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리더십 10조결과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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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나눔리더십 10조결과보고서

결 과 보 고 서분            반 9 수업 시간             월 5 수 4        (요일, 교시)담당교수 이은아 교수님

팀    명 특별하조 팀 장팀 명단 (총    7    명)±³À°°øÇаú 1346016 ¾È¼ö¹Î, ±³À°°øÇаú 1346029 ÀÌÈ£Á¤, ±¹Á¦ÇкΠ1369047 À±Áö³ª, ±¹Á¦ÇкΠ1369065 ÀÌÁöÇö, ±¹Á¦ÇкΠ1369089 ÇѼ±¿ì, ¾ð·ÐÈ«º¸¿µ»óÇкΠ1394048 ¾ÈÀº¼, ¾ð·ÐÈ«º¸¿µ»óÇкΠ1394105 ÃÖ³²¿¬

활동 주제 잘못된 역사인식 바로잡기-욱일기, 독도, 동해, 위안부 문제를 중점으로활동 분야 나눔경제 (        ) 소통과 공감 (        ) 지역사회/공동체 (        )

글로벌시민의식 (    v    ) 여성/이화공동체  (        ) 기타  (        )

활동 방법 심층면접 (    ) 참여관찰 (        ) 현장참여 ( v ) 설문조사 (        )

통계분석 (    ) 관련자토론 (        ) 전문가인터뷰 (      ) 강의참여 (        )

공연 및 전시 (v ) 제작 ( v) 모니터링 (      ) 봉사 (        )

기타  (    ) ※ 해당방법 모두 표시

활동 내용 ※ 핵심요약

1) 9월 23일(월): 첫 만남, 각자 서로 소개하는 시간 (전공, 나이, 사는 곳 등등)

2) 10월 2일(수): 주제 선정, 처음에는 인사동, 명동 등 관광명소에서 표지판, 팜플렛 외국어 표기로 하려다, 울릉분지의 잘못된 표기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욱일기에 이르게 됨.

3) 10월 7일(월): 소셜 다이닝

4) 10월 11일(금): 아침 2교시 (모두들 공강인 관계로) 에 ECC Gate 1에서 만나서, 주제를 구체화함, 왜냐하면 10월 12일에 1차 계획서를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5) 10월 28일 (월): 한국사 관련 단체에 연락 시도. (2곳에 전화를 했지만, 거절)

6) 10월 31일 (목): 목요일 7교시 모두 만남.세 번째로 동북아재단에 연락,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으나, 조원들 모두 가능한 요일, 시간 등 메일로 적어서 보냈으나, 결국에는 교육진행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고 거절하심. 그리하여, 차선책으로 생각해두었던, 각자 책을 선정하여 읽고, 동영상을 같이 시청하는 것으로 자체적으로 교육하기로 결정.

7) 11월 1일~11월 9일: 책을 선정하여 단톡방에 자신이 읽을 책 제목과 저자명을 올림. 서로 읽은 책이 겹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8) 11월 8일(금) 아침 2교시, ECC 테이블에서, ECC에서 빌린 노트북으로 EBS 지식 채널 영상 4개를 같이 보고,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 가짐.

9) 11월 13일(수) 원래 나리 수업이 대강당 특강으로 변경되어, 원래 나리 수업 시간에 중앙도서관에서 만남. 책 읽은 내용, 느낀 점, 새롭게 알게 된 점에 대해서 각자 발표하는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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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16일에 있을 캠페인에 대해서 구체적인 시간과 포스터 디자인에 대해서 토의함.

10) 11월 16일(토): 1차 캠페인

11) 11월 23일(토): 2차 캠페인

12) 11월 27일(수): 나리 supervision 시간, 발표자, PPT 등 마무리 과정, 역할 분담을 함.

13) 11월 29일(금): 아침 2교시, ECC 테이블에서 결론, 대안, 마무리, 실천 활동 종료 후 느낀 점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나눔리더십 10조 활동을 마무리함.

활동 기간

9월 23일부터 11월 29일

서          론 (목적, 필요성)

글로벌 시민의식을 주제로 저희가 할 수 있는 실천 활동 주제에 대해서 고민해보았습니다. 제일 처음, 관관명소에서 안내표지판, 팜플렛, 근처 역의 표시판 등을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표기하는 등 우리나라에 오는 관광객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하지만, ‘글로벌’이 과연 우리나라를 외국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글로벌 시민이란 결국 대한민국 시민으로서의 성찰을 바탕으로 형성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바람직한 대한민국 시민으로서의 역할들 중 하나를 우선적으로 국사에 대해서, 특히 잘못 알려진 역사에 대해서 올바르게 인식을 바로잡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필수 과목인 국사가 고등학교 과정에서 선택과목으로 자리 잡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독도는 우리 땅, 울릉분지가 맞는 표기이다, 동해의 표기가 국제적으로 잘못 되었다, 위안부 문제, 일제 군국주의의 잔재’ 등 단편적인 주장을 할 수 있지만, 그것에 대해서 근거를 논리정연하게 제시할 수 없는 것이 저희 현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희부터가 역사인식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도록 ‘지식 나눔’을 실천하기로 마음먹고 다음과 같이 역사 공부, 캠페인, 동영상 제작 등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배경/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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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리더십 팀이 확정이 된 후, 글로벌 시민의식에 관한 주제를 찾기 위해서 조원들 모두 오랫동안 고민을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왔었지만, 가장 마지막에 나온 ‘울릉 분지가 다케시마야 분지라고 영어로 표기되어 있는 사실’을 페이스북에서 본 것을 조원 한 명이 목소리를 내었고, 모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울릉 분지’가 잘못 번역, 표기되어지고 있는 사실과 관련하여 실천 활동 주제를 잡기로 모두 뜻을 모았고, 그것을 시작으로 더욱 구체적인 계획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우선, ‘울릉 분지’만 갖고 한 학기동안 실천 활동을 하기에는 규모가 작은 것 같아, ‘울릉 분지’의 사례와 같이 우리 주변에서 잘못되었지만 사용되고 있거나 표기되어 지는 것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렇게 기본적인 자료 조사를 하면서, 흔히들 알고 있는 동해, 독도,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욱일승천기로 더 많이 알려진 욱일기에 대해서도 주요 주제로 삼고 자료 조사와 인식 개선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욱일기 디자인은 일본 국가 대표 선수들의 유니폼부터 심지어 우리나라 연예인, 가수의 무대 의상, 모 출판사의 광고 디자인 배경 문양으로 활용되어 논란이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의식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무관심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 욱일기에 대해서 인식을 바로잡고자 저희만의 캠페인을 진행하고자 계획하였습니다.

활동방법/절차

◈ 전문가들의 강연을 듣거나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총 3곳의 역사관련 시민단체와 기구에 연락을 취했지만, 모두 거절을 당하였습니다. 계속된 기다림과 거절로 인해 저희의 실천 활동 시작을 늦출 수 없었기에 저희들 스스로 공부를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 지식채널 e의 독도와 위안부 관련 동영상 4편을 함께 시청하고, 욱일기 관련 도서 5권, 독도 관련 도서 3권, 위안부 관련 도서 3권, 이렇게 총 11권의 책을 참고자료로 활용하여, 서로 느낀 점을 발표하고 요약하면서,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나’ 스스로의 변화를 마친 후, ‘더불어 사는 사회의 우리 시민들’의 인식 변화를 위해서 2차례의 걸친 캠페인을 경복궁에서 진행하였습니다.

◈ 저희들의 가장 큰 이슈였던 욱일기 관련 동영상을 직접 제작하여 페이스북 등과 같은 SNS을 통한 홍보를 지인들에게 하였습니다.

활동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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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활동내용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했듯이, 9월에는 주제를 선정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작성한 후, 중간고사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 10월 28일 (월)한국사 관련 단체 2곳에 연락을 시도하였지만, 거절하셨습니다. 처음으로는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 연대’에 연락을 하였지만, 거절하셨습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역사 바로알기 시민연대’에 연락을 하였지만, 역시 거절하셨습니다.

◈ 10월 31일 (목)목요일 7교시 모두 만나서, 세 번째로 동북아재단에 연락하였고, 초반에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습니다. 조원들 모두 가능한 요일, 시간 등 메일로 적어서 보냈으나, 결국에는 교육진행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고 거절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차선책으로 생각해두었던, 각자 책을 선정하여 읽고, 동영상을 같이 시청하는 것으로 자체적으로 교육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 11월 1일~11월 9일구체적인 기한을 정해두고, 각자 책을 선정하여 조원들간에 읽는 책이 겹치지 않도록 하기위해서, 카카오톡 10조 단톡방에 자신이 읽을 책 제목과 저자명을 올리고 9일까지 독서를 마치도록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후에 각자 읽은 책을 바탕으로 자신이 알게 된 내용, 다른 조원들과 공유하고 싶은 내용, 그리고 각자 느낀 점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기로 계획하였습니다.

◈ 11월 8일(금) 모두가 공강인 아침 2교시에 ECC 테이블에서 ECC에서 빌린 노트북으로 EBS 지식 채널 영상 4개를 같이 시청하고, 서로 느낀 점을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11월 13일(수) 원래 나리 수업이 대강당 특강으로 변경되어, 원래 나리 수업 시간에 중앙도서관에서 만났습니다. 9일까지 독서 완료하기로 하였던 책 읽은 내용, 느낀 점, 새롭게 알게 된 점에 대해서 각자 발표하는 시간을 갖고, 16일에 있을 캠페인에 대해서 구체적인 시간과 포스터 디자인에 대해서 토의하였습니다.

◈ 11월 16일(토): 1차 캠페인조원들 각자 한복과 포스터를 큰 쇼핑백에 넣어 힘겹게 경복궁역까지 이동하였습니다. 경복궁역 화장실에서 한복으로 갈아입고, 경복궁까지 이동하는 동안, 그리고 경복궁에 입장하면서도 다소 쑥스럽고, 행인들의 이목을 끄는 것 같아 창피하기도 하였지만, 캠페인 초반에만 그랬고, 시간이 지날수록 당당하게 오히려 여유롭게 외국인 관광객들과 기념사진도 찍으면서, 캠페인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포스터에 사용한 하드보드 4절지는 각각 빨강색, 주황색, 노랑색, 초록색, 파랑색 이렇게 무지개 색으로 맞추어 시각미를 추구하였고, 내용은 욱일기, 동해, 독도 위안부 주제로 게시하였습니다. 주말이라 많은 관광객들이 계셨고, 한복을 입은 덕분인지 많은 분들이 다가오셔서 관심을 가져주셔서 뜻 깊은 캠페인을 진행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중국, 싱가폴, 필리핀, 인도, 인도네시아, 모로코, 체코, 이탈리아 등의 다양한 국적을 지닌 관광객을 만났고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갖고 소감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또한 한복을 입고 같이 기념사진도 찍어, 한국의 이미지도 좋게 심어준 것 같아 보람찬 시간이었습니다. (일본인 관광객들도 많았고, 같이 사진도 찍었지만, 저희의 주요 내용이 일본 국민에게도 다소 불쾌감을 유발할 소지가 있어, 욱일기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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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3일(토): 2차 캠페인 1차 캠페인으로 끝내기에는 저희가 그동안 공부한 지식, 제작한 포스터,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빌린 한복이 아쉽기도 하여서, 2차 캠페인을 진행하였습니다. 방법과 요일은 동일하게 진행하였고, 이번에는 정말 감사하게도, 저희 조원들이 1차 캠페인 당시 같이 찍은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지정하자, 지인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저희 2차 경북궁행에 동참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한분은 한복을 입고 같이 홍보에 힘써주셨고, 한분은 자처하셔서 카메라맨을 하셔서 본 캠페인 진행을 원활하게 하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와 관련된 지인의 소감은 보고서 하단의 참여자 소감에서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 Youtube 동영상 제작: The truth about 욱일기약 1분 30초의 욱일기에 관한 동영상을 직접 제작하였고, 길지 않은 분량으로 SNS 지인들이 부담 없이 시청하실 수 있도록 많은 노력 끝에 동영상을 완성하고 시청하도록 홍보하였습니다. 조원들 모두 페이스북에 동영상을 게시하였고, 많은 지인들께서 시청해주셔서 상당한 숫자의 조회수를 기록하였고, 그 중 몇몇 분들은 페이스북 댓글에 길게 후기를 남겨주시기도 하여 정말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와 관련된 소감은 보고서 하단의 참여자 소감에서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 11월 27일(수): 나리 supervision 시간에 모여, 4일에 있을 저희 조 발표에 대해서 역할 분담을 하였습니다. 발표자, PPT 제작, 활동보고서 등 일을 분배하였습니다.

◈ 11월 29일(금)모두가 공강인 아침 2교시, ECC 테이블에서 결론, 대안, 마무리, 실천 활동 종료 후 느낀 점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나눔 리더십 10조 활동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다음은 저희가 각자 책을 읽고, 토의하기에 앞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과 느낀 점을 정리하여 제출한 것입니다.

◈ 안수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묻는다.>풀빛출판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지음

이 책은 일본 '위안부'문제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상세하게 저술해 놓은 책이다. 다들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조금씩은 알고 있겠지만, 이 책은 평소에는 알지 못했음직한 위안부 관련 사실에 대하여서도 보다 상세하게 다루어 놓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군위안소의 설립은 1932년경부터 시작되었으며, 1937년부터 본격화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피해자들의 가정배경은 예외 없이 빈곤한 농가였으며, 연령대는 대부분 18세 이상이었지만 어린 경우는 11살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까지 위안부로 연행되어 갔다는 사실이 정말 화가 났다. 이들을 데려간 연행방식 또한 취업사기, 협박 및 폭력, 인신매매 및 유괴 등으로 다양했다.그들이 우리를 얼마나 약소한 민족으로 인식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그들은 이렇게 데려간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영문도 모르는 상태에서 강제로 성병검사를 받게 했다. 그 이후에는 그들은 평균 하루 20명 이상을 상대해야 했으며, 심한 경우에는 40~50명을 겪어내야 했다. 이러한 경우에 군인들은 서로 먼저 들어오려고 싸우거나, 앞사람이 위안소 안에 오래 있으면 줄 서 있는 뒤 군인들이 문을 두드리며 심하게 재촉하기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생리 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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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를 세척하며 또는 질 속에 솜을 집어넣은 채로 군인을 받아냈다고 한다. 한 피해자는 생리용품이 끊기자 군인이 버린 각반을 빨아 쓰기도 했다고 한다. 같은 여자로써 생각만 해도 수치심이 느껴지고 분노가 느껴졌다. 그들은 피해자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처참하게 짓밟았다. 또 이들 군부는 콘돔 사용을 필수적으로 요구했는데 이것이 부족하면 피해자들은 이것을 세탁하여 다시 사용해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가끔은 콘돔 없이도 관계를 요구하면 따라야 했는데 이럴 경우 피해자들은 이미 성병에 걸린 군인들에 의해 감염되기도 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들 여성들은 출산 및 양육은 할 수 없었다. 정말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당한 것이다. 그들은 단지 일본군의 성욕처리 도구로써 활용되었다. 이러한 위안부는 피해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실제로, 자살이 공공연하게 시도되었으며 향수병에 걸리거나 정신병에 걸린 피해자들도 있었다. 살아남은 여성들은 그 곳에서 잔류하거나 귀국을 하게 되었는데, 대부분 그들은 낮은 자존감과 우울증을 앓고 있다. 그 곳에 잔류하게 된 여성들은 일본군에게 지속적인 강제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의식보다는 일본 군인에게 몸을 판 더러운 여자이고 수치스러운 존재라고 자신을 인식했다. 또한 대부분 후유증으로 인해 임신과 출산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했으며 가정의 불화도 잦은 편이었다. 이는 사회에의 부적응을 불러일으켰다.하지만 일본은 지금 이러한 위안부의 문제를 피해자들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일축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들에게 책임을 져야 하며 죄 값을 치러야 한다. 또한 우리는 위안부와 관련한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다른 민족 또한 위안부에 관련한 역사에 대해 왜곡된 역사가 아닌 올바른 역사를 인식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할 것이다.

◈ 이호정

<우리가 독도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 독도, 130문 130답>(월간조선 2011. 06. 특별부록)

'신라시대에 우산국이 신라에 편입된 이래 울릉도 및 독도는 한국 영토에 귀속되어 있는 상태이다.''우리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고문서들이 증거로 많이 있는 반면에 일본은 그러한 증거가 되는 자료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즉, 일본이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이거 말고도 독도에 관한 많은 사실들이 이 책에 실려 있기는 한데, 우리가 필요한 자료는 독도의 환경이나 그런 자료가 아니니까 되풀이되는 말 위주로 간략하게 썼습니다.

◈ 윤지나

<한일 안본동맹: 새로운 한일 관계를 향하여> 저자: 신우용<정글만리 3권> 저자: 조정래

다시 휘날리는 일장기와 욱일승천기

패권주의는 군국주의의 현대판 버전으로서 군국주의가 군사적 침략을 통한 영토확장이 목표라면 패권주의는 군사력과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시장의 확충을 통해 달성된다. 따라서 패권주의를 세계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는 미국의 성장엔진은 바로 전쟁과 시장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의 아류인 일본이 미, 일 동맹을 통한 찰떡 공조를 기반으로 군사대국화를 노리는 것은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대변되는 두 개의 패권요소 중 부족한 한 부분을 보완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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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패권체제를 이룩하고자하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도 “경제대국은 반드시 군사대국화하기 마련이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라고 말했다. 경제대국 일본의 자위대가 과연 언제까지 자국 내에 갇혀 있으려 할까? 일본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음은 결코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일본사회에서 소름끼치는 가공할 군국망령의 부활을 1970년 일본의 유명한 우익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도쿄 육상자위대 청수 발코니에서 “전쟁과 재무장을 금지하는 일본헌법을 뒤엎어야한다. 자위대는 궐기하라.”고 외치며 할복 자결한 것을 보면서, 1980년 ‘이에나가 사부로’ 전 동경도립대학교수의 고등학교교과서 검정소송패소사건과 계속되는 역사교과서 왜곡을 보면서, 국수주의적 좌파논객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와 모리아 SONY명예회장이 함께 썼다는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보면서, 과거사에 대한 청산과 반성은커녕 오히려 일본지도층을 대변한다는 자들의 끝없는 망언행렬을 보면서, “주한미군이 일방적인 공격을 받는다면,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해 자위대를 한반도에 파견해야한다.”는 가메이 정조회장의 발언에서, 2번에 걸친 북한의 괴선박사건과 미사일발사를 군사대국화의 빌미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일본인들이 전후 일시적 평화주의자에서 그들의 본성인 세계최고의 골수 전쟁광들로 되돌아가고 있음을 본다. 다시 휘날리는 일장기와 욱일승천기를 우리는 경계의 눈으로 주시하고 있음을 일본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정글만리 3권 (조정래 저) 욱일승천기의 잔류, 일본 정치인들의 신사 참배 등 저는 일본 정치인들이 독일과 다르게 사죄하지 않는 이유를 중점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일왕이 1945년 8월 15일에 발표한 항복문에 크게 3가지 문제점을 찾아 볼 수 있다.

1) 항복문에 ‘항복’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2) “실로 짐은 일본의 자존과 동아시아의 안정을 확보하려는 진심 어린 바람에서 미국과 영국에 전쟁을 선포했을 뿐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거나 영토를 확장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3) “짐은 제국과 합심하여 시종 동아시아의 해방에 힘써온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에 심심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항복하는 자로서 피해를 입힌 나라들을 향해 사죄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발언을 하고 있다.

일왕의 이러한 소위 “항복문”은 일본 정치인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준 것과 같다. 앞으로도 절대로 사죄를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 이지현

불량 국민들    (부제: 여순사건 왜곡된 19가지 시선) / 주철희 지음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해군에서 사용했던 욱일승천기는 '떠오르는 태양의 기운'을 뜻하는 욱일기 또는 태평양전쟁 때에는    대동아기로도 불렸다. 이 국기는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욱일승천기는 태양 주위에 16줄기 햇살이 도안되어 일본 해군의 군함기로 사용했다. 일본이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사용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일본 해상자위대가 1952년부터 16줄기 햇살의 욱일기를 군기로 제정하면서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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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자위대도 8줄기 햇살의 욱일승천기를 군기로 사용하고 있다.

참고자료에 의하면, 대한민국 여수 주둔 국군 제 14연대의 군기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해군에서 사용했던    욱일승천기를 연상하게 한다. 제 14연대 군기는 태양을 상징하는 부분에 무궁화 문양을 바탕으로    별모양을 그려 넣었고, 제 14연대를 상징하기 위해 14줄기 햇살이 퍼져나가는 모양이 그려있다. 이 군기는 욱일승천기를 본떠서 만든 것임이 분명하다.    일제 군국주의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제 14연대 깃발은 대한민국 국군의 현실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글쓴이에 의하면, 제 14연대 군기는 연대장으로 부임한 이영순이 만든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이영순은 일본 해군 중위로 해방을 맞이했다. 욱일승천기가 일본 해군의 상징이었던 것과 이영순이 일본 해군 출신이며 제 14연대 초대 연대장으로 부임했던 것에 비추어 보아 이런 짐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군의 창설에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이 주도, 핵심이었다는 것이다. 해방된 조국에 일제로부터 호의호식했던 또는 권력을 누렸던 이들이 다시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일제 군국주의 문화가 혼란의 시대를 악용하여 재등장한 것이다. 이들의 등장은 1945년 해방을 맞이한 혼란기라는 시대적 상황에 잠시 국한된 것이 아니라, 21세기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국군으로부터, 보수우익으로부터 추앙 받고 있다.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위안부와 독도 문제 등이 터질 때 마다 우리 국민들은 분노한다. 태평양 전쟁 장시의 일본군 제복에 욱일승천기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일본 보수우익들의 행동을 보면서, 우리는 일본인들의 올바른 역사 인식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역사에 대해서는 아직도 냉전체제 사고에 꽉 막혀 있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요구하는 주장에는 '빨갱이'로 단죄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거나 단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잘못된 역사에 대한 진실규명이나 평가조차도 가로막혀있다. 욱일승천기를 휘날리며 거리를 활보하는 일본 보수우익의 낡은 사고에 대한민국도 여전히 갇혀 있다. 제 14연대의 군기는 1948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군군의 현주소이다.

◈ 한선우

1.일본 근현대사 (W.G.비즐리 지음, 장인성 옮김, 을유문화사)2.한국에서 쓴 일본 역사 이야기 (박찬수 지음, 솔)

욱일기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을 때 해군에서 사용 되었던 깃발이다. 1939년 9월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대독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는데, 이듬해 6월 프랑스가 어이없이 항복하여 전황이 독일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자 일본은 재빠르게 2년 전에 독일, 이탈리아 와 맺은 반공협정을 3국 동맹으로 발전시켰다. 이것은 즉 미국에 대한 정면도전을 의미한다. 당시 일본은 폐 금속과 석유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미국은 즉시 일본 제철업에 필수 불가결한 고철(폐 금속)과 석유의 대일 수출을 금지하는 듯 강경한 태도로 맞섰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됨에 따라 일본은 미국과 협상을 하던지 개전을 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여기서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에 대해 미국 책임론이 주장되기도 하는 부분이다. 초반에는 일본과 미국 간의 협상이 잘 되는가 싶더니 일본의 중국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반발하여 개전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결국 1941년 12월 8일 일본은 선전포고를 하기 전에 하와이의 진주만의 미 해군 기지를 기습공격을 한다. 사실 전에도 일본의 이러한 ‘기습’ 공격을 한 전례가 있다. 그러나 이 전쟁은 무력으로나 경제적으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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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게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무모한 전쟁이었다. 미국이 본격 전쟁을 준비할 6개월 동안만 일본이 절대적으로 우세를 보였다. 일본은 우선 자원 확보를 위해 “동아시아 본토와 그 남방 지역을 우리 경제권 속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토대로 전쟁을 선전포고한 1941년 12월부터 6개월 동안 홍콩, 인도차이나, 필리핀, 말레이반도, 자바, 수마트라(서구 열강의 동남아 식민지)를 점령하여 서전을 장식했다. 이때 사용되었던 것이 욱일기이다.

일장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모양을 형상화한 욱일기는 이렇듯 수많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욱일기는 즉 일본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안다면 욱일기는 나치문양과 마찬가지로 사용이 엄격히 금지되어야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너무나도 빈번하게 그 뜻을 모르고 사용되거나 심지어 그 뜻을 알아도 문제를 너무 가볍게 다뤄서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 몇 달 전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이 일본식 경례를 한 모습을 욱일기에 합성하여 인터넷에서 큰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 장난은 분명 도를 넘어선 것이다. 일본 학생들도 아니고 한국 학생들이었다는 사실에 너무나 실망스럽고 수치스러웠다. 올바른 역사인식을 형성하기 위한 다재간의 노력이 시급하다. ‘역사를 잊으면 오늘의 나를 모르고, 역사에 묶이면 내일을 잃는다.’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가지고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하는데 현명한 대한민국의 시민이 양성되어야한다.

◈ 최남연

<독도 올바로 알기: Dokdo, a beautiful island of Korea>/ 경상북도 출판자료

*행정구역: 경북 울릉군 독도리 1~96번지. *독도 연혁-512 신라 지증왕 13년 이사부 우산국 정복, 신라영토 귀속(삼국사기)-1693 안용복은 일본 에도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라는 서계를 받음(숙종실록)-1900 광무 4년 고종은 칙령 제 41호 제정, 반포해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 도감을 군수로 하며 독도를 울도군 관할로 편입-1914 독도를 경북으로 편제-1946 연합국 총사령부에서 연합국 최고사령부지령 제 677호에 의거해 독도를 일본통치권에서 제외-1953 독도의용수비대 조직- 독도경비(대장 홍순칠 외 대원 33인)-1956 국립경찰 독도경비 인수-1981 독도에 주민등록 최초 전입(최종덕, 울릉읍 도동리 산 67)-1982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천연기념물 제 336호, 독도해조류번식지)-1999 국가지정문화재관리단체 지정 및 독도관리지침에 의해 독도 천연 보호구역으로 변경-2000 행정구역 명칭 및 지번 변경-2003 정보통신부 독도에 우편번호 부여-2005 탐방로 등 11필지 공개제한지역 지정해제/ 입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

*독도 표기를 확인할 수 있는 고지도-팔도총도(1530), 신증동국여지승람 수록된 지도-동국대전도(175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조선전도(1800년대), 김대건이 근대적 작도법에 의해 만든 지도 우리 발음으로 서양 세계에 소개된 최초의 지도로 6개 국어로 번역되어 우리 영토 독도를 서양에 널리 알리게 된다. (독도 Ousan으로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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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영유권의 역사적 사실과 근거

(1)독도는 서기 512년 신라가 우산국을 복속한 이래 한국의 영토(삼국사기)-세종실록 지리지, 만기요람(1808) 군정편(2)안용복이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영토임을 확인, 에도막부로부터 서계 받음.(숙종실록),1696년(3)1900년 칙령 제 41호로 독도는 울도군 소속이 됨.대한제국은 울릉도와 독도를 지방 행정구역상 독립된 군으로 승격시켜 도감 대신 군수를 둠.(4)1946년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 지령으로 독도는 한국 영토로 확정:1943년의 카이로선언은 일본이 강압과 폭력으로 탈취한 새 영토를 반환할 것을 정하고 있다. 1946년 1월 29일자로 최고사령부지령 제 677호를 발효하여 일본의 영토를 한정짓게 되는데, 여기서 울릉도, 독도, 제주도를 일본이 한국에 반환해야 할 대표적인 섬으로 명기하고 있다.

독도는 우리나라 동해에 울릉도와 함께 있는 섬입니다.우리나라는 오랜 역사 동안 동해 바다에 울릉도와 함께 있는 독도를 우산도라 부르며 우리의 영토로 인식했습니다. 일본의 옛 문헌에도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에 속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7세기 말 안용복 사건을 게기로 조선과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외교적으로 확인했습니다.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에 속한다는 인식은 근대로 접어든 19세기 말까지도 지속되었습니다.1900년 대한제국은 칙령 제 41호를 공표하여 독도가 울릉도에 속한 대한제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널리 알렸습니다. 그러나 한국을 침략한 일본이 1905년 독도를 주인 없는 땅이라고 주장하며 일본 영토로 편입해버림으로써, 독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희생된 첫 번째 땅이 되었습니다.일제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영 치열한 독립운동을 전개한 결과, 우리나라는 1945년 광복을 맞았습니다. 일본은 '침략으로 빼앗은 모든 영토로부터 축출되어야 한다'는 연합국의 전후 처리 방침에 다라, 독도는 한반도와 함께 우리의 영토로 돌아왔습니다. 1948년 독립국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우리나라는 독도에 대한 확고한 영토주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우리나라가 독도를 되찾은 후, 일본은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하며 영유권을 주장합니다. 독도는 한국과 일본의 오랜 역사 속에서 울릉도에 속한 한국의 영토라고 인식되어왔으며, 한국이 40여년간 독도에 대한 지배권을 잃었던 것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이 독도에 대해 아직도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를 반성하고 평화공존을 지향하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결과 및 분석

Ⅰ조원들 내에서(내부적으로)

예전에는 단순히 “욱일기는 부정적이다,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정도의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저희가 참고자료를 통하여 (책, E 지식채널 동영상 등의 경로를 통하여) 지식을 습득한 후에는 구체적으로 왜 부정적인지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선우 언니의 경우, 조원들끼리 토의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기존의 자주 사용되는 용어인 “욱일승천기”라고 실수를 하면, 곧바로 “욱일기야!”라면서 고쳐주는 습관이 생기기까지 하였습니다.21세기, 글로버 시대라고 불리는 오늘 날, 세계 속의 한국을 알기위해서는 한국의 역사부터, 한국인으로서 알아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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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외부적으로 

두 번에 걸친 캠페인을 통하여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그리고 동영상 제작으로 SNS을 통하여 지인들에게 욱일기가 왜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지, 그리고 욱일기가 무의식적으로 여러 방면에서 디자인으로 활용되고 있는 현황에 대해서 널리 알렸습니다.

비록 저희가 전 세계적으로, 절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 것은 아니지만, 한 명, 두 명 이렇게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간다면, 나비효과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결          론 (대안제시)

1) 글로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흔히들 영어를 생각하게 되고, 저희도 포스터 제작을 하면서, 영문 버전과 한글 버전 이렇게 2개를 준비하였는데, 경복궁 관광객 중 상당수가 중국인 관광객이라는 점을 간과하였습니다. 다행히 조원들 중 2명이 중국어 회화는 어느 정도 구사 가능하여, 완벽한 문장이 아닌 단어를 끊어 말하는 식으로, 설명이 가능하였습니다. 그리고 더욱 다행히도, 중국인 관광객 분들께서 어느 정도 영문 포스터를 이해하실 수 있으셨고, 저희의 간단한 중국어도 양해하여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신 결과, 의사소통이 가능하였습니다. 하지만, 영문 포스터와 더불어 중국어 포스터까지 준비하였더라면 더욱 빠르고 의사소통이 원활한, 성공적인 캠페인이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2) 겨울에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던 캠페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캠페인 활동을 9월초 쯤 날씨가 아직은 따뜻할 때 하였더라면 더 오랜 시간동안,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쳐 캠페인 활동을 진행할 수 있었을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실천활동 포인트 ※ 무엇이 가장 중요한 활동이었나?, 나눔리더십과 어떤 연관성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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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실천 활동의 두 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첫째,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 그리하여 둘째,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첫째는 원래는 역사관련 단체, 비영리 기구에 의뢰하여, 전문가들로부터 강연 듣거나, 조언을 여쭙고자 계획을 세웠었으나, 저희가 연락을 취한 여러 곳에서 기존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프로그램이 없을 뿐더러, 다른 업무들도 있는 관료제의 체계적인 회사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어, 유동성 있게 저희들을 위한 시간을 따로 내주기 힘들 것 같다고 거절을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저희 조원들은 지식채널 e의 동영상 4편과 도서 총 11권을 참고자료로 활용하여 스스로 공부를 하였고, 함께 시청한 동영상에 대해서 느낀 점을 발표하고, 각자 읽은 책에 대해서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둘째, 조원들 스스로 변화한 인식을 바탕으로 저희들이 알게 된 지식을 지인들과 더 나아가 저희들이 알지 못하는 타인, 특히 한국을 잘 모르시는 외국인 관광객 분들을 대상으로 인식 변화를 주도하였습니다. 저희가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을 간략하게 그리고 짧은 시간에 영향력 있게 알릴 수 있도록, 포스터를 구상하였고, 시각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영문 버전, 한글 버전으로 제작하였고, 무지개 색으로 맞추는 등 캠페인 시행에 앞서 세심한 준비 과정을 거쳤습니다. 장소는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있는 경복궁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주말, 토요일 시간을 이용하여 총 2번의 캠페인을 실시하였습니다. 또한, 많은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조원들은 각자 지인들에게 한복을 빌려 캠페인 당일 한복을 입었습니다.

저희의 “지식 나눔”은 나눔 리더십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더불어, 잘사는, 삶의 기반을 창조하는, 성찰적, 시민공동체”를 지향하였습니다. 저희만 지식을 터득하고 끝나는 활동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고 더불어 잘살기 위한 한국시민의식을 고양시키고, 기존 저희의 무지를 성찰하며 인식을 개선하려는 나비효과를 창조하며, 성숙한 시민 의식을 함양하기위해서 또한 함양시키기 위해서,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이지만, 중요한 우리 역사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한 학기동안 하였습니다.

참여자 소감

중국, 싱가폴, 필리핀, 인도, 인도네시아, 모로코, 체코, 이탈리아 등의 다양한 국적을 지닌 관광객을 만났습니다. 많은 분들의 한 줄 소감 중, 발표의 시간 제약상 몇 개만 소개하고자 합니다. (일본인 관광객들도 많았고, 같이 사진도 찍었지만, 저희의 주요 내용이 일본 국민에게도 다소 불쾌감을 유발할 소지가 있어, 욱일기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였습니다.)

① 1차(2013년 10월 16일) 캠페인    -싱가폴: "I didn't know this design's symbol of Japanese militarism!"                        "이 디자인이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것을 몰랐었어요!    -중국: "现在我能看到为什么日本政客不道歉。"                     "이제야 일본 정부 인사들이 왜 용서를 빌지 않는지 알겠네요.

② 2차(2013년 10월 23일) 캠페인    -이탈리아: “I'm surprised there's still Japanese militarism remain!"                            “군국주의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에 대해서 놀랍군요!”

2차 캠페인은 저희 조원들 이외에도 지인들도 저희의 1차 캠페인 활동사진을 본 후에, 흥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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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셔서 2분이 같이 해주셨습니다.

    - 이송 (이대 조예대, 13): 10조가 하는 실천활동 사진을 보고 흥미를 느껴, 저도 한복을 입고 참여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처음에는 한복만 입는 것 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역사 인식을 바로잡는 뜻 깊은 일을 하고 있어서, 저도 관심 있게 자료들을 읽어보았습니다. 한국인으로서 몰랐던 것에 대해서 반성하고, 앞으로도 세계 속에 한국을 알기 위해서, 한국의 역사부터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 류혜진 (시립대, 13): 친구의 카카오톡 프사를 보고, 어떤 활동을 하냐고 물어보았고, 역사 인식 바로잡기를 하고 있는 친구의 활동을 가치 있게 판단하였고, 저도 비록 다른 대학교이긴 하지만, 2차 캠페인에는 참여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캠페인 후, 매우 보람을 느꼈고, 앞으로도 한국인으로서 우리의 역사부터 바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③ 동영상을 보고나서    -김미진 (국제학부, 13): 유용한 영상이네요! 욱일기를 비판하면서도 욱일기에 대해서 정확하고 명확하게 몰랐었거든요. 반성합니다. 이제 외국인 친구들에게도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참 고 자 료

<지식채널 e 영상자료>① ‘청산되지 않은 과거’ (독도 관련)② ‘현실, 비현실, 바른 길, 어긋난 길’ (독도 관련)③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위안부 관련)④ ‘꽃을 사랑하는 심달연’ (위안부 관련)

<도서>① 일본 근현대사 (W.G.비즐리 지음, 장인성 옮김, 을유문화사)② 한국에서 쓴 일본 역사 이야기 (박찬수 지음, 솔)③ 불량 국민들[부제: 여순사건 왜곡된 19가지 시선] (주철희 지음, 북랩)④ 한일 안보동맹 (신우용 지음, 양서각)⑤ 정글만리 3권 (조정래 지음, 해냄)⑥ 우리가 독도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 독도, 130문 130답       (월간조선 2011. 06. 특별부록)⑦ 독도 올바로 알기: Dokdo, a beautiful island of Korea (경상북도 출판자료)⑧ 독도의 역사이야기 (독립기념관 저)⑨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묻는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지음, 풀빛출판사)⑩ 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 (이규희 지음, 네버엔딩스토리)

⑪ 소녀이야기[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준기 지음, 리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