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민포럼 1회 - 노예인가, 시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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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종덕] 실천을 위한 앎을 이야기하는 자리여야 앞으로 우리가 6회에 걸쳐서 이야기를 하는 데, 지식을 공유하는 학술대회가 아닙니다. 그 래서 단순한 지식의 측면에서 시민을 접근하 는 게 아니라 살아나가는데 진정한 삶의 가치 뭘까, 가치가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낫게 할 수 있는 게 무얼까 하는 실천적인 자 리가 되어야 합니다. 번째 자리로 박영신 이사장님을 모셨습니다. 박영신 선생님은 사회학계의 큰 스승이시고 개인적으로 제 대학시절부터 현상과 인식이라는 잡지를 봐 왔기 때문에, 현상과 인식으로 기억합니다. 대학에도 계셨지만 제도권 교육이 아닌 ‘작은 대학’ 운동을 하셨고 녹색연합 상임대표도 맡 으시고 지금은 교육센터 이사장으로 계십니 다. 같이 토론을 하시는 박영선 선생은 경희 대 후마니타스칼라지에서 강의하고 사회학 전 공, 시민교육 전공으로 하시고 양흥모 선생은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습니다. 시민 개념은 학술적으로는 굉장히 다양합니 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이야기 할 것은 개념 적인 접근보다는 우리의 마음, 생각, 삶의 활 동을 진짜로 부추겨서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앎’을 위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목에서도 보듯이 시민으로 사는 것은 노예 처럼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순간순간 노예로 살면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생각하 됩니다. 나 자신부터 시민의 상을 찾아야 겠다 생각합니다. [박영신] 노예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노예 이 글은 탐욕으로 시작합니다. 여러분도 인간 관이 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생각 하는 인간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탐욕스럽게 움직이는 인간입니다. 이 탐욕을 어떻게 해야 것인가, 어떻게 제재해야 할까요. 그런데 인간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모든 것 맡겨두면 알아서 잘한다는 생각을 지지하 지 않습니다. 인간은 더럽기 이를데 없는, 문 제를 많이 안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 방식으 로든 제재해야 하는데 총칼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절제를 하고 다스려야 는데 그걸 규범이라 할 수 있고 가치라 할 수 있고, 개개인의 사사로운 세계를 넘어서는 공 공의 가치라고도 이야기 할 있습니다. 렇게 시작하려 합니다. 그런 다음에 탐욕을 통해 시민을 알아보고 싶은데 시민에 앞서서, 시민과 대비될 있는 삶의 형태가 무엇이 있을까, 인류역사에. 그래서 노예를 들여다보 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거대한 문명 뒤에는 항상 노 예가 있었습니다. 노예가 짐을 날라줬다, 벽돌 『녹색시민포럼 - 녹색시민의 시민됨을 위하여』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 일시 : 2015년 6월 23일 5시 ○ 사회 : 최종덕 (녹색사회연구소 소장, 상지대 교수) ○ 발제 : 박영신(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녹색교육센터 이사장) ○ 토론 : 박영선(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 토론 : 양흥모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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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3일 오후 5시 녹색교육센터 발제 : 박영신(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토론 : 박영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양흥모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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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종덕]�

실천을�위한� 앎을�이야기하는�자리여야

앞으로� 우리가� 6회에� 걸쳐서� 이야기를� 하는

데,� 지식을� 공유하는� 학술대회가� 아닙니다.� 그

래서� 단순한� 지식의� 측면에서� 시민을� 접근하

는� 게� 아니라� 살아나가는데� 진정한� 삶의� 가치

가� 뭘까,� 그� 가치가�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낫게� 할� 수� 있는� 게� 무얼까� 하는� 실천적인� 자

리가� 되어야� 합니다.� 첫� 번째� 자리로� 박영신�

이사장님을� 모셨습니다.� 박영신� 선생님은� 한

국� 사회학계의� 큰� 스승이시고� 개인적으로� 제

가� 대학시절부터� 현상과� 인식이라는� 잡지를�

봐� 왔기� 때문에,� 현상과� 인식으로� 기억합니다.�

대학에도� 계셨지만� 제도권� 교육이� 아닌� ‘작은�

대학’� 운동을� 하셨고� 녹색연합� 상임대표도� 맡

으시고� 지금은� 교육센터� 이사장으로� 계십니

다.� 같이� 토론을� 하시는� 박영선� 선생은� 경희

대� 후마니타스칼라지에서� 강의하고� 사회학� 전

공,� 시민교육� 전공으로� 하시고� 양흥모� 선생은�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

습니다.�

시민� 개념은� 학술적으로는� 굉장히� 다양합니

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이야기� 할� 것은� 개념

적인� 접근보다는� 우리의� 마음,� 생각,� 삶의� 활

동을� 진짜로� 부추겨서�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앎’을� 위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목에서도� 보듯이� 시민으로� 사는� 것은� 노예

처럼�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순간순간�

노예로� 살면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생각하

게� 됩니다.� 나� 자신부터� 시민의� 상을� 찾아야

겠다�생각합니다.�

[박영신]�

노예임을�자각하지�못하는�노예�

이� 글은� 탐욕으로� 시작합니다.� 여러분도� 인간

관이� 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생각

하는� 인간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탐욕스럽게�

움직이는� 인간입니다.� 이� 탐욕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제재해야� 할까요.� 그런데�

인간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모든� 것

을� 맡겨두면� 알아서� 잘한다는� 생각을� 지지하

지� 않습니다.� 인간은� 더럽기� 이를데� 없는,� 문

제를� 많이� 안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 방식으

로든� 제재해야� 하는데� 총칼은� 부적절하다고�

다� 생각할� 겁니다.� 절제를� 하고� 다스려야� 하

는데� 그걸� 규범이라� 할� 수� 있고� 가치라� 할� 수�

있고,� 개개인의� 사사로운� 세계를� 넘어서는� 공

공의� 가치라고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

렇게� 시작하려� 합니다.� 그런� 다음에� 탐욕을�

통해� 시민을� 알아보고� 싶은데� 시민에� 앞서서,�

시민과� 대비될� 수� 있는� 삶의� 형태가� 무엇이�

있을까,� 인류역사에.� 그래서� 노예를� 들여다보

게�되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거대한� 문명� 뒤에는� 항상� 노

예가� 있었습니다.� 노예가� 짐을� 날라줬다,� 벽돌

� 『녹색시민포럼� -� 녹색시민의�시민됨을�위하여』

제1회�노예의�삶,� 시민의�삶

� ○� 일시� :� 2015년� 6월� 23일� 5시�

� ○� 사회� :� 최종덕� (녹색사회연구소�소장,� 상지대�교수)

� ○� 발제� :� 박영신(연세대�사회학과�명예교수,� 녹색교육센터�이사장)

� ○�토론� :� 박영선(경희대�후마니타스칼리지�객원교수)

� ○�토론� :� 양흥모� (녹색연합�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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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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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날라줬다� 같은.� 고대� 이집트의� 대단한� 문

화유산을�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노예의� 힘을�

빌어서� 이룰� 수� 있었습니다.� 홍수가� 많이� 졌

다는데� 어떻게� 처리했겠습니까?� 노예의� 힘을�

빌었습니다.� 위대한� 문명� 뒤에� 있는� 놓치기�

쉬운� 노예가� 있는데,� 이� 노예를� 고대� 시대� 노

예로만� 한정하면� 더� 이상� 그� 말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과연� 그렇게� 노예를� 이해해야� 될까.�

노예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인데� 마

지못해� 일하는� 사람인데� 과연� 몇� 천� 년� 전에

만� 있었는가,� 지금은� 없는�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먹고사는� 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것� 이상� 무엇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런� 식으로� 생각한

다면� 지금� 우리가�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 것

이� 아닌지� 성찰하게� 되죠.� 여러분� 흔히� 친구

를� 만났을� 때� 돈이� 있으면� 자유롭고� 돈이� 없

으면� 노예같이� 산다,� 이런�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위대한� 사상가도,� 철학자,�

사회과학자도�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면� 한편의� 사람에겐� 좀� 가혹하

게� 들리지� 모르겠지만� 자본가는� 자유롭고� 노

동계급은� 노예처럼� 사는가� 질문해� 보면� 두� 쪽�

다� 먹고사는데� 급급해서� 살고� 있지� 않은가.�

재산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수입이�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지� 않은가.� 그것� 때문에� 이웃하고도� 자기�

자식과도� 대화� 못하고�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하고.� 대화를� 한다고� 해도� 무슨� 대화겠습니

까?�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인가,� 어떻

게� 하면� 월급을� 많이� 받을� 것인가� 그런� 이야

기만� 하면서,� 그렇게� 경제논리를� 강조하면서,�

말하자면� 경제주의로� 이� 세상을� 보려고� 하는�

이� 자체를�저는� 좀� 받아들이기�어렵습니다.�

이렇게� 보면� 모두가� 노예인데,� 똑같이� 돈� 생

각하며� 하루,� 일주일,� 365일,� 평생을� 그렇게�

사는데� 큰� 차이가� 있는가?� 똑같이� 이런� 상황�

속에서� 산다면� � 모두가� 노예� 아닌가,� 체제� 안

에서� 자유스럽지� 않게� 모두가� 노예가� 아닌가�

생각하며� 이�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 속

에서� 모두가� 인간다움을� 잃고� 살게� 되는� 것�

아닌가.�

제도,� 가치,� 그리고�행위자

옛날� 희랍시대에� 노예라는� 것은� 공공에� 관심

이�없는� 사람들.� 하라는�대로� 일만� 하고,�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에서� 사사롭게� 자기� 것만� 챙

기려는� 사람은� 공공에� 대한� 관심이� 없고� 비좁

게� 사는� 사람들.� 그들을� 바보� 같고� 천치� 같은�

인생이라� 했습니다.� 공공의� 삶을� 의미있게� 생

각했죠.� 영국� 계몽주의� 철학자� 존로크의� 노예

선에� 대한� 비유가� 있습니다.� 노예선에� 타고�

있는� 노예들이�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비좁

은가.� 보이는�것은� 바다의�한� 부분,� 들리는�소

리는� 채찍질만� 있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르는,� 그� 시대엔� 노예선이� 그랬지만,� 오

늘날� 이�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바로� 그

런� 것과� 다르지� 않은� 것� 아닌가.�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이� 체제� 속에서� 먹

고� 살기� 위해� �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것,� 세상

을� 그렇게� 사는� 것이� 올바르다고� 우리에게� 강

제도� 가하고� 설득도� 하고� 아름다운� 말로� 착실

하다고� 이야기해주고� 그렇지만� 공공의� 문제를�

외면하고� 자신의� 문제만� 사는� 게� 비좁은� 인생

을� 살아가는� 노예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여기에서� 시민에� 대한� 생각으

로� 옮겨갔습니다.� 길거리에� 나가� 데모도� 많이�

하고� 시청� 앞에도� 가기도� 하지만� 우리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녹연합의�

운동하는� 활동가들이라면,� 운동가라면� 정말�

자기대로� 가치와� 철학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늘� 생각했습니다.� 제� 이야기가� 늘� 옳은� 건� 아

니니까� 설득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현수막만� 들고� 가면� 다� 되는� 것인가,� 활동가

들이� 제대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우리�

나름� 사상가고� 우리� 나름� 녹색� 철학자가� 되어

야�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과� 이어집니다.� 세

상이� 이런� 생각� 하나로� 바뀌진� 않을� 것입니

다.� 그래서� 제가� 사회운동을� 바라보면서,� 사회

운동은�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데� 사회운

동의� 방향,� 상징,�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녹색

의� 가치가� 있어야겠지요.� 그러나� 녹색� 가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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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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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세상이� 바뀌겠습니까,� 운동이� 되겠습

니까.� 이� 가치를� 이� 세상에� 어떻게� 적용할� 것

인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한데� 그것을� 저는� 지

식이라� 말하겠습니다.� 전문지식.� 지식이� 있어

야겠지요.� 그걸� 운동가가� 다�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간디가� 되고� 함석헌이� 되고� 환경사회학

자,� 환경경제학자가�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

람들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계속�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전문가들과� 끊임없이� 대화할�

수� 있어야� 하지요.� 행위자에� 운동가의� 특징이�

있습니다.� 행위자가�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지요.� 이� 세� 가지� 요인들이� 합쳐져� 사회를� 변

화시킬� 수� 있다.� 우리가� 바꾸려고� 하는� 체제

도� 마찬가지입니다.� 체제의� 가치가� 있고� 체제

를� 위해� 일하는� 전문가,� 유지하기� 위해� 이랗

는� 공무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운동을� 하

는� 사람도� 이런� 가치와� 상징,� 지식과� 연결지

어�생각해야�합니다.�

파국을�이야기하는�카산드라가�되어야�

운동가는� 체제의� 눈으로� 보면� 맘에� 들지� 않는�

말썽꾸러기죠.� 그러나�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

은� 체제에� 질문을� 던지지� 않고,� 체제� 속에서�

조용하게� 묵묵히� 따라가는� 것은� 노예라고� 생

각하기� 때문에,� 체제가� 자기에� 대해� 너는� 마

음에� 안� 든다,� 너는� 왜�

괴상하냐,� 너는� 왜� 별

나냐� 하는� 말에� 주눅�

들지� 않습니다.� 당당한�

것이지요.� 소수지만요.�

여러� 보기도� 들었는데�

희랍신화에� 익숙한� 사

람들은� 카산드라를� 들

어봤을� 텐데� 파국을�

알려주는� 자가� 카산드

라입니다.� 저는� 이� 시

민을� 이야기하면서,� 시

민의� 개념을� 격상시키

고� 싶습니다.� 카산드라

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시민이라고� 생

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식의� 역할이라� 할�

텐데,� � 사회에�파국이�온다,� 후쿠시마�저리�가

는� 파국을� �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시민이라

고� 생각합니다.� 파국을� 예기하는� 게� 쉽지� 않

습니다.�

나치� 정권에서� 8년� 동안� 수용소에� 갇혀� 있던�

마르틴� 뉘믈러가� 남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

기� 이웃이� 공산당이라고� 잡혀갈� 때� 자기는� 공

산당이� 아니니� 침묵하고� 있었고� 노조원이라고�

잡아갔을� 때도� 자기는� 노조원이� 아니니까,� 유

대인이� 잡혀갈� 때도� 유대인이� 아니니까� 침묵

했습니다.� 마침내� 자신을� 잡으러� 왔을� 때� 자

신을�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는� 이야기� 모두� 알� 겁니다.� 노예가� 이런� 것이�

아닌가.�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좁

은� 공간� 속에서� 사는� 것처럼.� 조그만� 창밖으

로� 보는� 비좁은� 바다,� 전망이� 없는� 바다만을�

보고�사는� 것.� 먹고� 사는데�바쁘기�때문에,� 연

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 내가� 바쁘기� 때문

에� 자신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다른� 일들

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카산드라의� 말

이� 들리지� 않죠.� 사사로운� 공간에� 갇혀� 사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했습니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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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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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 들고� 싶은� 사람은� 외솔� 최현배입니다.�

우리가� 지금� 한글을� 쓰는데,� 우리가� 어떻게�

한글을� 이렇게� 자유롭게� 쓰게� 되었는지� 잘� 질

문하지� 않지요.� 한글을� 위해서� 죽은� 사람들도�

있고,� 한글� 때문에� 감옥에서� 해방을� 맞은� 사

람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최현배

입니다.� 최현배는� 한글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

라�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지금�

말로� 하면� 시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자기� 일신,� 자기� 일가만� 사는� 사람이� 수두룩

하다.� 그런� 것을� 허물고� 굶주린� 동포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라고� 외솔�

최현배가� 말했습니다.� 그런� 물음을� 던지지� 않

고�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노예입니다.� 노예가�

누구에게� 질문합니까?� 상전에게,� 노예� 우두머

리이게?� 하라는�대로� 하는�것입니다.�

시민엔겐�저항의�의무가�있다

시민은� 노예의� 삶과� 다릅니다.� 체제에� 빌붙어�

살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리석다� 하더라도� 시

민은� 목숨을� 걸고� 체제에� 질문을� 던집니다.�

어렵지요.� 시민은� 너무� 어렵습니다.� 어려운� 일

이지요.� 강제수용소에� 끌려가는� 것을� 생각하

지� 않고� 나는� 시민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

건방진� 시민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반정부,�

이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데� 쉽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쉬워서� 가만히� 있어도� 시민으로�

굴러가게� 되는� 것은� 없다.� 우리나라도� 그렇지

만� 서양에서� 시민사회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숱한� 어려움과� 고비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이

기고� 시민사회를� 만든� 것입니다.� 그걸� 이기고�

모든� 사람이� 병원을� 가는� 사회복지가� 이뤄진�

것입니다.� 어진� 대통령이� 있어서� 우리를� 보살

펴� 준� 것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입니다.� 노예

의� 삶은� 투쟁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체제에� 빌붙어� 살면서도� 자기가� 노예라고� 생

각하지� 않죠.� 그래서� 노예� 해방은� 아무도� 생

각하지� 않습니다.� 노예라는� 신분이� 예전과는�

달리� 불분명해졌기� 때문에� 노예해방을� 위해�

일하는� 선구자도� 없고,� 노예반란도� 없습니다.�

자기는� 노예가� 아닌�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니

까.� 조금만� 노력하면� 상류층으로� 간다,� 조그만�

노력하면� 강북에� 사는데� 강남으로� 간다� 기대

하면서� 삽니다.� 강북은� 노예고� 강남은� 자유인

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똑같은,� 아니면� 더� 심

한� 노예일� 수� 있습니다.� 저는� 핵없는� 세상� 등

에� 관여하면서� 우리나라� 헌법에는� 4대� 의무,�

권리를� 이야기하는데� 헌법� 만드는� 사람이� 저

항의� 의무를� 넣지� 않을� 걸� 말하고� 싶습니다

다.� 노예� 반란이�싫기� 때문에,� 시민의�저항� 의

무를� 넣지� 않습니다.� 시민� 저항의무� 이것이�

필요하지�않을까�생각해봅니다.�

이� 시대의� 슬픔,� 후쿠시마나� 세월호가� 있습니

다.� 세월호� 때문에� 이룩한� 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외국에서� 청문회를� 본� 적이� 있는데,� 여

든� 야든� 진실이� 무엇인가를� 위해서�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진실이� 무엇인가가� 여야와� 관계

없이� 핵심입니다.� 시민교육의� 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특검이든� 특별조사위든여

야가� 갈라져� 정치화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자

기들은� 관계없는데� 마치� 언론이나� 국민이� 정

치화하는� 것처럼� 호도합니다만� 패를� 만들어�

하나는� 변호하고� 하나는� 공격하며� 정치화하는�

것은� 그들입니다.�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얼마

나� 슬픈� 시대에� 사는� 것입니까,� 또�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려� 있는데� 이것은� 여야가� 따로�

없습니다.� 예전에는� 박정희� 정권에� 대해� 군사

독재라� 했는데,� 이제는� 그런� 이야기가� 사라졌

습니다.� 여야가� 모두� 먹고� 사는� 데에� 파묻혀�

박정희는� 우리를� 먹여� 살려준� 이라고� 칭송하

는데� 의견일치를� 보고� 있습니다.� 놀랄� 일이�

아닙니다.� 지난� 50년� 가까이� 먹고� 사는� 것� 이

상의� 중요한� 문제는� 없다고� 교과서를� 통해,�

부모를� 통해,� 새마을운동을� 통해,� 친구를� 통해�

직장에서�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 논리로� 세상

을� 바라보게� 됩니다.� 다른� 논리가� 없습니다.�

경제� 이외� 더� 넓은,� 깊은,� 더� 높은� 문제가� 있

을텐데� 그런� 것들을� 보지� 못하게� 우리를� 짓눌

러� 놨습니다.� 노예의� 함� 속에� 우리를� 들어가�

살게� 만들었습니다.� 먹고� 사는� 것� 문제� 이외

에� 잣대가� 없습니다.� � 자유,� 인권� 모두�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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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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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 이후의� 문제로�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로�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운� 문제입

니다.�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쉬우면� 오천만� 동포가� 모두� 시민이� 되었습니

다.� 어려운� 일이지요.� 경제논리의� 낱말로� 한다

면� 공짜가� 없습니다.�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굉장한� 생각과� 굉장한� 대화,� 굉장한�

협력이� 필요합니다.� 혼자� 할� 수� 없죠.� 그래서�

녹색연합,� 이런� 포럼� 등이�있는� 것입니다.�

[최종덕]�

시민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혼자되는� 것도�

아니다.� 시민은� 그냥� 시민이� 아니라� 오히려�

저항� 의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

니다.� 그래서� 저게� 맞을까� 하는� 질문과� 의심

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의미인� 것� 같습니다.� 우

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영신� 선생님의� 말씀

을� 질문� 없이� 받아들이면� 노예입니다.� 질문이�

중요합니다.� 질문했다가� 전체� 흐름과� 맞지� 않

으면� 어쩔까� 라는� 자신에� 대한� 의심은� 필요�

없습니다.� �

[박영선]

자발적인�노예가�있을까

녹색연합의� 이런� 자리에� 오게� 되면� 텀블러만�

봐도� 난� 텀블러� 안� 갖고� 왔는데� 하며� 이질감

을� 느낍니다.� 평소에� 낯선� 곳에서� 많이� 배우

고� 그게� 자극이� 되고� 실천의� 계기를� 주기� 때

문에� 많은� 것을� 얻겠지� 하는� 바람으로� 앉아�

있습니다.� 박영신� 선생님께서� 발제문에서� 제

가� 의문을� 갖고� 있는� 것� 위주로� 발표해� 주셨

습니다.� 시민의� 내용을� 격상시키고� 싶다에� 당

연히� 동의하지만,� 목숨까지� 걸어야한다는� 것

에� 부담을� 갖습니다.� 대학� 졸업할� 때� 이제� 고

문당하지� 않겠구나� 특히� 여성으로서� 성고문을�

당하지� 않겠구나� 생각하며� 안도감을� 느꼈습니

다.� 저는� 학생� 운동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3

학년� 때� 또� 다른� 운동들을� 하는� 선배들을� 보

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4년이면� 할� 수� 있

었는데� 이걸� 더� 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고민

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실존적� 경험

을� 갖고� 있다� 보니,� 선생님의� 발표문이� 막� 야

단을� 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선생님� 발표

문에� 대한� 제� 객관적인� 견해라기보다는� 노예�

삶을� 자발적으로는� 아니지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변명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

다.�

저는� 삶에서� 경제부분만� 중요하다는� 것에� 동

의하지� 않고� 먹고� 사는� 문제만� 힘쓴다면� 인간

다움이� 줄어든다는� 것,� 인간답게� 살지� 못한다

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시민적� 덕성,� 시민적�

실천� 등을� 지금� 행하는� 데� 있어서� 사회경제적�

조건을� 헤아리지� 못한� 채� 시민적� 가치,� 시민

의� 삶을�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 고결한� 것,�

저항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한편

에서�우려가�됩니다.�

예전에�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나오고� 했을�

때� 제가� 만났던� 학생들은� 왜� 우리한테� 짱돌을�

들라고� 하는� 거지라고� 불평하는� 걸� 많이� 봤습

니다.� 저는� 짱돌을� 들라는� 메시지에� 충분히�

동감하면서도� 짱돌을� 들어야한다는� 것과� 더불

어� 짱돌을� 들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주도

면밀하게� 조사하고� 세심하게� 밝혀주는� 것이�

진짜�시민됨을�위해�활동하는�것이�아닌가.�

선생님의� 발표� 자체가� 먹고사는� 것� 신경� 쓰지�

말고� 시민의� 삶을� 살라는� 건� 아니지만� 현실�

안에서� 노예의� 삶조차도� 감당하지� 못하는� 환

경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아는� 지인은�

8천원짜리� 치킨을� 파는데,� 그� 8천원짜리� 닭을�

못� 팔까봐� 선거날� 문을� 못� 닫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왜� 먹고� 사는데� 연연하냐고�

비난할� 수만은� 없습니다.� 이번� 메르스� 문제에�

있어서도� 병원의� 비정규직� 외주� 노동자의� 고

통이� 눈에� 들어� 오더라구요.� 그들에게� 아무리�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더라도� 시민적� 윤리

를� 모른� 척하면� 되겠어� 라고만� 말할� 수� 없습

니다.� 한편에선� 시민적� 가치,� 시민적� 삶이라는�

지향에� 대해선� 강조되어야� 하지만� 또� 다른�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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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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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에선� 그런�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이� 놓치는�

상황,� 현실에� 대해서도� 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강조하셨던�

시민됨의� 가치,� 실천,� 행위자로서의� 역할을� 좀�

하려면� 사회경제적� 조건이나� 정치적�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은� 시민이라는� 개념이� � 태동했을� 때

부터�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태어난� 신분이�

노예여서,� 태어난� 신분이� 시민이었던� 것이지

요.�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가� 유죄가� 있다고�

입증하기� 위해� 모였던� 시민계급들은� 노동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자기가� 결단한� 거,� 공적시민

으로서� 자기가� 형성한� 게� 아니라� � 태동한� 것

이지요.� 근대� 이후에� 있어� 투표권이� 제한되고�

개방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단순히� 현대에�

시민됨을� 알지� 못한� 채� 노예적� 삶,� 혹은� 선생

님께서� 말하는� 노예됨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자발적인� 것이냐,� 그렇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녹색시민교육,� 또하나의� 분절적,� 분화된� 형태

라면�우려

녹색시민이라는� 이야길� 들었는데� 저는� 시민교

육� 강의� 전담� 교수라서� 시민교육의� 여러� 현안

이나� 강의� 등을� 보는데� 이미� 생태적� 감수성이

라고� 하는� 중요한� 내용들은� 상징적� 표현을� 하

자면� 시민권을� 얻은� 개념입니다.� 시민� 앞에�

붙은� 레떼르,� 녹색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

는가.� 제가� 활동했던� 사회운동� 공간에선� 민주

시민이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민주시민은� 무

엇인가.� 학생들과� 또� 사회에서� 교육할� 때� 여

기� 언급되었던� 가치들� 공감,� 연대,� 비판적� 사

고력,� 등� 무수한� 덕목과� 가치들과� 함께� 생태

적인� 부분,� 환경� 부분이� 이미� 굉장히� 중요한�

덕목과� 실천적� 영역으로� 들어와� 있는데� 이것

을� 따로� 강조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이� 들구요.� 이는� 제도화와� 연관이� 있는데

요.� 환경교육� 뿐만� 아니라� 법,� 경제,� 생활� 소

비자� 등� 자기� 영역을� 강조하는� 시민교육들이�

많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평생교육에서도� 시

민참여라는� 것이� 있어� 자발적� 영역에� 대한� 교

육이� 확보되어� 있습니다.� 그러데� 녹색시민교

육이라는� 것이� 태동하면� 시민사회는� 하나의�

통합성을� 지닌� 전인적인,� 인간다운� 사람이� 되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분적인� 시민으로� 양

성되지� 않을까라는� 고민도� 들기도� 합니다.� 특

히� 민주화� 이후에� 제도적� 환경이� 바뀌어서� 그

렇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시민들과� 숲해설�

교육� 만들었더니� 숲해설가� 교육이� 산림청� 인

증이� 되면서� 자원활동가들이� 유급� 숲해설사가�

되는� 걸� 봤습니다.� 또� 하나의� 녹색교육이라는�

것이� 분절적이고� 분화된,� 시민사회가� 봉착하

는� 문제와� 맞닿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많이� 인용되는�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의�

내용을� 보면� 융합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또한� 참여적이며,� 쌍방향적이고,� 생활과�

관계되고,�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실행되어야� 한다� 등을� 담고� 있습니다.� 이

렇게� 시민교육의� 내용은� 점차� 확장되고� 있는

데� 이를� 전달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협소해지

고� 있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 환경그룹

이� 진행하는� 교육들이,� 업그레이드되면서� 포

용적인� 부분으로� 확장된다면� 지지하는데,� � 또�

하나의� 영역을� 만드는� 것으로� 국한된다면� 신

중했으면�좋겠습니다.�

저에� 대한� 성찰을� 주는� 발제문을� 읽으며� 곰곰

이� 생각했을� 때� 무엇이� 강조되어야� 할까� 생각

했을� 때� 일상과� 관계입니다.� 작은� 것이� 아름

다울�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포괄하기도� 하다

고� 생각합니다.� 기후협약� 하나에� 정치권력� 전

체가� 어떻게� 움직이는� 지� 알� 수� 있다는� 점에

서,� 일상이라는� 것이� 권력� 자체이기� 때문에�

시민교육의� 중요한� 소재와� 재료가� 될� 것이라

고�확신합니다.� �

두� 번째는� 관계입니다.� 인간은� 버텨내기� 힘듭

니다.� 지적인� 정보들을� 획득하는� 것,� 실천의�

근거들을� 찾아내는� 것,� 행위자가� 담보해야� 하

는� 것� 세�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이런�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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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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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서� 충만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배

우고� 실천하는� 것들� 모두가� 관계에서� 충만해

지고� 넓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또� 녹색,� 환경이

라고� 하는� 가치가� 공교육이나� 제도에서� 실현

될� 때� 조금� 더� 부드럽게� 접근되는� 이점을� 활

용해� 많이� 확산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

려면� 초중등학교에� 도입되는� 자유학기제나� 인

성교육� 시스템,� 혁신� 학교� 등을� 멀리� 있다� 생

각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겠습니

다.� 오는� 시민만을� 받을� 것이� 아니라,� 확산성

을� 가지려면� 제도� 속으로� 들어가� 모델을� 만들

고,� 시민에� 의해� 점점� 퍼져� 녹색시민이,� 노예

의� 삶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사는� 이들이� 늘

어났으면�좋겠습니다.�

[최종덕]

사회경제적� 조건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하셨

습니다.� 저항� 주체로서� 시민과� 사회경제적� 조

건을� 고려하는� 시민� 두� 가지가� 상충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박영신� 선생님이� 말씀� 안하

셨지만� 원고에는� 공동체� 개념이� 많이� 나옵니

다.� 이� 개념이� 사회경제적� 조건을� 같이� 개선

해보자라,� 왜냐하면� 혼자� 안� 되거든요.� 8천원�

치킨집� 사장도� 왜� 가게를� 못� 비우나,� 이런� 상

황을� 한편으론�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수용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다른� 치킨집도� 다� 문닫

고� 같이� 투표하러� 가는� 환경도� 만들� 수� 있다

는�것이지요.

[양흥모]

가치의�문제가�아닌� 구체적인�실행의�문제

발제문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생각할� 시간� 없

이� 수없이� 써왔던� ‘시민’이라는� 말에� 대해� 다

시�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탐욕에�

대한� 본질적인� 얘기들을� 해주셨는데요.� 예전

에� 노예� 기반으로� 했던� 시민의� 탐욕을� 지금은�

노예� 대신� 에너지가� 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유지를� 위해� 노예가� 하던� 일을,� 에너지가� 하

고� 있습니다.� 에너지�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 새로운� 변화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얼마나�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을� 하

는� 것이� 녹색운동에서,� 시민을� 이야기할� 때도�

필요하다�생각합니다.�

지난� 주에� 유럽에� 트램� 관련� 연수를� 다녀왔습

니다.� 지역에서� 교통� 관련� 운동을� 하고� 있는

데� 아직까지� 한국에서� 교통수단으로� 트랩을�

도입한� 적이� 없습니다.� 유럽에선� 대중적인� 교

통수단인데,� 한국은� 대부분� 자가용,� 지하철� 같

은� 것이� 주� 교통수단입니다.� 대전에서는� 지하

철이� 공공교통수으로� 건설� 운영이나� 대전시�

재정이나� 규모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전

에� 적합한� 것이� 따로� 필요하다� 판단했고� 그게�

트랩(노면� 전차)입니다.� 80년대� 학번� 선배들

이� 학습을� 할� 때,� 앞으로� 노동자들이� 모두� 벤

츠를� 타는� 것이� 꿈이라고� 농담처럼� 했는데� 대

전� 시민� 전체가� 벤츠를� 탈� 수� 있ㅅ브니다.� 벤

츠� 굴절버스를� 대중교통수단으로� 도입해서� 운

행하면� 자가용을� 억제하고� 대전� 시민이� 벤츠

를� 타는� 것이� 됩니다.� 대전� 시민� 60%가� 자

가용을� 사용하는데� 2~30%로� 낮추고� 기존의�

만원� 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대전

의� 도시환경,� 기후변화,� 에너지� 문제에� 중요합

니다.�

진보,� 특히� 환경운동� 진영은� 세련되지� 못한,�

가치중심을� 원칙적으로� 많이� 이야기� 합니다.�

일반� 시민이� 솔깃할� 수� 있는� 손에� 잡힐� 수� 있

는� 것� 바로� 저것이다,� 라고� 할� 정책들을� 잘�

만들어내고� 있는지,� 저는� 녹색시민이라면� 가

치는� 당연히� 옳고,� 나아가� 실행� 가능한� 능력

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깍합니다.� 능력있는� 녹

색시민으로서� 이런� 숙제들을� 어떻게� 풀� 것인

지�고민을�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6월� 항쟁� 28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저

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도� 갠지스강�

하구� 보라마라� 섬� 이야기를� 했는데� 이� 섬은�

방글라데시와� 인도가� 독도처럼� 영유권� 싸움을�

하고� 있는� 섬입니다.� 수십년� 동안� 영토분쟁을�

했던� 섬인데� 기후변화로� 해수면� 상승으로� 인

해� 이� 섬이� 가라앉을� 위기가� 닥치자� 섬� 주민

이� 인도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정치적,�

현실적인� 과제들이� � 기후변화� 문제� 앞에서�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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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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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해지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노동이

나� 남북관계� 등의� 문제가� 있지만� 전지구적인�

환경문제도� 우리� 생존이나� 적응,� 대안을� 위해

서� 시급하게� 검토해야� 할� 문제입니다.� 6월� 항

쟁의� 현대의� 중요한� 과제들을,� 환경문제도� 추

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

라� 지금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 했

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문제에� 대해� 공

감하지� 않는� 분위기� 더라구요.� 여전히� 남북관

계와� 노동에서� 이야기하는� 시급� 만원� 등에� 대

해서만� 중요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직�

소통과�연대가�필요하다고�새삼�느낍니다.

녹색시민은�어떻게�다른가

저는� 녹색연합의� 강령과� 가치� 때문에� 녹색연

합에� 들어왔습니다.� 저를� 꽂히게� 한� 것은� 녹

색대동세상이라는� 개념이었는데,� 당시� 대학가

에서� 축제가� 대동제였고,� 대동세상이� 어찌보

면� 한국식�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말이었다� 생

각합니다.� 저희는� 그� 앞에� 녹색을� 붙여� 녹색

대동세상이라고� 창립때부터� 사용한� 것이지요.�

그� 당시� 지역의� 선생님들� 통해서� 묵자사상도�

공부했는데,� 공자와� 묵가가� 세상을� 양분하던�

중국고대사회에서� 묵가가� 지향하는� 이상사회

가� 안생생인데� 이를� 한국식으로� 하면� 녹색대

동세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역사에선�

정여립이� 처음으로� 대동세상이라고� 말했는데�

대동세상은� 평등평화세상인데,� 나아가� 녹색대

동세상은� 모든� 뭇생명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

루는� 것이라고� 배우고� 고민해� 왔습니다.� 그런�

고민들을� 하면서� 지구적� 관점에� 더해� 주민운

동이� 녹색시민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땅,� 그리고� 정주의식에� 기반한� 운동이�

되지� 않으면� 뿌리� 없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

다.� 최근� 지역에서� 에너지자립운동,� 로컬푸드

운동이나� 지역의� 교통� 운동을� 하면서� 지역의�

정주의식,�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마을� 운동,�

이런� 것에� 기반한� 환경운동,� 녹색운동의� 새로

운� 방법들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래서� 저희는� 지역� 풀뿌리� 단체들과� 연대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같이� 운동�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마을� 도서관이나� 로컬푸드� 생산자� 조직

이나� 소비자들과� 하고�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운동이� 생활,� 지역� 이런� 것들에� 기반하지� 않

고서는� 실제� 지역� 주민들에게� 공감� 받을� 수�

있는� 운동,� 정책들을� 개발하기가� 어렵다는� 것

을� 더�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금�

과제들이� 구체적으로� 생기고� 있는데,� 우리� 녹

색연합이� 지역에� 녹색시민을� 위한� 어떤� 장소

가� 되어야� 할� 것인가.� 전업활동가가� 일하는�

사무실이� 아니라� 고민을� 시민들과� 소통하고�

시민들이� 녹색연합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어떤�

기회와�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것을� 어떻게� 만

들� 것인가.� 저희가� 우스개� 소리로� 시민은� 녹

색연합� 회원인� 시민과� 아닌� 시민� 둘로� 나뉜다

고� 말하는데,� 사실�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 활

동가로서� 중요한� 게� 녹색연합� 회원이� 일반� 시

민과는� 어떠한� 차별성이� 있고,� 녹색회원은� 어

떻게� 거듭나야� 하는지,� 우리는� 그들과� 무엇을�

할� 것인지.� 녹색연합이라는� 조직이� 녹색시민

을� 위해� 어떤� 역할�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

을�계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종덕]�

시민이라는� 개념을� 조금� 좁혀� 주민운동,� 실질

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구현하는� 운동들이� 중

요하다.� 에너지자립운동,� 마을운동� 등.� 우리�

녹색연합과� 같은� 시민단체가� 일반� 시민이나�

주민에게� 줄� 수� 있는� 소통과� 연대의� 의미가�

무엇인지가를� 이야기했습니다.� 형식에� 얽매이

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

할�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인간의� 본질,� 감정

적인� 본성,� 탐욕부터� 시작했는데� 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질적인� 문제지요.� 본질적인�

문제부터� 실천의� 문제까지� 관련된� 모든� 이야

기를�자유롭게�나눴으면�좋겠습니다.

[윤기돈]�

(녹색연합�에너지기후팀)

몇� 가지� 걸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오

늘날�어떤� 것이� 선,� 악이다,� 어느� 것이� 욕망이

고� 어느� 것이� 탐욕이라고� 규정짓는� 것이�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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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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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가능할까?� 탐욕의� 선은� 어디까지인가.�

예를� 들면� 저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공장

식� 축산을� 바라보면� 그럼� 채식이� 선이� 되는가�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채식이� 옳다가� 아니라�

어디까지,� 탐욕이란� 어디까지,� 적정한� 선은� 어

디까지인가.� 또� 하나는� 개인의� 권리가� 확장되

고�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더� 이상� 용

납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그렇다면� 공공성을�

확대하고� 증진하기� 위해서� 개인의� 수용은� 어

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가.� 개인의� 권리가�

확장되면� 공공성은� 저절로� 확장되는� 건가.� 그

건� 마치� 시장이� 모든� 역할을� 할� 테니� 시장에�

맡기자는� 것에� 다름� 아니어서� 개인의� 권리와�

공공성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을� 때� 이� 지점을�

시민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이야기할� 것인가�

이야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영선� 선생

님께서� 녹색시민이� 분절적이지� 않나� 했는데�

녹색시민은� 협소한� 것이� 아니라� 확장성,� 포용

성의� 녹색� 시민입니다.� 자연을� 대상이� 아닌�

존재로� 바라보는� 녹색가치� 속에서� 지금� 사실�

시민을� 소득과� 지위에� 따라� 차별을� 둔다면� 자

연을�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면� 이런� 가치가� 시

민들에게� 어떻게� 안착되어� 오히려� 사람들� 사

이의� 차별을� 어떻게� 감소시킬� 것인가까지� 확

대하면서� 이�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양흥

모� 선생은� 능력을� 이야기� 했는데,� 우리는� 시

민이라는� 가치� 속에서� 능력,� 효율� 보다는� 서

로의� 빈틈을� 어떻게� 메꿀� 것인가를� 더� 이야기

되어야�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시민교육,�

시민운동에서� 어떻게� 이야기해야� 되나� 고민하

고�있습니다.� �

[박영선]

녹색시민이라는� 개념이� 포용성을� 갖고� 지향한

다는� 것에�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현실에서� 이

미� 지구� 전체를� 대상화하지� 않고� 본질적인� 시

민의� 실현으로� 보는� 것은� 생소하지� 않습니다.�

제가� 책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 책에선�

정체성� 같은� 걸로� 인간을� 넘어� 시민을� 1.0버

전부터� 6.0버전� 까지� 말하는데� 마지막� 그림이�

초록별,� 지구입니다.� 공공을� 무시한� 채� 사익을�

추구하는� 태어난� 사람� 정도가� 아주� 낮은� 수준

의� 단계라면� 그� 다음� 네이션,� 글로벌� 마지막

이� 지구입니다.� 이런� 것은� 너무나� 익숙하고�

시민의� 학술적� 개념이� 아니라� 많은� 실천적� 영

역에서� 생태적� 감수성,� 녹색,� 지구,� 동물� 다�

생각하는� 부분들이,� 포용적� 내용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양흥모]

자가용� 중심� 교통� 정책에서� 대도시� 같은� 경우�

자전거만으로는� 대안이� 될� 수� 없어� 트램이나�

버스� 같은� 공공� 교통의� 획기전인� 시스템이� 필

요합니다.� 채식도� 모든� 시민들에게� 채식을� 이

야기하기� 어려운데� 로컬푸드나� 제철음식� 같은�

걸로� 많은� 과제와� 의미를� 풍부하게� 할� 수� 있

습니다.� 탐욕� 문제에� 대해� 다양한� 시민들의�

욕구를� 이해하고� 이런� 것을� 녹색연합답게� 어

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과제화할� 것인가가� 중

요하다,� 인간의� 탐욕이라고� 하면� 그렇지만� 욕

심과� 욕구는�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는� 현실� 운동을� 하는� 운동�

단체이기기� 때문에� 시민의� 여러� 가지� 욕구와�

조건,� 환경� 들을� 보고� 녹색연합다운� 방법� 모

색이�필요하다�생각합니다.�

[배보람]

(녹색연합�정책팀)

발표를� 보면서� 시민은� 멘탈이� 굉장히� 강한� 존

재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연극� 배

우가�죽은� 지� 5일� 만에� 발견되는�기사가�나왔

고� 작년� 봄에는� 30대� 젊은� 여성활동가가� 자

살을� 했습니다.� 진보정당운동을� 하던� 활동가

인데.� 저는� 그런� 부분에서� 박영선� 선생님이�

말씀하신� 시민의� 가치와� 정치경제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되야� 한다는� 부분에� 설득이� 되면

서� 또� 한편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이�

설명한� 시민은� 멘탈이� 강한� 존재라는� 겁니다.�

저는� 오히려� 멘탈이� 불안해서� 그� 여성� 활동가

가� 죽은� 날� 제가� 취했던� 태도는� 저처럼� 활동

하는� 다른�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내� 친구가� 자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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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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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불안감이� 저에겐� 늘� 존

재했습니다.� 그� 여성은� 여기서� 말하는� 시민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물질적으로� 어려웠지

만� 태도와� 방향은� 시민의� 삶이었습니다.� 저는�

시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런� 부분들이� 빠

져있다고� 생각합니다.� 계급적인� 부분일� 수도�

있고� 사회� 경제� 체제� 문제일수도� 있는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어떤� 불안감,� 존재� 자체에� 대한,�

시민이고� 노예고� 상관없이� 삶� 자체가� 끝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다들� 안고� 사는데� 거기에� 대

한� 설명� 없이,� 거기에� 대한� 이야기� 없이� 이렇

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지금� 시대에서?� 하는�

고민이� 듭니다.� 저처럼� 멘탈이� 약하면서� 저항

하는� 삶을� 사려는� 사람들,� 좀� 더� 나은� 삶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시민성

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 이런� 부분도� 함께�

이야기해야�하지�않나� 생각합니다.

[박영신]

제가� 다� 대답하긴� 어렵습니다.� 함께� 고민하는�

거죠.� 시민이라� 하면� 이� 세상에서� 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 고분고분하게� 살지� 않는다,� 그�

정도의� 품위가� 있어야�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깃발� 든다고� 다� 시민은� 아닙니다.� 품위� 있게�

사는� 건� 세상� 굴러가는� 방식으로� 세상에� 자기

를� 던져서� 타의에� 의해� 살아가지� 않겠다,� 자

기가� 비록� 약한� 것� 같지만� 싸우다가� 죽는다�

하는� 거죠.� 이렇게� 말하면� 강한� 것처럼� 되는

데� 저항하고� 투쟁하다� 맞서다� 살다� 죽어야지,�

노예처럼� 비굴하게� 살다� 죽는� 것은� 얼마나� 부

끄러운가요.� 맞서서� 살아야� 하는데� 지금� 얘기

가� 나왔듯이� 우리� 삶이� 굉장히� 불안하다.� 거

기에� 대한� 논의를� 하자면� 그렇다면� 왜� 불안한

가.� 왜� 불안하게� 되었나� 여러분도�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고� 사회학에서도� 여러� 가지로� 이

야기하겠지요.� 제� 나름대로� 좀� 더� 말하면� 이�

사회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급변하지� 않으면�

불안감이� 적고� 안정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급

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대학� 다닐�

때와� 지금� 대학생들의� 생각이� 아주� 다를� 겁니

다.� 그만큼� 사회가� 바뀌는� 것입니다.� 사회가�

바뀌기� 때문에� 옛날의� 방식으로� 바뀐� � 세상에

서� 사는� 것은� 어긋장이� 납니다.� 살아갈� 방법

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낯선� 사회가�

돼서.� 탐욕에� 대해� 말한� 뒤르케임은� 변화가�

일어나는� 사회,� 과거의� 것이� 깨지고� 새로운�

것이�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안이� 생긴다�

했습니다.� 이� 사회� 자체가� 불안하고� 나의� 삶

도� 불안합니다.� 불안한� 가운데� 안정을� 가져오

는� 것은,� 안정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보수�

진영의�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정을� 가져

오려면� 우리� 개인이� 이� 사회라는� 결속체� 속에�

잘�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야기했듯

이� 과거의� 것이� 깨지고� 새로운� 것은� 들어오지�

않은� 유동적인� 사회에서� 개인이� 기대고� 싶은�

것이� 있으면� 좋겠는데� 기대고� 싶은� 것도� 잘�

떠오르지도� 않고� 기댈� 곳도� 없어� 굉장히� 불안

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가

능성이� 자기만� 생각해� 하는� 것이죠.� 사회가�

불안하고� 연결될� 때도� 없으니� 나� 혼자� 챙겨야�

겠다는� 것,� 이것을� 이기주의라고� 이야기합니

다.� 전부가� 자기� 것을� 챙긴다고� 했을� 때� 공동

체,� 사회,� 결속력�이런� 것이� 점점� 없어지고�사

회는� 점점� 더� 불안해지게� 됩니다.� 또� 하나� 동

전의� 다른� 면이라� 할� 수� 있는데� 규범이� 없는�

상태,�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당한� 삶이고� 어떻

게� 사는� 것이� 모범적이고� 인정받는� 것인지도�

깨지고� 없습니다.� 무규범상태.� 남녀관계도� 규

범이� 없습니다.� 규범이� 없는� 사회니까� 자기�

마음대로�살고�불안정하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항하며� 산다는� 것,� 질문하며� 산다

는� 것은� 이렇게� 아무렇게나� 자기� 혼자� 사는�

것이� 과연� 옳은� 삶인가� 질문을� 던지는� 사람�

사람끼리� 만나고� 일을� 꾸려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라도� 이렇게� 살자,� 운동을� 하자고.� 그것이�

운동이� 되고� 공동체가� 될� 것이고� 대안운동을�

일구는� 일꾼이� 되고� 할� 것입니다.� 이게� 정답

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19세기� 후반에� 자

살� 연구를� 한� 뒤르케임은,� 그� 당시� 유럽이� 얼

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겠습니까?� 자살도� 많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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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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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 우리� 주변에도� 그렇고� 자살이� 어디� 기

댈� 곳이� 없을� 때� 자기� 엄마와도,� 남자친구와

도,� 아버지와도� 이야기할� 수� 없는� 고립된,� 누

구하고도� 이야기할� 수� 없는� 개인만� 먹고살면�

된다는� 흩어져� 사는.� 인생은� 무엇이다고� 뚜렷

한� 답이� 주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어려

움이� 있을� 때� 이야기할� 곳도� 기댈� 곳도� 없어

서� 자살로� 이어지는� 것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세대는� 인터넷에서� 네트웤이� 잘된다고� 이야기

할지� 모르겠지만� 진정� 깊은� 수준에서� 삶과� 삶

이� 만나는� 연대성,� 결속력,� 솔리데리티,� 이런�

것이� 된다면� 거기에� 규범도� 있고� 삶의� 의미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어려운� 점이� 있

을� 때� 혼자� 목숨을� 끊을� 가능성이� 줄어들� 것

이고� 서로� 기대고� 서로� 도움이� 되고,� 이게� 사

회고�공동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체제,� 복종,�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노예가� 되고� 돈벌이만� 하게� 되고� 그러면�

공동체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 아픔을� 나눌�

수� 없는� 비정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녹색연

합이� 나눔의� 공동체,� 운동을� 하면서도� 운동공

동체를� 만들어,� 어려운� 문제를� 서로� 나누고�

기대고� 도움도� 서로� 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런� 걸� 녹색연합에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녹색연합도� 사회약자에� 대한� 관심,� 생태,� 자원

순환� 이런� 것들을� 강령으로� 삼고� 있는데,� 사

실� 녹색연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능력있는,� 강자

들만� 들어옵니다.� 체력도�

좋아야하고,� 술도� 잘� 마

셔야하고.� 굉장히� 강건해

야� 합니다.� 제가� 녹색연

합� 대표로� 있을� 때� 기여

한� 것이라면� 우리가� 사회�

약자,� 생태,� 순환을� 이야

기하는� 여기에� 능력있고�

강자만� 들어오면� 되는가

라는� 걸� 제기한� 것입니

다.� 녹색연합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는� 사람,� 그것

도� 강령에� 맞는� 게� 아니

라� 바깥� 사회의� 능력과� 비슷한� 기준이지요.�

근육도� 있어야� 하고� 술도� 잘� 마시고� 그렇게�

마시면서� 나자빠지지� 않아야� 하는� 아주� 강건

한� 사람만� 녹색연합에� 들어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저는� 장애인� 등� 사회약자가� 있어야� 한

다고� 말했습니다.� 몇� 이라도� 장애인도� 같이�

일해야� 한다고� 해서� 활동가� 중에� 장애인이� 들

어왔습니다.� 녹색연합이� 밖에서는� 운동조직이

지만� 녹색연합� 자체가� 하나의� 모범된� 공동체

가� 될� 수� 없을까?� 사회� 약자를� 보듬고,� 목숨�

끊고� 싶은� 마지막� 단계에서� 함께� 울� 수� 있고�

기댈�수�있는� 곳이어야�한다고�생각합니다.�

[이승훈]

(숙명여대�교양학부)

자살� 이야기는� 너무� 가슴� 아픈데,� 그만큼� 우

리� 사회가� 한� 사람이� 시민으로서� 살기에� 장애

물이� 거대하고� 강고하다는� 생각을� 역으로� 하

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할� 수� 있을까도� 감히� �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시민으로서� 저항하며�

사는� 삶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게� 하

는� 몰아가는� 체제의� 문제나� 탐욕과� 공공선의�

문제,� 개인의� 권리와� 공공선의� 경계가� 어딘가�

하는� 것도� 모든� 것들이� 다�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시민으로서� 살지� 못하게� 하는� 체제가�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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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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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시민의� 삶과� 동

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라는� 것

입니다.� 공과� 사는� 고정된� 실체가� 있다기보다�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어� 왔거든

요.� 예를� 들면� 벨라가� 책에서� 이런� 결론을� 이

야기하는데� 미국사회를� 분석하면서� 미국에� 수

많은� 자기중심적� 세대가� 있다� 하는데� 천성이�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미국의� 문화가� 있을� 뿐� 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탐욕이나� 개인의� 권리라는� 것도� 구성된� 것이

라�생각됩니다.� �

제가� 98년� 대학원생시절� 박영신� 선생님께서�

당시� 계셨던� 스코틀랜드� 글라스고� 라는� 도시

에� 배낭여행을� 갔습니다.� 그� 때� 글라스고는�

유네스코� 세계의� 아름다운� 도시로� 선정되어�

도시� 전체가� 공사� 중이었는데� 외벽에� 철근을�

대고� 건물을� 수리하고� 있었습니다.� 스코틀랜

드는� 자본주의� 체제인데� 저렇게� 외벽에� 철근

을� 대며� 19세기� 20세기� 초반에� 지은� 건물을�

수리를� 하면서까지� 사는� 것보다� 헐고� 새로운�

편리한� 건물을� 짓고� 사는� 것이� 경제적으로� 따

져보면� 비용이� 덜� 들지� 않을까� 하고� 박영신�

선생님께�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

구하고� 그� 사회가� 전통을� 더� 존중하고� 지키는�

것이겠지요.� 그� 사람들은� 권리의식이� 없었겠

는가.� 분명이� 있었겠죠.�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

는� 권리는� 우리의� 그것과� 달랐던� 것이죠.� 공

공선과� 사익도� 대립되어� 생각하지만� 또� 한편

으론� 어떻게� 환경문제가� 공익이고� 내가� 돈� 많

이� 버는� 것은� 사익이라고만� 규정할� 수� 있을까

요?� 환경이�망가지면� 내가� 돈� 버는� 게� 의미가�

없는데.� 이는� 정도의� 문제고� 결국�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문제입니다.� 지금� 이� 사회가� 그렇게�

느껴지는� 사회라면� 좁고� 천박한� 수준의� 이해

관계에만� 있고� 박영신� 선생님께선� 그것에� 싸

워야�한다는�이야기를�하신거라�생각합니다.�

또� 매사에�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하는가를�

개인� 차원에서� 조금� 생각해보면� 내가� 일상을�

살아가며� 사소한� 문제에� 직면할� 때,� 하나하나

의� 선택을� 할� 때� 선생님이� 말씀하신� 수준의�

대립이� 일어난다� 생각합니다.� 사회� 전체를� 보

면� 상대적이고� 구성되는� 것이라� 말했지만� 지

금� 이� 시대의� 제가� 일상생활을� 할� 때� 이� 문제

는,� 이� 경계를� 내가� 어디로� 설정할� 것인지를�

두고� 싸우는� 것입니다.� 사회� 차원이� 아니라�

내� 차원에서� 보자면요.� 선생님께서� 글라스고

에� 계실� 때� 주신� 편지가� 있는데� 편지� 중간에�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다고� 써주신�

글귀가� 있습니다.� 시같이� 쓰셨는데� 저는� 그�

글귀를� 늘� 외우고� 공부하는� 입장에서� 평생� 잊

지� 않으려� 합니다.� 깊은� 생각,� 넓은� 읽음,� 자

기다운�논평,� 당당한�삶,� 그리고�오직� 앎을� 바

라볼�뿐,� 다른� 것들은�천하게�여기기.� 제가� 자

주� 이� 글귀를� 자주� 말합니다.� 이걸� 말하면� 대

부분� 다� 좋은데� 왜� 오직� 앎을� 바라보고� 다른�

것은� 천하게� 여겨야� 하냐고� 질문을� 많이� 합니

다.� 다른� 것들도� 귀하게� 여기면서� 앎을� 바라

보면� 안되냐고� 농담반� 진담반으로요.� 제� 개인

의� 차원에서� 보면� 다른� 것들을� 천하게� 여기지�

않는� 순간� 앎을� 바라볼� 수� 없게� 되거든요.� 개

인� 차원에서� 이것은� 심한� 투쟁이고� 싸움이다�

생각이� 들고� 이런� 싸움을� 포기하는� 순간� 다시�

노예의� 삶으로� 그냥�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건� 사회와� 어떻게� 싸울� 것인가�

와는� 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생각을� 해� 봤

습니다.�

[유현상]�

(상지대)

제가� 고등학교� 때� 교회를� 다녔는데� 공부� 안하

는� 핑계로� 대학을� 안가겠다고� 말하곤� 했습니

다.� 그러다� 12년동안�타의로� 학교� 다닌� 게� 좀�

억울한� 생각이� 들어� 공부를� 시작해서� 대학가

겠다고� 교회에서� 말했더니� 신학대학� 갈� 거냐

고� 묻더군요.� 그래서� 미쳤냐고� 말했습니다.� 목

사가� 되는� 게� 미친거냐� 묻는� 말에� 그럼� 미친

거지� 아니냐고� 대답했습니다.� 신학,� 목회라는�

게� 마음도� 없지만� 도덕적� 삶을� 선택하면� 내가�

힘들거� 같고� 즐겁지� 않고� 즐거운� 걸� 두고� 외

면해야� 되고� 즐거움에� 빠지만� 죄책감을� 가지

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악�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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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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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야기하고� 멘탈� 이야기를� 했는데� 연결해

보면.� 도덕적� 기준이� 강요되는� 삶을� 선택하면�

내가� 많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 그래서� 죄책

감� 안� 느끼고� 즐겁게� 살자고�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 시민� 1.0� 버전에� 6.0� 버전이� 있다

고� 하셨는데� 6.0� 이상이면� 목사� 이상의� 인물

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명색이� 철학을� 하

는데도� 저는� 주관적인� 것을� 많이� 보는데� 내�

마음에�비추어봤을� 때� 6.0� 되는� 삶은� 많은� 사

람들이� 거부하지� 않을까� 생각� 듭니다.� 어릴�

적에� 주변� 친구를� 보면� 아버지가� 목사,� 교사

였던� 친구들이� 많이� 힘들어� 하더라구요.� 그러

면서� 그� 길을� 포기하더라구요.� 목사� 아버지�

지겨워,� 우리� 아버지� 선생님� 아니었으면� 훨씬�

자유로웠을거야� 이야기를� 합니다.� 합리적이고�

건강한� 시민이� 된다는� 것이� 높은� 도덕적� 요구

에�부합되지�않았으면�좋겠습니다.�

(박영신� :� 왜� 그렇습니까?)

힘드니까요.� 저는�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100m� 달리기를� 완주해� 본� 적이� 없습니다.�

60미터� 뛰면� 숨차서� 뛰기� 싫다고� 하면� 선생

님이�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어려운� 말도�

아닌데.� 저는� 자본주의를� 망친� 주범� 중에� 하

나가� 공리주의라고� 생각하는데� 공리주의� 성공�

요인은� 인간의� 탐욕을� 인정해� 버렸기� 때문이

라고� 봅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선이라

고� 하는데,� 선은� 관심도� 없으면서� 탐욕을� 인

정하는� 순간�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에요.� 전략

적� 차원에서� 시민운동도� 시민� 되는� 것이� 어렵

지� 않다고� 이야기를� 해야� 되지� 않을까.� 어렵

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나는� 저기� 끼면� 안� 돼,�

계속� 회비내야� 하고� 모임� 나가야� 하고� 중국집

에서� 나무젓가락� 주지� 마세요� 해야� 한다고� 하

면서� 그걸� 감내하는� 것이� 훌륭한� 시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부담� 없는� 시민� 되기가� 필

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성공요인은�

구원받기� 쉬워서,� 대승블교도� 나무아미타불만�

하면� 해탈한다고� 말해서인데� 시민운동도� 전술

적� 차원에서� 쉽게� 접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자기와의� 투쟁을� 하도록,� 투쟁한

번� 해볼까� 유도를� 해야� 하는데� 너무� 무겁게�

다가가면� 과도한� 짐,� 역효과가� 생기지� 않을까,�

확산을�어렵게�하지� 않을까�생각합니다.�

[박영신]

쉬워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한테� 편안하다고� 생각해서� 살고� 있단� 말

이죠.� 앞서� 나치에� 의해� 8년� 감옥� 갇힌� 사람

처럼� 처음에는� 쉽게� 살았는데� 결국� 자기도� �

잡혀가지� 않습니까.� 쉽게� 산다는� 것이� 어떤�

잣대로� 쉽게� 산다는� 것인가.� 누가� 쉽다고� 말

하는� 것인가?� 우리� 문화는,� 세계� 문화도� 그런

지� 모르지만� 쉽게,� 가볍게� 산다는� 것이,� 심각

하게� 살지� 않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배우고� 가르쳤습니다.� 부모도� 학교도� 스스로

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쪽에서� 보

면� 어렵게� 보일� 수� 있지만,� 이걸� 강조하는� 사

람,� 이렇게� 사는� 것이� 더� 보람되고� 의미� 있고�

내� 적성에�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쪽에서� 보

면� 쉽다고� 생각하고� 저렇게� 사는� 사람들이� 참�

추하게� 보일� 겁니다.� 자기가� 어떤� 가치를� 가

지고� 사는� 것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제가�

기대고� 있는� 중요한� 생각들이� 대부분� 서양학

자들의� 이야기인데� 설득력� 있지만� 때론� 걸릴�

때가� 있습니다.� 보기를� 들면� 아담� 스미스의�

경우� 우리는� 국부론� 밖에� 모르는데� 그� 전에�

도덕감정론� 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사람과� 사

람� 사이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지내는가,� 도덕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스코틀랜드의� 계몽주

의처럼� 사람� 사이에� 잘� 지낼� 수� 있다,� 왜냐하

면� 내가� 이� 속에서� 나� 혼자를� 고집� 못하고� 여

러분의� 느낌에� 맞춰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

니다.� 여러분도� 여기서� 졸린다� 해도� 졸리는�

시늉을� 잘� 못� 할� 것입니다.� 이� 압력� 때문에.�

이� 분위기에서� 서로� 배워가는� 것인데� 시민의�

품격도� 여기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만

으로� 다� 되느냐?� 그럼� 다수로� 가야하는� 것이

지요.�

이� 사람은� 인간에게는� 불편부당한� 관찰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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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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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속에� 다�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상대방

하고만� 관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불

편부당한� 관찰자가� 있어서� 그것이� 나에게� 정

당한가� 아닌가,� 상대방이� 나에게� 말하는� 것이�

정당한가� 아닌가를� 가르쳐� 준다고� 합니다.� 제

가� 철학전공은� 아니지만� 읽은� 자료에� 의하면�

칸트는� 서양사람,� 기독교� 전통이니까� 하나님

이� 나� 안에� 있다,� 신이� 내� 안에� 있다� 말했는

데� 그건� 불편부당한� 관찰자� 비슷한� 것을� 말하

는� 것이지요.� 그게� 양심이라면� 양심일� 것입니

다.� 제가� 지금� 서양철학을� 이야기하지� 않습니

까?�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 조선� 사람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뭔가?� 우리의� 불편부당한� 관

찰자는� 무슨� 이야기� 하냐를� 법학하거나� 철학

하는� 사람에게도� 제가� 많이� 물어보았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학문� 속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그런� 철저함이� 우리� 안에� 얼마나� 있는지는� 의

문입니다.�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지,� 불편부당

한� 객관의� 잣대라는� 것이� 우리� 개체에게� 얼마

나� 들어있는지,� 박근혜� 대통령� 에게는� 얼마나�

들어� 있고� 세월호� 유가족에게는� 얼마나� 들어

가� 있고.� 세월호가� 교통사고라고� 말하는� 여당�

의원에게는� 얼만큼� 있는가,� 칸트가� 말하는� 하

나님이� 개인들에게� 얼마나� 들어가서� 작용하는

지,� 우리나라� 사람에겐� 제가�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전통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우

리에겐� 유교나� 불교� 전통이� 있어야� 하는데� 이�

위대한� 종교를�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말들었

습니까?� 유교에서� 양심이라든지� 인이라든지�

하는� 것을� 약화시킨� 권력자들이� 무슨� 짓을� 했

는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불교,� 위대한� 종교이

죠.� 그런데� � 왜� 우리는� 불교가� 호국불교로� 된�

것을� 예찬만� 하는지,� 부처님이� 고려를� 구원하

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권력자들이� 종교를� 멋대로� 요리했기� 때문에�

칸트나� 아담스미스가� 말하는� 요인들은� 죽어버

리지� 않았나,� 우리� 안에� 날카로운� 판단의� 잣

대를� 얼마나� 갖고� 있는가.� 좋은� 게� 좋다는� 게�

주종이라면� 이� 체제� 속에선� 시험� 쳐서� 고시�

통과해� 출세� 사닥다리� 올라가는� 것이� 다인데�

그걸� 넘어서는� 잣대가� 있는지,� 잣대가� 유교나�

불교� 안에� 있었을� 것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

다.� 쉽다고� 하는� 것이� 뭔지� 질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질문할� 수� 있는� 자본을� 별로� 갖고� 있

지� 않다는�생각을�해�봅니다.�

[배영근]

(녹색법률센터)

시민과� 공익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저

처럼� 비영리로� 활동하는� 변호사가� 지금� 한�

50여명� 정도� 있습니다.� 스스로를� 공익변호사

라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과연� 공익이� 뭘까.�

시민이� 공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인가.� 그러면�

그때� 말하는� � 공익은� 무엇인가� 주로공익변호

사들은� 장애인,� 여성� 등� 대체로� 사회적� 약자

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데,� 그럼� 공익이라는�

것이� 사회적� 약자를� 지원� 하는� 것과� 같은� 말

인가,� 그렇진� 않거든요� 그러면� 공익이� 너무�

협소해집니다.� 그러면� 공익이� 무엇인가� 아직�

답을�못�찾고� 있는데�의견을�듣고�싶습니다.�

[박영신]

공익이� 우리와� 익숙하겠지요.� 그게� 공리주의

와� 많이� 연결될� 수도� 있겠습니다.� 영어로� 하

면� 인터레스트겠지요.� 저는� 그것보다는� 공공

선에� 더� 치우쳐� 있습니다.� 이익을� 챙기지� 못

하더라도�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선한가.� 무엇

이� 착한가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시민과� 공

익을� 직결하는� 변호사들이� 많이� 있는지,� 정치

학,� 경제학,� 행정학을� 하는� 이들이� 공익을� 더�

말� 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질문하는� 자리

에서� 공익보다는� 무엇이� 공공선인지,� 선함인

지를� 이야기합니다.� 히틀러도� 공익을� 이야기�

하면서� 유대인들을� 학살했지요.� 공익이� 무엇

인가.� 강자들이� 만든� 공익을� 말하는� 것인가.�

공익을� 위해� 몇몇이� 희생되어도� 되는� 것인가.�

이런� 문제� 때문에� 공공선이� 무엇인가,� 의로움

이� 무엇인가� 이런� 데� 기울어질� 수� 없나� 생각

합니다.

[윤상훈]�

(녹색연합�사무처장)

Page 15: 녹색시민포럼 1회 - 노예인가, 시민인가?

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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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의� 영역에서� 어떤� 사람들과� 같이� 할� 것인

가가� 항상� 고민입니다.� 오늘� 들은� 이야기들이�

단어� 선택에서� 조금� 무겁게� 다가오는� 것은� 사

실입니다.� 내용은� 그렇지� 않은데,� 단어가� 저항

의�의무,� 생명을�걸고� 등� 처럼요.� 저라면�다른�

삶이� 가능하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시

민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인� 차원에

선� 어느� 순간에� 시민이� 됐다가� 노예가� 됐다가�

왔다갔다� 하지만,� 흔들리면서� 시민으로의� 지

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

미산에� 유기농�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데� 이

걸� 만든� 사람들은� 어쨌든� 자본주의� 체제에� 대

한� 거부감이� 있었고� 새로운� 삶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동네에� 사랑방� 같은� 공간을� 만든� 것입

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저항

의� 의무로� 가게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

니다.� 다른� 삶이� 가능하다고� 사는� 사람들은�

충분히� 시민이다� 말할� 수� 있습니다.� 공동주택

을� 만들고� 협동조합을� 만들고� 하는� 모습도� 마

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느� 정도� 가면�

관성화되어� 먼저� 만든� 사람들의� 이니셔티브가�

생기면서� 권력화가�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

럼� 협동조합을� 하고� 공동주택을� 만들어도� 노

예가� 되는� 것이지요.� 시민이었다� 노예였다가�

하면서� 흔들리면서� 새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

를� 하고� 그� 삶을� 실천으로� 바뀔� 때는� 또� 시민

이� 되는� 시민이라는� 지향을� 가고� 있는� 존재가�

아닐까,� 고귀한� 모습으로� 시민의� 지위를� 격상

시키기보다는� 시민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

간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녹색운동

의� 한� 가운데에� 깃발을� 꽂고� 가는� 분도� 있겠

지만� 또� 한편으론� 동네에서� 사소하게� 아이스

크림� 가게를�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같이� 해야�

할� 삶이�아닐까�생각합니다.�

[박영신]

윤� 처장의� 이야기는� 시민을� 좁게� 해석하지� 말

고� 스펙트럼을� 다양화하자는� 생각이죠.� 그것

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

제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시민을� 격상시키려�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고민이자� 물음인데,�

시민에게� 너� 잘하고� 있어� 또는� 잘못하고� 있어�

이렇게만� 이야기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거

지요?� 치킨집� 사장이나� 메르스� 상황에서� 일하

는� 병원� 비정규직,� 그들의� 딱한� 상황을� 알지

만� 혹독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노예는�

노예다라는� 입장으로� 쓴� 겁니다.� 예전� 체코슬

로바키아에서� 탈공산화된� 이후� 처음� 대통령이�

된� 바츨라프� 하벨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극작가였습니다.� 공산� 치하에서� 극작을� 하고�

공연을� 하는� 것은� 당의� 허락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극본� 대신� 정치� 논서를� 많이� 썼는데�

그것이� 우리에겐� 많은� 관심거리였습니다.� 그�

중의� 하나를� 저는� 많인� 이야기합니다.� 체코는�

공산국가였으니까� 당에서� 하라는� 것을� 다� 따

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게� 문� 앞에� 어떤� 현

수막을� 붙이라고� 하면� 모두가� 따라서� 붙여야�

했는데� 그� 내용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는� 것이었다� 합니다.� 체코의� 모든� 가게가� 이

걸� 붙인� 걸� 보고� 하벨이� 분석을� 했는데� 그� 가

게� 관리인이� 실제� 이� 내용을� 믿을까,� 아무도�

안� 믿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죠.� 당에서� 하라

고� 하니까� 그냥� 현수막을� 건� 것에� 불과한� 거

죠.� 걸어놓는다고� 해서� 만국의� 노동자가� 볼�

일도� 없고,� 단결할� 일도� 아니다.� 하벨은� 이것

은� 거짓된� 삶이라고� 생각하고� 진리� 안에서의�

삶이�필요하다고�말했습니다.�

우리에겐� 무거운� 말이죠.� 기분좋게� 살자� 이런

게� 아니라� 진리� 안에서� 살자고� 하니까.� 이� 사

람이� 미국� 상원의원� 앞에서� 이런� 말을� 하니까�

잘� 못� 알아듣더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 대

통령은� 잘� 알아들을지� 모르겠습니다.� 진리� 앞

에서의� 삶을� 살려면� 현수막이� 무의미하니까�

걸지� 않겠다,� 나는� 거부하겠다고� 하는� 게� 진

리� 안의� 삶이지만� 그렇게� 살면� 바로� 붙들려�

갈겁니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붙들려� 갈� 각

오도� 해야� 하지만� 혼자�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현수막을� 걸지� 않는� 운동을� 벌인다면� 공

산� 체제� 자체가� 삐걱거리지� 않을까라고� 했다

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 드릴� 것은� 스펙

트럼을� 넓혀가는� 것도� 가능한데� 시민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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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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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를� 격상시켜서� 뻗어나가게� 해서� 하벨이�

이야기하는� 진리� 안의� 삶과� 같이,� 그럼� 희생

을� 당할� 수� 있다� 그래서� 힘을� 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치킨집� 사장,� 제� 글의� 논지를� 보면�

노예지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 혼자� 하지만�

다른� 치킨집과� 같이� 공동으로� 뭔가를� 찾아내

면� 그건� 시민의� 창의성이겠지요.� 녹색연합� 운

동가들이� 찾아야겠지요.� 필요하지만� 서로� 협

력이� 필요합니다.� 같이�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는�것들이�필요합니다.�

[최종덕]

개인적인� 단호함보다는� 함께� 나눠가지면� 구체

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오늘� 멘탈의� 강약에� 대한� 이야기,� 욕심과� 양

심,� 탐욕과� 공공이� 선명히� 구분되는가,� 타고난�

노예,� 시민이� 있는게� 아니라� 나는� 노예지만�

시민이� 되고자� 하는� 지향이� 더� 중요하다는� 말

들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격상을� 지향으로�

바꿨다는� 걸로� 생각합니다.� 저도� 세월호,� 천암

함에� 관한� 가짜를� 그거� 가짜라고� 알고� 있지만�

그거� 가짜라고� 말하지� 못하지요.� 용기가� 떨어

지는거죠,� 그런데� 이� 사람� 저� 사람이� 다� 가짜

라고� 말하면� 묻어서� 용기내서� 할� 수� 있지� 않

나� 싶습니다.� 유현상� 선생이� 보통� 사람은� 모

두� 쉬운� 삶을� 살려고� 하는데,� 그런� 사람에게�

왜� 이렇게� 쉽게� 사냐고� 비난하는� 것도� 어렵다

는� 현실을� 지적하셨고� 그런� 점에서� 강한� 도덕

주의� 기준보다� 이승훈� 선생님이� 설명한� 문화

와� 역사에� 대한� 상대적인� 부분이� 설정된다고�

말씀하셨듯이� 우리� 사회도� 그런� 원칙을� 현실

에� 적용하려다보니� 헷갈리는� 것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윤� 선생이� 질문하신� 두� 가지에�

대한� 것은� 답변이� 안� 되었는데� 그것은� 인생�

전체에� 걸쳐� 답변하는� 문제입니다.� 욕망과� 절

제�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 말이죠.� 저도� 잘�

못했지만� 가만히� 보면� 예수나� 부처도� 확실히�

답변하지�못하고�돌아가셨습니다.�

[박영신]

답변이� 아니라� 한� 말씀� 드리자면� 최근에� 제가�

서울시� 인생이모작지원센터에서� 아마� 나이든�

사람을� 구한� 것� 같은데� 어떻게� 잘� 늙어갈� 것

인가?� 라는� 강의를� 요청받았습니다.� 인생에�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체제에� 맞춰� 사는�

것이� 잘� 늙어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맞서서� 사는� 것인데� 맞서� 살� 때� 자기� 존재가�

더� 뚜렷해지지� 않을까.� 큰� 흐름에� 자기� 존재

를� 던져서� 사는� 것보다� 맞설� 때� 그것이� 더� 의

미�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그게� 부담스럽다�

하더라도.� 윤기돈� 선생의� 질문에� 대답이� 아니

라� 함께� 생각해보려는� 것이� 모든� 것에� 맞서는�

것이� 맞추는� 것보다� 멋있다� 여기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대해� 질문하고� 맞서서�

사는� 것이� 멋진� 삶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물

론� 죽기� 위해서� 그렇게� 살진� 않습니다.� 맞서

서� 살다� 살다�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다보니� 죽

게도� 되고� 고문도� 당합니다.� 처음부터� 각오가�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살다� 살다보니� 감옥에�

들어가� 몇� 년을� 지내기도� 하고,� 그러나� 그게�

허무한�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

렇게� 못하더라도� 그렇게� 사는� 삶이� 의미있는�

삶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 이야

기를�마칩니다.� �

[육경숙]

(녹색교육센터�소장)

저항,� 투쟁�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사실� 단

어만� 살짝� 바꾸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

니다.� 질문하는� 힘입니다.� 제가� 교육� 쪽에� 있

어서� 모든� 것이� 교육으로� 연결되는데� � 왜� 질

문을� 하는� 사람은� 있는데�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모여서� 집합운동을� 하지는� 않는가,� 같

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나누고� 표현하는� 것

이� 없는가.� 질문하는� 것이� 어려서부터�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것도� 있고,�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 자란� 것도� 있

지요.� 질문� 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

을� 표현하는� 경험이나� 훈련이� 부족하다.� 박영

선� 선생이� 교육이� 분절돼서� 일어나고� 있다고�

했는데� 얼마전� 민주교육과� 인성교육이� 왜� 배

치되는가� 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다녀왔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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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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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 법제화가� 이야기되는데� 전에는� 민주교

육을�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예를� 갖추고� 배려

하는� 인성교육� 이야기가� 나오고� 이것이� 서로�

배치된다고� 말합니다.� 그동안� 환경교육이� 생

태�감수성� 교육,� 환경� 가치,� 환경� 문제� 이해에�

대한� 교육에� 머물렀는데,� 지금은� 이� 교육들을�

기반으로� 합리성에� 대한� 교육이� 이뤄줘야� 하

지�않나�생각합니다.�

감수성을� 바탕으로� 참여하고� 연대하고� 소통하

는� 부분으로� 나가지� 않으면� 감수성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다.� 후쿠시마� 문제가� 터졌을�

때� 왜� 우리는�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같이� 모

여� 이야기� 나누고� 다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는� 동력을� 갖지� 못했을까.� 교육에� 있어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

다.� 일반인들이� 운동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답답하고� 어렵고� 딱딱한� 사람으로� 보는� 측

면이� 있는데� 또� 우리는� 다른� 삶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가.� 경제

논리로� 치닿는� 사회를� 이야기하면서� 우리� 안

에서� 대안적인� 삶을� 갖고� 있는가,� 다른� 삶을�

살고� 있는가를� 녹색연합� 안에서� 같이� 이야기

해봐야� 합니다.� 환경운동을� 하겠다는� 이들이�

똑같은� 사회경제적� 논리로� 아웃되고� 있습니

다.� 금전적인� 문제� 등� 똑같은� 가치를� 두고� 살

아갈�수�밖에� 없도록�만들어지나.

왜� 시민이� 못� 될까에� 대한� 고민은� ,� 내가� 자

연의� 일부다라고는� 생각하지만� 사회구성원의�

일부라고� 생각되는� 것이� 살아가면서� 연결망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 되지� 않는다.� 공공�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알아서� 해주겠

지라는� 생각하며� 나는� 그냥� 참는다� 정도의� 괴

리감을� 어떻게� 줄일까를� 이야기� 해야겠다� 생

각했습니다.�

[최종덕]

카산드라가� 되고� 싶어도� 표현하는� 연습을� 해

야� 한다.� 이게� 앞으로� 교육센터에서� 할� 일인�

것� 같습니다.� 녹색시민포럼� 첫� 번째,� 노예와�

시민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분

명한� 답이� 있는데� 그걸� 몸으로� 사는� 게� 쉽지�

않지만� 그렇게� 사는� 것도� 살만하다는� 것이� 주

된� 이야기였습니다.� 가장� 최근에� 상근자로� 들

어온�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무리하겠습니

다.�

[황일수]�

(녹색연합�정책팀)

저는� 아직은� 그냥� 일반� 시민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는데,� 처음� 리조

트에서� 묵으면서� 이게� 바로� 노예인가,� 돈의�

노예인가� 싶었습니다.� 왜� 한국사람들은� 외국

에서� 보면� 창피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 리

조트에서� 묵으며� 내가� 활동가인데� 이런� 곳에�

있어도� 되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활동하면서도�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대다수� 시민들이� 노예적�

삶이라도� 경제적� 측면에서� 그걸� 즐긴다면� 그�

안에서� 시민성을� 잘� 발현하도록� 하는� 것이� 활

동가들의� 몫이� 아닐까.� 삶에� 대해� 저항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고� 길을� 만드는� 것이� 필요

하다는�생각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