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통권 129호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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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부터 시작된 반올림의 싸움은 여러 사람의 힘과 땀, 눈물을 모아 영화보다 더한 이야기를 만들어 왔고 지난 9월 드디어 법원에서 고 황유미, 고 이숙영 씨의 백혈병이 법원에서 산업재해로 확정되었습 니다. 그러나 삼성과의 교섭을 비롯한 반올림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 고 있습니다. ‘그 어떤 삼성의 달콤한 손길도 아버님의 굳은 의지를 굴복시키진 못했습니다. 7년 만에 산재인정 판결을 받았지만, 삼성과의 싸움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습니다. 더 많은 피해자분들에 대한 보상, 반성을 담 은 사과와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대책의 ‘약속’을 삼성으로부터 받을 때 까지 ‘끝까지’ 싸우시겠다는 황상기 아버님의 굳은 다짐을 이제는 정말 저희들이 지켜줄 차례입니다.’ 삼성이 직접 교섭에 성실히 임하라는 반올림의 입장 일부입니다. 법 원의 산재 확정은 긴 투쟁에서 하나의 다릿돌일 뿐,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권 투쟁은 이제 시작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터에서는 반올림 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작은 승리를 축하하려고 합니다. 가슴 벅찬 지난 기억들도 다시 떠올려보고, 서로 등도 두드려주면서 다른 한편 우리가 새로 만들어 갈 길도 더듬어 보려고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 표지사진제공 : 김현창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일터 독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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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일터통권 129호 (2014.10)

7년 전부터 시작된 반올림의 싸움은 여러 사람의 힘과 땀, 눈물을

모아 영화보다 더한 이야기를 만들어 왔고 지난 9월 드디어 법원에서

고 황유미, 고 이숙영 씨의 백혈병이 법원에서 산업재해로 확정되었습

니다. 그러나 삼성과의 교섭을 비롯한 반올림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

고 있습니다.

‘그 어떤 삼성의 달콤한 손길도 아버님의 굳은 의지를 굴복시키진

못했습니다. 7년 만에 산재인정 판결을 받았지만, 삼성과의 싸움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습니다. 더 많은 피해자분들에 대한 보상, 반성을 담

은 사과와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대책의 ‘약속’을 삼성으로부터 받을 때

까지 ‘끝까지’ 싸우시겠다는 황상기 아버님의 굳은 다짐을 이제는 정말

저희들이 지켜줄 차례입니다.’

삼성이 직접 교섭에 성실히 임하라는 반올림의 입장 일부입니다. 법

원의 산재 확정은 긴 투쟁에서 하나의 다릿돌일 뿐,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권 투쟁은 이제 시작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터에서는 반올림

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작은 승리를 축하하려고 합니다.

가슴 벅찬 지난 기억들도 다시 떠올려보고, 서로 등도 두드려주면서

다른 한편 우리가 새로 만들어 갈 길도 더듬어 보려고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 표지사진제공 : 김현창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일터

독 자 에 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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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통권� 129� � 2014.10

22 특집

1. 7년, 눈물이 마를 때까지

2. 지난 반올림 운동을 돌아보며

3.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권 투쟁의 나아갈 길

지난 9월,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던 고 황유미, 고 이숙영 씨의 백혈병이 법원에서 산업재해로 확정된

것을 계기로 반올림이 걸어온 길과 삼성과의 교섭을 포함한 현재 상황을 살펴본다. 더불어 전자산업 노

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해 우리가 앞으로 해 나갈 과제도 간추려본다.

03 뉴스 서울도시철도 기관사 8번째 자살 外 l 장영우

06 지금 지역에서는 근골격계 질환 재해조사양식 개정연구 완료 l 선전위원회

08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멋진 건물을 설계하는 그의 노동은 l 최민

12 현장의 목소리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l 재현

16 연구소 리포트 노동시간과 건강 l 해미

21 사진으로 보는 세상 금연정책? 또 다른 세금? l 쌀집아재

32직업환경의학의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한국에서 단다린을 기대하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일인가? l 백리마

34 작업중지권 기획‘손배 소송의 천국’ 한국에서 작업중지권의 현실 l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팀

36 노동시간센터(준) 기획 노동시장과 노동시간, 무엇이 문제인가? l 노동시간센터(준) 김경근

40 문화읽기 이젠 굴도 마음대로 못 먹나 l 김재광

42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욕망에서 비롯된 공상(空傷)처리의 폐해 l 노무법인 필 유상철

44 일터 다시보기‘노동자가 만드는 일터’를 보며 진짜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를 꿈꾸다 l 한국지엠지부 조합원 안규백

46 이러쿵저러쿵 취미는 사진 l 김세은

48 퀴즈 가로세로 퀴즈로 본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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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일터 l ․ 3

출처 : 공공운수노조

서울도시철도 기관사 8번째 자살

서울도시철도공사 7호선 전동차 기관사가 수

면장애와 우울증을 호소하다 지난 9월18일 새

벽 자택에서 목숨을 끊었다. 2003년 이후 벌써

8번째 기관사가 비슷한 이유로 자살하면서 서

울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기관사 처우 개선

대책 이행이 시급해 보인다.

노동조합에 따르면 송씨는 1994년 서울도시

철도공사에 입사했고 업무 실적도 좋아서, 재

직 중 수차례 서울도시철도공사사장 표창을 수

상하고 2006년에는 25만km 무사고 기록을 달

성하기도 했다. 한편, 동료들에 따르면 송 씨

는 평소 우울증과 수면장애로 수면제를 처방받

아 복용 중이었으며 최근에는 우울증상이 악화

돼 치료를 위해 병원을 알아보던 중 자택 지하

주차장에서 전깃줄에 목을 매 자살한 것이다.

문제는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만 2003년부터 송

씨에 이르기까지 공황장애와 우울증 등 신경정

신질환으로 자살한 기관사가 8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송씨가 근무했던 대공원승무

사업소는 작년 10월 정모 기관사의 자살사고가

있었던 곳으로 불과 1년도 안 돼 참사가 벌어

졌다.

노동조합에 따르면 기관사 정신질환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폭압적 조직문화와 억압적 노무

관리와 현장통제, 1인 승무제, 100%에 가까운

지하 터널구간 운행, 서울이라는 인구밀집도시

의 높은 혼잡도, 타 지하철 운영기관보다 현저

히 낮은 근로조건과 처우, 성과시스템에 의한

과도한 경쟁, 높은 직무스트레스와 심각한 차

별 (복수노조, 승진, 성과급, 표창 등)을 주장

하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도시철도공사는 기관

사 자살을 막겠다고 약속하면서, 기관사 처우

개선을 위한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아직 시행되

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자살을 막

을 대책을 만들어놓고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또 다른 희생을 초래했다는 얘기다.

김태훈 서울도시철도노동조합 승무본부장은

“수년째 죽음의 행렬을 멈춰야 한다고 했지만

죽음의 행렬은 멈춰지지 않고 있다. 이제 서울

시가 자본의 효율을 앞세운 맥킨지보고서와 노

동자의 안전을 중시하는 최적위 권고안 가운데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며 “박원순 서울시장

은 기관사들의 건강권과 시민의 안전을 위해 2

인 승무제를 즉각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가족과 노동조합은 서울시와 서울도시철도공

사가 재발 방지 방안을 내놓을 때까지 장례식

을 미루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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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통권� 129� � 2014.10

출처 : 집배원 장시간 중노동 없애기 운동본부

명절마다 반복되는 집배원 사고

집배원들이 명절 때마다 과중한 업무로 사고

를 당하고 있는데도 우정사업본부가 별다른 안

전대책을 내놓지 않아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9월 10일 우정노조

에 따르면 전남 고흥 두원우체국 소속 집배원

이아무개(59) 씨가 추석 우편물량 특별소통기

간 중이던 9월1일 배달업무 중 도로 옆 가드

레일에 부딪히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고인

은 1979년부터 35년간을 집배업무에 전념해

왔으며 내년 정년을 앞두고 있었기에 더욱 안

타까움을 더했다.

집배원 사고는 명절 특별소통기마다 일어나

고 있다. 지난해 11월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개한 '2011~2013년 우체국 안전사고

발생내역'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특별소통기간

(9월 2일~17일) 동안 집배원 15명이 배달업무

중 교통사고나 소포 무게를 못 견딘 이륜차가

넘어지는 등의 사고로 늑골 골절과 인대 파열

같은 부상을 당했다. 2014년 설 특별소통기간

(1월 28일~2월 9일)에도 집배원 11명이 다쳤

다. 2012년 추석 특별소통기간이었던 9월 26일

에는 경기 화성우체국 소속 집배원이 배달업무

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승합차에 치여 사망했

다.

집배원 중대재해 해결을 위한 연대모임에 따

르면 우정사업본부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총 1182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19명은 산재로 사망했으며,

1163명은 사고나 질병에 시달려 재해율 2.54%

로 전체 노동자 평균의 4.3배에 달한다. 집배

원들의 산재사망 사고는 대부분 배달 중 교통

사고나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계질환 때문이다.

지난 3년간의 재해 내역 중 교통사고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며 총 산업재해의 54.4%

를 기록했다.

우정노조는 2011년 이후 올해까지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우편사업의 경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정사업본부가 근본적인 체질

개선보다는 인건비 절감을 위한 손쉬운 인력감

축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황문영

노조 복지국장은 “특별소통기에는 적은 인원으

로 많은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업무시간이 길

어지고 겸배(결원 몫을 대신 배달)까지 늘어난

다”며 “시간 내에 빠르게 배달을 마쳐야 한다

는 압박감이 심각해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발표한 보

고서에 따르면 명절 특별소통기간의 집배원 평

균 노동시간은 하루 15.8시간으로 평소(10.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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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보다 5시간 늘어난다. 그럼에도 우정사업

본부가 밝힌 대책은 지난해와 다르지 않았다.

올해 우정사업본부는 추석 특별소통기간(8월

22일~9월 6일) 동안 평소의 2.5배가 넘는

1432만 개의 소포·우편물이 몰릴 것으로 예상

했다. 그러나 대책은 추가인력 1800명 투입,

차량 2200여대 동원뿐이었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추석 특별소통기간에도 추가인력 2490

명 투입, 차량 2200여대 도입에 그쳤다.

황 국장은 “우정사업본부의 대책은 새롭지도

충분하지도 않다”며 “정부와 우정사업본부가 나

서 인력충원과 집배원 장비 개선, 실질적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조는 20

일까지를 이 씨 추모기간으로 정하고 조합원

안전교육과 인력확충 요구에 집중하겠다는 계

획이다.

폭염에서 일하다 뇌경색,

산재 인정해

청주지법 행정부 방승만 부장판사는 근로복

지공단을 상대로 임모(57세)씨가 제기한 요양

급여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

결했다고 지난 9월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

고에게 흡연이나 고혈압 등의 위험인자가 있었

더라도 공사현장에서 뜨거운 햇볕에 노출된 채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뇌경색이 자

연적인 진행경과를 넘어 악화됐다고 봄이 상당

하다”고 판시했다.

청주의 건설현장에서 철강자재 재단 및 운반

작업을 하던 임모씨는 2012년 8월6일 오전 8

시부터 업무를 시작했으나 4시간 뒤 어지럼증

과 하반신 마비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이송되었

는데, 사고 당일 청주의 최고기온은 36도가 넘

었다. 임모씨는 병원에서 뇌경색 진단을 받았

다. 임모씨는 “건설현장에서 폭염과 직사광선

에 그대로 노출된 채 일을 하다 쓰러졌으니 업

무상 과로로 인한 산재”라는 취지로 근로복지

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을 하였으나, 공단에서는

‘뇌경색과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

다’는 자문의 소견에 따라 “기존질환이 자연경

과에 의해 악화해 발병했다”는 취지로 요양급

여를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공단의 이런 판단

에 임씨는 산업재해보상보험 재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하였으나 이마저 기각되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일터

정리 : 장영우 선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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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9월 29일 연세대학교에서 진행한 ‘근골격계 질병 재해조사시트 연구 용역 최종보고서 노사정 설명회’에서 다룬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근골격계 질병 재해조사양식

개정연구 완료

선전위원회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재해조사시트는 노동자들이 작업에서 마주하게

되는 위험과 신체부담에 대한 평가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

으로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의 연구를 통해 제시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2014년 1월

부터 근로복지공단은 ‘근골격계질병 업무상 질병 조사 및 판정 지침’(지침 제2013-45호)

을 마련하여 사고성 재해와 업무상 질병 판정절차로 나누어 별도의 재해조사와 판정절

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신체 부담에 의한 질병으로 판단되는 경우 재해조사시트의

양식은 신체부담업무 확인 및 평가에 관한 기초자료로 작성되면 재해조사시트는 6개 신

체 부위로 분류되어 다른 평가 양식을 가지고 진행이 되며, 근로복지공단 지사 담당 직

원이 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사고성 재해와는 달리 6개 지역본부에 설치된 업무상질병판

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승인 여부를 결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해당 평가 도구가 점수제로 되어 있고 실제 업무관련성 판단에 도움이 되느냐

여부 및 재해조사의 효과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노사의 이견이 지속되었으며, 이러한 문

제의 해결을 위하여 근로복지공단은 현행 사용 중인 재해조사 시트에 대한 개정안 마련

연구를 진행하였고, 9월 마무리되었다.

연구진이 개정 제안한 재해조사 시트는 업무관련성 판단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모으

는 과정으로서의 재해조사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현행 재해조사시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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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조사 보고서’의 일부임을 고려하여 ‘인

간공학적 요인 조사’로 명명하였다. 또한,

재해조사 내용은 크게 ‘작업내용 조사’와

‘인간공학적 요인 조사’로 구분하고 직업환

경의학 자문의는 업무관련성 판단뿐만이

아니라 작업내용 조사와 인간공학적 요인

조사의 적절성도 판단하도록 하였다. 재해

조사 시트의 구성은 1) 재해조사 공통 양

식 2) 작업내용 조사 3) 부위별 인간공학적

요인 조사 4) 직업환경의학 검토 의견으로

구분하였다.

쟁점이 되는 부위별 인간공학적 요인 조

사는 목, 어깨·상완, 팔꿈치·아래팔, 팔

목·손, 허리, 무릎의 6개 부위별로 자세,

반복성, 힘과 관련해서는 다른 인간공학적

도구의 기준을 고려하여 1∼7점까지 점수

를 부여하고 이에 대한 점수를 공개하도록

하였다. 평가 대상 작업은 주 작업 이외에도 신청 노동자가 주요 부담 작업이라고 이야

기하는 작업을 반드시 평가하도록 하였으며 다빈도신청 상병과 질병의 특성을 고려하여

추가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연구진의 제안은 신청 노동자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고, 업무관련성 판단에서 중요

한 요소인 작업 내용 조사를 강화하는 한편, 재해조사의 적절성을 전문가가 한번 살펴

보도록 한다는 면에서는 진전된 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신체부담을 인간공학적 요

인으로 의미를 축소하고, 노동자가 자신의 신체 부담 정도를 손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

기 위해 제안되었던 등급을 제시하지 않는 등의 한계가 있다. 이후 근로복지공단은 연

구결과를 바탕으로 개정안을 준비하고 후속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판단된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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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번째 이야기

멋진 건물을 설계하는 그의 노동은건축 설계사 인터뷰

최민 선전위원장

초과노동 200시간, 병 나는 게 당연

30대 후반, 이승현(가명) 씨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건축 설계를 전공하고, 제법 큰 규모의 건축

설계회사에서 10여 년째 일하고 있다. 자기가 배우고 싶은 대학에 가고, 전공 살려 대기업에 취

직해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으니 꽤 안정적인 인생이다.

그런 이승현 씨가 얼마 전 아주 호되게 열병을 앓았다. 열이 39도까지 오르고, 머리가 깨질 듯

이 아파 걸을 수조차 없었다. 뇌수막염이 아닌가 걱정됐지만 아직 취학 전인 아이가 셋이었다.

부인은 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어야 했다. 혼자서는 병원에 갈 엄두가 안 날 정도로 아파, 주

말 내내 집에서 끙끙댔다. 그렇게 이틀을 내리 앓고 나니 열은 떨어졌는데 월요일 출근하자 온몸

에 반점이 올라왔다. 덜컥 겁이 나서 그제야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바이러스 감염이라고 했다. 다

행히 열이 떨어졌으니 특별한 치료는 필요 없다 했고, 그 뒤로 잘 회복되었다.

아직 어린 셋째에게서 바이러스가 옮은 것 같다며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았냐는 의사 말에 이

승현 씨는 자기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 전 달 초과 근무가 200시간이었다. 주 5일, 40시간 근

무로 치면 근무 시간을 모두 합쳐도 200시간이 안 돼야 맞다. “초과 근무가? 정규 근무 빼고? 어

떻게 하면 그 시간이 나오지?” 하는 질문을 혼잣말처럼 계속 터뜨리는 내게 덤덤하게 답한다.

“새벽 4시에 퇴근하고, 그날 아침에 다시 9시까지 출근하면 그렇게 되지요. 주말에도 출근하고

요. 그 와중에 3일 휴가도 다녀왔다니까요. 물론 매일 그렇게 사는 건 아니죠. 그렇게 어떻게 살

겠어요. 1년에 3-4번 정도 큰 프로젝트 할 때만 그렇게 심해요. 1-2달 정도?”

1년에 3-4번, 각각 1-2달이면 1년에 절반은 이렇게 산다는 거 아니냐고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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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저도 쉬고 싶죠. 전에도 그랬는데 이번에 아프고 나니 정말 몇 달 쉬고 싶더라고요.

와이프한테도 진지하게 얘기했어요. 나 이렇게 못 살겠다, 쉬고 싶다. 그런데 와이프는 불안한가

봐요. 한 번 쉬면 다시 취업할 수 있을지 그런 것들. 저는 사실 몇 달 쉬어도 충분히 재취업하거

나 새로 시작할 자신이 있는데 옆에서 보기에는 안 그런가 봐요. 힘들어서 쉬고 싶다는데 말리더

라고요.”

회의하다 회사에서 자살했다는 선배 이야기

“사실 저보다 더 심한 사람도 소개해 드릴 수 있어요. 주변에서 누가 심장병이라더라, 누구는

자고 일어났더니 죽었다더라 이런 흉흉한 얘기가 많아요. 일의 양이 많기도 하고, 경쟁이 심해서

스트레스도 심하죠. 최근에 제일 충격적이었던 소식은, 저희랑 비슷한 규모의 꽤 큰 회사에서 임

원진 회의 하던 도중 한 명이 벌떡 일어나 그대로 회의실 창문으로 걸어가 뚝 떨어졌다는 거예

요. 구체적으로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를 바이러스성 열병에 걸리게 했던 것은 병나기 직전 그가 이끄는 팀이 맡았던 경쟁 입찰이

었다.

“공공기관에서 건물을 짓기로 했어요. 이 경우에는 설계만 가지고 먼저 공개 입찰을 했지요.

거기서 설계를 선정하게 되면, 그 설계를 가지고 다시 건설사를 입찰하는 방식이에요. 그러니까

이때는 건축 설계랑 건설사랑 개별로 선발하는 거죠. 설계에 세 개 회사가 경쟁 붙었는데 다행히

됐어요. 병나도록 일했는데 떨어졌으면 속상했겠죠.”

다행히 이승현 씨는 경쟁에서 이겼지만, 나머지 두 회사에서도 그의 회사와 비슷한 규모의 팀

이 꾸려져 그들도 한 달에 200시간 초과 근무를 했을 것이다. 그 중 한두 명은 이승현 씨처럼 병

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랬는데도 입찰에서 떨어진 그 회사 팀장은 회의 도중 창문으로 뛰어내리

고 싶을 만큼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투명하게 결정한답시고 이렇게 경쟁을 시켜요. 서류 심사 같은 걸로 2팀으로 미리 줄여서 경

쟁시킬 수도 있는데 괜히 여러 사람 고생시키는 거잖아요. 꼭 이렇게 안 해도 돈 줄이고 투명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많을 거 같은데. 나 시키면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이런 계획 세우는 사

람들이 책상머리에서만 일해서 그래요. 자기들이 일을 만들면,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

는지 모르기도 하고 관심도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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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세요? 퇴근 하세요?

발주자가 이렇게 설계사와 건설사를 따로 결정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설계와 시공을 한 업

체에 맡기는 ‘설계․시공 일괄 입찰’ 일명 턴키(Turn-key, 일괄수주) 방식이 있다. 자체적으로 설계

회사도 가진 재벌기업이 아니면, 건설사가 설계회사와 팀을 이뤄서 경쟁에 나선다. 이렇게 되면

설계비와 시공비가 모두 합쳐져 입찰 규모가 어마어마해지고, 건설사가 이 경쟁에 목을 매게 된

다. 그러면 건설사까지 그의 상사가 된다. 건설사에서는 대리를 한 명 파견해 설계회사 직원들이

일을 열심히 하는지 감시한다.

“턴키 설계에 참여하는 직원들을 모아 큰 방을 하나 쓰거든요. 20명 정도가 한 방에서 일정 기

간 집중적으로 일하는 거죠. 그러면 건설사에서 대리를 한 명 보내요. 사실 그 사람이 정말 대리

인지도 모르겠어요. 비정규직, 알바 쓰는 거 아닌가 몰라. 아무튼 대리 한 명이 나와서 뭐 하는지

아세요? 그 턴키 방 출입구 앞에 책상 하나 갖다 놓고 앉아서 엑셀 파일 만들어, 우리 턴키 팀

직원들 출퇴근 시간을 적는 거예요. 설계하는 기간 동안 그 일밖에 안 해요.

밤에 나가려고 하면 ‘어디 가세요? 퇴근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아뇨, 커피 마시러 가요.’

‘에이, 가방 가지고 가시는 거 같은데?’ ‘아니라니까요.’ 이런다니까요.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면

‘어제 그 때 바로 퇴근하셨죠?’ ‘아니요.’ ‘에이, 제가 보니까 안 들어오시던데.’ 무슨 고등학생도

아니고. 하하하.”

유머감각이 있는 이승현 씨는 건설사 직원과 설계회사 직원 사이의 실랑이를 능청스럽게 흉내

내며 재밌게 얘기했지만, 12시 전에 퇴근하면 일 열심히 안 하는 거 아니냐고 설계회사 사장이나

팀장에게 항의하고, 심지어 설계팀 직원들이 불성실하다는 이유로 계약금보다 덜 지급하려는 건설

사의 횡포는 웃을 일이 아니었다. 이승현 씨도 젊었을 때는 건설사 직원이 말려도 ‘나는 피곤해서

더는 일 못 한다, 사장이나 팀장이랑 얘기해라’ 하고는 집에 가버리곤 했다. 그러나 사정은 조금

씩 달라진다.

“이제 저도 슬슬 간부급이에요. 나이가 드니까 조금씩 달라져요. 연차가 높아지고, 직급이 올라

갈수록 회사에서 받는 평가 중 충성도 부분이 늘어나요. 젊은 직원은 그 사람이 회사에 충성하냐

아니냐는 안 중요하고, 일만 제때 잘하면 되거든요. 그 때는 저도 건설사 직원 신경 안 쓰고 집

에 일찍 가고 그랬죠. 나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그런데 임원이 되어 갈수록, 능력 못지않게 충성

도가 중요한 거예요. 지금은 그렇게 못 하죠. 아래 후배들이 그렇게 집에 가면 저도 은근히 신경

이 쓰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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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v3wall.com

아직은 욕심도 있고, 꿈도 있어요

모든 건축 설계사가 이승현 씨처럼 사는 것은 아니다. 회사 내에서도 그는 큰 기획을 담당하기

때문에 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다. 예를 들어 그가 이번에 기본 컨셉을 잡고, 큰 틀의 설계를

해서 입찰을 따내면, 그다음에 일을 이어받아 구체적이고 자잘한 설계를 하는 팀도 있다. 그 팀

은 일도 적다. 대신 돌아오는 성취감, 회사에서의 인정, 급여도 적다.

“그래도 저는 아직은 버틸 수 있고, 욕심도 있으니까 이렇게 남아서 오버하며 일하는 거죠. 아

직은 할 수 있고, 좀 더 해내고 싶으니까. 회사 내에서도 좀 더 편한 부서가 있고 나가서 제 사

무실 내고 다세대 주택이나 작은 상가들 설계하면서 살 수도 있지만 아직은 이게 재미있어요.”

이런 욕심과 꿈이 이렇게 경쟁적이고 이렇게 쥐어짜는 시스템에서도 승현 씨가 웃음을 잃지 않

고 일할 수 있는 동력일 것이다. 이승현 씨가 지금 직장에서 법정 노동시간만큼 일하면서도 꿈과

열정을 담아 설계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족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몇 달은 쉬고

싶은 것 역시 승현 씨의 꿈과 욕심이다. 이런 꿈과 욕심을 일에서의 꿈과 욕심과 함께 채우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숙제가 많아진 인터뷰였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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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은 지켜야 합니다기륭전자분회, 다시 싸움을 시작하며

재현 선전위원

2010년 11월 1일 금속노조 기륭분회 조합원들이 1,895일 투쟁 끝에 모든 노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회에서 노·사가 사회적 합의를 맺으며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쟁취했다. 사회적 합의 당시, 기륭자본은 국내 생산 설비가 없고, 경영상 어

렵다는 이유를 들어 현장복귀까지 유예기간을 요청했다. 결국, 조합원들은 2년 6개월을

기다린 끝에 2013년 5월 2일 설렘을 가득 안고 정규직으로 당당히 현장에 복귀했다.

현장 복귀 9개월이 지났는데도 회사는 업무배치를 하지 않았다. 월급은커녕 4대 보험

도 들지 않았다. 한 술 더 떠 지난 8월 최동열 기륭 회장은 “일을 하지 않으면 너희는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다”는 막말까지 퍼부었다. 조합원들은 화가 끝까지 치밀었지만 그

래도 사회적 합의가 있으니 회사의 전향적인 태도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2013년 12월 30일 꼭두새벽 최동열 회장과 몇몇 직원이 회사 집기를 들고 야반도주를

했다. 아침에 출근한 조합원들은 회사 총무부장에게 항의하고, 어디로 공장을 이전하는

지 밝히지 않으면 이곳에서 버틸 수밖에 없다고 했다. 1,895일을 투쟁하며 그토록 바라

던 일터가 하루아침에 농성장이 되었다. 주저앉아 있을 수많은 없었던 조합원들은 8월

29일 ‘사회적 합의 이행 촉구, 경영 투명성 보장’을 요구하며 투쟁을 선포했다.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는 최동열 회장을 사기죄로 구속하기 위한 고발 운동을 전개한 것이

다.

지난 9월 27일 고발인 대회를 마치고 다음 투쟁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유흥

희 기륭 분회장을 만나 고발운동의 취지와 당일 현장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듣기위해 10

월 어느 날 제법 내리는 소나기를 뚫고 농성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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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일터 l ․ 13

출처 : 기륭전자분회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으로 변한 ‘사회적 합의’2004년 순이익 200억 이상의 알짜배기 회사였던 기륭전자는 2006년 에스에인베스트먼

트 투자회사를 거쳐 2008년엔 최동열 회장이 회사를 인수했다. 그 뒤로 공장부지 매각

을 시작으로 소위 투기 놀음과 무리하게 회사를 인수하면서 경영 상태가 악화하였다.

2012년엔 지금의 사옥까지 매각하고 다시 임대로 들어오면서 지금 현재 생산시설도 자

산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올해 2월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투명하지 못한 경영과 회사

를 지속 운영하는 의미가 없다는 평가를 받아 상장 폐지까지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경

영상의 악화로 인한 피해를 온전히 노동자들이 입고 있다.

“사회적 합의를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무너뜨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물론 지

금껏 기륭 자본이 워낙 조합원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해서 여러 정황상 우려가 컸죠. 그

래서 투쟁이 끝나고 힘들어서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쉬지 못했고, 현장

복귀를 기다리는 2년 6개월 동안 조합원들이 사무실 하나 내서 거기서 먹고 자면서 기

륭 자본을 계속 감시하고, 일상적 긴장을 놓지 않았죠. 그래서 이렇게까지 했으니 기륭

자본이 사회적 합의를 이렇게 쉽게 어기고 야반도주를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

데...”

기륭전자 최동열 회장 사기죄 고발 운동의 두 가지 의미

“고발 운동을 하게 된 건

두 가지 이유였다. 2010년

기륭의 사회적 합의는 불법

파견 비정규직의 부당해고

는 정당했다는 대법원의 판

결에도 불구하고, 기륭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라

고 요구했던 노동시민사회

단체들의 사회적 연대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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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힘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한 사회적 합의였던 것이죠. 그런데 이를 뒤로하

고 야반도주를 한 최동열 회장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것에 대하여 당사자들이 목

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고발운동은 기륭뿐만 아니라 다시는 투쟁하는 동지들이 이러한 고통을 반복하지

않도록 사회적 합의를 어기는 기업주에게 법적 책임을 묻게 하는 투쟁의 의미도 있다.

“다들 아시다시피 2011년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있었던 한진중공업 투쟁에서도 국회

가 보증을 서서 사회적 합의를 맺었었는데요. 이후 사측이 기존 합의를 어기면서 희망

을 잃어버린 두 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가뜩이나 요즘엔 투쟁을 시작했

다 하면 장기투쟁으로 가면서, 대개 투쟁을 정리할 때 사회적 합의를 맺는 형식으로 진

행되고 있거든요. 그런데 사실 사회적 합의는 이행하지 않아도 법적 처벌의 근거가 없

어요. 그러니 이를 이용해 돈 있고 힘 있는 자본가들이 사회적 합의를 너무나 쉽게 어

기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이라도 사회적 합의를 어기는 자본가들의 인신 구속을

통해 법적 책임을 묻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고민에서 지금의 고발운동을 시작했어요.”

기륭 조합원들은 올해 2월엔 2010년 사회적 합의의 의미를 다시 환기하고, 이행하기

위한 법·문화예술·인권·종교 등 각계각층의 운동진영과 토론회를 진행했다. 또한, 지

금껏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유성기업·쌍용자동차·현대자동차 자

본가의 처벌을 요구하는 ‘잡아라 기업사기꾼’ 문화제를 진행하는 등 고발 운동의 취지를

나누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투쟁을 발판삼아 지난 9월 27일

11,800여 명 동지들의 서명을 모아 최동열 회장 사기죄 고발 투쟁을 전개했다.

고발운동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기 위한 첫 발걸음

기륭조합원들은 무엇보다 이번 고발 운동이 사회적 합의를 이해하지 않는 자본가를

처벌하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있었다.

“이번 고발 운동을 시작으로 ‘기륭법’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업주에 대한 징벌적 처벌

조항을 만드는 입법의 밑거름이라도 만들어보자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소위 기륭 자본

의 투기 놀음과 ‘먹튀’ 전략이 신경영이라 불리며 벤치마킹하는 자본에 브레이크를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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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투쟁기금�마련을�위한� <너희는�고립되었다>�사진집�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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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륭전자분회

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최근 스타

케미칼을 비롯해 금속노조 내에

도 투기 자본으로 고통 받는 노

동자들이 너무 많아서, 이런 사례

를 더 모으고 사회적 대안까지

마련하는 투쟁이 필요한 것 같아

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내내 절

망적인 상황에서도 새로운 투쟁

을 고민하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기륭동지들의 힘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오랜 투쟁으로 건강도 좋지 않고, 경제적인 형편도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참 무거웠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봤을 때도 지금 활동이 힘이 드는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막바지로 가고 있는 기륭 투쟁에서 마지막 남은 10명의 조합원 모두 마음에 상처가 되

지 않도록 하면서 어떤 의미를 남기는 투쟁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2005년 노동조합을 만들고 비정규직 파견 노동자로 온갖 차별과 서러움을 견디며

1,895일의 싸움 끝에 정규직화를 쟁취한 기륭 동지들이지만, 지금은 돌아갈 현장도 없고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나 투쟁은 마치 자전거와 같아서

더디게 가더라도 페달을 계속 밟아야 쓰러지지 않는다 생각하기에, 지금의 투쟁이 유종

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힘을 내서 자전거 페달을 밟고 또 밟고 있다. 어떤

시의 한 구절처럼 언제나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되는 투쟁이 되길 응원한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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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과 건강

해미 회원

한국이 사회에서 노동시간은 중요한 이슈이다.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가장 노동시간이 긴 나

라임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고, 노동시간단축이 일자리나누기, 건강의 측면, 고령화된 인구 특성을

감안한 다양한 맥락에서 주요한 정책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05년 ILO의 통계에 따

르면 전체 임금근로자의 45.7%가 장시간 노동의 정의인 주당 48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을 하고 있

고, 2011년 취업자 근로환경조사 결과에서도 전체 임금근로자의 36.8%가 48시간을 초과하는 노동

을 하고 있다. 노동시간을 둘러싼 또 하나의 쟁점은 노동시간의 배치와 관련한 야간노동의 문제다.

완성차 제조업체와 관련 부품사들의 심야노동 철폐를 위한 주간연속2교대제는 수년째 임금구조와

함께 노사문제의 핵심 이슈가 되어 왔고, 이와의 관련성을 주장하는 유방암 발생 등에 대한 산재신

청도 줄을 잇고 있다.

한편, 보건학적으로 노동시간의 문제는 노동자의 건강을 비롯한 삶의 질 차원에서 주목을 받아왔

다. 노동시간은 노동자 개인의 일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 24시간 중 어

느 정도의 길이로 언제 노동을 하느냐는 노동자 개인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한 또는 개인 생활을 영위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인간의 ‘시간’이라는 것이 어찌 배치되느

냐는 삶의 질 측면에서도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에서는 보통 오전 7시에서 오후

6시 사이의 8시간 정도에 해당하는 근로시간을 표준 근로시간으로 정하고 이를 벗어나는 노동시간

의 길이와 배치에 대해서 제도적 대안을 만들고 합의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여기서 ‘건강’의 문제는

보건학적으로 중요한 주제가 된다.

노동시간과 건강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생물학적 위험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건강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이

슈다. 이와 관련한 연구 결과들은 노동시간의 길이와 배치 측면으로 나누어 고민을 하는 것이 일반

적이다. 가장 대표적인 분석 모형으로는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제시한 것이 사용되고

있는데(그림 1), 노동자 개인의 생물학적, 사회적 요구와 개인의 특성 및 직업의 특성에 따라 차이

가 있기는 하지만, 노동시간의 길이와 배치의 문제는 노동자의 휴식과 시간 활용에 영향을 주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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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노동시간과 근무형태 연구의 개념적 틀 (출처 :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06)

어 다양한 건강영향을 유발할 수 있고, 개인의 건강 수준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비표준적 노동시간은 회복이나 수면에 필요한 시간의 부족을 초래하고 여가 활동

시간이 부족해져 건강에 영향을 준다. 또한 비표준적 노동시간으로 인해 직무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업무 중 노출될 수 있는 유해요인에 영향을 받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수면의 양과 질이 떨어지게

되고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며 생리학적으로 노동자의 몸의 조절기능과 대사에 영향

을 주게 된다. 이러한 영향은 노동자 개인뿐만이 아니라 가족, 사업주 및 지역사회에까지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시간을 둘러싼 연구들은 노동시간의 길이와 노동시간의 배치를 독립적으로 보고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교대근무를 하는 경우 이의 부정적 영향을 고려하여 주당노동시간을

더 짧게 설계하는 외국에서 일반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자동차 산업처럼 교대근무를 하면서

노동시간까지 매우 길기 때문에 노동시간의 길이와 야간노동의 문제가 특별한 구분 없이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본 글에서는 두 가지의 건강영향을 별도로 제시하고자 한다.

교대근무와 건강

먼저, 교대근무의 건강영향은 일주기 리듬 (circadian rhythm)의 파괴로 인하여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멜라토닌의 영향에 따라 약 하루를 주기로 변화하는 대사 작용과 호르몬 분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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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교란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다양한 생물학적 반응에 이상이 생기게 되고, 수면의 양과

질이 감소하고,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효과를 준다. 이러한 육체적인 건강 문제 이외에도 비표준적

시간에 일을 하면 가족 관계를 포함한 사회적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준다.

야간작업 종사자의 건강검진 제도 도입 과정에서 기초가 되었던 고용노동부의 정책연구보고서

(김현주 외, 2011)에서는 야간작업으로 인한 건강 문제로 수면 장애, 심근경색 등 심혈관 질환, 우

울증, 유방암, 소화성 궤양과 안전사고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이중 비교적 양질의 연구에 따른 근거

가 충분한 질환은 수면장애와 심혈관질환, 안전사고가 있었다. 우울증, 유방암, 소화성 궤양의 경우,

인간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의 역학 연구들이 아직 좀 부족하기는 하지만, 생물학적 리듬의 파괴와

멜라토닌의 영향을 감안할 때 개연성이 있는 건강 결과로 생각된다. 그러나 교대근무의 형태는 매

우 다양하므로 근무 일정과 야간 노동의 지속 기간, 하루 근무 시간과 근무일과 근무일 사이의 휴

식시간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과 건강

장시간 노동의 건강영향은 유럽과 일본을 중심으로 지속되어 왔지만 야간근무의 영향을 통제했

는지 여부가 명확치 않은 경우가 많다. 또한 분석의 기준이 되는 장시간 노동의 정의도 각 사회의

제도와 기준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유럽의 연구들은 주당 48시간을 기준으로 한 경우들이

많은데 한국의 경우에는 적절한 구분이라 하기 어렵다. 또한 이렇게 주당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수

행한 연구도 있지만 하루 근무시간, 시간외 근무 등의 영향에 대해서 평가한 연구도 많아서 건강에

최적인 노동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장시간 노동

은 안전사고와 심혈관질환의 발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야간노동이 생물학적 리듬의 교란을 통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에 비해, 장시간

노동은 회복을 위한 휴식시간의 부족과 작업장에서 긴 시간을 보냄으로 해서 직무 스트레스나 각

종 위험요인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인 견해이다. 또한 노동시간의 길이와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의 노동 시간이 안정된 일자리와 수입

을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노동시간이 너무 짧은 경우에도 부정적 건강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연

구도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들을 가지고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 적정한 노동

시간을 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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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비정상적 근무 일정의 영향 (국제노동기구, 2012)

건강과 관련한 고려 요인

이런 장시간 노동과 야간작업이 혼합되는 특성을 감안하여 2012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작업일정

의 특성이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경로에 대해 그림 2와 같이 제시한 바가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

중 하나는 작업일정의 특성이 건강에 영향을 주는 주요 경로로 생체시계의 손상과, 수면장애, 가족

및 사회생활의 손상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런 영향은 개인적, 조직적, 상황적 차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변화는 피로감, 정서, 활동도 등의 급성 영향과 관련이 있는데,

급성 영향에 영향을 주는 것은 직무 요구도, 업무 부담과 같은 직무스트레스 요인이고, 급성 영향

이 만성 영향으로 이어지는 데는 대처 전략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즉 비표준적 노동시간

으로 인한 건강장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다양한 상황과 대처전략, 심리적 스트레스 등에

대한 포괄적인 고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책적 개입과 과제

이러한 상황에서 각 국가들은 장시간노동과 야간노동을 관리한 다양한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주당 노동시간을 제한하고 야간노동의 경우 건강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주당 노동시간을

법적으로 제한하고 야간근무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외국에서 정책

적 기준이 되는 교대근무 또는 야간작업의 정의는 표 1과 같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영국

과 미국의 경우 표준근로시간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은 1998년 도입한 ‘노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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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규정’에서 주당 48시간 이하로 노동시간을 제한하고 야간작업자의 경우 평균 8시간 이내로 근무

하며 무료 건강검진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였다. 또한 일일 연속 11시간 이상의 휴식시간과 매주 1

일의 휴무, 하루 6시간 이상 근무 시 근무 중 휴식시간을 가질 권리, 연간 4주의 유급휴가를 가질

권리 등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 세부 내용국제노동기구 야간작업 - 특정기간(자정부터 05시를 포함한 연속 7시간)

영국교대작업 - 표준근로시간 외의 근무시간으로서 오후, 밤, 주말 동안의 근무(12시간, 혹은 그 이상의 연장된 근무시간 순환교대근무, 분할근무, 연장근로, on call 및 대기업무)

미국 교대작업 - 정상 주간시간대이외의 시간에 일하는 것 (저녁, 심야근무, 연장근무, 순환교대근무)

일본 야간작업 - 오후 10시부터 익일 오전 5시까지

한국야간작업 -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교대작업 - 작업자들을 2개 반 이상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시간대에 근무하도록 함으로써 사업장의 전체 작업시간을 늘리는 근로자 작업일정이나 작업조직방법

표 1. 외국의 노동시간 관련 정의

노동시간의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다. 최근 국회에 제출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

란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노동시간의 문제는 비단 노동자들의 건강뿐만이 아니라 경영과

효율의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되고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란도 더 크다. 이러한

논란에서 고려해야 할 것은 노동시간이 단순히 하나의 제도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시간의 분포는 사회적 기준과 노동자들의 협상력에 영향을 받는다 (국제노동기구, 2007). 제

도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과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하여 법적 기준보다 더 짧은 노동시간을 요구하

고 이를 관철해내는 단체협약의 파급력이 노동시간의 분포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휴일근로

가 법정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그리고 점심시간이

법정 노동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노동자들의 삶의 질과 건강을 기준으로 노동시간을 바라볼 때, 그리고 노동시간 이

면에 있는 노동하지 않는 시간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때 모두에게 평등한 ‘시간’이 어떻게 운영되어

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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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글 _ 쌀집아재

담배가 내년에 4,500원으로 오른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금연정책이라지만 대다수 서민들에게는 또 다른 세금이다. 담뱃값 올리는 것 말고 다르게 금연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을지 의문스럽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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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 7년, 눈물이 마를 때까지2007년부터 오늘까지… 반올림을 돌아보다

정하나 선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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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지난 반올림 운동을 돌아보며‘반올림 공유정옥 활동가 인터뷰’

장영우 선전위원

올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삼성반도체 노동자를 위한 반올림이 7년을 맞아, 9월 27

일 이수 사무실에서 공유정옥 동지와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그간 활동에 대한 소회,

의미, 평가와 전망을 들어보았습니다.

우선 교섭 진행 경과를 알고 싶습니다

작년 12월 18일 삼성과의 1차 교섭이 있었습니다. 삼성 측은 실무교섭에서 반올림과 교섭

하기로 했지만 정작 교섭에서는 반올림이 교섭에 나온 것에 대해 반대하였습니다. 유족들과

우선으로 협상하겠다는 것이지요. 교섭이 파행으로 끝났습니다. 이후 교섭 날짜를 정하지 못

한 상황에서 삼성은 계속해서 피해자들이 반올림에 위임장을 쓸 것을 요구하다가 갑작스런

이건희 회장의 건강 악화 등의 이유로 올해 5월 반올림과 대화하겠다고 제의했습니다.

6월 3차 교섭 때 삼성은 8명 피해자를 먼저 보상하고, 보상 위원회 설립이라는 제대로 된

안을 처음으로 제출하였습니다. 이에 반올림은 피해자 8명을 포함하여 30여명 산재신청자를

먼저 보상하고, 나머지는 삼성이 만든 '퇴직자 암 지원제도' 기준을 완화해서 전체 피해자를

위한 보상을 하자고 요구하였습니다.

8월 4차 교섭에서 삼성은 보상대상자 선정 기준을 만들자고 했고, 반올림은 산재 신청자를

포함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에 삼성도 8명 먼저 보상을 접고 발병 시

기, 업무내용, 질병 등에 대한 항목으로 보상기준을 만들 것에 대한 합의안을 도출하였으며

차기 교섭에서 자세히 논의하기로 하였습니다. 반올림이 오랫동안 원했던 바를 실현할 수 있

겠다 싶은 고무적인 논의였습니다. 그런데 교섭을 마무리하는 찰나, 가족 한 분이 8명 선 보

상 안을 받고 싶다고 하고 삼성은 그것을 냅다 받아서 가족들의 의견을 확인하고 몇몇 가족

이 동요하자, 좀 전 합의안을 깼습니다. 그리고 삼성은 반올림이 가족 의견을 정리해 오라고

요구하였습니다.

8월 29일 가족 6명이 독자 교섭 하겠다는 내용을 언론에 발표하였고, 9월 3일 차기 교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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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로 했습니다. 그 사이 반올림은 가족들의 의견을 모으려고 했는데 선 보상을 요구하는 가

족들의 의견이 너무 완강하였고 결국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9월 3일 교섭 때, 삼성전자와 반올림, 삼성전자와 가족이 같은 자리에서 교섭하게 되었는데

삼성은 발병자와 논의하고 싶다는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 하였습니다. 이는 삼성이 5명의 백혈

병 피해자와만 논의하고 싶어했던 교섭 초기 생각으로 퇴보한 것입니다. 반올림을 배제하려는

의도겠지요. 이러한 현재 상황이 너무 안타깝고 속상할 따름입니다.

그럼 교섭단이 분리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섭단은 다수의 사람이 모여 있기에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간 어렵게 맞춰왔습니

다. 정확히 어떤 계기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몇몇 가족이 그동안 반올림과 맞춰왔던 안에

대해 배제되었다고 생각해서 떠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려운 질문이긴 한데, 앞으로 교섭을 어떻게 진행하실 생각인지요?

쉽지 않겠지만, 반올림이 최선을 다할 부분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교섭을 시작하면서 애초 했던 이야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보상만이 아닌 미래의 피해

를 예방하기 위해 삼성의 책임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관철하는 것입니다.

삼성과 사회적인 대화를 시작하게 된 것은 아주 큰 의미입니다. 이것은 폭넓은 연대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하였고 우리와 함께했던 활동가, 시민들의 마음을 안고 가는 것입니다. 그분들

이 절대 몇 사람 보상하라고 연대활동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처음에 삼성이 5명과 대화해서 보상의사를 밝혔을 때 반올림은 우리 뒤에서 더 절박

하면서도 대화에 나오기 어려운 분들을 대신했기 때문에 끝까지 죽으나 사나 우리의 기조를

지키기로 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교섭단은 이 생각으로 일치해 있습니다.

반도체 공장은 많은데, 삼성이 유독 문제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이닉스와 같은 공장도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처음 제보자가 삼성에서 일했었고,

삼성이 가진 특유의 폐쇄성이 있고 규모가 제일 크니까 피해자도 제일 많은 겁니다. 지난 수

년간 삼성 반도체 산업이 호황이어서 노동자들은 엄청나게 일했고 그에 따라 유해물질에 더

오랜 시간, 고강도로 노출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처음에 제대로 된 대응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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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이렇게까지 문제가 커지지 않았을 텐데 회유와 부인으로 일관하며 대화를 무시했던 삼성

의 태도가 제일 결정적이었지요.

현재 재판 진행 상황은 어떻습니까?

40여 명 산재신청 중에서 10명 조금 넘게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뇌종양, 뇌암, 재생불량성

빈혈 등이 발병한 경우와 루게릭, 다발성경화증 이런 희귀 난치성 질환이 발병한 경우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산재신청을 하고 1년 넘게 조사하고 있는 사안도 10여 건 정도 있고요.

매그너칩 반도체에서 백혈병, 삼성에서 유방암을 인정받았지만 이제 막 물꼬를 트고 있는 시

기라 힘들고 어려운 상황은 있습니다.

그 간 삼성의 변화는 감지됐는지요?

2010년 박지연 씨 사망 이후 삼성이 조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고 박지연 씨는 온양공장

에서 근무하였는데 백혈병으로 2년간 투병하다가 사망하였습니다. 이분은 퇴사 전 사망했는데

사망 1개월 후 삼성이 기자 브리핑을 해서 공장 견학을 시켜주겠다고 한 바 있지요. 박지연

씨 이전에는 삼성이 조용하게 돈으로 회유하려고 했었지요. 이후 백혈병 소송이 진행되고 두

명이 산재인정을 받으면서 회사가 대화하려는 움직임이 생겼어요.

그 와중에 삼성 공장의 변화도 좀 알게 되었습니다. 안전교육 실시, 보호구 지급, 안전 표

지판 제작 및 부착, 퇴직자 암 제도를 만드는 등 사내 복지차원이라고 하지만 바뀐 흐름이 생

긴 거지요.

하지만 작년 1월 삼성 불산 누출사고, 산안법 위반 2004건을 보면 삼성이 이렇게 돈을 투

입해도 현실이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고용노동부에서 삼

성반도체 공장 종합 진단을 했는데 예방보다는 노동자를 통제하고 겉보기식 전시 행정을 하

는 등 헛돈을 쓴 것입니다.

7년의 활동 중 가장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순간들은 무엇이었습니까?

무지 많은데요. 우선 산재인정을 받았을 때입니다. 2011년 6월 23일 1심에서 황유미 씨,

이숙영 씨 산재인정도 기뻤고, 근로복지공단에서 바로 산재인정 받았던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걸 보면서 우리가 이룬 것이 있구나, 반도체 전자산업으로 노동자가 암에 걸릴 수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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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에 그동안 활동이 보람 있었다고 느꼈지요. 반도체 산업이 직업병

을 인정받은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라고 알고 있어요.

한 번은 택시를 탄 적이 있었는데 운전기사가 대뜸 그랬어요. ‘그거 알아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사람이 암에 걸려서 죽었대요.’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때 ‘많은 사람의 생각이

바뀌었구나!’ 라고 느꼈었고, 영화가 만들어지고 50만 명의 사람들이 함께 나누었지요. 그간

여러 활동을 했지만 반올림 활동처럼 많은 사람들이 삼성반도체 문제를 알게 되고 바뀌었던

적이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황상기 씨라는 분이 있었기에 반올림이 지금까지 유지됐습니다. 이분을 영웅시하는 것은 경

계하지만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심지가 굳고 투명한 분입니다. 이분을 만난 게 우리의 복이

었다고 생각합니다. 황상기 씨가 없었다면 대책위는 있었겠지만 이미 문 닫았을 거고 반올림

은 없어졌겠죠.

이후 반올림 활동을 어떻게 펼쳐 나가고 싶습니까?

반올림의 운동 의제들이 이름에 담겨 있듯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인데 몇 년

전부터 우리가 느낀 것이 앞으로 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성노동자들이 많이 일하는 전자산업의 안전보건 대책이 미흡해 보입니다. 기존의 안전보

건대책은 재래형 제조업에 맞춰져 있어요. 그래서 예방이 중요합니다. 화학물질 전반에 대한

예방이 필요하고 구미 불산 누출사고에서 봤듯이 화학물질에 대한 알 권리, 개선방향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또한 전자산업 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굉장히 낮기에 그래서 전자산

업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조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국제적 연대가 필요합니다. 세계화된 전자산업은 그 공장을 국제적으로 옮겨 다니며

직업병, 환경, 노동인권 문제를 계속 일으키고 있습니다. 최근 아시아 지역에 공장을 세우고

가동을 하고 있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그나마 다른 나라에 비해 조금 나은 상황이라 다른 지

역 노동자들이 반올림에게 많은 의뢰를 해옵니다. 세계화된 전자산업 구조에 맞는 운동이 필

요합니다. 그래서 소위 선진국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방과 폭넓은

노동권, 국경을 넘는 국제연대가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해왔던 것이기도 하고 더

안정적인 활동이 필요하기에 반올림이 더 할 일이 많은 것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바쁜 일정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공유정옥 동지께 감사드립니다. 반

올림은 지난 7년처럼 현재의 어려움도 잘 극복하리라 믿습니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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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3]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권 투쟁의

나아갈 길

최민 선전위원장

일터에서는 지난 9월,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던 고 황유미, 고 이숙영 씨의 백혈병이 법원

에서 산업재해로 확정된 것을 계기로 반올림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았다. 여러 사람의 힘과

땀, 눈물이 7년간 영화보다 더한 이야기들을 만들고, 반올림은 이름 그대로 반도체 노동자

들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는 울타리가 돼 왔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의 증언에서 출

발한 반올림은 삼성반도체, 삼성 전자 피해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반도체 산

업, 전자 산업 전반의 노동안전 문제를 제기하고 대변해 왔다.

반올림에게는 수많은 과제가 여전히 산적해 있다. 항소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법정

투쟁, 새로운 산재 신청자들의 산재 인정 투쟁, 삼성과의 교섭 등 지금까지 해 왔던 활동

을 이어 나가는 것이다.

더불어 일터라는 지면을 통해 반올림만이 아닌 우리가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권을 쟁취하

기 위해 앞으로의 과제를 몇 가지 정리해보며 새로운 한 계단을 오르기 위해 발돋움 하고

자 한다.

백혈병, 암을 넘어 ‘건강권’ 쟁취로

처음 반올림이 결성되게 된 계기가 백혈병이었고, 이번에 법정에서 직업병으로 인정받은 것

도 백혈병이다. 올 여름에는 같은 반도체 생산업체인 에스케이하이닉스에서도 백혈병 발병 사

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고, 아이폰을 만드는 폭스콘 중국 공장에서도 백혈병 환자가 연이어

발생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전자산업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얻게 된 건강 문제가 백혈병만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방암이다. 2012년에는 19세부터 5년간, 유기용제와 방사선

및 야간작업을 포함한 교대근무를 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여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던 노동자에게

서 발생한 유방암이 산업재해로 인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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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 건강문제도 관심사 중 하나다. 생식 건강 문제에는 임신, 출산과 관련된 건강문제 뿐

아니라 가족계획, 인공임신중절, 성병 등 생식기관이나 생식 기능과 관련된 건강문제가 포함된

다. 이미 대만, 영국, 미국 등에서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며 화학물질을 취급했던 여성 노동자의

자연유산 위험이 증가하거나, 가임 능력이 감소해서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다. 남

성 노동자 역시 가임 능력이 감소한다는 보고도 있다. 국내에서도 반도체산업에 종사하는 20대

여성노동자는 같은 나이대의 일하지 않는 여성과 비교했을 때 자연유산이 57%, 생리불순이

54% 많다는 보고가 있었다.

백혈병과 암을 넘어 이런 다양한 문제, 좀 더 흔하게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실제 위

험이 높은지, 높다면 원인은 무엇인지 규명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니, 질병이 아니라 다

양한 ‘상태’ 에 대한 민감한 조사가 필요하다. 전자 산업에는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많다. 이들

은 젊고 건강하다.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하지만 ‘질병’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이제는 ‘질병이 없는 상태’ 를 넘어 보다 확장된 ‘건강하게 일할 권리’ 를 얘기해야 한다. 화

학물질 뿐 아니라 야간작업, 인간공학적 위험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전자산업 노동자들이 건강하

게 일할 권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건강권, 주민들의 환경권

2013년 1월 삼성반도체 화성 공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하고, 삼성전자가 이를 늑장

신고했을 때, 사망자 과실이라며 사고 발생 경위에 거짓을 섞어 해명했을 때, 공장 주변 지역

거주자들의 이해가 회사보다는 노동자들의 이해와 일치한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최근 자주 발생하는 화학물질 누출 사고에서 쉽게 알 수 있듯, 화학사고가 일어나면 공장

노동자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모두 피해자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노동자들과 주민들이 함께

사고 예방 체계, 응급 대책을 마련할 것을 회사 측에 요구하고 감시해야 한다. 또 그에 앞서

지역 사회에 공존하고 있는 공장이 어떤 위험 물질을 사용하고 있으며, 어떤 사고가 발생할 가

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알아야 한다.

1980년, 90년대부터 일본과 미국에서 반도체 공장 때문에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되어 지역

주민들이 오염 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건이 있었다. 이들 국가에서 반도체 산업에 의한 환

경 파괴를 감시해 온 활동가들은 기업이 지역사회의 의혹과 비판에 대해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이며, 국가와 지역사회가 기업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다. ‘일자리와 환경’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우기는 기업들에 맞서 노동자, 지역사회, 환경을 잇

는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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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델리의 전자 폐기물 재활용 현장

반올림 역시 이미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지역사회 알 권리 획득을 위한 활동에 함께 해 왔

다. 비교적 건강한 성인으로 구성된 노동자들에 비해, 지역 주민 중에는 어린이와 노인과 같이

유해물질에 특별히 취약한 사람들도 많아 비교적 낮은 농도의 유해물질 노출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전자 산업 나아가 기업 활동 전반에 대한 주민들의 감시 강화와 알 권리 보장이라는 측

면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전자산업 노동자의 국제적 연대

전자산업은 전 지구적 분업이 매우 발달한 산업이다. 미국의 애플 본사에서 아이폰을 디자인

하고 중국의 폭스콘 공장에서 제품을 만든다. 1980년대 미국과 일본, 영국에서 주로 발전했던

반도체 산업이 1990년대에는 타이완, 한국으로 이전했고, 이후 중국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전자

산업 공장들이 들어서다가, 최근 노동환경 개선 요구가 높아지자 중국에 있던 공장들이 남미로

이전하는 것이 모두 전 지구적 분업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전자산업의 국제적 분업 가장 말단에는 전자산업 폐기물 문제가 있다. 잘

사는 지역의 전자산업 쓰레기들이 못 사는 지역에서 처리된다. 유해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이나

교역을 막기 위한 국제 협약이 있지만 여전히 중고 전자제품이라는 미명으로 전자 쓰레기들이

수출되고, 이런 폐기물 해체 작업 도중 많은 노동자들이 유해물질에 노출된다.

인도에서는 2011년 전자산업 폐기물 법이 시행되어 일정한 요건을 갖춰 정부의 허가를 얻지

않으면 전자 폐기물 해체 사업을 못 하게 됐고, 수도인 델리는 전자산업 폐기물 해체 작업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인도의 한 환경 단체에 따르면 2013년, 14년에도 델리

내 여러 지역에서 전자산업 폐기물 해체 사업이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납, 수은, 카드

뮴 등 유독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전자산업 폐기물이 조악한 방법으

로 해체되는 사이 인도 안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이주해 온

여성과 아동 노동자들은 이런 독성

물질에 마구 노출된다.

국제연대가 거창하거나 먼 얘기

만은 아니다. 전자산업과 관련된 국

제환경협정을 받아들이고 이행하도

록 강제하거나 이런 표준에 맞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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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법을 만들고 정비하는 제도 개선 활동, 한국의 활동과 성과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교육해

새로 전자산업이 발흥하는 지역에서 우리가 겪은 지난한 투쟁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을 수 있도

록 지지, 지원하는 활동,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적절한 노동, 환경 규제를 지키도록 강제하는

활동 등 조금씩 시작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활동들이 본격화되어야겠다.

새로운 산업, 새로운 문제들

반올림 운동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청정산업’ 이라던 반도체 산업의 맨얼굴을 드러낸 것

이다. 반올림 덕에 우리는 공기 샤워와 방진복으로 상징되던 먼지 하나 없는 반도체 공장이라

는 이미지가 사실은 노동자의 건강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도체 산업은 환경

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더니, 사실은 물도, 화학물질도 많이 쓰는 산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동안 널리 쓰이지 않던 인듐이라는 희귀 광물은 LED나 LCD 만드는 데 유용해서 최근

20여 년간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일본과 한국이 주요 사용 국가이다. 그런데 이 물질을

사용한 노동자들에게서 폐 조직이 섬유화 되는 증상이 발생해 새로운 직업병으로 알려졌다. 하

루가 바쁘게 변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산업은 우리가 아직 모르던 새로운 위험의 등장일 수도

있는 것이다.

확실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심각한 위험의 가능성이 있을 때는 예방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사전 예방 원칙에 입각해서 새로운 산업, 새로운 유해요인, 새로운 노동자 집단의 등장

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새로운 위험에 민감해지는 길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뿐이

다.

반올림 투쟁은 고 문송면 투쟁, 원진레이온 투쟁,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에 이어 한국 노동안

전보건 역사에 큰 획이 되는 투쟁이다. 지난한 투쟁을 거쳐 이제 한 계단 올라섰다. 한 숨 고

르면서 다음 걸음을 준비할 때이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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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ntv.co.jp/dandarin/

한국에서 단다린을 기대하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일인가?

백리마 회원

2013년에 “노동기준감독관 단다린”이란 일본 드라

마가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근로감독관에 해당하는

데 이 드라마를 통해 일본의 임금체불, 하청, 초과노

동, 산업재해, 정리해고 등의 노동현안 문제를 바라

보는 일본의 상황과 시선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 단다린 감독관은 한국의 근로기준법에 해당

되는 노동기준법을 어긴 악덕 기업주를 어떤 타협도

없이 처벌해 나가는데 이런 소재의 드라마가 방영된

다는 사실 자체와 드라마에서 단다린 감독관이 말하

는 한마디들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이주노동자를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부려먹다가 처벌을 받는 사업주가 기업의 어려움을 항변하자 단다린은 말한다.

“경영위기는 경영자의 책임입니다. 노동자에게 함부로 전가하지 마세요!” 내가 잡혀가면 노동자들은 쫓겨

나게 되는데 책임질 거냐는 사업주의 협박에는 “기업은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돈도 다시 벌면 됩니다.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병 걸리고 죽으면 다시 일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인상 깊은 장면. 한 제빵사가 사장이 자신의 사직서를 안 받아준다며 찾아왔다. 자신은 질

좋은 과자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데, 사장의 대량생산 요구와 과도한 영리 추구에 자신의 철학이 침해받

고 있다고 생각해서 사직을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사장은 자신을 대신할 대체자가 없기 때문에 사직을

허락할 수 없다 하였고, 오히려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단다린 : “노동자에겐 고용계약을 종료할 자유로운 권리가 있다.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하라.”

사측 노무사 : “개인의 편의 때문에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도록 놔둘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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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다린 : “개인의 권리를 개인의 편의로 생각하는 편협한 관점이 일본에서 악덕 기업들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 아니겠는가?”

한국에서 노동자와 관련 있는 정부 부처는 고용노동부가 있고, 그 산하에 근로복지공단과 안전보건공

단이 있다. 이들 소속의 수많은 공무원이 노동자와 관련한 업무를 하지만 단다린 같은 공무원이 한국사

회에 과연 있을까 싶다. 물론 드라마이기 때문에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의 공무원이 노

동자를 대하는 시선과 태도를 보았을 때 너무나 큰 차이가 느껴진다. 난 직업병이니 인정을 해줘야 한다

는 근로복지공단 직원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질병판정위원회나 산재 자문을 할 때 “직업병

이 아니지 않느냐?” “이것은 업무 부담이 적지 않느냐?” “이런 사안은 과거에 인정된 적이 없다.” “요양기

간이 너무 길지 않느냐?” 등의 얘기를 하는 직원들뿐이었다. 안전보건공단 직원들은 재해, 직업병 예방과

관련한 업무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노동자의 입장을 헤아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전보건공단 캠페인 포스터를 보면 하나같이 재해 예방을 위해 노동자들이 조심하고 규칙을 지켜야하고,

보호구를 잘 착용해야 한다는 한계를 반복한다. 역으로, 산재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업주의 책임을 강조하는 포스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근로감독관들은 어떠한가? 몇 개월 전 8명의 산재 사망사고를 냈던 현대중공업에서 경영진이 처벌받았

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이전의 중대재해 때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자가 산재로 죽어도 경영

주가 처벌받지 않는데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어떨지 안 봐도 뻔하다. 특히 산재은폐와 공상은 너무나 일

상적으로 반복되는 일이어서 공상치료가 일반화된 자동차 회사의 경우 근로복지공단 직원이 산재신청자

에게 왜 공상을 안 하느냐고 반문을 한단다. 공무원들에게 노동자 편을 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근로기

준법, 산업안전보건법만이라도 지키게 해달라는 것인데, 현실은 그마저도 사치가 될 판이다. 그동안 내가

경험한 것들은 이들 공무원이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세상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돈이 곧 권력이라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성과주의의 결과

가 아닐까? 과거 민주노총이 공개한 근로복지공단 내부 문건에서 공단 직원들이 직업병 승인을 바라지

않는 이유를 추론할 수 있다. 돈 많은 사람과 없는 사람을 차별하고, 산재를 경영성과와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이용하는 상황이 존재하는 한, 한국의 공무원들이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바뀌지 않

을 것이다.

한국에서 단다린을 기대하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일인가?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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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중지권 기획]

‘손배 소송의 천국’ 한국에서 작업중지권의 현실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팀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또는 중대재해가 발생하였

을 때’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러한 권리를 현장에서 노

동자가 행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고, 실제 권리를 행사하더라도 사측의 이후 탄압이 거

세다. 작업중지권 발현 이후에 맞게 되는 징계나 손배 소송은 현장 노동자들의 심리를 위

축시키고 노조운동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본 기사에서는 자동차 대공장 현장

사례를 통해 작업중지권이 억압받는 현실을 살펴보고자 한다. 현대 자동차 전주공장의 박

성철 노안부장과 정윤규 대의원이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최근에 작업 중지권을 발동한 사례가 있나?

2014년 4월, 소재공장에서 뜨거운 쇳물을 옮기는 용기인 래들에 구멍이 나면서 안에 담긴 8톤

가량의 쇳물이 흘러내렸다. 이런 비상시에는 쇳물을 버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구덩이인 피트에 쇳

물을 쏟아 버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다. 피트는 전주공장이 지어진 후 단 한 차례도

점검을 하지 않았는데, 그곳에 물이 고여 있었던 것이다. 그 안에 1,300℃의 쇳물이 들어가니 물이

끓어버리면서 세 차례의 거대한 폭발이 있었다. 불기둥이 치솟고, 소리와 진동이 어마어마해서 신

고하기도 전에 경찰서, 소방서에서 알고 출동했을 정도였다. 이 사고로 조합원 3명이 화상을 입고,

폭발음으로 두통을 호소한 1명을 병원으로 호송했다. 만약 더 가까이 있었다면 사망사고로 이어졌

을 큰 폭발이었다.

회사는 즉각적으로 어떻게 대응했나?

사측에서는 용해로 4개 중 4호기에서 사고가 났으니 나머지 3개 용해로는 출탕을 하겠다고 요구

했다. 출탕을 중단하면 쇳물이 그대로 굳어버리게 되어 막대한 손실이 생기기 때문이다. 소방관은

폭발로 인해 위험하고, 안전도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용해로 쇳물도 옮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윤규 대의원이 방송으로 라인에 있는 인원 모두 당장 대피하도록 했다. 소재공장은 작업환

경이 위험하여, 2차 폭발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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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4 현대자동차 전주 소재공장 사고 (출처 : 현대차지부 전주위원회)

작업중지 후 노동조합은 어떻

게 활동을 전개 했는가?

큰 사고라고 판단해서 임시로 산업

안전보건위원회가 소집되었다. 노조

신고로 근로감독관이 현장점검을 나와,

바로 작업중지명령을 붙이고 갔다. 그

런데 바로 다음 날 팩스로 사고 난 4

호기 빼고는 작업하라고 하더라. 사측

에서도 구사대 50명을 동원했다. 작업

에 나서지 않으면 지시불이행과 무단이탈로 징계하겠다는 것이었다. 우왕좌왕하는 조합원들에게 노

동조합 지침이니 라인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우리 주장은 2가지였다. 내 가족 같은 조합원이

다쳤다는 것과 지금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기간인데 안전 확인을 했느냐는 것이다. 조합원들이 조합

지침에 따라 작업에 나서지 않은 것이 큰 힘이 되었다. 결국, 3일 동안 작업을 멈추고 현장 점검을

해 모든 피트에 문제가 있음을 밝혔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협의에 따라 용기보수, 비상벨 설치,

안전시설 추가설치와 외부기관 안전실사까지 시행했다.

이번 사고는 비교적 잘 해결된 편이지만, 작은 사고의 경우는 작업중지권

발현도 어렵고, 손해배상 소송도 많이 당한다고 들었다.

하부작업을 위해 네 귀퉁이에서 차체를 받쳐 세우는 쇠 받침대가 있다. 하부작업 후 리프트가

차체를 드는데, 이 받침대 중 하나가 차체에 달려 올라가서 덜렁대는 채로 다음 공정으로 옮겨지는

걸 보고 라인을 세웠다. 안 세웠으면 사람이 맞을 테니까 세운 것인데, 사측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

았으니 작업중지 해당이 안 된다며 노안부장을 고소했다. 산안법의 ‘급박한 위험’이라는 애매한 문

구 때문에 고소고발을 당하게 된다. 또 산업안전보건법 상 노동자는 중지 요청만 할 수 있지 직접

중지하지 못한다. 사람이 죽어도 노동조합에서 라인 세우면 위법이다. 법이 이러니 현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작업중지권을 현장에서 활발하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법을 바꾸는 투쟁이 필요하다. ‘작업중지권

을 노동자가 행사할 수 있다’, 이 문구 하나만 들어가도 노동조합만 있으면 현장 분위기를 노동자

들이 가져갈 것이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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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센터(준) 기획]

노동시장과 노동시간,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 장시간 노동의 원인과 해법 – 노동시간센터(준) 강연회(3)

김경근 노동시간센터(준)

한노보연 노동시간센터(준)은 노동시간 문제에 대해 꾸준히 고민해온 진보적 학자 3분을

모시고 <한국 장시간 노동의 원인과 해법>을 주제로 하여 세차례에 걸친 기획 강연회를

열었다. 이 강연회의 마지막 시간이었던 지난 8월 29일에는 「일중독 벗어나기」, 「자본

을 넘어, 노동을 넘어」의 저자인 강수돌 교수를 모시고 <노동시장과 노동시간, 무엇이 문

제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듣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강연의 내용을 소개한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좋은 삶이란 바로 행복한 삶이다. 행복한 삶은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가질 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런 자율성과 주체성은 어떻게 형

성될까?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문제의 지형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구체적 해

결책에 대한 고민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 보다 먼저 기본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대안

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이는 장시간 노동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강수돌 교수는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강연을 시작했다.

강 교수는 먼저 어린이에 대한 양육과 교육의 방식에 대해 거론했다. 부모로부터 태어남 그 자

체를 존중받을 때 그리고 기초적인 욕구가 충족되고 소통될 때, 아이는 자율성과 책임성을 가질 수

있다. 반면 부모와의 관계에서 폭력적 경험을 한 아이들은 생존을 위한 굴복을 내면화하게 된다.

이러한 이들은 훗날 장시간 노동을 당연시하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나의 필요와 욕구를 온전히 느

끼지 못하고 삶에 대한 자신만의 전망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삶의 질을 희생시킨 채 삶의 ‘양’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어린 시절 자신의 내면이 충족되는 양육의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

들은 ‘일 중독’에 빠져들기 쉽다. 그들의 삶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은 일이다. 늘 높은 성과를 거

둬야 만족하고 일을 안 하고 있으면 불안하고 허전하다. 단순히 돈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을 넘어서

일 자체에 중독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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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강 교수는 삶의 질, 생명, 욕구와 같은 개념을 중

요한 키워드로 사용한다. 이는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에

도 반영된다. 자본주의를 노동과 자본이 임금을 매개로 대립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전통적인 분석이었다면, 자본주의를

생명(삶)과 자본이 노동을 매개로 대립하는 것으로 바라본다.

기존의 분석 구도는 임금을 누가 더 가져가느냐를 두고 싸

우는 체제 내의 대립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이제까지

의 화두가 ‘어떤 노동을 만들 것인가’였다면, 이제는 ‘어떤 생

명(삶)을 만들 것인가’로 전환되어야 한다. 강 교수는 생명

(삶)의 질을 4가지 종류로 제시한다. 개인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 인간 사이의 존중과 평등, 우애와 인정의 공동체, 조화

로운 생태계.

강 교수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라는 기존 분석 구도의

한계를 보여주기 위해, 먼저 노동시장 형성의 역사적 과정을

설명한다. 노동력이 상품으로 만들어지는 기나긴 역사 속에

서, 수많은 투쟁이 존재하긴 했지만 대안으로 자리 잡지 못

했고, 노동자들은 결국 굴복하고 적응하여 살아남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이 삶의 중심이 된다는 의미에서 ‘노동사회’이다. 노동자들은 노동력 상품화

라는 폭력을 통해 트라우마(정신적 상처)를 가지게 된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은 생존 전략으로서

강자 동일시를 내면화하고, 억압된 분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으로 변질된다. 또한 경쟁은 당

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경쟁은 지배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데 가장 강력한 무기로 활용된다.

그 결과 이제 더 이상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과 자본의 ‘공범 관계’가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노동시간을 둘러싼 투쟁 역시 자칫하면 자본주의의 합리성 안에

갇혀있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부각되는 ‘일-가정 균형’과 같은 시도들은 분명 필요한 것이

긴 하지만 명백한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좋은 삶을 더 많은 소비와 소유로 여기는 시각이 바뀌

지 않는 한, 노동시간이 조금 줄어든다 할지라도 소비를 위해 시간을 희생하는 삶의 방식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또한 노동과 소비를 통해 자본의 힘을 강화시켜주는 악순환도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구도를 전환해서, 자본 지향적 노동에 맞서 생명 지향적 노동을 고민할 때이다.

노동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생명과 자본 사이의 매개 변수이기 때문이다. 노동시간은 노동시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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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이슈이기도 하지만, 생활과정의 주요 이슈이기도 하다. 따라서 ‘노동시간’은 자본 지향적 질서

를 생명 지향적 질서로 바꾸기 위한 노력에서 중요한 싸움의제이다. 역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한다고

해서 무조건 생명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푹 쉬는 것이 내 삶을 음미하고 창조하는 시

간이 아니라 미래에 더 잘 일하기 위한 기능적 충전이 될 수도 있다. 여유 시간이 자본의 것으로

넘어갈 위험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와 가치는 삶의 질을 높

일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강 교수는 노동시간 단축의 구체적 방안으로 9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조하

는 것은 철학과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우선 사회 질서의 기본형이 바뀌어야 한다. 현재 사회는 자

본주의 시장 경쟁 속에서 사다리 형태의 질서로 유지된다. 이러한 사다리 구조에서는 설령 노동이

투쟁에서 무엇인가를 얻어낸다 할지라도 자칫 그 승리는 자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다른 노동에 대

한 승리이기 쉽다. 임금 인상이든 노동시간 단축이든 다른 노동자의 몫을 뺏어오는 것이 될 위험

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강 교수는 사다리를 걷어차고 원탁의자에 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쟁

과 위계를 거부하고 모든 이들이 고른 대우를 받는 질서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철학과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한다. 삶의 양(돈, 권력, 명예)에서 삶의 질로.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소유에서 존재로. 분열과 경쟁에서 소통과 연대로. 수직적 사고에서 수평

적 사고로. 나중의 행복에서 지금의 행복으로. 강자 동일시에서 인간적 유대로. 이렇게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변화할 때, 거시적 실천 전략과 미시적 실천 방안이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토론에서는 크게 3가지 논의

가 이루어졌다. 첫째, 현재 다

양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 움직임을 어떻

게 평가할 것인가를 두고 토론

이 있었다. 최근의 변화 움직

임에 대해 좀 더 긍정적인 평

가를 해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

되었다. 자본주의 내에서도 얼

마든지 비자본주의적 흐름이

존재할 수 있다. 자본주의 시

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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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노력과 바깥에서의 노력이 만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일-가

정 균형과 같은 지향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의 한계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강 교수

는 다양한 시도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한계에 대해 그리고 대안의 논리적 방향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무엇이 노동자의 주체성인지를 두고 토론이 있었다.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노동과정을 통제

하려는 노력들을 소개하면서, 과연 노동시간을 줄여서 일터를 탈출하는 것이 노동자의 주체성이라

고 규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다. 작업현장의 중요성을 간과할 경우에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해 여가시간은 많아졌을지언정, 작업현장에서는 오히려 기업의 힘에 더욱 종속될 위험

성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는 주어진 조건 속에서 나름의 주체

성을 확보하려는 모습이긴 하지만, 범위가 제한적인 자율성에 그친다고 답한다. 좀 더 장기적인 관

점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 노동시간 단축이 모든 노동자들의 요구와 지향이 되어야 하는지를 두고 토론이 있었다. 많

은 노동자들이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특히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그러한 요구

가 절실한 조건 속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비현실적인 의제가 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만

약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해 임금이 하락하게 된다면,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게 되고 노동자들

스스로 노동시간 단축을 거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우리와 달리 유럽에서는

정년을 단축하라는 요구가 나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답한다. 주거 교육 노후와 같은 사안을

사회 전체가 해결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욕구 형성도 달라질

것이며, 소비와 소유가 갖는 의미 또한 크게 달라질 것이다.

강 교수의 강연을 통해 우리는 노동시간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의 폭을 크게 넓힐 수 있었다. 한

사람의 노동시간이 단지 현재의 조건뿐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양육되고 교육받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서, 노동시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생애과정 전반의 변화가 필요함을 알 수 있었

다. 또한 삶의 올바른 욕구를 발견하고 충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노동시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가치관 전반의 변화가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 전반과 삶의 방식 전체로

시야가 넓어진 것이다.

세 번의 연속 강연을 통해, 한국 장시간 노동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노동시간센터(준)은 더욱 더 많은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여 우리의 논의가 한층 풍요로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한 그 속에서 노동시간 문제 해결을 위해 일터의 노동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찾을 것이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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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굴도 마음대로 못 먹나

김재광 선전위원

부아가 치민다. 평소에 굴을 매우 좋아하는데, 굴의 포자를 키우는 가리비의 껍데기가 후쿠시

마 인근으로부터 수입된 것이라고 한다. 2010년에는 그 수입량이 91톤이었지만, 후쿠시마 원전

이 터진 2011년에는 무려 3228톤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후쿠시마산 가격이 폭락하여 원래 쓰

던 중국산 가리비 껍데기보다 훨씬 싸졌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필자를 포함한 굴 마니아를 비

롯하여 김치, 전, 소스 등에 굴을 넣어 먹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방사성 수치도 알 수 없는

가리비 껍데기에서 자란 굴을 그냥 기쁘게 냠냠 먹었다는 얘기인 것이다. 그렇다고 굴을 아예

안 먹을 수는 없을 것 같고,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한다.

그런데 기사를 찾아보니 이렇게 가리비 껍데기가 아무 문제없이 수입된 이유가 가리비 껍데

기는 쓰레기로 분류되어 별다른 검사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 가리비 껍데기는

비교적 깨끗한 쓰레기라니 기겁을 하겠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원인인 쓰나미 이후 발생된 온

갖 산업 쓰레기가 일본에서 대량으로 들러오고 있단다. 지난해 일본이 수출한 폐기물 165만 톤

중 161만 톤이 한국에 들어왔다니... 오 맙소사!! 이 폐기물에는 방사성 오염 우려 지역의 폐기

물도 분명히 섞여있다고 하니 원전 사고가 진정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위험한 산업 폐기물의 수입이 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돈’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쓰레기 분야는 하나의 산업일 수 있으며, 재가공, 재활용 등으로 환경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

러나 원전 사고로 인해 발생한 산업쓰레기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충분한 안전 검사가 필수적인

것은 물론, 설사 안전 검사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국내로 반입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가리비 껍데기부터 고철까지 방사성 오염 우려 지역의 폐기물을 제대

로 된 안전 검사도 없이 수입하는 것은 사실상 반사회적 범죄나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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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jTBC 추적 360분 캡쳐

이런 행태가 지속되는 이유는

그놈의 경제논리다. 즉 투입보다

산출이 높으면 된다는 그 경제

논리. 생각해보면 이 경제논리,

정확히는 시장논리 (낮은 가격,

고수익)라는 것이 사회의 안전과

보건을 가장 위협하는 요소인

것이다. 한 개인이나 한 회사에

게는 투입보다 산출이 높아 이

득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 이것만큼 비효율적인 것이 없다. 한때 중국 김치 파동이 있었을 때, 사람들은

중국 자체를 비난하고 조롱하였지만, 정작 비판해야 할 것은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과

사회인 것이다. 위험한 쓰레기를 수입하는 업자가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경제논리로 그

의 행위가 받아들여지는 사회는 시장만능, 돈 만능의 사회이기에 아침마다 친환경 유기농 야채

를 갈아 마시고, 금연을 하고, 운동을 해대도 안전과 안녕을 보장할 수 없다.

정말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이놈의 무분별한 경제논리, 시장논리가 통용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투입보다 산출이 높은 것이 최고라는 상식에 도전해야 한

다. 투입보다 산출이 높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투입한 양 만큼 산출량이 존재

할 뿐이다. 단지 산출의 모양새가 바뀔 수 있을 뿐이다. 투입보다 산출이 높다는 것은 그 과정

에서 특정한 이가 이익을 보고, 누군가는 손해를 보았다는 것이며, 이를 숨기기 위해 사기나 집

단최면이 작동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도 나도 안전한 사회를 말하지만 정작 경제 논

리, 시장논리가 모든 사회 담론을 장악하고 있다면 안전한 사회는 요원하다.

내가 아무리 애쓰고, 발버둥 쳐봐도 결국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굴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현

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경제논리에 따라 누군가의 부도덕한 이윤을 위해 나의 식탁을 의심하고

전전긍긍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짜증이 나는데 가을 하늘은 왜 이리도 푸른지, 언제까지 이

하늘빛을 유지할 수 있을지... 조금 있으면 굴이 제철인데...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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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서 비롯된 공상(空傷)처리의 폐해

유 상 철 노무법인 필 노무사

[email protected]

최근 산업안전보건교육을 몇 차례 다녀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산업안전보

건법에 관한 이해’라는 주제이지만 산재법 중심으로 교육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

다. 현장에서 당장 업무상 재해가 발생하였을 때,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지?’,

‘어떠한 것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

서 비롯된 현실적인 요구라고 생각한다. 교육을 하면 현장의 노동안전보건 활동가

들은 열기가 뜨거울 정도로 질문을 쏟아 낸다. 놀라운 것은 질문 대부분이 ‘공상’

처리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내 상식으로 공상(公傷)은 공무상 재해의 줄임말이

다. 하지만 현장이나 병원에서 사용하는 공상은 일을 하다가 발생한 업무상 재해

나 공무상 재해를 비공식적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통용된다. 즉, 재해 경위를 가짜

로 처리한다는 ‘공상(空傷)’의 의미이다. 분명히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만 ‘산재처

리’냐 ‘공상처리’냐는 갈림길에서 모두의 욕망을 충족한다는 핑계로 ‘공상’처리라는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출간된「노동자, 쓰러지다(희정, 오월의 봄)」라는 책에 조선소에서 있

었던 일이 소개됐다. 용접하다가 불똥이 눈에 튀어서 병원을 찾은 노동자는 의사

에게 “자전거를 타다가 다쳤다”고 말한다. 의사는 의무기록에 그대로 적는다. 어떻

게 자전거를 타다가 용접 불똥이 눈이 들어갈 수 있는가? 뻔한 거짓임을 알면서

도 노동자와 의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치료하고 치료받는다. ‘원청→하청→재

하청’의 구조상 재계약이나 더 많은 물량 수주를 위해 하청은 산재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노동자는 중장기적으로 혹시라도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력에 산재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당장 치료비나

임금은 하청에서 보조해주니까 개인보험까지 고려한다면 산재처리를 하는 것과 별

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원청은 무재해사업장이라고 노동부에 보고하고, 하청

은 재계약을 고려하여 산재를 은폐하고, 병원은 영리를 위하여 이러한 사실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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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 척한다. 도리어 건강보험공단에서 “당연히 산재로 처리할 것을 왜 건강보험에

비용청구를 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 산재처리가 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당장 급한 마음에 금전적 문제만 생각한다면 회사나 노동자나 병원이나 다

이득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업무상 재해를 당한 노동자가 최초 재해를 공상으로 처리한 후 재요양이 필요

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공상처리 후 산재처리를 요구하게 되는 것은 대부분 회

사가 합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거나, 장해가 발생했는데 회사는 모른 척하는

등 갈등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진 상황을 바로 잡

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처음부터 산재처리를 하면 이런 불필요한 갈등 상황에 놓

일 필요도 없고 힘들여 뒤늦게 산재 처리할 필요가 없다.

또 유사한 사고, 유사한 질병이 반복되는 현장에서 공상처리만 하는 경우 대형

사고 혹은 집단적 직업병 발병이 발생할 위험성은 그대로 둔 채 개별 재해 사례

만 처리하게 된다. 사고 예방과 건강한 일터는 물 건너간다. 조직적으로 공상처리

가 만연될 경우 산재를 요구하는 노동자가 이상하게 느껴지게 되고, 결국 통제적

조직문화 속에 노동자의 건강권을 저당 잡히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상황

이 계속될 경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업장의 노동조건, 안전보건 등 작업환경

저하는 필연적이다. 이런 꼬락서니를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다.

공상 문제는 간접고용, 외주화 등 원-하청 구조에서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지 정

규직의 경우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얼마나 심각했으면 정부에서 ‘산업재해조사

표1)’를 제출하도록 제도를 보완했을까. 어떠한 상황이든 의무기록은 객관적인 자

료로 평가한다. 하지만 공상처리가 만연된 사업장에서는 최초 진료를 받으면서 이

미 사실을 왜곡하도록 만든다. 자본의 욕망에 현혹되어 노동자가 공상(空傷)처리

에 동의하는 것은 제대로 된 보상과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처지로 자신을 몰아넣

는 것이다. 노동조합도 당장 손쉬운 해결방법을 선택하면서 현장의 노동안전보건

이 확보될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저 공상(空想,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생각)일 뿐

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현장에서 “산재은폐는 안 된다”는 원칙을 지금이라도 확고

히 하자! 일터

1) 2014. 7. 1.부터 요양신청에 의한 보고 갈음제도가 폐지되고, 사망자 또는 3일 이상의 휴업재해가 발

생한 경우 1개월 이내 신고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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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 통권� 129� � 2014.10

작업중지권의 실질적 쟁취를 위하여‘노동자가 만드는 일터’를 보며

진짜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를 꿈꾸다

안규백 한국지엠지부 조합원

저에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하 한노보연)는 정말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곳입니

다. 저는 자동차 공장의 컨베이어 라인에서 조립공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평소 작업

조건이나 환경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의 건강권이나 안전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었

습니다. 비록 좋은 사례는 아니었지만, 현장 대의원 시절 조합원의 안전사고 발생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작업중지를 했던 경험이 있었고, 그 경험을 회원

토론 시간에 얘기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한노보연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지요. 이후 여

러모로 많이 부족하지만 한노보연에서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당장 멈춰!’팀의 일원이자 후

원회원으로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얻고, 배워가며 함께 활동 중입니다.

‘당장 멈춰!’팀과 함께 한 5개월여의 시간

사실 엉겁결에 함께 해보겠다고 했지만, 단체에서 활동해본 경험이 없었던 저로서는 여러

걱정이 앞섰습니다. 교대근무의 특성상 모임 시간을 맞추는 것부터 시작해 여러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함께 하고 있는 분들의 속 깊은 배려와 이해 속에서 현재까지 아주 재미

있고 유익한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껏 함께 한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한

노보연은 그동안 제가 속한 현장에만 갇혀 있었던 인식의 폭을 좀 더 넓게 해 주었습니다.

이는 앞으로의 남은 시간과 활동들이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진짜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실 현

장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해당 현장만의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지만, 여러 이유로 인해 개별적인 문제들로 둔갑합니다. 이는 곧 서로의 연대를 막아서

는 주범이 되기도 하지요. 저는 이러한 것들을 깨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

는데, 저에게 있어서는‘당장 멈춰!’팀의 활동이 그러한 노력의 일부입니다. 이제 이 소중한

경험을 혼자 느끼고 배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현장에 접목해 나갈 것인지

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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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일터l ․ 45

당사자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 번 얻은 자신감

작업중지권과 관련한 다양한 사례들을 발굴하고 정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작업중지

권을 실제 행사한 당사자를 찾아가 관련 상황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함께

한 기아자동차 활동가의 인터뷰가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자 자극이었습니다. 그 활동가의

활동공간이 동종업계였기에 많은 부분이 비슷하기도 했지만 극명하게 차이 나는 부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활동가 또한 대의원이었지만 활동에서는 확고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듯 보

였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현재 이만큼이라도 누리고 있는 것은 모두 선배들이 일구

어 놓은 피의 역사이다.”, “계속 싸우고 요구하지 않으면 결국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냉정하게 비교해보면

저는 그냥 대충 넘어갔던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 분은 문제를 제기하셨더군요. 이 부분에서

한편으로는 반성을, 한편으로는 자극을 받았어요. ^^ 이제 나도 이 분처럼 해봐야겠다. 뭐

이런 거 말입니다. 저는 작업중지권의 실질적 쟁취는 특별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구

든 이것저것 재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도 문제가 있다면 멈출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진짜 작

업중지권 아닐까요? “당장 멈춰!”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를 보며 진짜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를 꿈꾸다!

많지 않은 금액을 후원하면서 이런 책자를 받아 본다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기도 합

니다. 매월 빠지지 않고 이런 책자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어렴풋이나마 아는

저로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다 읽고 현장에 가지고 가서 소심하게 작업공간에

살포시 둡니다. 혹시나 한 사람의 작업자라도 볼까 해서요.ㅋㅋ 물론 이후 조금 더 자신감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일독을 권해 볼 생각입니다. 내친김에 정기구독과 후원회원 제안도 생각

중이지만 섣부른 기대는 금물입니다. ^^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자가 직접 만들어 가는 일터의 실현을 위해 악조건 속에서도 애쓰

시는 여러 동지가 있기에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들이 더 많은 현장과 노동자들에 전해지고

가감 없이 읽히길 진심으로 소망해봅니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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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 통권� 129� � 2014.10

취미는 사진

김세은 운영위원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한 것은 열아홉 살 때였다. 장롱 한편에 아버지

의 검은색 카메라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린 시절 언제부터

인가 알고 있었다. 나의 아기 때 사진 대부분을 그 카메라로 아버지가 찍

어주신 거라고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부모님이

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셨던 적은 없었기에, 언제부터인가 그 카메라

가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좀 더 자라면 저 카메라를 가지

고 직접 사진을 찍겠다는 다짐도 하게 됐다.

열아홉 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다짐했던 대로 사진동아리에 들어가

사진을 배웠고 그 돌덩이 같은 카메라를 늘 가방에 갖고 다니며 열심히

찍었다. 사진 말고도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 시절이었던지라 몇 개월

후 사진동아리는 탈퇴했고, 몇 년의 공백기는 있었지만 그래도 카메라를

늘 곁에 두고 지내왔다.

지난 4월부터 일터 ‘사진으로 보는 세상’ 코너를 맡아왔다. 처음에는 6

개월간, 이후에는 좀 더 지속적으로 할 것을 고려해보자는 제안을 받고서

꽤 고민을 하다가 일단 받아들였다. 어릴 적부터 꽤 오랫동안 사진을 찍

어오던 터라 별 걱정을 하지 않았고, 이 기회를 빌려 그동안 서랍에 넣어

두었던 카메라를 꺼내 다시 예전처럼 활발하게 사진을 찍어보려고 마음먹

었다. 그런 처음의 마음이 시들해질까 살짝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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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이 제일 좋다

다행히 펑크(?)내지 않고 짤막한 글과 함께 사진을 내왔는데... 어느새 약

속했던 6개월이 지났고, 나는 더 이상 지속하기는 힘들겠다는 결정을 내

렸다. 핑계를 대자면 여러 가지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 내용과 구도에 대한 다양한 고민이 앞서야 하고, 늘 카메라

를 갖고 다니며 많이 찍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난 6개월간 두 가

지 모두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았음을, 솔직히 그렇게 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여전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거나 멋진 풍경을 보면 카메라를 들

이대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린다. 또 좋은 사진들을 볼 때면, '나도 한번

저렇게 찍어봐야지'라고 생각하곤 한다. 여전히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는 '

사진'이라고 자신 있게 답한다. 훗날 '사진 좀 찍는 할머니'가 되고픈 바

람도 여전하다. 언젠가는 다시 '사진으로 보는 세상' 코너를 고정으로 담

당할 날이... 올까? ^^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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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 통권� 129� � 2014.10

1) 5)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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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8)

4)

☞ 가로열쇠1. 1,895일간의 사회적 연대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 불법

파견에 맞서 정규직화를 쟁취한 노동조합의 이름은.

금속노조 서울지부 ◯◯전자분회 p.12

3. 2013년 일본에서 방영한 드라마 제목으로 노동자를 위

해 일하는 주인공 단다린의 고군분투가 빛났던 드라

마. 노동기준 ◯◯◯ 단다린 p.32

4. 7년의 투쟁 끝에 산재인정 판결을 받고, 직업병으로

죽어간 딸과의 약속을 지켜낸 이 분의 성함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황상구 역할의 실제 인물이기도 함

p.27

5. 반도체 직업병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위해 2009년부

터 매년 진행하고 있는 공동행동의 이름. 반도체 노동

권을 향해 달리다 ‘◯◯ 공동행동’ p.22

7.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인터뷰 주인공의 직업. 설계

의뢰자의 요구 사항을 반영하여 주거시설, 공공건물

및 공장 등의 건축물을 계획 · 설계하는 사람을 뜻

함. 건축 ◯◯◯ p.8

8. 전자산업 노동자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직업병으로 한

국뿐만 아니라, 아이폰을 만드는 폭스콘 중국 공장에

서도 이 직업병에 걸린 환자들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알려져 있음 p.29

☟ 세로열쇠1. 1인 승무제, 폭압적 조직문화, 성과 시스템에 의한 과

도한 경쟁 등 높은 직무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노동조건

으로 인해 우울증으로 인한 서울도시철도 ◯◯◯ 자

살사고가 연달아서 발생하고 있음 p.3

2.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준) 강연회 발표

를 맡은 강수돌 교수가 쓴 책의 이름으로, 일중독을

사회적 질병의 하나로 문제제기한 책. ◯◯◯ ◯◯◯◯ p.36

5. 고 황유미 씨를 계기로 만들어졌던 대책위의 이름 ‘삼

성 ◯◯◯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

를 위한 대책위원회’ p.22

6. 대표적인 직업병의 하나로,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위험과 신체부담에

대한 평가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수행한 재해조사시

트 연구 용역 최종보고서 노사정 설명회가 있었음 p.6

정답을 이름, 연락처와 함께 연구소 메일 [email protected]이나

문자 010-3782-1871로 보내주세요.

정답자 중 추첨을 통해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

지난 호 정답자는

변*영 (010-5696-****)

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