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철학 16호 (2010) 175-216 -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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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철학 16호 (2010) 175-216 스콜라 지칭론의 복원 작업 - 중세와 근대 스콜라 논리학에서 지칭(suppositio)의 발생과 활용 그리고 그 복원 대칠 (대구가톨릭대학교) 1.0 들어가기 오랜 과거의 유물이 현대인에게 발굴되었을 때, 그 첫 인상은 무엇이겠는가? 어쩌면 자신들 이 살아가는 현대의 그 무엇과 비추어 유사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본 연구에서 필자가 시도하는 것도 이와 유사한 문제이다. 현대 연구 가들은 중세 스콜라 철학자와 신학자에 의하여 활발히 다루어진 지칭(suppositio)이 바로 대의 지시론과 같거나 매우 닮은 것으로 본다. 즉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오캄 (William Ockham), 뷔리당(Johannes Buridan) 등이 다룬 지칭의 문제와 프레게(G.Frege), 러셀(B.Russel), 스트로슨(P.F.Strawson) 1) 등이 다룬 지시의 문제가 같거나 유사한 것으로 고 있다. 기치(P.T.Geach)의 글을 보자. “내가 지시 그 가운데 ‘지시의 방식’(mode of reference)이라 부르는 것에 중세 어는 ‘지칭’이다. 특히나 그 기원에 있어서 이 말은 ‘~을 대신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참된 용어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와 오캄은 그리 큰 차이 없이 명사(term)는 지칭한 다(stat pro)고 했으며, 이는 하나 혹은 다수의 대상을 지칭한다고 했다. 중세 철학자 들을 쉽게 달리 설명하는 가운데 나는 ‘지칭’을 대신해 지시의 방식(mode of reference)을 아주 빈번히 암묵리에 사용해야 했다.” 2) 단적으로 그리고 확고하게 기치는 ‘중세 지칭’은 ‘현대의 지시’라고 한다. 이러한 입장은 많은 연구가들에게서 발견된다. 아담스(M.Adams)의 글을 보자. “지칭론은 13세기와 14세기 논리학에서 가장 독특하고 중요한 위상을 가진다. 중세 논리학에서 지칭의 개념에 의하여 행해진 역할은 현대 논리학에서 충족과 지시 (reference)란 개념의 역할과 비교될 수 있다.” 3) 아담스 역시 지칭과 지시를 하나의 맥락에서 읽고 있다. 이후 살피게 되겠지만, 필자의 입장 과 달리 현대 많은 연구가들에게 이러한 모습은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필자는 지칭론과 지시론을 다른 것으로 본다. 또한 지칭론의 온전한 복원은 지시론에 비추어진 복원이 아니라, 중세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복원이라 믿는다. 이런 입장이 본 논문의 출발점이다. 한마디로 세 관점에서의 복원이다. 1) G. Frege, “Über Sinn und Bedeutung”,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und philosophische Kritik, 100, (1892), 25-50 ; P. H. Strawson, "On Reference" Mind 59 (1950), 320-344. 현대 지시(reference)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와 연구에 대한 기본적인 개요는 다음의 사이트를 참고하기 바 란다. http://plato.stanford.edu/entries/reference/ 2) P. T. Geach, Reference and Generality (Oxford : Blackwell, 1962), 84. 3) M. Adams, "What does Ockham mean by 'supposition'?" Notre Dame Journal of Formal Logic 17 (1976),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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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철학 16호 (2010) 175-216

스콜라 지칭론의 복원 작업- 중세와 근대 스콜라 논리학에서 지칭(suppositio)의 발생과 활용 그리고 그 복원

유 대칠(대구가톨릭대학교)

1.0 들어가기 오랜 과거의 유물이 현대인에게 발굴되었을 때, 그 첫 인상은 무엇이겠는가? 어쩌면 자신들이 살아가는 현대의 그 무엇과 비추어 유사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본 연구에서 필자가 시도하는 것도 이와 유사한 문제이다. 현대 연구가들은 중세 스콜라 철학자와 신학자에 의하여 활발히 다루어진 지칭(suppositio)이 바로 현대의 지시론과 같거나 매우 닮은 것으로 본다. 즉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오캄(William Ockham), 뷔리당(Johannes Buridan) 등이 다룬 지칭의 문제와 프레게(G.Frege), 러셀(B.Russel), 스트로슨(P.F.Strawson)1) 등이 다룬 지시의 문제가 같거나 유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치(P.T.Geach)의 글을 보자.

“내가 지시 그 가운데 ‘지시의 방식’(mode of reference)이라 부르는 것에 중세 용어는 ‘지칭’이다. 특히나 그 기원에 있어서 이 말은 ‘~을 대신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참된 용어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와 오캄은 그리 큰 차이 없이 명사(term)는 지칭한다(stat pro)고 했으며, 이는 하나 혹은 다수의 대상을 지칭한다고 했다. 중세 철학자들을 쉽게 달리 설명하는 가운데 나는 ‘지칭’을 대신해 지시의 방식(mode of reference)을 아주 빈번히 암묵리에 사용해야 했다.”2)

단적으로 그리고 확고하게 기치는 ‘중세 지칭’은 ‘현대의 지시’라고 한다. 이러한 입장은 많은 연구가들에게서 발견된다. 아담스(M.Adams)의 글을 보자.

“지칭론은 13세기와 14세기 논리학에서 가장 독특하고 중요한 위상을 가진다. 중세 논리학에서 지칭의 개념에 의하여 행해진 역할은 현대 논리학에서 충족과 지시(reference)란 개념의 역할과 비교될 수 있다.”3)

아담스 역시 지칭과 지시를 하나의 맥락에서 읽고 있다. 이후 살피게 되겠지만, 필자의 입장과 달리 현대 많은 연구가들에게 이러한 모습은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필자는 지칭론과 지시론을 다른 것으로 본다. 또한 지칭론의 온전한 복원은 지시론에 비추어진 복원이 아니라, 중세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복원이라 믿는다. 이런 입장이 본 논문의 출발점이다. 한마디로 중세 관점에서의 복원이다.

1) G. Frege, “Über Sinn und Bedeutung”,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und philosophische Kritik, 100, (1892), 25-50 ; P. H. Strawson, "On Reference" Mind 59 (1950), 320-344. 현대 지시(reference)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와 연구에 대한 기본적인 개요는 다음의 사이트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plato.stanford.edu/entries/reference/

2) P. T. Geach, Reference and Generality (Oxford : Blackwell, 1962), 84. 3) M. Adams, "What does Ockham mean by 'supposition'?" Notre Dame Journal of Formal

Logic 17 (1976), 375.

중세철학 16호 (2010) 175-216

지칭론을 중세의 관점에서 복원하기 위해 가정 먼저 요구되는 것은 중세를 과거가 아닌 현재 시점으로 살아간 학자들이 직접 적은 ‘지칭론의 목적’과 ‘등장의 배경’에 대한 문헌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헌은 전무하다. 그러니 복원 작업은 처음부터 쉽지 않다. 하지만 지칭론의 등장, 즉 지칭론이 왜 중세인에게 필요했는가의 문제는 복원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렇기에 필자는 지칭의 문제가 등장하게 되는 배경을 중세의 문법 문헌과 기타 스콜라 철학과 신학 관련 문헌들을 분석하여 얻었고, 그 결실을 논의의 첫 머리에 가장 먼저 밝혔다. 이 처럼 지칭의 등장 배경을 확인한 후, 지칭을 둘러싸고 진행되었던 ‘지칭의 분류’에 대한 문제와 지칭이란 것이 중세 철학자들에게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다루었다. 이러한 논의를 위해, 신학에서 위격적 지칭(suppositio personalis)4)의 활용과 내용 그리고 존재론에서 단순 지칭(suppositio simplex)의 활용과 그 내용을 살폈다. 물론 이 모든 논의는 기본적으론 중세와 근대의5) 스콜라 철학자들의 문헌에 최대한 의지하며 진행하였다. 이렇게 얻은 지칭론의 복원도, 즉 지칭은 비록 명제 가운데 명사와 대상의 관계에 대한 의미론적 논의하는 점에서 일면 지시론과 유사성을 가지지만, 근본적으로 하나의 주어진 명제가 어떻게 혹은 왜 참이 되는가를 설명하는 수단이며, 각자의 존재론적 혹은 신학적 견해에 따라서 매우 상이하고 다양한 방식에서 주어진 명제가 참이 되는 방식을 설명하는 수단이기도 하다는 복원도를 참고하여 현대 연구가들이 이야기하는 ‘현대’의 지시론과 ‘중세’의 지칭론을 동일한 것 혹은 매우 유사하다거나 동일하다는 견해에 반론을 제기하고, 중세 스콜라 학자의 입장에서 지칭론을 최대한 원형이 가깝게 복원하고자 한다.6) 한마디로 본 논문은 현대의 관점에

4) 필자가 suppositio personalis를 ‘위격적 지칭’이라 번역하는 것은 중세 학자들 사이의 신의 삼위일체와 관련된 논의, 즉 “신은 신을 낳았다”와 같은 논의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그 전문 용어의 등장에서 personalis는 인간의 ‘인격(人格)’이 아니라, 신의 ‘위격(位格)’과 관련되어 사용되었다. 그러니 그 전문 용어의 등장 배경을 감안하여 ‘위격적 지칭’이라 옮겨본다.

5) 지칭론은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에 한정되어 다루어진 것이 아니다. 지칭론은 근대 스콜라 철학자들의 문헌 속에서도 살아 있는 철학적 고민으로 진행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도 근대 스콜라 철학자들의 성과물을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의 그것과 구분 없이 인용하고 접근할 것이다. ed. E. P. Bos, Studies on the History of Logic and Semantics 12th-17th Centuries (Variorum , 1996) ; E. J. Ashworth, "Logic in Late Sixteenth - Century England : Humanist Dialectic and the New Aristotelianism", Studies in Philology 88 (1991), 224-36.

6) 이와 같은 필자의 시도는 다음의 연구물에서 많은 힘을 얻어 진행하게 되었다. F. Brown, "Medieval supposition theory in its theological context" Medieval philosophy and theology 3 (1993), 121-157. 이외에도 지칭 이론의 등장에 관하여 비록 몇 가지 견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글도 좋은 안내서가 되어 주었다. S. Ebbesen, "Early supposition theory (12th-13th Century)" Histoire, Épistémologie, Langage 3/1 (1981), 35-48. 또한 지칭 이론을 다룸에 있어 무조건 일독해야 할 것으로 필자에게 여겨지는 L. M. De Rijk, "The Development of Suppositio naturalis in Mediaeval Logic, II. 14th-Century Natural Supposition as Atemporal (Omnitemporal) Supposition" Vivarium 11 (1973), 43-79; L. M. De Rijk, "The Development of Suppositio naturalis in Mediaeval Logic, I. Natural Supposition as Non-contextual Supposition" Vivarium 11 (1971), 71-107; L. M. De Rijk, Logica Modernorum, Volume II Part 1 (Assen : Koninklijke Van Gorcum & Company N.V., 1967). 역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이외 지칭과 중세 논리학에 관하여 다음을 참고하였다. J. T, Kearns, "Propositional Logic of Supposition and Assertion" Notre Dame Journal of Formal Logic 38 (1997), 325-349; A. J. Freddoso, "O-Propositions and Ockham's Theory of Supposition" Notre Dame Journal of Formal Logic 20 (1979), 741-750; C. D. Novaes, "Theory of Supposition vs. Theory of Fallacies in Ockham" Vivarium 45 (2007), 343-357 ; D. P. Henry, Medieval Logic and Metaphysics (London : Hutchinson University Library, 1972) ; C. Panaccio, Ockham on Concepts (Hampshire : Ashgate, 2004) ; C. Panaccio & E. Perini-Santos, "Guillaume d'Ockham et suppositio materialis" Vivarium 42 (2004), 202-224 ; C. Panaccio, Les Mots, les Concepts et les Choses ( Paris : Vrin, 1992) ; P. Spade, "Ockham's Rule of Supposition : Two Conflicts in his Theory" Vivarium 12 (1974), 63-73 ; M. Adams, "What Does Ockham 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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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최대한 벗어난 중세인의 관점에서 지칭론을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필자의 힘을 허락하는 한에서란 말을 더하고 싶다.

2.0 지칭은 무엇이었는가?2.1 지칭의 등장 필자가 별 수 없어 ‘지칭’이라 번역하는 라틴어 suppositio는 라틴어 동사 supponere에서 나왔다. 이 동사는 “전제하다, 대치하다, 밑에 두다, 종속시키다, 대신 세우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중세 학자들도 suppositio를 논의하며, 그 어원을 고민하곤 했다.7) 지칭이 supponere에서 나왔다면, 지칭은 기본적으로 무엇인가를 대신해서 사용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무엇을 대신하여 사용되었단 말인가? 지칭의 복원에서 마주하는 첫 질문, 지칭의 어원에서 부터 난감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지칭’이 등장하는 본격적인 배경을 확인하면, 이러한 단어의 의미를 더욱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지칭의 첫 순간을 복원하긴 쉽지 않다. 그 순간에 대한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것이 중세 문법가인 프리스치아누스(Priscianus)의 글이다. 다음의 글을 보자.

“우리가 지칭된(suppositi) 명사로 묻는 것은 ‘누가 움직여?’, ‘누가 걸어?’, ‘누가 말해?’로 이야기될 수 있다. <이 물음은> ‘운동’ 혹은 ‘걸음’ 혹은 ‘말함’이란 행위는 분명한 경우이지만, 진정 그것을 실행하는 인격이(persona vero agens) 불분명한 경우다. 이러한 경우 주격 명사들은 보통 명사 혹은 고유 명사 그리고 분명한 속성에 의하여 일반 명사로 등장한다.”8)

“누가 움직여?”라는 물음의 답이 ‘지칭된 명사’다. ‘움직임’이란 동작은 분명한데, 그 움직임의 주체, 즉 문법적으로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술어)의 주체인 주어가 의문의 대상이 되는 경우, 그 의문의 답이 ‘지칭된 명사’다. 이때 ‘지칭된 명사’는 바로 ‘주어’다. 예를 들어, “한결이는 달린다”에서 ‘한결이’라는 명사는 진짜 눈앞에 달리는 한 사람인 ‘한결이’, 즉 ‘달린다’라는 행동을 하는 주체인 ‘한결이’를 대신하여 명제 속에서 의미론적 역할을 하는 술어의 주어이다. 바로 주어인 ‘한결이’라는 명사가 지칭된 명사가 된다. 이제 지칭이란 말의 어원, 무엇인가를 대신한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된 듯하다. 바로 실재 대상을 대신하여 문장 속에서 사

by 'Supposition'?" Notre Dame Journal of Formal Logic 17 (1976), 375-391 ; Ph. Boehner, Medieval Logic (Westport : Hyperion Press, 1988) ; E. Moody, Studies in Medieval Philosophy, Science, and Logic (Los Angeles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5) ; E. Moody, Truth and Consequence in Mediaeval Logic (Amsterdam : North-Holland Publishing Company, 1953) ; M. Kneale, The development of logic (Oxford : Oxford University Press, 1984) ; C. D. Novaes, Formalizing Medieval Logical Theories (Dordrecht : Springer, 2007).

7) Anonymous, Tractatus de proprietatibus sermonum, prologus, In Logica Modernorum, Volume II Part 2, 711. “단어에 관한 어원학에 따르면(secundum etimologiam) ‘지칭하다’(supponere)라는 말은 ‘아래에 두기’(sub ponere), 즉 ‘어떤 형상 아래 어떤 것을 표시하다(designare aliquid sub aliqua forma)’라고 여겨진다.”

8) Priscianus, Prisciani grammatici Caesariensis institutionum grammaticarum libri XVIII in H. Keil, Grammatici latini vol. 3, ed. M. Hertz, (Leipzig 1859), XVII, 23. 122. 그 이외 이와 관련하여 읽을 것은 다음이 있다. “예를 들어 만일 ‘누가 그냐?’(quis est ille)라고 말한다면, 이 명사의 모든 종류에 대답할 수 있다. 이는 의문문 가운데 지칭된 것(supposita)이다. 예를 들어, 인간, 말, 까마귀, 물고기이다.” Ibid., XVII, 41,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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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되는 명사와 관련된다. 처음 등장할 때, 지칭의 문제는 이렇게 주어에 한정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술어 명사, 즉 목적어와 보어 등으로 확대된다.9) 이러한 확대에서 불구하고, 지칭이 기본적으로 명사, 더 엄 하게는 라틴어의 체언(體言)과 관련된다는 사실은 기본적으로 유지 된다. 문법가 헬리아스(Peter Helyas)도 이러한 맥락에서 명사는 ‘지칭’하고 동사는 ‘서술’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10) 하지만 논의가 점점 다양해지면서, 지칭의 문제는 형용사로 확대되기도 한다.11) 그것은 라틴어 체계에서 형용사는 우리말(한국어) 형용사와 같이 용언이 아니라, 체언의 능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결국 근본적으로 지칭은 체언인 명사와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Socrates est homo)에서 술어의 주체는 ‘소크라테스’다. 이 명사는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한 명의 인간 소크라테스를 대신하여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소크라테스는 다섯 글자다”라는 명제에서 다섯 글자를 지칭하는 ‘소크라테스’와 앞서 진술한 ‘소크라테스’는 동일한가? 둘 다 동일한 명사를 사용하지만, 그 명사가 대신하는 대상, 즉 지칭 대상은 서로 다르다. 만일 다섯 글자인 ‘소크라테스’를 지칭하는 것으로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를 해석한다면, 이 명제는 거짓 명제가 되고 만다. 지칭이 이와 같다면, 신학과 존재론의 좋은 도구가 된다. 예를 들어 “신은 신을 낳았다”(Deus generet Deum)란 명제를 보자. 주어 명사인 신(Deus)이 지칭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 목적어 명사인 신(Deum)이 지칭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둘은 모두 ‘신’이란 동일한 명사를 사용하기에, 그 지칭의 대상, 즉 주어와 목적어가 모두 동일한 대상을 지칭한다면, 이는 삼위일체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 되겠지만, 주어 신과 목적어 신이 각기 다른 지칭 대상을 가진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즉 지칭론은 이와 같은 신학의 명제를 설명하는 좋은 수단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지칭론의 이면엔 지칭론에 대한 중요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바로 해석자가 한 명제의 명사가 어떤 지칭 대상을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명제의 진리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차후 더욱 더 깊은 논의를 하게 될 것이다. 등장 배경을 통하여 본다면, 지칭은 “명제 가운데 주어진 명사가 무엇을 대신하는가?” 혹은 “명제 가운데 주어진 명사가 무엇에 대하여 말하는가”의 문제와 깊이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삼위일체와 같은 신학의 문제는 물론이고, 차후 살피겠지만, 존재론의 문제와도 깊이 관련된다. 이렇게 지칭의 문제는 문법가인 프리스치아누스의 손을 떠나 스콜라 철학자와 신학자에게 넘겨진다. 여기에서 에베센(S. Ebbesen)의 글을 보자.

“나는 만일 12-13세기 스콜라 학자들에게 지칭에 관한 지식의 궁극적인 활용에 대하여 질문 받는다면, 그들은 그러한 지식 없이는 ‘그리스도는 3일 동안 사람이었다’와 같은 중요한 명제의 진리치(眞理値)를 판단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12)

9) 지칭의 문제가 주어를 넘어선 것은 오캄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서 확인 가능하다. 그 가운데 다음에서 한번 확인해보자. Theodor O. Mang, Institutiones logicae et metaphysicae (Paris, 1789) Logicae § 142, 80 “지칭은 명사의 수용(acceptio), 즉 확실한 어떤 것을 의미하는 가운데 주어와 술어의 수용이다.”

10) 헬리아스(Peter Helyas)의 글을 읽어보자. “임의의 명사는 그 자체로 지칭된다. 그리고 동사는 그 자체로 서술된다.” quodlibet nomen per se supponitur, et verbum per se apponitur. L. M. De Rijk, Logica Modernorum, Volume II Part 1, 517.

11) Anonymous, Tractatus de proprietatibus sermonum, prologus, In Logica Modernorum, Volume II Part 2, 711. “더욱이 이러한 것에 따르면 오직 실명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형용사도 지칭한다는 것이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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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맞는 말이다. 이에 더하여 레이크(L. M. De Rijk)의 글도 보자.

“의심할 것도 없이 지칭론의 발전과 관련된 추진력은 변증적 논쟁의 기술에서의 발생이다. <중세 시대의> 많은 논구가 논리적 논쟁을 위해 의미론의 기본적인 기능을 역설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 가운데 진정 중심이 되는 것은 ‘너는 무엇에 관해 말하는 거냐’란 것이다.”13)

스콜라 철학은 논쟁적이며, 분석적이다.14) 그들은 각자 철저하게 자신의 논리적인 성곽 속에서 타자와 논쟁했다. 그들에게 지칭은 매우 유용한 수단이었다. 레이크의 표현대로 “무엇에 대하여 말하는가?”라는 것은 논쟁의 중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존재론의 핫이슈였던 명제 “인간은 종이다”(homo est species)에서 ‘인간’이 무엇을 지칭하는가는 실재론과 유명론의 길을 갈랐다. 신학에서도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이는 “신은 신을 낳았다”에서 명사들이 무엇에 대하여 말하는가 혹은 무엇을 지칭하는가를 두고, 삼위일체를 거부하는 이의 주장에 대하여 논박하였다. 결론적으로 지칭의 등장은 “명제의 명사가 무엇에 대하여 말하는가”의 문제와 관련되며, 이는 중세 스콜라 학자들에게 좋은 논쟁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2.2 더욱 더 엄밀히 지칭은 무엇인가? 지칭은 의미(significatio)와 달리 “명제 가운데 명사가 무엇에 대하여 말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이는 후기 중세는 물론이고, 근대 스콜라 철학자들에게도 큰 틀에서 일치했다.15) 그리고 앞서 보았듯, 명제 가운데 명사의 지칭 대상에 따라 명제의 진리치도 달라졌다. “신은 신을

12) S. Ebbesen, “Early supposition theory (12th-13th Century)”, 39. 13) L. M. De Rijk, Logica Modernorum, Volume II Part 1, 553.14) 케니(A. Kenny)는 중세 철학을 그 이후 근대 철학보다 더 현대 영미 분석 철학과 더 접하다고 한

다. 앤소니 케니, 『아퀴나스의 심리철학』 이재룡 옮김 (서울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1999), 11. 그 이외 테이센(J.M.M.M. Thijssen)과 머독(J. Murdoch)은 뷔리당을 예로 들면서 “철학의 기능은 현대의 분석 철학과 유사한 상태에 있다”라고 한다. J. Murdoch, J.M.M.H. Thijssen, "John Bridan on Infinity" in The Metaphysics and Natural Philosophy of John Buridan, ed. J.M.M.H. Thijssen, J. Zupko (Leiden : Brill, 2001), 127-149, 149. 이러한 케니와 머독의 논의에 의존치 않고도 필자는 중세 철학에서 다양한 분석 철학적 면모를 확인하였고, 확신하고 있다.

15) 지칭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는 후기 중세 철학자들이나 근대 스콜라 철학자들이 일치한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한하여 이들 문헌에 등장하는 정의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다. Raffaele Aversa, Logica (Mascardi, 1623) Tractatus 2, cap. 8, 24. “지칭은 그 자체 혹은 그 자체의 의미 대상(significato)와 관련된 명사의 수용(acceptio termini)이다.”; Berhnardus de Lavinheta, Logica, Opera Omnia (Colonia, 1612) cap. 12, 10. “지칭은 보편적 실재(re universali) 혹은 개별적 실재(singulari)와 관련된 명사의 수용(acceptio)이다.”; Tomas Vicent Tosca, Complendium philosophicum (1754) liber 1, cap.4, propositio 10, 27. “지칭은 일반적으로(in communi) 다른 것과 관련된 실재의 위치(positio), 사용(usus) 혹은 수용(acceptio)이다.” Pedro de Fonseca, Institvtionvm dialecticarvm libri octo (Colonia, 1594) liber 8, cap.20, 503 “지칭은 의미하는 바와 같은 실재와 관련된 명사의 수용(acceptio nominis)이다.”; Placidus Retz, Philosophia - tomus 1 Logica ad mentem angelici divi thomae aquinatis (1714), quaestio 2, articulus 1, 690 “지칭은 그 자체에 관련하여 혹은 어떤 것에 의하여 대체되어지는 다른 것 어떤 것과 관련된 단어(vocis) 혹은 명사의 사용 이외 다른 어떤 것도 아니란 것은 분명하다.”; Francisco Gonzalez, Logica tripartita (Romas, 1639) Pars 1, sectio 5, 132 “지칭은 그 자체 혹은 자신의 의미 대상에 대한 명사의 사용(usus)과 대체(substitutio)이다.” William O'Kelly D'Aghrim, Philosophia Aulica juxta Veterum ac Recentiorum Philosophorum Placita (Prague, 1701) 13. “지칭은 자기 자신에 관한 된 혹은 자신의 의미 대상에 관한 된 명사의 수용(acceptio)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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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았다”라는 명제는 무엇을 지칭하는가에 따라서 신학적으로 참인지 거짓인지 달라졌다. 이러한 지칭과 관련된 문제를 중세인들은 ‘명사의 속성’(proprietas terminis)이란 제목을 가진 논리학의 일부로 다루었다. 명사의 속성을 다루며, 중세인들은 다음과 같이 지칭을 정의하였다. 이제 스콜라 학자들이 직접 지칭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보자.

“지칭은 명제 안에서 단의어 명사가 자기 자신을 향하거나 혹은 자기와는 다른 것 혹은 다른 것들을 향해 (pro) 갖는 자세(statio) 혹은 위상(positio)이다.”16) - 라이몬두스 룰루스(Raymudus Lullus)

“명사들의 의미에 관해(de significatione) 논의했기에 지칭에 관하여(de suppositione) 이야기하는 일이 남았으며, 그것은 명사에 수반되는 속성이지만, 오직 명제 가운데(in propositione) 있을 때에 그러한 속성(proprietas)이다.”17) - 오캄

“지칭(suppositio)이란 어떤 것 혹은 어떤 것들에 대한 명제 가운데 명사들의 수용(acceptio)이다...<중략>...즉 인간이란 단어는 명제 내부에서와 같이 외부에서도 의미를 가진다(significet).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제 가운데 부분으로 있는 것만이 지칭을 가진다.”18) - 파울루스 베네투스(Paulus Venetus)

지칭은 명제 가운데 있는 명사, 즉 문맥 속 명사의 속성이다. 문맥에서 독립된 ‘인간’이란 명사는 ‘의미’의 영역에서 다루어지지만, 지칭은 문맥에 종속적 명사에 한정된다. 예를 들어, 문맥에서 독립된 ‘인간’이란 명사는 “인간은 명사(이름씨)다(homo est nomen)”, “인간은 종이다” 등에서 ‘인간’과 분명 구분된다.19) 지칭은 이와 같이 명제 혹은 문맥 가운데 명사의 속성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명제는 분명 참과 거짓의 기로에 있다.20) 지칭 대상을 무엇으로 둘 것인가에 따라 참인 명제가 거짓이 될 수 있다.21) 예를 들어, ‘인간’이란 주어 명사가 ‘단어 그 자체’를 지칭한다면, “인간은 명사다”란 명제는 참이지만, “인간은 동물이다”는 거짓이 된다. 하지만 ‘인간’이란 단어가 ‘단어 그 자체’를 지칭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명사다”는 거짓이 되고, “인간은 동물이다”라는 명제는 참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어떤 형태의 지칭이 적용되는가에 따라서 명제의 진위는 달라진다. 즉 명제의 진위는 해석자가 어떤 지칭을 택할 것인가에 달렸다. 이제 어떤 형태의 지칭인가의 문제, 즉 지칭의 다양한 분류를 다루어보자. 실재로 대부분 스콜

16) Raymvdvs Lvllvs, Logica nova (ex typis Michaëlis Cerda & Antich & Michaèlis Amoròs, 1744) tabvla titvlorum logicae parvae, pars 3, a.1, n.1, 27-28. “suppositio est statio sive positio termini cathegorematici pro se, vel pro alio, vel aliis a se in propositione.”

17) Ockham, Summa logicae 1, c.63 (OPh.1, 193).18) Paulus Venetus, Summa totius dialecticae (Venice, 1563), tractatus 2, caput 1, 15. 19) 이러한 입장은 많은 경우 스콜라 철학자들에게 의심이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Antonius

Casilius, Introductio in aristotelis logicam (Roma, 1629), liber.1, tractatus 2, cap.1, sectio 2, 54-60에선 명사는 명제 외부의 것을 지칭하는가를 논의하고 있다.

20) “명제(propositio)는 이와 같이 정의된다. 명제란 참 혹은 거짓을 의미하는 구절(oratio)이다” Anonymous, Inrtoductiones montane minores, de propositione, 19. 이에 대하여 다음 문헌에서 라틴어 원문을 구해 읽었다. L. M. De Rijk, Logica Modernorum, Volume II Part 2, 7-71.

21) Marsilius of Inghen, De Suppositionibus. Kageman, (1495) 1. “지칭은 동시에 인정되거나 부정되는 명제의 참과 거짓을 구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Suppositio est adinuenta propter salvare veritates et falsitates propositionum comiter concessarum et negata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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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철학자들에 의하여 작성된 문헌은 이제까지 다른 ‘지칭의 정의’ 이후 ‘지칭의 분류’로 논의를 이어갔다. 본 논의도 그런 전통을 따라가 본다.

2.3 지칭의 분류와 철학적 입장 지칭의 분류란 곧 문맥 속 명사가 그 지칭 대상과 가지는 방식의 분류다. 이러한 지칭의 분류는 스콜라 철학자에게 심각한 고민의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지칭의 분류와 분류된 다양한 개별적 지칭들의 적용과 해석에서 각자가 가진 ‘존재론적 입장’이 드러나며, 그 입장 위에서 지칭론이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중세 지칭의 분류와 관련된 논의는 매우 다양하고, 다루어야 할 학자 역시 적지 않다. 그러나 본론에서 몇몇만을 그 대표로 삼아 다룰 수밖에 없다.22)

우선 13세기 철학자인 샤우드의 윌리엄(William of Sherwood)의 분류를 보자.

“지칭 가운데 어떤 것은 질료적(materialis)이고, 다른 어떤 것은 형상적(formalis)이다. 단어(dictio) 그 자체가 절대적으로 발화된 것 그 자체(ipsa voce absoluta)를 지칭하거나 혹은 발화와 의미로 구성된 단어 그 자체를 지칭할 때, 질료적이라 불린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인간은 2음절이다’ 혹은 ‘인간은 명사다’라고 말할 때와 같이 말이다. 단어가 그것의 의미하는 바의 것을 지칭할 때 형상적이라 부른다. 이와 같은 형상적 지칭은 단순(simplex) 지칭, 위격적(personalis) 지칭으로 나뉜다. 그리고 단어가 ‘의미 대상을 위한 의미 대상’23)을 지칭한다면, 단순 지칭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종이다’와 같이 말이다. 그리고 단어가 의미된 것을 의미대상으로 지칭한다면, 단순 지칭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종이다’와 같이 말이다. 반면 단어가 의미된 것 밑에 있는 사물을 의미대상으로 지칭하는 경우 위격적 지칭이다. (Personalis autem, quando supponit significatum pro re, quae subest, ut...) 예를 들어, ‘인간이 달린다’(homo currit)에서와 같이 말이다. 왜냐하면 ‘달린다’(currit)는 어떤 개별적인 인간에 의하여 인간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형상적 지칭의 또 다른 구분이 있다. 공통(communis) 지칭과 분배(discreta) 지칭이다. 공통 지칭은 공통 명사를 통하여 일어 날 때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은 달린다’(homo currit)와 같이 말이다. 분배 지칭은 분배 명사를 통하여 일어나는 것이며, ‘소크라테스가 달린다’ 혹은 ‘그 사람이 달린다’에 일어난다. 이 두 구분은 완벽하게 내가 형상적 지칭이라고 부는 것에 남김없이 있단 것을 명심해라. 왜냐하면 단어에 대한 모든 지칭함은 공통적이거나 분배적이다. 그리고 형상적으로 명사를 지칭하는 것은 의미 되는 형상, 어떤 의미에서 단순 지칭 혹은 어떤 의미에선 위격적인 형상을 담지 하는 것을 지칭한다. 위격적 지칭은 아래와 같이 나뉜다. 한편 결정적(determinata) 지칭이며, 다른 방식으로 혼연(confusa)24) 지칭이다. 혼연 지칭은 다시 순수 혼연(tantum confusa)과 분배 혼연(confusa et distributa)으로 나뉘며, 후자는 다시 동적(mobilis)인 것과 비동적

22) 지칭론의 분류에 대하여 스페이드의 다음 연구물을 참고하기 바란다. P. Spade, Thoughts, Words and Things: An Introduction to Late Mediaeval Logic and Semantic Theory ( 2007 ), 272-275. 이 연구물은 http://pvspade.com/Logic/에서 얻을 수 있다.

23) 라틴어 원문은 supponit significatum pro significato이다. 의미 대상에 대한 또 다른 의미 대상이란 의미로 읽을 수 있겠으며, 존재론적으로 ‘형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24) confusa를 우리말로 어찌 옮길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 가운데 ‘혼연’이란 말을 찾게 되었다. 이 말의 국어 사전적 의미의 하나는 ‘차별이나 구별이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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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obilis) 분배 혼연 지칭으로 나뉜다.”25)

윌리엄의 분류에 따르면, 명제 가운데 명사가 그 명사의 질료적 측면을 지칭할 때, 질료적 지칭이 적용된다.26) 또 명사의 형상적 측면, 즉 그 명사의 ‘의미 대상’을 지칭할 때, 형상적 지칭이 적용된다. 이 형상적 지칭은 다시 ‘단순 지칭’과 ‘위격적 지칭’으로 구분된다. 단순 지칭은 “인간은 종이다”에서 ‘인간’과 같은 경우다. 이때 ‘인간’은 그 단어가 ‘의미 대상을 위한 의미 대상’, 즉 보편적 형상(보편자)을 지칭한다. 반면 위격적 지칭은 “인간이 달린다”의 경우와 같이 ‘개별적 인간’(개별자)과 관련된다. 또 다시 위격적 지칭은 ‘결정적 지칭’과 ‘혼연 지칭’으로 구분된다. 결정적 지칭은 특정의 개별적 존재와 관련된다. 반면 혼연 지칭은 명사가 동일한 형상의 여럿을 지칭하는 경우다.27) 이러한 윌리엄의 분류는 한마디로 윌리엄 그 자신의 존재론이 언어 이해로 드러난 형태다. 그는 형상적 지칭 가운데 단순 지칭을 집어놓는다. 형상적 지칭은 형상적인 의미 대상을 가진 경우다. 단순 지칭이 바로 이러한 형상적 지칭에 속한다면, “인간은 종이다”에서 ‘인간’ 역시 어떤 형상적인 의미 대상이란 말이 된다. 즉, ‘인간’이란 보편자가 바로 ‘단순’하고 직접적인 의미 대상이며, 넓은 의미에서 형상적 의미 대상이란 말이다. 한마디로 윌리엄에게 “인간은 종이다”에서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유의미한 진술이 된다. 이러한 지칭 분류와 관련된 입장은 그가 가진 보편자에 대한 존재론적 입장, 즉 실재론이 반영되어 있다. 오캄은 다르다. 존재론적 토대가 다르다. 그의 글을 보자.

“우리는 먼저 지칭이 위격적 지칭, 단순 지칭, 질료적 지칭으로 나뉨을 알아야한다. 보편적으로 위격적 지칭은 그 의미 대상(sinificatum)이 영혼 밖의 실재이거나, 발화이거나, 영혼의 지향(intentio animae)이거나, 문자화된 것(scriptum)이거나, 이러한 것이 아니라면 상상할 수 있는 다른 어떤 것이거나 간에 명사가 자신의 의미 대상을 지칭할 때 존재한다. 명제의 주어와 술어가 의미론적으로(significative) 취해지는 방식으로 그것의 의미 대상을 지칭할 때 마다 그 지칭은 언제나 위격적이다....<중략>... 단순 지칭은 한 명사가 영혼의 지향을 지칭할 때 존재하지만, 의미론적으로 취해지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방식에 따라서 예를 들어 보면, ‘인간은 종이다’라고 함에 있어 ‘인간’이라는 명사는 영혼의 지향을 지칭하는데, 왜냐하면 그 지향이 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명사는 고유한 의미에서(proprie) 말한다면 그 지향을 의

25) ed. M. Grabman, 'Die Introductiones in logicam des Wilhelm von Shyreswood' in Sitzungsberichte der Bayer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Philosophisch-historische Klasse, Jahrgang Heft 10, (1937), 75. 이에 더하여 원전 번역에 있어 William of Sherwood Introductiones in logicam = Einfuehrung in die Logik, Textkritisch herausgegeben, uebersetzt, eingeleitet und mit Anmerkungen versehen von Hartmut Brands und Christoph Kann. (Hamburg : Felix Meiner, 1995) 을 참고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영어 번역은 다음이 있다. Trans. N. Kretzmann, William of Sherwood's Introduction to Logic (Minneapolis :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66).

26) 질료적 지칭에 대하여 다음의 논문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C. Panaccio et al. "Guillaume d'Ockham et suppositio materialis" Vivarium 42 (2004), 202-224 ; E. Bos, "Speaking about Signs - Fourteenth Century Views on the Suppositio Materialis" Amsterdamer Beiträge zur älteren Germanistik 48 (1997), 71-80.

27) 샤우드의 지칭 분류에서 형상적 지칭이 공통 지칭과 분배 지칭으로 나뉜다는 것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이해하긴 난해하다. 이에 대해선 더욱 더 자세한 문헌에 대한 탐구가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선 그 부분에 관하여 자세히 논의하지 못했다. 이 논문의 큰 맥락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샤우드의 온전한 지칭론의 복원을 위해 한번을 넘어가야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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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설명했던 방식을 따르면, 그 발화와 그 영혼의 지향은 동일한 의미 가운데 종속되는 기호일 뿐이다....<중략>... 질료적 지칭은 명사가 의미론적으로 지칭하지 않고 발화 명사나 문자 명사를 지칭할 때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인간은 명사다’에서 분명해진다. 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지칭하지만, 그것 자신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쓰인다’(homo scritur)라는 명제에서 적용되는 지칭은 질료적인데, 왜냐하면 그 명사는 쓰인 것을 지칭하기 때문이다.”28)

오캄은 형상적 지칭 없이 바로 직접적으로 위격적 지칭과 단순 지칭 그리고 질료적 지칭으로 구분한다. 왜인가? 그의 분류에서 형상적 지칭의 설 곳이 없기 때문이다. 앞서 샤우드가 형상적 지칭에 위격적 지칭과 단순 지칭을 포함한다고 한 것은 보편자에 대한 실재론적 입장이 드러난 것임을 확인했다. 오캄은 다르다. 오캄에게 고유한 의미에서 존재론적으로 유의미한 것은 위격적 지칭, 즉 개별자에 관한 지칭이다. 단순 지칭은 단지 영혼의 지향(intentio animae)을 지칭할 뿐이다.29) 그러니 이 둘을 포괄하는 형상적 지칭은 필요치 않다. 단순 지칭과 위격적 지칭이 다루는 명사의 지칭 대상은 아예 다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논의 역시 영혼 외부에 존재하는 것은 개별자뿐이라는 오캄의 존재론에 근거한다. 샤우드와 오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스콜라 철학자들은 자신의 존재론적 입장에 따라서 저마다의 분류 체계를 가지고 있다. 어떤 철학자들은 자신이 가진 존재론과의 조화를 위해 공통 지칭(suppositio communis)30)과 같은 새로운 지칭을 추가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선 기존에 수용되던 지칭을 제거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오세르의 램베르트(Lambert of Auxerre)는 오캄과 달리 본성적 지칭(suppositio naturalis)과 우유적 지칭(suppositio accidentalis)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지칭의 분류에 포함시켰다.31) 또 그는 단순 지칭과 위격적 지칭을 우유적 지칭의 하위에 두었다.32)

28) Ockham, Summa logicae 1, c.64 (OPh.1, 196-197). 오캄의 『논리학 대전』은 기본적으로 라틴어 원문에서 바로 직역하였다. 하지만 번역을 위해 참고한 현대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trans. by M. Loux, Ockham's Theory of Terms Part 1 of the Summa Logicae (Indiana : St. Augustine's Press, 1998); trans. by J. Biard, Somme de logique Premiere partie (Mauvezin : Trans-Europ-Repress, 1993); R. Imbach, Texte zur Theorie der Erkenntnis und der Wissenschaft (Stuttgart : Reclam, 1984); trans. by P. Kunze, Summe der Logik (Hamburg : Felix Meiner Verlag, 1999)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페이드의 홈페이지(http://pvspade.com/Logic/)에서 구할 수 있는 trans. by P. Spade, Selections from Part I of William of Ockham's Summa logicae (1995)의 도움을 받았다.

29) William Ockham, Expositio in libro artis logicae, prooemium (OPh.2, 7). “이 학문(논리학)은 영혼에 의하여 만들어진 개념 혹은 지향을 논의한다.” 오캄에게 논리학은 영혼 외부가 아닌 내부의 지향 혹은 개념들을 다루는 학문이다. 이러한 지향을 지칭하는 단순 지칭은 영혼 외부 개별자를 지칭하는 것과 공통된 것일 수 없다.

30) Anonymous, Dialectica Monacensis in L. M. De Rijk, Logica Modernorum, Volume II Part 2, 453-638. “공통 지칭(suppositio communis)은 ‘인간은 동물이다’(homo est animal)와 같은 공통 명사(termino communi)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다. 분리 지칭(suppositio discreta)은 ‘소크라테스는 달린다’(sor currit)와 같은 분리된 명사(termino discreto)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분은 그러한 명사에 의하여 의미되는 실재의 구분함으로 인하여 일어난다.”

31) 본성적 지칭에 관하여 다음 논문을 꼭 참고하기 바란다. L. M. de Rijk, "The Development of Suppositio naturalis in Mediaeval Logic" Vivarium 9 (1971), 77-107; L. M. de Rijk, "The Development of Suppositio naturalis in Mediaeval Logic (II)“ Vivarium 11 (1973), 43-79.

32) Lamberto di Auxerre, Logica (Summa Lamberti) (Firenze : La Nuova Italia, 1971), 205-211. 이에 대한 영어 번역은 다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Lambert of Auxerre, “Properties of Terms" in The Cambridge Translations of Medieval Philosophical Texs vol.1, ed. N. Kretzmann et al. (Cambridge : Cambridge Univerisity Press, 1988), 102-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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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논한 오캄은 비록 인정하지 않았지만, 많은 이들은 실재론이란 근거 위에 형상적 지칭을 수용하고, 질료적 지칭과 쌍을 이루게 하였다. 다음을 보자.

“결론 1. 지칭은 이와 같이 질료적 지칭과 형상적 지칭으로 나뉜다. 질료적 지칭은 그 자체와 관련된 명사의 수용(acceptio)이다....<중략>...형상적 지칭은 자기의 의미 대상과 관련된 명사의 수용이다...<중략>...결론 2. 형상적 지칭은 단순 지칭, 위격적 지칭으로 나뉜다.” - 플라치두스 레츠(Placidus Retz)33)

이와 같이 실재론자들은 그들의 존재론적 틀에 적절하게 지칭을 분류하였다. 이는 유명론자도 다르지 않다. 그들도 자신의 존재론에 적절하게 지칭을 분류하고 정의하였다. 지칭의 분류와 관련하여 잠정적으로 정리한다면, 지칭의 분류는 존재론적 사유의 분류라고 보아도 좋을 정도다. 그리고 명제의 해석자는 바로 자신의 존재론적 입장에 따라서 자신의 분류에 근거하여 명제를 해석하고 그 지칭 대상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니 명제의 참이란 결론은 같을 수 있지만, 참인 근거는 그들의 존재론과 지칭론에 따라 다를 수 있게 된다.

3. 지칭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였는가?3.1 지칭론과 스콜라 철학자들의 신학적 담론. ‘지칭’은 13-14세기 샤우드의 윌리엄과 오캄, 16세기 톨레투스(Franciscus Toletus)34), 17세기 뒤 트리에(Philippe Du Trieu), 18세기 토스카(Thomas Vincentius Tosca) 그 이외의 많은 학자들에게 오랜 시간 고민의 대상이었다. 왜 이들은 지칭을 그토록 오랜 시간 연구하고 교육시킨 것인가? 이제 지칭 정의와 분류 이후 그 활용에 대하여 논해보자. 토마스 아퀴나스와 보나벤투라(Bonaventura) 그리고 월터 채톤(Walter Chatton) 등은 모두 ‘지칭’을 사용하여 고민하였다. 서로 다른 존재론적 입장을 가진 세 사람이 ‘지칭’이란 수단으로 고민한 공통의 장소는 “신은 신을 낳았다”란 신학 명제의 해석이다.35) 이 명제에서 주어인 ‘신’(deus)과 목적어인 ‘신’(deum)이 무엇을 말하는가에 따라서 매우 다른 신학적 입장이 성립된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된 하나의 지칭 갈래가 형성된다. 신의 위격(persona)을 다루며 등장한 ‘위격적 지칭’이다. 다음을 보자.

“가장 있을 법한 것은 (위격적 지칭이) 보에티우스의 저작 『위격과 두 가지 본성에 관하여』의 고찰과 같은 신학적 맥락에서 출발했단 것이란 해설이다. 그리스도인이 ‘신이 인간이 되었다’(Deus factus est homo)고 할 때, 이는 신성의 형상이 인간성

33) Placidus Retz, Philosophia - tomus 1 Logica ad mentem angelici divi thomae aquinatis, quaestio 2, articulus 1, 690-691. 플라치두스 레츠는 1748년 사망한 스콜라 철학자다. 이러한 형상적 지칭과 질료적 지칭의 긍정은 Tomas Vicent Tosca, Complendium philosophicum, liber 1, cap.4, propositio 10. 27에서도 찾아 읽을 수 있다. “명사의 지칭은 두 가지다. 다른 것은 질료적이고, 또 다른 것은 형상적이다. 또한 명사의 지칭이 이중적이다.”; Raffaele Aversa, Logica, Tractatus 2, cap. 8, 24. “지칭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질료적 <지칭>이라 불린다. 명사가 자기 자체와 관련되어 수용될 때이다. 다른 것은 형상적 <지칭>이라 불린다. 그리고 이는 명사가 자체의 의미 대상과 관련되어 수용될 때이다.”

34) 근대 스콜라 철학자들의 문헌 연구를 통하여 그의 이후 그가 또 하나의 거장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5) 이러한 논의에 관하여 F. Brown, "Medieval supposition theory in its theological context"에서 더욱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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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형상과 동일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전자가 가진 한 위격이 어떤 특정의 시간에 후자 역시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36)

“신이 인간이 되었다”에서 ‘신’이란 명사가 지칭하는 것은 성자(聖子)라는 하나의 위격이다. 이런 고민에서 등장한 것이 ‘위격적 지칭’이다. 위격적 지칭은 이와 같이 세 위격 가운데 하나의 위격과 같이 개별자를 지칭 대상으로 삼는 경우에 주어진다. 유명론자와 실재론자 모두 개별자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위격적 지칭’의 정의는 어느 정도 일치했다. 앞서 보았듯이 위격적 지칭은 신학의 명제를 해결함에 있어 좋은 수단이 되었다. 넓게 보면 지칭 자체가 좋은 수단이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토마스 아퀴나스의 글을 더 읽어보자.

“그러므로 신이란 명칭은 어떤 때는 본질(essentia)을 지칭한다. 마치 ‘신이 창조한다’(Deus creat)라고 말하는 경우와 같다. 왜냐하면 이 술어는 신성(deitas)이란 의미대상의 형상에 근거하여 주어에 적절하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때는 위격을 지칭한다(supponit personam). ‘신이 낳는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오직 하나의 것(unam tantum)만을 지칭하거나 혹은 ‘신은 입김을 불어놓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두 위격을 지칭(한다.)”37)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이 신을 낳았다”란 명제를 ‘위격적 지칭’으로 해결한다. 그리고 “신이 입김을 불어넣다”에서 ‘신’은 두 위격을 지칭한다고 해석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신학 명제의 명사가 무엇을 지칭하는가의 문제를 통하여 명제들이 어떻게 참이 되는가를 설명한다. 이와 같은 지칭과 신학의 만남은 보나벤투라에게서도 발견되며,38) 많은 중세 스콜라 문헌에서 발견된다. 3.2 지칭론과 스콜라 철학자들의 존재론적 담론. 신학에 이어 존재론에서 지칭의 활용을 확인하기 위해 ‘단순 지칭’을 살펴보자. 우선 중세 철학자인 토마스 마울레페트(Thomas Maulefeth)의 증언을 읽어보자.

“단순 지칭은 영혼의 지향을 지칭하는 명제의 부분과 같은 발화 명사 혹은 문자 명사이다... 첫째로 실재론자들이(realistarum) 가정하는 단순 지칭의 방식과 견해는 단순 지칭이 공통본성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이는 존재 가운데 보편자이며... 이러한 방식은 스페인의 페트루스(Petrus Hispanus)가 주장한 것이다.... 다른 것은 현재 학자들의 방식이며...이들 현재 학자들은(moderni) 단순 지칭이 어떤 개념을 지칭한다고 한다.”39)

36) M. Kneale, The development of logic (Oxford : Oxford University Press, 1984), 256.37)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I, q.39, a.4, resp. (Roma : Marietti, 1952).

"Quandoque ergo hoc nomen Deus supponit pro essentia, ut cum dicitur, Deus creat, quia hoc praedicatum competit subiecto ratione formae significatae, quae est deitas. Quandoque vero supponit personam, vel unam tantum, ut cum dicitur, Deus generat; vel duas, ut cum dicitur Deus spirat; vel tres, ut cum dicitur, regi saeculorum immortali, invisibili, soli Deo etc., I Tim. I."

38) Bonaventura, in I sent., d.4, a.1, q.1 res. (Quaracchi, 1882, 98).39) Thomas Maulefeth, Ms. Crac. Bibl. Jag.2178, fol.17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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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증언에 따르면 단순 지칭은 철학자들의 존재론이 서로 대립하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존재론의 논쟁 마당이 된 단순 지칭이란 무엇인가?

“단순 지칭은 오직 자기의 ‘우선된 그리고 직접적인 의미 대상과 관련된 명사의 수용’이다.” - 플라치우스 레츠40)

명제 가운데 한 명사가 우선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단순하게 지칭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답을 두고 실재론과 유명론은 다른 길을 간다. 실재론자들은 단순하게 지칭되는 대상을 보편자로 본다. 다음을 보자.

“또한 오직 의미 대상에 관하여 직접적으로(immediato) 수용될 때, 즉 오직 공통성 가운데 본성과 관련되어 수용될 때, 이를 단순 지칭으로 지칭되는(supponere suppositione simplici) 것이라고 부른다. 마치 ‘인간은 종이다’(homo est species)라고 말하는 가운데와 같이 말이다. 왜냐하면 단일한 인간에 대하여 정당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직 보편자 가운데 취해지는 인간에 대하여 정당성을 가진다.” - 아베르사(Raffaele Aversa)41)

“‘인간’은 직접적으로 인간 본성을 지칭하며. 베드로와 바울로 그리고 요한...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 플라치우스 레츠42)

이에 따르면, “인간은 종이다”에서 ‘인간’은 공통 본성을 지칭한다. 이러한 입장은 후기 중세 스콜라 철학자는 물론이고, 근대 스콜라 철학자들에게서 빈번히 발견된다.43) 대체로 이 같은 단순 지칭의 입장을 가진 이들은 실재론의 노선에 선 이들이다. 근본적으로 이와 뜻을 달리하는 이들은 존재론적으로 다른 노선에 선 이들이다. 대표적으로 오캄이 그렇다. 그는 단순 지칭의 해석에서 다른 길을 간다. 다음을 보자.

“단순 지칭은 명사가 ‘영혼의 지향’을 지칭할 때 주어진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 ‘인간은 종이다’라는 명제에서 ‘인간’은 영혼의 지향을 지칭한다. 왜냐하면 ‘이 지향’이 종이기 때문이다.”44)

그는 실재론자들과 달리 “인간은 종이다”에서 ‘인간’의 지칭 대상은 ‘보편자 인간’이 아니라, ‘영혼의 지향’(intentio animae)45)이라 한다. 이와 유사한 입장은 토마스 마울레페트와 작센

40) Placidus Retz, Philosophia - tomus 1 Logica ad mentem angelici divi thomae aquinatis, quaestio 2, articulus 1, 691.

41) Raffaele Aversa, Logica, Tractatus 2, cap. 8, 25.42) Placidus Retz, Philosophia - tomus 1 Logica ad mentem angelici divi thomae aquinatis,

quaestio 2, articulus 1, 691.43) Berhnardus de Lavinheta, Logica, cap. 12, 10. “단순 지칭은 보편적 실재와 관련된 명사의 수

용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종이다’와 같다.” ; William O'Kelly D'Aghrim, Philosophia Aulica juxta Veterum ac Recentiorum Philosophorum Placita, 13-14. “단순 지칭은 오직 공통 본성(sola natura communi)과 관련된 명사의 수용이다. 마치 내가 ‘인간은 종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44) Ockham, Summa logicae 1, 64 (OPh.1, 196).45) 오캄은 지향을 “제일 지향은 기호가 아닌 대상을 의미하는 것에 대한 사고행위이며, 제이 지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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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알베르투스(Albertus de Saxonia)에게도 발견된다.

“단순 지칭은 발화적 혹은 문자적 명사의 수용이며, 이는 의미 대상과 관련해서 놓이지 않는 영혼의 지향으로 수용되어지는 것이다.” - 작센의 알베르투스46)

하지만 지칭론은 유명론자들 사이에도 그리고 개념론자들 사이에도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유명론자들 사이에도 저마다의 미세한 존재론적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지칭론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잉겐의 마르실리우스(Marsilius von Inghen)가 그렇다. 그는 비록 반-실재론이란 흐름에 동참했지만, ‘단순 지칭’의 해석에서 오캄과 구분된다. 그의 글을 보자.

“단순 지칭을 나는 가정하지 않는다... 발화 명사 혹은 문자 명사가 심적 개념을 지칭할 때,... 나에게 그러한 것은 큰 실용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러한 명사들의 지칭을 질료적으로 지칭하는 것이라 여겨진다.”47)

그에게 ‘단순 지칭’은 필요 이상의 것이다. “필요 이상의 것을 가정하지 않는다”는 철학의 면도날이48) 시대정신이던 시대, 그는 ‘단순 지칭’을 제거한다. 그리고 ‘단순 지칭’의 역할은 ‘질료적 지칭’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다 한다.49) 이러한 지칭의 이해와 분류는 오캄과 구분된다. 오캄은 ‘질료적 지칭’을 “인간은 명사다”(homo est nomen)에서 ‘인간’에게 적용되는 지칭으로 본다. 그리고 분명히 단순 지칭과 질료적 지칭을 구분한다. 이러한 오캄의 ‘질료적 지칭’에 대한 입장과 유사한 입장들은 스콜라 철학자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50) 하지만 마르실리우

제일 지향을 의미하는 사고행위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서로 구분되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Ockham, Quodlibeta 4, 35 (OTh.9, 475).

46) Albertus de Saxonia, Perutilis logica tractatus 2, cap.2. 이에 대한 라틴어 원문은 다음의 글을 토대로 번역하였다. Ch. Kann, Die Eigenschaften der Termini (Leiden : Brill, 1994), 166-267. 169.

47) Marsilius Inchen, Textus dialectices, (Viennae 1516) fol. 161. 필자가 이곳에서 사용한 라틴어 원문은 K. A. Sprengard, Systematische-Historische Untersuchungen zur Philosophie des XIV Jahrhunderts band 1 (Bonn : H.Bouvier u. Co.Verlag, 1967), 125이다.

48) 이러한 학풍은 다음의 문헌들에서 확인된다. 둔스 스코투스 “다수성(pluralitas)은 필요성(necessitas)이 없을 때 가정되지 않아야 한다.” Duns Scotus, I Ordinatio d.3, p.3, q.1 (ed. Balic 3, 224) ; 오캄 “필요성 없이 그리고 근거 없이 다수성이 가정되기에 이는 불합리한 것으로 보인다.” Ockham, Summa logicae 1, 57 (OPh.1, 185) ; 월터 채톤(Walter Chatton) "다수성은 필요성 없이 가정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Walter Chatton, I Lectura, prol. q.2.

49) E. Bos, "Die Rezeption der Suppositiones des Marsilius von Inghen bei Johannes Dorp und in einem Anonymen Prager Sophistria Traktat (um 1400)" in Philosophie und Theologie des Ausgehenden Mittelalters, ed. M. J. F. M. Hoenen et al. (Leiden : Brill, 2000), 213-238.

50) Ockham, Summa logicae 1, 64 (OPh.1, 196). 그 이외 참고 자료는 다음과 같다. Walter Chatton, Lectura in I sent. 4. 1.1-2 136. “명사가 그 명사 자체를 지칭할 때 질료적으로 지칭한다. 예를 들어, ‘인간은 명사이다(Ήomo est nomen)’라는 명제에서와 같이 말이다.” 이 채톤의 저작은 Brown Stephen F., "Medieval supposition theory in its theological context"121-157. In appendix: Walter Chatton: Lectura in I Sent. 4.1.1-2의 것을 원문으로 번역했다. Berhnardus de Lavinheta, Logica, cap. 12. 10. “질료적 지칭은 질료적인 것으로 포착된 실재와 관련된 명사의 수용이다. 예를 들어, homo est dictio dissyllaba와 같다.” ; Placidus Retz, Philosophia - tomus 1 Logica ad mentem angelici divi thomae aquinatis , quaestio 2, articulus 1, 690 “질료적 지칭은 그 자체와 관련된 명사의 수용이다. 예를 들어, 내가 homo est vox, homo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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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는 아니다. 더 기원을 파고들면, 그의 이러한 지칭론은 많은 부분 뷔리당(Johennes Buridan)의 영향이다.51) 뷔리당은 그의 지칭 분류에서 ‘단순 지칭’을 아예 지워버렸다. 같은 노선의 페르구라(Paul Pergula) 역시 같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한 무명씨 철학자는 그의 저작에서 ‘단순 지칭’은 단지 ‘조건에 따라서’ 요구되는 것이라 정의했다. 이러한 다양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실재론과 다른 유명론이란 존재론의 길을 갔다. 그리고 그 길에서 자신만의 지칭론을 전개했다. 지칭론은 자신의 존재론이 명제 해석을 통하여 드러내는 수단이며, 지칭론은 존재론으로 그 논의의 타당성을 가졌다. 이렇게 단순 지칭의 논의에서 지칭론과 존재론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였다. 3.3 지칭론이 사용된 근거 신학과 존재론에서 지칭론은 좋은 수단이 되었다. 각 영역에서 고민되는 명제가 어떻게 참인 명제가 되는가를 설명하는 수단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꼭 살펴야 할 것이 있다. 지칭론은 지칭의 대상이 정해져 있지 않다. “인간은 종이다”를 두고 일어난 논쟁이 가능한 것도 지칭의 대상을 정해두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지칭의 대상이 정해졌다면, 해석자와 그 해석자의 존재론적 입장 혹은 신학적 입장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게 된다. 물론 “한결이가 달린다”에서 ‘한결이’에게 적용된 분배 지칭에선 대상이 직접적으로 정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논쟁이 있을 수 없지만, “인간은 종이다”에서 ‘인간’은 같은 단순 지칭을 적용한다고 해도 ‘인간’에 대한 지칭 대상은 해석자의 입장에 따라서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중세인에게 명제 가운데 명사에 적용되는 것이 하나의 지칭으로 고정되지 않으며, 지칭 대상도 고정되지 않았다. 이는 해석자의 입장에 따라 달라졌다. 그렇기에 지칭론이 다루어진 근대 스콜라 철학자들이 선택한 학문의 이름은 ‘변증술’(dialectica)이다.52) 해석자들이 서로 논쟁함에 있어 더욱 더 탁월한 논쟁을 위해 익히는 변증술의 한 부분으로 지칭이란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논쟁의 시작은 과연 그가 구사하는 명제 속 명사가 무엇에 대하여 이야기하는가? 즉 지칭 대상이 무엇인가이다. 그것을 익혀야지만이 진정 타자와 뛰어난 논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논쟁이 가능하기 위해선 ‘무엇에 대하여 이야기하는가’, 즉 지칭 대상이 고정되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지칭론의 논쟁, 즉 서로에게 너는 무엇에 대하여 이야기하는가라고 논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존재론과 신학에서 야기된 하나의 명제를 두고 스콜라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논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지칭론의 이러한 모습 때문이다. 즉 명제의 해석자들, 즉 철학자들은 자신의 존재론 혹은 신학적 입장에 따라서 주어진 명사와 그 지칭 대상을 취하였다. 그리고 이 둘의 관계를 설명하는 지칭의 다양한 분류 가운데 하나를 취하였다. 그렇게 취한 것으로 명제의 참 거짓을 분별하였다. 여기에서 다양한 논쟁이 가능했다. 중세인들에게 지칭론이 논쟁에서 사용 가능한 것이었던 이유, 그것은 그것이 지칭 대상을 고정하지 않으며, 그것을 해석자의 몫으로 돌린 이유 때문인 듯하다.

bisyllabum, homo constat 4 litteris이라고 말할 때다.” ; Tomas Vicent Tosca, Complendium philosophicum, liber 1, cap.4, propositio 10. 27. “질료적 지칭은 단어(vox) 그 자체 혹은 명사(terminus)와 같은 자기 자신의 질료적 의미 대상과 관련된 명사의 수용이다.” ; Raffaele Aversa, Logica, Tractatus 2, cap. 8, 24. “하나는 질료적(materialis) <지칭>이라 불린다. 명사가 자기 자체와 관련되어 수용될 때이다.”

51) Ibid., 214.52) 다음의 저작을 보라. P. Venetus, Summa totius dialecticae, Pedro de Fonseca, Institvtionvm

dialecticarvm libri octo. 이러한 제목은 제법 많이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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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칭의 복원도 그리기.4.1 지칭에 관한 현대 연구가들의 입장들. 논의의 첫 머리에서 보았듯이, 많은 현대의 연구가들은 지칭을 현대 철학자의 지시론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평가한다. 앞서 보인 기치는 물론이고, 피터 킹(P. King) 역시 지칭론을 중세의 ‘지시론’이라 했고,53) 파나쵸(C. Panaccio)54)와 헨리(D. P. Henry)55) 역시 세부적 차이를 가진다 해도 근본적으로 지칭을 현대 지시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논했다. 이런 흐름은 오캄의 『논리학 대전』의 영역자인 룩스(M. Loux) 역시 다르지 않다.56)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연구가들은 지칭을 현대 의미론,57) 특히 현대 지시론이라 본다. 스페이드의 다음 글을 보자.

“이 두 이론 사이의 차이는 아마도 각각의 것이 답하고자 하는 것이 어떤 질문인가에 의하여 잘 확인된다. 첫째 이유는 적절한 지칭 이론은 결과적으로 지시론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한다. 어떤 실재와 실재들이 주어진 문장 가운데 주어져 있는 명사들에 의하여 지시되는가? 이런 질문은 명사가 주어진 상황에서 지시하는 것 혹은 지칭하는 것이 완벽하게 지칭론에 의하여 대답되어진다.”58)

스페이드의 이러한 입장은 다른 많은 연구가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면이 있다. 스페이드뿐 아

53) P. King, “Introduction” In John Buridan’s Logic. (Dordrecht : Reidel, 1985), 35. “지칭 이론은 형식 논리학과 동화되지 않았으며 논리학의 철학과 동화되어야 했었다. 그것은 중세의 지시 이론이다.”

54) C. Panaccio, Ockham and Concepts (Aldershot : Ashgate, 2004), 8. “개념은 그것들이 그 자체로 고려되어 질 때, 의미 혹은 내포(connotatio)를 가지는 것이라고 말 된다. 그리고 명제적 맥락 가운데 일어날 때, 지시적 기능(a referential function)도 가지는 것이라고 말 된다.”

55) D. P. Henry, Medieval Logic and Metaphysics (London : Hutchinson University Library, 1972), 47. “지칭 이론은 중세 논리학의 역사 가운데 현대적 연구 가운데 흥미의 중심 가운데 하나이다. 이 흥미는 의미와 지시의 문제(problem of meaning and reference)와 최근의 매력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56) M. Loux, "Ockham on generality" In William of Ockham's theory of terms. Part I of the Summa logicae (Notre Dame : University of Indiana Press, 1974), 23. “오캄이 행한 일반성(generality)에 대한 논의의 기본적인 작업은 지칭에 대한 그의 이론이다. 오캄이 그것을 설명하듯이 지칭은 단어-실재의 관계를 포함하는 가운데 의미에 일치하는 의미론적 속성이다. 그러나 의미가 변화하지 않는 단의어와 관련된 속성임에 비하여, 지칭은 명사(term)가 오직 명제의 문맥 가운데 주어져 있을 때의 속성이다. 그의 의미론적 법칙은 지시(reference) 이론에 의한 현대의 이론 가운데 있는 것과 같다. 어떤 한 명사가 명제 가운데 대상을 지칭한다고 말함은 마치 질문 가운데 대상을 가르치거나 혹은 표시하는 것과 같이 어떤 한 명사가 그 명제 가운데 그러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을 말함이다.”

57) 소개한 연구가들은 대체로 의미론과 관련하여 접근하지만 오직 이 같은 관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무시할 수 없는 또 한 명의 선구자적 연구가인 무디(E. Moody)는 직접적으로 의미론적 해석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지칭론을 구문론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 논했다. E. Moody, Truth and Consequence on Medieval Logic (Amsterdam : North-Holland Publishing Company, 1958), 22. “지칭이란 명사와 명사 사이의 구문론적 관계이며, 명사와 언어 외부의 대상 혹은 의미 대상과 명사의 의미론적 관계는 아니다.”

58) P. Spade, ‘The logic of the categorical: the medieval theory of Descent and Ascent’ In Meaning and inference in medieval philosophy. ed. by N. Kretzmann (Dordrecht: Kluwer Academic Publishers 1988), 190. 스페이드의 이러한 지칭론에 대한 관점은 그의 다른 글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그 이론의 첫 부분 가운데 지칭은 요즘 우리가 ‘지시’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명제 가운데 명사와 그 명사들이 그 명제 가운데 말 되는 실재 대상 사이의 관계다.” P. Spade, Thoughts, Words and Things (1996), 263. 스페이드의 본 자료는 그의 사이트인 www.pvspade.com에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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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많은 이들은 수용하는 입장, 즉 지칭론은 ‘명제의 명사’와 ‘그 명사의 지칭 대상’의 관계 문제이며, 이는 ‘단어’와 ‘그 단어의 지시 대상’에 관한 문제인 지시론과 궁극적으로 같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로 중세인이 한 고민과 “샛별은 개밥바라기다”로 현대인이 한 고민이 같거나 매우 많이 유사하다. 실재로 많은 연구가들은 지칭론이 단지 명사와 그 명사의 지칭 대상에 한정하여 다루고 있다. 다음을 보자.

“지칭 이론은 오캄의 의미론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그곳에서 지칭 이론은 매번 그가 어떻게 보편적 명사가 개별적 실재를 지시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할 때 등장한다.”59)

물론 지칭론은 이러한 면을 가진다. 그러나 이것이 지칭론의 모두인가? 지칭론은 지시론인가? 이에 대하는 필자는 부정적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교집합은 인정하지만, 이 두 집합은 분명히 다른 서로의 영역을 가진다고 본다.

4.2 지시론이 아닌 지칭론. 지칭론이 아닌 지시론 호위치(P. Horwich)는 지시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사전적 정의를 제시하고 있다.

“철학에서 ‘지시’라는 전문적 용어는 단어 그 자체와 그 단어를 사용하는 가운데 그 단어가 어떤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과의 관계를 그리기 위해 도출하는 것이다.”60)

지시론의 기본은 단어와 그 단어의 지시 대상의 관계다. 이런 맥락에서 많은 연구가들은 지칭론을 지시론으로 읽었다. 하지만 지칭론과 지시론은 다르다. 지칭론은 해석자가 명제가 참임을 설명하기 위하여 지칭 대상을 자신의 입장에 따라 취한다. 과연 지시론도 이러한 것인가? 오캄은 명제를 해석하려는 이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인간은 피조물 가운데 가장 고귀한 피조물이다’라는 이 명제는 참이다. 나는 ‘인간’이 여기에서 어떤 지칭을 가지는가를 묻는다.”61)

어떤 지칭을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서 이 명제는 거짓이 될 수 있다. 그러니 그것이 가장 먼저 물어질 수 있다. 더욱 더 확연한 두 이론의 구분을 위하여 현대 지시론을 살펴보자. “샛별은 개밥바라기다”라는 명제에서 ‘샛별’과 ‘개밥바라기’가 ‘뜻’은 다르지만, 동일한 ‘지시 대상’을 가진다는 것 정도로 ‘지시론’의 논의를 한정한다면,62) 지칭론과 지시론은 어떤 면에서 유사한 면을 가진다. 그

59) L. Formingari et al, A History of Language Philosophies ( Roma : John Benjamins Publishing Company, 2004), p. 78. 이외 이와 관련하여 다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C. Panaccio, "Guillaume d'Occam et les pronoms demonstratifs" In Sprache und Erkenntnis im Mittelalter. Ed. by Beckmann Jan P. et al. (Berlin : Walter de Gruyter, 1981), 465-470 가운데 470을 보라.

60) P. Horwich, "Reference" A Companion to Metaphysics, ed. J.G. Kim and E. Sosa (Blackwell : Massachusetts, 1995), 440-442.

61) Ockham, Summa logicae 1, c. 66 (OPh.1, 200).62) G. Frege, “Über Sinn und Bedeutung”,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und philosophi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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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성이란 것도 필자에겐 위격적 지칭 정도에 한정될 것 같지만, 이런 면을 수용한다고 해도, 태생적으로 ‘지칭론’과 ‘지시론’은 다르다. 지칭론은 어떻게 이 명제가 참인지를 설명한다. 그것을 위하여 해석자는 자신의 존재론적 입장... 등에 따라 지칭의 분류를 선택하며, 선택된 지칭에 따라 명사와 지칭 대상을 설명한다. 이미 앞서 단순 지칭이 존재론에서 활용되는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명제의 해석자의 존재론적 입장이 동일한 유명론이라 해도, 지칭의 이해와 분류는 다르며, 이에 따라서 지칭 대상에 대한 해석도 달랐다. 같은 존재론적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실재론와 유명론에선 더욱 더 다양해진다. 그러니 엄 하게 지칭 대상은 하나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오캄이나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이 “샛별은 개밥바라기다”라는 명제를 봤다면, 위격적 지칭을 선택했을 것이다. 더 엄 하게는 “소크라테스가 달린다”, “한결이가 달린다”에서 활용되는 분배 지칭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에 따르면 엄 하게 동일한 개별자를 지칭하기에 이 명제는 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질료적 지칭이나 단순 지칭을 선택했다면, 이 명제는 거짓 명제가 된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서 오캄이나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은 ‘샛별’와 ‘개밥바라기’의 뜻이 다르며, 뜻이 다른 대상이 동일한 것을 지칭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명제를 분석하진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샛별’과 ‘개밥바라기’의 동일성이 아니라, 어떻게 이 명제가 참인가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레게(G. Prege)는 “샛별은 명사다”와 “샛별은 별이다”를 고민하지 않았다. 프레게의 고민을 살필 수 있는 다음 글을 보자.

“동일성(Die Gleichheit)은 대체적으로 답변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불러들인다. 동일성은 어떤 관계(eine Beziehung)가 있는가? 대상들(Gegenständen) 사이의 어떤 관계인가? 혹은 대상으로 인하여 있는 명칭 혹은 기호(Namen oder Zeichen) 사이의 관계인가?”63)

프레게의 고민은 오캄, 작센의 알베르투스,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토스카 등이 고민한 것과 다르다. 물론 완전히 다르다 할 순 없다. 어쩌면 위격적 지칭과 어느 정도 외형의 유사성을 보일 수도 있다. 프레게의 고민, 즉 “샛별은 개밥바라기다”에서 ‘샛별’과 ‘개밥바라기’ 이 둘의 동일성을 고민하며, 그 관계가 대상 사이의 관계인지, 혹은 기호 사이의 관계인지에 대하여 고민한다. 그러나 지칭은 다르다. 오캄은 “인간은 두 글자다”와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와 같은 명제를 지칭으로 분석할 때, ‘인간’과 ‘두 글자’가 의미하는 의미 대상은 다르지만, 동일한 지칭 대상을 가진다고 말하기 위하여 논변을 전개하였을까? 아니다. 분명 그러한 이유로 고민을 하진 않았다. 오캄의 고민은 오히려 이 명제가 어떻게 참인가의 문제다. 지칭 대상이 무엇이 되어야 참이며, 어떤 지칭을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또 중세 스콜라 철학자에 단순 지칭과 질료적 지칭이 적용되는 “인간은 두 글자다”와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란 명제에 지시론이 적용될 수 있겠는가? 전자의 명제에서 ‘인간’과 ‘두 글자’는 의미가 다르지만, 동일한 대상을 지시한다고 할 때, 이러한 사례가 “샛별은 개밥바라기다”와 같은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질료적 측면을 이야기하는 ‘인간’이란 단어의 의미와 ‘두 글자’라는 단어의 의미를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현대 많은 연구가들이

Kritik, 100, (1892), 25-50 ; 안토니 케니, 『프레게 - 현대 분석철학의 창시자에 대한 소개』 최원배 옮김 (서울 : 서광사, 2002), 183.

63) G. Frege, “Über Sinn und Bedeutung”,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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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는 지시론과 지칭론의 동일성이란 것은 지칭론의 집합 가운데 위격적 지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는 설사 위격적 지칭에 한정한다고 해도, 그 고민의 시작에서 이미 지칭론과 지시론은 다르다는 입장이다. 현대 지시론은 중세 지칭론과 다르다. 중세 지칭론은 근본적으로 궤변에 빠지지 않고, 뛰어난 논리를 구성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상대방이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그가 사용하는 문맥 속 명사가 무엇에 대해 말하는가를 분석하고, 그것에 대하여 논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샛별은 개밥바라기다”와 “샛별은 명사다”에서 ‘샛별’은 문맥 속에선 지칭 대상을 가진다. ‘샛별’은 위격적 지칭에 의하여 ‘개밥바라기’라는 개별자를 지칭하기에 이 명제는 참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위격적 지칭을 “샛별은 명사다”에 적용한다면, 이는 거짓이 된다. 그러면 궤변이 되고 만다. 지칭은 하나의 명제를 참된 명제로 만들기도 하지만, 해석자의 선택에 따라 궤변이 되기도 한다. 지칭은 이후 삼단논변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사용된다.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은 동물이다’(omnis homo est animal)에서 ‘동물’은 순수 혼연 지칭인데, 그 까닭은 이접적 명제에 의해(per disiunctivam) ‘동물’ 아래로 그것의 내용으로 하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동물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이 동물이거나 모든 인간이 저 동물이거나 모든 인간이 또 다른 동물이거나이다.’ 등등은 귀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칭 명사들로 이루어진 이접적 술어에 대한(de disiuncto praedicato) 명제로 하강할 수는 있다. 그 이유는 ‘모든 인간은 동물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이 동물이거나 저 동물이거나 또 다른 저 동물이거나...등등이다’와 같이 올바르게 귀결되기 때문이다.”64)

만일 “모든 인간은 동물이다”에서 ‘동물’이 순수 혼연 지칭이 아니라면, 이 삼단논법은 시작부터 거짓이 된다. 지칭론에 따르면, 명제가 참이 되는 것은 해석자가 어떤 지칭과 지칭 대상을 취하는가에 의존한다. 결국 명사의 속성인 지칭에 대한 논의가 온전해야지만 명제와 삼단논법 역시 온전해 진다고 할 수 있다.65) 그런 이유에서 명제와 궤변 등의 논의를 익히기 이전에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은 지칭의 문제를 익혔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론적 입장 속에서 명제를 이해했고, 명제들이 모인 삼단논변도 이해하고 활용하였다. 과연 이러한 지칭론이 지시론과 동일한가?

5.0 지칭 복원 작업의 잠정적 결론 오캄은 『논리학 대전』을 작성하며, 첫 머리에서 논리학에 무지한 젊은이들은 여타 다른 학문에서도 온전한 연구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저술이 이러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원했다.66) 지칭 역시 바로 다른 여타 학문의 도움이 되기 위하여 다루어져야하는 것으로 오캄

64) Ockham, Summa logicae 1, c.70 (OPh.1, 211). 이와 관련하여 다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박우석, 『중세 철학의 유혹』(서울 : 철학과 현실사, 1997), 218-221.

65) Ockham, Summa logicae 1, prooemium (Oph.1, 6). “논리학 탐구의 구성을 착수하면, 먼저 ‘명사’(terminus)를 두고 시작해야 한다. 다음으로 ‘명제’(propositio)에 대한 탐구가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삼단논법’(syllogismus)과 나머지 ‘논변’(argumentum)에 대한 탐구가 이어질 것이다.”

66) Ibid., 1, prooemium (OPh.1, 6).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논리학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얻기 전엔 온전히 신학을 비롯한 다른 학문의 미묘함을 연구하기 어려우며, <논리학에 대한 무지,> 바로 이것으로 인해 다른 젊은이들에게는 그저 보잘 것 없거나 하찮은 것일 수 있는 것을 두고 난해한 어려움에 빠져들고, 논증적 진리를 마치 궤변이라도 되는 듯이 물리치고 논증 대신 궤변을 얻기에, 나는 이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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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확신했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신은 신을 낳았다”, “인간은 종이다” 등과 같은 명제에 대하여 각자의 신학적 혹은 존재론적 입장에 따라서 지칭의 분류를 선택했다. 선택된 지칭에 따라서 지칭 대상도 서로 달랐다. 이 처럼 스콜라 지칭론에선 명사의 지칭 대상을 확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논의에서 지칭론은 지시론과 유사하게 명사와 명사가 지칭하는 대상의 관계를 다루지만, 그러한 논의의 이유는 명제의 참이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미 말했듯이 지칭론에서 명제 속 명사가 가지는 지칭 대상은 고정되지 않는다. 해석자의 의도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러한 면 때문에 지칭은 중세인들의 존재론적 신학적 논쟁에 사용되었다. 만일 “인간은 종이다”의 지칭 대상이 고정되었다면, 이 명제를 둘러싼 고민은 없었을지 모른다. 정리하자. 지칭은 무엇인가? 지칭이란 한 명제 가운데 명사와 그 명사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의 관계를 규명함으로 주어진 한 명제가 어떻게 참인지를 설명하는 수단이다. 여기에서 명사와 그 명사가 말하고자 하는 것, 즉 지칭 대상 사이의 관계는 해석자의 존재론적 입장에 따라서 다양하게 분류되며, 이것을 지칭의 분류라고 한다. 해석자들은 하나의 명제를 참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존재론적 입장에 따라서 적절한 지칭을 선택하여 사용한다. 이 지칭을 통하여 그 명제가 어떻게 참인지를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엔 그 해석자의 존재론과 같은 입장이 반영된다. 설명의 수단인 지칭이 바로 그의 존재론적 입장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지칭을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지칭의 대상도 상이해 진다. 이러한 상이함에 따라서 하나의 명제는 선택된 지칭에 따라서 참이 되기도 하고 거짓이 되기도 한다. 하나의 참된 명제가 단순 지칭에선 거짓이 되고, 위격적 지칭에선 참이 된다는 오캄의 예를 보자.

“‘인간은 피조물 가운데 가장 고귀하다’라는 명제에서 주어는 단순 지칭을 가진다고 말하는 이들의 견해는 거짓이라고 해야 한다. 사실 이 명제에서 ‘인간’은 단지 위격적 지칭을 가지기 때문이다.”67)

한마디로 지칭론은 해석자의 입장에서 왜 그 명제가 참인지를 설명하는 수단이었다. 아직은 흐리지만, 그려지는 지칭의 복원도다. 아직 많은 것이 어두한 상황이지만, 여기에서 논의를 마친다.

고를 쓰고자 했으며 이러한 논의의 과정에서 간혹 철학적 사례뿐만 아니라 신학적 사례들을 통해 규칙들을 보이게 될 것이다.”

67) Ockham, Summa logicae 1, c.66 (OPh.1,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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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Supposition-Theory in the Middle Ages

Yu DaeChil (DaeGu University Of Catholic)

Medieval theories of Supposition have attracted a great deal of interest among historians of philosophy and logics(semantics).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restoration of Supposition Theory in the medieval scholastic sense to the exclusion of preconception that there is a similarity between present 'Reference-Theory' and medieval 'Supposition Theory'.

In brief, Supposition Theory's function is to explain what terms in a given propositional context is told about. For example, When you say "Homo est species", What 'Homo' stand for? If you are a nominalist, You will say only 'concept' in human mind. If a realist, only 'real thing' in any way. This example makes it clear that supposition theory is related to ontological points. And supposition theory explaining what terms stand for has a close relation to explaining how propositions containing terms is true. Viewed in this light, supposition theory can be regarded as the hot issue in a domain of semantics as of ontology and theology in the Middle ages. In fact, to explain how ontological and theological propositions is true, Supposition theory helps. This is why supposition theory is educated and made in the Middle ages.

Many scholars argue from textual evidence that to explain how propositions reflected in their ontological and theological point of view are true, many scholastic philosophers and theologians make and use their own supposition theory.

Insofar as theories of supposition and reference deals with the relation between terms and the things they stand for, it is indisputable that there is a kinship or a similarity between both. If so, Are supposition theory and reference theory the same? This paper's answer to this question is 'No.' The point I want to make is that restoration of supposition theory except reference theory's point of view. To reconstruct supposition theory, This paper analyzes birth, development, and application of supposition theory in much medieval and modern textual evidence. Based on this analysis, this paper's answer is that although, insofar as both deal with terms standing for things and relationship between terms and things, there is a similarity in both, supposition theory and reference theory are different.

Key Words: Supposition, Reference, Medieval Logics, Medieval Seman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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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지칭론의 복원 작업

유 대칠(대구가톨릭대학교)

본 논문의 목적은 현대인의 선입견, 즉 현대 지시론과 동일하거나 매우 유사하는 선입견을 배제한, 가능한 최대한 원형에 가까운 스콜라 지칭론의 복원이다. 지칭론은 중세 스콜라 철학자와 신학자들에 의하여 그들의 고민이 담긴 명제가 어떻게 참인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요구되고 발전되며 교육되었다. 지칭의 기본적인 내용은 명제 가운데 명사가 무엇에 대하여 말하는가이다. “인간은 종이다”에서 실재론과 유명론자들은 모두 이러한 명제는 단순 지칭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이야기하는 지칭 대상은 다르다. 이러한 지칭에 관한 입장의 차이는 그들 각각의 존재론적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지칭론은 이와 같이 단순히 의미론적 차원을 넘어 존재론, 그리고 신학과 관련된다. 왜냐하면 존재론과 신학에서 논의되는 명제의 명사들이 과연 무엇에 대하여 이야기하는가의 문제가 지칭론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지칭론은 태생적으로 난제를 가진 명제의 명사가 무엇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며, 그 말 된 대상을 분명히 함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주어진 명제를 보다 온전히 설명하고, 이를 위하여 자신의 존재론적 신학적 입장을 보장받기 위한 스콜라 학자들의 노력이 담인 이론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지칭론이 현대의 지시론과 같은가? 필자는 최대한 현대의 관점을 제거하고 ‘지칭’을 살아있는 것으로 고민하고 논쟁하고 이론화한 중세와 근대의 스콜라 문헌을 통하여 현대의 선입견을 제외한 지칭론을 복원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복원한 것으로 많은 현대 연구가들이 이야기하는 지시론과 지칭론의 동일성과 강한 유사성이 아닌 지시론과 다른, 고유한 의미에서 지칭론을 복원하려 하였다.

주제어 : 지칭, 지시, 중세 의미론, 중세 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