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201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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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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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 회원소식지 2014년 7월호 #1 세월호 부모들에겐 당신이 바로 국가다 #2.1 밀양 할머니들의 눈물과 외침 #2.2 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다 #3 활동보고 #4 결산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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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

#1 세월호 부모들에겐 당신이 바로 국가다

#2.1 밀양 할머니들의 눈물과 외침

#2.2 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다

#3 활동보고

#4 결산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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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부모들에겐당신이 바로<국가>다 #1 인권이슈글/ 박진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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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아들이 중1인데 공부를 잘합니다. 시험 보고 와서는 '우리나라도 싫고

국어도 싫어서 국어시험을 안 봤어'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냥 쭉 찍어서

1개만 맞았다고 합니다. 왜 그랬냐고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떠난 단원고 2학년 학생 아버지의 말이다. 국어 답안지에 심술부리는 마음, 왜 그랬느냐 야단할 수 없는 마음들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가족 마음, 그 마음을 보는 국민도 이러지 않을까 싶어졌다. 2014년 4월 16일로부터 90여 일이 지났다. 오는 24일이면 100일이 된다. 진도 앞바다를 바라보던 충격적인 날로부터 속절없이 세고 있는 날짜들이다. 지인은 '자신과 무관한 타인의 일로 이렇게 오래도록 슬픈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분노조차 솟아오르지 않던 무기력은 어땠는가. 사실 나는 그랬다. 온갖 종류의 인권침해를 봐왔지만, 세월호 침몰은 왜 이렇게 눈물이 나던지…. 취임 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곱게 보이지 않았던 정부가 제대로 구조만 한다면 인간적 실망만은 거두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허망하기도 허망하여라.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살아 나온 이들의 증언은 같았다. "우리는 구조된 것이 아니라 탈출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조에 전력을 다 하고 있다'는 거짓말이 공식 발표되었다. 공중파 방송을 통해서 전송되었다. 정부 여당 지도자들은 망언을 쏟아냈다. 분노에 찬 가족들이 진도 팽목항에서 걸어 청와대를 향했다. 다시 안산에서 청와대로, KBS 방송국으로…. 서명을 받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으로, 두 아버지는 안산 단원고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십자가를 메고 걷고 있다. 그조차 따라붙은 경찰은 가족들을 미행해서 물의를 빚었다. 국어 시험이 아니라 윤리 시험도 낙제인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13일 국회 본청 앞 기자회견에서 울부짖던 엄마는 "거지 같은 이 나라에서 떠나고 싶지만 죽은 내 새끼 놔두고 갈 수 없어, 여기 있다"고 말했다. 참혹한 시간이다.

단식 시작한 부모들... "죽는 한 있더라도 딸 원한 풀겠다"

14일 미지 아빠, 지성 엄마, 소영 엄마, 수진 아빠, 예은 아빠, 슬라브 엄마, 동수 아빠, 준우 아빠, 현우 아빠, 혜화 아빠, 빛나라 아빠, 준영 아빠, 창석 아빠, 예지 아빠, 유민 아빠가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국회 앞 노숙농성 이틀째, 아침부터 내리쬐는 험악한 뙤약볕 밑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단식을 시작했다. 가족들은 대한변협, 국민대책회의와 함께 작성한 특별법을 통과시켜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세월호 사건 조사 및 보상에 대한 조속 입법 TF를구성하면서 가족들의 참관조차 거절했다. 가족은 "우리 가족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니 특단의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며 단식농성의 입장을 밝혔다.

가족들이 요구하는 진상규명 특별법은 지금까지 법과 다르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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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자 처벌,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특별위원회에 주자는 내용이다. 위원회 구성은 정치권이 참여하는 비율과 국민이 참여하는 비율을 동수로 하자는 것이다.

왜 그런지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참사 이후 수많은 시간을 실망과 무능, 의도된 조작과 거짓말로 버틴 정부와 정치권을 봐왔기 때문이다. 산이라도 옮겨줄 것처럼 약속했던 얼굴들이 모든 것은 내 책임이라고 말했던 눈물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다며 거리로 나섰던 손과 발들이 어떻게 가족들을 배신하고 국민들을 우롱했는지 겪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내용 없는 '연구용역 계약서' 같은 일부 법안을 들고 특별법이라고 주장하는 정부 여당에게 진실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 가족들의 입장이다. 새누리당은 여당 지지 성향이었던 가족들조차 돌아서게 한 모욕적 시간들을 감당해야 한다. 14일 단식 농성에 앞서 소영 아빠 우주용님은 이렇게 말했다.

"딸 보내고 거의 한 달 이상을 방황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너무 보고 싶어서…. 시화 바닷가에 가서 새벽까지 울다가 집에 들어가고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도저히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딸 생각에 잠을 못 자고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내곤 했습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정신 차리고 저희 딸이 왜 죽었는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정신 차리고 서명운동을 다녔고, 오늘은 국회에서 단식을 시작하는데 단식을 해서라도,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건을 밝혀서 저희 딸 원한을 풀어줘야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단식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존엄과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 특별법 제정이 첫걸음

국회와 정부는 국민을 대의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국민들은 "우리는 평범한 부모였습니다. "라고 늘상 이야기하는 희생자 부모들에 의지하고 있다. 뒤돌아보면 어느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이뤄온 것은 희생자 가족이었다. 가족 잃은 슬픔만으로도 버거운 그들을 거리로 내몬 것만으로도, 그러한 사회를 지탱시키는 것만으로 우리 모두 죄인이다. 늦지 않았다. "이게 나라인가" 했던 탄식을 잊지 않는다면, 국가의 빈자리에 4·16특별법을 채워, 존엄과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야하지 않겠는가. "2014년 4월 16일 이전과 이후가 똑같았다"라는 역사의 문장을 남기고 싶지 않다면, 지금 슬픔에 빠진 희생자들이 앉은 눈물겨운 벤치 곁에 앉아 달라. 350만의 기적 같은 서명으로 가족을 위로해주었던 이름 없는 당신만이 지금 국가의 본모습이다.

14일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파행과 특별법 제정에 대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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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평화위원장의 입장이 발표되었다.

"성역 없는 조사가 가능한 법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중략) 조사위원회에는

반드시 조사권과 기소권을 비롯한 사법권한과 함께 독립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 시민과 희생자 가족들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여야는 물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모두 희생자 가족들이 제안한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가칭)'의 조속한 제정을 위해 힘을 모아주시길

촉구합니다."

입장 글 마지막에는 "한 시대를 제대로 평가하는 유일한 방식은 그 시대가 인간 삶의 충만함이라는 진정한 대의에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를 묻는 것이다"(로마노 과르디니)라는 말씀이 붙어 있었다. 누군가의 부모였으며,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누군가의 사랑하는 연인과 친구였던 죽음 위에 우리가 쌓아올릴 것은 인간 존엄의 충만함이어야 한다. 그 역할을 못한 국가의 부재를 채울 특별법 제정이 첫걸음이 아닐까. 막내아들의 국어 시험지에 정답을 기재할 수 있는 날을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 앞에 국어 시험지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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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할머니들의 눈물과 외침 <국회 밀양 증언대회>

#2.1 자유기고글/ 성동석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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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이 쑥대밭이 된 지 열흘 즈음 지난 후, 6월 25일 국회에서는 밀양 증언 대회가 열렸다. 행정대집행 당시의 인권 침해 상황을 낱낱이 고발하는 시간이었다. 장하나 국회의원 주재로 열린 이번 증언 대회에서는 송전탑을 막고자 끝까지 싸웠던 밀양 할머니들과 여러 시민 사회 단체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먼저 영상을 보았다. 행정대집행이 있었던 당일의 인권 침해 내용을 담은 동영상이었다. 본래 경찰은 공무원과 행정대집행 대상자와의 마찰이 있을 때만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경찰은 밀양 시청 직원이 공문을 읽자마자 움막에 진입했다. 힘없는 할머니들은 끝까지 저항하다 붙잡혀갔다. 수많은 할머니들이 알몸으로 움막을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무자비한 공권력의 투입을 막아내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옷을 모두 벗기로 했다.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민중의 지팡이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여성으로써 느끼는 수치심마저 무기로 사용하게 한 경찰의 비정한 모습만 남을 뿐이었다. 여러 시민 사회 단체 활동가들의 모습도 보였다. 수많은 연대자들이 저항을 시도했지만, 상당수는 경찰에 의해 가로 막혀 마을 진입조차 어려웠다.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인 허기저도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허기저는 활동가들의 마을 진입을 막고 있는 경찰에게 강력히 항의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의 증언이 시작되었다. 함께 저항했던 분들 중에는 밀양 토박이 분들도 계시고, 시집을 그곳으로 온 분도 있으며, 자식 다 키운 후에 자연을 가까이 하기 위해 이주해 온 분들도 계시다. 언제부터 밀양에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곳에서 시간을 얼마나 보냈건 간에, 할머니들이 살고 있는 밀양은 그저 그런 ‘거주지’가 아니다. 그녀들에게 밀양은 십 수 년 간 살아왔던 많은 이야기와 사연이 담겨있는 ‘기억’이다. 자본과 결탁한 국가 권력이 동원한 경찰들이 짓밟아 버린 땅은, 없는 살림에 고추 심고 콩나물 뜯어서 자식들 학교 보내고 공부시킨 억척스러운 삶의 공간이요, 남편 없이 홀로 살았던 외로운 시절에 조금이나마 기댈 수 있었던 삶의 안식처였다.

네 분 할머니의 증언이 끝나고, 밀양 인권 침해 감시단과 법률 지원팀의 증언이 이어졌다. 과도한 공권력의 투입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경찰을 지휘했던 현장 책임자에 대한 질타도 계속되었다. 행정대집행 당시 밀양 경찰서장이었던 김수환. 분명히 누군가와 밀양 경찰서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2월 중순이었다. 오랜만에 카페에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학을 들어가기 직전이라 학교와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 때 김수환 서장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아버지는 밀양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김수환 서장은 아버지의 학교 후배였다. “밀양 경찰서장이면 밀양에서 최고 높은 사람 아니냐, 경찰 대학교를 나오더니 그 놈 인생이 확 폈다.” 아버지에게, 그리고 김수환 서장 경찰서장이라는 감투는 인생의 성공을 의미한다. 끝없는 경쟁에서 누군가를 밟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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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섰음을 의미한다. 분명 경찰대에서 그는,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고 공익을 지켜야 한다고 배웠을 것이다. 그런데 진정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성공일 뿐이며 그 대가는 다른 이의 삶을 빼앗는 것인가.

101번 움막을 지켰던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박근혜가 국가 개조 한다고 하는데, 박근혜 정신 상태만 개조하면 모든 문제가 없어집니더.” 밀양은 보수 여당 세가 강한 경상도 지역이다. 수 십 년간 우리 할머니들은 나라가 시키는 대로 해왔다. 정부에서 농작물을 심으라고 하면 심고, 소를 키우라고 하면 키우고, 기호 1번을 찍으라면 찍었다. 자신들이 계속 집권해야 이 나라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며, 자식이 더 나은 교육을 받고 성공할 수 있다고 표를 구걸하면, 밀양의 할머니들은 그런가 보다 넘기며 그들을 찍었다. 그 후에는 또 다른 이가 ‘우리가 남이가’ 라는 감언이설로 할머니들을 현혹했다. 그때도 할머니들은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그를 찍었다. 할머니들은 이 나라의 권력자와 위정자들이 시키는 대로 했지만, 그녀들에게 돌아온 것은 차디찬 포클레인과 귀가 찢어질 듯 한 헬리콥터 소리뿐이었다. 경찰의 말발굽에 유린당한 삶의 터전뿐이었다. 그저 힘 있는 자들에게 밀양의 할머니들은 돈을 불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는 인권 보장에 대한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요즈음 인권에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이 조항을 종종 되뇌어 보곤 한다. 우리나라 헌법이 적용되는 대상은 국민이다. 사람이라서,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마땅히 보장 받아야 하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 만이 누릴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국적을 가진다고 모두 국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헌법의 보호를 받는 국민이 될 수는 없다. 권력자에게 국민은 학교에서 ‘가만히 있으라’ 고 잘 훈련된 기계 뿐이며, 또 다른 기득권에게 국민이란 그저 본인들이 시키는 그대로 따르는 노예를 의미한다. 우리 사회를 뒤에서 좌지우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밀양의 할머니들은 과연 국민이 맞냐고, 국가의 주인이라는 ‘국민’이 맞냐고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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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다

#2.2 자유기고글/ 김희정

전교조 수원초등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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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다. 아, 얼마 전 ‘노조아님’ 통보를 받았으니 그냥 전교조 교사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노조를 노조라 부르지 못하니, 희대의 코미디가 따로 없다.

98년 전교조가 합법화되던 소식을 학교 학생회관 TV로 보았다. 스물 댓 살이나 먹은 늙은 선배들이 만세를 부르며 울던 생각이 난다. 그 선배들은 전교조 참교육 마크 도장과 배지를 무슨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다녔었다. 도대체 전교조가 뭐길래. 그때부터였다. 내가 전교조라는 조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교사가 되겠다는 것이, 심지어 교대에서 학생운동씩이나 했다는 것이 ‘전교조’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노동조합’이라는 회색빛의 조직을 굳이 관심에 두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돌아보면, 초, 중,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단 한 번도 노동의 권리에 대해 교육받지 못했다. 교과서에는 노동기본권 대신 노동 3권이라는 웃기는 3종 세트가 단골 시험문제로 등장했을 뿐이다. 언론에 나오는 노동조합은 붉은 머리띠를 맨, 가난해 보이는, 못 배워서 세련되지 못하고 무식하게 폭력만 일삼는 그런 이미지였으니, 왜 굳이 교사가 노동조합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초적 이해가 없었음은 당연하다. (이 모든 무지가 공교육의 부실에서 온 것 아니겠나.)

그런 무지한 내가 첫 발령을 받고 전교조에 가입하자마자 이른바 ‘연가투쟁’이라는 것을 나갔다. 발령난지 2개월만이다. 당시 교장은 2개월짜리 신규 교사의 연가투쟁 참여 소식에 목을 잡고 병원으로 실려 가셨다. 나에게 휴가권이 있고, 아이들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으며, 심지어 투쟁의 이유마저 매우 교육적인데 왜 내가 교장의 눈치를 봐야한단 말인가. 그 뒤로도 전교조의 외침은 늘 타당했다. 그 타당함에 타당한 투쟁으로 응수했고, 나의 인사기록카드는 징계로 너덜너덜해졌다. 그게 합법 전교조 활동의 훈장이었다.

87년 체제가 무엇인지 경험하지는 못 했지만, 그 ‘좋았던’ 시절을 지나 98년 합법화 이후 전교조는 ‘합법’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온갖 공격에 시달려야만 했다. 말이 좋아 합법이지, 전교조 이름으로 무엇 하나 내놓고 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씨쭈구리한 극우보수의 망할 시대를 관통해 살아가면서 신간 편하게 지내리라는 상상은 애저녁에 집어치웠었다. ‘국보법’을 지나 ‘종북’을 거쳐 ‘내란’으로 이어지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기이한 공격 레벨의 성장을 보면서 또 한편 감지하기도 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 박근혜 시대를 지나는 이 시기에 전교조 조합원 수는 하락세를 멈추고 완만한 증가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원에서도 연일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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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시대의 아픔을 감지하는 교사들이 아직 학교에 있는 거다. 동네사람 셋만 모여 앉으면 욕 하는 그런 ‘선생 나부랭이’ 말고, 아이들의 살아갈 미래를 걱정하고, 선생으로서 가르쳐야하는 나의 양심이 아파오는 그런 선생들이 있다는 거다.

그러니 안심하시라. 전교조가 법외화 되더라도 우리는 조전혁 의원이 돌려받을 선거비를 압류하며 짱짱한 재정을 유지할 것이며, 더불어 조합원들은 안정적인 활동을 해나갈 것이므로, 학교는 안녕하며, 더불어 여러분의 자녀들도 안녕할 것이다. 그리하여 ‘가만히 있지 않도록’ 가르칠 교사들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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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활동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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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서비스 고 염호석 열사 장례식

지난 5월 18일 ‘삼성서비스 지회가 승리하는 날 장례를 치러달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서비스 노동자 염호석이 자살했습니다. 그 마지막 유언을 지키고자 동료들은 한달이 넘도록 강남 삼성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진행했습니다. 6월 29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은 삼성과 합의안을 이끌어내고, 삼성에게 사과를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30일 염호석 열사의 장례식을 치뤘습니다. ‘유해를 해뜨는 정동진에 뿌려달라’는 유언에 따라 서비스 노동자들과 연대단체는 정동진에서 노제를 진행했습니다. 무노조 원칙을 고수해온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그 활동을 인정받은 것,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제 무노조 경영의 원칙이 무너짐을 삼성서비스 노동자들의 싸움에서 확인하였습니다.

■ 세월호 수원역 시민분향소

6월 한 달 동안에도 수원역 시민분향소는 계속 운영이 되었습니다. 6월 4일 오후 6시, 수원화성행궁광장부터 수원역까지 ‘검은티 행동’을 진행했습니다. 길을 걸으며 시민들에게 세월호 특별법 서명도 받았습니다. 같은 날 촛불추모문화제에서는 ‘꽃다지’의 감동적인 공연도 있었습니다. 다음날인 5일에는 MBC 김민식PD의 길거리 특강도 진행됐습니다. ‘기레기’라고 욕을 먹는 언론, 그 중에서도 특히 욕을 먹는 MBC에서 수년동안 노동조합 활동과 공정한 방송을 위한 싸움을 이어오고 계신 분이기도 합니다. 입담으로 MBC의 문제점과 언론운동의 고민을 재치있는 입담으로 풀어주셨습니다. 7일에는 유가족과 함께 세월호 특별법 서명운동을 진행했습니다. 자식을 잃은 슬픔에도 ‘왜 죽었는지’ 이유를 밝혀달라는 요구는 좀처럼 수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가족분들이 직접 거리로 나서야 했습니다. 수원지역의 시민, 활동가들과 유가족들은 그 날 하루 3천명이 넘는 시민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이밖에도 매주 수요일 분향소 앞에서 촛불문화제가 진행되고 있고, 매일 세월호 특별법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답니다.

■ 밀양 행정대집행과 인권침해보고서

지난 6월 11일, 밀양 주민들이 농성하고 있던 송전탑 예정부지 네 곳에 대한 대대적인 행정대집행이 실시됐습니다. 다산인권센터를 비롯한 전국 인권단체들은 ‘인권침해감시단’을 구성해 현장에서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독립적인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와 같이 경찰 수 천 명을 동원, 불법적이고 폭력적으로 주민들과 연대자 들을 농성장에서 몰아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령의 주민 다수가 부상당했고, 함께 했던 종교인, 시민들 역시 부상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행정대집행이 실시되기 전 전국의 인권단체들은 <행정대집행이 아니라 주민과의 대화가 먼저다>라는 호소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6월 25일, 인권단체들이 밀양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수집된 사진,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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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등을 토대로 <밀양 행정대집행 상황에 대한 증언대회>가 국회에서 진행됐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밀양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주민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경찰과 정부, 한전의 태도에 분노를 표했습니다. 밀양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례와 분석은 <밀양 인권침해 보고서4>를 통해 정리되어 있습니다. 다산인권센터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세월호국민대책회의 활동

7월 한 달 동안 세월호 국정조사가 진행되었고, 8월로 청문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24일 100일 이전에 특별법 제정을 요청했지만 국회는 회기기간 특별법제정을 위한 노력을 포기했습니다. 가족들이 요구하는 특별법은 진상조사와 안전한 나라를 위한 법안입니다. 왜 위험한 배가 많은 이들을 태우고 운행할 수 있었는지, 왜 구조하지 못했는지 철저한 진상을 규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정부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국회 내에서 정쟁만을 일삼고 있습니다. 심지어 TF위원장과 간사는 유가족들을 모함하고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이것을 단호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세월호국민대책위는 이를 위해 가족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생존학생들의 도보행진, 유가족 도보행진, 범국민촛불행사, 참사 100일 행사 등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국회와 광화문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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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결산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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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지출

총계

16,765,706총계 7,910,182

이월 전월이월 7,924,270

운영비

소계 1,934,232

경상수입

CMS후원 5,424,720경상운영비

대출이자 70,662관리비 143,050

자동이체후원 230,000이사적립금 120,000

특별후원 2,776,350

일반운영비

정보통신비 181,160일반후원

활동비 47,100

사업수입

일반사업교육사업 사무관리비 146,300재정사업 차량유지비 1,225,960행사사업 기타

기타수입

결산이자 766

인건비

소계 5,068,350기타 204,800

급여 급여 4,476,350차입금 204,800

복리후생비

식대 275,500상여금

자원활동가지원비 33,500

기타 283,000

사업비

소계 907,600

경상사업비

우편발송비

인쇄비기타

일반사업비

교육사업비 279,000행사사업비 200,100기획사업비 10,000현안사업비 307,300

기타

연대사업비분담금 60,300후원금기타 50,900

차월이월 8,855,522

2014년 6월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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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6: [몸살] 2014년 7월호

후원계좌 | 신한 : 110-062-448424 (박진 다산인권상담소) / 농협 : 116-12-264081 (노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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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다산인권센터를 후원해주신 벗바리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간은균 간호중 강두용 강복심 강상원 강윤정 경기대학교민주동문회 고미영 고성준 고 영 곽봉식 곽봉재

곽지숙 곽창훈 구선희 국찬석 궁경혜 권민희 권순택 권인철 권정순 길은실 김갑수 김강학 김경숙 김경지

김계향 김관일 김근영 김기헌 김노진 김대술 김동겸 김동균 김동근 김동우 김만희 김명숙 김명욱 김명준

김문정 김미숙 김민규 김민석 김민태 김병곤 김병선 김병수 김보경 김상곤 김상기 김상순 김상욱 김상호

김선미 김선형 김성종 김성중 김성태 김성희 김 솔 김수영 김수정 김시연 김아름 김영기 김영기 김영숙

김영주 김영호 김완수 김용섭 김용신 김우진 김원규 김윤경 김윤종 김윤희 김은경 김은총 김이화 김의경

김의식 김자현 김장렬 김재영 김재욱 김정수 김정심 김종보 김종서 김종우 김종태 김주이 김주환 김준성

김지수 김지연 김진성 김진우 김진혁 김타균 김태은 김철수 김철환 김칠준 김태교 김태균 김태환 김학성

김화준 김향미 김현주 김현창 김현철 김형옥 김형인 김형일 김혜영 김혜령 김희연 김희정 김희태 남경호

남길현 남영숙 남지원 남현우 노수정 노영란 노완호 노정순 노정희 노창식 노학주 류용웅 문민수 문숙희

문정석 민진영 민현주 박경화 박관우 박래군 박미향 박민수 박선희 박설규 박성희 박숙경 박영재 박용태

박유순 박윤정 박재형 박정근 박정희 박주민 박준모 박준영 박지영 박지훈 박 진 박 찬 박찬병 박 철

박치현 박태현 박혜상 박호철 박효진 반재운 법무법인 다산 배기성 배용석 백가윤 백수영 백아형 백정선

백종수 변상우 사미경 삼성 노동조합 서경숙 서미나 서미향 서윤수 서재덕 서정리 서정희 서태정 서채원

석권호 성명애 손난주 손어진 송명은 송명훈 송연주 송용기 송원찬 송인숙 송주현 송주희 승혜신 신강현

신남균 신 돈 신동석 신성원 신유아 신은정 신종은 심병훈 심지연 안금옥 안병일 안병주 안병진 안상용

안정희 안진영 안채원 양기석 양민재 양은숙 양훈도 엄명환 여운철 염경미 오동석 오석경 오세범 오일용

오준원 오준희 오춘상 왕윤정 원선옥 원영기 유기만 유덕화 유미희 유정은 유준영 유지혜 육대웅 육성철

윤권영 윤나경 윤세홍 윤영훈 윤은수 윤재훈 윤창경 윤태관 윤태기 윤흥준 이가영 이강복 이건해 이경이

이경진 이계수 이광훈 이근랑 이기만 이기원 이기성 이기은 이기자 이기주 이길순 이다예 이동찬 이문영

이미경 이민수 이민정 이민휘 이범희 이병삼 이봉임 이상명 이상무 이상목 이상언 이상희 이선용 이선희

이설희 이세훈 이소진 이수정 이수진 이순일 이승규 이연민 이연진 이영기 이영문 이영미 이영희 이용덕

이용석 이우상 이유정 이원숙 이은별 이정무 이정화 이정희 이종란 이종수 이종순 이종우 이주영 이주현

이중호 이창림 이태형 이필주 이학준 이향숙 이현찬 이 호 이호헌 이희정 임굉호 임대철 임성민 임수현

임승국 임시정 임정희 임양숙 임종혁 임태환 임혜경 장계순 장대전 장명호 장서연 장성옥 장세민 장소영

장여경 장진욱 장혜경 장혜진 전상천 전인숙 전창윤 정건희 정미현 정상용 정 민 정연희 정용진 정 웅

정준위 정지윤 정태욱 정태정 정현경 정현주 정혜민 정 희 조건준 조명진 조민호 조백기 조병희 조상현

조성범 조윤령 조지훈 주재억 주재철 진상범 천 진 천홍석 최강호 최병호 최보라 최서영 최성규 최영롱

최용화 최유리 최윤오 최율미 최재경 최종식 최준영 최혁진 최현모 최형규 최화정 태상미 한건희 한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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