

럼 어룽진 나이테의 곡선이 무척이나 우아하다 이는 물을 운반하는 물

관의 배열이 독특하기 때문인데 오래된 나무일수록 비늘 구슬 모란꽃

등 다양한 무늬가 나타나고 광택도 아름답다 거기에 견고함까지 갖추고

있는데 마찰과 충격은 물론 습기와 충해에도 강해 좀처럼 썩거나 벌레 먹

지 않는 나무이다 박명배 명인은 이 느티나무의 천연의 무늬를 살리고

전통 제작 기법인 짜임기법과 직접 만든 아교를 사용해서 백골(白骨)을 제

작했다

목가구 제작에 없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 두석장의 역할이다 가구의 결

합 부분을 보강하거나 이음새를 연결하고 열고 닫을 수 있는 자물쇠 등의

금속 장식을 장석(裝錫)이라고 하는데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황동(놋쇠)

장석을 만드는 사람을 두석장이라고 한다 두석은 단순히 기능적인 역할

에 제한되지 않고 자체로 탁월한 예술작품으로써의 완결미를 보여주며

다양한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박문열 명인은 함에 사용되는 장석에 길상(吉祥)의 의미를 담은 전통문양

을 정을 망치로 쳐서 문양을 새기는 조이질 기법으로 제작하였다 이 기

법은 장석 제작기법의 일반적인 표현기법으로 입체감까지 표현할 수 있어

사군자 연꽃 십장생 박쥐 구름 등을 새길 때 많이 사용되는 기법이기

도 하다

마지막 과정으로 손대현 명인은 옻나무의 수액을 직접 채취하여 정제과

정을 거쳐 불순물을 제거하여 입자가 고운 칠을 만들었다 백골의 표면을

다듬은 후 생칠을 바르고 갈고 바르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고 다시 초

1 두석장 박문열의 경첩 제작 장면

2 소목장 박명배의 주먹장 짜임 과정

3 칠장 손대현의 함 내부에 들어가는 주칠 장면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열린 바쉐론 콘스탄틴 260주년 기념 전시회 입구 바쉐론 콘스탄틴 아티스틱 디렉터 Christian Selmoni

1

2

3

칠에 중칠을 하여 건조한 다음 다시 상칠을 한 후 광내기와 생칠을 반복하

여 마감한다 이러한 과정을 30회 이상 실시하여 투명하고 얇게 옻칠을

완성했다

2014년 5월에 시작한 협업이 2015년 8월에 긴 여정을 마쳤다 1년 5개

월의 시간 동안 그렸다가 지워버린 숱한 디자인 안과 설계도면 보유자들

과 함께 고민하며 때로 서로를 힘들게 했던 수백 시간의 기억들 많은 시

간을 자신의 공방에서 어보함과 고통스럽게 대면했을 예술가들의 침묵의

시간이 지났다 바쉐론 콘스탄틴이라는 브랜드의 무거움과 그간의 세계

적인 협업 기관과의 실적은 감내하기 어려운 압박이었다

그리고 한국가구박물관에서 협업 작품이 공개되는 순간 그 간의 시간은

박수와 환호로 치환되었다 세계 최고의 시계 장인들과 세계 최고의 공예

장인들은 문화사회적으로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단 한 번

의 교류도 없이 자신만의 영역을 천착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결과

물들은 함께 놓여 지는 순간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

3인의 기능보유자가 제작한 조선시대 어보함 보록은 이제 스위스에서 조

선 왕실의 기품을 오롯이 전달할 것이다 1년 5개월의 시간 동안 그들은

하나의 작품을 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형체를 만든 것이다

이 문화적 행위는 수 세기를 건너뛰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상징으로

기능할 것이다

6 7

글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기획조정실 홍보팀

세계유산 따라 떠나는 여행

ldquo여러분 영화 lsquo역린rsquo 보셨나요 그 영화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십니까rdquo

ldquo이산rdquo

ldquo정조임금rdquo

ldquo맞아요 이곳 수원 화성은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이장하

면서 함께 건축했습니다 오전에 보았던 창덕궁도 정조 임금과 관련된

곳이라는 것 잊지 않으셨죠rdquo

영화라는 친근한 소재를 곁들인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에 참가자들의

눈에는 어려운 기색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사에 대해서 어렵고

딱딱하게 느낄 법도 한데 실제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를 보며

친근한 설명까지 들으니 다들 집중한 표정으로 열심히 답사 코스를 따라

다닌다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세계유산과 그

주변의 다양한 유 무형유산을 연계하여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당일 또는 1박 2일

일정으로 매월 운영되고 있다

8 9한국문화재재단 소식 2

궁 약 한 시간여를 달린 버스는 먼저 행궁 앞에 참가자들을 내려줬다

창덕궁과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은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행궁을 찬찬

히 둘러보았다 행궁의 뒷벽에는 lsquo정조대왕화성능행반차도rsquo1)가 전시

되어 있어 참가자들은 정조의 능행의 이유와 수원 화성과 행궁의 건

립 목적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하는 표정이었다

행궁 답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십여 분 정도 이동해 프

로그램의 마지막 목적지인 수원 화성 장안문 앞에 내렸다 잘 쌓아올려

진 수원 성곽을 전부 다 돌아볼 수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시간의 제약

때문에 참가자들은 장안문과 화홍문 방화수류정 등의 장소를 돌며 아

쉬움을 달래야 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방화수류정에서 내려다보

이는 아름다운 풍광에 참가자들은 저마다 신난 얼굴로 열심히 기념사진

을 촬영했다

오전 9시 30분에 시작된 프로그램은 저녁 7시가 넘어 아침에 출발한

장소인 은평구 다문화지원센터에 도착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하

루 종일 진행된 프로그램에 참가자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래도 한국의 역사와 세계유산에 대해 배워간다는 생각에 뿌듯한 표정

이었다

2015년 세계유산 연계체험은 10월에 4회 11월에 3회로 앞으로 총

7회가 더 남아있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문화의집KOUS 세계

유산 연계체험을 통해 우리의 세계유산을 접했으면 한다

를 통해 모집된 31명의 다문화가족이다 이들은 김숙희 문화유산해

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하루 동안 창덕궁과 화성 일대를 돌아보는 체험

을 했다 무더운 날씨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답사에 지칠 법도 하건

만 참가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쉽고 친절한 설명에 외국인 엄마들과

아이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끊임없이 반짝거렸다 모두들 아름다운 궁

궐과 화성의 모습에 궁금한 것이 많은 듯 열심히 전각들을 구경하고

질문하며 기념사진을 찍는 등 이번 체험을 100 즐기는 모습이었다

취재를 위해 따라간 필자 역시 기존에 알던 장소들이지만 lsquo조선의 정

궁과 행궁rsquo이라는 주제에 맞춰 설명을 들으니 그 장소들이 달리 보여

새로웠다

프로그램은 크게 오전과 오후 일정으로 나뉘어졌다 오전 9시 30분에

은평구 다문화지원센터에 집결한 참가자들은 버스를 타고 첫 답사장

소인 창덕궁으로 이동했다 참가자들은 문화유산해설사의 안내에 따

라 궐내각사를 시작으로 창덕궁 인정전 희정당 대조전 낙선재 등을

두루 둘러보았다 각 전각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정조임금과 관련된

이야기까지 곁들인 해설에 참가자들은 지루한 기색 없이 해설사의 설

명을 경청했다 특히 어린 참가자들은 대부분 아직 유치원생임에도 불

구하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며 큰 관심을 보였다

오전 창덕궁 일정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근처 맛집으로 이동해 설렁탕

으로 보신을 한 후 다시 버스에 올랐다 오후 목적지는 수원 화성과 행

1 창덕궁 세계유산 지정 표지석

2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에서 내려다본 전경

3 수원 화성 성곽

4 김숙희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참가자들

2015년 세계유산 연계체험 잔여 일정표

1) 조선 22대 왕 정조가 어머니 경의왕후(敬懿王后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하여 아

버지 장헌세자(莊獻世子사도세자)가 묻힌 화성 현륭원(顯隆園)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정조대왕화성행행반차도(正祖大王華城幸行班次圖) 또는 화성행차도

(華城行次圖)라고도 한다 경의왕후의 환갑잔치 내용을 치밀하게 기록한 원행을묘정리

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김홍도의 책임 아래 최득현 김득신 이인문 장한종 허식

등의 자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들이 제작한 목판화가 남아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정조반차도 [正祖斑次圖] (두산백과)

회차 일자 지역 주제 주요 관람지 참가대상

10 102(금)수원

화성

정조대왕의 업적과

발자취 수원 화성 건릉

서대문구

다문화센터

11 1016(금)서울

수원

역사를 통해 배우는

孝사상종묘 수원 화성

강북구

다문화센터

121119(목)

~20(금)

창녕

고성

우리나라의

자연유산 탐방

우포늪

공룡화석지

관악구

다문화센터

131126(목)

~27(금)

익산

전주

백제 역사 문화유산

탐방

왕궁리 미륵사지

입점리고분

답사

우수 고객

141022(목)

~23(금)

공주

부여

백제문화의 제2

중흥기를 찾아서

낙화암 궁남지

공주middot부여역사

유적지구

미정

15 1030(금)서울

여주

조선의 정궁과 왕의

사후 안식처경복궁 영릉 미정

16 116(금)서울

광주(경기)조선의 궁궐과 산성 창경궁 남한산성 미정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운영하는 세계유산 연계체험은 우리나라 세

계유산을 주변의 다양한 유 무형유산과 함께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다 매월 1~2회 하루 또는 1박 2일 코스로 한 가지 주제를 정해 그와

관련된 세계유산을 문화유산해설사의 친절한 해설을 들으며 답사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참가 대상은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유학생

들이나 결혼이주 여성 등의 외국인들과 다문화가정 가족들 소외계층

이다 우리 역사와 세계유산에 대해 다소 생소하게 느낄 수 있는 이들

에게 해설을 곁들인 체험을 통해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해 알리고 있는

공익적 목적의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주 답사 장소는 궁궐 왕릉 사

찰 민속마을 박물관 등 전국에 있는 세계유산 및 세계유산 잠정목록

에 올라있는 문화유산들과 그와 연계된 체험 장소들이다 서울 경기

충청 등 수도권에서 가까운 지역의 경우 당일 일정으로 운영되며 전

라도 경상도의 경우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운영된다 2015년 올해

는 4월 17일부터 11월 27일까지 약 7개월간 15회의 체험 프로그램

이 운영되는데 서울middot경기 7회 충청도 2회 전라도 2회 경상도 4회

로 구성되어 있다 참가 신청은 국내 대학교 어학당 서울시 각 구청

다문화가족센터 등을 통해 접수 받아 단체로 신청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4일 금요일에는 lsquo조선의 정궁과 행궁rsquo이라는 주제 특히 정

조 임금과 관련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서울의 창덕궁과 수원 화성

답사가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의 참가자들은 은평구 다문화지원센터

1

2

3 4

1110

12

한국의집 조리팀장 김도섭

사진

그라피스튜디오

한국의집

가을을 맛보다

뜨거웠던 열기가 식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다

뜨거운 여름을 견디며

건강하게 키운 한 해의

결실을 맺는 가을 식탁은

그만큼 풍성하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가을

가을을 대표하는

건강식재료로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의 영양을

회복해보는 것은 어떨까

1312 한국문화재재단 소식 3

전통 한식을 대표하는 한국의집 김도섭 조리팀장은 조선왕조 궁중음식 전수 장학생이자 한식조리기능장으로서 전통음식의

발전을 위한 레시피 표준화 궁중음식홍보사업 등을 통하여 국내외 전통음식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그는 한국의집뿐만 아니라 문화교류사업의 일환으로 해외 행사에서 요리를 하기도 했다 뭄바이 인도상공회의소 주관 한국의

밤(rsquo13) 태국관광박람회(rsquo12) UAE-한 수교30주년만찬amp리셉션(rsquo10) 등에서 요리를 선보이며 한식 전도사로서의 역할 또한 하고

있다 또한 문화재청장 표창(rsquo08)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표창(rsquo15)을 받은 바 있다

문의 02-2266-9101 wwwkhorkr

조리팀장

김도섭

가온정식 1인기준 35000원 삼색밀쌈과 해물잣즙채 고구마middot알밤죽과 물김치 새우찜과 생절이 버섯불고기와 부추절임 꽃게감정 진지 기본찬 후식

4인기준 조리

가을 낙지골동반 1인기준 25000원 삼색밀쌈과 해물잣즙채 계절죽 전유화와 생절이 낙지골동반 국 무화과 후식

제철 꽃게 대하 고구마로 건강을 담아낸 lsquo가온정식rsquo

lsquo가온정식rsquo은 가을이 제철인 꽃게 대하 고구마 밤을 중심으로 고구

마middot알밤죽과 새우찜middot생절이 꽃게감정으로 구성한 메뉴이다 특히

꽃게감정은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음식으로 고급스럽고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번거로워서 사위를 맞이할 때

나 한 번 만드는 귀한 음식이다 꽃게감정은 제철을 맞은 가을 수게의

살을 곱게 발라내어 소고기와 갖은 야채로 소를 만들어 게딱지에 채워

놓고 국물을 자박자박하게 끓여 만들어 낸 찌개인데 제철 꽃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미와 담백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제철 게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이 많아서 소화가 잘되고

원기회복에 좋다 이 밖에도 키토산이 풍부한 대하 식이섬유소가 풍부

한 고구마 5대 영양소와 비타민C가 풍부한 밤으로 만든 요리는 입맛

을 돌게 하고 원기회복에 도움이 된다

쓰러진 소도 살린다는 가을철 원기회복의 대명사 lsquo가을 낙지골동반rsquo

골동반은 임금님부터 백성까지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한국의집은 가을을 맞이하여 기존 골동반 메뉴에 영양이 풍부한 낙지까

지 맛볼 수 있는 lsquo낙지골동반rsquo을 선보인다

낙지골동반은 오색나물과 살이 충분히 오른 가을 낙지를 올려 시각적 아

름다움과 맛과 영양까지 모두 챙기는 일품메뉴이다 특히 lsquo봄조개 가을

낙지rsquo란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가을 낙지의 맛은 높이 평가된다 또한 낙

지는 피로에 좋은 아미노산과 타우린이 풍부해 인삼 한 근과 비견할 정

도로 몸에 좋은 음식이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철 제철재료로 만든 요리는 그 어느 계절 음식보다 맛

이 좋고 몸에도 좋다 제철을 맞은 엄선된 재료로 만든 한국의집 가을 신메

뉴와 함께라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14 15

1927 2015

宇峰우봉 이매방

춤 한자락에 담긴 삶

한국 춤의 거목 우봉 이매방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lt승무(僧舞)gt 및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lt살풀이춤gt 예능보유자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2가지 종목의

무형문화재를 보유했다

그의 춤과 삶의 흔적을 담아보았다

Master Ubong Lee Mae Bang Korearsquos traditional dance virtuoso passed away on August 7 2015 He was 88 years of age Ubong was one of the key figures in

the modern and contemporary days of Korea Ubong the one who often lauded as a ldquodancer sent from the Heavenrdquo was a master of Seungmu (a form of dance

traditionally performed by Buddhist monks) and Salpuri (a form of dance traditionally performed by Korean shamans to banish evil spirits) designated

as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No 27 and 97 respectively Born in Mokpo Jeollanam-do on May 5 1927 he was discovered and trained by

Han Guk Hyang the headmaster of a Gwonbeon (a form of traditional dance academy in Korea) in Mokpo at the age of 7 This was followed by 8 years of

dance and drum performance training as an apprentice of Master Lee Dae Jo who taught Seungmu Geommu (sword dance) and Gobeop (traditional drum

technique) at the Gwonbeon Throughout his life devoted to dance he garnered great fame as the holder of two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and

trained numerous traditional dancers Ubong Lee Mae Bang passed on to us the quintessence of Korean traditional dance expressed through his moves that

made him a dancer of a historic significance for whom there will be no equal in this millennium not to mention in this century사진제공 한국문화재재단

1716 기획특집1

살풀이춤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해 공연 때 착용했던 살풀이춤 의상이다 무동옷과 쾌자는 다른 색으로 바꿔입기도 하며

이매방 살풀이춤을 대표하는 의상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사진액자 121940~50년대 이매방이 승무 바라춤

추는 모습을 찍은 사진의 배경을

없애고 보유자만 오려 붙여 만든

액자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약력

1927년 전남 목포 출생

1934년 목포 북교 입학

1935~39년 만주 다렌 거주 이대조에게 승무 북춤 박영구에게 승무 법고 이창조에게 검무 사사

1943년 목포 공립공업학교 졸업

1948년 명창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서 lsquo승무rsquo로 첫 무대

1953년 제1회 개인발표회(광주)

1956년 제3회 개인발표회(부산)

1959년 제5회 개인발표회(서울 원각사)

1984년 무용 인생 50년 특별공연 lsquo북소리rsquo

1987년 승무 예능보유자 지정

1990년 살풀이춤 예능보유자 지정

1993년 인간문화재진흥회 부회장

1996년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수

1999년 우봉 이매방 춤 인생 65주년 기념 대공연

2004년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춤 인생 70년 기념공연

2005년 lsquo우봉 이매방 춤 전수관 개관 기념공연rsquo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 대공연장)

2006년 lsquo무용 무대예술 80년사 아름 보듬어맺고 풀고helliprsquo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07년 lsquo화성 춤 페스티벌rsquo (수원대학교 베칸토 아트센터)

2008년 서울시 무용단 정기공연 lsquo하얀사 고이접어rsquo (세종문화회관 세종 M씨어터)

2009년 lsquo그가 무대에 서면 역사가 된다 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춤 대공연rsquo (영등포 아트홀)

2010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2011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호암아트홀)

2012년 명작 명무전 (LG 아트센터)

2014년 lsquo우리는 그를 巨木이라 부른다 우봉 이매방 전통춤 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승무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한 승무 복식으로 공연 때 착용했다 흰 장삼에는 옥색 바지 저고리를 입고

흑 장삼에는 흰색 바지 저고리를 입는다 흰 장삼의 승무 의상을 기증했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wwwk-heritagetv에서

승무와 살풀이 동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수상 내역

2015년 은관문화훈장

2011년 제12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공로상

2004년 임방울 국악상middot세종국악대상

1998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1995년 성옥문화상

1984년 옥관문화훈장

1976년 부산시 눌원문화상

우봉 이매방

한국 전통 춤의

정수 승무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18 19

글 사진

이병옥 (용인대학교 명예교수)

宇峰우봉

이매방 선생의 춤 일생

춤 성향을 가늠하는 입문과정과 열정

첫째는 이매방이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세(1934년)가 되던 해 옆집에 세

들어 살던 조도 출신 목포 권번의 권번장 함국향(咸菊香)씨는 그가 춤추기

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춤 학습을 권유하여 남자이지만 여성적인 고운 춤

사위 성향인 기방춤의 기틀을 마련한 점이다

둘째 이매방의 할아버지이면서 스승이었던 이대조 명인은 목포 권번(卷

番)에서 승무와 북놀이 검무 그리고 고법(鼓法)을 가르쳤던 권번 선생으

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점이다

셋째 중국 대련 정포소학교(1935~1939)를 다니면서 그는 매란방 배구

자 등을 만나 춤에 색다른 영향을 받은 점이다 대련에서 운수회사를 운영

하던 큰 형님을 따라 약 5년간을 살게 되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신무용의

대가인 배구자의 무용공연에도 출연하였고 또 북경에 있던 큰 누나의 연

결로 매란방의 공연을 접하고 이국적인 향취에 매료되어 그에게 lt장검무

gt lt등불춤gt lt꿩털춤gt 등을 배운다 6middot25 이후에는 본명 lsquo이규태rsquo를 버

리고 lsquo매방(梅芳)rsquo이라는 예명을 lsquo매란방rsquo의 약자를 딸 정도로 그의 예술혼이

깃든 것이었다 그러다가 대련정포소학교 5학년 때(1939년) 고향 목포북

교소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통춤에 정진하게 되었다

넷째는 주말마다 광주 권번에 다니면서 권번 선생이었던 박영구로부터

승무와 북놀이를 배우고 이창조(장성출신) 선생에게는 검무를 학습한 점

이다 이처럼 목포 권번과 광주 권번을 오가며 박영구 이창조 그리고

이대조 선생에게서 승무 승무북놀이 검무 입춤 살풀이춤 장고춤

태평무 한량무 보렴승무 흥춤 장검무 장고기법들을 배웠다

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공연은 1942년(16세) 목포역전에

서 임방울이 주관하는 명인명창대회였다 이때 승무를 출 박봉선이 사정이

생기자 함국향이 이매방을 임방울에게 소개하여 김연수의 장삼을 빌려 입

고 무대에 나섰다 이때 이매방은 승무를 추어 관객의 열렬한 호응으로 자

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또 예술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해방 후로는 1948

년 임춘앵의 여성국극단에서 삼고무를 가르쳤고 그해 목포 역전에서 다시

임방울이 이끄는 명인명창발표회에 당당히 승무로 출연하게 되었다

방랑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춤 정립(대구 군산 부산 광주 서울)

1950년 6middot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북한군의 뒤를 따라 예술동맹 공연

단들이 목포에 내려와 인민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당시 최승희의 딸 안성희는 lt장검무gt 전황(본명 전두황)은 lt처녀총각gt 등

을 추었으며 이어 이매방을 강제로 무용동맹에 가입시켜 무용활동을 시켰

다 수복 후 국군이 들어와 무용동맹에 강제로 가입했던 것 때문에 곤욕을

치렀으나 가까스로 해명하고 국군 군예대(KAS 종군연예인공연단)에 가

입하여 1951년 대구에 본부를 두어 활동하면서 지방순회공연을 다녔다

또 광주에서 전라남도 경찰국 선무공작단을 맡아 단장으로 호남 일대를 돌

며 순회공연을 하던 중 잠시 군산으로 옮겨 군산시 영화동에다 이매방무

1 1950년대 삼고무 초기 모습

2 1978년 이매방 승무

3 1938년 정포소학교 고개 숙인 이가 이매방 우측 앞

3

2

1

한국 전통춤의 대부 우봉(宇峰)

이매방 선생님이 2015년 8월 7일

8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우봉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로 lsquo하늘이 내린

춤꾼rsquo으로 칭송되는 근현대

전통춤계의 중심인물이었다

1927년 5월 5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7세 되던 해에 목포

권번(券番)의 권번장 함국향의 눈에

들어 춤 학습을 받았다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검무 그리고

고법을 가르쳤던 이대조(李大組)

명인으로부터 춤과 북놀이 사습을

8년 동안 받은 후 평생 외길

춤인생을 걸으면서 두 종목의

인간문화재로 그 명성과 수많은

이수자를 배출하였다

우봉 이매방의 춤사위는 lsquo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rsquo라는 표현을

넘어 lsquo밀레니엄에 한 번 날까rsquo하는

역사적인 존재라고 할 만큼 전통춤의

진수를 전승시킨 인물이다

그러면 우봉 이매방이 어떤 계기와

학습과정으로 전통춤의 대부가 될 수

있으며 어떤 춤 일생을 살아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20 21기획특집 2

용연구소를 개설하여 2 3년간 활동을 하였다

그 후 1953년 부산으로 내려가 장홍심이 운영하는 영도에서 함께 연구소를

했으며 부산 제자로는 김진홍 성승민 이도근 등이 있었다 1954년 광주

로 옮겨 국악원을 개설하여 한순서를 조교로 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무용

발표회(1955년 광주극장)를 가졌다 한편 서울에서는 여성창극단 삼성여

성국악단(박옥진 박보아 조양금 3인) 등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다시 1955

년 부산으로 내려가 초량동에 자리 잡고 첫 발표회를 대영극장(1957년)에서

하였다 그리고 서울에서도 1959년 원각사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당시의 이매방의 춤 활동은 전국적으로 목포 대구 부산 광주 서울이

었지만 주 근거지는 사실상 부산무용가협회 정회원이었으며 1957년과

1958년에 부산공연을 올리며 1960년대 말까지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

1960년대는 많은 무대를 누비면서 점차 춤 레퍼토리를 확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이매방은 삼고무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창작하였으

며 그 후 5고무 7고무 그리고 9고무와 11고무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lt초립동gt lt화랑무gt lt검무gt lt장검무gt lt박쥐춤gt lt흥춤gt lt무당춤gt lt장고

춤gt lt학춤gt 등을 정립하였고 늘 추어온 lt승무gt lt입춤gt lt검무gt 등과 함

께 추었다 이매방 승무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연구소를 서울로 옮겨

오늘날까지 서울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매방은 lt보렴승무

gt lt삼현승무gt lt살풀이춤gt lt검무gt lt입춤gt lt한량무gt lt태평무gt lt흥

춤gt lt장검무gt 그리고 lt장고춤gt 등도 lt승무gt와 함께 끊임없이 연마하여 왔

다 그러한 이매방의 춤예술 정립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예능적 기술이 뛰

어났기 때문이었다

승무 살풀이춤 인간문화재와 국무(國舞)로 추앙

이매방이 서울무용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중앙대 교수이

며 문화재 위원이었던 정병호에 의해 1977년 7월 30일 서울 YMCA에

서 열린 한국전통무용발표회에서 승무를 발표하면서였다 아울러 그때

까지 한성준류의 한영숙 승무에 매료되었던 이들에게 새로운 유파의 승

무가 있음을 신문지상을 통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무대에서의 성공

은 이듬해 1978년 3월 세계민속예술제 한국대표로 프랑스 렌느시에 참

가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이매방 춤판의 최고 결정판은 lt북소리gt 시리즈였다 1984년 6월 이매

방 무용인생 50주년 기념공연 lt북소리gt(문예회관 대극장) 1985년 6월

이매방 전통무용 lt북소리 Ⅱgt 1990년 rsquo90 북경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

전 참가와 lt북소리Ⅲgt(호암아트홀) 그리고 1994년에 춤인생 60년을 정

리하는 lt북소리 Ⅳgt였다 또한 전통예술의 보급과 선양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결과로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1984)과 성옥문화상 문예부문 대상

(1995)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병호 문화재위원의 끈질긴 노력으로 1987년 7월 1일 이매방은 중요무

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명실상부한 명무의 대열

에 서게 되었다

이어 1990년 10월 10일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도 인정받아 전

통춤의 최고 명인으로 추앙받게 되었으며 수많은 한국무용가들이 이매

방류 춤을 전수받기 위해 구름같이 모이게 되었다 그 후 1996년 인생70

고희기념공연 1997년과 98년 일본공연과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2007년 lsquo우봉이매방팔순기념공연rsquo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으며

매년 제자들과 함께 정기공연을 하였다 전통춤경연대회 및 300여 명에

이르는 승무와 살풀이춤 이수자들과 제자들의 공연에도 찬조출연과 반주

를 직접 해주는 열정을 최근까지 지속하였다

이매방 춤의 무용예술적 가치

이매방의 춤에서는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호남제 시나위 춤사위로 짜여져 있

다 춤기법의 중심은 대삼소삼(大杉小杉) 비정비팔(比丁比八) 양우선(兩雨線)

비디듬 좌우걸이 완자걸이 잉어걸이 지숫기 등으로 곱고 아름다운 사위와

자태를 자아내고 한을 신명으로 풀어내는 정중동의 몸놀림이 배어 나온다

결국 이매방 춤은 호남 지방의 권번에서 추어왔던 춤사위 기법이지만 많

은 세월이 지나면서 스승들의 춤을 뛰어넘어 아무도 넘겨볼 수 없는 국무

(國舞)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이매방의 일생을 통해 그가 가진 춤의 예

술적 가치를 요약하면

첫째는 남자이면서도 여성보다도 더 곱고 섬세한 기방계통의 lsquo춤바디rsquo와

여성적 lsquo춤속rsquo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호남지역의 명무들로부터 뼈대 있는 전통춤을 다양하게 전수받아

호남춤의 정통성을 확립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과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춤의 천재이기 때문이다

넷째 현대교육개념으로 볼 때 어린 나이부터 춤의 조기영재교육을 받았

기 때문이다

다섯째 세계적인 경극과 춤의 명인 매란방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예술혼

을 불태우고 인생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80평생 춤추는 것 외에는 남자로서 어떤 직함도 직책도 직업도

가진 바 없이 오로지 춤만 추어온 외길 인생이기 때문이다 춤이 곧 이매

방의 삶이며 생명이며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일곱째 호남지역춤과 기방계통춤이라는 lsquo국지성rsquo에서 출발하였지만 경향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범한국적 전통춤의 lsquo국가성rsquo으로 거듭났으며 국제무

대에도 우리 전통춤의 lsquo세계성rsquo을 알리고 확인하는 독창성과 보편성을 지니

고 있었다는 점 등이 이매방 춤이 가지는 예술적 의의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매방은 1927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민족 수난 속에서도 춤을 배

웠고 해방과 6middot25전쟁 통에서도 오로지 춤만을 추었고 외래문명의 홍

수와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꿋꿋이 춤만 추어 한국 전통춤의 위상을 높였

고 세계 속에 한국춤의 지평을 열어 대한민국 시대의 전통춤 패러다임을

구축하였기에 국무적 존재로 인정받아 온 것이다

1970 2004 2008 2012

22 23

양종승 (우봉이매방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middot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하늘이 내린 춤꾼 宇峰 이매방 선생님을 追惜하며

춤을 위해 태어나 평생 동안 춤만을 사유하였던 우봉(宇峰) 이매방(李梅

芳) 선생님께서 2015년 8월 7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승천하셨다 선생

님은 1927년 5월 5일(음력 3월 7일) 새벽 동이 틀 무렵 목포에서 이경

율과 조병림 사이의 10형제 중 막내둥이로 태어났다 5남매는 일찍이

죽고 남은 3남 2녀 중 막내로 성장하였다 선생님 아명은 집안 돌림자에

따라 영길(永吉)이었지만 스님께서 귀한 아들이라고 하여 귀태(貴泰)로

개명해 주었다 오기된 호적에는 규태(圭泰)로 되어 있다 매방(梅芳)이

라는 이름은 중국 경극의 명인 매란방(梅蘭芳)의 첫 자와 끝자리를 따 예

명으로 불리었는데 1986년 호적을 개명하여 본명이 되었다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춤에 소질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서 성장하였다 결국 옆집 살던 권번장 함국향 권유로 목포 권번에 들어가

당대 소리 북 춤 등에 대가들이었던 이대조 이창조 박영구 진석산 등

에게 승무 검무 살풀이춤 등 전통춤을 학습하였다 선생님의 무용활동

은 목포 공립 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 승무로 출연

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이후 1953년 광주에서 첫 개인발표회를 시

작으로 무용인생 50주년 65주년 70주년을 비롯한 수많은 국내외 공연

을 펼쳤다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1990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가 되었다 그리

고 2014년 승무 및 살풀이춤 명예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한국무용협회 고

문 한국국악협회 고문 한국전통춤협회 고문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

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국무 우봉이매방 화보집』을 발간하였다

이매방 선생님 장례식은 2015년 8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서울삼

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문화예술인 葬]으로 치러졌다 목포문화예술회

관 내에 있는 이매방춤전수관에도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우봉이매방장

례위원회가 구성되어 공동장례위원장을 김종규 한국문화유산신탁 이사

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이경동 한국문화원연합회 회장 김복

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하철경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 김

덕수 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이사장 김진홍 부산시 무형문화재 동

래한량무 보유자 김정녀 중요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전수조교 채상묵

한국전통춤협회 이사장 국수호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등 10명이 맡

았다 장례집행위원장을 양종승 우봉이매방춤보존회 수석부회장 장

례집행부위원장에 김덕숙 김효분 박종필 오은명 최창덕 황순임

등 우봉이매방춤보존회 부회장 6명이 맡았다 장례위원은 김묘선 오

미자 박소림 이길주 송재섭 정영례 최희진 한혜경 김리혜 김은

희 한명옥 진유림 채향순 강성민 백경우 김정기 등 제자 215명이

맡았으며 목포분향소 공동장례위원장은 임점호 목포신안예총회장과 박

수경 목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맡았다 장례의전은 국가공인장례지

도사 유재철 황근식이 진행하였다 유족으로 미망인 김명자(전통무용

가 승무 및 살풀이춤 전수조교) 딸 이현주(전통무용가 승무 및 살풀

이춤 이수자) 사위 이혁열(연극인) 등이 있다

추모식 전경선생님 영전에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을 추서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

부 장관은 일평생 우리 춤 전승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며 문화

융성과 전통예술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공적을 기렸다 또한 이매방 선

생님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깊은 애

도와 함께 목포가 낳은 문화예술계의 큰 별이셨던 선생님은 우리나라 전

통예술의 표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외에 박민권 문화체육관광부 제1

차관 나선화 문화재청장 김해숙 국립국악원장 서도식 한국문화재재

단 이사장 이문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 등 정치계 문화예술

계 등 각계 인사들과 수많은 무용 가족들이 조문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추모식은 2015년 8월 9일 일요일 오후 7시부터 9

시까지 2시간 동안 삼성서울병원 영결식장에서 유가족 지인 각계인

사 제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덕택 운현궁 예술감독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민의례 고인에 대한 묵념 양종승 장례집행위원장의 고

인 약력보고 공동장례위원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공동

장례위원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이사장 공동장례위원장 김복희 한국

무용협회 이사장 등의 조사 제자를 대표한 채상묵 공동장례위원장의

추도사가 있었다 동영상으로 고인의 생전 활동과 육성을 보고 들은 후

유가족을 비롯한 지인 문화예술계의 인사 제자 등의 헌화 및 분향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안숙선 명창의 이별가와 김영임 명창의 회심곡 중

저승 가는 길이 헌가로 받쳐졌다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 보

유자 박병원 전수조교 송순단과 박미옥 등이 주관하는 추모굿과 이광

수 명인의 헌가가 올려졌다 다음날 오전 7시 30분에 발인식이 행해졌

고 오전 9시에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이 이루어졌다 유해는 경기도 광

주시 오포읍 시안가족추모공원에 봉안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에서 초제를 시작으로 49재가 진행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금세기 하늘이 내린 명무였다 그리고 근현대 문

화적 격동기 속에서 우리 춤을 꿋꿋이 지킨 민족춤 계승자로서 주어진

소임을 완수하였다 그래서 선생님의 예술 생애와 그가 전승해 온 민족

춤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큰 가치를 지닌다

주지하다시피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한국 전통무용 진가를 표방

하는 고단위적 한민족 춤 유산으로써 조선 중엽 이후 불교의식 민속놀

이 유랑예인연희 무속신앙 등과 어우러져 계승 발전되어 왔다 그와

더불어 민중의식을 담아 애환과 기쁨을 표상하는 춤으로써 위엄 있고 격

조 있는 춤으로 승화되었다 그래서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무용 예술적

가치와 업적은 위대하고 광활하다 무용평론가 강이문과 무용학자 이병

옥 교수는 이매방 선생님을 國舞라 칭했으며 문화계 많은 인사들은 신이

내린 춤꾼이라 호평하였다 이러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우봉 이

매방 선생님 금자탑에서 빛나는 것은 다름 아닌 기왕 흩어져 내동댕이쳤

던 민족 춤의 뿌리를 살려내어 우리 시대 진정한 무용예술로 승화시키고

국가의 민족유산으로 갈고 다듬은 것이었다 이는 탈 식민지적 화두가 -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다큐멘터리 중 이매방 인터뷰 -

살풀이춤은

즉흥무이다 승무

검무 법무를 다

배우면 자기 멋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수판을 잘라야 한다

가락도 춤 승무 가락

검무 가락 이런 거

섞어서 장단 맞춰서

자신의 감정 음악

듣고 음악이 슬프면

슬픈 표정으로

즉흥적으로 추는 춤이

즉흥무야

24 25기획특집 3

본격화되던 20세기 초중반 우리 것에 덧씌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구

를 벗겨내려는 문화 민족주의적 활동의 한 면이었다 서구 중축의 지배

담론을 탈피하면서 그동안 왜곡되고 전도된 관점에서 벗어남으로써 민

족춤에 비문명적이라는 멍에를 씌었던 편협한 지식층의 문화보기 탈각

운동의 한 면이었던 것이다 시기는 일본제국주의의 한국민족문화 말살

정책 해방 후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교육정책의 서구 지향적 패러다임

등장 도시화middot산업화middot현대화에 따른 전통문화 멸시 및 천시 등으로 인

해 민족예술이 단절 위기에 처했었던 그때였다 또한 현대 산업화에 따

른 근대화론 지향의 국책 하에서 민족예술을 진부하거나 불필요한 것으

로 치부하는 풍조였던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우리의 것은 외래의 것에 밀리거나 일방적으로 시비 당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빼앗기는 패배의 싸움판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던 그 상황 속에

서 선생님은 묵묵히 그리고 꿋꿋하게 우리 춤을 지켜 내셨다 우리네 전

통춤은 비합리적이고 가치가 없으며 저급하고 미천한 것으로 저평가되

돼 전승의 단절까지 치닫게 된 상황 속에서도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우

리 춤 계승하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의 춤을

옥석으로 다듬어 세상에 펼쳐 보임으로써 민족 무용예술의 가치를 되살

리는데 평생 힘써 왔었다 결국 어려운 역경과 피나는 고난을 헤치고 일

어난 선생님의 예술세계는 살아 숨 쉬는 민족 춤으로 꽃 피어졌다 향토

춤 민족춤 전통춤 속에 내재된 민중들의 예술적 사상과 정신이 북돋아

나 전통문화복원 민족문화재건 향토문화복구 등과 함께 형성된 민족

문화바로세우기운동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춤은 밖에

서 유입된 외래의 것과는 달리 이 땅에 자생적으로 자라온 민족 춤 뿌리

로 각인되면서 한국무용예술사에 독창적 고귀성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

리고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와

1990년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국민의 춤꾼으로 안

착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 계보를 따지고 올라가면 신방초(申芳草 남)라

는 인물이 있다 전남 옥과 출신인 그는 1817년 무속집안에서 태어난

재인으로 어정판에서 바라지로 활동하였다 춤은 물론이고 육자배기

가곡 가사 장단에 능하여 호남 일대에서 대단히 명성이 높았다 그래

서 당시 호남의 유명 당골들은 그를 모셔가기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였

다고 한다 신방초는 자신의 춤을 같은 고향 출신 신영수(남)에게 전했

다 이후 고창 출신 안두온(남)에게로 이어졌고 다시 순창 출신 이정선

(남)에게 전수되었다 이정선은 춤뿐만 아니라 북놀이에도 뛰어난 재능

을 갖고 있었던 예인이었으며 판소리도 잘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상당

한 대접을 받았다 이정선의 춤은 목포 출신 김금옥(여)과 박귀주(여)에

게 이어졌다 그 후 이매방 선생님의 스승 박영구 이대조 이창조 진

석산 등에게 전수되었다 박영구(남)는 전남 화순 출신으로 승무와 북놀

이의 명무 명인이었으며 광주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대조(남)는 전

남 무안 출신으로 승무의 대가였고 목포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창

조(남)는 전남 능주 출신으로 검무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고 역시 광주 권

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그리고 진소홍(일명 진석산 여)은 전남 담양 출

신으로 서울 인사동에서 요릿집을 운영하면서 살풀이춤을 전승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춤에는 엄격한 억제와 철저한 절제가 존재한다 이

는 수단에 의해 보이는 기교면서 또한 재간으로 처리될 수 있는 예술적

기법의 한 면이다 선생님의 춤은 또한 느낌과 감정의 표현 방식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느낌에서는 가벼움과 무거움 재빠름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이매방 승무-필자 양종승 제공팔순 기념공연-필자 양종승 제공

과 더딤 흐늘거림과 꼿꼿함 섬세함과 우람함 정교함과 장중함 등의

변화무쌍한 표현력을 가진다 감정에서는 슬픔과 기쁨 가냘픔과 뭉뚝

함 애석함과 환희 괴로움과 기쁨 고요함과 시끄러움 등이 묘사되는

데 이는 삶의 고뇌와 애환은 물론이고 희망과 행복을 감싸고 있음을 말

한다 이러한 춤에 있어서의 느낌과 감정은 비정비팔 비디딤 까치걸

음 잉애걸이 좌우걸이 완자걸이 안가랑 등의 발디딤새와 양우선

평체 사체 등의 손놀림새 그리고 연풍대 지숫기 다루치기 대소삼 등

의 몸굴림새 속에서 표현력을 한층 고조시킨다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

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

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

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길이

길이 민족 춤 기틀로 명명되어 질 것이다 천기를 타고난 춤꾼 신들

린 듯한 춤으로 관객을 홀렸던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이제 천상

무대로 가시어 휘날릴 것이다 선생님 기어이 춤과 함께 홀연히 떠

나셨으니 부디 부디 영면하옵소서

추모식 전경

26 27

전경욱 (고려대학교 교수)

동아시아의 가면극1 중국 귀주성 위녕현의 〈춰타이지(撮泰吉)〉 가면극

풍농과 악귀 쫓기를 위해 기원하는 제의의 일부

2 한국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서낭신인 각시가

무동을 탄 모습

3 일본의 미야자키현(宮崎県) 시이바손(椎葉村)의

〈다케노에다오가구라(嶽之枝尾神楽)〉

4 《봉사도》제7폭 모화관에서 행해진 중국사신

영접행사의 연희장면 산대(왼쪽) 앞에서 연행된

줄타기 물구나무서기 접시 돌리기 가면극 등의

전문적 연희

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에서는 가면극 분야에 대해 보

유자와 단체를 모두 지정하고 있으니 일본보다 지원이 좋은 편이다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을 민간문학 민간음악 민간무용 전통희극

곡예 잡기와 경기 민간미술 전통수공기예 전통의약 민속으로 분류

하여 지정하고 있다 중국 가면극인 나희는 전통희극 분야에 해당한다

한국에는 현재 국가 지정의 중요무형문화재 가면극 13종목 각 시도의

무형문화재 가면극 2종목(진주오광대와 퇴계원산대놀이)이 있다 중국

은 그동안 전통희극 분야에 430개 종목을 지정했는데 여기에 나희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노(能)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중요무형

민속문화재의 민속예능 분야에 35개의 가구라(神樂)를 지정했다 이 가

구라들은 대부분 민간의 가면극이다

Ⅱ 동아시아 가면극의 역사와 계통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면극은 매우 유사한 발전 과

정을 보인다 동아시아에는 (1)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과 (2)전

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이 있었다 (1)은 각 지역의 향촌제사

활동(鄕村祭祀活動)에서 연행되던 것으로서 각각 자생적 향토적 성격

을 띠고 있다 그러나 (2)는 산악(散樂) 또는 백희(百戱)라고 불리던 동아

시아 공동의 연희들이 발전하여 성립된 것으로서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함께 각국의 독자성을 띠고 있다

1 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하회별신굿탈놀이나 강릉관노가면

극처럼 향촌제사활동인 마을굿에서 유래하여 발전해 온 가면극들로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전승해 왔다 이 가면극들은 다른 지방의 가면극과

는 아주 다른 독자적 내용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가면극들이 마을굿에

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도판 1)

중국의 나희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지만 후대에는

그것이 민간에 전파되어 각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도 전승되고 있다 그

리고 중국 한족을 비롯하여 소수민족들에는 여러 향촌제사활동에서 유

래하여 그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가면극들도 있다(도판 2)

한편 일본의 고유 신앙을 섬기는 신사(神社)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연예술

인 가구라(神樂) 중에는 자생적인 민속가면극의 예를 보여 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국의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방마다 차이가 크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도판 3)

2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생겨난 가면

극이다 본산대놀이는 삼국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산악middot

백희 그리고 상고시대의 제천의식 등에서 연행되던 전문적 연희자들의

연희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해 형성된

것이다 산악middot백희를 놀았던 사람들은 그 연희 내용으로 볼 때 삼국시

대부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연희자였으며 이들의 후예가 통일신라시

대에 최치원의 시 lt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gt에 묘사된 다섯 가지 연

희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계승된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연행

된 가무백희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나례에서 연행된 산

대희 등을 놀았다 그리고 중국 사신 영접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

희를 펼치던 반인들이 18세기 전반기에 산악middot백희 계통의 연희와 기존

의 가면희들을 재창조해서 본산대놀이를 성립시켰다 이 가면극은 애오

개(아현) 사직골 구파발 녹번 등에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봉사도(奉使圖)》(1725년) 제7폭은 서울의 모화관 마당

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행사의 연희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접시 돌리

기 땅재주 줄타기 탈춤을 묘사하고 있다 마당의 오른쪽에는 산거(山

車)middot산붕(山棚)middot윤거(輪車)middot예산대(曳山臺)middot예산붕(曳山棚) 등으로 불

렀던 소규모의 산대가 보인다 바로 이런 산대 앞에서 공연하던 연희들

을 lsquo산대희rsquo라고 불렀다 특히 세 명의 땅재주꾼 양 옆에서 각각 두 명씩

모두 네 사람이 초록색과 남색의 가면을 쓰고 탈춤을 추고 있다 이는 서

울에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가면극이 있었고 그 가면극을 애오

개산대놀이 등 산대놀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전해준다(도판 4)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경기도의 송파산대놀이middot양주별산대놀이 황해

31 2

Ⅰ 동아시아 가면극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우리는 가면극을 탈춤 탈놀이 가면희 등으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가

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儺戱)라고 부

르는데 이는 중국 가면극들이 대부분 나례에서 연행되던 연희인 나희

로부터 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무형문화유

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middot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부터 한국은 1964년부터 중국은 2006년부터

무형문화재를 국가 차원에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

의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용어로 lsquo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rsquo이라

는 말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의 기예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lsquo보유자rsquo로 인정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lsquo전승인(傳承人)rsquo 일본에서는

lsquo보지자(保持者)rsquo라고 부른다

중국은 이제 막 무형문화재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작했지만 각 지역에

서 자기들의 무형문화재를 국가 지정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으로 등재하기 위

한 열기는 매우 뜨겁다 그리고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과 관련된 행사나 학술

대회도 자주 개최하고 있다 필자는 매년 중국의 가면극학회인 중국나

희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는데 가면극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들에서

는 이 학회를 유치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현지 답사를 통해 자기 지

역의 가면극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국가 지정의 무형문화재를 (1)중요무형문화재(연극 음

악 공예기술 등)와 (2)중요무형민속문화재(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

행사 등에 관한 풍속관습 민속예능)로 구분하여 지원한다 그래서 연극

분야 중 노(能) 가부키(歌舞伎) 등은 (1)에 해당하고 각 지방의 가구라

(神樂)는 (2)의 민속예능에 해당한다 (1)은 전문적인 연희자들이 전승하

는 종목으로서 그 기middot예능을 보유한 사람과 단체를 모두 지정한다 그

러나 (2)는 단체만 지정하고 보유자는 지정하지 않는다 이를 한국에 적

용하면 판소리는 (1)중요무형문화재(음악)에 가면극은 (2)중요무형민

속문화재(민속예능)에 해당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한국의 가면극들

은 대부분 각 지방에서 세시풍속의 하나로서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

日韓 中

4

28 29무형문화재 삼국지ㆍ예능

도의 봉산탈춤middot강령탈춤middot은율탈춤 경남의 수영야류middot동래야류middot통

영오광대middot고성오광대middot가산오광대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

본산대놀이는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했지만 여기에서 전파된 별산대

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 등은 농민 하급관속 무부(巫夫) 등 각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중국 가면의 역사에서 가면의

효시는 나례에 등장하던 방상시(方相氏) 가면이다 이 나례에서 연행되던

각종 연희와 가면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면극이 생겨났기 때문에 가면

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다른 계통의 가면은 육조(六朝)시대 이후 산악middot

백희에 사용되던 것으로 이는 서역악무(西域樂舞)의 영향을 받은 외래

기원의 가면이다 현재도 중국에는 귀주성의 나당희처럼 무당집단이 전

승하고 있는 나희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들은 전문적 연희자인 셈

이다(도판 5)

일본의 가면극은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서 육성된 가면극과

서민층에 의해 육성된 가면극이 있다 전자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예술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데 기가쿠(伎樂)middot

부가쿠(舞樂)middot교도(行道)middot노(能)middot교겐(狂言)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

데 노와 교겐은 특히 산악middot백희와 밀접한 관련 아래 성립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문화인 산악middot백희가 일본에 유입

된 이후 변화middot발전하여 후대에 일본의 대표적 전통연극인 노가쿠(能

樂)middot노쿄겐(能狂言)middot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middot가부키(歌舞伎) 등 전통연

극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산악middot백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 연희를 발전시켜 lsquo나희

(儺戱)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켰고 일본에서는 사루가쿠(猿樂) 즉 산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lsquo노(能)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킨 것처럼 한국에서도

중국 사신 영접 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반인(泮人)들이

lsquo본산대놀이rsquo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Ⅲ 동아시아 가면극의 연희 내용

한국의 가면극은 벽사적 의식무과장 파계승과장 양반과장 영감할미

과장 등 서로 다른 내용의 과장들로 짜여진 소위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

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면극을 탈춤이라고 부를 정도로 춤이 많

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춤사위가 매우 뛰어나다(도판

6) 일본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가구라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짜인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나희와 일본

의 노는 대부분 하나의 가면극이 하나의 서사적 내용으로 짜여 있다

이러한 서사성의 나희와 노도 또한 서로 차이점을 갖고 있는데 노는 lsquo현

재노(現在能)rsquo와 lsquo몽환노(夢幻能)rsquo가 있어 특징적이고 나희는 주로 노래와

대사에 의해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lsquo현재노rsquo는 현재형으로 사건이 전개

되는 노를 말한다 lsquo몽환노rsquo는 나그네(조연자인 와키가 분장)의 꿈 속에

망령이나 화신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몽환노에

서는 시간이 자유롭게 정지하고 역행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도 자유롭게

등장할 수가 있다 주연자는 고전 속의 미녀이거나 역사상 인물일 수도

있고 지옥의 원령이거나 신(神) 불(佛) 귀(鬼) 초목(草木)의 정령이기

도 하다

중국 나희에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 황제 왕 일반인물

등 배역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연희 내용도 의식적인 춤을 제외

하면 대부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를 연극화

하여 공연한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 가면극에서

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이 거의 없고 황제나 왕 같은 존재

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반 인물 위주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연희 내용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주로 현

실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한편 한middot중middot일의 가면 또한 각국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middot중middot일 가

면의 형태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 윗부분에 있다 한국 가면은 얼굴

의 이마 부분까지만 표현하고 있다 일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경우에

도 간단한 선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

을 안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낸다 모자를 쓰는 배역은 별도의 모자를 착

용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의 귀면(鬼面)인 팔먹중가면을 보면 오로

지 안면의 표정에 의해 무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 노나 가

구라의 가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가면은 대부분 머리 부분과

얼굴 부분을 모두 이용해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한다 가면 자체에

머리 부분의 모자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도판 7)

그리고 한middot중middot일의 음악적 선율과 장단이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음악에 맞춰 연기하고 춤을 추는 연희자들의 동작과 춤사위는 각국

가면극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

5 중국 귀주성 덕강현의 무당들이 공연하는 가면극인 〈나당희(儺堂戱)〉

6 춤사위가 매우 뛰어난 〈봉산탈춤〉의 팔먹중춤

7 중국 안휘성 지주의 나희 〈유문룡〉 가면 자체에 모자를 장식

7 5

6

30 31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충남middot서울시 문화재위원)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도판4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양푸시(楊福喜) 201598 필자 촬영

도판5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권영학 보유자 2015821 필자 촬영

도판6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故 김박영 보유자 서헌강 촬영

도판1 활 쏘며 수렵하는 장면 고구려 무용총

도판2 중국 고대 활과 화살 및 활쏘기 장면 전국시대 초(楚) 동호(銅壺)

도판3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일본

Ⅰ 한민족과 활

한국인에게 활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민족과 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중국인이 우리 민족을 부르

는 명칭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이다 lsquo이(夷)rsquo라는 글자는 큰 대(大)자

와 활 궁(弓)자가 결합되어 있다 동이라는 글자를 곧이곧대로 풀어보면

lsquo중국의 동쪽에서 살며 큰[大] 활[弓]을 잘 만들고 쏘는 민족rsquo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 미루어 이미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우

리 한민족이 그들 한족보다 활을 잘 다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반인뿐 아니라 왕도 활을 잘 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적 인물로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lsquo활 잘 쏘는 이rsquo의 대명사로 기

록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쏘았으며

사도세자의 아들로 유명한 정조 또한 활을 잘 쏜 국왕으로 기억된다

조선에서 활쏘기를 잘했던 이유는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심신을 단련

하는 육례(禮 樂 射 脚 書 數) 중 하나로 활쏘기가 장려된 데에도 원

인이 있다 조선에서는 국가 의례로 활쏘기 행사를 거행하였다 왕과

신하가 활 쏘는 대사례(大射禮)는 1477년(성종 8) 1534년(중종 29) 및

1743년(영조 19) 1764년(영조 45)에 군신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였다 한편 지방의 양반 사족들은 향약과 비슷한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양국의 활은

기본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청나라 시대의 그림을 보면 조선 말기 19세기에 활

을 쏘는 그림과 비교가 된다 두 나라의 사수(射手)는 각각 청나라와 조

선의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른 편이다 더욱

이 양자가 활을 쏘는 모습은 공통되면서 부분적으로 다르다 그림 속 중

국의 활은 150cm 정도여서 1m 안팎의 한국 활보다 길이가 긴 점이 다르

다 막상 양자에서 동시에 화살을 쏘면 날아가는 비거리는 후자가 훨씬

긴데 이렇게 그림에서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몇 년 전

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lt최종 병기 활gt이다 시대 배경은 병자호란 당

시 청나라 무사와 조선의 사수가 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영화화한 것

이다 비록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다소 활의 효능이 과장되긴 했지만

두 나라 활의 특징과 조선 활의 장점을 극명하게 잘 그려내어 흥미롭게

본 기억이 새롭다

한편 양국과 비교되는 것이 일본의 활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활은 전

체 길이가 220cm가 넘는 세계 최대 길이의 활이다 16세기 조선의 『난

중잡록』에 의하면 일본의 화살은 lsquo장편전(長編箭)rsquo이라 하여 여러 나라의

화살과 비교해서 일본의 화살이 매우 크다는 기록으로 이미 조선에서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활을 사용하는 일

본에서는 활을 잡는 위치도 특이하다 일본의 활은 장대하기 때문에 위

쪽이 길고 아래는 짧아서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그림을 보면 매우 긴 활

의 아래쪽을 잡고 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활

은 ldquo화살은 길지만 먼 곳까지는 날지 않는다rdquo라고 13세기의 몽고인이

기록하고 있어 비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가마쿠

라 시대에 들어가면 그 중량이 더욱 늘어나 70g에 이르면 길고 무거운

화살을 폭이 긴 활로 쏘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Ⅲ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활과 화살은 조총이나 대포 등과 같은 화기(火器)를 발명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중요했다 이에 각국은 국력을 모아 활과 화살을

제작하였다

이미 고려 때에 중앙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에 각궁장(角弓匠) 전장(箭

匠) 전두장(箭頭匠) 등의 장인을 소속시켜 각궁을 만들었다 또 궁중의

궁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내궁방(內宮房)에도 각궁장(角弓匠)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군기감(軍器監)을 설치 운영하였고 장인들을 소속시켜 활

과 화살을 제작하게 하였다 이들 장인은 다른 기술을 가진 장인과 달리

궁인(弓人)이나 시인(矢人)으로 불렀다 궁인과 시인이라는 명칭은 『논

어』에서 나오며 그들 장인은 다른 물건이 아닌 무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우대하여 부른 것이다 이에 조선은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면

서 궁인 90명 시인 150명을 배정하였다 아울러 이들 장인들은 각 지

방마다 상당수를 배정하였고 이 또한 여타의 다른 장인들에 비하여 많

은 숫자에 해당되었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장색과 규모는 영조대 『속대전』이나 정조대

『대전통편』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국가적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각종 300여 도감마다 수많은 궁인이

나 시인을 징발하여 의례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할 궁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사적인 공방에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김준근의 lt기산풍속화gt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궁창을 앞에 두고

줄과 환으로 일정하게 다듬은 쇠뿔과 뽕나무 등을 옆에 두고 완성된

각궁에 시위를 걸어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있다

청나라 말에 전통 활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lt시궁정력(試弓定力)gt에

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입식 건물 안에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너댓 개

의 활을 만들어 올려놓고 다 만든 활을 과학적으로 무게를 재고 있다

향사례(鄉射禮)를 거행하여 사족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활을 좋아하고 잘 다룬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역

사 동안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다른 종목보다 유달리

활(양궁)을 잘 쏘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한민족의 피 속

에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유전인자 DNA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Ⅱ 유물 속 동아시아의 활

인류는 이른 시기부터 멀리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자 무기로 활과 화살을 개발하였다 이후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

에 따라 궁시를 제작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

하였다 하지만 궁시는 대개 나무나 대나무와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

져 썩어 오래전의 유물을 확인하기 어렵고 단지 흑요석(黑曜石)처럼 단

단한 석제로 만든 화살촉에 의해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정복 전쟁이 빈번해지던 고대부터 무기가 발달하였다 당시에

사용된 활과 화살의 형태는 유물 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전국시대(BC 475~221) 동호(銅壺) 유물

을 보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한편

5세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lt수렵도gt에서 말 위에서 짐승들을

1

32

4

6

5

32 33무형문화재 삼국지ㆍ기능

양국의 활 제작방식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청나라 활 제작 장인 집단

은 북경 동사대가에 있는 궁전대원리(弓箭大院里)에 17가호의 궁전 점포

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squo취원호(聚元號)rsquo이다 이곳에서 중국 전통 활

을 제작했던 장인이 양뤼린(楊瑞林)이며 아들인 양원통(楊文通) 손자인

양푸시(楊福喜)까지 3대가 잇고 있다 양푸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활을 제작하여 2006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

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장인으로 보호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45년 앞선 1971년 9월 13일 전통 활 제작 장인

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으로 지정하였다 서울 황학

정의 장진섭(張鎭燮 1916~1996)은 조부(장문환)와 부친(장기홍)에 이

어 3대째 활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예천의 권영

록(權寧錄 1916~1986)은 부친(권태전 權泰全)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

었다 부천의 김장환(金章換 1909~1984)는 조부(김원재)와 부친(김

동천)의 대를 잇고 한국 제일가는 명사수로서 활동하고 부천 성무정의

초대 사두(1967~1982)가 되었다 그의 기술은 제자인 김박영(金博榮

1929~2011)이 전승하였다 그의 사후 2015년 권영학(1943년생)보유

자가 새로 인정되어 조부(권선복)와 부친(권우갑)의 가업을 이어 그 또

한 3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화살을 만드는 시장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시장)

으로 지정하였다 화살로 유명한 장단에서 나고 자란 유영기(1936년 그런데 세계적으로 강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활은 여기에 화피를 더

하여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물소 뿔(牛角) 쇠심줄(牛芯)

민어 부레풀(魚膠) 대나무 뽕나무(弓幹桑) 참나무 화피(樺皮)가 그것

이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는 각궁은 살

아있는 활이면서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쇠뿔은 통뼈이며 대나

무와 뽕나무 및 참나무가 세부 뼈대이고 그 위에 바르는 쇠심줄은 근

육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부레풀은 연골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다듬는

화피는 피부에 해당된다 이중 물소 뿔과 대나무 및 쇠심줄이 활의 강

도와 탄성을 이루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민

어 부레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은 1년 중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제작하여 계절을 타는 공예품인데 그 이유는 동식물성 재료

들이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아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심이 건

조가 안되고 풀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여름에는 재료를 장만하고 찬바람이 나면 풀을 대와 뼈와 나무를 서로

붙여 정월 경에 건조시키고 3월부터 한 달 이상 해궁 작업을 한다 각

궁은 제작이 까다롭고 단계마다 원칙을 지키고 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

해서 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궁의 핵심 원료인 물소는 주로 아열대 지방인 중국 남부나 인도 및 인

도차이나 등지에 서식하므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여서 중국은 물소 뿔의 수출을 엄격

하게 통제하였고 조선 정부는 그것을 몰래 수입하려고 애썼다 현재

도 각궁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의 수급은 어려움이 많다 물소는 세계적

인 보호동물이어서 물소 뿔을 수입할 때 세관의 통과가 어렵고 쇠심줄

은 근래 많은 소들이 일하면서 근육을 키우지 않고 육우용으로만 키워

져 탄성이 없어 활의 탄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접착제인 민어부

레의 경우 예전에는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근래에는 민어부레가 정

력에 좋다고 그것마저 식용으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한 활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488년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同越)은 ldquo조선에서 사용하는 화피궁은 중

국의 제도에 비하여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rdquo라

고 평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활은 중국 것보다 작으나 탄

성이 크고 강하다 우리의 시장들은 대나무로 화살대[矢幹]를 만들고

쇠로 활촉(雛)을 끼우며 수리깃으로 화살깃(矢羽)을 만든다 반면 중국

의 장인은 죽시와 함께 유목(楡木)으로 목시(木矢)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활은 대나무와 나무를 한데 결합한 복합궁이다 일본의 활

은 2m 이상으로 길고 무거워 탄성이 적어 근거리에는 위력이 높은 대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이면서 한middot중middot일

삼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각궁은 한국 장인들의 솜씨가

표출된 우수한 전통 공예기술로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생)는 조부(유창원)와 부친(유복삼)에 이어 3대를 잇고 그 아들 유세

현과 유승현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단 근처 원당에서 나고 자

란 박호준(1944년생)은 조부(박희원)와 부친(박상준)에 이어 3대째 가

업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김종국(1940년생)은 스승인 조명제(趙命濟

1915~1980)가 조부(조성관)와 부친(조면보)의 대를 이었던 것을 본받

아 예천에서 화살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12월 14일 부천활박물관을 세웠고 파주에는 유영기

보유자가 만든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반면 중국에는 2012년 신강의

이리에 성급(省級) 비물질문화재로 등록된 이청강(李靑岡)이 중화활문화

박물관(中華弓文化博物館)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로 활을 지

정하지 않아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이 전통적(傳統的) 공예품

(工藝品)으로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을 지정하였다 미야기현(宮崎県)에 위치

한 미야코노조(都城市)에 7대째 120년 전통의 활을 제작하는 활제작소

[楠見藏吉 弓製作所]가 위치하고 있다

Ⅳ 활과 화살의 재료

활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의 『고공기』에 의하면 나무[干 柘 橘 桑 木

瓜 竹 荊 등] 심줄[筋] 풀[膠 말 소 사슴 물소] 뿔[쇠뿔] 옻[漆]

명주실[絲]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은 뿔을 주재료로

삼은 각궁(角弓)인 것을 알 수 있다

도판10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故

김박영 보유자 제작 각궁(角弓)

도판11 중국 양푸시(楊福喜)가 제작한 활

1m 60cm

도판12 중국 양푸시(楊福喜) 화살[箭]

위 2개 느릅나무[楡木] 3번째

목전(木矢) 아래 2개 죽시(竹矢)

201598 필자 촬영

도판13 일본 미야기현(宮崎県)

미야코노조(都城市) 120년 전통

楠見藏吉 弓製作所

httpjotaro-gocomcollect2980

도판14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

지정(指定) 전통적(傳統的)

공예품(工藝品)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

httpjotaro-gocomcollect2980 참고

도판7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종국(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9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박호준(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7 8 9

11 10

12

13 14

34 35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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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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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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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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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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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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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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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

1920

21

2223

2425

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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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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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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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

U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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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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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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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2: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발행일 2015년 10월 1일(통권 제372호) 발행처 한국문화재재단 발행인 서도식 외부 편집위원 김기덕 박인석 장경희 전경욱 전은경 발행부수 7500부

인쇄등록 강남 라-00003(1984년 6월 11일)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406 (삼성동 112-2번지) 전화 02-3011-2603 팩스 02-566-6314 홈페이지 wwwchforkr

디자인ㆍ제작 (주)디자인소호 02-514-5164

본지에 실린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한국문화재재단에서 발행한 lt월간 문화재gt 이번 호 저작물은 lsquo공공누리rsquo 출처표시 상업적 이용금지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사진 일러스트는 이용할 수 없습니다 공공누리는 공공기관의 저작물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한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입니다

wwwkoglorkr

bull

월간문화재는 한국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chforkr)의 월간문화재 구독신청 코너를 통해 신청하시면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차례

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36민속의 어제와 오늘

추석의 어제와 오늘

40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44

알림마당

문화유산 소식+재단행사 알림

전통문화달력

K-HERITAGE 문화상품

48

한국문화재재단 소식

조선 어보의 보록에 잠기다

세계유산 따라 떠나는 여행

한국의집 가을을 맛보다

기획특집

춤 한자락에 담긴 삶

우봉 이매방 선생의 춤 일생

하늘이 내린 춤꾼 우봉 이매방 선생님을

추석하며

무형문화재 삼국지ㆍ예능ㆍ기능

동아시아의 가면극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04 16 28

소식(蘇軾)과 함께 북송을 대표하는 시인 황정견(黃庭堅)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ldquo시의 뜻이 끝이 없지만 사람의 재주는 한계가 있다 한계가 있는 재주

로 무궁한 뜻을 추구하려 한다면 도연명이나 두보라 해도 그 교묘함에 잘 이르지 못할 것이다 뜻을 바꾸지 않고 자기 말로 바꾸는 것을 lsquo환골rsquo이라 하고

그 뜻을 가지고 형용하는 것을 lsquo탈태법rsquo이라고 한다rdquo

월간문화재가 문화유산 콘텐츠 전문가와 디자인 전문가를 편집위원으로 모시고 환골탈태 하려고 합니다 발간 주기를 월간에서 격월간으로 지면을 36

면에서 56면으로 대폭 확대해 lsquo담기는 내용rsquo과 lsquo담는 그릇rsquo 일체를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31년간 조금씩 변화하면서 오늘까지 보여주신 관심과 애정을 자

양분으로 결실을 맺기 시작하는 월간문화재에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換骨奪胎

환 골

지난 9월 4일 저녁 6시 30분 성북동에 위치한 한국가구박물관에서는

작지만 의미 있는 전시가 시작되고 있었다 전시가 열리는 한국가구박물

관은 전통 목가구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특수전문박물관이다 박물관이

기는 하지만 이곳은 가장 한국적인 정취를 담고 있는 공간이기도 해서

국가적인 행사나 참가자를 제한하는 행사에 종종 활용되고 있다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와 2015년 중국 시진핑 주석 방문 시에 오

찬 장소로 사용되었고 GUCCI와 같은 세계적인 명품사가 자사의 특별

전시를 개최하는 장소로 사용했으며 CNN은 이 박물관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렇듯 한국가구박물관은

웬만해서는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도도한 장소다

그 비밀스러운 정원에서 시작되려는 전시는 260년 역사의 시계 제조사

가 새로운 라인업을 국내에 소개하는 자리였다

세계 최고의 명품 시계 제조사답게 백화점이 아닌 가구박물관을 전시

장소로 선택한 문화적 안목은 탁월했지만 그날 밤 설렘과 낯선 입자들

이 밤공기에 녹아 장소가 주는 특별함을 능가하는 묘한 긴장감을 주고

있었다

그 어색함을 만들어 내는 곳은 행사장에 자리한 VIP석이었다 한 명의

서양 남성과 세 명의 동양 남성 그들의 수수한 옷차림으로 미루어 고가

의 시계를 구입할 주요 고객으로 보이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전시를 취

260년 스위스 시계의 전설

조선 어보御寶의 보록寶盝에 잠기다글

한국문화재재단 기획조정실

재하기 위해 초청된 기자로 보기에는 연령대가 높아 보였다

VIP석에 자리한 서양 남성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건너온 세계 최고의 명

품 시계 제조사 바쉐론 콘스탄틴의 아티스틱 디렉터 크리스찬 셀모니였

고 세 명의 동양 남성은 속칭 인간문화재라 부르는 공예분야의 기능보

유자로 소목장 박명배 두석장 박문열 옻칠장 손대현 명인이었다 그리

고 그들 옆에는 조선시대 보록(寶錄)하나가 단아하면서도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날 전시의 가장 중요한 작품은 바쉐론 콘스탄틴이 국내에 최초로 들

여오는 2015년 유럽공예대전(JEMA) 발표작 메티에 다르 사부아 일루

미네 컬렉션(Meacutetiers dArt Savoirs Enlumineacutes)도 260주년을 기념

하여 클래식한 수공예로 2개의 무브먼트를 장착한 메티에 다르 메카니

크 그라베 컬렉션(Meacutetiers dArt Meacutecaniques graveacutees)도 이국적인

플라워 모티브를 에나멜링 공예로 장식한 메티에 다르 플로리레쥬Ⅱ 컬

렉션(Meacutetiers dArt Florilegravege II)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박물관 내 10

채의 한옥을 가득 채우고 있는 2000여 점의 문화재급 가구도 아니었

다 바로 한국문화재재단이 디자인과 설계를 담당하고 세 명의 기능보

유자가 제작한 조선시대 어보(御寶)를 보관하던 어보함인 보록(寶錄)이

었다

보록(寶錄)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존호(尊號)를 새긴 금보나 옥보를 보

두석장 박문열 칠장 손대현 소목장 박명배

관하는 궤를 말한다 어보(御寶)는 조선시대에 국왕이나 왕실을 상징하

는 도장으로 좁은 의미로는 외교문서나 행정실무에 쓰였던 국새(國璽)

와 의례용으로 쓰였던 어보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 사용

할 경우 국왕이나 왕비 또는 세자나 세자빈 등 국왕과 관련된 이들의 의

례에 쓰인 도장을 말한다 그러니까 보록은 왕실 의례인 가례(嘉禮) 책

봉(冊封) 국장(國葬) 시에 존호(尊號) 휘호(徽號) 시호(諡號) 등을 새

긴 어보를 만들고 이 어보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보관함을 의미한다 그

러니까 그 자리는 175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나 260년의 세월을

견디며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바쉐론 콘스탄틴

의 새로운 작품들과 조선왕조 500년 왕실문화의 정수이자 왕실 자체를

상징하는 어보(御寶)를 보관하는 보록(寶錄)이 동서양의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만나는 문화적 충돌의 무대인 것이다

지난해 5월 바쉐론 콘스탄틴 한국 지사인 바쉐론 콘스탄틴 코리아에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에서 모든 일은 시작되었다 26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에 무언가 특별한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추진하고 싶어

했으며 그동안 각국의 전통공예와 협업 경험이 풍부한 바쉐론 콘스탄틴

으로서는 한국문화재재단을 최상의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었다

바쉐론 콘스탄틴이 원하는 작품은 일회성 이벤트의 결과물이나 단순

한 시계 케이스가 아니었다 바쉐론 콘스탄틴 브랜드 역사에 영원히 남

4 5한국문화재재단 소식 1

을 작품을 원했고 그 작품을 한국의 전통공예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

정된 기능보유자와의 협업을 통해서 완성하고 싶어 했다

문제는 전 과정을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최고의 명품 시계를 담을 함의 철

학적 개념을 정하는 일이었다 재론의 여지 없이 전통적 사유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공간을 담을 수 있어야 하고 문화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사

회middot정치적으로나 비교가 불가능한 상징을 내포한 무엇이어야만 했다 또

한 시각적으로 부드러우면서도 도도한 질감과 한 시대의 문화를 대표하

는 배색 조화 그리고 완벽한 입체감과 비율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도저한 토론과 고민 끝에 조선시대 어보(御寶)를 보관하는 보록

(寶錄)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보록은 유일성 권위 자부

심 충성심 고결함 강인함 등의 형체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그 정도

라면 어디에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을 한 시대 정신문화의 총체적 결정체

로서 자랑할 만한 작품이 나올 것 같았다

이후의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의 보록(寶錄)을 조사하고 기본 디자인과 설계를 진행하였으며 백골 제

작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기능보유자 박명배 명인이 장석

제작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 기능보유자 박문열 명인이 그

리고 옻칠에는 서울시무형문화재 제1호 칠장 기능보유자 손대현 명인이

동참을 결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목가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좋은 목재가 있어야 한다 최소한 300

년에서 500년은 족히 지나야 목재로서 가치가 있으며 수령이 적합한 목

재를 찾았다고 해도 나무를 켜보지 않으면 장담할 수 없다 아름다운 목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 본연의 아름다운 무늬가 살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나무를 구했다고 해도 원목 상태로 2년 나무껍질을 켜서 실외에서

3년 다시 실내에서 2년을 숙성시켜야 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 이완과 수축

을 반복하며 숙성시켜야만 가구로 제작했을 때 뒤틀림이나 갈라지는 현상

을 방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7년의 숙성은 고사하고 자재로 사용할 나무

도 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프로젝트의 기간은 1년 남짓에 불과했다

좋은 목수는 좋은 자재를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로 결정되곤 한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나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런 의미에서 박명배 명인은 최고의 목수였다

본인이 힘겹게 수집해 놓은 자재 중에서 애지중지하는 최고의 자재를 내

놓았다 바로 500년된 고사목을 7년 이상 숙성시킨 느티나무였다 흔히

시골에 가면 마을 어귀에 장승처럼 서서 수호목 구실을 하는 당산나무를

볼 수 있는데 이 당산나무의 대부분이 느티나무이다

느티나무는 무늬가 아름답기로 이름이 높은데 황갈색 목재 위에 물결처

럼 어룽진 나이테의 곡선이 무척이나 우아하다 이는 물을 운반하는 물

관의 배열이 독특하기 때문인데 오래된 나무일수록 비늘 구슬 모란꽃

등 다양한 무늬가 나타나고 광택도 아름답다 거기에 견고함까지 갖추고

있는데 마찰과 충격은 물론 습기와 충해에도 강해 좀처럼 썩거나 벌레 먹

지 않는 나무이다 박명배 명인은 이 느티나무의 천연의 무늬를 살리고

전통 제작 기법인 짜임기법과 직접 만든 아교를 사용해서 백골(白骨)을 제

작했다

목가구 제작에 없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 두석장의 역할이다 가구의 결

합 부분을 보강하거나 이음새를 연결하고 열고 닫을 수 있는 자물쇠 등의

금속 장식을 장석(裝錫)이라고 하는데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황동(놋쇠)

장석을 만드는 사람을 두석장이라고 한다 두석은 단순히 기능적인 역할

에 제한되지 않고 자체로 탁월한 예술작품으로써의 완결미를 보여주며

다양한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박문열 명인은 함에 사용되는 장석에 길상(吉祥)의 의미를 담은 전통문양

을 정을 망치로 쳐서 문양을 새기는 조이질 기법으로 제작하였다 이 기

법은 장석 제작기법의 일반적인 표현기법으로 입체감까지 표현할 수 있어

사군자 연꽃 십장생 박쥐 구름 등을 새길 때 많이 사용되는 기법이기

도 하다

마지막 과정으로 손대현 명인은 옻나무의 수액을 직접 채취하여 정제과

정을 거쳐 불순물을 제거하여 입자가 고운 칠을 만들었다 백골의 표면을

다듬은 후 생칠을 바르고 갈고 바르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고 다시 초

1 두석장 박문열의 경첩 제작 장면

2 소목장 박명배의 주먹장 짜임 과정

3 칠장 손대현의 함 내부에 들어가는 주칠 장면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열린 바쉐론 콘스탄틴 260주년 기념 전시회 입구 바쉐론 콘스탄틴 아티스틱 디렉터 Christian Selmoni

1

2

3

칠에 중칠을 하여 건조한 다음 다시 상칠을 한 후 광내기와 생칠을 반복하

여 마감한다 이러한 과정을 30회 이상 실시하여 투명하고 얇게 옻칠을

완성했다

2014년 5월에 시작한 협업이 2015년 8월에 긴 여정을 마쳤다 1년 5개

월의 시간 동안 그렸다가 지워버린 숱한 디자인 안과 설계도면 보유자들

과 함께 고민하며 때로 서로를 힘들게 했던 수백 시간의 기억들 많은 시

간을 자신의 공방에서 어보함과 고통스럽게 대면했을 예술가들의 침묵의

시간이 지났다 바쉐론 콘스탄틴이라는 브랜드의 무거움과 그간의 세계

적인 협업 기관과의 실적은 감내하기 어려운 압박이었다

그리고 한국가구박물관에서 협업 작품이 공개되는 순간 그 간의 시간은

박수와 환호로 치환되었다 세계 최고의 시계 장인들과 세계 최고의 공예

장인들은 문화사회적으로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단 한 번

의 교류도 없이 자신만의 영역을 천착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결과

물들은 함께 놓여 지는 순간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

3인의 기능보유자가 제작한 조선시대 어보함 보록은 이제 스위스에서 조

선 왕실의 기품을 오롯이 전달할 것이다 1년 5개월의 시간 동안 그들은

하나의 작품을 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형체를 만든 것이다

이 문화적 행위는 수 세기를 건너뛰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상징으로

기능할 것이다

6 7

글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기획조정실 홍보팀

세계유산 따라 떠나는 여행

ldquo여러분 영화 lsquo역린rsquo 보셨나요 그 영화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십니까rdquo

ldquo이산rdquo

ldquo정조임금rdquo

ldquo맞아요 이곳 수원 화성은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이장하

면서 함께 건축했습니다 오전에 보았던 창덕궁도 정조 임금과 관련된

곳이라는 것 잊지 않으셨죠rdquo

영화라는 친근한 소재를 곁들인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에 참가자들의

눈에는 어려운 기색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사에 대해서 어렵고

딱딱하게 느낄 법도 한데 실제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를 보며

친근한 설명까지 들으니 다들 집중한 표정으로 열심히 답사 코스를 따라

다닌다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세계유산과 그

주변의 다양한 유 무형유산을 연계하여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당일 또는 1박 2일

일정으로 매월 운영되고 있다

8 9한국문화재재단 소식 2

궁 약 한 시간여를 달린 버스는 먼저 행궁 앞에 참가자들을 내려줬다

창덕궁과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은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행궁을 찬찬

히 둘러보았다 행궁의 뒷벽에는 lsquo정조대왕화성능행반차도rsquo1)가 전시

되어 있어 참가자들은 정조의 능행의 이유와 수원 화성과 행궁의 건

립 목적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하는 표정이었다

행궁 답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십여 분 정도 이동해 프

로그램의 마지막 목적지인 수원 화성 장안문 앞에 내렸다 잘 쌓아올려

진 수원 성곽을 전부 다 돌아볼 수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시간의 제약

때문에 참가자들은 장안문과 화홍문 방화수류정 등의 장소를 돌며 아

쉬움을 달래야 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방화수류정에서 내려다보

이는 아름다운 풍광에 참가자들은 저마다 신난 얼굴로 열심히 기념사진

을 촬영했다

오전 9시 30분에 시작된 프로그램은 저녁 7시가 넘어 아침에 출발한

장소인 은평구 다문화지원센터에 도착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하

루 종일 진행된 프로그램에 참가자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래도 한국의 역사와 세계유산에 대해 배워간다는 생각에 뿌듯한 표정

이었다

2015년 세계유산 연계체험은 10월에 4회 11월에 3회로 앞으로 총

7회가 더 남아있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문화의집KOUS 세계

유산 연계체험을 통해 우리의 세계유산을 접했으면 한다

를 통해 모집된 31명의 다문화가족이다 이들은 김숙희 문화유산해

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하루 동안 창덕궁과 화성 일대를 돌아보는 체험

을 했다 무더운 날씨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답사에 지칠 법도 하건

만 참가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쉽고 친절한 설명에 외국인 엄마들과

아이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끊임없이 반짝거렸다 모두들 아름다운 궁

궐과 화성의 모습에 궁금한 것이 많은 듯 열심히 전각들을 구경하고

질문하며 기념사진을 찍는 등 이번 체험을 100 즐기는 모습이었다

취재를 위해 따라간 필자 역시 기존에 알던 장소들이지만 lsquo조선의 정

궁과 행궁rsquo이라는 주제에 맞춰 설명을 들으니 그 장소들이 달리 보여

새로웠다

프로그램은 크게 오전과 오후 일정으로 나뉘어졌다 오전 9시 30분에

은평구 다문화지원센터에 집결한 참가자들은 버스를 타고 첫 답사장

소인 창덕궁으로 이동했다 참가자들은 문화유산해설사의 안내에 따

라 궐내각사를 시작으로 창덕궁 인정전 희정당 대조전 낙선재 등을

두루 둘러보았다 각 전각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정조임금과 관련된

이야기까지 곁들인 해설에 참가자들은 지루한 기색 없이 해설사의 설

명을 경청했다 특히 어린 참가자들은 대부분 아직 유치원생임에도 불

구하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며 큰 관심을 보였다

오전 창덕궁 일정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근처 맛집으로 이동해 설렁탕

으로 보신을 한 후 다시 버스에 올랐다 오후 목적지는 수원 화성과 행

1 창덕궁 세계유산 지정 표지석

2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에서 내려다본 전경

3 수원 화성 성곽

4 김숙희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참가자들

2015년 세계유산 연계체험 잔여 일정표

1) 조선 22대 왕 정조가 어머니 경의왕후(敬懿王后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하여 아

버지 장헌세자(莊獻世子사도세자)가 묻힌 화성 현륭원(顯隆園)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정조대왕화성행행반차도(正祖大王華城幸行班次圖) 또는 화성행차도

(華城行次圖)라고도 한다 경의왕후의 환갑잔치 내용을 치밀하게 기록한 원행을묘정리

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김홍도의 책임 아래 최득현 김득신 이인문 장한종 허식

등의 자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들이 제작한 목판화가 남아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정조반차도 [正祖斑次圖] (두산백과)

회차 일자 지역 주제 주요 관람지 참가대상

10 102(금)수원

화성

정조대왕의 업적과

발자취 수원 화성 건릉

서대문구

다문화센터

11 1016(금)서울

수원

역사를 통해 배우는

孝사상종묘 수원 화성

강북구

다문화센터

121119(목)

~20(금)

창녕

고성

우리나라의

자연유산 탐방

우포늪

공룡화석지

관악구

다문화센터

131126(목)

~27(금)

익산

전주

백제 역사 문화유산

탐방

왕궁리 미륵사지

입점리고분

답사

우수 고객

141022(목)

~23(금)

공주

부여

백제문화의 제2

중흥기를 찾아서

낙화암 궁남지

공주middot부여역사

유적지구

미정

15 1030(금)서울

여주

조선의 정궁과 왕의

사후 안식처경복궁 영릉 미정

16 116(금)서울

광주(경기)조선의 궁궐과 산성 창경궁 남한산성 미정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운영하는 세계유산 연계체험은 우리나라 세

계유산을 주변의 다양한 유 무형유산과 함께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다 매월 1~2회 하루 또는 1박 2일 코스로 한 가지 주제를 정해 그와

관련된 세계유산을 문화유산해설사의 친절한 해설을 들으며 답사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참가 대상은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유학생

들이나 결혼이주 여성 등의 외국인들과 다문화가정 가족들 소외계층

이다 우리 역사와 세계유산에 대해 다소 생소하게 느낄 수 있는 이들

에게 해설을 곁들인 체험을 통해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해 알리고 있는

공익적 목적의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주 답사 장소는 궁궐 왕릉 사

찰 민속마을 박물관 등 전국에 있는 세계유산 및 세계유산 잠정목록

에 올라있는 문화유산들과 그와 연계된 체험 장소들이다 서울 경기

충청 등 수도권에서 가까운 지역의 경우 당일 일정으로 운영되며 전

라도 경상도의 경우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운영된다 2015년 올해

는 4월 17일부터 11월 27일까지 약 7개월간 15회의 체험 프로그램

이 운영되는데 서울middot경기 7회 충청도 2회 전라도 2회 경상도 4회

로 구성되어 있다 참가 신청은 국내 대학교 어학당 서울시 각 구청

다문화가족센터 등을 통해 접수 받아 단체로 신청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4일 금요일에는 lsquo조선의 정궁과 행궁rsquo이라는 주제 특히 정

조 임금과 관련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서울의 창덕궁과 수원 화성

답사가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의 참가자들은 은평구 다문화지원센터

1

2

3 4

1110

12

한국의집 조리팀장 김도섭

사진

그라피스튜디오

한국의집

가을을 맛보다

뜨거웠던 열기가 식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다

뜨거운 여름을 견디며

건강하게 키운 한 해의

결실을 맺는 가을 식탁은

그만큼 풍성하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가을

가을을 대표하는

건강식재료로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의 영양을

회복해보는 것은 어떨까

1312 한국문화재재단 소식 3

전통 한식을 대표하는 한국의집 김도섭 조리팀장은 조선왕조 궁중음식 전수 장학생이자 한식조리기능장으로서 전통음식의

발전을 위한 레시피 표준화 궁중음식홍보사업 등을 통하여 국내외 전통음식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그는 한국의집뿐만 아니라 문화교류사업의 일환으로 해외 행사에서 요리를 하기도 했다 뭄바이 인도상공회의소 주관 한국의

밤(rsquo13) 태국관광박람회(rsquo12) UAE-한 수교30주년만찬amp리셉션(rsquo10) 등에서 요리를 선보이며 한식 전도사로서의 역할 또한 하고

있다 또한 문화재청장 표창(rsquo08)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표창(rsquo15)을 받은 바 있다

문의 02-2266-9101 wwwkhorkr

조리팀장

김도섭

가온정식 1인기준 35000원 삼색밀쌈과 해물잣즙채 고구마middot알밤죽과 물김치 새우찜과 생절이 버섯불고기와 부추절임 꽃게감정 진지 기본찬 후식

4인기준 조리

가을 낙지골동반 1인기준 25000원 삼색밀쌈과 해물잣즙채 계절죽 전유화와 생절이 낙지골동반 국 무화과 후식

제철 꽃게 대하 고구마로 건강을 담아낸 lsquo가온정식rsquo

lsquo가온정식rsquo은 가을이 제철인 꽃게 대하 고구마 밤을 중심으로 고구

마middot알밤죽과 새우찜middot생절이 꽃게감정으로 구성한 메뉴이다 특히

꽃게감정은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음식으로 고급스럽고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번거로워서 사위를 맞이할 때

나 한 번 만드는 귀한 음식이다 꽃게감정은 제철을 맞은 가을 수게의

살을 곱게 발라내어 소고기와 갖은 야채로 소를 만들어 게딱지에 채워

놓고 국물을 자박자박하게 끓여 만들어 낸 찌개인데 제철 꽃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미와 담백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제철 게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이 많아서 소화가 잘되고

원기회복에 좋다 이 밖에도 키토산이 풍부한 대하 식이섬유소가 풍부

한 고구마 5대 영양소와 비타민C가 풍부한 밤으로 만든 요리는 입맛

을 돌게 하고 원기회복에 도움이 된다

쓰러진 소도 살린다는 가을철 원기회복의 대명사 lsquo가을 낙지골동반rsquo

골동반은 임금님부터 백성까지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한국의집은 가을을 맞이하여 기존 골동반 메뉴에 영양이 풍부한 낙지까

지 맛볼 수 있는 lsquo낙지골동반rsquo을 선보인다

낙지골동반은 오색나물과 살이 충분히 오른 가을 낙지를 올려 시각적 아

름다움과 맛과 영양까지 모두 챙기는 일품메뉴이다 특히 lsquo봄조개 가을

낙지rsquo란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가을 낙지의 맛은 높이 평가된다 또한 낙

지는 피로에 좋은 아미노산과 타우린이 풍부해 인삼 한 근과 비견할 정

도로 몸에 좋은 음식이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철 제철재료로 만든 요리는 그 어느 계절 음식보다 맛

이 좋고 몸에도 좋다 제철을 맞은 엄선된 재료로 만든 한국의집 가을 신메

뉴와 함께라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14 15

1927 2015

宇峰우봉 이매방

춤 한자락에 담긴 삶

한국 춤의 거목 우봉 이매방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lt승무(僧舞)gt 및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lt살풀이춤gt 예능보유자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2가지 종목의

무형문화재를 보유했다

그의 춤과 삶의 흔적을 담아보았다

Master Ubong Lee Mae Bang Korearsquos traditional dance virtuoso passed away on August 7 2015 He was 88 years of age Ubong was one of the key figures in

the modern and contemporary days of Korea Ubong the one who often lauded as a ldquodancer sent from the Heavenrdquo was a master of Seungmu (a form of dance

traditionally performed by Buddhist monks) and Salpuri (a form of dance traditionally performed by Korean shamans to banish evil spirits) designated

as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No 27 and 97 respectively Born in Mokpo Jeollanam-do on May 5 1927 he was discovered and trained by

Han Guk Hyang the headmaster of a Gwonbeon (a form of traditional dance academy in Korea) in Mokpo at the age of 7 This was followed by 8 years of

dance and drum performance training as an apprentice of Master Lee Dae Jo who taught Seungmu Geommu (sword dance) and Gobeop (traditional drum

technique) at the Gwonbeon Throughout his life devoted to dance he garnered great fame as the holder of two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and

trained numerous traditional dancers Ubong Lee Mae Bang passed on to us the quintessence of Korean traditional dance expressed through his moves that

made him a dancer of a historic significance for whom there will be no equal in this millennium not to mention in this century사진제공 한국문화재재단

1716 기획특집1

살풀이춤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해 공연 때 착용했던 살풀이춤 의상이다 무동옷과 쾌자는 다른 색으로 바꿔입기도 하며

이매방 살풀이춤을 대표하는 의상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사진액자 121940~50년대 이매방이 승무 바라춤

추는 모습을 찍은 사진의 배경을

없애고 보유자만 오려 붙여 만든

액자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약력

1927년 전남 목포 출생

1934년 목포 북교 입학

1935~39년 만주 다렌 거주 이대조에게 승무 북춤 박영구에게 승무 법고 이창조에게 검무 사사

1943년 목포 공립공업학교 졸업

1948년 명창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서 lsquo승무rsquo로 첫 무대

1953년 제1회 개인발표회(광주)

1956년 제3회 개인발표회(부산)

1959년 제5회 개인발표회(서울 원각사)

1984년 무용 인생 50년 특별공연 lsquo북소리rsquo

1987년 승무 예능보유자 지정

1990년 살풀이춤 예능보유자 지정

1993년 인간문화재진흥회 부회장

1996년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수

1999년 우봉 이매방 춤 인생 65주년 기념 대공연

2004년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춤 인생 70년 기념공연

2005년 lsquo우봉 이매방 춤 전수관 개관 기념공연rsquo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 대공연장)

2006년 lsquo무용 무대예술 80년사 아름 보듬어맺고 풀고helliprsquo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07년 lsquo화성 춤 페스티벌rsquo (수원대학교 베칸토 아트센터)

2008년 서울시 무용단 정기공연 lsquo하얀사 고이접어rsquo (세종문화회관 세종 M씨어터)

2009년 lsquo그가 무대에 서면 역사가 된다 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춤 대공연rsquo (영등포 아트홀)

2010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2011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호암아트홀)

2012년 명작 명무전 (LG 아트센터)

2014년 lsquo우리는 그를 巨木이라 부른다 우봉 이매방 전통춤 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승무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한 승무 복식으로 공연 때 착용했다 흰 장삼에는 옥색 바지 저고리를 입고

흑 장삼에는 흰색 바지 저고리를 입는다 흰 장삼의 승무 의상을 기증했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wwwk-heritagetv에서

승무와 살풀이 동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수상 내역

2015년 은관문화훈장

2011년 제12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공로상

2004년 임방울 국악상middot세종국악대상

1998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1995년 성옥문화상

1984년 옥관문화훈장

1976년 부산시 눌원문화상

우봉 이매방

한국 전통 춤의

정수 승무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18 19

글 사진

이병옥 (용인대학교 명예교수)

宇峰우봉

이매방 선생의 춤 일생

춤 성향을 가늠하는 입문과정과 열정

첫째는 이매방이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세(1934년)가 되던 해 옆집에 세

들어 살던 조도 출신 목포 권번의 권번장 함국향(咸菊香)씨는 그가 춤추기

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춤 학습을 권유하여 남자이지만 여성적인 고운 춤

사위 성향인 기방춤의 기틀을 마련한 점이다

둘째 이매방의 할아버지이면서 스승이었던 이대조 명인은 목포 권번(卷

番)에서 승무와 북놀이 검무 그리고 고법(鼓法)을 가르쳤던 권번 선생으

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점이다

셋째 중국 대련 정포소학교(1935~1939)를 다니면서 그는 매란방 배구

자 등을 만나 춤에 색다른 영향을 받은 점이다 대련에서 운수회사를 운영

하던 큰 형님을 따라 약 5년간을 살게 되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신무용의

대가인 배구자의 무용공연에도 출연하였고 또 북경에 있던 큰 누나의 연

결로 매란방의 공연을 접하고 이국적인 향취에 매료되어 그에게 lt장검무

gt lt등불춤gt lt꿩털춤gt 등을 배운다 6middot25 이후에는 본명 lsquo이규태rsquo를 버

리고 lsquo매방(梅芳)rsquo이라는 예명을 lsquo매란방rsquo의 약자를 딸 정도로 그의 예술혼이

깃든 것이었다 그러다가 대련정포소학교 5학년 때(1939년) 고향 목포북

교소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통춤에 정진하게 되었다

넷째는 주말마다 광주 권번에 다니면서 권번 선생이었던 박영구로부터

승무와 북놀이를 배우고 이창조(장성출신) 선생에게는 검무를 학습한 점

이다 이처럼 목포 권번과 광주 권번을 오가며 박영구 이창조 그리고

이대조 선생에게서 승무 승무북놀이 검무 입춤 살풀이춤 장고춤

태평무 한량무 보렴승무 흥춤 장검무 장고기법들을 배웠다

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공연은 1942년(16세) 목포역전에

서 임방울이 주관하는 명인명창대회였다 이때 승무를 출 박봉선이 사정이

생기자 함국향이 이매방을 임방울에게 소개하여 김연수의 장삼을 빌려 입

고 무대에 나섰다 이때 이매방은 승무를 추어 관객의 열렬한 호응으로 자

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또 예술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해방 후로는 1948

년 임춘앵의 여성국극단에서 삼고무를 가르쳤고 그해 목포 역전에서 다시

임방울이 이끄는 명인명창발표회에 당당히 승무로 출연하게 되었다

방랑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춤 정립(대구 군산 부산 광주 서울)

1950년 6middot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북한군의 뒤를 따라 예술동맹 공연

단들이 목포에 내려와 인민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당시 최승희의 딸 안성희는 lt장검무gt 전황(본명 전두황)은 lt처녀총각gt 등

을 추었으며 이어 이매방을 강제로 무용동맹에 가입시켜 무용활동을 시켰

다 수복 후 국군이 들어와 무용동맹에 강제로 가입했던 것 때문에 곤욕을

치렀으나 가까스로 해명하고 국군 군예대(KAS 종군연예인공연단)에 가

입하여 1951년 대구에 본부를 두어 활동하면서 지방순회공연을 다녔다

또 광주에서 전라남도 경찰국 선무공작단을 맡아 단장으로 호남 일대를 돌

며 순회공연을 하던 중 잠시 군산으로 옮겨 군산시 영화동에다 이매방무

1 1950년대 삼고무 초기 모습

2 1978년 이매방 승무

3 1938년 정포소학교 고개 숙인 이가 이매방 우측 앞

3

2

1

한국 전통춤의 대부 우봉(宇峰)

이매방 선생님이 2015년 8월 7일

8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우봉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로 lsquo하늘이 내린

춤꾼rsquo으로 칭송되는 근현대

전통춤계의 중심인물이었다

1927년 5월 5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7세 되던 해에 목포

권번(券番)의 권번장 함국향의 눈에

들어 춤 학습을 받았다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검무 그리고

고법을 가르쳤던 이대조(李大組)

명인으로부터 춤과 북놀이 사습을

8년 동안 받은 후 평생 외길

춤인생을 걸으면서 두 종목의

인간문화재로 그 명성과 수많은

이수자를 배출하였다

우봉 이매방의 춤사위는 lsquo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rsquo라는 표현을

넘어 lsquo밀레니엄에 한 번 날까rsquo하는

역사적인 존재라고 할 만큼 전통춤의

진수를 전승시킨 인물이다

그러면 우봉 이매방이 어떤 계기와

학습과정으로 전통춤의 대부가 될 수

있으며 어떤 춤 일생을 살아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20 21기획특집 2

용연구소를 개설하여 2 3년간 활동을 하였다

그 후 1953년 부산으로 내려가 장홍심이 운영하는 영도에서 함께 연구소를

했으며 부산 제자로는 김진홍 성승민 이도근 등이 있었다 1954년 광주

로 옮겨 국악원을 개설하여 한순서를 조교로 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무용

발표회(1955년 광주극장)를 가졌다 한편 서울에서는 여성창극단 삼성여

성국악단(박옥진 박보아 조양금 3인) 등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다시 1955

년 부산으로 내려가 초량동에 자리 잡고 첫 발표회를 대영극장(1957년)에서

하였다 그리고 서울에서도 1959년 원각사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당시의 이매방의 춤 활동은 전국적으로 목포 대구 부산 광주 서울이

었지만 주 근거지는 사실상 부산무용가협회 정회원이었으며 1957년과

1958년에 부산공연을 올리며 1960년대 말까지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

1960년대는 많은 무대를 누비면서 점차 춤 레퍼토리를 확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이매방은 삼고무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창작하였으

며 그 후 5고무 7고무 그리고 9고무와 11고무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lt초립동gt lt화랑무gt lt검무gt lt장검무gt lt박쥐춤gt lt흥춤gt lt무당춤gt lt장고

춤gt lt학춤gt 등을 정립하였고 늘 추어온 lt승무gt lt입춤gt lt검무gt 등과 함

께 추었다 이매방 승무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연구소를 서울로 옮겨

오늘날까지 서울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매방은 lt보렴승무

gt lt삼현승무gt lt살풀이춤gt lt검무gt lt입춤gt lt한량무gt lt태평무gt lt흥

춤gt lt장검무gt 그리고 lt장고춤gt 등도 lt승무gt와 함께 끊임없이 연마하여 왔

다 그러한 이매방의 춤예술 정립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예능적 기술이 뛰

어났기 때문이었다

승무 살풀이춤 인간문화재와 국무(國舞)로 추앙

이매방이 서울무용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중앙대 교수이

며 문화재 위원이었던 정병호에 의해 1977년 7월 30일 서울 YMCA에

서 열린 한국전통무용발표회에서 승무를 발표하면서였다 아울러 그때

까지 한성준류의 한영숙 승무에 매료되었던 이들에게 새로운 유파의 승

무가 있음을 신문지상을 통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무대에서의 성공

은 이듬해 1978년 3월 세계민속예술제 한국대표로 프랑스 렌느시에 참

가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이매방 춤판의 최고 결정판은 lt북소리gt 시리즈였다 1984년 6월 이매

방 무용인생 50주년 기념공연 lt북소리gt(문예회관 대극장) 1985년 6월

이매방 전통무용 lt북소리 Ⅱgt 1990년 rsquo90 북경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

전 참가와 lt북소리Ⅲgt(호암아트홀) 그리고 1994년에 춤인생 60년을 정

리하는 lt북소리 Ⅳgt였다 또한 전통예술의 보급과 선양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결과로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1984)과 성옥문화상 문예부문 대상

(1995)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병호 문화재위원의 끈질긴 노력으로 1987년 7월 1일 이매방은 중요무

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명실상부한 명무의 대열

에 서게 되었다

이어 1990년 10월 10일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도 인정받아 전

통춤의 최고 명인으로 추앙받게 되었으며 수많은 한국무용가들이 이매

방류 춤을 전수받기 위해 구름같이 모이게 되었다 그 후 1996년 인생70

고희기념공연 1997년과 98년 일본공연과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2007년 lsquo우봉이매방팔순기념공연rsquo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으며

매년 제자들과 함께 정기공연을 하였다 전통춤경연대회 및 300여 명에

이르는 승무와 살풀이춤 이수자들과 제자들의 공연에도 찬조출연과 반주

를 직접 해주는 열정을 최근까지 지속하였다

이매방 춤의 무용예술적 가치

이매방의 춤에서는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호남제 시나위 춤사위로 짜여져 있

다 춤기법의 중심은 대삼소삼(大杉小杉) 비정비팔(比丁比八) 양우선(兩雨線)

비디듬 좌우걸이 완자걸이 잉어걸이 지숫기 등으로 곱고 아름다운 사위와

자태를 자아내고 한을 신명으로 풀어내는 정중동의 몸놀림이 배어 나온다

결국 이매방 춤은 호남 지방의 권번에서 추어왔던 춤사위 기법이지만 많

은 세월이 지나면서 스승들의 춤을 뛰어넘어 아무도 넘겨볼 수 없는 국무

(國舞)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이매방의 일생을 통해 그가 가진 춤의 예

술적 가치를 요약하면

첫째는 남자이면서도 여성보다도 더 곱고 섬세한 기방계통의 lsquo춤바디rsquo와

여성적 lsquo춤속rsquo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호남지역의 명무들로부터 뼈대 있는 전통춤을 다양하게 전수받아

호남춤의 정통성을 확립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과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춤의 천재이기 때문이다

넷째 현대교육개념으로 볼 때 어린 나이부터 춤의 조기영재교육을 받았

기 때문이다

다섯째 세계적인 경극과 춤의 명인 매란방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예술혼

을 불태우고 인생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80평생 춤추는 것 외에는 남자로서 어떤 직함도 직책도 직업도

가진 바 없이 오로지 춤만 추어온 외길 인생이기 때문이다 춤이 곧 이매

방의 삶이며 생명이며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일곱째 호남지역춤과 기방계통춤이라는 lsquo국지성rsquo에서 출발하였지만 경향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범한국적 전통춤의 lsquo국가성rsquo으로 거듭났으며 국제무

대에도 우리 전통춤의 lsquo세계성rsquo을 알리고 확인하는 독창성과 보편성을 지니

고 있었다는 점 등이 이매방 춤이 가지는 예술적 의의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매방은 1927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민족 수난 속에서도 춤을 배

웠고 해방과 6middot25전쟁 통에서도 오로지 춤만을 추었고 외래문명의 홍

수와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꿋꿋이 춤만 추어 한국 전통춤의 위상을 높였

고 세계 속에 한국춤의 지평을 열어 대한민국 시대의 전통춤 패러다임을

구축하였기에 국무적 존재로 인정받아 온 것이다

1970 2004 2008 2012

22 23

양종승 (우봉이매방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middot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하늘이 내린 춤꾼 宇峰 이매방 선생님을 追惜하며

춤을 위해 태어나 평생 동안 춤만을 사유하였던 우봉(宇峰) 이매방(李梅

芳) 선생님께서 2015년 8월 7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승천하셨다 선생

님은 1927년 5월 5일(음력 3월 7일) 새벽 동이 틀 무렵 목포에서 이경

율과 조병림 사이의 10형제 중 막내둥이로 태어났다 5남매는 일찍이

죽고 남은 3남 2녀 중 막내로 성장하였다 선생님 아명은 집안 돌림자에

따라 영길(永吉)이었지만 스님께서 귀한 아들이라고 하여 귀태(貴泰)로

개명해 주었다 오기된 호적에는 규태(圭泰)로 되어 있다 매방(梅芳)이

라는 이름은 중국 경극의 명인 매란방(梅蘭芳)의 첫 자와 끝자리를 따 예

명으로 불리었는데 1986년 호적을 개명하여 본명이 되었다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춤에 소질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서 성장하였다 결국 옆집 살던 권번장 함국향 권유로 목포 권번에 들어가

당대 소리 북 춤 등에 대가들이었던 이대조 이창조 박영구 진석산 등

에게 승무 검무 살풀이춤 등 전통춤을 학습하였다 선생님의 무용활동

은 목포 공립 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 승무로 출연

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이후 1953년 광주에서 첫 개인발표회를 시

작으로 무용인생 50주년 65주년 70주년을 비롯한 수많은 국내외 공연

을 펼쳤다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1990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가 되었다 그리

고 2014년 승무 및 살풀이춤 명예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한국무용협회 고

문 한국국악협회 고문 한국전통춤협회 고문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

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국무 우봉이매방 화보집』을 발간하였다

이매방 선생님 장례식은 2015년 8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서울삼

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문화예술인 葬]으로 치러졌다 목포문화예술회

관 내에 있는 이매방춤전수관에도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우봉이매방장

례위원회가 구성되어 공동장례위원장을 김종규 한국문화유산신탁 이사

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이경동 한국문화원연합회 회장 김복

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하철경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 김

덕수 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이사장 김진홍 부산시 무형문화재 동

래한량무 보유자 김정녀 중요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전수조교 채상묵

한국전통춤협회 이사장 국수호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등 10명이 맡

았다 장례집행위원장을 양종승 우봉이매방춤보존회 수석부회장 장

례집행부위원장에 김덕숙 김효분 박종필 오은명 최창덕 황순임

등 우봉이매방춤보존회 부회장 6명이 맡았다 장례위원은 김묘선 오

미자 박소림 이길주 송재섭 정영례 최희진 한혜경 김리혜 김은

희 한명옥 진유림 채향순 강성민 백경우 김정기 등 제자 215명이

맡았으며 목포분향소 공동장례위원장은 임점호 목포신안예총회장과 박

수경 목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맡았다 장례의전은 국가공인장례지

도사 유재철 황근식이 진행하였다 유족으로 미망인 김명자(전통무용

가 승무 및 살풀이춤 전수조교) 딸 이현주(전통무용가 승무 및 살풀

이춤 이수자) 사위 이혁열(연극인) 등이 있다

추모식 전경선생님 영전에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을 추서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

부 장관은 일평생 우리 춤 전승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며 문화

융성과 전통예술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공적을 기렸다 또한 이매방 선

생님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깊은 애

도와 함께 목포가 낳은 문화예술계의 큰 별이셨던 선생님은 우리나라 전

통예술의 표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외에 박민권 문화체육관광부 제1

차관 나선화 문화재청장 김해숙 국립국악원장 서도식 한국문화재재

단 이사장 이문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 등 정치계 문화예술

계 등 각계 인사들과 수많은 무용 가족들이 조문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추모식은 2015년 8월 9일 일요일 오후 7시부터 9

시까지 2시간 동안 삼성서울병원 영결식장에서 유가족 지인 각계인

사 제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덕택 운현궁 예술감독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민의례 고인에 대한 묵념 양종승 장례집행위원장의 고

인 약력보고 공동장례위원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공동

장례위원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이사장 공동장례위원장 김복희 한국

무용협회 이사장 등의 조사 제자를 대표한 채상묵 공동장례위원장의

추도사가 있었다 동영상으로 고인의 생전 활동과 육성을 보고 들은 후

유가족을 비롯한 지인 문화예술계의 인사 제자 등의 헌화 및 분향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안숙선 명창의 이별가와 김영임 명창의 회심곡 중

저승 가는 길이 헌가로 받쳐졌다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 보

유자 박병원 전수조교 송순단과 박미옥 등이 주관하는 추모굿과 이광

수 명인의 헌가가 올려졌다 다음날 오전 7시 30분에 발인식이 행해졌

고 오전 9시에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이 이루어졌다 유해는 경기도 광

주시 오포읍 시안가족추모공원에 봉안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에서 초제를 시작으로 49재가 진행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금세기 하늘이 내린 명무였다 그리고 근현대 문

화적 격동기 속에서 우리 춤을 꿋꿋이 지킨 민족춤 계승자로서 주어진

소임을 완수하였다 그래서 선생님의 예술 생애와 그가 전승해 온 민족

춤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큰 가치를 지닌다

주지하다시피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한국 전통무용 진가를 표방

하는 고단위적 한민족 춤 유산으로써 조선 중엽 이후 불교의식 민속놀

이 유랑예인연희 무속신앙 등과 어우러져 계승 발전되어 왔다 그와

더불어 민중의식을 담아 애환과 기쁨을 표상하는 춤으로써 위엄 있고 격

조 있는 춤으로 승화되었다 그래서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무용 예술적

가치와 업적은 위대하고 광활하다 무용평론가 강이문과 무용학자 이병

옥 교수는 이매방 선생님을 國舞라 칭했으며 문화계 많은 인사들은 신이

내린 춤꾼이라 호평하였다 이러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우봉 이

매방 선생님 금자탑에서 빛나는 것은 다름 아닌 기왕 흩어져 내동댕이쳤

던 민족 춤의 뿌리를 살려내어 우리 시대 진정한 무용예술로 승화시키고

국가의 민족유산으로 갈고 다듬은 것이었다 이는 탈 식민지적 화두가 -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다큐멘터리 중 이매방 인터뷰 -

살풀이춤은

즉흥무이다 승무

검무 법무를 다

배우면 자기 멋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수판을 잘라야 한다

가락도 춤 승무 가락

검무 가락 이런 거

섞어서 장단 맞춰서

자신의 감정 음악

듣고 음악이 슬프면

슬픈 표정으로

즉흥적으로 추는 춤이

즉흥무야

24 25기획특집 3

본격화되던 20세기 초중반 우리 것에 덧씌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구

를 벗겨내려는 문화 민족주의적 활동의 한 면이었다 서구 중축의 지배

담론을 탈피하면서 그동안 왜곡되고 전도된 관점에서 벗어남으로써 민

족춤에 비문명적이라는 멍에를 씌었던 편협한 지식층의 문화보기 탈각

운동의 한 면이었던 것이다 시기는 일본제국주의의 한국민족문화 말살

정책 해방 후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교육정책의 서구 지향적 패러다임

등장 도시화middot산업화middot현대화에 따른 전통문화 멸시 및 천시 등으로 인

해 민족예술이 단절 위기에 처했었던 그때였다 또한 현대 산업화에 따

른 근대화론 지향의 국책 하에서 민족예술을 진부하거나 불필요한 것으

로 치부하는 풍조였던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우리의 것은 외래의 것에 밀리거나 일방적으로 시비 당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빼앗기는 패배의 싸움판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던 그 상황 속에

서 선생님은 묵묵히 그리고 꿋꿋하게 우리 춤을 지켜 내셨다 우리네 전

통춤은 비합리적이고 가치가 없으며 저급하고 미천한 것으로 저평가되

돼 전승의 단절까지 치닫게 된 상황 속에서도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우

리 춤 계승하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의 춤을

옥석으로 다듬어 세상에 펼쳐 보임으로써 민족 무용예술의 가치를 되살

리는데 평생 힘써 왔었다 결국 어려운 역경과 피나는 고난을 헤치고 일

어난 선생님의 예술세계는 살아 숨 쉬는 민족 춤으로 꽃 피어졌다 향토

춤 민족춤 전통춤 속에 내재된 민중들의 예술적 사상과 정신이 북돋아

나 전통문화복원 민족문화재건 향토문화복구 등과 함께 형성된 민족

문화바로세우기운동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춤은 밖에

서 유입된 외래의 것과는 달리 이 땅에 자생적으로 자라온 민족 춤 뿌리

로 각인되면서 한국무용예술사에 독창적 고귀성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

리고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와

1990년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국민의 춤꾼으로 안

착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 계보를 따지고 올라가면 신방초(申芳草 남)라

는 인물이 있다 전남 옥과 출신인 그는 1817년 무속집안에서 태어난

재인으로 어정판에서 바라지로 활동하였다 춤은 물론이고 육자배기

가곡 가사 장단에 능하여 호남 일대에서 대단히 명성이 높았다 그래

서 당시 호남의 유명 당골들은 그를 모셔가기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였

다고 한다 신방초는 자신의 춤을 같은 고향 출신 신영수(남)에게 전했

다 이후 고창 출신 안두온(남)에게로 이어졌고 다시 순창 출신 이정선

(남)에게 전수되었다 이정선은 춤뿐만 아니라 북놀이에도 뛰어난 재능

을 갖고 있었던 예인이었으며 판소리도 잘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상당

한 대접을 받았다 이정선의 춤은 목포 출신 김금옥(여)과 박귀주(여)에

게 이어졌다 그 후 이매방 선생님의 스승 박영구 이대조 이창조 진

석산 등에게 전수되었다 박영구(남)는 전남 화순 출신으로 승무와 북놀

이의 명무 명인이었으며 광주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대조(남)는 전

남 무안 출신으로 승무의 대가였고 목포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창

조(남)는 전남 능주 출신으로 검무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고 역시 광주 권

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그리고 진소홍(일명 진석산 여)은 전남 담양 출

신으로 서울 인사동에서 요릿집을 운영하면서 살풀이춤을 전승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춤에는 엄격한 억제와 철저한 절제가 존재한다 이

는 수단에 의해 보이는 기교면서 또한 재간으로 처리될 수 있는 예술적

기법의 한 면이다 선생님의 춤은 또한 느낌과 감정의 표현 방식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느낌에서는 가벼움과 무거움 재빠름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이매방 승무-필자 양종승 제공팔순 기념공연-필자 양종승 제공

과 더딤 흐늘거림과 꼿꼿함 섬세함과 우람함 정교함과 장중함 등의

변화무쌍한 표현력을 가진다 감정에서는 슬픔과 기쁨 가냘픔과 뭉뚝

함 애석함과 환희 괴로움과 기쁨 고요함과 시끄러움 등이 묘사되는

데 이는 삶의 고뇌와 애환은 물론이고 희망과 행복을 감싸고 있음을 말

한다 이러한 춤에 있어서의 느낌과 감정은 비정비팔 비디딤 까치걸

음 잉애걸이 좌우걸이 완자걸이 안가랑 등의 발디딤새와 양우선

평체 사체 등의 손놀림새 그리고 연풍대 지숫기 다루치기 대소삼 등

의 몸굴림새 속에서 표현력을 한층 고조시킨다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

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

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

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길이

길이 민족 춤 기틀로 명명되어 질 것이다 천기를 타고난 춤꾼 신들

린 듯한 춤으로 관객을 홀렸던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이제 천상

무대로 가시어 휘날릴 것이다 선생님 기어이 춤과 함께 홀연히 떠

나셨으니 부디 부디 영면하옵소서

추모식 전경

26 27

전경욱 (고려대학교 교수)

동아시아의 가면극1 중국 귀주성 위녕현의 〈춰타이지(撮泰吉)〉 가면극

풍농과 악귀 쫓기를 위해 기원하는 제의의 일부

2 한국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서낭신인 각시가

무동을 탄 모습

3 일본의 미야자키현(宮崎県) 시이바손(椎葉村)의

〈다케노에다오가구라(嶽之枝尾神楽)〉

4 《봉사도》제7폭 모화관에서 행해진 중국사신

영접행사의 연희장면 산대(왼쪽) 앞에서 연행된

줄타기 물구나무서기 접시 돌리기 가면극 등의

전문적 연희

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에서는 가면극 분야에 대해 보

유자와 단체를 모두 지정하고 있으니 일본보다 지원이 좋은 편이다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을 민간문학 민간음악 민간무용 전통희극

곡예 잡기와 경기 민간미술 전통수공기예 전통의약 민속으로 분류

하여 지정하고 있다 중국 가면극인 나희는 전통희극 분야에 해당한다

한국에는 현재 국가 지정의 중요무형문화재 가면극 13종목 각 시도의

무형문화재 가면극 2종목(진주오광대와 퇴계원산대놀이)이 있다 중국

은 그동안 전통희극 분야에 430개 종목을 지정했는데 여기에 나희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노(能)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중요무형

민속문화재의 민속예능 분야에 35개의 가구라(神樂)를 지정했다 이 가

구라들은 대부분 민간의 가면극이다

Ⅱ 동아시아 가면극의 역사와 계통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면극은 매우 유사한 발전 과

정을 보인다 동아시아에는 (1)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과 (2)전

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이 있었다 (1)은 각 지역의 향촌제사

활동(鄕村祭祀活動)에서 연행되던 것으로서 각각 자생적 향토적 성격

을 띠고 있다 그러나 (2)는 산악(散樂) 또는 백희(百戱)라고 불리던 동아

시아 공동의 연희들이 발전하여 성립된 것으로서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함께 각국의 독자성을 띠고 있다

1 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하회별신굿탈놀이나 강릉관노가면

극처럼 향촌제사활동인 마을굿에서 유래하여 발전해 온 가면극들로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전승해 왔다 이 가면극들은 다른 지방의 가면극과

는 아주 다른 독자적 내용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가면극들이 마을굿에

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도판 1)

중국의 나희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지만 후대에는

그것이 민간에 전파되어 각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도 전승되고 있다 그

리고 중국 한족을 비롯하여 소수민족들에는 여러 향촌제사활동에서 유

래하여 그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가면극들도 있다(도판 2)

한편 일본의 고유 신앙을 섬기는 신사(神社)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연예술

인 가구라(神樂) 중에는 자생적인 민속가면극의 예를 보여 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국의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방마다 차이가 크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도판 3)

2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생겨난 가면

극이다 본산대놀이는 삼국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산악middot

백희 그리고 상고시대의 제천의식 등에서 연행되던 전문적 연희자들의

연희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해 형성된

것이다 산악middot백희를 놀았던 사람들은 그 연희 내용으로 볼 때 삼국시

대부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연희자였으며 이들의 후예가 통일신라시

대에 최치원의 시 lt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gt에 묘사된 다섯 가지 연

희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계승된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연행

된 가무백희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나례에서 연행된 산

대희 등을 놀았다 그리고 중국 사신 영접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

희를 펼치던 반인들이 18세기 전반기에 산악middot백희 계통의 연희와 기존

의 가면희들을 재창조해서 본산대놀이를 성립시켰다 이 가면극은 애오

개(아현) 사직골 구파발 녹번 등에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봉사도(奉使圖)》(1725년) 제7폭은 서울의 모화관 마당

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행사의 연희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접시 돌리

기 땅재주 줄타기 탈춤을 묘사하고 있다 마당의 오른쪽에는 산거(山

車)middot산붕(山棚)middot윤거(輪車)middot예산대(曳山臺)middot예산붕(曳山棚) 등으로 불

렀던 소규모의 산대가 보인다 바로 이런 산대 앞에서 공연하던 연희들

을 lsquo산대희rsquo라고 불렀다 특히 세 명의 땅재주꾼 양 옆에서 각각 두 명씩

모두 네 사람이 초록색과 남색의 가면을 쓰고 탈춤을 추고 있다 이는 서

울에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가면극이 있었고 그 가면극을 애오

개산대놀이 등 산대놀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전해준다(도판 4)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경기도의 송파산대놀이middot양주별산대놀이 황해

31 2

Ⅰ 동아시아 가면극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우리는 가면극을 탈춤 탈놀이 가면희 등으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가

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儺戱)라고 부

르는데 이는 중국 가면극들이 대부분 나례에서 연행되던 연희인 나희

로부터 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무형문화유

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middot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부터 한국은 1964년부터 중국은 2006년부터

무형문화재를 국가 차원에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

의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용어로 lsquo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rsquo이라

는 말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의 기예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lsquo보유자rsquo로 인정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lsquo전승인(傳承人)rsquo 일본에서는

lsquo보지자(保持者)rsquo라고 부른다

중국은 이제 막 무형문화재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작했지만 각 지역에

서 자기들의 무형문화재를 국가 지정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으로 등재하기 위

한 열기는 매우 뜨겁다 그리고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과 관련된 행사나 학술

대회도 자주 개최하고 있다 필자는 매년 중국의 가면극학회인 중국나

희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는데 가면극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들에서

는 이 학회를 유치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현지 답사를 통해 자기 지

역의 가면극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국가 지정의 무형문화재를 (1)중요무형문화재(연극 음

악 공예기술 등)와 (2)중요무형민속문화재(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

행사 등에 관한 풍속관습 민속예능)로 구분하여 지원한다 그래서 연극

분야 중 노(能) 가부키(歌舞伎) 등은 (1)에 해당하고 각 지방의 가구라

(神樂)는 (2)의 민속예능에 해당한다 (1)은 전문적인 연희자들이 전승하

는 종목으로서 그 기middot예능을 보유한 사람과 단체를 모두 지정한다 그

러나 (2)는 단체만 지정하고 보유자는 지정하지 않는다 이를 한국에 적

용하면 판소리는 (1)중요무형문화재(음악)에 가면극은 (2)중요무형민

속문화재(민속예능)에 해당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한국의 가면극들

은 대부분 각 지방에서 세시풍속의 하나로서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

日韓 中

4

28 29무형문화재 삼국지ㆍ예능

도의 봉산탈춤middot강령탈춤middot은율탈춤 경남의 수영야류middot동래야류middot통

영오광대middot고성오광대middot가산오광대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

본산대놀이는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했지만 여기에서 전파된 별산대

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 등은 농민 하급관속 무부(巫夫) 등 각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중국 가면의 역사에서 가면의

효시는 나례에 등장하던 방상시(方相氏) 가면이다 이 나례에서 연행되던

각종 연희와 가면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면극이 생겨났기 때문에 가면

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다른 계통의 가면은 육조(六朝)시대 이후 산악middot

백희에 사용되던 것으로 이는 서역악무(西域樂舞)의 영향을 받은 외래

기원의 가면이다 현재도 중국에는 귀주성의 나당희처럼 무당집단이 전

승하고 있는 나희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들은 전문적 연희자인 셈

이다(도판 5)

일본의 가면극은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서 육성된 가면극과

서민층에 의해 육성된 가면극이 있다 전자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예술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데 기가쿠(伎樂)middot

부가쿠(舞樂)middot교도(行道)middot노(能)middot교겐(狂言)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

데 노와 교겐은 특히 산악middot백희와 밀접한 관련 아래 성립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문화인 산악middot백희가 일본에 유입

된 이후 변화middot발전하여 후대에 일본의 대표적 전통연극인 노가쿠(能

樂)middot노쿄겐(能狂言)middot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middot가부키(歌舞伎) 등 전통연

극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산악middot백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 연희를 발전시켜 lsquo나희

(儺戱)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켰고 일본에서는 사루가쿠(猿樂) 즉 산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lsquo노(能)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킨 것처럼 한국에서도

중국 사신 영접 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반인(泮人)들이

lsquo본산대놀이rsquo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Ⅲ 동아시아 가면극의 연희 내용

한국의 가면극은 벽사적 의식무과장 파계승과장 양반과장 영감할미

과장 등 서로 다른 내용의 과장들로 짜여진 소위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

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면극을 탈춤이라고 부를 정도로 춤이 많

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춤사위가 매우 뛰어나다(도판

6) 일본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가구라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짜인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나희와 일본

의 노는 대부분 하나의 가면극이 하나의 서사적 내용으로 짜여 있다

이러한 서사성의 나희와 노도 또한 서로 차이점을 갖고 있는데 노는 lsquo현

재노(現在能)rsquo와 lsquo몽환노(夢幻能)rsquo가 있어 특징적이고 나희는 주로 노래와

대사에 의해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lsquo현재노rsquo는 현재형으로 사건이 전개

되는 노를 말한다 lsquo몽환노rsquo는 나그네(조연자인 와키가 분장)의 꿈 속에

망령이나 화신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몽환노에

서는 시간이 자유롭게 정지하고 역행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도 자유롭게

등장할 수가 있다 주연자는 고전 속의 미녀이거나 역사상 인물일 수도

있고 지옥의 원령이거나 신(神) 불(佛) 귀(鬼) 초목(草木)의 정령이기

도 하다

중국 나희에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 황제 왕 일반인물

등 배역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연희 내용도 의식적인 춤을 제외

하면 대부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를 연극화

하여 공연한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 가면극에서

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이 거의 없고 황제나 왕 같은 존재

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반 인물 위주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연희 내용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주로 현

실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한편 한middot중middot일의 가면 또한 각국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middot중middot일 가

면의 형태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 윗부분에 있다 한국 가면은 얼굴

의 이마 부분까지만 표현하고 있다 일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경우에

도 간단한 선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

을 안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낸다 모자를 쓰는 배역은 별도의 모자를 착

용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의 귀면(鬼面)인 팔먹중가면을 보면 오로

지 안면의 표정에 의해 무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 노나 가

구라의 가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가면은 대부분 머리 부분과

얼굴 부분을 모두 이용해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한다 가면 자체에

머리 부분의 모자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도판 7)

그리고 한middot중middot일의 음악적 선율과 장단이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음악에 맞춰 연기하고 춤을 추는 연희자들의 동작과 춤사위는 각국

가면극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

5 중국 귀주성 덕강현의 무당들이 공연하는 가면극인 〈나당희(儺堂戱)〉

6 춤사위가 매우 뛰어난 〈봉산탈춤〉의 팔먹중춤

7 중국 안휘성 지주의 나희 〈유문룡〉 가면 자체에 모자를 장식

7 5

6

30 31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충남middot서울시 문화재위원)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도판4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양푸시(楊福喜) 201598 필자 촬영

도판5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권영학 보유자 2015821 필자 촬영

도판6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故 김박영 보유자 서헌강 촬영

도판1 활 쏘며 수렵하는 장면 고구려 무용총

도판2 중국 고대 활과 화살 및 활쏘기 장면 전국시대 초(楚) 동호(銅壺)

도판3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일본

Ⅰ 한민족과 활

한국인에게 활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민족과 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중국인이 우리 민족을 부르

는 명칭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이다 lsquo이(夷)rsquo라는 글자는 큰 대(大)자

와 활 궁(弓)자가 결합되어 있다 동이라는 글자를 곧이곧대로 풀어보면

lsquo중국의 동쪽에서 살며 큰[大] 활[弓]을 잘 만들고 쏘는 민족rsquo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 미루어 이미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우

리 한민족이 그들 한족보다 활을 잘 다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반인뿐 아니라 왕도 활을 잘 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적 인물로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lsquo활 잘 쏘는 이rsquo의 대명사로 기

록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쏘았으며

사도세자의 아들로 유명한 정조 또한 활을 잘 쏜 국왕으로 기억된다

조선에서 활쏘기를 잘했던 이유는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심신을 단련

하는 육례(禮 樂 射 脚 書 數) 중 하나로 활쏘기가 장려된 데에도 원

인이 있다 조선에서는 국가 의례로 활쏘기 행사를 거행하였다 왕과

신하가 활 쏘는 대사례(大射禮)는 1477년(성종 8) 1534년(중종 29) 및

1743년(영조 19) 1764년(영조 45)에 군신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였다 한편 지방의 양반 사족들은 향약과 비슷한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양국의 활은

기본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청나라 시대의 그림을 보면 조선 말기 19세기에 활

을 쏘는 그림과 비교가 된다 두 나라의 사수(射手)는 각각 청나라와 조

선의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른 편이다 더욱

이 양자가 활을 쏘는 모습은 공통되면서 부분적으로 다르다 그림 속 중

국의 활은 150cm 정도여서 1m 안팎의 한국 활보다 길이가 긴 점이 다르

다 막상 양자에서 동시에 화살을 쏘면 날아가는 비거리는 후자가 훨씬

긴데 이렇게 그림에서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몇 년 전

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lt최종 병기 활gt이다 시대 배경은 병자호란 당

시 청나라 무사와 조선의 사수가 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영화화한 것

이다 비록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다소 활의 효능이 과장되긴 했지만

두 나라 활의 특징과 조선 활의 장점을 극명하게 잘 그려내어 흥미롭게

본 기억이 새롭다

한편 양국과 비교되는 것이 일본의 활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활은 전

체 길이가 220cm가 넘는 세계 최대 길이의 활이다 16세기 조선의 『난

중잡록』에 의하면 일본의 화살은 lsquo장편전(長編箭)rsquo이라 하여 여러 나라의

화살과 비교해서 일본의 화살이 매우 크다는 기록으로 이미 조선에서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활을 사용하는 일

본에서는 활을 잡는 위치도 특이하다 일본의 활은 장대하기 때문에 위

쪽이 길고 아래는 짧아서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그림을 보면 매우 긴 활

의 아래쪽을 잡고 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활

은 ldquo화살은 길지만 먼 곳까지는 날지 않는다rdquo라고 13세기의 몽고인이

기록하고 있어 비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가마쿠

라 시대에 들어가면 그 중량이 더욱 늘어나 70g에 이르면 길고 무거운

화살을 폭이 긴 활로 쏘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Ⅲ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활과 화살은 조총이나 대포 등과 같은 화기(火器)를 발명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중요했다 이에 각국은 국력을 모아 활과 화살을

제작하였다

이미 고려 때에 중앙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에 각궁장(角弓匠) 전장(箭

匠) 전두장(箭頭匠) 등의 장인을 소속시켜 각궁을 만들었다 또 궁중의

궁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내궁방(內宮房)에도 각궁장(角弓匠)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군기감(軍器監)을 설치 운영하였고 장인들을 소속시켜 활

과 화살을 제작하게 하였다 이들 장인은 다른 기술을 가진 장인과 달리

궁인(弓人)이나 시인(矢人)으로 불렀다 궁인과 시인이라는 명칭은 『논

어』에서 나오며 그들 장인은 다른 물건이 아닌 무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우대하여 부른 것이다 이에 조선은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면

서 궁인 90명 시인 150명을 배정하였다 아울러 이들 장인들은 각 지

방마다 상당수를 배정하였고 이 또한 여타의 다른 장인들에 비하여 많

은 숫자에 해당되었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장색과 규모는 영조대 『속대전』이나 정조대

『대전통편』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국가적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각종 300여 도감마다 수많은 궁인이

나 시인을 징발하여 의례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할 궁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사적인 공방에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김준근의 lt기산풍속화gt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궁창을 앞에 두고

줄과 환으로 일정하게 다듬은 쇠뿔과 뽕나무 등을 옆에 두고 완성된

각궁에 시위를 걸어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있다

청나라 말에 전통 활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lt시궁정력(試弓定力)gt에

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입식 건물 안에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너댓 개

의 활을 만들어 올려놓고 다 만든 활을 과학적으로 무게를 재고 있다

향사례(鄉射禮)를 거행하여 사족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활을 좋아하고 잘 다룬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역

사 동안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다른 종목보다 유달리

활(양궁)을 잘 쏘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한민족의 피 속

에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유전인자 DNA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Ⅱ 유물 속 동아시아의 활

인류는 이른 시기부터 멀리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자 무기로 활과 화살을 개발하였다 이후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

에 따라 궁시를 제작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

하였다 하지만 궁시는 대개 나무나 대나무와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

져 썩어 오래전의 유물을 확인하기 어렵고 단지 흑요석(黑曜石)처럼 단

단한 석제로 만든 화살촉에 의해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정복 전쟁이 빈번해지던 고대부터 무기가 발달하였다 당시에

사용된 활과 화살의 형태는 유물 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전국시대(BC 475~221) 동호(銅壺) 유물

을 보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한편

5세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lt수렵도gt에서 말 위에서 짐승들을

1

32

4

6

5

32 33무형문화재 삼국지ㆍ기능

양국의 활 제작방식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청나라 활 제작 장인 집단

은 북경 동사대가에 있는 궁전대원리(弓箭大院里)에 17가호의 궁전 점포

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squo취원호(聚元號)rsquo이다 이곳에서 중국 전통 활

을 제작했던 장인이 양뤼린(楊瑞林)이며 아들인 양원통(楊文通) 손자인

양푸시(楊福喜)까지 3대가 잇고 있다 양푸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활을 제작하여 2006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

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장인으로 보호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45년 앞선 1971년 9월 13일 전통 활 제작 장인

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으로 지정하였다 서울 황학

정의 장진섭(張鎭燮 1916~1996)은 조부(장문환)와 부친(장기홍)에 이

어 3대째 활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예천의 권영

록(權寧錄 1916~1986)은 부친(권태전 權泰全)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

었다 부천의 김장환(金章換 1909~1984)는 조부(김원재)와 부친(김

동천)의 대를 잇고 한국 제일가는 명사수로서 활동하고 부천 성무정의

초대 사두(1967~1982)가 되었다 그의 기술은 제자인 김박영(金博榮

1929~2011)이 전승하였다 그의 사후 2015년 권영학(1943년생)보유

자가 새로 인정되어 조부(권선복)와 부친(권우갑)의 가업을 이어 그 또

한 3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화살을 만드는 시장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시장)

으로 지정하였다 화살로 유명한 장단에서 나고 자란 유영기(1936년 그런데 세계적으로 강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활은 여기에 화피를 더

하여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물소 뿔(牛角) 쇠심줄(牛芯)

민어 부레풀(魚膠) 대나무 뽕나무(弓幹桑) 참나무 화피(樺皮)가 그것

이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는 각궁은 살

아있는 활이면서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쇠뿔은 통뼈이며 대나

무와 뽕나무 및 참나무가 세부 뼈대이고 그 위에 바르는 쇠심줄은 근

육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부레풀은 연골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다듬는

화피는 피부에 해당된다 이중 물소 뿔과 대나무 및 쇠심줄이 활의 강

도와 탄성을 이루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민

어 부레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은 1년 중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제작하여 계절을 타는 공예품인데 그 이유는 동식물성 재료

들이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아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심이 건

조가 안되고 풀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여름에는 재료를 장만하고 찬바람이 나면 풀을 대와 뼈와 나무를 서로

붙여 정월 경에 건조시키고 3월부터 한 달 이상 해궁 작업을 한다 각

궁은 제작이 까다롭고 단계마다 원칙을 지키고 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

해서 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궁의 핵심 원료인 물소는 주로 아열대 지방인 중국 남부나 인도 및 인

도차이나 등지에 서식하므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여서 중국은 물소 뿔의 수출을 엄격

하게 통제하였고 조선 정부는 그것을 몰래 수입하려고 애썼다 현재

도 각궁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의 수급은 어려움이 많다 물소는 세계적

인 보호동물이어서 물소 뿔을 수입할 때 세관의 통과가 어렵고 쇠심줄

은 근래 많은 소들이 일하면서 근육을 키우지 않고 육우용으로만 키워

져 탄성이 없어 활의 탄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접착제인 민어부

레의 경우 예전에는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근래에는 민어부레가 정

력에 좋다고 그것마저 식용으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한 활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488년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同越)은 ldquo조선에서 사용하는 화피궁은 중

국의 제도에 비하여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rdquo라

고 평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활은 중국 것보다 작으나 탄

성이 크고 강하다 우리의 시장들은 대나무로 화살대[矢幹]를 만들고

쇠로 활촉(雛)을 끼우며 수리깃으로 화살깃(矢羽)을 만든다 반면 중국

의 장인은 죽시와 함께 유목(楡木)으로 목시(木矢)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활은 대나무와 나무를 한데 결합한 복합궁이다 일본의 활

은 2m 이상으로 길고 무거워 탄성이 적어 근거리에는 위력이 높은 대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이면서 한middot중middot일

삼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각궁은 한국 장인들의 솜씨가

표출된 우수한 전통 공예기술로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생)는 조부(유창원)와 부친(유복삼)에 이어 3대를 잇고 그 아들 유세

현과 유승현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단 근처 원당에서 나고 자

란 박호준(1944년생)은 조부(박희원)와 부친(박상준)에 이어 3대째 가

업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김종국(1940년생)은 스승인 조명제(趙命濟

1915~1980)가 조부(조성관)와 부친(조면보)의 대를 이었던 것을 본받

아 예천에서 화살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12월 14일 부천활박물관을 세웠고 파주에는 유영기

보유자가 만든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반면 중국에는 2012년 신강의

이리에 성급(省級) 비물질문화재로 등록된 이청강(李靑岡)이 중화활문화

박물관(中華弓文化博物館)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로 활을 지

정하지 않아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이 전통적(傳統的) 공예품

(工藝品)으로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을 지정하였다 미야기현(宮崎県)에 위치

한 미야코노조(都城市)에 7대째 120년 전통의 활을 제작하는 활제작소

[楠見藏吉 弓製作所]가 위치하고 있다

Ⅳ 활과 화살의 재료

활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의 『고공기』에 의하면 나무[干 柘 橘 桑 木

瓜 竹 荊 등] 심줄[筋] 풀[膠 말 소 사슴 물소] 뿔[쇠뿔] 옻[漆]

명주실[絲]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은 뿔을 주재료로

삼은 각궁(角弓)인 것을 알 수 있다

도판10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故

김박영 보유자 제작 각궁(角弓)

도판11 중국 양푸시(楊福喜)가 제작한 활

1m 60cm

도판12 중국 양푸시(楊福喜) 화살[箭]

위 2개 느릅나무[楡木] 3번째

목전(木矢) 아래 2개 죽시(竹矢)

201598 필자 촬영

도판13 일본 미야기현(宮崎県)

미야코노조(都城市) 120년 전통

楠見藏吉 弓製作所

httpjotaro-gocomcollect2980

도판14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

지정(指定) 전통적(傳統的)

공예품(工藝品)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

httpjotaro-gocomcollect2980 참고

도판7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종국(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9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박호준(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7 8 9

11 10

12

13 14

34 35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ime a

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fter Tim

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1213

14

1516

1718

1920

21

2223

2425

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3: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지난 9월 4일 저녁 6시 30분 성북동에 위치한 한국가구박물관에서는

작지만 의미 있는 전시가 시작되고 있었다 전시가 열리는 한국가구박물

관은 전통 목가구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특수전문박물관이다 박물관이

기는 하지만 이곳은 가장 한국적인 정취를 담고 있는 공간이기도 해서

국가적인 행사나 참가자를 제한하는 행사에 종종 활용되고 있다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와 2015년 중국 시진핑 주석 방문 시에 오

찬 장소로 사용되었고 GUCCI와 같은 세계적인 명품사가 자사의 특별

전시를 개최하는 장소로 사용했으며 CNN은 이 박물관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렇듯 한국가구박물관은

웬만해서는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도도한 장소다

그 비밀스러운 정원에서 시작되려는 전시는 260년 역사의 시계 제조사

가 새로운 라인업을 국내에 소개하는 자리였다

세계 최고의 명품 시계 제조사답게 백화점이 아닌 가구박물관을 전시

장소로 선택한 문화적 안목은 탁월했지만 그날 밤 설렘과 낯선 입자들

이 밤공기에 녹아 장소가 주는 특별함을 능가하는 묘한 긴장감을 주고

있었다

그 어색함을 만들어 내는 곳은 행사장에 자리한 VIP석이었다 한 명의

서양 남성과 세 명의 동양 남성 그들의 수수한 옷차림으로 미루어 고가

의 시계를 구입할 주요 고객으로 보이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전시를 취

260년 스위스 시계의 전설

조선 어보御寶의 보록寶盝에 잠기다글

한국문화재재단 기획조정실

재하기 위해 초청된 기자로 보기에는 연령대가 높아 보였다

VIP석에 자리한 서양 남성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건너온 세계 최고의 명

품 시계 제조사 바쉐론 콘스탄틴의 아티스틱 디렉터 크리스찬 셀모니였

고 세 명의 동양 남성은 속칭 인간문화재라 부르는 공예분야의 기능보

유자로 소목장 박명배 두석장 박문열 옻칠장 손대현 명인이었다 그리

고 그들 옆에는 조선시대 보록(寶錄)하나가 단아하면서도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날 전시의 가장 중요한 작품은 바쉐론 콘스탄틴이 국내에 최초로 들

여오는 2015년 유럽공예대전(JEMA) 발표작 메티에 다르 사부아 일루

미네 컬렉션(Meacutetiers dArt Savoirs Enlumineacutes)도 260주년을 기념

하여 클래식한 수공예로 2개의 무브먼트를 장착한 메티에 다르 메카니

크 그라베 컬렉션(Meacutetiers dArt Meacutecaniques graveacutees)도 이국적인

플라워 모티브를 에나멜링 공예로 장식한 메티에 다르 플로리레쥬Ⅱ 컬

렉션(Meacutetiers dArt Florilegravege II)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박물관 내 10

채의 한옥을 가득 채우고 있는 2000여 점의 문화재급 가구도 아니었

다 바로 한국문화재재단이 디자인과 설계를 담당하고 세 명의 기능보

유자가 제작한 조선시대 어보(御寶)를 보관하던 어보함인 보록(寶錄)이

었다

보록(寶錄)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존호(尊號)를 새긴 금보나 옥보를 보

두석장 박문열 칠장 손대현 소목장 박명배

관하는 궤를 말한다 어보(御寶)는 조선시대에 국왕이나 왕실을 상징하

는 도장으로 좁은 의미로는 외교문서나 행정실무에 쓰였던 국새(國璽)

와 의례용으로 쓰였던 어보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 사용

할 경우 국왕이나 왕비 또는 세자나 세자빈 등 국왕과 관련된 이들의 의

례에 쓰인 도장을 말한다 그러니까 보록은 왕실 의례인 가례(嘉禮) 책

봉(冊封) 국장(國葬) 시에 존호(尊號) 휘호(徽號) 시호(諡號) 등을 새

긴 어보를 만들고 이 어보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보관함을 의미한다 그

러니까 그 자리는 175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나 260년의 세월을

견디며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바쉐론 콘스탄틴

의 새로운 작품들과 조선왕조 500년 왕실문화의 정수이자 왕실 자체를

상징하는 어보(御寶)를 보관하는 보록(寶錄)이 동서양의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만나는 문화적 충돌의 무대인 것이다

지난해 5월 바쉐론 콘스탄틴 한국 지사인 바쉐론 콘스탄틴 코리아에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에서 모든 일은 시작되었다 26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에 무언가 특별한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추진하고 싶어

했으며 그동안 각국의 전통공예와 협업 경험이 풍부한 바쉐론 콘스탄틴

으로서는 한국문화재재단을 최상의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었다

바쉐론 콘스탄틴이 원하는 작품은 일회성 이벤트의 결과물이나 단순

한 시계 케이스가 아니었다 바쉐론 콘스탄틴 브랜드 역사에 영원히 남

4 5한국문화재재단 소식 1

을 작품을 원했고 그 작품을 한국의 전통공예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

정된 기능보유자와의 협업을 통해서 완성하고 싶어 했다

문제는 전 과정을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최고의 명품 시계를 담을 함의 철

학적 개념을 정하는 일이었다 재론의 여지 없이 전통적 사유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공간을 담을 수 있어야 하고 문화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사

회middot정치적으로나 비교가 불가능한 상징을 내포한 무엇이어야만 했다 또

한 시각적으로 부드러우면서도 도도한 질감과 한 시대의 문화를 대표하

는 배색 조화 그리고 완벽한 입체감과 비율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도저한 토론과 고민 끝에 조선시대 어보(御寶)를 보관하는 보록

(寶錄)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보록은 유일성 권위 자부

심 충성심 고결함 강인함 등의 형체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그 정도

라면 어디에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을 한 시대 정신문화의 총체적 결정체

로서 자랑할 만한 작품이 나올 것 같았다

이후의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의 보록(寶錄)을 조사하고 기본 디자인과 설계를 진행하였으며 백골 제

작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기능보유자 박명배 명인이 장석

제작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 기능보유자 박문열 명인이 그

리고 옻칠에는 서울시무형문화재 제1호 칠장 기능보유자 손대현 명인이

동참을 결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목가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좋은 목재가 있어야 한다 최소한 300

년에서 500년은 족히 지나야 목재로서 가치가 있으며 수령이 적합한 목

재를 찾았다고 해도 나무를 켜보지 않으면 장담할 수 없다 아름다운 목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 본연의 아름다운 무늬가 살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나무를 구했다고 해도 원목 상태로 2년 나무껍질을 켜서 실외에서

3년 다시 실내에서 2년을 숙성시켜야 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 이완과 수축

을 반복하며 숙성시켜야만 가구로 제작했을 때 뒤틀림이나 갈라지는 현상

을 방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7년의 숙성은 고사하고 자재로 사용할 나무

도 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프로젝트의 기간은 1년 남짓에 불과했다

좋은 목수는 좋은 자재를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로 결정되곤 한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나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런 의미에서 박명배 명인은 최고의 목수였다

본인이 힘겹게 수집해 놓은 자재 중에서 애지중지하는 최고의 자재를 내

놓았다 바로 500년된 고사목을 7년 이상 숙성시킨 느티나무였다 흔히

시골에 가면 마을 어귀에 장승처럼 서서 수호목 구실을 하는 당산나무를

볼 수 있는데 이 당산나무의 대부분이 느티나무이다

느티나무는 무늬가 아름답기로 이름이 높은데 황갈색 목재 위에 물결처

럼 어룽진 나이테의 곡선이 무척이나 우아하다 이는 물을 운반하는 물

관의 배열이 독특하기 때문인데 오래된 나무일수록 비늘 구슬 모란꽃

등 다양한 무늬가 나타나고 광택도 아름답다 거기에 견고함까지 갖추고

있는데 마찰과 충격은 물론 습기와 충해에도 강해 좀처럼 썩거나 벌레 먹

지 않는 나무이다 박명배 명인은 이 느티나무의 천연의 무늬를 살리고

전통 제작 기법인 짜임기법과 직접 만든 아교를 사용해서 백골(白骨)을 제

작했다

목가구 제작에 없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 두석장의 역할이다 가구의 결

합 부분을 보강하거나 이음새를 연결하고 열고 닫을 수 있는 자물쇠 등의

금속 장식을 장석(裝錫)이라고 하는데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황동(놋쇠)

장석을 만드는 사람을 두석장이라고 한다 두석은 단순히 기능적인 역할

에 제한되지 않고 자체로 탁월한 예술작품으로써의 완결미를 보여주며

다양한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박문열 명인은 함에 사용되는 장석에 길상(吉祥)의 의미를 담은 전통문양

을 정을 망치로 쳐서 문양을 새기는 조이질 기법으로 제작하였다 이 기

법은 장석 제작기법의 일반적인 표현기법으로 입체감까지 표현할 수 있어

사군자 연꽃 십장생 박쥐 구름 등을 새길 때 많이 사용되는 기법이기

도 하다

마지막 과정으로 손대현 명인은 옻나무의 수액을 직접 채취하여 정제과

정을 거쳐 불순물을 제거하여 입자가 고운 칠을 만들었다 백골의 표면을

다듬은 후 생칠을 바르고 갈고 바르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고 다시 초

1 두석장 박문열의 경첩 제작 장면

2 소목장 박명배의 주먹장 짜임 과정

3 칠장 손대현의 함 내부에 들어가는 주칠 장면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열린 바쉐론 콘스탄틴 260주년 기념 전시회 입구 바쉐론 콘스탄틴 아티스틱 디렉터 Christian Selmoni

1

2

3

칠에 중칠을 하여 건조한 다음 다시 상칠을 한 후 광내기와 생칠을 반복하

여 마감한다 이러한 과정을 30회 이상 실시하여 투명하고 얇게 옻칠을

완성했다

2014년 5월에 시작한 협업이 2015년 8월에 긴 여정을 마쳤다 1년 5개

월의 시간 동안 그렸다가 지워버린 숱한 디자인 안과 설계도면 보유자들

과 함께 고민하며 때로 서로를 힘들게 했던 수백 시간의 기억들 많은 시

간을 자신의 공방에서 어보함과 고통스럽게 대면했을 예술가들의 침묵의

시간이 지났다 바쉐론 콘스탄틴이라는 브랜드의 무거움과 그간의 세계

적인 협업 기관과의 실적은 감내하기 어려운 압박이었다

그리고 한국가구박물관에서 협업 작품이 공개되는 순간 그 간의 시간은

박수와 환호로 치환되었다 세계 최고의 시계 장인들과 세계 최고의 공예

장인들은 문화사회적으로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단 한 번

의 교류도 없이 자신만의 영역을 천착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결과

물들은 함께 놓여 지는 순간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

3인의 기능보유자가 제작한 조선시대 어보함 보록은 이제 스위스에서 조

선 왕실의 기품을 오롯이 전달할 것이다 1년 5개월의 시간 동안 그들은

하나의 작품을 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형체를 만든 것이다

이 문화적 행위는 수 세기를 건너뛰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상징으로

기능할 것이다

6 7

글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기획조정실 홍보팀

세계유산 따라 떠나는 여행

ldquo여러분 영화 lsquo역린rsquo 보셨나요 그 영화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십니까rdquo

ldquo이산rdquo

ldquo정조임금rdquo

ldquo맞아요 이곳 수원 화성은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이장하

면서 함께 건축했습니다 오전에 보았던 창덕궁도 정조 임금과 관련된

곳이라는 것 잊지 않으셨죠rdquo

영화라는 친근한 소재를 곁들인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에 참가자들의

눈에는 어려운 기색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사에 대해서 어렵고

딱딱하게 느낄 법도 한데 실제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를 보며

친근한 설명까지 들으니 다들 집중한 표정으로 열심히 답사 코스를 따라

다닌다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세계유산과 그

주변의 다양한 유 무형유산을 연계하여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당일 또는 1박 2일

일정으로 매월 운영되고 있다

8 9한국문화재재단 소식 2

궁 약 한 시간여를 달린 버스는 먼저 행궁 앞에 참가자들을 내려줬다

창덕궁과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은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행궁을 찬찬

히 둘러보았다 행궁의 뒷벽에는 lsquo정조대왕화성능행반차도rsquo1)가 전시

되어 있어 참가자들은 정조의 능행의 이유와 수원 화성과 행궁의 건

립 목적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하는 표정이었다

행궁 답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십여 분 정도 이동해 프

로그램의 마지막 목적지인 수원 화성 장안문 앞에 내렸다 잘 쌓아올려

진 수원 성곽을 전부 다 돌아볼 수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시간의 제약

때문에 참가자들은 장안문과 화홍문 방화수류정 등의 장소를 돌며 아

쉬움을 달래야 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방화수류정에서 내려다보

이는 아름다운 풍광에 참가자들은 저마다 신난 얼굴로 열심히 기념사진

을 촬영했다

오전 9시 30분에 시작된 프로그램은 저녁 7시가 넘어 아침에 출발한

장소인 은평구 다문화지원센터에 도착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하

루 종일 진행된 프로그램에 참가자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래도 한국의 역사와 세계유산에 대해 배워간다는 생각에 뿌듯한 표정

이었다

2015년 세계유산 연계체험은 10월에 4회 11월에 3회로 앞으로 총

7회가 더 남아있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문화의집KOUS 세계

유산 연계체험을 통해 우리의 세계유산을 접했으면 한다

를 통해 모집된 31명의 다문화가족이다 이들은 김숙희 문화유산해

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하루 동안 창덕궁과 화성 일대를 돌아보는 체험

을 했다 무더운 날씨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답사에 지칠 법도 하건

만 참가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쉽고 친절한 설명에 외국인 엄마들과

아이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끊임없이 반짝거렸다 모두들 아름다운 궁

궐과 화성의 모습에 궁금한 것이 많은 듯 열심히 전각들을 구경하고

질문하며 기념사진을 찍는 등 이번 체험을 100 즐기는 모습이었다

취재를 위해 따라간 필자 역시 기존에 알던 장소들이지만 lsquo조선의 정

궁과 행궁rsquo이라는 주제에 맞춰 설명을 들으니 그 장소들이 달리 보여

새로웠다

프로그램은 크게 오전과 오후 일정으로 나뉘어졌다 오전 9시 30분에

은평구 다문화지원센터에 집결한 참가자들은 버스를 타고 첫 답사장

소인 창덕궁으로 이동했다 참가자들은 문화유산해설사의 안내에 따

라 궐내각사를 시작으로 창덕궁 인정전 희정당 대조전 낙선재 등을

두루 둘러보았다 각 전각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정조임금과 관련된

이야기까지 곁들인 해설에 참가자들은 지루한 기색 없이 해설사의 설

명을 경청했다 특히 어린 참가자들은 대부분 아직 유치원생임에도 불

구하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며 큰 관심을 보였다

오전 창덕궁 일정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근처 맛집으로 이동해 설렁탕

으로 보신을 한 후 다시 버스에 올랐다 오후 목적지는 수원 화성과 행

1 창덕궁 세계유산 지정 표지석

2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에서 내려다본 전경

3 수원 화성 성곽

4 김숙희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참가자들

2015년 세계유산 연계체험 잔여 일정표

1) 조선 22대 왕 정조가 어머니 경의왕후(敬懿王后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하여 아

버지 장헌세자(莊獻世子사도세자)가 묻힌 화성 현륭원(顯隆園)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정조대왕화성행행반차도(正祖大王華城幸行班次圖) 또는 화성행차도

(華城行次圖)라고도 한다 경의왕후의 환갑잔치 내용을 치밀하게 기록한 원행을묘정리

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김홍도의 책임 아래 최득현 김득신 이인문 장한종 허식

등의 자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들이 제작한 목판화가 남아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정조반차도 [正祖斑次圖] (두산백과)

회차 일자 지역 주제 주요 관람지 참가대상

10 102(금)수원

화성

정조대왕의 업적과

발자취 수원 화성 건릉

서대문구

다문화센터

11 1016(금)서울

수원

역사를 통해 배우는

孝사상종묘 수원 화성

강북구

다문화센터

121119(목)

~20(금)

창녕

고성

우리나라의

자연유산 탐방

우포늪

공룡화석지

관악구

다문화센터

131126(목)

~27(금)

익산

전주

백제 역사 문화유산

탐방

왕궁리 미륵사지

입점리고분

답사

우수 고객

141022(목)

~23(금)

공주

부여

백제문화의 제2

중흥기를 찾아서

낙화암 궁남지

공주middot부여역사

유적지구

미정

15 1030(금)서울

여주

조선의 정궁과 왕의

사후 안식처경복궁 영릉 미정

16 116(금)서울

광주(경기)조선의 궁궐과 산성 창경궁 남한산성 미정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운영하는 세계유산 연계체험은 우리나라 세

계유산을 주변의 다양한 유 무형유산과 함께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다 매월 1~2회 하루 또는 1박 2일 코스로 한 가지 주제를 정해 그와

관련된 세계유산을 문화유산해설사의 친절한 해설을 들으며 답사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참가 대상은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유학생

들이나 결혼이주 여성 등의 외국인들과 다문화가정 가족들 소외계층

이다 우리 역사와 세계유산에 대해 다소 생소하게 느낄 수 있는 이들

에게 해설을 곁들인 체험을 통해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해 알리고 있는

공익적 목적의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주 답사 장소는 궁궐 왕릉 사

찰 민속마을 박물관 등 전국에 있는 세계유산 및 세계유산 잠정목록

에 올라있는 문화유산들과 그와 연계된 체험 장소들이다 서울 경기

충청 등 수도권에서 가까운 지역의 경우 당일 일정으로 운영되며 전

라도 경상도의 경우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운영된다 2015년 올해

는 4월 17일부터 11월 27일까지 약 7개월간 15회의 체험 프로그램

이 운영되는데 서울middot경기 7회 충청도 2회 전라도 2회 경상도 4회

로 구성되어 있다 참가 신청은 국내 대학교 어학당 서울시 각 구청

다문화가족센터 등을 통해 접수 받아 단체로 신청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4일 금요일에는 lsquo조선의 정궁과 행궁rsquo이라는 주제 특히 정

조 임금과 관련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서울의 창덕궁과 수원 화성

답사가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의 참가자들은 은평구 다문화지원센터

1

2

3 4

1110

12

한국의집 조리팀장 김도섭

사진

그라피스튜디오

한국의집

가을을 맛보다

뜨거웠던 열기가 식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다

뜨거운 여름을 견디며

건강하게 키운 한 해의

결실을 맺는 가을 식탁은

그만큼 풍성하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가을

가을을 대표하는

건강식재료로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의 영양을

회복해보는 것은 어떨까

1312 한국문화재재단 소식 3

전통 한식을 대표하는 한국의집 김도섭 조리팀장은 조선왕조 궁중음식 전수 장학생이자 한식조리기능장으로서 전통음식의

발전을 위한 레시피 표준화 궁중음식홍보사업 등을 통하여 국내외 전통음식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그는 한국의집뿐만 아니라 문화교류사업의 일환으로 해외 행사에서 요리를 하기도 했다 뭄바이 인도상공회의소 주관 한국의

밤(rsquo13) 태국관광박람회(rsquo12) UAE-한 수교30주년만찬amp리셉션(rsquo10) 등에서 요리를 선보이며 한식 전도사로서의 역할 또한 하고

있다 또한 문화재청장 표창(rsquo08)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표창(rsquo15)을 받은 바 있다

문의 02-2266-9101 wwwkhorkr

조리팀장

김도섭

가온정식 1인기준 35000원 삼색밀쌈과 해물잣즙채 고구마middot알밤죽과 물김치 새우찜과 생절이 버섯불고기와 부추절임 꽃게감정 진지 기본찬 후식

4인기준 조리

가을 낙지골동반 1인기준 25000원 삼색밀쌈과 해물잣즙채 계절죽 전유화와 생절이 낙지골동반 국 무화과 후식

제철 꽃게 대하 고구마로 건강을 담아낸 lsquo가온정식rsquo

lsquo가온정식rsquo은 가을이 제철인 꽃게 대하 고구마 밤을 중심으로 고구

마middot알밤죽과 새우찜middot생절이 꽃게감정으로 구성한 메뉴이다 특히

꽃게감정은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음식으로 고급스럽고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번거로워서 사위를 맞이할 때

나 한 번 만드는 귀한 음식이다 꽃게감정은 제철을 맞은 가을 수게의

살을 곱게 발라내어 소고기와 갖은 야채로 소를 만들어 게딱지에 채워

놓고 국물을 자박자박하게 끓여 만들어 낸 찌개인데 제철 꽃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미와 담백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제철 게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이 많아서 소화가 잘되고

원기회복에 좋다 이 밖에도 키토산이 풍부한 대하 식이섬유소가 풍부

한 고구마 5대 영양소와 비타민C가 풍부한 밤으로 만든 요리는 입맛

을 돌게 하고 원기회복에 도움이 된다

쓰러진 소도 살린다는 가을철 원기회복의 대명사 lsquo가을 낙지골동반rsquo

골동반은 임금님부터 백성까지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한국의집은 가을을 맞이하여 기존 골동반 메뉴에 영양이 풍부한 낙지까

지 맛볼 수 있는 lsquo낙지골동반rsquo을 선보인다

낙지골동반은 오색나물과 살이 충분히 오른 가을 낙지를 올려 시각적 아

름다움과 맛과 영양까지 모두 챙기는 일품메뉴이다 특히 lsquo봄조개 가을

낙지rsquo란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가을 낙지의 맛은 높이 평가된다 또한 낙

지는 피로에 좋은 아미노산과 타우린이 풍부해 인삼 한 근과 비견할 정

도로 몸에 좋은 음식이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철 제철재료로 만든 요리는 그 어느 계절 음식보다 맛

이 좋고 몸에도 좋다 제철을 맞은 엄선된 재료로 만든 한국의집 가을 신메

뉴와 함께라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14 15

1927 2015

宇峰우봉 이매방

춤 한자락에 담긴 삶

한국 춤의 거목 우봉 이매방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lt승무(僧舞)gt 및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lt살풀이춤gt 예능보유자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2가지 종목의

무형문화재를 보유했다

그의 춤과 삶의 흔적을 담아보았다

Master Ubong Lee Mae Bang Korearsquos traditional dance virtuoso passed away on August 7 2015 He was 88 years of age Ubong was one of the key figures in

the modern and contemporary days of Korea Ubong the one who often lauded as a ldquodancer sent from the Heavenrdquo was a master of Seungmu (a form of dance

traditionally performed by Buddhist monks) and Salpuri (a form of dance traditionally performed by Korean shamans to banish evil spirits) designated

as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No 27 and 97 respectively Born in Mokpo Jeollanam-do on May 5 1927 he was discovered and trained by

Han Guk Hyang the headmaster of a Gwonbeon (a form of traditional dance academy in Korea) in Mokpo at the age of 7 This was followed by 8 years of

dance and drum performance training as an apprentice of Master Lee Dae Jo who taught Seungmu Geommu (sword dance) and Gobeop (traditional drum

technique) at the Gwonbeon Throughout his life devoted to dance he garnered great fame as the holder of two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and

trained numerous traditional dancers Ubong Lee Mae Bang passed on to us the quintessence of Korean traditional dance expressed through his moves that

made him a dancer of a historic significance for whom there will be no equal in this millennium not to mention in this century사진제공 한국문화재재단

1716 기획특집1

살풀이춤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해 공연 때 착용했던 살풀이춤 의상이다 무동옷과 쾌자는 다른 색으로 바꿔입기도 하며

이매방 살풀이춤을 대표하는 의상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사진액자 121940~50년대 이매방이 승무 바라춤

추는 모습을 찍은 사진의 배경을

없애고 보유자만 오려 붙여 만든

액자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약력

1927년 전남 목포 출생

1934년 목포 북교 입학

1935~39년 만주 다렌 거주 이대조에게 승무 북춤 박영구에게 승무 법고 이창조에게 검무 사사

1943년 목포 공립공업학교 졸업

1948년 명창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서 lsquo승무rsquo로 첫 무대

1953년 제1회 개인발표회(광주)

1956년 제3회 개인발표회(부산)

1959년 제5회 개인발표회(서울 원각사)

1984년 무용 인생 50년 특별공연 lsquo북소리rsquo

1987년 승무 예능보유자 지정

1990년 살풀이춤 예능보유자 지정

1993년 인간문화재진흥회 부회장

1996년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수

1999년 우봉 이매방 춤 인생 65주년 기념 대공연

2004년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춤 인생 70년 기념공연

2005년 lsquo우봉 이매방 춤 전수관 개관 기념공연rsquo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 대공연장)

2006년 lsquo무용 무대예술 80년사 아름 보듬어맺고 풀고helliprsquo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07년 lsquo화성 춤 페스티벌rsquo (수원대학교 베칸토 아트센터)

2008년 서울시 무용단 정기공연 lsquo하얀사 고이접어rsquo (세종문화회관 세종 M씨어터)

2009년 lsquo그가 무대에 서면 역사가 된다 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춤 대공연rsquo (영등포 아트홀)

2010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2011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호암아트홀)

2012년 명작 명무전 (LG 아트센터)

2014년 lsquo우리는 그를 巨木이라 부른다 우봉 이매방 전통춤 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승무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한 승무 복식으로 공연 때 착용했다 흰 장삼에는 옥색 바지 저고리를 입고

흑 장삼에는 흰색 바지 저고리를 입는다 흰 장삼의 승무 의상을 기증했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wwwk-heritagetv에서

승무와 살풀이 동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수상 내역

2015년 은관문화훈장

2011년 제12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공로상

2004년 임방울 국악상middot세종국악대상

1998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1995년 성옥문화상

1984년 옥관문화훈장

1976년 부산시 눌원문화상

우봉 이매방

한국 전통 춤의

정수 승무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18 19

글 사진

이병옥 (용인대학교 명예교수)

宇峰우봉

이매방 선생의 춤 일생

춤 성향을 가늠하는 입문과정과 열정

첫째는 이매방이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세(1934년)가 되던 해 옆집에 세

들어 살던 조도 출신 목포 권번의 권번장 함국향(咸菊香)씨는 그가 춤추기

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춤 학습을 권유하여 남자이지만 여성적인 고운 춤

사위 성향인 기방춤의 기틀을 마련한 점이다

둘째 이매방의 할아버지이면서 스승이었던 이대조 명인은 목포 권번(卷

番)에서 승무와 북놀이 검무 그리고 고법(鼓法)을 가르쳤던 권번 선생으

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점이다

셋째 중국 대련 정포소학교(1935~1939)를 다니면서 그는 매란방 배구

자 등을 만나 춤에 색다른 영향을 받은 점이다 대련에서 운수회사를 운영

하던 큰 형님을 따라 약 5년간을 살게 되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신무용의

대가인 배구자의 무용공연에도 출연하였고 또 북경에 있던 큰 누나의 연

결로 매란방의 공연을 접하고 이국적인 향취에 매료되어 그에게 lt장검무

gt lt등불춤gt lt꿩털춤gt 등을 배운다 6middot25 이후에는 본명 lsquo이규태rsquo를 버

리고 lsquo매방(梅芳)rsquo이라는 예명을 lsquo매란방rsquo의 약자를 딸 정도로 그의 예술혼이

깃든 것이었다 그러다가 대련정포소학교 5학년 때(1939년) 고향 목포북

교소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통춤에 정진하게 되었다

넷째는 주말마다 광주 권번에 다니면서 권번 선생이었던 박영구로부터

승무와 북놀이를 배우고 이창조(장성출신) 선생에게는 검무를 학습한 점

이다 이처럼 목포 권번과 광주 권번을 오가며 박영구 이창조 그리고

이대조 선생에게서 승무 승무북놀이 검무 입춤 살풀이춤 장고춤

태평무 한량무 보렴승무 흥춤 장검무 장고기법들을 배웠다

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공연은 1942년(16세) 목포역전에

서 임방울이 주관하는 명인명창대회였다 이때 승무를 출 박봉선이 사정이

생기자 함국향이 이매방을 임방울에게 소개하여 김연수의 장삼을 빌려 입

고 무대에 나섰다 이때 이매방은 승무를 추어 관객의 열렬한 호응으로 자

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또 예술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해방 후로는 1948

년 임춘앵의 여성국극단에서 삼고무를 가르쳤고 그해 목포 역전에서 다시

임방울이 이끄는 명인명창발표회에 당당히 승무로 출연하게 되었다

방랑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춤 정립(대구 군산 부산 광주 서울)

1950년 6middot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북한군의 뒤를 따라 예술동맹 공연

단들이 목포에 내려와 인민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당시 최승희의 딸 안성희는 lt장검무gt 전황(본명 전두황)은 lt처녀총각gt 등

을 추었으며 이어 이매방을 강제로 무용동맹에 가입시켜 무용활동을 시켰

다 수복 후 국군이 들어와 무용동맹에 강제로 가입했던 것 때문에 곤욕을

치렀으나 가까스로 해명하고 국군 군예대(KAS 종군연예인공연단)에 가

입하여 1951년 대구에 본부를 두어 활동하면서 지방순회공연을 다녔다

또 광주에서 전라남도 경찰국 선무공작단을 맡아 단장으로 호남 일대를 돌

며 순회공연을 하던 중 잠시 군산으로 옮겨 군산시 영화동에다 이매방무

1 1950년대 삼고무 초기 모습

2 1978년 이매방 승무

3 1938년 정포소학교 고개 숙인 이가 이매방 우측 앞

3

2

1

한국 전통춤의 대부 우봉(宇峰)

이매방 선생님이 2015년 8월 7일

8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우봉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로 lsquo하늘이 내린

춤꾼rsquo으로 칭송되는 근현대

전통춤계의 중심인물이었다

1927년 5월 5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7세 되던 해에 목포

권번(券番)의 권번장 함국향의 눈에

들어 춤 학습을 받았다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검무 그리고

고법을 가르쳤던 이대조(李大組)

명인으로부터 춤과 북놀이 사습을

8년 동안 받은 후 평생 외길

춤인생을 걸으면서 두 종목의

인간문화재로 그 명성과 수많은

이수자를 배출하였다

우봉 이매방의 춤사위는 lsquo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rsquo라는 표현을

넘어 lsquo밀레니엄에 한 번 날까rsquo하는

역사적인 존재라고 할 만큼 전통춤의

진수를 전승시킨 인물이다

그러면 우봉 이매방이 어떤 계기와

학습과정으로 전통춤의 대부가 될 수

있으며 어떤 춤 일생을 살아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20 21기획특집 2

용연구소를 개설하여 2 3년간 활동을 하였다

그 후 1953년 부산으로 내려가 장홍심이 운영하는 영도에서 함께 연구소를

했으며 부산 제자로는 김진홍 성승민 이도근 등이 있었다 1954년 광주

로 옮겨 국악원을 개설하여 한순서를 조교로 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무용

발표회(1955년 광주극장)를 가졌다 한편 서울에서는 여성창극단 삼성여

성국악단(박옥진 박보아 조양금 3인) 등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다시 1955

년 부산으로 내려가 초량동에 자리 잡고 첫 발표회를 대영극장(1957년)에서

하였다 그리고 서울에서도 1959년 원각사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당시의 이매방의 춤 활동은 전국적으로 목포 대구 부산 광주 서울이

었지만 주 근거지는 사실상 부산무용가협회 정회원이었으며 1957년과

1958년에 부산공연을 올리며 1960년대 말까지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

1960년대는 많은 무대를 누비면서 점차 춤 레퍼토리를 확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이매방은 삼고무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창작하였으

며 그 후 5고무 7고무 그리고 9고무와 11고무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lt초립동gt lt화랑무gt lt검무gt lt장검무gt lt박쥐춤gt lt흥춤gt lt무당춤gt lt장고

춤gt lt학춤gt 등을 정립하였고 늘 추어온 lt승무gt lt입춤gt lt검무gt 등과 함

께 추었다 이매방 승무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연구소를 서울로 옮겨

오늘날까지 서울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매방은 lt보렴승무

gt lt삼현승무gt lt살풀이춤gt lt검무gt lt입춤gt lt한량무gt lt태평무gt lt흥

춤gt lt장검무gt 그리고 lt장고춤gt 등도 lt승무gt와 함께 끊임없이 연마하여 왔

다 그러한 이매방의 춤예술 정립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예능적 기술이 뛰

어났기 때문이었다

승무 살풀이춤 인간문화재와 국무(國舞)로 추앙

이매방이 서울무용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중앙대 교수이

며 문화재 위원이었던 정병호에 의해 1977년 7월 30일 서울 YMCA에

서 열린 한국전통무용발표회에서 승무를 발표하면서였다 아울러 그때

까지 한성준류의 한영숙 승무에 매료되었던 이들에게 새로운 유파의 승

무가 있음을 신문지상을 통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무대에서의 성공

은 이듬해 1978년 3월 세계민속예술제 한국대표로 프랑스 렌느시에 참

가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이매방 춤판의 최고 결정판은 lt북소리gt 시리즈였다 1984년 6월 이매

방 무용인생 50주년 기념공연 lt북소리gt(문예회관 대극장) 1985년 6월

이매방 전통무용 lt북소리 Ⅱgt 1990년 rsquo90 북경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

전 참가와 lt북소리Ⅲgt(호암아트홀) 그리고 1994년에 춤인생 60년을 정

리하는 lt북소리 Ⅳgt였다 또한 전통예술의 보급과 선양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결과로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1984)과 성옥문화상 문예부문 대상

(1995)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병호 문화재위원의 끈질긴 노력으로 1987년 7월 1일 이매방은 중요무

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명실상부한 명무의 대열

에 서게 되었다

이어 1990년 10월 10일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도 인정받아 전

통춤의 최고 명인으로 추앙받게 되었으며 수많은 한국무용가들이 이매

방류 춤을 전수받기 위해 구름같이 모이게 되었다 그 후 1996년 인생70

고희기념공연 1997년과 98년 일본공연과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2007년 lsquo우봉이매방팔순기념공연rsquo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으며

매년 제자들과 함께 정기공연을 하였다 전통춤경연대회 및 300여 명에

이르는 승무와 살풀이춤 이수자들과 제자들의 공연에도 찬조출연과 반주

를 직접 해주는 열정을 최근까지 지속하였다

이매방 춤의 무용예술적 가치

이매방의 춤에서는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호남제 시나위 춤사위로 짜여져 있

다 춤기법의 중심은 대삼소삼(大杉小杉) 비정비팔(比丁比八) 양우선(兩雨線)

비디듬 좌우걸이 완자걸이 잉어걸이 지숫기 등으로 곱고 아름다운 사위와

자태를 자아내고 한을 신명으로 풀어내는 정중동의 몸놀림이 배어 나온다

결국 이매방 춤은 호남 지방의 권번에서 추어왔던 춤사위 기법이지만 많

은 세월이 지나면서 스승들의 춤을 뛰어넘어 아무도 넘겨볼 수 없는 국무

(國舞)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이매방의 일생을 통해 그가 가진 춤의 예

술적 가치를 요약하면

첫째는 남자이면서도 여성보다도 더 곱고 섬세한 기방계통의 lsquo춤바디rsquo와

여성적 lsquo춤속rsquo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호남지역의 명무들로부터 뼈대 있는 전통춤을 다양하게 전수받아

호남춤의 정통성을 확립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과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춤의 천재이기 때문이다

넷째 현대교육개념으로 볼 때 어린 나이부터 춤의 조기영재교육을 받았

기 때문이다

다섯째 세계적인 경극과 춤의 명인 매란방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예술혼

을 불태우고 인생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80평생 춤추는 것 외에는 남자로서 어떤 직함도 직책도 직업도

가진 바 없이 오로지 춤만 추어온 외길 인생이기 때문이다 춤이 곧 이매

방의 삶이며 생명이며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일곱째 호남지역춤과 기방계통춤이라는 lsquo국지성rsquo에서 출발하였지만 경향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범한국적 전통춤의 lsquo국가성rsquo으로 거듭났으며 국제무

대에도 우리 전통춤의 lsquo세계성rsquo을 알리고 확인하는 독창성과 보편성을 지니

고 있었다는 점 등이 이매방 춤이 가지는 예술적 의의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매방은 1927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민족 수난 속에서도 춤을 배

웠고 해방과 6middot25전쟁 통에서도 오로지 춤만을 추었고 외래문명의 홍

수와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꿋꿋이 춤만 추어 한국 전통춤의 위상을 높였

고 세계 속에 한국춤의 지평을 열어 대한민국 시대의 전통춤 패러다임을

구축하였기에 국무적 존재로 인정받아 온 것이다

1970 2004 2008 2012

22 23

양종승 (우봉이매방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middot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하늘이 내린 춤꾼 宇峰 이매방 선생님을 追惜하며

춤을 위해 태어나 평생 동안 춤만을 사유하였던 우봉(宇峰) 이매방(李梅

芳) 선생님께서 2015년 8월 7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승천하셨다 선생

님은 1927년 5월 5일(음력 3월 7일) 새벽 동이 틀 무렵 목포에서 이경

율과 조병림 사이의 10형제 중 막내둥이로 태어났다 5남매는 일찍이

죽고 남은 3남 2녀 중 막내로 성장하였다 선생님 아명은 집안 돌림자에

따라 영길(永吉)이었지만 스님께서 귀한 아들이라고 하여 귀태(貴泰)로

개명해 주었다 오기된 호적에는 규태(圭泰)로 되어 있다 매방(梅芳)이

라는 이름은 중국 경극의 명인 매란방(梅蘭芳)의 첫 자와 끝자리를 따 예

명으로 불리었는데 1986년 호적을 개명하여 본명이 되었다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춤에 소질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서 성장하였다 결국 옆집 살던 권번장 함국향 권유로 목포 권번에 들어가

당대 소리 북 춤 등에 대가들이었던 이대조 이창조 박영구 진석산 등

에게 승무 검무 살풀이춤 등 전통춤을 학습하였다 선생님의 무용활동

은 목포 공립 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 승무로 출연

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이후 1953년 광주에서 첫 개인발표회를 시

작으로 무용인생 50주년 65주년 70주년을 비롯한 수많은 국내외 공연

을 펼쳤다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1990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가 되었다 그리

고 2014년 승무 및 살풀이춤 명예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한국무용협회 고

문 한국국악협회 고문 한국전통춤협회 고문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

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국무 우봉이매방 화보집』을 발간하였다

이매방 선생님 장례식은 2015년 8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서울삼

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문화예술인 葬]으로 치러졌다 목포문화예술회

관 내에 있는 이매방춤전수관에도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우봉이매방장

례위원회가 구성되어 공동장례위원장을 김종규 한국문화유산신탁 이사

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이경동 한국문화원연합회 회장 김복

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하철경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 김

덕수 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이사장 김진홍 부산시 무형문화재 동

래한량무 보유자 김정녀 중요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전수조교 채상묵

한국전통춤협회 이사장 국수호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등 10명이 맡

았다 장례집행위원장을 양종승 우봉이매방춤보존회 수석부회장 장

례집행부위원장에 김덕숙 김효분 박종필 오은명 최창덕 황순임

등 우봉이매방춤보존회 부회장 6명이 맡았다 장례위원은 김묘선 오

미자 박소림 이길주 송재섭 정영례 최희진 한혜경 김리혜 김은

희 한명옥 진유림 채향순 강성민 백경우 김정기 등 제자 215명이

맡았으며 목포분향소 공동장례위원장은 임점호 목포신안예총회장과 박

수경 목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맡았다 장례의전은 국가공인장례지

도사 유재철 황근식이 진행하였다 유족으로 미망인 김명자(전통무용

가 승무 및 살풀이춤 전수조교) 딸 이현주(전통무용가 승무 및 살풀

이춤 이수자) 사위 이혁열(연극인) 등이 있다

추모식 전경선생님 영전에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을 추서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

부 장관은 일평생 우리 춤 전승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며 문화

융성과 전통예술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공적을 기렸다 또한 이매방 선

생님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깊은 애

도와 함께 목포가 낳은 문화예술계의 큰 별이셨던 선생님은 우리나라 전

통예술의 표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외에 박민권 문화체육관광부 제1

차관 나선화 문화재청장 김해숙 국립국악원장 서도식 한국문화재재

단 이사장 이문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 등 정치계 문화예술

계 등 각계 인사들과 수많은 무용 가족들이 조문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추모식은 2015년 8월 9일 일요일 오후 7시부터 9

시까지 2시간 동안 삼성서울병원 영결식장에서 유가족 지인 각계인

사 제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덕택 운현궁 예술감독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민의례 고인에 대한 묵념 양종승 장례집행위원장의 고

인 약력보고 공동장례위원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공동

장례위원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이사장 공동장례위원장 김복희 한국

무용협회 이사장 등의 조사 제자를 대표한 채상묵 공동장례위원장의

추도사가 있었다 동영상으로 고인의 생전 활동과 육성을 보고 들은 후

유가족을 비롯한 지인 문화예술계의 인사 제자 등의 헌화 및 분향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안숙선 명창의 이별가와 김영임 명창의 회심곡 중

저승 가는 길이 헌가로 받쳐졌다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 보

유자 박병원 전수조교 송순단과 박미옥 등이 주관하는 추모굿과 이광

수 명인의 헌가가 올려졌다 다음날 오전 7시 30분에 발인식이 행해졌

고 오전 9시에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이 이루어졌다 유해는 경기도 광

주시 오포읍 시안가족추모공원에 봉안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에서 초제를 시작으로 49재가 진행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금세기 하늘이 내린 명무였다 그리고 근현대 문

화적 격동기 속에서 우리 춤을 꿋꿋이 지킨 민족춤 계승자로서 주어진

소임을 완수하였다 그래서 선생님의 예술 생애와 그가 전승해 온 민족

춤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큰 가치를 지닌다

주지하다시피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한국 전통무용 진가를 표방

하는 고단위적 한민족 춤 유산으로써 조선 중엽 이후 불교의식 민속놀

이 유랑예인연희 무속신앙 등과 어우러져 계승 발전되어 왔다 그와

더불어 민중의식을 담아 애환과 기쁨을 표상하는 춤으로써 위엄 있고 격

조 있는 춤으로 승화되었다 그래서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무용 예술적

가치와 업적은 위대하고 광활하다 무용평론가 강이문과 무용학자 이병

옥 교수는 이매방 선생님을 國舞라 칭했으며 문화계 많은 인사들은 신이

내린 춤꾼이라 호평하였다 이러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우봉 이

매방 선생님 금자탑에서 빛나는 것은 다름 아닌 기왕 흩어져 내동댕이쳤

던 민족 춤의 뿌리를 살려내어 우리 시대 진정한 무용예술로 승화시키고

국가의 민족유산으로 갈고 다듬은 것이었다 이는 탈 식민지적 화두가 -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다큐멘터리 중 이매방 인터뷰 -

살풀이춤은

즉흥무이다 승무

검무 법무를 다

배우면 자기 멋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수판을 잘라야 한다

가락도 춤 승무 가락

검무 가락 이런 거

섞어서 장단 맞춰서

자신의 감정 음악

듣고 음악이 슬프면

슬픈 표정으로

즉흥적으로 추는 춤이

즉흥무야

24 25기획특집 3

본격화되던 20세기 초중반 우리 것에 덧씌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구

를 벗겨내려는 문화 민족주의적 활동의 한 면이었다 서구 중축의 지배

담론을 탈피하면서 그동안 왜곡되고 전도된 관점에서 벗어남으로써 민

족춤에 비문명적이라는 멍에를 씌었던 편협한 지식층의 문화보기 탈각

운동의 한 면이었던 것이다 시기는 일본제국주의의 한국민족문화 말살

정책 해방 후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교육정책의 서구 지향적 패러다임

등장 도시화middot산업화middot현대화에 따른 전통문화 멸시 및 천시 등으로 인

해 민족예술이 단절 위기에 처했었던 그때였다 또한 현대 산업화에 따

른 근대화론 지향의 국책 하에서 민족예술을 진부하거나 불필요한 것으

로 치부하는 풍조였던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우리의 것은 외래의 것에 밀리거나 일방적으로 시비 당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빼앗기는 패배의 싸움판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던 그 상황 속에

서 선생님은 묵묵히 그리고 꿋꿋하게 우리 춤을 지켜 내셨다 우리네 전

통춤은 비합리적이고 가치가 없으며 저급하고 미천한 것으로 저평가되

돼 전승의 단절까지 치닫게 된 상황 속에서도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우

리 춤 계승하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의 춤을

옥석으로 다듬어 세상에 펼쳐 보임으로써 민족 무용예술의 가치를 되살

리는데 평생 힘써 왔었다 결국 어려운 역경과 피나는 고난을 헤치고 일

어난 선생님의 예술세계는 살아 숨 쉬는 민족 춤으로 꽃 피어졌다 향토

춤 민족춤 전통춤 속에 내재된 민중들의 예술적 사상과 정신이 북돋아

나 전통문화복원 민족문화재건 향토문화복구 등과 함께 형성된 민족

문화바로세우기운동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춤은 밖에

서 유입된 외래의 것과는 달리 이 땅에 자생적으로 자라온 민족 춤 뿌리

로 각인되면서 한국무용예술사에 독창적 고귀성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

리고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와

1990년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국민의 춤꾼으로 안

착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 계보를 따지고 올라가면 신방초(申芳草 남)라

는 인물이 있다 전남 옥과 출신인 그는 1817년 무속집안에서 태어난

재인으로 어정판에서 바라지로 활동하였다 춤은 물론이고 육자배기

가곡 가사 장단에 능하여 호남 일대에서 대단히 명성이 높았다 그래

서 당시 호남의 유명 당골들은 그를 모셔가기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였

다고 한다 신방초는 자신의 춤을 같은 고향 출신 신영수(남)에게 전했

다 이후 고창 출신 안두온(남)에게로 이어졌고 다시 순창 출신 이정선

(남)에게 전수되었다 이정선은 춤뿐만 아니라 북놀이에도 뛰어난 재능

을 갖고 있었던 예인이었으며 판소리도 잘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상당

한 대접을 받았다 이정선의 춤은 목포 출신 김금옥(여)과 박귀주(여)에

게 이어졌다 그 후 이매방 선생님의 스승 박영구 이대조 이창조 진

석산 등에게 전수되었다 박영구(남)는 전남 화순 출신으로 승무와 북놀

이의 명무 명인이었으며 광주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대조(남)는 전

남 무안 출신으로 승무의 대가였고 목포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창

조(남)는 전남 능주 출신으로 검무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고 역시 광주 권

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그리고 진소홍(일명 진석산 여)은 전남 담양 출

신으로 서울 인사동에서 요릿집을 운영하면서 살풀이춤을 전승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춤에는 엄격한 억제와 철저한 절제가 존재한다 이

는 수단에 의해 보이는 기교면서 또한 재간으로 처리될 수 있는 예술적

기법의 한 면이다 선생님의 춤은 또한 느낌과 감정의 표현 방식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느낌에서는 가벼움과 무거움 재빠름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이매방 승무-필자 양종승 제공팔순 기념공연-필자 양종승 제공

과 더딤 흐늘거림과 꼿꼿함 섬세함과 우람함 정교함과 장중함 등의

변화무쌍한 표현력을 가진다 감정에서는 슬픔과 기쁨 가냘픔과 뭉뚝

함 애석함과 환희 괴로움과 기쁨 고요함과 시끄러움 등이 묘사되는

데 이는 삶의 고뇌와 애환은 물론이고 희망과 행복을 감싸고 있음을 말

한다 이러한 춤에 있어서의 느낌과 감정은 비정비팔 비디딤 까치걸

음 잉애걸이 좌우걸이 완자걸이 안가랑 등의 발디딤새와 양우선

평체 사체 등의 손놀림새 그리고 연풍대 지숫기 다루치기 대소삼 등

의 몸굴림새 속에서 표현력을 한층 고조시킨다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

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

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

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길이

길이 민족 춤 기틀로 명명되어 질 것이다 천기를 타고난 춤꾼 신들

린 듯한 춤으로 관객을 홀렸던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이제 천상

무대로 가시어 휘날릴 것이다 선생님 기어이 춤과 함께 홀연히 떠

나셨으니 부디 부디 영면하옵소서

추모식 전경

26 27

전경욱 (고려대학교 교수)

동아시아의 가면극1 중국 귀주성 위녕현의 〈춰타이지(撮泰吉)〉 가면극

풍농과 악귀 쫓기를 위해 기원하는 제의의 일부

2 한국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서낭신인 각시가

무동을 탄 모습

3 일본의 미야자키현(宮崎県) 시이바손(椎葉村)의

〈다케노에다오가구라(嶽之枝尾神楽)〉

4 《봉사도》제7폭 모화관에서 행해진 중국사신

영접행사의 연희장면 산대(왼쪽) 앞에서 연행된

줄타기 물구나무서기 접시 돌리기 가면극 등의

전문적 연희

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에서는 가면극 분야에 대해 보

유자와 단체를 모두 지정하고 있으니 일본보다 지원이 좋은 편이다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을 민간문학 민간음악 민간무용 전통희극

곡예 잡기와 경기 민간미술 전통수공기예 전통의약 민속으로 분류

하여 지정하고 있다 중국 가면극인 나희는 전통희극 분야에 해당한다

한국에는 현재 국가 지정의 중요무형문화재 가면극 13종목 각 시도의

무형문화재 가면극 2종목(진주오광대와 퇴계원산대놀이)이 있다 중국

은 그동안 전통희극 분야에 430개 종목을 지정했는데 여기에 나희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노(能)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중요무형

민속문화재의 민속예능 분야에 35개의 가구라(神樂)를 지정했다 이 가

구라들은 대부분 민간의 가면극이다

Ⅱ 동아시아 가면극의 역사와 계통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면극은 매우 유사한 발전 과

정을 보인다 동아시아에는 (1)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과 (2)전

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이 있었다 (1)은 각 지역의 향촌제사

활동(鄕村祭祀活動)에서 연행되던 것으로서 각각 자생적 향토적 성격

을 띠고 있다 그러나 (2)는 산악(散樂) 또는 백희(百戱)라고 불리던 동아

시아 공동의 연희들이 발전하여 성립된 것으로서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함께 각국의 독자성을 띠고 있다

1 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하회별신굿탈놀이나 강릉관노가면

극처럼 향촌제사활동인 마을굿에서 유래하여 발전해 온 가면극들로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전승해 왔다 이 가면극들은 다른 지방의 가면극과

는 아주 다른 독자적 내용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가면극들이 마을굿에

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도판 1)

중국의 나희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지만 후대에는

그것이 민간에 전파되어 각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도 전승되고 있다 그

리고 중국 한족을 비롯하여 소수민족들에는 여러 향촌제사활동에서 유

래하여 그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가면극들도 있다(도판 2)

한편 일본의 고유 신앙을 섬기는 신사(神社)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연예술

인 가구라(神樂) 중에는 자생적인 민속가면극의 예를 보여 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국의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방마다 차이가 크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도판 3)

2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생겨난 가면

극이다 본산대놀이는 삼국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산악middot

백희 그리고 상고시대의 제천의식 등에서 연행되던 전문적 연희자들의

연희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해 형성된

것이다 산악middot백희를 놀았던 사람들은 그 연희 내용으로 볼 때 삼국시

대부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연희자였으며 이들의 후예가 통일신라시

대에 최치원의 시 lt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gt에 묘사된 다섯 가지 연

희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계승된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연행

된 가무백희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나례에서 연행된 산

대희 등을 놀았다 그리고 중국 사신 영접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

희를 펼치던 반인들이 18세기 전반기에 산악middot백희 계통의 연희와 기존

의 가면희들을 재창조해서 본산대놀이를 성립시켰다 이 가면극은 애오

개(아현) 사직골 구파발 녹번 등에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봉사도(奉使圖)》(1725년) 제7폭은 서울의 모화관 마당

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행사의 연희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접시 돌리

기 땅재주 줄타기 탈춤을 묘사하고 있다 마당의 오른쪽에는 산거(山

車)middot산붕(山棚)middot윤거(輪車)middot예산대(曳山臺)middot예산붕(曳山棚) 등으로 불

렀던 소규모의 산대가 보인다 바로 이런 산대 앞에서 공연하던 연희들

을 lsquo산대희rsquo라고 불렀다 특히 세 명의 땅재주꾼 양 옆에서 각각 두 명씩

모두 네 사람이 초록색과 남색의 가면을 쓰고 탈춤을 추고 있다 이는 서

울에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가면극이 있었고 그 가면극을 애오

개산대놀이 등 산대놀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전해준다(도판 4)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경기도의 송파산대놀이middot양주별산대놀이 황해

31 2

Ⅰ 동아시아 가면극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우리는 가면극을 탈춤 탈놀이 가면희 등으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가

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儺戱)라고 부

르는데 이는 중국 가면극들이 대부분 나례에서 연행되던 연희인 나희

로부터 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무형문화유

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middot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부터 한국은 1964년부터 중국은 2006년부터

무형문화재를 국가 차원에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

의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용어로 lsquo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rsquo이라

는 말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의 기예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lsquo보유자rsquo로 인정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lsquo전승인(傳承人)rsquo 일본에서는

lsquo보지자(保持者)rsquo라고 부른다

중국은 이제 막 무형문화재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작했지만 각 지역에

서 자기들의 무형문화재를 국가 지정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으로 등재하기 위

한 열기는 매우 뜨겁다 그리고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과 관련된 행사나 학술

대회도 자주 개최하고 있다 필자는 매년 중국의 가면극학회인 중국나

희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는데 가면극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들에서

는 이 학회를 유치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현지 답사를 통해 자기 지

역의 가면극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국가 지정의 무형문화재를 (1)중요무형문화재(연극 음

악 공예기술 등)와 (2)중요무형민속문화재(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

행사 등에 관한 풍속관습 민속예능)로 구분하여 지원한다 그래서 연극

분야 중 노(能) 가부키(歌舞伎) 등은 (1)에 해당하고 각 지방의 가구라

(神樂)는 (2)의 민속예능에 해당한다 (1)은 전문적인 연희자들이 전승하

는 종목으로서 그 기middot예능을 보유한 사람과 단체를 모두 지정한다 그

러나 (2)는 단체만 지정하고 보유자는 지정하지 않는다 이를 한국에 적

용하면 판소리는 (1)중요무형문화재(음악)에 가면극은 (2)중요무형민

속문화재(민속예능)에 해당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한국의 가면극들

은 대부분 각 지방에서 세시풍속의 하나로서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

日韓 中

4

28 29무형문화재 삼국지ㆍ예능

도의 봉산탈춤middot강령탈춤middot은율탈춤 경남의 수영야류middot동래야류middot통

영오광대middot고성오광대middot가산오광대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

본산대놀이는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했지만 여기에서 전파된 별산대

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 등은 농민 하급관속 무부(巫夫) 등 각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중국 가면의 역사에서 가면의

효시는 나례에 등장하던 방상시(方相氏) 가면이다 이 나례에서 연행되던

각종 연희와 가면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면극이 생겨났기 때문에 가면

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다른 계통의 가면은 육조(六朝)시대 이후 산악middot

백희에 사용되던 것으로 이는 서역악무(西域樂舞)의 영향을 받은 외래

기원의 가면이다 현재도 중국에는 귀주성의 나당희처럼 무당집단이 전

승하고 있는 나희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들은 전문적 연희자인 셈

이다(도판 5)

일본의 가면극은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서 육성된 가면극과

서민층에 의해 육성된 가면극이 있다 전자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예술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데 기가쿠(伎樂)middot

부가쿠(舞樂)middot교도(行道)middot노(能)middot교겐(狂言)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

데 노와 교겐은 특히 산악middot백희와 밀접한 관련 아래 성립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문화인 산악middot백희가 일본에 유입

된 이후 변화middot발전하여 후대에 일본의 대표적 전통연극인 노가쿠(能

樂)middot노쿄겐(能狂言)middot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middot가부키(歌舞伎) 등 전통연

극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산악middot백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 연희를 발전시켜 lsquo나희

(儺戱)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켰고 일본에서는 사루가쿠(猿樂) 즉 산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lsquo노(能)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킨 것처럼 한국에서도

중국 사신 영접 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반인(泮人)들이

lsquo본산대놀이rsquo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Ⅲ 동아시아 가면극의 연희 내용

한국의 가면극은 벽사적 의식무과장 파계승과장 양반과장 영감할미

과장 등 서로 다른 내용의 과장들로 짜여진 소위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

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면극을 탈춤이라고 부를 정도로 춤이 많

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춤사위가 매우 뛰어나다(도판

6) 일본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가구라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짜인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나희와 일본

의 노는 대부분 하나의 가면극이 하나의 서사적 내용으로 짜여 있다

이러한 서사성의 나희와 노도 또한 서로 차이점을 갖고 있는데 노는 lsquo현

재노(現在能)rsquo와 lsquo몽환노(夢幻能)rsquo가 있어 특징적이고 나희는 주로 노래와

대사에 의해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lsquo현재노rsquo는 현재형으로 사건이 전개

되는 노를 말한다 lsquo몽환노rsquo는 나그네(조연자인 와키가 분장)의 꿈 속에

망령이나 화신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몽환노에

서는 시간이 자유롭게 정지하고 역행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도 자유롭게

등장할 수가 있다 주연자는 고전 속의 미녀이거나 역사상 인물일 수도

있고 지옥의 원령이거나 신(神) 불(佛) 귀(鬼) 초목(草木)의 정령이기

도 하다

중국 나희에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 황제 왕 일반인물

등 배역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연희 내용도 의식적인 춤을 제외

하면 대부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를 연극화

하여 공연한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 가면극에서

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이 거의 없고 황제나 왕 같은 존재

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반 인물 위주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연희 내용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주로 현

실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한편 한middot중middot일의 가면 또한 각국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middot중middot일 가

면의 형태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 윗부분에 있다 한국 가면은 얼굴

의 이마 부분까지만 표현하고 있다 일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경우에

도 간단한 선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

을 안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낸다 모자를 쓰는 배역은 별도의 모자를 착

용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의 귀면(鬼面)인 팔먹중가면을 보면 오로

지 안면의 표정에 의해 무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 노나 가

구라의 가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가면은 대부분 머리 부분과

얼굴 부분을 모두 이용해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한다 가면 자체에

머리 부분의 모자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도판 7)

그리고 한middot중middot일의 음악적 선율과 장단이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음악에 맞춰 연기하고 춤을 추는 연희자들의 동작과 춤사위는 각국

가면극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

5 중국 귀주성 덕강현의 무당들이 공연하는 가면극인 〈나당희(儺堂戱)〉

6 춤사위가 매우 뛰어난 〈봉산탈춤〉의 팔먹중춤

7 중국 안휘성 지주의 나희 〈유문룡〉 가면 자체에 모자를 장식

7 5

6

30 31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충남middot서울시 문화재위원)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도판4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양푸시(楊福喜) 201598 필자 촬영

도판5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권영학 보유자 2015821 필자 촬영

도판6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故 김박영 보유자 서헌강 촬영

도판1 활 쏘며 수렵하는 장면 고구려 무용총

도판2 중국 고대 활과 화살 및 활쏘기 장면 전국시대 초(楚) 동호(銅壺)

도판3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일본

Ⅰ 한민족과 활

한국인에게 활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민족과 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중국인이 우리 민족을 부르

는 명칭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이다 lsquo이(夷)rsquo라는 글자는 큰 대(大)자

와 활 궁(弓)자가 결합되어 있다 동이라는 글자를 곧이곧대로 풀어보면

lsquo중국의 동쪽에서 살며 큰[大] 활[弓]을 잘 만들고 쏘는 민족rsquo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 미루어 이미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우

리 한민족이 그들 한족보다 활을 잘 다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반인뿐 아니라 왕도 활을 잘 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적 인물로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lsquo활 잘 쏘는 이rsquo의 대명사로 기

록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쏘았으며

사도세자의 아들로 유명한 정조 또한 활을 잘 쏜 국왕으로 기억된다

조선에서 활쏘기를 잘했던 이유는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심신을 단련

하는 육례(禮 樂 射 脚 書 數) 중 하나로 활쏘기가 장려된 데에도 원

인이 있다 조선에서는 국가 의례로 활쏘기 행사를 거행하였다 왕과

신하가 활 쏘는 대사례(大射禮)는 1477년(성종 8) 1534년(중종 29) 및

1743년(영조 19) 1764년(영조 45)에 군신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였다 한편 지방의 양반 사족들은 향약과 비슷한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양국의 활은

기본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청나라 시대의 그림을 보면 조선 말기 19세기에 활

을 쏘는 그림과 비교가 된다 두 나라의 사수(射手)는 각각 청나라와 조

선의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른 편이다 더욱

이 양자가 활을 쏘는 모습은 공통되면서 부분적으로 다르다 그림 속 중

국의 활은 150cm 정도여서 1m 안팎의 한국 활보다 길이가 긴 점이 다르

다 막상 양자에서 동시에 화살을 쏘면 날아가는 비거리는 후자가 훨씬

긴데 이렇게 그림에서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몇 년 전

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lt최종 병기 활gt이다 시대 배경은 병자호란 당

시 청나라 무사와 조선의 사수가 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영화화한 것

이다 비록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다소 활의 효능이 과장되긴 했지만

두 나라 활의 특징과 조선 활의 장점을 극명하게 잘 그려내어 흥미롭게

본 기억이 새롭다

한편 양국과 비교되는 것이 일본의 활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활은 전

체 길이가 220cm가 넘는 세계 최대 길이의 활이다 16세기 조선의 『난

중잡록』에 의하면 일본의 화살은 lsquo장편전(長編箭)rsquo이라 하여 여러 나라의

화살과 비교해서 일본의 화살이 매우 크다는 기록으로 이미 조선에서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활을 사용하는 일

본에서는 활을 잡는 위치도 특이하다 일본의 활은 장대하기 때문에 위

쪽이 길고 아래는 짧아서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그림을 보면 매우 긴 활

의 아래쪽을 잡고 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활

은 ldquo화살은 길지만 먼 곳까지는 날지 않는다rdquo라고 13세기의 몽고인이

기록하고 있어 비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가마쿠

라 시대에 들어가면 그 중량이 더욱 늘어나 70g에 이르면 길고 무거운

화살을 폭이 긴 활로 쏘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Ⅲ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활과 화살은 조총이나 대포 등과 같은 화기(火器)를 발명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중요했다 이에 각국은 국력을 모아 활과 화살을

제작하였다

이미 고려 때에 중앙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에 각궁장(角弓匠) 전장(箭

匠) 전두장(箭頭匠) 등의 장인을 소속시켜 각궁을 만들었다 또 궁중의

궁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내궁방(內宮房)에도 각궁장(角弓匠)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군기감(軍器監)을 설치 운영하였고 장인들을 소속시켜 활

과 화살을 제작하게 하였다 이들 장인은 다른 기술을 가진 장인과 달리

궁인(弓人)이나 시인(矢人)으로 불렀다 궁인과 시인이라는 명칭은 『논

어』에서 나오며 그들 장인은 다른 물건이 아닌 무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우대하여 부른 것이다 이에 조선은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면

서 궁인 90명 시인 150명을 배정하였다 아울러 이들 장인들은 각 지

방마다 상당수를 배정하였고 이 또한 여타의 다른 장인들에 비하여 많

은 숫자에 해당되었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장색과 규모는 영조대 『속대전』이나 정조대

『대전통편』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국가적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각종 300여 도감마다 수많은 궁인이

나 시인을 징발하여 의례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할 궁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사적인 공방에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김준근의 lt기산풍속화gt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궁창을 앞에 두고

줄과 환으로 일정하게 다듬은 쇠뿔과 뽕나무 등을 옆에 두고 완성된

각궁에 시위를 걸어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있다

청나라 말에 전통 활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lt시궁정력(試弓定力)gt에

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입식 건물 안에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너댓 개

의 활을 만들어 올려놓고 다 만든 활을 과학적으로 무게를 재고 있다

향사례(鄉射禮)를 거행하여 사족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활을 좋아하고 잘 다룬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역

사 동안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다른 종목보다 유달리

활(양궁)을 잘 쏘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한민족의 피 속

에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유전인자 DNA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Ⅱ 유물 속 동아시아의 활

인류는 이른 시기부터 멀리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자 무기로 활과 화살을 개발하였다 이후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

에 따라 궁시를 제작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

하였다 하지만 궁시는 대개 나무나 대나무와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

져 썩어 오래전의 유물을 확인하기 어렵고 단지 흑요석(黑曜石)처럼 단

단한 석제로 만든 화살촉에 의해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정복 전쟁이 빈번해지던 고대부터 무기가 발달하였다 당시에

사용된 활과 화살의 형태는 유물 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전국시대(BC 475~221) 동호(銅壺) 유물

을 보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한편

5세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lt수렵도gt에서 말 위에서 짐승들을

1

32

4

6

5

32 33무형문화재 삼국지ㆍ기능

양국의 활 제작방식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청나라 활 제작 장인 집단

은 북경 동사대가에 있는 궁전대원리(弓箭大院里)에 17가호의 궁전 점포

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squo취원호(聚元號)rsquo이다 이곳에서 중국 전통 활

을 제작했던 장인이 양뤼린(楊瑞林)이며 아들인 양원통(楊文通) 손자인

양푸시(楊福喜)까지 3대가 잇고 있다 양푸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활을 제작하여 2006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

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장인으로 보호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45년 앞선 1971년 9월 13일 전통 활 제작 장인

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으로 지정하였다 서울 황학

정의 장진섭(張鎭燮 1916~1996)은 조부(장문환)와 부친(장기홍)에 이

어 3대째 활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예천의 권영

록(權寧錄 1916~1986)은 부친(권태전 權泰全)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

었다 부천의 김장환(金章換 1909~1984)는 조부(김원재)와 부친(김

동천)의 대를 잇고 한국 제일가는 명사수로서 활동하고 부천 성무정의

초대 사두(1967~1982)가 되었다 그의 기술은 제자인 김박영(金博榮

1929~2011)이 전승하였다 그의 사후 2015년 권영학(1943년생)보유

자가 새로 인정되어 조부(권선복)와 부친(권우갑)의 가업을 이어 그 또

한 3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화살을 만드는 시장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시장)

으로 지정하였다 화살로 유명한 장단에서 나고 자란 유영기(1936년 그런데 세계적으로 강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활은 여기에 화피를 더

하여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물소 뿔(牛角) 쇠심줄(牛芯)

민어 부레풀(魚膠) 대나무 뽕나무(弓幹桑) 참나무 화피(樺皮)가 그것

이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는 각궁은 살

아있는 활이면서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쇠뿔은 통뼈이며 대나

무와 뽕나무 및 참나무가 세부 뼈대이고 그 위에 바르는 쇠심줄은 근

육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부레풀은 연골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다듬는

화피는 피부에 해당된다 이중 물소 뿔과 대나무 및 쇠심줄이 활의 강

도와 탄성을 이루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민

어 부레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은 1년 중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제작하여 계절을 타는 공예품인데 그 이유는 동식물성 재료

들이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아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심이 건

조가 안되고 풀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여름에는 재료를 장만하고 찬바람이 나면 풀을 대와 뼈와 나무를 서로

붙여 정월 경에 건조시키고 3월부터 한 달 이상 해궁 작업을 한다 각

궁은 제작이 까다롭고 단계마다 원칙을 지키고 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

해서 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궁의 핵심 원료인 물소는 주로 아열대 지방인 중국 남부나 인도 및 인

도차이나 등지에 서식하므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여서 중국은 물소 뿔의 수출을 엄격

하게 통제하였고 조선 정부는 그것을 몰래 수입하려고 애썼다 현재

도 각궁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의 수급은 어려움이 많다 물소는 세계적

인 보호동물이어서 물소 뿔을 수입할 때 세관의 통과가 어렵고 쇠심줄

은 근래 많은 소들이 일하면서 근육을 키우지 않고 육우용으로만 키워

져 탄성이 없어 활의 탄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접착제인 민어부

레의 경우 예전에는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근래에는 민어부레가 정

력에 좋다고 그것마저 식용으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한 활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488년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同越)은 ldquo조선에서 사용하는 화피궁은 중

국의 제도에 비하여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rdquo라

고 평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활은 중국 것보다 작으나 탄

성이 크고 강하다 우리의 시장들은 대나무로 화살대[矢幹]를 만들고

쇠로 활촉(雛)을 끼우며 수리깃으로 화살깃(矢羽)을 만든다 반면 중국

의 장인은 죽시와 함께 유목(楡木)으로 목시(木矢)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활은 대나무와 나무를 한데 결합한 복합궁이다 일본의 활

은 2m 이상으로 길고 무거워 탄성이 적어 근거리에는 위력이 높은 대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이면서 한middot중middot일

삼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각궁은 한국 장인들의 솜씨가

표출된 우수한 전통 공예기술로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생)는 조부(유창원)와 부친(유복삼)에 이어 3대를 잇고 그 아들 유세

현과 유승현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단 근처 원당에서 나고 자

란 박호준(1944년생)은 조부(박희원)와 부친(박상준)에 이어 3대째 가

업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김종국(1940년생)은 스승인 조명제(趙命濟

1915~1980)가 조부(조성관)와 부친(조면보)의 대를 이었던 것을 본받

아 예천에서 화살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12월 14일 부천활박물관을 세웠고 파주에는 유영기

보유자가 만든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반면 중국에는 2012년 신강의

이리에 성급(省級) 비물질문화재로 등록된 이청강(李靑岡)이 중화활문화

박물관(中華弓文化博物館)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로 활을 지

정하지 않아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이 전통적(傳統的) 공예품

(工藝品)으로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을 지정하였다 미야기현(宮崎県)에 위치

한 미야코노조(都城市)에 7대째 120년 전통의 활을 제작하는 활제작소

[楠見藏吉 弓製作所]가 위치하고 있다

Ⅳ 활과 화살의 재료

활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의 『고공기』에 의하면 나무[干 柘 橘 桑 木

瓜 竹 荊 등] 심줄[筋] 풀[膠 말 소 사슴 물소] 뿔[쇠뿔] 옻[漆]

명주실[絲]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은 뿔을 주재료로

삼은 각궁(角弓)인 것을 알 수 있다

도판10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故

김박영 보유자 제작 각궁(角弓)

도판11 중국 양푸시(楊福喜)가 제작한 활

1m 60cm

도판12 중국 양푸시(楊福喜) 화살[箭]

위 2개 느릅나무[楡木] 3번째

목전(木矢) 아래 2개 죽시(竹矢)

201598 필자 촬영

도판13 일본 미야기현(宮崎県)

미야코노조(都城市) 120년 전통

楠見藏吉 弓製作所

httpjotaro-gocomcollect2980

도판14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

지정(指定) 전통적(傳統的)

공예품(工藝品)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

httpjotaro-gocomcollect2980 참고

도판7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종국(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9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박호준(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7 8 9

11 10

12

13 14

34 35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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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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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1213

14

1516

1718

1920

21

2223

2425

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4: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을 작품을 원했고 그 작품을 한국의 전통공예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

정된 기능보유자와의 협업을 통해서 완성하고 싶어 했다

문제는 전 과정을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최고의 명품 시계를 담을 함의 철

학적 개념을 정하는 일이었다 재론의 여지 없이 전통적 사유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공간을 담을 수 있어야 하고 문화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사

회middot정치적으로나 비교가 불가능한 상징을 내포한 무엇이어야만 했다 또

한 시각적으로 부드러우면서도 도도한 질감과 한 시대의 문화를 대표하

는 배색 조화 그리고 완벽한 입체감과 비율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도저한 토론과 고민 끝에 조선시대 어보(御寶)를 보관하는 보록

(寶錄)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보록은 유일성 권위 자부

심 충성심 고결함 강인함 등의 형체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그 정도

라면 어디에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을 한 시대 정신문화의 총체적 결정체

로서 자랑할 만한 작품이 나올 것 같았다

이후의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의 보록(寶錄)을 조사하고 기본 디자인과 설계를 진행하였으며 백골 제

작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기능보유자 박명배 명인이 장석

제작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 기능보유자 박문열 명인이 그

리고 옻칠에는 서울시무형문화재 제1호 칠장 기능보유자 손대현 명인이

동참을 결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목가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좋은 목재가 있어야 한다 최소한 300

년에서 500년은 족히 지나야 목재로서 가치가 있으며 수령이 적합한 목

재를 찾았다고 해도 나무를 켜보지 않으면 장담할 수 없다 아름다운 목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 본연의 아름다운 무늬가 살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나무를 구했다고 해도 원목 상태로 2년 나무껍질을 켜서 실외에서

3년 다시 실내에서 2년을 숙성시켜야 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 이완과 수축

을 반복하며 숙성시켜야만 가구로 제작했을 때 뒤틀림이나 갈라지는 현상

을 방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7년의 숙성은 고사하고 자재로 사용할 나무

도 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프로젝트의 기간은 1년 남짓에 불과했다

좋은 목수는 좋은 자재를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로 결정되곤 한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나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런 의미에서 박명배 명인은 최고의 목수였다

본인이 힘겹게 수집해 놓은 자재 중에서 애지중지하는 최고의 자재를 내

놓았다 바로 500년된 고사목을 7년 이상 숙성시킨 느티나무였다 흔히

시골에 가면 마을 어귀에 장승처럼 서서 수호목 구실을 하는 당산나무를

볼 수 있는데 이 당산나무의 대부분이 느티나무이다

느티나무는 무늬가 아름답기로 이름이 높은데 황갈색 목재 위에 물결처

럼 어룽진 나이테의 곡선이 무척이나 우아하다 이는 물을 운반하는 물

관의 배열이 독특하기 때문인데 오래된 나무일수록 비늘 구슬 모란꽃

등 다양한 무늬가 나타나고 광택도 아름답다 거기에 견고함까지 갖추고

있는데 마찰과 충격은 물론 습기와 충해에도 강해 좀처럼 썩거나 벌레 먹

지 않는 나무이다 박명배 명인은 이 느티나무의 천연의 무늬를 살리고

전통 제작 기법인 짜임기법과 직접 만든 아교를 사용해서 백골(白骨)을 제

작했다

목가구 제작에 없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 두석장의 역할이다 가구의 결

합 부분을 보강하거나 이음새를 연결하고 열고 닫을 수 있는 자물쇠 등의

금속 장식을 장석(裝錫)이라고 하는데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황동(놋쇠)

장석을 만드는 사람을 두석장이라고 한다 두석은 단순히 기능적인 역할

에 제한되지 않고 자체로 탁월한 예술작품으로써의 완결미를 보여주며

다양한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박문열 명인은 함에 사용되는 장석에 길상(吉祥)의 의미를 담은 전통문양

을 정을 망치로 쳐서 문양을 새기는 조이질 기법으로 제작하였다 이 기

법은 장석 제작기법의 일반적인 표현기법으로 입체감까지 표현할 수 있어

사군자 연꽃 십장생 박쥐 구름 등을 새길 때 많이 사용되는 기법이기

도 하다

마지막 과정으로 손대현 명인은 옻나무의 수액을 직접 채취하여 정제과

정을 거쳐 불순물을 제거하여 입자가 고운 칠을 만들었다 백골의 표면을

다듬은 후 생칠을 바르고 갈고 바르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고 다시 초

1 두석장 박문열의 경첩 제작 장면

2 소목장 박명배의 주먹장 짜임 과정

3 칠장 손대현의 함 내부에 들어가는 주칠 장면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열린 바쉐론 콘스탄틴 260주년 기념 전시회 입구 바쉐론 콘스탄틴 아티스틱 디렉터 Christian Selmoni

1

2

3

칠에 중칠을 하여 건조한 다음 다시 상칠을 한 후 광내기와 생칠을 반복하

여 마감한다 이러한 과정을 30회 이상 실시하여 투명하고 얇게 옻칠을

완성했다

2014년 5월에 시작한 협업이 2015년 8월에 긴 여정을 마쳤다 1년 5개

월의 시간 동안 그렸다가 지워버린 숱한 디자인 안과 설계도면 보유자들

과 함께 고민하며 때로 서로를 힘들게 했던 수백 시간의 기억들 많은 시

간을 자신의 공방에서 어보함과 고통스럽게 대면했을 예술가들의 침묵의

시간이 지났다 바쉐론 콘스탄틴이라는 브랜드의 무거움과 그간의 세계

적인 협업 기관과의 실적은 감내하기 어려운 압박이었다

그리고 한국가구박물관에서 협업 작품이 공개되는 순간 그 간의 시간은

박수와 환호로 치환되었다 세계 최고의 시계 장인들과 세계 최고의 공예

장인들은 문화사회적으로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단 한 번

의 교류도 없이 자신만의 영역을 천착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결과

물들은 함께 놓여 지는 순간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

3인의 기능보유자가 제작한 조선시대 어보함 보록은 이제 스위스에서 조

선 왕실의 기품을 오롯이 전달할 것이다 1년 5개월의 시간 동안 그들은

하나의 작품을 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형체를 만든 것이다

이 문화적 행위는 수 세기를 건너뛰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상징으로

기능할 것이다

6 7

글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기획조정실 홍보팀

세계유산 따라 떠나는 여행

ldquo여러분 영화 lsquo역린rsquo 보셨나요 그 영화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십니까rdquo

ldquo이산rdquo

ldquo정조임금rdquo

ldquo맞아요 이곳 수원 화성은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이장하

면서 함께 건축했습니다 오전에 보았던 창덕궁도 정조 임금과 관련된

곳이라는 것 잊지 않으셨죠rdquo

영화라는 친근한 소재를 곁들인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에 참가자들의

눈에는 어려운 기색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사에 대해서 어렵고

딱딱하게 느낄 법도 한데 실제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를 보며

친근한 설명까지 들으니 다들 집중한 표정으로 열심히 답사 코스를 따라

다닌다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세계유산과 그

주변의 다양한 유 무형유산을 연계하여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당일 또는 1박 2일

일정으로 매월 운영되고 있다

8 9한국문화재재단 소식 2

궁 약 한 시간여를 달린 버스는 먼저 행궁 앞에 참가자들을 내려줬다

창덕궁과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은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행궁을 찬찬

히 둘러보았다 행궁의 뒷벽에는 lsquo정조대왕화성능행반차도rsquo1)가 전시

되어 있어 참가자들은 정조의 능행의 이유와 수원 화성과 행궁의 건

립 목적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하는 표정이었다

행궁 답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십여 분 정도 이동해 프

로그램의 마지막 목적지인 수원 화성 장안문 앞에 내렸다 잘 쌓아올려

진 수원 성곽을 전부 다 돌아볼 수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시간의 제약

때문에 참가자들은 장안문과 화홍문 방화수류정 등의 장소를 돌며 아

쉬움을 달래야 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방화수류정에서 내려다보

이는 아름다운 풍광에 참가자들은 저마다 신난 얼굴로 열심히 기념사진

을 촬영했다

오전 9시 30분에 시작된 프로그램은 저녁 7시가 넘어 아침에 출발한

장소인 은평구 다문화지원센터에 도착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하

루 종일 진행된 프로그램에 참가자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래도 한국의 역사와 세계유산에 대해 배워간다는 생각에 뿌듯한 표정

이었다

2015년 세계유산 연계체험은 10월에 4회 11월에 3회로 앞으로 총

7회가 더 남아있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문화의집KOUS 세계

유산 연계체험을 통해 우리의 세계유산을 접했으면 한다

를 통해 모집된 31명의 다문화가족이다 이들은 김숙희 문화유산해

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하루 동안 창덕궁과 화성 일대를 돌아보는 체험

을 했다 무더운 날씨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답사에 지칠 법도 하건

만 참가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쉽고 친절한 설명에 외국인 엄마들과

아이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끊임없이 반짝거렸다 모두들 아름다운 궁

궐과 화성의 모습에 궁금한 것이 많은 듯 열심히 전각들을 구경하고

질문하며 기념사진을 찍는 등 이번 체험을 100 즐기는 모습이었다

취재를 위해 따라간 필자 역시 기존에 알던 장소들이지만 lsquo조선의 정

궁과 행궁rsquo이라는 주제에 맞춰 설명을 들으니 그 장소들이 달리 보여

새로웠다

프로그램은 크게 오전과 오후 일정으로 나뉘어졌다 오전 9시 30분에

은평구 다문화지원센터에 집결한 참가자들은 버스를 타고 첫 답사장

소인 창덕궁으로 이동했다 참가자들은 문화유산해설사의 안내에 따

라 궐내각사를 시작으로 창덕궁 인정전 희정당 대조전 낙선재 등을

두루 둘러보았다 각 전각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정조임금과 관련된

이야기까지 곁들인 해설에 참가자들은 지루한 기색 없이 해설사의 설

명을 경청했다 특히 어린 참가자들은 대부분 아직 유치원생임에도 불

구하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며 큰 관심을 보였다

오전 창덕궁 일정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근처 맛집으로 이동해 설렁탕

으로 보신을 한 후 다시 버스에 올랐다 오후 목적지는 수원 화성과 행

1 창덕궁 세계유산 지정 표지석

2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에서 내려다본 전경

3 수원 화성 성곽

4 김숙희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참가자들

2015년 세계유산 연계체험 잔여 일정표

1) 조선 22대 왕 정조가 어머니 경의왕후(敬懿王后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하여 아

버지 장헌세자(莊獻世子사도세자)가 묻힌 화성 현륭원(顯隆園)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정조대왕화성행행반차도(正祖大王華城幸行班次圖) 또는 화성행차도

(華城行次圖)라고도 한다 경의왕후의 환갑잔치 내용을 치밀하게 기록한 원행을묘정리

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김홍도의 책임 아래 최득현 김득신 이인문 장한종 허식

등의 자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들이 제작한 목판화가 남아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정조반차도 [正祖斑次圖] (두산백과)

회차 일자 지역 주제 주요 관람지 참가대상

10 102(금)수원

화성

정조대왕의 업적과

발자취 수원 화성 건릉

서대문구

다문화센터

11 1016(금)서울

수원

역사를 통해 배우는

孝사상종묘 수원 화성

강북구

다문화센터

121119(목)

~20(금)

창녕

고성

우리나라의

자연유산 탐방

우포늪

공룡화석지

관악구

다문화센터

131126(목)

~27(금)

익산

전주

백제 역사 문화유산

탐방

왕궁리 미륵사지

입점리고분

답사

우수 고객

141022(목)

~23(금)

공주

부여

백제문화의 제2

중흥기를 찾아서

낙화암 궁남지

공주middot부여역사

유적지구

미정

15 1030(금)서울

여주

조선의 정궁과 왕의

사후 안식처경복궁 영릉 미정

16 116(금)서울

광주(경기)조선의 궁궐과 산성 창경궁 남한산성 미정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운영하는 세계유산 연계체험은 우리나라 세

계유산을 주변의 다양한 유 무형유산과 함께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다 매월 1~2회 하루 또는 1박 2일 코스로 한 가지 주제를 정해 그와

관련된 세계유산을 문화유산해설사의 친절한 해설을 들으며 답사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참가 대상은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유학생

들이나 결혼이주 여성 등의 외국인들과 다문화가정 가족들 소외계층

이다 우리 역사와 세계유산에 대해 다소 생소하게 느낄 수 있는 이들

에게 해설을 곁들인 체험을 통해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해 알리고 있는

공익적 목적의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주 답사 장소는 궁궐 왕릉 사

찰 민속마을 박물관 등 전국에 있는 세계유산 및 세계유산 잠정목록

에 올라있는 문화유산들과 그와 연계된 체험 장소들이다 서울 경기

충청 등 수도권에서 가까운 지역의 경우 당일 일정으로 운영되며 전

라도 경상도의 경우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운영된다 2015년 올해

는 4월 17일부터 11월 27일까지 약 7개월간 15회의 체험 프로그램

이 운영되는데 서울middot경기 7회 충청도 2회 전라도 2회 경상도 4회

로 구성되어 있다 참가 신청은 국내 대학교 어학당 서울시 각 구청

다문화가족센터 등을 통해 접수 받아 단체로 신청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4일 금요일에는 lsquo조선의 정궁과 행궁rsquo이라는 주제 특히 정

조 임금과 관련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서울의 창덕궁과 수원 화성

답사가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의 참가자들은 은평구 다문화지원센터

1

2

3 4

1110

12

한국의집 조리팀장 김도섭

사진

그라피스튜디오

한국의집

가을을 맛보다

뜨거웠던 열기가 식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다

뜨거운 여름을 견디며

건강하게 키운 한 해의

결실을 맺는 가을 식탁은

그만큼 풍성하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가을

가을을 대표하는

건강식재료로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의 영양을

회복해보는 것은 어떨까

1312 한국문화재재단 소식 3

전통 한식을 대표하는 한국의집 김도섭 조리팀장은 조선왕조 궁중음식 전수 장학생이자 한식조리기능장으로서 전통음식의

발전을 위한 레시피 표준화 궁중음식홍보사업 등을 통하여 국내외 전통음식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그는 한국의집뿐만 아니라 문화교류사업의 일환으로 해외 행사에서 요리를 하기도 했다 뭄바이 인도상공회의소 주관 한국의

밤(rsquo13) 태국관광박람회(rsquo12) UAE-한 수교30주년만찬amp리셉션(rsquo10) 등에서 요리를 선보이며 한식 전도사로서의 역할 또한 하고

있다 또한 문화재청장 표창(rsquo08)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표창(rsquo15)을 받은 바 있다

문의 02-2266-9101 wwwkhorkr

조리팀장

김도섭

가온정식 1인기준 35000원 삼색밀쌈과 해물잣즙채 고구마middot알밤죽과 물김치 새우찜과 생절이 버섯불고기와 부추절임 꽃게감정 진지 기본찬 후식

4인기준 조리

가을 낙지골동반 1인기준 25000원 삼색밀쌈과 해물잣즙채 계절죽 전유화와 생절이 낙지골동반 국 무화과 후식

제철 꽃게 대하 고구마로 건강을 담아낸 lsquo가온정식rsquo

lsquo가온정식rsquo은 가을이 제철인 꽃게 대하 고구마 밤을 중심으로 고구

마middot알밤죽과 새우찜middot생절이 꽃게감정으로 구성한 메뉴이다 특히

꽃게감정은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음식으로 고급스럽고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번거로워서 사위를 맞이할 때

나 한 번 만드는 귀한 음식이다 꽃게감정은 제철을 맞은 가을 수게의

살을 곱게 발라내어 소고기와 갖은 야채로 소를 만들어 게딱지에 채워

놓고 국물을 자박자박하게 끓여 만들어 낸 찌개인데 제철 꽃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미와 담백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제철 게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이 많아서 소화가 잘되고

원기회복에 좋다 이 밖에도 키토산이 풍부한 대하 식이섬유소가 풍부

한 고구마 5대 영양소와 비타민C가 풍부한 밤으로 만든 요리는 입맛

을 돌게 하고 원기회복에 도움이 된다

쓰러진 소도 살린다는 가을철 원기회복의 대명사 lsquo가을 낙지골동반rsquo

골동반은 임금님부터 백성까지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한국의집은 가을을 맞이하여 기존 골동반 메뉴에 영양이 풍부한 낙지까

지 맛볼 수 있는 lsquo낙지골동반rsquo을 선보인다

낙지골동반은 오색나물과 살이 충분히 오른 가을 낙지를 올려 시각적 아

름다움과 맛과 영양까지 모두 챙기는 일품메뉴이다 특히 lsquo봄조개 가을

낙지rsquo란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가을 낙지의 맛은 높이 평가된다 또한 낙

지는 피로에 좋은 아미노산과 타우린이 풍부해 인삼 한 근과 비견할 정

도로 몸에 좋은 음식이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철 제철재료로 만든 요리는 그 어느 계절 음식보다 맛

이 좋고 몸에도 좋다 제철을 맞은 엄선된 재료로 만든 한국의집 가을 신메

뉴와 함께라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14 15

1927 2015

宇峰우봉 이매방

춤 한자락에 담긴 삶

한국 춤의 거목 우봉 이매방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lt승무(僧舞)gt 및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lt살풀이춤gt 예능보유자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2가지 종목의

무형문화재를 보유했다

그의 춤과 삶의 흔적을 담아보았다

Master Ubong Lee Mae Bang Korearsquos traditional dance virtuoso passed away on August 7 2015 He was 88 years of age Ubong was one of the key figures in

the modern and contemporary days of Korea Ubong the one who often lauded as a ldquodancer sent from the Heavenrdquo was a master of Seungmu (a form of dance

traditionally performed by Buddhist monks) and Salpuri (a form of dance traditionally performed by Korean shamans to banish evil spirits) designated

as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No 27 and 97 respectively Born in Mokpo Jeollanam-do on May 5 1927 he was discovered and trained by

Han Guk Hyang the headmaster of a Gwonbeon (a form of traditional dance academy in Korea) in Mokpo at the age of 7 This was followed by 8 years of

dance and drum performance training as an apprentice of Master Lee Dae Jo who taught Seungmu Geommu (sword dance) and Gobeop (traditional drum

technique) at the Gwonbeon Throughout his life devoted to dance he garnered great fame as the holder of two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and

trained numerous traditional dancers Ubong Lee Mae Bang passed on to us the quintessence of Korean traditional dance expressed through his moves that

made him a dancer of a historic significance for whom there will be no equal in this millennium not to mention in this century사진제공 한국문화재재단

1716 기획특집1

살풀이춤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해 공연 때 착용했던 살풀이춤 의상이다 무동옷과 쾌자는 다른 색으로 바꿔입기도 하며

이매방 살풀이춤을 대표하는 의상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사진액자 121940~50년대 이매방이 승무 바라춤

추는 모습을 찍은 사진의 배경을

없애고 보유자만 오려 붙여 만든

액자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약력

1927년 전남 목포 출생

1934년 목포 북교 입학

1935~39년 만주 다렌 거주 이대조에게 승무 북춤 박영구에게 승무 법고 이창조에게 검무 사사

1943년 목포 공립공업학교 졸업

1948년 명창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서 lsquo승무rsquo로 첫 무대

1953년 제1회 개인발표회(광주)

1956년 제3회 개인발표회(부산)

1959년 제5회 개인발표회(서울 원각사)

1984년 무용 인생 50년 특별공연 lsquo북소리rsquo

1987년 승무 예능보유자 지정

1990년 살풀이춤 예능보유자 지정

1993년 인간문화재진흥회 부회장

1996년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수

1999년 우봉 이매방 춤 인생 65주년 기념 대공연

2004년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춤 인생 70년 기념공연

2005년 lsquo우봉 이매방 춤 전수관 개관 기념공연rsquo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 대공연장)

2006년 lsquo무용 무대예술 80년사 아름 보듬어맺고 풀고helliprsquo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07년 lsquo화성 춤 페스티벌rsquo (수원대학교 베칸토 아트센터)

2008년 서울시 무용단 정기공연 lsquo하얀사 고이접어rsquo (세종문화회관 세종 M씨어터)

2009년 lsquo그가 무대에 서면 역사가 된다 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춤 대공연rsquo (영등포 아트홀)

2010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2011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호암아트홀)

2012년 명작 명무전 (LG 아트센터)

2014년 lsquo우리는 그를 巨木이라 부른다 우봉 이매방 전통춤 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승무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한 승무 복식으로 공연 때 착용했다 흰 장삼에는 옥색 바지 저고리를 입고

흑 장삼에는 흰색 바지 저고리를 입는다 흰 장삼의 승무 의상을 기증했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wwwk-heritagetv에서

승무와 살풀이 동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수상 내역

2015년 은관문화훈장

2011년 제12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공로상

2004년 임방울 국악상middot세종국악대상

1998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1995년 성옥문화상

1984년 옥관문화훈장

1976년 부산시 눌원문화상

우봉 이매방

한국 전통 춤의

정수 승무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18 19

글 사진

이병옥 (용인대학교 명예교수)

宇峰우봉

이매방 선생의 춤 일생

춤 성향을 가늠하는 입문과정과 열정

첫째는 이매방이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세(1934년)가 되던 해 옆집에 세

들어 살던 조도 출신 목포 권번의 권번장 함국향(咸菊香)씨는 그가 춤추기

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춤 학습을 권유하여 남자이지만 여성적인 고운 춤

사위 성향인 기방춤의 기틀을 마련한 점이다

둘째 이매방의 할아버지이면서 스승이었던 이대조 명인은 목포 권번(卷

番)에서 승무와 북놀이 검무 그리고 고법(鼓法)을 가르쳤던 권번 선생으

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점이다

셋째 중국 대련 정포소학교(1935~1939)를 다니면서 그는 매란방 배구

자 등을 만나 춤에 색다른 영향을 받은 점이다 대련에서 운수회사를 운영

하던 큰 형님을 따라 약 5년간을 살게 되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신무용의

대가인 배구자의 무용공연에도 출연하였고 또 북경에 있던 큰 누나의 연

결로 매란방의 공연을 접하고 이국적인 향취에 매료되어 그에게 lt장검무

gt lt등불춤gt lt꿩털춤gt 등을 배운다 6middot25 이후에는 본명 lsquo이규태rsquo를 버

리고 lsquo매방(梅芳)rsquo이라는 예명을 lsquo매란방rsquo의 약자를 딸 정도로 그의 예술혼이

깃든 것이었다 그러다가 대련정포소학교 5학년 때(1939년) 고향 목포북

교소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통춤에 정진하게 되었다

넷째는 주말마다 광주 권번에 다니면서 권번 선생이었던 박영구로부터

승무와 북놀이를 배우고 이창조(장성출신) 선생에게는 검무를 학습한 점

이다 이처럼 목포 권번과 광주 권번을 오가며 박영구 이창조 그리고

이대조 선생에게서 승무 승무북놀이 검무 입춤 살풀이춤 장고춤

태평무 한량무 보렴승무 흥춤 장검무 장고기법들을 배웠다

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공연은 1942년(16세) 목포역전에

서 임방울이 주관하는 명인명창대회였다 이때 승무를 출 박봉선이 사정이

생기자 함국향이 이매방을 임방울에게 소개하여 김연수의 장삼을 빌려 입

고 무대에 나섰다 이때 이매방은 승무를 추어 관객의 열렬한 호응으로 자

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또 예술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해방 후로는 1948

년 임춘앵의 여성국극단에서 삼고무를 가르쳤고 그해 목포 역전에서 다시

임방울이 이끄는 명인명창발표회에 당당히 승무로 출연하게 되었다

방랑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춤 정립(대구 군산 부산 광주 서울)

1950년 6middot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북한군의 뒤를 따라 예술동맹 공연

단들이 목포에 내려와 인민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당시 최승희의 딸 안성희는 lt장검무gt 전황(본명 전두황)은 lt처녀총각gt 등

을 추었으며 이어 이매방을 강제로 무용동맹에 가입시켜 무용활동을 시켰

다 수복 후 국군이 들어와 무용동맹에 강제로 가입했던 것 때문에 곤욕을

치렀으나 가까스로 해명하고 국군 군예대(KAS 종군연예인공연단)에 가

입하여 1951년 대구에 본부를 두어 활동하면서 지방순회공연을 다녔다

또 광주에서 전라남도 경찰국 선무공작단을 맡아 단장으로 호남 일대를 돌

며 순회공연을 하던 중 잠시 군산으로 옮겨 군산시 영화동에다 이매방무

1 1950년대 삼고무 초기 모습

2 1978년 이매방 승무

3 1938년 정포소학교 고개 숙인 이가 이매방 우측 앞

3

2

1

한국 전통춤의 대부 우봉(宇峰)

이매방 선생님이 2015년 8월 7일

8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우봉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로 lsquo하늘이 내린

춤꾼rsquo으로 칭송되는 근현대

전통춤계의 중심인물이었다

1927년 5월 5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7세 되던 해에 목포

권번(券番)의 권번장 함국향의 눈에

들어 춤 학습을 받았다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검무 그리고

고법을 가르쳤던 이대조(李大組)

명인으로부터 춤과 북놀이 사습을

8년 동안 받은 후 평생 외길

춤인생을 걸으면서 두 종목의

인간문화재로 그 명성과 수많은

이수자를 배출하였다

우봉 이매방의 춤사위는 lsquo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rsquo라는 표현을

넘어 lsquo밀레니엄에 한 번 날까rsquo하는

역사적인 존재라고 할 만큼 전통춤의

진수를 전승시킨 인물이다

그러면 우봉 이매방이 어떤 계기와

학습과정으로 전통춤의 대부가 될 수

있으며 어떤 춤 일생을 살아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20 21기획특집 2

용연구소를 개설하여 2 3년간 활동을 하였다

그 후 1953년 부산으로 내려가 장홍심이 운영하는 영도에서 함께 연구소를

했으며 부산 제자로는 김진홍 성승민 이도근 등이 있었다 1954년 광주

로 옮겨 국악원을 개설하여 한순서를 조교로 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무용

발표회(1955년 광주극장)를 가졌다 한편 서울에서는 여성창극단 삼성여

성국악단(박옥진 박보아 조양금 3인) 등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다시 1955

년 부산으로 내려가 초량동에 자리 잡고 첫 발표회를 대영극장(1957년)에서

하였다 그리고 서울에서도 1959년 원각사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당시의 이매방의 춤 활동은 전국적으로 목포 대구 부산 광주 서울이

었지만 주 근거지는 사실상 부산무용가협회 정회원이었으며 1957년과

1958년에 부산공연을 올리며 1960년대 말까지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

1960년대는 많은 무대를 누비면서 점차 춤 레퍼토리를 확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이매방은 삼고무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창작하였으

며 그 후 5고무 7고무 그리고 9고무와 11고무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lt초립동gt lt화랑무gt lt검무gt lt장검무gt lt박쥐춤gt lt흥춤gt lt무당춤gt lt장고

춤gt lt학춤gt 등을 정립하였고 늘 추어온 lt승무gt lt입춤gt lt검무gt 등과 함

께 추었다 이매방 승무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연구소를 서울로 옮겨

오늘날까지 서울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매방은 lt보렴승무

gt lt삼현승무gt lt살풀이춤gt lt검무gt lt입춤gt lt한량무gt lt태평무gt lt흥

춤gt lt장검무gt 그리고 lt장고춤gt 등도 lt승무gt와 함께 끊임없이 연마하여 왔

다 그러한 이매방의 춤예술 정립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예능적 기술이 뛰

어났기 때문이었다

승무 살풀이춤 인간문화재와 국무(國舞)로 추앙

이매방이 서울무용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중앙대 교수이

며 문화재 위원이었던 정병호에 의해 1977년 7월 30일 서울 YMCA에

서 열린 한국전통무용발표회에서 승무를 발표하면서였다 아울러 그때

까지 한성준류의 한영숙 승무에 매료되었던 이들에게 새로운 유파의 승

무가 있음을 신문지상을 통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무대에서의 성공

은 이듬해 1978년 3월 세계민속예술제 한국대표로 프랑스 렌느시에 참

가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이매방 춤판의 최고 결정판은 lt북소리gt 시리즈였다 1984년 6월 이매

방 무용인생 50주년 기념공연 lt북소리gt(문예회관 대극장) 1985년 6월

이매방 전통무용 lt북소리 Ⅱgt 1990년 rsquo90 북경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

전 참가와 lt북소리Ⅲgt(호암아트홀) 그리고 1994년에 춤인생 60년을 정

리하는 lt북소리 Ⅳgt였다 또한 전통예술의 보급과 선양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결과로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1984)과 성옥문화상 문예부문 대상

(1995)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병호 문화재위원의 끈질긴 노력으로 1987년 7월 1일 이매방은 중요무

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명실상부한 명무의 대열

에 서게 되었다

이어 1990년 10월 10일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도 인정받아 전

통춤의 최고 명인으로 추앙받게 되었으며 수많은 한국무용가들이 이매

방류 춤을 전수받기 위해 구름같이 모이게 되었다 그 후 1996년 인생70

고희기념공연 1997년과 98년 일본공연과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2007년 lsquo우봉이매방팔순기념공연rsquo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으며

매년 제자들과 함께 정기공연을 하였다 전통춤경연대회 및 300여 명에

이르는 승무와 살풀이춤 이수자들과 제자들의 공연에도 찬조출연과 반주

를 직접 해주는 열정을 최근까지 지속하였다

이매방 춤의 무용예술적 가치

이매방의 춤에서는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호남제 시나위 춤사위로 짜여져 있

다 춤기법의 중심은 대삼소삼(大杉小杉) 비정비팔(比丁比八) 양우선(兩雨線)

비디듬 좌우걸이 완자걸이 잉어걸이 지숫기 등으로 곱고 아름다운 사위와

자태를 자아내고 한을 신명으로 풀어내는 정중동의 몸놀림이 배어 나온다

결국 이매방 춤은 호남 지방의 권번에서 추어왔던 춤사위 기법이지만 많

은 세월이 지나면서 스승들의 춤을 뛰어넘어 아무도 넘겨볼 수 없는 국무

(國舞)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이매방의 일생을 통해 그가 가진 춤의 예

술적 가치를 요약하면

첫째는 남자이면서도 여성보다도 더 곱고 섬세한 기방계통의 lsquo춤바디rsquo와

여성적 lsquo춤속rsquo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호남지역의 명무들로부터 뼈대 있는 전통춤을 다양하게 전수받아

호남춤의 정통성을 확립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과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춤의 천재이기 때문이다

넷째 현대교육개념으로 볼 때 어린 나이부터 춤의 조기영재교육을 받았

기 때문이다

다섯째 세계적인 경극과 춤의 명인 매란방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예술혼

을 불태우고 인생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80평생 춤추는 것 외에는 남자로서 어떤 직함도 직책도 직업도

가진 바 없이 오로지 춤만 추어온 외길 인생이기 때문이다 춤이 곧 이매

방의 삶이며 생명이며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일곱째 호남지역춤과 기방계통춤이라는 lsquo국지성rsquo에서 출발하였지만 경향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범한국적 전통춤의 lsquo국가성rsquo으로 거듭났으며 국제무

대에도 우리 전통춤의 lsquo세계성rsquo을 알리고 확인하는 독창성과 보편성을 지니

고 있었다는 점 등이 이매방 춤이 가지는 예술적 의의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매방은 1927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민족 수난 속에서도 춤을 배

웠고 해방과 6middot25전쟁 통에서도 오로지 춤만을 추었고 외래문명의 홍

수와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꿋꿋이 춤만 추어 한국 전통춤의 위상을 높였

고 세계 속에 한국춤의 지평을 열어 대한민국 시대의 전통춤 패러다임을

구축하였기에 국무적 존재로 인정받아 온 것이다

1970 2004 2008 2012

22 23

양종승 (우봉이매방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middot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하늘이 내린 춤꾼 宇峰 이매방 선생님을 追惜하며

춤을 위해 태어나 평생 동안 춤만을 사유하였던 우봉(宇峰) 이매방(李梅

芳) 선생님께서 2015년 8월 7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승천하셨다 선생

님은 1927년 5월 5일(음력 3월 7일) 새벽 동이 틀 무렵 목포에서 이경

율과 조병림 사이의 10형제 중 막내둥이로 태어났다 5남매는 일찍이

죽고 남은 3남 2녀 중 막내로 성장하였다 선생님 아명은 집안 돌림자에

따라 영길(永吉)이었지만 스님께서 귀한 아들이라고 하여 귀태(貴泰)로

개명해 주었다 오기된 호적에는 규태(圭泰)로 되어 있다 매방(梅芳)이

라는 이름은 중국 경극의 명인 매란방(梅蘭芳)의 첫 자와 끝자리를 따 예

명으로 불리었는데 1986년 호적을 개명하여 본명이 되었다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춤에 소질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서 성장하였다 결국 옆집 살던 권번장 함국향 권유로 목포 권번에 들어가

당대 소리 북 춤 등에 대가들이었던 이대조 이창조 박영구 진석산 등

에게 승무 검무 살풀이춤 등 전통춤을 학습하였다 선생님의 무용활동

은 목포 공립 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 승무로 출연

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이후 1953년 광주에서 첫 개인발표회를 시

작으로 무용인생 50주년 65주년 70주년을 비롯한 수많은 국내외 공연

을 펼쳤다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1990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가 되었다 그리

고 2014년 승무 및 살풀이춤 명예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한국무용협회 고

문 한국국악협회 고문 한국전통춤협회 고문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

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국무 우봉이매방 화보집』을 발간하였다

이매방 선생님 장례식은 2015년 8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서울삼

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문화예술인 葬]으로 치러졌다 목포문화예술회

관 내에 있는 이매방춤전수관에도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우봉이매방장

례위원회가 구성되어 공동장례위원장을 김종규 한국문화유산신탁 이사

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이경동 한국문화원연합회 회장 김복

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하철경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 김

덕수 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이사장 김진홍 부산시 무형문화재 동

래한량무 보유자 김정녀 중요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전수조교 채상묵

한국전통춤협회 이사장 국수호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등 10명이 맡

았다 장례집행위원장을 양종승 우봉이매방춤보존회 수석부회장 장

례집행부위원장에 김덕숙 김효분 박종필 오은명 최창덕 황순임

등 우봉이매방춤보존회 부회장 6명이 맡았다 장례위원은 김묘선 오

미자 박소림 이길주 송재섭 정영례 최희진 한혜경 김리혜 김은

희 한명옥 진유림 채향순 강성민 백경우 김정기 등 제자 215명이

맡았으며 목포분향소 공동장례위원장은 임점호 목포신안예총회장과 박

수경 목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맡았다 장례의전은 국가공인장례지

도사 유재철 황근식이 진행하였다 유족으로 미망인 김명자(전통무용

가 승무 및 살풀이춤 전수조교) 딸 이현주(전통무용가 승무 및 살풀

이춤 이수자) 사위 이혁열(연극인) 등이 있다

추모식 전경선생님 영전에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을 추서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

부 장관은 일평생 우리 춤 전승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며 문화

융성과 전통예술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공적을 기렸다 또한 이매방 선

생님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깊은 애

도와 함께 목포가 낳은 문화예술계의 큰 별이셨던 선생님은 우리나라 전

통예술의 표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외에 박민권 문화체육관광부 제1

차관 나선화 문화재청장 김해숙 국립국악원장 서도식 한국문화재재

단 이사장 이문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 등 정치계 문화예술

계 등 각계 인사들과 수많은 무용 가족들이 조문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추모식은 2015년 8월 9일 일요일 오후 7시부터 9

시까지 2시간 동안 삼성서울병원 영결식장에서 유가족 지인 각계인

사 제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덕택 운현궁 예술감독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민의례 고인에 대한 묵념 양종승 장례집행위원장의 고

인 약력보고 공동장례위원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공동

장례위원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이사장 공동장례위원장 김복희 한국

무용협회 이사장 등의 조사 제자를 대표한 채상묵 공동장례위원장의

추도사가 있었다 동영상으로 고인의 생전 활동과 육성을 보고 들은 후

유가족을 비롯한 지인 문화예술계의 인사 제자 등의 헌화 및 분향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안숙선 명창의 이별가와 김영임 명창의 회심곡 중

저승 가는 길이 헌가로 받쳐졌다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 보

유자 박병원 전수조교 송순단과 박미옥 등이 주관하는 추모굿과 이광

수 명인의 헌가가 올려졌다 다음날 오전 7시 30분에 발인식이 행해졌

고 오전 9시에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이 이루어졌다 유해는 경기도 광

주시 오포읍 시안가족추모공원에 봉안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에서 초제를 시작으로 49재가 진행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금세기 하늘이 내린 명무였다 그리고 근현대 문

화적 격동기 속에서 우리 춤을 꿋꿋이 지킨 민족춤 계승자로서 주어진

소임을 완수하였다 그래서 선생님의 예술 생애와 그가 전승해 온 민족

춤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큰 가치를 지닌다

주지하다시피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한국 전통무용 진가를 표방

하는 고단위적 한민족 춤 유산으로써 조선 중엽 이후 불교의식 민속놀

이 유랑예인연희 무속신앙 등과 어우러져 계승 발전되어 왔다 그와

더불어 민중의식을 담아 애환과 기쁨을 표상하는 춤으로써 위엄 있고 격

조 있는 춤으로 승화되었다 그래서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무용 예술적

가치와 업적은 위대하고 광활하다 무용평론가 강이문과 무용학자 이병

옥 교수는 이매방 선생님을 國舞라 칭했으며 문화계 많은 인사들은 신이

내린 춤꾼이라 호평하였다 이러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우봉 이

매방 선생님 금자탑에서 빛나는 것은 다름 아닌 기왕 흩어져 내동댕이쳤

던 민족 춤의 뿌리를 살려내어 우리 시대 진정한 무용예술로 승화시키고

국가의 민족유산으로 갈고 다듬은 것이었다 이는 탈 식민지적 화두가 -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다큐멘터리 중 이매방 인터뷰 -

살풀이춤은

즉흥무이다 승무

검무 법무를 다

배우면 자기 멋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수판을 잘라야 한다

가락도 춤 승무 가락

검무 가락 이런 거

섞어서 장단 맞춰서

자신의 감정 음악

듣고 음악이 슬프면

슬픈 표정으로

즉흥적으로 추는 춤이

즉흥무야

24 25기획특집 3

본격화되던 20세기 초중반 우리 것에 덧씌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구

를 벗겨내려는 문화 민족주의적 활동의 한 면이었다 서구 중축의 지배

담론을 탈피하면서 그동안 왜곡되고 전도된 관점에서 벗어남으로써 민

족춤에 비문명적이라는 멍에를 씌었던 편협한 지식층의 문화보기 탈각

운동의 한 면이었던 것이다 시기는 일본제국주의의 한국민족문화 말살

정책 해방 후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교육정책의 서구 지향적 패러다임

등장 도시화middot산업화middot현대화에 따른 전통문화 멸시 및 천시 등으로 인

해 민족예술이 단절 위기에 처했었던 그때였다 또한 현대 산업화에 따

른 근대화론 지향의 국책 하에서 민족예술을 진부하거나 불필요한 것으

로 치부하는 풍조였던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우리의 것은 외래의 것에 밀리거나 일방적으로 시비 당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빼앗기는 패배의 싸움판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던 그 상황 속에

서 선생님은 묵묵히 그리고 꿋꿋하게 우리 춤을 지켜 내셨다 우리네 전

통춤은 비합리적이고 가치가 없으며 저급하고 미천한 것으로 저평가되

돼 전승의 단절까지 치닫게 된 상황 속에서도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우

리 춤 계승하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의 춤을

옥석으로 다듬어 세상에 펼쳐 보임으로써 민족 무용예술의 가치를 되살

리는데 평생 힘써 왔었다 결국 어려운 역경과 피나는 고난을 헤치고 일

어난 선생님의 예술세계는 살아 숨 쉬는 민족 춤으로 꽃 피어졌다 향토

춤 민족춤 전통춤 속에 내재된 민중들의 예술적 사상과 정신이 북돋아

나 전통문화복원 민족문화재건 향토문화복구 등과 함께 형성된 민족

문화바로세우기운동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춤은 밖에

서 유입된 외래의 것과는 달리 이 땅에 자생적으로 자라온 민족 춤 뿌리

로 각인되면서 한국무용예술사에 독창적 고귀성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

리고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와

1990년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국민의 춤꾼으로 안

착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 계보를 따지고 올라가면 신방초(申芳草 남)라

는 인물이 있다 전남 옥과 출신인 그는 1817년 무속집안에서 태어난

재인으로 어정판에서 바라지로 활동하였다 춤은 물론이고 육자배기

가곡 가사 장단에 능하여 호남 일대에서 대단히 명성이 높았다 그래

서 당시 호남의 유명 당골들은 그를 모셔가기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였

다고 한다 신방초는 자신의 춤을 같은 고향 출신 신영수(남)에게 전했

다 이후 고창 출신 안두온(남)에게로 이어졌고 다시 순창 출신 이정선

(남)에게 전수되었다 이정선은 춤뿐만 아니라 북놀이에도 뛰어난 재능

을 갖고 있었던 예인이었으며 판소리도 잘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상당

한 대접을 받았다 이정선의 춤은 목포 출신 김금옥(여)과 박귀주(여)에

게 이어졌다 그 후 이매방 선생님의 스승 박영구 이대조 이창조 진

석산 등에게 전수되었다 박영구(남)는 전남 화순 출신으로 승무와 북놀

이의 명무 명인이었으며 광주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대조(남)는 전

남 무안 출신으로 승무의 대가였고 목포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창

조(남)는 전남 능주 출신으로 검무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고 역시 광주 권

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그리고 진소홍(일명 진석산 여)은 전남 담양 출

신으로 서울 인사동에서 요릿집을 운영하면서 살풀이춤을 전승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춤에는 엄격한 억제와 철저한 절제가 존재한다 이

는 수단에 의해 보이는 기교면서 또한 재간으로 처리될 수 있는 예술적

기법의 한 면이다 선생님의 춤은 또한 느낌과 감정의 표현 방식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느낌에서는 가벼움과 무거움 재빠름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이매방 승무-필자 양종승 제공팔순 기념공연-필자 양종승 제공

과 더딤 흐늘거림과 꼿꼿함 섬세함과 우람함 정교함과 장중함 등의

변화무쌍한 표현력을 가진다 감정에서는 슬픔과 기쁨 가냘픔과 뭉뚝

함 애석함과 환희 괴로움과 기쁨 고요함과 시끄러움 등이 묘사되는

데 이는 삶의 고뇌와 애환은 물론이고 희망과 행복을 감싸고 있음을 말

한다 이러한 춤에 있어서의 느낌과 감정은 비정비팔 비디딤 까치걸

음 잉애걸이 좌우걸이 완자걸이 안가랑 등의 발디딤새와 양우선

평체 사체 등의 손놀림새 그리고 연풍대 지숫기 다루치기 대소삼 등

의 몸굴림새 속에서 표현력을 한층 고조시킨다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

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

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

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길이

길이 민족 춤 기틀로 명명되어 질 것이다 천기를 타고난 춤꾼 신들

린 듯한 춤으로 관객을 홀렸던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이제 천상

무대로 가시어 휘날릴 것이다 선생님 기어이 춤과 함께 홀연히 떠

나셨으니 부디 부디 영면하옵소서

추모식 전경

26 27

전경욱 (고려대학교 교수)

동아시아의 가면극1 중국 귀주성 위녕현의 〈춰타이지(撮泰吉)〉 가면극

풍농과 악귀 쫓기를 위해 기원하는 제의의 일부

2 한국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서낭신인 각시가

무동을 탄 모습

3 일본의 미야자키현(宮崎県) 시이바손(椎葉村)의

〈다케노에다오가구라(嶽之枝尾神楽)〉

4 《봉사도》제7폭 모화관에서 행해진 중국사신

영접행사의 연희장면 산대(왼쪽) 앞에서 연행된

줄타기 물구나무서기 접시 돌리기 가면극 등의

전문적 연희

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에서는 가면극 분야에 대해 보

유자와 단체를 모두 지정하고 있으니 일본보다 지원이 좋은 편이다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을 민간문학 민간음악 민간무용 전통희극

곡예 잡기와 경기 민간미술 전통수공기예 전통의약 민속으로 분류

하여 지정하고 있다 중국 가면극인 나희는 전통희극 분야에 해당한다

한국에는 현재 국가 지정의 중요무형문화재 가면극 13종목 각 시도의

무형문화재 가면극 2종목(진주오광대와 퇴계원산대놀이)이 있다 중국

은 그동안 전통희극 분야에 430개 종목을 지정했는데 여기에 나희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노(能)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중요무형

민속문화재의 민속예능 분야에 35개의 가구라(神樂)를 지정했다 이 가

구라들은 대부분 민간의 가면극이다

Ⅱ 동아시아 가면극의 역사와 계통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면극은 매우 유사한 발전 과

정을 보인다 동아시아에는 (1)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과 (2)전

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이 있었다 (1)은 각 지역의 향촌제사

활동(鄕村祭祀活動)에서 연행되던 것으로서 각각 자생적 향토적 성격

을 띠고 있다 그러나 (2)는 산악(散樂) 또는 백희(百戱)라고 불리던 동아

시아 공동의 연희들이 발전하여 성립된 것으로서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함께 각국의 독자성을 띠고 있다

1 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하회별신굿탈놀이나 강릉관노가면

극처럼 향촌제사활동인 마을굿에서 유래하여 발전해 온 가면극들로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전승해 왔다 이 가면극들은 다른 지방의 가면극과

는 아주 다른 독자적 내용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가면극들이 마을굿에

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도판 1)

중국의 나희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지만 후대에는

그것이 민간에 전파되어 각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도 전승되고 있다 그

리고 중국 한족을 비롯하여 소수민족들에는 여러 향촌제사활동에서 유

래하여 그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가면극들도 있다(도판 2)

한편 일본의 고유 신앙을 섬기는 신사(神社)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연예술

인 가구라(神樂) 중에는 자생적인 민속가면극의 예를 보여 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국의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방마다 차이가 크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도판 3)

2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생겨난 가면

극이다 본산대놀이는 삼국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산악middot

백희 그리고 상고시대의 제천의식 등에서 연행되던 전문적 연희자들의

연희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해 형성된

것이다 산악middot백희를 놀았던 사람들은 그 연희 내용으로 볼 때 삼국시

대부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연희자였으며 이들의 후예가 통일신라시

대에 최치원의 시 lt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gt에 묘사된 다섯 가지 연

희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계승된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연행

된 가무백희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나례에서 연행된 산

대희 등을 놀았다 그리고 중국 사신 영접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

희를 펼치던 반인들이 18세기 전반기에 산악middot백희 계통의 연희와 기존

의 가면희들을 재창조해서 본산대놀이를 성립시켰다 이 가면극은 애오

개(아현) 사직골 구파발 녹번 등에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봉사도(奉使圖)》(1725년) 제7폭은 서울의 모화관 마당

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행사의 연희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접시 돌리

기 땅재주 줄타기 탈춤을 묘사하고 있다 마당의 오른쪽에는 산거(山

車)middot산붕(山棚)middot윤거(輪車)middot예산대(曳山臺)middot예산붕(曳山棚) 등으로 불

렀던 소규모의 산대가 보인다 바로 이런 산대 앞에서 공연하던 연희들

을 lsquo산대희rsquo라고 불렀다 특히 세 명의 땅재주꾼 양 옆에서 각각 두 명씩

모두 네 사람이 초록색과 남색의 가면을 쓰고 탈춤을 추고 있다 이는 서

울에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가면극이 있었고 그 가면극을 애오

개산대놀이 등 산대놀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전해준다(도판 4)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경기도의 송파산대놀이middot양주별산대놀이 황해

31 2

Ⅰ 동아시아 가면극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우리는 가면극을 탈춤 탈놀이 가면희 등으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가

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儺戱)라고 부

르는데 이는 중국 가면극들이 대부분 나례에서 연행되던 연희인 나희

로부터 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무형문화유

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middot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부터 한국은 1964년부터 중국은 2006년부터

무형문화재를 국가 차원에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

의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용어로 lsquo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rsquo이라

는 말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의 기예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lsquo보유자rsquo로 인정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lsquo전승인(傳承人)rsquo 일본에서는

lsquo보지자(保持者)rsquo라고 부른다

중국은 이제 막 무형문화재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작했지만 각 지역에

서 자기들의 무형문화재를 국가 지정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으로 등재하기 위

한 열기는 매우 뜨겁다 그리고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과 관련된 행사나 학술

대회도 자주 개최하고 있다 필자는 매년 중국의 가면극학회인 중국나

희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는데 가면극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들에서

는 이 학회를 유치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현지 답사를 통해 자기 지

역의 가면극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국가 지정의 무형문화재를 (1)중요무형문화재(연극 음

악 공예기술 등)와 (2)중요무형민속문화재(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

행사 등에 관한 풍속관습 민속예능)로 구분하여 지원한다 그래서 연극

분야 중 노(能) 가부키(歌舞伎) 등은 (1)에 해당하고 각 지방의 가구라

(神樂)는 (2)의 민속예능에 해당한다 (1)은 전문적인 연희자들이 전승하

는 종목으로서 그 기middot예능을 보유한 사람과 단체를 모두 지정한다 그

러나 (2)는 단체만 지정하고 보유자는 지정하지 않는다 이를 한국에 적

용하면 판소리는 (1)중요무형문화재(음악)에 가면극은 (2)중요무형민

속문화재(민속예능)에 해당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한국의 가면극들

은 대부분 각 지방에서 세시풍속의 하나로서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

日韓 中

4

28 29무형문화재 삼국지ㆍ예능

도의 봉산탈춤middot강령탈춤middot은율탈춤 경남의 수영야류middot동래야류middot통

영오광대middot고성오광대middot가산오광대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

본산대놀이는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했지만 여기에서 전파된 별산대

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 등은 농민 하급관속 무부(巫夫) 등 각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중국 가면의 역사에서 가면의

효시는 나례에 등장하던 방상시(方相氏) 가면이다 이 나례에서 연행되던

각종 연희와 가면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면극이 생겨났기 때문에 가면

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다른 계통의 가면은 육조(六朝)시대 이후 산악middot

백희에 사용되던 것으로 이는 서역악무(西域樂舞)의 영향을 받은 외래

기원의 가면이다 현재도 중국에는 귀주성의 나당희처럼 무당집단이 전

승하고 있는 나희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들은 전문적 연희자인 셈

이다(도판 5)

일본의 가면극은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서 육성된 가면극과

서민층에 의해 육성된 가면극이 있다 전자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예술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데 기가쿠(伎樂)middot

부가쿠(舞樂)middot교도(行道)middot노(能)middot교겐(狂言)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

데 노와 교겐은 특히 산악middot백희와 밀접한 관련 아래 성립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문화인 산악middot백희가 일본에 유입

된 이후 변화middot발전하여 후대에 일본의 대표적 전통연극인 노가쿠(能

樂)middot노쿄겐(能狂言)middot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middot가부키(歌舞伎) 등 전통연

극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산악middot백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 연희를 발전시켜 lsquo나희

(儺戱)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켰고 일본에서는 사루가쿠(猿樂) 즉 산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lsquo노(能)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킨 것처럼 한국에서도

중국 사신 영접 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반인(泮人)들이

lsquo본산대놀이rsquo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Ⅲ 동아시아 가면극의 연희 내용

한국의 가면극은 벽사적 의식무과장 파계승과장 양반과장 영감할미

과장 등 서로 다른 내용의 과장들로 짜여진 소위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

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면극을 탈춤이라고 부를 정도로 춤이 많

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춤사위가 매우 뛰어나다(도판

6) 일본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가구라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짜인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나희와 일본

의 노는 대부분 하나의 가면극이 하나의 서사적 내용으로 짜여 있다

이러한 서사성의 나희와 노도 또한 서로 차이점을 갖고 있는데 노는 lsquo현

재노(現在能)rsquo와 lsquo몽환노(夢幻能)rsquo가 있어 특징적이고 나희는 주로 노래와

대사에 의해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lsquo현재노rsquo는 현재형으로 사건이 전개

되는 노를 말한다 lsquo몽환노rsquo는 나그네(조연자인 와키가 분장)의 꿈 속에

망령이나 화신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몽환노에

서는 시간이 자유롭게 정지하고 역행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도 자유롭게

등장할 수가 있다 주연자는 고전 속의 미녀이거나 역사상 인물일 수도

있고 지옥의 원령이거나 신(神) 불(佛) 귀(鬼) 초목(草木)의 정령이기

도 하다

중국 나희에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 황제 왕 일반인물

등 배역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연희 내용도 의식적인 춤을 제외

하면 대부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를 연극화

하여 공연한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 가면극에서

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이 거의 없고 황제나 왕 같은 존재

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반 인물 위주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연희 내용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주로 현

실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한편 한middot중middot일의 가면 또한 각국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middot중middot일 가

면의 형태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 윗부분에 있다 한국 가면은 얼굴

의 이마 부분까지만 표현하고 있다 일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경우에

도 간단한 선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

을 안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낸다 모자를 쓰는 배역은 별도의 모자를 착

용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의 귀면(鬼面)인 팔먹중가면을 보면 오로

지 안면의 표정에 의해 무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 노나 가

구라의 가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가면은 대부분 머리 부분과

얼굴 부분을 모두 이용해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한다 가면 자체에

머리 부분의 모자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도판 7)

그리고 한middot중middot일의 음악적 선율과 장단이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음악에 맞춰 연기하고 춤을 추는 연희자들의 동작과 춤사위는 각국

가면극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

5 중국 귀주성 덕강현의 무당들이 공연하는 가면극인 〈나당희(儺堂戱)〉

6 춤사위가 매우 뛰어난 〈봉산탈춤〉의 팔먹중춤

7 중국 안휘성 지주의 나희 〈유문룡〉 가면 자체에 모자를 장식

7 5

6

30 31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충남middot서울시 문화재위원)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도판4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양푸시(楊福喜) 201598 필자 촬영

도판5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권영학 보유자 2015821 필자 촬영

도판6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故 김박영 보유자 서헌강 촬영

도판1 활 쏘며 수렵하는 장면 고구려 무용총

도판2 중국 고대 활과 화살 및 활쏘기 장면 전국시대 초(楚) 동호(銅壺)

도판3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일본

Ⅰ 한민족과 활

한국인에게 활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민족과 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중국인이 우리 민족을 부르

는 명칭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이다 lsquo이(夷)rsquo라는 글자는 큰 대(大)자

와 활 궁(弓)자가 결합되어 있다 동이라는 글자를 곧이곧대로 풀어보면

lsquo중국의 동쪽에서 살며 큰[大] 활[弓]을 잘 만들고 쏘는 민족rsquo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 미루어 이미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우

리 한민족이 그들 한족보다 활을 잘 다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반인뿐 아니라 왕도 활을 잘 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적 인물로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lsquo활 잘 쏘는 이rsquo의 대명사로 기

록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쏘았으며

사도세자의 아들로 유명한 정조 또한 활을 잘 쏜 국왕으로 기억된다

조선에서 활쏘기를 잘했던 이유는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심신을 단련

하는 육례(禮 樂 射 脚 書 數) 중 하나로 활쏘기가 장려된 데에도 원

인이 있다 조선에서는 국가 의례로 활쏘기 행사를 거행하였다 왕과

신하가 활 쏘는 대사례(大射禮)는 1477년(성종 8) 1534년(중종 29) 및

1743년(영조 19) 1764년(영조 45)에 군신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였다 한편 지방의 양반 사족들은 향약과 비슷한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양국의 활은

기본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청나라 시대의 그림을 보면 조선 말기 19세기에 활

을 쏘는 그림과 비교가 된다 두 나라의 사수(射手)는 각각 청나라와 조

선의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른 편이다 더욱

이 양자가 활을 쏘는 모습은 공통되면서 부분적으로 다르다 그림 속 중

국의 활은 150cm 정도여서 1m 안팎의 한국 활보다 길이가 긴 점이 다르

다 막상 양자에서 동시에 화살을 쏘면 날아가는 비거리는 후자가 훨씬

긴데 이렇게 그림에서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몇 년 전

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lt최종 병기 활gt이다 시대 배경은 병자호란 당

시 청나라 무사와 조선의 사수가 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영화화한 것

이다 비록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다소 활의 효능이 과장되긴 했지만

두 나라 활의 특징과 조선 활의 장점을 극명하게 잘 그려내어 흥미롭게

본 기억이 새롭다

한편 양국과 비교되는 것이 일본의 활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활은 전

체 길이가 220cm가 넘는 세계 최대 길이의 활이다 16세기 조선의 『난

중잡록』에 의하면 일본의 화살은 lsquo장편전(長編箭)rsquo이라 하여 여러 나라의

화살과 비교해서 일본의 화살이 매우 크다는 기록으로 이미 조선에서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활을 사용하는 일

본에서는 활을 잡는 위치도 특이하다 일본의 활은 장대하기 때문에 위

쪽이 길고 아래는 짧아서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그림을 보면 매우 긴 활

의 아래쪽을 잡고 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활

은 ldquo화살은 길지만 먼 곳까지는 날지 않는다rdquo라고 13세기의 몽고인이

기록하고 있어 비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가마쿠

라 시대에 들어가면 그 중량이 더욱 늘어나 70g에 이르면 길고 무거운

화살을 폭이 긴 활로 쏘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Ⅲ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활과 화살은 조총이나 대포 등과 같은 화기(火器)를 발명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중요했다 이에 각국은 국력을 모아 활과 화살을

제작하였다

이미 고려 때에 중앙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에 각궁장(角弓匠) 전장(箭

匠) 전두장(箭頭匠) 등의 장인을 소속시켜 각궁을 만들었다 또 궁중의

궁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내궁방(內宮房)에도 각궁장(角弓匠)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군기감(軍器監)을 설치 운영하였고 장인들을 소속시켜 활

과 화살을 제작하게 하였다 이들 장인은 다른 기술을 가진 장인과 달리

궁인(弓人)이나 시인(矢人)으로 불렀다 궁인과 시인이라는 명칭은 『논

어』에서 나오며 그들 장인은 다른 물건이 아닌 무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우대하여 부른 것이다 이에 조선은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면

서 궁인 90명 시인 150명을 배정하였다 아울러 이들 장인들은 각 지

방마다 상당수를 배정하였고 이 또한 여타의 다른 장인들에 비하여 많

은 숫자에 해당되었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장색과 규모는 영조대 『속대전』이나 정조대

『대전통편』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국가적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각종 300여 도감마다 수많은 궁인이

나 시인을 징발하여 의례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할 궁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사적인 공방에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김준근의 lt기산풍속화gt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궁창을 앞에 두고

줄과 환으로 일정하게 다듬은 쇠뿔과 뽕나무 등을 옆에 두고 완성된

각궁에 시위를 걸어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있다

청나라 말에 전통 활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lt시궁정력(試弓定力)gt에

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입식 건물 안에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너댓 개

의 활을 만들어 올려놓고 다 만든 활을 과학적으로 무게를 재고 있다

향사례(鄉射禮)를 거행하여 사족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활을 좋아하고 잘 다룬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역

사 동안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다른 종목보다 유달리

활(양궁)을 잘 쏘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한민족의 피 속

에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유전인자 DNA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Ⅱ 유물 속 동아시아의 활

인류는 이른 시기부터 멀리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자 무기로 활과 화살을 개발하였다 이후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

에 따라 궁시를 제작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

하였다 하지만 궁시는 대개 나무나 대나무와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

져 썩어 오래전의 유물을 확인하기 어렵고 단지 흑요석(黑曜石)처럼 단

단한 석제로 만든 화살촉에 의해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정복 전쟁이 빈번해지던 고대부터 무기가 발달하였다 당시에

사용된 활과 화살의 형태는 유물 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전국시대(BC 475~221) 동호(銅壺) 유물

을 보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한편

5세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lt수렵도gt에서 말 위에서 짐승들을

1

32

4

6

5

32 33무형문화재 삼국지ㆍ기능

양국의 활 제작방식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청나라 활 제작 장인 집단

은 북경 동사대가에 있는 궁전대원리(弓箭大院里)에 17가호의 궁전 점포

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squo취원호(聚元號)rsquo이다 이곳에서 중국 전통 활

을 제작했던 장인이 양뤼린(楊瑞林)이며 아들인 양원통(楊文通) 손자인

양푸시(楊福喜)까지 3대가 잇고 있다 양푸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활을 제작하여 2006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

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장인으로 보호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45년 앞선 1971년 9월 13일 전통 활 제작 장인

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으로 지정하였다 서울 황학

정의 장진섭(張鎭燮 1916~1996)은 조부(장문환)와 부친(장기홍)에 이

어 3대째 활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예천의 권영

록(權寧錄 1916~1986)은 부친(권태전 權泰全)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

었다 부천의 김장환(金章換 1909~1984)는 조부(김원재)와 부친(김

동천)의 대를 잇고 한국 제일가는 명사수로서 활동하고 부천 성무정의

초대 사두(1967~1982)가 되었다 그의 기술은 제자인 김박영(金博榮

1929~2011)이 전승하였다 그의 사후 2015년 권영학(1943년생)보유

자가 새로 인정되어 조부(권선복)와 부친(권우갑)의 가업을 이어 그 또

한 3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화살을 만드는 시장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시장)

으로 지정하였다 화살로 유명한 장단에서 나고 자란 유영기(1936년 그런데 세계적으로 강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활은 여기에 화피를 더

하여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물소 뿔(牛角) 쇠심줄(牛芯)

민어 부레풀(魚膠) 대나무 뽕나무(弓幹桑) 참나무 화피(樺皮)가 그것

이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는 각궁은 살

아있는 활이면서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쇠뿔은 통뼈이며 대나

무와 뽕나무 및 참나무가 세부 뼈대이고 그 위에 바르는 쇠심줄은 근

육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부레풀은 연골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다듬는

화피는 피부에 해당된다 이중 물소 뿔과 대나무 및 쇠심줄이 활의 강

도와 탄성을 이루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민

어 부레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은 1년 중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제작하여 계절을 타는 공예품인데 그 이유는 동식물성 재료

들이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아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심이 건

조가 안되고 풀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여름에는 재료를 장만하고 찬바람이 나면 풀을 대와 뼈와 나무를 서로

붙여 정월 경에 건조시키고 3월부터 한 달 이상 해궁 작업을 한다 각

궁은 제작이 까다롭고 단계마다 원칙을 지키고 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

해서 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궁의 핵심 원료인 물소는 주로 아열대 지방인 중국 남부나 인도 및 인

도차이나 등지에 서식하므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여서 중국은 물소 뿔의 수출을 엄격

하게 통제하였고 조선 정부는 그것을 몰래 수입하려고 애썼다 현재

도 각궁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의 수급은 어려움이 많다 물소는 세계적

인 보호동물이어서 물소 뿔을 수입할 때 세관의 통과가 어렵고 쇠심줄

은 근래 많은 소들이 일하면서 근육을 키우지 않고 육우용으로만 키워

져 탄성이 없어 활의 탄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접착제인 민어부

레의 경우 예전에는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근래에는 민어부레가 정

력에 좋다고 그것마저 식용으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한 활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488년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同越)은 ldquo조선에서 사용하는 화피궁은 중

국의 제도에 비하여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rdquo라

고 평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활은 중국 것보다 작으나 탄

성이 크고 강하다 우리의 시장들은 대나무로 화살대[矢幹]를 만들고

쇠로 활촉(雛)을 끼우며 수리깃으로 화살깃(矢羽)을 만든다 반면 중국

의 장인은 죽시와 함께 유목(楡木)으로 목시(木矢)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활은 대나무와 나무를 한데 결합한 복합궁이다 일본의 활

은 2m 이상으로 길고 무거워 탄성이 적어 근거리에는 위력이 높은 대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이면서 한middot중middot일

삼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각궁은 한국 장인들의 솜씨가

표출된 우수한 전통 공예기술로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생)는 조부(유창원)와 부친(유복삼)에 이어 3대를 잇고 그 아들 유세

현과 유승현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단 근처 원당에서 나고 자

란 박호준(1944년생)은 조부(박희원)와 부친(박상준)에 이어 3대째 가

업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김종국(1940년생)은 스승인 조명제(趙命濟

1915~1980)가 조부(조성관)와 부친(조면보)의 대를 이었던 것을 본받

아 예천에서 화살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12월 14일 부천활박물관을 세웠고 파주에는 유영기

보유자가 만든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반면 중국에는 2012년 신강의

이리에 성급(省級) 비물질문화재로 등록된 이청강(李靑岡)이 중화활문화

박물관(中華弓文化博物館)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로 활을 지

정하지 않아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이 전통적(傳統的) 공예품

(工藝品)으로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을 지정하였다 미야기현(宮崎県)에 위치

한 미야코노조(都城市)에 7대째 120년 전통의 활을 제작하는 활제작소

[楠見藏吉 弓製作所]가 위치하고 있다

Ⅳ 활과 화살의 재료

활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의 『고공기』에 의하면 나무[干 柘 橘 桑 木

瓜 竹 荊 등] 심줄[筋] 풀[膠 말 소 사슴 물소] 뿔[쇠뿔] 옻[漆]

명주실[絲]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은 뿔을 주재료로

삼은 각궁(角弓)인 것을 알 수 있다

도판10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故

김박영 보유자 제작 각궁(角弓)

도판11 중국 양푸시(楊福喜)가 제작한 활

1m 60cm

도판12 중국 양푸시(楊福喜) 화살[箭]

위 2개 느릅나무[楡木] 3번째

목전(木矢) 아래 2개 죽시(竹矢)

201598 필자 촬영

도판13 일본 미야기현(宮崎県)

미야코노조(都城市) 120년 전통

楠見藏吉 弓製作所

httpjotaro-gocomcollect2980

도판14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

지정(指定) 전통적(傳統的)

공예품(工藝品)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

httpjotaro-gocomcollect2980 참고

도판7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종국(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9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박호준(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7 8 9

11 10

12

13 14

34 35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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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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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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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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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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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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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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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5: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글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기획조정실 홍보팀

세계유산 따라 떠나는 여행

ldquo여러분 영화 lsquo역린rsquo 보셨나요 그 영화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십니까rdquo

ldquo이산rdquo

ldquo정조임금rdquo

ldquo맞아요 이곳 수원 화성은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이장하

면서 함께 건축했습니다 오전에 보았던 창덕궁도 정조 임금과 관련된

곳이라는 것 잊지 않으셨죠rdquo

영화라는 친근한 소재를 곁들인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에 참가자들의

눈에는 어려운 기색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사에 대해서 어렵고

딱딱하게 느낄 법도 한데 실제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를 보며

친근한 설명까지 들으니 다들 집중한 표정으로 열심히 답사 코스를 따라

다닌다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세계유산과 그

주변의 다양한 유 무형유산을 연계하여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당일 또는 1박 2일

일정으로 매월 운영되고 있다

8 9한국문화재재단 소식 2

궁 약 한 시간여를 달린 버스는 먼저 행궁 앞에 참가자들을 내려줬다

창덕궁과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은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행궁을 찬찬

히 둘러보았다 행궁의 뒷벽에는 lsquo정조대왕화성능행반차도rsquo1)가 전시

되어 있어 참가자들은 정조의 능행의 이유와 수원 화성과 행궁의 건

립 목적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하는 표정이었다

행궁 답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십여 분 정도 이동해 프

로그램의 마지막 목적지인 수원 화성 장안문 앞에 내렸다 잘 쌓아올려

진 수원 성곽을 전부 다 돌아볼 수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시간의 제약

때문에 참가자들은 장안문과 화홍문 방화수류정 등의 장소를 돌며 아

쉬움을 달래야 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방화수류정에서 내려다보

이는 아름다운 풍광에 참가자들은 저마다 신난 얼굴로 열심히 기념사진

을 촬영했다

오전 9시 30분에 시작된 프로그램은 저녁 7시가 넘어 아침에 출발한

장소인 은평구 다문화지원센터에 도착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하

루 종일 진행된 프로그램에 참가자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래도 한국의 역사와 세계유산에 대해 배워간다는 생각에 뿌듯한 표정

이었다

2015년 세계유산 연계체험은 10월에 4회 11월에 3회로 앞으로 총

7회가 더 남아있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문화의집KOUS 세계

유산 연계체험을 통해 우리의 세계유산을 접했으면 한다

를 통해 모집된 31명의 다문화가족이다 이들은 김숙희 문화유산해

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하루 동안 창덕궁과 화성 일대를 돌아보는 체험

을 했다 무더운 날씨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답사에 지칠 법도 하건

만 참가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쉽고 친절한 설명에 외국인 엄마들과

아이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끊임없이 반짝거렸다 모두들 아름다운 궁

궐과 화성의 모습에 궁금한 것이 많은 듯 열심히 전각들을 구경하고

질문하며 기념사진을 찍는 등 이번 체험을 100 즐기는 모습이었다

취재를 위해 따라간 필자 역시 기존에 알던 장소들이지만 lsquo조선의 정

궁과 행궁rsquo이라는 주제에 맞춰 설명을 들으니 그 장소들이 달리 보여

새로웠다

프로그램은 크게 오전과 오후 일정으로 나뉘어졌다 오전 9시 30분에

은평구 다문화지원센터에 집결한 참가자들은 버스를 타고 첫 답사장

소인 창덕궁으로 이동했다 참가자들은 문화유산해설사의 안내에 따

라 궐내각사를 시작으로 창덕궁 인정전 희정당 대조전 낙선재 등을

두루 둘러보았다 각 전각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정조임금과 관련된

이야기까지 곁들인 해설에 참가자들은 지루한 기색 없이 해설사의 설

명을 경청했다 특히 어린 참가자들은 대부분 아직 유치원생임에도 불

구하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며 큰 관심을 보였다

오전 창덕궁 일정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근처 맛집으로 이동해 설렁탕

으로 보신을 한 후 다시 버스에 올랐다 오후 목적지는 수원 화성과 행

1 창덕궁 세계유산 지정 표지석

2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에서 내려다본 전경

3 수원 화성 성곽

4 김숙희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참가자들

2015년 세계유산 연계체험 잔여 일정표

1) 조선 22대 왕 정조가 어머니 경의왕후(敬懿王后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하여 아

버지 장헌세자(莊獻世子사도세자)가 묻힌 화성 현륭원(顯隆園)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정조대왕화성행행반차도(正祖大王華城幸行班次圖) 또는 화성행차도

(華城行次圖)라고도 한다 경의왕후의 환갑잔치 내용을 치밀하게 기록한 원행을묘정리

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김홍도의 책임 아래 최득현 김득신 이인문 장한종 허식

등의 자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들이 제작한 목판화가 남아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정조반차도 [正祖斑次圖] (두산백과)

회차 일자 지역 주제 주요 관람지 참가대상

10 102(금)수원

화성

정조대왕의 업적과

발자취 수원 화성 건릉

서대문구

다문화센터

11 1016(금)서울

수원

역사를 통해 배우는

孝사상종묘 수원 화성

강북구

다문화센터

121119(목)

~20(금)

창녕

고성

우리나라의

자연유산 탐방

우포늪

공룡화석지

관악구

다문화센터

131126(목)

~27(금)

익산

전주

백제 역사 문화유산

탐방

왕궁리 미륵사지

입점리고분

답사

우수 고객

141022(목)

~23(금)

공주

부여

백제문화의 제2

중흥기를 찾아서

낙화암 궁남지

공주middot부여역사

유적지구

미정

15 1030(금)서울

여주

조선의 정궁과 왕의

사후 안식처경복궁 영릉 미정

16 116(금)서울

광주(경기)조선의 궁궐과 산성 창경궁 남한산성 미정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운영하는 세계유산 연계체험은 우리나라 세

계유산을 주변의 다양한 유 무형유산과 함께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다 매월 1~2회 하루 또는 1박 2일 코스로 한 가지 주제를 정해 그와

관련된 세계유산을 문화유산해설사의 친절한 해설을 들으며 답사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참가 대상은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유학생

들이나 결혼이주 여성 등의 외국인들과 다문화가정 가족들 소외계층

이다 우리 역사와 세계유산에 대해 다소 생소하게 느낄 수 있는 이들

에게 해설을 곁들인 체험을 통해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해 알리고 있는

공익적 목적의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주 답사 장소는 궁궐 왕릉 사

찰 민속마을 박물관 등 전국에 있는 세계유산 및 세계유산 잠정목록

에 올라있는 문화유산들과 그와 연계된 체험 장소들이다 서울 경기

충청 등 수도권에서 가까운 지역의 경우 당일 일정으로 운영되며 전

라도 경상도의 경우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운영된다 2015년 올해

는 4월 17일부터 11월 27일까지 약 7개월간 15회의 체험 프로그램

이 운영되는데 서울middot경기 7회 충청도 2회 전라도 2회 경상도 4회

로 구성되어 있다 참가 신청은 국내 대학교 어학당 서울시 각 구청

다문화가족센터 등을 통해 접수 받아 단체로 신청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4일 금요일에는 lsquo조선의 정궁과 행궁rsquo이라는 주제 특히 정

조 임금과 관련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서울의 창덕궁과 수원 화성

답사가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의 참가자들은 은평구 다문화지원센터

1

2

3 4

1110

12

한국의집 조리팀장 김도섭

사진

그라피스튜디오

한국의집

가을을 맛보다

뜨거웠던 열기가 식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다

뜨거운 여름을 견디며

건강하게 키운 한 해의

결실을 맺는 가을 식탁은

그만큼 풍성하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가을

가을을 대표하는

건강식재료로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의 영양을

회복해보는 것은 어떨까

1312 한국문화재재단 소식 3

전통 한식을 대표하는 한국의집 김도섭 조리팀장은 조선왕조 궁중음식 전수 장학생이자 한식조리기능장으로서 전통음식의

발전을 위한 레시피 표준화 궁중음식홍보사업 등을 통하여 국내외 전통음식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그는 한국의집뿐만 아니라 문화교류사업의 일환으로 해외 행사에서 요리를 하기도 했다 뭄바이 인도상공회의소 주관 한국의

밤(rsquo13) 태국관광박람회(rsquo12) UAE-한 수교30주년만찬amp리셉션(rsquo10) 등에서 요리를 선보이며 한식 전도사로서의 역할 또한 하고

있다 또한 문화재청장 표창(rsquo08)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표창(rsquo15)을 받은 바 있다

문의 02-2266-9101 wwwkhorkr

조리팀장

김도섭

가온정식 1인기준 35000원 삼색밀쌈과 해물잣즙채 고구마middot알밤죽과 물김치 새우찜과 생절이 버섯불고기와 부추절임 꽃게감정 진지 기본찬 후식

4인기준 조리

가을 낙지골동반 1인기준 25000원 삼색밀쌈과 해물잣즙채 계절죽 전유화와 생절이 낙지골동반 국 무화과 후식

제철 꽃게 대하 고구마로 건강을 담아낸 lsquo가온정식rsquo

lsquo가온정식rsquo은 가을이 제철인 꽃게 대하 고구마 밤을 중심으로 고구

마middot알밤죽과 새우찜middot생절이 꽃게감정으로 구성한 메뉴이다 특히

꽃게감정은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음식으로 고급스럽고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번거로워서 사위를 맞이할 때

나 한 번 만드는 귀한 음식이다 꽃게감정은 제철을 맞은 가을 수게의

살을 곱게 발라내어 소고기와 갖은 야채로 소를 만들어 게딱지에 채워

놓고 국물을 자박자박하게 끓여 만들어 낸 찌개인데 제철 꽃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미와 담백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제철 게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이 많아서 소화가 잘되고

원기회복에 좋다 이 밖에도 키토산이 풍부한 대하 식이섬유소가 풍부

한 고구마 5대 영양소와 비타민C가 풍부한 밤으로 만든 요리는 입맛

을 돌게 하고 원기회복에 도움이 된다

쓰러진 소도 살린다는 가을철 원기회복의 대명사 lsquo가을 낙지골동반rsquo

골동반은 임금님부터 백성까지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한국의집은 가을을 맞이하여 기존 골동반 메뉴에 영양이 풍부한 낙지까

지 맛볼 수 있는 lsquo낙지골동반rsquo을 선보인다

낙지골동반은 오색나물과 살이 충분히 오른 가을 낙지를 올려 시각적 아

름다움과 맛과 영양까지 모두 챙기는 일품메뉴이다 특히 lsquo봄조개 가을

낙지rsquo란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가을 낙지의 맛은 높이 평가된다 또한 낙

지는 피로에 좋은 아미노산과 타우린이 풍부해 인삼 한 근과 비견할 정

도로 몸에 좋은 음식이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철 제철재료로 만든 요리는 그 어느 계절 음식보다 맛

이 좋고 몸에도 좋다 제철을 맞은 엄선된 재료로 만든 한국의집 가을 신메

뉴와 함께라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14 15

1927 2015

宇峰우봉 이매방

춤 한자락에 담긴 삶

한국 춤의 거목 우봉 이매방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lt승무(僧舞)gt 및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lt살풀이춤gt 예능보유자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2가지 종목의

무형문화재를 보유했다

그의 춤과 삶의 흔적을 담아보았다

Master Ubong Lee Mae Bang Korearsquos traditional dance virtuoso passed away on August 7 2015 He was 88 years of age Ubong was one of the key figures in

the modern and contemporary days of Korea Ubong the one who often lauded as a ldquodancer sent from the Heavenrdquo was a master of Seungmu (a form of dance

traditionally performed by Buddhist monks) and Salpuri (a form of dance traditionally performed by Korean shamans to banish evil spirits) designated

as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No 27 and 97 respectively Born in Mokpo Jeollanam-do on May 5 1927 he was discovered and trained by

Han Guk Hyang the headmaster of a Gwonbeon (a form of traditional dance academy in Korea) in Mokpo at the age of 7 This was followed by 8 years of

dance and drum performance training as an apprentice of Master Lee Dae Jo who taught Seungmu Geommu (sword dance) and Gobeop (traditional drum

technique) at the Gwonbeon Throughout his life devoted to dance he garnered great fame as the holder of two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and

trained numerous traditional dancers Ubong Lee Mae Bang passed on to us the quintessence of Korean traditional dance expressed through his moves that

made him a dancer of a historic significance for whom there will be no equal in this millennium not to mention in this century사진제공 한국문화재재단

1716 기획특집1

살풀이춤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해 공연 때 착용했던 살풀이춤 의상이다 무동옷과 쾌자는 다른 색으로 바꿔입기도 하며

이매방 살풀이춤을 대표하는 의상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사진액자 121940~50년대 이매방이 승무 바라춤

추는 모습을 찍은 사진의 배경을

없애고 보유자만 오려 붙여 만든

액자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약력

1927년 전남 목포 출생

1934년 목포 북교 입학

1935~39년 만주 다렌 거주 이대조에게 승무 북춤 박영구에게 승무 법고 이창조에게 검무 사사

1943년 목포 공립공업학교 졸업

1948년 명창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서 lsquo승무rsquo로 첫 무대

1953년 제1회 개인발표회(광주)

1956년 제3회 개인발표회(부산)

1959년 제5회 개인발표회(서울 원각사)

1984년 무용 인생 50년 특별공연 lsquo북소리rsquo

1987년 승무 예능보유자 지정

1990년 살풀이춤 예능보유자 지정

1993년 인간문화재진흥회 부회장

1996년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수

1999년 우봉 이매방 춤 인생 65주년 기념 대공연

2004년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춤 인생 70년 기념공연

2005년 lsquo우봉 이매방 춤 전수관 개관 기념공연rsquo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 대공연장)

2006년 lsquo무용 무대예술 80년사 아름 보듬어맺고 풀고helliprsquo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07년 lsquo화성 춤 페스티벌rsquo (수원대학교 베칸토 아트센터)

2008년 서울시 무용단 정기공연 lsquo하얀사 고이접어rsquo (세종문화회관 세종 M씨어터)

2009년 lsquo그가 무대에 서면 역사가 된다 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춤 대공연rsquo (영등포 아트홀)

2010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2011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호암아트홀)

2012년 명작 명무전 (LG 아트센터)

2014년 lsquo우리는 그를 巨木이라 부른다 우봉 이매방 전통춤 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승무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한 승무 복식으로 공연 때 착용했다 흰 장삼에는 옥색 바지 저고리를 입고

흑 장삼에는 흰색 바지 저고리를 입는다 흰 장삼의 승무 의상을 기증했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wwwk-heritagetv에서

승무와 살풀이 동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수상 내역

2015년 은관문화훈장

2011년 제12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공로상

2004년 임방울 국악상middot세종국악대상

1998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1995년 성옥문화상

1984년 옥관문화훈장

1976년 부산시 눌원문화상

우봉 이매방

한국 전통 춤의

정수 승무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18 19

글 사진

이병옥 (용인대학교 명예교수)

宇峰우봉

이매방 선생의 춤 일생

춤 성향을 가늠하는 입문과정과 열정

첫째는 이매방이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세(1934년)가 되던 해 옆집에 세

들어 살던 조도 출신 목포 권번의 권번장 함국향(咸菊香)씨는 그가 춤추기

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춤 학습을 권유하여 남자이지만 여성적인 고운 춤

사위 성향인 기방춤의 기틀을 마련한 점이다

둘째 이매방의 할아버지이면서 스승이었던 이대조 명인은 목포 권번(卷

番)에서 승무와 북놀이 검무 그리고 고법(鼓法)을 가르쳤던 권번 선생으

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점이다

셋째 중국 대련 정포소학교(1935~1939)를 다니면서 그는 매란방 배구

자 등을 만나 춤에 색다른 영향을 받은 점이다 대련에서 운수회사를 운영

하던 큰 형님을 따라 약 5년간을 살게 되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신무용의

대가인 배구자의 무용공연에도 출연하였고 또 북경에 있던 큰 누나의 연

결로 매란방의 공연을 접하고 이국적인 향취에 매료되어 그에게 lt장검무

gt lt등불춤gt lt꿩털춤gt 등을 배운다 6middot25 이후에는 본명 lsquo이규태rsquo를 버

리고 lsquo매방(梅芳)rsquo이라는 예명을 lsquo매란방rsquo의 약자를 딸 정도로 그의 예술혼이

깃든 것이었다 그러다가 대련정포소학교 5학년 때(1939년) 고향 목포북

교소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통춤에 정진하게 되었다

넷째는 주말마다 광주 권번에 다니면서 권번 선생이었던 박영구로부터

승무와 북놀이를 배우고 이창조(장성출신) 선생에게는 검무를 학습한 점

이다 이처럼 목포 권번과 광주 권번을 오가며 박영구 이창조 그리고

이대조 선생에게서 승무 승무북놀이 검무 입춤 살풀이춤 장고춤

태평무 한량무 보렴승무 흥춤 장검무 장고기법들을 배웠다

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공연은 1942년(16세) 목포역전에

서 임방울이 주관하는 명인명창대회였다 이때 승무를 출 박봉선이 사정이

생기자 함국향이 이매방을 임방울에게 소개하여 김연수의 장삼을 빌려 입

고 무대에 나섰다 이때 이매방은 승무를 추어 관객의 열렬한 호응으로 자

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또 예술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해방 후로는 1948

년 임춘앵의 여성국극단에서 삼고무를 가르쳤고 그해 목포 역전에서 다시

임방울이 이끄는 명인명창발표회에 당당히 승무로 출연하게 되었다

방랑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춤 정립(대구 군산 부산 광주 서울)

1950년 6middot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북한군의 뒤를 따라 예술동맹 공연

단들이 목포에 내려와 인민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당시 최승희의 딸 안성희는 lt장검무gt 전황(본명 전두황)은 lt처녀총각gt 등

을 추었으며 이어 이매방을 강제로 무용동맹에 가입시켜 무용활동을 시켰

다 수복 후 국군이 들어와 무용동맹에 강제로 가입했던 것 때문에 곤욕을

치렀으나 가까스로 해명하고 국군 군예대(KAS 종군연예인공연단)에 가

입하여 1951년 대구에 본부를 두어 활동하면서 지방순회공연을 다녔다

또 광주에서 전라남도 경찰국 선무공작단을 맡아 단장으로 호남 일대를 돌

며 순회공연을 하던 중 잠시 군산으로 옮겨 군산시 영화동에다 이매방무

1 1950년대 삼고무 초기 모습

2 1978년 이매방 승무

3 1938년 정포소학교 고개 숙인 이가 이매방 우측 앞

3

2

1

한국 전통춤의 대부 우봉(宇峰)

이매방 선생님이 2015년 8월 7일

8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우봉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로 lsquo하늘이 내린

춤꾼rsquo으로 칭송되는 근현대

전통춤계의 중심인물이었다

1927년 5월 5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7세 되던 해에 목포

권번(券番)의 권번장 함국향의 눈에

들어 춤 학습을 받았다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검무 그리고

고법을 가르쳤던 이대조(李大組)

명인으로부터 춤과 북놀이 사습을

8년 동안 받은 후 평생 외길

춤인생을 걸으면서 두 종목의

인간문화재로 그 명성과 수많은

이수자를 배출하였다

우봉 이매방의 춤사위는 lsquo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rsquo라는 표현을

넘어 lsquo밀레니엄에 한 번 날까rsquo하는

역사적인 존재라고 할 만큼 전통춤의

진수를 전승시킨 인물이다

그러면 우봉 이매방이 어떤 계기와

학습과정으로 전통춤의 대부가 될 수

있으며 어떤 춤 일생을 살아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20 21기획특집 2

용연구소를 개설하여 2 3년간 활동을 하였다

그 후 1953년 부산으로 내려가 장홍심이 운영하는 영도에서 함께 연구소를

했으며 부산 제자로는 김진홍 성승민 이도근 등이 있었다 1954년 광주

로 옮겨 국악원을 개설하여 한순서를 조교로 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무용

발표회(1955년 광주극장)를 가졌다 한편 서울에서는 여성창극단 삼성여

성국악단(박옥진 박보아 조양금 3인) 등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다시 1955

년 부산으로 내려가 초량동에 자리 잡고 첫 발표회를 대영극장(1957년)에서

하였다 그리고 서울에서도 1959년 원각사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당시의 이매방의 춤 활동은 전국적으로 목포 대구 부산 광주 서울이

었지만 주 근거지는 사실상 부산무용가협회 정회원이었으며 1957년과

1958년에 부산공연을 올리며 1960년대 말까지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

1960년대는 많은 무대를 누비면서 점차 춤 레퍼토리를 확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이매방은 삼고무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창작하였으

며 그 후 5고무 7고무 그리고 9고무와 11고무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lt초립동gt lt화랑무gt lt검무gt lt장검무gt lt박쥐춤gt lt흥춤gt lt무당춤gt lt장고

춤gt lt학춤gt 등을 정립하였고 늘 추어온 lt승무gt lt입춤gt lt검무gt 등과 함

께 추었다 이매방 승무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연구소를 서울로 옮겨

오늘날까지 서울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매방은 lt보렴승무

gt lt삼현승무gt lt살풀이춤gt lt검무gt lt입춤gt lt한량무gt lt태평무gt lt흥

춤gt lt장검무gt 그리고 lt장고춤gt 등도 lt승무gt와 함께 끊임없이 연마하여 왔

다 그러한 이매방의 춤예술 정립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예능적 기술이 뛰

어났기 때문이었다

승무 살풀이춤 인간문화재와 국무(國舞)로 추앙

이매방이 서울무용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중앙대 교수이

며 문화재 위원이었던 정병호에 의해 1977년 7월 30일 서울 YMCA에

서 열린 한국전통무용발표회에서 승무를 발표하면서였다 아울러 그때

까지 한성준류의 한영숙 승무에 매료되었던 이들에게 새로운 유파의 승

무가 있음을 신문지상을 통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무대에서의 성공

은 이듬해 1978년 3월 세계민속예술제 한국대표로 프랑스 렌느시에 참

가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이매방 춤판의 최고 결정판은 lt북소리gt 시리즈였다 1984년 6월 이매

방 무용인생 50주년 기념공연 lt북소리gt(문예회관 대극장) 1985년 6월

이매방 전통무용 lt북소리 Ⅱgt 1990년 rsquo90 북경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

전 참가와 lt북소리Ⅲgt(호암아트홀) 그리고 1994년에 춤인생 60년을 정

리하는 lt북소리 Ⅳgt였다 또한 전통예술의 보급과 선양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결과로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1984)과 성옥문화상 문예부문 대상

(1995)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병호 문화재위원의 끈질긴 노력으로 1987년 7월 1일 이매방은 중요무

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명실상부한 명무의 대열

에 서게 되었다

이어 1990년 10월 10일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도 인정받아 전

통춤의 최고 명인으로 추앙받게 되었으며 수많은 한국무용가들이 이매

방류 춤을 전수받기 위해 구름같이 모이게 되었다 그 후 1996년 인생70

고희기념공연 1997년과 98년 일본공연과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2007년 lsquo우봉이매방팔순기념공연rsquo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으며

매년 제자들과 함께 정기공연을 하였다 전통춤경연대회 및 300여 명에

이르는 승무와 살풀이춤 이수자들과 제자들의 공연에도 찬조출연과 반주

를 직접 해주는 열정을 최근까지 지속하였다

이매방 춤의 무용예술적 가치

이매방의 춤에서는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호남제 시나위 춤사위로 짜여져 있

다 춤기법의 중심은 대삼소삼(大杉小杉) 비정비팔(比丁比八) 양우선(兩雨線)

비디듬 좌우걸이 완자걸이 잉어걸이 지숫기 등으로 곱고 아름다운 사위와

자태를 자아내고 한을 신명으로 풀어내는 정중동의 몸놀림이 배어 나온다

결국 이매방 춤은 호남 지방의 권번에서 추어왔던 춤사위 기법이지만 많

은 세월이 지나면서 스승들의 춤을 뛰어넘어 아무도 넘겨볼 수 없는 국무

(國舞)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이매방의 일생을 통해 그가 가진 춤의 예

술적 가치를 요약하면

첫째는 남자이면서도 여성보다도 더 곱고 섬세한 기방계통의 lsquo춤바디rsquo와

여성적 lsquo춤속rsquo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호남지역의 명무들로부터 뼈대 있는 전통춤을 다양하게 전수받아

호남춤의 정통성을 확립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과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춤의 천재이기 때문이다

넷째 현대교육개념으로 볼 때 어린 나이부터 춤의 조기영재교육을 받았

기 때문이다

다섯째 세계적인 경극과 춤의 명인 매란방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예술혼

을 불태우고 인생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80평생 춤추는 것 외에는 남자로서 어떤 직함도 직책도 직업도

가진 바 없이 오로지 춤만 추어온 외길 인생이기 때문이다 춤이 곧 이매

방의 삶이며 생명이며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일곱째 호남지역춤과 기방계통춤이라는 lsquo국지성rsquo에서 출발하였지만 경향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범한국적 전통춤의 lsquo국가성rsquo으로 거듭났으며 국제무

대에도 우리 전통춤의 lsquo세계성rsquo을 알리고 확인하는 독창성과 보편성을 지니

고 있었다는 점 등이 이매방 춤이 가지는 예술적 의의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매방은 1927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민족 수난 속에서도 춤을 배

웠고 해방과 6middot25전쟁 통에서도 오로지 춤만을 추었고 외래문명의 홍

수와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꿋꿋이 춤만 추어 한국 전통춤의 위상을 높였

고 세계 속에 한국춤의 지평을 열어 대한민국 시대의 전통춤 패러다임을

구축하였기에 국무적 존재로 인정받아 온 것이다

1970 2004 2008 2012

22 23

양종승 (우봉이매방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middot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하늘이 내린 춤꾼 宇峰 이매방 선생님을 追惜하며

춤을 위해 태어나 평생 동안 춤만을 사유하였던 우봉(宇峰) 이매방(李梅

芳) 선생님께서 2015년 8월 7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승천하셨다 선생

님은 1927년 5월 5일(음력 3월 7일) 새벽 동이 틀 무렵 목포에서 이경

율과 조병림 사이의 10형제 중 막내둥이로 태어났다 5남매는 일찍이

죽고 남은 3남 2녀 중 막내로 성장하였다 선생님 아명은 집안 돌림자에

따라 영길(永吉)이었지만 스님께서 귀한 아들이라고 하여 귀태(貴泰)로

개명해 주었다 오기된 호적에는 규태(圭泰)로 되어 있다 매방(梅芳)이

라는 이름은 중국 경극의 명인 매란방(梅蘭芳)의 첫 자와 끝자리를 따 예

명으로 불리었는데 1986년 호적을 개명하여 본명이 되었다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춤에 소질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서 성장하였다 결국 옆집 살던 권번장 함국향 권유로 목포 권번에 들어가

당대 소리 북 춤 등에 대가들이었던 이대조 이창조 박영구 진석산 등

에게 승무 검무 살풀이춤 등 전통춤을 학습하였다 선생님의 무용활동

은 목포 공립 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 승무로 출연

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이후 1953년 광주에서 첫 개인발표회를 시

작으로 무용인생 50주년 65주년 70주년을 비롯한 수많은 국내외 공연

을 펼쳤다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1990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가 되었다 그리

고 2014년 승무 및 살풀이춤 명예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한국무용협회 고

문 한국국악협회 고문 한국전통춤협회 고문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

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국무 우봉이매방 화보집』을 발간하였다

이매방 선생님 장례식은 2015년 8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서울삼

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문화예술인 葬]으로 치러졌다 목포문화예술회

관 내에 있는 이매방춤전수관에도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우봉이매방장

례위원회가 구성되어 공동장례위원장을 김종규 한국문화유산신탁 이사

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이경동 한국문화원연합회 회장 김복

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하철경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 김

덕수 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이사장 김진홍 부산시 무형문화재 동

래한량무 보유자 김정녀 중요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전수조교 채상묵

한국전통춤협회 이사장 국수호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등 10명이 맡

았다 장례집행위원장을 양종승 우봉이매방춤보존회 수석부회장 장

례집행부위원장에 김덕숙 김효분 박종필 오은명 최창덕 황순임

등 우봉이매방춤보존회 부회장 6명이 맡았다 장례위원은 김묘선 오

미자 박소림 이길주 송재섭 정영례 최희진 한혜경 김리혜 김은

희 한명옥 진유림 채향순 강성민 백경우 김정기 등 제자 215명이

맡았으며 목포분향소 공동장례위원장은 임점호 목포신안예총회장과 박

수경 목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맡았다 장례의전은 국가공인장례지

도사 유재철 황근식이 진행하였다 유족으로 미망인 김명자(전통무용

가 승무 및 살풀이춤 전수조교) 딸 이현주(전통무용가 승무 및 살풀

이춤 이수자) 사위 이혁열(연극인) 등이 있다

추모식 전경선생님 영전에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을 추서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

부 장관은 일평생 우리 춤 전승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며 문화

융성과 전통예술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공적을 기렸다 또한 이매방 선

생님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깊은 애

도와 함께 목포가 낳은 문화예술계의 큰 별이셨던 선생님은 우리나라 전

통예술의 표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외에 박민권 문화체육관광부 제1

차관 나선화 문화재청장 김해숙 국립국악원장 서도식 한국문화재재

단 이사장 이문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 등 정치계 문화예술

계 등 각계 인사들과 수많은 무용 가족들이 조문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추모식은 2015년 8월 9일 일요일 오후 7시부터 9

시까지 2시간 동안 삼성서울병원 영결식장에서 유가족 지인 각계인

사 제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덕택 운현궁 예술감독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민의례 고인에 대한 묵념 양종승 장례집행위원장의 고

인 약력보고 공동장례위원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공동

장례위원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이사장 공동장례위원장 김복희 한국

무용협회 이사장 등의 조사 제자를 대표한 채상묵 공동장례위원장의

추도사가 있었다 동영상으로 고인의 생전 활동과 육성을 보고 들은 후

유가족을 비롯한 지인 문화예술계의 인사 제자 등의 헌화 및 분향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안숙선 명창의 이별가와 김영임 명창의 회심곡 중

저승 가는 길이 헌가로 받쳐졌다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 보

유자 박병원 전수조교 송순단과 박미옥 등이 주관하는 추모굿과 이광

수 명인의 헌가가 올려졌다 다음날 오전 7시 30분에 발인식이 행해졌

고 오전 9시에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이 이루어졌다 유해는 경기도 광

주시 오포읍 시안가족추모공원에 봉안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에서 초제를 시작으로 49재가 진행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금세기 하늘이 내린 명무였다 그리고 근현대 문

화적 격동기 속에서 우리 춤을 꿋꿋이 지킨 민족춤 계승자로서 주어진

소임을 완수하였다 그래서 선생님의 예술 생애와 그가 전승해 온 민족

춤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큰 가치를 지닌다

주지하다시피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한국 전통무용 진가를 표방

하는 고단위적 한민족 춤 유산으로써 조선 중엽 이후 불교의식 민속놀

이 유랑예인연희 무속신앙 등과 어우러져 계승 발전되어 왔다 그와

더불어 민중의식을 담아 애환과 기쁨을 표상하는 춤으로써 위엄 있고 격

조 있는 춤으로 승화되었다 그래서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무용 예술적

가치와 업적은 위대하고 광활하다 무용평론가 강이문과 무용학자 이병

옥 교수는 이매방 선생님을 國舞라 칭했으며 문화계 많은 인사들은 신이

내린 춤꾼이라 호평하였다 이러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우봉 이

매방 선생님 금자탑에서 빛나는 것은 다름 아닌 기왕 흩어져 내동댕이쳤

던 민족 춤의 뿌리를 살려내어 우리 시대 진정한 무용예술로 승화시키고

국가의 민족유산으로 갈고 다듬은 것이었다 이는 탈 식민지적 화두가 -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다큐멘터리 중 이매방 인터뷰 -

살풀이춤은

즉흥무이다 승무

검무 법무를 다

배우면 자기 멋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수판을 잘라야 한다

가락도 춤 승무 가락

검무 가락 이런 거

섞어서 장단 맞춰서

자신의 감정 음악

듣고 음악이 슬프면

슬픈 표정으로

즉흥적으로 추는 춤이

즉흥무야

24 25기획특집 3

본격화되던 20세기 초중반 우리 것에 덧씌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구

를 벗겨내려는 문화 민족주의적 활동의 한 면이었다 서구 중축의 지배

담론을 탈피하면서 그동안 왜곡되고 전도된 관점에서 벗어남으로써 민

족춤에 비문명적이라는 멍에를 씌었던 편협한 지식층의 문화보기 탈각

운동의 한 면이었던 것이다 시기는 일본제국주의의 한국민족문화 말살

정책 해방 후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교육정책의 서구 지향적 패러다임

등장 도시화middot산업화middot현대화에 따른 전통문화 멸시 및 천시 등으로 인

해 민족예술이 단절 위기에 처했었던 그때였다 또한 현대 산업화에 따

른 근대화론 지향의 국책 하에서 민족예술을 진부하거나 불필요한 것으

로 치부하는 풍조였던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우리의 것은 외래의 것에 밀리거나 일방적으로 시비 당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빼앗기는 패배의 싸움판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던 그 상황 속에

서 선생님은 묵묵히 그리고 꿋꿋하게 우리 춤을 지켜 내셨다 우리네 전

통춤은 비합리적이고 가치가 없으며 저급하고 미천한 것으로 저평가되

돼 전승의 단절까지 치닫게 된 상황 속에서도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우

리 춤 계승하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의 춤을

옥석으로 다듬어 세상에 펼쳐 보임으로써 민족 무용예술의 가치를 되살

리는데 평생 힘써 왔었다 결국 어려운 역경과 피나는 고난을 헤치고 일

어난 선생님의 예술세계는 살아 숨 쉬는 민족 춤으로 꽃 피어졌다 향토

춤 민족춤 전통춤 속에 내재된 민중들의 예술적 사상과 정신이 북돋아

나 전통문화복원 민족문화재건 향토문화복구 등과 함께 형성된 민족

문화바로세우기운동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춤은 밖에

서 유입된 외래의 것과는 달리 이 땅에 자생적으로 자라온 민족 춤 뿌리

로 각인되면서 한국무용예술사에 독창적 고귀성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

리고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와

1990년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국민의 춤꾼으로 안

착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 계보를 따지고 올라가면 신방초(申芳草 남)라

는 인물이 있다 전남 옥과 출신인 그는 1817년 무속집안에서 태어난

재인으로 어정판에서 바라지로 활동하였다 춤은 물론이고 육자배기

가곡 가사 장단에 능하여 호남 일대에서 대단히 명성이 높았다 그래

서 당시 호남의 유명 당골들은 그를 모셔가기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였

다고 한다 신방초는 자신의 춤을 같은 고향 출신 신영수(남)에게 전했

다 이후 고창 출신 안두온(남)에게로 이어졌고 다시 순창 출신 이정선

(남)에게 전수되었다 이정선은 춤뿐만 아니라 북놀이에도 뛰어난 재능

을 갖고 있었던 예인이었으며 판소리도 잘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상당

한 대접을 받았다 이정선의 춤은 목포 출신 김금옥(여)과 박귀주(여)에

게 이어졌다 그 후 이매방 선생님의 스승 박영구 이대조 이창조 진

석산 등에게 전수되었다 박영구(남)는 전남 화순 출신으로 승무와 북놀

이의 명무 명인이었으며 광주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대조(남)는 전

남 무안 출신으로 승무의 대가였고 목포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창

조(남)는 전남 능주 출신으로 검무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고 역시 광주 권

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그리고 진소홍(일명 진석산 여)은 전남 담양 출

신으로 서울 인사동에서 요릿집을 운영하면서 살풀이춤을 전승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춤에는 엄격한 억제와 철저한 절제가 존재한다 이

는 수단에 의해 보이는 기교면서 또한 재간으로 처리될 수 있는 예술적

기법의 한 면이다 선생님의 춤은 또한 느낌과 감정의 표현 방식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느낌에서는 가벼움과 무거움 재빠름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이매방 승무-필자 양종승 제공팔순 기념공연-필자 양종승 제공

과 더딤 흐늘거림과 꼿꼿함 섬세함과 우람함 정교함과 장중함 등의

변화무쌍한 표현력을 가진다 감정에서는 슬픔과 기쁨 가냘픔과 뭉뚝

함 애석함과 환희 괴로움과 기쁨 고요함과 시끄러움 등이 묘사되는

데 이는 삶의 고뇌와 애환은 물론이고 희망과 행복을 감싸고 있음을 말

한다 이러한 춤에 있어서의 느낌과 감정은 비정비팔 비디딤 까치걸

음 잉애걸이 좌우걸이 완자걸이 안가랑 등의 발디딤새와 양우선

평체 사체 등의 손놀림새 그리고 연풍대 지숫기 다루치기 대소삼 등

의 몸굴림새 속에서 표현력을 한층 고조시킨다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

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

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

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길이

길이 민족 춤 기틀로 명명되어 질 것이다 천기를 타고난 춤꾼 신들

린 듯한 춤으로 관객을 홀렸던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이제 천상

무대로 가시어 휘날릴 것이다 선생님 기어이 춤과 함께 홀연히 떠

나셨으니 부디 부디 영면하옵소서

추모식 전경

26 27

전경욱 (고려대학교 교수)

동아시아의 가면극1 중국 귀주성 위녕현의 〈춰타이지(撮泰吉)〉 가면극

풍농과 악귀 쫓기를 위해 기원하는 제의의 일부

2 한국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서낭신인 각시가

무동을 탄 모습

3 일본의 미야자키현(宮崎県) 시이바손(椎葉村)의

〈다케노에다오가구라(嶽之枝尾神楽)〉

4 《봉사도》제7폭 모화관에서 행해진 중국사신

영접행사의 연희장면 산대(왼쪽) 앞에서 연행된

줄타기 물구나무서기 접시 돌리기 가면극 등의

전문적 연희

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에서는 가면극 분야에 대해 보

유자와 단체를 모두 지정하고 있으니 일본보다 지원이 좋은 편이다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을 민간문학 민간음악 민간무용 전통희극

곡예 잡기와 경기 민간미술 전통수공기예 전통의약 민속으로 분류

하여 지정하고 있다 중국 가면극인 나희는 전통희극 분야에 해당한다

한국에는 현재 국가 지정의 중요무형문화재 가면극 13종목 각 시도의

무형문화재 가면극 2종목(진주오광대와 퇴계원산대놀이)이 있다 중국

은 그동안 전통희극 분야에 430개 종목을 지정했는데 여기에 나희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노(能)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중요무형

민속문화재의 민속예능 분야에 35개의 가구라(神樂)를 지정했다 이 가

구라들은 대부분 민간의 가면극이다

Ⅱ 동아시아 가면극의 역사와 계통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면극은 매우 유사한 발전 과

정을 보인다 동아시아에는 (1)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과 (2)전

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이 있었다 (1)은 각 지역의 향촌제사

활동(鄕村祭祀活動)에서 연행되던 것으로서 각각 자생적 향토적 성격

을 띠고 있다 그러나 (2)는 산악(散樂) 또는 백희(百戱)라고 불리던 동아

시아 공동의 연희들이 발전하여 성립된 것으로서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함께 각국의 독자성을 띠고 있다

1 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하회별신굿탈놀이나 강릉관노가면

극처럼 향촌제사활동인 마을굿에서 유래하여 발전해 온 가면극들로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전승해 왔다 이 가면극들은 다른 지방의 가면극과

는 아주 다른 독자적 내용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가면극들이 마을굿에

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도판 1)

중국의 나희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지만 후대에는

그것이 민간에 전파되어 각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도 전승되고 있다 그

리고 중국 한족을 비롯하여 소수민족들에는 여러 향촌제사활동에서 유

래하여 그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가면극들도 있다(도판 2)

한편 일본의 고유 신앙을 섬기는 신사(神社)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연예술

인 가구라(神樂) 중에는 자생적인 민속가면극의 예를 보여 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국의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방마다 차이가 크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도판 3)

2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생겨난 가면

극이다 본산대놀이는 삼국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산악middot

백희 그리고 상고시대의 제천의식 등에서 연행되던 전문적 연희자들의

연희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해 형성된

것이다 산악middot백희를 놀았던 사람들은 그 연희 내용으로 볼 때 삼국시

대부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연희자였으며 이들의 후예가 통일신라시

대에 최치원의 시 lt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gt에 묘사된 다섯 가지 연

희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계승된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연행

된 가무백희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나례에서 연행된 산

대희 등을 놀았다 그리고 중국 사신 영접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

희를 펼치던 반인들이 18세기 전반기에 산악middot백희 계통의 연희와 기존

의 가면희들을 재창조해서 본산대놀이를 성립시켰다 이 가면극은 애오

개(아현) 사직골 구파발 녹번 등에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봉사도(奉使圖)》(1725년) 제7폭은 서울의 모화관 마당

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행사의 연희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접시 돌리

기 땅재주 줄타기 탈춤을 묘사하고 있다 마당의 오른쪽에는 산거(山

車)middot산붕(山棚)middot윤거(輪車)middot예산대(曳山臺)middot예산붕(曳山棚) 등으로 불

렀던 소규모의 산대가 보인다 바로 이런 산대 앞에서 공연하던 연희들

을 lsquo산대희rsquo라고 불렀다 특히 세 명의 땅재주꾼 양 옆에서 각각 두 명씩

모두 네 사람이 초록색과 남색의 가면을 쓰고 탈춤을 추고 있다 이는 서

울에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가면극이 있었고 그 가면극을 애오

개산대놀이 등 산대놀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전해준다(도판 4)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경기도의 송파산대놀이middot양주별산대놀이 황해

31 2

Ⅰ 동아시아 가면극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우리는 가면극을 탈춤 탈놀이 가면희 등으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가

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儺戱)라고 부

르는데 이는 중국 가면극들이 대부분 나례에서 연행되던 연희인 나희

로부터 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무형문화유

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middot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부터 한국은 1964년부터 중국은 2006년부터

무형문화재를 국가 차원에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

의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용어로 lsquo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rsquo이라

는 말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의 기예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lsquo보유자rsquo로 인정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lsquo전승인(傳承人)rsquo 일본에서는

lsquo보지자(保持者)rsquo라고 부른다

중국은 이제 막 무형문화재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작했지만 각 지역에

서 자기들의 무형문화재를 국가 지정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으로 등재하기 위

한 열기는 매우 뜨겁다 그리고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과 관련된 행사나 학술

대회도 자주 개최하고 있다 필자는 매년 중국의 가면극학회인 중국나

희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는데 가면극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들에서

는 이 학회를 유치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현지 답사를 통해 자기 지

역의 가면극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국가 지정의 무형문화재를 (1)중요무형문화재(연극 음

악 공예기술 등)와 (2)중요무형민속문화재(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

행사 등에 관한 풍속관습 민속예능)로 구분하여 지원한다 그래서 연극

분야 중 노(能) 가부키(歌舞伎) 등은 (1)에 해당하고 각 지방의 가구라

(神樂)는 (2)의 민속예능에 해당한다 (1)은 전문적인 연희자들이 전승하

는 종목으로서 그 기middot예능을 보유한 사람과 단체를 모두 지정한다 그

러나 (2)는 단체만 지정하고 보유자는 지정하지 않는다 이를 한국에 적

용하면 판소리는 (1)중요무형문화재(음악)에 가면극은 (2)중요무형민

속문화재(민속예능)에 해당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한국의 가면극들

은 대부분 각 지방에서 세시풍속의 하나로서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

日韓 中

4

28 29무형문화재 삼국지ㆍ예능

도의 봉산탈춤middot강령탈춤middot은율탈춤 경남의 수영야류middot동래야류middot통

영오광대middot고성오광대middot가산오광대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

본산대놀이는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했지만 여기에서 전파된 별산대

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 등은 농민 하급관속 무부(巫夫) 등 각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중국 가면의 역사에서 가면의

효시는 나례에 등장하던 방상시(方相氏) 가면이다 이 나례에서 연행되던

각종 연희와 가면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면극이 생겨났기 때문에 가면

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다른 계통의 가면은 육조(六朝)시대 이후 산악middot

백희에 사용되던 것으로 이는 서역악무(西域樂舞)의 영향을 받은 외래

기원의 가면이다 현재도 중국에는 귀주성의 나당희처럼 무당집단이 전

승하고 있는 나희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들은 전문적 연희자인 셈

이다(도판 5)

일본의 가면극은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서 육성된 가면극과

서민층에 의해 육성된 가면극이 있다 전자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예술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데 기가쿠(伎樂)middot

부가쿠(舞樂)middot교도(行道)middot노(能)middot교겐(狂言)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

데 노와 교겐은 특히 산악middot백희와 밀접한 관련 아래 성립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문화인 산악middot백희가 일본에 유입

된 이후 변화middot발전하여 후대에 일본의 대표적 전통연극인 노가쿠(能

樂)middot노쿄겐(能狂言)middot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middot가부키(歌舞伎) 등 전통연

극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산악middot백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 연희를 발전시켜 lsquo나희

(儺戱)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켰고 일본에서는 사루가쿠(猿樂) 즉 산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lsquo노(能)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킨 것처럼 한국에서도

중국 사신 영접 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반인(泮人)들이

lsquo본산대놀이rsquo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Ⅲ 동아시아 가면극의 연희 내용

한국의 가면극은 벽사적 의식무과장 파계승과장 양반과장 영감할미

과장 등 서로 다른 내용의 과장들로 짜여진 소위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

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면극을 탈춤이라고 부를 정도로 춤이 많

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춤사위가 매우 뛰어나다(도판

6) 일본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가구라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짜인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나희와 일본

의 노는 대부분 하나의 가면극이 하나의 서사적 내용으로 짜여 있다

이러한 서사성의 나희와 노도 또한 서로 차이점을 갖고 있는데 노는 lsquo현

재노(現在能)rsquo와 lsquo몽환노(夢幻能)rsquo가 있어 특징적이고 나희는 주로 노래와

대사에 의해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lsquo현재노rsquo는 현재형으로 사건이 전개

되는 노를 말한다 lsquo몽환노rsquo는 나그네(조연자인 와키가 분장)의 꿈 속에

망령이나 화신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몽환노에

서는 시간이 자유롭게 정지하고 역행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도 자유롭게

등장할 수가 있다 주연자는 고전 속의 미녀이거나 역사상 인물일 수도

있고 지옥의 원령이거나 신(神) 불(佛) 귀(鬼) 초목(草木)의 정령이기

도 하다

중국 나희에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 황제 왕 일반인물

등 배역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연희 내용도 의식적인 춤을 제외

하면 대부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를 연극화

하여 공연한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 가면극에서

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이 거의 없고 황제나 왕 같은 존재

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반 인물 위주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연희 내용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주로 현

실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한편 한middot중middot일의 가면 또한 각국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middot중middot일 가

면의 형태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 윗부분에 있다 한국 가면은 얼굴

의 이마 부분까지만 표현하고 있다 일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경우에

도 간단한 선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

을 안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낸다 모자를 쓰는 배역은 별도의 모자를 착

용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의 귀면(鬼面)인 팔먹중가면을 보면 오로

지 안면의 표정에 의해 무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 노나 가

구라의 가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가면은 대부분 머리 부분과

얼굴 부분을 모두 이용해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한다 가면 자체에

머리 부분의 모자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도판 7)

그리고 한middot중middot일의 음악적 선율과 장단이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음악에 맞춰 연기하고 춤을 추는 연희자들의 동작과 춤사위는 각국

가면극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

5 중국 귀주성 덕강현의 무당들이 공연하는 가면극인 〈나당희(儺堂戱)〉

6 춤사위가 매우 뛰어난 〈봉산탈춤〉의 팔먹중춤

7 중국 안휘성 지주의 나희 〈유문룡〉 가면 자체에 모자를 장식

7 5

6

30 31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충남middot서울시 문화재위원)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도판4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양푸시(楊福喜) 201598 필자 촬영

도판5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권영학 보유자 2015821 필자 촬영

도판6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故 김박영 보유자 서헌강 촬영

도판1 활 쏘며 수렵하는 장면 고구려 무용총

도판2 중국 고대 활과 화살 및 활쏘기 장면 전국시대 초(楚) 동호(銅壺)

도판3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일본

Ⅰ 한민족과 활

한국인에게 활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민족과 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중국인이 우리 민족을 부르

는 명칭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이다 lsquo이(夷)rsquo라는 글자는 큰 대(大)자

와 활 궁(弓)자가 결합되어 있다 동이라는 글자를 곧이곧대로 풀어보면

lsquo중국의 동쪽에서 살며 큰[大] 활[弓]을 잘 만들고 쏘는 민족rsquo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 미루어 이미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우

리 한민족이 그들 한족보다 활을 잘 다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반인뿐 아니라 왕도 활을 잘 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적 인물로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lsquo활 잘 쏘는 이rsquo의 대명사로 기

록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쏘았으며

사도세자의 아들로 유명한 정조 또한 활을 잘 쏜 국왕으로 기억된다

조선에서 활쏘기를 잘했던 이유는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심신을 단련

하는 육례(禮 樂 射 脚 書 數) 중 하나로 활쏘기가 장려된 데에도 원

인이 있다 조선에서는 국가 의례로 활쏘기 행사를 거행하였다 왕과

신하가 활 쏘는 대사례(大射禮)는 1477년(성종 8) 1534년(중종 29) 및

1743년(영조 19) 1764년(영조 45)에 군신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였다 한편 지방의 양반 사족들은 향약과 비슷한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양국의 활은

기본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청나라 시대의 그림을 보면 조선 말기 19세기에 활

을 쏘는 그림과 비교가 된다 두 나라의 사수(射手)는 각각 청나라와 조

선의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른 편이다 더욱

이 양자가 활을 쏘는 모습은 공통되면서 부분적으로 다르다 그림 속 중

국의 활은 150cm 정도여서 1m 안팎의 한국 활보다 길이가 긴 점이 다르

다 막상 양자에서 동시에 화살을 쏘면 날아가는 비거리는 후자가 훨씬

긴데 이렇게 그림에서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몇 년 전

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lt최종 병기 활gt이다 시대 배경은 병자호란 당

시 청나라 무사와 조선의 사수가 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영화화한 것

이다 비록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다소 활의 효능이 과장되긴 했지만

두 나라 활의 특징과 조선 활의 장점을 극명하게 잘 그려내어 흥미롭게

본 기억이 새롭다

한편 양국과 비교되는 것이 일본의 활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활은 전

체 길이가 220cm가 넘는 세계 최대 길이의 활이다 16세기 조선의 『난

중잡록』에 의하면 일본의 화살은 lsquo장편전(長編箭)rsquo이라 하여 여러 나라의

화살과 비교해서 일본의 화살이 매우 크다는 기록으로 이미 조선에서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활을 사용하는 일

본에서는 활을 잡는 위치도 특이하다 일본의 활은 장대하기 때문에 위

쪽이 길고 아래는 짧아서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그림을 보면 매우 긴 활

의 아래쪽을 잡고 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활

은 ldquo화살은 길지만 먼 곳까지는 날지 않는다rdquo라고 13세기의 몽고인이

기록하고 있어 비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가마쿠

라 시대에 들어가면 그 중량이 더욱 늘어나 70g에 이르면 길고 무거운

화살을 폭이 긴 활로 쏘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Ⅲ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활과 화살은 조총이나 대포 등과 같은 화기(火器)를 발명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중요했다 이에 각국은 국력을 모아 활과 화살을

제작하였다

이미 고려 때에 중앙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에 각궁장(角弓匠) 전장(箭

匠) 전두장(箭頭匠) 등의 장인을 소속시켜 각궁을 만들었다 또 궁중의

궁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내궁방(內宮房)에도 각궁장(角弓匠)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군기감(軍器監)을 설치 운영하였고 장인들을 소속시켜 활

과 화살을 제작하게 하였다 이들 장인은 다른 기술을 가진 장인과 달리

궁인(弓人)이나 시인(矢人)으로 불렀다 궁인과 시인이라는 명칭은 『논

어』에서 나오며 그들 장인은 다른 물건이 아닌 무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우대하여 부른 것이다 이에 조선은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면

서 궁인 90명 시인 150명을 배정하였다 아울러 이들 장인들은 각 지

방마다 상당수를 배정하였고 이 또한 여타의 다른 장인들에 비하여 많

은 숫자에 해당되었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장색과 규모는 영조대 『속대전』이나 정조대

『대전통편』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국가적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각종 300여 도감마다 수많은 궁인이

나 시인을 징발하여 의례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할 궁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사적인 공방에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김준근의 lt기산풍속화gt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궁창을 앞에 두고

줄과 환으로 일정하게 다듬은 쇠뿔과 뽕나무 등을 옆에 두고 완성된

각궁에 시위를 걸어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있다

청나라 말에 전통 활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lt시궁정력(試弓定力)gt에

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입식 건물 안에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너댓 개

의 활을 만들어 올려놓고 다 만든 활을 과학적으로 무게를 재고 있다

향사례(鄉射禮)를 거행하여 사족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활을 좋아하고 잘 다룬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역

사 동안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다른 종목보다 유달리

활(양궁)을 잘 쏘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한민족의 피 속

에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유전인자 DNA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Ⅱ 유물 속 동아시아의 활

인류는 이른 시기부터 멀리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자 무기로 활과 화살을 개발하였다 이후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

에 따라 궁시를 제작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

하였다 하지만 궁시는 대개 나무나 대나무와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

져 썩어 오래전의 유물을 확인하기 어렵고 단지 흑요석(黑曜石)처럼 단

단한 석제로 만든 화살촉에 의해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정복 전쟁이 빈번해지던 고대부터 무기가 발달하였다 당시에

사용된 활과 화살의 형태는 유물 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전국시대(BC 475~221) 동호(銅壺) 유물

을 보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한편

5세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lt수렵도gt에서 말 위에서 짐승들을

1

32

4

6

5

32 33무형문화재 삼국지ㆍ기능

양국의 활 제작방식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청나라 활 제작 장인 집단

은 북경 동사대가에 있는 궁전대원리(弓箭大院里)에 17가호의 궁전 점포

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squo취원호(聚元號)rsquo이다 이곳에서 중국 전통 활

을 제작했던 장인이 양뤼린(楊瑞林)이며 아들인 양원통(楊文通) 손자인

양푸시(楊福喜)까지 3대가 잇고 있다 양푸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활을 제작하여 2006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

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장인으로 보호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45년 앞선 1971년 9월 13일 전통 활 제작 장인

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으로 지정하였다 서울 황학

정의 장진섭(張鎭燮 1916~1996)은 조부(장문환)와 부친(장기홍)에 이

어 3대째 활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예천의 권영

록(權寧錄 1916~1986)은 부친(권태전 權泰全)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

었다 부천의 김장환(金章換 1909~1984)는 조부(김원재)와 부친(김

동천)의 대를 잇고 한국 제일가는 명사수로서 활동하고 부천 성무정의

초대 사두(1967~1982)가 되었다 그의 기술은 제자인 김박영(金博榮

1929~2011)이 전승하였다 그의 사후 2015년 권영학(1943년생)보유

자가 새로 인정되어 조부(권선복)와 부친(권우갑)의 가업을 이어 그 또

한 3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화살을 만드는 시장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시장)

으로 지정하였다 화살로 유명한 장단에서 나고 자란 유영기(1936년 그런데 세계적으로 강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활은 여기에 화피를 더

하여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물소 뿔(牛角) 쇠심줄(牛芯)

민어 부레풀(魚膠) 대나무 뽕나무(弓幹桑) 참나무 화피(樺皮)가 그것

이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는 각궁은 살

아있는 활이면서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쇠뿔은 통뼈이며 대나

무와 뽕나무 및 참나무가 세부 뼈대이고 그 위에 바르는 쇠심줄은 근

육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부레풀은 연골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다듬는

화피는 피부에 해당된다 이중 물소 뿔과 대나무 및 쇠심줄이 활의 강

도와 탄성을 이루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민

어 부레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은 1년 중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제작하여 계절을 타는 공예품인데 그 이유는 동식물성 재료

들이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아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심이 건

조가 안되고 풀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여름에는 재료를 장만하고 찬바람이 나면 풀을 대와 뼈와 나무를 서로

붙여 정월 경에 건조시키고 3월부터 한 달 이상 해궁 작업을 한다 각

궁은 제작이 까다롭고 단계마다 원칙을 지키고 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

해서 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궁의 핵심 원료인 물소는 주로 아열대 지방인 중국 남부나 인도 및 인

도차이나 등지에 서식하므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여서 중국은 물소 뿔의 수출을 엄격

하게 통제하였고 조선 정부는 그것을 몰래 수입하려고 애썼다 현재

도 각궁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의 수급은 어려움이 많다 물소는 세계적

인 보호동물이어서 물소 뿔을 수입할 때 세관의 통과가 어렵고 쇠심줄

은 근래 많은 소들이 일하면서 근육을 키우지 않고 육우용으로만 키워

져 탄성이 없어 활의 탄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접착제인 민어부

레의 경우 예전에는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근래에는 민어부레가 정

력에 좋다고 그것마저 식용으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한 활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488년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同越)은 ldquo조선에서 사용하는 화피궁은 중

국의 제도에 비하여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rdquo라

고 평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활은 중국 것보다 작으나 탄

성이 크고 강하다 우리의 시장들은 대나무로 화살대[矢幹]를 만들고

쇠로 활촉(雛)을 끼우며 수리깃으로 화살깃(矢羽)을 만든다 반면 중국

의 장인은 죽시와 함께 유목(楡木)으로 목시(木矢)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활은 대나무와 나무를 한데 결합한 복합궁이다 일본의 활

은 2m 이상으로 길고 무거워 탄성이 적어 근거리에는 위력이 높은 대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이면서 한middot중middot일

삼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각궁은 한국 장인들의 솜씨가

표출된 우수한 전통 공예기술로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생)는 조부(유창원)와 부친(유복삼)에 이어 3대를 잇고 그 아들 유세

현과 유승현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단 근처 원당에서 나고 자

란 박호준(1944년생)은 조부(박희원)와 부친(박상준)에 이어 3대째 가

업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김종국(1940년생)은 스승인 조명제(趙命濟

1915~1980)가 조부(조성관)와 부친(조면보)의 대를 이었던 것을 본받

아 예천에서 화살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12월 14일 부천활박물관을 세웠고 파주에는 유영기

보유자가 만든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반면 중국에는 2012년 신강의

이리에 성급(省級) 비물질문화재로 등록된 이청강(李靑岡)이 중화활문화

박물관(中華弓文化博物館)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로 활을 지

정하지 않아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이 전통적(傳統的) 공예품

(工藝品)으로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을 지정하였다 미야기현(宮崎県)에 위치

한 미야코노조(都城市)에 7대째 120년 전통의 활을 제작하는 활제작소

[楠見藏吉 弓製作所]가 위치하고 있다

Ⅳ 활과 화살의 재료

활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의 『고공기』에 의하면 나무[干 柘 橘 桑 木

瓜 竹 荊 등] 심줄[筋] 풀[膠 말 소 사슴 물소] 뿔[쇠뿔] 옻[漆]

명주실[絲]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은 뿔을 주재료로

삼은 각궁(角弓)인 것을 알 수 있다

도판10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故

김박영 보유자 제작 각궁(角弓)

도판11 중국 양푸시(楊福喜)가 제작한 활

1m 60cm

도판12 중국 양푸시(楊福喜) 화살[箭]

위 2개 느릅나무[楡木] 3번째

목전(木矢) 아래 2개 죽시(竹矢)

201598 필자 촬영

도판13 일본 미야기현(宮崎県)

미야코노조(都城市) 120년 전통

楠見藏吉 弓製作所

httpjotaro-gocomcollect2980

도판14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

지정(指定) 전통적(傳統的)

공예품(工藝品)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

httpjotaro-gocomcollect2980 참고

도판7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종국(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9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박호준(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7 8 9

11 10

12

13 14

34 35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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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er T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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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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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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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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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3

2425

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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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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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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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

식 0

2ndash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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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6: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궁 약 한 시간여를 달린 버스는 먼저 행궁 앞에 참가자들을 내려줬다

창덕궁과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은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행궁을 찬찬

히 둘러보았다 행궁의 뒷벽에는 lsquo정조대왕화성능행반차도rsquo1)가 전시

되어 있어 참가자들은 정조의 능행의 이유와 수원 화성과 행궁의 건

립 목적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하는 표정이었다

행궁 답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십여 분 정도 이동해 프

로그램의 마지막 목적지인 수원 화성 장안문 앞에 내렸다 잘 쌓아올려

진 수원 성곽을 전부 다 돌아볼 수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시간의 제약

때문에 참가자들은 장안문과 화홍문 방화수류정 등의 장소를 돌며 아

쉬움을 달래야 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방화수류정에서 내려다보

이는 아름다운 풍광에 참가자들은 저마다 신난 얼굴로 열심히 기념사진

을 촬영했다

오전 9시 30분에 시작된 프로그램은 저녁 7시가 넘어 아침에 출발한

장소인 은평구 다문화지원센터에 도착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하

루 종일 진행된 프로그램에 참가자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래도 한국의 역사와 세계유산에 대해 배워간다는 생각에 뿌듯한 표정

이었다

2015년 세계유산 연계체험은 10월에 4회 11월에 3회로 앞으로 총

7회가 더 남아있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문화의집KOUS 세계

유산 연계체험을 통해 우리의 세계유산을 접했으면 한다

를 통해 모집된 31명의 다문화가족이다 이들은 김숙희 문화유산해

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하루 동안 창덕궁과 화성 일대를 돌아보는 체험

을 했다 무더운 날씨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답사에 지칠 법도 하건

만 참가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쉽고 친절한 설명에 외국인 엄마들과

아이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끊임없이 반짝거렸다 모두들 아름다운 궁

궐과 화성의 모습에 궁금한 것이 많은 듯 열심히 전각들을 구경하고

질문하며 기념사진을 찍는 등 이번 체험을 100 즐기는 모습이었다

취재를 위해 따라간 필자 역시 기존에 알던 장소들이지만 lsquo조선의 정

궁과 행궁rsquo이라는 주제에 맞춰 설명을 들으니 그 장소들이 달리 보여

새로웠다

프로그램은 크게 오전과 오후 일정으로 나뉘어졌다 오전 9시 30분에

은평구 다문화지원센터에 집결한 참가자들은 버스를 타고 첫 답사장

소인 창덕궁으로 이동했다 참가자들은 문화유산해설사의 안내에 따

라 궐내각사를 시작으로 창덕궁 인정전 희정당 대조전 낙선재 등을

두루 둘러보았다 각 전각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정조임금과 관련된

이야기까지 곁들인 해설에 참가자들은 지루한 기색 없이 해설사의 설

명을 경청했다 특히 어린 참가자들은 대부분 아직 유치원생임에도 불

구하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며 큰 관심을 보였다

오전 창덕궁 일정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근처 맛집으로 이동해 설렁탕

으로 보신을 한 후 다시 버스에 올랐다 오후 목적지는 수원 화성과 행

1 창덕궁 세계유산 지정 표지석

2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에서 내려다본 전경

3 수원 화성 성곽

4 김숙희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참가자들

2015년 세계유산 연계체험 잔여 일정표

1) 조선 22대 왕 정조가 어머니 경의왕후(敬懿王后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하여 아

버지 장헌세자(莊獻世子사도세자)가 묻힌 화성 현륭원(顯隆園)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정조대왕화성행행반차도(正祖大王華城幸行班次圖) 또는 화성행차도

(華城行次圖)라고도 한다 경의왕후의 환갑잔치 내용을 치밀하게 기록한 원행을묘정리

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김홍도의 책임 아래 최득현 김득신 이인문 장한종 허식

등의 자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들이 제작한 목판화가 남아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정조반차도 [正祖斑次圖] (두산백과)

회차 일자 지역 주제 주요 관람지 참가대상

10 102(금)수원

화성

정조대왕의 업적과

발자취 수원 화성 건릉

서대문구

다문화센터

11 1016(금)서울

수원

역사를 통해 배우는

孝사상종묘 수원 화성

강북구

다문화센터

121119(목)

~20(금)

창녕

고성

우리나라의

자연유산 탐방

우포늪

공룡화석지

관악구

다문화센터

131126(목)

~27(금)

익산

전주

백제 역사 문화유산

탐방

왕궁리 미륵사지

입점리고분

답사

우수 고객

141022(목)

~23(금)

공주

부여

백제문화의 제2

중흥기를 찾아서

낙화암 궁남지

공주middot부여역사

유적지구

미정

15 1030(금)서울

여주

조선의 정궁과 왕의

사후 안식처경복궁 영릉 미정

16 116(금)서울

광주(경기)조선의 궁궐과 산성 창경궁 남한산성 미정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운영하는 세계유산 연계체험은 우리나라 세

계유산을 주변의 다양한 유 무형유산과 함께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다 매월 1~2회 하루 또는 1박 2일 코스로 한 가지 주제를 정해 그와

관련된 세계유산을 문화유산해설사의 친절한 해설을 들으며 답사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참가 대상은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유학생

들이나 결혼이주 여성 등의 외국인들과 다문화가정 가족들 소외계층

이다 우리 역사와 세계유산에 대해 다소 생소하게 느낄 수 있는 이들

에게 해설을 곁들인 체험을 통해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해 알리고 있는

공익적 목적의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주 답사 장소는 궁궐 왕릉 사

찰 민속마을 박물관 등 전국에 있는 세계유산 및 세계유산 잠정목록

에 올라있는 문화유산들과 그와 연계된 체험 장소들이다 서울 경기

충청 등 수도권에서 가까운 지역의 경우 당일 일정으로 운영되며 전

라도 경상도의 경우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운영된다 2015년 올해

는 4월 17일부터 11월 27일까지 약 7개월간 15회의 체험 프로그램

이 운영되는데 서울middot경기 7회 충청도 2회 전라도 2회 경상도 4회

로 구성되어 있다 참가 신청은 국내 대학교 어학당 서울시 각 구청

다문화가족센터 등을 통해 접수 받아 단체로 신청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4일 금요일에는 lsquo조선의 정궁과 행궁rsquo이라는 주제 특히 정

조 임금과 관련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서울의 창덕궁과 수원 화성

답사가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의 참가자들은 은평구 다문화지원센터

1

2

3 4

1110

12

한국의집 조리팀장 김도섭

사진

그라피스튜디오

한국의집

가을을 맛보다

뜨거웠던 열기가 식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다

뜨거운 여름을 견디며

건강하게 키운 한 해의

결실을 맺는 가을 식탁은

그만큼 풍성하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가을

가을을 대표하는

건강식재료로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의 영양을

회복해보는 것은 어떨까

1312 한국문화재재단 소식 3

전통 한식을 대표하는 한국의집 김도섭 조리팀장은 조선왕조 궁중음식 전수 장학생이자 한식조리기능장으로서 전통음식의

발전을 위한 레시피 표준화 궁중음식홍보사업 등을 통하여 국내외 전통음식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그는 한국의집뿐만 아니라 문화교류사업의 일환으로 해외 행사에서 요리를 하기도 했다 뭄바이 인도상공회의소 주관 한국의

밤(rsquo13) 태국관광박람회(rsquo12) UAE-한 수교30주년만찬amp리셉션(rsquo10) 등에서 요리를 선보이며 한식 전도사로서의 역할 또한 하고

있다 또한 문화재청장 표창(rsquo08)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표창(rsquo15)을 받은 바 있다

문의 02-2266-9101 wwwkhorkr

조리팀장

김도섭

가온정식 1인기준 35000원 삼색밀쌈과 해물잣즙채 고구마middot알밤죽과 물김치 새우찜과 생절이 버섯불고기와 부추절임 꽃게감정 진지 기본찬 후식

4인기준 조리

가을 낙지골동반 1인기준 25000원 삼색밀쌈과 해물잣즙채 계절죽 전유화와 생절이 낙지골동반 국 무화과 후식

제철 꽃게 대하 고구마로 건강을 담아낸 lsquo가온정식rsquo

lsquo가온정식rsquo은 가을이 제철인 꽃게 대하 고구마 밤을 중심으로 고구

마middot알밤죽과 새우찜middot생절이 꽃게감정으로 구성한 메뉴이다 특히

꽃게감정은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음식으로 고급스럽고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번거로워서 사위를 맞이할 때

나 한 번 만드는 귀한 음식이다 꽃게감정은 제철을 맞은 가을 수게의

살을 곱게 발라내어 소고기와 갖은 야채로 소를 만들어 게딱지에 채워

놓고 국물을 자박자박하게 끓여 만들어 낸 찌개인데 제철 꽃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미와 담백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제철 게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이 많아서 소화가 잘되고

원기회복에 좋다 이 밖에도 키토산이 풍부한 대하 식이섬유소가 풍부

한 고구마 5대 영양소와 비타민C가 풍부한 밤으로 만든 요리는 입맛

을 돌게 하고 원기회복에 도움이 된다

쓰러진 소도 살린다는 가을철 원기회복의 대명사 lsquo가을 낙지골동반rsquo

골동반은 임금님부터 백성까지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한국의집은 가을을 맞이하여 기존 골동반 메뉴에 영양이 풍부한 낙지까

지 맛볼 수 있는 lsquo낙지골동반rsquo을 선보인다

낙지골동반은 오색나물과 살이 충분히 오른 가을 낙지를 올려 시각적 아

름다움과 맛과 영양까지 모두 챙기는 일품메뉴이다 특히 lsquo봄조개 가을

낙지rsquo란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가을 낙지의 맛은 높이 평가된다 또한 낙

지는 피로에 좋은 아미노산과 타우린이 풍부해 인삼 한 근과 비견할 정

도로 몸에 좋은 음식이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철 제철재료로 만든 요리는 그 어느 계절 음식보다 맛

이 좋고 몸에도 좋다 제철을 맞은 엄선된 재료로 만든 한국의집 가을 신메

뉴와 함께라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14 15

1927 2015

宇峰우봉 이매방

춤 한자락에 담긴 삶

한국 춤의 거목 우봉 이매방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lt승무(僧舞)gt 및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lt살풀이춤gt 예능보유자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2가지 종목의

무형문화재를 보유했다

그의 춤과 삶의 흔적을 담아보았다

Master Ubong Lee Mae Bang Korearsquos traditional dance virtuoso passed away on August 7 2015 He was 88 years of age Ubong was one of the key figures in

the modern and contemporary days of Korea Ubong the one who often lauded as a ldquodancer sent from the Heavenrdquo was a master of Seungmu (a form of dance

traditionally performed by Buddhist monks) and Salpuri (a form of dance traditionally performed by Korean shamans to banish evil spirits) designated

as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No 27 and 97 respectively Born in Mokpo Jeollanam-do on May 5 1927 he was discovered and trained by

Han Guk Hyang the headmaster of a Gwonbeon (a form of traditional dance academy in Korea) in Mokpo at the age of 7 This was followed by 8 years of

dance and drum performance training as an apprentice of Master Lee Dae Jo who taught Seungmu Geommu (sword dance) and Gobeop (traditional drum

technique) at the Gwonbeon Throughout his life devoted to dance he garnered great fame as the holder of two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and

trained numerous traditional dancers Ubong Lee Mae Bang passed on to us the quintessence of Korean traditional dance expressed through his moves that

made him a dancer of a historic significance for whom there will be no equal in this millennium not to mention in this century사진제공 한국문화재재단

1716 기획특집1

살풀이춤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해 공연 때 착용했던 살풀이춤 의상이다 무동옷과 쾌자는 다른 색으로 바꿔입기도 하며

이매방 살풀이춤을 대표하는 의상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사진액자 121940~50년대 이매방이 승무 바라춤

추는 모습을 찍은 사진의 배경을

없애고 보유자만 오려 붙여 만든

액자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약력

1927년 전남 목포 출생

1934년 목포 북교 입학

1935~39년 만주 다렌 거주 이대조에게 승무 북춤 박영구에게 승무 법고 이창조에게 검무 사사

1943년 목포 공립공업학교 졸업

1948년 명창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서 lsquo승무rsquo로 첫 무대

1953년 제1회 개인발표회(광주)

1956년 제3회 개인발표회(부산)

1959년 제5회 개인발표회(서울 원각사)

1984년 무용 인생 50년 특별공연 lsquo북소리rsquo

1987년 승무 예능보유자 지정

1990년 살풀이춤 예능보유자 지정

1993년 인간문화재진흥회 부회장

1996년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수

1999년 우봉 이매방 춤 인생 65주년 기념 대공연

2004년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춤 인생 70년 기념공연

2005년 lsquo우봉 이매방 춤 전수관 개관 기념공연rsquo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 대공연장)

2006년 lsquo무용 무대예술 80년사 아름 보듬어맺고 풀고helliprsquo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07년 lsquo화성 춤 페스티벌rsquo (수원대학교 베칸토 아트센터)

2008년 서울시 무용단 정기공연 lsquo하얀사 고이접어rsquo (세종문화회관 세종 M씨어터)

2009년 lsquo그가 무대에 서면 역사가 된다 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춤 대공연rsquo (영등포 아트홀)

2010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2011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호암아트홀)

2012년 명작 명무전 (LG 아트센터)

2014년 lsquo우리는 그를 巨木이라 부른다 우봉 이매방 전통춤 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승무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한 승무 복식으로 공연 때 착용했다 흰 장삼에는 옥색 바지 저고리를 입고

흑 장삼에는 흰색 바지 저고리를 입는다 흰 장삼의 승무 의상을 기증했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wwwk-heritagetv에서

승무와 살풀이 동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수상 내역

2015년 은관문화훈장

2011년 제12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공로상

2004년 임방울 국악상middot세종국악대상

1998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1995년 성옥문화상

1984년 옥관문화훈장

1976년 부산시 눌원문화상

우봉 이매방

한국 전통 춤의

정수 승무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18 19

글 사진

이병옥 (용인대학교 명예교수)

宇峰우봉

이매방 선생의 춤 일생

춤 성향을 가늠하는 입문과정과 열정

첫째는 이매방이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세(1934년)가 되던 해 옆집에 세

들어 살던 조도 출신 목포 권번의 권번장 함국향(咸菊香)씨는 그가 춤추기

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춤 학습을 권유하여 남자이지만 여성적인 고운 춤

사위 성향인 기방춤의 기틀을 마련한 점이다

둘째 이매방의 할아버지이면서 스승이었던 이대조 명인은 목포 권번(卷

番)에서 승무와 북놀이 검무 그리고 고법(鼓法)을 가르쳤던 권번 선생으

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점이다

셋째 중국 대련 정포소학교(1935~1939)를 다니면서 그는 매란방 배구

자 등을 만나 춤에 색다른 영향을 받은 점이다 대련에서 운수회사를 운영

하던 큰 형님을 따라 약 5년간을 살게 되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신무용의

대가인 배구자의 무용공연에도 출연하였고 또 북경에 있던 큰 누나의 연

결로 매란방의 공연을 접하고 이국적인 향취에 매료되어 그에게 lt장검무

gt lt등불춤gt lt꿩털춤gt 등을 배운다 6middot25 이후에는 본명 lsquo이규태rsquo를 버

리고 lsquo매방(梅芳)rsquo이라는 예명을 lsquo매란방rsquo의 약자를 딸 정도로 그의 예술혼이

깃든 것이었다 그러다가 대련정포소학교 5학년 때(1939년) 고향 목포북

교소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통춤에 정진하게 되었다

넷째는 주말마다 광주 권번에 다니면서 권번 선생이었던 박영구로부터

승무와 북놀이를 배우고 이창조(장성출신) 선생에게는 검무를 학습한 점

이다 이처럼 목포 권번과 광주 권번을 오가며 박영구 이창조 그리고

이대조 선생에게서 승무 승무북놀이 검무 입춤 살풀이춤 장고춤

태평무 한량무 보렴승무 흥춤 장검무 장고기법들을 배웠다

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공연은 1942년(16세) 목포역전에

서 임방울이 주관하는 명인명창대회였다 이때 승무를 출 박봉선이 사정이

생기자 함국향이 이매방을 임방울에게 소개하여 김연수의 장삼을 빌려 입

고 무대에 나섰다 이때 이매방은 승무를 추어 관객의 열렬한 호응으로 자

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또 예술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해방 후로는 1948

년 임춘앵의 여성국극단에서 삼고무를 가르쳤고 그해 목포 역전에서 다시

임방울이 이끄는 명인명창발표회에 당당히 승무로 출연하게 되었다

방랑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춤 정립(대구 군산 부산 광주 서울)

1950년 6middot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북한군의 뒤를 따라 예술동맹 공연

단들이 목포에 내려와 인민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당시 최승희의 딸 안성희는 lt장검무gt 전황(본명 전두황)은 lt처녀총각gt 등

을 추었으며 이어 이매방을 강제로 무용동맹에 가입시켜 무용활동을 시켰

다 수복 후 국군이 들어와 무용동맹에 강제로 가입했던 것 때문에 곤욕을

치렀으나 가까스로 해명하고 국군 군예대(KAS 종군연예인공연단)에 가

입하여 1951년 대구에 본부를 두어 활동하면서 지방순회공연을 다녔다

또 광주에서 전라남도 경찰국 선무공작단을 맡아 단장으로 호남 일대를 돌

며 순회공연을 하던 중 잠시 군산으로 옮겨 군산시 영화동에다 이매방무

1 1950년대 삼고무 초기 모습

2 1978년 이매방 승무

3 1938년 정포소학교 고개 숙인 이가 이매방 우측 앞

3

2

1

한국 전통춤의 대부 우봉(宇峰)

이매방 선생님이 2015년 8월 7일

8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우봉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로 lsquo하늘이 내린

춤꾼rsquo으로 칭송되는 근현대

전통춤계의 중심인물이었다

1927년 5월 5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7세 되던 해에 목포

권번(券番)의 권번장 함국향의 눈에

들어 춤 학습을 받았다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검무 그리고

고법을 가르쳤던 이대조(李大組)

명인으로부터 춤과 북놀이 사습을

8년 동안 받은 후 평생 외길

춤인생을 걸으면서 두 종목의

인간문화재로 그 명성과 수많은

이수자를 배출하였다

우봉 이매방의 춤사위는 lsquo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rsquo라는 표현을

넘어 lsquo밀레니엄에 한 번 날까rsquo하는

역사적인 존재라고 할 만큼 전통춤의

진수를 전승시킨 인물이다

그러면 우봉 이매방이 어떤 계기와

학습과정으로 전통춤의 대부가 될 수

있으며 어떤 춤 일생을 살아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20 21기획특집 2

용연구소를 개설하여 2 3년간 활동을 하였다

그 후 1953년 부산으로 내려가 장홍심이 운영하는 영도에서 함께 연구소를

했으며 부산 제자로는 김진홍 성승민 이도근 등이 있었다 1954년 광주

로 옮겨 국악원을 개설하여 한순서를 조교로 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무용

발표회(1955년 광주극장)를 가졌다 한편 서울에서는 여성창극단 삼성여

성국악단(박옥진 박보아 조양금 3인) 등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다시 1955

년 부산으로 내려가 초량동에 자리 잡고 첫 발표회를 대영극장(1957년)에서

하였다 그리고 서울에서도 1959년 원각사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당시의 이매방의 춤 활동은 전국적으로 목포 대구 부산 광주 서울이

었지만 주 근거지는 사실상 부산무용가협회 정회원이었으며 1957년과

1958년에 부산공연을 올리며 1960년대 말까지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

1960년대는 많은 무대를 누비면서 점차 춤 레퍼토리를 확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이매방은 삼고무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창작하였으

며 그 후 5고무 7고무 그리고 9고무와 11고무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lt초립동gt lt화랑무gt lt검무gt lt장검무gt lt박쥐춤gt lt흥춤gt lt무당춤gt lt장고

춤gt lt학춤gt 등을 정립하였고 늘 추어온 lt승무gt lt입춤gt lt검무gt 등과 함

께 추었다 이매방 승무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연구소를 서울로 옮겨

오늘날까지 서울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매방은 lt보렴승무

gt lt삼현승무gt lt살풀이춤gt lt검무gt lt입춤gt lt한량무gt lt태평무gt lt흥

춤gt lt장검무gt 그리고 lt장고춤gt 등도 lt승무gt와 함께 끊임없이 연마하여 왔

다 그러한 이매방의 춤예술 정립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예능적 기술이 뛰

어났기 때문이었다

승무 살풀이춤 인간문화재와 국무(國舞)로 추앙

이매방이 서울무용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중앙대 교수이

며 문화재 위원이었던 정병호에 의해 1977년 7월 30일 서울 YMCA에

서 열린 한국전통무용발표회에서 승무를 발표하면서였다 아울러 그때

까지 한성준류의 한영숙 승무에 매료되었던 이들에게 새로운 유파의 승

무가 있음을 신문지상을 통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무대에서의 성공

은 이듬해 1978년 3월 세계민속예술제 한국대표로 프랑스 렌느시에 참

가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이매방 춤판의 최고 결정판은 lt북소리gt 시리즈였다 1984년 6월 이매

방 무용인생 50주년 기념공연 lt북소리gt(문예회관 대극장) 1985년 6월

이매방 전통무용 lt북소리 Ⅱgt 1990년 rsquo90 북경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

전 참가와 lt북소리Ⅲgt(호암아트홀) 그리고 1994년에 춤인생 60년을 정

리하는 lt북소리 Ⅳgt였다 또한 전통예술의 보급과 선양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결과로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1984)과 성옥문화상 문예부문 대상

(1995)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병호 문화재위원의 끈질긴 노력으로 1987년 7월 1일 이매방은 중요무

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명실상부한 명무의 대열

에 서게 되었다

이어 1990년 10월 10일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도 인정받아 전

통춤의 최고 명인으로 추앙받게 되었으며 수많은 한국무용가들이 이매

방류 춤을 전수받기 위해 구름같이 모이게 되었다 그 후 1996년 인생70

고희기념공연 1997년과 98년 일본공연과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2007년 lsquo우봉이매방팔순기념공연rsquo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으며

매년 제자들과 함께 정기공연을 하였다 전통춤경연대회 및 300여 명에

이르는 승무와 살풀이춤 이수자들과 제자들의 공연에도 찬조출연과 반주

를 직접 해주는 열정을 최근까지 지속하였다

이매방 춤의 무용예술적 가치

이매방의 춤에서는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호남제 시나위 춤사위로 짜여져 있

다 춤기법의 중심은 대삼소삼(大杉小杉) 비정비팔(比丁比八) 양우선(兩雨線)

비디듬 좌우걸이 완자걸이 잉어걸이 지숫기 등으로 곱고 아름다운 사위와

자태를 자아내고 한을 신명으로 풀어내는 정중동의 몸놀림이 배어 나온다

결국 이매방 춤은 호남 지방의 권번에서 추어왔던 춤사위 기법이지만 많

은 세월이 지나면서 스승들의 춤을 뛰어넘어 아무도 넘겨볼 수 없는 국무

(國舞)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이매방의 일생을 통해 그가 가진 춤의 예

술적 가치를 요약하면

첫째는 남자이면서도 여성보다도 더 곱고 섬세한 기방계통의 lsquo춤바디rsquo와

여성적 lsquo춤속rsquo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호남지역의 명무들로부터 뼈대 있는 전통춤을 다양하게 전수받아

호남춤의 정통성을 확립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과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춤의 천재이기 때문이다

넷째 현대교육개념으로 볼 때 어린 나이부터 춤의 조기영재교육을 받았

기 때문이다

다섯째 세계적인 경극과 춤의 명인 매란방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예술혼

을 불태우고 인생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80평생 춤추는 것 외에는 남자로서 어떤 직함도 직책도 직업도

가진 바 없이 오로지 춤만 추어온 외길 인생이기 때문이다 춤이 곧 이매

방의 삶이며 생명이며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일곱째 호남지역춤과 기방계통춤이라는 lsquo국지성rsquo에서 출발하였지만 경향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범한국적 전통춤의 lsquo국가성rsquo으로 거듭났으며 국제무

대에도 우리 전통춤의 lsquo세계성rsquo을 알리고 확인하는 독창성과 보편성을 지니

고 있었다는 점 등이 이매방 춤이 가지는 예술적 의의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매방은 1927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민족 수난 속에서도 춤을 배

웠고 해방과 6middot25전쟁 통에서도 오로지 춤만을 추었고 외래문명의 홍

수와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꿋꿋이 춤만 추어 한국 전통춤의 위상을 높였

고 세계 속에 한국춤의 지평을 열어 대한민국 시대의 전통춤 패러다임을

구축하였기에 국무적 존재로 인정받아 온 것이다

1970 2004 2008 2012

22 23

양종승 (우봉이매방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middot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하늘이 내린 춤꾼 宇峰 이매방 선생님을 追惜하며

춤을 위해 태어나 평생 동안 춤만을 사유하였던 우봉(宇峰) 이매방(李梅

芳) 선생님께서 2015년 8월 7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승천하셨다 선생

님은 1927년 5월 5일(음력 3월 7일) 새벽 동이 틀 무렵 목포에서 이경

율과 조병림 사이의 10형제 중 막내둥이로 태어났다 5남매는 일찍이

죽고 남은 3남 2녀 중 막내로 성장하였다 선생님 아명은 집안 돌림자에

따라 영길(永吉)이었지만 스님께서 귀한 아들이라고 하여 귀태(貴泰)로

개명해 주었다 오기된 호적에는 규태(圭泰)로 되어 있다 매방(梅芳)이

라는 이름은 중국 경극의 명인 매란방(梅蘭芳)의 첫 자와 끝자리를 따 예

명으로 불리었는데 1986년 호적을 개명하여 본명이 되었다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춤에 소질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서 성장하였다 결국 옆집 살던 권번장 함국향 권유로 목포 권번에 들어가

당대 소리 북 춤 등에 대가들이었던 이대조 이창조 박영구 진석산 등

에게 승무 검무 살풀이춤 등 전통춤을 학습하였다 선생님의 무용활동

은 목포 공립 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 승무로 출연

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이후 1953년 광주에서 첫 개인발표회를 시

작으로 무용인생 50주년 65주년 70주년을 비롯한 수많은 국내외 공연

을 펼쳤다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1990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가 되었다 그리

고 2014년 승무 및 살풀이춤 명예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한국무용협회 고

문 한국국악협회 고문 한국전통춤협회 고문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

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국무 우봉이매방 화보집』을 발간하였다

이매방 선생님 장례식은 2015년 8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서울삼

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문화예술인 葬]으로 치러졌다 목포문화예술회

관 내에 있는 이매방춤전수관에도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우봉이매방장

례위원회가 구성되어 공동장례위원장을 김종규 한국문화유산신탁 이사

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이경동 한국문화원연합회 회장 김복

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하철경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 김

덕수 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이사장 김진홍 부산시 무형문화재 동

래한량무 보유자 김정녀 중요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전수조교 채상묵

한국전통춤협회 이사장 국수호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등 10명이 맡

았다 장례집행위원장을 양종승 우봉이매방춤보존회 수석부회장 장

례집행부위원장에 김덕숙 김효분 박종필 오은명 최창덕 황순임

등 우봉이매방춤보존회 부회장 6명이 맡았다 장례위원은 김묘선 오

미자 박소림 이길주 송재섭 정영례 최희진 한혜경 김리혜 김은

희 한명옥 진유림 채향순 강성민 백경우 김정기 등 제자 215명이

맡았으며 목포분향소 공동장례위원장은 임점호 목포신안예총회장과 박

수경 목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맡았다 장례의전은 국가공인장례지

도사 유재철 황근식이 진행하였다 유족으로 미망인 김명자(전통무용

가 승무 및 살풀이춤 전수조교) 딸 이현주(전통무용가 승무 및 살풀

이춤 이수자) 사위 이혁열(연극인) 등이 있다

추모식 전경선생님 영전에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을 추서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

부 장관은 일평생 우리 춤 전승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며 문화

융성과 전통예술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공적을 기렸다 또한 이매방 선

생님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깊은 애

도와 함께 목포가 낳은 문화예술계의 큰 별이셨던 선생님은 우리나라 전

통예술의 표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외에 박민권 문화체육관광부 제1

차관 나선화 문화재청장 김해숙 국립국악원장 서도식 한국문화재재

단 이사장 이문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 등 정치계 문화예술

계 등 각계 인사들과 수많은 무용 가족들이 조문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추모식은 2015년 8월 9일 일요일 오후 7시부터 9

시까지 2시간 동안 삼성서울병원 영결식장에서 유가족 지인 각계인

사 제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덕택 운현궁 예술감독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민의례 고인에 대한 묵념 양종승 장례집행위원장의 고

인 약력보고 공동장례위원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공동

장례위원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이사장 공동장례위원장 김복희 한국

무용협회 이사장 등의 조사 제자를 대표한 채상묵 공동장례위원장의

추도사가 있었다 동영상으로 고인의 생전 활동과 육성을 보고 들은 후

유가족을 비롯한 지인 문화예술계의 인사 제자 등의 헌화 및 분향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안숙선 명창의 이별가와 김영임 명창의 회심곡 중

저승 가는 길이 헌가로 받쳐졌다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 보

유자 박병원 전수조교 송순단과 박미옥 등이 주관하는 추모굿과 이광

수 명인의 헌가가 올려졌다 다음날 오전 7시 30분에 발인식이 행해졌

고 오전 9시에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이 이루어졌다 유해는 경기도 광

주시 오포읍 시안가족추모공원에 봉안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에서 초제를 시작으로 49재가 진행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금세기 하늘이 내린 명무였다 그리고 근현대 문

화적 격동기 속에서 우리 춤을 꿋꿋이 지킨 민족춤 계승자로서 주어진

소임을 완수하였다 그래서 선생님의 예술 생애와 그가 전승해 온 민족

춤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큰 가치를 지닌다

주지하다시피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한국 전통무용 진가를 표방

하는 고단위적 한민족 춤 유산으로써 조선 중엽 이후 불교의식 민속놀

이 유랑예인연희 무속신앙 등과 어우러져 계승 발전되어 왔다 그와

더불어 민중의식을 담아 애환과 기쁨을 표상하는 춤으로써 위엄 있고 격

조 있는 춤으로 승화되었다 그래서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무용 예술적

가치와 업적은 위대하고 광활하다 무용평론가 강이문과 무용학자 이병

옥 교수는 이매방 선생님을 國舞라 칭했으며 문화계 많은 인사들은 신이

내린 춤꾼이라 호평하였다 이러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우봉 이

매방 선생님 금자탑에서 빛나는 것은 다름 아닌 기왕 흩어져 내동댕이쳤

던 민족 춤의 뿌리를 살려내어 우리 시대 진정한 무용예술로 승화시키고

국가의 민족유산으로 갈고 다듬은 것이었다 이는 탈 식민지적 화두가 -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다큐멘터리 중 이매방 인터뷰 -

살풀이춤은

즉흥무이다 승무

검무 법무를 다

배우면 자기 멋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수판을 잘라야 한다

가락도 춤 승무 가락

검무 가락 이런 거

섞어서 장단 맞춰서

자신의 감정 음악

듣고 음악이 슬프면

슬픈 표정으로

즉흥적으로 추는 춤이

즉흥무야

24 25기획특집 3

본격화되던 20세기 초중반 우리 것에 덧씌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구

를 벗겨내려는 문화 민족주의적 활동의 한 면이었다 서구 중축의 지배

담론을 탈피하면서 그동안 왜곡되고 전도된 관점에서 벗어남으로써 민

족춤에 비문명적이라는 멍에를 씌었던 편협한 지식층의 문화보기 탈각

운동의 한 면이었던 것이다 시기는 일본제국주의의 한국민족문화 말살

정책 해방 후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교육정책의 서구 지향적 패러다임

등장 도시화middot산업화middot현대화에 따른 전통문화 멸시 및 천시 등으로 인

해 민족예술이 단절 위기에 처했었던 그때였다 또한 현대 산업화에 따

른 근대화론 지향의 국책 하에서 민족예술을 진부하거나 불필요한 것으

로 치부하는 풍조였던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우리의 것은 외래의 것에 밀리거나 일방적으로 시비 당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빼앗기는 패배의 싸움판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던 그 상황 속에

서 선생님은 묵묵히 그리고 꿋꿋하게 우리 춤을 지켜 내셨다 우리네 전

통춤은 비합리적이고 가치가 없으며 저급하고 미천한 것으로 저평가되

돼 전승의 단절까지 치닫게 된 상황 속에서도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우

리 춤 계승하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의 춤을

옥석으로 다듬어 세상에 펼쳐 보임으로써 민족 무용예술의 가치를 되살

리는데 평생 힘써 왔었다 결국 어려운 역경과 피나는 고난을 헤치고 일

어난 선생님의 예술세계는 살아 숨 쉬는 민족 춤으로 꽃 피어졌다 향토

춤 민족춤 전통춤 속에 내재된 민중들의 예술적 사상과 정신이 북돋아

나 전통문화복원 민족문화재건 향토문화복구 등과 함께 형성된 민족

문화바로세우기운동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춤은 밖에

서 유입된 외래의 것과는 달리 이 땅에 자생적으로 자라온 민족 춤 뿌리

로 각인되면서 한국무용예술사에 독창적 고귀성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

리고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와

1990년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국민의 춤꾼으로 안

착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 계보를 따지고 올라가면 신방초(申芳草 남)라

는 인물이 있다 전남 옥과 출신인 그는 1817년 무속집안에서 태어난

재인으로 어정판에서 바라지로 활동하였다 춤은 물론이고 육자배기

가곡 가사 장단에 능하여 호남 일대에서 대단히 명성이 높았다 그래

서 당시 호남의 유명 당골들은 그를 모셔가기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였

다고 한다 신방초는 자신의 춤을 같은 고향 출신 신영수(남)에게 전했

다 이후 고창 출신 안두온(남)에게로 이어졌고 다시 순창 출신 이정선

(남)에게 전수되었다 이정선은 춤뿐만 아니라 북놀이에도 뛰어난 재능

을 갖고 있었던 예인이었으며 판소리도 잘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상당

한 대접을 받았다 이정선의 춤은 목포 출신 김금옥(여)과 박귀주(여)에

게 이어졌다 그 후 이매방 선생님의 스승 박영구 이대조 이창조 진

석산 등에게 전수되었다 박영구(남)는 전남 화순 출신으로 승무와 북놀

이의 명무 명인이었으며 광주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대조(남)는 전

남 무안 출신으로 승무의 대가였고 목포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창

조(남)는 전남 능주 출신으로 검무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고 역시 광주 권

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그리고 진소홍(일명 진석산 여)은 전남 담양 출

신으로 서울 인사동에서 요릿집을 운영하면서 살풀이춤을 전승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춤에는 엄격한 억제와 철저한 절제가 존재한다 이

는 수단에 의해 보이는 기교면서 또한 재간으로 처리될 수 있는 예술적

기법의 한 면이다 선생님의 춤은 또한 느낌과 감정의 표현 방식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느낌에서는 가벼움과 무거움 재빠름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이매방 승무-필자 양종승 제공팔순 기념공연-필자 양종승 제공

과 더딤 흐늘거림과 꼿꼿함 섬세함과 우람함 정교함과 장중함 등의

변화무쌍한 표현력을 가진다 감정에서는 슬픔과 기쁨 가냘픔과 뭉뚝

함 애석함과 환희 괴로움과 기쁨 고요함과 시끄러움 등이 묘사되는

데 이는 삶의 고뇌와 애환은 물론이고 희망과 행복을 감싸고 있음을 말

한다 이러한 춤에 있어서의 느낌과 감정은 비정비팔 비디딤 까치걸

음 잉애걸이 좌우걸이 완자걸이 안가랑 등의 발디딤새와 양우선

평체 사체 등의 손놀림새 그리고 연풍대 지숫기 다루치기 대소삼 등

의 몸굴림새 속에서 표현력을 한층 고조시킨다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

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

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

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길이

길이 민족 춤 기틀로 명명되어 질 것이다 천기를 타고난 춤꾼 신들

린 듯한 춤으로 관객을 홀렸던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이제 천상

무대로 가시어 휘날릴 것이다 선생님 기어이 춤과 함께 홀연히 떠

나셨으니 부디 부디 영면하옵소서

추모식 전경

26 27

전경욱 (고려대학교 교수)

동아시아의 가면극1 중국 귀주성 위녕현의 〈춰타이지(撮泰吉)〉 가면극

풍농과 악귀 쫓기를 위해 기원하는 제의의 일부

2 한국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서낭신인 각시가

무동을 탄 모습

3 일본의 미야자키현(宮崎県) 시이바손(椎葉村)의

〈다케노에다오가구라(嶽之枝尾神楽)〉

4 《봉사도》제7폭 모화관에서 행해진 중국사신

영접행사의 연희장면 산대(왼쪽) 앞에서 연행된

줄타기 물구나무서기 접시 돌리기 가면극 등의

전문적 연희

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에서는 가면극 분야에 대해 보

유자와 단체를 모두 지정하고 있으니 일본보다 지원이 좋은 편이다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을 민간문학 민간음악 민간무용 전통희극

곡예 잡기와 경기 민간미술 전통수공기예 전통의약 민속으로 분류

하여 지정하고 있다 중국 가면극인 나희는 전통희극 분야에 해당한다

한국에는 현재 국가 지정의 중요무형문화재 가면극 13종목 각 시도의

무형문화재 가면극 2종목(진주오광대와 퇴계원산대놀이)이 있다 중국

은 그동안 전통희극 분야에 430개 종목을 지정했는데 여기에 나희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노(能)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중요무형

민속문화재의 민속예능 분야에 35개의 가구라(神樂)를 지정했다 이 가

구라들은 대부분 민간의 가면극이다

Ⅱ 동아시아 가면극의 역사와 계통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면극은 매우 유사한 발전 과

정을 보인다 동아시아에는 (1)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과 (2)전

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이 있었다 (1)은 각 지역의 향촌제사

활동(鄕村祭祀活動)에서 연행되던 것으로서 각각 자생적 향토적 성격

을 띠고 있다 그러나 (2)는 산악(散樂) 또는 백희(百戱)라고 불리던 동아

시아 공동의 연희들이 발전하여 성립된 것으로서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함께 각국의 독자성을 띠고 있다

1 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하회별신굿탈놀이나 강릉관노가면

극처럼 향촌제사활동인 마을굿에서 유래하여 발전해 온 가면극들로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전승해 왔다 이 가면극들은 다른 지방의 가면극과

는 아주 다른 독자적 내용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가면극들이 마을굿에

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도판 1)

중국의 나희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지만 후대에는

그것이 민간에 전파되어 각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도 전승되고 있다 그

리고 중국 한족을 비롯하여 소수민족들에는 여러 향촌제사활동에서 유

래하여 그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가면극들도 있다(도판 2)

한편 일본의 고유 신앙을 섬기는 신사(神社)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연예술

인 가구라(神樂) 중에는 자생적인 민속가면극의 예를 보여 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국의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방마다 차이가 크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도판 3)

2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생겨난 가면

극이다 본산대놀이는 삼국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산악middot

백희 그리고 상고시대의 제천의식 등에서 연행되던 전문적 연희자들의

연희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해 형성된

것이다 산악middot백희를 놀았던 사람들은 그 연희 내용으로 볼 때 삼국시

대부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연희자였으며 이들의 후예가 통일신라시

대에 최치원의 시 lt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gt에 묘사된 다섯 가지 연

희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계승된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연행

된 가무백희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나례에서 연행된 산

대희 등을 놀았다 그리고 중국 사신 영접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

희를 펼치던 반인들이 18세기 전반기에 산악middot백희 계통의 연희와 기존

의 가면희들을 재창조해서 본산대놀이를 성립시켰다 이 가면극은 애오

개(아현) 사직골 구파발 녹번 등에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봉사도(奉使圖)》(1725년) 제7폭은 서울의 모화관 마당

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행사의 연희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접시 돌리

기 땅재주 줄타기 탈춤을 묘사하고 있다 마당의 오른쪽에는 산거(山

車)middot산붕(山棚)middot윤거(輪車)middot예산대(曳山臺)middot예산붕(曳山棚) 등으로 불

렀던 소규모의 산대가 보인다 바로 이런 산대 앞에서 공연하던 연희들

을 lsquo산대희rsquo라고 불렀다 특히 세 명의 땅재주꾼 양 옆에서 각각 두 명씩

모두 네 사람이 초록색과 남색의 가면을 쓰고 탈춤을 추고 있다 이는 서

울에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가면극이 있었고 그 가면극을 애오

개산대놀이 등 산대놀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전해준다(도판 4)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경기도의 송파산대놀이middot양주별산대놀이 황해

31 2

Ⅰ 동아시아 가면극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우리는 가면극을 탈춤 탈놀이 가면희 등으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가

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儺戱)라고 부

르는데 이는 중국 가면극들이 대부분 나례에서 연행되던 연희인 나희

로부터 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무형문화유

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middot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부터 한국은 1964년부터 중국은 2006년부터

무형문화재를 국가 차원에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

의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용어로 lsquo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rsquo이라

는 말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의 기예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lsquo보유자rsquo로 인정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lsquo전승인(傳承人)rsquo 일본에서는

lsquo보지자(保持者)rsquo라고 부른다

중국은 이제 막 무형문화재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작했지만 각 지역에

서 자기들의 무형문화재를 국가 지정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으로 등재하기 위

한 열기는 매우 뜨겁다 그리고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과 관련된 행사나 학술

대회도 자주 개최하고 있다 필자는 매년 중국의 가면극학회인 중국나

희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는데 가면극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들에서

는 이 학회를 유치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현지 답사를 통해 자기 지

역의 가면극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국가 지정의 무형문화재를 (1)중요무형문화재(연극 음

악 공예기술 등)와 (2)중요무형민속문화재(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

행사 등에 관한 풍속관습 민속예능)로 구분하여 지원한다 그래서 연극

분야 중 노(能) 가부키(歌舞伎) 등은 (1)에 해당하고 각 지방의 가구라

(神樂)는 (2)의 민속예능에 해당한다 (1)은 전문적인 연희자들이 전승하

는 종목으로서 그 기middot예능을 보유한 사람과 단체를 모두 지정한다 그

러나 (2)는 단체만 지정하고 보유자는 지정하지 않는다 이를 한국에 적

용하면 판소리는 (1)중요무형문화재(음악)에 가면극은 (2)중요무형민

속문화재(민속예능)에 해당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한국의 가면극들

은 대부분 각 지방에서 세시풍속의 하나로서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

日韓 中

4

28 29무형문화재 삼국지ㆍ예능

도의 봉산탈춤middot강령탈춤middot은율탈춤 경남의 수영야류middot동래야류middot통

영오광대middot고성오광대middot가산오광대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

본산대놀이는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했지만 여기에서 전파된 별산대

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 등은 농민 하급관속 무부(巫夫) 등 각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중국 가면의 역사에서 가면의

효시는 나례에 등장하던 방상시(方相氏) 가면이다 이 나례에서 연행되던

각종 연희와 가면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면극이 생겨났기 때문에 가면

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다른 계통의 가면은 육조(六朝)시대 이후 산악middot

백희에 사용되던 것으로 이는 서역악무(西域樂舞)의 영향을 받은 외래

기원의 가면이다 현재도 중국에는 귀주성의 나당희처럼 무당집단이 전

승하고 있는 나희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들은 전문적 연희자인 셈

이다(도판 5)

일본의 가면극은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서 육성된 가면극과

서민층에 의해 육성된 가면극이 있다 전자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예술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데 기가쿠(伎樂)middot

부가쿠(舞樂)middot교도(行道)middot노(能)middot교겐(狂言)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

데 노와 교겐은 특히 산악middot백희와 밀접한 관련 아래 성립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문화인 산악middot백희가 일본에 유입

된 이후 변화middot발전하여 후대에 일본의 대표적 전통연극인 노가쿠(能

樂)middot노쿄겐(能狂言)middot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middot가부키(歌舞伎) 등 전통연

극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산악middot백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 연희를 발전시켜 lsquo나희

(儺戱)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켰고 일본에서는 사루가쿠(猿樂) 즉 산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lsquo노(能)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킨 것처럼 한국에서도

중국 사신 영접 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반인(泮人)들이

lsquo본산대놀이rsquo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Ⅲ 동아시아 가면극의 연희 내용

한국의 가면극은 벽사적 의식무과장 파계승과장 양반과장 영감할미

과장 등 서로 다른 내용의 과장들로 짜여진 소위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

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면극을 탈춤이라고 부를 정도로 춤이 많

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춤사위가 매우 뛰어나다(도판

6) 일본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가구라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짜인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나희와 일본

의 노는 대부분 하나의 가면극이 하나의 서사적 내용으로 짜여 있다

이러한 서사성의 나희와 노도 또한 서로 차이점을 갖고 있는데 노는 lsquo현

재노(現在能)rsquo와 lsquo몽환노(夢幻能)rsquo가 있어 특징적이고 나희는 주로 노래와

대사에 의해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lsquo현재노rsquo는 현재형으로 사건이 전개

되는 노를 말한다 lsquo몽환노rsquo는 나그네(조연자인 와키가 분장)의 꿈 속에

망령이나 화신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몽환노에

서는 시간이 자유롭게 정지하고 역행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도 자유롭게

등장할 수가 있다 주연자는 고전 속의 미녀이거나 역사상 인물일 수도

있고 지옥의 원령이거나 신(神) 불(佛) 귀(鬼) 초목(草木)의 정령이기

도 하다

중국 나희에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 황제 왕 일반인물

등 배역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연희 내용도 의식적인 춤을 제외

하면 대부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를 연극화

하여 공연한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 가면극에서

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이 거의 없고 황제나 왕 같은 존재

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반 인물 위주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연희 내용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주로 현

실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한편 한middot중middot일의 가면 또한 각국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middot중middot일 가

면의 형태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 윗부분에 있다 한국 가면은 얼굴

의 이마 부분까지만 표현하고 있다 일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경우에

도 간단한 선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

을 안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낸다 모자를 쓰는 배역은 별도의 모자를 착

용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의 귀면(鬼面)인 팔먹중가면을 보면 오로

지 안면의 표정에 의해 무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 노나 가

구라의 가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가면은 대부분 머리 부분과

얼굴 부분을 모두 이용해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한다 가면 자체에

머리 부분의 모자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도판 7)

그리고 한middot중middot일의 음악적 선율과 장단이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음악에 맞춰 연기하고 춤을 추는 연희자들의 동작과 춤사위는 각국

가면극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

5 중국 귀주성 덕강현의 무당들이 공연하는 가면극인 〈나당희(儺堂戱)〉

6 춤사위가 매우 뛰어난 〈봉산탈춤〉의 팔먹중춤

7 중국 안휘성 지주의 나희 〈유문룡〉 가면 자체에 모자를 장식

7 5

6

30 31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충남middot서울시 문화재위원)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도판4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양푸시(楊福喜) 201598 필자 촬영

도판5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권영학 보유자 2015821 필자 촬영

도판6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故 김박영 보유자 서헌강 촬영

도판1 활 쏘며 수렵하는 장면 고구려 무용총

도판2 중국 고대 활과 화살 및 활쏘기 장면 전국시대 초(楚) 동호(銅壺)

도판3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일본

Ⅰ 한민족과 활

한국인에게 활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민족과 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중국인이 우리 민족을 부르

는 명칭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이다 lsquo이(夷)rsquo라는 글자는 큰 대(大)자

와 활 궁(弓)자가 결합되어 있다 동이라는 글자를 곧이곧대로 풀어보면

lsquo중국의 동쪽에서 살며 큰[大] 활[弓]을 잘 만들고 쏘는 민족rsquo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 미루어 이미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우

리 한민족이 그들 한족보다 활을 잘 다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반인뿐 아니라 왕도 활을 잘 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적 인물로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lsquo활 잘 쏘는 이rsquo의 대명사로 기

록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쏘았으며

사도세자의 아들로 유명한 정조 또한 활을 잘 쏜 국왕으로 기억된다

조선에서 활쏘기를 잘했던 이유는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심신을 단련

하는 육례(禮 樂 射 脚 書 數) 중 하나로 활쏘기가 장려된 데에도 원

인이 있다 조선에서는 국가 의례로 활쏘기 행사를 거행하였다 왕과

신하가 활 쏘는 대사례(大射禮)는 1477년(성종 8) 1534년(중종 29) 및

1743년(영조 19) 1764년(영조 45)에 군신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였다 한편 지방의 양반 사족들은 향약과 비슷한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양국의 활은

기본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청나라 시대의 그림을 보면 조선 말기 19세기에 활

을 쏘는 그림과 비교가 된다 두 나라의 사수(射手)는 각각 청나라와 조

선의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른 편이다 더욱

이 양자가 활을 쏘는 모습은 공통되면서 부분적으로 다르다 그림 속 중

국의 활은 150cm 정도여서 1m 안팎의 한국 활보다 길이가 긴 점이 다르

다 막상 양자에서 동시에 화살을 쏘면 날아가는 비거리는 후자가 훨씬

긴데 이렇게 그림에서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몇 년 전

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lt최종 병기 활gt이다 시대 배경은 병자호란 당

시 청나라 무사와 조선의 사수가 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영화화한 것

이다 비록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다소 활의 효능이 과장되긴 했지만

두 나라 활의 특징과 조선 활의 장점을 극명하게 잘 그려내어 흥미롭게

본 기억이 새롭다

한편 양국과 비교되는 것이 일본의 활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활은 전

체 길이가 220cm가 넘는 세계 최대 길이의 활이다 16세기 조선의 『난

중잡록』에 의하면 일본의 화살은 lsquo장편전(長編箭)rsquo이라 하여 여러 나라의

화살과 비교해서 일본의 화살이 매우 크다는 기록으로 이미 조선에서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활을 사용하는 일

본에서는 활을 잡는 위치도 특이하다 일본의 활은 장대하기 때문에 위

쪽이 길고 아래는 짧아서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그림을 보면 매우 긴 활

의 아래쪽을 잡고 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활

은 ldquo화살은 길지만 먼 곳까지는 날지 않는다rdquo라고 13세기의 몽고인이

기록하고 있어 비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가마쿠

라 시대에 들어가면 그 중량이 더욱 늘어나 70g에 이르면 길고 무거운

화살을 폭이 긴 활로 쏘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Ⅲ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활과 화살은 조총이나 대포 등과 같은 화기(火器)를 발명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중요했다 이에 각국은 국력을 모아 활과 화살을

제작하였다

이미 고려 때에 중앙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에 각궁장(角弓匠) 전장(箭

匠) 전두장(箭頭匠) 등의 장인을 소속시켜 각궁을 만들었다 또 궁중의

궁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내궁방(內宮房)에도 각궁장(角弓匠)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군기감(軍器監)을 설치 운영하였고 장인들을 소속시켜 활

과 화살을 제작하게 하였다 이들 장인은 다른 기술을 가진 장인과 달리

궁인(弓人)이나 시인(矢人)으로 불렀다 궁인과 시인이라는 명칭은 『논

어』에서 나오며 그들 장인은 다른 물건이 아닌 무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우대하여 부른 것이다 이에 조선은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면

서 궁인 90명 시인 150명을 배정하였다 아울러 이들 장인들은 각 지

방마다 상당수를 배정하였고 이 또한 여타의 다른 장인들에 비하여 많

은 숫자에 해당되었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장색과 규모는 영조대 『속대전』이나 정조대

『대전통편』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국가적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각종 300여 도감마다 수많은 궁인이

나 시인을 징발하여 의례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할 궁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사적인 공방에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김준근의 lt기산풍속화gt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궁창을 앞에 두고

줄과 환으로 일정하게 다듬은 쇠뿔과 뽕나무 등을 옆에 두고 완성된

각궁에 시위를 걸어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있다

청나라 말에 전통 활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lt시궁정력(試弓定力)gt에

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입식 건물 안에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너댓 개

의 활을 만들어 올려놓고 다 만든 활을 과학적으로 무게를 재고 있다

향사례(鄉射禮)를 거행하여 사족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활을 좋아하고 잘 다룬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역

사 동안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다른 종목보다 유달리

활(양궁)을 잘 쏘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한민족의 피 속

에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유전인자 DNA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Ⅱ 유물 속 동아시아의 활

인류는 이른 시기부터 멀리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자 무기로 활과 화살을 개발하였다 이후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

에 따라 궁시를 제작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

하였다 하지만 궁시는 대개 나무나 대나무와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

져 썩어 오래전의 유물을 확인하기 어렵고 단지 흑요석(黑曜石)처럼 단

단한 석제로 만든 화살촉에 의해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정복 전쟁이 빈번해지던 고대부터 무기가 발달하였다 당시에

사용된 활과 화살의 형태는 유물 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전국시대(BC 475~221) 동호(銅壺) 유물

을 보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한편

5세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lt수렵도gt에서 말 위에서 짐승들을

1

32

4

6

5

32 33무형문화재 삼국지ㆍ기능

양국의 활 제작방식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청나라 활 제작 장인 집단

은 북경 동사대가에 있는 궁전대원리(弓箭大院里)에 17가호의 궁전 점포

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squo취원호(聚元號)rsquo이다 이곳에서 중국 전통 활

을 제작했던 장인이 양뤼린(楊瑞林)이며 아들인 양원통(楊文通) 손자인

양푸시(楊福喜)까지 3대가 잇고 있다 양푸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활을 제작하여 2006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

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장인으로 보호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45년 앞선 1971년 9월 13일 전통 활 제작 장인

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으로 지정하였다 서울 황학

정의 장진섭(張鎭燮 1916~1996)은 조부(장문환)와 부친(장기홍)에 이

어 3대째 활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예천의 권영

록(權寧錄 1916~1986)은 부친(권태전 權泰全)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

었다 부천의 김장환(金章換 1909~1984)는 조부(김원재)와 부친(김

동천)의 대를 잇고 한국 제일가는 명사수로서 활동하고 부천 성무정의

초대 사두(1967~1982)가 되었다 그의 기술은 제자인 김박영(金博榮

1929~2011)이 전승하였다 그의 사후 2015년 권영학(1943년생)보유

자가 새로 인정되어 조부(권선복)와 부친(권우갑)의 가업을 이어 그 또

한 3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화살을 만드는 시장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시장)

으로 지정하였다 화살로 유명한 장단에서 나고 자란 유영기(1936년 그런데 세계적으로 강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활은 여기에 화피를 더

하여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물소 뿔(牛角) 쇠심줄(牛芯)

민어 부레풀(魚膠) 대나무 뽕나무(弓幹桑) 참나무 화피(樺皮)가 그것

이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는 각궁은 살

아있는 활이면서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쇠뿔은 통뼈이며 대나

무와 뽕나무 및 참나무가 세부 뼈대이고 그 위에 바르는 쇠심줄은 근

육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부레풀은 연골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다듬는

화피는 피부에 해당된다 이중 물소 뿔과 대나무 및 쇠심줄이 활의 강

도와 탄성을 이루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민

어 부레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은 1년 중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제작하여 계절을 타는 공예품인데 그 이유는 동식물성 재료

들이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아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심이 건

조가 안되고 풀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여름에는 재료를 장만하고 찬바람이 나면 풀을 대와 뼈와 나무를 서로

붙여 정월 경에 건조시키고 3월부터 한 달 이상 해궁 작업을 한다 각

궁은 제작이 까다롭고 단계마다 원칙을 지키고 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

해서 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궁의 핵심 원료인 물소는 주로 아열대 지방인 중국 남부나 인도 및 인

도차이나 등지에 서식하므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여서 중국은 물소 뿔의 수출을 엄격

하게 통제하였고 조선 정부는 그것을 몰래 수입하려고 애썼다 현재

도 각궁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의 수급은 어려움이 많다 물소는 세계적

인 보호동물이어서 물소 뿔을 수입할 때 세관의 통과가 어렵고 쇠심줄

은 근래 많은 소들이 일하면서 근육을 키우지 않고 육우용으로만 키워

져 탄성이 없어 활의 탄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접착제인 민어부

레의 경우 예전에는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근래에는 민어부레가 정

력에 좋다고 그것마저 식용으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한 활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488년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同越)은 ldquo조선에서 사용하는 화피궁은 중

국의 제도에 비하여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rdquo라

고 평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활은 중국 것보다 작으나 탄

성이 크고 강하다 우리의 시장들은 대나무로 화살대[矢幹]를 만들고

쇠로 활촉(雛)을 끼우며 수리깃으로 화살깃(矢羽)을 만든다 반면 중국

의 장인은 죽시와 함께 유목(楡木)으로 목시(木矢)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활은 대나무와 나무를 한데 결합한 복합궁이다 일본의 활

은 2m 이상으로 길고 무거워 탄성이 적어 근거리에는 위력이 높은 대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이면서 한middot중middot일

삼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각궁은 한국 장인들의 솜씨가

표출된 우수한 전통 공예기술로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생)는 조부(유창원)와 부친(유복삼)에 이어 3대를 잇고 그 아들 유세

현과 유승현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단 근처 원당에서 나고 자

란 박호준(1944년생)은 조부(박희원)와 부친(박상준)에 이어 3대째 가

업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김종국(1940년생)은 스승인 조명제(趙命濟

1915~1980)가 조부(조성관)와 부친(조면보)의 대를 이었던 것을 본받

아 예천에서 화살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12월 14일 부천활박물관을 세웠고 파주에는 유영기

보유자가 만든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반면 중국에는 2012년 신강의

이리에 성급(省級) 비물질문화재로 등록된 이청강(李靑岡)이 중화활문화

박물관(中華弓文化博物館)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로 활을 지

정하지 않아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이 전통적(傳統的) 공예품

(工藝品)으로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을 지정하였다 미야기현(宮崎県)에 위치

한 미야코노조(都城市)에 7대째 120년 전통의 활을 제작하는 활제작소

[楠見藏吉 弓製作所]가 위치하고 있다

Ⅳ 활과 화살의 재료

활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의 『고공기』에 의하면 나무[干 柘 橘 桑 木

瓜 竹 荊 등] 심줄[筋] 풀[膠 말 소 사슴 물소] 뿔[쇠뿔] 옻[漆]

명주실[絲]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은 뿔을 주재료로

삼은 각궁(角弓)인 것을 알 수 있다

도판10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故

김박영 보유자 제작 각궁(角弓)

도판11 중국 양푸시(楊福喜)가 제작한 활

1m 60cm

도판12 중국 양푸시(楊福喜) 화살[箭]

위 2개 느릅나무[楡木] 3번째

목전(木矢) 아래 2개 죽시(竹矢)

201598 필자 촬영

도판13 일본 미야기현(宮崎県)

미야코노조(都城市) 120년 전통

楠見藏吉 弓製作所

httpjotaro-gocomcollect2980

도판14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

지정(指定) 전통적(傳統的)

공예품(工藝品)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

httpjotaro-gocomcollect2980 참고

도판7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종국(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9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박호준(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7 8 9

11 10

12

13 14

34 35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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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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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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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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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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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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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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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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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

화수

목금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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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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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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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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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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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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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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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7: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12

한국의집 조리팀장 김도섭

사진

그라피스튜디오

한국의집

가을을 맛보다

뜨거웠던 열기가 식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다

뜨거운 여름을 견디며

건강하게 키운 한 해의

결실을 맺는 가을 식탁은

그만큼 풍성하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가을

가을을 대표하는

건강식재료로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의 영양을

회복해보는 것은 어떨까

1312 한국문화재재단 소식 3

전통 한식을 대표하는 한국의집 김도섭 조리팀장은 조선왕조 궁중음식 전수 장학생이자 한식조리기능장으로서 전통음식의

발전을 위한 레시피 표준화 궁중음식홍보사업 등을 통하여 국내외 전통음식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그는 한국의집뿐만 아니라 문화교류사업의 일환으로 해외 행사에서 요리를 하기도 했다 뭄바이 인도상공회의소 주관 한국의

밤(rsquo13) 태국관광박람회(rsquo12) UAE-한 수교30주년만찬amp리셉션(rsquo10) 등에서 요리를 선보이며 한식 전도사로서의 역할 또한 하고

있다 또한 문화재청장 표창(rsquo08)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표창(rsquo15)을 받은 바 있다

문의 02-2266-9101 wwwkhorkr

조리팀장

김도섭

가온정식 1인기준 35000원 삼색밀쌈과 해물잣즙채 고구마middot알밤죽과 물김치 새우찜과 생절이 버섯불고기와 부추절임 꽃게감정 진지 기본찬 후식

4인기준 조리

가을 낙지골동반 1인기준 25000원 삼색밀쌈과 해물잣즙채 계절죽 전유화와 생절이 낙지골동반 국 무화과 후식

제철 꽃게 대하 고구마로 건강을 담아낸 lsquo가온정식rsquo

lsquo가온정식rsquo은 가을이 제철인 꽃게 대하 고구마 밤을 중심으로 고구

마middot알밤죽과 새우찜middot생절이 꽃게감정으로 구성한 메뉴이다 특히

꽃게감정은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음식으로 고급스럽고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번거로워서 사위를 맞이할 때

나 한 번 만드는 귀한 음식이다 꽃게감정은 제철을 맞은 가을 수게의

살을 곱게 발라내어 소고기와 갖은 야채로 소를 만들어 게딱지에 채워

놓고 국물을 자박자박하게 끓여 만들어 낸 찌개인데 제철 꽃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미와 담백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제철 게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이 많아서 소화가 잘되고

원기회복에 좋다 이 밖에도 키토산이 풍부한 대하 식이섬유소가 풍부

한 고구마 5대 영양소와 비타민C가 풍부한 밤으로 만든 요리는 입맛

을 돌게 하고 원기회복에 도움이 된다

쓰러진 소도 살린다는 가을철 원기회복의 대명사 lsquo가을 낙지골동반rsquo

골동반은 임금님부터 백성까지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한국의집은 가을을 맞이하여 기존 골동반 메뉴에 영양이 풍부한 낙지까

지 맛볼 수 있는 lsquo낙지골동반rsquo을 선보인다

낙지골동반은 오색나물과 살이 충분히 오른 가을 낙지를 올려 시각적 아

름다움과 맛과 영양까지 모두 챙기는 일품메뉴이다 특히 lsquo봄조개 가을

낙지rsquo란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가을 낙지의 맛은 높이 평가된다 또한 낙

지는 피로에 좋은 아미노산과 타우린이 풍부해 인삼 한 근과 비견할 정

도로 몸에 좋은 음식이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철 제철재료로 만든 요리는 그 어느 계절 음식보다 맛

이 좋고 몸에도 좋다 제철을 맞은 엄선된 재료로 만든 한국의집 가을 신메

뉴와 함께라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14 15

1927 2015

宇峰우봉 이매방

춤 한자락에 담긴 삶

한국 춤의 거목 우봉 이매방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lt승무(僧舞)gt 및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lt살풀이춤gt 예능보유자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2가지 종목의

무형문화재를 보유했다

그의 춤과 삶의 흔적을 담아보았다

Master Ubong Lee Mae Bang Korearsquos traditional dance virtuoso passed away on August 7 2015 He was 88 years of age Ubong was one of the key figures in

the modern and contemporary days of Korea Ubong the one who often lauded as a ldquodancer sent from the Heavenrdquo was a master of Seungmu (a form of dance

traditionally performed by Buddhist monks) and Salpuri (a form of dance traditionally performed by Korean shamans to banish evil spirits) designated

as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No 27 and 97 respectively Born in Mokpo Jeollanam-do on May 5 1927 he was discovered and trained by

Han Guk Hyang the headmaster of a Gwonbeon (a form of traditional dance academy in Korea) in Mokpo at the age of 7 This was followed by 8 years of

dance and drum performance training as an apprentice of Master Lee Dae Jo who taught Seungmu Geommu (sword dance) and Gobeop (traditional drum

technique) at the Gwonbeon Throughout his life devoted to dance he garnered great fame as the holder of two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and

trained numerous traditional dancers Ubong Lee Mae Bang passed on to us the quintessence of Korean traditional dance expressed through his moves that

made him a dancer of a historic significance for whom there will be no equal in this millennium not to mention in this century사진제공 한국문화재재단

1716 기획특집1

살풀이춤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해 공연 때 착용했던 살풀이춤 의상이다 무동옷과 쾌자는 다른 색으로 바꿔입기도 하며

이매방 살풀이춤을 대표하는 의상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사진액자 121940~50년대 이매방이 승무 바라춤

추는 모습을 찍은 사진의 배경을

없애고 보유자만 오려 붙여 만든

액자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약력

1927년 전남 목포 출생

1934년 목포 북교 입학

1935~39년 만주 다렌 거주 이대조에게 승무 북춤 박영구에게 승무 법고 이창조에게 검무 사사

1943년 목포 공립공업학교 졸업

1948년 명창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서 lsquo승무rsquo로 첫 무대

1953년 제1회 개인발표회(광주)

1956년 제3회 개인발표회(부산)

1959년 제5회 개인발표회(서울 원각사)

1984년 무용 인생 50년 특별공연 lsquo북소리rsquo

1987년 승무 예능보유자 지정

1990년 살풀이춤 예능보유자 지정

1993년 인간문화재진흥회 부회장

1996년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수

1999년 우봉 이매방 춤 인생 65주년 기념 대공연

2004년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춤 인생 70년 기념공연

2005년 lsquo우봉 이매방 춤 전수관 개관 기념공연rsquo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 대공연장)

2006년 lsquo무용 무대예술 80년사 아름 보듬어맺고 풀고helliprsquo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07년 lsquo화성 춤 페스티벌rsquo (수원대학교 베칸토 아트센터)

2008년 서울시 무용단 정기공연 lsquo하얀사 고이접어rsquo (세종문화회관 세종 M씨어터)

2009년 lsquo그가 무대에 서면 역사가 된다 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춤 대공연rsquo (영등포 아트홀)

2010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2011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호암아트홀)

2012년 명작 명무전 (LG 아트센터)

2014년 lsquo우리는 그를 巨木이라 부른다 우봉 이매방 전통춤 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승무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한 승무 복식으로 공연 때 착용했다 흰 장삼에는 옥색 바지 저고리를 입고

흑 장삼에는 흰색 바지 저고리를 입는다 흰 장삼의 승무 의상을 기증했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wwwk-heritagetv에서

승무와 살풀이 동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수상 내역

2015년 은관문화훈장

2011년 제12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공로상

2004년 임방울 국악상middot세종국악대상

1998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1995년 성옥문화상

1984년 옥관문화훈장

1976년 부산시 눌원문화상

우봉 이매방

한국 전통 춤의

정수 승무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18 19

글 사진

이병옥 (용인대학교 명예교수)

宇峰우봉

이매방 선생의 춤 일생

춤 성향을 가늠하는 입문과정과 열정

첫째는 이매방이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세(1934년)가 되던 해 옆집에 세

들어 살던 조도 출신 목포 권번의 권번장 함국향(咸菊香)씨는 그가 춤추기

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춤 학습을 권유하여 남자이지만 여성적인 고운 춤

사위 성향인 기방춤의 기틀을 마련한 점이다

둘째 이매방의 할아버지이면서 스승이었던 이대조 명인은 목포 권번(卷

番)에서 승무와 북놀이 검무 그리고 고법(鼓法)을 가르쳤던 권번 선생으

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점이다

셋째 중국 대련 정포소학교(1935~1939)를 다니면서 그는 매란방 배구

자 등을 만나 춤에 색다른 영향을 받은 점이다 대련에서 운수회사를 운영

하던 큰 형님을 따라 약 5년간을 살게 되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신무용의

대가인 배구자의 무용공연에도 출연하였고 또 북경에 있던 큰 누나의 연

결로 매란방의 공연을 접하고 이국적인 향취에 매료되어 그에게 lt장검무

gt lt등불춤gt lt꿩털춤gt 등을 배운다 6middot25 이후에는 본명 lsquo이규태rsquo를 버

리고 lsquo매방(梅芳)rsquo이라는 예명을 lsquo매란방rsquo의 약자를 딸 정도로 그의 예술혼이

깃든 것이었다 그러다가 대련정포소학교 5학년 때(1939년) 고향 목포북

교소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통춤에 정진하게 되었다

넷째는 주말마다 광주 권번에 다니면서 권번 선생이었던 박영구로부터

승무와 북놀이를 배우고 이창조(장성출신) 선생에게는 검무를 학습한 점

이다 이처럼 목포 권번과 광주 권번을 오가며 박영구 이창조 그리고

이대조 선생에게서 승무 승무북놀이 검무 입춤 살풀이춤 장고춤

태평무 한량무 보렴승무 흥춤 장검무 장고기법들을 배웠다

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공연은 1942년(16세) 목포역전에

서 임방울이 주관하는 명인명창대회였다 이때 승무를 출 박봉선이 사정이

생기자 함국향이 이매방을 임방울에게 소개하여 김연수의 장삼을 빌려 입

고 무대에 나섰다 이때 이매방은 승무를 추어 관객의 열렬한 호응으로 자

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또 예술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해방 후로는 1948

년 임춘앵의 여성국극단에서 삼고무를 가르쳤고 그해 목포 역전에서 다시

임방울이 이끄는 명인명창발표회에 당당히 승무로 출연하게 되었다

방랑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춤 정립(대구 군산 부산 광주 서울)

1950년 6middot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북한군의 뒤를 따라 예술동맹 공연

단들이 목포에 내려와 인민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당시 최승희의 딸 안성희는 lt장검무gt 전황(본명 전두황)은 lt처녀총각gt 등

을 추었으며 이어 이매방을 강제로 무용동맹에 가입시켜 무용활동을 시켰

다 수복 후 국군이 들어와 무용동맹에 강제로 가입했던 것 때문에 곤욕을

치렀으나 가까스로 해명하고 국군 군예대(KAS 종군연예인공연단)에 가

입하여 1951년 대구에 본부를 두어 활동하면서 지방순회공연을 다녔다

또 광주에서 전라남도 경찰국 선무공작단을 맡아 단장으로 호남 일대를 돌

며 순회공연을 하던 중 잠시 군산으로 옮겨 군산시 영화동에다 이매방무

1 1950년대 삼고무 초기 모습

2 1978년 이매방 승무

3 1938년 정포소학교 고개 숙인 이가 이매방 우측 앞

3

2

1

한국 전통춤의 대부 우봉(宇峰)

이매방 선생님이 2015년 8월 7일

8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우봉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로 lsquo하늘이 내린

춤꾼rsquo으로 칭송되는 근현대

전통춤계의 중심인물이었다

1927년 5월 5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7세 되던 해에 목포

권번(券番)의 권번장 함국향의 눈에

들어 춤 학습을 받았다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검무 그리고

고법을 가르쳤던 이대조(李大組)

명인으로부터 춤과 북놀이 사습을

8년 동안 받은 후 평생 외길

춤인생을 걸으면서 두 종목의

인간문화재로 그 명성과 수많은

이수자를 배출하였다

우봉 이매방의 춤사위는 lsquo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rsquo라는 표현을

넘어 lsquo밀레니엄에 한 번 날까rsquo하는

역사적인 존재라고 할 만큼 전통춤의

진수를 전승시킨 인물이다

그러면 우봉 이매방이 어떤 계기와

학습과정으로 전통춤의 대부가 될 수

있으며 어떤 춤 일생을 살아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20 21기획특집 2

용연구소를 개설하여 2 3년간 활동을 하였다

그 후 1953년 부산으로 내려가 장홍심이 운영하는 영도에서 함께 연구소를

했으며 부산 제자로는 김진홍 성승민 이도근 등이 있었다 1954년 광주

로 옮겨 국악원을 개설하여 한순서를 조교로 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무용

발표회(1955년 광주극장)를 가졌다 한편 서울에서는 여성창극단 삼성여

성국악단(박옥진 박보아 조양금 3인) 등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다시 1955

년 부산으로 내려가 초량동에 자리 잡고 첫 발표회를 대영극장(1957년)에서

하였다 그리고 서울에서도 1959년 원각사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당시의 이매방의 춤 활동은 전국적으로 목포 대구 부산 광주 서울이

었지만 주 근거지는 사실상 부산무용가협회 정회원이었으며 1957년과

1958년에 부산공연을 올리며 1960년대 말까지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

1960년대는 많은 무대를 누비면서 점차 춤 레퍼토리를 확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이매방은 삼고무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창작하였으

며 그 후 5고무 7고무 그리고 9고무와 11고무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lt초립동gt lt화랑무gt lt검무gt lt장검무gt lt박쥐춤gt lt흥춤gt lt무당춤gt lt장고

춤gt lt학춤gt 등을 정립하였고 늘 추어온 lt승무gt lt입춤gt lt검무gt 등과 함

께 추었다 이매방 승무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연구소를 서울로 옮겨

오늘날까지 서울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매방은 lt보렴승무

gt lt삼현승무gt lt살풀이춤gt lt검무gt lt입춤gt lt한량무gt lt태평무gt lt흥

춤gt lt장검무gt 그리고 lt장고춤gt 등도 lt승무gt와 함께 끊임없이 연마하여 왔

다 그러한 이매방의 춤예술 정립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예능적 기술이 뛰

어났기 때문이었다

승무 살풀이춤 인간문화재와 국무(國舞)로 추앙

이매방이 서울무용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중앙대 교수이

며 문화재 위원이었던 정병호에 의해 1977년 7월 30일 서울 YMCA에

서 열린 한국전통무용발표회에서 승무를 발표하면서였다 아울러 그때

까지 한성준류의 한영숙 승무에 매료되었던 이들에게 새로운 유파의 승

무가 있음을 신문지상을 통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무대에서의 성공

은 이듬해 1978년 3월 세계민속예술제 한국대표로 프랑스 렌느시에 참

가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이매방 춤판의 최고 결정판은 lt북소리gt 시리즈였다 1984년 6월 이매

방 무용인생 50주년 기념공연 lt북소리gt(문예회관 대극장) 1985년 6월

이매방 전통무용 lt북소리 Ⅱgt 1990년 rsquo90 북경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

전 참가와 lt북소리Ⅲgt(호암아트홀) 그리고 1994년에 춤인생 60년을 정

리하는 lt북소리 Ⅳgt였다 또한 전통예술의 보급과 선양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결과로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1984)과 성옥문화상 문예부문 대상

(1995)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병호 문화재위원의 끈질긴 노력으로 1987년 7월 1일 이매방은 중요무

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명실상부한 명무의 대열

에 서게 되었다

이어 1990년 10월 10일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도 인정받아 전

통춤의 최고 명인으로 추앙받게 되었으며 수많은 한국무용가들이 이매

방류 춤을 전수받기 위해 구름같이 모이게 되었다 그 후 1996년 인생70

고희기념공연 1997년과 98년 일본공연과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2007년 lsquo우봉이매방팔순기념공연rsquo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으며

매년 제자들과 함께 정기공연을 하였다 전통춤경연대회 및 300여 명에

이르는 승무와 살풀이춤 이수자들과 제자들의 공연에도 찬조출연과 반주

를 직접 해주는 열정을 최근까지 지속하였다

이매방 춤의 무용예술적 가치

이매방의 춤에서는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호남제 시나위 춤사위로 짜여져 있

다 춤기법의 중심은 대삼소삼(大杉小杉) 비정비팔(比丁比八) 양우선(兩雨線)

비디듬 좌우걸이 완자걸이 잉어걸이 지숫기 등으로 곱고 아름다운 사위와

자태를 자아내고 한을 신명으로 풀어내는 정중동의 몸놀림이 배어 나온다

결국 이매방 춤은 호남 지방의 권번에서 추어왔던 춤사위 기법이지만 많

은 세월이 지나면서 스승들의 춤을 뛰어넘어 아무도 넘겨볼 수 없는 국무

(國舞)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이매방의 일생을 통해 그가 가진 춤의 예

술적 가치를 요약하면

첫째는 남자이면서도 여성보다도 더 곱고 섬세한 기방계통의 lsquo춤바디rsquo와

여성적 lsquo춤속rsquo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호남지역의 명무들로부터 뼈대 있는 전통춤을 다양하게 전수받아

호남춤의 정통성을 확립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과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춤의 천재이기 때문이다

넷째 현대교육개념으로 볼 때 어린 나이부터 춤의 조기영재교육을 받았

기 때문이다

다섯째 세계적인 경극과 춤의 명인 매란방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예술혼

을 불태우고 인생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80평생 춤추는 것 외에는 남자로서 어떤 직함도 직책도 직업도

가진 바 없이 오로지 춤만 추어온 외길 인생이기 때문이다 춤이 곧 이매

방의 삶이며 생명이며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일곱째 호남지역춤과 기방계통춤이라는 lsquo국지성rsquo에서 출발하였지만 경향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범한국적 전통춤의 lsquo국가성rsquo으로 거듭났으며 국제무

대에도 우리 전통춤의 lsquo세계성rsquo을 알리고 확인하는 독창성과 보편성을 지니

고 있었다는 점 등이 이매방 춤이 가지는 예술적 의의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매방은 1927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민족 수난 속에서도 춤을 배

웠고 해방과 6middot25전쟁 통에서도 오로지 춤만을 추었고 외래문명의 홍

수와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꿋꿋이 춤만 추어 한국 전통춤의 위상을 높였

고 세계 속에 한국춤의 지평을 열어 대한민국 시대의 전통춤 패러다임을

구축하였기에 국무적 존재로 인정받아 온 것이다

1970 2004 2008 2012

22 23

양종승 (우봉이매방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middot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하늘이 내린 춤꾼 宇峰 이매방 선생님을 追惜하며

춤을 위해 태어나 평생 동안 춤만을 사유하였던 우봉(宇峰) 이매방(李梅

芳) 선생님께서 2015년 8월 7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승천하셨다 선생

님은 1927년 5월 5일(음력 3월 7일) 새벽 동이 틀 무렵 목포에서 이경

율과 조병림 사이의 10형제 중 막내둥이로 태어났다 5남매는 일찍이

죽고 남은 3남 2녀 중 막내로 성장하였다 선생님 아명은 집안 돌림자에

따라 영길(永吉)이었지만 스님께서 귀한 아들이라고 하여 귀태(貴泰)로

개명해 주었다 오기된 호적에는 규태(圭泰)로 되어 있다 매방(梅芳)이

라는 이름은 중국 경극의 명인 매란방(梅蘭芳)의 첫 자와 끝자리를 따 예

명으로 불리었는데 1986년 호적을 개명하여 본명이 되었다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춤에 소질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서 성장하였다 결국 옆집 살던 권번장 함국향 권유로 목포 권번에 들어가

당대 소리 북 춤 등에 대가들이었던 이대조 이창조 박영구 진석산 등

에게 승무 검무 살풀이춤 등 전통춤을 학습하였다 선생님의 무용활동

은 목포 공립 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 승무로 출연

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이후 1953년 광주에서 첫 개인발표회를 시

작으로 무용인생 50주년 65주년 70주년을 비롯한 수많은 국내외 공연

을 펼쳤다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1990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가 되었다 그리

고 2014년 승무 및 살풀이춤 명예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한국무용협회 고

문 한국국악협회 고문 한국전통춤협회 고문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

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국무 우봉이매방 화보집』을 발간하였다

이매방 선생님 장례식은 2015년 8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서울삼

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문화예술인 葬]으로 치러졌다 목포문화예술회

관 내에 있는 이매방춤전수관에도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우봉이매방장

례위원회가 구성되어 공동장례위원장을 김종규 한국문화유산신탁 이사

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이경동 한국문화원연합회 회장 김복

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하철경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 김

덕수 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이사장 김진홍 부산시 무형문화재 동

래한량무 보유자 김정녀 중요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전수조교 채상묵

한국전통춤협회 이사장 국수호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등 10명이 맡

았다 장례집행위원장을 양종승 우봉이매방춤보존회 수석부회장 장

례집행부위원장에 김덕숙 김효분 박종필 오은명 최창덕 황순임

등 우봉이매방춤보존회 부회장 6명이 맡았다 장례위원은 김묘선 오

미자 박소림 이길주 송재섭 정영례 최희진 한혜경 김리혜 김은

희 한명옥 진유림 채향순 강성민 백경우 김정기 등 제자 215명이

맡았으며 목포분향소 공동장례위원장은 임점호 목포신안예총회장과 박

수경 목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맡았다 장례의전은 국가공인장례지

도사 유재철 황근식이 진행하였다 유족으로 미망인 김명자(전통무용

가 승무 및 살풀이춤 전수조교) 딸 이현주(전통무용가 승무 및 살풀

이춤 이수자) 사위 이혁열(연극인) 등이 있다

추모식 전경선생님 영전에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을 추서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

부 장관은 일평생 우리 춤 전승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며 문화

융성과 전통예술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공적을 기렸다 또한 이매방 선

생님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깊은 애

도와 함께 목포가 낳은 문화예술계의 큰 별이셨던 선생님은 우리나라 전

통예술의 표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외에 박민권 문화체육관광부 제1

차관 나선화 문화재청장 김해숙 국립국악원장 서도식 한국문화재재

단 이사장 이문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 등 정치계 문화예술

계 등 각계 인사들과 수많은 무용 가족들이 조문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추모식은 2015년 8월 9일 일요일 오후 7시부터 9

시까지 2시간 동안 삼성서울병원 영결식장에서 유가족 지인 각계인

사 제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덕택 운현궁 예술감독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민의례 고인에 대한 묵념 양종승 장례집행위원장의 고

인 약력보고 공동장례위원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공동

장례위원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이사장 공동장례위원장 김복희 한국

무용협회 이사장 등의 조사 제자를 대표한 채상묵 공동장례위원장의

추도사가 있었다 동영상으로 고인의 생전 활동과 육성을 보고 들은 후

유가족을 비롯한 지인 문화예술계의 인사 제자 등의 헌화 및 분향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안숙선 명창의 이별가와 김영임 명창의 회심곡 중

저승 가는 길이 헌가로 받쳐졌다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 보

유자 박병원 전수조교 송순단과 박미옥 등이 주관하는 추모굿과 이광

수 명인의 헌가가 올려졌다 다음날 오전 7시 30분에 발인식이 행해졌

고 오전 9시에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이 이루어졌다 유해는 경기도 광

주시 오포읍 시안가족추모공원에 봉안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에서 초제를 시작으로 49재가 진행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금세기 하늘이 내린 명무였다 그리고 근현대 문

화적 격동기 속에서 우리 춤을 꿋꿋이 지킨 민족춤 계승자로서 주어진

소임을 완수하였다 그래서 선생님의 예술 생애와 그가 전승해 온 민족

춤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큰 가치를 지닌다

주지하다시피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한국 전통무용 진가를 표방

하는 고단위적 한민족 춤 유산으로써 조선 중엽 이후 불교의식 민속놀

이 유랑예인연희 무속신앙 등과 어우러져 계승 발전되어 왔다 그와

더불어 민중의식을 담아 애환과 기쁨을 표상하는 춤으로써 위엄 있고 격

조 있는 춤으로 승화되었다 그래서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무용 예술적

가치와 업적은 위대하고 광활하다 무용평론가 강이문과 무용학자 이병

옥 교수는 이매방 선생님을 國舞라 칭했으며 문화계 많은 인사들은 신이

내린 춤꾼이라 호평하였다 이러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우봉 이

매방 선생님 금자탑에서 빛나는 것은 다름 아닌 기왕 흩어져 내동댕이쳤

던 민족 춤의 뿌리를 살려내어 우리 시대 진정한 무용예술로 승화시키고

국가의 민족유산으로 갈고 다듬은 것이었다 이는 탈 식민지적 화두가 -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다큐멘터리 중 이매방 인터뷰 -

살풀이춤은

즉흥무이다 승무

검무 법무를 다

배우면 자기 멋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수판을 잘라야 한다

가락도 춤 승무 가락

검무 가락 이런 거

섞어서 장단 맞춰서

자신의 감정 음악

듣고 음악이 슬프면

슬픈 표정으로

즉흥적으로 추는 춤이

즉흥무야

24 25기획특집 3

본격화되던 20세기 초중반 우리 것에 덧씌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구

를 벗겨내려는 문화 민족주의적 활동의 한 면이었다 서구 중축의 지배

담론을 탈피하면서 그동안 왜곡되고 전도된 관점에서 벗어남으로써 민

족춤에 비문명적이라는 멍에를 씌었던 편협한 지식층의 문화보기 탈각

운동의 한 면이었던 것이다 시기는 일본제국주의의 한국민족문화 말살

정책 해방 후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교육정책의 서구 지향적 패러다임

등장 도시화middot산업화middot현대화에 따른 전통문화 멸시 및 천시 등으로 인

해 민족예술이 단절 위기에 처했었던 그때였다 또한 현대 산업화에 따

른 근대화론 지향의 국책 하에서 민족예술을 진부하거나 불필요한 것으

로 치부하는 풍조였던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우리의 것은 외래의 것에 밀리거나 일방적으로 시비 당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빼앗기는 패배의 싸움판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던 그 상황 속에

서 선생님은 묵묵히 그리고 꿋꿋하게 우리 춤을 지켜 내셨다 우리네 전

통춤은 비합리적이고 가치가 없으며 저급하고 미천한 것으로 저평가되

돼 전승의 단절까지 치닫게 된 상황 속에서도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우

리 춤 계승하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의 춤을

옥석으로 다듬어 세상에 펼쳐 보임으로써 민족 무용예술의 가치를 되살

리는데 평생 힘써 왔었다 결국 어려운 역경과 피나는 고난을 헤치고 일

어난 선생님의 예술세계는 살아 숨 쉬는 민족 춤으로 꽃 피어졌다 향토

춤 민족춤 전통춤 속에 내재된 민중들의 예술적 사상과 정신이 북돋아

나 전통문화복원 민족문화재건 향토문화복구 등과 함께 형성된 민족

문화바로세우기운동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춤은 밖에

서 유입된 외래의 것과는 달리 이 땅에 자생적으로 자라온 민족 춤 뿌리

로 각인되면서 한국무용예술사에 독창적 고귀성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

리고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와

1990년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국민의 춤꾼으로 안

착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 계보를 따지고 올라가면 신방초(申芳草 남)라

는 인물이 있다 전남 옥과 출신인 그는 1817년 무속집안에서 태어난

재인으로 어정판에서 바라지로 활동하였다 춤은 물론이고 육자배기

가곡 가사 장단에 능하여 호남 일대에서 대단히 명성이 높았다 그래

서 당시 호남의 유명 당골들은 그를 모셔가기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였

다고 한다 신방초는 자신의 춤을 같은 고향 출신 신영수(남)에게 전했

다 이후 고창 출신 안두온(남)에게로 이어졌고 다시 순창 출신 이정선

(남)에게 전수되었다 이정선은 춤뿐만 아니라 북놀이에도 뛰어난 재능

을 갖고 있었던 예인이었으며 판소리도 잘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상당

한 대접을 받았다 이정선의 춤은 목포 출신 김금옥(여)과 박귀주(여)에

게 이어졌다 그 후 이매방 선생님의 스승 박영구 이대조 이창조 진

석산 등에게 전수되었다 박영구(남)는 전남 화순 출신으로 승무와 북놀

이의 명무 명인이었으며 광주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대조(남)는 전

남 무안 출신으로 승무의 대가였고 목포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창

조(남)는 전남 능주 출신으로 검무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고 역시 광주 권

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그리고 진소홍(일명 진석산 여)은 전남 담양 출

신으로 서울 인사동에서 요릿집을 운영하면서 살풀이춤을 전승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춤에는 엄격한 억제와 철저한 절제가 존재한다 이

는 수단에 의해 보이는 기교면서 또한 재간으로 처리될 수 있는 예술적

기법의 한 면이다 선생님의 춤은 또한 느낌과 감정의 표현 방식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느낌에서는 가벼움과 무거움 재빠름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이매방 승무-필자 양종승 제공팔순 기념공연-필자 양종승 제공

과 더딤 흐늘거림과 꼿꼿함 섬세함과 우람함 정교함과 장중함 등의

변화무쌍한 표현력을 가진다 감정에서는 슬픔과 기쁨 가냘픔과 뭉뚝

함 애석함과 환희 괴로움과 기쁨 고요함과 시끄러움 등이 묘사되는

데 이는 삶의 고뇌와 애환은 물론이고 희망과 행복을 감싸고 있음을 말

한다 이러한 춤에 있어서의 느낌과 감정은 비정비팔 비디딤 까치걸

음 잉애걸이 좌우걸이 완자걸이 안가랑 등의 발디딤새와 양우선

평체 사체 등의 손놀림새 그리고 연풍대 지숫기 다루치기 대소삼 등

의 몸굴림새 속에서 표현력을 한층 고조시킨다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

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

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

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길이

길이 민족 춤 기틀로 명명되어 질 것이다 천기를 타고난 춤꾼 신들

린 듯한 춤으로 관객을 홀렸던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이제 천상

무대로 가시어 휘날릴 것이다 선생님 기어이 춤과 함께 홀연히 떠

나셨으니 부디 부디 영면하옵소서

추모식 전경

26 27

전경욱 (고려대학교 교수)

동아시아의 가면극1 중국 귀주성 위녕현의 〈춰타이지(撮泰吉)〉 가면극

풍농과 악귀 쫓기를 위해 기원하는 제의의 일부

2 한국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서낭신인 각시가

무동을 탄 모습

3 일본의 미야자키현(宮崎県) 시이바손(椎葉村)의

〈다케노에다오가구라(嶽之枝尾神楽)〉

4 《봉사도》제7폭 모화관에서 행해진 중국사신

영접행사의 연희장면 산대(왼쪽) 앞에서 연행된

줄타기 물구나무서기 접시 돌리기 가면극 등의

전문적 연희

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에서는 가면극 분야에 대해 보

유자와 단체를 모두 지정하고 있으니 일본보다 지원이 좋은 편이다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을 민간문학 민간음악 민간무용 전통희극

곡예 잡기와 경기 민간미술 전통수공기예 전통의약 민속으로 분류

하여 지정하고 있다 중국 가면극인 나희는 전통희극 분야에 해당한다

한국에는 현재 국가 지정의 중요무형문화재 가면극 13종목 각 시도의

무형문화재 가면극 2종목(진주오광대와 퇴계원산대놀이)이 있다 중국

은 그동안 전통희극 분야에 430개 종목을 지정했는데 여기에 나희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노(能)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중요무형

민속문화재의 민속예능 분야에 35개의 가구라(神樂)를 지정했다 이 가

구라들은 대부분 민간의 가면극이다

Ⅱ 동아시아 가면극의 역사와 계통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면극은 매우 유사한 발전 과

정을 보인다 동아시아에는 (1)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과 (2)전

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이 있었다 (1)은 각 지역의 향촌제사

활동(鄕村祭祀活動)에서 연행되던 것으로서 각각 자생적 향토적 성격

을 띠고 있다 그러나 (2)는 산악(散樂) 또는 백희(百戱)라고 불리던 동아

시아 공동의 연희들이 발전하여 성립된 것으로서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함께 각국의 독자성을 띠고 있다

1 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하회별신굿탈놀이나 강릉관노가면

극처럼 향촌제사활동인 마을굿에서 유래하여 발전해 온 가면극들로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전승해 왔다 이 가면극들은 다른 지방의 가면극과

는 아주 다른 독자적 내용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가면극들이 마을굿에

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도판 1)

중국의 나희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지만 후대에는

그것이 민간에 전파되어 각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도 전승되고 있다 그

리고 중국 한족을 비롯하여 소수민족들에는 여러 향촌제사활동에서 유

래하여 그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가면극들도 있다(도판 2)

한편 일본의 고유 신앙을 섬기는 신사(神社)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연예술

인 가구라(神樂) 중에는 자생적인 민속가면극의 예를 보여 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국의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방마다 차이가 크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도판 3)

2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생겨난 가면

극이다 본산대놀이는 삼국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산악middot

백희 그리고 상고시대의 제천의식 등에서 연행되던 전문적 연희자들의

연희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해 형성된

것이다 산악middot백희를 놀았던 사람들은 그 연희 내용으로 볼 때 삼국시

대부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연희자였으며 이들의 후예가 통일신라시

대에 최치원의 시 lt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gt에 묘사된 다섯 가지 연

희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계승된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연행

된 가무백희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나례에서 연행된 산

대희 등을 놀았다 그리고 중국 사신 영접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

희를 펼치던 반인들이 18세기 전반기에 산악middot백희 계통의 연희와 기존

의 가면희들을 재창조해서 본산대놀이를 성립시켰다 이 가면극은 애오

개(아현) 사직골 구파발 녹번 등에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봉사도(奉使圖)》(1725년) 제7폭은 서울의 모화관 마당

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행사의 연희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접시 돌리

기 땅재주 줄타기 탈춤을 묘사하고 있다 마당의 오른쪽에는 산거(山

車)middot산붕(山棚)middot윤거(輪車)middot예산대(曳山臺)middot예산붕(曳山棚) 등으로 불

렀던 소규모의 산대가 보인다 바로 이런 산대 앞에서 공연하던 연희들

을 lsquo산대희rsquo라고 불렀다 특히 세 명의 땅재주꾼 양 옆에서 각각 두 명씩

모두 네 사람이 초록색과 남색의 가면을 쓰고 탈춤을 추고 있다 이는 서

울에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가면극이 있었고 그 가면극을 애오

개산대놀이 등 산대놀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전해준다(도판 4)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경기도의 송파산대놀이middot양주별산대놀이 황해

31 2

Ⅰ 동아시아 가면극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우리는 가면극을 탈춤 탈놀이 가면희 등으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가

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儺戱)라고 부

르는데 이는 중국 가면극들이 대부분 나례에서 연행되던 연희인 나희

로부터 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무형문화유

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middot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부터 한국은 1964년부터 중국은 2006년부터

무형문화재를 국가 차원에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

의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용어로 lsquo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rsquo이라

는 말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의 기예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lsquo보유자rsquo로 인정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lsquo전승인(傳承人)rsquo 일본에서는

lsquo보지자(保持者)rsquo라고 부른다

중국은 이제 막 무형문화재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작했지만 각 지역에

서 자기들의 무형문화재를 국가 지정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으로 등재하기 위

한 열기는 매우 뜨겁다 그리고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과 관련된 행사나 학술

대회도 자주 개최하고 있다 필자는 매년 중국의 가면극학회인 중국나

희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는데 가면극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들에서

는 이 학회를 유치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현지 답사를 통해 자기 지

역의 가면극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국가 지정의 무형문화재를 (1)중요무형문화재(연극 음

악 공예기술 등)와 (2)중요무형민속문화재(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

행사 등에 관한 풍속관습 민속예능)로 구분하여 지원한다 그래서 연극

분야 중 노(能) 가부키(歌舞伎) 등은 (1)에 해당하고 각 지방의 가구라

(神樂)는 (2)의 민속예능에 해당한다 (1)은 전문적인 연희자들이 전승하

는 종목으로서 그 기middot예능을 보유한 사람과 단체를 모두 지정한다 그

러나 (2)는 단체만 지정하고 보유자는 지정하지 않는다 이를 한국에 적

용하면 판소리는 (1)중요무형문화재(음악)에 가면극은 (2)중요무형민

속문화재(민속예능)에 해당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한국의 가면극들

은 대부분 각 지방에서 세시풍속의 하나로서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

日韓 中

4

28 29무형문화재 삼국지ㆍ예능

도의 봉산탈춤middot강령탈춤middot은율탈춤 경남의 수영야류middot동래야류middot통

영오광대middot고성오광대middot가산오광대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

본산대놀이는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했지만 여기에서 전파된 별산대

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 등은 농민 하급관속 무부(巫夫) 등 각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중국 가면의 역사에서 가면의

효시는 나례에 등장하던 방상시(方相氏) 가면이다 이 나례에서 연행되던

각종 연희와 가면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면극이 생겨났기 때문에 가면

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다른 계통의 가면은 육조(六朝)시대 이후 산악middot

백희에 사용되던 것으로 이는 서역악무(西域樂舞)의 영향을 받은 외래

기원의 가면이다 현재도 중국에는 귀주성의 나당희처럼 무당집단이 전

승하고 있는 나희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들은 전문적 연희자인 셈

이다(도판 5)

일본의 가면극은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서 육성된 가면극과

서민층에 의해 육성된 가면극이 있다 전자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예술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데 기가쿠(伎樂)middot

부가쿠(舞樂)middot교도(行道)middot노(能)middot교겐(狂言)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

데 노와 교겐은 특히 산악middot백희와 밀접한 관련 아래 성립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문화인 산악middot백희가 일본에 유입

된 이후 변화middot발전하여 후대에 일본의 대표적 전통연극인 노가쿠(能

樂)middot노쿄겐(能狂言)middot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middot가부키(歌舞伎) 등 전통연

극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산악middot백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 연희를 발전시켜 lsquo나희

(儺戱)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켰고 일본에서는 사루가쿠(猿樂) 즉 산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lsquo노(能)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킨 것처럼 한국에서도

중국 사신 영접 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반인(泮人)들이

lsquo본산대놀이rsquo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Ⅲ 동아시아 가면극의 연희 내용

한국의 가면극은 벽사적 의식무과장 파계승과장 양반과장 영감할미

과장 등 서로 다른 내용의 과장들로 짜여진 소위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

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면극을 탈춤이라고 부를 정도로 춤이 많

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춤사위가 매우 뛰어나다(도판

6) 일본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가구라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짜인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나희와 일본

의 노는 대부분 하나의 가면극이 하나의 서사적 내용으로 짜여 있다

이러한 서사성의 나희와 노도 또한 서로 차이점을 갖고 있는데 노는 lsquo현

재노(現在能)rsquo와 lsquo몽환노(夢幻能)rsquo가 있어 특징적이고 나희는 주로 노래와

대사에 의해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lsquo현재노rsquo는 현재형으로 사건이 전개

되는 노를 말한다 lsquo몽환노rsquo는 나그네(조연자인 와키가 분장)의 꿈 속에

망령이나 화신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몽환노에

서는 시간이 자유롭게 정지하고 역행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도 자유롭게

등장할 수가 있다 주연자는 고전 속의 미녀이거나 역사상 인물일 수도

있고 지옥의 원령이거나 신(神) 불(佛) 귀(鬼) 초목(草木)의 정령이기

도 하다

중국 나희에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 황제 왕 일반인물

등 배역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연희 내용도 의식적인 춤을 제외

하면 대부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를 연극화

하여 공연한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 가면극에서

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이 거의 없고 황제나 왕 같은 존재

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반 인물 위주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연희 내용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주로 현

실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한편 한middot중middot일의 가면 또한 각국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middot중middot일 가

면의 형태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 윗부분에 있다 한국 가면은 얼굴

의 이마 부분까지만 표현하고 있다 일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경우에

도 간단한 선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

을 안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낸다 모자를 쓰는 배역은 별도의 모자를 착

용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의 귀면(鬼面)인 팔먹중가면을 보면 오로

지 안면의 표정에 의해 무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 노나 가

구라의 가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가면은 대부분 머리 부분과

얼굴 부분을 모두 이용해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한다 가면 자체에

머리 부분의 모자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도판 7)

그리고 한middot중middot일의 음악적 선율과 장단이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음악에 맞춰 연기하고 춤을 추는 연희자들의 동작과 춤사위는 각국

가면극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

5 중국 귀주성 덕강현의 무당들이 공연하는 가면극인 〈나당희(儺堂戱)〉

6 춤사위가 매우 뛰어난 〈봉산탈춤〉의 팔먹중춤

7 중국 안휘성 지주의 나희 〈유문룡〉 가면 자체에 모자를 장식

7 5

6

30 31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충남middot서울시 문화재위원)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도판4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양푸시(楊福喜) 201598 필자 촬영

도판5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권영학 보유자 2015821 필자 촬영

도판6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故 김박영 보유자 서헌강 촬영

도판1 활 쏘며 수렵하는 장면 고구려 무용총

도판2 중국 고대 활과 화살 및 활쏘기 장면 전국시대 초(楚) 동호(銅壺)

도판3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일본

Ⅰ 한민족과 활

한국인에게 활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민족과 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중국인이 우리 민족을 부르

는 명칭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이다 lsquo이(夷)rsquo라는 글자는 큰 대(大)자

와 활 궁(弓)자가 결합되어 있다 동이라는 글자를 곧이곧대로 풀어보면

lsquo중국의 동쪽에서 살며 큰[大] 활[弓]을 잘 만들고 쏘는 민족rsquo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 미루어 이미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우

리 한민족이 그들 한족보다 활을 잘 다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반인뿐 아니라 왕도 활을 잘 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적 인물로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lsquo활 잘 쏘는 이rsquo의 대명사로 기

록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쏘았으며

사도세자의 아들로 유명한 정조 또한 활을 잘 쏜 국왕으로 기억된다

조선에서 활쏘기를 잘했던 이유는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심신을 단련

하는 육례(禮 樂 射 脚 書 數) 중 하나로 활쏘기가 장려된 데에도 원

인이 있다 조선에서는 국가 의례로 활쏘기 행사를 거행하였다 왕과

신하가 활 쏘는 대사례(大射禮)는 1477년(성종 8) 1534년(중종 29) 및

1743년(영조 19) 1764년(영조 45)에 군신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였다 한편 지방의 양반 사족들은 향약과 비슷한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양국의 활은

기본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청나라 시대의 그림을 보면 조선 말기 19세기에 활

을 쏘는 그림과 비교가 된다 두 나라의 사수(射手)는 각각 청나라와 조

선의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른 편이다 더욱

이 양자가 활을 쏘는 모습은 공통되면서 부분적으로 다르다 그림 속 중

국의 활은 150cm 정도여서 1m 안팎의 한국 활보다 길이가 긴 점이 다르

다 막상 양자에서 동시에 화살을 쏘면 날아가는 비거리는 후자가 훨씬

긴데 이렇게 그림에서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몇 년 전

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lt최종 병기 활gt이다 시대 배경은 병자호란 당

시 청나라 무사와 조선의 사수가 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영화화한 것

이다 비록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다소 활의 효능이 과장되긴 했지만

두 나라 활의 특징과 조선 활의 장점을 극명하게 잘 그려내어 흥미롭게

본 기억이 새롭다

한편 양국과 비교되는 것이 일본의 활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활은 전

체 길이가 220cm가 넘는 세계 최대 길이의 활이다 16세기 조선의 『난

중잡록』에 의하면 일본의 화살은 lsquo장편전(長編箭)rsquo이라 하여 여러 나라의

화살과 비교해서 일본의 화살이 매우 크다는 기록으로 이미 조선에서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활을 사용하는 일

본에서는 활을 잡는 위치도 특이하다 일본의 활은 장대하기 때문에 위

쪽이 길고 아래는 짧아서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그림을 보면 매우 긴 활

의 아래쪽을 잡고 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활

은 ldquo화살은 길지만 먼 곳까지는 날지 않는다rdquo라고 13세기의 몽고인이

기록하고 있어 비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가마쿠

라 시대에 들어가면 그 중량이 더욱 늘어나 70g에 이르면 길고 무거운

화살을 폭이 긴 활로 쏘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Ⅲ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활과 화살은 조총이나 대포 등과 같은 화기(火器)를 발명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중요했다 이에 각국은 국력을 모아 활과 화살을

제작하였다

이미 고려 때에 중앙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에 각궁장(角弓匠) 전장(箭

匠) 전두장(箭頭匠) 등의 장인을 소속시켜 각궁을 만들었다 또 궁중의

궁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내궁방(內宮房)에도 각궁장(角弓匠)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군기감(軍器監)을 설치 운영하였고 장인들을 소속시켜 활

과 화살을 제작하게 하였다 이들 장인은 다른 기술을 가진 장인과 달리

궁인(弓人)이나 시인(矢人)으로 불렀다 궁인과 시인이라는 명칭은 『논

어』에서 나오며 그들 장인은 다른 물건이 아닌 무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우대하여 부른 것이다 이에 조선은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면

서 궁인 90명 시인 150명을 배정하였다 아울러 이들 장인들은 각 지

방마다 상당수를 배정하였고 이 또한 여타의 다른 장인들에 비하여 많

은 숫자에 해당되었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장색과 규모는 영조대 『속대전』이나 정조대

『대전통편』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국가적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각종 300여 도감마다 수많은 궁인이

나 시인을 징발하여 의례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할 궁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사적인 공방에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김준근의 lt기산풍속화gt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궁창을 앞에 두고

줄과 환으로 일정하게 다듬은 쇠뿔과 뽕나무 등을 옆에 두고 완성된

각궁에 시위를 걸어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있다

청나라 말에 전통 활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lt시궁정력(試弓定力)gt에

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입식 건물 안에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너댓 개

의 활을 만들어 올려놓고 다 만든 활을 과학적으로 무게를 재고 있다

향사례(鄉射禮)를 거행하여 사족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활을 좋아하고 잘 다룬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역

사 동안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다른 종목보다 유달리

활(양궁)을 잘 쏘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한민족의 피 속

에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유전인자 DNA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Ⅱ 유물 속 동아시아의 활

인류는 이른 시기부터 멀리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자 무기로 활과 화살을 개발하였다 이후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

에 따라 궁시를 제작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

하였다 하지만 궁시는 대개 나무나 대나무와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

져 썩어 오래전의 유물을 확인하기 어렵고 단지 흑요석(黑曜石)처럼 단

단한 석제로 만든 화살촉에 의해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정복 전쟁이 빈번해지던 고대부터 무기가 발달하였다 당시에

사용된 활과 화살의 형태는 유물 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전국시대(BC 475~221) 동호(銅壺) 유물

을 보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한편

5세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lt수렵도gt에서 말 위에서 짐승들을

1

32

4

6

5

32 33무형문화재 삼국지ㆍ기능

양국의 활 제작방식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청나라 활 제작 장인 집단

은 북경 동사대가에 있는 궁전대원리(弓箭大院里)에 17가호의 궁전 점포

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squo취원호(聚元號)rsquo이다 이곳에서 중국 전통 활

을 제작했던 장인이 양뤼린(楊瑞林)이며 아들인 양원통(楊文通) 손자인

양푸시(楊福喜)까지 3대가 잇고 있다 양푸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활을 제작하여 2006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

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장인으로 보호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45년 앞선 1971년 9월 13일 전통 활 제작 장인

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으로 지정하였다 서울 황학

정의 장진섭(張鎭燮 1916~1996)은 조부(장문환)와 부친(장기홍)에 이

어 3대째 활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예천의 권영

록(權寧錄 1916~1986)은 부친(권태전 權泰全)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

었다 부천의 김장환(金章換 1909~1984)는 조부(김원재)와 부친(김

동천)의 대를 잇고 한국 제일가는 명사수로서 활동하고 부천 성무정의

초대 사두(1967~1982)가 되었다 그의 기술은 제자인 김박영(金博榮

1929~2011)이 전승하였다 그의 사후 2015년 권영학(1943년생)보유

자가 새로 인정되어 조부(권선복)와 부친(권우갑)의 가업을 이어 그 또

한 3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화살을 만드는 시장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시장)

으로 지정하였다 화살로 유명한 장단에서 나고 자란 유영기(1936년 그런데 세계적으로 강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활은 여기에 화피를 더

하여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물소 뿔(牛角) 쇠심줄(牛芯)

민어 부레풀(魚膠) 대나무 뽕나무(弓幹桑) 참나무 화피(樺皮)가 그것

이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는 각궁은 살

아있는 활이면서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쇠뿔은 통뼈이며 대나

무와 뽕나무 및 참나무가 세부 뼈대이고 그 위에 바르는 쇠심줄은 근

육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부레풀은 연골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다듬는

화피는 피부에 해당된다 이중 물소 뿔과 대나무 및 쇠심줄이 활의 강

도와 탄성을 이루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민

어 부레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은 1년 중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제작하여 계절을 타는 공예품인데 그 이유는 동식물성 재료

들이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아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심이 건

조가 안되고 풀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여름에는 재료를 장만하고 찬바람이 나면 풀을 대와 뼈와 나무를 서로

붙여 정월 경에 건조시키고 3월부터 한 달 이상 해궁 작업을 한다 각

궁은 제작이 까다롭고 단계마다 원칙을 지키고 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

해서 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궁의 핵심 원료인 물소는 주로 아열대 지방인 중국 남부나 인도 및 인

도차이나 등지에 서식하므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여서 중국은 물소 뿔의 수출을 엄격

하게 통제하였고 조선 정부는 그것을 몰래 수입하려고 애썼다 현재

도 각궁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의 수급은 어려움이 많다 물소는 세계적

인 보호동물이어서 물소 뿔을 수입할 때 세관의 통과가 어렵고 쇠심줄

은 근래 많은 소들이 일하면서 근육을 키우지 않고 육우용으로만 키워

져 탄성이 없어 활의 탄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접착제인 민어부

레의 경우 예전에는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근래에는 민어부레가 정

력에 좋다고 그것마저 식용으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한 활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488년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同越)은 ldquo조선에서 사용하는 화피궁은 중

국의 제도에 비하여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rdquo라

고 평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활은 중국 것보다 작으나 탄

성이 크고 강하다 우리의 시장들은 대나무로 화살대[矢幹]를 만들고

쇠로 활촉(雛)을 끼우며 수리깃으로 화살깃(矢羽)을 만든다 반면 중국

의 장인은 죽시와 함께 유목(楡木)으로 목시(木矢)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활은 대나무와 나무를 한데 결합한 복합궁이다 일본의 활

은 2m 이상으로 길고 무거워 탄성이 적어 근거리에는 위력이 높은 대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이면서 한middot중middot일

삼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각궁은 한국 장인들의 솜씨가

표출된 우수한 전통 공예기술로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생)는 조부(유창원)와 부친(유복삼)에 이어 3대를 잇고 그 아들 유세

현과 유승현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단 근처 원당에서 나고 자

란 박호준(1944년생)은 조부(박희원)와 부친(박상준)에 이어 3대째 가

업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김종국(1940년생)은 스승인 조명제(趙命濟

1915~1980)가 조부(조성관)와 부친(조면보)의 대를 이었던 것을 본받

아 예천에서 화살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12월 14일 부천활박물관을 세웠고 파주에는 유영기

보유자가 만든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반면 중국에는 2012년 신강의

이리에 성급(省級) 비물질문화재로 등록된 이청강(李靑岡)이 중화활문화

박물관(中華弓文化博物館)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로 활을 지

정하지 않아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이 전통적(傳統的) 공예품

(工藝品)으로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을 지정하였다 미야기현(宮崎県)에 위치

한 미야코노조(都城市)에 7대째 120년 전통의 활을 제작하는 활제작소

[楠見藏吉 弓製作所]가 위치하고 있다

Ⅳ 활과 화살의 재료

활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의 『고공기』에 의하면 나무[干 柘 橘 桑 木

瓜 竹 荊 등] 심줄[筋] 풀[膠 말 소 사슴 물소] 뿔[쇠뿔] 옻[漆]

명주실[絲]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은 뿔을 주재료로

삼은 각궁(角弓)인 것을 알 수 있다

도판10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故

김박영 보유자 제작 각궁(角弓)

도판11 중국 양푸시(楊福喜)가 제작한 활

1m 60cm

도판12 중국 양푸시(楊福喜) 화살[箭]

위 2개 느릅나무[楡木] 3번째

목전(木矢) 아래 2개 죽시(竹矢)

201598 필자 촬영

도판13 일본 미야기현(宮崎県)

미야코노조(都城市) 120년 전통

楠見藏吉 弓製作所

httpjotaro-gocomcollect2980

도판14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

지정(指定) 전통적(傳統的)

공예품(工藝品)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

httpjotaro-gocomcollect2980 참고

도판7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종국(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9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박호준(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7 8 9

11 10

12

13 14

34 35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ime a

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fter Tim

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1213

14

1516

1718

1920

21

2223

2425

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8: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전통 한식을 대표하는 한국의집 김도섭 조리팀장은 조선왕조 궁중음식 전수 장학생이자 한식조리기능장으로서 전통음식의

발전을 위한 레시피 표준화 궁중음식홍보사업 등을 통하여 국내외 전통음식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그는 한국의집뿐만 아니라 문화교류사업의 일환으로 해외 행사에서 요리를 하기도 했다 뭄바이 인도상공회의소 주관 한국의

밤(rsquo13) 태국관광박람회(rsquo12) UAE-한 수교30주년만찬amp리셉션(rsquo10) 등에서 요리를 선보이며 한식 전도사로서의 역할 또한 하고

있다 또한 문화재청장 표창(rsquo08)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표창(rsquo15)을 받은 바 있다

문의 02-2266-9101 wwwkhorkr

조리팀장

김도섭

가온정식 1인기준 35000원 삼색밀쌈과 해물잣즙채 고구마middot알밤죽과 물김치 새우찜과 생절이 버섯불고기와 부추절임 꽃게감정 진지 기본찬 후식

4인기준 조리

가을 낙지골동반 1인기준 25000원 삼색밀쌈과 해물잣즙채 계절죽 전유화와 생절이 낙지골동반 국 무화과 후식

제철 꽃게 대하 고구마로 건강을 담아낸 lsquo가온정식rsquo

lsquo가온정식rsquo은 가을이 제철인 꽃게 대하 고구마 밤을 중심으로 고구

마middot알밤죽과 새우찜middot생절이 꽃게감정으로 구성한 메뉴이다 특히

꽃게감정은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음식으로 고급스럽고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번거로워서 사위를 맞이할 때

나 한 번 만드는 귀한 음식이다 꽃게감정은 제철을 맞은 가을 수게의

살을 곱게 발라내어 소고기와 갖은 야채로 소를 만들어 게딱지에 채워

놓고 국물을 자박자박하게 끓여 만들어 낸 찌개인데 제철 꽃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미와 담백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제철 게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이 많아서 소화가 잘되고

원기회복에 좋다 이 밖에도 키토산이 풍부한 대하 식이섬유소가 풍부

한 고구마 5대 영양소와 비타민C가 풍부한 밤으로 만든 요리는 입맛

을 돌게 하고 원기회복에 도움이 된다

쓰러진 소도 살린다는 가을철 원기회복의 대명사 lsquo가을 낙지골동반rsquo

골동반은 임금님부터 백성까지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한국의집은 가을을 맞이하여 기존 골동반 메뉴에 영양이 풍부한 낙지까

지 맛볼 수 있는 lsquo낙지골동반rsquo을 선보인다

낙지골동반은 오색나물과 살이 충분히 오른 가을 낙지를 올려 시각적 아

름다움과 맛과 영양까지 모두 챙기는 일품메뉴이다 특히 lsquo봄조개 가을

낙지rsquo란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가을 낙지의 맛은 높이 평가된다 또한 낙

지는 피로에 좋은 아미노산과 타우린이 풍부해 인삼 한 근과 비견할 정

도로 몸에 좋은 음식이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철 제철재료로 만든 요리는 그 어느 계절 음식보다 맛

이 좋고 몸에도 좋다 제철을 맞은 엄선된 재료로 만든 한국의집 가을 신메

뉴와 함께라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14 15

1927 2015

宇峰우봉 이매방

춤 한자락에 담긴 삶

한국 춤의 거목 우봉 이매방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lt승무(僧舞)gt 및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lt살풀이춤gt 예능보유자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2가지 종목의

무형문화재를 보유했다

그의 춤과 삶의 흔적을 담아보았다

Master Ubong Lee Mae Bang Korearsquos traditional dance virtuoso passed away on August 7 2015 He was 88 years of age Ubong was one of the key figures in

the modern and contemporary days of Korea Ubong the one who often lauded as a ldquodancer sent from the Heavenrdquo was a master of Seungmu (a form of dance

traditionally performed by Buddhist monks) and Salpuri (a form of dance traditionally performed by Korean shamans to banish evil spirits) designated

as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No 27 and 97 respectively Born in Mokpo Jeollanam-do on May 5 1927 he was discovered and trained by

Han Guk Hyang the headmaster of a Gwonbeon (a form of traditional dance academy in Korea) in Mokpo at the age of 7 This was followed by 8 years of

dance and drum performance training as an apprentice of Master Lee Dae Jo who taught Seungmu Geommu (sword dance) and Gobeop (traditional drum

technique) at the Gwonbeon Throughout his life devoted to dance he garnered great fame as the holder of two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and

trained numerous traditional dancers Ubong Lee Mae Bang passed on to us the quintessence of Korean traditional dance expressed through his moves that

made him a dancer of a historic significance for whom there will be no equal in this millennium not to mention in this century사진제공 한국문화재재단

1716 기획특집1

살풀이춤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해 공연 때 착용했던 살풀이춤 의상이다 무동옷과 쾌자는 다른 색으로 바꿔입기도 하며

이매방 살풀이춤을 대표하는 의상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사진액자 121940~50년대 이매방이 승무 바라춤

추는 모습을 찍은 사진의 배경을

없애고 보유자만 오려 붙여 만든

액자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약력

1927년 전남 목포 출생

1934년 목포 북교 입학

1935~39년 만주 다렌 거주 이대조에게 승무 북춤 박영구에게 승무 법고 이창조에게 검무 사사

1943년 목포 공립공업학교 졸업

1948년 명창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서 lsquo승무rsquo로 첫 무대

1953년 제1회 개인발표회(광주)

1956년 제3회 개인발표회(부산)

1959년 제5회 개인발표회(서울 원각사)

1984년 무용 인생 50년 특별공연 lsquo북소리rsquo

1987년 승무 예능보유자 지정

1990년 살풀이춤 예능보유자 지정

1993년 인간문화재진흥회 부회장

1996년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수

1999년 우봉 이매방 춤 인생 65주년 기념 대공연

2004년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춤 인생 70년 기념공연

2005년 lsquo우봉 이매방 춤 전수관 개관 기념공연rsquo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 대공연장)

2006년 lsquo무용 무대예술 80년사 아름 보듬어맺고 풀고helliprsquo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07년 lsquo화성 춤 페스티벌rsquo (수원대학교 베칸토 아트센터)

2008년 서울시 무용단 정기공연 lsquo하얀사 고이접어rsquo (세종문화회관 세종 M씨어터)

2009년 lsquo그가 무대에 서면 역사가 된다 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춤 대공연rsquo (영등포 아트홀)

2010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2011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호암아트홀)

2012년 명작 명무전 (LG 아트센터)

2014년 lsquo우리는 그를 巨木이라 부른다 우봉 이매방 전통춤 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승무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한 승무 복식으로 공연 때 착용했다 흰 장삼에는 옥색 바지 저고리를 입고

흑 장삼에는 흰색 바지 저고리를 입는다 흰 장삼의 승무 의상을 기증했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wwwk-heritagetv에서

승무와 살풀이 동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수상 내역

2015년 은관문화훈장

2011년 제12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공로상

2004년 임방울 국악상middot세종국악대상

1998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1995년 성옥문화상

1984년 옥관문화훈장

1976년 부산시 눌원문화상

우봉 이매방

한국 전통 춤의

정수 승무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18 19

글 사진

이병옥 (용인대학교 명예교수)

宇峰우봉

이매방 선생의 춤 일생

춤 성향을 가늠하는 입문과정과 열정

첫째는 이매방이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세(1934년)가 되던 해 옆집에 세

들어 살던 조도 출신 목포 권번의 권번장 함국향(咸菊香)씨는 그가 춤추기

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춤 학습을 권유하여 남자이지만 여성적인 고운 춤

사위 성향인 기방춤의 기틀을 마련한 점이다

둘째 이매방의 할아버지이면서 스승이었던 이대조 명인은 목포 권번(卷

番)에서 승무와 북놀이 검무 그리고 고법(鼓法)을 가르쳤던 권번 선생으

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점이다

셋째 중국 대련 정포소학교(1935~1939)를 다니면서 그는 매란방 배구

자 등을 만나 춤에 색다른 영향을 받은 점이다 대련에서 운수회사를 운영

하던 큰 형님을 따라 약 5년간을 살게 되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신무용의

대가인 배구자의 무용공연에도 출연하였고 또 북경에 있던 큰 누나의 연

결로 매란방의 공연을 접하고 이국적인 향취에 매료되어 그에게 lt장검무

gt lt등불춤gt lt꿩털춤gt 등을 배운다 6middot25 이후에는 본명 lsquo이규태rsquo를 버

리고 lsquo매방(梅芳)rsquo이라는 예명을 lsquo매란방rsquo의 약자를 딸 정도로 그의 예술혼이

깃든 것이었다 그러다가 대련정포소학교 5학년 때(1939년) 고향 목포북

교소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통춤에 정진하게 되었다

넷째는 주말마다 광주 권번에 다니면서 권번 선생이었던 박영구로부터

승무와 북놀이를 배우고 이창조(장성출신) 선생에게는 검무를 학습한 점

이다 이처럼 목포 권번과 광주 권번을 오가며 박영구 이창조 그리고

이대조 선생에게서 승무 승무북놀이 검무 입춤 살풀이춤 장고춤

태평무 한량무 보렴승무 흥춤 장검무 장고기법들을 배웠다

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공연은 1942년(16세) 목포역전에

서 임방울이 주관하는 명인명창대회였다 이때 승무를 출 박봉선이 사정이

생기자 함국향이 이매방을 임방울에게 소개하여 김연수의 장삼을 빌려 입

고 무대에 나섰다 이때 이매방은 승무를 추어 관객의 열렬한 호응으로 자

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또 예술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해방 후로는 1948

년 임춘앵의 여성국극단에서 삼고무를 가르쳤고 그해 목포 역전에서 다시

임방울이 이끄는 명인명창발표회에 당당히 승무로 출연하게 되었다

방랑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춤 정립(대구 군산 부산 광주 서울)

1950년 6middot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북한군의 뒤를 따라 예술동맹 공연

단들이 목포에 내려와 인민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당시 최승희의 딸 안성희는 lt장검무gt 전황(본명 전두황)은 lt처녀총각gt 등

을 추었으며 이어 이매방을 강제로 무용동맹에 가입시켜 무용활동을 시켰

다 수복 후 국군이 들어와 무용동맹에 강제로 가입했던 것 때문에 곤욕을

치렀으나 가까스로 해명하고 국군 군예대(KAS 종군연예인공연단)에 가

입하여 1951년 대구에 본부를 두어 활동하면서 지방순회공연을 다녔다

또 광주에서 전라남도 경찰국 선무공작단을 맡아 단장으로 호남 일대를 돌

며 순회공연을 하던 중 잠시 군산으로 옮겨 군산시 영화동에다 이매방무

1 1950년대 삼고무 초기 모습

2 1978년 이매방 승무

3 1938년 정포소학교 고개 숙인 이가 이매방 우측 앞

3

2

1

한국 전통춤의 대부 우봉(宇峰)

이매방 선생님이 2015년 8월 7일

8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우봉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로 lsquo하늘이 내린

춤꾼rsquo으로 칭송되는 근현대

전통춤계의 중심인물이었다

1927년 5월 5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7세 되던 해에 목포

권번(券番)의 권번장 함국향의 눈에

들어 춤 학습을 받았다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검무 그리고

고법을 가르쳤던 이대조(李大組)

명인으로부터 춤과 북놀이 사습을

8년 동안 받은 후 평생 외길

춤인생을 걸으면서 두 종목의

인간문화재로 그 명성과 수많은

이수자를 배출하였다

우봉 이매방의 춤사위는 lsquo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rsquo라는 표현을

넘어 lsquo밀레니엄에 한 번 날까rsquo하는

역사적인 존재라고 할 만큼 전통춤의

진수를 전승시킨 인물이다

그러면 우봉 이매방이 어떤 계기와

학습과정으로 전통춤의 대부가 될 수

있으며 어떤 춤 일생을 살아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20 21기획특집 2

용연구소를 개설하여 2 3년간 활동을 하였다

그 후 1953년 부산으로 내려가 장홍심이 운영하는 영도에서 함께 연구소를

했으며 부산 제자로는 김진홍 성승민 이도근 등이 있었다 1954년 광주

로 옮겨 국악원을 개설하여 한순서를 조교로 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무용

발표회(1955년 광주극장)를 가졌다 한편 서울에서는 여성창극단 삼성여

성국악단(박옥진 박보아 조양금 3인) 등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다시 1955

년 부산으로 내려가 초량동에 자리 잡고 첫 발표회를 대영극장(1957년)에서

하였다 그리고 서울에서도 1959년 원각사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당시의 이매방의 춤 활동은 전국적으로 목포 대구 부산 광주 서울이

었지만 주 근거지는 사실상 부산무용가협회 정회원이었으며 1957년과

1958년에 부산공연을 올리며 1960년대 말까지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

1960년대는 많은 무대를 누비면서 점차 춤 레퍼토리를 확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이매방은 삼고무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창작하였으

며 그 후 5고무 7고무 그리고 9고무와 11고무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lt초립동gt lt화랑무gt lt검무gt lt장검무gt lt박쥐춤gt lt흥춤gt lt무당춤gt lt장고

춤gt lt학춤gt 등을 정립하였고 늘 추어온 lt승무gt lt입춤gt lt검무gt 등과 함

께 추었다 이매방 승무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연구소를 서울로 옮겨

오늘날까지 서울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매방은 lt보렴승무

gt lt삼현승무gt lt살풀이춤gt lt검무gt lt입춤gt lt한량무gt lt태평무gt lt흥

춤gt lt장검무gt 그리고 lt장고춤gt 등도 lt승무gt와 함께 끊임없이 연마하여 왔

다 그러한 이매방의 춤예술 정립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예능적 기술이 뛰

어났기 때문이었다

승무 살풀이춤 인간문화재와 국무(國舞)로 추앙

이매방이 서울무용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중앙대 교수이

며 문화재 위원이었던 정병호에 의해 1977년 7월 30일 서울 YMCA에

서 열린 한국전통무용발표회에서 승무를 발표하면서였다 아울러 그때

까지 한성준류의 한영숙 승무에 매료되었던 이들에게 새로운 유파의 승

무가 있음을 신문지상을 통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무대에서의 성공

은 이듬해 1978년 3월 세계민속예술제 한국대표로 프랑스 렌느시에 참

가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이매방 춤판의 최고 결정판은 lt북소리gt 시리즈였다 1984년 6월 이매

방 무용인생 50주년 기념공연 lt북소리gt(문예회관 대극장) 1985년 6월

이매방 전통무용 lt북소리 Ⅱgt 1990년 rsquo90 북경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

전 참가와 lt북소리Ⅲgt(호암아트홀) 그리고 1994년에 춤인생 60년을 정

리하는 lt북소리 Ⅳgt였다 또한 전통예술의 보급과 선양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결과로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1984)과 성옥문화상 문예부문 대상

(1995)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병호 문화재위원의 끈질긴 노력으로 1987년 7월 1일 이매방은 중요무

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명실상부한 명무의 대열

에 서게 되었다

이어 1990년 10월 10일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도 인정받아 전

통춤의 최고 명인으로 추앙받게 되었으며 수많은 한국무용가들이 이매

방류 춤을 전수받기 위해 구름같이 모이게 되었다 그 후 1996년 인생70

고희기념공연 1997년과 98년 일본공연과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2007년 lsquo우봉이매방팔순기념공연rsquo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으며

매년 제자들과 함께 정기공연을 하였다 전통춤경연대회 및 300여 명에

이르는 승무와 살풀이춤 이수자들과 제자들의 공연에도 찬조출연과 반주

를 직접 해주는 열정을 최근까지 지속하였다

이매방 춤의 무용예술적 가치

이매방의 춤에서는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호남제 시나위 춤사위로 짜여져 있

다 춤기법의 중심은 대삼소삼(大杉小杉) 비정비팔(比丁比八) 양우선(兩雨線)

비디듬 좌우걸이 완자걸이 잉어걸이 지숫기 등으로 곱고 아름다운 사위와

자태를 자아내고 한을 신명으로 풀어내는 정중동의 몸놀림이 배어 나온다

결국 이매방 춤은 호남 지방의 권번에서 추어왔던 춤사위 기법이지만 많

은 세월이 지나면서 스승들의 춤을 뛰어넘어 아무도 넘겨볼 수 없는 국무

(國舞)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이매방의 일생을 통해 그가 가진 춤의 예

술적 가치를 요약하면

첫째는 남자이면서도 여성보다도 더 곱고 섬세한 기방계통의 lsquo춤바디rsquo와

여성적 lsquo춤속rsquo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호남지역의 명무들로부터 뼈대 있는 전통춤을 다양하게 전수받아

호남춤의 정통성을 확립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과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춤의 천재이기 때문이다

넷째 현대교육개념으로 볼 때 어린 나이부터 춤의 조기영재교육을 받았

기 때문이다

다섯째 세계적인 경극과 춤의 명인 매란방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예술혼

을 불태우고 인생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80평생 춤추는 것 외에는 남자로서 어떤 직함도 직책도 직업도

가진 바 없이 오로지 춤만 추어온 외길 인생이기 때문이다 춤이 곧 이매

방의 삶이며 생명이며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일곱째 호남지역춤과 기방계통춤이라는 lsquo국지성rsquo에서 출발하였지만 경향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범한국적 전통춤의 lsquo국가성rsquo으로 거듭났으며 국제무

대에도 우리 전통춤의 lsquo세계성rsquo을 알리고 확인하는 독창성과 보편성을 지니

고 있었다는 점 등이 이매방 춤이 가지는 예술적 의의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매방은 1927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민족 수난 속에서도 춤을 배

웠고 해방과 6middot25전쟁 통에서도 오로지 춤만을 추었고 외래문명의 홍

수와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꿋꿋이 춤만 추어 한국 전통춤의 위상을 높였

고 세계 속에 한국춤의 지평을 열어 대한민국 시대의 전통춤 패러다임을

구축하였기에 국무적 존재로 인정받아 온 것이다

1970 2004 2008 2012

22 23

양종승 (우봉이매방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middot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하늘이 내린 춤꾼 宇峰 이매방 선생님을 追惜하며

춤을 위해 태어나 평생 동안 춤만을 사유하였던 우봉(宇峰) 이매방(李梅

芳) 선생님께서 2015년 8월 7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승천하셨다 선생

님은 1927년 5월 5일(음력 3월 7일) 새벽 동이 틀 무렵 목포에서 이경

율과 조병림 사이의 10형제 중 막내둥이로 태어났다 5남매는 일찍이

죽고 남은 3남 2녀 중 막내로 성장하였다 선생님 아명은 집안 돌림자에

따라 영길(永吉)이었지만 스님께서 귀한 아들이라고 하여 귀태(貴泰)로

개명해 주었다 오기된 호적에는 규태(圭泰)로 되어 있다 매방(梅芳)이

라는 이름은 중국 경극의 명인 매란방(梅蘭芳)의 첫 자와 끝자리를 따 예

명으로 불리었는데 1986년 호적을 개명하여 본명이 되었다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춤에 소질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서 성장하였다 결국 옆집 살던 권번장 함국향 권유로 목포 권번에 들어가

당대 소리 북 춤 등에 대가들이었던 이대조 이창조 박영구 진석산 등

에게 승무 검무 살풀이춤 등 전통춤을 학습하였다 선생님의 무용활동

은 목포 공립 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 승무로 출연

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이후 1953년 광주에서 첫 개인발표회를 시

작으로 무용인생 50주년 65주년 70주년을 비롯한 수많은 국내외 공연

을 펼쳤다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1990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가 되었다 그리

고 2014년 승무 및 살풀이춤 명예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한국무용협회 고

문 한국국악협회 고문 한국전통춤협회 고문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

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국무 우봉이매방 화보집』을 발간하였다

이매방 선생님 장례식은 2015년 8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서울삼

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문화예술인 葬]으로 치러졌다 목포문화예술회

관 내에 있는 이매방춤전수관에도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우봉이매방장

례위원회가 구성되어 공동장례위원장을 김종규 한국문화유산신탁 이사

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이경동 한국문화원연합회 회장 김복

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하철경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 김

덕수 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이사장 김진홍 부산시 무형문화재 동

래한량무 보유자 김정녀 중요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전수조교 채상묵

한국전통춤협회 이사장 국수호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등 10명이 맡

았다 장례집행위원장을 양종승 우봉이매방춤보존회 수석부회장 장

례집행부위원장에 김덕숙 김효분 박종필 오은명 최창덕 황순임

등 우봉이매방춤보존회 부회장 6명이 맡았다 장례위원은 김묘선 오

미자 박소림 이길주 송재섭 정영례 최희진 한혜경 김리혜 김은

희 한명옥 진유림 채향순 강성민 백경우 김정기 등 제자 215명이

맡았으며 목포분향소 공동장례위원장은 임점호 목포신안예총회장과 박

수경 목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맡았다 장례의전은 국가공인장례지

도사 유재철 황근식이 진행하였다 유족으로 미망인 김명자(전통무용

가 승무 및 살풀이춤 전수조교) 딸 이현주(전통무용가 승무 및 살풀

이춤 이수자) 사위 이혁열(연극인) 등이 있다

추모식 전경선생님 영전에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을 추서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

부 장관은 일평생 우리 춤 전승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며 문화

융성과 전통예술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공적을 기렸다 또한 이매방 선

생님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깊은 애

도와 함께 목포가 낳은 문화예술계의 큰 별이셨던 선생님은 우리나라 전

통예술의 표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외에 박민권 문화체육관광부 제1

차관 나선화 문화재청장 김해숙 국립국악원장 서도식 한국문화재재

단 이사장 이문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 등 정치계 문화예술

계 등 각계 인사들과 수많은 무용 가족들이 조문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추모식은 2015년 8월 9일 일요일 오후 7시부터 9

시까지 2시간 동안 삼성서울병원 영결식장에서 유가족 지인 각계인

사 제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덕택 운현궁 예술감독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민의례 고인에 대한 묵념 양종승 장례집행위원장의 고

인 약력보고 공동장례위원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공동

장례위원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이사장 공동장례위원장 김복희 한국

무용협회 이사장 등의 조사 제자를 대표한 채상묵 공동장례위원장의

추도사가 있었다 동영상으로 고인의 생전 활동과 육성을 보고 들은 후

유가족을 비롯한 지인 문화예술계의 인사 제자 등의 헌화 및 분향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안숙선 명창의 이별가와 김영임 명창의 회심곡 중

저승 가는 길이 헌가로 받쳐졌다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 보

유자 박병원 전수조교 송순단과 박미옥 등이 주관하는 추모굿과 이광

수 명인의 헌가가 올려졌다 다음날 오전 7시 30분에 발인식이 행해졌

고 오전 9시에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이 이루어졌다 유해는 경기도 광

주시 오포읍 시안가족추모공원에 봉안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에서 초제를 시작으로 49재가 진행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금세기 하늘이 내린 명무였다 그리고 근현대 문

화적 격동기 속에서 우리 춤을 꿋꿋이 지킨 민족춤 계승자로서 주어진

소임을 완수하였다 그래서 선생님의 예술 생애와 그가 전승해 온 민족

춤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큰 가치를 지닌다

주지하다시피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한국 전통무용 진가를 표방

하는 고단위적 한민족 춤 유산으로써 조선 중엽 이후 불교의식 민속놀

이 유랑예인연희 무속신앙 등과 어우러져 계승 발전되어 왔다 그와

더불어 민중의식을 담아 애환과 기쁨을 표상하는 춤으로써 위엄 있고 격

조 있는 춤으로 승화되었다 그래서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무용 예술적

가치와 업적은 위대하고 광활하다 무용평론가 강이문과 무용학자 이병

옥 교수는 이매방 선생님을 國舞라 칭했으며 문화계 많은 인사들은 신이

내린 춤꾼이라 호평하였다 이러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우봉 이

매방 선생님 금자탑에서 빛나는 것은 다름 아닌 기왕 흩어져 내동댕이쳤

던 민족 춤의 뿌리를 살려내어 우리 시대 진정한 무용예술로 승화시키고

국가의 민족유산으로 갈고 다듬은 것이었다 이는 탈 식민지적 화두가 -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다큐멘터리 중 이매방 인터뷰 -

살풀이춤은

즉흥무이다 승무

검무 법무를 다

배우면 자기 멋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수판을 잘라야 한다

가락도 춤 승무 가락

검무 가락 이런 거

섞어서 장단 맞춰서

자신의 감정 음악

듣고 음악이 슬프면

슬픈 표정으로

즉흥적으로 추는 춤이

즉흥무야

24 25기획특집 3

본격화되던 20세기 초중반 우리 것에 덧씌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구

를 벗겨내려는 문화 민족주의적 활동의 한 면이었다 서구 중축의 지배

담론을 탈피하면서 그동안 왜곡되고 전도된 관점에서 벗어남으로써 민

족춤에 비문명적이라는 멍에를 씌었던 편협한 지식층의 문화보기 탈각

운동의 한 면이었던 것이다 시기는 일본제국주의의 한국민족문화 말살

정책 해방 후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교육정책의 서구 지향적 패러다임

등장 도시화middot산업화middot현대화에 따른 전통문화 멸시 및 천시 등으로 인

해 민족예술이 단절 위기에 처했었던 그때였다 또한 현대 산업화에 따

른 근대화론 지향의 국책 하에서 민족예술을 진부하거나 불필요한 것으

로 치부하는 풍조였던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우리의 것은 외래의 것에 밀리거나 일방적으로 시비 당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빼앗기는 패배의 싸움판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던 그 상황 속에

서 선생님은 묵묵히 그리고 꿋꿋하게 우리 춤을 지켜 내셨다 우리네 전

통춤은 비합리적이고 가치가 없으며 저급하고 미천한 것으로 저평가되

돼 전승의 단절까지 치닫게 된 상황 속에서도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우

리 춤 계승하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의 춤을

옥석으로 다듬어 세상에 펼쳐 보임으로써 민족 무용예술의 가치를 되살

리는데 평생 힘써 왔었다 결국 어려운 역경과 피나는 고난을 헤치고 일

어난 선생님의 예술세계는 살아 숨 쉬는 민족 춤으로 꽃 피어졌다 향토

춤 민족춤 전통춤 속에 내재된 민중들의 예술적 사상과 정신이 북돋아

나 전통문화복원 민족문화재건 향토문화복구 등과 함께 형성된 민족

문화바로세우기운동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춤은 밖에

서 유입된 외래의 것과는 달리 이 땅에 자생적으로 자라온 민족 춤 뿌리

로 각인되면서 한국무용예술사에 독창적 고귀성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

리고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와

1990년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국민의 춤꾼으로 안

착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 계보를 따지고 올라가면 신방초(申芳草 남)라

는 인물이 있다 전남 옥과 출신인 그는 1817년 무속집안에서 태어난

재인으로 어정판에서 바라지로 활동하였다 춤은 물론이고 육자배기

가곡 가사 장단에 능하여 호남 일대에서 대단히 명성이 높았다 그래

서 당시 호남의 유명 당골들은 그를 모셔가기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였

다고 한다 신방초는 자신의 춤을 같은 고향 출신 신영수(남)에게 전했

다 이후 고창 출신 안두온(남)에게로 이어졌고 다시 순창 출신 이정선

(남)에게 전수되었다 이정선은 춤뿐만 아니라 북놀이에도 뛰어난 재능

을 갖고 있었던 예인이었으며 판소리도 잘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상당

한 대접을 받았다 이정선의 춤은 목포 출신 김금옥(여)과 박귀주(여)에

게 이어졌다 그 후 이매방 선생님의 스승 박영구 이대조 이창조 진

석산 등에게 전수되었다 박영구(남)는 전남 화순 출신으로 승무와 북놀

이의 명무 명인이었으며 광주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대조(남)는 전

남 무안 출신으로 승무의 대가였고 목포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창

조(남)는 전남 능주 출신으로 검무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고 역시 광주 권

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그리고 진소홍(일명 진석산 여)은 전남 담양 출

신으로 서울 인사동에서 요릿집을 운영하면서 살풀이춤을 전승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춤에는 엄격한 억제와 철저한 절제가 존재한다 이

는 수단에 의해 보이는 기교면서 또한 재간으로 처리될 수 있는 예술적

기법의 한 면이다 선생님의 춤은 또한 느낌과 감정의 표현 방식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느낌에서는 가벼움과 무거움 재빠름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이매방 승무-필자 양종승 제공팔순 기념공연-필자 양종승 제공

과 더딤 흐늘거림과 꼿꼿함 섬세함과 우람함 정교함과 장중함 등의

변화무쌍한 표현력을 가진다 감정에서는 슬픔과 기쁨 가냘픔과 뭉뚝

함 애석함과 환희 괴로움과 기쁨 고요함과 시끄러움 등이 묘사되는

데 이는 삶의 고뇌와 애환은 물론이고 희망과 행복을 감싸고 있음을 말

한다 이러한 춤에 있어서의 느낌과 감정은 비정비팔 비디딤 까치걸

음 잉애걸이 좌우걸이 완자걸이 안가랑 등의 발디딤새와 양우선

평체 사체 등의 손놀림새 그리고 연풍대 지숫기 다루치기 대소삼 등

의 몸굴림새 속에서 표현력을 한층 고조시킨다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

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

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

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길이

길이 민족 춤 기틀로 명명되어 질 것이다 천기를 타고난 춤꾼 신들

린 듯한 춤으로 관객을 홀렸던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이제 천상

무대로 가시어 휘날릴 것이다 선생님 기어이 춤과 함께 홀연히 떠

나셨으니 부디 부디 영면하옵소서

추모식 전경

26 27

전경욱 (고려대학교 교수)

동아시아의 가면극1 중국 귀주성 위녕현의 〈춰타이지(撮泰吉)〉 가면극

풍농과 악귀 쫓기를 위해 기원하는 제의의 일부

2 한국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서낭신인 각시가

무동을 탄 모습

3 일본의 미야자키현(宮崎県) 시이바손(椎葉村)의

〈다케노에다오가구라(嶽之枝尾神楽)〉

4 《봉사도》제7폭 모화관에서 행해진 중국사신

영접행사의 연희장면 산대(왼쪽) 앞에서 연행된

줄타기 물구나무서기 접시 돌리기 가면극 등의

전문적 연희

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에서는 가면극 분야에 대해 보

유자와 단체를 모두 지정하고 있으니 일본보다 지원이 좋은 편이다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을 민간문학 민간음악 민간무용 전통희극

곡예 잡기와 경기 민간미술 전통수공기예 전통의약 민속으로 분류

하여 지정하고 있다 중국 가면극인 나희는 전통희극 분야에 해당한다

한국에는 현재 국가 지정의 중요무형문화재 가면극 13종목 각 시도의

무형문화재 가면극 2종목(진주오광대와 퇴계원산대놀이)이 있다 중국

은 그동안 전통희극 분야에 430개 종목을 지정했는데 여기에 나희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노(能)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중요무형

민속문화재의 민속예능 분야에 35개의 가구라(神樂)를 지정했다 이 가

구라들은 대부분 민간의 가면극이다

Ⅱ 동아시아 가면극의 역사와 계통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면극은 매우 유사한 발전 과

정을 보인다 동아시아에는 (1)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과 (2)전

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이 있었다 (1)은 각 지역의 향촌제사

활동(鄕村祭祀活動)에서 연행되던 것으로서 각각 자생적 향토적 성격

을 띠고 있다 그러나 (2)는 산악(散樂) 또는 백희(百戱)라고 불리던 동아

시아 공동의 연희들이 발전하여 성립된 것으로서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함께 각국의 독자성을 띠고 있다

1 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하회별신굿탈놀이나 강릉관노가면

극처럼 향촌제사활동인 마을굿에서 유래하여 발전해 온 가면극들로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전승해 왔다 이 가면극들은 다른 지방의 가면극과

는 아주 다른 독자적 내용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가면극들이 마을굿에

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도판 1)

중국의 나희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지만 후대에는

그것이 민간에 전파되어 각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도 전승되고 있다 그

리고 중국 한족을 비롯하여 소수민족들에는 여러 향촌제사활동에서 유

래하여 그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가면극들도 있다(도판 2)

한편 일본의 고유 신앙을 섬기는 신사(神社)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연예술

인 가구라(神樂) 중에는 자생적인 민속가면극의 예를 보여 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국의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방마다 차이가 크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도판 3)

2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생겨난 가면

극이다 본산대놀이는 삼국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산악middot

백희 그리고 상고시대의 제천의식 등에서 연행되던 전문적 연희자들의

연희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해 형성된

것이다 산악middot백희를 놀았던 사람들은 그 연희 내용으로 볼 때 삼국시

대부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연희자였으며 이들의 후예가 통일신라시

대에 최치원의 시 lt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gt에 묘사된 다섯 가지 연

희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계승된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연행

된 가무백희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나례에서 연행된 산

대희 등을 놀았다 그리고 중국 사신 영접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

희를 펼치던 반인들이 18세기 전반기에 산악middot백희 계통의 연희와 기존

의 가면희들을 재창조해서 본산대놀이를 성립시켰다 이 가면극은 애오

개(아현) 사직골 구파발 녹번 등에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봉사도(奉使圖)》(1725년) 제7폭은 서울의 모화관 마당

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행사의 연희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접시 돌리

기 땅재주 줄타기 탈춤을 묘사하고 있다 마당의 오른쪽에는 산거(山

車)middot산붕(山棚)middot윤거(輪車)middot예산대(曳山臺)middot예산붕(曳山棚) 등으로 불

렀던 소규모의 산대가 보인다 바로 이런 산대 앞에서 공연하던 연희들

을 lsquo산대희rsquo라고 불렀다 특히 세 명의 땅재주꾼 양 옆에서 각각 두 명씩

모두 네 사람이 초록색과 남색의 가면을 쓰고 탈춤을 추고 있다 이는 서

울에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가면극이 있었고 그 가면극을 애오

개산대놀이 등 산대놀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전해준다(도판 4)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경기도의 송파산대놀이middot양주별산대놀이 황해

31 2

Ⅰ 동아시아 가면극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우리는 가면극을 탈춤 탈놀이 가면희 등으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가

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儺戱)라고 부

르는데 이는 중국 가면극들이 대부분 나례에서 연행되던 연희인 나희

로부터 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무형문화유

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middot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부터 한국은 1964년부터 중국은 2006년부터

무형문화재를 국가 차원에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

의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용어로 lsquo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rsquo이라

는 말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의 기예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lsquo보유자rsquo로 인정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lsquo전승인(傳承人)rsquo 일본에서는

lsquo보지자(保持者)rsquo라고 부른다

중국은 이제 막 무형문화재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작했지만 각 지역에

서 자기들의 무형문화재를 국가 지정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으로 등재하기 위

한 열기는 매우 뜨겁다 그리고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과 관련된 행사나 학술

대회도 자주 개최하고 있다 필자는 매년 중국의 가면극학회인 중국나

희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는데 가면극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들에서

는 이 학회를 유치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현지 답사를 통해 자기 지

역의 가면극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국가 지정의 무형문화재를 (1)중요무형문화재(연극 음

악 공예기술 등)와 (2)중요무형민속문화재(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

행사 등에 관한 풍속관습 민속예능)로 구분하여 지원한다 그래서 연극

분야 중 노(能) 가부키(歌舞伎) 등은 (1)에 해당하고 각 지방의 가구라

(神樂)는 (2)의 민속예능에 해당한다 (1)은 전문적인 연희자들이 전승하

는 종목으로서 그 기middot예능을 보유한 사람과 단체를 모두 지정한다 그

러나 (2)는 단체만 지정하고 보유자는 지정하지 않는다 이를 한국에 적

용하면 판소리는 (1)중요무형문화재(음악)에 가면극은 (2)중요무형민

속문화재(민속예능)에 해당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한국의 가면극들

은 대부분 각 지방에서 세시풍속의 하나로서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

日韓 中

4

28 29무형문화재 삼국지ㆍ예능

도의 봉산탈춤middot강령탈춤middot은율탈춤 경남의 수영야류middot동래야류middot통

영오광대middot고성오광대middot가산오광대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

본산대놀이는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했지만 여기에서 전파된 별산대

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 등은 농민 하급관속 무부(巫夫) 등 각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중국 가면의 역사에서 가면의

효시는 나례에 등장하던 방상시(方相氏) 가면이다 이 나례에서 연행되던

각종 연희와 가면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면극이 생겨났기 때문에 가면

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다른 계통의 가면은 육조(六朝)시대 이후 산악middot

백희에 사용되던 것으로 이는 서역악무(西域樂舞)의 영향을 받은 외래

기원의 가면이다 현재도 중국에는 귀주성의 나당희처럼 무당집단이 전

승하고 있는 나희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들은 전문적 연희자인 셈

이다(도판 5)

일본의 가면극은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서 육성된 가면극과

서민층에 의해 육성된 가면극이 있다 전자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예술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데 기가쿠(伎樂)middot

부가쿠(舞樂)middot교도(行道)middot노(能)middot교겐(狂言)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

데 노와 교겐은 특히 산악middot백희와 밀접한 관련 아래 성립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문화인 산악middot백희가 일본에 유입

된 이후 변화middot발전하여 후대에 일본의 대표적 전통연극인 노가쿠(能

樂)middot노쿄겐(能狂言)middot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middot가부키(歌舞伎) 등 전통연

극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산악middot백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 연희를 발전시켜 lsquo나희

(儺戱)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켰고 일본에서는 사루가쿠(猿樂) 즉 산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lsquo노(能)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킨 것처럼 한국에서도

중국 사신 영접 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반인(泮人)들이

lsquo본산대놀이rsquo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Ⅲ 동아시아 가면극의 연희 내용

한국의 가면극은 벽사적 의식무과장 파계승과장 양반과장 영감할미

과장 등 서로 다른 내용의 과장들로 짜여진 소위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

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면극을 탈춤이라고 부를 정도로 춤이 많

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춤사위가 매우 뛰어나다(도판

6) 일본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가구라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짜인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나희와 일본

의 노는 대부분 하나의 가면극이 하나의 서사적 내용으로 짜여 있다

이러한 서사성의 나희와 노도 또한 서로 차이점을 갖고 있는데 노는 lsquo현

재노(現在能)rsquo와 lsquo몽환노(夢幻能)rsquo가 있어 특징적이고 나희는 주로 노래와

대사에 의해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lsquo현재노rsquo는 현재형으로 사건이 전개

되는 노를 말한다 lsquo몽환노rsquo는 나그네(조연자인 와키가 분장)의 꿈 속에

망령이나 화신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몽환노에

서는 시간이 자유롭게 정지하고 역행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도 자유롭게

등장할 수가 있다 주연자는 고전 속의 미녀이거나 역사상 인물일 수도

있고 지옥의 원령이거나 신(神) 불(佛) 귀(鬼) 초목(草木)의 정령이기

도 하다

중국 나희에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 황제 왕 일반인물

등 배역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연희 내용도 의식적인 춤을 제외

하면 대부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를 연극화

하여 공연한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 가면극에서

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이 거의 없고 황제나 왕 같은 존재

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반 인물 위주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연희 내용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주로 현

실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한편 한middot중middot일의 가면 또한 각국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middot중middot일 가

면의 형태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 윗부분에 있다 한국 가면은 얼굴

의 이마 부분까지만 표현하고 있다 일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경우에

도 간단한 선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

을 안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낸다 모자를 쓰는 배역은 별도의 모자를 착

용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의 귀면(鬼面)인 팔먹중가면을 보면 오로

지 안면의 표정에 의해 무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 노나 가

구라의 가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가면은 대부분 머리 부분과

얼굴 부분을 모두 이용해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한다 가면 자체에

머리 부분의 모자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도판 7)

그리고 한middot중middot일의 음악적 선율과 장단이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음악에 맞춰 연기하고 춤을 추는 연희자들의 동작과 춤사위는 각국

가면극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

5 중국 귀주성 덕강현의 무당들이 공연하는 가면극인 〈나당희(儺堂戱)〉

6 춤사위가 매우 뛰어난 〈봉산탈춤〉의 팔먹중춤

7 중국 안휘성 지주의 나희 〈유문룡〉 가면 자체에 모자를 장식

7 5

6

30 31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충남middot서울시 문화재위원)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도판4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양푸시(楊福喜) 201598 필자 촬영

도판5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권영학 보유자 2015821 필자 촬영

도판6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故 김박영 보유자 서헌강 촬영

도판1 활 쏘며 수렵하는 장면 고구려 무용총

도판2 중국 고대 활과 화살 및 활쏘기 장면 전국시대 초(楚) 동호(銅壺)

도판3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일본

Ⅰ 한민족과 활

한국인에게 활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민족과 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중국인이 우리 민족을 부르

는 명칭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이다 lsquo이(夷)rsquo라는 글자는 큰 대(大)자

와 활 궁(弓)자가 결합되어 있다 동이라는 글자를 곧이곧대로 풀어보면

lsquo중국의 동쪽에서 살며 큰[大] 활[弓]을 잘 만들고 쏘는 민족rsquo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 미루어 이미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우

리 한민족이 그들 한족보다 활을 잘 다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반인뿐 아니라 왕도 활을 잘 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적 인물로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lsquo활 잘 쏘는 이rsquo의 대명사로 기

록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쏘았으며

사도세자의 아들로 유명한 정조 또한 활을 잘 쏜 국왕으로 기억된다

조선에서 활쏘기를 잘했던 이유는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심신을 단련

하는 육례(禮 樂 射 脚 書 數) 중 하나로 활쏘기가 장려된 데에도 원

인이 있다 조선에서는 국가 의례로 활쏘기 행사를 거행하였다 왕과

신하가 활 쏘는 대사례(大射禮)는 1477년(성종 8) 1534년(중종 29) 및

1743년(영조 19) 1764년(영조 45)에 군신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였다 한편 지방의 양반 사족들은 향약과 비슷한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양국의 활은

기본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청나라 시대의 그림을 보면 조선 말기 19세기에 활

을 쏘는 그림과 비교가 된다 두 나라의 사수(射手)는 각각 청나라와 조

선의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른 편이다 더욱

이 양자가 활을 쏘는 모습은 공통되면서 부분적으로 다르다 그림 속 중

국의 활은 150cm 정도여서 1m 안팎의 한국 활보다 길이가 긴 점이 다르

다 막상 양자에서 동시에 화살을 쏘면 날아가는 비거리는 후자가 훨씬

긴데 이렇게 그림에서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몇 년 전

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lt최종 병기 활gt이다 시대 배경은 병자호란 당

시 청나라 무사와 조선의 사수가 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영화화한 것

이다 비록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다소 활의 효능이 과장되긴 했지만

두 나라 활의 특징과 조선 활의 장점을 극명하게 잘 그려내어 흥미롭게

본 기억이 새롭다

한편 양국과 비교되는 것이 일본의 활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활은 전

체 길이가 220cm가 넘는 세계 최대 길이의 활이다 16세기 조선의 『난

중잡록』에 의하면 일본의 화살은 lsquo장편전(長編箭)rsquo이라 하여 여러 나라의

화살과 비교해서 일본의 화살이 매우 크다는 기록으로 이미 조선에서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활을 사용하는 일

본에서는 활을 잡는 위치도 특이하다 일본의 활은 장대하기 때문에 위

쪽이 길고 아래는 짧아서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그림을 보면 매우 긴 활

의 아래쪽을 잡고 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활

은 ldquo화살은 길지만 먼 곳까지는 날지 않는다rdquo라고 13세기의 몽고인이

기록하고 있어 비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가마쿠

라 시대에 들어가면 그 중량이 더욱 늘어나 70g에 이르면 길고 무거운

화살을 폭이 긴 활로 쏘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Ⅲ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활과 화살은 조총이나 대포 등과 같은 화기(火器)를 발명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중요했다 이에 각국은 국력을 모아 활과 화살을

제작하였다

이미 고려 때에 중앙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에 각궁장(角弓匠) 전장(箭

匠) 전두장(箭頭匠) 등의 장인을 소속시켜 각궁을 만들었다 또 궁중의

궁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내궁방(內宮房)에도 각궁장(角弓匠)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군기감(軍器監)을 설치 운영하였고 장인들을 소속시켜 활

과 화살을 제작하게 하였다 이들 장인은 다른 기술을 가진 장인과 달리

궁인(弓人)이나 시인(矢人)으로 불렀다 궁인과 시인이라는 명칭은 『논

어』에서 나오며 그들 장인은 다른 물건이 아닌 무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우대하여 부른 것이다 이에 조선은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면

서 궁인 90명 시인 150명을 배정하였다 아울러 이들 장인들은 각 지

방마다 상당수를 배정하였고 이 또한 여타의 다른 장인들에 비하여 많

은 숫자에 해당되었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장색과 규모는 영조대 『속대전』이나 정조대

『대전통편』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국가적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각종 300여 도감마다 수많은 궁인이

나 시인을 징발하여 의례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할 궁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사적인 공방에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김준근의 lt기산풍속화gt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궁창을 앞에 두고

줄과 환으로 일정하게 다듬은 쇠뿔과 뽕나무 등을 옆에 두고 완성된

각궁에 시위를 걸어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있다

청나라 말에 전통 활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lt시궁정력(試弓定力)gt에

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입식 건물 안에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너댓 개

의 활을 만들어 올려놓고 다 만든 활을 과학적으로 무게를 재고 있다

향사례(鄉射禮)를 거행하여 사족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활을 좋아하고 잘 다룬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역

사 동안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다른 종목보다 유달리

활(양궁)을 잘 쏘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한민족의 피 속

에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유전인자 DNA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Ⅱ 유물 속 동아시아의 활

인류는 이른 시기부터 멀리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자 무기로 활과 화살을 개발하였다 이후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

에 따라 궁시를 제작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

하였다 하지만 궁시는 대개 나무나 대나무와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

져 썩어 오래전의 유물을 확인하기 어렵고 단지 흑요석(黑曜石)처럼 단

단한 석제로 만든 화살촉에 의해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정복 전쟁이 빈번해지던 고대부터 무기가 발달하였다 당시에

사용된 활과 화살의 형태는 유물 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전국시대(BC 475~221) 동호(銅壺) 유물

을 보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한편

5세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lt수렵도gt에서 말 위에서 짐승들을

1

32

4

6

5

32 33무형문화재 삼국지ㆍ기능

양국의 활 제작방식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청나라 활 제작 장인 집단

은 북경 동사대가에 있는 궁전대원리(弓箭大院里)에 17가호의 궁전 점포

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squo취원호(聚元號)rsquo이다 이곳에서 중국 전통 활

을 제작했던 장인이 양뤼린(楊瑞林)이며 아들인 양원통(楊文通) 손자인

양푸시(楊福喜)까지 3대가 잇고 있다 양푸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활을 제작하여 2006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

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장인으로 보호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45년 앞선 1971년 9월 13일 전통 활 제작 장인

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으로 지정하였다 서울 황학

정의 장진섭(張鎭燮 1916~1996)은 조부(장문환)와 부친(장기홍)에 이

어 3대째 활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예천의 권영

록(權寧錄 1916~1986)은 부친(권태전 權泰全)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

었다 부천의 김장환(金章換 1909~1984)는 조부(김원재)와 부친(김

동천)의 대를 잇고 한국 제일가는 명사수로서 활동하고 부천 성무정의

초대 사두(1967~1982)가 되었다 그의 기술은 제자인 김박영(金博榮

1929~2011)이 전승하였다 그의 사후 2015년 권영학(1943년생)보유

자가 새로 인정되어 조부(권선복)와 부친(권우갑)의 가업을 이어 그 또

한 3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화살을 만드는 시장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시장)

으로 지정하였다 화살로 유명한 장단에서 나고 자란 유영기(1936년 그런데 세계적으로 강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활은 여기에 화피를 더

하여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물소 뿔(牛角) 쇠심줄(牛芯)

민어 부레풀(魚膠) 대나무 뽕나무(弓幹桑) 참나무 화피(樺皮)가 그것

이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는 각궁은 살

아있는 활이면서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쇠뿔은 통뼈이며 대나

무와 뽕나무 및 참나무가 세부 뼈대이고 그 위에 바르는 쇠심줄은 근

육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부레풀은 연골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다듬는

화피는 피부에 해당된다 이중 물소 뿔과 대나무 및 쇠심줄이 활의 강

도와 탄성을 이루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민

어 부레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은 1년 중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제작하여 계절을 타는 공예품인데 그 이유는 동식물성 재료

들이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아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심이 건

조가 안되고 풀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여름에는 재료를 장만하고 찬바람이 나면 풀을 대와 뼈와 나무를 서로

붙여 정월 경에 건조시키고 3월부터 한 달 이상 해궁 작업을 한다 각

궁은 제작이 까다롭고 단계마다 원칙을 지키고 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

해서 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궁의 핵심 원료인 물소는 주로 아열대 지방인 중국 남부나 인도 및 인

도차이나 등지에 서식하므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여서 중국은 물소 뿔의 수출을 엄격

하게 통제하였고 조선 정부는 그것을 몰래 수입하려고 애썼다 현재

도 각궁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의 수급은 어려움이 많다 물소는 세계적

인 보호동물이어서 물소 뿔을 수입할 때 세관의 통과가 어렵고 쇠심줄

은 근래 많은 소들이 일하면서 근육을 키우지 않고 육우용으로만 키워

져 탄성이 없어 활의 탄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접착제인 민어부

레의 경우 예전에는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근래에는 민어부레가 정

력에 좋다고 그것마저 식용으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한 활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488년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同越)은 ldquo조선에서 사용하는 화피궁은 중

국의 제도에 비하여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rdquo라

고 평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활은 중국 것보다 작으나 탄

성이 크고 강하다 우리의 시장들은 대나무로 화살대[矢幹]를 만들고

쇠로 활촉(雛)을 끼우며 수리깃으로 화살깃(矢羽)을 만든다 반면 중국

의 장인은 죽시와 함께 유목(楡木)으로 목시(木矢)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활은 대나무와 나무를 한데 결합한 복합궁이다 일본의 활

은 2m 이상으로 길고 무거워 탄성이 적어 근거리에는 위력이 높은 대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이면서 한middot중middot일

삼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각궁은 한국 장인들의 솜씨가

표출된 우수한 전통 공예기술로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생)는 조부(유창원)와 부친(유복삼)에 이어 3대를 잇고 그 아들 유세

현과 유승현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단 근처 원당에서 나고 자

란 박호준(1944년생)은 조부(박희원)와 부친(박상준)에 이어 3대째 가

업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김종국(1940년생)은 스승인 조명제(趙命濟

1915~1980)가 조부(조성관)와 부친(조면보)의 대를 이었던 것을 본받

아 예천에서 화살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12월 14일 부천활박물관을 세웠고 파주에는 유영기

보유자가 만든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반면 중국에는 2012년 신강의

이리에 성급(省級) 비물질문화재로 등록된 이청강(李靑岡)이 중화활문화

박물관(中華弓文化博物館)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로 활을 지

정하지 않아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이 전통적(傳統的) 공예품

(工藝品)으로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을 지정하였다 미야기현(宮崎県)에 위치

한 미야코노조(都城市)에 7대째 120년 전통의 활을 제작하는 활제작소

[楠見藏吉 弓製作所]가 위치하고 있다

Ⅳ 활과 화살의 재료

활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의 『고공기』에 의하면 나무[干 柘 橘 桑 木

瓜 竹 荊 등] 심줄[筋] 풀[膠 말 소 사슴 물소] 뿔[쇠뿔] 옻[漆]

명주실[絲]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은 뿔을 주재료로

삼은 각궁(角弓)인 것을 알 수 있다

도판10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故

김박영 보유자 제작 각궁(角弓)

도판11 중국 양푸시(楊福喜)가 제작한 활

1m 60cm

도판12 중국 양푸시(楊福喜) 화살[箭]

위 2개 느릅나무[楡木] 3번째

목전(木矢) 아래 2개 죽시(竹矢)

201598 필자 촬영

도판13 일본 미야기현(宮崎県)

미야코노조(都城市) 120년 전통

楠見藏吉 弓製作所

httpjotaro-gocomcollect2980

도판14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

지정(指定) 전통적(傳統的)

공예품(工藝品)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

httpjotaro-gocomcollect2980 참고

도판7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종국(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9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박호준(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7 8 9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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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4

34 35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ime a

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fter Tim

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1213

14

1516

1718

1920

21

2223

2425

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9: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1927 2015

宇峰우봉 이매방

춤 한자락에 담긴 삶

한국 춤의 거목 우봉 이매방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lt승무(僧舞)gt 및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lt살풀이춤gt 예능보유자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2가지 종목의

무형문화재를 보유했다

그의 춤과 삶의 흔적을 담아보았다

Master Ubong Lee Mae Bang Korearsquos traditional dance virtuoso passed away on August 7 2015 He was 88 years of age Ubong was one of the key figures in

the modern and contemporary days of Korea Ubong the one who often lauded as a ldquodancer sent from the Heavenrdquo was a master of Seungmu (a form of dance

traditionally performed by Buddhist monks) and Salpuri (a form of dance traditionally performed by Korean shamans to banish evil spirits) designated

as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No 27 and 97 respectively Born in Mokpo Jeollanam-do on May 5 1927 he was discovered and trained by

Han Guk Hyang the headmaster of a Gwonbeon (a form of traditional dance academy in Korea) in Mokpo at the age of 7 This was followed by 8 years of

dance and drum performance training as an apprentice of Master Lee Dae Jo who taught Seungmu Geommu (sword dance) and Gobeop (traditional drum

technique) at the Gwonbeon Throughout his life devoted to dance he garnered great fame as the holder of two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and

trained numerous traditional dancers Ubong Lee Mae Bang passed on to us the quintessence of Korean traditional dance expressed through his moves that

made him a dancer of a historic significance for whom there will be no equal in this millennium not to mention in this century사진제공 한국문화재재단

1716 기획특집1

살풀이춤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해 공연 때 착용했던 살풀이춤 의상이다 무동옷과 쾌자는 다른 색으로 바꿔입기도 하며

이매방 살풀이춤을 대표하는 의상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사진액자 121940~50년대 이매방이 승무 바라춤

추는 모습을 찍은 사진의 배경을

없애고 보유자만 오려 붙여 만든

액자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약력

1927년 전남 목포 출생

1934년 목포 북교 입학

1935~39년 만주 다렌 거주 이대조에게 승무 북춤 박영구에게 승무 법고 이창조에게 검무 사사

1943년 목포 공립공업학교 졸업

1948년 명창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서 lsquo승무rsquo로 첫 무대

1953년 제1회 개인발표회(광주)

1956년 제3회 개인발표회(부산)

1959년 제5회 개인발표회(서울 원각사)

1984년 무용 인생 50년 특별공연 lsquo북소리rsquo

1987년 승무 예능보유자 지정

1990년 살풀이춤 예능보유자 지정

1993년 인간문화재진흥회 부회장

1996년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수

1999년 우봉 이매방 춤 인생 65주년 기념 대공연

2004년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춤 인생 70년 기념공연

2005년 lsquo우봉 이매방 춤 전수관 개관 기념공연rsquo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 대공연장)

2006년 lsquo무용 무대예술 80년사 아름 보듬어맺고 풀고helliprsquo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07년 lsquo화성 춤 페스티벌rsquo (수원대학교 베칸토 아트센터)

2008년 서울시 무용단 정기공연 lsquo하얀사 고이접어rsquo (세종문화회관 세종 M씨어터)

2009년 lsquo그가 무대에 서면 역사가 된다 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춤 대공연rsquo (영등포 아트홀)

2010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2011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호암아트홀)

2012년 명작 명무전 (LG 아트센터)

2014년 lsquo우리는 그를 巨木이라 부른다 우봉 이매방 전통춤 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승무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한 승무 복식으로 공연 때 착용했다 흰 장삼에는 옥색 바지 저고리를 입고

흑 장삼에는 흰색 바지 저고리를 입는다 흰 장삼의 승무 의상을 기증했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wwwk-heritagetv에서

승무와 살풀이 동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수상 내역

2015년 은관문화훈장

2011년 제12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공로상

2004년 임방울 국악상middot세종국악대상

1998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1995년 성옥문화상

1984년 옥관문화훈장

1976년 부산시 눌원문화상

우봉 이매방

한국 전통 춤의

정수 승무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18 19

글 사진

이병옥 (용인대학교 명예교수)

宇峰우봉

이매방 선생의 춤 일생

춤 성향을 가늠하는 입문과정과 열정

첫째는 이매방이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세(1934년)가 되던 해 옆집에 세

들어 살던 조도 출신 목포 권번의 권번장 함국향(咸菊香)씨는 그가 춤추기

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춤 학습을 권유하여 남자이지만 여성적인 고운 춤

사위 성향인 기방춤의 기틀을 마련한 점이다

둘째 이매방의 할아버지이면서 스승이었던 이대조 명인은 목포 권번(卷

番)에서 승무와 북놀이 검무 그리고 고법(鼓法)을 가르쳤던 권번 선생으

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점이다

셋째 중국 대련 정포소학교(1935~1939)를 다니면서 그는 매란방 배구

자 등을 만나 춤에 색다른 영향을 받은 점이다 대련에서 운수회사를 운영

하던 큰 형님을 따라 약 5년간을 살게 되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신무용의

대가인 배구자의 무용공연에도 출연하였고 또 북경에 있던 큰 누나의 연

결로 매란방의 공연을 접하고 이국적인 향취에 매료되어 그에게 lt장검무

gt lt등불춤gt lt꿩털춤gt 등을 배운다 6middot25 이후에는 본명 lsquo이규태rsquo를 버

리고 lsquo매방(梅芳)rsquo이라는 예명을 lsquo매란방rsquo의 약자를 딸 정도로 그의 예술혼이

깃든 것이었다 그러다가 대련정포소학교 5학년 때(1939년) 고향 목포북

교소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통춤에 정진하게 되었다

넷째는 주말마다 광주 권번에 다니면서 권번 선생이었던 박영구로부터

승무와 북놀이를 배우고 이창조(장성출신) 선생에게는 검무를 학습한 점

이다 이처럼 목포 권번과 광주 권번을 오가며 박영구 이창조 그리고

이대조 선생에게서 승무 승무북놀이 검무 입춤 살풀이춤 장고춤

태평무 한량무 보렴승무 흥춤 장검무 장고기법들을 배웠다

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공연은 1942년(16세) 목포역전에

서 임방울이 주관하는 명인명창대회였다 이때 승무를 출 박봉선이 사정이

생기자 함국향이 이매방을 임방울에게 소개하여 김연수의 장삼을 빌려 입

고 무대에 나섰다 이때 이매방은 승무를 추어 관객의 열렬한 호응으로 자

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또 예술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해방 후로는 1948

년 임춘앵의 여성국극단에서 삼고무를 가르쳤고 그해 목포 역전에서 다시

임방울이 이끄는 명인명창발표회에 당당히 승무로 출연하게 되었다

방랑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춤 정립(대구 군산 부산 광주 서울)

1950년 6middot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북한군의 뒤를 따라 예술동맹 공연

단들이 목포에 내려와 인민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당시 최승희의 딸 안성희는 lt장검무gt 전황(본명 전두황)은 lt처녀총각gt 등

을 추었으며 이어 이매방을 강제로 무용동맹에 가입시켜 무용활동을 시켰

다 수복 후 국군이 들어와 무용동맹에 강제로 가입했던 것 때문에 곤욕을

치렀으나 가까스로 해명하고 국군 군예대(KAS 종군연예인공연단)에 가

입하여 1951년 대구에 본부를 두어 활동하면서 지방순회공연을 다녔다

또 광주에서 전라남도 경찰국 선무공작단을 맡아 단장으로 호남 일대를 돌

며 순회공연을 하던 중 잠시 군산으로 옮겨 군산시 영화동에다 이매방무

1 1950년대 삼고무 초기 모습

2 1978년 이매방 승무

3 1938년 정포소학교 고개 숙인 이가 이매방 우측 앞

3

2

1

한국 전통춤의 대부 우봉(宇峰)

이매방 선생님이 2015년 8월 7일

8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우봉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로 lsquo하늘이 내린

춤꾼rsquo으로 칭송되는 근현대

전통춤계의 중심인물이었다

1927년 5월 5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7세 되던 해에 목포

권번(券番)의 권번장 함국향의 눈에

들어 춤 학습을 받았다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검무 그리고

고법을 가르쳤던 이대조(李大組)

명인으로부터 춤과 북놀이 사습을

8년 동안 받은 후 평생 외길

춤인생을 걸으면서 두 종목의

인간문화재로 그 명성과 수많은

이수자를 배출하였다

우봉 이매방의 춤사위는 lsquo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rsquo라는 표현을

넘어 lsquo밀레니엄에 한 번 날까rsquo하는

역사적인 존재라고 할 만큼 전통춤의

진수를 전승시킨 인물이다

그러면 우봉 이매방이 어떤 계기와

학습과정으로 전통춤의 대부가 될 수

있으며 어떤 춤 일생을 살아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20 21기획특집 2

용연구소를 개설하여 2 3년간 활동을 하였다

그 후 1953년 부산으로 내려가 장홍심이 운영하는 영도에서 함께 연구소를

했으며 부산 제자로는 김진홍 성승민 이도근 등이 있었다 1954년 광주

로 옮겨 국악원을 개설하여 한순서를 조교로 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무용

발표회(1955년 광주극장)를 가졌다 한편 서울에서는 여성창극단 삼성여

성국악단(박옥진 박보아 조양금 3인) 등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다시 1955

년 부산으로 내려가 초량동에 자리 잡고 첫 발표회를 대영극장(1957년)에서

하였다 그리고 서울에서도 1959년 원각사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당시의 이매방의 춤 활동은 전국적으로 목포 대구 부산 광주 서울이

었지만 주 근거지는 사실상 부산무용가협회 정회원이었으며 1957년과

1958년에 부산공연을 올리며 1960년대 말까지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

1960년대는 많은 무대를 누비면서 점차 춤 레퍼토리를 확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이매방은 삼고무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창작하였으

며 그 후 5고무 7고무 그리고 9고무와 11고무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lt초립동gt lt화랑무gt lt검무gt lt장검무gt lt박쥐춤gt lt흥춤gt lt무당춤gt lt장고

춤gt lt학춤gt 등을 정립하였고 늘 추어온 lt승무gt lt입춤gt lt검무gt 등과 함

께 추었다 이매방 승무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연구소를 서울로 옮겨

오늘날까지 서울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매방은 lt보렴승무

gt lt삼현승무gt lt살풀이춤gt lt검무gt lt입춤gt lt한량무gt lt태평무gt lt흥

춤gt lt장검무gt 그리고 lt장고춤gt 등도 lt승무gt와 함께 끊임없이 연마하여 왔

다 그러한 이매방의 춤예술 정립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예능적 기술이 뛰

어났기 때문이었다

승무 살풀이춤 인간문화재와 국무(國舞)로 추앙

이매방이 서울무용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중앙대 교수이

며 문화재 위원이었던 정병호에 의해 1977년 7월 30일 서울 YMCA에

서 열린 한국전통무용발표회에서 승무를 발표하면서였다 아울러 그때

까지 한성준류의 한영숙 승무에 매료되었던 이들에게 새로운 유파의 승

무가 있음을 신문지상을 통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무대에서의 성공

은 이듬해 1978년 3월 세계민속예술제 한국대표로 프랑스 렌느시에 참

가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이매방 춤판의 최고 결정판은 lt북소리gt 시리즈였다 1984년 6월 이매

방 무용인생 50주년 기념공연 lt북소리gt(문예회관 대극장) 1985년 6월

이매방 전통무용 lt북소리 Ⅱgt 1990년 rsquo90 북경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

전 참가와 lt북소리Ⅲgt(호암아트홀) 그리고 1994년에 춤인생 60년을 정

리하는 lt북소리 Ⅳgt였다 또한 전통예술의 보급과 선양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결과로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1984)과 성옥문화상 문예부문 대상

(1995)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병호 문화재위원의 끈질긴 노력으로 1987년 7월 1일 이매방은 중요무

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명실상부한 명무의 대열

에 서게 되었다

이어 1990년 10월 10일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도 인정받아 전

통춤의 최고 명인으로 추앙받게 되었으며 수많은 한국무용가들이 이매

방류 춤을 전수받기 위해 구름같이 모이게 되었다 그 후 1996년 인생70

고희기념공연 1997년과 98년 일본공연과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2007년 lsquo우봉이매방팔순기념공연rsquo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으며

매년 제자들과 함께 정기공연을 하였다 전통춤경연대회 및 300여 명에

이르는 승무와 살풀이춤 이수자들과 제자들의 공연에도 찬조출연과 반주

를 직접 해주는 열정을 최근까지 지속하였다

이매방 춤의 무용예술적 가치

이매방의 춤에서는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호남제 시나위 춤사위로 짜여져 있

다 춤기법의 중심은 대삼소삼(大杉小杉) 비정비팔(比丁比八) 양우선(兩雨線)

비디듬 좌우걸이 완자걸이 잉어걸이 지숫기 등으로 곱고 아름다운 사위와

자태를 자아내고 한을 신명으로 풀어내는 정중동의 몸놀림이 배어 나온다

결국 이매방 춤은 호남 지방의 권번에서 추어왔던 춤사위 기법이지만 많

은 세월이 지나면서 스승들의 춤을 뛰어넘어 아무도 넘겨볼 수 없는 국무

(國舞)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이매방의 일생을 통해 그가 가진 춤의 예

술적 가치를 요약하면

첫째는 남자이면서도 여성보다도 더 곱고 섬세한 기방계통의 lsquo춤바디rsquo와

여성적 lsquo춤속rsquo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호남지역의 명무들로부터 뼈대 있는 전통춤을 다양하게 전수받아

호남춤의 정통성을 확립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과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춤의 천재이기 때문이다

넷째 현대교육개념으로 볼 때 어린 나이부터 춤의 조기영재교육을 받았

기 때문이다

다섯째 세계적인 경극과 춤의 명인 매란방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예술혼

을 불태우고 인생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80평생 춤추는 것 외에는 남자로서 어떤 직함도 직책도 직업도

가진 바 없이 오로지 춤만 추어온 외길 인생이기 때문이다 춤이 곧 이매

방의 삶이며 생명이며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일곱째 호남지역춤과 기방계통춤이라는 lsquo국지성rsquo에서 출발하였지만 경향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범한국적 전통춤의 lsquo국가성rsquo으로 거듭났으며 국제무

대에도 우리 전통춤의 lsquo세계성rsquo을 알리고 확인하는 독창성과 보편성을 지니

고 있었다는 점 등이 이매방 춤이 가지는 예술적 의의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매방은 1927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민족 수난 속에서도 춤을 배

웠고 해방과 6middot25전쟁 통에서도 오로지 춤만을 추었고 외래문명의 홍

수와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꿋꿋이 춤만 추어 한국 전통춤의 위상을 높였

고 세계 속에 한국춤의 지평을 열어 대한민국 시대의 전통춤 패러다임을

구축하였기에 국무적 존재로 인정받아 온 것이다

1970 2004 2008 2012

22 23

양종승 (우봉이매방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middot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하늘이 내린 춤꾼 宇峰 이매방 선생님을 追惜하며

춤을 위해 태어나 평생 동안 춤만을 사유하였던 우봉(宇峰) 이매방(李梅

芳) 선생님께서 2015년 8월 7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승천하셨다 선생

님은 1927년 5월 5일(음력 3월 7일) 새벽 동이 틀 무렵 목포에서 이경

율과 조병림 사이의 10형제 중 막내둥이로 태어났다 5남매는 일찍이

죽고 남은 3남 2녀 중 막내로 성장하였다 선생님 아명은 집안 돌림자에

따라 영길(永吉)이었지만 스님께서 귀한 아들이라고 하여 귀태(貴泰)로

개명해 주었다 오기된 호적에는 규태(圭泰)로 되어 있다 매방(梅芳)이

라는 이름은 중국 경극의 명인 매란방(梅蘭芳)의 첫 자와 끝자리를 따 예

명으로 불리었는데 1986년 호적을 개명하여 본명이 되었다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춤에 소질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서 성장하였다 결국 옆집 살던 권번장 함국향 권유로 목포 권번에 들어가

당대 소리 북 춤 등에 대가들이었던 이대조 이창조 박영구 진석산 등

에게 승무 검무 살풀이춤 등 전통춤을 학습하였다 선생님의 무용활동

은 목포 공립 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 승무로 출연

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이후 1953년 광주에서 첫 개인발표회를 시

작으로 무용인생 50주년 65주년 70주년을 비롯한 수많은 국내외 공연

을 펼쳤다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1990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가 되었다 그리

고 2014년 승무 및 살풀이춤 명예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한국무용협회 고

문 한국국악협회 고문 한국전통춤협회 고문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

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국무 우봉이매방 화보집』을 발간하였다

이매방 선생님 장례식은 2015년 8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서울삼

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문화예술인 葬]으로 치러졌다 목포문화예술회

관 내에 있는 이매방춤전수관에도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우봉이매방장

례위원회가 구성되어 공동장례위원장을 김종규 한국문화유산신탁 이사

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이경동 한국문화원연합회 회장 김복

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하철경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 김

덕수 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이사장 김진홍 부산시 무형문화재 동

래한량무 보유자 김정녀 중요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전수조교 채상묵

한국전통춤협회 이사장 국수호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등 10명이 맡

았다 장례집행위원장을 양종승 우봉이매방춤보존회 수석부회장 장

례집행부위원장에 김덕숙 김효분 박종필 오은명 최창덕 황순임

등 우봉이매방춤보존회 부회장 6명이 맡았다 장례위원은 김묘선 오

미자 박소림 이길주 송재섭 정영례 최희진 한혜경 김리혜 김은

희 한명옥 진유림 채향순 강성민 백경우 김정기 등 제자 215명이

맡았으며 목포분향소 공동장례위원장은 임점호 목포신안예총회장과 박

수경 목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맡았다 장례의전은 국가공인장례지

도사 유재철 황근식이 진행하였다 유족으로 미망인 김명자(전통무용

가 승무 및 살풀이춤 전수조교) 딸 이현주(전통무용가 승무 및 살풀

이춤 이수자) 사위 이혁열(연극인) 등이 있다

추모식 전경선생님 영전에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을 추서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

부 장관은 일평생 우리 춤 전승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며 문화

융성과 전통예술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공적을 기렸다 또한 이매방 선

생님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깊은 애

도와 함께 목포가 낳은 문화예술계의 큰 별이셨던 선생님은 우리나라 전

통예술의 표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외에 박민권 문화체육관광부 제1

차관 나선화 문화재청장 김해숙 국립국악원장 서도식 한국문화재재

단 이사장 이문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 등 정치계 문화예술

계 등 각계 인사들과 수많은 무용 가족들이 조문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추모식은 2015년 8월 9일 일요일 오후 7시부터 9

시까지 2시간 동안 삼성서울병원 영결식장에서 유가족 지인 각계인

사 제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덕택 운현궁 예술감독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민의례 고인에 대한 묵념 양종승 장례집행위원장의 고

인 약력보고 공동장례위원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공동

장례위원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이사장 공동장례위원장 김복희 한국

무용협회 이사장 등의 조사 제자를 대표한 채상묵 공동장례위원장의

추도사가 있었다 동영상으로 고인의 생전 활동과 육성을 보고 들은 후

유가족을 비롯한 지인 문화예술계의 인사 제자 등의 헌화 및 분향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안숙선 명창의 이별가와 김영임 명창의 회심곡 중

저승 가는 길이 헌가로 받쳐졌다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 보

유자 박병원 전수조교 송순단과 박미옥 등이 주관하는 추모굿과 이광

수 명인의 헌가가 올려졌다 다음날 오전 7시 30분에 발인식이 행해졌

고 오전 9시에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이 이루어졌다 유해는 경기도 광

주시 오포읍 시안가족추모공원에 봉안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에서 초제를 시작으로 49재가 진행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금세기 하늘이 내린 명무였다 그리고 근현대 문

화적 격동기 속에서 우리 춤을 꿋꿋이 지킨 민족춤 계승자로서 주어진

소임을 완수하였다 그래서 선생님의 예술 생애와 그가 전승해 온 민족

춤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큰 가치를 지닌다

주지하다시피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한국 전통무용 진가를 표방

하는 고단위적 한민족 춤 유산으로써 조선 중엽 이후 불교의식 민속놀

이 유랑예인연희 무속신앙 등과 어우러져 계승 발전되어 왔다 그와

더불어 민중의식을 담아 애환과 기쁨을 표상하는 춤으로써 위엄 있고 격

조 있는 춤으로 승화되었다 그래서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무용 예술적

가치와 업적은 위대하고 광활하다 무용평론가 강이문과 무용학자 이병

옥 교수는 이매방 선생님을 國舞라 칭했으며 문화계 많은 인사들은 신이

내린 춤꾼이라 호평하였다 이러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우봉 이

매방 선생님 금자탑에서 빛나는 것은 다름 아닌 기왕 흩어져 내동댕이쳤

던 민족 춤의 뿌리를 살려내어 우리 시대 진정한 무용예술로 승화시키고

국가의 민족유산으로 갈고 다듬은 것이었다 이는 탈 식민지적 화두가 -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다큐멘터리 중 이매방 인터뷰 -

살풀이춤은

즉흥무이다 승무

검무 법무를 다

배우면 자기 멋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수판을 잘라야 한다

가락도 춤 승무 가락

검무 가락 이런 거

섞어서 장단 맞춰서

자신의 감정 음악

듣고 음악이 슬프면

슬픈 표정으로

즉흥적으로 추는 춤이

즉흥무야

24 25기획특집 3

본격화되던 20세기 초중반 우리 것에 덧씌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구

를 벗겨내려는 문화 민족주의적 활동의 한 면이었다 서구 중축의 지배

담론을 탈피하면서 그동안 왜곡되고 전도된 관점에서 벗어남으로써 민

족춤에 비문명적이라는 멍에를 씌었던 편협한 지식층의 문화보기 탈각

운동의 한 면이었던 것이다 시기는 일본제국주의의 한국민족문화 말살

정책 해방 후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교육정책의 서구 지향적 패러다임

등장 도시화middot산업화middot현대화에 따른 전통문화 멸시 및 천시 등으로 인

해 민족예술이 단절 위기에 처했었던 그때였다 또한 현대 산업화에 따

른 근대화론 지향의 국책 하에서 민족예술을 진부하거나 불필요한 것으

로 치부하는 풍조였던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우리의 것은 외래의 것에 밀리거나 일방적으로 시비 당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빼앗기는 패배의 싸움판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던 그 상황 속에

서 선생님은 묵묵히 그리고 꿋꿋하게 우리 춤을 지켜 내셨다 우리네 전

통춤은 비합리적이고 가치가 없으며 저급하고 미천한 것으로 저평가되

돼 전승의 단절까지 치닫게 된 상황 속에서도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우

리 춤 계승하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의 춤을

옥석으로 다듬어 세상에 펼쳐 보임으로써 민족 무용예술의 가치를 되살

리는데 평생 힘써 왔었다 결국 어려운 역경과 피나는 고난을 헤치고 일

어난 선생님의 예술세계는 살아 숨 쉬는 민족 춤으로 꽃 피어졌다 향토

춤 민족춤 전통춤 속에 내재된 민중들의 예술적 사상과 정신이 북돋아

나 전통문화복원 민족문화재건 향토문화복구 등과 함께 형성된 민족

문화바로세우기운동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춤은 밖에

서 유입된 외래의 것과는 달리 이 땅에 자생적으로 자라온 민족 춤 뿌리

로 각인되면서 한국무용예술사에 독창적 고귀성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

리고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와

1990년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국민의 춤꾼으로 안

착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 계보를 따지고 올라가면 신방초(申芳草 남)라

는 인물이 있다 전남 옥과 출신인 그는 1817년 무속집안에서 태어난

재인으로 어정판에서 바라지로 활동하였다 춤은 물론이고 육자배기

가곡 가사 장단에 능하여 호남 일대에서 대단히 명성이 높았다 그래

서 당시 호남의 유명 당골들은 그를 모셔가기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였

다고 한다 신방초는 자신의 춤을 같은 고향 출신 신영수(남)에게 전했

다 이후 고창 출신 안두온(남)에게로 이어졌고 다시 순창 출신 이정선

(남)에게 전수되었다 이정선은 춤뿐만 아니라 북놀이에도 뛰어난 재능

을 갖고 있었던 예인이었으며 판소리도 잘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상당

한 대접을 받았다 이정선의 춤은 목포 출신 김금옥(여)과 박귀주(여)에

게 이어졌다 그 후 이매방 선생님의 스승 박영구 이대조 이창조 진

석산 등에게 전수되었다 박영구(남)는 전남 화순 출신으로 승무와 북놀

이의 명무 명인이었으며 광주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대조(남)는 전

남 무안 출신으로 승무의 대가였고 목포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창

조(남)는 전남 능주 출신으로 검무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고 역시 광주 권

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그리고 진소홍(일명 진석산 여)은 전남 담양 출

신으로 서울 인사동에서 요릿집을 운영하면서 살풀이춤을 전승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춤에는 엄격한 억제와 철저한 절제가 존재한다 이

는 수단에 의해 보이는 기교면서 또한 재간으로 처리될 수 있는 예술적

기법의 한 면이다 선생님의 춤은 또한 느낌과 감정의 표현 방식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느낌에서는 가벼움과 무거움 재빠름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이매방 승무-필자 양종승 제공팔순 기념공연-필자 양종승 제공

과 더딤 흐늘거림과 꼿꼿함 섬세함과 우람함 정교함과 장중함 등의

변화무쌍한 표현력을 가진다 감정에서는 슬픔과 기쁨 가냘픔과 뭉뚝

함 애석함과 환희 괴로움과 기쁨 고요함과 시끄러움 등이 묘사되는

데 이는 삶의 고뇌와 애환은 물론이고 희망과 행복을 감싸고 있음을 말

한다 이러한 춤에 있어서의 느낌과 감정은 비정비팔 비디딤 까치걸

음 잉애걸이 좌우걸이 완자걸이 안가랑 등의 발디딤새와 양우선

평체 사체 등의 손놀림새 그리고 연풍대 지숫기 다루치기 대소삼 등

의 몸굴림새 속에서 표현력을 한층 고조시킨다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

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

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

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길이

길이 민족 춤 기틀로 명명되어 질 것이다 천기를 타고난 춤꾼 신들

린 듯한 춤으로 관객을 홀렸던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이제 천상

무대로 가시어 휘날릴 것이다 선생님 기어이 춤과 함께 홀연히 떠

나셨으니 부디 부디 영면하옵소서

추모식 전경

26 27

전경욱 (고려대학교 교수)

동아시아의 가면극1 중국 귀주성 위녕현의 〈춰타이지(撮泰吉)〉 가면극

풍농과 악귀 쫓기를 위해 기원하는 제의의 일부

2 한국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서낭신인 각시가

무동을 탄 모습

3 일본의 미야자키현(宮崎県) 시이바손(椎葉村)의

〈다케노에다오가구라(嶽之枝尾神楽)〉

4 《봉사도》제7폭 모화관에서 행해진 중국사신

영접행사의 연희장면 산대(왼쪽) 앞에서 연행된

줄타기 물구나무서기 접시 돌리기 가면극 등의

전문적 연희

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에서는 가면극 분야에 대해 보

유자와 단체를 모두 지정하고 있으니 일본보다 지원이 좋은 편이다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을 민간문학 민간음악 민간무용 전통희극

곡예 잡기와 경기 민간미술 전통수공기예 전통의약 민속으로 분류

하여 지정하고 있다 중국 가면극인 나희는 전통희극 분야에 해당한다

한국에는 현재 국가 지정의 중요무형문화재 가면극 13종목 각 시도의

무형문화재 가면극 2종목(진주오광대와 퇴계원산대놀이)이 있다 중국

은 그동안 전통희극 분야에 430개 종목을 지정했는데 여기에 나희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노(能)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중요무형

민속문화재의 민속예능 분야에 35개의 가구라(神樂)를 지정했다 이 가

구라들은 대부분 민간의 가면극이다

Ⅱ 동아시아 가면극의 역사와 계통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면극은 매우 유사한 발전 과

정을 보인다 동아시아에는 (1)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과 (2)전

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이 있었다 (1)은 각 지역의 향촌제사

활동(鄕村祭祀活動)에서 연행되던 것으로서 각각 자생적 향토적 성격

을 띠고 있다 그러나 (2)는 산악(散樂) 또는 백희(百戱)라고 불리던 동아

시아 공동의 연희들이 발전하여 성립된 것으로서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함께 각국의 독자성을 띠고 있다

1 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하회별신굿탈놀이나 강릉관노가면

극처럼 향촌제사활동인 마을굿에서 유래하여 발전해 온 가면극들로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전승해 왔다 이 가면극들은 다른 지방의 가면극과

는 아주 다른 독자적 내용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가면극들이 마을굿에

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도판 1)

중국의 나희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지만 후대에는

그것이 민간에 전파되어 각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도 전승되고 있다 그

리고 중국 한족을 비롯하여 소수민족들에는 여러 향촌제사활동에서 유

래하여 그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가면극들도 있다(도판 2)

한편 일본의 고유 신앙을 섬기는 신사(神社)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연예술

인 가구라(神樂) 중에는 자생적인 민속가면극의 예를 보여 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국의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방마다 차이가 크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도판 3)

2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생겨난 가면

극이다 본산대놀이는 삼국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산악middot

백희 그리고 상고시대의 제천의식 등에서 연행되던 전문적 연희자들의

연희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해 형성된

것이다 산악middot백희를 놀았던 사람들은 그 연희 내용으로 볼 때 삼국시

대부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연희자였으며 이들의 후예가 통일신라시

대에 최치원의 시 lt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gt에 묘사된 다섯 가지 연

희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계승된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연행

된 가무백희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나례에서 연행된 산

대희 등을 놀았다 그리고 중국 사신 영접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

희를 펼치던 반인들이 18세기 전반기에 산악middot백희 계통의 연희와 기존

의 가면희들을 재창조해서 본산대놀이를 성립시켰다 이 가면극은 애오

개(아현) 사직골 구파발 녹번 등에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봉사도(奉使圖)》(1725년) 제7폭은 서울의 모화관 마당

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행사의 연희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접시 돌리

기 땅재주 줄타기 탈춤을 묘사하고 있다 마당의 오른쪽에는 산거(山

車)middot산붕(山棚)middot윤거(輪車)middot예산대(曳山臺)middot예산붕(曳山棚) 등으로 불

렀던 소규모의 산대가 보인다 바로 이런 산대 앞에서 공연하던 연희들

을 lsquo산대희rsquo라고 불렀다 특히 세 명의 땅재주꾼 양 옆에서 각각 두 명씩

모두 네 사람이 초록색과 남색의 가면을 쓰고 탈춤을 추고 있다 이는 서

울에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가면극이 있었고 그 가면극을 애오

개산대놀이 등 산대놀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전해준다(도판 4)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경기도의 송파산대놀이middot양주별산대놀이 황해

31 2

Ⅰ 동아시아 가면극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우리는 가면극을 탈춤 탈놀이 가면희 등으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가

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儺戱)라고 부

르는데 이는 중국 가면극들이 대부분 나례에서 연행되던 연희인 나희

로부터 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무형문화유

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middot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부터 한국은 1964년부터 중국은 2006년부터

무형문화재를 국가 차원에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

의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용어로 lsquo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rsquo이라

는 말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의 기예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lsquo보유자rsquo로 인정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lsquo전승인(傳承人)rsquo 일본에서는

lsquo보지자(保持者)rsquo라고 부른다

중국은 이제 막 무형문화재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작했지만 각 지역에

서 자기들의 무형문화재를 국가 지정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으로 등재하기 위

한 열기는 매우 뜨겁다 그리고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과 관련된 행사나 학술

대회도 자주 개최하고 있다 필자는 매년 중국의 가면극학회인 중국나

희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는데 가면극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들에서

는 이 학회를 유치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현지 답사를 통해 자기 지

역의 가면극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국가 지정의 무형문화재를 (1)중요무형문화재(연극 음

악 공예기술 등)와 (2)중요무형민속문화재(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

행사 등에 관한 풍속관습 민속예능)로 구분하여 지원한다 그래서 연극

분야 중 노(能) 가부키(歌舞伎) 등은 (1)에 해당하고 각 지방의 가구라

(神樂)는 (2)의 민속예능에 해당한다 (1)은 전문적인 연희자들이 전승하

는 종목으로서 그 기middot예능을 보유한 사람과 단체를 모두 지정한다 그

러나 (2)는 단체만 지정하고 보유자는 지정하지 않는다 이를 한국에 적

용하면 판소리는 (1)중요무형문화재(음악)에 가면극은 (2)중요무형민

속문화재(민속예능)에 해당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한국의 가면극들

은 대부분 각 지방에서 세시풍속의 하나로서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

日韓 中

4

28 29무형문화재 삼국지ㆍ예능

도의 봉산탈춤middot강령탈춤middot은율탈춤 경남의 수영야류middot동래야류middot통

영오광대middot고성오광대middot가산오광대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

본산대놀이는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했지만 여기에서 전파된 별산대

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 등은 농민 하급관속 무부(巫夫) 등 각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중국 가면의 역사에서 가면의

효시는 나례에 등장하던 방상시(方相氏) 가면이다 이 나례에서 연행되던

각종 연희와 가면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면극이 생겨났기 때문에 가면

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다른 계통의 가면은 육조(六朝)시대 이후 산악middot

백희에 사용되던 것으로 이는 서역악무(西域樂舞)의 영향을 받은 외래

기원의 가면이다 현재도 중국에는 귀주성의 나당희처럼 무당집단이 전

승하고 있는 나희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들은 전문적 연희자인 셈

이다(도판 5)

일본의 가면극은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서 육성된 가면극과

서민층에 의해 육성된 가면극이 있다 전자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예술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데 기가쿠(伎樂)middot

부가쿠(舞樂)middot교도(行道)middot노(能)middot교겐(狂言)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

데 노와 교겐은 특히 산악middot백희와 밀접한 관련 아래 성립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문화인 산악middot백희가 일본에 유입

된 이후 변화middot발전하여 후대에 일본의 대표적 전통연극인 노가쿠(能

樂)middot노쿄겐(能狂言)middot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middot가부키(歌舞伎) 등 전통연

극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산악middot백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 연희를 발전시켜 lsquo나희

(儺戱)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켰고 일본에서는 사루가쿠(猿樂) 즉 산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lsquo노(能)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킨 것처럼 한국에서도

중국 사신 영접 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반인(泮人)들이

lsquo본산대놀이rsquo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Ⅲ 동아시아 가면극의 연희 내용

한국의 가면극은 벽사적 의식무과장 파계승과장 양반과장 영감할미

과장 등 서로 다른 내용의 과장들로 짜여진 소위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

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면극을 탈춤이라고 부를 정도로 춤이 많

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춤사위가 매우 뛰어나다(도판

6) 일본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가구라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짜인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나희와 일본

의 노는 대부분 하나의 가면극이 하나의 서사적 내용으로 짜여 있다

이러한 서사성의 나희와 노도 또한 서로 차이점을 갖고 있는데 노는 lsquo현

재노(現在能)rsquo와 lsquo몽환노(夢幻能)rsquo가 있어 특징적이고 나희는 주로 노래와

대사에 의해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lsquo현재노rsquo는 현재형으로 사건이 전개

되는 노를 말한다 lsquo몽환노rsquo는 나그네(조연자인 와키가 분장)의 꿈 속에

망령이나 화신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몽환노에

서는 시간이 자유롭게 정지하고 역행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도 자유롭게

등장할 수가 있다 주연자는 고전 속의 미녀이거나 역사상 인물일 수도

있고 지옥의 원령이거나 신(神) 불(佛) 귀(鬼) 초목(草木)의 정령이기

도 하다

중국 나희에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 황제 왕 일반인물

등 배역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연희 내용도 의식적인 춤을 제외

하면 대부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를 연극화

하여 공연한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 가면극에서

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이 거의 없고 황제나 왕 같은 존재

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반 인물 위주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연희 내용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주로 현

실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한편 한middot중middot일의 가면 또한 각국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middot중middot일 가

면의 형태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 윗부분에 있다 한국 가면은 얼굴

의 이마 부분까지만 표현하고 있다 일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경우에

도 간단한 선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

을 안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낸다 모자를 쓰는 배역은 별도의 모자를 착

용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의 귀면(鬼面)인 팔먹중가면을 보면 오로

지 안면의 표정에 의해 무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 노나 가

구라의 가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가면은 대부분 머리 부분과

얼굴 부분을 모두 이용해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한다 가면 자체에

머리 부분의 모자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도판 7)

그리고 한middot중middot일의 음악적 선율과 장단이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음악에 맞춰 연기하고 춤을 추는 연희자들의 동작과 춤사위는 각국

가면극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

5 중국 귀주성 덕강현의 무당들이 공연하는 가면극인 〈나당희(儺堂戱)〉

6 춤사위가 매우 뛰어난 〈봉산탈춤〉의 팔먹중춤

7 중국 안휘성 지주의 나희 〈유문룡〉 가면 자체에 모자를 장식

7 5

6

30 31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충남middot서울시 문화재위원)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도판4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양푸시(楊福喜) 201598 필자 촬영

도판5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권영학 보유자 2015821 필자 촬영

도판6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故 김박영 보유자 서헌강 촬영

도판1 활 쏘며 수렵하는 장면 고구려 무용총

도판2 중국 고대 활과 화살 및 활쏘기 장면 전국시대 초(楚) 동호(銅壺)

도판3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일본

Ⅰ 한민족과 활

한국인에게 활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민족과 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중국인이 우리 민족을 부르

는 명칭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이다 lsquo이(夷)rsquo라는 글자는 큰 대(大)자

와 활 궁(弓)자가 결합되어 있다 동이라는 글자를 곧이곧대로 풀어보면

lsquo중국의 동쪽에서 살며 큰[大] 활[弓]을 잘 만들고 쏘는 민족rsquo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 미루어 이미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우

리 한민족이 그들 한족보다 활을 잘 다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반인뿐 아니라 왕도 활을 잘 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적 인물로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lsquo활 잘 쏘는 이rsquo의 대명사로 기

록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쏘았으며

사도세자의 아들로 유명한 정조 또한 활을 잘 쏜 국왕으로 기억된다

조선에서 활쏘기를 잘했던 이유는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심신을 단련

하는 육례(禮 樂 射 脚 書 數) 중 하나로 활쏘기가 장려된 데에도 원

인이 있다 조선에서는 국가 의례로 활쏘기 행사를 거행하였다 왕과

신하가 활 쏘는 대사례(大射禮)는 1477년(성종 8) 1534년(중종 29) 및

1743년(영조 19) 1764년(영조 45)에 군신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였다 한편 지방의 양반 사족들은 향약과 비슷한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양국의 활은

기본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청나라 시대의 그림을 보면 조선 말기 19세기에 활

을 쏘는 그림과 비교가 된다 두 나라의 사수(射手)는 각각 청나라와 조

선의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른 편이다 더욱

이 양자가 활을 쏘는 모습은 공통되면서 부분적으로 다르다 그림 속 중

국의 활은 150cm 정도여서 1m 안팎의 한국 활보다 길이가 긴 점이 다르

다 막상 양자에서 동시에 화살을 쏘면 날아가는 비거리는 후자가 훨씬

긴데 이렇게 그림에서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몇 년 전

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lt최종 병기 활gt이다 시대 배경은 병자호란 당

시 청나라 무사와 조선의 사수가 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영화화한 것

이다 비록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다소 활의 효능이 과장되긴 했지만

두 나라 활의 특징과 조선 활의 장점을 극명하게 잘 그려내어 흥미롭게

본 기억이 새롭다

한편 양국과 비교되는 것이 일본의 활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활은 전

체 길이가 220cm가 넘는 세계 최대 길이의 활이다 16세기 조선의 『난

중잡록』에 의하면 일본의 화살은 lsquo장편전(長編箭)rsquo이라 하여 여러 나라의

화살과 비교해서 일본의 화살이 매우 크다는 기록으로 이미 조선에서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활을 사용하는 일

본에서는 활을 잡는 위치도 특이하다 일본의 활은 장대하기 때문에 위

쪽이 길고 아래는 짧아서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그림을 보면 매우 긴 활

의 아래쪽을 잡고 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활

은 ldquo화살은 길지만 먼 곳까지는 날지 않는다rdquo라고 13세기의 몽고인이

기록하고 있어 비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가마쿠

라 시대에 들어가면 그 중량이 더욱 늘어나 70g에 이르면 길고 무거운

화살을 폭이 긴 활로 쏘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Ⅲ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활과 화살은 조총이나 대포 등과 같은 화기(火器)를 발명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중요했다 이에 각국은 국력을 모아 활과 화살을

제작하였다

이미 고려 때에 중앙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에 각궁장(角弓匠) 전장(箭

匠) 전두장(箭頭匠) 등의 장인을 소속시켜 각궁을 만들었다 또 궁중의

궁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내궁방(內宮房)에도 각궁장(角弓匠)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군기감(軍器監)을 설치 운영하였고 장인들을 소속시켜 활

과 화살을 제작하게 하였다 이들 장인은 다른 기술을 가진 장인과 달리

궁인(弓人)이나 시인(矢人)으로 불렀다 궁인과 시인이라는 명칭은 『논

어』에서 나오며 그들 장인은 다른 물건이 아닌 무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우대하여 부른 것이다 이에 조선은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면

서 궁인 90명 시인 150명을 배정하였다 아울러 이들 장인들은 각 지

방마다 상당수를 배정하였고 이 또한 여타의 다른 장인들에 비하여 많

은 숫자에 해당되었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장색과 규모는 영조대 『속대전』이나 정조대

『대전통편』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국가적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각종 300여 도감마다 수많은 궁인이

나 시인을 징발하여 의례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할 궁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사적인 공방에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김준근의 lt기산풍속화gt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궁창을 앞에 두고

줄과 환으로 일정하게 다듬은 쇠뿔과 뽕나무 등을 옆에 두고 완성된

각궁에 시위를 걸어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있다

청나라 말에 전통 활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lt시궁정력(試弓定力)gt에

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입식 건물 안에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너댓 개

의 활을 만들어 올려놓고 다 만든 활을 과학적으로 무게를 재고 있다

향사례(鄉射禮)를 거행하여 사족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활을 좋아하고 잘 다룬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역

사 동안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다른 종목보다 유달리

활(양궁)을 잘 쏘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한민족의 피 속

에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유전인자 DNA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Ⅱ 유물 속 동아시아의 활

인류는 이른 시기부터 멀리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자 무기로 활과 화살을 개발하였다 이후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

에 따라 궁시를 제작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

하였다 하지만 궁시는 대개 나무나 대나무와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

져 썩어 오래전의 유물을 확인하기 어렵고 단지 흑요석(黑曜石)처럼 단

단한 석제로 만든 화살촉에 의해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정복 전쟁이 빈번해지던 고대부터 무기가 발달하였다 당시에

사용된 활과 화살의 형태는 유물 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전국시대(BC 475~221) 동호(銅壺) 유물

을 보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한편

5세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lt수렵도gt에서 말 위에서 짐승들을

1

32

4

6

5

32 33무형문화재 삼국지ㆍ기능

양국의 활 제작방식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청나라 활 제작 장인 집단

은 북경 동사대가에 있는 궁전대원리(弓箭大院里)에 17가호의 궁전 점포

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squo취원호(聚元號)rsquo이다 이곳에서 중국 전통 활

을 제작했던 장인이 양뤼린(楊瑞林)이며 아들인 양원통(楊文通) 손자인

양푸시(楊福喜)까지 3대가 잇고 있다 양푸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활을 제작하여 2006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

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장인으로 보호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45년 앞선 1971년 9월 13일 전통 활 제작 장인

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으로 지정하였다 서울 황학

정의 장진섭(張鎭燮 1916~1996)은 조부(장문환)와 부친(장기홍)에 이

어 3대째 활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예천의 권영

록(權寧錄 1916~1986)은 부친(권태전 權泰全)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

었다 부천의 김장환(金章換 1909~1984)는 조부(김원재)와 부친(김

동천)의 대를 잇고 한국 제일가는 명사수로서 활동하고 부천 성무정의

초대 사두(1967~1982)가 되었다 그의 기술은 제자인 김박영(金博榮

1929~2011)이 전승하였다 그의 사후 2015년 권영학(1943년생)보유

자가 새로 인정되어 조부(권선복)와 부친(권우갑)의 가업을 이어 그 또

한 3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화살을 만드는 시장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시장)

으로 지정하였다 화살로 유명한 장단에서 나고 자란 유영기(1936년 그런데 세계적으로 강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활은 여기에 화피를 더

하여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물소 뿔(牛角) 쇠심줄(牛芯)

민어 부레풀(魚膠) 대나무 뽕나무(弓幹桑) 참나무 화피(樺皮)가 그것

이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는 각궁은 살

아있는 활이면서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쇠뿔은 통뼈이며 대나

무와 뽕나무 및 참나무가 세부 뼈대이고 그 위에 바르는 쇠심줄은 근

육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부레풀은 연골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다듬는

화피는 피부에 해당된다 이중 물소 뿔과 대나무 및 쇠심줄이 활의 강

도와 탄성을 이루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민

어 부레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은 1년 중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제작하여 계절을 타는 공예품인데 그 이유는 동식물성 재료

들이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아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심이 건

조가 안되고 풀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여름에는 재료를 장만하고 찬바람이 나면 풀을 대와 뼈와 나무를 서로

붙여 정월 경에 건조시키고 3월부터 한 달 이상 해궁 작업을 한다 각

궁은 제작이 까다롭고 단계마다 원칙을 지키고 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

해서 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궁의 핵심 원료인 물소는 주로 아열대 지방인 중국 남부나 인도 및 인

도차이나 등지에 서식하므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여서 중국은 물소 뿔의 수출을 엄격

하게 통제하였고 조선 정부는 그것을 몰래 수입하려고 애썼다 현재

도 각궁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의 수급은 어려움이 많다 물소는 세계적

인 보호동물이어서 물소 뿔을 수입할 때 세관의 통과가 어렵고 쇠심줄

은 근래 많은 소들이 일하면서 근육을 키우지 않고 육우용으로만 키워

져 탄성이 없어 활의 탄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접착제인 민어부

레의 경우 예전에는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근래에는 민어부레가 정

력에 좋다고 그것마저 식용으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한 활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488년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同越)은 ldquo조선에서 사용하는 화피궁은 중

국의 제도에 비하여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rdquo라

고 평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활은 중국 것보다 작으나 탄

성이 크고 강하다 우리의 시장들은 대나무로 화살대[矢幹]를 만들고

쇠로 활촉(雛)을 끼우며 수리깃으로 화살깃(矢羽)을 만든다 반면 중국

의 장인은 죽시와 함께 유목(楡木)으로 목시(木矢)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활은 대나무와 나무를 한데 결합한 복합궁이다 일본의 활

은 2m 이상으로 길고 무거워 탄성이 적어 근거리에는 위력이 높은 대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이면서 한middot중middot일

삼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각궁은 한국 장인들의 솜씨가

표출된 우수한 전통 공예기술로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생)는 조부(유창원)와 부친(유복삼)에 이어 3대를 잇고 그 아들 유세

현과 유승현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단 근처 원당에서 나고 자

란 박호준(1944년생)은 조부(박희원)와 부친(박상준)에 이어 3대째 가

업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김종국(1940년생)은 스승인 조명제(趙命濟

1915~1980)가 조부(조성관)와 부친(조면보)의 대를 이었던 것을 본받

아 예천에서 화살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12월 14일 부천활박물관을 세웠고 파주에는 유영기

보유자가 만든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반면 중국에는 2012년 신강의

이리에 성급(省級) 비물질문화재로 등록된 이청강(李靑岡)이 중화활문화

박물관(中華弓文化博物館)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로 활을 지

정하지 않아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이 전통적(傳統的) 공예품

(工藝品)으로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을 지정하였다 미야기현(宮崎県)에 위치

한 미야코노조(都城市)에 7대째 120년 전통의 활을 제작하는 활제작소

[楠見藏吉 弓製作所]가 위치하고 있다

Ⅳ 활과 화살의 재료

활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의 『고공기』에 의하면 나무[干 柘 橘 桑 木

瓜 竹 荊 등] 심줄[筋] 풀[膠 말 소 사슴 물소] 뿔[쇠뿔] 옻[漆]

명주실[絲]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은 뿔을 주재료로

삼은 각궁(角弓)인 것을 알 수 있다

도판10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故

김박영 보유자 제작 각궁(角弓)

도판11 중국 양푸시(楊福喜)가 제작한 활

1m 60cm

도판12 중국 양푸시(楊福喜) 화살[箭]

위 2개 느릅나무[楡木] 3번째

목전(木矢) 아래 2개 죽시(竹矢)

201598 필자 촬영

도판13 일본 미야기현(宮崎県)

미야코노조(都城市) 120년 전통

楠見藏吉 弓製作所

httpjotaro-gocomcollect2980

도판14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

지정(指定) 전통적(傳統的)

공예품(工藝品)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

httpjotaro-gocomcollect2980 참고

도판7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종국(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9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박호준(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7 8 9

11 10

12

13 14

34 35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ime a

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fter Tim

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1213

14

1516

1718

1920

21

2223

2425

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10: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살풀이춤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해 공연 때 착용했던 살풀이춤 의상이다 무동옷과 쾌자는 다른 색으로 바꿔입기도 하며

이매방 살풀이춤을 대표하는 의상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사진액자 121940~50년대 이매방이 승무 바라춤

추는 모습을 찍은 사진의 배경을

없애고 보유자만 오려 붙여 만든

액자이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약력

1927년 전남 목포 출생

1934년 목포 북교 입학

1935~39년 만주 다렌 거주 이대조에게 승무 북춤 박영구에게 승무 법고 이창조에게 검무 사사

1943년 목포 공립공업학교 졸업

1948년 명창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서 lsquo승무rsquo로 첫 무대

1953년 제1회 개인발표회(광주)

1956년 제3회 개인발표회(부산)

1959년 제5회 개인발표회(서울 원각사)

1984년 무용 인생 50년 특별공연 lsquo북소리rsquo

1987년 승무 예능보유자 지정

1990년 살풀이춤 예능보유자 지정

1993년 인간문화재진흥회 부회장

1996년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수

1999년 우봉 이매방 춤 인생 65주년 기념 대공연

2004년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춤 인생 70년 기념공연

2005년 lsquo우봉 이매방 춤 전수관 개관 기념공연rsquo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 대공연장)

2006년 lsquo무용 무대예술 80년사 아름 보듬어맺고 풀고helliprsquo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07년 lsquo화성 춤 페스티벌rsquo (수원대학교 베칸토 아트센터)

2008년 서울시 무용단 정기공연 lsquo하얀사 고이접어rsquo (세종문화회관 세종 M씨어터)

2009년 lsquo그가 무대에 서면 역사가 된다 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춤 대공연rsquo (영등포 아트홀)

2010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2011년 lsquo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rsquo (호암아트홀)

2012년 명작 명무전 (LG 아트센터)

2014년 lsquo우리는 그를 巨木이라 부른다 우봉 이매방 전통춤 공연rsquo (국립국악원 예악당)

승무 복식

1990년대 이후 이매방이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한 승무 복식으로 공연 때 착용했다 흰 장삼에는 옥색 바지 저고리를 입고

흑 장삼에는 흰색 바지 저고리를 입는다 흰 장삼의 승무 의상을 기증했다(사진제공 국립무형유산원)

wwwk-heritagetv에서

승무와 살풀이 동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수상 내역

2015년 은관문화훈장

2011년 제12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공로상

2004년 임방울 국악상middot세종국악대상

1998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1995년 성옥문화상

1984년 옥관문화훈장

1976년 부산시 눌원문화상

우봉 이매방

한국 전통 춤의

정수 승무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18 19

글 사진

이병옥 (용인대학교 명예교수)

宇峰우봉

이매방 선생의 춤 일생

춤 성향을 가늠하는 입문과정과 열정

첫째는 이매방이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세(1934년)가 되던 해 옆집에 세

들어 살던 조도 출신 목포 권번의 권번장 함국향(咸菊香)씨는 그가 춤추기

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춤 학습을 권유하여 남자이지만 여성적인 고운 춤

사위 성향인 기방춤의 기틀을 마련한 점이다

둘째 이매방의 할아버지이면서 스승이었던 이대조 명인은 목포 권번(卷

番)에서 승무와 북놀이 검무 그리고 고법(鼓法)을 가르쳤던 권번 선생으

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점이다

셋째 중국 대련 정포소학교(1935~1939)를 다니면서 그는 매란방 배구

자 등을 만나 춤에 색다른 영향을 받은 점이다 대련에서 운수회사를 운영

하던 큰 형님을 따라 약 5년간을 살게 되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신무용의

대가인 배구자의 무용공연에도 출연하였고 또 북경에 있던 큰 누나의 연

결로 매란방의 공연을 접하고 이국적인 향취에 매료되어 그에게 lt장검무

gt lt등불춤gt lt꿩털춤gt 등을 배운다 6middot25 이후에는 본명 lsquo이규태rsquo를 버

리고 lsquo매방(梅芳)rsquo이라는 예명을 lsquo매란방rsquo의 약자를 딸 정도로 그의 예술혼이

깃든 것이었다 그러다가 대련정포소학교 5학년 때(1939년) 고향 목포북

교소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통춤에 정진하게 되었다

넷째는 주말마다 광주 권번에 다니면서 권번 선생이었던 박영구로부터

승무와 북놀이를 배우고 이창조(장성출신) 선생에게는 검무를 학습한 점

이다 이처럼 목포 권번과 광주 권번을 오가며 박영구 이창조 그리고

이대조 선생에게서 승무 승무북놀이 검무 입춤 살풀이춤 장고춤

태평무 한량무 보렴승무 흥춤 장검무 장고기법들을 배웠다

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공연은 1942년(16세) 목포역전에

서 임방울이 주관하는 명인명창대회였다 이때 승무를 출 박봉선이 사정이

생기자 함국향이 이매방을 임방울에게 소개하여 김연수의 장삼을 빌려 입

고 무대에 나섰다 이때 이매방은 승무를 추어 관객의 열렬한 호응으로 자

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또 예술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해방 후로는 1948

년 임춘앵의 여성국극단에서 삼고무를 가르쳤고 그해 목포 역전에서 다시

임방울이 이끄는 명인명창발표회에 당당히 승무로 출연하게 되었다

방랑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춤 정립(대구 군산 부산 광주 서울)

1950년 6middot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북한군의 뒤를 따라 예술동맹 공연

단들이 목포에 내려와 인민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당시 최승희의 딸 안성희는 lt장검무gt 전황(본명 전두황)은 lt처녀총각gt 등

을 추었으며 이어 이매방을 강제로 무용동맹에 가입시켜 무용활동을 시켰

다 수복 후 국군이 들어와 무용동맹에 강제로 가입했던 것 때문에 곤욕을

치렀으나 가까스로 해명하고 국군 군예대(KAS 종군연예인공연단)에 가

입하여 1951년 대구에 본부를 두어 활동하면서 지방순회공연을 다녔다

또 광주에서 전라남도 경찰국 선무공작단을 맡아 단장으로 호남 일대를 돌

며 순회공연을 하던 중 잠시 군산으로 옮겨 군산시 영화동에다 이매방무

1 1950년대 삼고무 초기 모습

2 1978년 이매방 승무

3 1938년 정포소학교 고개 숙인 이가 이매방 우측 앞

3

2

1

한국 전통춤의 대부 우봉(宇峰)

이매방 선생님이 2015년 8월 7일

8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우봉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로 lsquo하늘이 내린

춤꾼rsquo으로 칭송되는 근현대

전통춤계의 중심인물이었다

1927년 5월 5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7세 되던 해에 목포

권번(券番)의 권번장 함국향의 눈에

들어 춤 학습을 받았다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검무 그리고

고법을 가르쳤던 이대조(李大組)

명인으로부터 춤과 북놀이 사습을

8년 동안 받은 후 평생 외길

춤인생을 걸으면서 두 종목의

인간문화재로 그 명성과 수많은

이수자를 배출하였다

우봉 이매방의 춤사위는 lsquo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rsquo라는 표현을

넘어 lsquo밀레니엄에 한 번 날까rsquo하는

역사적인 존재라고 할 만큼 전통춤의

진수를 전승시킨 인물이다

그러면 우봉 이매방이 어떤 계기와

학습과정으로 전통춤의 대부가 될 수

있으며 어떤 춤 일생을 살아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20 21기획특집 2

용연구소를 개설하여 2 3년간 활동을 하였다

그 후 1953년 부산으로 내려가 장홍심이 운영하는 영도에서 함께 연구소를

했으며 부산 제자로는 김진홍 성승민 이도근 등이 있었다 1954년 광주

로 옮겨 국악원을 개설하여 한순서를 조교로 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무용

발표회(1955년 광주극장)를 가졌다 한편 서울에서는 여성창극단 삼성여

성국악단(박옥진 박보아 조양금 3인) 등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다시 1955

년 부산으로 내려가 초량동에 자리 잡고 첫 발표회를 대영극장(1957년)에서

하였다 그리고 서울에서도 1959년 원각사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당시의 이매방의 춤 활동은 전국적으로 목포 대구 부산 광주 서울이

었지만 주 근거지는 사실상 부산무용가협회 정회원이었으며 1957년과

1958년에 부산공연을 올리며 1960년대 말까지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

1960년대는 많은 무대를 누비면서 점차 춤 레퍼토리를 확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이매방은 삼고무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창작하였으

며 그 후 5고무 7고무 그리고 9고무와 11고무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lt초립동gt lt화랑무gt lt검무gt lt장검무gt lt박쥐춤gt lt흥춤gt lt무당춤gt lt장고

춤gt lt학춤gt 등을 정립하였고 늘 추어온 lt승무gt lt입춤gt lt검무gt 등과 함

께 추었다 이매방 승무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연구소를 서울로 옮겨

오늘날까지 서울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매방은 lt보렴승무

gt lt삼현승무gt lt살풀이춤gt lt검무gt lt입춤gt lt한량무gt lt태평무gt lt흥

춤gt lt장검무gt 그리고 lt장고춤gt 등도 lt승무gt와 함께 끊임없이 연마하여 왔

다 그러한 이매방의 춤예술 정립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예능적 기술이 뛰

어났기 때문이었다

승무 살풀이춤 인간문화재와 국무(國舞)로 추앙

이매방이 서울무용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중앙대 교수이

며 문화재 위원이었던 정병호에 의해 1977년 7월 30일 서울 YMCA에

서 열린 한국전통무용발표회에서 승무를 발표하면서였다 아울러 그때

까지 한성준류의 한영숙 승무에 매료되었던 이들에게 새로운 유파의 승

무가 있음을 신문지상을 통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무대에서의 성공

은 이듬해 1978년 3월 세계민속예술제 한국대표로 프랑스 렌느시에 참

가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이매방 춤판의 최고 결정판은 lt북소리gt 시리즈였다 1984년 6월 이매

방 무용인생 50주년 기념공연 lt북소리gt(문예회관 대극장) 1985년 6월

이매방 전통무용 lt북소리 Ⅱgt 1990년 rsquo90 북경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

전 참가와 lt북소리Ⅲgt(호암아트홀) 그리고 1994년에 춤인생 60년을 정

리하는 lt북소리 Ⅳgt였다 또한 전통예술의 보급과 선양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결과로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1984)과 성옥문화상 문예부문 대상

(1995)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병호 문화재위원의 끈질긴 노력으로 1987년 7월 1일 이매방은 중요무

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명실상부한 명무의 대열

에 서게 되었다

이어 1990년 10월 10일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도 인정받아 전

통춤의 최고 명인으로 추앙받게 되었으며 수많은 한국무용가들이 이매

방류 춤을 전수받기 위해 구름같이 모이게 되었다 그 후 1996년 인생70

고희기념공연 1997년과 98년 일본공연과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2007년 lsquo우봉이매방팔순기념공연rsquo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으며

매년 제자들과 함께 정기공연을 하였다 전통춤경연대회 및 300여 명에

이르는 승무와 살풀이춤 이수자들과 제자들의 공연에도 찬조출연과 반주

를 직접 해주는 열정을 최근까지 지속하였다

이매방 춤의 무용예술적 가치

이매방의 춤에서는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호남제 시나위 춤사위로 짜여져 있

다 춤기법의 중심은 대삼소삼(大杉小杉) 비정비팔(比丁比八) 양우선(兩雨線)

비디듬 좌우걸이 완자걸이 잉어걸이 지숫기 등으로 곱고 아름다운 사위와

자태를 자아내고 한을 신명으로 풀어내는 정중동의 몸놀림이 배어 나온다

결국 이매방 춤은 호남 지방의 권번에서 추어왔던 춤사위 기법이지만 많

은 세월이 지나면서 스승들의 춤을 뛰어넘어 아무도 넘겨볼 수 없는 국무

(國舞)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이매방의 일생을 통해 그가 가진 춤의 예

술적 가치를 요약하면

첫째는 남자이면서도 여성보다도 더 곱고 섬세한 기방계통의 lsquo춤바디rsquo와

여성적 lsquo춤속rsquo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호남지역의 명무들로부터 뼈대 있는 전통춤을 다양하게 전수받아

호남춤의 정통성을 확립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과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춤의 천재이기 때문이다

넷째 현대교육개념으로 볼 때 어린 나이부터 춤의 조기영재교육을 받았

기 때문이다

다섯째 세계적인 경극과 춤의 명인 매란방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예술혼

을 불태우고 인생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80평생 춤추는 것 외에는 남자로서 어떤 직함도 직책도 직업도

가진 바 없이 오로지 춤만 추어온 외길 인생이기 때문이다 춤이 곧 이매

방의 삶이며 생명이며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일곱째 호남지역춤과 기방계통춤이라는 lsquo국지성rsquo에서 출발하였지만 경향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범한국적 전통춤의 lsquo국가성rsquo으로 거듭났으며 국제무

대에도 우리 전통춤의 lsquo세계성rsquo을 알리고 확인하는 독창성과 보편성을 지니

고 있었다는 점 등이 이매방 춤이 가지는 예술적 의의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매방은 1927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민족 수난 속에서도 춤을 배

웠고 해방과 6middot25전쟁 통에서도 오로지 춤만을 추었고 외래문명의 홍

수와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꿋꿋이 춤만 추어 한국 전통춤의 위상을 높였

고 세계 속에 한국춤의 지평을 열어 대한민국 시대의 전통춤 패러다임을

구축하였기에 국무적 존재로 인정받아 온 것이다

1970 2004 2008 2012

22 23

양종승 (우봉이매방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middot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하늘이 내린 춤꾼 宇峰 이매방 선생님을 追惜하며

춤을 위해 태어나 평생 동안 춤만을 사유하였던 우봉(宇峰) 이매방(李梅

芳) 선생님께서 2015년 8월 7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승천하셨다 선생

님은 1927년 5월 5일(음력 3월 7일) 새벽 동이 틀 무렵 목포에서 이경

율과 조병림 사이의 10형제 중 막내둥이로 태어났다 5남매는 일찍이

죽고 남은 3남 2녀 중 막내로 성장하였다 선생님 아명은 집안 돌림자에

따라 영길(永吉)이었지만 스님께서 귀한 아들이라고 하여 귀태(貴泰)로

개명해 주었다 오기된 호적에는 규태(圭泰)로 되어 있다 매방(梅芳)이

라는 이름은 중국 경극의 명인 매란방(梅蘭芳)의 첫 자와 끝자리를 따 예

명으로 불리었는데 1986년 호적을 개명하여 본명이 되었다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춤에 소질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서 성장하였다 결국 옆집 살던 권번장 함국향 권유로 목포 권번에 들어가

당대 소리 북 춤 등에 대가들이었던 이대조 이창조 박영구 진석산 등

에게 승무 검무 살풀이춤 등 전통춤을 학습하였다 선생님의 무용활동

은 목포 공립 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 승무로 출연

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이후 1953년 광주에서 첫 개인발표회를 시

작으로 무용인생 50주년 65주년 70주년을 비롯한 수많은 국내외 공연

을 펼쳤다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1990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가 되었다 그리

고 2014년 승무 및 살풀이춤 명예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한국무용협회 고

문 한국국악협회 고문 한국전통춤협회 고문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

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국무 우봉이매방 화보집』을 발간하였다

이매방 선생님 장례식은 2015년 8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서울삼

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문화예술인 葬]으로 치러졌다 목포문화예술회

관 내에 있는 이매방춤전수관에도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우봉이매방장

례위원회가 구성되어 공동장례위원장을 김종규 한국문화유산신탁 이사

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이경동 한국문화원연합회 회장 김복

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하철경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 김

덕수 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이사장 김진홍 부산시 무형문화재 동

래한량무 보유자 김정녀 중요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전수조교 채상묵

한국전통춤협회 이사장 국수호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등 10명이 맡

았다 장례집행위원장을 양종승 우봉이매방춤보존회 수석부회장 장

례집행부위원장에 김덕숙 김효분 박종필 오은명 최창덕 황순임

등 우봉이매방춤보존회 부회장 6명이 맡았다 장례위원은 김묘선 오

미자 박소림 이길주 송재섭 정영례 최희진 한혜경 김리혜 김은

희 한명옥 진유림 채향순 강성민 백경우 김정기 등 제자 215명이

맡았으며 목포분향소 공동장례위원장은 임점호 목포신안예총회장과 박

수경 목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맡았다 장례의전은 국가공인장례지

도사 유재철 황근식이 진행하였다 유족으로 미망인 김명자(전통무용

가 승무 및 살풀이춤 전수조교) 딸 이현주(전통무용가 승무 및 살풀

이춤 이수자) 사위 이혁열(연극인) 등이 있다

추모식 전경선생님 영전에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을 추서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

부 장관은 일평생 우리 춤 전승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며 문화

융성과 전통예술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공적을 기렸다 또한 이매방 선

생님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깊은 애

도와 함께 목포가 낳은 문화예술계의 큰 별이셨던 선생님은 우리나라 전

통예술의 표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외에 박민권 문화체육관광부 제1

차관 나선화 문화재청장 김해숙 국립국악원장 서도식 한국문화재재

단 이사장 이문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 등 정치계 문화예술

계 등 각계 인사들과 수많은 무용 가족들이 조문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추모식은 2015년 8월 9일 일요일 오후 7시부터 9

시까지 2시간 동안 삼성서울병원 영결식장에서 유가족 지인 각계인

사 제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덕택 운현궁 예술감독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민의례 고인에 대한 묵념 양종승 장례집행위원장의 고

인 약력보고 공동장례위원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공동

장례위원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이사장 공동장례위원장 김복희 한국

무용협회 이사장 등의 조사 제자를 대표한 채상묵 공동장례위원장의

추도사가 있었다 동영상으로 고인의 생전 활동과 육성을 보고 들은 후

유가족을 비롯한 지인 문화예술계의 인사 제자 등의 헌화 및 분향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안숙선 명창의 이별가와 김영임 명창의 회심곡 중

저승 가는 길이 헌가로 받쳐졌다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 보

유자 박병원 전수조교 송순단과 박미옥 등이 주관하는 추모굿과 이광

수 명인의 헌가가 올려졌다 다음날 오전 7시 30분에 발인식이 행해졌

고 오전 9시에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이 이루어졌다 유해는 경기도 광

주시 오포읍 시안가족추모공원에 봉안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에서 초제를 시작으로 49재가 진행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금세기 하늘이 내린 명무였다 그리고 근현대 문

화적 격동기 속에서 우리 춤을 꿋꿋이 지킨 민족춤 계승자로서 주어진

소임을 완수하였다 그래서 선생님의 예술 생애와 그가 전승해 온 민족

춤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큰 가치를 지닌다

주지하다시피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한국 전통무용 진가를 표방

하는 고단위적 한민족 춤 유산으로써 조선 중엽 이후 불교의식 민속놀

이 유랑예인연희 무속신앙 등과 어우러져 계승 발전되어 왔다 그와

더불어 민중의식을 담아 애환과 기쁨을 표상하는 춤으로써 위엄 있고 격

조 있는 춤으로 승화되었다 그래서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무용 예술적

가치와 업적은 위대하고 광활하다 무용평론가 강이문과 무용학자 이병

옥 교수는 이매방 선생님을 國舞라 칭했으며 문화계 많은 인사들은 신이

내린 춤꾼이라 호평하였다 이러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우봉 이

매방 선생님 금자탑에서 빛나는 것은 다름 아닌 기왕 흩어져 내동댕이쳤

던 민족 춤의 뿌리를 살려내어 우리 시대 진정한 무용예술로 승화시키고

국가의 민족유산으로 갈고 다듬은 것이었다 이는 탈 식민지적 화두가 -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다큐멘터리 중 이매방 인터뷰 -

살풀이춤은

즉흥무이다 승무

검무 법무를 다

배우면 자기 멋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수판을 잘라야 한다

가락도 춤 승무 가락

검무 가락 이런 거

섞어서 장단 맞춰서

자신의 감정 음악

듣고 음악이 슬프면

슬픈 표정으로

즉흥적으로 추는 춤이

즉흥무야

24 25기획특집 3

본격화되던 20세기 초중반 우리 것에 덧씌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구

를 벗겨내려는 문화 민족주의적 활동의 한 면이었다 서구 중축의 지배

담론을 탈피하면서 그동안 왜곡되고 전도된 관점에서 벗어남으로써 민

족춤에 비문명적이라는 멍에를 씌었던 편협한 지식층의 문화보기 탈각

운동의 한 면이었던 것이다 시기는 일본제국주의의 한국민족문화 말살

정책 해방 후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교육정책의 서구 지향적 패러다임

등장 도시화middot산업화middot현대화에 따른 전통문화 멸시 및 천시 등으로 인

해 민족예술이 단절 위기에 처했었던 그때였다 또한 현대 산업화에 따

른 근대화론 지향의 국책 하에서 민족예술을 진부하거나 불필요한 것으

로 치부하는 풍조였던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우리의 것은 외래의 것에 밀리거나 일방적으로 시비 당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빼앗기는 패배의 싸움판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던 그 상황 속에

서 선생님은 묵묵히 그리고 꿋꿋하게 우리 춤을 지켜 내셨다 우리네 전

통춤은 비합리적이고 가치가 없으며 저급하고 미천한 것으로 저평가되

돼 전승의 단절까지 치닫게 된 상황 속에서도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우

리 춤 계승하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의 춤을

옥석으로 다듬어 세상에 펼쳐 보임으로써 민족 무용예술의 가치를 되살

리는데 평생 힘써 왔었다 결국 어려운 역경과 피나는 고난을 헤치고 일

어난 선생님의 예술세계는 살아 숨 쉬는 민족 춤으로 꽃 피어졌다 향토

춤 민족춤 전통춤 속에 내재된 민중들의 예술적 사상과 정신이 북돋아

나 전통문화복원 민족문화재건 향토문화복구 등과 함께 형성된 민족

문화바로세우기운동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춤은 밖에

서 유입된 외래의 것과는 달리 이 땅에 자생적으로 자라온 민족 춤 뿌리

로 각인되면서 한국무용예술사에 독창적 고귀성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

리고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와

1990년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국민의 춤꾼으로 안

착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 계보를 따지고 올라가면 신방초(申芳草 남)라

는 인물이 있다 전남 옥과 출신인 그는 1817년 무속집안에서 태어난

재인으로 어정판에서 바라지로 활동하였다 춤은 물론이고 육자배기

가곡 가사 장단에 능하여 호남 일대에서 대단히 명성이 높았다 그래

서 당시 호남의 유명 당골들은 그를 모셔가기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였

다고 한다 신방초는 자신의 춤을 같은 고향 출신 신영수(남)에게 전했

다 이후 고창 출신 안두온(남)에게로 이어졌고 다시 순창 출신 이정선

(남)에게 전수되었다 이정선은 춤뿐만 아니라 북놀이에도 뛰어난 재능

을 갖고 있었던 예인이었으며 판소리도 잘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상당

한 대접을 받았다 이정선의 춤은 목포 출신 김금옥(여)과 박귀주(여)에

게 이어졌다 그 후 이매방 선생님의 스승 박영구 이대조 이창조 진

석산 등에게 전수되었다 박영구(남)는 전남 화순 출신으로 승무와 북놀

이의 명무 명인이었으며 광주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대조(남)는 전

남 무안 출신으로 승무의 대가였고 목포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창

조(남)는 전남 능주 출신으로 검무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고 역시 광주 권

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그리고 진소홍(일명 진석산 여)은 전남 담양 출

신으로 서울 인사동에서 요릿집을 운영하면서 살풀이춤을 전승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춤에는 엄격한 억제와 철저한 절제가 존재한다 이

는 수단에 의해 보이는 기교면서 또한 재간으로 처리될 수 있는 예술적

기법의 한 면이다 선생님의 춤은 또한 느낌과 감정의 표현 방식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느낌에서는 가벼움과 무거움 재빠름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이매방 승무-필자 양종승 제공팔순 기념공연-필자 양종승 제공

과 더딤 흐늘거림과 꼿꼿함 섬세함과 우람함 정교함과 장중함 등의

변화무쌍한 표현력을 가진다 감정에서는 슬픔과 기쁨 가냘픔과 뭉뚝

함 애석함과 환희 괴로움과 기쁨 고요함과 시끄러움 등이 묘사되는

데 이는 삶의 고뇌와 애환은 물론이고 희망과 행복을 감싸고 있음을 말

한다 이러한 춤에 있어서의 느낌과 감정은 비정비팔 비디딤 까치걸

음 잉애걸이 좌우걸이 완자걸이 안가랑 등의 발디딤새와 양우선

평체 사체 등의 손놀림새 그리고 연풍대 지숫기 다루치기 대소삼 등

의 몸굴림새 속에서 표현력을 한층 고조시킨다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

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

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

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길이

길이 민족 춤 기틀로 명명되어 질 것이다 천기를 타고난 춤꾼 신들

린 듯한 춤으로 관객을 홀렸던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이제 천상

무대로 가시어 휘날릴 것이다 선생님 기어이 춤과 함께 홀연히 떠

나셨으니 부디 부디 영면하옵소서

추모식 전경

26 27

전경욱 (고려대학교 교수)

동아시아의 가면극1 중국 귀주성 위녕현의 〈춰타이지(撮泰吉)〉 가면극

풍농과 악귀 쫓기를 위해 기원하는 제의의 일부

2 한국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서낭신인 각시가

무동을 탄 모습

3 일본의 미야자키현(宮崎県) 시이바손(椎葉村)의

〈다케노에다오가구라(嶽之枝尾神楽)〉

4 《봉사도》제7폭 모화관에서 행해진 중국사신

영접행사의 연희장면 산대(왼쪽) 앞에서 연행된

줄타기 물구나무서기 접시 돌리기 가면극 등의

전문적 연희

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에서는 가면극 분야에 대해 보

유자와 단체를 모두 지정하고 있으니 일본보다 지원이 좋은 편이다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을 민간문학 민간음악 민간무용 전통희극

곡예 잡기와 경기 민간미술 전통수공기예 전통의약 민속으로 분류

하여 지정하고 있다 중국 가면극인 나희는 전통희극 분야에 해당한다

한국에는 현재 국가 지정의 중요무형문화재 가면극 13종목 각 시도의

무형문화재 가면극 2종목(진주오광대와 퇴계원산대놀이)이 있다 중국

은 그동안 전통희극 분야에 430개 종목을 지정했는데 여기에 나희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노(能)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중요무형

민속문화재의 민속예능 분야에 35개의 가구라(神樂)를 지정했다 이 가

구라들은 대부분 민간의 가면극이다

Ⅱ 동아시아 가면극의 역사와 계통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면극은 매우 유사한 발전 과

정을 보인다 동아시아에는 (1)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과 (2)전

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이 있었다 (1)은 각 지역의 향촌제사

활동(鄕村祭祀活動)에서 연행되던 것으로서 각각 자생적 향토적 성격

을 띠고 있다 그러나 (2)는 산악(散樂) 또는 백희(百戱)라고 불리던 동아

시아 공동의 연희들이 발전하여 성립된 것으로서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함께 각국의 독자성을 띠고 있다

1 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하회별신굿탈놀이나 강릉관노가면

극처럼 향촌제사활동인 마을굿에서 유래하여 발전해 온 가면극들로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전승해 왔다 이 가면극들은 다른 지방의 가면극과

는 아주 다른 독자적 내용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가면극들이 마을굿에

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도판 1)

중국의 나희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지만 후대에는

그것이 민간에 전파되어 각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도 전승되고 있다 그

리고 중국 한족을 비롯하여 소수민족들에는 여러 향촌제사활동에서 유

래하여 그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가면극들도 있다(도판 2)

한편 일본의 고유 신앙을 섬기는 신사(神社)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연예술

인 가구라(神樂) 중에는 자생적인 민속가면극의 예를 보여 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국의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방마다 차이가 크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도판 3)

2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생겨난 가면

극이다 본산대놀이는 삼국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산악middot

백희 그리고 상고시대의 제천의식 등에서 연행되던 전문적 연희자들의

연희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해 형성된

것이다 산악middot백희를 놀았던 사람들은 그 연희 내용으로 볼 때 삼국시

대부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연희자였으며 이들의 후예가 통일신라시

대에 최치원의 시 lt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gt에 묘사된 다섯 가지 연

희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계승된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연행

된 가무백희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나례에서 연행된 산

대희 등을 놀았다 그리고 중국 사신 영접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

희를 펼치던 반인들이 18세기 전반기에 산악middot백희 계통의 연희와 기존

의 가면희들을 재창조해서 본산대놀이를 성립시켰다 이 가면극은 애오

개(아현) 사직골 구파발 녹번 등에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봉사도(奉使圖)》(1725년) 제7폭은 서울의 모화관 마당

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행사의 연희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접시 돌리

기 땅재주 줄타기 탈춤을 묘사하고 있다 마당의 오른쪽에는 산거(山

車)middot산붕(山棚)middot윤거(輪車)middot예산대(曳山臺)middot예산붕(曳山棚) 등으로 불

렀던 소규모의 산대가 보인다 바로 이런 산대 앞에서 공연하던 연희들

을 lsquo산대희rsquo라고 불렀다 특히 세 명의 땅재주꾼 양 옆에서 각각 두 명씩

모두 네 사람이 초록색과 남색의 가면을 쓰고 탈춤을 추고 있다 이는 서

울에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가면극이 있었고 그 가면극을 애오

개산대놀이 등 산대놀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전해준다(도판 4)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경기도의 송파산대놀이middot양주별산대놀이 황해

31 2

Ⅰ 동아시아 가면극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우리는 가면극을 탈춤 탈놀이 가면희 등으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가

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儺戱)라고 부

르는데 이는 중국 가면극들이 대부분 나례에서 연행되던 연희인 나희

로부터 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무형문화유

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middot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부터 한국은 1964년부터 중국은 2006년부터

무형문화재를 국가 차원에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

의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용어로 lsquo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rsquo이라

는 말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의 기예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lsquo보유자rsquo로 인정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lsquo전승인(傳承人)rsquo 일본에서는

lsquo보지자(保持者)rsquo라고 부른다

중국은 이제 막 무형문화재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작했지만 각 지역에

서 자기들의 무형문화재를 국가 지정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으로 등재하기 위

한 열기는 매우 뜨겁다 그리고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과 관련된 행사나 학술

대회도 자주 개최하고 있다 필자는 매년 중국의 가면극학회인 중국나

희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는데 가면극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들에서

는 이 학회를 유치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현지 답사를 통해 자기 지

역의 가면극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국가 지정의 무형문화재를 (1)중요무형문화재(연극 음

악 공예기술 등)와 (2)중요무형민속문화재(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

행사 등에 관한 풍속관습 민속예능)로 구분하여 지원한다 그래서 연극

분야 중 노(能) 가부키(歌舞伎) 등은 (1)에 해당하고 각 지방의 가구라

(神樂)는 (2)의 민속예능에 해당한다 (1)은 전문적인 연희자들이 전승하

는 종목으로서 그 기middot예능을 보유한 사람과 단체를 모두 지정한다 그

러나 (2)는 단체만 지정하고 보유자는 지정하지 않는다 이를 한국에 적

용하면 판소리는 (1)중요무형문화재(음악)에 가면극은 (2)중요무형민

속문화재(민속예능)에 해당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한국의 가면극들

은 대부분 각 지방에서 세시풍속의 하나로서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

日韓 中

4

28 29무형문화재 삼국지ㆍ예능

도의 봉산탈춤middot강령탈춤middot은율탈춤 경남의 수영야류middot동래야류middot통

영오광대middot고성오광대middot가산오광대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

본산대놀이는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했지만 여기에서 전파된 별산대

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 등은 농민 하급관속 무부(巫夫) 등 각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중국 가면의 역사에서 가면의

효시는 나례에 등장하던 방상시(方相氏) 가면이다 이 나례에서 연행되던

각종 연희와 가면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면극이 생겨났기 때문에 가면

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다른 계통의 가면은 육조(六朝)시대 이후 산악middot

백희에 사용되던 것으로 이는 서역악무(西域樂舞)의 영향을 받은 외래

기원의 가면이다 현재도 중국에는 귀주성의 나당희처럼 무당집단이 전

승하고 있는 나희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들은 전문적 연희자인 셈

이다(도판 5)

일본의 가면극은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서 육성된 가면극과

서민층에 의해 육성된 가면극이 있다 전자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예술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데 기가쿠(伎樂)middot

부가쿠(舞樂)middot교도(行道)middot노(能)middot교겐(狂言)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

데 노와 교겐은 특히 산악middot백희와 밀접한 관련 아래 성립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문화인 산악middot백희가 일본에 유입

된 이후 변화middot발전하여 후대에 일본의 대표적 전통연극인 노가쿠(能

樂)middot노쿄겐(能狂言)middot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middot가부키(歌舞伎) 등 전통연

극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산악middot백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 연희를 발전시켜 lsquo나희

(儺戱)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켰고 일본에서는 사루가쿠(猿樂) 즉 산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lsquo노(能)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킨 것처럼 한국에서도

중국 사신 영접 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반인(泮人)들이

lsquo본산대놀이rsquo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Ⅲ 동아시아 가면극의 연희 내용

한국의 가면극은 벽사적 의식무과장 파계승과장 양반과장 영감할미

과장 등 서로 다른 내용의 과장들로 짜여진 소위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

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면극을 탈춤이라고 부를 정도로 춤이 많

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춤사위가 매우 뛰어나다(도판

6) 일본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가구라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짜인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나희와 일본

의 노는 대부분 하나의 가면극이 하나의 서사적 내용으로 짜여 있다

이러한 서사성의 나희와 노도 또한 서로 차이점을 갖고 있는데 노는 lsquo현

재노(現在能)rsquo와 lsquo몽환노(夢幻能)rsquo가 있어 특징적이고 나희는 주로 노래와

대사에 의해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lsquo현재노rsquo는 현재형으로 사건이 전개

되는 노를 말한다 lsquo몽환노rsquo는 나그네(조연자인 와키가 분장)의 꿈 속에

망령이나 화신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몽환노에

서는 시간이 자유롭게 정지하고 역행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도 자유롭게

등장할 수가 있다 주연자는 고전 속의 미녀이거나 역사상 인물일 수도

있고 지옥의 원령이거나 신(神) 불(佛) 귀(鬼) 초목(草木)의 정령이기

도 하다

중국 나희에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 황제 왕 일반인물

등 배역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연희 내용도 의식적인 춤을 제외

하면 대부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를 연극화

하여 공연한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 가면극에서

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이 거의 없고 황제나 왕 같은 존재

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반 인물 위주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연희 내용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주로 현

실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한편 한middot중middot일의 가면 또한 각국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middot중middot일 가

면의 형태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 윗부분에 있다 한국 가면은 얼굴

의 이마 부분까지만 표현하고 있다 일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경우에

도 간단한 선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

을 안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낸다 모자를 쓰는 배역은 별도의 모자를 착

용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의 귀면(鬼面)인 팔먹중가면을 보면 오로

지 안면의 표정에 의해 무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 노나 가

구라의 가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가면은 대부분 머리 부분과

얼굴 부분을 모두 이용해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한다 가면 자체에

머리 부분의 모자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도판 7)

그리고 한middot중middot일의 음악적 선율과 장단이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음악에 맞춰 연기하고 춤을 추는 연희자들의 동작과 춤사위는 각국

가면극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

5 중국 귀주성 덕강현의 무당들이 공연하는 가면극인 〈나당희(儺堂戱)〉

6 춤사위가 매우 뛰어난 〈봉산탈춤〉의 팔먹중춤

7 중국 안휘성 지주의 나희 〈유문룡〉 가면 자체에 모자를 장식

7 5

6

30 31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충남middot서울시 문화재위원)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도판4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양푸시(楊福喜) 201598 필자 촬영

도판5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권영학 보유자 2015821 필자 촬영

도판6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故 김박영 보유자 서헌강 촬영

도판1 활 쏘며 수렵하는 장면 고구려 무용총

도판2 중국 고대 활과 화살 및 활쏘기 장면 전국시대 초(楚) 동호(銅壺)

도판3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일본

Ⅰ 한민족과 활

한국인에게 활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민족과 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중국인이 우리 민족을 부르

는 명칭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이다 lsquo이(夷)rsquo라는 글자는 큰 대(大)자

와 활 궁(弓)자가 결합되어 있다 동이라는 글자를 곧이곧대로 풀어보면

lsquo중국의 동쪽에서 살며 큰[大] 활[弓]을 잘 만들고 쏘는 민족rsquo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 미루어 이미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우

리 한민족이 그들 한족보다 활을 잘 다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반인뿐 아니라 왕도 활을 잘 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적 인물로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lsquo활 잘 쏘는 이rsquo의 대명사로 기

록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쏘았으며

사도세자의 아들로 유명한 정조 또한 활을 잘 쏜 국왕으로 기억된다

조선에서 활쏘기를 잘했던 이유는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심신을 단련

하는 육례(禮 樂 射 脚 書 數) 중 하나로 활쏘기가 장려된 데에도 원

인이 있다 조선에서는 국가 의례로 활쏘기 행사를 거행하였다 왕과

신하가 활 쏘는 대사례(大射禮)는 1477년(성종 8) 1534년(중종 29) 및

1743년(영조 19) 1764년(영조 45)에 군신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였다 한편 지방의 양반 사족들은 향약과 비슷한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양국의 활은

기본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청나라 시대의 그림을 보면 조선 말기 19세기에 활

을 쏘는 그림과 비교가 된다 두 나라의 사수(射手)는 각각 청나라와 조

선의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른 편이다 더욱

이 양자가 활을 쏘는 모습은 공통되면서 부분적으로 다르다 그림 속 중

국의 활은 150cm 정도여서 1m 안팎의 한국 활보다 길이가 긴 점이 다르

다 막상 양자에서 동시에 화살을 쏘면 날아가는 비거리는 후자가 훨씬

긴데 이렇게 그림에서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몇 년 전

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lt최종 병기 활gt이다 시대 배경은 병자호란 당

시 청나라 무사와 조선의 사수가 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영화화한 것

이다 비록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다소 활의 효능이 과장되긴 했지만

두 나라 활의 특징과 조선 활의 장점을 극명하게 잘 그려내어 흥미롭게

본 기억이 새롭다

한편 양국과 비교되는 것이 일본의 활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활은 전

체 길이가 220cm가 넘는 세계 최대 길이의 활이다 16세기 조선의 『난

중잡록』에 의하면 일본의 화살은 lsquo장편전(長編箭)rsquo이라 하여 여러 나라의

화살과 비교해서 일본의 화살이 매우 크다는 기록으로 이미 조선에서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활을 사용하는 일

본에서는 활을 잡는 위치도 특이하다 일본의 활은 장대하기 때문에 위

쪽이 길고 아래는 짧아서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그림을 보면 매우 긴 활

의 아래쪽을 잡고 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활

은 ldquo화살은 길지만 먼 곳까지는 날지 않는다rdquo라고 13세기의 몽고인이

기록하고 있어 비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가마쿠

라 시대에 들어가면 그 중량이 더욱 늘어나 70g에 이르면 길고 무거운

화살을 폭이 긴 활로 쏘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Ⅲ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활과 화살은 조총이나 대포 등과 같은 화기(火器)를 발명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중요했다 이에 각국은 국력을 모아 활과 화살을

제작하였다

이미 고려 때에 중앙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에 각궁장(角弓匠) 전장(箭

匠) 전두장(箭頭匠) 등의 장인을 소속시켜 각궁을 만들었다 또 궁중의

궁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내궁방(內宮房)에도 각궁장(角弓匠)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군기감(軍器監)을 설치 운영하였고 장인들을 소속시켜 활

과 화살을 제작하게 하였다 이들 장인은 다른 기술을 가진 장인과 달리

궁인(弓人)이나 시인(矢人)으로 불렀다 궁인과 시인이라는 명칭은 『논

어』에서 나오며 그들 장인은 다른 물건이 아닌 무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우대하여 부른 것이다 이에 조선은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면

서 궁인 90명 시인 150명을 배정하였다 아울러 이들 장인들은 각 지

방마다 상당수를 배정하였고 이 또한 여타의 다른 장인들에 비하여 많

은 숫자에 해당되었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장색과 규모는 영조대 『속대전』이나 정조대

『대전통편』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국가적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각종 300여 도감마다 수많은 궁인이

나 시인을 징발하여 의례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할 궁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사적인 공방에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김준근의 lt기산풍속화gt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궁창을 앞에 두고

줄과 환으로 일정하게 다듬은 쇠뿔과 뽕나무 등을 옆에 두고 완성된

각궁에 시위를 걸어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있다

청나라 말에 전통 활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lt시궁정력(試弓定力)gt에

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입식 건물 안에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너댓 개

의 활을 만들어 올려놓고 다 만든 활을 과학적으로 무게를 재고 있다

향사례(鄉射禮)를 거행하여 사족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활을 좋아하고 잘 다룬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역

사 동안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다른 종목보다 유달리

활(양궁)을 잘 쏘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한민족의 피 속

에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유전인자 DNA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Ⅱ 유물 속 동아시아의 활

인류는 이른 시기부터 멀리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자 무기로 활과 화살을 개발하였다 이후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

에 따라 궁시를 제작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

하였다 하지만 궁시는 대개 나무나 대나무와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

져 썩어 오래전의 유물을 확인하기 어렵고 단지 흑요석(黑曜石)처럼 단

단한 석제로 만든 화살촉에 의해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정복 전쟁이 빈번해지던 고대부터 무기가 발달하였다 당시에

사용된 활과 화살의 형태는 유물 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전국시대(BC 475~221) 동호(銅壺) 유물

을 보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한편

5세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lt수렵도gt에서 말 위에서 짐승들을

1

32

4

6

5

32 33무형문화재 삼국지ㆍ기능

양국의 활 제작방식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청나라 활 제작 장인 집단

은 북경 동사대가에 있는 궁전대원리(弓箭大院里)에 17가호의 궁전 점포

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squo취원호(聚元號)rsquo이다 이곳에서 중국 전통 활

을 제작했던 장인이 양뤼린(楊瑞林)이며 아들인 양원통(楊文通) 손자인

양푸시(楊福喜)까지 3대가 잇고 있다 양푸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활을 제작하여 2006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

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장인으로 보호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45년 앞선 1971년 9월 13일 전통 활 제작 장인

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으로 지정하였다 서울 황학

정의 장진섭(張鎭燮 1916~1996)은 조부(장문환)와 부친(장기홍)에 이

어 3대째 활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예천의 권영

록(權寧錄 1916~1986)은 부친(권태전 權泰全)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

었다 부천의 김장환(金章換 1909~1984)는 조부(김원재)와 부친(김

동천)의 대를 잇고 한국 제일가는 명사수로서 활동하고 부천 성무정의

초대 사두(1967~1982)가 되었다 그의 기술은 제자인 김박영(金博榮

1929~2011)이 전승하였다 그의 사후 2015년 권영학(1943년생)보유

자가 새로 인정되어 조부(권선복)와 부친(권우갑)의 가업을 이어 그 또

한 3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화살을 만드는 시장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시장)

으로 지정하였다 화살로 유명한 장단에서 나고 자란 유영기(1936년 그런데 세계적으로 강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활은 여기에 화피를 더

하여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물소 뿔(牛角) 쇠심줄(牛芯)

민어 부레풀(魚膠) 대나무 뽕나무(弓幹桑) 참나무 화피(樺皮)가 그것

이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는 각궁은 살

아있는 활이면서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쇠뿔은 통뼈이며 대나

무와 뽕나무 및 참나무가 세부 뼈대이고 그 위에 바르는 쇠심줄은 근

육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부레풀은 연골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다듬는

화피는 피부에 해당된다 이중 물소 뿔과 대나무 및 쇠심줄이 활의 강

도와 탄성을 이루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민

어 부레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은 1년 중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제작하여 계절을 타는 공예품인데 그 이유는 동식물성 재료

들이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아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심이 건

조가 안되고 풀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여름에는 재료를 장만하고 찬바람이 나면 풀을 대와 뼈와 나무를 서로

붙여 정월 경에 건조시키고 3월부터 한 달 이상 해궁 작업을 한다 각

궁은 제작이 까다롭고 단계마다 원칙을 지키고 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

해서 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궁의 핵심 원료인 물소는 주로 아열대 지방인 중국 남부나 인도 및 인

도차이나 등지에 서식하므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여서 중국은 물소 뿔의 수출을 엄격

하게 통제하였고 조선 정부는 그것을 몰래 수입하려고 애썼다 현재

도 각궁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의 수급은 어려움이 많다 물소는 세계적

인 보호동물이어서 물소 뿔을 수입할 때 세관의 통과가 어렵고 쇠심줄

은 근래 많은 소들이 일하면서 근육을 키우지 않고 육우용으로만 키워

져 탄성이 없어 활의 탄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접착제인 민어부

레의 경우 예전에는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근래에는 민어부레가 정

력에 좋다고 그것마저 식용으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한 활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488년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同越)은 ldquo조선에서 사용하는 화피궁은 중

국의 제도에 비하여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rdquo라

고 평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활은 중국 것보다 작으나 탄

성이 크고 강하다 우리의 시장들은 대나무로 화살대[矢幹]를 만들고

쇠로 활촉(雛)을 끼우며 수리깃으로 화살깃(矢羽)을 만든다 반면 중국

의 장인은 죽시와 함께 유목(楡木)으로 목시(木矢)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활은 대나무와 나무를 한데 결합한 복합궁이다 일본의 활

은 2m 이상으로 길고 무거워 탄성이 적어 근거리에는 위력이 높은 대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이면서 한middot중middot일

삼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각궁은 한국 장인들의 솜씨가

표출된 우수한 전통 공예기술로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생)는 조부(유창원)와 부친(유복삼)에 이어 3대를 잇고 그 아들 유세

현과 유승현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단 근처 원당에서 나고 자

란 박호준(1944년생)은 조부(박희원)와 부친(박상준)에 이어 3대째 가

업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김종국(1940년생)은 스승인 조명제(趙命濟

1915~1980)가 조부(조성관)와 부친(조면보)의 대를 이었던 것을 본받

아 예천에서 화살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12월 14일 부천활박물관을 세웠고 파주에는 유영기

보유자가 만든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반면 중국에는 2012년 신강의

이리에 성급(省級) 비물질문화재로 등록된 이청강(李靑岡)이 중화활문화

박물관(中華弓文化博物館)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로 활을 지

정하지 않아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이 전통적(傳統的) 공예품

(工藝品)으로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을 지정하였다 미야기현(宮崎県)에 위치

한 미야코노조(都城市)에 7대째 120년 전통의 활을 제작하는 활제작소

[楠見藏吉 弓製作所]가 위치하고 있다

Ⅳ 활과 화살의 재료

활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의 『고공기』에 의하면 나무[干 柘 橘 桑 木

瓜 竹 荊 등] 심줄[筋] 풀[膠 말 소 사슴 물소] 뿔[쇠뿔] 옻[漆]

명주실[絲]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은 뿔을 주재료로

삼은 각궁(角弓)인 것을 알 수 있다

도판10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故

김박영 보유자 제작 각궁(角弓)

도판11 중국 양푸시(楊福喜)가 제작한 활

1m 60cm

도판12 중국 양푸시(楊福喜) 화살[箭]

위 2개 느릅나무[楡木] 3번째

목전(木矢) 아래 2개 죽시(竹矢)

201598 필자 촬영

도판13 일본 미야기현(宮崎県)

미야코노조(都城市) 120년 전통

楠見藏吉 弓製作所

httpjotaro-gocomcollect2980

도판14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

지정(指定) 전통적(傳統的)

공예품(工藝品)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

httpjotaro-gocomcollect2980 참고

도판7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종국(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9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박호준(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7 8 9

11 10

12

13 14

34 35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ime a

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fter Tim

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1213

14

1516

1718

1920

21

2223

2425

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11: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글 사진

이병옥 (용인대학교 명예교수)

宇峰우봉

이매방 선생의 춤 일생

춤 성향을 가늠하는 입문과정과 열정

첫째는 이매방이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세(1934년)가 되던 해 옆집에 세

들어 살던 조도 출신 목포 권번의 권번장 함국향(咸菊香)씨는 그가 춤추기

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춤 학습을 권유하여 남자이지만 여성적인 고운 춤

사위 성향인 기방춤의 기틀을 마련한 점이다

둘째 이매방의 할아버지이면서 스승이었던 이대조 명인은 목포 권번(卷

番)에서 승무와 북놀이 검무 그리고 고법(鼓法)을 가르쳤던 권번 선생으

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점이다

셋째 중국 대련 정포소학교(1935~1939)를 다니면서 그는 매란방 배구

자 등을 만나 춤에 색다른 영향을 받은 점이다 대련에서 운수회사를 운영

하던 큰 형님을 따라 약 5년간을 살게 되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신무용의

대가인 배구자의 무용공연에도 출연하였고 또 북경에 있던 큰 누나의 연

결로 매란방의 공연을 접하고 이국적인 향취에 매료되어 그에게 lt장검무

gt lt등불춤gt lt꿩털춤gt 등을 배운다 6middot25 이후에는 본명 lsquo이규태rsquo를 버

리고 lsquo매방(梅芳)rsquo이라는 예명을 lsquo매란방rsquo의 약자를 딸 정도로 그의 예술혼이

깃든 것이었다 그러다가 대련정포소학교 5학년 때(1939년) 고향 목포북

교소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통춤에 정진하게 되었다

넷째는 주말마다 광주 권번에 다니면서 권번 선생이었던 박영구로부터

승무와 북놀이를 배우고 이창조(장성출신) 선생에게는 검무를 학습한 점

이다 이처럼 목포 권번과 광주 권번을 오가며 박영구 이창조 그리고

이대조 선생에게서 승무 승무북놀이 검무 입춤 살풀이춤 장고춤

태평무 한량무 보렴승무 흥춤 장검무 장고기법들을 배웠다

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공연은 1942년(16세) 목포역전에

서 임방울이 주관하는 명인명창대회였다 이때 승무를 출 박봉선이 사정이

생기자 함국향이 이매방을 임방울에게 소개하여 김연수의 장삼을 빌려 입

고 무대에 나섰다 이때 이매방은 승무를 추어 관객의 열렬한 호응으로 자

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또 예술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해방 후로는 1948

년 임춘앵의 여성국극단에서 삼고무를 가르쳤고 그해 목포 역전에서 다시

임방울이 이끄는 명인명창발표회에 당당히 승무로 출연하게 되었다

방랑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춤 정립(대구 군산 부산 광주 서울)

1950년 6middot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북한군의 뒤를 따라 예술동맹 공연

단들이 목포에 내려와 인민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당시 최승희의 딸 안성희는 lt장검무gt 전황(본명 전두황)은 lt처녀총각gt 등

을 추었으며 이어 이매방을 강제로 무용동맹에 가입시켜 무용활동을 시켰

다 수복 후 국군이 들어와 무용동맹에 강제로 가입했던 것 때문에 곤욕을

치렀으나 가까스로 해명하고 국군 군예대(KAS 종군연예인공연단)에 가

입하여 1951년 대구에 본부를 두어 활동하면서 지방순회공연을 다녔다

또 광주에서 전라남도 경찰국 선무공작단을 맡아 단장으로 호남 일대를 돌

며 순회공연을 하던 중 잠시 군산으로 옮겨 군산시 영화동에다 이매방무

1 1950년대 삼고무 초기 모습

2 1978년 이매방 승무

3 1938년 정포소학교 고개 숙인 이가 이매방 우측 앞

3

2

1

한국 전통춤의 대부 우봉(宇峰)

이매방 선생님이 2015년 8월 7일

8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우봉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로 lsquo하늘이 내린

춤꾼rsquo으로 칭송되는 근현대

전통춤계의 중심인물이었다

1927년 5월 5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7세 되던 해에 목포

권번(券番)의 권번장 함국향의 눈에

들어 춤 학습을 받았다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검무 그리고

고법을 가르쳤던 이대조(李大組)

명인으로부터 춤과 북놀이 사습을

8년 동안 받은 후 평생 외길

춤인생을 걸으면서 두 종목의

인간문화재로 그 명성과 수많은

이수자를 배출하였다

우봉 이매방의 춤사위는 lsquo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rsquo라는 표현을

넘어 lsquo밀레니엄에 한 번 날까rsquo하는

역사적인 존재라고 할 만큼 전통춤의

진수를 전승시킨 인물이다

그러면 우봉 이매방이 어떤 계기와

학습과정으로 전통춤의 대부가 될 수

있으며 어떤 춤 일생을 살아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20 21기획특집 2

용연구소를 개설하여 2 3년간 활동을 하였다

그 후 1953년 부산으로 내려가 장홍심이 운영하는 영도에서 함께 연구소를

했으며 부산 제자로는 김진홍 성승민 이도근 등이 있었다 1954년 광주

로 옮겨 국악원을 개설하여 한순서를 조교로 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무용

발표회(1955년 광주극장)를 가졌다 한편 서울에서는 여성창극단 삼성여

성국악단(박옥진 박보아 조양금 3인) 등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다시 1955

년 부산으로 내려가 초량동에 자리 잡고 첫 발표회를 대영극장(1957년)에서

하였다 그리고 서울에서도 1959년 원각사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당시의 이매방의 춤 활동은 전국적으로 목포 대구 부산 광주 서울이

었지만 주 근거지는 사실상 부산무용가협회 정회원이었으며 1957년과

1958년에 부산공연을 올리며 1960년대 말까지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

1960년대는 많은 무대를 누비면서 점차 춤 레퍼토리를 확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이매방은 삼고무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창작하였으

며 그 후 5고무 7고무 그리고 9고무와 11고무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lt초립동gt lt화랑무gt lt검무gt lt장검무gt lt박쥐춤gt lt흥춤gt lt무당춤gt lt장고

춤gt lt학춤gt 등을 정립하였고 늘 추어온 lt승무gt lt입춤gt lt검무gt 등과 함

께 추었다 이매방 승무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연구소를 서울로 옮겨

오늘날까지 서울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매방은 lt보렴승무

gt lt삼현승무gt lt살풀이춤gt lt검무gt lt입춤gt lt한량무gt lt태평무gt lt흥

춤gt lt장검무gt 그리고 lt장고춤gt 등도 lt승무gt와 함께 끊임없이 연마하여 왔

다 그러한 이매방의 춤예술 정립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예능적 기술이 뛰

어났기 때문이었다

승무 살풀이춤 인간문화재와 국무(國舞)로 추앙

이매방이 서울무용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중앙대 교수이

며 문화재 위원이었던 정병호에 의해 1977년 7월 30일 서울 YMCA에

서 열린 한국전통무용발표회에서 승무를 발표하면서였다 아울러 그때

까지 한성준류의 한영숙 승무에 매료되었던 이들에게 새로운 유파의 승

무가 있음을 신문지상을 통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무대에서의 성공

은 이듬해 1978년 3월 세계민속예술제 한국대표로 프랑스 렌느시에 참

가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이매방 춤판의 최고 결정판은 lt북소리gt 시리즈였다 1984년 6월 이매

방 무용인생 50주년 기념공연 lt북소리gt(문예회관 대극장) 1985년 6월

이매방 전통무용 lt북소리 Ⅱgt 1990년 rsquo90 북경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

전 참가와 lt북소리Ⅲgt(호암아트홀) 그리고 1994년에 춤인생 60년을 정

리하는 lt북소리 Ⅳgt였다 또한 전통예술의 보급과 선양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결과로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1984)과 성옥문화상 문예부문 대상

(1995)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병호 문화재위원의 끈질긴 노력으로 1987년 7월 1일 이매방은 중요무

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명실상부한 명무의 대열

에 서게 되었다

이어 1990년 10월 10일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도 인정받아 전

통춤의 최고 명인으로 추앙받게 되었으며 수많은 한국무용가들이 이매

방류 춤을 전수받기 위해 구름같이 모이게 되었다 그 후 1996년 인생70

고희기념공연 1997년과 98년 일본공연과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2007년 lsquo우봉이매방팔순기념공연rsquo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으며

매년 제자들과 함께 정기공연을 하였다 전통춤경연대회 및 300여 명에

이르는 승무와 살풀이춤 이수자들과 제자들의 공연에도 찬조출연과 반주

를 직접 해주는 열정을 최근까지 지속하였다

이매방 춤의 무용예술적 가치

이매방의 춤에서는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호남제 시나위 춤사위로 짜여져 있

다 춤기법의 중심은 대삼소삼(大杉小杉) 비정비팔(比丁比八) 양우선(兩雨線)

비디듬 좌우걸이 완자걸이 잉어걸이 지숫기 등으로 곱고 아름다운 사위와

자태를 자아내고 한을 신명으로 풀어내는 정중동의 몸놀림이 배어 나온다

결국 이매방 춤은 호남 지방의 권번에서 추어왔던 춤사위 기법이지만 많

은 세월이 지나면서 스승들의 춤을 뛰어넘어 아무도 넘겨볼 수 없는 국무

(國舞)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이매방의 일생을 통해 그가 가진 춤의 예

술적 가치를 요약하면

첫째는 남자이면서도 여성보다도 더 곱고 섬세한 기방계통의 lsquo춤바디rsquo와

여성적 lsquo춤속rsquo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호남지역의 명무들로부터 뼈대 있는 전통춤을 다양하게 전수받아

호남춤의 정통성을 확립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과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춤의 천재이기 때문이다

넷째 현대교육개념으로 볼 때 어린 나이부터 춤의 조기영재교육을 받았

기 때문이다

다섯째 세계적인 경극과 춤의 명인 매란방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예술혼

을 불태우고 인생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80평생 춤추는 것 외에는 남자로서 어떤 직함도 직책도 직업도

가진 바 없이 오로지 춤만 추어온 외길 인생이기 때문이다 춤이 곧 이매

방의 삶이며 생명이며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일곱째 호남지역춤과 기방계통춤이라는 lsquo국지성rsquo에서 출발하였지만 경향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범한국적 전통춤의 lsquo국가성rsquo으로 거듭났으며 국제무

대에도 우리 전통춤의 lsquo세계성rsquo을 알리고 확인하는 독창성과 보편성을 지니

고 있었다는 점 등이 이매방 춤이 가지는 예술적 의의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매방은 1927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민족 수난 속에서도 춤을 배

웠고 해방과 6middot25전쟁 통에서도 오로지 춤만을 추었고 외래문명의 홍

수와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꿋꿋이 춤만 추어 한국 전통춤의 위상을 높였

고 세계 속에 한국춤의 지평을 열어 대한민국 시대의 전통춤 패러다임을

구축하였기에 국무적 존재로 인정받아 온 것이다

1970 2004 2008 2012

22 23

양종승 (우봉이매방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middot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하늘이 내린 춤꾼 宇峰 이매방 선생님을 追惜하며

춤을 위해 태어나 평생 동안 춤만을 사유하였던 우봉(宇峰) 이매방(李梅

芳) 선생님께서 2015년 8월 7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승천하셨다 선생

님은 1927년 5월 5일(음력 3월 7일) 새벽 동이 틀 무렵 목포에서 이경

율과 조병림 사이의 10형제 중 막내둥이로 태어났다 5남매는 일찍이

죽고 남은 3남 2녀 중 막내로 성장하였다 선생님 아명은 집안 돌림자에

따라 영길(永吉)이었지만 스님께서 귀한 아들이라고 하여 귀태(貴泰)로

개명해 주었다 오기된 호적에는 규태(圭泰)로 되어 있다 매방(梅芳)이

라는 이름은 중국 경극의 명인 매란방(梅蘭芳)의 첫 자와 끝자리를 따 예

명으로 불리었는데 1986년 호적을 개명하여 본명이 되었다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춤에 소질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서 성장하였다 결국 옆집 살던 권번장 함국향 권유로 목포 권번에 들어가

당대 소리 북 춤 등에 대가들이었던 이대조 이창조 박영구 진석산 등

에게 승무 검무 살풀이춤 등 전통춤을 학습하였다 선생님의 무용활동

은 목포 공립 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 승무로 출연

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이후 1953년 광주에서 첫 개인발표회를 시

작으로 무용인생 50주년 65주년 70주년을 비롯한 수많은 국내외 공연

을 펼쳤다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1990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가 되었다 그리

고 2014년 승무 및 살풀이춤 명예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한국무용협회 고

문 한국국악협회 고문 한국전통춤협회 고문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

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국무 우봉이매방 화보집』을 발간하였다

이매방 선생님 장례식은 2015년 8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서울삼

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문화예술인 葬]으로 치러졌다 목포문화예술회

관 내에 있는 이매방춤전수관에도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우봉이매방장

례위원회가 구성되어 공동장례위원장을 김종규 한국문화유산신탁 이사

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이경동 한국문화원연합회 회장 김복

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하철경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 김

덕수 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이사장 김진홍 부산시 무형문화재 동

래한량무 보유자 김정녀 중요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전수조교 채상묵

한국전통춤협회 이사장 국수호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등 10명이 맡

았다 장례집행위원장을 양종승 우봉이매방춤보존회 수석부회장 장

례집행부위원장에 김덕숙 김효분 박종필 오은명 최창덕 황순임

등 우봉이매방춤보존회 부회장 6명이 맡았다 장례위원은 김묘선 오

미자 박소림 이길주 송재섭 정영례 최희진 한혜경 김리혜 김은

희 한명옥 진유림 채향순 강성민 백경우 김정기 등 제자 215명이

맡았으며 목포분향소 공동장례위원장은 임점호 목포신안예총회장과 박

수경 목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맡았다 장례의전은 국가공인장례지

도사 유재철 황근식이 진행하였다 유족으로 미망인 김명자(전통무용

가 승무 및 살풀이춤 전수조교) 딸 이현주(전통무용가 승무 및 살풀

이춤 이수자) 사위 이혁열(연극인) 등이 있다

추모식 전경선생님 영전에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을 추서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

부 장관은 일평생 우리 춤 전승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며 문화

융성과 전통예술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공적을 기렸다 또한 이매방 선

생님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깊은 애

도와 함께 목포가 낳은 문화예술계의 큰 별이셨던 선생님은 우리나라 전

통예술의 표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외에 박민권 문화체육관광부 제1

차관 나선화 문화재청장 김해숙 국립국악원장 서도식 한국문화재재

단 이사장 이문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 등 정치계 문화예술

계 등 각계 인사들과 수많은 무용 가족들이 조문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추모식은 2015년 8월 9일 일요일 오후 7시부터 9

시까지 2시간 동안 삼성서울병원 영결식장에서 유가족 지인 각계인

사 제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덕택 운현궁 예술감독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민의례 고인에 대한 묵념 양종승 장례집행위원장의 고

인 약력보고 공동장례위원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공동

장례위원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이사장 공동장례위원장 김복희 한국

무용협회 이사장 등의 조사 제자를 대표한 채상묵 공동장례위원장의

추도사가 있었다 동영상으로 고인의 생전 활동과 육성을 보고 들은 후

유가족을 비롯한 지인 문화예술계의 인사 제자 등의 헌화 및 분향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안숙선 명창의 이별가와 김영임 명창의 회심곡 중

저승 가는 길이 헌가로 받쳐졌다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 보

유자 박병원 전수조교 송순단과 박미옥 등이 주관하는 추모굿과 이광

수 명인의 헌가가 올려졌다 다음날 오전 7시 30분에 발인식이 행해졌

고 오전 9시에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이 이루어졌다 유해는 경기도 광

주시 오포읍 시안가족추모공원에 봉안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에서 초제를 시작으로 49재가 진행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금세기 하늘이 내린 명무였다 그리고 근현대 문

화적 격동기 속에서 우리 춤을 꿋꿋이 지킨 민족춤 계승자로서 주어진

소임을 완수하였다 그래서 선생님의 예술 생애와 그가 전승해 온 민족

춤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큰 가치를 지닌다

주지하다시피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한국 전통무용 진가를 표방

하는 고단위적 한민족 춤 유산으로써 조선 중엽 이후 불교의식 민속놀

이 유랑예인연희 무속신앙 등과 어우러져 계승 발전되어 왔다 그와

더불어 민중의식을 담아 애환과 기쁨을 표상하는 춤으로써 위엄 있고 격

조 있는 춤으로 승화되었다 그래서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무용 예술적

가치와 업적은 위대하고 광활하다 무용평론가 강이문과 무용학자 이병

옥 교수는 이매방 선생님을 國舞라 칭했으며 문화계 많은 인사들은 신이

내린 춤꾼이라 호평하였다 이러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우봉 이

매방 선생님 금자탑에서 빛나는 것은 다름 아닌 기왕 흩어져 내동댕이쳤

던 민족 춤의 뿌리를 살려내어 우리 시대 진정한 무용예술로 승화시키고

국가의 민족유산으로 갈고 다듬은 것이었다 이는 탈 식민지적 화두가 -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다큐멘터리 중 이매방 인터뷰 -

살풀이춤은

즉흥무이다 승무

검무 법무를 다

배우면 자기 멋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수판을 잘라야 한다

가락도 춤 승무 가락

검무 가락 이런 거

섞어서 장단 맞춰서

자신의 감정 음악

듣고 음악이 슬프면

슬픈 표정으로

즉흥적으로 추는 춤이

즉흥무야

24 25기획특집 3

본격화되던 20세기 초중반 우리 것에 덧씌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구

를 벗겨내려는 문화 민족주의적 활동의 한 면이었다 서구 중축의 지배

담론을 탈피하면서 그동안 왜곡되고 전도된 관점에서 벗어남으로써 민

족춤에 비문명적이라는 멍에를 씌었던 편협한 지식층의 문화보기 탈각

운동의 한 면이었던 것이다 시기는 일본제국주의의 한국민족문화 말살

정책 해방 후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교육정책의 서구 지향적 패러다임

등장 도시화middot산업화middot현대화에 따른 전통문화 멸시 및 천시 등으로 인

해 민족예술이 단절 위기에 처했었던 그때였다 또한 현대 산업화에 따

른 근대화론 지향의 국책 하에서 민족예술을 진부하거나 불필요한 것으

로 치부하는 풍조였던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우리의 것은 외래의 것에 밀리거나 일방적으로 시비 당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빼앗기는 패배의 싸움판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던 그 상황 속에

서 선생님은 묵묵히 그리고 꿋꿋하게 우리 춤을 지켜 내셨다 우리네 전

통춤은 비합리적이고 가치가 없으며 저급하고 미천한 것으로 저평가되

돼 전승의 단절까지 치닫게 된 상황 속에서도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우

리 춤 계승하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의 춤을

옥석으로 다듬어 세상에 펼쳐 보임으로써 민족 무용예술의 가치를 되살

리는데 평생 힘써 왔었다 결국 어려운 역경과 피나는 고난을 헤치고 일

어난 선생님의 예술세계는 살아 숨 쉬는 민족 춤으로 꽃 피어졌다 향토

춤 민족춤 전통춤 속에 내재된 민중들의 예술적 사상과 정신이 북돋아

나 전통문화복원 민족문화재건 향토문화복구 등과 함께 형성된 민족

문화바로세우기운동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춤은 밖에

서 유입된 외래의 것과는 달리 이 땅에 자생적으로 자라온 민족 춤 뿌리

로 각인되면서 한국무용예술사에 독창적 고귀성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

리고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와

1990년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국민의 춤꾼으로 안

착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 계보를 따지고 올라가면 신방초(申芳草 남)라

는 인물이 있다 전남 옥과 출신인 그는 1817년 무속집안에서 태어난

재인으로 어정판에서 바라지로 활동하였다 춤은 물론이고 육자배기

가곡 가사 장단에 능하여 호남 일대에서 대단히 명성이 높았다 그래

서 당시 호남의 유명 당골들은 그를 모셔가기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였

다고 한다 신방초는 자신의 춤을 같은 고향 출신 신영수(남)에게 전했

다 이후 고창 출신 안두온(남)에게로 이어졌고 다시 순창 출신 이정선

(남)에게 전수되었다 이정선은 춤뿐만 아니라 북놀이에도 뛰어난 재능

을 갖고 있었던 예인이었으며 판소리도 잘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상당

한 대접을 받았다 이정선의 춤은 목포 출신 김금옥(여)과 박귀주(여)에

게 이어졌다 그 후 이매방 선생님의 스승 박영구 이대조 이창조 진

석산 등에게 전수되었다 박영구(남)는 전남 화순 출신으로 승무와 북놀

이의 명무 명인이었으며 광주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대조(남)는 전

남 무안 출신으로 승무의 대가였고 목포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창

조(남)는 전남 능주 출신으로 검무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고 역시 광주 권

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그리고 진소홍(일명 진석산 여)은 전남 담양 출

신으로 서울 인사동에서 요릿집을 운영하면서 살풀이춤을 전승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춤에는 엄격한 억제와 철저한 절제가 존재한다 이

는 수단에 의해 보이는 기교면서 또한 재간으로 처리될 수 있는 예술적

기법의 한 면이다 선생님의 춤은 또한 느낌과 감정의 표현 방식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느낌에서는 가벼움과 무거움 재빠름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이매방 승무-필자 양종승 제공팔순 기념공연-필자 양종승 제공

과 더딤 흐늘거림과 꼿꼿함 섬세함과 우람함 정교함과 장중함 등의

변화무쌍한 표현력을 가진다 감정에서는 슬픔과 기쁨 가냘픔과 뭉뚝

함 애석함과 환희 괴로움과 기쁨 고요함과 시끄러움 등이 묘사되는

데 이는 삶의 고뇌와 애환은 물론이고 희망과 행복을 감싸고 있음을 말

한다 이러한 춤에 있어서의 느낌과 감정은 비정비팔 비디딤 까치걸

음 잉애걸이 좌우걸이 완자걸이 안가랑 등의 발디딤새와 양우선

평체 사체 등의 손놀림새 그리고 연풍대 지숫기 다루치기 대소삼 등

의 몸굴림새 속에서 표현력을 한층 고조시킨다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

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

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

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길이

길이 민족 춤 기틀로 명명되어 질 것이다 천기를 타고난 춤꾼 신들

린 듯한 춤으로 관객을 홀렸던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이제 천상

무대로 가시어 휘날릴 것이다 선생님 기어이 춤과 함께 홀연히 떠

나셨으니 부디 부디 영면하옵소서

추모식 전경

26 27

전경욱 (고려대학교 교수)

동아시아의 가면극1 중국 귀주성 위녕현의 〈춰타이지(撮泰吉)〉 가면극

풍농과 악귀 쫓기를 위해 기원하는 제의의 일부

2 한국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서낭신인 각시가

무동을 탄 모습

3 일본의 미야자키현(宮崎県) 시이바손(椎葉村)의

〈다케노에다오가구라(嶽之枝尾神楽)〉

4 《봉사도》제7폭 모화관에서 행해진 중국사신

영접행사의 연희장면 산대(왼쪽) 앞에서 연행된

줄타기 물구나무서기 접시 돌리기 가면극 등의

전문적 연희

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에서는 가면극 분야에 대해 보

유자와 단체를 모두 지정하고 있으니 일본보다 지원이 좋은 편이다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을 민간문학 민간음악 민간무용 전통희극

곡예 잡기와 경기 민간미술 전통수공기예 전통의약 민속으로 분류

하여 지정하고 있다 중국 가면극인 나희는 전통희극 분야에 해당한다

한국에는 현재 국가 지정의 중요무형문화재 가면극 13종목 각 시도의

무형문화재 가면극 2종목(진주오광대와 퇴계원산대놀이)이 있다 중국

은 그동안 전통희극 분야에 430개 종목을 지정했는데 여기에 나희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노(能)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중요무형

민속문화재의 민속예능 분야에 35개의 가구라(神樂)를 지정했다 이 가

구라들은 대부분 민간의 가면극이다

Ⅱ 동아시아 가면극의 역사와 계통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면극은 매우 유사한 발전 과

정을 보인다 동아시아에는 (1)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과 (2)전

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이 있었다 (1)은 각 지역의 향촌제사

활동(鄕村祭祀活動)에서 연행되던 것으로서 각각 자생적 향토적 성격

을 띠고 있다 그러나 (2)는 산악(散樂) 또는 백희(百戱)라고 불리던 동아

시아 공동의 연희들이 발전하여 성립된 것으로서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함께 각국의 독자성을 띠고 있다

1 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하회별신굿탈놀이나 강릉관노가면

극처럼 향촌제사활동인 마을굿에서 유래하여 발전해 온 가면극들로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전승해 왔다 이 가면극들은 다른 지방의 가면극과

는 아주 다른 독자적 내용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가면극들이 마을굿에

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도판 1)

중국의 나희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지만 후대에는

그것이 민간에 전파되어 각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도 전승되고 있다 그

리고 중국 한족을 비롯하여 소수민족들에는 여러 향촌제사활동에서 유

래하여 그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가면극들도 있다(도판 2)

한편 일본의 고유 신앙을 섬기는 신사(神社)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연예술

인 가구라(神樂) 중에는 자생적인 민속가면극의 예를 보여 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국의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방마다 차이가 크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도판 3)

2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생겨난 가면

극이다 본산대놀이는 삼국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산악middot

백희 그리고 상고시대의 제천의식 등에서 연행되던 전문적 연희자들의

연희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해 형성된

것이다 산악middot백희를 놀았던 사람들은 그 연희 내용으로 볼 때 삼국시

대부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연희자였으며 이들의 후예가 통일신라시

대에 최치원의 시 lt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gt에 묘사된 다섯 가지 연

희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계승된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연행

된 가무백희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나례에서 연행된 산

대희 등을 놀았다 그리고 중국 사신 영접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

희를 펼치던 반인들이 18세기 전반기에 산악middot백희 계통의 연희와 기존

의 가면희들을 재창조해서 본산대놀이를 성립시켰다 이 가면극은 애오

개(아현) 사직골 구파발 녹번 등에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봉사도(奉使圖)》(1725년) 제7폭은 서울의 모화관 마당

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행사의 연희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접시 돌리

기 땅재주 줄타기 탈춤을 묘사하고 있다 마당의 오른쪽에는 산거(山

車)middot산붕(山棚)middot윤거(輪車)middot예산대(曳山臺)middot예산붕(曳山棚) 등으로 불

렀던 소규모의 산대가 보인다 바로 이런 산대 앞에서 공연하던 연희들

을 lsquo산대희rsquo라고 불렀다 특히 세 명의 땅재주꾼 양 옆에서 각각 두 명씩

모두 네 사람이 초록색과 남색의 가면을 쓰고 탈춤을 추고 있다 이는 서

울에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가면극이 있었고 그 가면극을 애오

개산대놀이 등 산대놀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전해준다(도판 4)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경기도의 송파산대놀이middot양주별산대놀이 황해

31 2

Ⅰ 동아시아 가면극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우리는 가면극을 탈춤 탈놀이 가면희 등으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가

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儺戱)라고 부

르는데 이는 중국 가면극들이 대부분 나례에서 연행되던 연희인 나희

로부터 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무형문화유

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middot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부터 한국은 1964년부터 중국은 2006년부터

무형문화재를 국가 차원에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

의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용어로 lsquo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rsquo이라

는 말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의 기예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lsquo보유자rsquo로 인정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lsquo전승인(傳承人)rsquo 일본에서는

lsquo보지자(保持者)rsquo라고 부른다

중국은 이제 막 무형문화재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작했지만 각 지역에

서 자기들의 무형문화재를 국가 지정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으로 등재하기 위

한 열기는 매우 뜨겁다 그리고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과 관련된 행사나 학술

대회도 자주 개최하고 있다 필자는 매년 중국의 가면극학회인 중국나

희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는데 가면극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들에서

는 이 학회를 유치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현지 답사를 통해 자기 지

역의 가면극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국가 지정의 무형문화재를 (1)중요무형문화재(연극 음

악 공예기술 등)와 (2)중요무형민속문화재(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

행사 등에 관한 풍속관습 민속예능)로 구분하여 지원한다 그래서 연극

분야 중 노(能) 가부키(歌舞伎) 등은 (1)에 해당하고 각 지방의 가구라

(神樂)는 (2)의 민속예능에 해당한다 (1)은 전문적인 연희자들이 전승하

는 종목으로서 그 기middot예능을 보유한 사람과 단체를 모두 지정한다 그

러나 (2)는 단체만 지정하고 보유자는 지정하지 않는다 이를 한국에 적

용하면 판소리는 (1)중요무형문화재(음악)에 가면극은 (2)중요무형민

속문화재(민속예능)에 해당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한국의 가면극들

은 대부분 각 지방에서 세시풍속의 하나로서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

日韓 中

4

28 29무형문화재 삼국지ㆍ예능

도의 봉산탈춤middot강령탈춤middot은율탈춤 경남의 수영야류middot동래야류middot통

영오광대middot고성오광대middot가산오광대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

본산대놀이는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했지만 여기에서 전파된 별산대

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 등은 농민 하급관속 무부(巫夫) 등 각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중국 가면의 역사에서 가면의

효시는 나례에 등장하던 방상시(方相氏) 가면이다 이 나례에서 연행되던

각종 연희와 가면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면극이 생겨났기 때문에 가면

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다른 계통의 가면은 육조(六朝)시대 이후 산악middot

백희에 사용되던 것으로 이는 서역악무(西域樂舞)의 영향을 받은 외래

기원의 가면이다 현재도 중국에는 귀주성의 나당희처럼 무당집단이 전

승하고 있는 나희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들은 전문적 연희자인 셈

이다(도판 5)

일본의 가면극은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서 육성된 가면극과

서민층에 의해 육성된 가면극이 있다 전자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예술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데 기가쿠(伎樂)middot

부가쿠(舞樂)middot교도(行道)middot노(能)middot교겐(狂言)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

데 노와 교겐은 특히 산악middot백희와 밀접한 관련 아래 성립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문화인 산악middot백희가 일본에 유입

된 이후 변화middot발전하여 후대에 일본의 대표적 전통연극인 노가쿠(能

樂)middot노쿄겐(能狂言)middot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middot가부키(歌舞伎) 등 전통연

극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산악middot백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 연희를 발전시켜 lsquo나희

(儺戱)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켰고 일본에서는 사루가쿠(猿樂) 즉 산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lsquo노(能)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킨 것처럼 한국에서도

중국 사신 영접 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반인(泮人)들이

lsquo본산대놀이rsquo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Ⅲ 동아시아 가면극의 연희 내용

한국의 가면극은 벽사적 의식무과장 파계승과장 양반과장 영감할미

과장 등 서로 다른 내용의 과장들로 짜여진 소위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

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면극을 탈춤이라고 부를 정도로 춤이 많

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춤사위가 매우 뛰어나다(도판

6) 일본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가구라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짜인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나희와 일본

의 노는 대부분 하나의 가면극이 하나의 서사적 내용으로 짜여 있다

이러한 서사성의 나희와 노도 또한 서로 차이점을 갖고 있는데 노는 lsquo현

재노(現在能)rsquo와 lsquo몽환노(夢幻能)rsquo가 있어 특징적이고 나희는 주로 노래와

대사에 의해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lsquo현재노rsquo는 현재형으로 사건이 전개

되는 노를 말한다 lsquo몽환노rsquo는 나그네(조연자인 와키가 분장)의 꿈 속에

망령이나 화신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몽환노에

서는 시간이 자유롭게 정지하고 역행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도 자유롭게

등장할 수가 있다 주연자는 고전 속의 미녀이거나 역사상 인물일 수도

있고 지옥의 원령이거나 신(神) 불(佛) 귀(鬼) 초목(草木)의 정령이기

도 하다

중국 나희에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 황제 왕 일반인물

등 배역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연희 내용도 의식적인 춤을 제외

하면 대부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를 연극화

하여 공연한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 가면극에서

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이 거의 없고 황제나 왕 같은 존재

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반 인물 위주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연희 내용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주로 현

실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한편 한middot중middot일의 가면 또한 각국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middot중middot일 가

면의 형태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 윗부분에 있다 한국 가면은 얼굴

의 이마 부분까지만 표현하고 있다 일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경우에

도 간단한 선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

을 안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낸다 모자를 쓰는 배역은 별도의 모자를 착

용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의 귀면(鬼面)인 팔먹중가면을 보면 오로

지 안면의 표정에 의해 무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 노나 가

구라의 가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가면은 대부분 머리 부분과

얼굴 부분을 모두 이용해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한다 가면 자체에

머리 부분의 모자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도판 7)

그리고 한middot중middot일의 음악적 선율과 장단이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음악에 맞춰 연기하고 춤을 추는 연희자들의 동작과 춤사위는 각국

가면극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

5 중국 귀주성 덕강현의 무당들이 공연하는 가면극인 〈나당희(儺堂戱)〉

6 춤사위가 매우 뛰어난 〈봉산탈춤〉의 팔먹중춤

7 중국 안휘성 지주의 나희 〈유문룡〉 가면 자체에 모자를 장식

7 5

6

30 31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충남middot서울시 문화재위원)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도판4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양푸시(楊福喜) 201598 필자 촬영

도판5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권영학 보유자 2015821 필자 촬영

도판6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故 김박영 보유자 서헌강 촬영

도판1 활 쏘며 수렵하는 장면 고구려 무용총

도판2 중국 고대 활과 화살 및 활쏘기 장면 전국시대 초(楚) 동호(銅壺)

도판3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일본

Ⅰ 한민족과 활

한국인에게 활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민족과 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중국인이 우리 민족을 부르

는 명칭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이다 lsquo이(夷)rsquo라는 글자는 큰 대(大)자

와 활 궁(弓)자가 결합되어 있다 동이라는 글자를 곧이곧대로 풀어보면

lsquo중국의 동쪽에서 살며 큰[大] 활[弓]을 잘 만들고 쏘는 민족rsquo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 미루어 이미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우

리 한민족이 그들 한족보다 활을 잘 다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반인뿐 아니라 왕도 활을 잘 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적 인물로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lsquo활 잘 쏘는 이rsquo의 대명사로 기

록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쏘았으며

사도세자의 아들로 유명한 정조 또한 활을 잘 쏜 국왕으로 기억된다

조선에서 활쏘기를 잘했던 이유는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심신을 단련

하는 육례(禮 樂 射 脚 書 數) 중 하나로 활쏘기가 장려된 데에도 원

인이 있다 조선에서는 국가 의례로 활쏘기 행사를 거행하였다 왕과

신하가 활 쏘는 대사례(大射禮)는 1477년(성종 8) 1534년(중종 29) 및

1743년(영조 19) 1764년(영조 45)에 군신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였다 한편 지방의 양반 사족들은 향약과 비슷한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양국의 활은

기본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청나라 시대의 그림을 보면 조선 말기 19세기에 활

을 쏘는 그림과 비교가 된다 두 나라의 사수(射手)는 각각 청나라와 조

선의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른 편이다 더욱

이 양자가 활을 쏘는 모습은 공통되면서 부분적으로 다르다 그림 속 중

국의 활은 150cm 정도여서 1m 안팎의 한국 활보다 길이가 긴 점이 다르

다 막상 양자에서 동시에 화살을 쏘면 날아가는 비거리는 후자가 훨씬

긴데 이렇게 그림에서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몇 년 전

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lt최종 병기 활gt이다 시대 배경은 병자호란 당

시 청나라 무사와 조선의 사수가 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영화화한 것

이다 비록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다소 활의 효능이 과장되긴 했지만

두 나라 활의 특징과 조선 활의 장점을 극명하게 잘 그려내어 흥미롭게

본 기억이 새롭다

한편 양국과 비교되는 것이 일본의 활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활은 전

체 길이가 220cm가 넘는 세계 최대 길이의 활이다 16세기 조선의 『난

중잡록』에 의하면 일본의 화살은 lsquo장편전(長編箭)rsquo이라 하여 여러 나라의

화살과 비교해서 일본의 화살이 매우 크다는 기록으로 이미 조선에서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활을 사용하는 일

본에서는 활을 잡는 위치도 특이하다 일본의 활은 장대하기 때문에 위

쪽이 길고 아래는 짧아서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그림을 보면 매우 긴 활

의 아래쪽을 잡고 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활

은 ldquo화살은 길지만 먼 곳까지는 날지 않는다rdquo라고 13세기의 몽고인이

기록하고 있어 비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가마쿠

라 시대에 들어가면 그 중량이 더욱 늘어나 70g에 이르면 길고 무거운

화살을 폭이 긴 활로 쏘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Ⅲ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활과 화살은 조총이나 대포 등과 같은 화기(火器)를 발명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중요했다 이에 각국은 국력을 모아 활과 화살을

제작하였다

이미 고려 때에 중앙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에 각궁장(角弓匠) 전장(箭

匠) 전두장(箭頭匠) 등의 장인을 소속시켜 각궁을 만들었다 또 궁중의

궁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내궁방(內宮房)에도 각궁장(角弓匠)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군기감(軍器監)을 설치 운영하였고 장인들을 소속시켜 활

과 화살을 제작하게 하였다 이들 장인은 다른 기술을 가진 장인과 달리

궁인(弓人)이나 시인(矢人)으로 불렀다 궁인과 시인이라는 명칭은 『논

어』에서 나오며 그들 장인은 다른 물건이 아닌 무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우대하여 부른 것이다 이에 조선은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면

서 궁인 90명 시인 150명을 배정하였다 아울러 이들 장인들은 각 지

방마다 상당수를 배정하였고 이 또한 여타의 다른 장인들에 비하여 많

은 숫자에 해당되었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장색과 규모는 영조대 『속대전』이나 정조대

『대전통편』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국가적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각종 300여 도감마다 수많은 궁인이

나 시인을 징발하여 의례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할 궁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사적인 공방에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김준근의 lt기산풍속화gt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궁창을 앞에 두고

줄과 환으로 일정하게 다듬은 쇠뿔과 뽕나무 등을 옆에 두고 완성된

각궁에 시위를 걸어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있다

청나라 말에 전통 활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lt시궁정력(試弓定力)gt에

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입식 건물 안에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너댓 개

의 활을 만들어 올려놓고 다 만든 활을 과학적으로 무게를 재고 있다

향사례(鄉射禮)를 거행하여 사족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활을 좋아하고 잘 다룬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역

사 동안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다른 종목보다 유달리

활(양궁)을 잘 쏘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한민족의 피 속

에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유전인자 DNA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Ⅱ 유물 속 동아시아의 활

인류는 이른 시기부터 멀리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자 무기로 활과 화살을 개발하였다 이후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

에 따라 궁시를 제작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

하였다 하지만 궁시는 대개 나무나 대나무와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

져 썩어 오래전의 유물을 확인하기 어렵고 단지 흑요석(黑曜石)처럼 단

단한 석제로 만든 화살촉에 의해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정복 전쟁이 빈번해지던 고대부터 무기가 발달하였다 당시에

사용된 활과 화살의 형태는 유물 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전국시대(BC 475~221) 동호(銅壺) 유물

을 보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한편

5세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lt수렵도gt에서 말 위에서 짐승들을

1

32

4

6

5

32 33무형문화재 삼국지ㆍ기능

양국의 활 제작방식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청나라 활 제작 장인 집단

은 북경 동사대가에 있는 궁전대원리(弓箭大院里)에 17가호의 궁전 점포

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squo취원호(聚元號)rsquo이다 이곳에서 중국 전통 활

을 제작했던 장인이 양뤼린(楊瑞林)이며 아들인 양원통(楊文通) 손자인

양푸시(楊福喜)까지 3대가 잇고 있다 양푸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활을 제작하여 2006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

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장인으로 보호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45년 앞선 1971년 9월 13일 전통 활 제작 장인

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으로 지정하였다 서울 황학

정의 장진섭(張鎭燮 1916~1996)은 조부(장문환)와 부친(장기홍)에 이

어 3대째 활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예천의 권영

록(權寧錄 1916~1986)은 부친(권태전 權泰全)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

었다 부천의 김장환(金章換 1909~1984)는 조부(김원재)와 부친(김

동천)의 대를 잇고 한국 제일가는 명사수로서 활동하고 부천 성무정의

초대 사두(1967~1982)가 되었다 그의 기술은 제자인 김박영(金博榮

1929~2011)이 전승하였다 그의 사후 2015년 권영학(1943년생)보유

자가 새로 인정되어 조부(권선복)와 부친(권우갑)의 가업을 이어 그 또

한 3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화살을 만드는 시장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시장)

으로 지정하였다 화살로 유명한 장단에서 나고 자란 유영기(1936년 그런데 세계적으로 강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활은 여기에 화피를 더

하여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물소 뿔(牛角) 쇠심줄(牛芯)

민어 부레풀(魚膠) 대나무 뽕나무(弓幹桑) 참나무 화피(樺皮)가 그것

이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는 각궁은 살

아있는 활이면서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쇠뿔은 통뼈이며 대나

무와 뽕나무 및 참나무가 세부 뼈대이고 그 위에 바르는 쇠심줄은 근

육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부레풀은 연골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다듬는

화피는 피부에 해당된다 이중 물소 뿔과 대나무 및 쇠심줄이 활의 강

도와 탄성을 이루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민

어 부레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은 1년 중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제작하여 계절을 타는 공예품인데 그 이유는 동식물성 재료

들이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아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심이 건

조가 안되고 풀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여름에는 재료를 장만하고 찬바람이 나면 풀을 대와 뼈와 나무를 서로

붙여 정월 경에 건조시키고 3월부터 한 달 이상 해궁 작업을 한다 각

궁은 제작이 까다롭고 단계마다 원칙을 지키고 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

해서 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궁의 핵심 원료인 물소는 주로 아열대 지방인 중국 남부나 인도 및 인

도차이나 등지에 서식하므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여서 중국은 물소 뿔의 수출을 엄격

하게 통제하였고 조선 정부는 그것을 몰래 수입하려고 애썼다 현재

도 각궁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의 수급은 어려움이 많다 물소는 세계적

인 보호동물이어서 물소 뿔을 수입할 때 세관의 통과가 어렵고 쇠심줄

은 근래 많은 소들이 일하면서 근육을 키우지 않고 육우용으로만 키워

져 탄성이 없어 활의 탄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접착제인 민어부

레의 경우 예전에는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근래에는 민어부레가 정

력에 좋다고 그것마저 식용으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한 활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488년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同越)은 ldquo조선에서 사용하는 화피궁은 중

국의 제도에 비하여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rdquo라

고 평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활은 중국 것보다 작으나 탄

성이 크고 강하다 우리의 시장들은 대나무로 화살대[矢幹]를 만들고

쇠로 활촉(雛)을 끼우며 수리깃으로 화살깃(矢羽)을 만든다 반면 중국

의 장인은 죽시와 함께 유목(楡木)으로 목시(木矢)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활은 대나무와 나무를 한데 결합한 복합궁이다 일본의 활

은 2m 이상으로 길고 무거워 탄성이 적어 근거리에는 위력이 높은 대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이면서 한middot중middot일

삼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각궁은 한국 장인들의 솜씨가

표출된 우수한 전통 공예기술로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생)는 조부(유창원)와 부친(유복삼)에 이어 3대를 잇고 그 아들 유세

현과 유승현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단 근처 원당에서 나고 자

란 박호준(1944년생)은 조부(박희원)와 부친(박상준)에 이어 3대째 가

업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김종국(1940년생)은 스승인 조명제(趙命濟

1915~1980)가 조부(조성관)와 부친(조면보)의 대를 이었던 것을 본받

아 예천에서 화살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12월 14일 부천활박물관을 세웠고 파주에는 유영기

보유자가 만든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반면 중국에는 2012년 신강의

이리에 성급(省級) 비물질문화재로 등록된 이청강(李靑岡)이 중화활문화

박물관(中華弓文化博物館)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로 활을 지

정하지 않아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이 전통적(傳統的) 공예품

(工藝品)으로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을 지정하였다 미야기현(宮崎県)에 위치

한 미야코노조(都城市)에 7대째 120년 전통의 활을 제작하는 활제작소

[楠見藏吉 弓製作所]가 위치하고 있다

Ⅳ 활과 화살의 재료

활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의 『고공기』에 의하면 나무[干 柘 橘 桑 木

瓜 竹 荊 등] 심줄[筋] 풀[膠 말 소 사슴 물소] 뿔[쇠뿔] 옻[漆]

명주실[絲]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은 뿔을 주재료로

삼은 각궁(角弓)인 것을 알 수 있다

도판10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故

김박영 보유자 제작 각궁(角弓)

도판11 중국 양푸시(楊福喜)가 제작한 활

1m 60cm

도판12 중국 양푸시(楊福喜) 화살[箭]

위 2개 느릅나무[楡木] 3번째

목전(木矢) 아래 2개 죽시(竹矢)

201598 필자 촬영

도판13 일본 미야기현(宮崎県)

미야코노조(都城市) 120년 전통

楠見藏吉 弓製作所

httpjotaro-gocomcollect2980

도판14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

지정(指定) 전통적(傳統的)

공예품(工藝品)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

httpjotaro-gocomcollect2980 참고

도판7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종국(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9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박호준(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7 8 9

11 10

12

13 14

34 35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ime a

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fter Tim

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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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12: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용연구소를 개설하여 2 3년간 활동을 하였다

그 후 1953년 부산으로 내려가 장홍심이 운영하는 영도에서 함께 연구소를

했으며 부산 제자로는 김진홍 성승민 이도근 등이 있었다 1954년 광주

로 옮겨 국악원을 개설하여 한순서를 조교로 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무용

발표회(1955년 광주극장)를 가졌다 한편 서울에서는 여성창극단 삼성여

성국악단(박옥진 박보아 조양금 3인) 등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다시 1955

년 부산으로 내려가 초량동에 자리 잡고 첫 발표회를 대영극장(1957년)에서

하였다 그리고 서울에서도 1959년 원각사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당시의 이매방의 춤 활동은 전국적으로 목포 대구 부산 광주 서울이

었지만 주 근거지는 사실상 부산무용가협회 정회원이었으며 1957년과

1958년에 부산공연을 올리며 1960년대 말까지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

1960년대는 많은 무대를 누비면서 점차 춤 레퍼토리를 확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이매방은 삼고무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창작하였으

며 그 후 5고무 7고무 그리고 9고무와 11고무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lt초립동gt lt화랑무gt lt검무gt lt장검무gt lt박쥐춤gt lt흥춤gt lt무당춤gt lt장고

춤gt lt학춤gt 등을 정립하였고 늘 추어온 lt승무gt lt입춤gt lt검무gt 등과 함

께 추었다 이매방 승무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연구소를 서울로 옮겨

오늘날까지 서울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매방은 lt보렴승무

gt lt삼현승무gt lt살풀이춤gt lt검무gt lt입춤gt lt한량무gt lt태평무gt lt흥

춤gt lt장검무gt 그리고 lt장고춤gt 등도 lt승무gt와 함께 끊임없이 연마하여 왔

다 그러한 이매방의 춤예술 정립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예능적 기술이 뛰

어났기 때문이었다

승무 살풀이춤 인간문화재와 국무(國舞)로 추앙

이매방이 서울무용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중앙대 교수이

며 문화재 위원이었던 정병호에 의해 1977년 7월 30일 서울 YMCA에

서 열린 한국전통무용발표회에서 승무를 발표하면서였다 아울러 그때

까지 한성준류의 한영숙 승무에 매료되었던 이들에게 새로운 유파의 승

무가 있음을 신문지상을 통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무대에서의 성공

은 이듬해 1978년 3월 세계민속예술제 한국대표로 프랑스 렌느시에 참

가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이매방 춤판의 최고 결정판은 lt북소리gt 시리즈였다 1984년 6월 이매

방 무용인생 50주년 기념공연 lt북소리gt(문예회관 대극장) 1985년 6월

이매방 전통무용 lt북소리 Ⅱgt 1990년 rsquo90 북경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

전 참가와 lt북소리Ⅲgt(호암아트홀) 그리고 1994년에 춤인생 60년을 정

리하는 lt북소리 Ⅳgt였다 또한 전통예술의 보급과 선양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결과로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1984)과 성옥문화상 문예부문 대상

(1995)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병호 문화재위원의 끈질긴 노력으로 1987년 7월 1일 이매방은 중요무

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명실상부한 명무의 대열

에 서게 되었다

이어 1990년 10월 10일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도 인정받아 전

통춤의 최고 명인으로 추앙받게 되었으며 수많은 한국무용가들이 이매

방류 춤을 전수받기 위해 구름같이 모이게 되었다 그 후 1996년 인생70

고희기념공연 1997년과 98년 일본공연과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2007년 lsquo우봉이매방팔순기념공연rsquo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으며

매년 제자들과 함께 정기공연을 하였다 전통춤경연대회 및 300여 명에

이르는 승무와 살풀이춤 이수자들과 제자들의 공연에도 찬조출연과 반주

를 직접 해주는 열정을 최근까지 지속하였다

이매방 춤의 무용예술적 가치

이매방의 춤에서는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호남제 시나위 춤사위로 짜여져 있

다 춤기법의 중심은 대삼소삼(大杉小杉) 비정비팔(比丁比八) 양우선(兩雨線)

비디듬 좌우걸이 완자걸이 잉어걸이 지숫기 등으로 곱고 아름다운 사위와

자태를 자아내고 한을 신명으로 풀어내는 정중동의 몸놀림이 배어 나온다

결국 이매방 춤은 호남 지방의 권번에서 추어왔던 춤사위 기법이지만 많

은 세월이 지나면서 스승들의 춤을 뛰어넘어 아무도 넘겨볼 수 없는 국무

(國舞)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이매방의 일생을 통해 그가 가진 춤의 예

술적 가치를 요약하면

첫째는 남자이면서도 여성보다도 더 곱고 섬세한 기방계통의 lsquo춤바디rsquo와

여성적 lsquo춤속rsquo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호남지역의 명무들로부터 뼈대 있는 전통춤을 다양하게 전수받아

호남춤의 정통성을 확립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과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춤의 천재이기 때문이다

넷째 현대교육개념으로 볼 때 어린 나이부터 춤의 조기영재교육을 받았

기 때문이다

다섯째 세계적인 경극과 춤의 명인 매란방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예술혼

을 불태우고 인생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80평생 춤추는 것 외에는 남자로서 어떤 직함도 직책도 직업도

가진 바 없이 오로지 춤만 추어온 외길 인생이기 때문이다 춤이 곧 이매

방의 삶이며 생명이며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일곱째 호남지역춤과 기방계통춤이라는 lsquo국지성rsquo에서 출발하였지만 경향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범한국적 전통춤의 lsquo국가성rsquo으로 거듭났으며 국제무

대에도 우리 전통춤의 lsquo세계성rsquo을 알리고 확인하는 독창성과 보편성을 지니

고 있었다는 점 등이 이매방 춤이 가지는 예술적 의의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매방은 1927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민족 수난 속에서도 춤을 배

웠고 해방과 6middot25전쟁 통에서도 오로지 춤만을 추었고 외래문명의 홍

수와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꿋꿋이 춤만 추어 한국 전통춤의 위상을 높였

고 세계 속에 한국춤의 지평을 열어 대한민국 시대의 전통춤 패러다임을

구축하였기에 국무적 존재로 인정받아 온 것이다

1970 2004 2008 2012

22 23

양종승 (우봉이매방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middot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하늘이 내린 춤꾼 宇峰 이매방 선생님을 追惜하며

춤을 위해 태어나 평생 동안 춤만을 사유하였던 우봉(宇峰) 이매방(李梅

芳) 선생님께서 2015년 8월 7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승천하셨다 선생

님은 1927년 5월 5일(음력 3월 7일) 새벽 동이 틀 무렵 목포에서 이경

율과 조병림 사이의 10형제 중 막내둥이로 태어났다 5남매는 일찍이

죽고 남은 3남 2녀 중 막내로 성장하였다 선생님 아명은 집안 돌림자에

따라 영길(永吉)이었지만 스님께서 귀한 아들이라고 하여 귀태(貴泰)로

개명해 주었다 오기된 호적에는 규태(圭泰)로 되어 있다 매방(梅芳)이

라는 이름은 중국 경극의 명인 매란방(梅蘭芳)의 첫 자와 끝자리를 따 예

명으로 불리었는데 1986년 호적을 개명하여 본명이 되었다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춤에 소질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서 성장하였다 결국 옆집 살던 권번장 함국향 권유로 목포 권번에 들어가

당대 소리 북 춤 등에 대가들이었던 이대조 이창조 박영구 진석산 등

에게 승무 검무 살풀이춤 등 전통춤을 학습하였다 선생님의 무용활동

은 목포 공립 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 승무로 출연

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이후 1953년 광주에서 첫 개인발표회를 시

작으로 무용인생 50주년 65주년 70주년을 비롯한 수많은 국내외 공연

을 펼쳤다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1990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가 되었다 그리

고 2014년 승무 및 살풀이춤 명예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한국무용협회 고

문 한국국악협회 고문 한국전통춤협회 고문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

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국무 우봉이매방 화보집』을 발간하였다

이매방 선생님 장례식은 2015년 8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서울삼

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문화예술인 葬]으로 치러졌다 목포문화예술회

관 내에 있는 이매방춤전수관에도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우봉이매방장

례위원회가 구성되어 공동장례위원장을 김종규 한국문화유산신탁 이사

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이경동 한국문화원연합회 회장 김복

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하철경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 김

덕수 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이사장 김진홍 부산시 무형문화재 동

래한량무 보유자 김정녀 중요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전수조교 채상묵

한국전통춤협회 이사장 국수호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등 10명이 맡

았다 장례집행위원장을 양종승 우봉이매방춤보존회 수석부회장 장

례집행부위원장에 김덕숙 김효분 박종필 오은명 최창덕 황순임

등 우봉이매방춤보존회 부회장 6명이 맡았다 장례위원은 김묘선 오

미자 박소림 이길주 송재섭 정영례 최희진 한혜경 김리혜 김은

희 한명옥 진유림 채향순 강성민 백경우 김정기 등 제자 215명이

맡았으며 목포분향소 공동장례위원장은 임점호 목포신안예총회장과 박

수경 목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맡았다 장례의전은 국가공인장례지

도사 유재철 황근식이 진행하였다 유족으로 미망인 김명자(전통무용

가 승무 및 살풀이춤 전수조교) 딸 이현주(전통무용가 승무 및 살풀

이춤 이수자) 사위 이혁열(연극인) 등이 있다

추모식 전경선생님 영전에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을 추서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

부 장관은 일평생 우리 춤 전승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며 문화

융성과 전통예술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공적을 기렸다 또한 이매방 선

생님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깊은 애

도와 함께 목포가 낳은 문화예술계의 큰 별이셨던 선생님은 우리나라 전

통예술의 표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외에 박민권 문화체육관광부 제1

차관 나선화 문화재청장 김해숙 국립국악원장 서도식 한국문화재재

단 이사장 이문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 등 정치계 문화예술

계 등 각계 인사들과 수많은 무용 가족들이 조문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추모식은 2015년 8월 9일 일요일 오후 7시부터 9

시까지 2시간 동안 삼성서울병원 영결식장에서 유가족 지인 각계인

사 제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덕택 운현궁 예술감독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민의례 고인에 대한 묵념 양종승 장례집행위원장의 고

인 약력보고 공동장례위원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공동

장례위원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이사장 공동장례위원장 김복희 한국

무용협회 이사장 등의 조사 제자를 대표한 채상묵 공동장례위원장의

추도사가 있었다 동영상으로 고인의 생전 활동과 육성을 보고 들은 후

유가족을 비롯한 지인 문화예술계의 인사 제자 등의 헌화 및 분향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안숙선 명창의 이별가와 김영임 명창의 회심곡 중

저승 가는 길이 헌가로 받쳐졌다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 보

유자 박병원 전수조교 송순단과 박미옥 등이 주관하는 추모굿과 이광

수 명인의 헌가가 올려졌다 다음날 오전 7시 30분에 발인식이 행해졌

고 오전 9시에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이 이루어졌다 유해는 경기도 광

주시 오포읍 시안가족추모공원에 봉안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에서 초제를 시작으로 49재가 진행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금세기 하늘이 내린 명무였다 그리고 근현대 문

화적 격동기 속에서 우리 춤을 꿋꿋이 지킨 민족춤 계승자로서 주어진

소임을 완수하였다 그래서 선생님의 예술 생애와 그가 전승해 온 민족

춤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큰 가치를 지닌다

주지하다시피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한국 전통무용 진가를 표방

하는 고단위적 한민족 춤 유산으로써 조선 중엽 이후 불교의식 민속놀

이 유랑예인연희 무속신앙 등과 어우러져 계승 발전되어 왔다 그와

더불어 민중의식을 담아 애환과 기쁨을 표상하는 춤으로써 위엄 있고 격

조 있는 춤으로 승화되었다 그래서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무용 예술적

가치와 업적은 위대하고 광활하다 무용평론가 강이문과 무용학자 이병

옥 교수는 이매방 선생님을 國舞라 칭했으며 문화계 많은 인사들은 신이

내린 춤꾼이라 호평하였다 이러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우봉 이

매방 선생님 금자탑에서 빛나는 것은 다름 아닌 기왕 흩어져 내동댕이쳤

던 민족 춤의 뿌리를 살려내어 우리 시대 진정한 무용예술로 승화시키고

국가의 민족유산으로 갈고 다듬은 것이었다 이는 탈 식민지적 화두가 -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다큐멘터리 중 이매방 인터뷰 -

살풀이춤은

즉흥무이다 승무

검무 법무를 다

배우면 자기 멋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수판을 잘라야 한다

가락도 춤 승무 가락

검무 가락 이런 거

섞어서 장단 맞춰서

자신의 감정 음악

듣고 음악이 슬프면

슬픈 표정으로

즉흥적으로 추는 춤이

즉흥무야

24 25기획특집 3

본격화되던 20세기 초중반 우리 것에 덧씌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구

를 벗겨내려는 문화 민족주의적 활동의 한 면이었다 서구 중축의 지배

담론을 탈피하면서 그동안 왜곡되고 전도된 관점에서 벗어남으로써 민

족춤에 비문명적이라는 멍에를 씌었던 편협한 지식층의 문화보기 탈각

운동의 한 면이었던 것이다 시기는 일본제국주의의 한국민족문화 말살

정책 해방 후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교육정책의 서구 지향적 패러다임

등장 도시화middot산업화middot현대화에 따른 전통문화 멸시 및 천시 등으로 인

해 민족예술이 단절 위기에 처했었던 그때였다 또한 현대 산업화에 따

른 근대화론 지향의 국책 하에서 민족예술을 진부하거나 불필요한 것으

로 치부하는 풍조였던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우리의 것은 외래의 것에 밀리거나 일방적으로 시비 당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빼앗기는 패배의 싸움판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던 그 상황 속에

서 선생님은 묵묵히 그리고 꿋꿋하게 우리 춤을 지켜 내셨다 우리네 전

통춤은 비합리적이고 가치가 없으며 저급하고 미천한 것으로 저평가되

돼 전승의 단절까지 치닫게 된 상황 속에서도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우

리 춤 계승하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의 춤을

옥석으로 다듬어 세상에 펼쳐 보임으로써 민족 무용예술의 가치를 되살

리는데 평생 힘써 왔었다 결국 어려운 역경과 피나는 고난을 헤치고 일

어난 선생님의 예술세계는 살아 숨 쉬는 민족 춤으로 꽃 피어졌다 향토

춤 민족춤 전통춤 속에 내재된 민중들의 예술적 사상과 정신이 북돋아

나 전통문화복원 민족문화재건 향토문화복구 등과 함께 형성된 민족

문화바로세우기운동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춤은 밖에

서 유입된 외래의 것과는 달리 이 땅에 자생적으로 자라온 민족 춤 뿌리

로 각인되면서 한국무용예술사에 독창적 고귀성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

리고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와

1990년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국민의 춤꾼으로 안

착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 계보를 따지고 올라가면 신방초(申芳草 남)라

는 인물이 있다 전남 옥과 출신인 그는 1817년 무속집안에서 태어난

재인으로 어정판에서 바라지로 활동하였다 춤은 물론이고 육자배기

가곡 가사 장단에 능하여 호남 일대에서 대단히 명성이 높았다 그래

서 당시 호남의 유명 당골들은 그를 모셔가기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였

다고 한다 신방초는 자신의 춤을 같은 고향 출신 신영수(남)에게 전했

다 이후 고창 출신 안두온(남)에게로 이어졌고 다시 순창 출신 이정선

(남)에게 전수되었다 이정선은 춤뿐만 아니라 북놀이에도 뛰어난 재능

을 갖고 있었던 예인이었으며 판소리도 잘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상당

한 대접을 받았다 이정선의 춤은 목포 출신 김금옥(여)과 박귀주(여)에

게 이어졌다 그 후 이매방 선생님의 스승 박영구 이대조 이창조 진

석산 등에게 전수되었다 박영구(남)는 전남 화순 출신으로 승무와 북놀

이의 명무 명인이었으며 광주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대조(남)는 전

남 무안 출신으로 승무의 대가였고 목포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창

조(남)는 전남 능주 출신으로 검무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고 역시 광주 권

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그리고 진소홍(일명 진석산 여)은 전남 담양 출

신으로 서울 인사동에서 요릿집을 운영하면서 살풀이춤을 전승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춤에는 엄격한 억제와 철저한 절제가 존재한다 이

는 수단에 의해 보이는 기교면서 또한 재간으로 처리될 수 있는 예술적

기법의 한 면이다 선생님의 춤은 또한 느낌과 감정의 표현 방식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느낌에서는 가벼움과 무거움 재빠름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이매방 승무-필자 양종승 제공팔순 기념공연-필자 양종승 제공

과 더딤 흐늘거림과 꼿꼿함 섬세함과 우람함 정교함과 장중함 등의

변화무쌍한 표현력을 가진다 감정에서는 슬픔과 기쁨 가냘픔과 뭉뚝

함 애석함과 환희 괴로움과 기쁨 고요함과 시끄러움 등이 묘사되는

데 이는 삶의 고뇌와 애환은 물론이고 희망과 행복을 감싸고 있음을 말

한다 이러한 춤에 있어서의 느낌과 감정은 비정비팔 비디딤 까치걸

음 잉애걸이 좌우걸이 완자걸이 안가랑 등의 발디딤새와 양우선

평체 사체 등의 손놀림새 그리고 연풍대 지숫기 다루치기 대소삼 등

의 몸굴림새 속에서 표현력을 한층 고조시킨다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

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

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

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길이

길이 민족 춤 기틀로 명명되어 질 것이다 천기를 타고난 춤꾼 신들

린 듯한 춤으로 관객을 홀렸던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이제 천상

무대로 가시어 휘날릴 것이다 선생님 기어이 춤과 함께 홀연히 떠

나셨으니 부디 부디 영면하옵소서

추모식 전경

26 27

전경욱 (고려대학교 교수)

동아시아의 가면극1 중국 귀주성 위녕현의 〈춰타이지(撮泰吉)〉 가면극

풍농과 악귀 쫓기를 위해 기원하는 제의의 일부

2 한국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서낭신인 각시가

무동을 탄 모습

3 일본의 미야자키현(宮崎県) 시이바손(椎葉村)의

〈다케노에다오가구라(嶽之枝尾神楽)〉

4 《봉사도》제7폭 모화관에서 행해진 중국사신

영접행사의 연희장면 산대(왼쪽) 앞에서 연행된

줄타기 물구나무서기 접시 돌리기 가면극 등의

전문적 연희

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에서는 가면극 분야에 대해 보

유자와 단체를 모두 지정하고 있으니 일본보다 지원이 좋은 편이다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을 민간문학 민간음악 민간무용 전통희극

곡예 잡기와 경기 민간미술 전통수공기예 전통의약 민속으로 분류

하여 지정하고 있다 중국 가면극인 나희는 전통희극 분야에 해당한다

한국에는 현재 국가 지정의 중요무형문화재 가면극 13종목 각 시도의

무형문화재 가면극 2종목(진주오광대와 퇴계원산대놀이)이 있다 중국

은 그동안 전통희극 분야에 430개 종목을 지정했는데 여기에 나희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노(能)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중요무형

민속문화재의 민속예능 분야에 35개의 가구라(神樂)를 지정했다 이 가

구라들은 대부분 민간의 가면극이다

Ⅱ 동아시아 가면극의 역사와 계통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면극은 매우 유사한 발전 과

정을 보인다 동아시아에는 (1)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과 (2)전

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이 있었다 (1)은 각 지역의 향촌제사

활동(鄕村祭祀活動)에서 연행되던 것으로서 각각 자생적 향토적 성격

을 띠고 있다 그러나 (2)는 산악(散樂) 또는 백희(百戱)라고 불리던 동아

시아 공동의 연희들이 발전하여 성립된 것으로서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함께 각국의 독자성을 띠고 있다

1 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하회별신굿탈놀이나 강릉관노가면

극처럼 향촌제사활동인 마을굿에서 유래하여 발전해 온 가면극들로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전승해 왔다 이 가면극들은 다른 지방의 가면극과

는 아주 다른 독자적 내용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가면극들이 마을굿에

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도판 1)

중국의 나희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지만 후대에는

그것이 민간에 전파되어 각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도 전승되고 있다 그

리고 중국 한족을 비롯하여 소수민족들에는 여러 향촌제사활동에서 유

래하여 그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가면극들도 있다(도판 2)

한편 일본의 고유 신앙을 섬기는 신사(神社)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연예술

인 가구라(神樂) 중에는 자생적인 민속가면극의 예를 보여 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국의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방마다 차이가 크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도판 3)

2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생겨난 가면

극이다 본산대놀이는 삼국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산악middot

백희 그리고 상고시대의 제천의식 등에서 연행되던 전문적 연희자들의

연희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해 형성된

것이다 산악middot백희를 놀았던 사람들은 그 연희 내용으로 볼 때 삼국시

대부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연희자였으며 이들의 후예가 통일신라시

대에 최치원의 시 lt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gt에 묘사된 다섯 가지 연

희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계승된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연행

된 가무백희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나례에서 연행된 산

대희 등을 놀았다 그리고 중국 사신 영접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

희를 펼치던 반인들이 18세기 전반기에 산악middot백희 계통의 연희와 기존

의 가면희들을 재창조해서 본산대놀이를 성립시켰다 이 가면극은 애오

개(아현) 사직골 구파발 녹번 등에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봉사도(奉使圖)》(1725년) 제7폭은 서울의 모화관 마당

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행사의 연희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접시 돌리

기 땅재주 줄타기 탈춤을 묘사하고 있다 마당의 오른쪽에는 산거(山

車)middot산붕(山棚)middot윤거(輪車)middot예산대(曳山臺)middot예산붕(曳山棚) 등으로 불

렀던 소규모의 산대가 보인다 바로 이런 산대 앞에서 공연하던 연희들

을 lsquo산대희rsquo라고 불렀다 특히 세 명의 땅재주꾼 양 옆에서 각각 두 명씩

모두 네 사람이 초록색과 남색의 가면을 쓰고 탈춤을 추고 있다 이는 서

울에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가면극이 있었고 그 가면극을 애오

개산대놀이 등 산대놀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전해준다(도판 4)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경기도의 송파산대놀이middot양주별산대놀이 황해

31 2

Ⅰ 동아시아 가면극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우리는 가면극을 탈춤 탈놀이 가면희 등으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가

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儺戱)라고 부

르는데 이는 중국 가면극들이 대부분 나례에서 연행되던 연희인 나희

로부터 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무형문화유

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middot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부터 한국은 1964년부터 중국은 2006년부터

무형문화재를 국가 차원에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

의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용어로 lsquo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rsquo이라

는 말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의 기예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lsquo보유자rsquo로 인정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lsquo전승인(傳承人)rsquo 일본에서는

lsquo보지자(保持者)rsquo라고 부른다

중국은 이제 막 무형문화재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작했지만 각 지역에

서 자기들의 무형문화재를 국가 지정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으로 등재하기 위

한 열기는 매우 뜨겁다 그리고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과 관련된 행사나 학술

대회도 자주 개최하고 있다 필자는 매년 중국의 가면극학회인 중국나

희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는데 가면극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들에서

는 이 학회를 유치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현지 답사를 통해 자기 지

역의 가면극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국가 지정의 무형문화재를 (1)중요무형문화재(연극 음

악 공예기술 등)와 (2)중요무형민속문화재(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

행사 등에 관한 풍속관습 민속예능)로 구분하여 지원한다 그래서 연극

분야 중 노(能) 가부키(歌舞伎) 등은 (1)에 해당하고 각 지방의 가구라

(神樂)는 (2)의 민속예능에 해당한다 (1)은 전문적인 연희자들이 전승하

는 종목으로서 그 기middot예능을 보유한 사람과 단체를 모두 지정한다 그

러나 (2)는 단체만 지정하고 보유자는 지정하지 않는다 이를 한국에 적

용하면 판소리는 (1)중요무형문화재(음악)에 가면극은 (2)중요무형민

속문화재(민속예능)에 해당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한국의 가면극들

은 대부분 각 지방에서 세시풍속의 하나로서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

日韓 中

4

28 29무형문화재 삼국지ㆍ예능

도의 봉산탈춤middot강령탈춤middot은율탈춤 경남의 수영야류middot동래야류middot통

영오광대middot고성오광대middot가산오광대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

본산대놀이는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했지만 여기에서 전파된 별산대

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 등은 농민 하급관속 무부(巫夫) 등 각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중국 가면의 역사에서 가면의

효시는 나례에 등장하던 방상시(方相氏) 가면이다 이 나례에서 연행되던

각종 연희와 가면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면극이 생겨났기 때문에 가면

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다른 계통의 가면은 육조(六朝)시대 이후 산악middot

백희에 사용되던 것으로 이는 서역악무(西域樂舞)의 영향을 받은 외래

기원의 가면이다 현재도 중국에는 귀주성의 나당희처럼 무당집단이 전

승하고 있는 나희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들은 전문적 연희자인 셈

이다(도판 5)

일본의 가면극은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서 육성된 가면극과

서민층에 의해 육성된 가면극이 있다 전자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예술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데 기가쿠(伎樂)middot

부가쿠(舞樂)middot교도(行道)middot노(能)middot교겐(狂言)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

데 노와 교겐은 특히 산악middot백희와 밀접한 관련 아래 성립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문화인 산악middot백희가 일본에 유입

된 이후 변화middot발전하여 후대에 일본의 대표적 전통연극인 노가쿠(能

樂)middot노쿄겐(能狂言)middot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middot가부키(歌舞伎) 등 전통연

극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산악middot백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 연희를 발전시켜 lsquo나희

(儺戱)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켰고 일본에서는 사루가쿠(猿樂) 즉 산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lsquo노(能)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킨 것처럼 한국에서도

중국 사신 영접 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반인(泮人)들이

lsquo본산대놀이rsquo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Ⅲ 동아시아 가면극의 연희 내용

한국의 가면극은 벽사적 의식무과장 파계승과장 양반과장 영감할미

과장 등 서로 다른 내용의 과장들로 짜여진 소위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

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면극을 탈춤이라고 부를 정도로 춤이 많

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춤사위가 매우 뛰어나다(도판

6) 일본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가구라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짜인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나희와 일본

의 노는 대부분 하나의 가면극이 하나의 서사적 내용으로 짜여 있다

이러한 서사성의 나희와 노도 또한 서로 차이점을 갖고 있는데 노는 lsquo현

재노(現在能)rsquo와 lsquo몽환노(夢幻能)rsquo가 있어 특징적이고 나희는 주로 노래와

대사에 의해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lsquo현재노rsquo는 현재형으로 사건이 전개

되는 노를 말한다 lsquo몽환노rsquo는 나그네(조연자인 와키가 분장)의 꿈 속에

망령이나 화신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몽환노에

서는 시간이 자유롭게 정지하고 역행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도 자유롭게

등장할 수가 있다 주연자는 고전 속의 미녀이거나 역사상 인물일 수도

있고 지옥의 원령이거나 신(神) 불(佛) 귀(鬼) 초목(草木)의 정령이기

도 하다

중국 나희에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 황제 왕 일반인물

등 배역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연희 내용도 의식적인 춤을 제외

하면 대부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를 연극화

하여 공연한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 가면극에서

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이 거의 없고 황제나 왕 같은 존재

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반 인물 위주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연희 내용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주로 현

실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한편 한middot중middot일의 가면 또한 각국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middot중middot일 가

면의 형태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 윗부분에 있다 한국 가면은 얼굴

의 이마 부분까지만 표현하고 있다 일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경우에

도 간단한 선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

을 안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낸다 모자를 쓰는 배역은 별도의 모자를 착

용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의 귀면(鬼面)인 팔먹중가면을 보면 오로

지 안면의 표정에 의해 무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 노나 가

구라의 가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가면은 대부분 머리 부분과

얼굴 부분을 모두 이용해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한다 가면 자체에

머리 부분의 모자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도판 7)

그리고 한middot중middot일의 음악적 선율과 장단이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음악에 맞춰 연기하고 춤을 추는 연희자들의 동작과 춤사위는 각국

가면극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

5 중국 귀주성 덕강현의 무당들이 공연하는 가면극인 〈나당희(儺堂戱)〉

6 춤사위가 매우 뛰어난 〈봉산탈춤〉의 팔먹중춤

7 중국 안휘성 지주의 나희 〈유문룡〉 가면 자체에 모자를 장식

7 5

6

30 31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충남middot서울시 문화재위원)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도판4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양푸시(楊福喜) 201598 필자 촬영

도판5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권영학 보유자 2015821 필자 촬영

도판6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故 김박영 보유자 서헌강 촬영

도판1 활 쏘며 수렵하는 장면 고구려 무용총

도판2 중국 고대 활과 화살 및 활쏘기 장면 전국시대 초(楚) 동호(銅壺)

도판3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일본

Ⅰ 한민족과 활

한국인에게 활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민족과 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중국인이 우리 민족을 부르

는 명칭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이다 lsquo이(夷)rsquo라는 글자는 큰 대(大)자

와 활 궁(弓)자가 결합되어 있다 동이라는 글자를 곧이곧대로 풀어보면

lsquo중국의 동쪽에서 살며 큰[大] 활[弓]을 잘 만들고 쏘는 민족rsquo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 미루어 이미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우

리 한민족이 그들 한족보다 활을 잘 다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반인뿐 아니라 왕도 활을 잘 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적 인물로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lsquo활 잘 쏘는 이rsquo의 대명사로 기

록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쏘았으며

사도세자의 아들로 유명한 정조 또한 활을 잘 쏜 국왕으로 기억된다

조선에서 활쏘기를 잘했던 이유는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심신을 단련

하는 육례(禮 樂 射 脚 書 數) 중 하나로 활쏘기가 장려된 데에도 원

인이 있다 조선에서는 국가 의례로 활쏘기 행사를 거행하였다 왕과

신하가 활 쏘는 대사례(大射禮)는 1477년(성종 8) 1534년(중종 29) 및

1743년(영조 19) 1764년(영조 45)에 군신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였다 한편 지방의 양반 사족들은 향약과 비슷한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양국의 활은

기본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청나라 시대의 그림을 보면 조선 말기 19세기에 활

을 쏘는 그림과 비교가 된다 두 나라의 사수(射手)는 각각 청나라와 조

선의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른 편이다 더욱

이 양자가 활을 쏘는 모습은 공통되면서 부분적으로 다르다 그림 속 중

국의 활은 150cm 정도여서 1m 안팎의 한국 활보다 길이가 긴 점이 다르

다 막상 양자에서 동시에 화살을 쏘면 날아가는 비거리는 후자가 훨씬

긴데 이렇게 그림에서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몇 년 전

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lt최종 병기 활gt이다 시대 배경은 병자호란 당

시 청나라 무사와 조선의 사수가 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영화화한 것

이다 비록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다소 활의 효능이 과장되긴 했지만

두 나라 활의 특징과 조선 활의 장점을 극명하게 잘 그려내어 흥미롭게

본 기억이 새롭다

한편 양국과 비교되는 것이 일본의 활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활은 전

체 길이가 220cm가 넘는 세계 최대 길이의 활이다 16세기 조선의 『난

중잡록』에 의하면 일본의 화살은 lsquo장편전(長編箭)rsquo이라 하여 여러 나라의

화살과 비교해서 일본의 화살이 매우 크다는 기록으로 이미 조선에서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활을 사용하는 일

본에서는 활을 잡는 위치도 특이하다 일본의 활은 장대하기 때문에 위

쪽이 길고 아래는 짧아서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그림을 보면 매우 긴 활

의 아래쪽을 잡고 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활

은 ldquo화살은 길지만 먼 곳까지는 날지 않는다rdquo라고 13세기의 몽고인이

기록하고 있어 비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가마쿠

라 시대에 들어가면 그 중량이 더욱 늘어나 70g에 이르면 길고 무거운

화살을 폭이 긴 활로 쏘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Ⅲ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활과 화살은 조총이나 대포 등과 같은 화기(火器)를 발명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중요했다 이에 각국은 국력을 모아 활과 화살을

제작하였다

이미 고려 때에 중앙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에 각궁장(角弓匠) 전장(箭

匠) 전두장(箭頭匠) 등의 장인을 소속시켜 각궁을 만들었다 또 궁중의

궁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내궁방(內宮房)에도 각궁장(角弓匠)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군기감(軍器監)을 설치 운영하였고 장인들을 소속시켜 활

과 화살을 제작하게 하였다 이들 장인은 다른 기술을 가진 장인과 달리

궁인(弓人)이나 시인(矢人)으로 불렀다 궁인과 시인이라는 명칭은 『논

어』에서 나오며 그들 장인은 다른 물건이 아닌 무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우대하여 부른 것이다 이에 조선은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면

서 궁인 90명 시인 150명을 배정하였다 아울러 이들 장인들은 각 지

방마다 상당수를 배정하였고 이 또한 여타의 다른 장인들에 비하여 많

은 숫자에 해당되었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장색과 규모는 영조대 『속대전』이나 정조대

『대전통편』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국가적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각종 300여 도감마다 수많은 궁인이

나 시인을 징발하여 의례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할 궁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사적인 공방에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김준근의 lt기산풍속화gt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궁창을 앞에 두고

줄과 환으로 일정하게 다듬은 쇠뿔과 뽕나무 등을 옆에 두고 완성된

각궁에 시위를 걸어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있다

청나라 말에 전통 활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lt시궁정력(試弓定力)gt에

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입식 건물 안에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너댓 개

의 활을 만들어 올려놓고 다 만든 활을 과학적으로 무게를 재고 있다

향사례(鄉射禮)를 거행하여 사족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활을 좋아하고 잘 다룬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역

사 동안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다른 종목보다 유달리

활(양궁)을 잘 쏘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한민족의 피 속

에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유전인자 DNA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Ⅱ 유물 속 동아시아의 활

인류는 이른 시기부터 멀리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자 무기로 활과 화살을 개발하였다 이후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

에 따라 궁시를 제작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

하였다 하지만 궁시는 대개 나무나 대나무와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

져 썩어 오래전의 유물을 확인하기 어렵고 단지 흑요석(黑曜石)처럼 단

단한 석제로 만든 화살촉에 의해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정복 전쟁이 빈번해지던 고대부터 무기가 발달하였다 당시에

사용된 활과 화살의 형태는 유물 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전국시대(BC 475~221) 동호(銅壺) 유물

을 보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한편

5세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lt수렵도gt에서 말 위에서 짐승들을

1

32

4

6

5

32 33무형문화재 삼국지ㆍ기능

양국의 활 제작방식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청나라 활 제작 장인 집단

은 북경 동사대가에 있는 궁전대원리(弓箭大院里)에 17가호의 궁전 점포

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squo취원호(聚元號)rsquo이다 이곳에서 중국 전통 활

을 제작했던 장인이 양뤼린(楊瑞林)이며 아들인 양원통(楊文通) 손자인

양푸시(楊福喜)까지 3대가 잇고 있다 양푸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활을 제작하여 2006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

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장인으로 보호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45년 앞선 1971년 9월 13일 전통 활 제작 장인

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으로 지정하였다 서울 황학

정의 장진섭(張鎭燮 1916~1996)은 조부(장문환)와 부친(장기홍)에 이

어 3대째 활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예천의 권영

록(權寧錄 1916~1986)은 부친(권태전 權泰全)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

었다 부천의 김장환(金章換 1909~1984)는 조부(김원재)와 부친(김

동천)의 대를 잇고 한국 제일가는 명사수로서 활동하고 부천 성무정의

초대 사두(1967~1982)가 되었다 그의 기술은 제자인 김박영(金博榮

1929~2011)이 전승하였다 그의 사후 2015년 권영학(1943년생)보유

자가 새로 인정되어 조부(권선복)와 부친(권우갑)의 가업을 이어 그 또

한 3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화살을 만드는 시장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시장)

으로 지정하였다 화살로 유명한 장단에서 나고 자란 유영기(1936년 그런데 세계적으로 강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활은 여기에 화피를 더

하여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물소 뿔(牛角) 쇠심줄(牛芯)

민어 부레풀(魚膠) 대나무 뽕나무(弓幹桑) 참나무 화피(樺皮)가 그것

이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는 각궁은 살

아있는 활이면서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쇠뿔은 통뼈이며 대나

무와 뽕나무 및 참나무가 세부 뼈대이고 그 위에 바르는 쇠심줄은 근

육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부레풀은 연골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다듬는

화피는 피부에 해당된다 이중 물소 뿔과 대나무 및 쇠심줄이 활의 강

도와 탄성을 이루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민

어 부레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은 1년 중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제작하여 계절을 타는 공예품인데 그 이유는 동식물성 재료

들이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아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심이 건

조가 안되고 풀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여름에는 재료를 장만하고 찬바람이 나면 풀을 대와 뼈와 나무를 서로

붙여 정월 경에 건조시키고 3월부터 한 달 이상 해궁 작업을 한다 각

궁은 제작이 까다롭고 단계마다 원칙을 지키고 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

해서 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궁의 핵심 원료인 물소는 주로 아열대 지방인 중국 남부나 인도 및 인

도차이나 등지에 서식하므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여서 중국은 물소 뿔의 수출을 엄격

하게 통제하였고 조선 정부는 그것을 몰래 수입하려고 애썼다 현재

도 각궁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의 수급은 어려움이 많다 물소는 세계적

인 보호동물이어서 물소 뿔을 수입할 때 세관의 통과가 어렵고 쇠심줄

은 근래 많은 소들이 일하면서 근육을 키우지 않고 육우용으로만 키워

져 탄성이 없어 활의 탄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접착제인 민어부

레의 경우 예전에는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근래에는 민어부레가 정

력에 좋다고 그것마저 식용으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한 활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488년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同越)은 ldquo조선에서 사용하는 화피궁은 중

국의 제도에 비하여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rdquo라

고 평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활은 중국 것보다 작으나 탄

성이 크고 강하다 우리의 시장들은 대나무로 화살대[矢幹]를 만들고

쇠로 활촉(雛)을 끼우며 수리깃으로 화살깃(矢羽)을 만든다 반면 중국

의 장인은 죽시와 함께 유목(楡木)으로 목시(木矢)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활은 대나무와 나무를 한데 결합한 복합궁이다 일본의 활

은 2m 이상으로 길고 무거워 탄성이 적어 근거리에는 위력이 높은 대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이면서 한middot중middot일

삼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각궁은 한국 장인들의 솜씨가

표출된 우수한 전통 공예기술로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생)는 조부(유창원)와 부친(유복삼)에 이어 3대를 잇고 그 아들 유세

현과 유승현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단 근처 원당에서 나고 자

란 박호준(1944년생)은 조부(박희원)와 부친(박상준)에 이어 3대째 가

업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김종국(1940년생)은 스승인 조명제(趙命濟

1915~1980)가 조부(조성관)와 부친(조면보)의 대를 이었던 것을 본받

아 예천에서 화살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12월 14일 부천활박물관을 세웠고 파주에는 유영기

보유자가 만든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반면 중국에는 2012년 신강의

이리에 성급(省級) 비물질문화재로 등록된 이청강(李靑岡)이 중화활문화

박물관(中華弓文化博物館)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로 활을 지

정하지 않아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이 전통적(傳統的) 공예품

(工藝品)으로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을 지정하였다 미야기현(宮崎県)에 위치

한 미야코노조(都城市)에 7대째 120년 전통의 활을 제작하는 활제작소

[楠見藏吉 弓製作所]가 위치하고 있다

Ⅳ 활과 화살의 재료

활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의 『고공기』에 의하면 나무[干 柘 橘 桑 木

瓜 竹 荊 등] 심줄[筋] 풀[膠 말 소 사슴 물소] 뿔[쇠뿔] 옻[漆]

명주실[絲]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은 뿔을 주재료로

삼은 각궁(角弓)인 것을 알 수 있다

도판10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故

김박영 보유자 제작 각궁(角弓)

도판11 중국 양푸시(楊福喜)가 제작한 활

1m 60cm

도판12 중국 양푸시(楊福喜) 화살[箭]

위 2개 느릅나무[楡木] 3번째

목전(木矢) 아래 2개 죽시(竹矢)

201598 필자 촬영

도판13 일본 미야기현(宮崎県)

미야코노조(都城市) 120년 전통

楠見藏吉 弓製作所

httpjotaro-gocomcollect2980

도판14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

지정(指定) 전통적(傳統的)

공예품(工藝品)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

httpjotaro-gocomcollect2980 참고

도판7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종국(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9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박호준(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7 8 9

11 10

12

13 14

34 35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ime a

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fter Tim

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1213

14

1516

1718

1920

21

2223

2425

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13: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양종승 (우봉이매방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middot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하늘이 내린 춤꾼 宇峰 이매방 선생님을 追惜하며

춤을 위해 태어나 평생 동안 춤만을 사유하였던 우봉(宇峰) 이매방(李梅

芳) 선생님께서 2015년 8월 7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승천하셨다 선생

님은 1927년 5월 5일(음력 3월 7일) 새벽 동이 틀 무렵 목포에서 이경

율과 조병림 사이의 10형제 중 막내둥이로 태어났다 5남매는 일찍이

죽고 남은 3남 2녀 중 막내로 성장하였다 선생님 아명은 집안 돌림자에

따라 영길(永吉)이었지만 스님께서 귀한 아들이라고 하여 귀태(貴泰)로

개명해 주었다 오기된 호적에는 규태(圭泰)로 되어 있다 매방(梅芳)이

라는 이름은 중국 경극의 명인 매란방(梅蘭芳)의 첫 자와 끝자리를 따 예

명으로 불리었는데 1986년 호적을 개명하여 본명이 되었다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춤에 소질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서 성장하였다 결국 옆집 살던 권번장 함국향 권유로 목포 권번에 들어가

당대 소리 북 춤 등에 대가들이었던 이대조 이창조 박영구 진석산 등

에게 승무 검무 살풀이춤 등 전통춤을 학습하였다 선생님의 무용활동

은 목포 공립 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임방울 명인명창대회에 승무로 출연

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이후 1953년 광주에서 첫 개인발표회를 시

작으로 무용인생 50주년 65주년 70주년을 비롯한 수많은 국내외 공연

을 펼쳤다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1990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가 되었다 그리

고 2014년 승무 및 살풀이춤 명예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한국무용협회 고

문 한국국악협회 고문 한국전통춤협회 고문 용인대 무용학과 대우교

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국무 우봉이매방 화보집』을 발간하였다

이매방 선생님 장례식은 2015년 8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서울삼

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문화예술인 葬]으로 치러졌다 목포문화예술회

관 내에 있는 이매방춤전수관에도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우봉이매방장

례위원회가 구성되어 공동장례위원장을 김종규 한국문화유산신탁 이사

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이경동 한국문화원연합회 회장 김복

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하철경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 김

덕수 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이사장 김진홍 부산시 무형문화재 동

래한량무 보유자 김정녀 중요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전수조교 채상묵

한국전통춤협회 이사장 국수호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등 10명이 맡

았다 장례집행위원장을 양종승 우봉이매방춤보존회 수석부회장 장

례집행부위원장에 김덕숙 김효분 박종필 오은명 최창덕 황순임

등 우봉이매방춤보존회 부회장 6명이 맡았다 장례위원은 김묘선 오

미자 박소림 이길주 송재섭 정영례 최희진 한혜경 김리혜 김은

희 한명옥 진유림 채향순 강성민 백경우 김정기 등 제자 215명이

맡았으며 목포분향소 공동장례위원장은 임점호 목포신안예총회장과 박

수경 목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맡았다 장례의전은 국가공인장례지

도사 유재철 황근식이 진행하였다 유족으로 미망인 김명자(전통무용

가 승무 및 살풀이춤 전수조교) 딸 이현주(전통무용가 승무 및 살풀

이춤 이수자) 사위 이혁열(연극인) 등이 있다

추모식 전경선생님 영전에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을 추서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

부 장관은 일평생 우리 춤 전승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며 문화

융성과 전통예술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공적을 기렸다 또한 이매방 선

생님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깊은 애

도와 함께 목포가 낳은 문화예술계의 큰 별이셨던 선생님은 우리나라 전

통예술의 표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외에 박민권 문화체육관광부 제1

차관 나선화 문화재청장 김해숙 국립국악원장 서도식 한국문화재재

단 이사장 이문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 등 정치계 문화예술

계 등 각계 인사들과 수많은 무용 가족들이 조문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추모식은 2015년 8월 9일 일요일 오후 7시부터 9

시까지 2시간 동안 삼성서울병원 영결식장에서 유가족 지인 각계인

사 제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덕택 운현궁 예술감독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민의례 고인에 대한 묵념 양종승 장례집행위원장의 고

인 약력보고 공동장례위원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공동

장례위원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이사장 공동장례위원장 김복희 한국

무용협회 이사장 등의 조사 제자를 대표한 채상묵 공동장례위원장의

추도사가 있었다 동영상으로 고인의 생전 활동과 육성을 보고 들은 후

유가족을 비롯한 지인 문화예술계의 인사 제자 등의 헌화 및 분향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안숙선 명창의 이별가와 김영임 명창의 회심곡 중

저승 가는 길이 헌가로 받쳐졌다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 보

유자 박병원 전수조교 송순단과 박미옥 등이 주관하는 추모굿과 이광

수 명인의 헌가가 올려졌다 다음날 오전 7시 30분에 발인식이 행해졌

고 오전 9시에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이 이루어졌다 유해는 경기도 광

주시 오포읍 시안가족추모공원에 봉안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에서 초제를 시작으로 49재가 진행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금세기 하늘이 내린 명무였다 그리고 근현대 문

화적 격동기 속에서 우리 춤을 꿋꿋이 지킨 민족춤 계승자로서 주어진

소임을 완수하였다 그래서 선생님의 예술 생애와 그가 전승해 온 민족

춤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큰 가치를 지닌다

주지하다시피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한국 전통무용 진가를 표방

하는 고단위적 한민족 춤 유산으로써 조선 중엽 이후 불교의식 민속놀

이 유랑예인연희 무속신앙 등과 어우러져 계승 발전되어 왔다 그와

더불어 민중의식을 담아 애환과 기쁨을 표상하는 춤으로써 위엄 있고 격

조 있는 춤으로 승화되었다 그래서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무용 예술적

가치와 업적은 위대하고 광활하다 무용평론가 강이문과 무용학자 이병

옥 교수는 이매방 선생님을 國舞라 칭했으며 문화계 많은 인사들은 신이

내린 춤꾼이라 호평하였다 이러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우봉 이

매방 선생님 금자탑에서 빛나는 것은 다름 아닌 기왕 흩어져 내동댕이쳤

던 민족 춤의 뿌리를 살려내어 우리 시대 진정한 무용예술로 승화시키고

국가의 민족유산으로 갈고 다듬은 것이었다 이는 탈 식민지적 화두가 -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다큐멘터리 중 이매방 인터뷰 -

살풀이춤은

즉흥무이다 승무

검무 법무를 다

배우면 자기 멋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수판을 잘라야 한다

가락도 춤 승무 가락

검무 가락 이런 거

섞어서 장단 맞춰서

자신의 감정 음악

듣고 음악이 슬프면

슬픈 표정으로

즉흥적으로 추는 춤이

즉흥무야

24 25기획특집 3

본격화되던 20세기 초중반 우리 것에 덧씌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구

를 벗겨내려는 문화 민족주의적 활동의 한 면이었다 서구 중축의 지배

담론을 탈피하면서 그동안 왜곡되고 전도된 관점에서 벗어남으로써 민

족춤에 비문명적이라는 멍에를 씌었던 편협한 지식층의 문화보기 탈각

운동의 한 면이었던 것이다 시기는 일본제국주의의 한국민족문화 말살

정책 해방 후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교육정책의 서구 지향적 패러다임

등장 도시화middot산업화middot현대화에 따른 전통문화 멸시 및 천시 등으로 인

해 민족예술이 단절 위기에 처했었던 그때였다 또한 현대 산업화에 따

른 근대화론 지향의 국책 하에서 민족예술을 진부하거나 불필요한 것으

로 치부하는 풍조였던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우리의 것은 외래의 것에 밀리거나 일방적으로 시비 당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빼앗기는 패배의 싸움판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던 그 상황 속에

서 선생님은 묵묵히 그리고 꿋꿋하게 우리 춤을 지켜 내셨다 우리네 전

통춤은 비합리적이고 가치가 없으며 저급하고 미천한 것으로 저평가되

돼 전승의 단절까지 치닫게 된 상황 속에서도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우

리 춤 계승하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의 춤을

옥석으로 다듬어 세상에 펼쳐 보임으로써 민족 무용예술의 가치를 되살

리는데 평생 힘써 왔었다 결국 어려운 역경과 피나는 고난을 헤치고 일

어난 선생님의 예술세계는 살아 숨 쉬는 민족 춤으로 꽃 피어졌다 향토

춤 민족춤 전통춤 속에 내재된 민중들의 예술적 사상과 정신이 북돋아

나 전통문화복원 민족문화재건 향토문화복구 등과 함께 형성된 민족

문화바로세우기운동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춤은 밖에

서 유입된 외래의 것과는 달리 이 땅에 자생적으로 자라온 민족 춤 뿌리

로 각인되면서 한국무용예술사에 독창적 고귀성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

리고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와

1990년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국민의 춤꾼으로 안

착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 계보를 따지고 올라가면 신방초(申芳草 남)라

는 인물이 있다 전남 옥과 출신인 그는 1817년 무속집안에서 태어난

재인으로 어정판에서 바라지로 활동하였다 춤은 물론이고 육자배기

가곡 가사 장단에 능하여 호남 일대에서 대단히 명성이 높았다 그래

서 당시 호남의 유명 당골들은 그를 모셔가기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였

다고 한다 신방초는 자신의 춤을 같은 고향 출신 신영수(남)에게 전했

다 이후 고창 출신 안두온(남)에게로 이어졌고 다시 순창 출신 이정선

(남)에게 전수되었다 이정선은 춤뿐만 아니라 북놀이에도 뛰어난 재능

을 갖고 있었던 예인이었으며 판소리도 잘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상당

한 대접을 받았다 이정선의 춤은 목포 출신 김금옥(여)과 박귀주(여)에

게 이어졌다 그 후 이매방 선생님의 스승 박영구 이대조 이창조 진

석산 등에게 전수되었다 박영구(남)는 전남 화순 출신으로 승무와 북놀

이의 명무 명인이었으며 광주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대조(남)는 전

남 무안 출신으로 승무의 대가였고 목포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창

조(남)는 전남 능주 출신으로 검무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고 역시 광주 권

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그리고 진소홍(일명 진석산 여)은 전남 담양 출

신으로 서울 인사동에서 요릿집을 운영하면서 살풀이춤을 전승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춤에는 엄격한 억제와 철저한 절제가 존재한다 이

는 수단에 의해 보이는 기교면서 또한 재간으로 처리될 수 있는 예술적

기법의 한 면이다 선생님의 춤은 또한 느낌과 감정의 표현 방식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느낌에서는 가벼움과 무거움 재빠름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이매방 승무-필자 양종승 제공팔순 기념공연-필자 양종승 제공

과 더딤 흐늘거림과 꼿꼿함 섬세함과 우람함 정교함과 장중함 등의

변화무쌍한 표현력을 가진다 감정에서는 슬픔과 기쁨 가냘픔과 뭉뚝

함 애석함과 환희 괴로움과 기쁨 고요함과 시끄러움 등이 묘사되는

데 이는 삶의 고뇌와 애환은 물론이고 희망과 행복을 감싸고 있음을 말

한다 이러한 춤에 있어서의 느낌과 감정은 비정비팔 비디딤 까치걸

음 잉애걸이 좌우걸이 완자걸이 안가랑 등의 발디딤새와 양우선

평체 사체 등의 손놀림새 그리고 연풍대 지숫기 다루치기 대소삼 등

의 몸굴림새 속에서 표현력을 한층 고조시킨다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

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

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

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길이

길이 민족 춤 기틀로 명명되어 질 것이다 천기를 타고난 춤꾼 신들

린 듯한 춤으로 관객을 홀렸던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이제 천상

무대로 가시어 휘날릴 것이다 선생님 기어이 춤과 함께 홀연히 떠

나셨으니 부디 부디 영면하옵소서

추모식 전경

26 27

전경욱 (고려대학교 교수)

동아시아의 가면극1 중국 귀주성 위녕현의 〈춰타이지(撮泰吉)〉 가면극

풍농과 악귀 쫓기를 위해 기원하는 제의의 일부

2 한국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서낭신인 각시가

무동을 탄 모습

3 일본의 미야자키현(宮崎県) 시이바손(椎葉村)의

〈다케노에다오가구라(嶽之枝尾神楽)〉

4 《봉사도》제7폭 모화관에서 행해진 중국사신

영접행사의 연희장면 산대(왼쪽) 앞에서 연행된

줄타기 물구나무서기 접시 돌리기 가면극 등의

전문적 연희

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에서는 가면극 분야에 대해 보

유자와 단체를 모두 지정하고 있으니 일본보다 지원이 좋은 편이다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을 민간문학 민간음악 민간무용 전통희극

곡예 잡기와 경기 민간미술 전통수공기예 전통의약 민속으로 분류

하여 지정하고 있다 중국 가면극인 나희는 전통희극 분야에 해당한다

한국에는 현재 국가 지정의 중요무형문화재 가면극 13종목 각 시도의

무형문화재 가면극 2종목(진주오광대와 퇴계원산대놀이)이 있다 중국

은 그동안 전통희극 분야에 430개 종목을 지정했는데 여기에 나희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노(能)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중요무형

민속문화재의 민속예능 분야에 35개의 가구라(神樂)를 지정했다 이 가

구라들은 대부분 민간의 가면극이다

Ⅱ 동아시아 가면극의 역사와 계통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면극은 매우 유사한 발전 과

정을 보인다 동아시아에는 (1)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과 (2)전

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이 있었다 (1)은 각 지역의 향촌제사

활동(鄕村祭祀活動)에서 연행되던 것으로서 각각 자생적 향토적 성격

을 띠고 있다 그러나 (2)는 산악(散樂) 또는 백희(百戱)라고 불리던 동아

시아 공동의 연희들이 발전하여 성립된 것으로서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함께 각국의 독자성을 띠고 있다

1 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하회별신굿탈놀이나 강릉관노가면

극처럼 향촌제사활동인 마을굿에서 유래하여 발전해 온 가면극들로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전승해 왔다 이 가면극들은 다른 지방의 가면극과

는 아주 다른 독자적 내용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가면극들이 마을굿에

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도판 1)

중국의 나희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지만 후대에는

그것이 민간에 전파되어 각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도 전승되고 있다 그

리고 중국 한족을 비롯하여 소수민족들에는 여러 향촌제사활동에서 유

래하여 그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가면극들도 있다(도판 2)

한편 일본의 고유 신앙을 섬기는 신사(神社)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연예술

인 가구라(神樂) 중에는 자생적인 민속가면극의 예를 보여 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국의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방마다 차이가 크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도판 3)

2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생겨난 가면

극이다 본산대놀이는 삼국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산악middot

백희 그리고 상고시대의 제천의식 등에서 연행되던 전문적 연희자들의

연희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해 형성된

것이다 산악middot백희를 놀았던 사람들은 그 연희 내용으로 볼 때 삼국시

대부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연희자였으며 이들의 후예가 통일신라시

대에 최치원의 시 lt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gt에 묘사된 다섯 가지 연

희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계승된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연행

된 가무백희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나례에서 연행된 산

대희 등을 놀았다 그리고 중국 사신 영접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

희를 펼치던 반인들이 18세기 전반기에 산악middot백희 계통의 연희와 기존

의 가면희들을 재창조해서 본산대놀이를 성립시켰다 이 가면극은 애오

개(아현) 사직골 구파발 녹번 등에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봉사도(奉使圖)》(1725년) 제7폭은 서울의 모화관 마당

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행사의 연희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접시 돌리

기 땅재주 줄타기 탈춤을 묘사하고 있다 마당의 오른쪽에는 산거(山

車)middot산붕(山棚)middot윤거(輪車)middot예산대(曳山臺)middot예산붕(曳山棚) 등으로 불

렀던 소규모의 산대가 보인다 바로 이런 산대 앞에서 공연하던 연희들

을 lsquo산대희rsquo라고 불렀다 특히 세 명의 땅재주꾼 양 옆에서 각각 두 명씩

모두 네 사람이 초록색과 남색의 가면을 쓰고 탈춤을 추고 있다 이는 서

울에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가면극이 있었고 그 가면극을 애오

개산대놀이 등 산대놀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전해준다(도판 4)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경기도의 송파산대놀이middot양주별산대놀이 황해

31 2

Ⅰ 동아시아 가면극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우리는 가면극을 탈춤 탈놀이 가면희 등으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가

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儺戱)라고 부

르는데 이는 중국 가면극들이 대부분 나례에서 연행되던 연희인 나희

로부터 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무형문화유

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middot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부터 한국은 1964년부터 중국은 2006년부터

무형문화재를 국가 차원에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

의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용어로 lsquo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rsquo이라

는 말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의 기예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lsquo보유자rsquo로 인정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lsquo전승인(傳承人)rsquo 일본에서는

lsquo보지자(保持者)rsquo라고 부른다

중국은 이제 막 무형문화재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작했지만 각 지역에

서 자기들의 무형문화재를 국가 지정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으로 등재하기 위

한 열기는 매우 뜨겁다 그리고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과 관련된 행사나 학술

대회도 자주 개최하고 있다 필자는 매년 중국의 가면극학회인 중국나

희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는데 가면극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들에서

는 이 학회를 유치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현지 답사를 통해 자기 지

역의 가면극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국가 지정의 무형문화재를 (1)중요무형문화재(연극 음

악 공예기술 등)와 (2)중요무형민속문화재(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

행사 등에 관한 풍속관습 민속예능)로 구분하여 지원한다 그래서 연극

분야 중 노(能) 가부키(歌舞伎) 등은 (1)에 해당하고 각 지방의 가구라

(神樂)는 (2)의 민속예능에 해당한다 (1)은 전문적인 연희자들이 전승하

는 종목으로서 그 기middot예능을 보유한 사람과 단체를 모두 지정한다 그

러나 (2)는 단체만 지정하고 보유자는 지정하지 않는다 이를 한국에 적

용하면 판소리는 (1)중요무형문화재(음악)에 가면극은 (2)중요무형민

속문화재(민속예능)에 해당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한국의 가면극들

은 대부분 각 지방에서 세시풍속의 하나로서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

日韓 中

4

28 29무형문화재 삼국지ㆍ예능

도의 봉산탈춤middot강령탈춤middot은율탈춤 경남의 수영야류middot동래야류middot통

영오광대middot고성오광대middot가산오광대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

본산대놀이는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했지만 여기에서 전파된 별산대

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 등은 농민 하급관속 무부(巫夫) 등 각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중국 가면의 역사에서 가면의

효시는 나례에 등장하던 방상시(方相氏) 가면이다 이 나례에서 연행되던

각종 연희와 가면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면극이 생겨났기 때문에 가면

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다른 계통의 가면은 육조(六朝)시대 이후 산악middot

백희에 사용되던 것으로 이는 서역악무(西域樂舞)의 영향을 받은 외래

기원의 가면이다 현재도 중국에는 귀주성의 나당희처럼 무당집단이 전

승하고 있는 나희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들은 전문적 연희자인 셈

이다(도판 5)

일본의 가면극은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서 육성된 가면극과

서민층에 의해 육성된 가면극이 있다 전자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예술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데 기가쿠(伎樂)middot

부가쿠(舞樂)middot교도(行道)middot노(能)middot교겐(狂言)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

데 노와 교겐은 특히 산악middot백희와 밀접한 관련 아래 성립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문화인 산악middot백희가 일본에 유입

된 이후 변화middot발전하여 후대에 일본의 대표적 전통연극인 노가쿠(能

樂)middot노쿄겐(能狂言)middot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middot가부키(歌舞伎) 등 전통연

극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산악middot백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 연희를 발전시켜 lsquo나희

(儺戱)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켰고 일본에서는 사루가쿠(猿樂) 즉 산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lsquo노(能)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킨 것처럼 한국에서도

중국 사신 영접 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반인(泮人)들이

lsquo본산대놀이rsquo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Ⅲ 동아시아 가면극의 연희 내용

한국의 가면극은 벽사적 의식무과장 파계승과장 양반과장 영감할미

과장 등 서로 다른 내용의 과장들로 짜여진 소위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

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면극을 탈춤이라고 부를 정도로 춤이 많

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춤사위가 매우 뛰어나다(도판

6) 일본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가구라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짜인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나희와 일본

의 노는 대부분 하나의 가면극이 하나의 서사적 내용으로 짜여 있다

이러한 서사성의 나희와 노도 또한 서로 차이점을 갖고 있는데 노는 lsquo현

재노(現在能)rsquo와 lsquo몽환노(夢幻能)rsquo가 있어 특징적이고 나희는 주로 노래와

대사에 의해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lsquo현재노rsquo는 현재형으로 사건이 전개

되는 노를 말한다 lsquo몽환노rsquo는 나그네(조연자인 와키가 분장)의 꿈 속에

망령이나 화신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몽환노에

서는 시간이 자유롭게 정지하고 역행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도 자유롭게

등장할 수가 있다 주연자는 고전 속의 미녀이거나 역사상 인물일 수도

있고 지옥의 원령이거나 신(神) 불(佛) 귀(鬼) 초목(草木)의 정령이기

도 하다

중국 나희에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 황제 왕 일반인물

등 배역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연희 내용도 의식적인 춤을 제외

하면 대부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를 연극화

하여 공연한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 가면극에서

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이 거의 없고 황제나 왕 같은 존재

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반 인물 위주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연희 내용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주로 현

실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한편 한middot중middot일의 가면 또한 각국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middot중middot일 가

면의 형태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 윗부분에 있다 한국 가면은 얼굴

의 이마 부분까지만 표현하고 있다 일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경우에

도 간단한 선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

을 안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낸다 모자를 쓰는 배역은 별도의 모자를 착

용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의 귀면(鬼面)인 팔먹중가면을 보면 오로

지 안면의 표정에 의해 무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 노나 가

구라의 가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가면은 대부분 머리 부분과

얼굴 부분을 모두 이용해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한다 가면 자체에

머리 부분의 모자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도판 7)

그리고 한middot중middot일의 음악적 선율과 장단이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음악에 맞춰 연기하고 춤을 추는 연희자들의 동작과 춤사위는 각국

가면극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

5 중국 귀주성 덕강현의 무당들이 공연하는 가면극인 〈나당희(儺堂戱)〉

6 춤사위가 매우 뛰어난 〈봉산탈춤〉의 팔먹중춤

7 중국 안휘성 지주의 나희 〈유문룡〉 가면 자체에 모자를 장식

7 5

6

30 31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충남middot서울시 문화재위원)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도판4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양푸시(楊福喜) 201598 필자 촬영

도판5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권영학 보유자 2015821 필자 촬영

도판6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故 김박영 보유자 서헌강 촬영

도판1 활 쏘며 수렵하는 장면 고구려 무용총

도판2 중국 고대 활과 화살 및 활쏘기 장면 전국시대 초(楚) 동호(銅壺)

도판3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일본

Ⅰ 한민족과 활

한국인에게 활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민족과 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중국인이 우리 민족을 부르

는 명칭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이다 lsquo이(夷)rsquo라는 글자는 큰 대(大)자

와 활 궁(弓)자가 결합되어 있다 동이라는 글자를 곧이곧대로 풀어보면

lsquo중국의 동쪽에서 살며 큰[大] 활[弓]을 잘 만들고 쏘는 민족rsquo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 미루어 이미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우

리 한민족이 그들 한족보다 활을 잘 다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반인뿐 아니라 왕도 활을 잘 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적 인물로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lsquo활 잘 쏘는 이rsquo의 대명사로 기

록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쏘았으며

사도세자의 아들로 유명한 정조 또한 활을 잘 쏜 국왕으로 기억된다

조선에서 활쏘기를 잘했던 이유는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심신을 단련

하는 육례(禮 樂 射 脚 書 數) 중 하나로 활쏘기가 장려된 데에도 원

인이 있다 조선에서는 국가 의례로 활쏘기 행사를 거행하였다 왕과

신하가 활 쏘는 대사례(大射禮)는 1477년(성종 8) 1534년(중종 29) 및

1743년(영조 19) 1764년(영조 45)에 군신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였다 한편 지방의 양반 사족들은 향약과 비슷한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양국의 활은

기본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청나라 시대의 그림을 보면 조선 말기 19세기에 활

을 쏘는 그림과 비교가 된다 두 나라의 사수(射手)는 각각 청나라와 조

선의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른 편이다 더욱

이 양자가 활을 쏘는 모습은 공통되면서 부분적으로 다르다 그림 속 중

국의 활은 150cm 정도여서 1m 안팎의 한국 활보다 길이가 긴 점이 다르

다 막상 양자에서 동시에 화살을 쏘면 날아가는 비거리는 후자가 훨씬

긴데 이렇게 그림에서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몇 년 전

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lt최종 병기 활gt이다 시대 배경은 병자호란 당

시 청나라 무사와 조선의 사수가 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영화화한 것

이다 비록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다소 활의 효능이 과장되긴 했지만

두 나라 활의 특징과 조선 활의 장점을 극명하게 잘 그려내어 흥미롭게

본 기억이 새롭다

한편 양국과 비교되는 것이 일본의 활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활은 전

체 길이가 220cm가 넘는 세계 최대 길이의 활이다 16세기 조선의 『난

중잡록』에 의하면 일본의 화살은 lsquo장편전(長編箭)rsquo이라 하여 여러 나라의

화살과 비교해서 일본의 화살이 매우 크다는 기록으로 이미 조선에서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활을 사용하는 일

본에서는 활을 잡는 위치도 특이하다 일본의 활은 장대하기 때문에 위

쪽이 길고 아래는 짧아서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그림을 보면 매우 긴 활

의 아래쪽을 잡고 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활

은 ldquo화살은 길지만 먼 곳까지는 날지 않는다rdquo라고 13세기의 몽고인이

기록하고 있어 비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가마쿠

라 시대에 들어가면 그 중량이 더욱 늘어나 70g에 이르면 길고 무거운

화살을 폭이 긴 활로 쏘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Ⅲ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활과 화살은 조총이나 대포 등과 같은 화기(火器)를 발명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중요했다 이에 각국은 국력을 모아 활과 화살을

제작하였다

이미 고려 때에 중앙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에 각궁장(角弓匠) 전장(箭

匠) 전두장(箭頭匠) 등의 장인을 소속시켜 각궁을 만들었다 또 궁중의

궁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내궁방(內宮房)에도 각궁장(角弓匠)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군기감(軍器監)을 설치 운영하였고 장인들을 소속시켜 활

과 화살을 제작하게 하였다 이들 장인은 다른 기술을 가진 장인과 달리

궁인(弓人)이나 시인(矢人)으로 불렀다 궁인과 시인이라는 명칭은 『논

어』에서 나오며 그들 장인은 다른 물건이 아닌 무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우대하여 부른 것이다 이에 조선은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면

서 궁인 90명 시인 150명을 배정하였다 아울러 이들 장인들은 각 지

방마다 상당수를 배정하였고 이 또한 여타의 다른 장인들에 비하여 많

은 숫자에 해당되었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장색과 규모는 영조대 『속대전』이나 정조대

『대전통편』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국가적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각종 300여 도감마다 수많은 궁인이

나 시인을 징발하여 의례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할 궁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사적인 공방에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김준근의 lt기산풍속화gt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궁창을 앞에 두고

줄과 환으로 일정하게 다듬은 쇠뿔과 뽕나무 등을 옆에 두고 완성된

각궁에 시위를 걸어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있다

청나라 말에 전통 활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lt시궁정력(試弓定力)gt에

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입식 건물 안에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너댓 개

의 활을 만들어 올려놓고 다 만든 활을 과학적으로 무게를 재고 있다

향사례(鄉射禮)를 거행하여 사족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활을 좋아하고 잘 다룬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역

사 동안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다른 종목보다 유달리

활(양궁)을 잘 쏘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한민족의 피 속

에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유전인자 DNA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Ⅱ 유물 속 동아시아의 활

인류는 이른 시기부터 멀리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자 무기로 활과 화살을 개발하였다 이후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

에 따라 궁시를 제작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

하였다 하지만 궁시는 대개 나무나 대나무와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

져 썩어 오래전의 유물을 확인하기 어렵고 단지 흑요석(黑曜石)처럼 단

단한 석제로 만든 화살촉에 의해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정복 전쟁이 빈번해지던 고대부터 무기가 발달하였다 당시에

사용된 활과 화살의 형태는 유물 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전국시대(BC 475~221) 동호(銅壺) 유물

을 보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한편

5세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lt수렵도gt에서 말 위에서 짐승들을

1

32

4

6

5

32 33무형문화재 삼국지ㆍ기능

양국의 활 제작방식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청나라 활 제작 장인 집단

은 북경 동사대가에 있는 궁전대원리(弓箭大院里)에 17가호의 궁전 점포

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squo취원호(聚元號)rsquo이다 이곳에서 중국 전통 활

을 제작했던 장인이 양뤼린(楊瑞林)이며 아들인 양원통(楊文通) 손자인

양푸시(楊福喜)까지 3대가 잇고 있다 양푸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활을 제작하여 2006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

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장인으로 보호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45년 앞선 1971년 9월 13일 전통 활 제작 장인

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으로 지정하였다 서울 황학

정의 장진섭(張鎭燮 1916~1996)은 조부(장문환)와 부친(장기홍)에 이

어 3대째 활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예천의 권영

록(權寧錄 1916~1986)은 부친(권태전 權泰全)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

었다 부천의 김장환(金章換 1909~1984)는 조부(김원재)와 부친(김

동천)의 대를 잇고 한국 제일가는 명사수로서 활동하고 부천 성무정의

초대 사두(1967~1982)가 되었다 그의 기술은 제자인 김박영(金博榮

1929~2011)이 전승하였다 그의 사후 2015년 권영학(1943년생)보유

자가 새로 인정되어 조부(권선복)와 부친(권우갑)의 가업을 이어 그 또

한 3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화살을 만드는 시장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시장)

으로 지정하였다 화살로 유명한 장단에서 나고 자란 유영기(1936년 그런데 세계적으로 강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활은 여기에 화피를 더

하여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물소 뿔(牛角) 쇠심줄(牛芯)

민어 부레풀(魚膠) 대나무 뽕나무(弓幹桑) 참나무 화피(樺皮)가 그것

이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는 각궁은 살

아있는 활이면서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쇠뿔은 통뼈이며 대나

무와 뽕나무 및 참나무가 세부 뼈대이고 그 위에 바르는 쇠심줄은 근

육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부레풀은 연골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다듬는

화피는 피부에 해당된다 이중 물소 뿔과 대나무 및 쇠심줄이 활의 강

도와 탄성을 이루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민

어 부레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은 1년 중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제작하여 계절을 타는 공예품인데 그 이유는 동식물성 재료

들이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아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심이 건

조가 안되고 풀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여름에는 재료를 장만하고 찬바람이 나면 풀을 대와 뼈와 나무를 서로

붙여 정월 경에 건조시키고 3월부터 한 달 이상 해궁 작업을 한다 각

궁은 제작이 까다롭고 단계마다 원칙을 지키고 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

해서 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궁의 핵심 원료인 물소는 주로 아열대 지방인 중국 남부나 인도 및 인

도차이나 등지에 서식하므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여서 중국은 물소 뿔의 수출을 엄격

하게 통제하였고 조선 정부는 그것을 몰래 수입하려고 애썼다 현재

도 각궁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의 수급은 어려움이 많다 물소는 세계적

인 보호동물이어서 물소 뿔을 수입할 때 세관의 통과가 어렵고 쇠심줄

은 근래 많은 소들이 일하면서 근육을 키우지 않고 육우용으로만 키워

져 탄성이 없어 활의 탄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접착제인 민어부

레의 경우 예전에는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근래에는 민어부레가 정

력에 좋다고 그것마저 식용으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한 활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488년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同越)은 ldquo조선에서 사용하는 화피궁은 중

국의 제도에 비하여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rdquo라

고 평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활은 중국 것보다 작으나 탄

성이 크고 강하다 우리의 시장들은 대나무로 화살대[矢幹]를 만들고

쇠로 활촉(雛)을 끼우며 수리깃으로 화살깃(矢羽)을 만든다 반면 중국

의 장인은 죽시와 함께 유목(楡木)으로 목시(木矢)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활은 대나무와 나무를 한데 결합한 복합궁이다 일본의 활

은 2m 이상으로 길고 무거워 탄성이 적어 근거리에는 위력이 높은 대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이면서 한middot중middot일

삼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각궁은 한국 장인들의 솜씨가

표출된 우수한 전통 공예기술로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생)는 조부(유창원)와 부친(유복삼)에 이어 3대를 잇고 그 아들 유세

현과 유승현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단 근처 원당에서 나고 자

란 박호준(1944년생)은 조부(박희원)와 부친(박상준)에 이어 3대째 가

업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김종국(1940년생)은 스승인 조명제(趙命濟

1915~1980)가 조부(조성관)와 부친(조면보)의 대를 이었던 것을 본받

아 예천에서 화살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12월 14일 부천활박물관을 세웠고 파주에는 유영기

보유자가 만든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반면 중국에는 2012년 신강의

이리에 성급(省級) 비물질문화재로 등록된 이청강(李靑岡)이 중화활문화

박물관(中華弓文化博物館)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로 활을 지

정하지 않아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이 전통적(傳統的) 공예품

(工藝品)으로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을 지정하였다 미야기현(宮崎県)에 위치

한 미야코노조(都城市)에 7대째 120년 전통의 활을 제작하는 활제작소

[楠見藏吉 弓製作所]가 위치하고 있다

Ⅳ 활과 화살의 재료

활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의 『고공기』에 의하면 나무[干 柘 橘 桑 木

瓜 竹 荊 등] 심줄[筋] 풀[膠 말 소 사슴 물소] 뿔[쇠뿔] 옻[漆]

명주실[絲]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은 뿔을 주재료로

삼은 각궁(角弓)인 것을 알 수 있다

도판10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故

김박영 보유자 제작 각궁(角弓)

도판11 중국 양푸시(楊福喜)가 제작한 활

1m 60cm

도판12 중국 양푸시(楊福喜) 화살[箭]

위 2개 느릅나무[楡木] 3번째

목전(木矢) 아래 2개 죽시(竹矢)

201598 필자 촬영

도판13 일본 미야기현(宮崎県)

미야코노조(都城市) 120년 전통

楠見藏吉 弓製作所

httpjotaro-gocomcollect2980

도판14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

지정(指定) 전통적(傳統的)

공예품(工藝品)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

httpjotaro-gocomcollect2980 참고

도판7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종국(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9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박호준(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7 8 9

11 10

12

13 14

34 35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ime a

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fter Tim

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1213

14

1516

1718

1920

21

2223

2425

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14: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본격화되던 20세기 초중반 우리 것에 덧씌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구

를 벗겨내려는 문화 민족주의적 활동의 한 면이었다 서구 중축의 지배

담론을 탈피하면서 그동안 왜곡되고 전도된 관점에서 벗어남으로써 민

족춤에 비문명적이라는 멍에를 씌었던 편협한 지식층의 문화보기 탈각

운동의 한 면이었던 것이다 시기는 일본제국주의의 한국민족문화 말살

정책 해방 후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교육정책의 서구 지향적 패러다임

등장 도시화middot산업화middot현대화에 따른 전통문화 멸시 및 천시 등으로 인

해 민족예술이 단절 위기에 처했었던 그때였다 또한 현대 산업화에 따

른 근대화론 지향의 국책 하에서 민족예술을 진부하거나 불필요한 것으

로 치부하는 풍조였던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우리의 것은 외래의 것에 밀리거나 일방적으로 시비 당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빼앗기는 패배의 싸움판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던 그 상황 속에

서 선생님은 묵묵히 그리고 꿋꿋하게 우리 춤을 지켜 내셨다 우리네 전

통춤은 비합리적이고 가치가 없으며 저급하고 미천한 것으로 저평가되

돼 전승의 단절까지 치닫게 된 상황 속에서도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우

리 춤 계승하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의 춤을

옥석으로 다듬어 세상에 펼쳐 보임으로써 민족 무용예술의 가치를 되살

리는데 평생 힘써 왔었다 결국 어려운 역경과 피나는 고난을 헤치고 일

어난 선생님의 예술세계는 살아 숨 쉬는 민족 춤으로 꽃 피어졌다 향토

춤 민족춤 전통춤 속에 내재된 민중들의 예술적 사상과 정신이 북돋아

나 전통문화복원 민족문화재건 향토문화복구 등과 함께 형성된 민족

문화바로세우기운동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춤은 밖에

서 유입된 외래의 것과는 달리 이 땅에 자생적으로 자라온 민족 춤 뿌리

로 각인되면서 한국무용예술사에 독창적 고귀성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

리고 우봉 이매방 선생님은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와

1990년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국민의 춤꾼으로 안

착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 계보를 따지고 올라가면 신방초(申芳草 남)라

는 인물이 있다 전남 옥과 출신인 그는 1817년 무속집안에서 태어난

재인으로 어정판에서 바라지로 활동하였다 춤은 물론이고 육자배기

가곡 가사 장단에 능하여 호남 일대에서 대단히 명성이 높았다 그래

서 당시 호남의 유명 당골들은 그를 모셔가기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였

다고 한다 신방초는 자신의 춤을 같은 고향 출신 신영수(남)에게 전했

다 이후 고창 출신 안두온(남)에게로 이어졌고 다시 순창 출신 이정선

(남)에게 전수되었다 이정선은 춤뿐만 아니라 북놀이에도 뛰어난 재능

을 갖고 있었던 예인이었으며 판소리도 잘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상당

한 대접을 받았다 이정선의 춤은 목포 출신 김금옥(여)과 박귀주(여)에

게 이어졌다 그 후 이매방 선생님의 스승 박영구 이대조 이창조 진

석산 등에게 전수되었다 박영구(남)는 전남 화순 출신으로 승무와 북놀

이의 명무 명인이었으며 광주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대조(남)는 전

남 무안 출신으로 승무의 대가였고 목포 권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창

조(남)는 전남 능주 출신으로 검무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고 역시 광주 권

번에서 춤을 가르쳤다 그리고 진소홍(일명 진석산 여)은 전남 담양 출

신으로 서울 인사동에서 요릿집을 운영하면서 살풀이춤을 전승하였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 춤에는 엄격한 억제와 철저한 절제가 존재한다 이

는 수단에 의해 보이는 기교면서 또한 재간으로 처리될 수 있는 예술적

기법의 한 면이다 선생님의 춤은 또한 느낌과 감정의 표현 방식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느낌에서는 가벼움과 무거움 재빠름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이매방 승무-필자 양종승 제공팔순 기념공연-필자 양종승 제공

과 더딤 흐늘거림과 꼿꼿함 섬세함과 우람함 정교함과 장중함 등의

변화무쌍한 표현력을 가진다 감정에서는 슬픔과 기쁨 가냘픔과 뭉뚝

함 애석함과 환희 괴로움과 기쁨 고요함과 시끄러움 등이 묘사되는

데 이는 삶의 고뇌와 애환은 물론이고 희망과 행복을 감싸고 있음을 말

한다 이러한 춤에 있어서의 느낌과 감정은 비정비팔 비디딤 까치걸

음 잉애걸이 좌우걸이 완자걸이 안가랑 등의 발디딤새와 양우선

평체 사체 등의 손놀림새 그리고 연풍대 지숫기 다루치기 대소삼 등

의 몸굴림새 속에서 표현력을 한층 고조시킨다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선생님 교훈 속에 담겨

져 있는 우봉춤 정신은 감명 그 자체이다 춤을 품고 태어나 평생토

록 춤추며 살아온 외길 인생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예술 사상과 철

학은 후예들의 기억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길이

길이 민족 춤 기틀로 명명되어 질 것이다 천기를 타고난 춤꾼 신들

린 듯한 춤으로 관객을 홀렸던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이제 천상

무대로 가시어 휘날릴 것이다 선생님 기어이 춤과 함께 홀연히 떠

나셨으니 부디 부디 영면하옵소서

추모식 전경

26 27

전경욱 (고려대학교 교수)

동아시아의 가면극1 중국 귀주성 위녕현의 〈춰타이지(撮泰吉)〉 가면극

풍농과 악귀 쫓기를 위해 기원하는 제의의 일부

2 한국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서낭신인 각시가

무동을 탄 모습

3 일본의 미야자키현(宮崎県) 시이바손(椎葉村)의

〈다케노에다오가구라(嶽之枝尾神楽)〉

4 《봉사도》제7폭 모화관에서 행해진 중국사신

영접행사의 연희장면 산대(왼쪽) 앞에서 연행된

줄타기 물구나무서기 접시 돌리기 가면극 등의

전문적 연희

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에서는 가면극 분야에 대해 보

유자와 단체를 모두 지정하고 있으니 일본보다 지원이 좋은 편이다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을 민간문학 민간음악 민간무용 전통희극

곡예 잡기와 경기 민간미술 전통수공기예 전통의약 민속으로 분류

하여 지정하고 있다 중국 가면극인 나희는 전통희극 분야에 해당한다

한국에는 현재 국가 지정의 중요무형문화재 가면극 13종목 각 시도의

무형문화재 가면극 2종목(진주오광대와 퇴계원산대놀이)이 있다 중국

은 그동안 전통희극 분야에 430개 종목을 지정했는데 여기에 나희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노(能)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중요무형

민속문화재의 민속예능 분야에 35개의 가구라(神樂)를 지정했다 이 가

구라들은 대부분 민간의 가면극이다

Ⅱ 동아시아 가면극의 역사와 계통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면극은 매우 유사한 발전 과

정을 보인다 동아시아에는 (1)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과 (2)전

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이 있었다 (1)은 각 지역의 향촌제사

활동(鄕村祭祀活動)에서 연행되던 것으로서 각각 자생적 향토적 성격

을 띠고 있다 그러나 (2)는 산악(散樂) 또는 백희(百戱)라고 불리던 동아

시아 공동의 연희들이 발전하여 성립된 것으로서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함께 각국의 독자성을 띠고 있다

1 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하회별신굿탈놀이나 강릉관노가면

극처럼 향촌제사활동인 마을굿에서 유래하여 발전해 온 가면극들로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전승해 왔다 이 가면극들은 다른 지방의 가면극과

는 아주 다른 독자적 내용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가면극들이 마을굿에

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도판 1)

중국의 나희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지만 후대에는

그것이 민간에 전파되어 각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도 전승되고 있다 그

리고 중국 한족을 비롯하여 소수민족들에는 여러 향촌제사활동에서 유

래하여 그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가면극들도 있다(도판 2)

한편 일본의 고유 신앙을 섬기는 신사(神社)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연예술

인 가구라(神樂) 중에는 자생적인 민속가면극의 예를 보여 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국의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방마다 차이가 크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도판 3)

2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생겨난 가면

극이다 본산대놀이는 삼국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산악middot

백희 그리고 상고시대의 제천의식 등에서 연행되던 전문적 연희자들의

연희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해 형성된

것이다 산악middot백희를 놀았던 사람들은 그 연희 내용으로 볼 때 삼국시

대부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연희자였으며 이들의 후예가 통일신라시

대에 최치원의 시 lt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gt에 묘사된 다섯 가지 연

희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계승된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연행

된 가무백희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나례에서 연행된 산

대희 등을 놀았다 그리고 중국 사신 영접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

희를 펼치던 반인들이 18세기 전반기에 산악middot백희 계통의 연희와 기존

의 가면희들을 재창조해서 본산대놀이를 성립시켰다 이 가면극은 애오

개(아현) 사직골 구파발 녹번 등에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봉사도(奉使圖)》(1725년) 제7폭은 서울의 모화관 마당

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행사의 연희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접시 돌리

기 땅재주 줄타기 탈춤을 묘사하고 있다 마당의 오른쪽에는 산거(山

車)middot산붕(山棚)middot윤거(輪車)middot예산대(曳山臺)middot예산붕(曳山棚) 등으로 불

렀던 소규모의 산대가 보인다 바로 이런 산대 앞에서 공연하던 연희들

을 lsquo산대희rsquo라고 불렀다 특히 세 명의 땅재주꾼 양 옆에서 각각 두 명씩

모두 네 사람이 초록색과 남색의 가면을 쓰고 탈춤을 추고 있다 이는 서

울에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가면극이 있었고 그 가면극을 애오

개산대놀이 등 산대놀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전해준다(도판 4)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경기도의 송파산대놀이middot양주별산대놀이 황해

31 2

Ⅰ 동아시아 가면극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우리는 가면극을 탈춤 탈놀이 가면희 등으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가

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儺戱)라고 부

르는데 이는 중국 가면극들이 대부분 나례에서 연행되던 연희인 나희

로부터 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무형문화유

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middot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부터 한국은 1964년부터 중국은 2006년부터

무형문화재를 국가 차원에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

의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용어로 lsquo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rsquo이라

는 말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의 기예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lsquo보유자rsquo로 인정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lsquo전승인(傳承人)rsquo 일본에서는

lsquo보지자(保持者)rsquo라고 부른다

중국은 이제 막 무형문화재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작했지만 각 지역에

서 자기들의 무형문화재를 국가 지정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으로 등재하기 위

한 열기는 매우 뜨겁다 그리고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과 관련된 행사나 학술

대회도 자주 개최하고 있다 필자는 매년 중국의 가면극학회인 중국나

희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는데 가면극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들에서

는 이 학회를 유치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현지 답사를 통해 자기 지

역의 가면극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국가 지정의 무형문화재를 (1)중요무형문화재(연극 음

악 공예기술 등)와 (2)중요무형민속문화재(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

행사 등에 관한 풍속관습 민속예능)로 구분하여 지원한다 그래서 연극

분야 중 노(能) 가부키(歌舞伎) 등은 (1)에 해당하고 각 지방의 가구라

(神樂)는 (2)의 민속예능에 해당한다 (1)은 전문적인 연희자들이 전승하

는 종목으로서 그 기middot예능을 보유한 사람과 단체를 모두 지정한다 그

러나 (2)는 단체만 지정하고 보유자는 지정하지 않는다 이를 한국에 적

용하면 판소리는 (1)중요무형문화재(음악)에 가면극은 (2)중요무형민

속문화재(민속예능)에 해당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한국의 가면극들

은 대부분 각 지방에서 세시풍속의 하나로서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

日韓 中

4

28 29무형문화재 삼국지ㆍ예능

도의 봉산탈춤middot강령탈춤middot은율탈춤 경남의 수영야류middot동래야류middot통

영오광대middot고성오광대middot가산오광대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

본산대놀이는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했지만 여기에서 전파된 별산대

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 등은 농민 하급관속 무부(巫夫) 등 각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중국 가면의 역사에서 가면의

효시는 나례에 등장하던 방상시(方相氏) 가면이다 이 나례에서 연행되던

각종 연희와 가면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면극이 생겨났기 때문에 가면

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다른 계통의 가면은 육조(六朝)시대 이후 산악middot

백희에 사용되던 것으로 이는 서역악무(西域樂舞)의 영향을 받은 외래

기원의 가면이다 현재도 중국에는 귀주성의 나당희처럼 무당집단이 전

승하고 있는 나희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들은 전문적 연희자인 셈

이다(도판 5)

일본의 가면극은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서 육성된 가면극과

서민층에 의해 육성된 가면극이 있다 전자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예술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데 기가쿠(伎樂)middot

부가쿠(舞樂)middot교도(行道)middot노(能)middot교겐(狂言)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

데 노와 교겐은 특히 산악middot백희와 밀접한 관련 아래 성립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문화인 산악middot백희가 일본에 유입

된 이후 변화middot발전하여 후대에 일본의 대표적 전통연극인 노가쿠(能

樂)middot노쿄겐(能狂言)middot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middot가부키(歌舞伎) 등 전통연

극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산악middot백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 연희를 발전시켜 lsquo나희

(儺戱)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켰고 일본에서는 사루가쿠(猿樂) 즉 산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lsquo노(能)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킨 것처럼 한국에서도

중국 사신 영접 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반인(泮人)들이

lsquo본산대놀이rsquo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Ⅲ 동아시아 가면극의 연희 내용

한국의 가면극은 벽사적 의식무과장 파계승과장 양반과장 영감할미

과장 등 서로 다른 내용의 과장들로 짜여진 소위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

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면극을 탈춤이라고 부를 정도로 춤이 많

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춤사위가 매우 뛰어나다(도판

6) 일본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가구라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짜인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나희와 일본

의 노는 대부분 하나의 가면극이 하나의 서사적 내용으로 짜여 있다

이러한 서사성의 나희와 노도 또한 서로 차이점을 갖고 있는데 노는 lsquo현

재노(現在能)rsquo와 lsquo몽환노(夢幻能)rsquo가 있어 특징적이고 나희는 주로 노래와

대사에 의해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lsquo현재노rsquo는 현재형으로 사건이 전개

되는 노를 말한다 lsquo몽환노rsquo는 나그네(조연자인 와키가 분장)의 꿈 속에

망령이나 화신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몽환노에

서는 시간이 자유롭게 정지하고 역행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도 자유롭게

등장할 수가 있다 주연자는 고전 속의 미녀이거나 역사상 인물일 수도

있고 지옥의 원령이거나 신(神) 불(佛) 귀(鬼) 초목(草木)의 정령이기

도 하다

중국 나희에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 황제 왕 일반인물

등 배역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연희 내용도 의식적인 춤을 제외

하면 대부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를 연극화

하여 공연한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 가면극에서

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이 거의 없고 황제나 왕 같은 존재

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반 인물 위주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연희 내용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주로 현

실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한편 한middot중middot일의 가면 또한 각국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middot중middot일 가

면의 형태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 윗부분에 있다 한국 가면은 얼굴

의 이마 부분까지만 표현하고 있다 일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경우에

도 간단한 선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

을 안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낸다 모자를 쓰는 배역은 별도의 모자를 착

용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의 귀면(鬼面)인 팔먹중가면을 보면 오로

지 안면의 표정에 의해 무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 노나 가

구라의 가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가면은 대부분 머리 부분과

얼굴 부분을 모두 이용해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한다 가면 자체에

머리 부분의 모자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도판 7)

그리고 한middot중middot일의 음악적 선율과 장단이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음악에 맞춰 연기하고 춤을 추는 연희자들의 동작과 춤사위는 각국

가면극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

5 중국 귀주성 덕강현의 무당들이 공연하는 가면극인 〈나당희(儺堂戱)〉

6 춤사위가 매우 뛰어난 〈봉산탈춤〉의 팔먹중춤

7 중국 안휘성 지주의 나희 〈유문룡〉 가면 자체에 모자를 장식

7 5

6

30 31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충남middot서울시 문화재위원)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도판4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양푸시(楊福喜) 201598 필자 촬영

도판5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권영학 보유자 2015821 필자 촬영

도판6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故 김박영 보유자 서헌강 촬영

도판1 활 쏘며 수렵하는 장면 고구려 무용총

도판2 중국 고대 활과 화살 및 활쏘기 장면 전국시대 초(楚) 동호(銅壺)

도판3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일본

Ⅰ 한민족과 활

한국인에게 활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민족과 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중국인이 우리 민족을 부르

는 명칭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이다 lsquo이(夷)rsquo라는 글자는 큰 대(大)자

와 활 궁(弓)자가 결합되어 있다 동이라는 글자를 곧이곧대로 풀어보면

lsquo중국의 동쪽에서 살며 큰[大] 활[弓]을 잘 만들고 쏘는 민족rsquo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 미루어 이미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우

리 한민족이 그들 한족보다 활을 잘 다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반인뿐 아니라 왕도 활을 잘 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적 인물로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lsquo활 잘 쏘는 이rsquo의 대명사로 기

록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쏘았으며

사도세자의 아들로 유명한 정조 또한 활을 잘 쏜 국왕으로 기억된다

조선에서 활쏘기를 잘했던 이유는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심신을 단련

하는 육례(禮 樂 射 脚 書 數) 중 하나로 활쏘기가 장려된 데에도 원

인이 있다 조선에서는 국가 의례로 활쏘기 행사를 거행하였다 왕과

신하가 활 쏘는 대사례(大射禮)는 1477년(성종 8) 1534년(중종 29) 및

1743년(영조 19) 1764년(영조 45)에 군신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였다 한편 지방의 양반 사족들은 향약과 비슷한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양국의 활은

기본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청나라 시대의 그림을 보면 조선 말기 19세기에 활

을 쏘는 그림과 비교가 된다 두 나라의 사수(射手)는 각각 청나라와 조

선의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른 편이다 더욱

이 양자가 활을 쏘는 모습은 공통되면서 부분적으로 다르다 그림 속 중

국의 활은 150cm 정도여서 1m 안팎의 한국 활보다 길이가 긴 점이 다르

다 막상 양자에서 동시에 화살을 쏘면 날아가는 비거리는 후자가 훨씬

긴데 이렇게 그림에서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몇 년 전

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lt최종 병기 활gt이다 시대 배경은 병자호란 당

시 청나라 무사와 조선의 사수가 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영화화한 것

이다 비록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다소 활의 효능이 과장되긴 했지만

두 나라 활의 특징과 조선 활의 장점을 극명하게 잘 그려내어 흥미롭게

본 기억이 새롭다

한편 양국과 비교되는 것이 일본의 활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활은 전

체 길이가 220cm가 넘는 세계 최대 길이의 활이다 16세기 조선의 『난

중잡록』에 의하면 일본의 화살은 lsquo장편전(長編箭)rsquo이라 하여 여러 나라의

화살과 비교해서 일본의 화살이 매우 크다는 기록으로 이미 조선에서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활을 사용하는 일

본에서는 활을 잡는 위치도 특이하다 일본의 활은 장대하기 때문에 위

쪽이 길고 아래는 짧아서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그림을 보면 매우 긴 활

의 아래쪽을 잡고 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활

은 ldquo화살은 길지만 먼 곳까지는 날지 않는다rdquo라고 13세기의 몽고인이

기록하고 있어 비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가마쿠

라 시대에 들어가면 그 중량이 더욱 늘어나 70g에 이르면 길고 무거운

화살을 폭이 긴 활로 쏘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Ⅲ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활과 화살은 조총이나 대포 등과 같은 화기(火器)를 발명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중요했다 이에 각국은 국력을 모아 활과 화살을

제작하였다

이미 고려 때에 중앙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에 각궁장(角弓匠) 전장(箭

匠) 전두장(箭頭匠) 등의 장인을 소속시켜 각궁을 만들었다 또 궁중의

궁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내궁방(內宮房)에도 각궁장(角弓匠)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군기감(軍器監)을 설치 운영하였고 장인들을 소속시켜 활

과 화살을 제작하게 하였다 이들 장인은 다른 기술을 가진 장인과 달리

궁인(弓人)이나 시인(矢人)으로 불렀다 궁인과 시인이라는 명칭은 『논

어』에서 나오며 그들 장인은 다른 물건이 아닌 무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우대하여 부른 것이다 이에 조선은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면

서 궁인 90명 시인 150명을 배정하였다 아울러 이들 장인들은 각 지

방마다 상당수를 배정하였고 이 또한 여타의 다른 장인들에 비하여 많

은 숫자에 해당되었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장색과 규모는 영조대 『속대전』이나 정조대

『대전통편』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국가적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각종 300여 도감마다 수많은 궁인이

나 시인을 징발하여 의례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할 궁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사적인 공방에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김준근의 lt기산풍속화gt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궁창을 앞에 두고

줄과 환으로 일정하게 다듬은 쇠뿔과 뽕나무 등을 옆에 두고 완성된

각궁에 시위를 걸어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있다

청나라 말에 전통 활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lt시궁정력(試弓定力)gt에

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입식 건물 안에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너댓 개

의 활을 만들어 올려놓고 다 만든 활을 과학적으로 무게를 재고 있다

향사례(鄉射禮)를 거행하여 사족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활을 좋아하고 잘 다룬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역

사 동안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다른 종목보다 유달리

활(양궁)을 잘 쏘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한민족의 피 속

에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유전인자 DNA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Ⅱ 유물 속 동아시아의 활

인류는 이른 시기부터 멀리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자 무기로 활과 화살을 개발하였다 이후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

에 따라 궁시를 제작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

하였다 하지만 궁시는 대개 나무나 대나무와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

져 썩어 오래전의 유물을 확인하기 어렵고 단지 흑요석(黑曜石)처럼 단

단한 석제로 만든 화살촉에 의해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정복 전쟁이 빈번해지던 고대부터 무기가 발달하였다 당시에

사용된 활과 화살의 형태는 유물 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전국시대(BC 475~221) 동호(銅壺) 유물

을 보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한편

5세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lt수렵도gt에서 말 위에서 짐승들을

1

32

4

6

5

32 33무형문화재 삼국지ㆍ기능

양국의 활 제작방식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청나라 활 제작 장인 집단

은 북경 동사대가에 있는 궁전대원리(弓箭大院里)에 17가호의 궁전 점포

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squo취원호(聚元號)rsquo이다 이곳에서 중국 전통 활

을 제작했던 장인이 양뤼린(楊瑞林)이며 아들인 양원통(楊文通) 손자인

양푸시(楊福喜)까지 3대가 잇고 있다 양푸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활을 제작하여 2006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

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장인으로 보호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45년 앞선 1971년 9월 13일 전통 활 제작 장인

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으로 지정하였다 서울 황학

정의 장진섭(張鎭燮 1916~1996)은 조부(장문환)와 부친(장기홍)에 이

어 3대째 활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예천의 권영

록(權寧錄 1916~1986)은 부친(권태전 權泰全)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

었다 부천의 김장환(金章換 1909~1984)는 조부(김원재)와 부친(김

동천)의 대를 잇고 한국 제일가는 명사수로서 활동하고 부천 성무정의

초대 사두(1967~1982)가 되었다 그의 기술은 제자인 김박영(金博榮

1929~2011)이 전승하였다 그의 사후 2015년 권영학(1943년생)보유

자가 새로 인정되어 조부(권선복)와 부친(권우갑)의 가업을 이어 그 또

한 3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화살을 만드는 시장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시장)

으로 지정하였다 화살로 유명한 장단에서 나고 자란 유영기(1936년 그런데 세계적으로 강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활은 여기에 화피를 더

하여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물소 뿔(牛角) 쇠심줄(牛芯)

민어 부레풀(魚膠) 대나무 뽕나무(弓幹桑) 참나무 화피(樺皮)가 그것

이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는 각궁은 살

아있는 활이면서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쇠뿔은 통뼈이며 대나

무와 뽕나무 및 참나무가 세부 뼈대이고 그 위에 바르는 쇠심줄은 근

육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부레풀은 연골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다듬는

화피는 피부에 해당된다 이중 물소 뿔과 대나무 및 쇠심줄이 활의 강

도와 탄성을 이루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민

어 부레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은 1년 중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제작하여 계절을 타는 공예품인데 그 이유는 동식물성 재료

들이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아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심이 건

조가 안되고 풀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여름에는 재료를 장만하고 찬바람이 나면 풀을 대와 뼈와 나무를 서로

붙여 정월 경에 건조시키고 3월부터 한 달 이상 해궁 작업을 한다 각

궁은 제작이 까다롭고 단계마다 원칙을 지키고 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

해서 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궁의 핵심 원료인 물소는 주로 아열대 지방인 중국 남부나 인도 및 인

도차이나 등지에 서식하므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여서 중국은 물소 뿔의 수출을 엄격

하게 통제하였고 조선 정부는 그것을 몰래 수입하려고 애썼다 현재

도 각궁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의 수급은 어려움이 많다 물소는 세계적

인 보호동물이어서 물소 뿔을 수입할 때 세관의 통과가 어렵고 쇠심줄

은 근래 많은 소들이 일하면서 근육을 키우지 않고 육우용으로만 키워

져 탄성이 없어 활의 탄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접착제인 민어부

레의 경우 예전에는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근래에는 민어부레가 정

력에 좋다고 그것마저 식용으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한 활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488년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同越)은 ldquo조선에서 사용하는 화피궁은 중

국의 제도에 비하여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rdquo라

고 평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활은 중국 것보다 작으나 탄

성이 크고 강하다 우리의 시장들은 대나무로 화살대[矢幹]를 만들고

쇠로 활촉(雛)을 끼우며 수리깃으로 화살깃(矢羽)을 만든다 반면 중국

의 장인은 죽시와 함께 유목(楡木)으로 목시(木矢)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활은 대나무와 나무를 한데 결합한 복합궁이다 일본의 활

은 2m 이상으로 길고 무거워 탄성이 적어 근거리에는 위력이 높은 대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이면서 한middot중middot일

삼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각궁은 한국 장인들의 솜씨가

표출된 우수한 전통 공예기술로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생)는 조부(유창원)와 부친(유복삼)에 이어 3대를 잇고 그 아들 유세

현과 유승현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단 근처 원당에서 나고 자

란 박호준(1944년생)은 조부(박희원)와 부친(박상준)에 이어 3대째 가

업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김종국(1940년생)은 스승인 조명제(趙命濟

1915~1980)가 조부(조성관)와 부친(조면보)의 대를 이었던 것을 본받

아 예천에서 화살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12월 14일 부천활박물관을 세웠고 파주에는 유영기

보유자가 만든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반면 중국에는 2012년 신강의

이리에 성급(省級) 비물질문화재로 등록된 이청강(李靑岡)이 중화활문화

박물관(中華弓文化博物館)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로 활을 지

정하지 않아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이 전통적(傳統的) 공예품

(工藝品)으로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을 지정하였다 미야기현(宮崎県)에 위치

한 미야코노조(都城市)에 7대째 120년 전통의 활을 제작하는 활제작소

[楠見藏吉 弓製作所]가 위치하고 있다

Ⅳ 활과 화살의 재료

활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의 『고공기』에 의하면 나무[干 柘 橘 桑 木

瓜 竹 荊 등] 심줄[筋] 풀[膠 말 소 사슴 물소] 뿔[쇠뿔] 옻[漆]

명주실[絲]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은 뿔을 주재료로

삼은 각궁(角弓)인 것을 알 수 있다

도판10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故

김박영 보유자 제작 각궁(角弓)

도판11 중국 양푸시(楊福喜)가 제작한 활

1m 60cm

도판12 중국 양푸시(楊福喜) 화살[箭]

위 2개 느릅나무[楡木] 3번째

목전(木矢) 아래 2개 죽시(竹矢)

201598 필자 촬영

도판13 일본 미야기현(宮崎県)

미야코노조(都城市) 120년 전통

楠見藏吉 弓製作所

httpjotaro-gocomcollect2980

도판14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

지정(指定) 전통적(傳統的)

공예품(工藝品)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

httpjotaro-gocomcollect2980 참고

도판7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종국(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9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박호준(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7 8 9

11 10

12

13 14

34 35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ime a

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fter T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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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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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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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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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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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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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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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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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

U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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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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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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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15: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전경욱 (고려대학교 교수)

동아시아의 가면극1 중국 귀주성 위녕현의 〈춰타이지(撮泰吉)〉 가면극

풍농과 악귀 쫓기를 위해 기원하는 제의의 일부

2 한국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서낭신인 각시가

무동을 탄 모습

3 일본의 미야자키현(宮崎県) 시이바손(椎葉村)의

〈다케노에다오가구라(嶽之枝尾神楽)〉

4 《봉사도》제7폭 모화관에서 행해진 중국사신

영접행사의 연희장면 산대(왼쪽) 앞에서 연행된

줄타기 물구나무서기 접시 돌리기 가면극 등의

전문적 연희

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에서는 가면극 분야에 대해 보

유자와 단체를 모두 지정하고 있으니 일본보다 지원이 좋은 편이다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을 민간문학 민간음악 민간무용 전통희극

곡예 잡기와 경기 민간미술 전통수공기예 전통의약 민속으로 분류

하여 지정하고 있다 중국 가면극인 나희는 전통희극 분야에 해당한다

한국에는 현재 국가 지정의 중요무형문화재 가면극 13종목 각 시도의

무형문화재 가면극 2종목(진주오광대와 퇴계원산대놀이)이 있다 중국

은 그동안 전통희극 분야에 430개 종목을 지정했는데 여기에 나희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노(能)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중요무형

민속문화재의 민속예능 분야에 35개의 가구라(神樂)를 지정했다 이 가

구라들은 대부분 민간의 가면극이다

Ⅱ 동아시아 가면극의 역사와 계통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면극은 매우 유사한 발전 과

정을 보인다 동아시아에는 (1)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과 (2)전

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이 있었다 (1)은 각 지역의 향촌제사

활동(鄕村祭祀活動)에서 연행되던 것으로서 각각 자생적 향토적 성격

을 띠고 있다 그러나 (2)는 산악(散樂) 또는 백희(百戱)라고 불리던 동아

시아 공동의 연희들이 발전하여 성립된 것으로서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함께 각국의 독자성을 띠고 있다

1 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하회별신굿탈놀이나 강릉관노가면

극처럼 향촌제사활동인 마을굿에서 유래하여 발전해 온 가면극들로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전승해 왔다 이 가면극들은 다른 지방의 가면극과

는 아주 다른 독자적 내용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가면극들이 마을굿에

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도판 1)

중국의 나희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지만 후대에는

그것이 민간에 전파되어 각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도 전승되고 있다 그

리고 중국 한족을 비롯하여 소수민족들에는 여러 향촌제사활동에서 유

래하여 그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가면극들도 있다(도판 2)

한편 일본의 고유 신앙을 섬기는 신사(神社)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연예술

인 가구라(神樂) 중에는 자생적인 민속가면극의 예를 보여 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국의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방마다 차이가 크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도판 3)

2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lsquo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rsquo은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생겨난 가면

극이다 본산대놀이는 삼국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산악middot

백희 그리고 상고시대의 제천의식 등에서 연행되던 전문적 연희자들의

연희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해 형성된

것이다 산악middot백희를 놀았던 사람들은 그 연희 내용으로 볼 때 삼국시

대부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연희자였으며 이들의 후예가 통일신라시

대에 최치원의 시 lt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gt에 묘사된 다섯 가지 연

희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계승된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연행

된 가무백희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나례에서 연행된 산

대희 등을 놀았다 그리고 중국 사신 영접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

희를 펼치던 반인들이 18세기 전반기에 산악middot백희 계통의 연희와 기존

의 가면희들을 재창조해서 본산대놀이를 성립시켰다 이 가면극은 애오

개(아현) 사직골 구파발 녹번 등에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봉사도(奉使圖)》(1725년) 제7폭은 서울의 모화관 마당

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행사의 연희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접시 돌리

기 땅재주 줄타기 탈춤을 묘사하고 있다 마당의 오른쪽에는 산거(山

車)middot산붕(山棚)middot윤거(輪車)middot예산대(曳山臺)middot예산붕(曳山棚) 등으로 불

렀던 소규모의 산대가 보인다 바로 이런 산대 앞에서 공연하던 연희들

을 lsquo산대희rsquo라고 불렀다 특히 세 명의 땅재주꾼 양 옆에서 각각 두 명씩

모두 네 사람이 초록색과 남색의 가면을 쓰고 탈춤을 추고 있다 이는 서

울에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가면극이 있었고 그 가면극을 애오

개산대놀이 등 산대놀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전해준다(도판 4)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경기도의 송파산대놀이middot양주별산대놀이 황해

31 2

Ⅰ 동아시아 가면극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우리는 가면극을 탈춤 탈놀이 가면희 등으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가

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儺戱)라고 부

르는데 이는 중국 가면극들이 대부분 나례에서 연행되던 연희인 나희

로부터 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middot한국middot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무형문화유

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middot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부터 한국은 1964년부터 중국은 2006년부터

무형문화재를 국가 차원에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

의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용어로 lsquo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rsquo이라

는 말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의 기예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lsquo보유자rsquo로 인정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lsquo전승인(傳承人)rsquo 일본에서는

lsquo보지자(保持者)rsquo라고 부른다

중국은 이제 막 무형문화재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작했지만 각 지역에

서 자기들의 무형문화재를 국가 지정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으로 등재하기 위

한 열기는 매우 뜨겁다 그리고 lsquo비물질문화유산rsquo과 관련된 행사나 학술

대회도 자주 개최하고 있다 필자는 매년 중국의 가면극학회인 중국나

희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는데 가면극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들에서

는 이 학회를 유치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현지 답사를 통해 자기 지

역의 가면극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국가 지정의 무형문화재를 (1)중요무형문화재(연극 음

악 공예기술 등)와 (2)중요무형민속문화재(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

행사 등에 관한 풍속관습 민속예능)로 구분하여 지원한다 그래서 연극

분야 중 노(能) 가부키(歌舞伎) 등은 (1)에 해당하고 각 지방의 가구라

(神樂)는 (2)의 민속예능에 해당한다 (1)은 전문적인 연희자들이 전승하

는 종목으로서 그 기middot예능을 보유한 사람과 단체를 모두 지정한다 그

러나 (2)는 단체만 지정하고 보유자는 지정하지 않는다 이를 한국에 적

용하면 판소리는 (1)중요무형문화재(음악)에 가면극은 (2)중요무형민

속문화재(민속예능)에 해당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한국의 가면극들

은 대부분 각 지방에서 세시풍속의 하나로서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

日韓 中

4

28 29무형문화재 삼국지ㆍ예능

도의 봉산탈춤middot강령탈춤middot은율탈춤 경남의 수영야류middot동래야류middot통

영오광대middot고성오광대middot가산오광대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

본산대놀이는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했지만 여기에서 전파된 별산대

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 등은 농민 하급관속 무부(巫夫) 등 각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중국 가면의 역사에서 가면의

효시는 나례에 등장하던 방상시(方相氏) 가면이다 이 나례에서 연행되던

각종 연희와 가면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면극이 생겨났기 때문에 가면

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다른 계통의 가면은 육조(六朝)시대 이후 산악middot

백희에 사용되던 것으로 이는 서역악무(西域樂舞)의 영향을 받은 외래

기원의 가면이다 현재도 중국에는 귀주성의 나당희처럼 무당집단이 전

승하고 있는 나희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들은 전문적 연희자인 셈

이다(도판 5)

일본의 가면극은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서 육성된 가면극과

서민층에 의해 육성된 가면극이 있다 전자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예술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데 기가쿠(伎樂)middot

부가쿠(舞樂)middot교도(行道)middot노(能)middot교겐(狂言)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

데 노와 교겐은 특히 산악middot백희와 밀접한 관련 아래 성립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문화인 산악middot백희가 일본에 유입

된 이후 변화middot발전하여 후대에 일본의 대표적 전통연극인 노가쿠(能

樂)middot노쿄겐(能狂言)middot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middot가부키(歌舞伎) 등 전통연

극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산악middot백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 연희를 발전시켜 lsquo나희

(儺戱)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켰고 일본에서는 사루가쿠(猿樂) 즉 산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lsquo노(能)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킨 것처럼 한국에서도

중국 사신 영접 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반인(泮人)들이

lsquo본산대놀이rsquo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Ⅲ 동아시아 가면극의 연희 내용

한국의 가면극은 벽사적 의식무과장 파계승과장 양반과장 영감할미

과장 등 서로 다른 내용의 과장들로 짜여진 소위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

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면극을 탈춤이라고 부를 정도로 춤이 많

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춤사위가 매우 뛰어나다(도판

6) 일본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가구라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짜인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나희와 일본

의 노는 대부분 하나의 가면극이 하나의 서사적 내용으로 짜여 있다

이러한 서사성의 나희와 노도 또한 서로 차이점을 갖고 있는데 노는 lsquo현

재노(現在能)rsquo와 lsquo몽환노(夢幻能)rsquo가 있어 특징적이고 나희는 주로 노래와

대사에 의해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lsquo현재노rsquo는 현재형으로 사건이 전개

되는 노를 말한다 lsquo몽환노rsquo는 나그네(조연자인 와키가 분장)의 꿈 속에

망령이나 화신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몽환노에

서는 시간이 자유롭게 정지하고 역행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도 자유롭게

등장할 수가 있다 주연자는 고전 속의 미녀이거나 역사상 인물일 수도

있고 지옥의 원령이거나 신(神) 불(佛) 귀(鬼) 초목(草木)의 정령이기

도 하다

중국 나희에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 황제 왕 일반인물

등 배역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연희 내용도 의식적인 춤을 제외

하면 대부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를 연극화

하여 공연한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 가면극에서

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이 거의 없고 황제나 왕 같은 존재

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반 인물 위주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연희 내용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주로 현

실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한편 한middot중middot일의 가면 또한 각국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middot중middot일 가

면의 형태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 윗부분에 있다 한국 가면은 얼굴

의 이마 부분까지만 표현하고 있다 일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경우에

도 간단한 선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

을 안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낸다 모자를 쓰는 배역은 별도의 모자를 착

용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의 귀면(鬼面)인 팔먹중가면을 보면 오로

지 안면의 표정에 의해 무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 노나 가

구라의 가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가면은 대부분 머리 부분과

얼굴 부분을 모두 이용해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한다 가면 자체에

머리 부분의 모자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도판 7)

그리고 한middot중middot일의 음악적 선율과 장단이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음악에 맞춰 연기하고 춤을 추는 연희자들의 동작과 춤사위는 각국

가면극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

5 중국 귀주성 덕강현의 무당들이 공연하는 가면극인 〈나당희(儺堂戱)〉

6 춤사위가 매우 뛰어난 〈봉산탈춤〉의 팔먹중춤

7 중국 안휘성 지주의 나희 〈유문룡〉 가면 자체에 모자를 장식

7 5

6

30 31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충남middot서울시 문화재위원)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도판4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양푸시(楊福喜) 201598 필자 촬영

도판5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권영학 보유자 2015821 필자 촬영

도판6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故 김박영 보유자 서헌강 촬영

도판1 활 쏘며 수렵하는 장면 고구려 무용총

도판2 중국 고대 활과 화살 및 활쏘기 장면 전국시대 초(楚) 동호(銅壺)

도판3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일본

Ⅰ 한민족과 활

한국인에게 활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민족과 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중국인이 우리 민족을 부르

는 명칭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이다 lsquo이(夷)rsquo라는 글자는 큰 대(大)자

와 활 궁(弓)자가 결합되어 있다 동이라는 글자를 곧이곧대로 풀어보면

lsquo중국의 동쪽에서 살며 큰[大] 활[弓]을 잘 만들고 쏘는 민족rsquo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 미루어 이미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우

리 한민족이 그들 한족보다 활을 잘 다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반인뿐 아니라 왕도 활을 잘 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적 인물로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lsquo활 잘 쏘는 이rsquo의 대명사로 기

록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쏘았으며

사도세자의 아들로 유명한 정조 또한 활을 잘 쏜 국왕으로 기억된다

조선에서 활쏘기를 잘했던 이유는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심신을 단련

하는 육례(禮 樂 射 脚 書 數) 중 하나로 활쏘기가 장려된 데에도 원

인이 있다 조선에서는 국가 의례로 활쏘기 행사를 거행하였다 왕과

신하가 활 쏘는 대사례(大射禮)는 1477년(성종 8) 1534년(중종 29) 및

1743년(영조 19) 1764년(영조 45)에 군신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였다 한편 지방의 양반 사족들은 향약과 비슷한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양국의 활은

기본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청나라 시대의 그림을 보면 조선 말기 19세기에 활

을 쏘는 그림과 비교가 된다 두 나라의 사수(射手)는 각각 청나라와 조

선의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른 편이다 더욱

이 양자가 활을 쏘는 모습은 공통되면서 부분적으로 다르다 그림 속 중

국의 활은 150cm 정도여서 1m 안팎의 한국 활보다 길이가 긴 점이 다르

다 막상 양자에서 동시에 화살을 쏘면 날아가는 비거리는 후자가 훨씬

긴데 이렇게 그림에서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몇 년 전

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lt최종 병기 활gt이다 시대 배경은 병자호란 당

시 청나라 무사와 조선의 사수가 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영화화한 것

이다 비록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다소 활의 효능이 과장되긴 했지만

두 나라 활의 특징과 조선 활의 장점을 극명하게 잘 그려내어 흥미롭게

본 기억이 새롭다

한편 양국과 비교되는 것이 일본의 활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활은 전

체 길이가 220cm가 넘는 세계 최대 길이의 활이다 16세기 조선의 『난

중잡록』에 의하면 일본의 화살은 lsquo장편전(長編箭)rsquo이라 하여 여러 나라의

화살과 비교해서 일본의 화살이 매우 크다는 기록으로 이미 조선에서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활을 사용하는 일

본에서는 활을 잡는 위치도 특이하다 일본의 활은 장대하기 때문에 위

쪽이 길고 아래는 짧아서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그림을 보면 매우 긴 활

의 아래쪽을 잡고 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활

은 ldquo화살은 길지만 먼 곳까지는 날지 않는다rdquo라고 13세기의 몽고인이

기록하고 있어 비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가마쿠

라 시대에 들어가면 그 중량이 더욱 늘어나 70g에 이르면 길고 무거운

화살을 폭이 긴 활로 쏘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Ⅲ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활과 화살은 조총이나 대포 등과 같은 화기(火器)를 발명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중요했다 이에 각국은 국력을 모아 활과 화살을

제작하였다

이미 고려 때에 중앙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에 각궁장(角弓匠) 전장(箭

匠) 전두장(箭頭匠) 등의 장인을 소속시켜 각궁을 만들었다 또 궁중의

궁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내궁방(內宮房)에도 각궁장(角弓匠)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군기감(軍器監)을 설치 운영하였고 장인들을 소속시켜 활

과 화살을 제작하게 하였다 이들 장인은 다른 기술을 가진 장인과 달리

궁인(弓人)이나 시인(矢人)으로 불렀다 궁인과 시인이라는 명칭은 『논

어』에서 나오며 그들 장인은 다른 물건이 아닌 무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우대하여 부른 것이다 이에 조선은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면

서 궁인 90명 시인 150명을 배정하였다 아울러 이들 장인들은 각 지

방마다 상당수를 배정하였고 이 또한 여타의 다른 장인들에 비하여 많

은 숫자에 해당되었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장색과 규모는 영조대 『속대전』이나 정조대

『대전통편』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국가적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각종 300여 도감마다 수많은 궁인이

나 시인을 징발하여 의례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할 궁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사적인 공방에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김준근의 lt기산풍속화gt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궁창을 앞에 두고

줄과 환으로 일정하게 다듬은 쇠뿔과 뽕나무 등을 옆에 두고 완성된

각궁에 시위를 걸어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있다

청나라 말에 전통 활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lt시궁정력(試弓定力)gt에

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입식 건물 안에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너댓 개

의 활을 만들어 올려놓고 다 만든 활을 과학적으로 무게를 재고 있다

향사례(鄉射禮)를 거행하여 사족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활을 좋아하고 잘 다룬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역

사 동안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다른 종목보다 유달리

활(양궁)을 잘 쏘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한민족의 피 속

에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유전인자 DNA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Ⅱ 유물 속 동아시아의 활

인류는 이른 시기부터 멀리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자 무기로 활과 화살을 개발하였다 이후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

에 따라 궁시를 제작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

하였다 하지만 궁시는 대개 나무나 대나무와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

져 썩어 오래전의 유물을 확인하기 어렵고 단지 흑요석(黑曜石)처럼 단

단한 석제로 만든 화살촉에 의해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정복 전쟁이 빈번해지던 고대부터 무기가 발달하였다 당시에

사용된 활과 화살의 형태는 유물 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전국시대(BC 475~221) 동호(銅壺) 유물

을 보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한편

5세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lt수렵도gt에서 말 위에서 짐승들을

1

32

4

6

5

32 33무형문화재 삼국지ㆍ기능

양국의 활 제작방식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청나라 활 제작 장인 집단

은 북경 동사대가에 있는 궁전대원리(弓箭大院里)에 17가호의 궁전 점포

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squo취원호(聚元號)rsquo이다 이곳에서 중국 전통 활

을 제작했던 장인이 양뤼린(楊瑞林)이며 아들인 양원통(楊文通) 손자인

양푸시(楊福喜)까지 3대가 잇고 있다 양푸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활을 제작하여 2006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

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장인으로 보호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45년 앞선 1971년 9월 13일 전통 활 제작 장인

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으로 지정하였다 서울 황학

정의 장진섭(張鎭燮 1916~1996)은 조부(장문환)와 부친(장기홍)에 이

어 3대째 활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예천의 권영

록(權寧錄 1916~1986)은 부친(권태전 權泰全)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

었다 부천의 김장환(金章換 1909~1984)는 조부(김원재)와 부친(김

동천)의 대를 잇고 한국 제일가는 명사수로서 활동하고 부천 성무정의

초대 사두(1967~1982)가 되었다 그의 기술은 제자인 김박영(金博榮

1929~2011)이 전승하였다 그의 사후 2015년 권영학(1943년생)보유

자가 새로 인정되어 조부(권선복)와 부친(권우갑)의 가업을 이어 그 또

한 3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화살을 만드는 시장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시장)

으로 지정하였다 화살로 유명한 장단에서 나고 자란 유영기(1936년 그런데 세계적으로 강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활은 여기에 화피를 더

하여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물소 뿔(牛角) 쇠심줄(牛芯)

민어 부레풀(魚膠) 대나무 뽕나무(弓幹桑) 참나무 화피(樺皮)가 그것

이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는 각궁은 살

아있는 활이면서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쇠뿔은 통뼈이며 대나

무와 뽕나무 및 참나무가 세부 뼈대이고 그 위에 바르는 쇠심줄은 근

육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부레풀은 연골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다듬는

화피는 피부에 해당된다 이중 물소 뿔과 대나무 및 쇠심줄이 활의 강

도와 탄성을 이루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민

어 부레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은 1년 중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제작하여 계절을 타는 공예품인데 그 이유는 동식물성 재료

들이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아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심이 건

조가 안되고 풀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여름에는 재료를 장만하고 찬바람이 나면 풀을 대와 뼈와 나무를 서로

붙여 정월 경에 건조시키고 3월부터 한 달 이상 해궁 작업을 한다 각

궁은 제작이 까다롭고 단계마다 원칙을 지키고 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

해서 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궁의 핵심 원료인 물소는 주로 아열대 지방인 중국 남부나 인도 및 인

도차이나 등지에 서식하므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여서 중국은 물소 뿔의 수출을 엄격

하게 통제하였고 조선 정부는 그것을 몰래 수입하려고 애썼다 현재

도 각궁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의 수급은 어려움이 많다 물소는 세계적

인 보호동물이어서 물소 뿔을 수입할 때 세관의 통과가 어렵고 쇠심줄

은 근래 많은 소들이 일하면서 근육을 키우지 않고 육우용으로만 키워

져 탄성이 없어 활의 탄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접착제인 민어부

레의 경우 예전에는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근래에는 민어부레가 정

력에 좋다고 그것마저 식용으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한 활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488년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同越)은 ldquo조선에서 사용하는 화피궁은 중

국의 제도에 비하여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rdquo라

고 평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활은 중국 것보다 작으나 탄

성이 크고 강하다 우리의 시장들은 대나무로 화살대[矢幹]를 만들고

쇠로 활촉(雛)을 끼우며 수리깃으로 화살깃(矢羽)을 만든다 반면 중국

의 장인은 죽시와 함께 유목(楡木)으로 목시(木矢)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활은 대나무와 나무를 한데 결합한 복합궁이다 일본의 활

은 2m 이상으로 길고 무거워 탄성이 적어 근거리에는 위력이 높은 대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이면서 한middot중middot일

삼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각궁은 한국 장인들의 솜씨가

표출된 우수한 전통 공예기술로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생)는 조부(유창원)와 부친(유복삼)에 이어 3대를 잇고 그 아들 유세

현과 유승현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단 근처 원당에서 나고 자

란 박호준(1944년생)은 조부(박희원)와 부친(박상준)에 이어 3대째 가

업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김종국(1940년생)은 스승인 조명제(趙命濟

1915~1980)가 조부(조성관)와 부친(조면보)의 대를 이었던 것을 본받

아 예천에서 화살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12월 14일 부천활박물관을 세웠고 파주에는 유영기

보유자가 만든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반면 중국에는 2012년 신강의

이리에 성급(省級) 비물질문화재로 등록된 이청강(李靑岡)이 중화활문화

박물관(中華弓文化博物館)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로 활을 지

정하지 않아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이 전통적(傳統的) 공예품

(工藝品)으로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을 지정하였다 미야기현(宮崎県)에 위치

한 미야코노조(都城市)에 7대째 120년 전통의 활을 제작하는 활제작소

[楠見藏吉 弓製作所]가 위치하고 있다

Ⅳ 활과 화살의 재료

활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의 『고공기』에 의하면 나무[干 柘 橘 桑 木

瓜 竹 荊 등] 심줄[筋] 풀[膠 말 소 사슴 물소] 뿔[쇠뿔] 옻[漆]

명주실[絲]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은 뿔을 주재료로

삼은 각궁(角弓)인 것을 알 수 있다

도판10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故

김박영 보유자 제작 각궁(角弓)

도판11 중국 양푸시(楊福喜)가 제작한 활

1m 60cm

도판12 중국 양푸시(楊福喜) 화살[箭]

위 2개 느릅나무[楡木] 3번째

목전(木矢) 아래 2개 죽시(竹矢)

201598 필자 촬영

도판13 일본 미야기현(宮崎県)

미야코노조(都城市) 120년 전통

楠見藏吉 弓製作所

httpjotaro-gocomcollect2980

도판14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

지정(指定) 전통적(傳統的)

공예품(工藝品)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

httpjotaro-gocomcollect2980 참고

도판7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종국(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9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박호준(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7 8 9

11 10

12

13 14

34 35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ime a

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fter Tim

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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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

1920

21

2223

2425

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16: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도의 봉산탈춤middot강령탈춤middot은율탈춤 경남의 수영야류middot동래야류middot통

영오광대middot고성오광대middot가산오광대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

본산대놀이는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했지만 여기에서 전파된 별산대

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 등은 농민 하급관속 무부(巫夫) 등 각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중국 가면의 역사에서 가면의

효시는 나례에 등장하던 방상시(方相氏) 가면이다 이 나례에서 연행되던

각종 연희와 가면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면극이 생겨났기 때문에 가면

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다른 계통의 가면은 육조(六朝)시대 이후 산악middot

백희에 사용되던 것으로 이는 서역악무(西域樂舞)의 영향을 받은 외래

기원의 가면이다 현재도 중국에는 귀주성의 나당희처럼 무당집단이 전

승하고 있는 나희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들은 전문적 연희자인 셈

이다(도판 5)

일본의 가면극은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서 육성된 가면극과

서민층에 의해 육성된 가면극이 있다 전자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예술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데 기가쿠(伎樂)middot

부가쿠(舞樂)middot교도(行道)middot노(能)middot교겐(狂言)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

데 노와 교겐은 특히 산악middot백희와 밀접한 관련 아래 성립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문화인 산악middot백희가 일본에 유입

된 이후 변화middot발전하여 후대에 일본의 대표적 전통연극인 노가쿠(能

樂)middot노쿄겐(能狂言)middot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middot가부키(歌舞伎) 등 전통연

극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산악middot백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 연희를 발전시켜 lsquo나희

(儺戱)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켰고 일본에서는 사루가쿠(猿樂) 즉 산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lsquo노(能)rsquo라는 가면극을 성립시킨 것처럼 한국에서도

중국 사신 영접 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반인(泮人)들이

lsquo본산대놀이rsquo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Ⅲ 동아시아 가면극의 연희 내용

한국의 가면극은 벽사적 의식무과장 파계승과장 양반과장 영감할미

과장 등 서로 다른 내용의 과장들로 짜여진 소위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

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면극을 탈춤이라고 부를 정도로 춤이 많

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춤사위가 매우 뛰어나다(도판

6) 일본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가구라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짜인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나희와 일본

의 노는 대부분 하나의 가면극이 하나의 서사적 내용으로 짜여 있다

이러한 서사성의 나희와 노도 또한 서로 차이점을 갖고 있는데 노는 lsquo현

재노(現在能)rsquo와 lsquo몽환노(夢幻能)rsquo가 있어 특징적이고 나희는 주로 노래와

대사에 의해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lsquo현재노rsquo는 현재형으로 사건이 전개

되는 노를 말한다 lsquo몽환노rsquo는 나그네(조연자인 와키가 분장)의 꿈 속에

망령이나 화신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몽환노에

서는 시간이 자유롭게 정지하고 역행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도 자유롭게

등장할 수가 있다 주연자는 고전 속의 미녀이거나 역사상 인물일 수도

있고 지옥의 원령이거나 신(神) 불(佛) 귀(鬼) 초목(草木)의 정령이기

도 하다

중국 나희에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 황제 왕 일반인물

등 배역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연희 내용도 의식적인 춤을 제외

하면 대부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를 연극화

하여 공연한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 가면극에서

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이 거의 없고 황제나 왕 같은 존재

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반 인물 위주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연희 내용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주로 현

실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한편 한middot중middot일의 가면 또한 각국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middot중middot일 가

면의 형태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 윗부분에 있다 한국 가면은 얼굴

의 이마 부분까지만 표현하고 있다 일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경우에

도 간단한 선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

을 안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낸다 모자를 쓰는 배역은 별도의 모자를 착

용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의 귀면(鬼面)인 팔먹중가면을 보면 오로

지 안면의 표정에 의해 무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 노나 가

구라의 가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가면은 대부분 머리 부분과

얼굴 부분을 모두 이용해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한다 가면 자체에

머리 부분의 모자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도판 7)

그리고 한middot중middot일의 음악적 선율과 장단이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음악에 맞춰 연기하고 춤을 추는 연희자들의 동작과 춤사위는 각국

가면극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

5 중국 귀주성 덕강현의 무당들이 공연하는 가면극인 〈나당희(儺堂戱)〉

6 춤사위가 매우 뛰어난 〈봉산탈춤〉의 팔먹중춤

7 중국 안휘성 지주의 나희 〈유문룡〉 가면 자체에 모자를 장식

7 5

6

30 31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충남middot서울시 문화재위원)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도판4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양푸시(楊福喜) 201598 필자 촬영

도판5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권영학 보유자 2015821 필자 촬영

도판6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故 김박영 보유자 서헌강 촬영

도판1 활 쏘며 수렵하는 장면 고구려 무용총

도판2 중국 고대 활과 화살 및 활쏘기 장면 전국시대 초(楚) 동호(銅壺)

도판3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일본

Ⅰ 한민족과 활

한국인에게 활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민족과 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중국인이 우리 민족을 부르

는 명칭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이다 lsquo이(夷)rsquo라는 글자는 큰 대(大)자

와 활 궁(弓)자가 결합되어 있다 동이라는 글자를 곧이곧대로 풀어보면

lsquo중국의 동쪽에서 살며 큰[大] 활[弓]을 잘 만들고 쏘는 민족rsquo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 미루어 이미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우

리 한민족이 그들 한족보다 활을 잘 다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반인뿐 아니라 왕도 활을 잘 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적 인물로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lsquo활 잘 쏘는 이rsquo의 대명사로 기

록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쏘았으며

사도세자의 아들로 유명한 정조 또한 활을 잘 쏜 국왕으로 기억된다

조선에서 활쏘기를 잘했던 이유는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심신을 단련

하는 육례(禮 樂 射 脚 書 數) 중 하나로 활쏘기가 장려된 데에도 원

인이 있다 조선에서는 국가 의례로 활쏘기 행사를 거행하였다 왕과

신하가 활 쏘는 대사례(大射禮)는 1477년(성종 8) 1534년(중종 29) 및

1743년(영조 19) 1764년(영조 45)에 군신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였다 한편 지방의 양반 사족들은 향약과 비슷한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양국의 활은

기본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청나라 시대의 그림을 보면 조선 말기 19세기에 활

을 쏘는 그림과 비교가 된다 두 나라의 사수(射手)는 각각 청나라와 조

선의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른 편이다 더욱

이 양자가 활을 쏘는 모습은 공통되면서 부분적으로 다르다 그림 속 중

국의 활은 150cm 정도여서 1m 안팎의 한국 활보다 길이가 긴 점이 다르

다 막상 양자에서 동시에 화살을 쏘면 날아가는 비거리는 후자가 훨씬

긴데 이렇게 그림에서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몇 년 전

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lt최종 병기 활gt이다 시대 배경은 병자호란 당

시 청나라 무사와 조선의 사수가 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영화화한 것

이다 비록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다소 활의 효능이 과장되긴 했지만

두 나라 활의 특징과 조선 활의 장점을 극명하게 잘 그려내어 흥미롭게

본 기억이 새롭다

한편 양국과 비교되는 것이 일본의 활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활은 전

체 길이가 220cm가 넘는 세계 최대 길이의 활이다 16세기 조선의 『난

중잡록』에 의하면 일본의 화살은 lsquo장편전(長編箭)rsquo이라 하여 여러 나라의

화살과 비교해서 일본의 화살이 매우 크다는 기록으로 이미 조선에서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활을 사용하는 일

본에서는 활을 잡는 위치도 특이하다 일본의 활은 장대하기 때문에 위

쪽이 길고 아래는 짧아서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그림을 보면 매우 긴 활

의 아래쪽을 잡고 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활

은 ldquo화살은 길지만 먼 곳까지는 날지 않는다rdquo라고 13세기의 몽고인이

기록하고 있어 비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가마쿠

라 시대에 들어가면 그 중량이 더욱 늘어나 70g에 이르면 길고 무거운

화살을 폭이 긴 활로 쏘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Ⅲ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활과 화살은 조총이나 대포 등과 같은 화기(火器)를 발명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중요했다 이에 각국은 국력을 모아 활과 화살을

제작하였다

이미 고려 때에 중앙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에 각궁장(角弓匠) 전장(箭

匠) 전두장(箭頭匠) 등의 장인을 소속시켜 각궁을 만들었다 또 궁중의

궁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내궁방(內宮房)에도 각궁장(角弓匠)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군기감(軍器監)을 설치 운영하였고 장인들을 소속시켜 활

과 화살을 제작하게 하였다 이들 장인은 다른 기술을 가진 장인과 달리

궁인(弓人)이나 시인(矢人)으로 불렀다 궁인과 시인이라는 명칭은 『논

어』에서 나오며 그들 장인은 다른 물건이 아닌 무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우대하여 부른 것이다 이에 조선은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면

서 궁인 90명 시인 150명을 배정하였다 아울러 이들 장인들은 각 지

방마다 상당수를 배정하였고 이 또한 여타의 다른 장인들에 비하여 많

은 숫자에 해당되었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장색과 규모는 영조대 『속대전』이나 정조대

『대전통편』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국가적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각종 300여 도감마다 수많은 궁인이

나 시인을 징발하여 의례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할 궁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사적인 공방에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김준근의 lt기산풍속화gt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궁창을 앞에 두고

줄과 환으로 일정하게 다듬은 쇠뿔과 뽕나무 등을 옆에 두고 완성된

각궁에 시위를 걸어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있다

청나라 말에 전통 활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lt시궁정력(試弓定力)gt에

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입식 건물 안에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너댓 개

의 활을 만들어 올려놓고 다 만든 활을 과학적으로 무게를 재고 있다

향사례(鄉射禮)를 거행하여 사족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활을 좋아하고 잘 다룬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역

사 동안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다른 종목보다 유달리

활(양궁)을 잘 쏘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한민족의 피 속

에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유전인자 DNA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Ⅱ 유물 속 동아시아의 활

인류는 이른 시기부터 멀리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자 무기로 활과 화살을 개발하였다 이후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

에 따라 궁시를 제작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

하였다 하지만 궁시는 대개 나무나 대나무와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

져 썩어 오래전의 유물을 확인하기 어렵고 단지 흑요석(黑曜石)처럼 단

단한 석제로 만든 화살촉에 의해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정복 전쟁이 빈번해지던 고대부터 무기가 발달하였다 당시에

사용된 활과 화살의 형태는 유물 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전국시대(BC 475~221) 동호(銅壺) 유물

을 보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한편

5세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lt수렵도gt에서 말 위에서 짐승들을

1

32

4

6

5

32 33무형문화재 삼국지ㆍ기능

양국의 활 제작방식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청나라 활 제작 장인 집단

은 북경 동사대가에 있는 궁전대원리(弓箭大院里)에 17가호의 궁전 점포

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squo취원호(聚元號)rsquo이다 이곳에서 중국 전통 활

을 제작했던 장인이 양뤼린(楊瑞林)이며 아들인 양원통(楊文通) 손자인

양푸시(楊福喜)까지 3대가 잇고 있다 양푸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활을 제작하여 2006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

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장인으로 보호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45년 앞선 1971년 9월 13일 전통 활 제작 장인

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으로 지정하였다 서울 황학

정의 장진섭(張鎭燮 1916~1996)은 조부(장문환)와 부친(장기홍)에 이

어 3대째 활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예천의 권영

록(權寧錄 1916~1986)은 부친(권태전 權泰全)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

었다 부천의 김장환(金章換 1909~1984)는 조부(김원재)와 부친(김

동천)의 대를 잇고 한국 제일가는 명사수로서 활동하고 부천 성무정의

초대 사두(1967~1982)가 되었다 그의 기술은 제자인 김박영(金博榮

1929~2011)이 전승하였다 그의 사후 2015년 권영학(1943년생)보유

자가 새로 인정되어 조부(권선복)와 부친(권우갑)의 가업을 이어 그 또

한 3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화살을 만드는 시장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시장)

으로 지정하였다 화살로 유명한 장단에서 나고 자란 유영기(1936년 그런데 세계적으로 강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활은 여기에 화피를 더

하여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물소 뿔(牛角) 쇠심줄(牛芯)

민어 부레풀(魚膠) 대나무 뽕나무(弓幹桑) 참나무 화피(樺皮)가 그것

이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는 각궁은 살

아있는 활이면서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쇠뿔은 통뼈이며 대나

무와 뽕나무 및 참나무가 세부 뼈대이고 그 위에 바르는 쇠심줄은 근

육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부레풀은 연골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다듬는

화피는 피부에 해당된다 이중 물소 뿔과 대나무 및 쇠심줄이 활의 강

도와 탄성을 이루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민

어 부레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은 1년 중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제작하여 계절을 타는 공예품인데 그 이유는 동식물성 재료

들이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아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심이 건

조가 안되고 풀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여름에는 재료를 장만하고 찬바람이 나면 풀을 대와 뼈와 나무를 서로

붙여 정월 경에 건조시키고 3월부터 한 달 이상 해궁 작업을 한다 각

궁은 제작이 까다롭고 단계마다 원칙을 지키고 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

해서 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궁의 핵심 원료인 물소는 주로 아열대 지방인 중국 남부나 인도 및 인

도차이나 등지에 서식하므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여서 중국은 물소 뿔의 수출을 엄격

하게 통제하였고 조선 정부는 그것을 몰래 수입하려고 애썼다 현재

도 각궁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의 수급은 어려움이 많다 물소는 세계적

인 보호동물이어서 물소 뿔을 수입할 때 세관의 통과가 어렵고 쇠심줄

은 근래 많은 소들이 일하면서 근육을 키우지 않고 육우용으로만 키워

져 탄성이 없어 활의 탄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접착제인 민어부

레의 경우 예전에는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근래에는 민어부레가 정

력에 좋다고 그것마저 식용으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한 활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488년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同越)은 ldquo조선에서 사용하는 화피궁은 중

국의 제도에 비하여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rdquo라

고 평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활은 중국 것보다 작으나 탄

성이 크고 강하다 우리의 시장들은 대나무로 화살대[矢幹]를 만들고

쇠로 활촉(雛)을 끼우며 수리깃으로 화살깃(矢羽)을 만든다 반면 중국

의 장인은 죽시와 함께 유목(楡木)으로 목시(木矢)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활은 대나무와 나무를 한데 결합한 복합궁이다 일본의 활

은 2m 이상으로 길고 무거워 탄성이 적어 근거리에는 위력이 높은 대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이면서 한middot중middot일

삼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각궁은 한국 장인들의 솜씨가

표출된 우수한 전통 공예기술로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생)는 조부(유창원)와 부친(유복삼)에 이어 3대를 잇고 그 아들 유세

현과 유승현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단 근처 원당에서 나고 자

란 박호준(1944년생)은 조부(박희원)와 부친(박상준)에 이어 3대째 가

업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김종국(1940년생)은 스승인 조명제(趙命濟

1915~1980)가 조부(조성관)와 부친(조면보)의 대를 이었던 것을 본받

아 예천에서 화살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12월 14일 부천활박물관을 세웠고 파주에는 유영기

보유자가 만든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반면 중국에는 2012년 신강의

이리에 성급(省級) 비물질문화재로 등록된 이청강(李靑岡)이 중화활문화

박물관(中華弓文化博物館)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로 활을 지

정하지 않아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이 전통적(傳統的) 공예품

(工藝品)으로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을 지정하였다 미야기현(宮崎県)에 위치

한 미야코노조(都城市)에 7대째 120년 전통의 활을 제작하는 활제작소

[楠見藏吉 弓製作所]가 위치하고 있다

Ⅳ 활과 화살의 재료

활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의 『고공기』에 의하면 나무[干 柘 橘 桑 木

瓜 竹 荊 등] 심줄[筋] 풀[膠 말 소 사슴 물소] 뿔[쇠뿔] 옻[漆]

명주실[絲]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은 뿔을 주재료로

삼은 각궁(角弓)인 것을 알 수 있다

도판10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故

김박영 보유자 제작 각궁(角弓)

도판11 중국 양푸시(楊福喜)가 제작한 활

1m 60cm

도판12 중국 양푸시(楊福喜) 화살[箭]

위 2개 느릅나무[楡木] 3번째

목전(木矢) 아래 2개 죽시(竹矢)

201598 필자 촬영

도판13 일본 미야기현(宮崎県)

미야코노조(都城市) 120년 전통

楠見藏吉 弓製作所

httpjotaro-gocomcollect2980

도판14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

지정(指定) 전통적(傳統的)

공예품(工藝品)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

httpjotaro-gocomcollect2980 참고

도판7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종국(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9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박호준(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7 8 9

11 10

12

13 14

34 35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ime a

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fter Tim

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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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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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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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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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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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17: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충남middot서울시 문화재위원)

동아시아의 활과 화살

도판4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양푸시(楊福喜) 201598 필자 촬영

도판5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권영학 보유자 2015821 필자 촬영

도판6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 故 김박영 보유자 서헌강 촬영

도판1 활 쏘며 수렵하는 장면 고구려 무용총

도판2 중국 고대 활과 화살 및 활쏘기 장면 전국시대 초(楚) 동호(銅壺)

도판3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일본

Ⅰ 한민족과 활

한국인에게 활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민족과 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중국인이 우리 민족을 부르

는 명칭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이다 lsquo이(夷)rsquo라는 글자는 큰 대(大)자

와 활 궁(弓)자가 결합되어 있다 동이라는 글자를 곧이곧대로 풀어보면

lsquo중국의 동쪽에서 살며 큰[大] 활[弓]을 잘 만들고 쏘는 민족rsquo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 미루어 이미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우

리 한민족이 그들 한족보다 활을 잘 다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반인뿐 아니라 왕도 활을 잘 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적 인물로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lsquo활 잘 쏘는 이rsquo의 대명사로 기

록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쏘았으며

사도세자의 아들로 유명한 정조 또한 활을 잘 쏜 국왕으로 기억된다

조선에서 활쏘기를 잘했던 이유는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심신을 단련

하는 육례(禮 樂 射 脚 書 數) 중 하나로 활쏘기가 장려된 데에도 원

인이 있다 조선에서는 국가 의례로 활쏘기 행사를 거행하였다 왕과

신하가 활 쏘는 대사례(大射禮)는 1477년(성종 8) 1534년(중종 29) 및

1743년(영조 19) 1764년(영조 45)에 군신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였다 한편 지방의 양반 사족들은 향약과 비슷한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양국의 활은

기본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청나라 시대의 그림을 보면 조선 말기 19세기에 활

을 쏘는 그림과 비교가 된다 두 나라의 사수(射手)는 각각 청나라와 조

선의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른 편이다 더욱

이 양자가 활을 쏘는 모습은 공통되면서 부분적으로 다르다 그림 속 중

국의 활은 150cm 정도여서 1m 안팎의 한국 활보다 길이가 긴 점이 다르

다 막상 양자에서 동시에 화살을 쏘면 날아가는 비거리는 후자가 훨씬

긴데 이렇게 그림에서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몇 년 전

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lt최종 병기 활gt이다 시대 배경은 병자호란 당

시 청나라 무사와 조선의 사수가 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영화화한 것

이다 비록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다소 활의 효능이 과장되긴 했지만

두 나라 활의 특징과 조선 활의 장점을 극명하게 잘 그려내어 흥미롭게

본 기억이 새롭다

한편 양국과 비교되는 것이 일본의 활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활은 전

체 길이가 220cm가 넘는 세계 최대 길이의 활이다 16세기 조선의 『난

중잡록』에 의하면 일본의 화살은 lsquo장편전(長編箭)rsquo이라 하여 여러 나라의

화살과 비교해서 일본의 화살이 매우 크다는 기록으로 이미 조선에서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활을 사용하는 일

본에서는 활을 잡는 위치도 특이하다 일본의 활은 장대하기 때문에 위

쪽이 길고 아래는 짧아서 헤이안 시대의 활쏘기 그림을 보면 매우 긴 활

의 아래쪽을 잡고 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활

은 ldquo화살은 길지만 먼 곳까지는 날지 않는다rdquo라고 13세기의 몽고인이

기록하고 있어 비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가마쿠

라 시대에 들어가면 그 중량이 더욱 늘어나 70g에 이르면 길고 무거운

화살을 폭이 긴 활로 쏘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Ⅲ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활과 화살은 조총이나 대포 등과 같은 화기(火器)를 발명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중요했다 이에 각국은 국력을 모아 활과 화살을

제작하였다

이미 고려 때에 중앙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에 각궁장(角弓匠) 전장(箭

匠) 전두장(箭頭匠) 등의 장인을 소속시켜 각궁을 만들었다 또 궁중의

궁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내궁방(內宮房)에도 각궁장(角弓匠)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군기감(軍器監)을 설치 운영하였고 장인들을 소속시켜 활

과 화살을 제작하게 하였다 이들 장인은 다른 기술을 가진 장인과 달리

궁인(弓人)이나 시인(矢人)으로 불렀다 궁인과 시인이라는 명칭은 『논

어』에서 나오며 그들 장인은 다른 물건이 아닌 무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우대하여 부른 것이다 이에 조선은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면

서 궁인 90명 시인 150명을 배정하였다 아울러 이들 장인들은 각 지

방마다 상당수를 배정하였고 이 또한 여타의 다른 장인들에 비하여 많

은 숫자에 해당되었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장색과 규모는 영조대 『속대전』이나 정조대

『대전통편』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국가적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각종 300여 도감마다 수많은 궁인이

나 시인을 징발하여 의례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할 궁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사적인 공방에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김준근의 lt기산풍속화gt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궁창을 앞에 두고

줄과 환으로 일정하게 다듬은 쇠뿔과 뽕나무 등을 옆에 두고 완성된

각궁에 시위를 걸어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있다

청나라 말에 전통 활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은 lt시궁정력(試弓定力)gt에

서 찾을 수 있다 궁장은 입식 건물 안에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너댓 개

의 활을 만들어 올려놓고 다 만든 활을 과학적으로 무게를 재고 있다

향사례(鄉射禮)를 거행하여 사족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활을 좋아하고 잘 다룬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역

사 동안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다른 종목보다 유달리

활(양궁)을 잘 쏘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한민족의 피 속

에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유전인자 DNA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Ⅱ 유물 속 동아시아의 활

인류는 이른 시기부터 멀리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자 무기로 활과 화살을 개발하였다 이후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

에 따라 궁시를 제작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

하였다 하지만 궁시는 대개 나무나 대나무와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

져 썩어 오래전의 유물을 확인하기 어렵고 단지 흑요석(黑曜石)처럼 단

단한 석제로 만든 화살촉에 의해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정복 전쟁이 빈번해지던 고대부터 무기가 발달하였다 당시에

사용된 활과 화살의 형태는 유물 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전국시대(BC 475~221) 동호(銅壺) 유물

을 보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한편

5세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lt수렵도gt에서 말 위에서 짐승들을

1

32

4

6

5

32 33무형문화재 삼국지ㆍ기능

양국의 활 제작방식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청나라 활 제작 장인 집단

은 북경 동사대가에 있는 궁전대원리(弓箭大院里)에 17가호의 궁전 점포

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squo취원호(聚元號)rsquo이다 이곳에서 중국 전통 활

을 제작했던 장인이 양뤼린(楊瑞林)이며 아들인 양원통(楊文通) 손자인

양푸시(楊福喜)까지 3대가 잇고 있다 양푸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활을 제작하여 2006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

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장인으로 보호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45년 앞선 1971년 9월 13일 전통 활 제작 장인

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으로 지정하였다 서울 황학

정의 장진섭(張鎭燮 1916~1996)은 조부(장문환)와 부친(장기홍)에 이

어 3대째 활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예천의 권영

록(權寧錄 1916~1986)은 부친(권태전 權泰全)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

었다 부천의 김장환(金章換 1909~1984)는 조부(김원재)와 부친(김

동천)의 대를 잇고 한국 제일가는 명사수로서 활동하고 부천 성무정의

초대 사두(1967~1982)가 되었다 그의 기술은 제자인 김박영(金博榮

1929~2011)이 전승하였다 그의 사후 2015년 권영학(1943년생)보유

자가 새로 인정되어 조부(권선복)와 부친(권우갑)의 가업을 이어 그 또

한 3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화살을 만드는 시장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시장)

으로 지정하였다 화살로 유명한 장단에서 나고 자란 유영기(1936년 그런데 세계적으로 강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활은 여기에 화피를 더

하여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물소 뿔(牛角) 쇠심줄(牛芯)

민어 부레풀(魚膠) 대나무 뽕나무(弓幹桑) 참나무 화피(樺皮)가 그것

이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는 각궁은 살

아있는 활이면서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쇠뿔은 통뼈이며 대나

무와 뽕나무 및 참나무가 세부 뼈대이고 그 위에 바르는 쇠심줄은 근

육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부레풀은 연골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다듬는

화피는 피부에 해당된다 이중 물소 뿔과 대나무 및 쇠심줄이 활의 강

도와 탄성을 이루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민

어 부레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은 1년 중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제작하여 계절을 타는 공예품인데 그 이유는 동식물성 재료

들이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아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심이 건

조가 안되고 풀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여름에는 재료를 장만하고 찬바람이 나면 풀을 대와 뼈와 나무를 서로

붙여 정월 경에 건조시키고 3월부터 한 달 이상 해궁 작업을 한다 각

궁은 제작이 까다롭고 단계마다 원칙을 지키고 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

해서 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궁의 핵심 원료인 물소는 주로 아열대 지방인 중국 남부나 인도 및 인

도차이나 등지에 서식하므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여서 중국은 물소 뿔의 수출을 엄격

하게 통제하였고 조선 정부는 그것을 몰래 수입하려고 애썼다 현재

도 각궁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의 수급은 어려움이 많다 물소는 세계적

인 보호동물이어서 물소 뿔을 수입할 때 세관의 통과가 어렵고 쇠심줄

은 근래 많은 소들이 일하면서 근육을 키우지 않고 육우용으로만 키워

져 탄성이 없어 활의 탄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접착제인 민어부

레의 경우 예전에는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근래에는 민어부레가 정

력에 좋다고 그것마저 식용으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한 활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488년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同越)은 ldquo조선에서 사용하는 화피궁은 중

국의 제도에 비하여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rdquo라

고 평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활은 중국 것보다 작으나 탄

성이 크고 강하다 우리의 시장들은 대나무로 화살대[矢幹]를 만들고

쇠로 활촉(雛)을 끼우며 수리깃으로 화살깃(矢羽)을 만든다 반면 중국

의 장인은 죽시와 함께 유목(楡木)으로 목시(木矢)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활은 대나무와 나무를 한데 결합한 복합궁이다 일본의 활

은 2m 이상으로 길고 무거워 탄성이 적어 근거리에는 위력이 높은 대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이면서 한middot중middot일

삼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각궁은 한국 장인들의 솜씨가

표출된 우수한 전통 공예기술로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생)는 조부(유창원)와 부친(유복삼)에 이어 3대를 잇고 그 아들 유세

현과 유승현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단 근처 원당에서 나고 자

란 박호준(1944년생)은 조부(박희원)와 부친(박상준)에 이어 3대째 가

업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김종국(1940년생)은 스승인 조명제(趙命濟

1915~1980)가 조부(조성관)와 부친(조면보)의 대를 이었던 것을 본받

아 예천에서 화살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12월 14일 부천활박물관을 세웠고 파주에는 유영기

보유자가 만든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반면 중국에는 2012년 신강의

이리에 성급(省級) 비물질문화재로 등록된 이청강(李靑岡)이 중화활문화

박물관(中華弓文化博物館)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로 활을 지

정하지 않아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이 전통적(傳統的) 공예품

(工藝品)으로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을 지정하였다 미야기현(宮崎県)에 위치

한 미야코노조(都城市)에 7대째 120년 전통의 활을 제작하는 활제작소

[楠見藏吉 弓製作所]가 위치하고 있다

Ⅳ 활과 화살의 재료

활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의 『고공기』에 의하면 나무[干 柘 橘 桑 木

瓜 竹 荊 등] 심줄[筋] 풀[膠 말 소 사슴 물소] 뿔[쇠뿔] 옻[漆]

명주실[絲]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은 뿔을 주재료로

삼은 각궁(角弓)인 것을 알 수 있다

도판10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故

김박영 보유자 제작 각궁(角弓)

도판11 중국 양푸시(楊福喜)가 제작한 활

1m 60cm

도판12 중국 양푸시(楊福喜) 화살[箭]

위 2개 느릅나무[楡木] 3번째

목전(木矢) 아래 2개 죽시(竹矢)

201598 필자 촬영

도판13 일본 미야기현(宮崎県)

미야코노조(都城市) 120년 전통

楠見藏吉 弓製作所

httpjotaro-gocomcollect2980

도판14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

지정(指定) 전통적(傳統的)

공예품(工藝品)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

httpjotaro-gocomcollect2980 참고

도판7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종국(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9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박호준(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7 8 9

11 10

12

13 14

34 35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ime a

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fter Tim

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1213

14

1516

1718

1920

21

2223

2425

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18: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양국의 활 제작방식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청나라 활 제작 장인 집단

은 북경 동사대가에 있는 궁전대원리(弓箭大院里)에 17가호의 궁전 점포

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squo취원호(聚元號)rsquo이다 이곳에서 중국 전통 활

을 제작했던 장인이 양뤼린(楊瑞林)이며 아들인 양원통(楊文通) 손자인

양푸시(楊福喜)까지 3대가 잇고 있다 양푸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활을 제작하여 2006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문화재 취원호궁전제작기

예(聚元號弓箭製作技藝) 장인으로 보호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45년 앞선 1971년 9월 13일 전통 활 제작 장인

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궁장)으로 지정하였다 서울 황학

정의 장진섭(張鎭燮 1916~1996)은 조부(장문환)와 부친(장기홍)에 이

어 3대째 활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예천의 권영

록(權寧錄 1916~1986)은 부친(권태전 權泰全)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

었다 부천의 김장환(金章換 1909~1984)는 조부(김원재)와 부친(김

동천)의 대를 잇고 한국 제일가는 명사수로서 활동하고 부천 성무정의

초대 사두(1967~1982)가 되었다 그의 기술은 제자인 김박영(金博榮

1929~2011)이 전승하였다 그의 사후 2015년 권영학(1943년생)보유

자가 새로 인정되어 조부(권선복)와 부친(권우갑)의 가업을 이어 그 또

한 3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화살을 만드는 시장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시장)

으로 지정하였다 화살로 유명한 장단에서 나고 자란 유영기(1936년 그런데 세계적으로 강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활은 여기에 화피를 더

하여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물소 뿔(牛角) 쇠심줄(牛芯)

민어 부레풀(魚膠) 대나무 뽕나무(弓幹桑) 참나무 화피(樺皮)가 그것

이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는 각궁은 살

아있는 활이면서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쇠뿔은 통뼈이며 대나

무와 뽕나무 및 참나무가 세부 뼈대이고 그 위에 바르는 쇠심줄은 근

육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부레풀은 연골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다듬는

화피는 피부에 해당된다 이중 물소 뿔과 대나무 및 쇠심줄이 활의 강

도와 탄성을 이루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민

어 부레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은 1년 중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제작하여 계절을 타는 공예품인데 그 이유는 동식물성 재료

들이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아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심이 건

조가 안되고 풀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여름에는 재료를 장만하고 찬바람이 나면 풀을 대와 뼈와 나무를 서로

붙여 정월 경에 건조시키고 3월부터 한 달 이상 해궁 작업을 한다 각

궁은 제작이 까다롭고 단계마다 원칙을 지키고 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

해서 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궁의 핵심 원료인 물소는 주로 아열대 지방인 중국 남부나 인도 및 인

도차이나 등지에 서식하므로 옛날부터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여서 중국은 물소 뿔의 수출을 엄격

하게 통제하였고 조선 정부는 그것을 몰래 수입하려고 애썼다 현재

도 각궁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의 수급은 어려움이 많다 물소는 세계적

인 보호동물이어서 물소 뿔을 수입할 때 세관의 통과가 어렵고 쇠심줄

은 근래 많은 소들이 일하면서 근육을 키우지 않고 육우용으로만 키워

져 탄성이 없어 활의 탄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접착제인 민어부

레의 경우 예전에는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근래에는 민어부레가 정

력에 좋다고 그것마저 식용으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한 활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488년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同越)은 ldquo조선에서 사용하는 화피궁은 중

국의 제도에 비하여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rdquo라

고 평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활은 중국 것보다 작으나 탄

성이 크고 강하다 우리의 시장들은 대나무로 화살대[矢幹]를 만들고

쇠로 활촉(雛)을 끼우며 수리깃으로 화살깃(矢羽)을 만든다 반면 중국

의 장인은 죽시와 함께 유목(楡木)으로 목시(木矢)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활은 대나무와 나무를 한데 결합한 복합궁이다 일본의 활

은 2m 이상으로 길고 무거워 탄성이 적어 근거리에는 위력이 높은 대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이면서 한middot중middot일

삼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각궁은 한국 장인들의 솜씨가

표출된 우수한 전통 공예기술로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생)는 조부(유창원)와 부친(유복삼)에 이어 3대를 잇고 그 아들 유세

현과 유승현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단 근처 원당에서 나고 자

란 박호준(1944년생)은 조부(박희원)와 부친(박상준)에 이어 3대째 가

업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김종국(1940년생)은 스승인 조명제(趙命濟

1915~1980)가 조부(조성관)와 부친(조면보)의 대를 이었던 것을 본받

아 예천에서 화살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12월 14일 부천활박물관을 세웠고 파주에는 유영기

보유자가 만든 영집궁시박물관이 있다 반면 중국에는 2012년 신강의

이리에 성급(省級) 비물질문화재로 등록된 이청강(李靑岡)이 중화활문화

박물관(中華弓文化博物館)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로 활을 지

정하지 않아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이 전통적(傳統的) 공예품

(工藝品)으로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을 지정하였다 미야기현(宮崎県)에 위치

한 미야코노조(都城市)에 7대째 120년 전통의 활을 제작하는 활제작소

[楠見藏吉 弓製作所]가 위치하고 있다

Ⅳ 활과 화살의 재료

활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의 『고공기』에 의하면 나무[干 柘 橘 桑 木

瓜 竹 荊 등] 심줄[筋] 풀[膠 말 소 사슴 물소] 뿔[쇠뿔] 옻[漆]

명주실[絲]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은 뿔을 주재료로

삼은 각궁(角弓)인 것을 알 수 있다

도판10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故

김박영 보유자 제작 각궁(角弓)

도판11 중국 양푸시(楊福喜)가 제작한 활

1m 60cm

도판12 중국 양푸시(楊福喜) 화살[箭]

위 2개 느릅나무[楡木] 3번째

목전(木矢) 아래 2개 죽시(竹矢)

201598 필자 촬영

도판13 일본 미야기현(宮崎県)

미야코노조(都城市) 120년 전통

楠見藏吉 弓製作所

httpjotaro-gocomcollect2980

도판14 일본 경제산업대신(經濟産業大臣)

지정(指定) 전통적(傳統的)

공예품(工藝品)

lsquo도성대궁(都城大弓)rsquo

httpjotaro-gocomcollect2980 참고

도판7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종국(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도판9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박호준(시장) 출처 서헌강 촬영

7 8 9

11 10

12

13 14

34 35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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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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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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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21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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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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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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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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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19: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bull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 왕과 왕족의 무덤 7기가 모여있다 사적 제13호

정림사지

bull

백제 성왕이 538년 경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건립한 사찰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사적 제301호

공산성

bull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

bull

부소산 남쪽 및 서쪽 기슭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泗沘)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 사적 제428호

부소산성

bull

사비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으로 538년 경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했을 때를 전후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5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지역(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위치해 있다

총 8개의 고고학 역사 유적지가 여기에 포함되는데 월간문화재 10월호에서 이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36 37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ime a

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fter Tim

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121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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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

1920

21

2223

2425

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20: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부여 나성

bull

수도 사비의 외곽 방어시설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남아있다

사적 제58호

미륵사지

bull

추정 규모로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사적 제150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bull

왕릉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으며 1호분에는 사신도(四神圖)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4호

왕궁리 유적

bull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절터와 대궁(大宮)터가 남아있는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있는 유적이란 학설이 유력하다 사적 제408호

38 39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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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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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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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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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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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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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21: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월야산수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3651-000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추석의어제와 오늘

보름날에 쇠는 명절들

ldquo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dquo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요

즈음은 딱히 수긍이 가는 그런 속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전통사

회에서 이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을 말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기 위해 쌀밥이며 고기반찬을

장만하게 되니 평소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없이 좋은 날

이었다 또 시골에 전해오는 말로는 ldquo명절날 일하면 홀애비 홀엄씨가 된

다rdquo고 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구비전승이다 평소에 허리가 휘

도록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

와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때라서 추석은 더없이 좋았다

전통적인 명절은 날짜와 특별한 연관이 있다 1월과 2월은 한 해가 시작

되는 때라서 정월 초하루 이월 초하루가 명절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도 양수가 겹치는 날로서 명절이다 보름날이 명절로 쇠

어지는 때는 8월 추석 말고도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 등이 있다

보름날 밤 하늘에 뜬 보름달은 속이 꽉 차 있다 저 천공에 보름달처럼

속이 가득 차면 좋은 것은 또 있다 들녘의 오곡백과다 곡식이며 과일

이며 농산물은 속이 여물면 둥근 모양을 한다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

보름과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6월 7월 그리고 수확을 앞둔 8월

보름의 보름달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망을 닮았다 보름달은 농작물의

lsquo알차기rsquo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쏙 빼닮았다

한자말 추석(秋夕)과 우리말 한가위

추석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른다 추석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ldquo천자가 봄에는 아침에 해에 제사를 모시고 가을에는 저녁

에 달에 제사를 모신다(天子 春朝日 秋夕月)rdquo에서 찾는다 언제부터 추석이라

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사용된 예가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사람인 옥보고는 지리산의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

법을 닦고 30여 곡의 새로운 거문고가락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 지어진

곡 중의 하나가 추석곡(秋夕曲)이다 고려시대 때는 명절로 일반화되어 역

대 황제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경령전(景靈殿)에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모

시고 사대부 및 민간에서도 추석제사를 모셨다 또 관리들에게는 추석휴

가도 주고 형옥도 추석기간에는 중지했던 기록이 찾아진다

한자말 추석에 비해 우리말 한가위는 그 역사가 더 오래전에 찾아진다

신라 유리왕 때 도성의 여자들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해서 승부를 가렸는데 이를 lsquo가배(嘉俳)rsquo라 했다 한다 가배

라는 말이 lsquo가뵈rsquo로 다시 lsquo가외rsquo로 그리고 마침내 lsquo가위rsquo로 음운변화가 되

면서 크다는 뜻의 한이라는 말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송편은 반달이 아니라 쌀알이 여문 나락의 형상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크게 쇠는 명절인데 반해서 보리

농사가 많은 지역의 경우는 보리 수확철인 단오가 추석보다 큰 명절이라

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한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북한에서는 단

오를 크게 쇠는 곳이 많았다

추석 때는 벼만 아니라 오곡백과의 수확을 앞둔 바쁜 철이다 추석을 추

수감사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수를 끝내고 하는 감사제와는 다

르다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때이며 들판을 가득 메운 황금빛 벼단풍이

너무나 곱다 들녘이 풍성하니 마음 또한 풍성하다 금년에도 풍년을 들

게 해준 조상님께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모아

40 41민속의 어제와 오늘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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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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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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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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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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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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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

화수

목금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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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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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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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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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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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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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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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22: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했던 귀성에서 관광을 위해서 해외로 바뀌고 있다 차례와 성묘마저도

전승이 단절될 기세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명

절 차례 음식을 장만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쌀밥

이며 기름진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 차례 음식을 만드는 며느리들의 코에서는 콧노래가 아닌 콧방귀

가 드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일이다

제사 음식이든 명절 음식이든 그것을 걸게 장만했던 까닭은 꼭 조상숭

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자손들이 먹기 때문이

다 못 살았던 시대의 미인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통통하고 잘 살게 되

면 날씬해야 미녀로 친다 시대에 따라서 미녀의 기준도 바뀌듯이 시대

에 따라서 차례며 제사 음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차례며 명절 음식을 걸게 장만했던 것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평소에 먹는 기름진 음식 때

문에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걸게 차린 명절음식은 몸과 마음

의 부담감만 더할 뿐이다 명절 전통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대에

의 적응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통은 상징이다

더 이상 농업시대도 아닌 지금에 와서 꼭 과거의 형식에 얽매일 것은 아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가가호호마다 주자가

례식의 제사와 차례를 모셨던 것인지도 소급해서 의심해볼 일이다 조

상숭배가 꼭 걸게 장만한 차례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상숭배라는 명목이 어느 한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

공하게 된다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차례나 제사 음식

의 간소화나 상징화를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

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보면 ldquo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

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

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rdquo라는

구절이 있다 가래떡의 긴 가닥은 무병장수를 비는 뜻이요 엽전모양으

로 잘라 떡국을 쑤어먹는 것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

는 설날 음식으로 상징성을 가진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까닭도

추수철에 맞춰 알곡의 속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상징적 풍속이다 겨

우 남은 설과 추석명절마저 없어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명절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상징성을 부각하여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을 잡아가

는 것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차례를 올리고 또 성묘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독 조상숭배 의식이 강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추석

을 쇠기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를 찾아 깨끗하게 벌초를 한다 풍년도 조

상의 은덕으로 믿어 가능하면 상을 걸게 차려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

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송편이다 송편을 반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만 그렇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둥근 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

다 한가위 둥근 달이 떠오를 때 하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

에도 올리고 또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편은 속이

꽉 차고 또 그만큼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세

시음식이다 바로 속이 꽉 찬 나락의 형상이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세시풍속들

매달 있었던 명절 중에서 다른 명절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설과 추석만 겨

우 남았다 설과 추석이면 귀성인파 때문에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

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만 실제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아가서 하는 것은

집안에서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는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던 아름다운 세시 풍속들은 전승이 그친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추석을 맞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강강술

래 월월이청청 거북놀이 소놀이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씨름

그리고 마을잔치를 크게 여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놀이를 하려야

할 사람이 없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밤새

뛰고 놀 젊은 처자와 아낙이 없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은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놀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크게 놀아지는 이들 놀이는 특

히 젊은 여성들의 춤과 소리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 모양도 둥근 원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원시시대에 그려졌을 암각화에 기하학적 형상이

남성은 직선 여성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여성의 몸에서 원형을 찾기는 쉽다 뿐만 아니라 출산을 앞둔 여성의 배

는 남산만큼 불룩하다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추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일종의 출산

과 같다 추수철에 출산의 특권을 가진 여성들이 둥글게 원을 그려 추는

춤은 수확을 앞둔 오곡백과가 잘 여물기를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

것은 강렬한 집단적 기도였으며 또한 자연에 대한 시위이기도 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아련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살과의 전쟁과 명절음식의 반비례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요즈음 추석 연휴 때는 해외 관광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파도의 방향이 고향으로 향

김홍도-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번호 본관(本館)-006504-022

42 43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ime a

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fter Tim

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1213

14

1516

1718

1920

21

2223

2425

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23: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 왕비의 삶

(왼쪽) 열조현후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교태전 화계(출처 문화재청)

Ⅲ 왕비의 삶 엿보기

내명부 관리 왕비는 내전middot중전 등으로 불리는 국모로 궁중 여성들

의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확립

해야 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의 조직으로 후궁들과 궁

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외명부

는 종9품부터 정1품까지 왕의 유모 왕비의 어머니 왕녀와 왕세자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왕비는 내명부를 초월하는 존

재로 품계가 없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궁궐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의식

주 생활에 다 차등이 있었다 왕비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위해 이를 관

리 감독하는 임무와 권력을 지녔다

아들 출산 왕비에게 무엇보다 요구된 것은 대통 승계를 위한 아들을

Ⅰ 왕비는 어느 가문에서 배출되었나

왕비는 왕의 처이며 국모를 지칭하는 호칭이다 대부분의 왕비는 계비

를 제외하면 어려서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됨

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lsquo예무이적(禮無二嫡)rsquo 즉 lsquo예에는

두 정처가 없다rsquo는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왕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왕

비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왕비가 돌아갔을 경우에만 다시 계비를 맞

을 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었다 이에 왕비의 지위가 다처적 경향

을 보였던 고려시대에 비해 올라가게 되고 후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연산군 광해군 등 폐위된 왕과 덕종 진종 등 추존

된 왕들의 왕비 폐비까지 포함하면 47명이었다 이들의 가문을 살펴

보면 ①청주 한씨 5명씩 ②여흥 민씨 파평 윤씨 각 4명씩 ③안동 김씨

청송 심씨 경주 김씨 각 3명씩 ④청풍 김씨 거창 신씨 반남 박씨 풍

양 조씨 각 2명씩 ⑤안변 한씨 곡산 강씨 안동 권씨 문화 유씨 연안

김씨 능성 구씨 여산 송씨 양주 조씨 덕수 장씨 함종 어씨 달성 서

씨 남양 홍씨 광산 김씨 인동 장씨 풍산 홍씨 함안 윤씨 해평 윤씨

각 1명씩이다 많은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다

Ⅱ 최고의 자리 왕비는 어떻게 되는가

조선시대 왕비는 엄격한 심사과정인 삼간택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

(六禮)라는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嘉禮)를 올림으로써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계비 간택을 제외한 왕비 간택은 단

종 헌종 철종 고종의 비 경우이고 가장 정형적인 것은 먼저 세자빈

에 간택된 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비에 책봉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택군(擇君) 반정 및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편이 왕이 되어 종친 부인

에서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모아 놓고 왕

이하 왕실 어른들이 직접 보고 선발하는 절차였다 먼저 예조에서 전국

에 금혼령을 선포하면 처자를 둔 양반 집안에서는 조정에 처자단자(處

子單子)를 자진 신고해야 했다 단자의 형식은 첫줄에 후보자들의 성씨

나이 사주와 본관을 적었고 둘째 줄에는 4조(부 조부 증조부 외조

부)의 성명과 이력을 차례로 적었다 간택 대상이 되는 처자의 금혼 연

령은 대략 7세~30세까지였고 실제 가례시 평균 연령은 국왕이 13세

전후 왕비는 12세 전후였다

간택은 세차례 즉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쳤다 초간택 후보자로 대

략 30명 정도를 뽑고 재간택에서 5~7명 삼간택에서 3명 정도를 뽑았다

간택 때에는 참석한 처자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자들의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최종 한 사람을 뽑으면 금혼령을 풀었다

삼간택에서 왕비나 세자빈으로 뽑힌 규수는 친영 때까지 별궁에 머물면

서 왕실의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 교육은 어린 신부에게 매우 엄하

고도 힘든 것이었다 또한 별궁에서 가례의 육례 가운데 동뢰연(同牢宴)

을 제외한 수납채(受納采) 수납징(受納徵) 수고기(受告期) 수책비(受冊

妃) 친영의(親迎儀) 등을 행하였다 가례 때 친영행렬 모습은 반차도에

자세히 담겨있다 반차도는 당시 결혼식 현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최

고의 기록 문화이다

낳는 일이었다 대통승계가 가장 중요했던 만큼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의 최대 경사였다 왕비가 임신 7개월에 이르면 산실청이 설치됐

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모와 보모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왕비의 출산력은 떨어지고 방계 또는 후궁 소생이 왕

위를 계승하였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하여 쫓겨나지는 않았으

며 죽은 후에는 종묘에 모셔졌다

왕실 내전 행사middot잔치 주관 왕비는 궁궐 내전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

였다 왕비의 큰 덕목 중의 하나는 내전의 크고 작은 잔치를 베풀고 행사

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매년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의 조하를 받고 잔

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정월초하루와 동지 탄신일에 내middot외명부

의 조하를 받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세자 책봉이나 혼인 등 큰 행사 후

44 45궁중여인열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ime a

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fter Tim

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1213

14

1516

1718

1920

21

2223

2425

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24: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에도 내middot외명부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날에도 잔치를 하였다 때로 흉년이 들면 왕실 가족이나 종친 공신 등

만 참여하는 작은 곡연을 했다 또 풍정이라 하여 대비를 위해 잔치를 올

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여자 노인들에게 양로

연을 베풀었다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여

서 천인들도 참여하였다

친잠례 국왕이 친경(親耕)을 하듯이 왕비는 궁궐 내에 잠실을 설치하

여 친잠례를 행하였다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이라고 여겼다 농상은 식량과 의복을 넉넉

히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왕과 왕비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각각 친경

과 친잠을 하였다 세종 5년(1423) 기록에 의하면 경복궁에 뽕나무가

15090주 창덕궁에 1000여 주가 있었다 세종대 소헌왕후와 대비

인 원경왕후가 친잠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

는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은 편지글 몇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저술도 하였다 소혜

왕후 한씨는 『내훈』을 만들었고 혜경궁 한씨는 『한중록』을 남겼다

Ⅳ 폐출될 수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왕비들의 궁궐 내 삶은 평탄치만은 않고 고단하고 위험하기조차 하였

다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는 왕과 왕실 어른에 대한 순종과

인내 아랫사람에 대한 투기 금지와 내치(內治)의 실현이라는 유교적 덕

목을 종신토록 잘 지켜야 했다

왕비는 간택에서부터 의식주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궁궐의 엄격한 예

의와 법도를 따라 모범을 보여야 했다 궁중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

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외척을 척결한다고 하여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

기도 하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편

인 왕에 의해 태종비 원경왕후는 동생들이 세종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는다 성종대 의례가 정립되었고 성종 8년(1477) 3월에 창덕궁 후원

에 채상단을 쌓고 왕비(폐비윤씨)가 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을 하였다

친잠 후에는 내middot외명부의 의례를 받고 수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열고 음

식이나 물품을 내렸다 매년 행해진 것은 아니었고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성종 계비 정현왕후 윤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종 계비 순종효

왕후 윤씨 등을 비롯한 몇 분의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

제사 조선 전기에는 왕비나 대비가 왕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이나 혼

전(魂殿)에 드물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는 망곡례(望哭禮)라는

의례를 통해 왕실 여성들이 혼전 의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숙종대

에는 왕비와 세자빈이 왕실혼례를 마친 후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

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묘현례를 하였다

저술 왕비들도 여가를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수를 놓거나 글씨를 쓰

가 죽임을 당했다 또 폐비 폐출 그리고 다시 복위를 겪는 등 기구한 삶

을 산 왕비들도 있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왕비들

은 왕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경우거나 아니면 반정으로 쫓겨난 왕의

부인으로서 강제로 폐비된 경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심

지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

로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는 폐

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었다 반면에 연산군의 부인 신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남으로써 폐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거나 바로 왕비나 계비로

간택되었거나 아님 종친의 부인으로 살다가 왕비가 되었거나 왕비는 나

라 안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국모로서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왕실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이었다

교태전(출처 문화재청) 교태전 내부(출처 문화재청)

4746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ime a

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fter Tim

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1516

17

1819

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1213

14

1516

1718

1920

21

2223

2425

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25: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알림마당

알림마당

덕수궁 풍류

창덕궁 달빛기행

10월

- 25 26 27일 19002000 내국인

- 28일 1900 외국인

2015년 한국문화의집 공연 안내

고궁무악전

bull 일정 1020(화)~22(목) 6회 공연

1일 2회 1920~2020(60분)

2040~2140(60분)

bull 장소 창경궁 문정전

bull 입장료 무료관람(창경궁 입장료 1000원)

화무(火舞) lsquo화요일에 춤이 있다_지무전rsquo

10 613(화) 2000

화요일에 춤이 있다_팔일전

10 27~11 24(매주 화) 2000

bull 내용 전통무용의 주요 장르들을 한데 모은 명무

공연

bull 관람료 10000원~25000원

무용담 11 11~(매주 수) 2000

bull 내용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전

통예인들에 대한 렉쳐콘서트

bull 장소 한국문화의집KOUS 공연장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접견하는 장면과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

사로 근대의 물결 앞에서의 자주 독립국의 모습을 지

켜보시길 바랍니다

-10 3(토)~4(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9(금)~11(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10 17(토)~18(일) 1430 1600 덕수궁 정관헌

지음 - 유파별 산조의 밤

bull 일자 10 162330(금) 20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소주방 궁중음식특강

bull 일자 10 3(토)10 4(일) 1400

bull 장소 경복궁 소주방

한국의집 명인명창 공연

광복 70년 기념을 맞아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

화재(지정 예고)인 아리랑 10곡을 선곡하여 대한민국

최고 명창 10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20일 동안 이어

가는 lsquo아리랑 1020 프로젝트rsquo 입니다

bull 월드뮤직 아리랑(World Music ARIRANG)

bull 기간 2015 10 27~11 15(총20일)

2030~2130(60분)

bull 장소 한국의집 민속극장

bull 내용 아리랑과 명인명창의 만남

창경궁 인문학 강좌

bull 일자 10 1(목)~10 4(일) 1400~1600

bull 장소 창경궁 통명전

자경전 다례체험

bull 일자 10월 중 매주 토일

- 1부 1300~1400

2부 1400~1500

bull 장소 경복궁 자경전

lt탈gt 발탈 공연(예능보유자 조영숙)

bull 일자 10 17(토) 15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승무 공개행사 (예능보유자 이애주)

bull 일자 10 25(일) 1700

bull 장소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성종임금의 악학궤범과 흥겨운 우리 국악

bull 일자 10 16(금) 1100

bull 장소 선릉middot정릉 재실

lt Time after Time gt 전통공예 디자인을

더하다

bull 전시기간 6 26(금)~10 26(월)

(102(금) 2차 전시 개막)

bull 관람시간 1000~1900

bull 관람료 무료

bull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B1 전시장

bull 전시내용 전통공예 전승자와 디자이너 협업 작품

전시

전통공예 작품 및 공예품 수리 상담

고문헌 속 보양음식 강좌

bull 기간 2015 11 3(화)~2016 1 12(화)

12회 (3개월)

- 기간 중 매주 화요일 1900~2100(2시간)

bull 장소 한국의집 궁중수라간(취선관 4층)

bull 내용 고조리서 식재료들을 활용한 건강 보양음식

- 강의 및 실습 10회 현장 강의 1회 전통음식

(시식)체험 1회

bull 대상 일반인 직장인 및 음식관련 전공자 등

bull 수강인원 40명(70 이상 출석 시 수료증 발급)

bull 수강료 450000원

전통혼례 재현(10월 11월 인천국제공항) 2015 궁궐 일상을 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bull 일정 10 10~25(매주 토 일요일) 1330 1430

(1일 2회)

bull 장소 창경궁

2015년 10~11월 국내 문화유산 답사

안내

10월 답사

아픈 기억의 흔적(목포 신안 중도)

bull 일자 10 23(금)~25(일)(2박3일)

bull 내용

-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남교동 소극장 옛 일본

영사관 목포오거리 이훈동 정원 등

- 신안 증도 짱뚱어다리 태평염전

bull 해설사 장일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11월 답사

낭만깃든 서해안 답사(태안 서산 안면도)

bull 일자 11 14(토)~15(일)(1박2일)

bull 내용

- 태안 서산 꽃지해수욕장(할매바위) 방포항 등

- 안면도 안면암 등

bull 해설사 이종태(국민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150000원

자연과 함께 흐르는 삶(순천 소록도)

bull 일자 11 27(금)~29(일)(2박3일)

bull 내용

- 순천 송광사 순천만 정원등

- 고흥 소록도 팔영산 능가사

bull 해설사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bull 참가비 350000원

문의 한국문화의집 문화연수팀

(02-3011-1720~1)

고즈넉한 덕수궁의 밤을 물들이는 우리 음악의 향연

덕수궁 풍류는 가(歌) 무(舞) 악(樂)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고종황제가 연회

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예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bull 기간 2015년 8월~10월(매주 목요일) 1900

bull 장소 덕수궁 정관헌

bull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을 중심으로 야간에

펼쳐지는 전통 가middot무middot악 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49)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전통혼례 재현을 인천국제공

항 밀레니엄홀에서 개최합니다 한국인의 일생 중 가

장 경사스러운 잔치인 혼례풍습과 문화를 선보이고

다채로운 우리 전통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

습니다

bull 일자 2015 10 1327(화) 11 1024(화)

bull 시간 1500~1600(60분)

bull 장소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

bull 내용 전통혼례 절차 시연 및 전통예술공연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2270-1235)

2 0 1 5 10 11 통권 372

월간 문화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8 49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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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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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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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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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er T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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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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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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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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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1213

14

1516

1718

1920

21

2223

2425

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Page 26: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만남 통권 372 2015 10 . 11 · 궁중여인열전 조선시대 왕비의 삶 ...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매달 세계유산 연계체험을

궁중의상 화려함을 담다

왕비는 조선시대 반가 여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렇기

에 왕비의 복식은 화려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궁

중 여성복식의 대표격인 원삼은 왕비를 비롯 내middot외명부 여인들의 예복

으로 직위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왕비의 경우 홍원삼을 입었는데 소매

에는 직금(織金)의 문양을 짜 넣었다

왕세자는 명실상부 국가의 2인자로 왕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대리청정

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져야 했다 그렇기에 의관 역시 왕의 그것과

닮은 듯 다른 형태를 갖췄다 의복의 색깔은 중간 중간 용도와 시대에 따

궁중의상 머리끈 | 55times20times20mm | 10000원 궁중의상 머리핀 | 77times20times15mm | 13000원 궁중복식 그림첩 | 72times20 | 6000원 궁중자수 메모패드 | 15times95times4cm | 13000원

궁중유물 다이어리 | 12times16times16cm | 16000원 구입문의 문화상품팀 02ndash730ndash0990 | wwwkhmallorkr

머리핀

-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을 활용(남색)

- 영친왕비 홍원삼의 소매부분을 활용(색혼합)

77times20times15mm | 아세테이트 황동 | 13000원

wwwk-heritagetv

고품격 영상미로 만나는 문화유산과 그 안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그리고 땀과 열정이 담긴

예인과 장인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좌측 홍색)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왕자의 까치두루마기

소매(우측 색동)를 활용한 머리끈은

실용적이다

영친왕비 봉황문 치마의

금박부분(위남색)과 홍원삼의

소매부분(아래 색혼합)을 활용하여 제작한

머리핀은 궁중의상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궁중복식 그림과 설명을 담은

궁중복식 그림첩은 궁중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흉배 후수 백수백복도 주머니 등 궁중자수 유물

32점을 담은 메모패드로 고급스러운 궁중의

역사를 담았다

영친왕비 대홍원삼 어보 일월오봉도 등 궁중유물

이미지를 활용한 다이어리는 궁중에서 사용된

문양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으나 성종대 이후로는 아청색(흑색)을 띠었다

하지만 이는 관례에 쓰이는 의복이나 곤룡포의 색으로 다른 색상의 의복

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구(李玖)왕세자의 복식 중에는 소매부

분에 색동문양이 들어간 까치두루마기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실에서는 영친왕비 복식과 이구(李玖)왕세자 복

식의 화려한 문양들을 이번 신상품 궁중의상 머리장식에 응용해 보았

다 조선 말 화려한 궁중의상의 정수를 궁중의상 머리장식을 통해 느껴

보기 바란다

K-HERITAGE 문화상품50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ltT

ime a

fter Tim

egt 전

통공

예 디

자인

을 더

하다

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Tim

e a

fter Tim

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화수

목금

0102

03

0405

0607

0809

10

1112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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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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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223

24

25 26

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lsquo영조와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0102

0304

0506

07

0809

1011

1213

14

1516

1718

1920

21

2223

2425

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02ndash

3011

ndash216

1~6

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집 코

우스

(KO

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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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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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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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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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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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요무

형문

화재

전수

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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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전시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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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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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dash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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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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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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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626(금)~1026(월)

관람시간1000~1900

관람료무료

전시장소인사아트센터B1전시장

전시내용전통공예전승자와디자이너협업작품전시

전통공예작품및공예품수리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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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102~1026)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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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금

0102

03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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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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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8

2930

31

상설

로그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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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답사

(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2015궁궐일상을걷다-lsquo영조와

창경궁rsquo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

-외국인대상

왕가의산책

-경복궁

-1130143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TimeafterTime

전통공예디자인을더하다(2

차전시개막)

-가나인사아트센터B1

-1000-19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굿보러가자

-전남담양군담양문화회관

성종임금의악학궤범과흥겨운

우리국악

-선릉middot정릉재실

-11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지음-유파별산조의밤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풍류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지무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덕수궁풍류

-덕수궁정관헌

-1900

고궁무악전

-창경궁문정전

-1920~2020(60분)

2040~2140(60분)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창경궁인문학강좌

-창경궁통명전

-1400~160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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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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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외국공사접견례

-덕수궁정관헌

-14301600

2015궁궐일상을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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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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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북악산성곽음악회

-창의문앞

-1600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023-1025)

-2박3일목포신안증도등

창덕궁달빛기행

-창덕궁

-19002000

-내국인대상

2015궁궐일상을걷다-영조

와창경궁

-창경궁

-13301430

자경전다례체험

-경복궁자경전

-1부1300-1400

2부1400-1500

소주방궁중음식특강

-경복궁소주방

-1400

승무공개행사(예능보유자이

애주)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민

속극장풍류

-1700

국군의날

체육의날

문화의날

중양절

경찰의날

교정의날

지방자치의

세계한인의날

노인의날

개천절

한글날

한로

재향군인의

천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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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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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1020

15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1120

15

일월

화수

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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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050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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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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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28

29 30

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화요일에춤이있다_팔일전

-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인천국제공항밀레니엄홀

-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2ndash2266ndash

910

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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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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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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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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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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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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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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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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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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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

192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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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5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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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재재단

전통문화달력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답

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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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강령탈춤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북청사자놀음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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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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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의집KOUS

-2000

무용담

-한국문화의집KOUS

-20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lt소리와가얏고gt가야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굿보러가자

-경남밀양시밀양문화예술

회관

가야금병창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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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의집KOUS

-2000

전통혼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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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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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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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혼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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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답사(113~118)

-캄보디아앙코르유적등

한국문화의집해외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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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14~1115)

-1박2일태안서산안면도

한국문화의집국내문화유산

답사(1127~1129)

-2박3일순천소록도등

국의

집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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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전통예술공연(상설)

-1부1830~1930

-2부2030~2130

전통문화체험(상설)

-오전0900~10300930~1100(선택)

-오후1400~15301430~1600(선택)

매월셋째주월요일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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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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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전통공예전시관(매주일요일휴관)

민속극장풍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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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0

2ndash3011

ndash17

88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코우스(KOUS)극장

악산

한양

도성

02ndash

747ndash

215

2~

3

북악산한양도성문화유산탐방

-하절기(3월~10월)0900~1800(1600입장마감)

-동절기(11월~2월)1000~1700(1500입장마감)

매주월요일휴무(월요일이공휴일인경우화요일휴무)

복궁

수문

장 교

대의

식 0

2ndash3210

ndash16

45~

6

조선시대수문장교대의식및광화문파수의식

-시간1000~1600

매주화요일휴무

상설

로그

천국

제공

항 한

국전

통문

화센

터 0

32-74

3-0357~

8

외국인전통문화체험(매일)0700~2200

전통예술상설공연(매일)

1차1030~11002차1130~12003차1230~1300

4차1400~14305차1500~15306차1600~1630

왕가의산책(매일)

1차1130~12202차1420~1500

3차1520~15354차1640~1730

한국문화전시관032ndash741ndash3423

-서관ldquo한옥의미자연의아름다움을보다rdquo

-동관ldquo한글세상을물들이다rdquo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소설

순국선열의

농업인의날

농업인의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