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2014년 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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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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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월간이리 2014년 월호
Page 2: 월간이리 2014년 월호

순서 입니다.

비밀 동툰 / 글. 그림. beamil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글. 사진. 아홉시

영화로 읽는 시공간 - 계층의 폐쇄성을 말하다. 해무 / 글. 곡주대비

한국영화 돌려 깎기 - 이끼 / 글. 최지원, 곡주대비, exxx

팟캐스트 ‘이리오너라’ 광고

여기 문학이 필요한시간 - 허균 「통곡헌 기」 / 글. 고수진

놀고 먹고 그리고 / 그림. 김혜리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 글.박재현

게임 노동 일지 / 그림. 글. 철민

idology’s pick - 현아, 레드밸벳

Hwaiiana - 영화 디센던트를 통해 보는 하와이 / 글. 이동걸

낭만 스파이 - 화분 / 글. 사진. 낭만스파이

작곡가 B의 노트 - 12cm 너머의 세계 / 글. Composer B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 소개소 / 글. 신당동 파르한

건축이 좋아 - 베니스 비엔날레 / 사진. 글. aoikasa

사진 일기 / 사진. 글. 박민수

물질과 비물질 - 소파 / 사진. 황은정 글. 김종소리

부산오뎅 이야기 - 편한 관계 / 글. 사진. odeng

바다비 일요 시극장 광고

국가란 무엇일까? - 9회 / 글. exxx

Page 3: 월간이리 2014년 월호

세월호 문제가 여러 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이렇게 가을이 되고 겨울이되면 추위가 유족들을 방해하겠죠. 누군가는 아마 시간

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겁니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상황도 참 서럽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3달이 남은 2014년 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계획들을 갖고 계신지 모르겠습

니다.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매달 말이 되면 부족함만 남는 것 같습니다.

지나온 시간들이 부끄럽지 않도록, 독자 여러분이 자부심을 가질 수있는 잡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혹시 월간이리에 연재를 하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주세요.

그렇게 나쁜 X 무서운 X 사람들 아닙니다.

각종 연재문의 는 [email protected] 이나 @postyri 로 문의주시면 됩니다.

그럼 본격적인 가을이 다가오는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기를 바라며 이만 물러

갑니다.

월간이리 exxx 드림.

편집: 이훈보

표지: 이주용

주관: 프로젝트 이리

지원: 서울특별시,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공식트위터 @postyri

Page 4: 월간이리 2014년 월호

물비 밀 동 툰Animal Toon by BEAMIL

* 2014년에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나름 위트있게, 뜨끔하게 쓰고 그린 짧은 만화를 기고합니다.

팩트를 뒷받침하는 기사와 간단한 의견도 함께입니다. 많이 공감해주세요. 제보도 감사합니다. twitter@ / _beamilie

* 분양이라는 단어는 ‘상품 혹은 물건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 아파트, 건물, 토지 등 물건을 사고 팔 때 쓰는 말이다. 물건을 사고 판다는

의미의 ‘분양’이라는 말을 무심코 쓰기 전에, 앞으로 평생 함께 할 가족을 맞이한다는 뜻의 ‘입양’이라는 표현을 생각해 보자.

* 동물에 대한 세상의 보편적인 인식이 좋아졌다고 하는 것은 늘 강조해도 지

나치지 않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긍정적인 사실에 비례하여 정보지식도 향상

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늘어나는 반려동물 인구의 소수만이 많은 정보를 정

확하게 선택하여 받아들이죠. 입양을 할 때, 키우는 동안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도 우리는 정보를 선택해 받아들이는 공부를 해야합니다.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반려동물 인구가 많아질수록 고통받는 동물들도 많아질

것입니다. 시작은 분양을 받아야 하는지, 입양을 해야하는지부터 입니다. 말 그

대로 분양은 동네마다 흔히 볼 수 있는 애견센터같은 업체에서 돈을 지불하고

‘구매’를 하는 것입니다. 입양은 지인이나 인터넷의 정보를 통해 내가 이 아

이를 평생 책임지겠다는 약속, 소정의 ‘책임비’만을 지불하고 함께 살게 되

는 것입니다. 상상해봅니다. 애견센터에서 구매하여 5분 거리의 집으로 데려와

바로 함께할 수 있는 분양과 몇 일, 길게는 몇 달을 믿을만한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서(동물보호협회 포함) 느낌만으로 나와 맞는 반려동물을 발견해 찾으러 가

야 하는 입양. 분양에 비해 입양은 절차가 복잡하고 귀찮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측의 글을 통해 분양의 이면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친구들은 제게 웃으며 말합니다. ‘먼치킨을 키우고 싶어.’ ‘요즘은 웰시코

기가 대세라던데.’ 너무 몰라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친구들에게 저는 늘 어디

서부터 설명해야할지 몰라 쩔쩔 매곤 합니다. 입양 동물들 중에서 내가 찾는 품

종동물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반려동물 인구가 많아진 지금 품종

동물조차 이러저러한 이유로 많이 버려지기 때문에, 조금만 시간을 할애하여 준

비한다면 곧 가족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찾는 도중에는, 이미

품종동물따위 안중에 없어져 버리기도 한답니다.

평생 철창에 가둬져 죽을 때까지 새끼만 낳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종자견, 종자묘라고 합니다.

평생이라고 해봤자 더러운 물과 사료만 먹으며 씨를 주사받아 새끼를 낳고 또 낳고만 반복하는 동물들은 금방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짧은

생을 지옥에서 보내는 것이지요. 게다가 그런 일을 하는 개장수들은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가 아니기에 동물에 대한 지식이 없을 수 있고, 폭력

적이기도 합니다. 그런 번식동물이 아플 때는 돈이 들기 때문에 절대 치료해주지 않고, 안락사시킵니다. 탄생과 죽음, 죽음과 탄생… 아이러니

합니다. 지옥에서는 매일 죽음과 탄생이 반복됩니다. 그렇게해서 죽은 번식동물들은 한쪽에 쌓여있다가 버려지거나 보신용으로 팔려갑니다.

아니, 몇 해 전 충격적인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개장수들은 그렇게 죽은 개를 그 자리에서 요리해 먹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

는 우리가 잠깐 대문을 열어놨다가 잃어버린 초코, 부모님의 의견을 꺽지 못해 시골에 버리고 온 누리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발견된 유기

견들이 개장수에 의해 번식농장으로 잡혀가거든요. 수시로 눈에 밟히는 고양이들 또한 그렇게 잡혀가고요. 그렇게 눈에 띄는 유기견, 유기묘들

중 체구가 작은 아이나 품종이 있는 아이 등은 개장수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입니다. 몸집이 작고 품종이 있는, 예쁜 새끼가 나와야 하니까요.

운이 좋은(좋다고 해야할까?!) 녀석들은 좋은 사람에 의해 입양되기도 하지만 계속 새끼를 낳았던 이력때문에 자궁이나 배에 큰 병이 있거나

늘 철창속에서 앉아있었다는 이유로 다리를 못 쓰기도 합니다. 이렇게 공장에서 경매를 통해 애견샵으로 팔려가는 새끼들은 엄마와 생이별을

해야하고, 애견샵에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립니다. 그런 환경에서 살던 엄마 배에서 나왔기 때문에 건강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지만, 오히려 입

양이 된 집에서 그 사람들의 정성으로 건강해진답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요. 하지만 애견샵으로 팔려갈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새끼들은 태어

나자마자 죽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도 우리는 편리함을 위해 애견샵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애견샵의 후광에 가려진 녀석들

은 사실 무척 어두운 이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시면 어떨까요..

대학병원 근무 시절 병원에서 ‘유린’이라는 시츄를 키운 적이 있다. 양쪽 뒷다리가 오그라들어 엎드린 채로 오줌을 싸는 아이라 ‘유린

(urine, 소변을 의미하는 영어 표현)’이라 불렀다. 유린이는 번식농장에서 종모견으로 살던 개였다. 고관절도 무릎도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다른 시츄보다 체구가 작아 상품성이 있다는 이유로 종견이 되었다. 일년에 두 번씩 계속해서 새끼를 낳고 산후조리도 못한 채 갇혀만 살던

유린이는 결국 뒷다리가 주저앉은 채로 오그라들었고,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새끼를 낳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번식농장 동물들은 유린이처럼 농장의 케이지(번식장)에 갇혀 살면서, 바깥으로 한 번도 나와보지 못한 채 새끼를 낳다가 생을 마감

한다. 번식농장은 식용농장과 마찬가지로 환경이 열악하다. 애견샵에 들어오는 개들의 상당수는 그러한 번식농장을 통해 경매장에서 팔린 강

아지들이다. 쉽게 돈을 주고 동물을 거래하는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어두운 그늘에서 이런 일들은 무한정 반복될 것이다.

한 때 방송을 통해 일부 애견샵에서 병이 있는 개, 고양이를 파는 등의 문제점이 알려지면서 가정에서 키우던 동물의 새끼를 입양하려는 사람

들이 늘어났다. 흔히 이를 ‘가정분양’이라 하는데, 이 경우 입양할 동물의 어미를 확인할 수 있고 어미와 떨어질 수 있는 시기가 될 때까지

아기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주의할 점은 있다.

분양자의 집을 방문하게 되면, 어미와 아이들이 지내고 있는 공간을 확인해 보자. 실내에서 사람과 자연스럽게 접촉하고 생활하는 법을 어릴

때부터 익힐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물론 분만한지 얼마 안 된 어미들은 낯선 사람을 경계할 수 있다. 또, 여러 마리의 동물을 한꺼번에 돌

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집안을 돌아다니지 못하게 제한해 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예 실내 생활공간과 격리하여 동물을 기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반려동물들은 묶이거나 갇히지 않고, 실내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최소한 강아지나 고양이의 잠자는 곳과 용변하는 곳은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신문지나 지푸라기 등을 바닥에 깔아놓고 좁은 공간

에서 뒤엉켜 지낼 경우, 강아지는 용변을 볼 때 정해진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해 입양 후 배변 훈련을 가르치기 힘들어진다.

자신이 사랑으로 키운 동물에게서 태어난 자식을 보내는 것은 애틋한 일이다. 그러므로 어미를 대신하는 마음을 가진 브리더라면, 입양을 희망

하여 찾아 온 사람들에게 자신을 자랑하기보다는 질문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입양 전에 동물을 키워본 적이 있는지, 가족구성과 환경은 어떤

지 궁금해 하고, 평생을 잘 키워줄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게 될 것이다.

꼭 전문 브리더가 아니어도 된다. 지나치게 품종의 외모에 집착하거나 엄격한 브리더는 피하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지가 아니다. 자신이 키우는 동물도 사랑으로 길러내고 있음을 자신있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네이버 캐스트[애완/반려]

어린동물을 입양할 때, 어디서 어떻게?

- 33세, 최OO (종로구) -

Page 5: 월간이리 2014년 월호

물비 밀 동 툰Animal Toon by BEAMIL

* 2014년에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나름 위트있게, 뜨끔하게 쓰고 그린 짧은 만화를 기고합니다.

팩트를 뒷받침하는 기사와 간단한 의견도 함께입니다. 많이 공감해주세요. 제보도 감사합니다. twitter@ / _beamilie

* 분양이라는 단어는 ‘상품 혹은 물건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 아파트, 건물, 토지 등 물건을 사고 팔 때 쓰는 말이다. 물건을 사고 판다는

의미의 ‘분양’이라는 말을 무심코 쓰기 전에, 앞으로 평생 함께 할 가족을 맞이한다는 뜻의 ‘입양’이라는 표현을 생각해 보자.

* 동물에 대한 세상의 보편적인 인식이 좋아졌다고 하는 것은 늘 강조해도 지

나치지 않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긍정적인 사실에 비례하여 정보지식도 향상

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늘어나는 반려동물 인구의 소수만이 많은 정보를 정

확하게 선택하여 받아들이죠. 입양을 할 때, 키우는 동안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도 우리는 정보를 선택해 받아들이는 공부를 해야합니다.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반려동물 인구가 많아질수록 고통받는 동물들도 많아질

것입니다. 시작은 분양을 받아야 하는지, 입양을 해야하는지부터 입니다. 말 그

대로 분양은 동네마다 흔히 볼 수 있는 애견센터같은 업체에서 돈을 지불하고

‘구매’를 하는 것입니다. 입양은 지인이나 인터넷의 정보를 통해 내가 이 아

이를 평생 책임지겠다는 약속, 소정의 ‘책임비’만을 지불하고 함께 살게 되

는 것입니다. 상상해봅니다. 애견센터에서 구매하여 5분 거리의 집으로 데려와

바로 함께할 수 있는 분양과 몇 일, 길게는 몇 달을 믿을만한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서(동물보호협회 포함) 느낌만으로 나와 맞는 반려동물을 발견해 찾으러 가

야 하는 입양. 분양에 비해 입양은 절차가 복잡하고 귀찮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측의 글을 통해 분양의 이면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친구들은 제게 웃으며 말합니다. ‘먼치킨을 키우고 싶어.’ ‘요즘은 웰시코

기가 대세라던데.’ 너무 몰라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친구들에게 저는 늘 어디

서부터 설명해야할지 몰라 쩔쩔 매곤 합니다. 입양 동물들 중에서 내가 찾는 품

종동물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반려동물 인구가 많아진 지금 품종

동물조차 이러저러한 이유로 많이 버려지기 때문에, 조금만 시간을 할애하여 준

비한다면 곧 가족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찾는 도중에는, 이미

품종동물따위 안중에 없어져 버리기도 한답니다.

평생 철창에 가둬져 죽을 때까지 새끼만 낳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종자견, 종자묘라고 합니다.

평생이라고 해봤자 더러운 물과 사료만 먹으며 씨를 주사받아 새끼를 낳고 또 낳고만 반복하는 동물들은 금방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짧은

생을 지옥에서 보내는 것이지요. 게다가 그런 일을 하는 개장수들은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가 아니기에 동물에 대한 지식이 없을 수 있고, 폭력

적이기도 합니다. 그런 번식동물이 아플 때는 돈이 들기 때문에 절대 치료해주지 않고, 안락사시킵니다. 탄생과 죽음, 죽음과 탄생… 아이러니

합니다. 지옥에서는 매일 죽음과 탄생이 반복됩니다. 그렇게해서 죽은 번식동물들은 한쪽에 쌓여있다가 버려지거나 보신용으로 팔려갑니다.

아니, 몇 해 전 충격적인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개장수들은 그렇게 죽은 개를 그 자리에서 요리해 먹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

는 우리가 잠깐 대문을 열어놨다가 잃어버린 초코, 부모님의 의견을 꺽지 못해 시골에 버리고 온 누리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발견된 유기

견들이 개장수에 의해 번식농장으로 잡혀가거든요. 수시로 눈에 밟히는 고양이들 또한 그렇게 잡혀가고요. 그렇게 눈에 띄는 유기견, 유기묘들

중 체구가 작은 아이나 품종이 있는 아이 등은 개장수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입니다. 몸집이 작고 품종이 있는, 예쁜 새끼가 나와야 하니까요.

운이 좋은(좋다고 해야할까?!) 녀석들은 좋은 사람에 의해 입양되기도 하지만 계속 새끼를 낳았던 이력때문에 자궁이나 배에 큰 병이 있거나

늘 철창속에서 앉아있었다는 이유로 다리를 못 쓰기도 합니다. 이렇게 공장에서 경매를 통해 애견샵으로 팔려가는 새끼들은 엄마와 생이별을

해야하고, 애견샵에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립니다. 그런 환경에서 살던 엄마 배에서 나왔기 때문에 건강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지만, 오히려 입

양이 된 집에서 그 사람들의 정성으로 건강해진답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요. 하지만 애견샵으로 팔려갈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새끼들은 태어

나자마자 죽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도 우리는 편리함을 위해 애견샵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애견샵의 후광에 가려진 녀석들

은 사실 무척 어두운 이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시면 어떨까요..

대학병원 근무 시절 병원에서 ‘유린’이라는 시츄를 키운 적이 있다. 양쪽 뒷다리가 오그라들어 엎드린 채로 오줌을 싸는 아이라 ‘유린

(urine, 소변을 의미하는 영어 표현)’이라 불렀다. 유린이는 번식농장에서 종모견으로 살던 개였다. 고관절도 무릎도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다른 시츄보다 체구가 작아 상품성이 있다는 이유로 종견이 되었다. 일년에 두 번씩 계속해서 새끼를 낳고 산후조리도 못한 채 갇혀만 살던

유린이는 결국 뒷다리가 주저앉은 채로 오그라들었고,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새끼를 낳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번식농장 동물들은 유린이처럼 농장의 케이지(번식장)에 갇혀 살면서, 바깥으로 한 번도 나와보지 못한 채 새끼를 낳다가 생을 마감

한다. 번식농장은 식용농장과 마찬가지로 환경이 열악하다. 애견샵에 들어오는 개들의 상당수는 그러한 번식농장을 통해 경매장에서 팔린 강

아지들이다. 쉽게 돈을 주고 동물을 거래하는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어두운 그늘에서 이런 일들은 무한정 반복될 것이다.

한 때 방송을 통해 일부 애견샵에서 병이 있는 개, 고양이를 파는 등의 문제점이 알려지면서 가정에서 키우던 동물의 새끼를 입양하려는 사람

들이 늘어났다. 흔히 이를 ‘가정분양’이라 하는데, 이 경우 입양할 동물의 어미를 확인할 수 있고 어미와 떨어질 수 있는 시기가 될 때까지

아기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주의할 점은 있다.

분양자의 집을 방문하게 되면, 어미와 아이들이 지내고 있는 공간을 확인해 보자. 실내에서 사람과 자연스럽게 접촉하고 생활하는 법을 어릴

때부터 익힐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물론 분만한지 얼마 안 된 어미들은 낯선 사람을 경계할 수 있다. 또, 여러 마리의 동물을 한꺼번에 돌

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집안을 돌아다니지 못하게 제한해 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예 실내 생활공간과 격리하여 동물을 기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반려동물들은 묶이거나 갇히지 않고, 실내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최소한 강아지나 고양이의 잠자는 곳과 용변하는 곳은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신문지나 지푸라기 등을 바닥에 깔아놓고 좁은 공간

에서 뒤엉켜 지낼 경우, 강아지는 용변을 볼 때 정해진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해 입양 후 배변 훈련을 가르치기 힘들어진다.

자신이 사랑으로 키운 동물에게서 태어난 자식을 보내는 것은 애틋한 일이다. 그러므로 어미를 대신하는 마음을 가진 브리더라면, 입양을 희망

하여 찾아 온 사람들에게 자신을 자랑하기보다는 질문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입양 전에 동물을 키워본 적이 있는지, 가족구성과 환경은 어떤

지 궁금해 하고, 평생을 잘 키워줄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게 될 것이다.

꼭 전문 브리더가 아니어도 된다. 지나치게 품종의 외모에 집착하거나 엄격한 브리더는 피하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지가 아니다. 자신이 키우는 동물도 사랑으로 길러내고 있음을 자신있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네이버 캐스트[애완/반려]

어린동물을 입양할 때, 어디서 어떻게?

- 33세, 최OO (종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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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7: 월간이리 2014년 월호
Page 8: 월간이리 2014년 월호

계층의 폐쇄성을 말하다: 해무, 한국판 힐빌리1) (Hillbilly) 영화?

(스포 일러 많음)

영화로 보는 시공간. 글. 곡주대비 ([email protected] / [email protected])

올 여름 네 편의 ‘블록버스터’가 한 주 간격으로 개봉했다. 군도, 명량, 해적 그리고 해무. 이 네 편의 공통

점이 있다. 마치 하층 계급이 화자가 되지 않으면 현세를 저버리기 라도 한다는 듯이 민초들의 애환(?)

을 다룬다는 것이다. 이번 호 영화를 일단 살펴 보자면 봉준호 제작, 심상보 감독의 해무는 선원들의 이

야기다. 만선을 꿈꾸던 선장이 배가 폐선될 위기에 몰리자 그는 돈을 위한 밀항을 감행하고, 그 과정에서

배를 지키고자 홀로코스트에 가까운 살상을 자행하게 된다. 그의 지휘 아래 있던 다섯명의 선원들까지도

그의 광기에 동참한다.

영화가 진행 되면서 초반에 그려졌던 다소 훈훈하

고 코믹한 선원들의 모습들은 온데 없이 사라지고

캐릭터들은 다소 지나치리만큼 빠르게, 그리고 극

단적으로 이성을 잃고 서로를 살육 하기에 이르게

된다.

이 영화의 주목할 만한 점은 이른바 ‘기득권’ 이 등

장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혹은 매우 미미한 역할로

기존 하류층이 주가 되는 영화들처럼, 예를 들어 숨

바꼭질에서의 손현주 분의 고소득 강남 부자 vs. 재

개발 구역 사람들, 김복남 살인사건에서의 김영희

분 과 금융회사에서 성공한 그녀의 친구, 계층의 대

립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채우

고 있는 것은 계류는 무엇일까.

굳이 비교해서 설명 하자면 혹자는 오우삼 감독의 “

첩혈쌍웅”을 폭력미학의 전형이라고 명명 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로직으로 해무는 야만함 (barbarianism) 의 미학이 지배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놀랍게도, 해무처럼 이른 바 하류층의 야만함, 혹은 비상식성이 하나의 장르적인 요소로 영화를 끌어나

가는 예는 무척이나 많다. 영화학에서 이러한 영화들을 Hillbilly 장르 (하위장르) 라고 명명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Deliverance 에서 등장하는 미국 남부지역의 작은 마을 사람들 (결국 이들은 도시에서 온 4명

의 청년을 집단 강간 한다), 좀 더 극단 적으로 가면 Texas Chainsaw Massacre 에서 텍사스 시골 동네의

살인마 (도시에서 온 대학생들을 주로 살인 대상으로 삼는다) 등이 그 대표적인 영화들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에서의 힐빌리 장르의 등장은 국가적인 냉전 체제가 무너지면서 사회적인 긴장이나 관심이 계층으

1) 힐빌리 (Hillbilly or hillbillies) 는 미국, 주로 남부지방의 교육의 지식이 낮고 저소득층의 백인 하류 계층을 경멸하며 일컫는 말이다.

Page 9: 월간이리 2014년 월호

로 내면화 되고 70년대에 접어들면서 많은 영화들이 이러한 class tension (계급갈등) 을 미국안에서도 특

히 소외 받던 남부지방의 저학력, 저소득층에 대한 야만적인 캐릭터화로 드러난 것이라고 영화 학자 Robin

Wood 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2000년대에 등장한 일련의 한국판 힐빌리 영화들, 앞서 언급한 숨바꼭질, 김복남 살인사건, 혹은

극락도 살인사건, 그리고 올해 개봉한 해무에 이르기 까지 우리는 이런 영화들을 어떤 사회적인 맥락에서 짚

어 낼 수 있을까. 왜 무산계급은 이토록 저열하고, 동물적이며 야만하게 그려지는가.

그 답을 우리는 이 영화들의 또 다른 공통점인 계급의 공간화, 공간적인 폐쇄성 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야만한 자들’은 섬이나, 극빈자 아파트, 배 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주류들이 부데 낄까 언짢아 하지 않아도

될 고립된 공간에서 그들만의 사회를 구성하는데 영화적인 갈등의 시작은 대부분 이러한 폐쇄성이 어떠한

침입자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이다. 김복남 살인사건이나 극락도 살인사건에서는 도시인이 섬에 오

게 되면서, 숨바꼭질에서는 빈민 계급이 도시로 넘어오면서 모든 캐오스가 시작된다. 해무에서는 흥미롭게

도 조선족 이민자들이 한국으로 밀항을 오게 되면서 모든 경계가 무너지는데, 예를 들어, 밀항되어 오는 조선

족 한 명에 의한 불평 (주로 자신들이 배에서 겪는 처우에 관한) 이 선장의 폭력성, 그리고 그를 따르던 선원

들의 집단적인 비인간성의 기폭제가 된다. 조선족이라는집단의 침투는 저학력, 저소득의 선원들 에게도 사

회적 불안감의 소지이고 그들의 처단은 그들의 (배 안에서의) 사회적인 평정을 위해 필수불가결 한 것이다.

따라서 계급의 이동은 사회악이다. 그것은 집단적인 불안 (collective anxiety)을 초래하고, 그에 따른 (영화

적인) 결론으로는 침입자에 대한 (transpasser) 처단일 것이다.

영화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너무 급작스럽게 산으로 가는 감이 없진 않지만 난 해무가 좋은 영화라고 생

각한다. 다소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는 캐릭터의 비약을, 그리고 얼버무리듯 끝내버리는 결말을 제외하면 ‘

계급간의 폐쇄성’이라는 버거운 주제를, 더군다나 1998년 금융위기 라는 예민한 시대상을 후경 (배경이라

하기엔 그 레퍼런스가 미약하므로) 으로 오락영화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은 채 잘 풀어내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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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원:

“저 여자를 관찰하시오. 개입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다

목격하고 있소.“

박민욱 검사는 ‘이영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물론 이

대사는 웹툰에서의 대사이지만, 영화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박검사의 말처럼 영화에서의 영지는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영지는 표면적으로 볼 때 ‘

관찰자’로 보여 진다. 하지만 엔딩 장면을 보고 나니, 이 여자

굉장히 수상하다. 약 세 시간 가까이 류해국과 마을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 채 가쁘게 달려왔던 이 영화의 마지막 컷의

주인공은 어쩌다 영지가 되었을까.

영화의 후반부, 결국 이장의 자살로써 영화는 끝을 맺는

듯하다. 하지만 감독은 우리에게 정말 이대로 영화가 끝이

날 것인지 되묻는다. 이는 해국과 영지가 서로를 쳐다보는

엔딩 장면에서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엔딩 장면을

살펴보자. 사건이 일어났던 마을로 다시 올라간 해국은

마을을 재건설하고 있는 영지를 올려다보며 웃는다. 영지

또한 해국을 내려다보며 웃는다. 이내 해국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는데, 그때의 화면 안으로 끼어든 영지와 해국의

통화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 또한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된다. 류목형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영지는 이렇게 말했다. “오셔야겠죠?” 이때 웃고 있는 영지의

클로즈업 컷에서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엔딩 장면에서 나는 인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캐릭터의

영지를 보게 되었다. 대체 영지는 어떤 사람인가. 또한 나는

영지를 통해 류목형과 이장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영지는

마을을 구원하려고 했던 류목형의 또 다른 모습일까. 아니면

자신에게 복수를 가르쳐준 이장의 또 다른 모습일까. 결국

이 영화는 선과 악이 명확하게 나눠져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 경계가 굉장히 모호한 영화다. 웹툰과는 달리

이장의 캐릭터는 영화에서 좀 더 일상적으로 묘사된다. 특히

요구르트를 먹는 장면에서의 이장은 웹툰에서의 이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선택은 우리에게 있다. 박검사의 말처럼 영지를 다시

관찰해보자. 우리는 영지를 통해 영화를 어떻게 다시 볼 수

있을까.

곡주대비 ([email protected]) :

필자가 다루고 싶은 것은 이 영화를

둘러싼, 철저히 원작을 근거로 한 혹평 (

담론) 들이다. 이 코너를 위해 리뷰들을

보았는데, 모두 윤태호의 ‘웹툰의

디테일을 살리지 못한다’ 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묻고 싶다. 이끼는 원작만 못하기 때문에

졸작인가?그렇다면 각색된 영화들은

반드시 원작을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하는가. 물론 이끼는 잘 만든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엔딩에 대한 개연성도,

스릴러에 맞는 카메라 워크의 역동성도,

캐릭터들에 대한 설명도 부재한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평론이 원작과의

비교/대조 에 못 미쳤던 기대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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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주대비 ([email protected]) : 실망, 혹은 원망이 주를 이루었다는 것 때문에 강우석의 이끼에 대해 변론을 하고 싶게 만든다.

원작 (주로 문학)을 각색한 영화를 평가하는 방법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영화가 원작의 텍스트를 성실히 옮겨놓았는가, 혹은 원작의 분위기를 최대한 영화적으로 재현했는가 (‘fidelity’

즉, 충실성 의 관점) 이며, 2) 각색된 영화가 얼마나 창의적으로 원작을 비틀어 놓았는가이다. 다시 말해 영화적

재현이 원작을 그대로 옮겨오는데 지나지 않는다면 이는 좋은 각색이 아니고, 카피에 가깝다는 것이다

‘충실함’이 기준이 된다면 모든 각색 영화는 실패작이다. 100%의 재현이 어찌 가능하단 말인가? 또한 수많은

관객들, 혹은 독자들이 단순히 이미 아는 작품을 영화가 ‘얼마나충실히’ 그려내는 지, 그 동일성에 자신들의 돈을

소비하겠는가?

그러므로 영화 이끼에 무참히 쏟아졌던 원작과의 비교에서 온 혹평은 단순히 이 작품이 원작보다 못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영화 이끼가 단순히 만족스럽지 못한 영화였기 때문에, 그러한 불만족이 (상대적으로 나은)

원작을 회자하게 했던 원인일 것이다. 좀 더 전문적으로 풀자면 원작 각색에서 더 중요한 것은 fidelity 보다

intertextuality (상호텍스트성) 이고 이끼는 텍스트의 상호성 (만화에서 영화) 을 극복하지 못한 이도 저도 아닌

작품으로 혹평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강우석의 이끼는 강우석의 이끼를 기반으로 평해졌어야 옳다. 이작품이 원작의 ‘싱크로율’ 에 지배적으로 기초한

담론에서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영화

돌려

깎기

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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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xx

한줄정리: 어디서 옛사랑을 노래하는가?

나는 원작이 있는 작품이면 가능하면 원작을 먼저 보려고

애를 쓴다. 차이를 확인하고 싶기도 하고 영화에 뭐가

들어가고 빠지는지를 알아 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를 다 그렇게 보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영화를 먼저 보게 되는 경우도 있고 영화를 보고

정보를 검색해 보다가 원작을 알게 되어 찾아보는 경우도

있다. 영화 골든슬럼버가 그랬다. 그때 그때 다르지만

가능하면 둘 다 챙겨보려 한다. 그래서 이달의 글을 쓰기

전부터 이 글은 원작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야지 싶었다.

그러니까 그 즈음 글의 구상은 ‘감독은 컷까지 그려놓은

원작자에게 얼마나 빚을 진 것일까?’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코너를 함께 준비하는 다른 필자들이 만화를

보지 않고도 충분히 할 이야기가 있다는 말에 나는 나의

글감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마치 옛 애인을 잊지 못해

애써 투영시키려는 사람처럼 나만 이 영화를 그렇게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자, 그럼 여기서 부터는 작품이 아니라 나의 기시감이

문제이다. 잘잘못은 영화가 아닌 나의 눈과 뇌에 있다.

이것을 혼동하는 순간 나는 이 영화에 대해서 ‘이상한’

아니, ‘괴상한’ 글을 쓰게 될 지도 모른다. 이것을 깨달은

이후 나는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어서 먼저 외부의 평을 살펴보았다.

관객 평을 살펴보면 ‘이끼’라는 영화만을 본 일반 관객들은

대부분 이 영화를 칭찬하고 있다. 그런 걸 보면 이 영화는

괜찮게 만들어 진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이 쉽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를 고르고, 이야기 하고 추천하는 것을

목표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니 이미 영화 ‘이끼’는 나의

기준에 걸맞는 작품임을 스스로 증명하였고 나는 그냥

동의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나도 괜찮게 봤으니

그래, 우선 추천을 하고 보자. 여러분도 그냥 재미있게 볼

수 있으리라.

그래도 나는 모순된 말을 지껄이며 글을 맺는다. 만화를

먼저 보라고. 그 둘은 몹시 닮아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덜 깎여나간, 감독이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한 만화의

맛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어디서 옛사랑을 노래하냐면

여기서, 바로 내가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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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문학이 필요한 시간 - 허균「통곡헌 기」

이번호에서는 예고했던 고려시대 가전체 문학 『공방전』이 아니라, 허균의 『통곡헌 기』를 보고자 한다.

사실,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고작 포털 사이트 헤드라인 기사를 읽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김수영의 시를 읽어주며 이 나라가~~ 이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문득 부끄럽게 여겨진 이유는 최근 확산되고 있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보고 나서이다. 아이돌 가수들, 연예인들이 얼음물을 뒤집어쓰며 인터넷을 도배하고, 그 와중에 속옷 노출 아찔, 이런 병 맛 기사들과 세월호 특별법속보 기사가 겹쳐지며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정치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았다. 무식함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솔직하게 살아야지.’가 삶의 좌우명인데 허세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작품을 다시 골랐다. 내가 말 할 수 있는 선에서, 되도록 병 맛 기사 같은 글이 되지 않아야......

허균의 작품 『통곡헌 기』는 수필이다. 고전수필은 작가의 체험 속에서 사회 비판적인 생각

국가의 일은

날이 갈수록

그릇되어 가고,

선비의 행실은

날이 갈수록

허위에 젖어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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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담아낸다. 따라서 고전수필은 작가의 성향을 쉽게 읽어 낼 수 있다. 허균의 사회 비판의식은 그의 스승 ‘이달’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달’은 뛰어난 재주와 빼어난 글씨를 자랑한 당대의 문장가였지만,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세상에 나아가 자신을 뜻을 펼치지 못한 불우한 인물이었다. ‘이달’은 평소 양반 사대부 중심의 권력과 신분 사회에 대한 비판을 꺼리지 않았는데, 이러한 점이 허균에게 자연스레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허균은 탁월한 재능을 지닌 ‘이달’을 통해 신분 및 적서 차별의 모순을 뼈저리게 통감하면서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 의식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점은 우리가 함께 읽어 볼 ‘통곡헌 기’에도 잘 드러나는데 새 집에 ‘통곡헌’이라는 이름을 내건 조카 허친의 행동을 비웃는 사람들에 대한 나무람, ‘나라가 어지럽고, 양반의 행실은 도를 넘어 서고, 파당을 지어 싸우느라 의(義)가 사라져가는 세태에 대한 비판, 그리고 중국 고사에 인용된 인물들이 오늘날 세태를 보면 통곡도 할 수 없을 지경이라는 신랄한 현실 인식은 바로 현실에 대한 허균의 비판 의식을 드러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허균 하면 가장 많이 아는 작품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인데, 오늘 함께 읽어 볼 작품이 유익했으면 한다.

내 조카 허친이 집을 짓고서는 통곡헌(우는 집)이란 이름의 편액(방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을 내다 걸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크게 비웃으며 말했다.

“세상에는 즐길 일들이 얼마나 많거늘 무엇 때문에 곡(哭)이란 이름을 내세워 집에 편액

을 건단 말인가? 곡이란 상(喪)을 당한 자식이나 버림받은 여인이 하는 행위가 아니던가.

세상 사람들은 그런 곡소리를 몹시 듣기 싫어한다네, 남들은 기필코 꺼리는 것을 일부러

가져다가 집에 걸어두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그러자 허친이 이렇게 대꾸하였다.

“저는 이 시대가 즐기는 것과 등지고 세상이 좋아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이 시대가 환락

을 즐기므로 저는 비애를 좋아하며, 이 세상이 우쭐대고 기분 내기를 좋아하므로 저는 울

적하게 지내렵니다. 세상에서 좋아하는 부귀나 영예를 저는 더러운 물건인 양 버립니다.

오직 비천함과 가난, 곤궁과 궁핍이 존재하는 곳을 찾아가 살고 싶고, 하는 일마다 반드시

이 세상과 배치 되고자합니다. 곡을 하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행위입니다. 이를

능가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곡이란 이름을 내세워 제 집의 이름을 삼았습니다.

단락을 나누어 살펴보자. 처음에 제시된 부분은 조카의 이야기 이다. 허균의 조카 허친이 집을 지어 편액을 걸었는데 자신의 집을 “통곡의 집”이라 명명하였다. 사람들은 이것을 의아하게 여기고 심지어 비웃기까지 했다. 운다는 것은 슬픈 일이 있을 때 이다. 우리는 즐겁게 살고자 함이 삶의 목표인데 굳이 집의 이름을 통곡이라 할 필요가 있겠냐며 말하는 그들에게 허친은 역설적인 대답을 한다. 세상이 우쭐대고 즐거움만 찾으니 자신은 곡을 하기 위해 이렇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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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하는 것에도 도(道)가 있다. 인간의 일곱 가지 정[七情, 희노애락애오욕] 가운데 슬픔

보다 감동을 일으키기 쉬운 것은 없다. 슬픔에 이르면 반드시 곡을 하기 마련인데, 그 슬픔

을 자아내는 사연도 복잡다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사(그 당시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회

적 사건)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이 진행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여 통곡했던 가의

(중국 문제 때의 학자 · 정치가로, 유학과 오행설에 기초를 한 새로운 제도의 시행을 주장

함)가 있었고, 하얀 비단실이 본바탕을 잃고 다른 색깔로 변하는 것을 슬퍼하여 통곡했던

묵적(중국 춘추 전국시대 노나라의 사상가 · 철학자로, 유가에게 배웠으나 무차별적 박애

의 겸애를 설파하고 평화론을 주장하여 유가와 견줄 만한 학파를 이룸)이 있었으며, 갈림

길이 동쪽 · 서쪽으로 나 있는 것을 싫어하여 통곡한 양주(중국 전국 시대의 학자로, 노자

사상의 일단을 이은 염세적 인생관으로 자기중심적인 쾌락주의를 주장함)가 있었다. 또

막다른 길에 봉착하게 되어 통곡한 완적(중국 위나라의 사상가 · 문학자 · 시인으로 노장

의 학문을 연구하였으나 정계에서 물러난 후, 술과 청담으로 세월을 보냄)이 있었으며, 좋

은 시대와 좋은 운명을 만나지 못해 스스로 인간 세상 밖에 버려진 신세가 되어 통곡하는

행위로써 자신의 뜻을 드러내 보인 당구(당나라 중엽 시인. 비통한 내용의 시문을 보면 읽

고 나서 반드시 곡을 하였고, 당시 사람들 사이에 울기를 잘한다는 말이 나돎.)가 있었다.

그분들은 모두가 깊은 생각이 있어서 통곡했을 뿐, 이별로 마음이 상하거나 남에게 굴욕

을 느껴 가슴을 부여안은 채 통곡하는 아녀자를 흉내 내지 않았다.

그분들이 처한 시대와 비교할 때, 오늘날은 훨씬 더 말세에 가깝다. 국가의 일은 날이 갈

수록 그릇되어 가고, 선비의 행실은 날이 갈수록 허위에 젖어 들어가며, 친구끼리 반복하

여 제 이익만을 추구하는 배신행위는 길이 갈려져 분리됨보다 훨씬 심하다. 또 현명한 선

비들이 곤액(몹시 딱하고 어려운 사정과 재앙이 겹친 불운)을 당하는 상황이 막다른 길

에 봉착한 처지보다 심하다. 그러므로 모두들 인간 세상 밖으로 숨어 버리려는 계획을 도

모한다. 만약 저 여러 군자들이 이 시대를 직접 본다면 어떠한 생각을 품을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통곡할 겨를도 없이, 모두들 팽함(은나라 때의 충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신의

직언이 통하지 않자 스스로 물에 빠져 목숨을 다함)이나 굴원(초나라 재상으로 모함을 받

아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다가 멱라수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음.)이 그랬듯 바위

를 가슴에 안고 물에 몸을 던지려 하지나 않을까?

는 것이다. 곡을 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 것은 다분히 역설적인 발상으로, 세상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내세움으로써 효과적으로 세태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어리둥절한 사람들과 이런 일화를 들은 허균이 마침내 이렇게 이야기를 덧붙인다.

허균은 중국 고사에 나오는 인물들을 열거하며 허친이 왜 ‘통곡헌’이라고 편액을 걸었을지, 그 이유를 비웃는 사람들에게 덧붙여 설명해 주고 있다. 불우한 시대를 맞아 비극적 삶과 죽음을 맞은 가태부, 묵적, 양주, 완적, 당구 등의 예를 들어 ‘통곡의 도’에 대해 말한다. 이들은 인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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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정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맞아 통곡을 한, 위대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살았던 시절과 비교했을 때 허균이 살았던 당시는 더 불우한 시절이다. 이러한 시절을 맞아 통곡하고 싶은 심정에서 ‘통곡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허친의 뜻을 허균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허균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슬픔이란 개인적인 것이든 공적인 것이든 공감과 돌봄, 소통. 그 지극한 마음자리에서 휘몰아치는 물결임에 분명하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는 이 지극한 슬픔을 겪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사람들은 지겨워하고 있다. 그들은 특혜를 원하고 있다고. 얼마나 돈을 더 받고 싶은지. 유족들의 외로운 투쟁은 갑자기 보상을 바라는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이 사건은 슬픔과 안타까움이 깊어 가지만 제대로 슬퍼하는 자들은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대로 울 수조차 없도록 몰아붙이는 귀 닫고 눈을 가린 사회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잃었다. 원인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정부는 왜 원인을 시원하게 밝혀주지 않는가? 어떻게 세월호는 화물 과적을 할 수 있었는가, 왜 이렇게 감시체계가 허술한가? 유병언이 죽었다. 언론은 그만 잡으면 되는 것처럼 떠든다. 그만 아니면 앞으로 이런 사고가 안나나? 똥 같은 사건과 똥 같은 사후 처리, 정보의 공해』

아직도 못 찾은 가여운 실종자들과 함께 무려 130일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즐거워한다. 취지를 알고는 하겠지만, 글쎄. 지금 우리는 그 얼음을 뒤집어 쓸 때가 아니라 얼음장 같은 물속에 있는 그들을 더 걱정해야 한다.

허친이 통곡한다는 이름의 편액을 내건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통

곡이란 편액을 비웃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내 말을 듣고, 비웃던 자들이 “잘 알았습니다.”라며 물러났다. 오간 대화를 정리하여 글로

써서, 뭇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심정을 풀어주고자 한다.

허균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뭇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심정을 풀어주기 위해서’라고 마지막에 제시하고 있다. 현실 비판 의식이 강한 작가의 성향으로 볼 때, 이는 글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지금, 우리도 울어야 한다. 아니 정말 울부짖어야 한다. 이제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좀 더 정확한 유족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안 들리는 척, 내 일이 아니니. 라는 생각을 버려야겠다. 내 가족에게 일어 날 수 있는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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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시간에는 다시 현대시로 넘어와 김남조의 「편지」를 읽어보자. 지각하면 보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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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창 식 을 , 잘 알지도 못하면서 - 창작론

아직까지도 불리는 불후의 명곡들을 수시로 세상에 가지고 나왔던 송창식은 어떤 식으로 곡을 만든 것일까.

몇 달 전, 나는 ‘쏭아’에서 서정주의 시로 만든 <푸르른 날>을 신청해 들을 수 있었다. 전성기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공연장을 우렁차게 가득 채우기에 충분했다. 그는 노

래를 부른 뒤 이런 말을 했다.

“서정주 시인이 인천의 무슨 고등학교 문학의 밤 때 오셔 가지고 강의를 했는데, 시상에 대해 말씀해 주셨어요. ‘시상이라는 게……. 그렇게 감정이 아주 격해서 좋은 감정일 때는 그냥 그걸 가지고 시를 쓰지 말고 자꾸 자꾸 압축해서 가슴 속에다 요만한 알맹이를 만들어 넣어 둬라. 그러고 나중에 편안할 때, 책상 앞에 앉아서 그 알맹이를 꺼내서 시를 쓰는 거다.’ 제가 그때 중학생이었는데 그 말씀이 아주 감동적이었어요. 그래서 나도 곡을 그렇게 썼어요. 곡을 쓸 때 아주 감정이 격할 땐 곡을 쓰지 않고 아주 차분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옛날에 그 감흥을 되살려서 곡을 쓰곤 했습니다. 물론 가사도 그렇게 쓰고. 그래서 그분께 참 특별한 감정이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노래도 만들어 드린 거예요.”

과잉된 격정보다는 절제된 감정에서 미덕을 찾았으리라. 그럼에도 그는 곡마다 아무렇지 않게 큰 울림을 선사해 줬다.

그와의 인터뷰도 기억난다. 공식적인 질문이 거의 끝났을 때 나는 소설가의 입장에서, 대중적인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생님처럼 어떤 작전을 써야 하는지, 창작하는 입장에서 조언을 좀 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작전이라는 것이 어떤 꼬투리를 잡은 게 아니라 내 배짱이랑 사람들의 배짱이랑 맞추는 작전을 쓴 거예요. (그 배짱을 어떻게 아신 거예요? 라고 묻자) 배짱을 잘 들여다보면 알지. 그걸 잘 들여다봐요. 그럼 알지. 우리나라 책 읽는 사람들의 배짱과 내 배짱이 어떤 공통점이 있나, 내가 쓸려고 하는 이지적인 방향으로 가지 않고 사람들의 배짱으로 가면 히트 작품이 나오는 거죠. 그렇게 자꾸 하다 보면 이지적으로 작전을 짰던 것들이 다 그런 방향으로 세워지고 나중에 같은 가치를 갖게 되는 거고. 점점점점. 그리고 그 배짱 맞는 인원수를 늘려가는 게, 말하자면 그 폭이 넓어지는 거죠.

그때 함춘호가 입을 열었다. “대중에 맞춘다는 게……. ‘한번쯤’, ‘왜 불러’ 만들기 전에 여러 앨범을 내셨다 했잖아요. 그게 다 머릿곡 올라와서 다 히트하신 거

잖아요. 그때 형님 말씀처럼 ‘야리야리’한 곡들을 대중들이 좋아했는데, 어느 정도 히트가 되고 그랬으니까 그게 대중들의 마

음을 읽을 수 있는 배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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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게 아닐까요?”그러자 송창식이 답변했다. “옛날에 ‘한번쯤’

나오기 전에 노래들은 내가 의도적으로 노래를 만든 거라구. 배짱을 맞춘 게 아니라. 그러니까 국한된 사람들, 배짱 맞는 사람들끼리만 모

여서 좋아한 거지. 근데 배짱의 폭을 넓힌 거란 말이야, 대중적으로 갈 때는.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노랠 만들 때 이렇게 만들어야지, 하고 머릿속에 작전이 있고 공부가

있고 고대로 만들었는데 ‘한번쯤’을 만들 때, ‘피리 부는 사나이’를 만들 땐 고런 게 아니었어요. ‘이렇게 만들어서 부르면 사람들이 요롷게 호흡하지 않나.’ 이런 식으로 만든 거지, 반대

로. 그러니까 그게 주인공이 되고, 곡을 쓰는 기술은 말하자면 써포터가 되버린 거지. 예전엔 곡을 쓰는 기술이 주인공이 되고 나머지가 써포터였는데, 그 후엔 거꾸로 바뀐 거죠. 그러니까 글도 쓸 때 보면……. 나도 예전에 글을 썼거든요? 학창 시절에? 그냥 막 마음에서 나오는 말, 쓸데없이 지껄이는 것들을 써 본 적이 있어요. 주제도 없이. 근데 그럴 때 너무 너무 친구들이 좋아해요. 내가 시를 쓴다 해도 시상을 가지고 쓰면 좋아하는 애들 몇 명 있고, 그렇지 않고 속에서 나오는 그냥 나오는 말, 단어가 없으면 ‘아!’, ‘어!’ ‘으악!’ 이런 식으로 쓰면 훨씬 많은 친구들이 동조를 했다고요. 그런 게 배짱이야. 말하자면. 우리끼리의 배짱. 근데 그런 거 가지고 세상에 나가면 안 되지. 세상 사람들은 훨씬 많은 배짱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 속에 어떤 배짱이 있나 잘 들여다보고. 저 사람들 하고 나하고 맞는 게 무엇인지를 봐야 해요. 똥창이 맞아야 되요. ‘나는 이거를, 이렇게 해서 음악을 만들겠다.’ 그 작전대로 밀고 나가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랑 똥창을 안 맞추면 그건 훌륭한 작품은 돼도 히트는 안 돼요. 그렇게 하려면 또 되는 방법이 있긴 해요. 분위기가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되면, 돼 있으면 히트해요. 그런 예가 옛날에 베토벤, 모차르트예요. 분위기가 이미 그렇게 돼 있었기 때문에, 문화를 갈구하는 분위기가 먼저 돼 있어서……. 최고의 천재를 다음 천재가 평론하고 또 다음 천재가 그걸 좋아하고 그럼 대중들도 점점 좋아하고……. 이런 사회적인 계층이 짜여져 있어 베토벤이 히트한 거죠. 그렇지 않았으면 히트 못했어요. 아무리 잘 쳐도. 슈베르트 봐요. 똑같은 천재지만 그런 계층 속에 있지 않았어요. 그 사람은 히트 못했어요. 그러니까 지금 현재 내 옆에 있는 무리들과 나하고 똥창이 가장 맞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그게 젤 중요하지, 작품 하려면. 근데 나도 곡 쓰다가 그렇게 된 걸 수도 있겠지만. 글도 쓰다보면, ‘주제를 생각해서 요렇게 쓰면 사람들이랑 맞을 거다. 사람들이 좋아할 거다.’ 이런 거 말고. 실지로 내가 좋아하는 착~맞는 이런 분위기와 문체와 문장과 표현력을 가지고 내밀었을 때 사람들이 보고 ‘나도 원하던 표현력이다.’ 그럴 때 좋아하는 거예요. 옛날에 보면, 최인호라는 소설가가 있었어요. 그 사람은 솔직히 내가 알던 헤르만 헤세 같은 순수 문학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과감하게 내가 쓰고 싶은 거, 사람들한테 요렇게 해서 책 좀 팔아먹고 싶어, 이렇게 썼다고. 그게 그냥 막 노난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 속에 문화성이 숨어 있고 이런 것들이 자꾸 게재돼 가지고 임상옥 같은 것도 쓰고 그랬잖

아요. 또 백제하고 일본하고 관계된, 그건 정말 잘 썼드만…….”

영업 비밀을 들은 기분이었지만 그대로 한다는 게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그처럼 애써 볼 작정이다. ……. 아, 머리야. 이럴 땐 세상에서 내 배짱

을 가장 잘 맞추는 그의 음악을 듣는 수밖에.

박재현(소설가)walrus1618.blog.me

Page 22: 월간이리 2014년 월호

게임 노동 일지 글. 그림. 철민

Page 23: 월간이리 2014년 월호

Makeup History : 현아

by 딤싸

오늘은 각 메이크업 용어를 각 문단별로 요약해두어 남성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음을 미리 밝힌다. 현아 편이니까.

ⓒ 큐브 엔터테인먼트

사람들이 섹시한 매력을 가진 여자들을 가지고 지독한 말을 던지거나,

설령 겉으로는 교양있는 말씨일지라도 뾰족하기 짝이 없는 속내로

그녀들을 ‘평가’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시함은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아이템이고, 무대 위의 그녀들은 양날의

검인 섹시함을 가지고 위태로운 줄타기를 해왔다. 그런데 현아는 ‘빨개요’

에서 위태로운 줄타기 같은 거 모르겠다는 것처럼 “내가 제일 빨개”라고

외친다. 그녀의 입술에 발려진 새빨간 립스틱이 단순한 무대화장이 아니라,

그녀가 외치는 메시지처럼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현아는 데뷔할 당시 미성년자였으며, 당연하게도 처음부터 섹시함

’s pick

자체를 주 무기로 들고 나왔던 것도

아니다. 풋풋했던 어린 현아가, ‘

내가 섹시함의 지존’이라며 무대

위에서 빨간색을 외치기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오늘은 이러한

현아의 메이크업 변천사를 통해

현아가 이 시대의 섹시 코드들을

어떻게 변주해왔는지 알아보자.

1. 미성년자, 현아

원더걸스 활동 당시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했던 현아는 2009

년, 포미닛이라는 그룹으로 다시

데뷔하게 된다. 포미닛은 데뷔

때부터 자기 주장이 강하고

능동적인 콘셉트로 시종일관

신 나고 강한 비트의 음악을

선보여왔다. 데뷔곡이었던 ‘Hot

Issue’ 때부터 강렬한 훅을 무기로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느낌이었고,

패션과 헤어, 메이크업도 과감하고

톡톡 튀는 느낌으로 보여줬다.

구멍 뚫린 레깅스로 이때의

현아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메이크업도 구멍

뚫린 레깅스만큼이나 정신이

없었다. 알록달록한 캔디 컬러의

아이섀도를 눈 앞머리와 눈두덩(

아이홀) 군데군데 바르고, 불규칙한

인조 속눈썹을 듬성듬성 붙여준

아이 메이크업에서 시작해, 얼굴

정면부터 치크 컬러를 넣어준

후, 채도는 낮되 명도가 높은

핑크색이나 연한 살구색으로

입술을 도드라지게 발라줬다.

Page 24: 월간이리 2014년 월호

번역: 정신없는 화장을 했습니다.

‘Hot Issue’ 이후, 현아의 무대의상이나 메이크업은 짧은 스커트나 짙은 눈화장 등, 선정적이라고 본다면 꽤

선정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포미닛이라는 그룹 활동은 현아 개인의 섹시함보다는 그룹 전체의 강렬한

콘셉트를 더 앞에 내세운 연출이었기 때문에 “섹시 콘셉트”라고 하기에는 뭔가 핀트가 달랐다.

번역: 일단 열심히 하는 현아였습니다.

ⓒ 큐브 엔터테인먼트

2. 현아의 카리스마

2010년 1월, 현아는 포미닛 활동 종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솔로곡 ‘Change’로 돌아왔다. 사실 섹시함이 주된

콘셉트는 아니었고, 오히려 걸스 힙합이라든지 여성 래퍼로서의 파워풀한 콘셉트가 내세워졌던 무대였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녀의 골반 춤이 너무 과하게 섹시하다는 이유로 19금 판정을 받았고, 당시 미성년자였던 현아는

자신이 춘 춤을 볼 수 없게 됐다. (이론상으로는…) 화장은 진한 아이라인과 연한 색감 립스틱의 섹시한 공식을

따르되, 아이라인은 좀 둥글고 굵게 마무리해서 요염해 보이지 않도록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번역: Po파Wer워 래퍼 현아.

[...]

전문 보기 : http://idology.kr/1229

Page 25: 월간이리 2014년 월호

아이돌x힙합 (1) 아이돌 힙합의 이유

by 김영대

작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렸던 <KCON 2013>, 지드래곤이 미씨 엘리엇(Missy Elliott)을 불러내 자신의 신곡 ‘

닐리리야’를 함께 공연했던 장면을 흥미롭게 기억한다. 그리고 조금은 뜬금없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뮤직비디오를 떠올렸다. 그 누구도 아닌 본토 흑인들의 리스펙트를 한껏 받으며 힙합춤을 대결한다는, 당시로서는

판타지에 다름 아니던 희망을 투영시킨 그 뮤직비디오, 어느덧 그 댄서 중 한 명은 아이돌 왕국의 경영자가 되어,

그들이 만든 ‘아이돌’과 그의 세대들의 ‘아이돌’ 간의 콜라보를 성사시켰다. 그것도 힙합을 매개로. 20년만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를 위시한 90년대 초반의 아이돌 0세대(?) 이후를 가만히 떠올려 본다. 당시로서는

생소하게 아이돌 포맷으로 힙합-R&B를 오가는 범-블랙뮤직적 마인드로 새로운 길을 제시한 원타임, 또는 그

징검다리였던 지누션, 갱스터의 마인드를 학교 안으로 끌고 온 H.O.T.라든지 ‘Westside’의 정신을 댄스 가요의

한복판에 곧추세웠던 유승준까지. 아이돌에게 힙합이란 시작부터 가장 매력적인 인용과 탐구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2000년대 초반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태동, 소몰이 발라드와 솔로 댄스 아이돌들의 득세 이후 수면

아래로 침잠했던 이 기묘한 관계는, 그러나 빅뱅의 데뷔와 함께 다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원타임과 지누션의 유산 위에서 그룹의 정체성을 만든 이들은, 음악적으로는 일렉트로와 힙합의 경계를

적당히 오가면서도 이미지와 패션에 있어서 힙합의 요소를 거의 강박적으로 표방하고 있었다. 게다가 리더인

지드래곤이 힙합을 본령으로 내세워 본격적으로 ‘아티스트’를 표방한 건 그렇다고 해도, (로커로 변신했던

문희준처럼 장르 음악은 아이돌이 뮤지션적 정체성을 ‘과시’하기에 가장 유용한 틀이다.) 불과 두 장의 앨범 만에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공히 합격점을 얻어낸 것은 뜻밖의 전개였다. (빈지노, 허클베리-피 등 쟁쟁한 신진들을

제치고 블랙뮤직 웹진 <리드머>에서 “올해의 싱글”을 수상한 결과는 당시에 적지 않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돌 프로덕션에서 빅뱅, 그리고 지디의 성공은 중요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마치 EDM이 아이돌 음악에서

나름의 공식으로 변형 도입되었던 것처럼, 힙합은 아이돌 그룹의 주력 장르, 콘셉트, 혹은 이미지나 패션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새롭게 그 가능성이 타진되기 시작한 것이다. B.A.P, 블락비, 방탄소년단 등, 온도차는 있지만

어찌 되었건 힙합을 자청한 아이돌 그룹들의 본격적인 등장, 본격적으로 표방하지는 않지만 힙합의 요소들을

선택적으로 끌어다 놓은 엑소, 비스트 등의 보이밴드, 그리고 심지어 힙합 걸그룹의 잇따른 등장까지. 그 흐름을

흥미롭게 받아들이건, 혹은 마뜩찮게 여기건 이미 일정한 방향성은 설정이 된 셈이다.

아이돌과 힙합의 관계를 생각하는 중에, 필자가 최근 관심있게 읽은 두 개의 기사를 잠시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하나는 매거진 <아이즈>에서 김봉현, 딥플로우 등이 함께 한 아이돌 래퍼들에 대한 감정서였는데, 통상적으로

평가의 대상이라 여기지 않는 아이돌 래퍼들을 따로 떼어내어 그들의 장단점을 여과없이 지적해 낸 것은

역발상이라 할 만했다. (“지코부터 용준형까지, 랩하는 아이돌”, <아이즈>, 2014년 2월) 또 하나는 웹진 <

리드머>의 칼럼으로, 아이돌이 힙합을 표방함으로써 생긴 몇 가지 어두운 지점을 장르 음악 미디어 특유의

관점에서 꼬집고 있었다. (“힙합과 아이돌의 민망한 동거동락(落)”, <리드머>, 2013년 7월) 이 글들을 읽으며

나는 당연하지만 미뤄온 질문 하나를 새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아이돌에게 힙합은 어떤 의미인가? 힙합을

통해 그들은 무엇을 (불완전하게) 성취하려 하는가? 왜 그들은 (모순적이게도) 힙합에 천착하는가? 이 글은 이런

질문들과 연관해 아이돌들의 힙합 탐구라는 현상을 트렌드 추종, 이미지의 구축, 진정성의 탐구라는 키워드를

통해 접근해보고자 한다. [...]

전문 보기 : http://idology.kr/1150

Page 26: 월간이리 2014년 월호

아이돌 x 힙합

아이돌로지는 아이돌 x 힙합 특집을 진행했다. 아이돌은 왜, 어떻게 힙합을 차용하고 구사하는지, 아이돌과

힙합은 어떻게 우리 음악시장에서 함께 성장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양상들이 벌어지고 또한 어떤 성과를 낳고

있는지까지. 아이돌로지 필진들과 다양한 전문가들이 함께한 이 기획을 통해 아이돌 힙합과 힙합 아이돌의 모든

것을 만나본다. (링크 눌러집니다.)

(1) 아이돌 힙합의 이유 by 김영대 http://idology.kr/1150

(2) 가사 쓰는 아이돌 by 블럭 http://idology.kr/1157

(3) 경계지대 - 힙합과 아이돌 사이에서 by 블럭 http://idology.kr/1169

(4) 인상적 순간들, 두 개의 시선 by 별민, 맛있는 파히타, 하박국 http://idology.kr/1176

(5) [대담] 로보토미x하박국x아이돌로지 (1) http://idology.kr/1197

(6) [대담] 로보토미x하박국x아이돌로지 (2) http://idology.kr/1211

데뷔곡 이야기 : 레드벨벳

by 맛있는 파히타

레드벨벳 – 아이돌 걸그룹의 새로운 길

레드벨벳의 신곡 ‘행복’은 4명의 소녀들이 자기들의 행복의 비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내용이죠. 즉 기본적으로 이 아이들은 행복한 겁니다. “

너희들도 행복해지고 싶으면 나를 따라 하면 돼” 하는 식이죠. 조금 미묘한

부분이긴 한데, 행복과 만족의 자급이란 이들을 지난 세대의 걸그룹과

구분하는 하나의 척도가 된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말이죠, 소녀시대의 ‘

다시 만난 세계’ 같은 경우엔, 다시 만날 세계를 앞둔 두려움에 “변치 않을

사랑으로 지켜”달라고 하죠. 지금까지의 많은 걸그룹들이 리스너와의

짝사랑 관계를 설정해두고 사랑하는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거나 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겠죠.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많은 걸그룹들이 리스너들에게 끊임없는 구애를

해왔죠. 즉 아이돌 걸그룹이란 유사연애를 바탕으로 한다는 어떤 원칙에

충실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몇 년간 이런 도식은 너무 선명하게

적용되어 왔고, 최근의 경우엔 성적인 함의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

이슈가 된 경우도 많았죠. 이런 도식이 지속되며 굳어지다 보니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아 씬 자체가 정체되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레드벨벳 - 행복 (Happiness)

있었고요. ‘나를 가지지 못하면

네가 불행해진다’거나, ‘너를

가지지 못해서 내가 불행하다’거나.

행복과 만족의 자급이란 포인트는

여기서도 유효하죠.

Page 27: 월간이리 2014년 월호

하지만 레드벨벳은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음보가 터지는 소녀들인 거죠. 이들은 구애를 하지 않습니다. “사랑”

이라는 단어는 나오지도 않고, “너”라는 단어는 노래를 통틀어 단 한 번 등장할 뿐이죠. 리스너는 철저히 외부에

존재하고 이 소녀들을 바라보는 존재가 됩니다. 손을 내밀거나 사랑 고백을 하지 않는 소녀들이라니, 과거의

아이돌 도식으로는 상상하기 힘들죠. 저는 이게 굉장히 큰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

한편 ‘행복’이라는 것은 이 시대가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어떤 것이기도 합니다. 현실의 세계는 험하고 가차

없지요. 한국 사회의 아이들은 세상 물정을 익히기도 전부터 경쟁사회에서 살도록 던져지고 그런 프레임에서

죽을 때까지 벗어나기 힘들지요. 이 프레임 안에서 행복이란 누구나 꿈꾸지만 닿을 수 없이 먼 곳에 있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머니와 파워가 행복의 길이라고 하지만 레드벨벳은 행복은 바로 옆을 보면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어른과 아이들의 가치의 대립이란 건 아이돌 씬에선 자주 쓰여왔던 겁니다. 세대갈등이 아이돌의 단골

소재였던 때도 있었죠. 서태지나 H.O.T.까지 떠올릴 필요도 없이, 량현량하의 “학교에 안 갔어!”라는 외침이 준

임팩트가 지금까지 남아있는 걸 보면 말이죠. 어른들은 머니와 파워 같은 지루한 이야기만 하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라 상대조차 하기 싫은 겁니다. 다만 세대갈등이란 소재가 아이돌의 초창기 시절에나 존재하던, 지금은

잊혀진 것이라는 점은, 어쩌면 레드벨벳이 가져올 변화는 생각보다 클지도 모르겠다는 예상을 하게 합니다.

지금의 아이돌들이 어른 흉내를 내면서 성인들에게 손짓하고 있는 데 비해서 레드벨벳은 시치미 떼며 성인들을

밀어내고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아이들의 세상이라는 것은 지친 어른들에게는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곳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누구나

한때 지나왔으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니 말이죠. 재잘대며 웃어대는 소녀들을 바라보는 삼촌들의 표정은

아마도 사랑과 동경 그 자체일 겁니다. 끊임없이 구애하는 성인 지향의 아이돌들이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여기

있는 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행복하게 웃어주면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조차 행복해지는 것 아닐까요.

레드벨벳의 차별적인 포지셔닝,

그리고 그 파워는 이런 데에 있는

겁니다. 어쩌면 이건 새로운 세대의

시작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문 보기 : http://idology.kr/1256

ⓒ SM 엔터테인먼트

Page 28: 월간이리 2014년 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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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동걸 [email protected]!www.facebook.com/mapukiki

Page 29: 월간이리 2014년 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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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0: 월간이리 2014년 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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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1: 월간이리 2014년 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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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ūmaka ka ʻikena iā Hiʻilawe 쿠마카 카 이케나 이아 히일라베 Ka papa lohi mai aʻo Maukele 카 파파 로히 마이 아오 마우켈레 !2. Pakele mai au, i ka nui manu파켈레 마이 아우, 이 카 누이 마누 Hau walaʻau nei, puni Waipiʻo 하우 봘라아우 네이, 푸니 와이피오 !3. ʻAʻole nō wau, e loaʻa mai아올레 노 와우, 에 로아아 마이 A he uhiwai au, nō ke kuahiwi 아헤 우히바이 아우, 노 케 쿠아히비

4. He hiwahiwa au i nā ka makua헤 히바히바 아우 이 나 카 마쿠아 A he lei ʻāʻï, nā ke kupuna 아 헤 레이 아이, 나 케 쿠푸나 !5. Nō Puna ke ʻala, i hali ʻia mai노 푸나 케 알라, 이 할리이아 마이 Noho i ka wailele aʻo Hiʻilawe 노호 이 카 바일렐레 아오 히일라베 !6. Haʻina ʻia mai ana ka puana하이나 이아 마이 아나 카 푸아나 Kūmaka ka ʻikena, iā Hiʻilawe 쿠마카 카 이케나, 이아 히일라베

곡 해설!1. 모두가 Hi‘ilawe 폭포와 Maukele 계곡의 반짝거리는 저아래를 보네.

�����������������������������!2. Waipi‘o 계곡에서 시끄럽게 지저귀는 새들소리를 피하고 싶어라.

���������������������������������!3. 난 산속의 엷은 안개처럼 누구에게도 보이질 않는 존재

�������������������!4. 난 조상의 영예로운 레이(꽃 목걸이)이자 부모의 사랑의 결실이라네.

�����������������������������������������������������!5. Puna의 꽃향기가 Hi‘ilawe 폭포주변을 떠돌며 머무르네.

�����������������������������!6. 다시 한번 노래하자면, 모두의 시선이 Hi‘ilawe 폭포로 향하네.

�������������히일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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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2: 월간이리 2014년 월호

#6 아직은 재개발이 되지 않은 서울의 한 동네, 그들의 화분이 말해주는 것.

ⓒ NANGMANSPYletmeflywoo.tumblr.com

Page 33: 월간이리 2014년 월호

#6 아직은 재개발이 되지 않은 서울의 한 동네, 그들의 화분이 말해주는 것.

ⓒ NANGMANSPYletmeflywoo.tumblr.com

Page 34: 월간이리 2014년 월호

작곡가 b의 노트

<12cm 너머의 세계>

글. Composer B

1악장. 담배만큼 끊기 어려운 세계에 들어서다

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이 끝나가던 겨울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의 권유나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선

택에 의해 클래식 음반이라는 것을 처음 샀던 때 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청소년 음악회’

라는 컨셉의 연주회가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였고 나도 그 음악회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 곳에 처음

가서 듣게 되었던 음악은 핀란드의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67)의 관현악곡인

「핀란디아」1)였다. 나는 연주회가 끝난 뒤 집에 와서도, 다음날 잠에서 깬 뒤에도 음악이 주었던 감

동을 쉽게 잊지 못했다. 어린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날 밤의 기억을 되살려내고 싶었고 결국 옆

동네 백화점에 버스를 타고 가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음반코너에 찾아 가는 극성을 부리게 된다.

사실 이게 글로 써 놓으니 별 게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H.O.T나 S.E.S 같은 댄스가수들 아니면 거들

떠보지도 않을 것 같은 초등학교 3학년짜리가 쪼르르 들어와서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어딨어요?”

라고 물어보고 있는 상황, 이 얼마나 낯선 풍경이란 말인가.

무튼 그 음반을 소중히 안고 집에 돌아와 비닐포장을 뜯고 빤질빤질한 플라스틱 케이스를 열어 직경

12cm의 알판을 꺼낸 뒤, 작은 흠집이라도 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CD플레이어에 올려놓던 그 때

의 설렘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특별할 것도 없는 크기에 음향도 그저 그랬던 필립스 휴대용

오디오의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던 금관악기의 첫 울림은 나에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담긴 음반을 내 손으로 직접 골라 스스로의 귀로 확인하게 되는

그 과정이 안겨주는 쾌감이란!

그 음반을 시작으로 나는 레코드 수집(이라고 하기엔 아직도 디스코그래피가 좀 빈약하다)이라고 하

는, 한 번 시작하면 정말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수렁에 갇히고야 말았다. 물론 오디오 시스템에 빠지

는 것보다는 훨씬 덜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당시-90년대 후반-만 하더라

도 인터넷이 지금처럼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시기였고, 대부분의 정보 공유는 PC통신 동

호회나 그를 기반으로 한 오프라인 모임에서 이뤄지던 시기였다. 따라서 다 큰 어른도 아니고 혼자

서울 시내를 나가는 것도 힘에 부쳐하는 초등학생이 다양한 정보를 접하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

었을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반 년 전에 산 ‘월간 객석’ 같은 잡지 한 권을 토씨까지 외울 정도로 보

고 또 보거나, 졸린 눈을 비벼가며 밤늦게 EBS에서 해주는 클래식 프로그램을 비디오로 하나씩 녹화

해두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들이었다. 음반도 마찬가지였다. CD나 카세트테이프를

조금씩 사서 모으기는 했지만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취급하는 백화점 음반 코너의 특성상 고를 수

있는 클래식 음반의 종류는 그렇게 많지 않았고, 설령 좋은 음반이 새로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그 음

1) 핀란드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시기, 핀란드의 민족색을 강하게 드러냈던 관현악 작품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국뽕’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정말 훌륭한 곡이다.

Page 35: 월간이리 2014년 월호

반의 ‘와꾸’만 보고도 대략적인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의 안목을 가질만한 나이도 아니었

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모으고 또 모았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덕질’이 주는 몰입감과 쾌감을

깨달아 버린 것이다.

2악장. 호모 디스코그라피쿠스

그러던 중, 잘 해봐야 3대 레이블2)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었던 내 CD장이 일대 변화를 맞

게 되는 시기가 찾아오게 된다. 바로 내가 대학생이 되면서 손님으로 자주 방문했던 압구정 쪽의

클래식 음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그 곳은 내가 봐왔던 큰 회사

들의 음반은 물론이고 ‘이건 정말 마니아들이나 듣지 않을까?’ 싶은, 굉장히 다양한 연주자와 레

퍼토리들이 갖춰져 있어서 음반 시장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가진 일터였다.

게다가 알바생에게는 직원 구매가에 가까운 가격(소비자 구매가격 보다 평균적으로 3000~4000

원 정도 더 싸게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으로 음반을 구매할 수 있는 권한도 있었고, 매장에 틀어

놓는 샘플러 음반이나 악성재고 중에서 별 인기가 없는 음반은 운 좋으면 허락받고 그냥 집에

가져갈 수도 있었으니 음반을 모으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알바 자리를 어디 가서

찾을 수 있었겠는가. 특히 손님들 중에서는 어마어마한 내공과 연륜을 가진 손님들이 많아서 조

금만 친해지면 더 깊은 세계로 파고드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여기서 말하는 그 ‘깊은 세계’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경우를 배워나가는 것을 뜻한다.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9번의 1962년 녹음(DG)은 굉장히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며 음질도 각 음반마다 아주 약간씩 차이가 난다. 왜냐하면 원래 음원 소스 자체

는 1962년에 녹음된 한 가지가 있을 뿐이지만, 60년대의 녹음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

람이 찾는 음반이기 때문에 음반사측에서 시기별로 조금씩 다른 리마스터3)링과 패키지로 일종

의 재발매를 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그 문제의 「핀란디아」음반이다.

내가 당시 샀던 음반은 왼쪽의 음반이고, 최근에는 오른쪽의 음반이 좀 더 구하기ㅃ 쉽다.

둘 다 똑같은 녹음이 담겨있지만 표지만 다르다.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하겠다.

2) 도이체 그라모폰(DG), EMI, DECCA 를 의미하며 수십 년 간 음반 시장 지분의 대부분을 차지해왔다. 현재는 모두 ‘유니버설 뮤직 그룹’ 산하로 들어가 인수·합병되었다.3) 녹음된 음원을 가지고 마스터 작업을 다시 하는 것을 말한다. 마스터링 작업은 쉽게 말해, 더욱 듣기 좋고 강한 표현력을 가진 소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음원에 약간의 손을 보는 작업이다.

Page 36: 월간이리 2014년 월호

자, 보시라.

위의 음반 8종(실제로는 몇 종이 더 있다)은 전부다 똑같은 카라얀의 베토벤 교향곡 9번 1962

년 녹음이 담겨진 음반들이다. ①번은 음반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의 LP재킷이다. ②번은 DG사

에서 ‘디 오리지널스(The Originals)’4)라고 하는 시리즈로 발매한 음반이며 65년에 녹음된 베

토벤의「코리올란」서곡이 함께 들어있다. 당연히 LP에 비해서 좋은 음질을 가지고 있다. ③번

이나 ⑥번의 경우에는 베토벤의 다른 교향곡들(1번~8번)과 함께 전집으로 묶여져 나온 형태

인데, ③번은 ‘Collectors Edition’이라는 박스 세트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고 ⑥번은 ‘Eloquence’

라는 컨셉으로 기획된 염가반의 형태로 나온 것이다(라이너 노트, 패키지 등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④번은 일본 유니버설 측에서 자체적으로 발매한 라이선스음반이며 여기도 역시「코리

올란」서곡이 들어있다(그리고 라이너 노트가 일본어로 되어있고, 특히 일본 쪽에서 손을 댔다

면 음질이나 음색이 묘하게 바뀌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⑤번은 베토벤의 교향곡 8번이 함께

수록된 2장의 CD로 구성되어있으며, ⑦번은 ‘DG Resonance’라고 하는 염가 시리즈물의 일환

으로 등장한 것이고 딱히 큰 특징은 없다. ⑧번은 ‘SACD’5)라는 새로운 저장매체를 이용한 음

반이다. DG에서는 일반 CD시대에 비해 향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카라얀의 음악을 화려하게

되살려냈다며 대대적으로 (애호가들의 지갑을 한 번 더 열기위해)홍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쪽은 일부 마니아들을 빼면 쉽게 접근하기 힘든 아이템에 가깝다.아무튼 인기 많은 한 지휘

자의 한 곡만 놓고 보더라도 이 정도 수준이다. 이 외에도 더 자세하고 복잡한 용어나 기준에

따라 분류된 음반들이 더 많은데, 정말 못 말리는 수준의 애호가들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재발

매되는 음반이 나오면 이전의 음반들과는 어떤 디테일한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정

말이지 촉각을 곤두세워 비교하기도 한다.

① ② ③ ④

⑤ ⑥ ⑦ ⑧

4)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1950~80년대에 발매된 LP시대의 명반들을 리마스터링해 내놓은 CD 시리즈물이다. ‘OIBP‘라는 음질 향상 기술을 적용 시키고 깔끔한 재킷, 합리적인 가격대로 큰 호응을 얻었다. 5) ‘Super Audio CD’의 줄임말이며 일반 CD보다 향상된 음질과 용량을 자랑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클래식 마니아들 이외에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또한 SACD를 제대로 들으려면 전용 플레이어가 필요한데, 대부분의 SACD는 하이브리드 방식이라 일반 CD플레이어에서도 재생이 가능하다(다만 이 경우 음질은 일반 CD수준). 그런데 일단... 너무 비싸다. 시장에서 SACD가 외면을 받는 가장 큰 이유가 그 때문이다.

Page 37: 월간이리 2014년 월호

3악장. 근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나도 한때는 그랬었다. 저렇게 음반들의 미묘한 차이에 신경을 집중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남

들을 상대로 어쭙잖은 지식을 뽐내며 어떤 것이 ‘가장 절대적인’ 명반인지를 토론하는 그런 짓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도통 관심이 없다. 그냥 ‘어떤 음반의 어느 음역대가 강조돼서 예전 음

반과는 이러한 차이가 있다더라’와 같은 얘길 들어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식이다. 어차피

원래의 소리라는 것은 음반을 위해서 녹음되고 믹싱/마스터링을 ‘당하’는 과정을 거치며 왜곡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데다가, 듣는 사람이 어떠한 종류와 수준의 재생장치를 가지고 있

느냐에 따라서 또 다시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

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깨닫고 난 뒤에는 그 음반에 담긴 음악의 대략적인 정보(템포, 악

상표현, 형식에 대한 연주자의 접근법) 정도만 알고 나면 그 이상의 세부에 대해서는 크게 신

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자꾸 작은 것에 집착해서 듣다보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음악을 듣

는 즐거움 자체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요즘은 옛날의 음반들 보다 새로

등장하는 음반에 더 관심이 많다. 물론 그것은 내가 명반이라 불리는 과거의 어지간한 음반들

을 다 들어봤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미 박제처럼 남은 과거의 음반들을 더

이상 붙들고 있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나이에 비해 꽤 많은 음반 관련

정보나 역사를 알게 된 건, 이미 들었던 음반을 자꾸 듣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자료를 끊임

없이 찾아다니던 과정에서 얻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머리는 더 이상

10대 시절의 스펀지 같은 흡입력을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집요할 정도로 깊게 파고

들었다가 회의감마저 느끼고 빠져나왔던 과거에 대한 기억은, 더 넓고 편한 마음으로 음악과

음반 그 자체를 즐기는 여유를 가지게 하는 추억이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 때 열심히 외우

고 배웠던 지식들은 나의 취향에 가장 잘 맞는 음반을 고르기 위한, 확고하면서도 든든한 나

만의 데이터베이스가 되어주고 있다. 일이야 어찌됐든 딱 하나만은 절대 잊고 싶지 않다. 설레

는 맘으로「핀란디아」를 플레이어에 걸던 어린 시절의 내가 가졌던 마음은 오로지 음악 그 자

체를 즐기기 위함이었음을.

Page 38: 월간이리 2014년 월호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1. TODAY - 스타트라인 [Across The Night](2014), 2

이곡은 팀 특유의 가사와 멜로디가 잘 어울리는 기분 좋은 느낌을 준다. ‘We’re on the starting line again’이라는 가사가 밴드와 잘 어울린다. 드럼연주로 시작하는 첫 부분과 베이스 멤버의 코러스가 노래를 더 신나게 만들어준다. 멜로디가 느려지면서 ‘푸른 바다 곁에서~’를 부르는 것이 참 좋다. 쇼케이스에서 꼭 라이브로 듣고 싶은 곡.

2. Freak Show - 스트라이커스 [Television](2014), 5

처음부터 시작되는 강렬하고 확실한 드럼 소리에 반해 듣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드럼 소리가 잘 들려서 좋다. 처음에는 느리다가 후렴구로 갈수록 빨라지는 것이 인상적이다. 2절에서 후렴구로 넘어갈 때의 기타 소리가 항상 귀에 남는다. 후렴에서 ‘I’m a freak, I’m a creep, my trick’이 이어져서 리듬감이 느껴지는 것이 재미있다.

3. Missing Memories - 원톤 [Tiny Old Tape](2014), 3

최근 멜로딕 펑크에 빠진 계기가 된 3인조 밴드. 멜로딕 펑크의 젊은 신예라는 소식에 찾아들었다. 목소리와 곡이 참 잘 어울리는데 라이브에서 그것과 젊은 에너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빠른 리듬에 멋진 멜로디와 와 닿는 가사가 있어 더 매력적이다. ‘아주 중요한 일처럼 느껴지지도 않아 한낱 술자리처럼 흘러가네’ 같은 가사를 듣고 있으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Page 39: 월간이리 2014년 월호

4. 펑크걸 - 크라잉넛 [CRYING NUT](1998), 7

크라잉넛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크라잉넛 1집은 <말달리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마음에 드는 곡이 있었다. 나는 이 곡의 기발한 가사가 너무 좋다. ‘버스 정류장에서 본 그녀 웬일인지 펑크락커 같아.’ 라니! 유난히 기타의 멜로디가 좋고 옛날의 느낌이 나는 음원도 정감이 간다. 나에게 있어 진정한 펑크 음악은 이 노래가 아닐까 싶다.

5. Come back to me - 카운터리셋 [Born To Drive](2013), 6

최근 반년 만에 카운터리셋의 공연을 봤는데 물 흐르듯 한 라이브가 감동적이었다. 특히 다른 곡에서 이 노래로 넘어갈 때 정말 자연스러워서 깜짝 놀랐다. 역시 오랜 시간 펑크를 한 밴드는 특별하다. 영어가사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카운터리셋의 곡은 항상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중간에 나오는 기타 솔로도 기분 좋고 달달한 가사에도 잘 어울리는 세고 빠른 연주가 언제나 매력적이다.

6. Jamie - 라이엇 키즈 [The Day We Miss](2011), 1

기획 공연에서 처음 본 펑크 밴드. 장르 때문이 아니라도 그린데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노래가 참 발랄해서 귓가에 맴돌았는데 밴드가 온라인에서 음원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었다. ‘Jamie oh Jamie’를 함께 따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즐겁다. 빨리 달리던 앞부분과는 달리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Jamie oh Jamie, Tell me what is your happiness’.

가끔 삶에 빛을 비춰주는 노래들을 발견합니다.

얼마 전 펑크 밴드들의 기획공연을 보고 영감을 받아 춤을 출 수도 있고, 가사에 공감할 수도 있는 펑크 음악들을

소개합니다.

신당동 파르한 (@chungchoon98)

Page 40: 월간이리 2014년 월호

건축이 좋아. #12. 베니스 비엔날레

aoikasa

2014년 6월, 건축계에서 큰 이슈가 된 사건이 있었다. 바로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1에서 한국관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사실 다소 생소한 행사이겠

지만, 사실상 건축계 국제적 행사로는 가장 크고 오래된 행사이기에 그리고 영화에 비유하자면 베니스

영화제 같은 행사로 설명할 수 있기에, 이 행사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은 꽤나 자랑할 만한 사건

이었다. 그러나 이 상은 한국의 건축계가 받았다기 보다는 올 해의 주제를 가장 잘 해석하고 그 것을 우

리의 상황에서 잘 표현한 한국관, 그러니까 한국 전시가 받았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한국관

은 조민석 건축가가 커미셔너가 되어 안창모, 배형민 교수가 함께 기획한 전시로 한국과 북한의 건축을

다루고 있다.

한국관이 황금사자상을 받았다는 빅 이슈와 함께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올해의 주제가 바로

Fundamental: 1914-2014 absorbing modernity 이었다는 점이었다. 지난 100년의 건축을 각 나라에

서 돌아보다니, 그 것도 Modernity를 어떻게 받아들였느냐에 대한 것이라니… 이 건 내 가슴을 뛰게 하

는 바로 그 주제였다. 지난 10여년간 Modernity 이슈에 집중해 왔던 나로서는 ‘어머! 이 건 꼭 가야 해’

라는 다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때마침(?) 거액의 상금을 받게 되었고, 이 상금으로 무얼 할까

하는 고민도 없이 그저 난 떠나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베니스로.

2014 VENICE BIENNALE : FUNDAMENTAL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Fundamental. 이 주

제로 비엔날레의 주제관은 ELEMENTS OF

ARCHITECTURE, 즉 건축의 기본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각 국가관은 1914-2014년 동안의 Absorbing

Modernity를 다룬다.

피터 아이젠만의 말처럼 ‘건축가’를 지워버린 ‘건축’ 자체를

이야기하고자 하였던 커미셔너 렘 쿨하스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적인 듯 하다. ‘스타’ 건축이나 건축가는 없지만,

1 베니스 비엔날레는 1895년 시작된 국제 비엔날레로, 건축전은 올 해가 14회 째이다. 현재 베니스 비엔날레

는 홀수 해는 미술전, 짝수 해는 건축전으로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Page 41: 월간이리 2014년 월호

건축의 ‘진짜’ 주인공들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역사적으로 건축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었던 것들

은 바로 건축의 요소들이었다. 생각해보라. 비트루비우스의 건축 십서로, 알베르티와 팔라디오의 건축십

서와 사서도, 중국의 영조법식도 모두 건축의 요소들이 어떻게 ‘적합성’을 가질 것이냐에 대한 문제였다.

이런 측면에서 렘 쿨하스가 GSD 학생들과 함께 방대한 리서치를 통해 만들어 낸 Elements of

architecture 전시는 21세기의 ‘건축15서’ 정도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주제관: ELEMENTS OF ARCHITECTURE’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 커미셔너인 렘 쿨하스는 GSD 학생들과 함께 진행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건축의

요소를 15개로 나누어 전시를 구성하였다. 꽤나 많은 분량의 자료들을 기반으로 각각의 요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시되고 있는데 요소에 따라 그 강약의 정도는 다른 편이다. 전시 주제가 가지고 있는

묵직함과 Documentation의 힘이 바탕이 되어 건축의 기본에 대해 이야기하는 주제관이다. 개인적으로

눈길을 많이 끌었던 섹션은 천장, 발코니, 벽 그리고 천장 전시 바로 Introduction 섹션이었다. 천장은

전시 내용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그리고 맨 앞에 있어 책장을 꽤나 많이 들춰보게 된 덕분도 있지만) 이

공간 자체가 가지는 힘, 그러니까 돔 천장 바로 아래에 현대식 천장이 위치함으로써 만들어내는 대비 효

과가 재미있다. 발코니 섹션은 강렬하게 붉은 발코니를 오름으로 시작된다는 점에서 강렬함을 선사하고,

전 세계의 발코니 사진들을 흑백으로 모은 바탕 하에 강렬한 붉은 색으로 중간 중간 강조점이 나타난다.

Page 42: 월간이리 2014년 월호

규정될 수 없는 1990년대 이후 다원주의 경향으로 변해 나갔다. 이와 같은 변화는 이전의 그 어느 시대

보다 빠른 속도의 것이었으며 그 어디에도 정답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2014년의 베니스 비엔날레는 어쩌면 Fundamental을 이야기하며 각 나라가 어떻게

Modernity를 받아들였는지를 묻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주제 하에 펼쳐진 총 55개국의

국가관은 다양한 국가 구성만큼이나 다양한 접근 방식을 보여줬다.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심플하게,

그리고 때로는 격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 또 때로는 지나치게 난해해 이해하기를 포기하게 해

버렸다. 그래도 그 경향을 주관적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5가지 정도 일 것 같다.

1. 주제관과 동일하게, 건축의 요소에 집중

Interiors라는 타이틀을 가진 벨기에관은 빛으로 가득 찬 새하얀

공간을 인테리어의 각 요소로 채움에 있어 굉장히 시적인 표현을 하

고 있다. 비교적 영구한 것인 빌딩 파사드에 비해서 끝없이 변화해

가는 인테리어의 특성에 주목하며, 여기에서 지역적 특성을 발견해

내고 있는 이 전시는 Interior. Notes and Figures 라는 동명의 리

서치 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스페인관 역시 같은 제목, Interior

라는 제목으로 최근 스페인에 지어진 12개의 건물들의 인테리어를

그 대상으로 한다. 은사자상을 받은 칠레관의 경우 프리패브리케이

션 콘크리트 패널을 건축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모더니티의 폐허의

상징(Monolith)으로 다루고 있다. 이 콘크리트 패널 1:1 모형과

1931년에서 1981년 사이에 이 패널로 지어진 하우징들의 전시가 인

상적이다. 덴마크관은 Empowerment of Aesthetics라는 제목으

로 Bark(나무껍질), Earth(흙 혹은 땅), White(흰 색)의 물성을 다

룬다. 일본관은 ‘In the Real World’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기획하

였는데. 현대 건축을 이루는 근간이 1970년대의 다양한 노력들에

기인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조금은 다른 접근이지만, 재작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일본관 역시 건축을 이루

는 요소들. 특히 건축을 만드는 자료들에 대한 전시를 보여준다. 일

본관에는 안도 다다오의 스미요시 주택의 콘크리트 모델부터 일본

근대 건축사에 있어 중요한 건축물들의 청사진들, 그리고 심지어 무

지(MUJI)의 건축 카탈로그 및 사진, 모형, 시스템, 재료까지 다양한

종류의 건축을 만드는 자료들이 모여 있어 마치 일본 건축의 아카이

브를 보는 듯하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1.벨기에관

2.칠레관 3.덴마크관 4. 일본관)

지도 위에 펼쳐진 각 나라의 발코니들이 얼마나 환경적이며, 사회적이며, 또한 정치적인지를 보여주는 사

진들이 인상적. 참고로 한국은 김정일이 발코니에 서 있는 사진만 있었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아르헨티

나는 에비타 사진. 벽 전시는 다소 투박하지만 벽체들을 실제로 그대로 쌓아 병렬로 전시함으로 ‘구축’

의 의미를 강하게 드러낸다. 각 시대별로, 지역별로 만들어 낸 닮은 듯 하면서도 서로 다른 다양한 벽체

가 1:1 사이즈로 연속적으로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꽤나 강렬하다. 그 외에도 건축의 각 요소들에 대해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지역을 아우르는 섹션들이 이어지는 주제관은 방대한 분량의 리서치가 바탕이 되

었기에 강렬한 힘을 발휘한다. 전시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되고, 많은 영감을 받지만 전

시와 함께 나온 리서치 결과물인 15권의 책들을 앞으로 읽어나가며 발견해 나갈 것들이 더 기대가 되기

도 한다.

(2014 베니스 비엔날레 주제관 Elements of Architrecture의 천정 전시, 발코니 전시, 벽 전시)

ABSORBING MODERNITY: 1914-2014.

1914년부터 2014년까지의 100년. 모더니티의 흡수라는 각 국의 국가관이 다루는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의 주제는 이번 베니스 방문의 가장 큰 이유이자 최고의 관심사였다. 1914년은 그저 지금으로부터 100

년 전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1914년은 세계 제 1차 대전이 발발한 해였으며, 건축계에서는 쾰른에

서 독일공작연맹의 전시가 있었던 해이다. 특히 1914년 쾰른의 독일공작연맹 전시는 상대적으로 근대화

에 있어 후발주자였던 독일이 건축계를 이끌어 나가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건축계는 20세기 Modern

Architecture의 주류였던 국제주의가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퍼져 나가게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비유럽 국가, 그 것도 식민지화를 겪으면서 자발적으로 근대성이 발현될 수 없었

던, 혹은 스타일로서의 근대 건축을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국가들에서는 이 시기의 변화는 자연

스러운 진화의 과정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세계가 전복되는 것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무튼, 1914년 이후 건축계는 국제주의의 독보적 질주에 이은, Team X을 비롯한 1950~60년대 건축가

들의 자아비판에 의한 소통의 회복이라는 주제의 건축과 도시, 그리고 70~80년대 유행처럼 번져 나간

포스트 모더니즘의 향연, 그리고 그 이후 해체주의, 비평적 지역주의, 네오모더니즘 등 어느 한 가지로

Page 43: 월간이리 2014년 월호

규정될 수 없는 1990년대 이후 다원주의 경향으로 변해 나갔다. 이와 같은 변화는 이전의 그 어느 시대

보다 빠른 속도의 것이었으며 그 어디에도 정답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2014년의 베니스 비엔날레는 어쩌면 Fundamental을 이야기하며 각 나라가 어떻게

Modernity를 받아들였는지를 묻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주제 하에 펼쳐진 총 55개국의

국가관은 다양한 국가 구성만큼이나 다양한 접근 방식을 보여줬다.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심플하게,

그리고 때로는 격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 또 때로는 지나치게 난해해 이해하기를 포기하게 해

버렸다. 그래도 그 경향을 주관적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5가지 정도 일 것 같다.

1. 주제관과 동일하게, 건축의 요소에 집중

Interiors라는 타이틀을 가진 벨기에관은 빛으로 가득 찬 새하얀

공간을 인테리어의 각 요소로 채움에 있어 굉장히 시적인 표현을 하

고 있다. 비교적 영구한 것인 빌딩 파사드에 비해서 끝없이 변화해

가는 인테리어의 특성에 주목하며, 여기에서 지역적 특성을 발견해

내고 있는 이 전시는 Interior. Notes and Figures 라는 동명의 리

서치 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스페인관 역시 같은 제목, Interior

라는 제목으로 최근 스페인에 지어진 12개의 건물들의 인테리어를

그 대상으로 한다. 은사자상을 받은 칠레관의 경우 프리패브리케이

션 콘크리트 패널을 건축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모더니티의 폐허의

상징(Monolith)으로 다루고 있다. 이 콘크리트 패널 1:1 모형과

1931년에서 1981년 사이에 이 패널로 지어진 하우징들의 전시가 인

상적이다. 덴마크관은 Empowerment of Aesthetics라는 제목으

로 Bark(나무껍질), Earth(흙 혹은 땅), White(흰 색)의 물성을 다

룬다. 일본관은 ‘In the Real World’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기획하

였는데. 현대 건축을 이루는 근간이 1970년대의 다양한 노력들에

기인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조금은 다른 접근이지만, 재작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일본관 역시 건축을 이루

는 요소들. 특히 건축을 만드는 자료들에 대한 전시를 보여준다. 일

본관에는 안도 다다오의 스미요시 주택의 콘크리트 모델부터 일본

근대 건축사에 있어 중요한 건축물들의 청사진들, 그리고 심지어 무

지(MUJI)의 건축 카탈로그 및 사진, 모형, 시스템, 재료까지 다양한

종류의 건축을 만드는 자료들이 모여 있어 마치 일본 건축의 아카이

브를 보는 듯하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1.벨기에관

2.칠레관 3.덴마크관 4. 일본관)

Page 44: 월간이리 2014년 월호

탈리아만의 anomalous modernity (변칙적인 근대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1.프랑스관 2.영국관 3.러시아관)

4. 특정 건축 / 건축가 / 지역에 집중

1914년 생인 건축가 JAAP BAKEMA의 작업과 그의 이상주의를

그리고 있는 네덜란드관이나 Cedric Price가 남긴 다양한 종류의

자료들을 (도면, 스케치, 청사진 등등)을 움직이는 수레 위에 실어

두고, 시간대별로 계속 전시물을 변경하는 스위스관이 특정 건축

가에 집중하는 전시를 보여준다면, Anssi Lassila가 핀란드팀과

중국팀과 각각 작업하여 만들어낸 두 개의 나무 파빌리온으로 시

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축의 기본(Fundamental)에 대해 이

야기하는 핀란드관이나 히틀러의 건축가였던 Albert Speer 가 설

계한 파빌리온 안에 1999년 이전까지 독일의 수상이 살던 집인

Bungalow를 실제 크기로 설치함으로서 건축이 가지는 정치적 의

미를 강조하고 자 한 독일관은 특정 건물에 집중하는 전시를 보여

준다. 전 세계의 국회의사당을 ‘place of power’라는 전시 타이

틀 하에 모아 둔 오스트리아관과 Józef Piłsudski의 무덤을 재현

함으로써 1918년 이후 폴란드의 빠른 속도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

타났던 민족적,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나타난 권위주의적 경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폴란드관 등도 이 분류에 속한다. 특별언급상을

수상한 캐나다관의 경우 캐나다의 가장 북쪽 지역인 nunavut 지

역과 같은 극한 환경에서 모더니티가 어떻게 수용되느냐에 대해

다루면서 지난 100년이 아닌 앞으로를 보려고 하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5. 사회적 현상에 집중

동유럽 국가들은 다소 사회적 현상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체코와 슬로베키아는 지난 100년간 체

코 슬로바키아에서 지어진 200만 제곱 미터가 넘는 거주 지역들에 대해 다루면서 ‘따로 살고, 따로 일하

(위에서부터 1. 스위스관,

2.핀란드관, 3.폴란드관)

2. 지난 100년간 건축에 대한 연대기적 접근

1914-2014:Absorbing Modernity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접근이 바로 이 건축에 대한 연대기적 접근일

것이다. Ideal/Real 이라는 주제로 연대 순으로 자국 도시와 건축을 소개하는 아르헨티나관, Fitting

Abstraction이라는 주제로 각 시대의 건축물들을 소개하는 크로아티아관, 오스카 니마이머, 루씨오 코

스타 등의 걸출한 스타 건축가들의 작품을 포함한 180개의 건축물들을 연대 순으로 보여주며 지난 100

년 간의 브라질 건축의 강렬함을 보여주는 브라질관, 역시나 연대순으로 도시와 건축의 역사를 보여주

는 UAE관, 하우징을 중심으로 1914-2013년의 주거 건축의 변화와 주요 이슈를 신문으로 구성한 포르

투갈관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외에도 다수의 국가관들이 1914-2014년 사이의 100년의 자국 건축을

연대기순으로 정리하고자 하는 시도를 보였다. 한편, OFFICEUS라는 제목의 미국관은 전시관 자체를

실제 건축 설계 사무실로 사용하며 벽면을 따라 연속적으로 각 회사들의 연도별 설계 작업들을 전시해두

었다. 대형 설계 회사들의 프로젝트들, 미국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진행된 그들의 프로젝트를 살펴

본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미국적’이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1.크로아티아관 2.포르투칼관 3.미국관)

3. 지난 100년간 건축의 모더니티에 대한 질문 던지기

특별언급상을 수상한 프랑스관이 대표적. 특히 개인적으로는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프랑스관은 커미셔

너 Jean Louis Cohen의 위트있으면서도 시니컬한 질문들이 각 전시실의 전시물과 영화의 조합으로 잘

전달된다. Modernity, Promise or Menace? (모더니티, 약속 혹은 위협?)이라는 전시 제목에서 느껴

지듯 프랑스관의 전시는 모더니티의 이상과 절망을 동시에 보여주며 모더니티를 흡수하였다기보다는 이

끌고 나갔던 국가로서의 프랑스의 자기 성찰, 혹은 자아 비판 같은 인상을 준다. 영국관은 윌리엄 블레

이크의 예루살렘으로부터 하워드의 전원도시, 그리고 전후의 뉴타운 계획들과 그 이후 변화들까지를 다

룸에 있어 어떻게 역사와 공상과학과 사회 개혁이 모더니티에 대응하는 영국의 새로운 비전들을 꿈꾸며

융합되는지에 대해 다룬다. 기본적으로는 연대기적 구성을 하고 있으면서도 유토피아를 꿈꾸는 모더니

티에 대한 영국식 접근들을 살펴볼 수 있다. 한 편 역시나 특별언급상을 수상한 러시아관은 Fair

Enough 라는 전시 제목에서 보이듯 엑스포와 같은 구성을 하고 있는데, 지난 100년 동안의 아이디어

들과 이론들을 Fair라는 형식을 통해 교역하는 대상으로 다루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탈리아관은 지난

100년간 역사와 전통이 강한 이탈리아의 컨텍스트에서 Modernity를 어떻게 받아들였느냐를 다루며 이

Page 45: 월간이리 2014년 월호

탈리아만의 anomalous modernity (변칙적인 근대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1.프랑스관 2.영국관 3.러시아관)

4. 특정 건축 / 건축가 / 지역에 집중

1914년 생인 건축가 JAAP BAKEMA의 작업과 그의 이상주의를

그리고 있는 네덜란드관이나 Cedric Price가 남긴 다양한 종류의

자료들을 (도면, 스케치, 청사진 등등)을 움직이는 수레 위에 실어

두고, 시간대별로 계속 전시물을 변경하는 스위스관이 특정 건축

가에 집중하는 전시를 보여준다면, Anssi Lassila가 핀란드팀과

중국팀과 각각 작업하여 만들어낸 두 개의 나무 파빌리온으로 시

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축의 기본(Fundamental)에 대해 이

야기하는 핀란드관이나 히틀러의 건축가였던 Albert Speer 가 설

계한 파빌리온 안에 1999년 이전까지 독일의 수상이 살던 집인

Bungalow를 실제 크기로 설치함으로서 건축이 가지는 정치적 의

미를 강조하고 자 한 독일관은 특정 건물에 집중하는 전시를 보여

준다. 전 세계의 국회의사당을 ‘place of power’라는 전시 타이

틀 하에 모아 둔 오스트리아관과 Józef Piłsudski의 무덤을 재현

함으로써 1918년 이후 폴란드의 빠른 속도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

타났던 민족적,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나타난 권위주의적 경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폴란드관 등도 이 분류에 속한다. 특별언급상을

수상한 캐나다관의 경우 캐나다의 가장 북쪽 지역인 nunavut 지

역과 같은 극한 환경에서 모더니티가 어떻게 수용되느냐에 대해

다루면서 지난 100년이 아닌 앞으로를 보려고 하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5. 사회적 현상에 집중

동유럽 국가들은 다소 사회적 현상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체코와 슬로베키아는 지난 100년간 체

코 슬로바키아에서 지어진 200만 제곱 미터가 넘는 거주 지역들에 대해 다루면서 ‘따로 살고, 따로 일하

(위에서부터 1. 스위스관,

2.핀란드관, 3.폴란드관)

2. 지난 100년간 건축에 대한 연대기적 접근

1914-2014:Absorbing Modernity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접근이 바로 이 건축에 대한 연대기적 접근일

것이다. Ideal/Real 이라는 주제로 연대 순으로 자국 도시와 건축을 소개하는 아르헨티나관, Fitting

Abstraction이라는 주제로 각 시대의 건축물들을 소개하는 크로아티아관, 오스카 니마이머, 루씨오 코

스타 등의 걸출한 스타 건축가들의 작품을 포함한 180개의 건축물들을 연대 순으로 보여주며 지난 100

년 간의 브라질 건축의 강렬함을 보여주는 브라질관, 역시나 연대순으로 도시와 건축의 역사를 보여주

는 UAE관, 하우징을 중심으로 1914-2013년의 주거 건축의 변화와 주요 이슈를 신문으로 구성한 포르

투갈관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외에도 다수의 국가관들이 1914-2014년 사이의 100년의 자국 건축을

연대기순으로 정리하고자 하는 시도를 보였다. 한편, OFFICEUS라는 제목의 미국관은 전시관 자체를

실제 건축 설계 사무실로 사용하며 벽면을 따라 연속적으로 각 회사들의 연도별 설계 작업들을 전시해두

었다. 대형 설계 회사들의 프로젝트들, 미국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진행된 그들의 프로젝트를 살펴

본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미국적’이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1.크로아티아관 2.포르투칼관 3.미국관)

3. 지난 100년간 건축의 모더니티에 대한 질문 던지기

특별언급상을 수상한 프랑스관이 대표적. 특히 개인적으로는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프랑스관은 커미셔

너 Jean Louis Cohen의 위트있으면서도 시니컬한 질문들이 각 전시실의 전시물과 영화의 조합으로 잘

전달된다. Modernity, Promise or Menace? (모더니티, 약속 혹은 위협?)이라는 전시 제목에서 느껴

지듯 프랑스관의 전시는 모더니티의 이상과 절망을 동시에 보여주며 모더니티를 흡수하였다기보다는 이

끌고 나갔던 국가로서의 프랑스의 자기 성찰, 혹은 자아 비판 같은 인상을 준다. 영국관은 윌리엄 블레

이크의 예루살렘으로부터 하워드의 전원도시, 그리고 전후의 뉴타운 계획들과 그 이후 변화들까지를 다

룸에 있어 어떻게 역사와 공상과학과 사회 개혁이 모더니티에 대응하는 영국의 새로운 비전들을 꿈꾸며

융합되는지에 대해 다룬다. 기본적으로는 연대기적 구성을 하고 있으면서도 유토피아를 꿈꾸는 모더니

티에 대한 영국식 접근들을 살펴볼 수 있다. 한 편 역시나 특별언급상을 수상한 러시아관은 Fair

Enough 라는 전시 제목에서 보이듯 엑스포와 같은 구성을 하고 있는데, 지난 100년 동안의 아이디어

들과 이론들을 Fair라는 형식을 통해 교역하는 대상으로 다루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탈리아관은 지난

100년간 역사와 전통이 강한 이탈리아의 컨텍스트에서 Modernity를 어떻게 받아들였느냐를 다루며 이

Page 46: 월간이리 2014년 월호

고’의 시대에서 ‘따로 살고, 같이 일하고’, ‘같이 살고, 따로 일하고’ , ‘같이 살고, 같이 일하고’ 등의 변화

를 겪는 도시와 주거의 변화를 설명한다. 루마니아의 경우 Site Under Construction이라는 제목으로

모더니티의 생성자로 산업시설들을 언급하고 있다. 거대 산업 시설들이 들어섬으로써 만들어진 도시 구

조의 해체와 그 산업이 멈춰 섬으로써 만들어진 도시의 폐허들에 대한 언급이 인상적이다. 한편 함께 만

들어가는 건물, 공공의 건물이라는 주제의 헝가리관은 실제로 관람객이 나무 클립에 직접 메시지를 남기

고 채색을 하여 파빌리온 가운데의 설치물에 꽂아둠으로써 결코 완성되지 않는, 그러나 함께 완성해 나

가는 건물의 의미를 되새긴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1.체코슬로바키아관 2.루마니아관 3.헝가리관)

6. 그리고 … 한국관 ‘한반도 오감도’

한반도 오감도라는 제목의 오감도는 이상의 시, 오감도에서 따온

것이다. 조감도가 아닌 오감도. 점 하나가 부족하여 조감도가 되지

못하는 오감도는 한반도이나 '한'반도가 아닌 북한과 한국을 표현

하는 데에 적합한 단어인 듯 하다. 앞의 5개의 카테고리에 굳이 넣

자면 한국관 전시는 Modernity에 대한 질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

다. 북한과 한국의 서로 다른 두 체제가 50여년의 시간을 지나며 어

떻게 각자의 도시와 건축을 변화시켜 나갔느냐에 대한 이야기인 것

이다. 전시는 '삶의 재건', '모뉴멘트' '경계', '모뉴멘트', '유토피안

투어'의 네 가지 섹션으로 나뉜다. 북한의 직접 참여가 아니라 타자

들의 눈으로 본 북한이라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가 다루는 북한은 크게 이질적이지 않다. 대평양재건 프로젝

트를 주도하는 김정희와 거대 세운상가 모형 뒤에 팔짱끼고 서 있

는 김수근이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황금사자상을 받

아서인지 아니면 미지의 땅, 북한을 다루기 때문인지 한국관에는 매

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주의깊게 전시를 보고 있었다. 이 전시는 베

니스 비엔날레가 끝난 후 한국에서 다시 할 예정이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꼭 보시길.

한국관: 한반도 오감도

Page 47: 월간이리 2014년 월호

고’의 시대에서 ‘따로 살고, 같이 일하고’, ‘같이 살고, 따로 일하고’ , ‘같이 살고, 같이 일하고’ 등의 변화

를 겪는 도시와 주거의 변화를 설명한다. 루마니아의 경우 Site Under Construction이라는 제목으로

모더니티의 생성자로 산업시설들을 언급하고 있다. 거대 산업 시설들이 들어섬으로써 만들어진 도시 구

조의 해체와 그 산업이 멈춰 섬으로써 만들어진 도시의 폐허들에 대한 언급이 인상적이다. 한편 함께 만

들어가는 건물, 공공의 건물이라는 주제의 헝가리관은 실제로 관람객이 나무 클립에 직접 메시지를 남기

고 채색을 하여 파빌리온 가운데의 설치물에 꽂아둠으로써 결코 완성되지 않는, 그러나 함께 완성해 나

가는 건물의 의미를 되새긴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1.체코슬로바키아관 2.루마니아관 3.헝가리관)

6. 그리고 … 한국관 ‘한반도 오감도’

한반도 오감도라는 제목의 오감도는 이상의 시, 오감도에서 따온

것이다. 조감도가 아닌 오감도. 점 하나가 부족하여 조감도가 되지

못하는 오감도는 한반도이나 '한'반도가 아닌 북한과 한국을 표현

하는 데에 적합한 단어인 듯 하다. 앞의 5개의 카테고리에 굳이 넣

자면 한국관 전시는 Modernity에 대한 질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

다. 북한과 한국의 서로 다른 두 체제가 50여년의 시간을 지나며 어

떻게 각자의 도시와 건축을 변화시켜 나갔느냐에 대한 이야기인 것

이다. 전시는 '삶의 재건', '모뉴멘트' '경계', '모뉴멘트', '유토피안

투어'의 네 가지 섹션으로 나뉜다. 북한의 직접 참여가 아니라 타자

들의 눈으로 본 북한이라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가 다루는 북한은 크게 이질적이지 않다. 대평양재건 프로젝

트를 주도하는 김정희와 거대 세운상가 모형 뒤에 팔짱끼고 서 있

는 김수근이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황금사자상을 받

아서인지 아니면 미지의 땅, 북한을 다루기 때문인지 한국관에는 매

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주의깊게 전시를 보고 있었다. 이 전시는 베

니스 비엔날레가 끝난 후 한국에서 다시 할 예정이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꼭 보시길.

한국관: 한반도 오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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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언젠가부터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지속되었다. 남자친구는 병원을 가볼까 고민하는 내게 자신 만의 방법이 있다며

추천해주었다. 눈을 감고 어둠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눈을 감은

상태에서 시각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으면 언어와 이미지로 형성되는 ‘생각’이 점차

사라지고 잠이 온다고 하였다. 나는 그의 말이 정확하게 이해되진 않았지만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불 위에 누워서 눈을 감고 뭔가를 본다는 느낌으로 눈에 신경을 썼다. 그런데 자꾸만

‘자야 되는데’라든지, ‘아 왜 이렇게 잠이 안 오지?’, ‘눈을 감았는데 뭘 어떻게 보라는

거지?’,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등의 생각들이 떠올랐다. 결국 밤새 잠들지 못했고,

응시하고 있던 어둠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눈을 뜨고 시각을 확인하니 새벽 다섯

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쉬고 있던 때라 밤에 잠을 자지 못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하루에 고작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한다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신기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피곤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어딘가 잘못된

게 분명한데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시도 때도 없이

밤샘을 했으니 그 후유증일 것이라며,

“너는 느끼지 못하지만 분명히 어딘가 문제가 있을 거야. 병원 가면 수면제나 처방해주고

쓸데없는 얘기나 해주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 번 가봐.”

라고 말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자연스레 정신과가 떠올랐다. 하지만 정신과에

가면 그의 말대로 뻔한 이야기를 듣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수면제를 처방해줄 수

있는 다른 병원을 찾다가 ‘가정의학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네이버의 설명에 따르면

가정의학과는 말 그대로 가정의 전문의 역할을 하는 병원이었다. 이번 기회에 가정의학과

병원을 하나 정하면 앞으로 편할 것 같았다. 물론 첫 진료부터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진 못하더라도 미래를 내다봤을 때 분명 정신과보다 나은 선택이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지하철 역 근처의 ‘진 가정의학과’였다. 위압적인 느낌을 주는

커다란 병원과는 달리 아담한 크기의 작은 병원이었다. 접수를 하고 둘러보니 소파에

6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벽에는 카톨릭 의대 졸업장이 붙어있었는데,

의사의 이름은 ‘이세진’, 여의사인 것 같았다. 소파에 앉아 티 테이블 위에 놓인 비타민

주사와 발기부전, 조루증 개선 약품 홍보 책자들을 훑어보았다. 비타민과 발기부전이

함께 다뤄지는 병원이라니. 가정의학과라는 병과가 생각보다 재미있게 느껴졌다.

피로회복과 원활한 섹스 생활을 위한 병원!

Page 52: 월간이리 2014년 월호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의사의 첫인상은 의사다웠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있었다. 나이는 40대 초반 정도? 느껴지는 나이

대에 비해서 어려 보였다. 그녀는 불면증 때문에 찾아왔다는 내게 입을 벌려보라고

말했다. 입을 벌리자 긴 막대로 혀를 누르고 카메라를 밀어 넣었다. 스크린을 통해 비치는

목구멍을 살피더니, 뒤를 돌아보라 하고, 청진기를 등에 갖다 대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진찰을 마친 의사는,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보이진 않네요. 목이 약간 부어있긴 하지만 생활에 무리가 가는

정도는 아니고요. 스트레스나 불규칙한 생활 때문일 거예요. 불면증이 지속된 게 한 달이

넘었다고 하셨죠? 수면제를 처방해드릴까요? 잠들지 못하는 게 괴로우신가요?”

라고 물었다. 나는 잠시 멍하니 의사를 바라보았다. 잠들지 못하는 것이 괴로운가? 나는

괴롭지 않았다. 그렇다면 억지로 수면제를 먹고 잠들 필요가 있을까?

“아니요. 괴롭지 않아요.”

“그럼 수면제는 드시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굳이 억지로 잠들기 위해서

노력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서서히 좋아질 거예요. 사람은 원래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자는 동물이거든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며 정상적인

패턴을 찾게 되어 있어요. 낮에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하시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진찰을 받고 나와 요금을 계산했다. 처방전은 따로 없었다. 병원을 나와 걸으며 진

가정의학과를 찾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니 괴롭지도 않은데 굳이

병원을 찾아온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남자친구에게 하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프랑스 파리12대학의 철학 교수인 파르망티에 샤르봉은 매년 첫 번째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누군가에게 연민을 느낀 적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당연히 대다수의

학생들은 그렇다고 답한다. 그럼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너희 같은 인간들하고는

상종하고 싶지 않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강의실을 박차고 나간다. 학생들은 그날부터

샤르봉 교수의 다음 강의 때까지 줄곧 ‘연민은 나쁜 것인가?’라는 질문을 되새기게 된다.

샤르봉 교수는 다음 강의를 휴강한다. 학생들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묻는다. ‘연민은 나쁜

것인가?’ 그리고 연민이 나쁜 것이라는 가정 하에 그것이 왜 나쁜지 생각한다. 몇몇

학생들은 직접 교수를 찾아가 묻기도 한다. “연민이 왜 나쁜가요?” 그는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답을 맞히는 학생이 나오기 전까지 그는 강의를 시작하지 않는다.

Page 53: 월간이리 2014년 월호

이야기를 마친 남자친구는 연민이 왜 나쁜지 아냐고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그는 정답은 알려주지 않고, “연민을 할 거면 돈으로 하라”는 교수의 이야기가 힌트라고

알려주었다.

그날 밤에도 잠이 오질 않았다. 나는 누워서 남자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연민과 철학에 대해 검색하면 손쉽게 연민이 나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천천히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먼저 힌트, ‘연민을 할 거면 돈으로 하라’.

돈으로 하는 연민은 그나마 낫다는 이야기다. 그럼 실질적인 도움 없는 연민은 나쁘다는

건가? 불쌍한 이들을 봤을 때 연민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 자연스러운

감정이 나쁘다는 건가? 연민이라는 것이 뭘까?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 안쓰럽다고

생각하느…

남자친구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나는 의사에게 남자친구의 조루증을 개선시키기

위해서 약품과 주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사는 약보다는 서로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아저씨가 다가와 남자친구에게 연민을 느낀다고 말했다.

남자친구는 불어로 연민은 나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불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데 그의

말을 이해했다. 불어를 할 수 있다니, 이건 꿈이구나. 밤에 잠든 것이 얼마만의 일인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소파 위에 누워서 달력을 들춰보았다.

앞으로 몇 달이나 더 쉴 수 있을까. 또 취업을 해야겠지. 통장 잔고는 얼마나 남았더라.

연민이 나쁜 건 조루증 때문이다. 나는 푹신한 소파 위에 누워 눈을 감고 어둠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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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오뎅 이야기

예전에 몇번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나는 학창시절 두

번의 가출을 한적이 있다.

한번은 고등학교 입학을 하자마자 치른 첫시험의 성

적을 보고 집에 성적표를 보여주기도 전에 혼자서 느

낀 자괴감에 집과 학교를 뻔뻔하게 다닌다는걸 내자

신이 허락하지 않아 첫번째 가출을 하게된다. 그후 밤

늦게 친구들을 초대 친구들과 방에서 놀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잠깐 냉장고안에 숨겨논 담배를 목격하신

아버지의 4x4각목 무차별 사랑의 매세례에 세례받기

를 거절하며 두번째 가출을 하게된다.

아버지 당신께서도 어릴적부터 담배를 태우시고 몸에

안좋은걸 뻔히 아시는데 주민등록증에 잉크도 묻히지

않은 새파란 자식이 담배를 가지고 있었으니 얼마나

애처로웠으면 몽둥이 세례를 내리셨을까 충분히 이해

가된다. 그후로 나는 다른건 몰라도 담배만은 엄청 조

심을 한다. 성인이 되어서는 피는걸로는 뭐라고 하지

않으셨으나 어머니에게 행여나 당신앞에서 담배를 피

거든 아버지 당신께 얘기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4x4의 가공할 위력을 뼈져리게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

는 더더욱 조심해야할 뚜렷한 이유가 생긴것이었다.

아버지가 어머니께 보고하라는 지침이 없었어도 부

모앞에서 대놓고 담배를 뻐끔거리는 몰상식한 자식

은 아니기에 집에서는 부모님의 시선과 동선을 절묘

하게 피해가며 끽연을 한지도 어언 20년...

한달전쯤 어느날이었다.

집앞 마당 후미진 곳에서 불노장생 식후땡을 하고 있

었다. 갑자기 열리는 대문소리 아버지의 인기척이였

다. 피우던걸 마저 피우고 외출다녀오신 아버지께 인

사를 드려야지라고 생각을 하며 쭈욱 빨아들이던 순

간 대문열고 현관을 열고 들어가셔야할 아버지가 내

눈앞에 우두커니 서계신것이였다.

순간 20여년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간다

4x4=16???4x4=세례???아...두근두근 어째야되나

일단 피던 담배를 슬그머니 뒤로 숨긴다. 고개는 나이

가 있는만큼 일단 25~30도만 숙인다 언제든 폴더처

@odeng2004

럼 접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내 귀를 의심하게하는 아버

지의 말씀... 너 담배피는거보니 나

도 한대 피고 싶네 같이피자... 같

이 피자???? 같이 담배를?????

분명 같이 피자를 먹자는 말은 아

니였을것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분

명 담배를 같이 피자고 하셨다. 찰

나의 순간 여러가지 상황에 대비

를 한다. 그냥 네에 아빠라고 했다

가 화단에 선인장이 날라오는건 아

닐까? 연세가 드셔서 4x4는 좀 그

렇고 빗자루를 드시는건 아닌가?

아님 내가 자식을 이렇게 키웠다

며 신세한탄을 하시는건 아닌가?

잠깐의 침묵 아버진 담배 불을 켜

시더니 한 말씀 늘어놓으신다. 나

는 다른 아버지들처럼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시단

다. 자식이랑 편하게 담배피는 아

버지 신세대 아버지라고 하신다.

아..네 맞습니다 신세대 아버지...(

근데 아버지 언제 신세대 아버지

로 바뀌셨나요? 바뀔 때 귀뜸좀 해

주시지...아버지~담배는 하이브리

드가 요즘 잘나왔더라구요. 버튼을

톡 터트리면 맨솔로 바뀌는 담에

그거나 같이 한번 태우시죠

From 신세대 아들)

편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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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비 일요 시극장 2014.9.29 http://cafe.daum.net/badab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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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일까? (8회)

복지부동: 복지가 움직이지 않는 한국의 현 상황을 일컷는 말. 물론 농담이다.

오늘은 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왜 복지가 필요한지, 정도가 될 것 같은데 막연하게

“그것은 좋은 것인데 왜 몰라주는거야!”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참고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복지를 이야기 하려면 먼저 진보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흔히 진보 진영에서 복지를 주장하니까.’ 아니다

‘그것은 좋은 것이니까?’ 아니다.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니다.

복지가 진보에 꼭 필요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여러분은

혹시 진보라는 게 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참고로 보수는 뭔지도 한번 쯤

생각해보자.) 진보는 과연 무엇일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얼마나 진보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봤는지 궁금하다. 진보라는 것이 아주 단순하게 신체능력이나 정신능력이 엄청나게

발달하여 초능력을 쓰고 뭐 그런 것이었으면 좋으련만, 슬프게도 나에게는 아무 능력도 생기지

않았으니. 그런 것 같지는 않은 것 같고... 흔히 우리가 막연하게 이야기 하는 진보라는 것

말이다. 하하.

나는 일전에 “보수는 처지이고 진보는 자세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 이 생각이

바뀌지는 않았다. 나는 진보가 뭐 별것은 아니고 그냥 자세라고 생각한다. 지금 보다 조금 더

괜찮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자세, 괜찮다는 것이 참 포괄적이고 두루뭉술하지만 혼자만의

이익이 아닌 인간과 생명 전체를 생각하는 그런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삶이란

처지를 겪고 있는 나는 보수적이고 매순간 보수적이어서 힘들다. 이런건 솔직히 힘들다기보다

괴로운 것에 가깝다. 진보라는 자세는 늘 취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새롭게 자세를 잡을

때마다 나의 중심이 흔들리는 불편한 경험을 해야 한다. 이기심을 바탕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관을 매순간 부정하면서 나아간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근데 뭐 누가

시킨것은 아니니 이 요란법석을 떨면서 말을 하겠다고 앉았는것도 부끄러운 이야기 이긴 하다.

우리는 흔히 이런 이야기를 한다. 젊었을 때는 진보적이었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보수적이

된다고.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잃을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 잃는다는 것이 단순 재산이면

좋겠지만 단순 재산이 아니라 애써 형성했던 가치관 일 수도 있다. 몸은 점점 약해지는데

믿어왔던 것이 후둑 후둑 무너지는 세상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불안하고 힘든 일인가. 그리고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 당신은 일순간에 보수가 되어버린다. 평생을 노력한다 해도

죽기 하루 전에 보수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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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처지라는 것이 이렇게 안타깝고 속상한 것이다. 벗어날 수 없는 ‘나’의 일이 아닌가. 이

고통을 멈추면 얼마나 행복할까. 물론 그 순간 고집으로만 지켜왔던 나의 무언가를 버려야

겠지만 그래도 그 이후로는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변절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알아주지도 않는 신기루를 쫓으며 살다가 기운이 쭉 빠졌을테니

그 수고를 생각하면 얼마나 슬픈가.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단순 이익 때문에 변절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이 피로를 느꼈을 수도 있다.

단순 피로 이외에도 진보에는 큰 함정이 존재한다. 사실 이 이야기가 오늘의 핵심이다.

진보한다는 것은 멋진 것 같지만 바꿔 말하면 도태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 인류의 발전을 도모하고’ 이런건 사실 이상에 가깝다. 분야와 자리가

한정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게 이야기 해도 선택이 일어날 수 밖에 없고 그 안에서 도태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이게 진보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어느 순간 이전까지는 모두의

보편적 발전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는데 나의 처지가 도태될 차례라는 말을 얼마나 청천벽력

처럼 느껴지겠는가. 오히려 이런 면에서 보면 흔히 이야기하는 보수진영의 자리 챙겨주기가

부럽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자리를 챙겨 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하 이것 참.

자 그럼 남는 것은 오직 하나 복지 뿐이다. 우리 같이 열심히 가치를 중요시하게 노력하면서

살고 나머지 도태는 국가가 책임지겠다. 이 말이다. 공정하고 올바르게,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방향으로 국가라는 유기체는 생존을 이어나가야 하고 이 과정에서 함께 노력하다가 어쩔 수

없이도태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것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사람이 불쌍하기 때문에,

사람이 소중하기 때문이 아니라 진보라는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힘있게 나아가기 위해 복지가

필요한 것이다.

또 이거 유연하다는 것을 노동시장 유연화로 해석해서 계약직이 난립하고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그런거 떠올린 놈들은 진짜 -_- 천벌 받을 거다.

자 그럼 오늘 부터 렛츠 진보하는 자세로 마음을 먹어보기는 개뿔. 건강을 생각하고 행복을

위해 자연을 찾아서 등산이나 하자. 맨날 학교나 회사나 도시의 밋밋한 땅을 왔다갔다 하면서

남들 눈치 보는 통에 목이 죽 늘어나 거북목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낙엽 지는 가을도 오는데

앉아서 글이나 쓰고 글이나 읽고 이게 얼마나 한심한가.

함께 산으로 가자. 뒤쳐지더라도 모두가 너를 돌봐 줄테니 말이다.

끝.

글. e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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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지인