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 젊은창업자 원준호 - 밤, 추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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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Dream Recipe | 젊은 창업자 어스름한 저녁, 내리깔린 어둠 속에서 기괴한 좀비들이 서성이고 있다. 사람들은 좀비가 언제 튀어나올지 몰라 두려움을 삼키고 달린 다. 드라마 <워킹데드>의 한 장면을 읊고 있는 게 아니다. 작년 서울랜드에서 진행되었던‘좀비런 페스티벌이다. 좀비를 테마로 한 이 색 마라톤으로 참가자들의 의향에 따라 직접 좀비가 될 수도, 좀비에게 쫓길 수도 있다. 보통의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경험에 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있다. 이 좀비런을 구상한 사람은 누구일까. 좀비런을 탄생시킨 <COMOVE>의 원준호 대표를 만났다. 글|윤지은 기자 사진|윤지은 기자, 원준호 제공 <COMOVE> 원준호 대표 밤, 추격전 그리고 좀비 May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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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2014.05 젊은창업자 원준호 - 밤, 추격전 그리고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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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Recipe | 젊은 창업자

어스름한 저녁, 내리깔린 어둠 속에서 기괴한 좀비들이 서성이고 있다. 사람들은 좀비가 언제 튀어나올지 몰라 두려움을 삼키고 달린

다. 드라마 <워킹데드>의 한 장면을 읊고 있는 게 아니다. 작년 서울랜드에서 진행되었던 ‘좀비런 페스티벌’이다. 좀비를 테마로 한 이

색 마라톤으로 참가자들의 의향에 따라 직접 좀비가 될 수도, 좀비에게 쫓길 수도 있다. 보통의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경험에

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있다. 이 좀비런을 구상한 사람은 누구일까. 좀비런을 탄생시킨 <COMOVE>의 원준호 대표를 만났다.

글|윤지은 기자

사진|윤지은 기자, 원준호 제공

<COMOVE> 원준호 대표

밤, 추격전 그리고 좀비

May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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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런을 기획한 사람이라면 범상치 않겠군 싶었다. 불신과 불만으로 가

득한 눈빛, 사회의 제도를 비판하고 어디서든 “peace!”를 외칠 것 같

은 사람, 징이 박힌 가죽자켓을 분신처럼 여기는 사람. 제멋대로 상상한

COMOVE의 원준호 대표는 음울한 고스 족이었다. 그런데 웬걸. 얼굴을

마주한 원 대표는 하늘색 셔츠에 남색 재킷의 단정한 차림, 게다가 큰 눈

에 선한 눈빛을 지녔다. 기괴한 좀비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 알고 보니

좀비덕후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음이 힘들 때마다 좀비영화를 즐겨

볼 정도로 마니아였다.

2008년 외로움과 싸웠던 군 생활

남자라면 꼭 한번쯤 찾아오는 시기가 있다. 군대. 그는 재학 중이던 연세

대를 휴학하고 의무소방으로 입대했다. 일반적으로 자대배치를 받으면

선임과 후임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는 소규모 부대라서 1년 반을 독방에

서 홀로 지내야 했다.

“당시 3층 건물이었는데 저는 옥탑방에서 독방 생활을 했고, 2~3층은 소

방대원 직원들이 출퇴근하며 사용했어요. 혼자서 지킴이처럼 살았죠.”

홀로 군 생활이라니, 편했겠다라고 생각할 찰나 원 대표는 “정말 힘들었

다”고 토로했다. 소방대원들과 함께 밤마다 구급차 출동을 나갔는데 그

과정에서 험한 일도 겪었고, 자살을 택한 사람들도 다수 봤다. 그럴 때면

원 대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그 마음으로 홀로 빈 방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혼자 남겨졌다는 외로움이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원

대표는 그때 생각했다. ‘대다수가 혼자 남겨졌을 때 죽음을 선택하는 구

나’ 실제로도 일리가 있었다. 고독함이 극화되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

을 원 대표는 목격했다. 혼자 남겨지면 마음에 병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과 함께 몸을 부딪치며 좋은 에너지를 받아야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느꼈고, 그 생각을 정립해 가면서 원 대표의 인생도 변했다. 이

때의 깨달음이 몇 년 후 그를 창업으로 이끌었음을, 당시만 해도 까마득

하게 몰랐다.

2012년 창업은 그의 운명

원래는 번듯한 대기업으로 취업하려고 했다. 그러나 의무소방을 하면서

고독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창업은 보청기

를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이었다.‘돈이 없이 듣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기업으로 언론에 많은 집중을 받았다. 그러나

제약회사의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추구했던 기업의 방향성과 다르게 흘

러갔다. 원 대표는 “스스로 신명나서 일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

다”고 말했다. 결국 2011년 말, 회사를 나와 다시 학생으로 돌아갔다. 경

영학을 살려 컨설팅 학회에 들어갔지만 맞지 않았다. 창업은 운명이었던

걸까. 그는 첫 번째 창업을 반면교사 삼아 재창업으로 눈을 돌렸다.

2012년, 뜻이 맞는 팀원을 모아 정부에서 시행하는 창업지원사업에 응모

했다. 그때 창업에 필요한 지원금도 받았다. 초창기엔 어플을 구상했다.

한강이나 체육관 등 원하는 장소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서 운

동하는 서비스였다. 그러나 2%가 부족했다. 실제 현장에서 이뤄지는 사

례가 있고, 어플을 활용하는 것은 그 후가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팀

원들과 여러 아이디어를 공모했고 그 중 하나가 좀비런이었다. 그 선택은

탁월했다.

2013년 해학과 풍자가 담긴 좀비

좀비에는 해학과 풍자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 원 대표는 ‘좀비’는 재밌

는 문화 코드라고 말했다.

“좀비는 죽어있는 사람을 은유하는 거잖아요. 현재 20대 젊은이들도 경쟁

좀비는 죽어있는 사람을 은유하는 거잖아요.

현재 20대 젊은이들도 경쟁적인 압박 상황 때문에

무기력한 상황에 놓여 있어요.

좀비에 건강하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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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압박 상황 때문에 무기력한 상황에 놓여 있어요. 그런 건강하지 않

은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게 좀비라고 생각했어요. 좀비를 피해

달아나면서 짜릿한 생존감각을 일깨워주는 거죠.”

물론 좀비영화를 좋아하는 취향의 영향도 크다. 다양한 좀비영화를 즐겨

보다보니 좀비가 유형화되어 있다는 점을 포착했다.

“비만, 흡연자, 성범죄 피해자들 등 미국사회의 부조리함이나 해학이 좀비

에 담겨 있었어요. 이런 비유를 우리나라에서도 재밌게 풀어낼 수 있겠구

나 생각했어요.”

그는 좀비런을 기획하면서 많은 조사를 했다. 해외사례를 찾아보니 미국

에서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놀이로써 신체활동을 하는 사례가 많았

다. 미국에서는 이미 ‘Run for Your Lives’라는 좀비 레이스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미국 좀비 레이스는 스케일이 크더라고요. 야산을 파서 포클레인으로 다

지고요. 사람들은 무슨 특공대 훈련하듯이 뛰어다녀요. 그것을 보면서 우

리나라에 맞게 변형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한국형 좀비 레이스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미국처럼 야산 하나를 통

째로 활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고, 어떤 장소든 테마가 있는 장소라면

좀비와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공간이 낯설게 변하는 것에 주

목한 것이다.

게임 같은 스포츠에 열광

좀비런은 달리기에 좀비와 러너의 추격전을 더한 게임 레이스다. 실제로

도 게임 CD가 들어있을 것 같은 패키지를 구성해 이목을 끌었다. 젊은

층들이 게임에 익숙하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좀비 캐릭터가 그려진 두

툼한 패키지 박스에는 프롤로그 형식의 스토리도 쓰여 있다. 뒷면에는 좀

비런의 다섯 코스가 사진과 함께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 박스 안에는

좀비런에 쓰이는 라이프 벨트와 3개의 생명줄, 좀비런 티셔츠와 가이드

북 등이 들어있다.

“직접 액션을 취하고 그 속에서 소통도 하고 성취감을 얻을 수 있어요. 일

련의 게임과정이 에너지를 줄 수 있죠.”

게임 같은 스릴감과 긴장감을 주지만 좀비런은 실제상황이다. 아무래도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 러너랑 좀비 비율을 10대 1정도로

유지하기 위해 좀비의 20%는 연기자를 섭외하고, 실감나는 연출을 위한

전문분장팀과 안전을 위해 간호인력, 응급인력 등도 철저하게 준비한다.

이런저런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보니 인건비가 꽤 많이 들지 않을까 궁금

했다. 일반적인 소규모 창업은 팀원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곤 한다. 그

것이 금전적인 부담을 줄이고 수익을 높일 수 있기 때문. 그런 면에서 원

대표는 거침없어 보인다.

“미쳤어요. 이렇게까지 일을 벌이면 안 되는데(웃음). 초기투자라고 생각

해요. 좀비런을 문화콘텐츠로 만들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 인력

도 필요한 것 같아요. 초반에 이익률이 낮더라도 실험해야죠. 거기에서

발생하는 금전적인 부담 등은 안고가야 하는 부분인 거죠.”

첫 시도는 그의 모교이기도 한 연세대였다. 2013년 대학 축제 때, 연세대

캠퍼스 일부 1km공간을 활용해 좀비런을 시도했다. 500명을 기대했는데

당시 1천 2백 명이 모였다. 좀비를 피해 달아나는 이색적인 마라톤의 등

장에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역할에 몰입하니까 사람들 눈빛이 달라지는 거예요. 미친 듯이 뛰어다니

고, 살아서 다행이라고 웃는 사람들을 보며 저도 소름끼치더라고요. 아

이게 굉장한 몰입감을 주는 구나 그때 느꼈죠.”

연세대에서의 성과로 원 대표는 좀비런이 사업 아이템으로 충분히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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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단순한 이벤트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규모도 확장하고 전국으로 확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후 서

울랜드와 뜻이 맞아 작년 11월 본격적인 제1회 좀비런을 개최했다.

2014년 새로운 좀비런 기대해도 좋아

얼마 전에는 좀비런과 비슷한 행사가 생겼다. 그것에 대한 원 대표의 생

각을 물으니 솔직히 편한 감정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도 스포츠 페스

티벌 시장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물론 안

심할 순 없다. 원 대표는 나름대로의 차별화 전략이 있다. 기술적인 역량,

기획력, 디자인이다.

“좀비런 어플을 개발했어요. 기술적으로 향상된 모습을 갖추려고 해요.

이것을 시작으로 앞으로 첨단 엔터테인먼트로 발전시키고 싶어요.”

만반의 준비를 마친 원 대표는 새로운 좀비런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 또

한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대해 갈 계획도 가지고 있다. 시즌2에 보

내는 사람들의 관심도 뜨겁다.

“밤, 좀비, 추격전. 문화적 코드가 강한 자극에 끌리는 거죠. 일반 페스티

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존본능. 또 좀비가 되는 경험도 그렇고요. 이상

한 소리를 낸다거나 하는 행동이 스스로를 내려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롭잖아요.”

그 새로움을 유지하기 위한 고민은 계속될 것 같다. 좀비런이 진행될수록

새로움은 퇴색해 갈 것이니까. 그러나 원 대표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식

상하지 않은 좀비런, 항상 그 다음이 기대되는 좀비런을 만날 수 있을 거

라고. 5년 후, 10년 후에도 이색적인 축제를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렘

을 느낀다.

원 준 호 대표에게 물었다!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책임감이다. 대기업은 시스템

이 갖춰져 있어서 소통이 안 되더라도 부족한 점을 메

울 수 있다. 그러나 창업은 적은 인원에 리스크를 안

고 시작한다. 소통이 안 되면 오해하기 쉽고 서로 불안해한다. 내

밀한 소통을 훈련해야 한다. 또 재미로 시작하더라도 끝은 책임

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다면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 많은 어려움

의 과정이 있었다. 행사가 취소될 때, 투자를 결정할 때,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이려고 노력했다.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지

않고 창업주로서 부담했다.”

좀비덕후 원 대표의 추천 영화

“<카크니즈 vs 좀비스>다. 요양소에 있는 노인과 좀비

의 대결을 그린 영화로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 손자나

친구들을 죽인 좀비에게 대항하며 처절한 투쟁을 하

는 것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사람들의 처절한 생존본능을 보여줬

다는 점이 흥미롭다.”

좀비런 5가지 코스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코스는?

“스모그 존. 스산한 분위기가 긴장감을 배로 늘린다.

남녀가 손을 잡고 가야 하는 로맨스 존도 인기가 많지

만 아쉽게도 전체 참여자의 70%가 여성이라 병목현

상이 일어난다. 좀비런에서 예쁜 누나와 손잡고 뛸 남학생 대환

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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